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로저 젤라즈니 (김상훈 옮김)

12월의 열쇠

 

 

Y7 <고양이 형태>로 태어나 오실롯*의 모습을 한 쟈리 다크는 신성 폭발로 인해 동족들과 함께 살던 행성 알료날이 파괴되자 새로운 행성으로 동포들과 함께 이주하여 자신들이 사는 환경에 맞게 수천 년에 걸쳐 행성을 개조한다. 그 과정에서 행성에 사는 많은 생물체가 멸종한다. 그 동안 멸종하지 않고 진화하여 지적 존재가 된 종족을 발견한 쟈리는 그들을 멸망하지 않도록 유지시키기 위해 접촉하고 돌보며 관찰하고, 결국 동면과 당직을 거듭하기를 거부하고 행성 개조를 포기한 채, 동면 없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원주민 종족을 돌보겠다고 주장하며 동포들의 뜻에 반(反)하기에 이른다.

 

 

(중략)

 

「왜 이런 짓을 하는 건가, 쟈리?」 그는 물었다.

「도대체 그들이 뭐기에 동포들에게 고통을 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건가?」

「자네들이 나처럼 느끼고 있지 않은 이상, 이유를 말해 보았자 자네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쟈리는 대답했다.

「어차피 그건 자네들의 감정과는 다른, 나 자신만의 감정─슬픔과 고독의 감정에 기인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 점만은 알아 줬으면 좋겠군. 나는 그들의 신이라네. 어느 마을로 가더라도 내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지. '망자의 사막'에서 온 '곰들의 퇴치자'─이게 바로 나야. 그들은 2세기 반에 걸쳐 내 얘기를 전해 왔고, 그 과정에서 나도 미화되었다네. 그들이 보는 한, 나는 강하고 현명하고 선한 신이야. 그런 자격으로, 나에겐 그들을 배려해 줄 의무가 있네. 만약 내가 그들에게 생명을 내려 주지 않는다면, 그 누가 눈 위에서 나를 찬양해 주고, 모닥불 주위에서 나의 노래를 불러 주고, 모충 고기의 가장 좋은 부분을 잘라 내서 내 앞에 바치겠는가? 그럴 자는 아무도 없네, 터를. 그리고 지금 내 인생에서 가치 있는 건 오직 그런 일들 뿐이라네. 그러니까 모두를 깨워 줘.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어.」

「잘 알겠네.」 터를이 말했다.

「표결에 붙여서, 만약 자네 주장에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다면 어떻게 할 건가?」

「그럴 경우엔 내가 은퇴하고, 자네들이 신이 되는 거야.」 쟈리가 대답했다.

 

이런 연유로, 이제 쟈리 다크는 보랏빛 하늘에서 지는 해를 매일 바라보며 그 움직임을 지켜본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더 이상 얼음과 바위 속에서 꿈이 없는 잠에 빠져 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동포들의 새로운 알료날을 두 눈으로 보는 것을 그만 두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전체 '대기' 기간의 한 순간에 불과한 자신의 인생을 그냥 살아가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매일 아침이 되면, 얼음이 깨지고, 주석이 떨리고, 강철선이 절단되는 소리가 들여오며 새로 건설된 데들랜드 기지에 있는 쟈리를 잠에서 깨운다. 이윽고 그들이 공물을 가지고 와서, 노래를 부르며 눈 위에 각인을 남긴다. 그들은 그를 찬양하고, 그는 그들을 향해 소리 없이 웃는다. 이따금 기침을 할 때도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잉태되었지만, GMI 계약 옵션에 의거, 3.2-R, 한랭 행성종(알료날 거주를 위해 개조된), Y7 <고양이 형태>로서 태어난 쟈리 다크는, 그에게 거처를 보증해 주었던 이 우주 어느 곳에서도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이것을 축복으로 볼지 저주로 볼지는 당신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이쯤 해서 이야기를 마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생명은, 자신에게 충분히 봉사한 자들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오실롯(ocelot) ; 남미산의 스라소니. 표범을 닮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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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의 문, 그 입의 등잔

 

 

금성의 바다에 사는 거대한 어룡(魚龍)을 잡기 위해 몇 년을 미끼 담당으로 배에 탄 칼 데이비츠는 이키와 대면하기도 하고 위험을 무릅쓰기도 하지만 이키에게 동정심이 생겨 항해를 그만 두려고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동료들과 함께 이키 생포에 성공한다.

 

 

(중략)

 

이크티포름 레비오사우루스 레비안투스(Ichtyform Leviosaurus Levianthus), 통칭 이키를 뭍으로 낚아 올리려는 실질적인 시도는 과거 5년에 걸쳐 10여 번이나 있었다. 처음으로 이키가 발견되었을 당시에 쓰였던 것은 포경술(捕鯨術)이었다. 곧 이런 방법으로는 효과가 없거나 위험하다는 사실이 판명되었고, 새로운 방법이 고안되었ㄷ가. 텐스퀘어 호를 건설한 사람은 마이클 잔트라는 이름의 부유한 스포츠맨이었지만, 그는 결국 이 계획에 전 재산을 날리고 말았다. <동부양(東部洋)>에서 1년을 보낸 후, 잔트는 파산 신고를 하기 위해 되돌아왔다. 그 다음에는 칼튼 데이비츠라는 이름의 플레이보이 낚시광이 이 거대한 뗏목을 사 들여 이키의 산란 해역에서 철야 감시를 계속했다. 이키는 19일째 되는 날에 미끼를 물었지만, 결국 이 시도는 채 시험해 보지도 못한 1만 5천 달러치의 새로운 장비를 이크티포름 레비안투스 한 마리와 함께 잃는 것으로 끝났다. 그로부터 12일 후, 그는 3중 강선을 써서 이 거대한 짐승을 낚았고, 마취약을 주사한 후 인양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때 이키는 마취에서 깨어나 관제탑을 파괴해 여섯 명을 죽였고, 10스퀘어의 반에 해당하는 5스퀘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

칼튼은 부분적인 반신 불수에 빠졌고,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파산 선고를 받는 운명에 처했다. 그는 부둣가 뒷골목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 후 텐스퀘어 호의 소유주는 네 번 더 바뀌었지만, 모두 예전보다 화려하지는 못했어도 역시 값비싼 파국을 맞이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건조된 이 거대한 뗏목은 마침내 경매에 부쳐졌고, ANR은 이것을 '해양 연구용'으로 매입했다. 로이드 사는 여태껏 보험 계약에 응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 뗏목이 참여하게 된 유일한 '해양 연구'란 하루 5천 달러의 요금으로 이따금 대여되는 경우 뿐이었다. 엄청나게 큰 물고기를 놓쳤다고 허풍을 떨고 싶어하는 작자들에게 말이다. 나는 이런 항해에 미끼 담당으로 세 번 참가했고, 그 중 두 번은 이키의 날카로운 이빨을 셀 수 있을 만큼 가까이 간 적도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훗날 손자들에게 그 이빨 하나를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공항 쪽을 마주 보고 소리 내어 굳게 다짐했다.

「지방색을 보여 주기 위해서 나를 원하는 거군, 진. 그러면 특종 뉴스가 한층 더 돋보일 테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해 두겠어─당신을 위해서 이키를 생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야. 이 자리에서 약속하지.」

나는 텅 빈 광장에 서 있었다. 라이프라인 공항의 흐릿한 탑들의 윤곽이 안개를 나눠 가지고 있었다.

 

*스퀘어 ; 1 square는 100평방 피트.

 

 

어렸을 적에 나는 바다 생물로 태어나는 것이 자연이 내려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태평양 연안에서 자랐고, 매년 여름을 멕시코만이나 지중해에서 보냈다. 산호초를 탐험하고,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어류의 사진을 찍고, 돌고래들과 술래잡기를 하면서 1년 중 몇 달이나 되는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물고기가 있는 곳이라면 나는 어디든지 가서 낚시를 했고, 물고기들은 내가 갈 수 없는 곳까지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곤 했다.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나는 더 큰 물고기를 원하게 되었고, 내가 아는 한 세쿼이아*를 제외하면 이키보다 더 큰 생물은 없었다. 이유 하나는 이것일지도 모른다.

 

*세쿼이아(Sequoia) ; 캘리포니아 원산의 거목(巨木).

*리르(Lir) ; 켈트 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신. 그 후처는 전처의 자식들을 질투하여, 그들을 백조로 바꿔 놓았다.

*티피(teepee) ; 북미 원주민의 원뿔형 천막.

*아케론(Acheron) ; 그리스 신화에서 죽은 자가 건너는 저승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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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차

 

 

(중략)

 

그녀는 플레이보이들이 즐겨 타곤 하는 최신형 세단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새빨갛고, 화려하고, 빨라 보였다. 그러나 엔진 뚜껑의 솟아오른 부분 밑에는 로켓탄이 장착되어 있었고, 전조등 아래 쪽의, 밖에서 보이지 않는 공간에는 50구경 중기관총의 총구가 두 개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5초와 10초 지연 신관식(信管式)의 유탄 탄띠를 아랫배에 두라고 있었다. 트렁크 안에는 높은 휘발성을 가진 나프타 유가 담긴 분사 탱크를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제니는 특별히 설계된 <데스 카(death car)>였고, 먼 동방에 위치한 지엠*왕조의 수석 기사가 샘 머독을 위해 제조한 차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위대한 장인(匠人)의 모든 기술을 집약시킨 존재였다.

 

*지엠(Geeyem) ; 제너럴 모터스(General Motors)를 의미함.

 

 

「제니, 차들이 야생화하는 이유가 뭐지?」 그는 물었다.

「언제 다시 연료 보급을 받게 될지도 모르고─자동 수리 장치에 필요한 예비 부품을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지는데도?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모르겠어요, 샘. 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10년 전에 놈들의 리더인 <악마 차(Devil Car)>가 내 형을 죽였어. 형의 주유 요새를 습격했을 때 말이야.」

머독이 말했다.

「그리고 그 뒤로 줄곧 나는 그 검정색 캐디*를 쫓아다니고 있어. 공중에서도 찾아 보았고, 도보로도 찾아 다녔어. 다른 차들도 써 보았지. 열 탐지기나 미사일도 가지고 다녀 봤어. 지뢰를 부설하기까지 했지. 하지만 언제나 그것은 내가 잡기에는 너무 빨랐고, 너무 머리가 좋았고, 너무 강했어. 그래서 나는 너를 만들게 했던 거야.」

「당신이 그걸 증오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이유가 뭔지 늘 궁금해 하곤 했죠.」

제니가 말했다. 머독은 담배 연기를 빨아 들였다.

「나는 네가 바퀴 달린 차 중에서 가장 강하고, 빠르고, 머리가 좋은 존재가 되도록 특별히 프로그램했고, 장갑을 입혔고, 무장시켰어, 제니. 너는 <진홍색 여인*>이야. 너는 혼자서 그 캐디와 부하들 모두를 잡을 수 있어. 놈들이 지금까지 만나 본 적도 없는 종류의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가지고 있는 거야. 이번만은 놈들을 잡고야 말겠어.」

 

*캐디(Caddy) ; 캐딜락을 의미.

