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국 이야기 (彩雲國物語) 2권 -3장- 임금님의 밤나들이

제3장. 임금님의 밤나들이 계획

 

  

"우-응. 정말 이 열쇠, 어떻게 된 걸까? 매일 보고 있지만 신기해...."

수려는 중얼중얼 거리면서 손에 쥔 금색의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언틋 보기에는 전혀 열쇠로 보이지 않는다. 몇 개인가 관절이 붙어있고 접혀있어 손바닥에 들어갈 정도였지만, 여기저기를 조금 움직이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관절이 튀어나와, 최종적인 크기는 불명이었다. 어쩐지 관절의 앞 모양이 열쇠구멍에 맞지 않고, 다음 관절이 펴지지 않게 조립되어 있어서, 깊이 끼워넣는 것보다 복잡한 조작이 필요하게 되어있는 듯 하다. 수려가 이렇게 적당히 만지작거려도 관절이 몇 개나 되는지, 처음의 자물쇠를 연 관절은 가르쳐주지 않는 한 꺼내기는 거의 불가능할 듯.

"재미있는 모양과 구조지요? 열쇠로는 보이지 않아요. 지금은 돌아가신 희대의 열쇠 장인이 만든 일생 일대의 대작이라고 합니다. 장소가 장소이기 때문에, 만일 부정한 누군가가 열쇠를 손에 넣어도 사용법을 알지 못하는 구조로 하자고 했던 듯 합니다만..... 너무 복잡해서, 지금은 복제도 만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 열쇠장인이 제조방법도 알리지 않은 채 돌아가 버리셨기 때문에."

정리한 책을 대량으로 안고, 방을 향하는 길에서 경시랑이 다가왔다. 수려는 당황하며 멈춰서서, 경시랑을 도왔다.

"아, 그 열쇠, 제 허리춤에 찔러 넣어 주십시오. 오늘은 조금 빨리 점검하러 갈 생각이니까요. 수군과 연청씨도 함께 호위를 겸해서 또 와 주셔요."

"예. ....이렇게 보물창고에, 매일 가도 변함없이 눈이 부셔서 아무 것도 안보이네요." 

재정을 담당하는 호부는, 보물창고의 관리도 맡고 있다. 수려와 연청은 장소의 성질상, 호위를 겸해 매일 경시랑과 함께 왔다. 정말은 수려는 도움도 되지 않았지만, 흥미진진해 하는 수려를 알아챈 경시랑이 데리고 와 주었던 것이다. 열흘 이상 다니고 있어도 아직 완전히 다 보지 못했다. 쌀이다 보리다 해서 여기저기 뛰어 다니는 것과는 다른 세상으로 느껴져, 보물창고는 무서운 장소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수군, 어떤 선술을 쓰고 있습니까?"

경시랑은 수려와 함께 책을 정리하면서, 놀라움 반, 기쁨 반으로 물었다.

"하루 한번 차를 들게 되다니! 십년 가까이 그 사람과 함께 있었지만, 처음입니다. 정말 청천벽력이예요."

슬슬 마흔이 되어 가는 나이였지만, 그 유연하고 대범한 분위기 때문에 그다지 나이는 느껴지지 않았다. 수려의 아버지 소하는 어딘가 선천적으로 어긋난 구석이 있었지만, 그는 정통파 온화한 사람이었다.

".....에.....글쎄요.....? 피곤해서 잠들었으니까, 그렇게 무리하지 않는 쪽이 좋다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역시 스스로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요?"

그렇다. 우레가 있었던 다음 날, 황상서에게 수려는 조심조심 말해 보았던 것이다.

"상서가 쓰러지게 되면 이도 저도 되지 않아요. 조금은 쉬시면 어떻겠습니까?"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장관의 잠든 모습은,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분명 대단한 피로가 쌓인 것이 틀림없었다. 최소한 하루에 1/4각이라도 휴식을 취한다면 다를 텐데, 라고.

일축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하루 한번의 차를 승낙했던 것이다. 

덧붙여서 황상서는 차를 마실 때도 가면을 벗지 않았다. 가면의 입 부분이 개폐 가능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그 일로 명확해지기는 했지만..... 도대체 그 가면의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 

"....자고 있었다고? 그 사람이 말입니까?"

"예, 저 긴의자에서."

경시랑은 생각에 잠긴 듯이 턱에 손을 대고, 슬쩍 수려를 바라보았다.

"수군,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움찔하며, 수려는 눈을 돌렸다.

"예. 아니요, 벼벼별로."

그러나 지그시 내려다보는 경시랑에, 정직한 성격인 수려는 지고 말았다.

"저-, 에-그러니까... 머리카락에..... 손을 댔어요."

그 대답이 경시랑의 의표를 찔렀던 듯. 그는 눈을 깜빡였다.

"......머리카락, 이라고요?"

