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작품 해설, 작가 연보

로저 젤라즈니 (Roger Zelazny)

 

로저 젤라즈니는 196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30여 년에 걸쳐 환상문학계에 찬란한 궤적을 남긴 불세출의 작가이다.

1937년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나 신화와 전설을 탐독하며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도서관의 과학 소설을 모두 독파했고, 고등학교에서는 학교 신문에 3백 편이 넘는 환상적인 단편과 시들을 싣기도 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 프로이트와 융에 흥미를 가지고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핀리 포스터 시인상 수상을 계기로 영문학으로 진로를 바꿔 셰익스피어, 휘트먼, 만, 릴케 및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들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졸업 후에는 절럼비아 대학의 비교 영문학 석사 과정에 진학, 제임스 1세 시대의 영국 연극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1962년 단편 데뷔작 <수난극>을 선보였고, 그 이래로 뛰어난 문학성을 토대로 신화, 환상, SF를 융합한 지적인 작품들을 발표하며 평론가와 독자 모두로부터 <한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뛰어난 작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명석하고 유려한 플롯, 현학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인유(引喩), 강렬한 신화적 상징을 사용하여 아름답고 시적인 문장을 쓰는 작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는 네뷸러상 수상작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을 비롯하여 포스트 뉴웨이브 거장의 화려한 문학적 재능이 집약된 주옥과도 같은 중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로저 젤라즈니의 다른 작품들로는 <내 이름은 콘래드(1966)>, <신들의 사회(1967)>, <고독한 10월의 밤(1993)> 등의 장편 소설과, 네뷸러상을 받은 중편 <형성하는 자(196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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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즈니의 영광과 비극

 

 

I. 경계 소설

 

경계 소설의 영어 원어에 해당하는 슬립스트림(slipstream)은 본디 항공기의 프로펠러가 회전할 때 생기는 후류(後流) 혹은 자동차의 고속 주행 시 그 뒷부분에 발생하는 공기 역학적 포켓을 의미하지만, 문학 비평적인 맥락에서는 주류 문학과 비(非)리얼리즘 계열의 장르소설 양 진영의 작가들이 탈장르적인 상상력을 구사해서 쓴 일종의 경계적, 융합적인 문학 작품들을 지칭할 때 쓰인다. 이런 경향은 대중문화의 코드가 주류 문학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1960년대 말부터 이미 존재했지만, 영미 문학계에서 뚜렷한 장르 인식을 바탕으로 한 '고의적'인 슬립스트림의 개념이 시민권을 얻은 것은 윌리엄 깁슨 등과 함꼐 1980년대 미국 SF계의 사이버 펑크 운동을 주도했던 작가 겸 비평가 브루스 스털링이 에세이 「90년대의 사이버 펑크 문학」을 통해 운동의 공식적인 종결을 선언했던 1991년 이후의 일이다.

스털링은 이 에세이에서 현대 사회의 급격한 기술적, 사회적 변화가 카운터컬처에 큰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면서 그 <보헤미아적인 문학적 화신(化身)>으로서의 사이버 펑크 문학이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SF 문학 내부에서 시작된 이 운동이 역사적, 사회적 필연성을 역설하고 있다.* 컴퓨터 칩에 의한 자동 제어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 테크놀로지가 일상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에, 위에서 언급한 일반 소설과 장르 소설의 융합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상당히 시의 적절한 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슬립스트림은 적극적인 비평 수단이라기보다는 기술적(記述的)인 개념에 더 가깝지만, 주류 문학과 통속 문학의 대립으로 상징되는 성(聖)과 속(俗)의 구분과, 현존하는 각 장르들 사이의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는 <경계의 부재(borderlessness)> 현상을 창작 레벨에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문학계에도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장르 사이를 구분짓는 이 <경계>의 성질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이들 장르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 소설의 역사에 대해 잠시 언급할 필요가 있다.

 

*Bruce Sterling, "Cyberpunk in the Nineties", Interzone, 1991년 6월호.

 

 

II. 과학 소설 : 1926~1962

 

과학과 문학의 융합이라는 사이언스 픽션의 대명제는 1926년에 미국의 과학 계몽 잡지의 발행자이자 SF 초창기의 대부들 중 한 사람이기도 한 휴고 건즈백이 <사이언티픽션(scientifiction)>이라는 귀에 거슬리는 조어를 제시했을 때부터 이미 대립의 불씨를 품고 있었다. 건즈백이 자신의 펄프 잡지를 위해 만든 등록 상표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적 게토(ghetto)로의 도피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1920년대의 미국 SF는 테마적 발전 가능성을 내포한 소수의 걸작들을 제외하면 서부 활극(horse opera)을 우주로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우주 활극, 즉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의 전성 시대였다. 과학적 현실성 내지는 정합성(整合性)의 결여, 오락 위주의 편의주의적인 플롯, 19세기적인 공간 개념에 기반을 둔 제국주의 세계관으로의 회귀 등의 특징을 가진 이 하위 장르는, 창작 기법의 내부적인 발전과는 별도로, 초창기의 스페이스 오페라를 그대로 은막에 이식했다고 해도 무방한 조지 루카스의 영화 「스타워즈」 3부작(1977~1983)에 의해 그 문학적 생명을 소진했다.*

이 경향은 1930년대까지 계속되었지만, 1945년에 종결된 제2차 세계대전은 원폭과 탄도 로켓으로 상징되는 과학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켰고, 핵 전쟁에 의한 인류의 멸망 가능성이라는 지극히 SF적인 아이디어를 현실의 공포로 만들었다. 본격적인 냉전이 시작된 1950년대에는 장르의 문학적인 성숙과 맞물려 그 때까지 도외시되었던 사회학적인 아이디어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고, 사상성이 희박했던 과거와는 달리 엄밀한 과학적 고증과 현실에 밀착된 세련된 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SF는 최초의 황금 시대를 맞이한다. 원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웰이나 헉슬리의 소설에서 예견되었던 어두운 전체주의와 파멸의 이미지가 서구의 식자층에게 급격한 현실로 다가왔던 것이다.

 

*평론집인 Silent Interviews(1994)에서 딜레이니는 당시의 SF 커뮤니티가 「스타워즈」에 대해 보인 적대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스타워즈」를 SF가 아닌 판타지로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아무 것도 없는 진공 속을 나아가는 우주선에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적인 부정확함에 대해 질문을 받은 루카스는, 제작 단계에서 이미 여러 기술 담당자들이 이 사실을 지적했지만 영화적인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해 소리를 집어넣었으며, 어차피 대다수의 관객들은 <기본적인 물리 법칙이 무시 당한다고 해서 신경을 쓸 리가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서 C.클라크, 로버트 A.하인라인과 더불어 1950년의 SF를 대표하는 3대 거장의 한 사람이었던 아이작 아시모프는 「소비에트 과학 소설(Soviet Science Fiction)」(1962)의 서문에서 현대 SF의 발전 단계를 모험 주류(1926~38), 과학 기술 주류(1938~50), 사회 과학 주류(1950~)의 3단계로 나누고 있다. 이 분석이 나온 시점을 고려한다면(그리고 아시모프가 자신의 SF, 이를테면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무언중에 <사회 과학적>이라고 규정한 사실을 제외한다면), 일단은 타당한 견해라고 할 수 있겠지만, SF라는 문학 형식이 과학과 보조를 맞춰 끊임 없이 발전할 것이라는 소박한 낙관론의 이면에는 당시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미국 SF계의 고민이 자리잡고 있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이디어의 고갈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상상의 산물에 불과했던 통신위성, 컴퓨터, 우주선, 레이저 등이 실용되면서, SF에서는 문학적인 '흥분'의 대상이어야 할 과학 기술이 어느 새 일상 생활에서도 접할 수 있는 문화적인 아이콘(icon)으로 환원되어 있었고, 전문가들의 예상조차 뛰어넘는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야기한 사회 변화를 '사회학적'이어야 할 SF가 적시에 흡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정 독자 층의 확보를 원하는 편집자들은 기존 작가들에게 틀에 박힌 아이디어 스토리를 양산할 것을 암암리에 강요했고, 독자들은 그 결과를 외면한다는 악순환이 몇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런 장르의 질곡에서 벗어나 H.G.웰스나 쥘 베른 이전의 <순수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문학적인 욕구는 언제나 존재했고, 종종 S파와 F파 사이의 충돌, 세대 교체론, SF의 정의(定義)를 둘러싼 논쟁 따위를 통해 불거져 나오곤 했다. 이 갈등 구조가 가장 극적인 형태로 표출된 것은 SF의 학문적 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1960년대 초의 일이었다.