*진홍색 여인(Scarlet Lady) ; '그리고 그 천사는 성령으로 나를 감동시켜 광야로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에서 나는 진홍색 짐승을 탄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 짐승의 몸에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히 적혀 있었고 머리 일곱에 뿔이 열 개나 달려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주홍과 진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단장하고 있었으며 자기 음행에서 비롯된 흉측하고 더러운 것들이 가득히 담긴 금잔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 요한의 묵시록 17:3~4.

 

 

가장 멀리, 가장 뒤쪽에 늘어선 차들 훨씬 너머에, 오래 된 검정색 캐딜락이 주차해 있었다. 그것은 견습 기사들이 거대한 차를 선호했던 시절의 조립 라인에서 태어난 존재였다. 그것은 거대했고, 반짝거렸으며, 운전대 뒤에서는 해골이 이 쪽을 보며 웃고 있었다. 검고, 번들거리는 크롬 도금의 차체에, 어두운 보석, 혹은 곤충의 눈처럼 보이는 전조등. 차체의 모든 면과 커브에서 힘을 발산하고 있었고, 거대한 물고기의 꼬리처럼 가늘어지는 그 후부(後部)는 원한다면 그 즉시 뒤쪽의 그림자 바다를 힘껏 내려치고,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앞으로 튀어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거야!」 머독이 속삭였다. 「<악마 차>!」

 

(중략)

 

「저 고물을 박살내고 터널을 막아! 캐디에게 도망 갈 길을 내 주면 안 돼!」

「못 하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왜?」

「그냥 못 하겠어요!」

「이건 명령이야! 저걸 부수고 터널을 막아!」

 

(중간)

 

「왜 맞추지 못한 거지?」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놈을 맞추지 않았던 거지, 제니?」

그녀는 곧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는 기다렸다.

이윽고, 그녀가 대답했다.

「그는 내겐 단순한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가 다른 차들과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힌 것은 사실이고, 그건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는 뭔가를 가지고 있었어요, 뭔가─고귀한 것을. 자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워 온 생활 방식 같은 걸 말이에요, 샘. 저 흉포한 차의 무리를 통솔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주인 없이─살아가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고, 부서지거나 패배할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 샘, 아까 거기 있었을 때 나는 한순간 그의 무리와 합류해서, 그와 함께 '도로 평원'을 질주하고, 그를 위해 주유 요새의 문을 향해 나의 로켓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하지만 당신을 '처리'할 수는 없었어요, 샘. 난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차예요. 난 너무나도 길들여져 있어요. 난 너무나도 약해요. 하지만 난 그를 쏠 수는 없었고, 일부러 로켓을 빗나가게 했어요. 하지만 절대로 당신을 '처리'할 수는 없었어요, 샘. 정말로.」

「고마워.」 그는 말했다.

「필요 이상으로 프로그램된 이 폭탄 아가씨야.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군!」

「미안해요, 샘.」

「입 닥쳐─아니, 닥치지 마, 아직은. 우선 우리가 <그>를 찾으면 어떻게 할 건지 얘기해 봐.」

「나도 모르겠어요.」

「그럼 빨리 결정해. 저기 앞 쪽의 먼지 구름을 나만큼 잘 볼 수 있잖아. 속도를 올려.」

 

「응, 실로 감동적이로군. 다음에 만나는 차를 죽일 준비를 해 둬. 만약 그게 너의 보이프렌드이고, 네가 쏘지 않는다면, 놈은 우리를 죽일 거야.」

「그래 볼게요, 샘.」

 

(중략)

 

「저 놈이 뭐라고 했나?」

「기계적인 욕설이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도 한두 번 들어 본 적이 있을 뿐이고, 당신이 듣는다고 해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는 쿡쿡거리며 웃었다.

「차들이 정말 서로를 향해 욕을 한단 말이야?」

「때로는.」 그녀가 말했다.

「질이 낮은 차들은 좀 더 자주 그러는 것 같아요. 특히 고속도로나 요금소에서 막힐 땐.」

「그 기계적인 욕이라는 걸 한 번 해 봐.」

「싫어요. 도대체 내가 어떤 차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미안해.」 머독이 말했다.

「넌 레이디였지. 잊고 있었어.」

 

 

＊　　＊　　＊

 

 

그것은 그들을 향해 총알처럼 빨리 달려왔다─<악마 차>였다. <진홍색 여인>을 뿌리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복해 있다가, 자신을 쫓아온 사냥꾼과 최후의 충돌을 감행하기 위해 돌진해 온 것이었다.

브레이크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고, 타는 냄새가 확 풍겨 오는 것과 동시에 제니는 옆으로 미끄러졌다. 그녀의 50구경 중기관총이 불을 뿜었고, 엔진 덮개가 홱 열리면서 앞쪽 바퀴 두 개가 지면을 박차고 위로 올라갔고, 로켓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앞을 향해 날아갔다. 그녀는 뒤쪽 범퍼로 염분을 포함한 모래땅을 긁으며 세 번 회전했고, 마지막 세 번째의 회전을 한 순간 언덕 중턱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는 잔해를 향해 남아 있던 로켓을 모두 발사한 후 다시 네 바퀴를 지면에 대고 정지했다. 그리고 그녀의 50구경 중기관총 두 문은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총알을 뱉어 냈고, 총알이 떨어진 후에도 짤깍거리는 소리가 1분 넘게 계속되었다. 그리고 정적이 모든 것 위로 떨어졌다.

머독은 운전석에 앉은 채 몸을 떨며, 아침 하늘을 배경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일그러진 잔해가 불타 오르는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해냈어, 제니. 네가 그를 죽인 거야. 넌 <악마 차>를 죽였어.」

그러나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엔진 시동이 다시 걸리며 그녀는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저 문명화된 방향에 있는 연료 보급/휴게 요새를 향해 갔다.

 

두 시간 동안 그들은 침묵 속에서 전진했다. 그 사이에 머독은 버번과 커피를 모두 들이켰고, 담배를 모두 피웠다.

「제니, 뭔가 말해 봐.」 그는 입을 열었다.

「뭐가 문제지? 얘기해 줘.」

찰칵 소리가 났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나지막했다.

「샘─그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는 내게 말을 걸었어요….」

그녀는 말했다. 머독은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흐음, 뭐라고 했는데?」 그는 되물었다.

「그는 '여어, 당신은 탑승자를 처리해. 그럼 나는 당신을 비껴 갈 테니까 말이야' 라고 말했어요.」

그녀는 말했다.

「그는 '난 당신을 원해, 진홍색의 레이디─나와 함께 달리고, 함께 습격을 해 줘. 우리가 함께 다닌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잡지 못할 거야' 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난 그를 죽였어요.」

머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발포하는 걸 늦추기 위해 그렇게 말했던 거죠, 안 그래요? 나를 멈추기 위해, 그래서 자신이 박살날 때 우리도 함께 박살내기 위해서 그랬던 것 아닌가요? 진심으로 그랬을 리가 없어요. 안 그래요, 샘?」

「물론 진심이었을 리가 없어.」 머독이 말했다.

「물론이지. 진로를 바꾸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어.」

「맞아요, 아마 그랬겠죠─하지만 그가 정말로 나와 함께 달리고, 함께 습격하기를 원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거기서 말이에요?」

「아마 그랬겠지, 베이비. 넌 최고의 장비를 갖춘 멋진 차니까 말이야.」

「고마워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침묵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러기 전에, 그는 기묘한 기계음을 들었고, 그것이 욕설 내지는 기도에 해당되는 리듬으로 변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고개를 숙였고, 여전히 떨리고 있는 손으로 옆 좌석 위를 살짝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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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지구인 시인 갤린저는 화성 문화와 역사의 연구를 위한 번역가로서 화성 탐사대 소속으로 화성에 방문했다. 화성인들의 경계를 풀어가며 여족장 므퀴(M'Cwyie)와의 알현에 성공하여 신전의 역사서들을 연구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화성에서 가장 아름답게 춤을 추는 무희 브락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브락사는 갤린저가 쓴 시에서 나오는 '장미'라는 꽃을 궁금해 하고, 그는 탐사대 동료에게 부탁하여 장미를 얻어낸다.

그러나 브락사는 갤린저가 지구로 떠나야 할 날이 가까워지자 자취를 감추고, 므퀴는 브락사의 행방을 갤린저에게 알려 주지 않는다. 갤린저는 필사적으로 브락사를 찾아 화성 종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성서의 예언에 따라 화성의 남자들이 성욕과 생식 능력을 잃어버렸고 더 이상 자손을 낳을 수가 없게 되어 모든 종족은 멸망을 받아들이고 앞두고 있으므로, 갤린저와 자신의 사이에서 임신이 되었지만 예언은 그대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갤린저는 브락사에게 장미를 건네고 설득하여, 족장과 원로들이 있는 신전으로 찾아간다. 화성 종족의 유지를 위한 설득에 성공하지만, 갤린저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이 진짜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중략)

 

형형색색의 옷들이 재빨리 움직였고, 곧 방에는 므퀴와 나 단 둘만 남아 있었다.

「지금 보신 것은 로카의 2,224개의 춤 중에서 117번째 것입니다.」

나는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로카의 생각이 맞았든 틀렸든 간에, 그는 무기물에 대해 실로 멋진 대답을 생각해 냈군요.」

그녀는 미소 지었다.

「당신 세계의 춤도 이것과 닮았습니까?」

「그 중 일부는 닮았습니다. 브락사의 춤을 보면서 그것들이 머리에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그녀와 똑같은 춤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훌륭한 무희입니다.」 므퀴가 말했다.

「모든 춤을 숙지하고 있습니다.」

 

 

＊　　＊　　＊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헐떡이며 바닥에 누워 있었다. 자신의 종족과 종교를 지키려고 싸우다가 쓰러진 이 거인에 대해 나는 강한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었다. 그를 비켜 가는 대신 결국 짓밟고 지나가는 나 자신을, 나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하게 저주했다.

 

(중략)

 

한 종족에게 자살을 그만 두라고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 가능할까? 그런 식으로 하면 효과가 있을까? 만약 그들에게 <전도서>를 낭독해 준다면─ 그들에게 로카가 남긴 그 어떤 글보다도 위대하고, 그에 못지 않게 음울하고 염세적인 문학 작품을 읽어 준다면─ 그리고 한 사내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매한 시적 언어를 써서 생(生) 전체를 매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인들이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 왔다는 사실을 얘기해 주고─ 그가 그렇게도 조롱하던 허영심이 결국 인간을 하늘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면─ 그들은 내 말을 믿고 마음을 바꾸게 될까?

아름다운 바닥 장식 위해서 담배를 밟아 끄고는 노트를 찾아냈다. 몸을 일으키는 나의 내부에서 기묘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나는 <생명의 서(書)>에 기록된 갤린저의 <검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내 주위에는 침묵만이 있었다.

므퀴는 로카를 낭독하고 있었다. 장미는 그녀의 오른손에 쥐여져 있었고, 모두 그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갈 때까지는.

