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 돌아온 아버지

돌아온 아버지

Kornei Vasiliev

 

190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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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지막으로 코르네이 바실리예프가 고향을 방문했을 때, 그는 쉰 네 살이었다. 흰 머리 하나 없는 숱 많고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검은 수염이 덥수룩한 턱에는 몇 가닥의 흰 수염만이 조금 보일 뿐, 붉은 낯빛에 윤기가 흘렀다. 탄탄하고 넓적한 목덜미에는 안락한 도시 생활에서 얻은 건강과 힘이 돋보였다. 그는 20여년 전 육군에서 퇴역한 뒤, 돈을 벌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돈으로 소매점을 경영하다가 그만 두고 가축 도매 상인이 되었다. 그는 체르카시 지방에서 물건이 될 만한 가축을 사서 모스크바로 돌아와 값을 더 쳐서 팔곤 했다.

가이라는 마을에서 그는 노모와 아내,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리고 부모가 없는 15세의 벙어리 조카와 함께 양철 지붕을 얹은 벽돌 집에서 살았다. 그는 재혼을 했다. 병약한 첫 아내는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하고 시름 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홀아비 신세로 오랫동안 혼자 지냈는데, 동네 사람의 중매로 이웃 마을 가난한 집안의 과부의 딸인 건강하고 아름다운 아가씨와 재혼하여 두 아이를 두게 되었다.

코르네이가 체르카시에서 마지막으로 구입해 온 물건을 모스크바에서 팔아 차익을 남겼을 때는, 그의 수중에 3천 루블 정도가 모였다. 그는 그 돈으로 파산에 직면한 숲 주인의 땅을 사면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친구의 정보를 믿고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숲을 사 들였다. 그 때부터 코르네이는 부동산과 목재 장사를 시작하였다. 군 복무 시절에 잠시 영업 사원으로 일할 때 얻은 목재 판매 경력을 밑천으로 뛰어 든 것이었다.

 

가이 마을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기차 정거장에서 코르네이는 가난한 동부인 쿠즈마를 만났다. 쿠즈마는 기차가 역에 도착할 때마다 역과 마을을 왕래하며 자신의 마차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주로 했다. 마차는 작고 야윈 털복숭이 말 두 마리가 끌었다. 가난한 그는 부자들을 보면 증오심을 느꼈다. 그 중에서도 그가 '코르네이 같은 놈'이라고 부르는 부자 코르네이를 유난히 더 싫어했다.

코르네이는 긴 양 가죽 겨울 코트 위에 모피 반코트를 차림으로 손에 작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불룩한 배를 뒤뚱거리며 플랫폼에서 걸어나와 숨을 헐떡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침 시간이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끼고 땅에는 안개가 차분하게 깔린 날씨였다. 쿠즈마의 마차를 발견한 코르네이가 쿠즈마를 불렀다.

"이보오, 마차에 태울 승객이 없다면 우리 집까지 가지?"

"1루블만 내게."

"70코페이카면 충분하지 않나?"

"이런, 배가 그렇게 나와서 나 같이 배 곯는 사람에게서 30코페이카나 떼어 먹으려고?"

"자, 가자고! 갈 거야, 말 거야?"

코르네이가 말했다. 코르네이는 썰매 뒤에 가방과 짐들을 나란히 놓고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앞좌석의 쿠즈마가 대꾸를 했다.

"좋아, 내가 손해를 보지."

쿠즈마는 기차 역 광장을 빠져나와 말끔한 도로로 눈썰매를 몰았다.

"어떤가, 마을엔 별 일 없지? 자네 집 말일세."

"그다지 좋은 일이 별로 없군."

"우리 어머니는 좀 어떻던가?"

"자네 어머니야 잘 계시지. 그 분은 요즘 예배당엘 나가네. 그 곳에서 에배를 드리고 나오는 자네 어머니를 만났네. 그리고 자네 젊은 아내도 잘 있지. 하기야 그녀에게 무슨 일이야 있겠나? 다만, 새 일꾼을 고용했더군."

순간 쿠즈마의 얼굴에 야릇한 웃음이 감돌았다. 아니, 코르네이에게만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어떤 일꾼? 페테르? 아니면 누구지?"

"페테르는 병이 났네. 카멘카에 사는 금발의 예브스티그네이라는 청년을 데려왔더군. 아마 자네의 처가지, 그 곳이?"

"정말인가?"

코르네이가 물었다. 코르네이가 아내와 결혼을 결심했을 때, 마을의 노파들은 예브스티그네이에 대하여 수군거렸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코르네이 바실리예프? 요즘 여자들은 너무 제멋대로야."

코르네이가 말했다.

"그런 것 같군. 그나저나 말이 너무 늙었군."

그는 딴 소리를 하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내가 늙었으니, 말도 주인을 따르는 게지."

쿠즈마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거세된 털복숭이 늙은 말을 향해 냅다 채찍질을 해 댔다.

 

마을과 기차 역의 중간 쯤에 주막이 하나 있었다. 코르네이는 썰매를 그 곳에 멈추게 한 뒤 내렸다. 쿠즈마는 썰매에서 내린 코르네이를 외면한 채, 빈 터로 가서 말 고삐를 묶으며 코르네이가 안으로 불러 주기를 기다렸다.

