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 사랑의 조건

사랑의 조건

the Requirements of Love

 

1893년 6월 25일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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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오빠와 여동생, 아버지와 딸, 엄마와 아들의 관계에 상관 없이 남녀 한 쌍을 상상해 보라. 상류 사회에 살지만 그들의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삶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억눌린 사람들의 가난을 몸소 겪은 후에, 값비싼 재산을 처분하고 도시를 떠난 두 사람이 1년에 150루블 정도의 은행 수입만으로 살아가거나, 다른 소득은 없이 도자기 제품에 색을 입히거나 좋은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 등으로 생활을 한다고 하자. 어느 시골 마을에서 통나무 집을 빌리거나 사서 손수 정원과 과수원을 가꾸고 벌을 키우고 마을 주민들에게 의료 봉사를 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공문서나 개인적인 편지를 써 주며 살아 간다고 하자.

이보다 더 나은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거짓과 위선을 버리지 못하거나 성실하지 못하면 이러한 삶은 금방 불행에 빠지고 만다. 결국 돈이 있을 때 도시에서 즐기던 삶의 이익과 쾌락, 사치를 버려야만 가능한 삶이다. 모든 사람들은 능력이나 자질은 똑같지 않지만, 삶과 인생에서 도달하는 어떤 것에 대한 권리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즉 신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한 형제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어른보다는 아이들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평등 안에서도 인간의 조건을 확연히 볼 수가 있다. 왜 어떤 아이는 정신적 육체적 발달에 필요한 보살핌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반면에, 그 이상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이임에도 모유와 영양이 부족하여 곱사등이나 정신지체아와 같이 불구가 되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편협하고 몰지각한 어른이 되어서 거친 육체노동만 하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들 부부가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려는 이유도 말 뿐이 아니라 실제로 동료에 대한 인간애를 믿고, 그 이념을 일반적인 이론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실제적인 삶으로 실현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이 아주 성실한 태도로 자신의 약속에 도달하려 한다면, 대단한 시련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몸에 밴 정리정돈, 안락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깨끗함의 습관을 지닌 채 마을에 들어와 통나무 집을 사거나 빌릴 것이고, 바퀴벌레 등을 죽이며 벽에 새로이 도배를 하거나 페인트를 칠하고, 침대와 옷장과 책상 등의 간단한 가구들 몇 점을 들여 놓는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주민들은 거칠어 보이고 텃세를 부린다. 그들은 부자에게 그러는 것처럼 새로운 이주자에게도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소원하게 지내려 한다. 그러나 결국 동정의 마음이 생기고 이주자의 지위도 격상된다. 이주자들은 언제든지 대가 없는 도움을 주고, 배짱 두둑하고 눈치 빠른 주민들은 새로운 이주자들이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는 무엇에서든지 이득을 보려고 한다. 이웃 사람들이 하나 둘 도움을 청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어떤 이는 단순히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물질적인 여분을 나누자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단순한 사람들의 마을에서 살기로 한 두 사람은 남는 것들을 궁핍한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나눠 주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이들도 다른 사람들, 즉 보통 사람들이 가진 만큼 갖게 된다. 그러면 보통 사람이란 누구일까? 이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없다. 이들 부부는 베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눈에 띄게 궁핍한 이웃보다도 더 많이 갖고 있으므로. 그래도 우유 잔만은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웃에 모유도 충분히 먹이지 못하는 갓난애와 아사 직전인 두 살배기를 기르는 데마트료나에게 우유 잔을 주지 않고 어쩌겠는가. 일과 후에 덮고 잘 담요와 베개는 있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나 담요도 없이 낡은 천 위에 누워 낡아빠진 이불을 덮고 밤새 와들거리는 병자가 있는데 어쩌겠는가. 또 음식과 차만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늙고 병든 떠돌이가 문 앞에 오면, 이들 부부는 음식과 차를 내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최소한 자신들의 집만은 청결하게 유지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와 빈대가 들끓는 불쌍한 아이들이 찾아와 밤새 머물다 가는데 어쩌겠는가.

이들 부부는 그만 할 수가 없다. 어느 선까지 희생하고 베풀어야 하는가?

 

이 두 사람을 시골로 부른 세계적인 동포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든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의 차이를 이해할 수 없거나 이 두 사람이 베푸는 일을 그만 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에는 명확한 한계란 없으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감정에도 한계는 없는 것이다. 만일 한계가 있다면, 거기엔 아무런 느낌도 없고 위선만이 있을 뿐이다.

그 두 부부에 대해서 계속 말하자면, 그들은 매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침대도 베개도 그들에게는 없다. 어딘가 얻은 밀짚 위에서 잠을 자야 한다. 저녁을 좀 먹고 잠을 자러 간다. 가을이다. 밖에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다. 누군가 방 문을 두드린다. 그들이 문을 열어 주지 않을 수 있는가? 한 남자가 들어선다. 그는 온 몸이 젖어 있고 미열이 난다. 무엇을 해야 할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밀짚 위에 눕도록 해야 하는가? 그러나 여분의 마른 밀짚이 없다. 병든 남자를 돌려 보내든지, 맞아 들여서 축축한 맨바닥에 재우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들의 밀짚을 주고 그들도 어쨌든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그 남자 곁 어느 곳이든 누워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만이 전북 아니다. 또 다른 사람, 이전에 여러 번 돈을 빌려 주었던 술주정뱅이가 찾아 올 수도 있다. 그가 입술을 바들거리면서 3루블만 더 빌려 달ㄹ고 한다. 친구에게서 훔친 돈 3루블을 돌려 주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4루블 밖에 없는데, 그 돈도 내일 갚아야 할 돈이라고 당신은 말한다. 그러자 그 남자가 말한다.