 

(중략)

 

열두 명의 노파들이 므퀴 뒤에서 반원 모양으로 앉아 있었다. '어머니들'이다.

「불모의 토지, 메마른 자궁이여, 불의 손길이여.」

나는 탁자로 다가갔다.

「당신들은 죽어 가면서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죽자고 선고했소.」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들이 이미 맛보았던 인생을─기쁨을, 슬픔을, 그리고 충만함을─그들에게서 박탈하려 하고 있는 것이오. 그러나 당신들이 모두 죽어야 한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오.」

이제 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브락사는 알고 있소. 왜냐하면 그녀는 아이를 낳을 것이므로─」

모두들 불상처럼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므퀴는 뒷걸음질 쳐서 반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아이를 말이오!」 나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이 설교를 듣는다면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럴 만한 젊음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은 모두 아이를 낳을 수 있소. 아이를 만들 능력이 없는 것은 남자들 뿐이니까. 그리고 다음 번 탐험대가 와서 당신들의 몸을 검사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남자들도 나을 수 있을지 모르오. 설령 그러지 못한다고 해도, 지구인의 남자와도 짝을 맺을 수 있소.」

나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들 지구인은 하찮은 종족이 아니고, 지구는 하찮은 장소가 아니오. 몇 천 년 전, 우리들 세계의 로카는 만물의 하찮음에 관한 책을 썼소. 그는 로카와 같은 얘기를 했소. 그러나 우리는 역병과 전쟁과 기아에도 불구하고 결코 좌절하지 않았소. 우리는 죽지 않았던 것이오. 우리는 하나씩 역병을 극복해 나갔고, 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전쟁과 투쟁했으며, 최근 들어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전쟁 없이 지내 왔소. 마침내 전쟁을 극복한 것인지도 모르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우리는 광대한 무의 공간을 가로질러 이 곳으로 왔소. 다른 세계를 방문한 것이오. 그리고 지구의 로카는 이렇게 말했소. '왜 그런 짓을 하는가? 도대체 그런 일에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은 허영에 불과하다' 라고. 그리고 비밀은 바로 이 말에 있소.」

나는 시를 낭독할 때처럼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가 한 말은 옳았소! 모든 것은 바로 허영이었던 것이오! 중요한 것은 자만이었소! 예언자를, 신비가를, 신을 언제나 공격했던 것은 합리주의의 오만이었소. 우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고, 또 앞으로도 우리를 지탱해 줄 것은 바로 우리들의 불경스러움이었던 것이오. 신들도 우리 안에 있는 이것을 내심으로는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오. 신들의 성스러운 이름들은 모두 입에도 올릴 수 없을 만치 불경스러운 것이란 말이오!」

나는 땀에 젖어 가고 있었다. 현기증을 느끼고 잠시 말을 멈췄다.

「여기에 그 <전도서>가 있소.」

나는 이렇게 선언하고, 읽기 시작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뒤쪽에 브락사가 있었다. 침묵한 채, 넋이 나간 듯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실패에 검은 실을 감듯이, 내 주위에 밤의 시간을 감아 들었다.

 

(중략)

 

내가 끝마쳤을 때, 그 곳에 있는 것은 여전히 정적 뿐이었다. 줄줄이 늘어선 불상들은 밤새도록 꼼짝도 않은 채 앉아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 므퀴가 오른손을 들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어머니'들고 같은 동작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잇었다.

그것은 부정(否定)을 의미했고, 하지 마, 멈춰, 끝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내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천천히 방에서 걸어나와 내 짐 옆에 주저앉았다. 온트로는 사라져 있었다. 다행이다. 나는 그를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므퀴가 들어왔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일은 끝났습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모두 기쁨에 차 있습니다. 그대는 승리했습니다, 성스러운 자여. 이제 빨리 여기서 떠나십시오.」

나의 마음은 바람이 빠진 풍선이었다. 나는 그 안으로 조금씩 바람을 불어넣었다.

「나는 성스러운 자가 아닙니다. 대책 없을 정도로 오만에 가득 찬 이류 시인에 불과합니다.」

나는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얘기해 주십시오, 무슨 예언입니까?」

「로카의 예언입니다.」

그녀는 설명 따위는 불필요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로카의 모든 춤이 완결된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한 사내가 최후의 순간에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는 '말란의 주먹'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브락사의 경우처럼, 그리고 '신전'에서 보여 주었던 증명에 의해.」

「증명?」

「당신은 우리에게 로카의 말만큼이나 위대한 그 인물의 말을 읽어 주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는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을 읽으며 당신은 그의 말을 조롱했습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입니다. 화성에는 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것을 키우는 방법을 배워 익히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맺었다.

「당신은 예언에 나오는 '성스러운 조롱꾼'입니다. '신전에서 조롱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당신은 성스러운 땅에 흙 발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반대를 표명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말했다.

「우리의 원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데 반대한 것입니다. 즉 브락사의 아이를 살리자고.」

「오.」 담배가 손가락 사이에서 떨어졌다. 정말 아슬아슬했던 것이다! 나는 얼마나 무지했던가!

「그리고 브락사는?」

「그녀는 반기(半期) 전에 그 춤을 추기 위해 선발되었습니다. 당신을 기다리기 위해서.」

「하지만 그녀는 온트로가 나를 막을 거라고 했습니다.」

므퀴는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녀 자신은 그 예언을 결코 믿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녀의 정신 상태는 좋지 않습니다. 예언이 실현될 것이 두려워서 그녀는 도망쳤습니다. 당신이 예언을 완성시키고 우리가 표결했을 때, 그녀는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한 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유감입니다, 갤린저.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중 그 부분만은 결코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임무.」 나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되풀이했다…임무임무임무라! 하하!

「그녀는 이미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당신과는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의 가르침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나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말했고, 갑자기 모든 기적의 중심에 존재하는 거대한 패러독스를 깨달았다. 나는 내가 입에 담았던 복음을 한 마디도 믿지 않았고, 믿었던 적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술 취한 사내처럼 일어나서, <므나라> 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밖으로, 화성에서의 내 마지막 날 속으로 나갔다.

<나는 그대를 정복했노라. 말라닝여─그리고 승리는 그대의 것이다! 별들 사이에서 편히 잠들라. 저주 받은 신이여!>

나는 집스터를 그 곳에 남겨 둔 채 <아스픽>까지 걸어서 돌아갔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수많은 발자국 뒤에 남겨 둔 채, 나는 내 선실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42알의 수면제를 삼켰다.

 

그러나 다시 깨어 보니 그 곳은 의무실이었고, 나는 살아 있었다.

엔진의 고동을 느끼며, 천천히 일어나서 어떻게인가 현창이 있는 곳까지 갔다.

흐릿한 화성이 부풀어 오른 산모의 배처럼 내 머리 위에 걸려 있었다. 이윽고 그것은 내 눈 속에서 번졌고, 넘쳐 흐르다가, 뺨을 따라 흘러내렸다.

 

 

---

 

 

이 죽음의 산에서

 

 

백발인 머리 때문에 화이티(Whity)라는 별명을 가진 등산가 잭 서머즈는 대기권을 훌쩍 넘어가는 고산(高山), <그레이 시스터(Gray Sister)>의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6명의 동료들과 한 팀을 이루어 산에 오른다. 험난한 등반 내내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천사의 형상을 보았으나, 아무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사고로 사망하는 동료도 생기고, 포기하고 하산하거나 부상을 당하는 동료도 생겨난다. 잭은 끝끝내 정상에 올랐다가 이 산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중략)

 

그 날 꾼 꿈은 기묘한 것이었다.

위쪽 사면에 우뚝 서 있던 것은 인간 모양─인간보다는 훨씬 컸지만─을 한 진홍색의 불길이었다. 터무니 없는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생명의 반대쪽 어딘가에서 무엇인가 꿈틀했고, 그 쓰디쓴 순간 나는 이것이 <심판의 날>의 천사라고 확신했다. 다만, 그 오른손에 들려 있는 것은 나팔이 아니라 불로 된 검이었다. 그는 한정 없이 그 곳에 선 채 내 가슴을 향해 그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 모습을 통해 별들을 볼 수 있었다. 곧 그것이 말을 한 듯 했다.

그것은 말했다.

「돌아가라.」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같은 소리를 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또 그렇게 말했다.

「돌아가라.」

「내일 그럴 거야.」 나는 꿈 속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그것은 만족한 듯 했다. 불길이 스러지면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감쌌다.

 

(중략)

 

전진하기 어려워졌지만, 기분은 좋았다. 10마일 지점에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길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상태일 것이고, 그 다음에는 한층 더 험준해질 것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사기는 떨어지지 않았고, 내가 위로 올라가는 것과 함께 계속 올라갔다.

그것의 공격은 너무나도 빠르고 광포했기 때문에, 나는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꿈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머릿 속에서 울려 퍼졌다.

「돌아가라! 돌아가라! 돌아가라!」

그러자마자 하늘에서 그것이 나타나 나를 덮쳤다. 콘도르 크기의 새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새가 아니었다. 단지 새 모양을 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불길과 정전기 덩어리였고, 전광석화처럼 나를 덮쳤기 때문에, 바위를 등지고, 피켈을 든 오른손을 들어올려 대비할 여유 밖에 없었다.

 

*아바투아르(abattoir) ; 도살장

 

(중략)

 

그는 또 그 곳에 있었다. 단지 이번에는 예전처럼 가깝지는 않았다. 그는 20피트 쯤 떨어진 공중에서 불타오르고 있었고, 그가 든 검의 끄트머리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돌아가라.」

그것은 아무런 억양도 없는 어조로 세 번 이렇게 말했다.

「지옥에나 떨어져.」 나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다.

그는 마치 내게 좀 더 다가오려는 기색을 보였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너나 돌아가.」 나는 말했다.

「산을 내려가라. 떠나라. 더 이상 올라오면 안 된다.」

「하지만 난 올라갈 작정이야. 꼭대기까지,」

「안 된다. 그럴 수는 없다.」

「거기서 우리가 그러는 걸 구경이나 하고 있으라고.」 나는 말했다.

「돌아가라.」

「만약 거기 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싶다면, 그건 네 마음이겠지.」

나는 대꾸했다. 「난 자러 가겠네.」

나는 침낭 쪽으로 기어가서 독(Doc)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뒤를 돌아다 보니 나의 불타는 방문자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뭐야?」

「너무 늦었어.」 나는 말했다.

「아까 저기 있었는데 벌써 사라졌군.」

 

 

＊　　＊　　＊

 

 

「드디어 왔어.」 나는 이렇게 말하고 피켈을 들어올렸다.

피켈 끄트머리가 불의 벽을 건드린 순간 누군가가 지옥의 뚜껑을 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부신 빛이 폭발한 순간 나는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다시 눈이 보이게 됐을 때 눈 앞에 천사가 서 있었다.

「이 곳에 오면 안 된다.」 그는 말했다.

「저 여자 때문에 나더러 되돌아가라는 건가?」 나는 물었다.