"안으로 들어가자고, 쿠즈마. 보드카 한 잔 하지."

코르네이가 현관으로 올라서며 말했다.

"그거 좋지."

쿠즈마는 느긋한 척 대답했다.

코르네이는 보드카를 한 병 시켜서 쿠즈마에게 술을 따랐다. 아침부터 먹은 것이 없는 쿠즈마는 금세 취기를 느끼고, 코르네이의 귀에 대고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마을에 퍼진 소문을 말하기 시작했다. 코르네이의 아내 마르파가 옛 애인을 집안 일꾼으로 고용해서 함께 살고 있다고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린다는 것이었다.

"나야 상관이 없지. 내겐 그게 그거야. 다만 사람들이 자넬 비웃고 있으니 유감이지만. 그 놈의 자식은 하늘이 무섭지도 않나 봐. 내가 자네 처에게 시간이 좀 지나면 남편이 돌아올 거라고 말했었네. 이봐, 친구 코르네이 바실리예비치! 좀 일찍 오지 그랬어?"

쿠즈마가 술 취해 지껄이는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코르네이의 짙은 눈썹이 석탄 같이 까만 눈동자 위로 점점 그러모아지고 있었다.

"자네가 한 잔 더 사겠나, 아니면 이제 그만 갈까?"

코르네이는 술병이 비자 말했다. 그리고 주인에게 술 값을 치르고 쿠즈마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가 집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이, 마침 집에 가는 동안 내내 머리에서 아른거리던 금발의 예브스티그네이였다. 코르네이가 그에게 아는 체를 했다. 머리카락에 윤기가 흐르고 얼굴이 길쭉한 예브스티그네이가 코르네이를 보자 허둥거리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코르네이가 오히려 적잖이 당혹하여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늙은 영감이 내게 거짓말을 했을 거야.'

그는 쿠즈마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생각했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지. 한 번 알아나 봐야지.'

쿠즈마가 자신의 말 옆에 서서 예브스티그네이를 눈짓하며 가리켰다.

"자네가 우리 집에서 일한다는 사람이군."

코르네이가 말했다.

"네. 그런데 할 일이 많아서…."

예브스티그네이가 대답했다.

"방은 훈훈한가?"

"네. 할머니가 안에 계셔서요."

예브스티그네이가 대답했다.

 

코르네이가 현관으로 올라섰다. 마르파가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남편을 보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상냥하게 맞았다. 어딘가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못 오시는 줄 알았어요."

마르파가 남편을 따라 거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집에 별 일 없었소?"

"집안 일이야 언제나 똑같지요."

그녀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얼른 두 살 난 딸을 안았다. 딸 아이가 엄마의 치맛자락을 끌어당기며 우유를 달라고 졸랐다. 마르파는 현관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그 때 코르네이처럼 눈이 까만 그의 어머니가 거실로 들어왔다. 겨울용 장화를 신은 그녀의 거동이 어색해 보였다.

"이렇게 돌아오다니, 참 반갑구나."

그녀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아들을 맞았다.

코르네이는 자신이 집으로 오게 된 이유와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말해 주다가, 갑자기 쿠즈마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현관문을 열자, 마르파와 예브스티그네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아주 가까이 서서 무슨 말인가를 주고 받았다. 코르네이가 문을 열고 나타나가 예브스티그네이는 밖으로 재빨리 나가고, 마르파는 차를 끓이는 사모바르 주전자를 고리에 막 걸고 있었다. 코르네이는 주전자 위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아내 곁을 아무 말 없이 지나쳐 갔다. 그는 여행용 가방을 집어 들고 쿠즈마에게 들어와서 차를 마시자고 말했다. 그리고 거실에 돌아와서는 모스크바에서 산 선물을 꺼내 가족들에게 나눠 주었다. 어머니에게는 모직 목도리를, 아들 표트르에게는 어린이 그림책을, 벙어리 조카에게는 조끼를, 그리고 아내에겐 드레스를 만들 수 있는 값비싼 무명 옷감을 선물했다.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는 동안, 코르네이의 얼굴에는 침울한 기색이 돌았다. 그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벙어리 조카를 지켜보며 가끔 웃음을 지었다. 조카는 선물 받은 조끼를 탁자 위에서 개켰다가 풀었다가 손으로 쓰다듬으며 마냥 행복해 하면서 코르네이를 보고 활짝 웃곤 하였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코르네이는 아내와 어린 딸의 침실로 갔다. 아내 마르파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아직 주방에 남아 있었다. 코르네이는 탁자 옆 안락 의자에 홀로 앉아 쉬면서 아내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점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분노를 삭히려는 듯, 벽에서 주판을 꺼내 장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힐긋힐긋 침실 문을 바라보면서 주방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현관문이 여러 번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아닌 누군가가 현관으로 들어오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아내의 발자국 소리가 침실 가까이 들려 왔다. 문이 열리더니, 장밋빛 볼에 붉은 수건을 머리에 두른, 아름다운 아내가 어린 딸을 품에 안고 들어왔다.

"오랫동안 여행하느라고 피곤하지 않아요?"

그녀가 남편의 침울한 심기를 모르는 듯 물었다. 코르네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갖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이런 행동을 하리라고 짐작했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지요?"

