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 딸기

딸기

the Berries

 

1905년 6월 10일~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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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덥고 고요한 6월의 나날이다. 보리수와 자작나무의 가지 사이로 노란 이파리가 가끔 보일 뿐, 나뭇잎은 윤이 나고 푸르다. 들장미 넝쿨에는 향기로운 꽃 봉오리가 만발하고, 숲 속의 초원에는 토끼풀이 가득하다. 들판의 호밀은 거무스름하고 두터이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돌연한 바람에 출렁이는 호밀밭에서는, 이삭이 반 쯤은 여물어 곧 가을걷이를 바라보고 있다. 뜸부기와 오리들은 들판에서, 메추라기는 골짜기에서 노래를 한다. 나이팅게일이 숲 속에서 가끔 노래를 부르고, 이내 잠잠하다. 공기는 마르고 따갑다. 바람이 살랑 불어 가면 길 위에 쌓인 흙먼지가 이리저리 휘날린다.

농부들은 헛간을 고치고 밭에 거름을 주며 김을 매느라 부산하다. 가축들은 꼴을 베어 낸 메마른 들판에서 다시 신선한 풀이 자라기를 기다린다. 송아지들이 음메 음메 울다가, 꼬리를 세우고 목동들을 피해 촐랑댄다. 소년들은 말을 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신선한 풀을 먹인다. 아낙네들이 숲 속에서 베어 낸 풀더미를 끌어 내면, 농가의 어린 소녀들은 그 빈 터에서 놀이를 한다. 소녀들은 딸기를 따서 여름용 별장인 다차나 오두막에서 여름을 나는 도시 사람들에게 판다.

도회지 사람들의 별장은 아담하고 작은 집이다. 그들은 깔끔하고 화사한 옷을 입고, 뜨거운 햇살을 막으려 양산을 쓰고 한가하게 산책을 하거나, 뜨거운 열기가 괴로운 사람들은 나무 그늘 아래 탁자에 앉아서 음료수나 차를 마신다.

 

니콜라이 세묘니치의 호화로운 다차에는 작은 망루, 툇마루와 난간, 복도가 있다. 모든 것이 아주 깨끗하고 최신식이다. 방울 종에 바무석이 따로 마련된 삼두마차가 집 앞에 세워져 있다. 마부가 말한 대로, '왕복 요금'으로 15루블을 지불한 페테르스부르크 출신의 신사를 싣고 온 것이다.

신사는 유명한 자유주의 활동가이다. 그는 지지자의 편지와 탄원서 기초안을 손에 들고 있다. 그것은 너무 화려하게 쓰여진 수사 때문에 정부를 찬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너무 자유분방한 성격을 띠고 있다. 늘 그렇듯이, 그는 아주 바쁜 사람이라서 비슷한 이념을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 동창생을 단 하루만 방문하고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헌법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온 이 사내는 유럽의 영향을 좀 받아서 사회주의 사상에 비교적 너그럽다. 그는 정부 요직의 공무원으로서 많은 봉급을 받고 있다. 니콜라이 세묘니치는 순수한 러시아인으로 슬라브적인 그리스 정교회의 교인이며, 수천 에이커의 땅을 소유한 지주이다.

 

그들은 정원에서 다섯 상이나 나오는 저녁 만찬을 받았지만, 40루블 씩이나 주고 고용한 고급 요리사들과 주방 하인들의 노고에는 아랑곳 없이 더위 때문에 거의 먹지를 못했다. 그들은 단지 신선한 흰 생선을 곁들인 야채 수프와, 설탕 꽃으로 장식하고 환상적인 모양으로 만들어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아이스크림과 비스킷만을 먹었다. 니콜라이 세묘니치와 동창생의 만찬에는 직업적으로는 의사이며 사회민주적인 시각에서는 학생이며 니콜라이 세묘니치의 입장에서는 검증된 자유주의적 혁명가인 아이들의 가정교사도 동석을 했다. 또한 니콜라이의 아내 마리와 그들의 세 아이들도 자리했다. 막내는 단지 후식을 먹기 위해 앉아 있었다.

