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2권 황장미 혁명 -2- 되돌아간 로사리오

되돌아간 로사리오(返された ロザリオ)

 

 

    1

 

예감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로 나타났다.
"로사 페티다 안 뷔통 자매가 깨어졌대"
유미가 맨 처음 들은 것은 수업도 끝나고 학교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한다고도 할 수 있는 청소시간이었다. 다른 구역 담당이었던 클래스메이트 카츠라양이 파닥파닥 교실로 돌아와서는 문에 가장 가까이 있던 학생에게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그것이 칠판을 물청소 하고 있던 유미의 귀에까지 닿은 것이다.
"그거, 정말이야?"
일부러라도 숙녀라고는 할 수 없는 대담한 포즈로 교단을 내려와, 유미는 카츠라양에게 달려들었다.
"자, 잠깐 유미양. 침착해봐"
이게 침착해질 수 있는 일인가. 유미는 양손으로 카츠라양의 팔을 잡고 교실 구석까지 연행해서대답을 재촉했다.
"이, 일단, 걸레 쥔 손으로 내 교복 잡는 것만은 그만 둬"
카츠라양은 비명과도 비슷한 소리로 애원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흑녹색 교복 바탕이 팔 부분만 물든 듯 짙어져 있다.
"앗, 미안"
유미는 서둘러 손을 뗐다. 정신이 없다 보니 걸레를 손에 쥔 그대로였던 것이다.
"뭐 괜찮지만. 그냥 두면 마를 테니까"
그보다, 하는 느낌으로 카츠라양은 지금 막 알게 된 정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귀가 빠르다.
"6교시 수업이 끝난 직후니까, 바로 조금 전 일이야"
말에 따르면.
수업에 복귀한 지 이틀째의 요시노양은 병원에 가기 위해 HR에 참여하지 않고 하교했다. 담당의사에게 예약을 해 둔 데다 이제 막 침대에서 일어난 사람에게 무리를 시키면 안 된다고 수업이 끝난 후 곧바로 돌아가도 된다는 허가는 이미 담임선생님께 받아 두었다고 한다.
"국화반 학생들도 깨지는 물건을 만지는 심정이잖아? 청소 같은 거 하지 않고 일찍 돌아가 주는편이 나은 거야"
"어째서?"
"그야 요시노양은-.  어라? 유미양, 요시노양이랑 같은 반 된 적 없어?"
"응"
유미가 끄덕이자 카츠라양은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2년에 한번은 반을 바꾸는데 참 보기 드문 일도 다 있네.' 하고 중얼거린 후, 그럼 별 수 없지 하는 투로 보충설명을 시작했다.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다면 요시노양이 어디가 아픈지 혹시 모르는 거야?"
"허약체질, 이라는 거 아냐?"
"그것도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
카츠라양은 유미의 가슴 부분을 가리켰다.
"타이?"
"바보. 심장이잖아"
일부러 그렇게 대답한 건 아닌데, 카츠라양은 유미의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같은 반이 된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본 적 있을 거야"
"뭘?"
"그 애의, 발작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말이지, 보고 있는 쪽이 심장에 안 좋아. 심장이란 거,
목숨에 직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
"응. 좀"
요시노양은 가끔 숨을 가빠하며 가슴을 움켜쥐고 주저앉아 버리는 일이 있다고 한다. 아까 말했던 '깨지는 물건을 만진다.' 라는 표현은 그런 거였나.
"그러니까, 마라톤 대회 쉬지? 소풍 쉬지? 체육 수업은 보기만 하지? 학교도 자주 쉬니까 아무래도 붕 떠버리는 거야"
"과연"
그래서 친한 친구가 생기기 힘든 거겠지. 그래서일까 사촌언니인 레이님이 여러 가지로 챙겨주는식이 되어 버리고, 그렇게 되면 반 아이들은 더 접근하기 힘들게 돼 버리니까 아무리 가도 친구가 생길 리 없다.
"그래서?"
유미는 재촉했다.
"어라,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말이 엇나가버려서 잘 기억이 안 나네"
카츠라양이 할머니 같은 표정으로 '에- 그러니까' 하고 끙끙대고 있을 때 유미가 곧바로 이야기해줬다.
"요시노양이 병원을 예약하고 조퇴했다는 것까지"
"아, 맞아 맞아"
탁하고 카츠라양은 손을 쳤다.