그녀가 말한 후, 어린 딸을 내려 놓고 침실 구석의 칸막이 뒤로 갔다. 그리고 딸의 잠자리를 준비하고 아이를 눕혔다.

'사람들이 나를 놀린다고?'

쿠즈마의 말이 떠올랐다.

'아직은 참아야지. 기다려 보자.'

그는 호흡을 조절하려고 애를 썼다. 느긋하게 일어나며 몽당연필을 가슴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벽걸이에 주판을 걸어 놓고서 외투를 벗었다. 칸막이 뒤로 가서 아내의 얼굴을 살폈다. 아내가 성상 앞에서 기도하는 동안 잠시 기다렸다. 그녀는 성호를 그은 후에도 한참 고개 숙여 기도문을 읊조렸다. 코르네이에겐 그녀가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기도문들을 여러 번 씩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다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가 일어나서 기도문을 몇 마디 더 읊조리더니 그에게 몸을 돌렸다.

"아가쉬카는 벌써 꿈나라에 갔나 봐요."

그녀가 딸 아이를 가리키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앉자, 그녀의 무게 때문에 침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다가서며 물었다.

"예브스티그네이는 이 곳에 오래 살았소?"

그가 다가서며 물었다. 그녀는 두껍게 땋은 머리채를 어깨에서 가슴팍으로 내리며 빠른 손놀림으로 머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예브스티그네이요? 아마 두서 너 주 쯤 될 걸요."

"그 사람과 지냈소?"

그가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그녀가 머리채를 떨어뜨렸다. 다시 두껍고 뻣뻣한 머리채를 잡고 따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내가 예브스티그네이와 지냈다니?"

그녀는 예브스티그네이를 힘주어 말했다.

"도대체 당신, 그 다음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대답이나 해! 그래 안 그래?"

그가 바지 주머니 속에 넣은 손을 꽉 움켜 쥐면서 말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은 그만 하세요. 신발 벗겨 드려요?"

"묻고 있잖아?"

그가 재차 물었다.

"정말, 당신 뭘 알고 싶은 거예요? 내가 예브스티그네이를 유혹이라도 했다는 거예요? 누가 당신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던가요?"

"당신, 방금 전에도 현관에서 그 놈과 말을 했잖아?"

"뭐라고 했는데요? 술통 고리를 고치라고 했을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이제 돌아와서 고작 한다는 말이 그거예요?"

"묻고 있잖아! 죽기 싫으면 바른 대로 말해."

그가 아내의 머리채를 휘어 잡았다.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의 손에 잡힌 머리채를 빼 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말했다.

"돌아온 첫 날, 당신이 하는 짓이 고작 여자 머리 끄덩이 잡는 일인가요? 도대체 당신이 잘 하는 일이 뭐가 있어요? 당신처럼 사는 인간이 무엇이든 못 할까!"

"무슨 짓이란 게 뭐냐니까?"

그가 그녀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서며 다그쳤다.

"왜 머리는 잡아 당기고 그래요? 머리가 엉망이 됐잖아요. 왜 이유도 없이 괴롭히는 거예요? 아무…."

그녀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코르네이가 큼직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사정없이 침대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머리와 옆구리, 젖가슴을 사정 없이 때렸다. 때리면 때릴수록 그의 분노는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그녀는 악을 쓰고 울면서 매를 피해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는 그녀를 한 순간도 놓아 주려 하지 않았다. 딸 아이가 갑작스런 소란에 깨어나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 들었다.

"엄마!"

코르네이가 어린 딸의 손을 움켜쥐고 엄마에게서 떼어 낸 다음, 애를 고양이 던지듯이 구석으로 내동댕이쳤다. 아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다가 아주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아! 아이까지 잡으려고?"

마르파가 고함을 지르며 어린 딸에게 다가갔다. 그 때, 코르네이가 휘두른 주먹을 가슴에 맞고, 꽥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숨을 헐떡거렸다. 의식을 차린 딸이 이 광경을 보며 숨이 넘어갈 듯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노모가 허연 머리를 푼 채, 고개를 까닥거리면서 침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아들 코르네이도 며느리 마르파도 쳐다보지 않고, 겁에 질려 눈물로 범벅이 된 손녀를 곧장 안아 들었다.

코르네이도 숨을 헉헉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마르파가 겨우 고개를 들고, 흐르는 피를 속옷으로 닦아 내었다.

"이 저주스러운 인간! 악마! 그래요, 예브스티그네이와 잤어요. 어서 때려 봐요. 아가쉬카도 당신 딸이 아니라 그 사람 딸이에요."

그녀가 날아오는 주먹을 막으려는 듯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코르네이는 그녀의 말 뜻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더니 다시 한 번 그녀를 걷어 차고 주위를 멍하니 둘러보았다.

"네 딸을 봐라! 자식 팔을 부러뜨리는 애비가 세상에 어딨단 말이냐, 이 몹쓸 놈!"