저녁 식사 중의 대화는 무거웠다. 다소 신경질적인 마리가 막내 아들 니키의 설사에 유별나게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니키는 러시아의 여느 귀족들처럼, 아버지 니콜라이를 따라 붙인 이름이었다. 니콜라이 세묘니치와 동창생 사이에 정치적인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마리 역시 흥분이 되었다. 가정교사는 자기도 당당히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토론에 끼어들어 손님의 말에 사사건건 참견을 했고, 보다 못한 세묘니치가 이 투사적인 학생을 제지해야만 했다.

그들은 7시에 만찬을 하고, 식사 후엔 친구들끼리 베란다에 앉아서 생수에 쌉쌀한 백포도주를 즐기며 대화를 이어 갔다. 그들의 의견 차이는 직접 선거냐 간접 선거냐, 어떻게 선거를 조직해야 하는가 등의 쟁점으로 표출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방충망으로 모기와 파리를 차단한 거실로 자리를 옮겨 더 치열한 논쟁에 들어갔다. 도중에 차를 들면서 마리와 몇몇 일반적인 문제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지만, 마리는 니키의 설사에 신경이 쓰여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화제가 그림으로 옮겨지자, 마리는 퇴폐주의적인 그림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으며 이는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녀는 퇴폐주의적인 그림에 대해서는 실제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고, 그것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것 뿐이었다. 동창생은 미술이라면, 그것이 퇴폐주의건 아니건 간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 채지 못하도록 조심해서 말을 받았다. 세묘니치는 아내가 지금 무언가에 언짢아 보여서 그것이 무슨 일인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똑같은 말을 수백 번도 더 되풀이해서 말하는 그녀 때문에 무척 짜증이 났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들은 후원의 사치스러운 석등에 불을 밝혔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에 니키는 설사약을 먹었다.

세묘니치와 친구, 그리고 의사는 베란다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하인이 촛불과 생수를 가지고 왔다. 이미 자정이 지난 깊은 밤이었지만, 그들은 러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이 시점에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한 토론을 진지하고 활기차게 벌였다. 말들은 문 밖에서 배를 곯은 채 서서 종을 짤랑거렸고, 역시 아무 것도 먹지 못한 마부는 하품을 하거나 코를 골았다. 마부는 20년 동안 똑같은 주인을 모시며 번 돈으로 보드카를 사 마시는 데 쓰는 너댓 루블을 빼고는 몽땅 고향의 동생에게 보내는 사람이었다.

얼마 후, 별장 근처의 수탉들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수탉 한 마리가 소리 높여 우는 바람에 마부는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밖에서 기다리는 자신의 존재를 깡그리 잊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술을 바시면서 매우 큰 목소리로 떠드는 것이 보였다. 마부는 현관에서 의자에 앉아 잠든, 집사장처럼 보이는 하인을 깨웠다. 예전에는 노예 신분이었던 그는 지금은 집사로서 월급 15루블과 가끔씩 100루블의 특별 보너스를 받아서 2남 5녀의 대가족을 먹여 살리며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화들짝 깨어 일어난 집사는 주인에게 달려가 마부가 밖에서 기다린다고 전했다.

 

일찌감치 의사는 토론에 끼어 들었고, 이제는 친구가 말하고 있었다.

"난 러시아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네. 우선 자유가 있어야 하네. 정치적인 자유 말일세. 자유는 인간의 다른 기본권 만큼이나 중요하지."

그는 논점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 것 같아서 자신도 혼란스러워했다. 게다가 토론이 고조되면서, 그는 정작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 말이 옳다니까."

세묘니치가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뜬금없이 말하는 경향이 강한 사람이었다.

"사실, 다른 식으로 할 수가 있다니까. 대중 투표가 아니고 합의에 의해서 말일세. 우리 러시아의 작은 농민 단체들이 하는 것처럼…."

"농민 단체들요?"

의사가 말했다.

"확실히, 슬라브 민족들은 삶에 대하여 독특한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란드의 정치적 거부권은, 이건 좀 개선을 시켜야겠지만…."

"좀 끼어들지 좀 말게. 러시아 사람들은 어떤 자질이 있어. 그 자질들이 뭐냐 하면…."

 

그 순간 집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마부가 걱정하는뎁쇼."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온 손님이 하인에게 아주 정중하면서도 은근히 자랑하듯이 말했다.

"곧 떠날 거라고 가서 전하게. 그리고 특별히 요금을 더 쳐 주겠다고 말일세."

"네, 선생님."