 

하인라인은, 1957년 시카고 대학에서 행한 강연에서 SF란 <과거와 현재의 현실 세계에 관한 충분한 지식과, 과학적 방법의 성질과 의미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입각한, 실현 가능한 미래의 사상(事象)에 관한 현실적인 예측>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편집자이자 그의 은사이기도 했던 존 W.캠벨 주니어가 제창한 메타 SF적 기법으로서의 외삽법(extrapolation)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지만, 미래 예측의 일환으로서 '예술의 기만적인 컬트성'의 소멸을 예로 들면서 하인라인의 주장은 다분히 정치적인 색채를 띄기 시작한다. <이른바 「현대 예술」은 정신병자들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현대 문학은 병에 걸려 있고, 섹스광…변태, 사이코들에 의해 씌어지고 있다.>*

1950년대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던 SF의 '학술화'에 대한 체제 측의 히스테리라고 웃어 넘길 수도 있겠지만, <교실에서 SF를 쫓아내고 원래의 빈민굴로 되돌아가자(Kick SF out of the classroom and back to the gutterwhere it belongs)>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상징되는 다수파의 게토 심리를 '오른쪽으로 기운' 하인라인이 대변해 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하인라인의 이런 우려는 몇 년 후 대서양 건너편에서 현실화된다. 자연과학적 정합성을 최우선시하는 종래의 SF 레토릭을 거부하고, 현대 문학에 걸맞는 세련된 소설 기법의 도입을 옹호하는 일단의 영국 작가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 경향은 곧 <뉴웨이브(New Wave)>로 불리게 되었다.*

뉴웨이브의 선두 주자는 J.G.발라드이다. 1930년에 중국 상하이의 영국인 조계에서 태어나 태평양 전쟁 발발 후에는 중국에 있는 일본군의 적성 외국인 수용소에서 포로 아닌 포로 생활을 해야 했던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억류되었을 당시 12세에 불과했던 그는 후식민주의의 모순과 전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투해야 했고, 그의 뇌리에 아로새겨진 소년 시절의 트라우마는 자전적 소설인 「태양의 제국(The Empire of the sun)」(1984)을 통해 극명하게 해체되고, 재구성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짐 그레이엄> 소년의 초상은 작가 발라드의 광기 어린 원풍경(原風景)의 일부이다. 전통 SF가 건즈백 이래 줄기차게 지향해 온 외우주(外宇宙)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발라드의 주장이, 고도의 상징성과 회화적(繪畵的) 이미지를 다용한 그의 전위적인 작풍과 맞물려 기묘한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바로 이 개인적인 체험의 영향이 크다.*

발라드는 기념비적인 에세이 「내적 우주로의 길은 어디에?」(1962)에서 내우주(inner space)를 <외적 세계(현실)와 내적 세계(정신)가 만나고, 융합되는 영역>이라고 정의하며, <우주 소설은 더 이상 SF 아이디어의 주요 원천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

현대인의 정신─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한─속에는 반 세기 이전에는 몽상에 불과했던 '과학'이 '마법'에 필적하는 하나의 원형으로서 자리잡고 있으므로, 그런 상징의 구현이야말로 현대 SF의 에센스에 해당한다는 그의 주장과, 이것을 데카당하고 세련된 파멸 소설의 형태로 체현한 그의 「재앙 3부작」은 기성 SF계에 커다란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Robert A.Heinlein, "Science Fintion ; Its Nature, Faults, and Virtues," The Science Fiction Novel ; Imagination and Social Criticism(1959).

*뉴웨이브란 용어는 1960년대 초에 쓰이던 영화 비평 용어를 차용한 것이며, 장 뤽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실험적 작풍을 가리키는 누벨바그(nouvellevague)의 영어 번역어이다. 1970년대 후반에는 펑크록의 동의어로 쓰이기도 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에 의해 영화화된 그의 소설 「크래쉬(Crash)」(1996)의 주인공의 이름이 '제임스 발라드'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경험에서 (미래의) 원체험을 추출하는 기법은 발라드의 작품 세계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J.G.Ballard, "Which Way to Inner Space?", New Worlds #118, 1962년 5월호.

*1960년대에 씌어진 The Drowned World(1962), The Burning World(1964), The Crystal World(1966)는 지구적, 혹은 우주적 규모의 파멸과 상호 작용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화려한 필치로 그린 걸작들이다.

 

뉴웨이브는 1964년 영국을 대표하는 SF 잡지 「뉴 월즈(New Worlds)」의 편집장으로 약관 25세의 신예 작가 마이클 무어콕이 취임하면서부터 강력한 지원자를 얻게 된다. 전통적인 SF가 우주 공간으로 대표되는 외부 지향의 문학이었다면, 무어콕이 발굴한 작품들은 인간의 내면에 펼쳐지는 의식/무의식과 외부 환경의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내용 면에서는 심리학과 기호학으로 대표되는 인문 과학적 주제의 도입이 눈에 띄었고, 주제 전달 매체로서의 스타일이 강조되었다. 무어콕은 매 호마다 발라드와 그의 좋은 라이벌이었던 브라이언 올디스의 작품과 평론을 게재함으로써 창작과 비평을 활성화시켰으며, 로저 젤라즈니, 어슐러 K.르귄, 새뮤얼 R.딜레이니, 토마스 디쉬 등 재능 있는 미국 작가들을 발탁하는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브리티시 뉴웨이브는 몇 가지의 치명적인 약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우선 앞서 언급한 몇몇 작가들의 경우를 제외하면 소설 기법보다는 의욕이 더 앞서는 전위적이고 페시미스틱한 '예술'작품들이 너무 많았고, 이 점이 전통적 SF 옹호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던 것이다. <토성 여행 따위의 진부한 얘기에는 싫증이 났다…. 우리는 실험을 원한다.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윌리엄' 버로스처럼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고 싶은 것이다> 라는 영국 작가들의 주장에 대해, <실험하고 싶다고? 물론 실험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내가 자네들의 소설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실험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밖의 모든 면에서 도저히 읽을 욕구가 생기지 않을 정도로 따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라고 응수했던 미국 작가 프레드릭 폴의 말에서 당시의 영어권 SF가 직면했던 딜레마를 읽을 수 있다. 발라드라는 탁월한 이론가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기법 상의 혁신이 장르 밖의 주류 문학에서 왔다는 사실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뉴웨이브는 문학 운동이라기보다는 작가 개개인의 심적(心的) 상태이며, SF가 당시의 격렬한 시대 문화적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 야기된 일종의 내부 조정이었다는 피터 니콜스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을 얻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일반적으로 뉴웨이브는 SF가 문학적으로 자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 영향력은 창작 분야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편집자들은 장르의 경계에 관해 예전만큼 구애받지 않았고, 게토는 장르와 문화가 상호 작용하는 장(場)으로 격상되었다. SF사(史)의 영역에서도 아시모프의 SF 3단계 발전설에서 볼 수 있었던 통시적(diachronic) 접근 대신에 반전 운동, 로큰롤, 성 혁명, 커뮨, 플라워 칠드런, 카운터 컬처로 대표되는 공시성(synchronicity)에 관한 논의가 각광을 받았다. SF의 풍부한 은유적 잠재력에 착안한 진정한 내부(insider) 비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뉴웨이브는 60년대 말 장르 내부로 흡수 통합되는 현태로 소멸했지만, 다음 세대, 특히 1980년대 중반의 사이버 펑크 작가들에게 새로운 혁명의 모델을 제공했다는 의미에서 영속적이었다. 「뉴 월즈」에 게재된 미국 작가들의 비평적 성공이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미국 SF계 내부에 일종의 공명(共鳴) 작용을 일으켜 아메리칸 뉴웨이브, 혹은 포스트 뉴웨이브라고 불리는 미국 SF의 르네상스를 유발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 르네상스의 중심에는 로저 젤라즈니가 있었다.

 

*John Clute and Peter Nichols, The Encyclopedia of Science Fiction(London: Orbit, 1993), p.866.

*발라드와 더불어 이 시기에 두각을 나타내고, 훗날 영미권의 SF 평단을 대표하는 평론가로 성장한 작가로는 브라이언 W.올디스와 미국의 딜레이니가 가장 유명하다. 특히 딜레이니의 경우는 코넬 대학을 필두로, 매사추세츠 대학과 뉴욕 주립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작가 활동을 병행했다.

 

 

III. 로저 젤라즈니

 

로저 조지프 젤라즈니는 1937년 5월 13일에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났다. 가계를 따져 보면 아일랜드 인, 폴란드 인, 독일계 펜실베이니아 인의 혈통이라고 한다. 미래의 작가들이 흔히 그렇듯이 어릴 때부터 신화, 전설, 동화 등을 탐독했고, SF에 처음으로 접했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학교 도서실에 있던 SF를 모두 독파한 다음에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헌 SF 잡지들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소년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작가는 스탠리 와인버움, 로버트 A.하인라인, 시오도어 스터전, 레이 브래드베리였으며, 고등학교 재학 시에는 학교 신문의 편집자로 활약하며 3백 편이 넘는 환상적인 단편과 시를 썼다. 1955년 오하이오 주의 웨스턴 리저브 대학에 진학, 프로이트와 융에 흥미를 가지고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3학년 때인 1957년에 핀리 포스터 시인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영문학으로 진로를 바꿨다. 학부 시절 그는 셰익스피어, 휘트먼, 만, 릴케 및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들에 관해 연구하는 한편, 취미였던 펜싱과 유도 연습에도 열중했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59년에 컬럼비아 대학의 비교 영문학 석사 과정에 입학한 그는 맨해튼의 박물관, 미술관, 극장, 재즈 클럽, 포크 뮤직 카페 등을 탐방하며 보헤미안적인 생활을 즐겼다.

