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１부 - 시합 개시 #.2

　슈야는 잠시 낯익은 교실에 있다는 착각을 했다. 

 

　물론 그 방은 3학 B반 학생들이 생활하던 평소의 교실은 아니었지만, 교단과 색 바랜 칠판, 그리고 그 왼쪽 높은 곳에 대형 텔레비젼을 올려놓는 받침이 있고, 쇠 파이프에 합판을 붙여 만든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슈야가 앉아 있는 자리의 책상 한 귀퉁이에는 「총통은 군복 입은 여자를 보면 흥분한다」 고 하는, 정부를 비꼬는 듯한 낙서가 칠필같은 것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옷깃을 세운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들. 조금 전에 함께 버스를 타고 있던 41명의 클래스메이트들이 모두들 교실 안에 앉아 있다. 그러나 다들 책상이나 의자에 기대어 자고 있는 모습은 평소 생활하던 교실과 달랐다. 

 

　슈야는 복도 쪽(이 부분이 거의 학교와 같은 구조였다), 불투명 유리로 막아 놓은 창 옆의 자리에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아마도 눈을 뜬 것은 자기뿐인 것 같았다. 슈야의 약간 왼쪽 앞, 교실 한가운데 구니노부 요시토키가, 그리고 그 뒷자리에는 나카가와 노리코가, 요시토키 건너편 자리에 미무라 신지가 책상에 힘없이 엎드려 자고 있다. 왼쪽 창가에는 큰 키의 스기무라 히로키가 책상 위에 엎어져 있었다(슈야는 그제야 자리 배치가 시로이와 중학교 3학년 B반의 교실 자리 순서와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곧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 원인도 눈치 채게 되었다. 

 

　히로키 너머, 원래 창문이 있어야 할 곳이 검은 판 같은 것으로 가려져 있다. 철판인가? 천장에 달린 형광들에서 떨어지는 칙칙한 불빛을 그 검은 철판이 차갑게 밀쳐내고 있다. 복도에 있는 창문도 마찬가지로 가려져 있을지 모른다. 밤낮을 구별할 수가 없다. 슈야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1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전인가? 오후인가? 날짜가 "THU/22"로 되어 있었다. 누가 시계를 조작한 것이 아닌 한, 버스 안에서 슈야가 묘한 졸음을 느끼고 나서 세 시간 남짓 지난, 다음 날 새벽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음 날 오후라는 말이다. 오케이, 뭐 그거야 어쨌든 좋다. 그렇지만. 슈야는 주위에 있는 클래스메이트들을 둘러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하긴 모든 게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뭔가가 다르다. 

 

　슈야는 곧 그 원인을 깨달았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노리코의 세일러복 목 언저리에 은빛이 나는, 목에 찰싹 감겨 있는 금속성 띠 같은 것이 보였다. 구니노부 요시토키 또한 교복의 옷깃이 목을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같은 것이 살짝 엿보였다. 미무라 신지에게도, 스기무라 히로키에게도, 그리고 다른 모든 학생들의 목에도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어, 자기 목덜미에 오른손을 갖다댔다. 단단하고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슈야의 목에도 같은 것이 감겨져 있는 게 틀림없었다. 슈야는 그것을 살짝 잡아당겨 보았지만, 꼭 죄어져 있어 벗겨지지 않았다. 거기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꺠달은 순간, 왠지 호흡이 거북해졌다. 목걸이! 목걸이다! 제기랄, 개도 아닌데! 

 

　슈야는 잠시 그것을 만지작거리다가 포기했다. 그보다─.

 

　수학여행은 어떻게 된 걸까?

　슈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발 아래 바닥 위에 자기 짐을 넣은 스포츠 백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젯밤, 갈아입을 옷과 타월, 견학을 위해 학교에서 지급해 준 노트, 그리고 버번이 들어 있는 작은 물통 등을 적당히 채워 넣은 짐이다. 다른 아이들의 발 아래에도 마찬가지로 짐이 놓여져 있었다. 