집사가 대답을 하고 나가자, 세묘니치는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손님과 의사는 니콜라이의 생각은 새로울 것도 없다는 듯이 자기들끼리만 다시 토론을 벌였다. 역사에 아주 해박한 손님은 역사적인 예를 특히 자주 들었다. 의사는 손님의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었다. 학문적 깊이와 해박함에 감탄하며, 이런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토론은 끝나지 않고, 새벽이 길 건너 숲 위에서부터 밝아 왔다. 나이팅게일이 잠에서 깨어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줄담배를 끊임 없이 피워 대면서 토론을 계속했다.

그 때, 하녀가 방문 앞에 들어섰다. 그녀는 먹고 살기 위해서 하녀 일을 하게 된 고아였다. 처음에 그녀는 장사치들의 잡부로 일을 하였다. 그러던 중 그녀는 지배인에게 겁탈을 당하였고, 낳은 아이마저도 죽고 말았다. 그 후에 어느 공무원 집으로 옮겼으나, 추근거리는 고등학생 때문에 오래 있지를 못하였다. 그 다음에 찾아 온 곳이 세묘니치 집안이었다. 그녀는 견습 하녀로 있었지만,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녀를 괴롭히는 난봉꾼 주인도 없고, 월급도 제 때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새삼 니콜라이 세묘니치는 니키를 떠올렸다.

"무슨 일인가?"

"막내 도련님이 편찮으세요."

하녀가 대답했다.

"이런, 가 봐야겠군. 벌써 날이 환히 밝았어. 이렇게 밤을 새 버리고 말았군."

친구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했다는 것이 기쁜지, 웃음을 띄었다. 그리고 그는 작별 인사를 했다.

 

늙은 집사 이반이 힘겨운 발걸음으로 아무렇게나 팽개쳐 둔 손님의 모자와 우산을 찾아 왔다. 집사는 팁을 바라고 있었지만, 손님은 토론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팁을 아주 잊어버리고 말았다. 단지 집으로 가는 도중에 집사에게 팁을 주지 않은 것을 기억하고서 '이를 어쩐다?' 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마부가 마차에 올라 탔다. 그리고 편안한 자세로 고삐를 잡고, 말을 재촉했다. 방울이 울리고, 부드럽게 나아가는 마차의 탄력에 몸을 맡긴 이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온 손님은 친구의 편협한 사고에 코웃음을 쳤다. 니콜라이 세묘니치도 그에 대해서 마찬가지 생각을 했다.

'페테르스부르크 출신들은 항상 속이 좁다니까. 별 수 있겠어?'

세묘니치는 아내에게 즉시 가지 않았다. 아내를 봐야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 것이었다. 문제는 딸기였다. 어제 마을 아이들이 신선한 딸기를 자신의 집으로 가져왔었고, 세묘니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두 접시를 샀다. 그런데 딸기는 완전히 익지 않았다. 그 딸기를 아이들이 달려와서 먹기 시작했다. 아내 마리가 밖으로 나와, 막내 니키가 덜 익은 딸기를 먹는 것을 보더니 아주 걱정을 했다. 니키가 며칠 전부터 배탈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했고, 남편도 그녀를 나무랐다. 두 사람은 큰 소리를 지르며 말 싸움을 했다. 급기야 밤부터 니키가 배앓이를 하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세묘니치는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으나, 이제 이 의사를 부르는 것을 보면 상태가 악화된 것이었다.

 

세묘니치가 와 보니, 아내는 그가 아주 좋아하는 화사한 비단 가운 차림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옷 따위에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의사와 함께 아이의 요강에 촛불을 비춰 보고 있었다. 의사는 젓가락으로 요강 안의 지저분하고 냄새 나는 것들을 안경 너머로 매우 조심스럽게 들춰 보고 있다가, 의미 심장한 말투로 짧게 한 마디 했다.

"그렇지."

"모두 이 몹쓸 딸기 때문이라구요."

아이 엄마가 말했다.

"왜 하필 딸기요?"

세묘니치가 조용히 물었다.

"왜 하필 딸기요? 당신이 니키에게 딸기를 먹였잖아요. 아이가 배탈이 나서 한 숨도 못 잤다구요. 잘못 되면 어떡해요?"

아내가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요. 독성이 조금 몸에 퍼졌을 뿐이에요. 걱정 마세요. 아이에게 약을 좀 먹이죠."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막 잠이 들었는데요?"