"요시노양이 조퇴하는데 레이님이 따라간 모양이야. 당연히 그렇게 되면 레이님도 HR이랑 청소당번 빼먹게 되잖아? 그러니까 요시노양은 거절했다나 봐. 교문 앞에 택시를 불러 놨고, 몸 상태도 괜찮으니까 혼자 갈 수 있다고"
"응"
"그때는 그냥 가벼운 말다툼 정도였나 봐. 그러니까 '같이 간다.', '안 간다.' 하며 밀고 당기고 하면서 어쨌거나 택시도 기다리고 있고 예약시간도 있고 해서 교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대"
"...하지만, 요시노양이 결국 뚜껑 열렸다?"
"딩동댕"
"직접적인 원인은?"
"레이님이, 담임선생님한테서 조퇴 허가를 학생수첩에 받아 왔대. 그거에 화가 나서, 요시노양은로사리오를 돌려줘 버린 모양이야. 마침 또 마리아님 앞까지 왔을 때."
"?"
결국 한건 했구나, 요시노양. 뭔가 하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로사리오를 돌려줘버리다니-.
"그래서. 로사리오를 돌려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깨어졌다고 얘기하고 있잖아. 대체 뭘 들은 거야"
카츠라양은 '아아, 아무튼' 하고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로사 페티다 안 뷔통의 동생이 언니에게 로사리오를 돌려주다니, 전대미문의 대사건이잖아"
"깨어진다니... 절교랑은 다른 거야?"
유미가 묻자, 카츠라양은 집게 손가락 하나를 세우고는 쯧쯧쯧하고 흔들었다.
"오히려 이혼에 가깝지"
"...히에에~"
놀라움의 제 2파가 회오리처럼 몰려왔다. 언니에게는 절대복종이라고 해도 될 동생이 로사리오를돌려준다니, 정숙한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이혼장을 내미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 그보다 더 굉장한 일인 듯 하다. 어쨌거나 전대미문이니.
"그건 그렇고, 카츠라양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직접 레이님한테 들었어."
"에?"
"정원을 망령처럼 걷고 있는 걸 보고 몸이라도 안 좋으신가 하고 말을 걸었더니, 헛소리하는 것처럼 중얼중얼 뭔가 말하시잖아."
그걸 이어 맞춰서, 카츠라양은 사실을 추리해낸 것이다.
"그래서, 레이님은"
"일단 교실까지 데려다 드리려고 했는데. 몽유병자처럼 비틀비틀 걸어가버리잖아. 그런 레이님 처음 봤어."
"그런 건 빨리 말해야지."
유미는 가지고 있던 걸레를 카츠라양에게 던지고는, 있는 대로 다리를 벌리며 성큼성큼 교실을 뛰어나갔다. 카츠라양이 레이님을 목격한 게 분명히 정원이라고 했으니까 일단 계단을 내려가 가장가까운 문을 지나 밖으로 나간다.
"어딜까"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리리안의 교정은 넓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카츠라양에게 자세히 듣고 올걸, 하고 생각해 봤자 이미 늦은 일.
"에에이, 될 대로 되라지"
언젠가 드라마에서 들은 적 있는 대사를 읊고, 유미는 북쪽을 향해 달렸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아마 레이님은 상당히 쇼크를 받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쇼크를 받으면 혼자 있고 싶거나 누구에게 상담하고 싶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잘은 모르겠지만 레이님의 경우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없는 조용한 곳에 있지 않을까나, 하고 생각한 것이다.
학원제 전날에 사치코님이 도망쳐 들어간 옛 온실을 시험 삼아 들여다보자, 역시 레이님은 거기에 있었다. 순간 다른 사람인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레이님에게는 평소 발하고 있던 기같은 것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선반에 앉지도 않은 채, 그저 통로에 망연히 서 있는 한명의 소년, 아니 소녀.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것 아닐까.
"레이님"
단정한 옆얼굴에 말을 걸어 보았지만, 그 다음이 이어지지 않는다. 그때 유미는 생각했다. 어째서 난 레이님을 찾으러 온 걸까, 하고.
레이님이 멍하니 정원을 배회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냥 있을 수 없어서 교실을 뛰쳐나왔다. 하지만 막상 레이님을 찾아내고 나서, 난 뭘 해야 할까. 레이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도 알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그저 방해꾼이 되어있는 것 아닐까. 레이님은 혼자 있고 싶어서 여기를 고른 걸지도모르는데.