 

　갑자기 교실의 교단 쪽 문이 큰 소리와 함꼐 열려, 슈야는 고개를 들었다.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사내의 키는 약간 작았고, 단단한 몸집에 다리가 몸통에 덤으로 붙은 것처럼 짧았다. 수수한 회색 바지에 브라운 색 재킷, 검붉은 넥타이를 매고, 검은 로버를 신고 있지만, 모두 낡은 느낌이 들었다. 재킷 옷깃에는 정부 관계자임을 나타내는 분홍빛 배지가 달려 있었다. 혈색이 아주 좋은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그의 머리 모양이었다. 마치 젊은 여자들처럼, 어깻죽지까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것이다. 

 

　슈야는 암시장에서 손에 넣은 존 바에즈의 테이프, 입자가 거친 복사본을 사용한 그 재킷 사진을 떠올렸다. 사내는 교단 위치에 서서 교실을 쭉 둘러보다가 그 시선을 교실 약간 뒤쪽에서 혼자 깨어나 있는(이것이 꿈이 아니라면) 슈야의 얼굴에서 멈추었다. 슈야와 그 사내는 약 1분 정도는 충분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고 있는 중에 다른 아이들도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는지 교실 안에 약간 긴장된 숨소리가 퍼지기 시작하자, 사내는 시선을 돌렸다. 

 

　아직도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는 친구들 깨우는 목소리도 들렸다. 슈야도 교실을 둘러보았다. 눈을 뜨기 시작한 클래스메이트들은 다들 하나같이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고개를 돌린 구니노부 요시토키와 눈길이 마주쳤다. 슈야가 목걸이를 손으로 가리키며 고개를 숙여 보이자, 요시토키는 당황하며 자기 목덜미에 손을 대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서 무슨 의미에서인지 몇 번인가 고개를 좌우로 저어 보이며, 교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찬가지로 나카가와 노리코가 멍한 눈으로 슈야 쪽을 바라보았다. 슈야는 어깨를 으쓱 움츠려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자, 사내가 입을 열었다. 쾌활한 목소리였다. 

 

　「자, 다들 일어났습니까? 잘 잤어요?」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학급의 남녀 분위기 메이커인 세토 유타카와 나카가와 유카(여자 16번)조차 아무 말이 없었다. 교단에 선 장발의 사내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자, 자. 그럼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내가 새로운 담임입니다. 사카모치 긴바츠라고 합니다.」 

 

　사카모치라고 이름을 밝힌 사내는 칠판을 향해 돌아서더니, 분필로 크게 세로로 자기 이름을 썼다. 웃기는 이름이다. 혹시 형편상 가명을 쓰는게 아닐까? 갑자기 앞쪽에 앉은 여자 반장 우츠미 유키에가 일어나,「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유키에에게 집중되었다.

 

　긴 머리카락을 두 갈래로 단정하게 땋아 내린 유키에는 약간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당찬 말투였다. 하긴 유키에는 학급 전원이 사고에 휩쓸린 것인가 어떻게 해서 기절해 있었는가, 하는 시나리오를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머리속에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된 겁니까? 우리는 수학여행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렇죠? 여러분.」 

 

　유키에가 고개를 돌려 모두를 둘러보았다. 그게 계기가 되어, 거의 전원이 제각각 떠들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디지?」 

　「아니, 너도 자고 있었어?」 

　「지금이 몇 시지?」 

　「다들 잠이 들었었나?」 

　「쳇, 내가 시계를 안 가져왔네.」 

　「버스에서 내려서 여기 들어온 기억이 나니?」 

　「저 아저씬 누구야?」 

　「아니, 나도 기억이 안나.」 

　「아니, 대체 어떻게 된 거니? 난 무서워.」 

 