"하, 하지만 무척 사락사락해서 예뻤는 걸요. 조금만, 만져보고 싶어서."

그 순간, 경시랑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소리 내어 크게 웃는 것을 수려는 처음 보았지만, 정말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웃기는 말을 한 건가?

"저, 저어"

".....미, 미안합니다. ....그랬습니까?"

경시랑은 또 웃으면서, 다정한 눈을 수려에게 향했다.

"수군, 그 사람이 잠든 사이에, 그 가면 속을 보자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에에? 설마!"

무슨 까닭인지 얼굴 때문에 여자에게 차이고, 그 탓으로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한다. 10년 이상이나 기를 쓰고 숨기고, 지금에는 조정 전체에 함구령이 내려져 있을 정도로 그의 마음의 상처가 깊은 것이다. 도대체 10년간 아무에게도 진짜 얼굴을 보이지 않은 보통이 아닌 근성이다.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요. 게다가 황상서가 그렇게 까지 해서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는 것을 벗겨내고 싶어할 정도로, 제가 극악무도한 사람도 아니구요!"

발끈하며 주먹을 쥔 수려에, 킥킥하고 경시랑은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남자는 얼굴이 아니예요! 어느 정도 일을 하느냐 입니닷!!"

"이런 이런-, 수군은 남자다운 기준을 가지고 있군요."

"아, 하지만 이것은 순수한 흥미입니다만, 경시랑은 황상서의 얼굴을 보신 적이 있으셔요?"

그러자 경시랑은 부자연스럽게 눈을 굴렸다.

"에? 에~.....그렇군요. 뭐 아무래도 좋지 않습니까? 그런 건."

그 모습에 수려는 얼굴을 돌리고, 살짝 소매 끝으로 눈을 닦았다.

(.....불쌍한 황상서..... 이 다정한 경시랑도 입을 다물 정도의 얼굴이라니....)

"하지만, 요즘 그 사람이 무척 기분이 좋은 이유를 알았습니다."

"에?"

"당신을 정말 마음에 들어하고 있습니다. 불만도 없이 바지런히 일해주고, 게다가 무척 좋은 아이고. 소개시켜준 이시랑에게 감사합니다."

"마, 마음에 들어해요? 황상서가 저를 말입니까?"

"예. 당신은 세세한 것을, 이쪽이 지시하기 전에 해주잖아요? 항상 벼루에는 먹이 듬뿍 들어있고, 앞이 갈라진 소필은 바로 새로운 걸로 바꿔주고, 용지가 떨어지는 일도 없어졌고, 휴지통은 가득 차기 전에 잘 비워지고 있고요. 방도 항상 깨끗하고, 말은 하지 않지만, 황상서는 내심 무척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물론 저도요."

"하, 하아."

많은 삯일을 처리하고 있는 수려에게 있어서, 그 정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켜서 하게 되면 바로 무능의 낙인이 찍혀 해고되어 버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호통을 들어도 기죽지 않고 제대로 다음 번에는 고치고 있잖아요? 지금에는 그 사람이 화내는 일도 완전히 없어졌고요. 정말로 임시라는 것이 아쉽습니다."

수려는 부끄러워 볼을 붉혔다. 칭찬받는 것은 솔직히 기쁘다.

"헤헤헤-, 고맙습니다. 저도 경시랑이, 정말 좋아요."

그리고 책장 위의 책을 정리할 양으로, 달각달각 사다리를 올라갔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잘 모르겠어요."

"기분은 그 날의 가면 종류를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아아, 발 밑을 조심하셔요."

".......에?"

"이런, 몰랐어요?"

..... 대단한 관찰안이다. 그러니까 그 황상서와 잘 해낼 수 있는 것이겠지. 부관의 비법을 슬쩍 훔쳐본 기분이 들어, 수려는 감탄했다. 거의 특기라고 해도 좋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갑자기 빠직 하는 소리가 나고, 수려의 오른쪽 다리가 발디딜 곳을 잃었다. 흔들 몸이 뒤쪽으로 기울면서, 호화롭게 장식한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에에----------ㄱ!?)

떨어진다---고 수려가 눈을 감았을 때, 강력한 팔이 껴안아 붙잡았다.

(.....헤에?)

쥬뼛쥬뼛 수려가 뒤를 돌아보자, 가까이에 낯익은 가면이 있었다. 낯익은 것이라고 해도, 갑자기 가까이에서 보게 되면 심장에 나쁘다.

"우, 우왓- 황상서! 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고고고고맙습니닷!"

"위험하잖아, 조심해."

한쪽 손으로 수려를 껴안아 붙잡고 있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의, 의외로 육체파? 하고 수려가 새로운 발견을 황상서 사전에 첨가하고 있는데, 황상서는 역시 한쪽 손으로 가볍게 수려를 내려놓고, 부러진 사다리를 점검했다.