「그렇다. 돌아가라.」

「이 일에 관해서 그녀가 할 말은 없어?」

「그녀는 자고 있다. 되돌아가라.」

「내가 봐도 그런 것 같군. 왜 저러고 있지?」

「그녀는 자야 한다. 돌아가라.」

「왜 그녀는 내 눈 앞에 나타나서 기묘한 술수로 나를 유인했던 거지?」

「내가 가지고 있던 무서운 모습들을 모두 써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효과가 없었다. 내가 기묘한 술수로 너를 유인한 것은 자고 있는 그녀의 정신이 나의 움직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그녀의 모습을 빌렸을 때는 더욱 그랬고. 그 탓에 내가 받은 지시에 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돌아가라.」

「어떤 지시를 얘기하는 거지?」

「이 산을 오르는 모든 것들로부터 그녀를 지켜야 한다는 지시다. 돌아가라.」

「왜? 왜 그녀를 지텨야 한다는 거지?」

「그녀는 자야 한다. 돌아가라.」

우리 둘 사이의 대화가 다소 순환적인 양상을 띠기 시작ㅎ나 이 시점에서, 나는 배낭 속에서 프로젝터를 꺼냈다. 그것을 앞으로 내밀자 천사는 녹아 내렸다. 내가 손을 뻗치자 불길을 피하려는 듯이 뒤로 굽었다. 나는 이 불의 원 어딘가에 있는 출입문을 열려고 시도해 보았다. 어떻겐가 그럴 수 있었다. 프로젝터를 내밀자 불길은 뒤로 굽었고, 또 굽었고, 계속 굽다가 마침내 갈라졌다. 불길이 갈라졌을 때, 나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빠져나가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 방호복은 말라르디와 마찬가지로 불에 그을려 있었다.

 

그녀가 자고 있는 관 같은 상자로 다가갔다. 상자 가장자리에 양손을 얹고 내려다 보았다. 그녀는 얼음처럼 깨지기 쉬운 것 같이 보였다. 사실, 그녀는 얼음이었다….

그러자 불이 들어오며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의 간소한 침대가 진동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 때,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기계 옆에 놓인 금속제 의자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또한 얼음이었다. 단지 그 얼굴은 잿빛으로 변색된 채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검은 옷을 입었고, 죽었고, 석상으로 변해 있었다. 한편, 그녀는 자고 있는 석상이었다. 그녀는 파란색과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 동굴 건너편 구석에 빈 관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주위의 공기가 밝아 왔다. 그렇다, 공기였다. 동굴 바닥의 얼어붙은 분사공으로부터 쉭쉭거리며 뿜어져 나왔고, 위로 올라가 구름처럼 응집되었다. 그러자 열이 느껴졌고, 구름이 개이면서 주위가 점점 더 밝아 왔다. 다시 관으로 되돌아가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 보았다.

 

(중략)

 

그녀는 숨을 쉬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는 눈을 떴다. 오랫동안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았던 두 눈을.

이윽고 파란 불길 같은 두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화이티.」 그녀는 말했다.

「맞아.」

「난 어디에 있는 거죠…?」

「내가 도저히 사람을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장소에 있지.」

그녀는 이마를 찌푸렸다.

「기억이 나요.」

그녀는 이렇게 말한 후 윗몸을 일으켜 앉으려고 했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누웠다.

「당신 이름은 뭐지?」

「린다예요.」 그녀는 말했다.

「당신 꿈을 꿨어요, 화이티. 기묘한 꿈들을…. 어떻게 그런 꿈을 꿨을까요?」

「설명하자면 복잡해.」 나는 말했다.

「당신이 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녀는 말했다.

「하늘만큼이나 높은 산 위에서 괴물들과 싸우는 걸 보았어요.」

「응. 우린 지금 거기 있어.」

「치, 치료법을 찾아 냈나요?」

「치료법? 무슨 치료법?」

「도슨 씨 병 말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구토감이 치밀어 올라왔다. 그녀는 이 곳에서 포로가 되어 자고 있던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죽음을 연장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병에 걸려 있었다.

 

「당신은 빛보다 빠른 우주선을 타고 이 세계로 왔어?」

「아뇨.」 그녀는 말했다.

「이 곳에 오기까지는 몇 세기나 걸렸어요. 항행 중에 우리는 냉동 수면에 들어가 있었죠. 이건 냉동 수면용 침대예요.」

그녀는 관을 향해 눈짓해 보였다. 나는 그녀의 뺨이 새빨갛게 달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들 모두가─ 병에 걸려 죽기 시작했어요. 치료법은 없었어요. 내 남편 칼은 의사였어요. 내가 이 병에 걸린 걸 깨닫자마자 그이는 치료법이 발견될 때까지 나를 초저온 상태에서 보존하겠다고 했어요. 그러지 않는다면 이틀 밖에 살지 못해요. 알고 있죠?」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나를 올려다 보았고, 나는 그녀가, 마지막에 말한 두 단어가 나를 향한 질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녀가 죽은 사내의 모습을 볼 수 없도록 몸의 위치를 바꿨다. 저 사내는 그녀의 남편인 칼일 것이다. 나는 당시에 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상상해 보려고 했다. 그의 병 상태가 그녀보다 더 악화되어 있었다는 것은 명백하므로, 서둘러야 했을 것이다. 역병으로 식민지가 완전히 멸망해 버릴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임이 틀림 없고, 또 지독하게 똑똑했다─보통 머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된 이유는 그녀를 깊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식민지가 소멸하려는 것을 알고 있던 그는, 다음 우주선이 이 곳에 도착하려면 몇 세기나 더 걸릴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냉동 수면 장치에 동력을 공급할 만한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이 곳, 거의 대기권 밖의 우주만큼이나 차가운 이 산의 정상에서는, 동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어떤 방법을 썼든, 그는 린다와 기계 장비를 이 곳까지 운반해 왔다. 기계 장비는 이 동굴 주위를 역장(力場)으로 에워쌌다. 열과 공기가 있는 상태에서 그는 작업을 했고, 그녀를 냉동 수면 속으로 깊이 빠뜨린 다음, 자기 자신이 들어갈 냉동 수면 침대를 준비했다. 일단 그가 역장을 끄기만 하면, 얼음처럼 차가운 기나긴 대기 시간을 보존하기 위해서 동력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 <그레이 시스터>의 품 안에서, 방어 컴퓨터의 무리에 에워싸인 채 몇 세기 동안이라도 수면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의 방어 프로그램은 아마 급하게 짜여진 것 같았다. 그는 죽어 가고 있었으므로, 결국 그녀는 그녀와 합류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는 서둘러서 컴퓨터의 모드를 기본적 방어로 맞춰 놓았고, 역장을 끈 다음 '어둡고 비밀스러운 장소'로 자기 자신을 보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산은 우리를 향해 새와 천사와 뱀들을 보냈고, 불의 벽을 쌓아 올려 나를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 죽었지만, 산은 가사 상태에 있는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구조자가 될지도 모르는 자들을 포함한 모든 것에 대해서. 나는 이 산에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그것을 작동시켰던 것이다. 내가 방어선을 돌파한 탓에 그녀는 다시 소생했다.

 

「돌아가라!」

투사된 천사를 통해 기계가 그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헨리가 동굴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느님 맙소사!」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그게 누구야?」

「독을 불러!」 나는 말했다.

「지금 당장! 설명은 나중에 해 줄게. 생사가 걸린 문제야! 통신기가 작동하는 곳까지 다시 올라가서, 도슨 씨 병이라고 전해 줘─토착성의 악성 전염병이라고 말이야! 서둘러!」

「지금 갈게.」 이렇게 말하고 그는 사라졌다.

「의사 선생님이 와 있어요?」

「응. 겨우 2시간만 오면 되는 곳에 있어. 걱정 마…. 그런데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데, 도대체 어떤 수를 써서 당신을 이런 산꼭대기까지 운반해 올 수 있었던 거지? 이런 기계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우린 지금 그 거대한 산─ 40마일 높이의 산 위에 있는 건가요?」

「응.」

「당신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어요?」 그녀가 물었다.

「걸어서 올라왔어.」

「퍼가토리오* 산을 정말로 올라왔단 말이에요? 바깥 쪽에서?」

「퍼가토리오? 그게 이 산 이름이었어? 응, 난 그렇게 여기로 올라왔어.」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달리 어떤 방법으로 산 꼭대기로 올라올 수 있다는 거지?」

「이 산의 내부는 비어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거대한 동굴과 넓은 통로가 있죠. 기압 조정 장치가 달린 제트 카로 안 쪽을 향해 올라오는 건 쉬워요. 사실, 여긴 유원지였죠. 한 사람 당 2달러 50센트만 내면 됐어요. 오르고 내리는 데에는 각각 한 시간 반씩 걸렸어요. 1달러를 주고 기밀복을 빌려서 산의 정상에서 한 시간 쯤 산책하는 거죠. 오후를 즐겁게 보내는 데는 안성맞춤이었어요. 멋진 전망이죠…?」

 

*퍼가토리오(Purgatorio) ; '연옥'이라는 이탈리아 어의 영어식 발음. 단테의 <신곡>의 제2부이기도 함.

 

그녀는 깊게 훅 하고 숨을 들이켰다.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요.」 그녀는 말했다.

「물 가져온 거 있어요?」

「응.」

나는 대답하고 그녀에게 가진 물을 모두 주었다.

그녀가 물을 홀짝이고 있는 사이에, 나는 독이 필요한 혈청을 가지고 있든지, 아니면 그것을 입수할 수 있을 때까지 그녀를 다시 얼음 속의 잠으로 되돌려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를 빌었다. 또 나는 그가 당장 와 주기를 빌었다. 그녀의 갈증이나 붉게 물든 뺨의 상태를 보고 판단하건대, 두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시 열이 오르고 있어요.」 그녀는 말했다.

「부탁이에요, 화이티. 내게 말을 걸어 줘요…. 아무 얘기나. 의사 선생님이 올 때까지 함께 있어 줘요. 난 옛날 이 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무슨 얘기를 해 줬으면 좋겠어, 린다?」

「왜 당신이 이런 일을 했는지 말해 줘요. 이런 산을 올라온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얘기해 줘요. 왜 그랬죠?」

나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종의 광기와도 관련이 있다고나 할까.」 나는 말했다.

「위대하고 강대한 자연력(自然力)에 대해서 어떤 선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 산은 각자 신(神)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각자 불멸의 힘을 가지고 있는. 만약 당신이 그 사면 위에서 제물을 바친다면, 그 산은 당신에게 어떤 은총을 내려 주고, 한동안 당신은 그 힘을 나눠 가질 수 있을지도 몰라. 산이 나를 부르는 건 아마 그 때문인지도….」

그녀의 손은 내 손 안에 있었다. 나는 이것을 통해, 내 몸 안에 있는 힘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그녀 전체를 가능한 한 나와 함께 지탱해 줄 수 있기를 빌었다.

「난 처음으로 퍼가토리오를 보았을 때를 기억하고 있어, 린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현기증을 느꼈지. 도대체 저건 어디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하고…?」

 

별들이여,

오오 그 곳에 있어 다오.

이번만이라도.