1960년에는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뉴욕을 떠났고, 오하이오 주 방위군에 입대, 6개월의 복무 기간 대부분을 텍사스 주 소재 나이키 대공 미사일 대대의 조작 요원으로 복무했다. 1962년에는 엘리자베스 및 제임스 1세 시대의 연극을 주제로 한 논문 「두 개의 전통과 시릴 터너 : <복수자(復讐者)의 비극>에서 볼 수 있는 윤리성과 유머 코미디의 인습에 관한 고찰」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볼티모어의 사회 보장국에 취직한 다음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돌입했다. 이 시점에서 이미 수많은 습작들이 완성되어 있었지만, 그의 실질적인 데뷔작은 취직 3개월 후인 「어메이징 스토리즈(Amazing Stories)」 8월호에 게재된 단편 「수난극」이다. 「어메이징 스토리즈」와 「판타스틱(Fantastic)」의 편집을 맡고 있었던 셀레 골드스미스는 유망한 신인 발굴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여성 편집자였다. 비슷한 시기에 「판타스틱」 지에 데뷔했던 르귄의 말을 빌리자면 <진취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한 최상의 편집자>였으며, 젤라즈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력적이며 나무랄 데 없는 취미의 소유자>였다. 젤라즈니는 자신을 발탁해 준 골드스미스의 격려에 힘입어 1963년 한 해 동안 무려 17편이나 되는 중단편을 발표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63년 11월, 「판타지 앤드 사이언스 픽션(F&SF)」 지에 중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가 게재되는 것을 계기로 젤라즈니는 일약 SF계의 총아로 떠오른다. 데뷔 1년 전인 1961년에 이미 탈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고색 창연한 화성의 설정 때문에 도저히 통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작가 자신이 묻어 두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고풍스러운 작품이지만, 원고를 읽어 본 F&SF 편집진이 만장일치로 「전도서~」를 권두(券頭)에 게재할 것을 결정하고, 저명한 삽화가인 해니스 보크에게 표지 그림을 의뢰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 작품이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멸망해 가는 화성을 무대로 지구의 젊은 서정시인과 화성인 여성의 비련(悲戀)을 다룬 이 작품은, 1930년대에 활약했던 환상 SF 작가 와인버움의 고전 「화성의 오디세이(A Martian Odyssey)」(1934)에 대한 작가 자신의 패스티시인 동시에, 고전 SF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문학의 영원한 테제인 젊음, 사랑, 오만, 배신, 부활 등을 내면(=내우주)의 스크린에 투영한 걸작이다. 이 작품에서는 젤라즈니의 특색으로 간주되는 여러 요소들─명석하고 유려한 스타일, 동시대의 슬랭을 다용(多用)한 쿨하고 시적인 문체, 개인이라는 미시적(微視的)인 관점에서 거시적(巨視的)인 테마를 다루는 독특한 기법, 현학과 아이러니로 가득 찬 문학적 인유(引喩), 강렬한 신화적 상징성─이유감 없이 드러나 있으며, 그리니치 빌리지에 관한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전적인 면이 강한 것이 특색이다. 뉴웨이브의 중심 인물 중 한 사람이자, 젤라즈니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기도 했던 작가 딜레이니의 회상은 당시의 팬들이 받은 충격을 잘 보여 준다. 1965년의 어느 날, 음악을 전공하는 여자 친구가 그의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더니, 마치 무엇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한 권의 잡지를 보여 주며, <이봐, 칩(딜레이니의 애칭), 이거 읽어 봤어? 도대체 이 작가가 누구지? 이 사람에 관해 뭔가 아는 거 없어? 지금까지 무슨 작품들을 썼지?> 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잡지는 F&SF 3월호였고, 그녀가 읽었던 작품은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이었다.

 

*Samuel R.Delany, "Faust and Archimedes", The Jewel-Hinged Jaw(1978).

 

그리고 앞서 언급한 영국의 SF 잡지인 「뉴 월즈」에 초기의 중단편들이 게재되면서 그는 <한 세대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한 뛰어난 작가의 출현>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딜레이니와 더불어 아메리칸 뉴웨이브의 중심 인물로 부각되었다. 시인 바이런의 <하룻밤 자고 나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말을 빌려 젤라즈니의 등장을 표현한 평론가가 있었을 정도니 그가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구습의 완전한 해체를 통한 혁명을 주장했던 영국 작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어릴 적부터 SF를 읽어 왔던 젤라즈니와 딜레이니는 전통적인 SF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참신한 스타일을 지향하는, <헌 부대에 새 술을 담는> 식의 길을 택했으며, 바로 이 사실이 미국 독자들의 구미에 맞아 떨어졌다는 식의 해석도 가능하다. 특히 젤라즈니의 경우는 화려한 스타일의 매력에 의해 당시의 SF를 뒤흔들어 놓은 뉴웨이브 이념 논쟁에서 상당히 자유로울 수 있었다. 처음부터 뉴웨이브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할란 엘리슨, 로버트 실버버그 등 미국의 기성 작가들이 <사변 소설(speculative fiction)>을 표방하고 적극적으로 창작 활동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점진적이기는 하지만 뉴웨이브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엘리슨이 편찬한 유명한 뉴웨이브 앤솔로지 「위험한 비전(Dangerous Visions)」(1967)에 이르러서는 프레드릭 폴과 더불어 보수적 작가층의 거두였던 아시모프조차 서문을 빌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2의 혁명', 'SF의 새로운 경향'>을 옹호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컬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젤라즈니 자신의 의견은 어떠했을까?

그는 아메리칸 뉴웨이브의 기수로 주목 받은 인물 치고는 매우 과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신인들과는 달리 그가 이미 문학적으로 성숙해 있었고, 자신의 주인공들처럼 지적인 동시에 매우 내성적(內省的)인 인물이며, <작품으로 말하는> 타입의 작가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영국 작가 올디스는 (지금까지 쓰여진 것 중 가장 포괄적인 SF 평론서인) 「1조년(兆年)의 잔치(Trillion Year Spree)」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이크를 들이대면 젤라즈니는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엘리슨은 마이크를 낚아챈다>. 이 말에 (특히 후자의 행동에) 납득이 간다고 하면 실례가 되겠지만, 여하튼 젤라즈니는 묵묵히, 그러나 화려한 창작 활동을 전개했다.

「전도서」는 휴고상 후보에 오르는 것에 그쳤지만, 1965년 1월에서 2월에 걸쳐 「어메이징」 지에 연재된 「형성하는 자」가 1965년 네뷸러상 최우수 노벨라(中篇)상, 그리고 F&SF지의 10월과 11월호에 게재된 처녀 장편 「내 이름은 콘라드」가 프랭크 허버트의 「듄(Dune)」과 함께 다음 해의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을 공동 수상했다. 1965년 한 해 동안 「폭풍의 이 순간」, 「프로스트와 베타」,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등 본서에 포함된 중단편이 무려 세 편이나 네뷸러상 후보에 올랐으며, 결국 젤라즈니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이 노벨렛(短中篇) 부문의 최우수작으로 뽑혔다. 뒤이어 1967년에 발표한 장편 「신들의 사회」는 인도 신화와 SF의 결합을 시도했던 야심적인 작품으로, 다음 해의 휴고상을 수상했다. 1968년 당시 젤라즈니는 영광의 절정에 있었고, 이 젊은 작가에게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IV, 공감각적 신화

 

신화는 그의 초기 장편들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 중의 하나이다. 초기 작품들, 특히 그리스 신화의 파토스를 핵 전쟁 후의 황폐한 지구에 투영한 처녀 장편 「내 이름은 콘라드」, 트리스탄 전설과 파우스트 전설을 배경에 깐 심이 SF 「드림 마스터」, 그리고 인도 신화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한 「신들의 사회」 등이 그 대표적인 예로,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신화 SF 작가>라는, 작가 자신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던 명칭이 따라다닌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젤라즈니는 모든 신화를 SF로 번역하려고 작정한 듯 하다>라고 말한 올디스의 비판적인 시각과는 달리, 젤라즈니는 신화가 제공하는 풍부한 상징이라든지 문학적 환기력을 각론적으로 활용하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신화와 SF의 <융합>을 통해 모든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인간성의 원형(元型)을 탐구하는 일을 주요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실제로 SF 백과사전의 젤라즈니 항을 보면 다음과 같은 테마들이 나열되어 있다. 인식의 변혁, 죄와 벌, 종말론, ESP, 판타지, 게임과 스포츠, 외계인, 융 심리학, 신과 악마, 영웅, 불사(不死), 화성, 텔레포테이션, 구세주, 신화, 강박증과 분열증, 기생과 공생 심리학, 전생(轉生), 종교, 로봇, 초인, 초자연적인 생물, 해저, 금성…. 굳이 젤라즈니의 경력을 따지지 않더라도 이 테마들을 훑어보면 그의 관심이 이공계라기보다는 주로 문과 계통의 주제에 쏠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란 어렵지 않다. 특히 불사성(Immortality)의 개념은 젤라즈니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본서에 포함된 「12월의 열쇠」나 「사랑은 허수」에서 볼 수 있듯이, 젤라즈니의 작품에서는 (상대적으로) 초인적인 불사의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한다. 근대 SF에서 불사신의 이미지는 멀리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 작품에서는 불사성에 대한 서구 문화/히브리즘의 전통적 입장, 즉 불사는 곧 저주이며, 신(Immotal)을 모독하는 인간(Mortal) 특유의 죄악(hubris)라는 관념을 찾아 볼 수 있다. 불사를 소재로 삼은 젤라즈니의 SF에서도 종종 전통적인 <슬픈 영웅>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강인한 불사의 영웅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신격(神格)을 가진 황당무계한 슈퍼맨인 동시에 고뇌에 시달리는 인간적이고 리얼한 영웅이다. 평론 「파우스트와 아르키메데스」에서 젤라즈니 작품의 상징성을 논한 딜레이니는, 그의 환상적이고 강렬한 상징적 문체 뒤에 숨겨진 논리는 바로 이 불사성에 대한 독특한 관점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인공이 영원한 생을 얻었을 경우 그의 인생은 <셀 수 없이 많은 보석 같은 순간>의 연속에 해당하며, 개별적으로 보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개인사(個人史)의 에피소드도 무한히 많은 다른 에피소드들과의 유기적인 결합에 의해 <세월의 빛을 받고 반짝이기> 때문이다. 본서에 포함된 중편 「폭풍의 이 순간」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불사를 다룬 걸작이다.