"너무 오래 써서 못이 빠진 것 같다. 바로 연청에게 수리시키지."

"어라, 부러져버렸네? 좀 늦었구만,"

느긋한 목소리에 뒤돌아보자, 대공도구 한벌을 껴안은 연청이 있었다.

"떨어진 아가.... 수? 미안해. 다친 데는 없어?"

주로 육체 노동에 혹사당하고 있는 때가 많은 연청이지만, 그도 외외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황상서는 경시랑의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간단하게, 심각한 사실을 전했다.

"....유리, 고천간과 벽손사가 쓰러졌다."

"에에!? 그, 그 두분마저!?"

파락하고, 경시랑의 손에서 서한이 떨어졌다.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진다.

부서진 사다리를 고치고 있던 수려와 연청이 얼굴을 마주보았다.

"우와-, 결국 그 두분마저 쓰러져버린 것일까?"

"두 사람도 나이가 드셨으니까. --하지만 이걸로."

"응. ...시정관, 이쪽의 둘밖에 남지 않은 거지....."

각 성청에서 사람이 와 있기는 하지만, 문외한으로 호부의 지휘까지 맡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고관의 부담은 거의 줄지 않았고, 이 수일 사이에도 픽픽 쓰러지고 있어서, 결국 시정의 요직은 황상서와 경시랑만이 남게 되었던 것이다. 호부, 절대절명의 위기이다.

"머지않아 회복된 사람들도 돌아와 줄 거야. 여름도 지났어. 앞으로 5일에서 6일만 참고 견디면 돼."

가면으로 변함없이 표정을 알 수 없지만, 역시 황상서도 어딘지 모르게 피곤한 목소리를 하고 있다.

"저, 저저저저기!"

돌아선 황상서에, 수려는 한순간 말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결국 말했다.

"저, 저희들 노력하겠습니다! 열심히 도울 테니까! 그렇지? 연청!"

"헤? 아아, 뭐, 할 수 있는 거라면."

쾅쾅 하고 못을 박고 있던 연청이 건성으로 중얼거렸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가면의 상서는 수려에게 다가가, 부비부비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기 드문 광경에 경시랑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가? 자 연청."

"예,예. 뭡니까?"

"너를 지금부터 임시로 호부 시정관으로 명한다. 고천간과 벽손사의 일을 이어라. 이것이 인감. 붓. 벼루. 일은 여기의 책상에 쌓여있다. 즉각 시작해. 모르는 것이 있다면 묻고. 아아, 임명서는 나중에 적당히 만들어 두고."

".....예?"

뚝 소리가 멈췄다. 수려도 아연했다. ....지금, 뭔가 굉장한 것을 들은 것 같은데.

"할 수 있는 거라면 하겠다고 말했지?"

"그야.... 말했습니다만, 하지만 어쨌든 그건 좀."

"너.라.면. 가.능.하.겠.지. 랑연청."

휙 왼쪽 뺨의 상처로 손을 뻗었다. 연청은 그 손가락을 피하려는 듯 겨우 몸을 비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깨닫고, 아차, 하는 얼굴을 했다.

".....알았습니다. 할게요. 하지만 나중에 후회해도 몰라요."

수려는 깜짝 놀랐다.

"엣, 잠깐만 황상서, 정말 괜찮습니까!? 이 수염투성이 남자에게 그런."

"수염은 관계없잖아-."

수리를 끝낸 사다리를 두드리면서, 연청은 자신의 수염을 끌어당겼다.

"상관없겠지? 유리."

황상서가 질문을 던지자, 무엇을 생각한 것인지 경시랑도 빙긋 웃으며 수긍했던 것이다.

 

 

".....결국, 황상서도 터무니없는 짓을 하네."

터벅터벅 회랑을 걸으면서, 수려는 고개를 돌렸다. 양손에는 각 상청에 보내는 대량의 서한이 있다. 연청의 몫도 부담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잡용도 상당히 늘어나 버렸다.

"저, 정말 연청에게 맡겨도 괜찮은 것일까?"

능력이 어떻기 이전에, 외견으로 봐서 연청은 문관보다 무관으로 생각되어져버리는 것이다. 언제나 곤을 지니고 있고, 책상 앞에 성실하게 앉아있는 것이 정말 기묘한 느낌이다.

(하지만 뭐 주 문관이 되려고 했다고 말했고.)

여기 저기 걸으면서, 문득 누군가가 회랑을 돌아오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서한의 틈 사이로 그의 옆 얼굴을 본 수려는 깜짝 놀랐다.

즉시 가까이의 커다란 원주로 숨었을 때,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회랑에 울렸다. 

"---수려!?"

그러나 아무래도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듯, 곧 쓸쓸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있을 리가 없지...."

터벅터벅 멀어져 가는 발소리에, 수려는 살짝 원주에서 얼굴만을 내밀었다. 애수가 떠도는, 맥없고 아무래도 외로운 뒷모습이었다.