"당신은 단지 말 뿐이군요. 우리가 도움을 청하지 않을 때에만 형제이고, 도움을 청하니 죽으라고 하는군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만 할까? 열이 오르내리는 이 남자를 눅눅한 맨바닥에 눕게 하고, 당신은 마른 밀짚에서 자야 할까? 그러면 마음이 편치 않아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침대의 당신 곁에 눕히면, 이나 전염병을 옮길 수도 있다. 남자에게 마지막 3루블을 주게 되면, 다음 날 빵을 살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거절하면, 당신은 자신이 삶의 목적이라고 부르짖었던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다는 그의 말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이 선에서 그만 둘 수 있다면 왜 그 이전에 그만 두지 않았는가? 왜 재산을 처분하고 도시를 떠났는가? 왜 당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사람들에게 주며 도와 주었는가? 어느 선까지 도와야 하는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면, 그 때는 지금까지의 모든 일에 한 가지 끔찍한 의미, 위선 말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계속 베풀고 끝없이 희생을 하면, 인생은 시들고 썩고 파괴되어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그러한 삶은 어리석고 쓸모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쯤 가다가 멈춘다는 것은 당신이 틀렸으며, 당신이 이제껏 온갖 노력을 기울여 해 왔던 훌륭한 모든 일에 대한 신념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형제이며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신념은 진리이기 때문에 이런 신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 진리는 내가 발견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리스도가 만든 것도 아니다. 그저 그냥 옳은 것이다. 그 진리는 한 번 누군가의 내면에 자리잡게 되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제거할 수 없는 양심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방법이 남아 있는가?

이 두 사람이 희생의 상황으로부터 겁을 먹고 도망가기보다는, 이런 시련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가지고 온 재산이 너무 적어서 생긴 일이며 그래서 더욱 많은 돈이 있었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 돈을 더욱 훌륭히 썼을 거라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또 다른 재원을 발견하여 모은 아주 엄청난 돈으로 사람들을 돕는다고 생각해 보자.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돈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다 사라지고 같은 상황이 다시 되풀이될 것이다. 아무리 엄청난 재원이라도 그것은 얼마 안 가서 가난이 만들어 낸 무수한 작은 구멍으로 사라져 버리고, 상황은 이전과 변함이 없게 된다.

어쩌면 제3의 방법도 있을 것이다. 만민에 대한 교육을 증진시키면 불평등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해결책은 위선적이다. 일생을 굶주림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을 교육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이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즉 교육과 과학을 통해서 평등을 확립하자고 제안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서 불평등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제4의 해결책도 있다. 불평등의 원인, 즉 폭력을 타파하자는 것이 그것이다. 진실한 사람들이 보편적인 형제애의 원리를 삶 속에 실현하고자 할 때, 이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대안이기도 하다.

이들 부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이 마을의 사람들과 살 수 없고, 부패하고 시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러니까 삶의 도덕적 원칙들을 부정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은 어떤 사람은 부자이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 빈부의 격차가 딜레마의 원인이다. 이와 같은 불평등은 폭력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우리는 폭력에 저항해야만 한다."

폭력과 이로부터 생긴 노예 제도를 끝장냄으로써 삶을 헛되이 희생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폭력을 파괴할 수 있는가? 폭력은 어디에 있는가? 폭력은 군인들 안에, 경찰관 안에, 마을 이장의 마음 속에, 대문을 잠근 그 열쇠 안에 있는데, 폭력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런 폭력과 맞서 싸울 수 있는가? 어떤 수단을 사용해야 하는가? 우리가 폭력으로 사는 사람처럼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여 싸워야만 하는가?

아니다.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에게는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은 단순히 낡은 폭력을 새로운 폭력으로 대신하는 것일 뿐이다. 힘에 의해서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힘으로 빼앗은 돈을 준다는 것은 폭력으로 생긴 상처를 한결 더 거친 폭력으로 다시 치료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보다 거친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고 비폭력과 사랑의 말로써, 무엇보다도 비폭력과 희생의 산 증인으로서 맞서야 한다. 폭력에 맞서 싸우는 사람에게는 끝까지 희생으로 대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란 없기 때문이다.

 

심연으로 뛰어들 수 있는 힘과 결단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양심 안에서 하늘의 도리에 따르는 신실한 사람은 그 도리를 회피하지 않는다. 당신은 이런 희생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사랑의 조건을 채우고 싶다면, 당신의 모든 인생을 바치고 그런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그렇듯 희생이란 힘들고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의 곤궁의 바닥이라는 것이 그렇게 깊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희생과 곤궁을 밤새 두 손으로 우물 턱을 붙잡고 매달린 어린 소년의 절박한 외침으로 듣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의 우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깊이지만, 일단 그 우물 안에 떨어져 보면 소년의 발 한 치 만한 깊이일 뿐이고 그 바닥도 말라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