젤라즈니의 또 다른 특징은 남성상에 집중된, 인물 위주(character-drivien)의 소설 작법이며, 특히 장편에서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때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젤라즈니 장편의 주인공들은 거의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매력의 소유자이며, 여러 의미에서 초월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인물인 경우가 많다. 영국의 평론가 존 클루트가 「내 이름은 콘라드」의 주인공인 콘라드 노미코스에 관해 내린 평가를 인용하자면, <미국 스릴러물의 관용어를 남발하는 버릇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화의 영웅를 연상케 하며…'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인 동시에 '트릭스터(trickster)'이기도 하다…그리고 이 기본적 인물상은 향후의 젤라즈니 작품 대다수에 여러 이름으로, 되풀이해서 등장하게 된다. 기지에 넘치고, 멜랑콜릭하고, 로맨틱하고, 센티멘털하고, 고독한 동시에, 플롯이 요구한다면 시도 때도 없이 고차(高次)의 정신 상태로 돌입하곤 하는 이들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된 소망 충족(wish-fulfillment)의 일례이다.> 신랄하지만 정곡을 찌른 분석임에는 틀림 없다.

 

한편, 젤라즈니를 비롯한 르 귄, 딜레이니 등의 동시대 작가들에게서 전근대적인 뉘앙스를 가진 언령(言靈) 신앙에 대한 언급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이들의 교육 배경을 고려한다면 그리 의외는 아닐지도 모른다). 굳이 구약의 창세기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이름이 곧 파워(魔力)라는 사상은 모든 원시 사회에 공통된 믿음이며, 이 믿음을 가장 고전적인 형태로 형상화한 것은 마법사 게드를 주인공으로 한 르귄의 「어스시(Earthsea)」 4부작이다. 곧잘 J.R.R.톨킨의 대하 판타지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3부작과 비견되곤 하는 <어스시>의 세계에서, 사람의 하나 밖에 없는 이름은 곧 그 인물의 에센스이며, 삼라만상의 진정한 이름을 알아 내는 일은 곧 세계를 이해하는 행위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호학(記號學) 지향이 강한 딜레이니는 장편 SF 「바벨-17」을 통해 비교 언어학의 새피어-워프 가설─인식의 많은 부분은 해당 언어 구조에 의해 규정된다는 현대판 언령 신앙─을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의 모티프로 삼는다는 폭거(?)를 감행했고, 결국 「바벨-17」은 대니얼 키스의 「앨저논에게 바치는 꽃다발(Flowers for Algernon)」과 함께 1966년 네뷸러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했다.

 

르 귄의 전아함, 딜레이니의 예리함에 비해 이 명제를 처리하는 젤라즈니의 수법은 상당히 즉물적(卽物的)이다. 여러 이름을 가진 주인공은 젤라즈니의 독자에게는 익숙한 설정이며, 개개의 이름은 주인공의 과거·현재·미래에 걸친 분신(alter ego)에 해당된다. 즉, 단시간이나마 이 이름을 입에 담는 것은 인격의 특정한 국면을 불러내는 행위, 상(相)을 두르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즘/카발리즘의 초혼(招魂) 의식과도 일맥상통한다. 표면 상으로는 일반인에 가까운 주인공조차 강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과거의 자아(자아의 페르소나 뒤에 감춰진 종족적 원형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로 거듭 회귀하며, 이 책에 포함된 단편 「사랑은 허수」가 보여 주듯이 플롯이 요구한다면 자발적으로 이 과정에 참가하기도 한다. 신화 체계가 우주(cosmoc)를 이해하려는 인간의 가장 오래 된 노력임을 감안할 때, 젤라즈니의 신화적 주인공들은 신화를 이 지상 위에 체현하는 일종의 문학적 렌즈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신화적 주인공의 존재에서 직접 소설의 구동력(驅動力)을 끌어내는 행위는, 인물 조형에 실패할 경우 허구를 떠받치는 기반 자체를 파괴해 버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젤라즈니는 탄탄한 소설 기법과 철저한 지적 조작을 통해 이런 장애물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으며, 초기 장편들 중 걸작의 이름에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 많은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소설=허구의 기반을 불멸의 신화에서 찾음으로써 젤라즈니는 일종의 안전 밸브를 획득했지만, 그 과정에서 SF와의 연결 고리가 약해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바로 그런 맥락에서 그는 <신화 SF>라는 용어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물론 젤라즈니가 그 사실을 자각해지 못했을 리가 없고, 1965년의 중편 「형성하는 자」는 SF의 원점으로 돌아가려는 지극히 성공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약간의 가필을 거쳐 다음 해에 「드림 마스터」라는 제목의 장편으로 출간된 이 작품은 융 심리학,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파우스트 전설 등을 소재로 삼은 심리 SF이다. 「드림 마스터」의 경우 신화는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내면화되어 있다. 이 작품은 개인적인 오만(hubris)에 의해 신화의 힘이 오용될 경우 어떤 결과가 야기되는가를 그린 일종의 반신화(反神話)이며, 공감각(共感覺)을 활용한 첨단적인 언어 실험을 통해 SF 문학의 역사에 또 하나의 장을 덧붙였다는 찬사와 함께 젤라즈니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공감각(synesthesis)이란 한 감각 수용기(受容器)에 자극을 줄 경우, 다른 종류의 감각으로까지 그 영향이 파급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지각 심리학의 용어이다. 특정한 음을 들으면 눈 앞에 일정한 색채가 나타나는 색청(色聽)은 공감각의 일종이며, 주관적인 인식이 수반되므로 환각과는 구별된다. 시각이 청각화하고, 후각이 촉각화하는 예는 20세기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전위문학의 인쇄 실험(typography)에서 찾아 볼 수 있지만, SF에서 이 분야의 선구자를 찾는다면 역시 「타이거! 타이거!(Tiger! Tiger!)」(1956)의 작가로 유명한 알프레드 베스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에서 베스터는 텔레포테이션(순간 이동) 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초월적 체험을 활자와 일러스트레이션의 융합을 통해 효과적으로 묘사,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텔레파시 능력이 보편화된 24세기를 무대로 한 베스터의 처녀 장편 「파괴된 사나이(The Demolished Man)」(1953)는 이 시각화 테크닉의 원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주인공인 <1급 에스퍼> 파웰은 <표층 의식과 전(前)의식을 뚫고 들어가서 무의식의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는> 독심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피험자(被驗者)의 심적 공간 속에 글자 그대로 몰입, 숨겨진 갈등 구조를 찾아낸다.

 

파웰은 비틀거리며 나락 가장자리를 돌았고, 만지고, 탐색하며, 느꼈다. (중략) 근처에서 눈부신 전광이 솟구쳤다. 그것에 손을 대 본 파웰은 지독한 충격을 느꼈고, 황급히 손을 떼고 옆으로 물러섰다. 자기 보존 본능이 담요처럼 그를 감싼 탓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그는 긴장을 풀고 다시금 그 연상(聯想)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갔고, 그것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중략) 영원히 계속되는 시냅스의 접합-차단 사이클은 날카로운 잡음을 수반한 복잡한 리듬을 만들어 낸다. 끊임 없이 변화하는 수많은 간극을 메우고 있는 것은 깨진 이미지, 반(半) 상징, 불완전한 연상…이온화된 사고의 핵. (「파괴된 사나이」 제11장)*

 

*알프레드 베스터, 「파괴된 사나이」, 김상훈 옮김(시공사, 1996), pp.220~221.