기원하노라.

 

「별들까지?」

 

 

---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양희은, 한계령(寒溪嶺)

 

 

---

 

 

폭풍의 이 순간

 

 

옛날 지구에서 대학에 다니던 시절, 우리 철학 교수는 어느 날 강의실로 들어오자마자─아마 강의 노트를 어딘가에 흘리고 오기라도 한 모양이다─기다리고 있던 열여섯 명의 희생자들의 얼굴을 30초 쯤 뚫어지게 바라보았던 적이 있었다. 충분히 엄숙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사실에 만족한 그는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다 꿍꿍이속이 있어서 한 소리였다. 한 시간 반을 때워야 했던 데다가, 열여섯 명의 수강생 중 여학생은 열한 명(그 중 아홉 명은 인문학부에서 왔고, 나머지 두 명은 필수 과목이었다)이나 되었던 것이다. 이들 두 사람 중 의대 예비 과정에 있는 여학생 하나가 손을 들더니 산문적이기 그지없는 생물학적 정의를 늘어놓았다. 교수는(지금 갑자기 생각났는데, 맥니트라는 이름이었다)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전부인가?」

이런 연유로, 그의 한 시간 반은 보장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인간이 웃는 존재이며, 인간은 짐승과 천사의 중간에 있는 존재이고, 인간이란 자신의 행동의 부조리함을 자각하면서도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이고(이건 비교 문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에게서 나온 말이었다), 인간은 문화를 전달하는 동물이며, 인간은 동경하고, 긍정하고, 사랑하는 정신이며, 도구 사용자이며, 망자를 매장하는 존재이며, 갖가지 종교를 발명하는 생물이며, 자기 자신을 정의하려고 시도하는 존재인 것이다(마지막 정의는 내 룸메이트였던 폴 슈워츠가 내린 것이어다─즉석에서 고안해 낸 것 치고는 상당히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그 후 폴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쨌든 간에, 이런 정의들에 대한 내 반응은 '아마 그럴지도' 라든지, '틀린 말은 아냐, 하지만─' 이거나, 혹은 그냥 '헛소리!' 라는 말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들을 실제로 시험해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티에라 델 시그누스, <백조의 나라>에서….

그 때, 내 대답은 이랬다.

「인간이란 그가 그 때까지 한 모든 일, 하고 싶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들,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안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 이 모든 것의 총합이다.」

여기서 잠깐 이 정의에 관해 생각해 보기 바란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일부러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 안에는 생물학과, 웃음과, 동경 뿐만 아니라, 문화 전달도, 사랑도, 거울의 복도도, 정의하려는 욕구도 충분히 들어갈 여지가 있는 것이다. 보다시피 종교에 대해서까지 문을 열어 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정의에도 한계는 있다. 이를테면, 제일 끝의 조건을 충족하는 과묵한 인물을 만난 적이 있는가?

티에라 델 시그누스, <백조의 나라>─정말 멋진 이름이다.

멋진 곳이기도 했다. 한동안은….

이 나라에서 나는 보았던 것이다. 커다란 칠판에 쓰여진 인간의 정의가 하나씩 지워지고, 결국 내 것 하나만 남는 광경을.

 

 

＊　　＊　　＊

 

 

(중략)

 

나는 모른다. 그 어떤 일에 관해서도, 정말.

 

나는 또 다시 베티의 시장이 되었다. 11월까지 남은 임기를 대행하고, 재건 작업을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일했다. 정신없이 일했다. 그리고, 내가 베티를 처음 보았던 날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밝고 깔끔한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가을의 시장 선거에 입후보했더라면 아마 당선되었겠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시의회는 나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가드프리 저스틴 홈즈의 동상을 엘리너 쉬러의 동상과 나란히 건립한다는 안을 가결시켰다. 이들 동상은 광장 너머의 깨끗하게 씻겨진 와이어스의 동상을 마주보게 될 예정이었다. 아마 지금도 그 곳에 있을 것이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앞의 일을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2,3년 후, 좀 더 역사가 흐른 후, 나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베티를 다시 방문할지도 모른다. 단지 어느 동상의 발치에 화환을 바치기 위해서라도. 그 무렵에는 대륙 전체가 오토메이션의 증기와 소음과 울림에 가득 차 있고, 반짝이는 해안에서 해안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그 해 말에 우주선이 기항했기 때문에 나는 모두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고한 후에 탑승했고, 베티를 떠났다. 목적지는 어디라도 좋았다.

나는 배를 탔고, 떠났다. 차가운 잠을 다시 한 번 자기 위해.

별들 사이를 가는 배의 환각─

아마 몇 십 년이 지났으리라고 짐작된다. 나는 더 이상 햇수를 세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생각만은 자주 하곤 한다. 혹시 언제, 어딘가에 나를 위한 황금 시대가, 르네상스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의 시대가, 단 한 장의 티켓, 단 하나의 비자, 단 한 장의 일기장 너머 어딘가에 있다고. 언제, 어디가 될지는 모른다. 누가 그런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어제 내렸던 비는 모두 어디에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도시 속에?

나의 내부에?

 

우주 공간은 차갑고 조용하며, 지평선은 무한에 가깝다. 이동 감각은 전혀 없다.

달은 보이지 않고, 별들은 눈부시게 불타오른다. 부스러진 다이아몬드이다, 모두가.

 

*티아마트(Tiamat) ; 바빌로니아의 여신으로 혼동을 상징.

*엔키(Enki) ; 수메르 신화에서의 지식의 신.

 

 

---

 

 

특별 전시품

 

 

(중략)

 

「당신은 무엇 때문에 석상이 될 생각을 한 거죠, 스미스─이런 질문을 해도 실례가 안 된다면?」

「전혀 상관 없어.」 그는 내심 미소 지었다.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무명으로 살아갈 운명에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각고의 노력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렇게 되는 사람이 있어. 나는 후자에 속하지. 예술적으로 실패하고, 무일푼이었던 나는 나 자신의 기념비가 되려고 결심했던 거야. 이 곳은 따뜻하고, 밑으로 가면 먹을 것도 많아. 환경도 내 적성에 맞고, 결코 발각되는 일도 없을 거야. 미술관 안에 늘어선 물건들을 정말로 살펴보는 사람 따위는 없으니까 말이야.」

「아무도?」

「단 한 사람도 없어. 당신도 이미 깨달았겠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곳으로 끌려 오고, 젊은 작자들은 서로 시시덕거리기 위해 오고, 또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감수성을 발달시킨다고 해도,」

그는 씁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 무렵엔 이미 근시가 되어 있거나 쉽사리 환각에 빠지거나 둘 중 하나야. 전자의 경우에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하지는 않아. 이런 식으로 퍼레이드는 계속되는 거지.」

「그럼 미술관이 무슨 쓸모가 있죠?」

「세상에! 예전에 진정한 예술가와 약혼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런 말을 하다니, 당신들 사이의 관계는 정말로 짧았던 것 같─」

「아니에요!」 그녀가 끼어들었다.

「관계가 아니라, '교제'라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잘 알았어. 그럼 '교제'라고 하지.」 그는 정정했다.

「그러나 미술관은 과거(이건 죽어 있지)와 현재(이건 결코 알아차리는 법이 없어)를 비추는 거울이고, 민족의 문화적 유산을 미래(이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거야)에 전해 주는 역할을 하는 거야. 그런 점에서 이 곳은 종교 사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녀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듣고 보니 그건 상당히 아름다운 관념이군요. 당신은 정말로 선생님이 되면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선생 노릇으로 돈을 벌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만으로도 위안이 되는군. 자, 다시 한 번 냉장고를 습격하러 가자고.」

 

 

＊　　＊　　＊

 

 

(중략)

 

이 때, 토가*를 입은 작고 추한 사내가 헛기침을 했다.

「내가 우려하던 대로군.」 그는 말했다.

비쩍 마른, 주름 투성이의 지저분한 사내였다. 장에 궤양이라도 가지고 있는 듯한, 악의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들어 비난하듯이 그들을 가리켰다.

「내가 우려하던 대로군.」 그는 되풀이했다.

「누, 누구시죠, 당신은?」 글로리아가 물었다.

「캐시어스야.」 그는 대꾸했다.

「캐시어스 피츠뮬렌─<돌턴* 타임즈>의 은퇴한 미술 평론가이지. 함께 이 곳을 탈출할 작정인 것 같군.」

「설령 우리가 여길 떠난다고 해서, 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스미스는 자신의 <패배한 검투사> 겸 하프백용의 근육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물었다. 캐시어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상관이냐고? 자네들이 이 곳을 떠난다면 하나의 생활 양식 전체를 위협하게 돼. 여기서 나간다면, 자넨 보나마나 예술가나 미술 교사가 될 것이 틀림 없어─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늦든 빠르든, 말이나 제스처, 혹은 손짓이나 무의식적인 의사 전달 따위를 통해서 예전부터 줄곧 의심하고 있었던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거야. 나는 몇 주 동안 자네들 사이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어. 자네는 의심하고 있었고, 방금 그 사실을 확인했지. 이 곳이야말로 모든 미술 평론가들이 마지막으로 와서, 자신들이 증오하고 있었던 것들을 비웃으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장소라는 사실을 말이야. 최근 몇 년 들어 로마 원로원 의원들 수가 늘어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네.」

「이따금 의심해 보기는 했지만, 확신하지는 못했어.」

「의심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네. 그것만으로도 치명적이니까. 자네는 심판을 받아야 해.」

 

*토가(toga) ; 고대 로마 시민의 긴 겉옷.

*돌턴(Dalton) ; 미국 조지아 주 북서부의 소도시.

 

그는 양 손을 딱딱 쳤다.

「심판을!」 그는 외쳤다.

다른 고대 로마인들이 천천히 입장했다. 구부러진 양초 같은 모습. 그들은 두 연인을 둘러쌌다. 먼지와 누렇게 변색한 신문지와 담즙과 흘러간 시간의 악취를 풍기며, 늙은 비평가들은 천천히 다가왔다.

「이들은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갈 작정을 하고 있네.」 캐시어스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이 곳을 떠나려고 하는 거야.」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게요.」 글로리아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늦었어.」 거무튀튀한 사내 한 사람이 말했다.

「이미 카탈로그에 올라와 있다는 걸 모르나. 자, 보라구!」

그는 카탈로그를 꺼내 읽었다.

「28번, <비탄에 잠긴 헤카베>. 32번, <패배한 검투사>. 알겠나! 이미 때가 늦었어. 너희들이 사라지면 우리가 틀림없이 조사를 받게 돼 있어.」

「심판을!」 캐시어스가 되풀이했다.

 

(중략)

 

「아니, 도대체 무엇이 저 사자를 저기 붙들어 놓고 있는 걸까?」

「그건 나야.」 모빌이 대답했다.

「죽은 과거의 유물 속에서 몸을 숨길 그늘을 찾는 것은 자네들 인간 뿐만이 아니라네.」

그 목소리는 특별히 바삐 울리고 있는 에올리언 하프*소리처럼 가늘고 섬세한 느낌이었다.