"아아, 유미쨩"
레이님은 유미를 보자, 살짝 웃었다. 웃는 얼굴이 조금 가슴 아프다. 왼손에 짙은 녹색의 돌을 이은 로사리오가 쥐어져 있다. 그게 분명히 요시노양이 돌려줬다는 그 로사리오겠지.
"어째서일까"
어째서, 요시노양이 로사리오를 돌려준 걸까. 누군가 그걸 가르쳐 줬으면 한 걸까. 레이님은 역시 헛소리처럼 그렇게 중얼거린 후 한숨을 쉬었다.
"유미쨩은 말이지, 사치코에게 로사리오를 돌려주고 싶어진 적 있어?"
"엣? 앗? ...아뇨, 아직"
솔직히 말해서 그런 적은 단 한번도 없다. 하지만 틀림없이 레이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자매의 서약을 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잘라 말할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미안, 아직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럴 리 없겠구나"
"하아"
언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곤 해도, 나 자신에게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기는 아무래도힘들다. 게다가 유미의 경우, 사치코님에게서 이혼장을 받을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먼저 로사리오를돌려드리는 일은 일단 없지 않을까.
"아-. 왠지 죽을 거 같아"
갑자기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싶더니, 레이님은 머리를 감싸 안고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버렸다. '죽고 싶어' 가 아니라 '죽을 거 같아' 인게 왠지 레이님답다. -유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잠깐, 멋대로 죽진 말아 줘"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사치코님!"
돌아보자 거기에는 놀랍게도 오가사와라 사치코, 바로 그 분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정신 똑바로 차려, 레이"
사치코님은 유미를 지나쳐 레이님 옆까지 가서는, 맨 먼저 그렇게 호통 쳤다.
'과연...'
얄미울 정도로 딱 박힌다. 이 명령 투는, 다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로사 페티다 안 뷔통이 그렇게 간단히 죽어서 될 일이야. 자, 가자"
유미가 '과연 우리 언니' 하고 넋을 잃고 있을 동안 사치코님은 레이님의 손목을 잡고 곧장 걷기시작했다.
"아, 어디로?"
묻자, 장미의 관에 데려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곳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이쪽이 귀찮아져"
'크읏-'
이거다. 이것뿐이다. 레이님을 일단 정신차리게 한 후, 억지로라도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끌고가 버리는 것. 유미가 찾고 있던 답을, 사치코님은 이렇게나 간단히 실행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레이님이 걱정되서 여기까지 날아왔으면서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고. '귀찮아' 라고 말해 버리는 점이 또 얄미울 뿐이잖아.
확실히 레이님을 장미의 관에서 일단 쉬게한다는 건 명안이다. 이 시간이라면 레이님의 언니인 로사 페티다가 계실지도 모른다. 게다가 만약 로사 페티다가 안 계신다고해도 3학년이 누군가 있다면 틀림없이 어떻게든 해주실 것이다. 장미님들이라면 요시노양과 레이님 사이에 들어가서 화해시켜 주실 지도 모른다. 일단은 전혀 쓸모없어진 레이님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게 급선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치코님과 사치코님에게 끌려가는 레이님을 따라 온실을 나가자, 뒷문 쪽을향해 휘적휘적 걸어가는 눈에 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저건..."
반신반의하며 보고만 있었던 건 그 사람이 너무나도 그 사람답지 않은 기운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평소의 기氣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잘못 본 걸까나?'
같은 교복을 입은 같은 또래의 소녀들이 모여 있는 거니까 뒷모습이 똑같은 사람 정도는 잔뜩 있을 것이다.
"뭐하고 있어, 유미. 어서 오지 않고"
뒤처진 유미에게 사치코님이 돌아보며 말했다.
"아, 예"
"더 이상 일을 만들지 말아 줘. 한명은 괜찮지만 두 사람을 끌고 걸어가는 건 사양할 테니까"
그런 말을 듣고 별 수 없이, 그래도 신경 써 주시는 것에 자그마한 기쁨을 느끼며 유미는 사치코님의 옆까지 뛰어갔다. 조금 전의 뒷모습이 본인일지 잘못 본 걸지는 장미의 관에 가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뛰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조금이라도 곁에 있고 싶으니까. 언니란 거기 있어주기만 해도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까.
그런데 어째서 요시노양은 레이님에게 로사리오를 돌려줘 버린 걸까. 언제나 똑 부러지고, 그러면서도 상냥한 레이님이 쇼크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그만큼
두 사람의 연은 강했을 텐데, 어째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유미는 열여섯이 되어서 겨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2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
입을 열자마자, 로사 키넨시스는 그렇게 말했다.