 

베스터의 내우주가 공감각적 도구(tool)로서의 정신분석학을 통해 기술되는 공간이라면, 젤라즈니의 「드림 마스터」에 등장하는 드림 스페이스(Dream Space)는 인공 자궁이라는 SF적 도구(gadget)에 의해 구축된 분석 심리학적 가상 현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찰스 렌더는 셰이퍼─형성하는 자─란 통칭으로 불리는 특수한 정신과 의사이며, 기계 자궁을 통해 창조된 상호 보완적 가상 현실에 몰입, <꿈>에 상응하는 전자 공학적 심상(mindscape)을 환자에게 직접 체험시킴으로써 신경증을 치료한다.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한 상호 작용이 셰이퍼 대 피험자의 그것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드림 스페이스는 윌리엄 깁슨이 사이버 펑크 소설 「뉴로맨서」(1984)에서 소개한 사이버 스페이스의 개념을 한 세대 전에 구현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자기 마음을 확장시켜, 모든 색채를 한꺼번에 만들어 냈다. 색채는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깃털. 그것들을 찢어 발긴 다음, 형태를 부여한다. 눈부신 무지개가 칠흑의 하늘에 호(弧)를 그렸다. (중략) 거리와 깊이를 만들어 내려는 노력에 저항이 느껴졌기 때문에, 극히 희미한 파도 소리로 이 정경을 보강했다. 구름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안 청각적 거리감으로부터의 전이(轉移)가 천천히 다가온다. 노도처럼 밀려오는 아크로포비아(廣場恐怖症; 광장공포증)에 대항하기 위해 서둘러 높은 숲을 만들었다. (「드림 마스터」 제2장)

 

드림 스페이스가 기능하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일상적 텍스트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 이러한 공감각적 전이 과정의 이면에 신화적 창조력이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셰이퍼=조물주라는 공식은 허구-현실 공간 사이의 미묘한 균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드림 스페이스는 셰이퍼의 수의적(隨意的) 심상 뿐만 아니라 그 인격적인 결함까지 증폭해 버리기 때문이다. 가상 공간이 조작자에게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줄 가능성은 「파괴된 사나이」에서도 이미 예견된 바 있으며, 젤라즈니가 베스터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다. 사이버 펑크의 대표 주자였던 윌리엄 깁슨의 경우, 심리적 내재율을 통한 문체 실험이라는 측면에서 사실 상 스타일리스트 베스터-젤라즈니의 계보를 잇는 후계자라고 할 수 있다.*

 

*젤라즈니의 문체 실험이 깁슨에 끼친 영향에 관해서 거의 언급하는 평론가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딜레이니는 인터뷰에서 이들 두 작가의 스타일이 본질적으로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에> 오히려 객관적인 비교를 하기 힘들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V. 경계선상에서 : SF와 팬터지의 파라미터

 

데뷔 5년 만에 최고 걸작들을 썼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비극이다. 당시의 젤라즈니 앞에 펼쳐진 가능성은 무한한 것처럼 보였고, 무엇보다도 대중의 열렬한 지지가 젤라즈니에게 창조적인 휴식을 허락하지 않은 측면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환상 SF인 「앰버 연대기」의 제1권 「앰버의 아홉 왕자」(1970)는 양면적인 가치를 지닌 작품이며, 초기와 중기 젤라즈니를 가르는 하나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해저 미궁, 용, 유니콘, 질서와 혼돈의 대결 등 장르 환상 소설의 전통적인 소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앰버」가 일단 SF로 간주된 이유는 젤라즈니의 논리성에 뒷받침된 플라토닉한 상징 구조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앰버는 판타지의 일반적인 <2차 우주(Secondary Universe)>와는 달리 이데아적 존재 국면에 위치한 유일무이의 <진짜> 세계이며, 지구를 포함한 <그림자> 세계들은 앰버의 불완전한 반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앰저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왕족들의 암투는 소설의 주요 갈등 요인을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의 양태(樣態)를 규정짓는 <지고의 현실>로써 작용한다.

젤라즈니의 이 <변신>에 대해 대다수의 평론가들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가장 큰 이유를 들자면 그 때까지 극도로 높은 수준에 고정되어 있었던 젤라즈니의 이미지에 비해 이 소설이 테마나 내용 면에서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고, 그 자체로서도 충분히 독립된 소설이지만, 시리즈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도입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전의 젤라즈니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문체─이를테면, 하드보일드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건조한 1인칭 묘사─와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사실이 그 때까지 젤라즈니를 옹호하던 평론가들을 당혹하게 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대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신들의 사회」가 그렇듯 그의 SF에는 본래부터 환상적인 색채가 농후하게 존재했고, 초기의 순수 판타지인 「그림자의 잭」, 「저주 받은 자 딜비쉬」 연작 등은 대다수의 SF보다 오히려 앞선 시기에 씌어진 것들이다. 또한 젤라즈니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SF와 판타지는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고(누구나 다 이 의견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출판사나 평론가들이 그어 놓은 인위적인 경계선에 의해 구분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젤라즈니는 고풍스러운 유혈극과 동화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결합, 성숙한 독자들을 위한 완전한 소설을 창조해 냈다>라는 샬롯 모스랜더의 서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앰버의 아홉 왕자」는 일반 독자 층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고, 속편이 계속 발간됨에 따라 SF 팬들을 중심으로 열렬한 지지자들을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앰버 5부작은 표면 상으로는 앰버의 왕자인 주인공의 모험을 그린 일종의 피카레스크 소설이다. 그러나 플롯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함에 따라 독자들은 일인칭으로 서술되는 주인공 코윈의 행위가 반드시 물리적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그의 인식이 반드시 객관적 상황의 정확한 반영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신비주의 연구가인 C.폰세가 <형의상학의 용광로>라고까지 표현했던 타로 카드가 전 시리즈를 통해 중요한 비교적(秘敎的),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코나 콜린 윌슨처럼 마법이나 오컬트를 소설의 직접적인 테마로 삼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젤라즈니만큼이나 그것을 함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처음에는 허구에 불과했던 평행 우주의 아이디어가 세계율(世界律)의 일부로서 점점 사실성을 띄기 시작하는 과정의 묘사는 압권이며, 제3권인 「유니콘의 상징」에서 「오베론의 손」, 「혼돈의 궁정」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세 작품은 「신들의 사회」 이래의 최고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러시아 어와 히브리 어 등을 포함한 십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수천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앰버」의 상업적 성공은 젤라즈니의 가장 큰 약점인 권력 환상을 부(負)의 방향으로 강화했고, 코윈 이후의 주인공들을 거의 예외 없이 그들 자신의 세계에서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장 현저한 예로 휴교와 네뷸러상의 노벨라 부분을 휩쓴 SF 스릴러 「집행인의 귀향」(1976)을 들 수 있다. 컴퓨터로 완전 관리되는 미래 사회에서 수많은 가명을 사용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다음에야 비로소 '자유'를 획득한다는 주인공의 설정은 '고독한 초인'의 전통에 입각한 아이디어 SF로서는 훌륭한 작품이지만, 문체 상으로는 「앰버의 아홉 왕자」와도 일맥상통하는 건조함이 눈에 띄었다.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은 이면에는 1970년대 들어 판타지 창작에 주력했던 젊은 거장의 복귀에 SF계까 환호했다는 사정이 있지만, 젤라즈니 자신은 이미 이 시기에 자신의 작풍이 점점 SF와 판타지의 혼성물(hrbrid)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SF의 학술적 연구와 평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딜레이니와는 달리, 뉴웨이브의 와중에 있었지만 언제나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하는 데 주력했던 젤라즈니는 자신의 영원한 테마였던 <신화와 SF의 융합>의 방법론을 변화시킬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뉴웨이브가 소멸한 후, 과학적 정합성을 최우선시하는 하드 SF가 어느 정도 시민권을 얻은 것을 제외하고는 뚜렷한 경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던 1970년대 SF계의 폐쇄적인 상황도 그가 변화를 모색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하드 SF란 과학적 논리의 정합성에 주안점을 둔 SF를 의미하며, 좁은 의미에서는 자연 과학(hard science)의 탐구 대상, 이를테면 천체라든지 자연 현상 등을 소재로 삼은 작품을 가리킨다. 최근에는 유전공학이나 양자역학의 이론이 직접적인 소재가 되는 경향이 있다.

 

시간 여행을 다룬 매혹적인 소품 「로드마크스」(1979)와 엘프(!)의 피를 이어받은 검사/마법사 딜비쉬의 복수를 다룬 연작 판타지 「저주받은 자 딜비쉬」 시리즈(1981~1982)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며, 나바호 족의 신화를 소재로 삼은, 사실 상 그가 쓴 마지막 신화 SF라고 할 수 있는 걸작 「고양이의 눈」(1982)을 경계로 젤라즈니의 작품 세계는 중기에서 후기로 접어들게 된다. 물론 예전과 마찬가지로 <신화>가 화두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기존 신화를 복선에 딸고 SF적인 해석을 시도했던 초기와는 달리 젤라즈니 자신의 개인적인 신화를 구축(構築)했다는 것이 1980년대의 작품군(作品群)의 특징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런 개인화/내면화의 표면에 어릴 적부터 그가 즐겨 읽었던 미국의 장르 판타지, 특히 <영웅 환상 소설>로 번역되곤 하는 히로익 판타지에 대한 기호(嗜好)가 드러나 있다는 사실이다. 1985년에 재개된 신 「앰버」 시리즈가 그렇듯 젤라즈니의 판타지 자체가 이미 히로익 판타지에 접근하고 있었지만, 그의 환상의 모태가 된 것이 「반지의 제왕」류의 영국적인 에픽 판타지가 아니라, 톨킨과는 쌍벽을 이루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코즈믹 호러> 계열의 작품, 이를테면 윌리엄 호프 호지슨에서 H.P.러브크래프트, 「코난」 사가의 작자인 로버트 E.하워드로 이어지는 <크툴루 신화 체계>였다는 점은 기존의 젤라즈니 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젤라즈니는 날카로운 위트와, 오컬트 및 그 상징 체계에 대한 깊은 조예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함으로써 선구자들에게서는 찾아 보기 힘든, 일종의 <코즈믹 판타지>라고 부를 만한 독특한 작풍을 자아냈다. 같은 시기의 단편집 Unicorn Variations(1983)와 Frost and Fire(1989)는 놀랄 정도로 다양하고 세련된 젤라즈니의 지적 경향을 집대성한 중요한 작품집이다.