　슈야는 사카모치가 잠자코 듣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가만히 교실을 둘러보았다. 아무 말도 않고 있는 사람이 자기 말고도 몇 사람 있었다. 우선 눈에 띄는 사람은 슈야가 앉은 자리에서 비스듬히 뒤쪽, 한가운데 줄의 제일 뒷자리에 있는 기리야마 가즈오였다. 올백으로 빗어 넘긴 머리카락 아래, 차분한 눈빛으로 교단의 사내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노려보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를 정도로 차가운 시선이었다. 주변에 진을 친 부하들인 사사가와 류헤이나 누마이 미츠루, 구로나가 히로시(남자 9번), 그리고 즈키오카 쇼(남자 14번)가 말을 거는 데도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창가 자리의 앞에서 두 번째, 소마 미츠코. 꼬인 인생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드는 여자 아이다. 그녀는 자기 "그룹"의 다른 두 사람 시미즈 히로노, 야하기 요시미와 자리가 떨어져 있어, 당연히 그 두 사람 이외에 그녀에게 이야기를 걸려고 하는 여자 아이는─남자도 물론이고─없었다(히로노와 요시미는 슈야의 왼쪽에 나란히 앉아, 둘이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아이돌 스타처럼 사랑스럽게 생겼지만, 왠지 약간 피곤한 듯한 평소의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세일러복 차림에 팔짱을 끼고 사카모치를 쳐다보고 있었다(바로 그뒤가 스기무라 히로키였는데, 히로키는 옆에 앉은 히타가미 다다카츠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창가 줄의 뒤에서 두 번째, 가와다 쇼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도 잠자코 교단의 사카모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슈야가 보고 있는 중에,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시선은 정면에 둔채, 턱의 라인만 천천히 움직였다. 

 

　가와다 쇼고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앞으로 돌리는데, 나카가와 노리코가 여전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리코의 검은 눈동자가 불안한 듯 떨리고 있었다. 슈야는 노리코의 앞 자리에 있는 요시토키 쪽을 힐끔 보았지만, 요시토키는 옆자리의 미무라 신지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슈야는 다시 노리코를 바라보며, 턱을 약간 움직여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노리코의 눈이 다소 안심하는 듯했다. 

 

　「자자, 조용히 하세요.」 

　사카모치가 손을 몇 번 탁탁 두드려, 주의를 모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럼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을 이곳에 오게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는 말을 이었다. 

 

　「오늘은, 여러분에게 좀, 서로를 죽여 달라고 부탁해야겠습니다.」 

 

　이번에는 웅성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도 않았다. 모두의 움직임이 스틸 사진에 찍힌 모습처럼 정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슈야는 가와다만 이 껌을 계속 씹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다만 약간 씁쓸한 웃음 같은 것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사카모치는 여전히 싱글거리며 말을 이었다. 

 

　「여러분은 올해의 "프로그램" 대상 학급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윽, 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대동아공화국 중학생치고 "프로그램"을 모르는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부터 등장한다. 여기서는 좀더 상세한, 대동아공화국의 콤팩트 백과사전에서 인용해 보기로 한다. 

  

　프로그램(Program) : <명사> 

　1. 연극 등에서 무대에 올리는 상연물의 이름 과 순서 등을 적어 놓은 것. 

 

　(중략) 

 

　4. 우리 나라 전수방위 육군이 방위상의 필요에 의해 실시하고 있는 전투 시뮬레이션. 

 

　정식 명칭은 전투 실험 제68번 프로그램. 1947년에 제 1회를 실시한 이래, 매년 전국의 중학교에서, 3학년 가운데 임의로 50학급(1949년 이전에는 47학급)을 골라 실시, 각종 통계를 축적하고 있다. 실험 자체는 매우 단순하다. 각 학급 안에서 학생들이 최후의 한 사람만 살아남을 때까지 계속 서로 싸우게 하여 그 소요 시간 등을 조사한다. 각 학급의 최종 생존자(우승자)에게는 평생 생활 보장과 총통 각하가 직접 쓴 표창장이 수여된다. 개시 첫 해에, 국민들 가운데 일부 과격파가 들고 일어난 항의 및 시위에 대하여, 당시 제 317대 총통이 한「4월 연설」은 유명하다. 이「4월 연설」은 중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려 있다. 그 일부를 인용한다. 