 

*에올리언 하프(aeolian harp) ; 바람이 불면 압력을 받아 혼자서 울리는 하프의 일종.

 

「꼬치꼬치 캐물을 생각은 없지만,」 스미스가 말했다. 「도대체 누구신지?」

「나는 외계 생명체라네.」 그것은 사자를 소화하며 짤랑거리는 듯한 소리로 대답했다.

「내 우주선은 아크투러스로 가는 도중에 사고를 당했지. 곧 나는 자네들의 이 행성에서 나의 겉모습이 매우 불리하다는 사실을 곧 발견했어. 단지 미술관 만은 예외였고, 그 곳에서는 큰 찬양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도. 어느 쪽인가 하면 상당히 섬세하고, 굳이 말하자면 다소 자아도취적인 종족의 일원으로서─」

그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고 우아하게 트림을 했고, 말을 이었다.

「─이 곳에서의 체류를 상당히 즐기고 있다네─'이 피폐하고 어두운 타다 남은 재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 사이에서,' 끄윽, '사라진 채로'.」

「그랬군요.」 스미스가 말했다. 「사자를 먹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천만에─ 하지만 그건 '완전히'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어. 실은, 지금부터 나는 분열해야 하거든. 다른 내가 자네들을 따라가도 될까?」

「물론입니다. 당신은 우리 목숨을 구해 줬고, 우리 거실에 걸어 놓을 장식품도 언젠가는 필요하게 될 테니까요. 나중에 거실이 생긴 다음에 말입니다.」

「잘 됐군.」

그는 일진(一陳)의 64분음표 같은 소리를 내며 분열했고, 그들 곁의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녕, 나 자신.」 그는 위를 향해 말했다.

「안녕.」 그는 위에서 대답했다.

일동은 당당하게 <현대>에서 걸어 나갔고, <그리스>를 통과했고, 오만무례하고 침착하며 위엄에 가득 찬 모습으로 <로마 시대>를 지나쳤다. 더 이상 <패배한 검투사>, <비탄에 잠긴 헤카베>, 그리고 <기계에서 나온 외계인*>이 아닌 그들은 곯아 떨어진 경비원의 열쇠를 빼 내 정문 밖으로 나갔고, 층계를 내려갔고, 젊디 젊은 다리와 낚싯줄 같이 드리워진 몇 개의 줄을 써서 밤의 품 속으로 걸어 나갔다.

 

*기계에서 나온 외계인(Xena rx Machina) ; 소설이나 연극에서 절박한 장면의 해결책을 떠맡는 역할을 하는 기계 장치의 신(deus rx machina)의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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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광기

 

 

(중략)

 

눈을 뜨자 전날 밤이었고, 만취해 있었다. 술병 두 개를 다시 채운 다음, 마개를 닫고, 다시 봉했다. 곧 이것들을 다시 주류 판매점으로 가지고 가서 돈을 되돌려 받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했던 욕을 다시 삼키고, 술을 내뱉고, 책장을 거꾸로 넘기면서도, 새 차들이 다시 디트로이트로 반송되어 분해되고, 시체들이 다시 깨어나며 단말마의 경련을 시작하고, 전 세계의 신부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흑(黑)미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껄껄 웃고 싶었지만, 입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는 두 갑 반의 재를 다시 담배로 재생시켰다. 다시 숙취가 찾아왔고, 그는 침대에 누웠다. 한참 후에, 해가 동녘으로 넘어갔다.

 

*악마 숭배자들은 가톨릭의 미사 의식을 모두 거꾸로 뒤집어 진행한다.

 

날개가 달린 시간의 전차가 그의 앞을 달려 나간 후 그는 문을 열고 '안녕히' 라고 말하며 위로를 하려 와 준 사람들을 맞이했고, 그들은 들어와 앉아서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그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속으로 울었다. 이 광기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날이 역류하면서, 그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뒤로, 용서 없이 흘러갔다.

…용서 없이 뒤로 흘러갔고, 그 시간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는 마음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거대한 비탄과, 증오와, 사랑.

 

그는 검정색 양복을 입고 연거푸 술을 뱉어 내고 있었다. 그 동안 어딘가에서는 다른 사내들이 무덤을 다시 메우기 위해 삽에 흙을 갖다 붙이고 있었다. 그는 뒷걸음질 쳐서 자신의 차에 탔고, 장례식장으로 가서 주차시켜 놓은 후 영구 차로 갈아탔다. 그들은 줄곧 후진하며 묘지로 되돌아갔다.

그는 친지들 사이에 서서 목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먼지로 먼지는 ,재로 재는」 하고 목사는 말했다. 어떻게 뒤집어 말하든 별반 달라지지 않는 문구였다.

관은 다시 영구차에 실렸고, 장례식장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장례식이 시작되자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 깎은 수염을 다시 기르고 이를 거꾸로 닦은 다음 침대로 가서 누웠다.

눈을 뜬 다음에는 다시 검정 양복을 입고 장례식장으로 되돌아갔다. 꽃들은 다시 제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엄숙한 표정을 한 친지들이 방명록에서 서명을 지웠고 그와 악수했다. 그런 다음에는 좌석으로 돌아가 앉아 뚜껑을 닫은 관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와 장례 담당자만이 남았다.

그러고는 혼자가 되었다.

눈물이 뺨 위를 거슬러 올라갔다.

그의 양복과 셔츠가 다시 빳빳해지고 줄이 세워졌다.

그는 집으로 되돌아갔고, 옷을 벗은 후,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그 날이 그의 주위에서 무너지며 아침으로 변했고, 그는 또 다시 잠을 되돌려 놓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전날 밤 잠에서 깼을 때, 그는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두 번, 그는 모든 의지를 쥐어 짜서 사건의 연쇄를 중단시켜 보려고 했다. 두 번 모두 실패로 끝났다.

그는 죽고 싶었다. 만약 그 날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면, 지금 그 행위를 향해 되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24시간도 채 남지 않은 과거의 일을 생각하며 그는 마음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 과거가 살며시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그는 관과, 납골당과, 장례용품의 구입에 관한 상담을 백지로 되돌렸다.

그런 다음 집으로 돌아가 생애 최악의 숙취에 몸을 맡겼고, 일단 갔다가 또 일어나서 술을 뱉고 뱉는 일을 거듭했고, 시체 보관소로 되돌아갔다가,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수화기를 내리고 그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

…벨을 울려 그의 분노를 침묵시킨 그 전화를.

그녀가 죽었다.

그녀는 90번 고속도로 어딘가에 흩어져 있는 차의 잔해 속에 누워 있었다.

담배를 불며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그는 지금 그녀가 그 곳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의 고통. 시속 80마일로 충돌.

…그리고 지금은 다시 살아났을까?

차와 함께 다시 형태를 되찾고, 다시 생명을 되찾고 일어서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집을 향해 후진해 와서, 다시 쾅 하고 문을 닫고 마지막 논쟁을 벌인 이 곳으로 되돌아 오기 위해? 그를 향해 그녀가 지른 소리를 삼키고, 그녀를 향해 그가 지른 고함을 다시 듣기 위해?

그는 마음 속으로 절규했다. 영혼의 양 손을 쥐어 틀었다.

지금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그의 모든 비탄과 사랑과 자기 혐오가 이렇게 멀리까지 그를 데려온 것이다. 그 순간 바로 앞으로까지….

<지금> 끝낼 수는 없었다.

 

잠시 후, 그는 거실로 되돌아 갔다. 그의 다리는 계속 움직이며 돌아다녔고, 입술은 욕설을 빨아들였고, 그 자신은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녀는 그를 빤히 올려다 보고 있었다. 마스카라는 엉망이 되어 있었고, 뺨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해 맘대로 그럼」 그는 말했다.

「!나가겠어요」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방으로 되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녀는 복도의 붙박이장에 급히 코트를 걸었다.

「.없지 수 어쩔 생각이라면 당신 그게」 그는 말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사람이군요 않는 하지 생각밖에는 자기」 그녀가 말했다.

「!마 굴지 어린애같이」 그는 말했다.

「!있잖아요 수 줄 해 말은 미안하다는 적어도」

그녀의 눈이 핑크빛 공전을 통해 에메랄드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또 다시 살아 있었고, 아름다웠다. 마음 속에서 그는 환희 작약하고 있었다.

변화가 일어났다.

「적어도 미안하다는 말은 해 줄 수 있잖아요!」

「미안해.」

그는 그녀가 손을 빼낼 수 없도록 꽉 움켜 잡았다.

「후회하고 있어, 당신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이리 와.」

그러자 그녀는 그의 품 안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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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다

 

 

(중략)

 

그의 이름은 마이클 캐시디였고 직업은 변호사였다. 뉴욕의. 존슨, 윔즈, 도허티, 캐시디 법률 사무소의. 어떤 사내가 그를 멈춰 세우고, 불을 빌려 달라고 했어. 길가에서. 밤 늦게. 그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눈 앞의 그림자를 향해 모래를 뿌렸다. 그것은 한 순간 비틀거렸고, 여러 개의 팔을 들어 얼굴인 듯한 부분을 가렸다. 그는 이를 악물고 알루미늄 막대기를 어깨에서 뽑아 냈고, 그 날카로운 끄트머리를 그림자의 배에 찔러 넣었다. 무엇인가가 그의 목덜미를 건드렸고, 눈 앞이 캄캄해졌고, 그는 그 자리에 오랫동안 쓰러져 있었다.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다시 검은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태클을 걸어 보려고 했다.

그는 상대방을 놓쳤다. 고통이 등을 가로질렀고, 무엇인가 축축한 것을 느꼈다.

다시 일어섰을 때, 그는 고함을 질렀다.

「이런 법이 어디 있어! 나는 인간이야! 황소가 아니란 말이야!」

그러자 박수 갈채가 울려 퍼졌다.

그는 검은 그림자를 향해 여섯 번 돌진했고, 그것과 격투하고, 붙들고, 상처를 입혀 보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상처를 입는 쪽은 그였다.

마침내 그는 격렬하게 숨을 헐떡였고, 몰아쉬며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양 어깨와 등이 고통으로 욱신거렸다. 한 순간 그의 마음이 맑아졌을 때 그는 말했다.

「너는 신이야, 그렇지? 그리고 이것이 너의 게임 방식이야….」

상대방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돌진했다.

그는 상대방에게 도달하기 직전에 멈춰 섰고, 한 쪽 무릎을 꿇고 상대방의 다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어두운 그림자를 땅 위에 넘어뜨린 순간, 옆구리가 불타오르는 듯한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상대방을 두 번 때리자, 그 고통은 가슴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그는 전신이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게 아니라면 혹시?」 그는 뚜렷하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넌 그게… 여긴 어디지?」

마지막으로, 무엇인가가 그의 양쪽 귀를 잘라 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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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허수

 

 

나를 영원히 속박해 놓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어야 했다. 혹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스텔라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곳에 누운 채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한 쪽 팔을 머리 위쪽으로 뻗고, 흐트러진 풍성한 금발로 휩싸인 그녀의 잠든 얼굴을. 그녀는 내게 아내 이상의 존재였다. 나의 감시자인 것이다. 지금이 돼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리다니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아니, 이것 말고도 그들은 나에게 어떤 짓을 한 걸일까?