마리가 물었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제가 들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의사가 떠나고, 니콜라이 세묘니치와 아내만 남았다. 그는 좀처럼 아내를 진정시킬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잠에 떨어졌을 때에는, 이미 날이 완전히 밝아 있었다.

 

 

2.

 

별장 너머 이웃 마을에서는 농부의 아이들이 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말을 타고, 어떤 아이는 걸어서 말들을 풀밭으로 몰고 가는 중이었다. 어린 나귀와 망아지들은 뒤에서 깡총거리고, 검둥이 개는 앞에서 뛰놀며 뒤돌아 보곤 하였다. 맨발에다가 작은 모자와 작업복을 걸친 열두 살 타라스카 레주노프는 망아지 한 마리가 딸린 말에 올라타고 있었다. 소년은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마을의 비탈길을 전속력으로 치달아 올라갔다. 힘 센 말은 하얀 다리를 힘차게 굴려 내달렸다. 그리고 집에 다다르자, 소년이 말 고삐를 기둥에 메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일어날 시간이다."

소년이 낡은 융단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동생들을 다그쳐 깨웠다. 애들 곁에서 자다 일어난 어머니는 이미 소 젖을 짜러 나가고 없었다.

타라스카의 여동생 올가가 벌떡 일어나서 두 손으로 긴 곱슬머리를 단정하게 매만지기 시작했다. 표트르는 밤새 덮고 자던 겨울 외투를 쓰고 누워 코트 밖으로 삐쳐 나온 조그만 발들을 문질러 댔다.

아이들은 아침에 딸기를 따러 가기로 간밤에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타라스카가 야간 작업에서 돌아오면 아이들을 깨워 주기로 약속을 했던 터였다. 타라스카는 덤불 숲에 앉아 밤을 지새기는 했지만, 한참 눈을 붙였기 때문에 지금은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을 보충하기보다는 여동생들과 딸기를 따러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어머니가 우유를 따라 주었다. 타라스카가 빵을 잘라서 식탁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소녀들이 검푸른 숲을 배경으로 빨갛고 흰 띠가 되어 사라져 들어갈 때에, 타라스카는 바지와 내복 차림으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작은 발자국들이 선명하게 박힌 흙먼지 바닥 위에 맨발의 발자국을 찍으며 달려 나갔다. 전날 밤에 바구니를 준비해 놓았던 소녀들은 아침도 먹지 않고, 더구나 빵 한 조각 챙기지도 않고 다만 성호만 두 번 긋고 달려 나갔던 것이다. 타라스카는 숲 기슭의 산모롱이를 돌 즈음에 소녀들을 따라 잡았다.

잔디며 수풀이며 낮은 나뭇가지며, 모든 것이 이슬에 젖어 있었다. 이슬에 맨 다리를 적신 소녀들은 처음에 한기가 들었지만, 울퉁불퉁하고 마른 땅과 잔디밭을 걸으며 금세 온기를 되찾았다. 아이들은 최근에 나무를 베어 낸 자리에 무성하게 자란 딸기 넝쿨 숲 속으로 들어갔다. 어린 가지가 돋아난 수풀 속 설익은 딸기들 사이로 빨갛게 익은 딸기들이 보였다. 어린 소녀들은 이곳 저곳으로 흩어져 햇볕에 그을린, 작은 손으로 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기 시작했다. 농익은 딸기를 발견하면 먹고, 보기 좋게 익은 것들은 바구니에 담았다.

"올가, 이리 와! 여기에 굉장히 많다!"

"아냐, 여기도 많아."

"여기가 더 많아."

소녀들은 이따금 고함을 지르며 주변의 수풀 속으로 흩어져 갔다.

 

타라스카는 깊은 골짜기의 숲 속으로 들어갔다. 소년보다 더 크게 자라던 어린 단풍나무와 밤나무 숲이 1년 전 쯤에 베어졌던 골짜기였다. 다른 곳보다도 풀이 무성한 풀숲 사이에서, 그는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은 큼직하고 아주 물오른 딸기밭을 발견했다.

"그루샤, 늑대가 나오면 어떡하지?"

올가가 큰 소리로 물었다.

"이런 곳에 늑대가 있다고? 괜히 겁 주는 거지? 그래도 하나도 안 무섭다."

그루샤가 말했다. 그녀는 늑대라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한동안 주운 딸기를 하나 둘 따 먹기만 했다.