노모가 아이의 탈골된 팔을 가리키며 악을 썼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코르네이는 울음 소리가 거슬린다는 듯이 뒤돌아 섰다.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현관을 지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바깥은 여전히 안개가 끼고 음산했다. 가느다란 눈발이 뺨과 이마에 떨어졌다. 그가 계단에 주저앉아 난간에 쌓인 눈을 한 움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 마르파가 흐느끼고 아이가 자지러지는 울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노모가 어린 손녀를 안고 침실을 나와 복도를 지났다. 현관 덧문을 열고 별채로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난간에서 일어나 침실로 되돌아 갔다. 탁자 위의 등물이 희미하게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 마르파의 신음 소리가 커튼 뒤에서 점점 크게 들려 왔다. 그는 조용히 옷을 갈아 입고 침대 뒤에서 여행용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 소지품들을 집어 넣고 뚜껑을 닫은 다음, 긴 줄로 가방을 묶었다.

"왜 날 죽이려는 거예요? 왜? 내가 당신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거죠?"

아내 마르파가 잔뜩 독이 오른 목소리로 대들었다. 그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그녀를 외면하며 현관 쪽으로 가방을 들고 걸어갔다.

"이 범죄자! 도망 갈 생각 마. 고발해 버리고 말 거야."

그녀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코르네이는 발로 문을 꽝 걷어 차고 나갔다. 집 전체가 울릴 만큼 큰 굉음이었다.

 

코르네이는 안채와 이어진 별채로 가서 벙어리 조카를 깨웠다. 그는 조카에게 마구를 챙기도록 시켰다. 잠에서 덜 깨어난 조카는, 처음에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만 보았다. 조카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코르네이가 뭘 바라는지를 알았다는 듯이, 그제서야 벌떡 일어나 신발을 신고 낡아빠진 양 가죽 코트를 입고는 허둥대다가 등불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코르네이는 문 밖의 작은 썰매에 앉아 기다렸다. 벙어리 조카가 옆에 앉을 즈음에는 벌써 새벽이 밝아 오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밤에 쿠즈마와 함께 왔던 길을 되짚어 말을 몰았다.

그들은 기차가 출발하기 5분 전에 가까스로 기차 역에 도착했다. 조카는, 코르네이가 기차 표를 끊고 여행용 가방을 들고 좌석에 앉아 고갯짓을 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어느 새 기차가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마르파는 얼굴에 심한 멍이 들고 부어 올랐다.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지고 머리에도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젊고 건강한 여자라서 이내 회복이 되었다. 반 년 후에는 아무런 외상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 딸은 팔뚝 뼈 두 개가 부러져서 팔이 기형이 되고 말았다.

코르네이가 집을 떠난 후에 그에 관해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랐다.

 

 

2.

 

17년 후, 어느 늦가을이었다. 지평선 위로 태양이 기울고 있었다. 오후 4시, 날이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안드레예브카의 가축 떼가 밤을 새우기 위해서 우리로 향하고 있었다. 목동이 가축 떼를 마을로 몰아 주고 떠나면, 여자들과 아이들이 그 가축 떼들을 집으로 데려갔다. 추수가 끝난 들판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가축들이 음메 음메 쉼 없이 울어 댔다. 가축 떼 앞으로 키가 큰 한 남자가, 양과 말의 발자국들과 진흙으로 뒤덮이고 바퀴 자국으로 어지러운 비포장의 더러운 길을 질러가고 있었다. 머리와 수염은 하얗게 바랬지만 두 눈썹만큼은 숱이 많고 까만 남자였다. 비에 젖은 남루한 무명 외투에 헐렁한 모자를 쓰고, 구부정한 어깨에 가죽 자루를 메고 있었다. 노인은 젖은 낡은 가죽 장화를 신고 지팡이를 짚고서 걸어갔다. 가축들이 앞으로 가로지르려 하자, 노인이 걸음을 멈추고 지팡이에 기대어 서서 기다렸다.

머리에 수건을 두른 젊은 여자가 남자 장화를 신고 치맛자락을 허리춤에 끼워 넣은 채, 이리 저리 뛰어 다니며 꾸물대는 양들과 돼지들을 몰고 있었다. 노인과 마주친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앳된 목소리가 명랑하고 상냥했다.

"안녕하시오."

노인이 대답했다.

"우리 마을에서 밤을 보내실 건가요?"

"그래야 할 것 같소. 피곤하구려."

노인이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할아버지. 마을 창고 같은 데서 주무시지 말고 우리 집으로 가세요. 끝에서 세 번째 집이에요. 시어머니께서 길손을 잘 보살펴 드려요."

여인이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세 번째 집이라. 지노비예프 댁에 사시오?"

노인이 무언가 알고 있다는 듯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어떻게 아세요?"

"전에 이 곳에 온 적이 있소."

"이봐요, 페디우츠카! 양들 좀 봐요. 절름발이가 뒤에서 꾸물대는 거 안 보여요?"

젊은 여인이 다리가 세 개 뿐인 양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고 오른손에 쥔 막대기를 내저었다. 그리고는 머리에 두른 수건을 왼손을 들어 굼뜬 동작으로 매만진 후에, 후줄근한 검은 절름발이 양을 향해 달려갔다.

 

노인은 코르네이였고, 젊은 여인은 17년 전에 팔이 부러졌던 코르네이의 딸 아가쉬카였다. 그녀는 가이에서 10리 남짓 떨어진 안드레예브카의 고향 마을에 사는 부잣집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었다.

 

 

3.