 

　「혁명과 건설에 매진하는, 친애하는 국민 동포 여러분(박수와 환호성으로 위대한 317대 총통의 연설은 2분간 중단)! 여러분(1분간 중단)… 우리 공화국을 위협하는, 파렴치한 제국주의 도당이 아직 전 세계에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원래 우리의 동지였을 각국의 국가 인민을 착취하고 선동하고 속여, 자기들 제국주의의 첨병으로 세뇌시킨 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습니다(청중 일동 의분의 눈물). 그리고 호시탐탐, 세계에서 가장 진보한 혁명 국가인 우리 공화국의 영토를 침략하고, 우리 민족을 멸망시키려고 그 교활한 간계를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청중들, 여기저기서 분노의 함성). 그렇기 때문에 "68번 프로그램"은 이러한 정세 아래 있는 우리 나라에 반드시 필요한 실험입니다. 15세 안팎의 젊은 생명을 몇 천, 몇 만 명이나 잃는다는 사실에 대하여 나 자신도 솔직히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목숨이 이 소중한 나라, 우리 민족의 독립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들이 흘린 피와 살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전해 준 아름다운 우리 국토에 동화되어, 앞으로 영원히 살아있게 될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박수, 환호의 도가니. 1분간 연설 중단). 아시다시피 우리 공화국에는 징병제가 없습니다. 전수 방위 육해공군은 모두 우국의 뜻, 혁명과 건설을 위한 강인한 의지에 불타는 젊은 지원병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불철주야 최전선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근무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일종의, 그리고 우리 나라 유일의 징병제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후략)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형씨, 가츠동 먹지 않겠어?」 라고 하는 상투적인 말로 전수방위로 입대를 권유하는 전수방위군 입대계의 아저씨를 역전에서 마주친다), 슈야가 처음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보타 훨씬 전의 일이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의 친구분 소개로 들어간 "자혜관"에도 상당히 익숙해졌을 무렵(친척 가운데 어느 누구도 슈야를 받아 주려 하지 않았다. 슈야의 부모가 전에 반정부 활동에 관계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슈야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슈야가 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슈야보다 먼저 자혜관에 들어와 있던 구니노부 유시토키와 나란히 놀이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좋아하는 로봇 애니메이션이 끝나고, 지금은 자혜관의 관장을 맡고 있는 안노료오코 선생님이(전 관장의 딸이었던 그녀는 그때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직원들은 모두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채널을 돌렸다. 슈야는 아무런 생각 없이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근엄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사내가 화면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뉴스"라고 불리는 아주 재미없는, 어느 채널에서나 이따금 하는 프로라고 알고 있었다. 사내는 원고를 읽어 나갔다. 슈야는 그 내용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하여간 언제나 같은 느낌이었다. 그 뉴스를 재현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될 것이다. 

 

　「3년 만에 가가와 현에서 실시된 "프로그램"이 어제 오후 3시 12분에 종료되었다고, 조금 전 정부 및 전수방위군이 발표했습니다. 대상 학급은 젠츠지 시의 젠츠지 제 4 중학교 3학년 E반입니다. 밝혀지지 않았던 실시 장소는 다도츠 읍 앞바다 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시쿠 섬이었습니다. 우승자 결정까지 걸린 시간은 3일 일곱 시간 43분이었습니다. 또 오늘 시체 회수, 검시가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사망한 학생 38명의 추정 사망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총기류에 의한 사망 17명, 도검류에 의한 사망 9명, 둔기에 의한 사망 5명, 질식사 3명…」 

 