"헤?"
"유미쨩이 '전부 맡길 테니까 부디 잘 부탁드려요.'하는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 애초에 확실히 해두려고"
"하아"
"그래그래. 3학년이라고 해 봤자 결국 고등학생이니까. 슈퍼맨처럼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구용"
로사 기간티아도 로사 키넨시스도 나란히 의자에 앉은 후 '그래도 괜찮다면 이야기를 들어보지.' 하는 태세에 들어갔다.
장미의 관 2층. 운좋게도 로사 키넨시스와 로사 기간티아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세 명이들어왔다. 그 '운좋게' 라는 생각이 유미의 얼굴에 아른아른 나타나 버린 거겠지. 장미님들은 조금 경계하신 모양이다.
"언니분들, 좀 차가우신 것 아닌가요? 그래서야 꼭 레이들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고 말씀하시는것처럼 들리는데요"
레이님을 의자에 앉히며 사치코님이 항의했다.
"그다지 상관없다고 말하진 않았는데. 그렇지?"
"맞아. ...그래서,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레이나 요시노쨩에게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는거야?"
홍백의 장미님들 두 분은 얼굴을 마주본 후 우아하게 차를 마셨다.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레이를, 언니분들은 내버려 두겠다고 하시는 건가요?"
"뜨겁구나- 사치코는"
냉랭한 말투로 로사 기간티아는 웃었다.
"너나 유미쨩이 흥분하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정작 중요한 건 레이의 마음이잖아?"
"레이의?"
시선이 레이님에게 집중된다. 당사자는 갑작스런 주목에 눈을 두세번 깜빡였다.
"생각해 보렴. 예를 들면 나와 너..., 아니 유미쨩 쪽이 좋겠구나. 사치코와 유미쨩이 무슨 이유론가 헤어졌다고 하면 어때?"
로사 키넨시스는 사치코님의 옆까지 걸어와서 그 검은 머리카락을 살짝 쓰다듬었다. 이런 시추에이션일 때 사치코님이 갑자기 어려 보이니까 신기한 일이다. 역시 '언니' 앞에서는 누구라도 다들 '동생' 이 되어버리는 걸까.
"어때, 라뇨.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언니"
"너는 누군가가 끼어들어서 화해시켜 줬으면 할까? 설령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레이가 먼저 그렇게 말해버리면 싫지 않아?"
"-그야"
"그런 거야. 물론, 그런 사태가 된다면 나는 부탁하지 않아도 너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물어보겠지만"
"어째서요?"
사치코님은 이상한 듯 되물었다. 그야 그렇지. 어째서 레이님과 사치코님에 대한 대처가 다른 건지, 꼭 가르쳐 주셨으면 한다. 하지만, 로사 키넨시스도 참.
"나는 너의 언니니까"
듣고 있는 이쪽이 빨개져버릴 정도로 단순명쾌하게 대답해 버렸다. 그렇게 분명히 잘라 말해버리면 누구도 '편애' 라고 나무랄 수 없다.
"레이 일은 로사 페티다께 상담하라는 말씀이신가요?"
꿈틀꿈틀하고 사치코님의 관자놀이 근처가 떨렸다.
"뭐, 그게 도리라는 거지. 역으로 나라도 로사 기간티아나 로사 페티다에게 사치코일로 왈가왈부당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머, 그래? 난 그다지 시마코가 나말고 다른 사람에게 기대도 싫지 않은데"
로사 키넨시스도 로사 기간티아도 꽤나 느긋하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유미도 이런 레이님을 내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로사 페티다가 안 계시니까 이렇게 상담하고 있는 건데...!"
드디어 사치코님은 큰 소리를 내며 테이블을 쳤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3학년은 그런 정도로 움직일 사람들이 아니다.
"죽고살고 하는 문제가 아니잖아?"
저기. 그렇게 나오면 처음부터 이야기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로사 키넨시스.
"집안싸움에 다른 집 사람은 끼어들지 않는 게 예의야"
로사 기간티아까지. 아무튼 용서란 게 없다니까, 장미님들은. 하지만 그러면서도 손을 뻗는 것도잊지 않는다.
"하지만. 레이가 원한다면 이야기를 들어줄게"
"그래. 강요하진 않을 뿐이야. 어때 레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있어?"