내가 누군지 잊도록 만들었다.

내가 그들과 닮았지만, 그들의 일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를 이 시간과 장소에 결박해 놓았던 것이다.

그들은 내 기억을 빼앗았다. 그들은 사랑으로 나를 못 박았다.

나는 일어섰다. 그러자 마지막 사슬이 끊어지며 밑으로 떨어졌다.

한 줄기의 달빛이 침실 바닥에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지나 내 옷이 걸려 있는 곳으로 갔다. 어딘가 먼 곳에서 희미한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그것이 나를 각성시켰던 것이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정말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나를 함정에 빠뜨렸던 것일까?

그 조그만 왕국, 먼 옛날, 어딘가의 '다른' 세계, 그 곳으로 나는 화약을 가져갔고─맞아! 바로 그 곳이었다! 그들은 '다른' 세계에서 만들어진 수도사의 두건을 쓰고, 고대 라틴어를 말하던 나를 그 곳에서 함정에 빠뜨렸던 것이다.

그리고 혼뇌(混腦)와 이 별시간(別時間)으로의 구속.

나는 옷을 다 입으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곳에서 살아 왔던 것일까? 45년 동안의 기억─그러나 이 기억은 얼마만큼 위조된 것일까?

 

(중략)

 

「스텔라!」

「거기서 내려와요.」 그녀는 외쳤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이 공격해 올지 몰라요!」

「아멘.」 나는 말했다. 「나도 준비가 되어 있어.」

「중과부적이에요! 언제나 그랬었잖아요! 당신은 또 그들에게 질 거예요. 그리고 다음 번에도, 그 다음 번에도, 당신이 싸움을 계속하는 한. 이리 내려와서 나하고 함께 도망쳐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내가? 은퇴하라고?」 나는 반문했다.

「나는 이미 하나의 제도(制度)야. 내가 없다면 놈들은 성전(聖戰)을 수행할 상대가 없어져. 그게 얼마나 따분할지 생각해 보라─」

한 줄기의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번개는 내 석총을 비켜 갔고, 부근에 있던 나무를 태웠다.

「시작됐어요!」

「그럼 당신은 여기서 떠나. 이건 당신의 싸움이 아냐.」

「당신은 내 거예요!」

「난 내 거야!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그걸 잊지 마!」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날 배신했어!」

「아니에요. 당신은 인간을 사랑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이야.」

「난 그 말을 믿지 않아요! 지금까지 당신이 그들에게 해 온 일들을 생각해 봐요!」

나는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지금 그대를 '지금'과 '여기'로부터 추방하노라.」

이렇게 말하자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번개가 계속 떨어지며 내 주위의 지면을 시꺼멓게 태웠다. 나는 주먹 쥔 손을 휘둘렀다.

「도대체 언제 단념할 거지? 내게 한 세기 동안 만이라도 평화를 내려 준다면, 나는 너희들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는 걸 못 믿겠나!」

나는 절규했다.

 

(중략)

 

어딘가에서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왜 당신은 지치지도 않고,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하는 거죠?」

그녀가 물었다.

「왜 나와 함께 평온하고 안락한 나날을 보내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거죠? 과거에 그들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나지 않아요? 나와 함께 보낸 나날들은 그것에 비하면 천국이 아니었나요?」

「아냐!」 나는 절규했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런 사랑은 허수에 불과해.」 나는 대답했다.

놈들은 쓰러져 있던 나를 들어올리고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흐느끼며 뒤에서 따라왔다.

「난 당신에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주라고 탄원했지만, 당신은 그 선물을 내 얼굴에 내던졌어요.」

「그건 거세된 내시(內侍)의 평화야. 뇌전두엽을 잘라 낸, 연꽃의, 소라진*의 평화야.」

나는 말했다.

「아냐, 놈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놓아 두고, 그럼으로써 놈들이 말하는 진실이 결국엔 거짓임이 밝혀지도록 하는 쪽이 나아.」

「지금 제 정신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그녀는 물었다.

「코카서스의 그 태양을 벌써 잊어버린 건가요─독수리가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오늘도, 내일도, 당신의 옆구리를 쪼아 대었던 일을?」

「잊지 않았어.」 나는 말했다.

「하지만 난 놈들을 저주해. 나는 모든 시간과 장소가 끝날 때까지 놈들에게 저항할 작정이고, 언젠가 꼭 이기고야 말 거야.」

 

*소라진(Thorazine) ; 신경안정제.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는 말했다.

「지금 제 정신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어리석은 자여!」

합창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 왔고, 나는 동굴 속의 바위 위에 눕혀진 후, 쇠사슬로 결박되었다.

하루 종일 내 옆에 묶여 있는 뱀이 내 얼굴을 향해 독액을 뱉고, 그녀는 곁에서 그것을 받기 위해 접시를 내민다. 그러나 접시가 가득 차면 나를 배신한 여자는 그 내용물을 땅에 버려야 한다. 그 때마다 뱀은 내 눈을 향해 독액을 뱉고, 나는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자유를 되찾을 것이다. 오랫동안 괴로움에 시달려 온 인류를 나의 수많은 선물로 돕기 위해. 내가 이 속박에서 벗어나는 그 날, 높은 하늘도 진동하리라. 그 날이 오기까지는, 나는 그 접시 바닥을 받치고 있는 그녀의 참기 힘들 정도로 가늘고 고운 손가락을 바라보고, 그녀가 그것을 치울 때마다 비명을 질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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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올리를 사랑한 남자

 

 

이것은 존 오든과 화이올리의 이야기이고, 이 얘기에 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자는 없다. 들어 보라─

그 날 저녁의 일이었다. 그가 전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을 때(특별히 산책을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기에), <망자의 협곡> 부근의 바위 위에 앉아 있는 화이올리를 보았던 것이다. 빛으로 이루어진 그녀의 날개가 어른거리고, 깜박이더니, 어느 새 그 곳에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새하얀 옷을 입고, 흐느끼면서. 삼단 같은 흑발이 허리에 감겨 있었다.

죽어 가는 태양이 발하는 끔찍한 빛 아래에서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인간의 눈으로는 거리를 가늠하거나 원근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는(그러나 그는 그럴 수 있었다) 빛. 그는 그녀의 어깨 위에 오른손을 얹은 후 인사를 건넸고, 위로했다.

그러나 그는 그 곳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눈송이나 뼈를 연상케 하는 새하얀 볼 위로 은빛 눈물 줄기가 흘러내렸다. 아몬드 모양의 눈으로 마치 그를 투시하듯이 앞 쪽을 쳐다보고 있었고, 긴 손톱은 주먹 쥔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피는 흐르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본 그는 화이올리에 관해 전해져 내려오는 말들이 진실임을 깨달았다─그들은 오로지 살아 있는 사람을 볼 뿐이지 죽은 자를 보지는 못하며, 전 우주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그 자신이 죽어 있던 존 오든은, 잠시나마 다시 한 번 산 자가 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숙고해 보았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화이올리는 인간이 죽기 한 달 전에─죽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지만─찾아와서, 그 존재의 마지막 한 달을 함께 보내며, 인간에게 가능한 모든 즐거움을 내려 준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 날, 몸에서 모든 생명을 빨아들이는 죽음의 키스를 받을 때가 와도, 그 사내는 그것을 침착한 태도로 기꺼이─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받아들인다고 한다. 모든 존재 중에서도 화이올리의 힘은 이토록 강하고, 그것을 안 다음에는 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존 오든은 자기 자신의 인생과 죽음에 관해 생각했고, 그가 지금 서 있는 세계의 상태에 관해 고찰했고, 그 자신의 직무와 그가 받은 저주의 성질에 관해 생각했고, 화이올리에 관해─그가 존재했던 40만 일 동안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생물에 관해─생각하다가, 자신의 왼쪽 겨드랑이 아래의 한 부분에 손을 댔고, 그를 다시 한 번 생자(生者)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메커니즘을 작동시켰다.

화이올리의 몸이 그의 손 아래에서 긴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명의 감각이 그에게 되돌아온 지금, 그의 손은 갑자기 피가 통하는 살이 되었고, 그가 지금 만지는 몸도 따스하고 여자다운 육체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손의 감촉이 다시 한 번 인간의 감촉으로 되돌아왔음을 알았다.

 

(중략)

 

한 달. 한 달이 지나면 종말이 오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화이올리.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자신이 앗아가는 생명의 대가를 육체의 쾌락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어떤 사내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언제나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언제나 받는 것 이상의 것을 준다. 생명은 어차피 날아가 버리기 마련이고, 그들은 그것을 앗아가기 전에 한층 더 강화해 주기 때문이다. 아마 그것을 자신의 영양으로 삼기 위해서. 그들이 주는 것의 대가는 바로 이것이다.

존 오든은 전 우주의 그 어떤 화이올리도 그와 같은 사내와 조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이시아는 진주모(眞珠母)였고, 그녀의 몸은 그의 애무에 응해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따뜻하게 변했으며, 작은 불꽃을 닮은 그녀의 입술은 그것이 닿는 모든 것에 불을 붙였다. 그 이는 바늘, 그 혀는 꽃술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이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 화이올리에 대해 사랑이라고 불리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사랑하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원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를 이용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마 이 우주에서 그녀와 같은 존재를 기만할 수 있는 유일한 사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그는 생명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완벽한 방어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인간이 되어 살고 있는 그는, 이 사실을 생각하고 가끔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에게는 아직 한 달의 수명이 남아 있었다.

아마 서너 달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화이올리가 제공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이번 한 달을 기꺼이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이시아는 그의 육체를 혹사시켰고, 그의 지친 신경 세포에 깃들어 있던 쾌락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 짰다. 그녀는 그를 불로, 빙산으로, 조그만 소년으로, 노인으로 만들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심경의 변화가 왔고, 점점 다가오고 있는 이번 달 말에, 그에게 주어질 '죽음의 위로(consolamentum)'를 정말로 받아들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면 왜 안 된단 말인가? 그는 사이시아가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존재로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앞으로 계속 존재한다고 해서, 그 사실에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별들의 피안에서 그를 찾아 온 이 생물은 인간이 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 없이 그에게 주었다. 그녀는 그에게 정열의 세례를 내려 주었고, 그 후에 오는 평온함으로써 그를 위로해 주었다. 아마 그녀의 마지막 키스를 받고 최종적인 망각을 받아들이는 편이 최상의 선택일지도 모른다.

 

(중략)

 

그리고 31일째 되는 날, 그녀와 함께 그가 한 달 동안 살고 있던 장소로 되돌아갔을 때, 그는 강한, 너무나도 강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찾아오는 것을 느꼈다. 사이시아의 정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렬했지만, 그는 최후에 그가 만나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해.」 그는 마침내 말했다.

이것은 그가 단 한 번도 입에 담은 적이 없는 말이었다. 그녀는 그의 눈썹을 어루만지고 입을 맞췄다.