 

코르네이 바실리예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한때 건강하고 돈 많은 고집쟁이 남자였지만, 지금은 윗도리 두 장과 군 제대증이 든 자루만 등에 달랑 진 볼썽 사나운 늙은 거렁뱅이처럼 보였다.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변한 차림이었다. 그에게 변하지 않은 거라곤, 자신의 이런 모든 불행의 시작이 지조 없는 아내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지나간 일을 기억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고 낯선 일이었지만, 그는 지난 일이 떠오를 때마다 지난 17년 간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불행이 아내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확신과 억울한 심정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를 못했다.

 

처자식을 때리고 집을 나섰던 그 날 밤, 그는 숲을 팔려는 주인을 만나러 갔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매매가 끝나 버렸기 때문에 홧김에 모스크바로 가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2주일 내내 끊임 없이 폭음을 해 댔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남부 지역으로 가축을 사러 갔다. 하지만 끝내 좋은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손해만 보았다. 그리고 다시 남쪽으로 갔으나, 그 때도 매한가지였다. 어느 새 3천 루블로 시작한 자본금이 1년 후, 겨우 25루블이 되고 말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일자리를 찾아 다녔고 가끔 마시는 술도 이제는 하루도 거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대형 가축 도매 관리인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근무 시간에 술을 마시다가 해고를 당했다. 그 후 친구를 통해서 와인 도매업 일을 다시 구했다. 그 곳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쫓겨났다. 허위로 장부를 기록하다가 발각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기는 죽기보다도 싫었고, 집을 떠올리면 오히려 분노가 치밀었다.

'나 없이도 잘 살겠지. 딸년이 그러니까 아들놈도 내 자식이 아니겠지.'

그의 메마른 영혼은 인생 전체를 몽땅 내팽개치고 있었다. 하루라도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이었다. 다시 소를 모는 일자리라도 구해 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 삶 자체가 어려워질수록, 그의 가슴에서는 아내에 대한 비난과 분노가 날로 거세어져 갔다.

 

코르네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주인 밑에서 마지막으로 소몰이 하는 일자리를 구했지만, 갑자기 소들이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것이 코르네이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와 지배인은 화가 난 주인에게서 다시 쫓겨나고 말았다. 일거리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코르네이는 세상을 떠도는 방랑객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값비싼 장화를 사서 신고 차와 설탕과 8루블이 든 자루를 짊어진 뒤 키예프로 떠났다. 그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코카서스에 있는 뉴 안톤으로 갔다. 그러나 그는 그 곳에 도착하기도 전에 열병에 걸리고 말았다. 갑자기 몸이 쇠약해진 그에게 남아 있는 돈이래야 1루블 70코페이카가 전부였고, 게다가 친구도 없었다. 그는 문득 고향의 아들에게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악바리 마누라는 죽었을 거야. 그 년이 살아 있으면 할 말은 해야겠지.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 화냥년도 알아야만 해.'

그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집을 향해 떠났다.

 

그는 하루 걸러 열병이 도졌다. 점점 쇠약해져 가는 몸을 이끌고 하루에 이삼십 리 밖에 걷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려면 아직 삼백 리를 더 가야 했지만 그만한 돈이 그에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먹을 것을 구걸하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구제소에서 잠을 잤다.

'당신은 내가 철저하게 망가져 가는 이런 모습을 보며 기뻐하겠지.'

그는 아내를 생각했다. 때릴 만한 사람도 때릴 힘도 없는 그가 습관적으로 늙고 병든 손을 움켜쥐었다.

그는 삼백 리를 걷는 데 2주일이나 걸렸다. 병들어 지친 몸을 끌고 고향 집에까지 십 리를 남겨 두고 아가쉬카를 만난 것이었다. 부녀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설령 진짜 딸이 아닐지라도, 그의 자식이었던 아이의 팔을 부러뜨리고도 그는 알아보지 못했다.

 

 

4.

 

그는 아가쉬카가 말한 대로 지노비예프의 집을 찾아가서 하룻밤 묵을 것을 청했고, 그들 가족은 그의 청을 기꺼이 들어 주었다. 집 안으로 들어갈 때, 그는 늘 그랬듯이 성상 앞에서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는 주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춥겠구려, 노인장. 자, 이리로 와요. 어서 이 난로 곁으로 와요."

아가쉬카의 시어머니인 늙은 미망인이 주름 진 얼굴로 상냥하게 말을 건네며 탁자에 앉았다. 젊은 아가쉬카의 남편인 듯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등불을 밝혔다.

"이런, 몸이 다 젖었군요, 어르신. 사양 마시고 저 쪽에서 옷을 벗고 몸을 말리세요."

코르네이가 외투와 장화를 벗었다. 그는 젖은 양말을 난로 곁에 걸어 놓고 침상으로 올라갔다. 가축을 우리에 몰아 넣고 돌아온 아가쉬카가 주전자를 들고 걸어왔다.

"혹시 손님 한 분이 오지 않았어요? 제가 우리 집에 보냈었는데…."

"응, 오셨어."

집 주인은 침상에 앉아 털이 덥수룩한 앙상한 다리를 긁고 있는 코르네이를 가리켰다.