이런 식으로. 만약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 버리면, 레이님은 아무 것도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제삼자들이 이러쿵저러쿵 조금 핀트가 어긋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조금 정신을 차렸는지, 어느 정도 힘이 돌아온 눈으로 '아뇨' 라고 대답했다.
"그 때가 되면 상담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저 자신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니까요"
그만큼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나, 하고 유미는 생각했다. 혼란스러운 상태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고 레이님은 말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요시노양이 어째서 결별하려고 했는지,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그런 것을 조금씩. 확실히 그런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장미님들이 화해를 시키더라도 원래대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설령 처음 모양대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시 깨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그럼, 우리는 결국 쓸데없는 참견이었다는 거구나"
사치코님이 삐진 듯 말했다. 레이님을 찾아다니고, 꾸짖어서 장미의 관에 데리고 온 게 그냥 잔뜩 손해만 본 셈.
"친구란 거, 원래 그런 손해 보는 역할을 맡기 위해서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로사 키넨시스의 위로는 나이스한 건지 비꼬는 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도 무슨 말을 하고싶은 건지는 잘 알 수 있다. 사치코님은 그다지 무슨 이익을 바래서 한 게 아니니까. 잔뜩 손해만 본다는 걸 알고 있더라도 아마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이득 같은 거 따지지 않고 움직여버리는, 그런 게 친구라는 것이다.
"뭐어, 레이를 여기까지 끌고 온 사치코와 유미쨩의 판단은 옳았을지도. 듣자하니 레이는 비척비척 걸어다니며 헛소리처럼 아무나 붙잡고 자초지종 이야기하고 있었다잖아"
"저, 그런 짓-"
하지 않았어요, 라고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레이님의 말은 그 다음부터 페이드 아웃되어버렸다. 기억 어딘가에서 뭔가 떠오른 게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너 하고 있었던 거야"
로사 기간티아는 눈썹을 깔았다.
"자신도 모르는 채로 이야기하고 있었다면 꽤나 중증이야"
사치코님의 의견에 유미도 찬성이었다. 레이님은 적어도 카츠라양에게 이야기한 거니까. 사치코님이 온실에 나타난 시간 등을 생각해 보면 카츠라양과는 다른 루트로 소문이 흘러가고 있었을 것이다. 어두운 얼굴로 걸어가던 레이님이 누군가 말을 걸 때마다 자신도 모르는 채 요시노양에게 로사리오를 돌려받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걸 무의식중에 한 거라면 무지 무섭다.
"다녀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시마코양이 왔다. 아니, 유미들이 장미의 관에 오기 전에 한번 왔었다니까 돌아왔다는 표현이 적당할까.
"아쉽게도 로사 페티다는 이미 귀가하셨다고 합니다"
'어라, 그럼...'
장미님들은 이미 대강 일을 파악한 상태에서 시마코양에게 로사 페티다를 불러오게했다, 그렇게 되는 건가. 하지만 로사 페티다는 잡을 수 없었다-라고. 거기까지 생각하고 '앗' 했다. 온실을 나왔을 때 봤던 뒷모습, 그건 역시 로사 페티다였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요즘 좀 상태가 이상하니까 왠지 장미의 관에 오지 않을 것 같긴 했었어"
"그래서 불러오게 한 건데, 이미 늦었나"
제대로 봐야 할 곳은 보고 있는 거구나, 장미님들. 이런 식이니까 슈퍼맨처럼 생각하게 되어버리는 거라니까요.
"다행히 로사 페티다는 아직 일의 중대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로군. ...그래서, 시마코.바깥 상황은 어때?"
"방과 후라는 것도 있고 해서 아직 그렇게 소문이 퍼지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시마코양의 보고를 들으며, 유미는 일어나서 창문 커튼을 조금 걷고 밖을 내려다보았다. 장미의 관 앞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을 학생들이 몇 명, 안쪽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유미들이 안으로 들어올 때보다 약간 늘어난 것 같았다.
그녀들에게 문을 열고 정면에서 찾아올 용기는 없는 것이다.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니까 그저 마음 편히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곳에 모였다는, 단지 그것뿐이었다.
"오? 아는 얼굴이 있는데. 이야, 활기차군, 활기차"
로사 기간티아가 슥하고 나타나서 유미의 머리 너머로 밖을 보고는 웃었다. 아는 얼굴, 이란 신문부 부장을 말하는 거겠지. 유미도 쫓긴 적이 있으니까 얼굴은 잘 기억하고 있다. 신문부의 그녀들은 과연 귀가 빠르기도 하시지. 귀가 빠른 데다 기사로 쓰는 것까지 빨랐다.