"오빠! 어디 있어?"

"여기야, 이리 와. 여기 딸기 엄청 많다."

타라스카가 맞은 편 골짜기에서 소리쳤다.

 

아이들은 수풀을 움켜잡고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다시 맞은 편 기슭으로 올라갔다. 아이들은 작은 산밭에 달려들어 주렁 주렁 달린 딸기를 손을 놀리며 쉴 새 없이 먹고 담았다.

아이들이 넘실거리는 햇살에 미역을 감는 동안, 느닷없이 풀숲 사이로 천둥 같은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루샤가 숨이 끊어질 것처럼 놀라 자빠지며 딸기를 풀 위로 쏟아 버렸다.

"엄마아앙…."

그루샤가 울음을 터뜨렸다.

"에이, 토끼야, 산토끼라구. 오빠, 여기 산토끼가 있어."

올가가 풀숲 사이로 귀가 길고 등이 잿빛인 토끼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산토끼가 사라지자, 올가가 그루샤에게 물었다.

"어쩜, 그렇게 놀라니?"

"늑대가 나타난 줄 알았어."

그루샤는 두려움이 가시자, 놀라면서 흘린 눈물을 닦으며 웃기 시작했다.

"어, 웃었어?"

올가가 놀렸다.

"얼마나 무서웠다구."

그루샤의 가느다란 웃음 소리가 앙증맞은 종소리처럼 퍼져 나갔다. 아이들은 그루샤의 딸기를 주워 주고 제각기 흩어졌다.

 

높다랗게 솟아 오른 태양은 모든 것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나뭇잎은 아이들을 함초롬히 적셨던 이슬을 머금고 반짝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제 숲 속의 다른 편으로 또 다른 딸기를 찾아 깊숙이 들어갔다. 이 곳 저 곳에 흩어져 있던 젊은 농부의 아낙들과 여자 아이들의 목소리가 너른 숲 속에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딸기가 작은 그릇과 바구니에 절반 가량 채워지기 시작한 아침 식사 무렵에, 올가와 그루샤가 아쿨리나와 마주쳤다. 뒤 쪽에서는 그녀의 아이가 내복 바람에 모자도 쓰지 않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오고 있었다.

"얘가 날 따라오겠다고 보채는 거야. 애 봐 줄 사람도 집에 없잖아."

아쿨리나가 품 속에 아기를 안으며 말했다.

"우린요, 아주 큰 산토끼 때문에 얼마나 놀랐나 몰라요! 여기서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다구요. 정말 끔찍했어요!"

올가가 말했다.

"자, 걸어가자."

아쿨리나가 아기를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에, 올가와 그루샤는 아이 엄마와 헤어져 다시 딸기를 따기 시작했다.

"잠깐 여기에 좀 앉자."

올가가 개암나무 그늘에 앉으며 말했다.

"아! 피곤해. 빵을 갖고 오는 건데…."

"나도 배고파."

그루샤가 말했다.

 

"저 소리 들려? 아쿨리나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너도 들리니? 아쿨리나 아줌마!"

"올가."

아쿨리나가 대답했다.

"왜 그래요?"

"우리 아기 거기 있니?"

아쿨리나가 수풀 뒤에서 소리쳤다.

"아니요."

수풀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아쿨리나가 치마 한 쪽을 허리춤에 치켜 올리고 바구니는 다른 쪽에 끼고서 나타났다.

"우리 아이 못 봤어?"

"아뇨."

"내가 못 살아. 미샤, 미샤!"

아쿨리나가 아기를 불렀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큰 일 났네. 이 넓은 숲에서 길을 잃으면 어쩌지."

올가와 그루샤 그리고 아쿨리나가 각기 다른 쪽으로 아기를 찾아 떠났다. 큰 소리로 미샤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어휴, 힘들어."

그루샤가 뒤에 처져서 말했다. 그러나 올가는 멈추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댔다. 그녀는 이리저리 사방을 살피며 아기를 찾아 뛰어 다녔다.