 

식구들이 코르네이에게 차를 함께 마시자고 권했다. 그들이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은 코르네이에게 컵과 설탕을 주며, 날씨 얘기와 신통치 못했다는 가을걷이 얘기를 했다. 그 해, 땅 주인들이 추수를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날이 갈 수록 낱알이 망가졌다. 수확을 할라치면 비가 오곤 했다는 것이다. 소작농들은 어떻게든 추수를 했지만 배 부른 지주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고, 쥐들이 낟가리에 들끓는다는 얘기였다. 코르네이도 마을로 들어서던 길에, 온 들판에 그대로 방치된 낟가리들을 보았다고 말했다. 젊은 여인은 그에게 아주 순한 차를 다섯 잔 째나 부어 주던 참이었다.

"할아버지, 어서 드세요. 몸이 좋아질 거예요."

그가 사양할 때마다 그녀는 상냥하게 차를 권했다.

"왜 손이 불편하시오?"

그가 뜨거운 찻잔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어려서 부러졌다우. 우리 아가쉬카의 친정 아버지가 얘를 죽이려고 했수."

수다스러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대신하여 설명했다.

"아니, 왜요?"

코르네이는 젊은 여인의 얼굴을 힐끔 바라보면서 질문했다. 그 때 연한 파란색 눈과 금발의 예브스티그네이가 문득 떠올랐다. 찻잔을 받아 든 손이 떨리더니 차를 반이나 흘리면서 찬을 탁자에 내려 놓았다.

"우리 며늘애의 아버지가 옆 마을 가이에 살았다우. 이름이 코르네이 바실리예프라고 해요. 그는 부자에다 고집이 센 남자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내를 의심하고 때리고, 이 아이를 병신으로 만들었다우."

코르네이가 눈살을 찌푸리고 조용히 바닥을 잠시 내려보다가 주인 내외를 쳐다보았다.

"뭣 때문에 그런 짓을?"

그가 설탕 덩어리를 깨물며 물었다.

"누가 알겠소? 사람들이 가끔 여자들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헛소문을 퍼뜨리잖아요. 문제는 그의 아내가 고용한 일꾼 때문이랍디다. 그 사람, 우리 마을 사람이었지만, 참 사람이 얼마나 착했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젊은인 그 집에서 죽었다니깐! 아휴, 소문이 참 무섭지 않수?"

"그가 죽어요?"

코르네이가 기침을 하며 물었다.

"오래 전에 죽었수. 그 후에 우리가 이 아이를 며느리로 데려왔어요. 우린 잘 살았어요. 우리 마을에서 제일 부자였으니까. 남편이 살아 있던 동안에는 말이우."

"그럼 며느리 친정 아버지는?"

코르네이가 물었다.

"그도 죽지 않았겠수? 그 날 밤 바로 사라져서 한 15년이 넘었으니까요."

"저도 몰라요. 그 때, 저는 막 젖을 뗄 나이였다고 친정 어머니가 말씀하셨으니까."

"지금은 그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오? 팔을 그렇게 부러뜨린 아버지가 밉지 않소?"

코르네이가 묻는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며 점점 작아졌다.

"그 분은 남이 될 수 없고, 어쨌든 제 아버지예요. 저, 할아버지, 몸이 좀 따뜻하게 차 좀 더 드실래요? 제가 더 따를까요?"

코르네이는 눈물을 흘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왜 그러세요, 할아버지?"

"아니오, 아무 일도 아니오. 고맙소. 하느님의 축복이 있길 빌겠소."

코르네이는 떨리는 손으로 난간을 잡고 맨 발로 침상으로 올라갔다.

"잘 보살펴 드려라."

노모가 노인을 측은히 바라보며, 아들에게 말을 했다.

 

 

5.

 

다음 날, 코르네이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눈을 떴다. 그는 침상에서 내려와 뻣뻣해진 부츠를 간신히 신고 짐 자루를 짊어 들었다.

"아니, 노인장. 우리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지 않으려우?"

아가쉬카의 시어머니가 물었다.

"정말 고맙소이다. 그만 가 보겠습니다."

"그러면 어제 먹던 빵이라도 가져가구려. 내가 자루에 넣어 주리다."

코르네이는 감사의 말을 건네고 헤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리시우. 만사가 잘 될 거요."

 

짙은 가을 안개가 온 마을을 덮고 있었다. 그렇지만 코르네이에게는 눈에 익은 길이었다. 길 모퉁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잡목 숲과 버드나무들까지 모든 것이 기억에 생생했다. 17년이나 흐른 뒤에 고목이 잘린 자리에 다시 어린 나무가 자라고 그 나무도 훌쩍 커 버렸지만, 양쪽 길가의 숲은 낯설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 없던 집들 몇 채가 새로 들어섰지만, 고향은 예전의 귀틀집이 벽돌집으로 바뀌었을 뿐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벽돌집도 비록 낡기는 했지만 그대로였다. 지붕은 오랫동안 칠을 하지 않아 여러 곳이 낡고 빛이 바랬고, 현관은 귀퉁이의 벽돌이 떨어져 나가 기울어 있었다.

 

그가 집에 들어서자, 수망아지 딸린 얼룩말과 삼 년 쯤 묵은 종마가 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늙은 얼룩말은 코르네이가 집을 떠나기 1년 전에 시장에서 사 왔던 것과 똑같아 보였다. 어쩌면 이 말은, 그가 마을을 떠날 때 어미 말의 뱃속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탄탄한 가슴과 등, 그리고 털 많은 다리가 예전 것과 너무도 흡사했다.