"레이. 요시노쨩은 어떻게 했어?"
로사 키넨시스가 레이님에게 묻는 것을, 유미는 등 뒤로 듣고 있었다.
"택시로 병원까지 갔습니다"
"그래, 그건 다행이구나"
어쨌든 외야가 조용해질 최소한의 시간 동안은 요시노양을 드러나게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어쨌든, 행동을 일으킨 쪽이 나쁜 사람 취급 받기 쉬우니까.
"오늘 외야가 조용해진다고 해도, 내일 외야는 흥분하지 않을까요"
떠오른 의문을 그대로 이야기하자, '그렇구나' 하고 사치코님이 끄덕였다. 특히나 요시노양은 심장이 약하니까, 그다지 소동에 휘말려들게 하고 싶지않다는 것이 전원 일치의 의견이었다. 소동을 일으킨 것은 요시노양인데. 조금 모순되어있다. 하지만 아직 모두들 요시노양을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들에게 가장 좋은 형태로 마무리되면 좋겠다고 바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될 수 있으면, 요시노양과 레이님이 원래의 스-루로 돌아가 줬으면, 하고 빌었다.
"어쨌거나, 약간 스캔들이 될 건 분명하겠어. 사치코 때보다는 좀 문제가 있으려나"
날씨 이야기라고 하는 듯이 로사 기간티아가 말했다. 내일은 비가 조금 내리겠군요. 기온은 어제보다 낮아지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생각해 보면 그건 소나기 같이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같은 비라도 비를 동반한 대형 태풍. 그때쯤, 예상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슬금슬금 리리안을 향해 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3

 

"안녕하세요"
집에 온 레이는 가방도 풀지 않고 마당으로 이어진 옆집 문을 열었다.
"어머나, 레이쨩. 어서와"
요시노의 어머니인 레이의 숙모님이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현관문으로 나왔다. 감자 찐 냄새가 그녀와 함께 풍겨 왔다. 오늘 저녁식사는 아마 요시노가 좋아하는 갈비찜.
"요시노, 병원에서 잘 왔어?"
"응, 30분쯤 전일까. 검사 때문에 피를 많이 뽑혔다고, 위층에서 자고 있는데"
숙모님은 2층 쪽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표정으로 볼 때, 자고 있다곤 해도 그다지 상태가 나쁘지는 않은 거겠지. 요시노는 옛날부터 검사 같은걸 받은 후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지쳐서 누워 있곤 했다.
"이야기할 게 있으면 전해줄게"
"아니, 괜찮아. 그냥 병원에 따라가질 못했으니까 잘 돌아왔는지 걱정돼서 온 것뿐이고"
"그래?"
택시를 타는 것까지는 확인했지만, 그 다음 일은 모르니까. 로사리오를 돌려준 후 요시노는 레이를 뿌리치는 듯이 교문까지 달려가 버렸기 때문에, 혹시나 발작이라도 일으키지나 않았을까 하고 걱정되었던 것이다.
"레이쨩"
돌아가려는 차에 숙모님이 불러 세웠다.
"요시노하고 무슨 일 있었어?"
두근, 하고 심장이 뛴다.
"왜? 요시노가 뭐라고 했어?"
돌아서서 레이는 되물었다.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왠지 말이야"
숙모님은 과연 엄마다. 요시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걸 그다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잘 관찰하고 알 수 있는 어머니가 된 걸지도 모른다.
"조금 싸웠을 뿐이야. 괜찮아, 금방 화해할 테니까. 걱정 마"
스스로의 마음도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지금 숙모님에게 상담하는 것은 힘들었다. 사실은 두렵더라도 요시노를 만나서 차근차근 본심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럼..."
"앗, 레이쨩"
등을 돌리자, 다시 숙모님이 불렀다.
"레이쨩, 저기?"
하지만 기다려도 숙모님은 다음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숙모?"
설마 요시노의 몸에 무슨 일이, 하고 순간 놀랐지만, 그건 지나친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이윽고 나온 숙모님의 말에, 레이는 비틀하고 힘이 빠졌다.
"갈비찜, 조금 많이 만들어 버리는 바람에. 나중에 가져가라고 엄마한테 전해 줘"
숙모님의 갈비찜은 하세쿠라가의 그것보다 조금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