(우, 우와--아, 위험했어.)

수려는 이마에 땀을 흘리고 있을 때, 갑자기 <그>가 발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동시에 수려도 얼굴을 끌어넣었다.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요즘 이런 느낌이 자주 드네..."

어린아이가 토라진 듯한 목소리. 이것이 이 채운국의 국주라는 사람이라니, 웃어버렸다.

그러나 웃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수려의 심장이 방금 전 뜻하지 않은 만남으로, 두근두근 하고 부풀어 터질 듯이 고동을 치고 있었다.

(---정말, 뭐ㅡ 뭐야. 그 후각은! 야생동물에 비할 바가 아니네!!)

정처없이 함께 데려온 사람도 없이 외조를 서성이며 걷는 류휘와, 여기 저기 분주하게 다니고 있는 수려와는, 사실은 이 반달 남짓 몇번이나 우연히 마주쳤었다. 그 때마다 수려는 가까운 방으로 뛰어든다든지 난간의 아래에 숨는다든지 해 지나치고 있었지만--류휘의 코는 무섭게 좋았다.

언제나 지금처럼 바로 눈치채는 것이다. 그 때마다 수려는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알았습니다. 하지만 강유님,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잡용계를 하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수려는 한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절대로, 나의 일을 <그>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셔요.

그것은 수려 나름의 구분이었다.

후궁을 그만둔 시점에서, 이제 류휘와 자신을 이어주는 실은 끊어졌다. 교차했던 길도 나누어져,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다. 억지로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상상 이상으로 복잡한 일이 될 것이다.

류휘는 아마 이전 같은 홀가분한 관계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으로, 수려가 귀비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은, 이번에야말로 류휘의 비가 될 사람에게 어울리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었다.

수려가 후궁을 나와, 두 번 다시 입궁할 마음이 없는 이상 (이라고나 할까,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있을 수 없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섰던 위치에 매달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고, 스스로 용납할 생각도 없다. 그것이 구분인 것이다.

이전처럼 행동하는 것은 분명 간단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언제까지라도 그는 수려에게서 떨어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만일 쌀쌀맞게 대하면 분명 류휘는 슬퍼하며, 상처받을 것이다. 그것이 괴롭다면, 만나지 않는 쪽이 훨씬 낫다.

(....빨리 새로운 귀비를 맞아들인다면 이야기가 간단하겠지만...)

냉큼 첩비든지 후비라도 맞아들인다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모두 기쁠텐데. 하지만, 수려가 퇴출한 그때, 언제나 후궁은 비어진 채일 거라고 했지만, 쓸데없이 신경을 쓰는 것이다.

(.....너무 먹이를 주어....길들여버린 걸까....?)

버려진 강아지가, 먹이를 준 사람과 친해져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게 되어버린 광경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라? 수군 아냐? 이런 곳에 주저앉아 뭘하는 거야?"

얼굴을 들자, 지금은 이미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아----아저씨."

이전에 책을 날라다 주었을 때부터, 어쩐지 수려는 빈번하게 그와 우연히 부딪히게 되어, 그 때마다 그는 몇 번이나 일을 도와주었다.

이름은 무엇이라고 하면 되는지 물었지만, 조금 생각한 후 <아저씨라고 불러 줘> 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수려는 처음 보았다. 대체 <아저씨>라고 하기에는 아직 그는 젊고, 게다가 굴곡이 깊은 단정한 용모를 하고 있어, 이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호칭도 없다.

그러나 묘하게 그가 그 호칭에 구애되었기 때문에, 조심조심 수려가 한번 그렇게 불러 보자, 정말 기뻐하는 듯한 얼굴을 하는 것이다. 뭐랄까 이것도 어쩐지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그를 <아저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기묘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이런, 또 커다란 물건을 안고 있네. 정말 황상서는 사람을 험하게 부린단 말이야."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서한을 남김없이 수려의 손에서 받아들었다.

"아---괘, 괜찮아요! 혼자서 옮길 수 있으니까!"

"수군도 완고하네. 몇 번이나 똑같은 것을 말하면 알아들어야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그는 친절하기는 했지만, 터무니없는 지론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정말 너처럼 귀엽고 어린 소....년을 이렇게 혹사시키다니. 한번 직접 물어보러 가볼까?"

묘하게 진심인 말투에 수려는 깜짝 놀랐다. 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면 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오늘 또 두 사람이 쓰러졌으니. 정말 바빠 정신이 없어서."

"뭐야?.......설마 고관사와 벽관사는 아니겠지?"

"에? 예. 그래요. 잘 알고 계시네요."

그 순간, 남자는 이마에 손을 댔다.

".....어떻게 된거야. 그럼 지금 시정관은 황상서와 경시랑만이 남게 된 건가?"

"예.....뭐."