 

*톨킨이 북구 신화를 모델로 삼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러브크래프트는 극히 개인적이고 더 근원적인 공포에 입각한 '어두운' 신화의 재래를 시도했다. 크툴루란 인간, 아니 포유류조차 존재하지 않던 태곳적에 지구를 지배했던 이계의 사악한 신들(Great Old Ones) 중 하나이다. 이를 따서 <크툴루 신화 체계(Cthulhu Mythos)>로 불리는 그의 작품군은 인간의 종족적 무의식 속에 침잠되어 있는 태고의 공포를 불러 일으키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우주적>인 숙명에 대한 체념과 공포를 묘사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후세의 영미 환상 문학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초기 젤라즈니의 특징이었던 인간성의 변화에 관한 깊은 고찰은 특유의 스타일을 완전히 확립한 후기에 이르러서는 양자역학에서 정보 테크놀로지를 망라하는 폭넓은 지적 관심으로 대체되었으며, 특히 1980년대 들어 SF계 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을 휩쓴 <제2의 뉴웨이브> 사이버 펑크 운동안 「드림 마스터」와 「집행인의 귀환」 등의 선구적인 중편을 통해 사이버네틱스 SF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그에게는 큰 자극이 되었다. 1991년에 오랫동안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신 「앰버」 시리즈가 (불완전하게나마) 일단락된 후에는, 젤라즈니가 오랜만에 <참신한(ground-breaking)> SF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지만, 1995년 여름에 들려 온 그의 사망 소식에 환상 문학계는 충격을 금하지 못했다.*

6월 14일 사망. 향년 58세, 사인은 암이었다. 영미원을 위시한 세계의 SF 잡지들이 앞다투어 추모 특집을 마련했지만, 너무나도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당황하고 있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같은 해 미국을 대표하는 SF 평론지인 「로커스(Locus)」 8월호에 실린 여러 동료 작가들의 절절한 추모사는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이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특히 그는 갓 출판계에 입문한 젊은 후배 작가들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함과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신사였다. 작가인 조지 R.R.마틴은 1970년대 중반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워크숍에서 처음으로 젤라즈니를 만났으며, 뉴멕시코 주의 산타페에서 20여 년 동안 돈독한 우정을 쌓았고, 친지들의 부탁을 받고 그의 죽음을 처음으로 SF계에 알렸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재능 있는 SF/판타지 작가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마틴은 1980년대에 젤라즈니 작품의 오마주를 썼던 신예 월터 존 윌리엄스와 더불어 그의 문학적인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았다.

 

*젤라즈니의 반려자이자 동료 작가였던 제인 린즈콜드가, 그의 미완성 유고에 가필 수정해서 출간한 장편으로는 Donnerjack(1997)과 Lord Demon(1999)이 있지만, 알프레드 베스터의 미완성 장편을 젤라즈니가 완성시킨 사실 상의 유작 Psychoshop(1998)과는 달리, 질적 양적인 측면에서 그의 작품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로저 젤라즈니가 남긴 50여 편의 작품들 중에서도 중단편집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1993년 이래 「신들의 사회」, 「앰버」 시리즈를 포함한 그의 장편들을 한국에 소개해 왔던 필자에게도 개인적인 <젤라즈니 프로젝트>의 1기를 마감하는 뜻 깊은 책이다. 오리지널 중단편집에는 들어 있지 않은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1979)를 제외하면, 본서는 모두 1960년대에 발표된 초기의 주옥 같은 중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30여 년에 걸친 그의 작가 인생에서도 가장 생동감 넘치고, 창조적이었던 시기에 씌어진 작품들은, 장편만으로는 그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었던 <중단편 작가> 젤라즈니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때까지 했던 모든 일,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았던 일,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의 총합이라고나 할까.

 

 

VI. 수록 작품 일람

 

－12월의 열쇠 (The Keys to December)

문체와 소재에서 장편 「신들의 사회」(1967)를 단편으로 응축시킨 듯한 느낌이며, <신성(神性)이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본격 SF의 배경에 융합시킨 걸작이다. 젤라즈니가 경애해 마지않던 거장 코드 웨이너 스미스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점도 흥미롭다.

Ner Worlds 1966년 8월호에 게재.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The Doors of His Face, the Lamp of His Mouth)

질주하는 스토리텔링과 젊디 젊은 스타일의 매력이 집약된 걸작. 간결한 대화체와, 화려하지만 절제된 리듬의 산문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제목은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누가 그 얼굴의 문을 열 수 있을까…그 눈은 새벽 눈꺼풀이 열림 같으며 그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라는 구절에서 따 온 것이다. 우주 탐사를 통해 이제 상당 부분 실체가 드러난 금성과는 별도의 '환상적'인 금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와도 일맥상통하는 고전 SF에 대한 작가의 경의를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젤라즈니는 인터뷰에서 이들 중편이 <어린 시절 읽었던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및 그 정신적 후계자들에게 바치는 작품>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Fantasy & Science Fiction 1965년 3월호. 네뷸러상 최우수 중편상 수상.

 

－악마 차 (Devil Car)

젤라즈니가 사랑하던 뉴멕시코의 사막 풍경에 SF의 도구를 외삽한 복수극. 서부극을 방불케 하는 독특한 무대 설정은 훗날 영화화되기도 했던 장편 Damnation Alley(1969)에서도 활용된다. 여담이지만 촉력적인 작풍으로 유명한 할란 엘리슨도 단편 Along the scenic Route(1969)에서 이와 유사한 소재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Galaxy 1965년 6월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A Rose for Ecclesiastes)

미국 SF 협회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인기 투표에서, 아시모프의 「나이트폴(Nightfall)」, 클라크의 「별(The Star)」, 하인라인의 「지구의 푸른 뫼(The Green Hills of Earth)」, 키스의 「앨저논에게 바치는 꽃다발(Flowers for Algernon)」과 함께 최상의 고전으로 뽑힌, 젤라즈니의 대표적 중편. 영문학도로서의 배경이 서정적이면서 현대적인 스토리에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F&SF 1963년 11월호.

 

－괴물과 처녀 (The Monster and the Maiden)

젤라즈니가 쓴 장편(章篇) 중 하나이다. <인식의 변혁>이라는 소주제는 형태를 바꾸며 젤라즈니의 작품에 거듭 등장하며, 이 작품은 그것을 하나의 응집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Galaxy 1964년 12월호.

 

－이 죽음의 산에서 (This Mortal Mountain)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과도 공통되는 남성적인 무대에서, <자연 대 인간>, 불가지(不可知)와 가지(可知)의 관계 등 그가 즐겨 다루던 테마를 추구한 산악 SF. 마지막 부분에서 역시 <인식의 전환>을 통한 아이러니컬한 반전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The World of If 1967년 3월호.

 

－수집열 (Collecter's Fever)

프레드릭 브라운 풍의 경묘한 단편. 원래는 작품 전체가 대화체만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지만, 결국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가 굴복(?)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Galaxy 1964년 6월호.

 

－완만한 대황들 (The Great Slow Kings)

촌철살인의 유머가 발휘된 단편. 인간성에 대한 시니컬한 시점은 어딘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욘 티키(Ijon Tichy)」 연작을 연상시킨다.

The World of If 1963년 12월호.

 

－폭풍의 이 순간 (This Mountain of the Storm)

개인적인 관점에서 거시적 테마를 다루는 젤라즈니 특유의 소설 기법이 성숙한 문체를 통해 최상의 결실을 맺고 있다. 특히 레이 브래드베리의 서정적인 우주 소설을 방불케 하는 결말의 노스탤직한 시정(詩情)은 시인 젤라즈니의 면모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냉동 수면을 통한 시간 여행과 불사를 소재로 인간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보다 2년 앞서서 쓰여진 연애 소설 「마음은 차가운 무덤(The Graveyard Heart)」(1964)과 동일 계열의 작품으로 분류된다. 초기 젤라즈니를 대표하는 중편 중 하나.

F&SF 1966년 6월호.

 

－특별 전시품 (A Museum Piece)

20세기의 영국 작가 존 콜리어 풍의 기괴한 <환상>을 유머러스한, 때로는 사납기까지 한 시니컬한 문체로 풀어 쓴 개성적인 단편.