새 부츠를 신은 까만 눈의 소년이 말들을 물가로 몰고 있었다. 코르네이는 생각했다.

"표트르의 아들이라면 손자 뻘 쯤 되겠군. 저 까만 눈이 내 아들 표트르와 정말로 꼭 같아."

소년이 낯선 노인을 바라보다가 총총거리는 어린 종마를 쫓아갔다. 개 한 마리가 아이를 뒤따라 갔다. 그 개도 코르네이가 이 집에 살았을 때 있었던 볼초크처럼 검었다.

'볼초크인가? 아니, 그럴 리 없지.'

그는 볼초크가 지금은 스물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현관에 다가서다 말고, 계단에 앉아서 난간에 쌓인 눈을 한참 동안 먹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다.

"누가 말도 없이 들어오는 거요?"

집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챘다. 잠시 후에 문 안쪽에서부터 주름이 쭈글쭈글하고 마른 늙은 여자가 걸어 나왔다. 코르네이는 자신을 모욕했던 젊고 아름다운 시절의 마르파를 잠깐 기대했었다. 그는 지금껏 미운 마음을 삭이지 못했지만, 그 옛날의 젊은 여인에게 아직도 마음이 끌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는 낯선 늙은 할머니가 서 있을 뿐이었다.

"구걸을 하려면 창문 밖에서 말을 해야지요."

그녀는 새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구걸하려고 이 곳에 온 게 아니오."

"그럼 왜요? 뭘 하시게요?"

갑자기 그녀가 말을 멈췄다. 그는 순간 그녀가 자신을 알아 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 같은 떠돌이들이 너무 많아요. 매일 이 곳엘 찾아 온다니까. 나가요, 어서 나가라니까요. 하느님한테나 가 보세요."

코르네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지팡이에 몸을 지탱하며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영혼 깊숙한 곳에서 그렇게 오래도록 따라 다니던 그녀에 대한 분노가 치밀지 않았다. 그보다는 부드럽고 힘겨운 연민이 가슴에 감돌았다.

"마르파, 우리도 죽을 날이 멀지 않았구려."

"어서 가요, 나가라니까. 하느님한테나 알아 보시구려."

그녀가 악다구니를 퍼부어 댔다.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소?"

"난 할 말이 없어요. 어서 가요. 하느님한테나 가 보라구요. 썩 꺼져요! 당신과 같은 불한당 떠돌이들은 쌔고 쌨어."

그녀는 매몰차게 집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꽝 닫았다.

 

"아니, 왜 그렇게 가엾은 노인을 꾸짖고 그러세요?"

집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다시 열리고, 허리춤에 도끼를 맨, 머리가 칠흑 같이 검은 농부가 걸어 나왔다. 남자는 코르네이가 삼십 줄이었을 때와 아주 똑같았다. 그보다 다소 살이 찌고 땅딸했지만, 빛나는 까만 눈은 그대로였다. 17년 전, 어린이 그림책 선물을 받았던 그의 아들 표트르였다. 모친에게 구걸하는 사람을 박대하지 말라고 책망한 이도 아들 표트르였던 것이다.

다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 역시 허리춤에 도끼를 차고 있었다. 바로 그의 벙어리 조카였다. 이제 그도 주름 진 얼굴에 턱수염을 기르고, 목이 길고 눈빛이 단호하고 날카로운 호리호리한 중년의 사내가 되어 있었다. 두 남자는 방금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숲으로 나무를 베러 가려는 참이었던 것 같았다.

"어르신, 잠깐만요."

표트르가 말을 했다. 그리고는 벙어리 조카와 손짓을 주고 받았다. 부엌에 들어가서 빵을 썰어 가지고 나와 노인에게 주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러더니 표트르는 밖으로 나가고 벙어리 조카는 집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코르네이는 벽에 등을 기대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는 마음이 약해지면서 솟구치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벙어리 조카가 얇게 저며 방금 데운 검은 호밀 빵을 갖고 다시 집에서 나왔다. 그는 성호를 긋고 코르네이에게 빵을 건네 주었다. 빵을 받으며 코르네이도 성호를 그었다. 벙어리 남자가 현관으로 몸을 돌려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야박한 아주머니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던 그가 멈칫 하더니 입을 벌린 채 코르네이를 한동안 바라 보았다. 마치 그를 알아 보는 것 같았다. 벙어리 조카의 눈길에 코르네이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눈 코와 허연 턱수염으로 주욱 흘러내리는 눈물을 긴 소맷자락으로 닦아 냈다. 그는 벙어리 조카에게서 몸을 돌려 현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온정과 체념과 굴욕감이 뒤섞인 평온함을 처음으로 느끼며 한 없는 눈물을 흘렸다. 아내와 아들과 그 모든 이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가슴 벅찬 푸근함에, 짓눌렸던 영혼이 자유롭게 날아 오르는 느낌이었다.