정말은 한 사람이, 임시로 추가되어 있었지만, 그가 전력이 될지 아닐지는 몹시 의문이었다.

"정말.....그 녀석은 정도껏 이라는 말을 모르니까."

탄식과 함께 모호하게 흐리는 말에, 수려는 눈이 동그래졌다.

"......황상서와 아시는 사이.... 신가요?"

"응? 아아, 동기야. 같은 해에 국시에 합격했어."

생각지 못한 말에 수려는 눈을 크게 떴다.

"그것은....우, 우수하시네요."

적어도 10년 전에는 황상서는 시관이었으니까, 동기라는 이 사람은, 거꾸로 계산해보면 최소한 20살 남짓해서 국시에 합격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상당히 젊다. 머리가 좋다는 증거였다.

그런 수려를 본 남자는 빙그레 웃고, 언제나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

 

 

"이시랑."

등 뒤에서 불러세워진 강유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당신은, 경시랑."

"좀 할 말이 있었는데 우연히 마주쳤군요. 조금 시간이 있으십니까? 시간을 많이 뺏지는 않을테니."

"예, 괜찮습니다."

"실은, 수군의 일입니다만."

강유는 내심 움찔했다. ....설마 여자라는 걸 들켰나?

"....뭔가 폐라도 끼쳤습니까?"

"아니 아니, 그 반대입니다. 정말로 잘 일해주고 있어,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정말 영리한 아이입니다. 게다가 가끔 득이 되는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경시랑이 싱글싱글 눈을 가늘게 했다.

"얼마 전, 황상서가 갑자기 남은 예산의 용도를 물어보니, 뭐라고 대답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금, 아닐까요?"

"아니요. 그것이 조산부와 임산부를 위한 보조금 제도의 확립과, 가난한 학자들을 위한 조성금, 게다가 재해에 강한 작물 개량의 연구비 등에 충당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유는 약간 눈이 휘둥그래졌다.

".....뭐라고요? 수가 그런 것을?"

"예. 필요 경비 이외에 예산이 남는다면 가능한 한 유익하게 사용했으면 한다고. 용도는 얼마든지 있고, 돈은 남겨 두어도 막상 필요할 때 먹을 수 없으니까, 도움이 될 때에 써야 한다고. 그 나이에, 순간적으로 거기까지 떠올릴 수 있는 아이는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강유는 깜짝 놀랐다. 설마, 수려가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사적과 공적으로 머리를 바꾸고 있다. 평상시의 그녀라면 분명히 <돈을 써야한다> 따위는 입이 찢어져도 말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상당히 <공적인> 부분이 있는 것이다.

"....황상서는 뭐라고?"

"역시, 깜짝 놀란 듯 했습니다. 이후 가끔입니다만, 수군의 의견을 아무렇지도 않게 묻게 되었습니다."

강유는 생각에 빠진 것처럼 턱에 손을 가져갔다.

"그 아이는 관사가 되고 싶어합니다. 향학심도 왕성하고, 저에게도 여러 가지를 묻고 있고, 야단맞아도 바로 고치고, 재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물었더니, 국시를 치른 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나이라면 시험삼아 한번 정도 쳐봐도 좋을텐데.....치지 못한다고 하는군요."

"........."

"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슨 이유가 있는가 해서요. 수군은 홍씨이니, 당신의 상사와 어딘가 복잡한 사정이 있어 치지 못하는 것인가 하고. 일곱 가문도 아닌 제가 주제넘은 것 같지만, 사정이 있다면, 제가 수군의 후견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아까워요. 수군만 괜찮다면 저의 양자로 삼아 홍씨 성을 버리게 해도 상관없습니다. 뭐 제 성 따위는 별로 대단한 게 아니지만요."

쓴웃음을 지으며, 경시랑은 똑바로 강유를 보았다.

"그래서 당신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강유는 웃었다. 그것은 분별없이 보이지 않는 본심에서 나오는 미소였다. 경시랑은 조금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 이렇게까지 말하시다니, 수도 상당히 전망이 있는 듯 하군요."

"예."

"하지만 그 제안을 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유감입니다만."

"....어째서 입니까?"

"이유는, 나중에 아시게 될 겁니다. .....그 애가 관사가 되었을 때에."

"그렇다면 수군은 국시를?"

"그때는, 저나 상사가 후견을 맡을 생각입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경시랑. 특별히 고집 피우지는 않을 테니 안심하셔요." 

경시랑은 조금 얼굴을 붉혔다.

"아아, 제가 앞서 갔던 것 같군요..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잊어 주십시오."

"아니요. 배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애를 외조로 보낸 보람이 있는 것 같네요."

강유의 표정을 보고, 경시랑은 다시 한번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항상, 사람의 50보 앞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시랑."

"우리 상사에게는, 100보 앞을 보라는 말을 항상 듣고 있습니다."

"그 분의 밑에서 일하려면, 역시 그 정도가 아니면 일할 수 없겠지요."