먼 숲 속에서 아쿨리나의 애 타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올가는 아기는 그만 찾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 때, 초록색 덤불 속에서 새 한 마리가 미친 듯 울어대며 파다닥 튀어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어린 새끼 새가 있는 모양이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화가 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했지만, 사방으로 하얀 꽃들이 둘러싼 덤불 속을 들여다 보았다. 숲에 자라는 풀이라고는 할 수 없는 파란 물체가 눈에 띄었다. 올가는 허리를 굽혀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찾고 있던 미샤였다. 아직도 아기를 보고 놀란 새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미샤는 두 팔로 이마를 받치고 포동포동 살이 오른 다리를 쭉 편 채 엎드려 자고 있었다. 올가가 미샤의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아기가 깨어나자, 아이에게 딸기를 몇 개 건네 주었다.

나중에, 올가는 엄마 아빠와 이웃 사람들에게 그녀가 어떻게 어린 미샤를 찾았는지를 두고 두고 얘기하곤 하였다.

 

태양이 나무 위로 떠올라 대지와 그 위의 모든 것들을 달구기 시작했다.

"올가, 목욕하러 가자!"

아이들이 그녀를 부추겼다.

서로 손을 잡은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강가로 내려갔다. 여자 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첨벙 첨벙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는 사이에, 아무도 모르게 서쪽에서 큰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태양이 잠시 구름에 가렸다가 다시 나타나는 듯 싶더니 또 다시 사라졌다. 자작나무 이파리와 꽃 향기가 훅 밀려들고, 멀리서 천둥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피할 겨를도 없이 느닷없는 빗줄기에 온 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 칙칙한 윗도리와 치마가 살갗에 감겨 들었다. 빗물이 흘러내리는 옷을 움켜잡고 아이들이 집으로 내달렸다. 그리고는 밭에서 쟁기질을 하는 아버지에게 점심을 날라 주었다.

 

아이들은 옷가지가 마를 즈음에 집에 돌아가 밥을 먹은 다음에, 빛깔 좋은 딸기를 골라서 예쁜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니콜라이 세묘니치의 별장으로 가지고 나갔다. 보통 가격이 후했으나 이번에는 운이 나빴다.

마리는 더위에 지쳐서 파라솔의 넓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딸기를 파는 아이들이 보이자 부채를 내저으며 말했다.

"안 사니까, 저리 가거라!"

마리의 맏아들 발야는 지루한 수업을 마치고 이웃 아이들과 크로켓을 한 후에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방금 일어난 맏아들 발야가 딸기 소리에 올가에게 달려 나왔다.

"얼마니?"

"30코페이카요."

"너무 비싼데!"

그는 어른들이 으레 '비싼데' 라고 말하는 것을 흉내 냈다.

"저 집 모퉁이 뒤에서 기다려."

그리고, 유모에게 달려갔다.

그 동안에, 올가와 그루샤는 집과 정원, 숲이 환상적인 작은 유리 공 속에 들기라도 한 것처럼 꿈을 꾸듯이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유리로 된 세계는 더 이상 소녀들에게 놀라운 세상은 아니었다. 이 신비의 세계, 부유한 지주의 세계에선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것들이 늘 기대되었기 때문이었다.

발야가 유모에게 가서 30코페이카를 달라고 했다. 그녀는 20코페이카면 충분할 거라며 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었다. 발야는 아버지 눈을 피해 길을 에둘러서 올가에게 달려갔다. 아버지는 밤을 지샌 뒤에 방금 일어나서 담배를 피우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소년은 20코페이카를 소녀들에게 주고 딸기를 접시에 담아서 먹기 시작했다.

올가는 집에 돌아가서 손수건에 둘둘 말아 챙겨 두었던 20코페이카를 어머니에게 내 주었다. 어머니는 동전을 감춰 두고 빨래감을 챙겨서 시냇가로 걸어갔다.

타라스카는 아버지와 밭에서 쟁기질을 하다가 커다란 참나무 아래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아버지는 빈 터에서 풀을 뜯고 있는 말을 지켜 보았다. 한 눈 파는 사이에 말들이 다른 풀밭이나 보리밭을 짓밟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니콜라이 세묘니치의 가족은, 아무도 먹으려고 하지 않는데도 매일 준비되는 세 코스의 아침 식사처럼, 일상의 나날로 돌아갔다. 니콜라이 세묘니치는 조간 신문을 읽으면서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와 판단이 옳다는 확신에 흡족해 했으며, 마리는 니키가 배앓이에서 회복이 된 것에 평정을 찾았으며, 의사는 자신의 효과적인 처방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발야는 딸기 한 접시를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