Fantastic 1963년 6월호.

 

－성스러운 광기 (Divine Madness)

잘 읽어 보면 일종의 '연애 소설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본서에서도 특히 이채를 띄고 있는 작품이다. 이 단편에서 쓰인 시간 여행의 아이디어는 예로부터 존재했지만, 기교적인 측면에서 그것을 실제로 성공시킨 작가는 젤라즈니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밖에는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이 두 사람 모두 심리학을 전공했던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여담이지만 1962년의 데뷔에서 본 단편이 씌어진 1966년 사이에 젤라즈니는 아버지의 죽음과 결혼, 이혼, 재혼 등을 경험했으며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이 시기의 개인적인 체험이 예술적으로 승화된 형태로 여러 중단편들에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The Magazine of Horror 1966년 여름호.

 

－코리다 (Corrida)

본서의 「괴물과 처녀」와도 많은 공통점을 가진 변신담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헤밍웨이의 패러디에 가깝다.

Anubis 1968년.

 

－사랑은 허수 (Love is an Imaginary Number)

1970년에 시작된 「앰버」 시리즈의 기본적인 골격은 이미 이 단편이 씌어진 시기부터 젤라즈니의 머리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화와 SF의 결합을 통해, 많은 장편에 공통되는 프로메테우스적 인물상이 거의 원형(元型)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난다.

New Worlds 1966년 1월호.

 

－화이올리를 사랑한 남자 (The Man Who Loved the Faioli)

사랑과 죽음, 불사의 의미를 다룬 환상적인 단편. 젤라즈니의 여성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그의 당시 심리 상태를 밀접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보는 의견도 있지만) 흥미로우며, 분위기 상으로는 이집트 신화를 다룬 장편 「빛과 어둠의 존재들(Creatures og Light and Darkness)」(1969)과 인도 신화를 다룬 「신들의 사회」의 중간 지점에 있다.

Galaxy 1967년 6월호.

 

－루시퍼 (Lucifer)

러디어드 키플링의 단편 The Devil and the Deep Sea(1898)에 촉발받고 쓴 젤라즈니의 초기 단편이다. 키플링은 과학적인 디테일, 특히 그가 사랑했던 대영제국 확장의 초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선박과 기차를 움직이게 하는 '기술'의 묘사에 관심을 보였고, 이것은 과학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SF의 내러티브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이 단편에서 젤라즈니는 인간 사회를 이루는 톱니바퀴가 글자 그대로 '정지'된 상황의 묘사를 통해 과학 기술적 '과정'의 의미를 고찰하고 있다.

The World of Tomorrow 1964년 6월호. 현대 작가들이 쓴 키플링 풍의 <과학 소설>을 모은 앤솔로지 Heads to the Storm(1989)에도 수록되었다.

 

－프로스트와 베타 (For a Breath I Tarry)

젤라즈니가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의 하나로 꼽은 것은 기교와 테마 사이의 균형이 완벽하게 잡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이버네틱스의 기본 명제를 소재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SF와 판타지의 간극에 존재하는 <인간성>의 개념에 초점을 맞춘 아름다운 소품(小品)이다. 원제인 <숨결이 한 번 스치는 동안 나는 기다린다>는 영국의 시인이자 고전학자인 A.E.하우스먼(1859~1936)의 시집 「슈롭셔의 젊은이(A Shropshire Lad)」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New Worlds 1966년 3월호.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 (The Last Defender of Camelot)

환골탈태(換骨奪胎)에 능한 젤라즈니의 역량이 최대한으로 발휘된 걸작 환상 소설. 성배(聖杯) 전설을 토대로, 신앙과 허상이라는 전통적인 명제를 정면에서 다룬 감동적인 작품이다. 조지 R.R.마틴이 각본화한 TV 시리즈 「트와일라잇 존(Twilight Zone)」의 한 에피소드로도 방영되어 화제를 모았다.

1980년 발로그상의 최우수 단편 부문 수상작. Asimov's SF Adventure Magazine 1979년 여름호.

 

 

VII. 주요 저작 목록

 

[장편]

1. This Immortal (1966) ─ 「내 이름은 콘래드」 (시공사, 1995, 2005).

2. The Dream Master (1966) ─ 중편 He Who Shapes를 장편화한 작품.

3. Isle of the Dead (1967)

4. Lord og Light (1967) ─ 「신들의 사회」 (정신세계사, 1993, 행복한책읽기, 2003).

5. Creatures of Light and Darkness (1969).

6. Damnation Alley (1969).

7. Jack of Shadows (1971).

8. Today We Choose Faces (1973).

9. To Die in Italbar (1973) ─ 3.의 자매편.

10. Bridge of Ashes (1976).

11. Doorways in the Sand (1976).

12. Deus Irae (1976). ─ 필립 K.딕과 공저.

13. Roadmarks (1979).

14. Changeling (1980) ─ 판타지. 폴 데트슨 시리즈 #.1

15. Madwand (1981) ─ 폴 데트슨 시리즈 #.2

16. The Changing Land (1981) ─ 「변화의 땅」 (너머, 2005). 딜비쉬 연대기 #.2

17. Dilvish, the Damned (1982) ─ 「저주 받은 자 딜비쉬」 (너머, 2005). 딜비쉬 연대기 #.1

18. Eye of Cat (1982).

19. Coils (1982) ─ 프레드 세이버헤이겐과 공저.

20. A Dark Traveling (1987) ─ 아동 SF.

21. Wizard World (1989) ─ 14.와 15.의 합본.

22. The Black Throne (1990) ─ 프레드 세이버헤이겐과 공저.

23. The Mask of Loki (1990) ─ 토머스 T.토머스와 공저.

24. Bring Me the Head of Prince Charming (1991) ─ 로버트 셰클리와 공저.

25. Flare (1992) ─ 토머스 T.토머스와 공저.

26. If at Faust You Don't Succeced (1993) ─ 24.의 속편. 로버트 셰클리와 공저.

27. A Vighht in Lonesome October (1993) ─ 판타지.

28. Wilderness (1994) ─ 제럴드 하우스먼과 공저, 역사 소설.

29. A Farce to Be Reckoned With (1995) ─ 27.의 속편, 로버트 셰클리와 공저.

30. Donnerjack (1997) ─ 미완성 원고를 제인 린즈콜드가 완성시켜 젤라즈니 사후에 발표한 작품.

31. Psychoshop (1998) ─ 알프레드 베스터의 미완성 장편을 젤라즈니가 완성시킨 작품.

32. Lord Demon (1999) ─ 제인 린즈콜드와 공저, 판타지.

 

[중단편집]

1. Four of Tomorrow (1967) ─ 초기 중편 4편을 모은 중편집.

2. The Doors of His Face, the Lamps of His Mouth and Other Stories (1971) ─ 본서. 영국판 제목은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3. My Name is Legion (1976) ─ Home is the Hangman 을 포함한 연작 중편집.

4. The Illustrated Roger Zelazny (1978) ─ 중단편집, 화집. 그레이 모로가 삽화를 담당.

5. The Last Defender of Camelot (1980) ─ 중단편집.

6. Unicorn Variations (1983) ─ 단편집.

7. Frost and Fire (1989) ─ 단편집.

8. Gone to Earth (1992) ─ 단편선. Auther's Choice Monthly 시리즈 #.27

9. Way Up High/Here There Be Dragons (1992) ─ 삽화가 들어간 한정본.

10. The Last Defender of Camelot (1002) ─ 로버트 실버버그가 새로 편집한 중단편집. 5.를 상당 부분 첨삭한 신판.

 

[앰버 연대기]

 

<클래식 앰버 시리즈>

1. Nine Princes in Amber (1970) ─ 「앰버의 아홉 왕자」 (예문, 1999).

2. The Guns of Avalon (1972) ─ 「아발론의 총」 (예문, 1999).

3. Sign of the Unicorn (1975) ─ 「유니콘의 상징」 (예문, 1999).

4. The Hand of Obron (1976) ─ 「오베론의 손」 (예문, 2000).

5. The Courts of Chaos (1978) ─ 「혼돈의 궁정」 (예문, 2000).

<신 앰버 시리즈>

6. Trumps of Doom (1985).

7. Blood of Amber (1986).

8. Sign of Chaos (1987).

9. Knight of Shadows (1989).

10. Prince of Chaos (1991).

 

[시집]

1. Poems (1974).

2. When Pussywillows Last in the Catyard Bloomed (1980).

3. To Spin is Miracle Cat (1981).

4. Hymn to the Sun : An Imitation (1996).

 

[기타]

1. Roger Zelazny (1979) ─ 유년 시절의 친구이자 영문학 교수인 Carl B. Yoke 가 쓴 젤라즈니 평론집.

2. Roger Zelazny (1986) ─ 평론가 Thedore Kyulik 이 쓴 전기, 평론집.

3. Roger Zelazny (1993) ─ 작가이자 90년대의 <반려자>였던 Jane Lindskold 가 쓴 전기.

4. Lord of the Fantastic (1998) ─ Martain H.Greenberg 가 편찬한 젤라즈니 추모 앤솔로지. 로버트 실버버그, 그레고리 벤포드, 존 발리, 월터 존 윌리엄스, 로버트 셰클리, 닐 게이먼 등이 쓴 <젤라즈니 풍>의 단편들이 각 작가의 개인적인 코멘트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로저 젤라즈니에 관한 포괄적인 웹 사이트로는 http://zelazny.corrupt.net 가 가장 유명하다.