"아니요....그 황상서의 밑에서 몇 년이나 부관으로 일할 자신이, 저에게는 없습니다만." 

"그 가면도 익숙해지면 재미가 있습니다. 그래요, 사부상서에게는, 수군이 급제했을 때에는 꼭 호부로 배치해 주십사 하고 부탁드려 주십시오." 

사부는 국시에 합격한 진사들을 각 부서로 분배하는 것이 일이었다.

강유는 약간 안색을 고쳤다.

"....어쩌지요. 우리 상사도 상당히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경시랑."

"예?"

"지금부터 어디에 가실 예정이십니까?"

"? 주상이 계신 곳에, 급한 서한을 전하러 갈 생각입니다만."

반짝, 하고 강유의 눈이 빛났다. 서서히 콜록 하고 한번 헛기침을 했다.

"이건 우연이네요. 실은 저도 그렇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강유는 이 반각정도 미아가 되어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앗, 이런 곳에 계셨습니까? 소태사!" 

회랑을 단지를 받치고 살금살금 걷고 있던 소태사는, 꽉 옷자락을 쥐고 펄쩍 뛰었다. 

"찾아다녔습니다아아아." 

"큿, 끈질긴 녀석이구만.... 이런, 수려님 아닙니까?" 

"우와! 쉿- 쉿-, 지금은 홍수예요!" 

작은 소리로 필사적으로 부정하는 수려를 보고, 소태사도 퍼뜩 눈치를 챘다. 

"호오 호오, 그렇군요. 듣자니 황상서의 밑에서 일을 잘하고 있다더군요. 일하는 보람이 있습니까?" 

"예, 무척. 그게 아니고. 오늘은 소태사의 그 단지에 볼일이 있습니다." 

"이런, 자네까지!" 

단지를 껴안은 소태사에, 수려는 더욱 매달렸다. 

"지금 호부는 정말 사람이 부족해서, 대단히 위험한 상황입니다! 시정관이 실제로 두 명뿐이예욧!! 그러니까 부탁합니다, 여름을 타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초우메보시>를 넘겨 주셔요." 

그렇다, 수려 나름대로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해 보려고 생각하여,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소태사를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설령 그것이 어딘가 미심쩍은 "초우메보시"라도, 매달릴 수 있다면 매달려 보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확실히 말해 시정관이 세 사람(게다가 한 람은 전투력 불명) 뿐이기 때문에, 완전히 문외한인 수려도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를 알 수 있었다. 전에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바빴다. 이 이상 줄어들게 되면 농담이 아니라 호부는 무너져 버린다. 

"그러니까, 이 단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했잖습니까." 

소태사는 지친 것처럼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럼, 속은 뭔가요?" 

"확인해 보셔요. ---단 떨어뜨리면 안됩니다." 

건내진 단지는, 묘한 무게였다. 가벼운 듯 무거운 듯. .....잘 모르겠다. 

뚜껑을 열려고 하다가, 수려는 눈썹을 찡그렸다. 

"....뚜껑이.... 없어?" 

단지는 반질반질하니, 이음새도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뚜껑도 없다. 빈틈없이 발려진 것인가 했지만, 도대체 그런 흔적도 없다. 처음부터 뚜껑도 없고, 형태만 단지라는 이상한 도기같았다. 

"알겠지요. 우메보시도 아무 것도 처음부터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뚜껑이 없으니까요." 

"그럼, <초우메보시>는...." 

"그런 건 모릅니다. 정말 어디의 바보가 그런 말을 꺼낸 건지?" 

일단 단지를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수려는 예상이 어긋나서 맥이 풀렸다. 

"어째서 이런 것을 애지중지 받치고 있는 거지요?" 

"이, .....이 단지는 어쩐지 가치가 있을 것 같아서. 여러 가지 조사해보려고 가지고 걷고 있었지요. 더위로 머리가 이상해진 관사들이 나눠 달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뭐예요. 그럼 이제 의지할 사람은 도노사뿐인가....?" 

"도노사라면 여름을 타서 요 사이 몸져 누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에엣?!" 

필두시관인 도노사마저도 여름을 타서 쓰러져버렸다는 것은 계산 외였다. 어떻게 하든 여름을 타는데 효과적인 약을 구하려고 생각했는데. 

"거짓마아아알." 

".....그렇게 큰일이라면, 제가 아는 의사를 소개시켜드릴까요?" 

상당히 불쌍해 보였는지, 소태사가 그렇게 제안했다. 

"성 아래 홍동구에 작은 진료소를 차리고 있는 엽이라고 하는 의사가 있습니다만." 

"에? 혹시 몇 년 전에 옮겨온 엽종경 선생 말인가요?" 

"뭐야? 알고 있었습니까?" 