「알아요.」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완전하게 할 때가 다가오고 있어요. 하지만 나의 존 오든, 마지막 사랑의 행위를 하기 전에, 한 가지만 가르쳐 줄래요? 당신을 다른 사람들과는 격리된 존재로 만든 것이 뭐죠? 왜 제한된 수명을 가진 인간이 알고 있을 리가 없는 '생명이 아닌 것'들에 관해 그렇게도 잘 알고 있는 거죠? 나를 처음으로 만났던 그 날 밤, 어떻게 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게 접근할 수 있었던 거죠?」

「왜냐하면 나는 이미 죽어 있기 때문이야.」 그는 대답했다.

「내 눈을 들여다 보았을 때 그걸 느끼지 못했어? 내가 당신을 만질 때마다 어떤 특별한 차가움을 느끼지는 않아? 내가 이 곳으로 온 것은 냉동 수면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 자체가 내게는 어차피 죽음과 비슷한 것이었고,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망각에 빠져 있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지.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치료법을, 이 우주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몇 개 안 되는 치명적인 병, 내게 얼마 안 되는 여명 밖에는 허락하지 않은 그 병의 치료법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로 말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녀가 말했다.

「키스하고 그냥 잊어 줘.」 그는 말했다.

「그러는 편이 나아. 어차피 치료법 따위는 발견되지 않을 거야. 어떤 일들은 언제나 어둠 속에 남아 있기 마련이고, 나 자신이 이미 잊혀진 존재일 테니까 말이야. 내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왔을 때, 당신은 내 죽음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야. 그것이 당신의 종족의 본능이니까 말이야. 나는 처음부터 당신이 화이올리라는 것을 알고, 당신을 즐기기 위해 그렇게 했던 거야. 그러니까 이제는 당신이 나를 마음껏 즐겨도 좋아. 그리고 내가 그 즐거움을 나눠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 줘. 나는 당신을 받아들이겠어. 어차피 나는 전 생애에 걸쳐 무의식적으로 당신에게 구애(求愛)하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그러나 그녀는 호기심을 느끼고(그들이 만난 후 처음으로 정색한 말투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어떻게 생명과 '생명이 아닌 것'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그대의 의식만을 남겨 두고, 살아 있지 않은 상태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

「불행히도 내가 깃들게 된 이 육체 내부에는 제어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내 왼쪽 겨드랑이 밑에 있는 이 부분에 손을 대면 내 폐는 호흡을 멈추고, 심장도 박동을 멈추게 돼. 그러면 내 육체 내부에서, 내 로봇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은(당신이 그것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알아) 전자 화학적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하지. 이것이 죽음 속에서 살아 있는 내 생명이야. 나는 망각을 두려워했기에 이것을 희망했어. 나는 자원해서 우주의 무덤지기가 되었던 거야. 왜냐하면 이 장소에서 죽음과도 같은 나의 모습을 보고 소름 끼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야. 내가 이렇게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야. 자, 입을 맞추고 모든 걸 끝내 줘.」

그러나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혹은 처음부터 여성이었기 때문에, 사이시아라고 불리는 화이올리는 호기심을 드러냈고, 「여기 말인가요?」 라고 말하고는 그의 왼쪽 겨드랑이 밑에 손을 댔다.

이와 동시에 그는 사이시아의 눈 앞에서 사라졌고, 이와 동시에 그는 감정과는 동떨어진 차가운 얼음 같은 논리를 또 다시 알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그는 또 다시 그 부분에 손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는 대신, 지금까지 그가 살고 있었던 장소에서 그녀가 그를 찾아 헤매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옷장과 방을 뒤져 보았다. 그리고 살아 잇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비통하게 흐느꼈다. 그녀를 처음으로 본 그 날 밤에 그랬듯이. 그러고는 빛의 날개가 깜박, 깜박, 힘없이 깜박였고, 다시 그녀의 등 뒤에 출현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흐릿해졌고, 그녀의 육체가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그의 눈 앞에 서 있던 불꽃으로 된 탑은 곧 사라졌다. 그리고 이 미칠 듯한 밤에, 또 다시 거리를 가늠하고 원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그는, 다시 그녀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이것이 존 오든의 이야기이다. 화이올리를 사랑했지만, 훗날 살아서(그것을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이 얘기를 들려 줄 수 있었던 유일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얘기에 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자는 없다.

치료법은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가 '망자의 협곡'을 걸어다니며 뼈들을 관찰하고, 이따금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던 바위 앞에 멈춰 서서, 이미 존재하지 않는 촉촉한 물기를 찾아 눈을 깜박이며, 자신이 올바른 결단을 내렸는지에 관해 생각해 보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굳이 여기서 교훈을 얻자면, 생명은(그리고 사랑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것보다 더 강하지만, 그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보다는 결코 강하지 않다는 교훈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에게 확실히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화이올리 뿐이고, 그들은 더 이상 이 곳에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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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칼슨은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주민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도시의 고요한 중심에.

그는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이 거대한 건축물에 비하면, 그의 주위 몇 마일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네모난 호텔, 바늘 같은 마턴루, 치즈 상자 같은 아파트 따위는 모두 난쟁이처럼 보였다. 산처럼 우뚝 솟아 있는 그 건물은 피처럼 붉은 햇빛에 물들어 있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건물이 반쯤 올라간 곳에서는 붉은 빛이 황금 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칼슨은 갑자기 이 곳으로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의 기억에 의하면, 그가 이 곳에 마지막으로 온 지 2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다시 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거대한 '건물'을 보고, 계곡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는 긴 그림자를 바라보며, 못 박힌 듯이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이윽고 그는 두터운 어깨를 움츠렸다. 5년 전(아니, 6년 전이었을까?), 이 거대한 시설 안에서 일하던 시절의 추억을 떨쳐 보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이윽고 그는 언덕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높고 넓은 정문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이 없는 사무실들을 지나 벨트가 있는 곳으로 통하는 긴 복도를 걸어가자 풀로 엮은 그의 샌들은 여러 종류의 메아리를 만들어 냈다. 벨트는 물론 멈춰 있었다. 그것을 타고 움직이던 수천 명의 사람들은 없었다. 살아서 그것을 탈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뱃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낮고 우렁찬 울림은 그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시끄러운 환청에 불과했다. 그는 가장 가까운 벨트 위로 올라가 칠흑처럼 깜깜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중략)

 

그는 제2열에 있던 발전기 세 대를 골라 차례 차례 분해하고 아래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부품을 청소하고, 자동 납땜기로 접촉이 헐거워진 곳을 땜질했고, 그리스를 바르고, 기름을 붓고, 먼지와 거미줄을 깨끗이 걷어 내고, 바닥에 널려 있던 금이 간 단열재 조각을 치웠다. 뚝뚝 떨어지는 굵은 땀방울이 그의 눈을 자극했고, 옆구리와 허벅지를 따라 흘러내렸고, 바닥에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증발했다.

마침내 그는 빗자루를 내려놓았고, 다치 층계를 올라가서 짐을 두고 온 곳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짐에서 물통을 하나 꺼내 반을 비웠다. 말린 고기를 먹었고, 남은 물을 들이켰다. 그는 담배를 한 대 꺼내 피운 다음 작업을 재개했다.

주위가 어두워지자 더 이상 일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냥 이 방에서 잘 작정이었지만, 지금은 너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 온 길로 되돌아 가서 언덕 기슭에 있는 낮은 건물의 옥상에서 별들을 올려다 보며 잠이 들었다.

발전기 수리에는 이틀이 더 걸렸다. 그런 다음 그는 거대한 배전반을 손 보기 시작했다. 2년 전에 한 번 사용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발전기보다는 상태가 좋았다. 발전기들은 예전에 그가 태워 버린 세 대를 제외하면, 5년 동안이나(아니, 6년일까?)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납땜질을 했고, 닦았고, 점검했다. 이제 남은 일은 단 하나 뿐이었다.

 

(중략)

 

그가 보고 있는 것은, 그가 있는 아크로폴리스의 넓은 사면(斜面)과 그 아래로 펼쳐지는 도시였다. 그의 도시이다.

불빛은 별과는 달랐다. 별들을 모두 때려 눕히고도 남을 정도로 강렬했다. 불빛은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던 도시의 화려하고 질서 정연한 별자리였다. 규칙적으로 늘어선 가로등, 광고판의 조명, 치즈 상자를 닮은 아파트의 창문들을 밝히는 등불, 바늘처럼 뾰족한 마천루의 측면을 솔리테어* 카드처럼 여기저기서 밝히고 있는 반짝이는 사각형의 불빛, 도시 상공에 드리워진 구름 층을 뚫고 빛의 안테나를 회전시키고 있는 서치라이트의 불빛.

그는 다른 창가로 달려갔고, 밤의 산들바람이 불어 와 그의 턱수염을 쓰다듬는 것을 느꼈다. 아래 쪽에서는 벨트가 낮게 윙윙거리고 있었다. 그는 도시의 가장 깊숙한 협곡 사이를 덜거덕거리며 지나가는 벨트가 내뱉는 딱딱한 독백을 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집이나, 극장이나, 술집에 모여 있는 광경을 상상했다─서로 대화를 하고, 즐거움을 공유하고, 클라리넷을 불고, 손을 마주 잡고, 밤참을 나눠 먹는 광경을. 잠들어 있던 로봇 카들이 깨어나 벨트의 상층 레벨을 질주하며 서로 스쳐 지나갔다. 도시 전체에서 낮게 울리고 있는 배경음은 그 생산과, 기능과, 이동과, 주민에 대한 봉사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 주었다. 그들이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도시가 그 회전축이고, 우주가 그 가장자리를 돌고 있는 것처럼.

 

*솔리테어(solitaire) ; 혼자서 하는 카드놀이의 일종.

 

이윽고 빛은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며 스러져 갔고, 그는 필사적으로 달려 다른 창가로 갔다.

「안 돼! 그러기엔 너무 일러! 나를 두고 가지 말아 줘!」 그는 흐느꼈다.

창문들이 혼자서 닫히며 불이 꺼졌다. 그는 이미 스러져 버린 불빛의 잔재를 응시하며 오랫동안 통로 위에 서 있었다. 오존 냄새가 그의 코를 자극했다. 빈사 상태의 발전기들 위로 푸른 후광(後光)이 떠오른 것을 그는 깨닫고 있었다.

그는 아래로 내려가서 작업 구획을 가로질렀고, 그가 벽에 기대어 놓은 사닥다리로 갔다. 유리 뚜껑에 얼굴을 맞대듯이 가까이 대고 오랫동안 응시한 끝에야 겨우 시계 바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홉 시 삼십 오 분, 이십 일 초.」 칼슨은 읽었다.

「지금 한 소리를 들었나?」

그는 모든 것들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93초였어! 나는 93초 동안 너희들을 되살려 놓았단 말이다!」

곧 그는 어둠 속에서 얼굴을 감싸 쥐었고, 침묵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는 층계를 내려갔고, 벨트 위를 걸었고, 긴 복도를 지나 '건물' 밖으로 나갔다. 다시 산맥 쪽을 향해 가면서, 그는 속으로─또다시─맹세했다.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