 

창가에서 코르네이를 지켜 보던 마르파는, 그가 집 모퉁이로 사라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베틀에 가 앉았다. 열댓 번 베틀을 놀리다가 손놀림이 헝클어지는 듯 이내 멈추고 상념에 빠져 들었다. 그녀는 방금 그 노인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죽이려 했던 그 코르네이 바실리예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한때 자신을 사랑했던 옛날의 남자에 불과했지만, 자신이 방금 전에 했던 짓이 끔찍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에게 어떻게 했어야 옳단 말인가? 자신이 코르네이라고, 이제야 집에 돌아왔노라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녀는 베틀로 돌아가서 밤이 될 때까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했다.

 

 

6.

 

코르네이는 남은 힘을 다해 이웃 마을 안드레예브카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지노비예프 가족들의 집에서 하룻밤만 더 지낼 수 있는가 물었다. 그들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노인장, 멀리 가지 못하셨군?"

"그래요. 너무 약해졌소. 돌아올 수밖에 없더군. 이 곳에서 하룻밤 묵어도 되리까?"

"우리 같은 늙은이야, 하룻밤 제대로 자야 죽을 기운이라도 차린다니깐! 이런, 농담이오. 어서 들어와서 난로에 몸 좀 녹이시구려."

코르네이는 고열에 들떠 밤을 새웠다. 결국 아침에 의식을 잃고 정신 없이 잠을 자다가 깨어나 보니, 아가쉬카만이 혼자 집에 남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늙은 안주인이 마른 겉옷 위에 깔아 놓은 이불 위에 다시 누웠다. 아가쉬카가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을 꺼냈다.

"여보시게, 이리 좀 가까이 오시구려."

그가 작고 희미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잠깐만요, 할아버지. 뭐 좀 드시겠어요? 걸쭉한 맥주는 어떠세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남은 빵 덩어리를 꺼내 맥주 한 사발과 함께 그에게 가져왔다. 그는 돌아눕지도 않고 술을 마시지도 않고, 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가쉬카, 때가 되었어. 이젠 죽고 싶어. 부디, 하느님의 이름으로 나를 용서하게나."

"하느님이 어르신을 용서해 주실 거예요. 제게 용서를 구할 일이라도 있으세요?"

그가 잠깐 동안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자네 어머니에게 가서 말하시오. 그녀에게 가서 어떤 길손이 말을 하더라고…. 어제의 그 길손이…. 그녀에게 말을 해 주시오."

그는 말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우리 친정을 아세요?"

"그래. 어제 들렀지. 어머니에게 말하게. 그 길손이…. 그 떠돌이가…."

그는 또 다시 흐느꼈다. 그리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말을 시작했다.

"내가 작별 인사를 하러 갔었다고 전하시오."

그는 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더듬어 찾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그렇게 전할게요, 어르신. 걱정 마세요. 뭘 찾으세요?"

아가쉬카가 물었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미간을 찌푸리며 털이 덥수룩한 한 손으로 종이 한 장을 꺼내 글을 모르는 그녀에게 건넸다.

"이걸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게. 내 군 제대증이오. 하느님, 제 죄를 용서하소서."

그의 얼굴에 엄숙한 표정이 감돌았다. 그는 눈썹을 치켜 올린 채 천장의 한 점만을 응시하는 듯 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촛불 좀…."

그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아가쉬카가 가까스로 알아 듣고, 성상 밑에서 쓰다 남은 밀랍 초를 꺼내 불을 밝혀 노인에게 건넸다. 그가 초를 꼭 쥐었다.

 

그녀가 제대증을 구석에 놓인 서랍장에 놓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그는 눈을 뜬 채 숨을 쉬지 않았고 촛대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가쉬카는 성호를 긋고 촛불을 껐다. 그리고 깨끗한 흰 수건을 그의 얼굴에 씌워 주었다.

*　*　*

 

밤 새, 마르파는 코르네이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침이 밝아 오자, 그녀는 방한 코트를 입고 머리에 두터운 수건을 두른 후 노인이 갔을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그가 안드리예브카 마을로 돌아갔다는 얘기를 듣고, 울타리에서 막대기를 꺼내 들고는 길을 나섰다. 그에게로 가는 길이 가까워질 수록 그녀의 가슴에 두려움이 쌓였다.

'그를 용서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야 해. 그래야만 우리의 죄를 용서 받을 거야. 최소한 아들이 있는 집에서 죽을 수 있게는 해 줘야지.'

마르파가 딸네 집에 이르렀을 때, 동네 사람들이 문전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현관 쪽에 서 있는 사람들, 창문 아래에 서 있는 사람들로 집 안이 술렁거렸다. 20년 전, 온 동네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부자로 소문 난 코르네이 바실리예프가 떠돌뱅이가 되어 딸네 집에서 죽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던 것이다. 수군거리며 한숨을 쉬거나 흐느끼는 여자들도 있었다. 마르파가 딸네 집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길을 내 주었다. 아르파의 눈으로 성상 아래에 길게 놓인 흰 천이 들어왔다. 깨끗하게 씻긴 남편의 시신이었다. 시신 옆에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글을 읽을 수 있는 부사제 필립이 옛 슬라브어 시편을 읽고 서 있었다.

이제 세상에는 그녀가 용서해야 할 사람도, 또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사람도 없었다. 코르네이의 아름답지만 단호한 노안으로는 그가 그녀를 용서했는지 아니면 여전히 분노에 휩싸여 있는지를 알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