"소문이 났으니까요. 저의 집은 홍남구에 가까워요. 그래, 엽선생에게 부탁하면 되겠어. 실력이 좋은 분이니까, 특효약을 알고 있을 거예요." 

그 때, 땡하고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수려는 펄쩍 뛰었다. 

"가지 않으면, 휴식시간이 끝나버려요. 미안합니다, 소태사. 이만 실례할게요!" 

그렇게 뛰어나간 수려의 뒷모습을, 소태사는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단, 다음의 우메보시 탈취 자객이 들이닥쳐 올 때까지의 사이였지만. 

 

 

***** 

 

 

"......왠지 요즘 이상해." 

채운국의 왕·자류휘는 회랑을 걸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상당히 <수려의 기척>이 나. ....핫, 어쩌면 이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예감이라는 건가? 혹시 수려가 나를 부르고 있는 건지도." 

확 그의 얼굴이 빛났다. 상당히 제멋대로인 해석이었다. 

"혹시 그렇다면.....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그렇지 않아도 만나지 못한 지 슬슬 3개월이 지났다. 이쪽에서 한번 만나러 가도 화내지 않겠지. 제대로 선물도 편지도 빠뜨리지 않고 있고, 가끔씩은 기분전환도 필요하다고 추영도 말했다. 

".....낮에는 정무가 있으니까....가려면 밤인가? 그렇군." 

그는 납득한 듯이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요바이라고 하는 것이군." 

시끄러운 근위는 산적토벌을 하러 나가 반쯤 줄어 있다. 지금이라면 성을 빠져나가는 것도 쉬울 터였다. 룰루 콧노래를 부르면서, 류휘는 소중한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그렇다. 소하에게 요바이를 한다는 뜻의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안되지.) 

--그는 요바이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밤---소하의 방을 방문한 사람이 있었다.

"들어 와."

그러자, 27, 8세 정도의 아름다운 여성이 소리없이 소하의 등뒤에 섰다.

"....죄, 죄송합니다, 이런 밤에."

능란하게 나타난 방법과는 달리, 머뭇머뭇하는 자신없는 작은 목소리였다.

"그 의자에 앉아. 지금 차를 끓일테니."

"예. 저, 저어.... 만두를 만들어 왔습니다."

다기를 준비하고 있던 소하는 깜짝 놀란 듯 뒤돌아보았다.

"만두?"

"예. 수려님이 후궁에 계실 때 가르쳐 주셨는데.... 저, 그게, 아가씨 것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당황하는 주취에, 소하는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래? 좋은 것을 가지고 와주었네. 그럼, 차를 끓여서 먹도록 할까? 그 접시에 담아 주겠어?"

주취는 확 얼굴이 밝아졌다. 소하는 차의 준비를 하면서, 주취에게 미소를 보였다.

"....일부러 차주까지 수고했어. 향령을 데려다 주고 와 줘서."

"아니요. 그런."

수개월 전, 차태보를 위해 수려를 시해하려 기도했던 소녀·향령은, 몸이 회복된 후 차주에 있는 차태보의 부인-표영희 라는 여성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그 사건은 미수라는 것과, 소태사의 수습도 있어 공식적으로는, 차태보 자신의 죽음도 원인불명의 <급사>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속사정을 알게 된 영희가, 향령을 맡겠다고 제안하였던 것이다. 류휘가 그것을 허락하여, 주취가 향령을 차주까지 바래다주고 왔다.

문득 주취는 생각이 나서 웃음을 지었다.

".......뭐라고 할지, 깜짝 놀랄만한 대부인이셨습니다."

일곱 가문은 아니지만, 표가도 유서깊은 명가였다. 게다가 그 차태보의 부인이니까, 필시 엄격하고 기품이 있는 여성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아, 나도 몇번 만난 건 아니지만, 한번 만나더라도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분이셨지?"

"예. ....그분의 밑이라면, 분명 향령도 회복될 수 있겠지요.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괜찮을 거다."

소하는 온화한 목소리로 단언했다.

"향령과 같을 정도로-- 아니, 보다 더 깊이 차태보를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여성이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한 분이다. 그분 곁에 있는다면, 분명 괜찮아."

"예...."

주취는 살짝 눈이 커다래졌다. 정말로, 향령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과 꼭 닮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과는 다른 여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까지 똑같다.

그래서 주취는 빌지 않을 수 없었다. 향령에게-- 웃는 얼굴이 돌아오는 날을.

".....저, 그러니까, 북두님의 일입니다만."

"응, 무슨 일이 있나?"

웃는 얼굴의 소하에, 주취는 얼굴을 떨구었다.

"....돌아가셨습니다. 병에 걸려서.....몇 개월 전에, 이미."

"-----에.....?"

처음으로, 소하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느릿느릿 긴의자에 허리를 걸쳤다.

".....그가.... 죽었어.....?"