*본서의 텍스트로는 미국 ibooks에서 출간된 The Doors of His Face, the Lamps of His Mouth and Other Stories (2001)를 썼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A Rose for Ecclesiastes)」는 영국판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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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젤라즈니 연보

 

1937년

5월 13일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폴란드 출신 아버지와 아일랜드 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1943년

오하이오 주 유클리드의 노블 초등학교 입학.

6학년이 되기 전에 이미 유머 스토리와 시를 쓰기 시작함.

 

1949년

유클리드의 쇼어 중학교 입학.

젤라즈니 자신이 「레코드」라고 이름 붙인 일련의 습작 단편을 씀. 내용은 유머러스한 판타지물.

 

1952년

유클리드 고등학교에 입학.

저널리즘과 소설 작법 과목을 공부하며 「레코드」 습작을 계속함.

12학년이 되던 해에 학교 신문의 편집장으로 취임해서 학생 기자로도 활약.

 

1953년

「서번」에 처녀 단편인 「조건부 은전(恩典)」을 발표.

 

1954년

단편 「풀러 씨의 반란」, 「그리고 어둠은 가차 없었다」 및 시 등을 교내 문예지인 「유쿠요」에 발표.

「풀러 씨의 반란」을 상업지인 「리터러리 캐벌케이드」에 게재.

 

1955년

유클리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클리블랜드의 웨스턴 리저브 대학에 입학.

심리학을 전공하며 프로이트, 융, 엘리스 등의 저작에 심취하며 시와 소설의 습작을 계속함.

 

1957년

대학 영문과에서 수여하는 핀리 포스터 시인상을 수상.

전공을 영문학으로 바꿈. 셰익스피어, 휘트먼, 만, 릴케 및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들에 관해 연구.

 

1958년

시 「그림자 없는 사내」와 단편 「외부의 징후」를 대학 문예지인 「스카이라인」에 게재.

 

1959년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졸업.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영문학 석사 과정에 입학.

제임스 1세 시대의 연극에 관해 연구하며 맨해튼의 문화를 탐방함.

 

1960년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뉴욕을 떠나 오하이오 주 방위군에 자원 입대.

반 년 동안 텍사스에서 나이키 대공 미사일 요원으로 복무하고, 향후 3년 간은 예비군으로 복무.

 

1962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 졸업.

클리블랜드의 사회 보장국에 취직. 지급 청구 담당자로 근무하며 조우한 여러 인간 군상은 훗날 소설의 인물 조형의 밑거름이 됨. 독학으로 독일어를 터득함.

처녀 SF 단편인 「수난극」과 「기사」를 각각 「어메이징」 8월호와 「판타스틱」 8월호에 게재. 단편 「선생들은 불의 수레바퀴를 탔다」와 「비잔티움의 달 없는 밤에」를 「어메이징」 12월호에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SF를 쓰기 시작함.

 

1963년

「스플레노바로 가는 길」, 「특별 전시품」, 「솔로몬 왕의 반지」, 「마지막 만찬」, 「완만한 대왕들」 등의 단편을 「어메이징」, 「판타스틱」, 「뉴 월즈」에 발표.

해리슨 덴마크라는 필명으로 「스테인레스 스틸 흡혈귀」, 「끔찍한 아름다움」, 「왕국의 나의 것」 등을 발표. 

「판타스틱 사이언스 픽션」 7월호에 중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를 발표해서 평단에 큰 충격을 주고 일약 SF계의 총아로 떠오름.

 

1964년

9월 경 오하이오 주 맨스필드 근교에서 운전 중 교통 사고에 휘말려 중상을 입음.

11월에 아버지가 급사. 12월에 샤론 스티벌과 결혼.

「마음은 차가운 무덤」, 「수집열」, 「루시퍼」, 「파우스트의 구원」, 「괴물과 처녀」 발표.

 

1965년

사회 보장국의 지급 정책관으로 승진해서 볼티모어 지국으로 전근.

중편 「형성하는 자」,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복수의 여신」, 판타지 연작인 「딜비쉬」 시리즈의 단편 「딜파로 가는 길」, 「셀린데의 노래」를 발표.

 

1966년

장편 「내 이름은 콘라드」로 휴고상 수상.

6월에 샤론 스티벌과 이혼한 뒤 주디스(주디) 캘러헌과 재혼.

「형성하는 자」와 「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으로 각각 네뷸러상 중편상과 단중편(短中篇)상을 수상.

「사랑은 허수」, 「쇼어던의 종」, 「프로스트와 베타」, 「폭풍의 이 순간」, 「12월의 열쇠」, 「신성한 빛」 등을 발표. 이들 중단편 중 다수가 휴고상과 네뷸러상 후보에 오름.

 

1967년

장편 「죽은 자의 섬」, 「신들의 사회」를 출간.

중편 「파이올리를 사랑한 사내」, 「지옥의 질주」 등을 발표.

미국 SF 협회의 서기 및 재무 담당자로 선출.

 

1968년

「신들의 사회」로 휴고상 초우수 장편상을 수상.

장편 「빛의 존재」, 「코리다」를 발표.

 

1969년

사회 보장국을 퇴직하고 전업 작가로 변신.

「강철 장군」, 「어둠의 존재」, 「루모코 이브」 발표.

이집트 신화를 다룬 장편 SF 「빛과 어둠의 존재들」 발표.

 

1970년

「앰버 연대기」의 제1작인 「앰버의 아홉 왕자」를 출간.

 

1971년

장남 데빈 출생.

장편 「그림자의 잭」과 작품집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출간.

 

1972년

「앰버 연대기」의 제2작인 「아발론의 총」 출간.

장편 「죽은 자의 섬」으로 프랑스 과학 소설 협회에서 주관하는 아폴로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

 

1973년

중편 「크즈왈 '크제' 크 '쿠사일' 크제 '크'」 발표.

장편 「오늘 날 우리는 얼굴을 고른다」와 「이탈바에서 죽다」 출간.

 

1974년

중편 「하트스프링의 기계」 발표.

워싱턴에서 열린 세계 SF 컨벤션에 주빈 작가로 초청됨. 시집 출간.

 

1975년

「피와 먼지의 게임」, 「행맨의 귀환」, 「과학 소설의 파라미터 : 편중된 의견」을 발표.

장편 「유니콘의 상징」을 발표.

중편 「행맨의 귀환」으로 네뷸러상 최우수 중편상을 수상.

가족과 함께 볼티모어에서 뉴멕시코 주 산타페로 이주.

 

1976년

차남 조너선 프렌트 출생.

장편 「재로 된 다리」, 「모래 속의 문」, 「오베론의 손」, 연작 중편집 「내 이름은 레기온」, 필립 K.딕과 함께 쓴 장편 「분노의 날」을 출간.

「모래 속의 문」으로 미국 도서관 협회의 최우수 청소년 소설상을, 중편 「행맨의 귀환」으로 휴고상 최우수 중편상을 수상.

 

1977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상은 없다」를 게재.

영화판 「지옥의 질주」가 미국에서 개봉됨.

 

1978년

그레이 모로가 삽화를 담당한 「일러스트레이티드 로저 젤라즈니」를 양장판과 반양장판으로 출간.

「앰버」 5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혼돈의 궁정」을 출간, 평단의 찬사를 받음.

 

1979년

장녀 셰넌 출생.

 

1980년

단중편 「캐멀롯의 마지막 수호자」로 발로그상 수상.

 

1982년

장편 신화 SF 「고양이 눈」 출간.

「유니콘 배리에이션」으로 휴고상 단중편 부문 수상.

 

1985년

신 「앰버」 시리즈의 제1작인 「악운의 트럼프」를 출간.

 

1986년

「호쿠사이의 후지산 24경」으로 휴고상 중편 부문 수상.

 

1987년

「영원한 겨울」로 휴고상 중단편 부문 수상.

 

1989년

뉴욕의 과학 소설 컨벤션에서 작가인 제인 린즈콜드를 만나 의기투합함.

단편집 「프로스트 앤드 파이어」 출간.

 

1991년

신 「앰버」 제5권이자 시리즈 최종작인 「혼돈의 왕자」를 출간.

 

1993년

러브크래프트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고독한 10월의 밤」을 출간, 독자들과 평단의 호평을 받음.

로스앤젤레스 사이언스 판타지 협회에서 주관하는 포리 작가상을 수상.

 

1994년

대장암 선고를 받고 화학요법을 시작함.

6월부터 자택에서 제인 린즈콜드와 동거. 뉴질랜드 등지로 여행을 감.

「앰버」 시리즈의 단편인 「거울 복도」, 「결혼 축가」 등을 완성.

장편 SF 「도너잭」과 「로드 데몬」의 집필을 계속 함.

 

1995년

성 빈센트 병원에서 입원 가료 중 6월 14일 이른 오후에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

유언에 따라 화장되고, 재는 산타페 교외의 산에 뿌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