북두라는 남자는, 소하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동료이고, 친구였다. "바람의 늑대"로서, 함께 몇 번이나 어둠 속을 달려 빠져나와---서로의 등뒤를 지켜주고, 목숨을 구해준 것도 몇 번인지 알 수 없다.

소하가 "바람의 늑대"를 해산한 뒤, 북두는 어딘가 아련한 눈을 하고, 그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언제나 변덕스러운 남자였으니까, 조금 외로웠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상당히 시간이 지나서, 차주가 있는 장소에 정착했다는, 소식이 한번 왔다.

드문 일이라고---생각했다. 그 남자가 소식을 보내다니. <언젠가 만나러 갈 테니까, 그때까지 오지마> 라는 편지에 웃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다리지---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양손을 모으고, 무엇인가 참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병으로, 라고? 예전의 녀석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웃었을 거다."

"아이들에게 간호 받다가, 마지막에는 조용하게 떠나셨다고...."

살짝 떨리는 주취의 말에, 소하는 조금 눈이 커졌다.

"---아이? 아이가 있었어?"

"의붓자식....인 것 같았지만, 남자아이가 두 명. 부인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단 그 아이들도, 북두님을 매장한 뒤 산을 내려가 버렸다고."

"그런가? 그 북두가.... 아이들에게 간호 받다가....."

그런가, 하고 소하는 다시 한번 입 속에서 되풀이했다.

"나는 분명 편치 않은 죽음을 맞게 되겠지. 평온한 생활 같은 건 연이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 죽고 죽임을 당하고---그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다."

그것으로 좋아, 하고 순간적으로 웃고 있던 북두.

언제 어디서나 갈망하는 눈을 하고 있었다. 함께 보내고 있던 속에서, 소하는 친구의 그 어두운 그늘만이 걱정이었다. 하지만 아마---죽을 때 그의 눈은.

"세월은.....정말 위대하지."

문득, 소하는 지나가 버린 세월의 무게를 실감했다. 사람이 변할 정도로 긴 시간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내 버리고 말았다.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군요..... "바람의 늑대"를 해산하고 나서."

소하는 그 무게에 쓴웃음을 지었다. ---눈 깜빡할 사이에, 자신도 상당히 나이를 먹은 것 같다.

"빠르군.....나도 이제 곧 마흔인가? 주취가 보면 이미 시든 아저씨겠군."

"그,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젊고 멋지고.....아, 아니."

말을 하고 입가를 손으로 막았다. 귀까지 붉게 물들이면서 시선을 움직이다가, 주취는 탁자의 한쪽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편지를 알아차렸다.

"소하님.... 이거, 중요한 것 아닌가요? 굉장히 고가의 종이입니다만."

"응? 아아 괜찮아. 뭣하면 봐도 돼."

머리 속을 의문 부호로 가득 채우면서, 주취는 바스락 바스락 편지를 폈다. 그리고.

".....저어.... 소하님....."

"재미있겠지?"

"....이거, 제 눈의 착각이 아니라면, 수려님에게 요바이하는 것을 허락해달라는 것 같은데요."

"응, 나도 그렇게 읽었다. 날짜는 4일 후다."

"저, 그게, 이거..... 괜찮습니까?"

"단지 살짝 저녁 식사를 하러 오겠다는 것 뿐이잖아."

".....확실히 그런지, 씌여 있지 않습니다만...."

"괜찮아. 그 주상과 수려니까 말이야. 힘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 지는 자명한 논리잖아."

"하지만.....마, 만의 하나라도."

번쩍, 하고 소하의 눈이 빛났다.

"---그때에는 주상이라고 해도 때려서 내쫓지."

주취는 이 때 "흑랑"의 모습을 살짝 훔쳐보았다고 생각했다.  경솔한 짓을 한다면 왕이라도 무사하게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주취는 내심 식은 땀을 흘렸다.

"게다가, 지금은 정란 외에 또 한 사람 경호원이 있으니까."

주취는 왔을 때 천장 안에서 본 남자를 떠올렸다.

"아아, 그러고 보니 낯선 사람이 한명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 묵고 있을 뿐이야. 그는 틀림없이 정란보다 강하다."

"어떤 자입니까?"

주취의 눈이 예리해졌다. ---그 제2공자보다 강한 사람이라면, 반대로 생각하자면 너무나 수상하다.

"그것은 너의 이야기를 들어야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자, 차를 들지."

김이 나는 차를 소하는 주취 쪽으로 밀었다.

"뭐, 그들이 있으니까, 분별없는 짓은 못 할 거야. 그건 그렇고, 주취, 차주의 동태를 알려주겠어?"

주취는 예, 하고 고개를 끄덕인 후, 소하가 끓여준 차로 손을 뻗었다.

그날 밤, 주취는 소하에 대한 사랑과 기력만으로, 다른 아가씨라면 맨발로 달아날 <아버지 차>를, 몇 잔이나 죽 들이켰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