　화면에는 아마도 "우승자"인 듯한, 너덜너덜한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가 나와 있었으며, 전수방위군 병사 두 명이 양쪽에 서있었다. 그 여학생은 일그러진 얼굴로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헝클어진 긴 머리카락, 왼쪽 관자놀이 옆 부분에는 검붉은 것이 딱 달라붙어 있었다. 이상한 것은 슈야가 그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굴을 찡그린 그 소녀의 입가에는 왠지 이따금 웃음처럼 보이는 일그러짐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아마 슈야가 처음 본 미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나 그 때는 그런 구별까지는 하지 못하고, 슈야는 그저 공연히, 귀신을 보고 있는 듯한 무서운 느낌을 받았다. 「선생님, 이게 뭐예요?」 라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안노 선생은 그냥 고개를 저으면서, 「아무것도 아니란다.」 라고 했다. 슈야에게서 고개를 돌린 안노 선생의 입에서, 「가엾게도…」 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구니노부 요시토키는 화면은 전혀 쳐다보지도 않고, 밀감을 먹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평균 2년에 한 번 꼴로, 특별히 정해진 시간도 없이 갑자기 나오는 이런 지역 뉴스는, 슈야에게도 서서히 위협이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전국의 중학교 3학년 학생 가운데 무려 50학급, 한 학급을 40명이라고 하면 2천 명,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1천 9백 50명의 학생들에게 매년 정확하게 찾아오는 사망 선고다. 게다가 단순히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함께 지내던 급우들과 서로 싸워 죽이는 것이다. 단 하나뿐인 생존자의 자리를 두고. 그렇다. 사상 최악의 의자 빼앗기 게임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무릇 이 대동아공화국에서 정부가 하는 일에는 저항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슈야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었다. 그것은,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될 이 나라의 수많은 아이들이 택하고 있는 방법일 것이다. 오케이, 우리 나라 유일의 징병제? 하느님이 내린 나라의 아름다운 국토? 공화국 안에 중학생이 몇 명이나 되는 줄 알아? 아무리 자녀를 적게 낳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확률은 거의 8백분의 1 이하. 가가와 현이라면 "당첨"될 확률은 고작 2년에 한 번, 한 학급이다. 솔직히 이야기 해서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다. 또 늘 당첨 운이라고는 없는 내가 그런 것에 당첨 될 리가 없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상점가의 추첨 같은 것에서도 기껏해야 티슈를 받아 본 적밖에는 없다. 그런데-, 누가 그런 일에 대비한다는 말인가? 

 

　그래도 때론 학급의 누군가가, 특히 여자애가 「사촌이 프로그램에서…」 라고 울면서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을 때마다 슈야의 마음속에도 그 검은 공포가 되살아났다. 동시에 분노도 느꼈다. 도대체 누가 그 가엾은 여자애를 슬프게 할 권리가 있다는 건가? 그러나, 한동안 우울한 표정으로 지내던 그 여자애도 며칠 지나면 다시 웃는 얼굴을 되찾게 된다. 동시에 슈야의 마음속 공포와 분노도 서서히 옅어지고, 사라져 갔다. 다만 정부에 대한 아주 애매모호한 불신감과 무력감만은 남은 채… 그런 것이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에 된 올해도 슈야는─ 그리고 아마 B반의 다른 애들도, 자기들만은 괜찮을 것이라 믿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바로 이 순간까지도.

 

　「이럴 수가.」  

 

　의자가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누군가 일어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슈야가 고개를 돌려 그쪽을─스기무라 히로키의 뒷자리─를 보았다. 남자 반장인 모토부치 교이치였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다 못해 거의 잿빛이 되어, 은테 안경과 초현실적인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었다. 미술 교과서에 "미 제국주의의 퇴폐 예술"로 소개되어 있던 앤디 워홀의 실크 스크린 작품 같았다. 클래스메이트 가운데 몇 사람은, 이 때 교이치가 뭔가 합리적인 반론을 해 주기를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어제까지 사이좋게 지내던 친구들과 서로 죽이라고? 그럴 수는 없다. 이건 뭔가 잘못된거다. 반장, 그걸 확실하게 설명해줘. 그러나 교이치가 꺼낸 말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우, 우리 아버지는 현 지방 정부의 환경부장이야. 그런데 내가 속해 있는 반이 프, 프로그램에 거, 걸리다니─」 

　교이치는, 떨고 있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신경질적으로 들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사카모치라고 이름을 밝힌 사내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긴 머리카락이 출렁거렸다. 

 

　「아, 자네가 모토부치 교이치 군이로군.」

　왠지 끈적거리는 듯한 말투였다. 

 

　「평등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건 아닐 테지? 잘 들어둬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겁니다. 현 정부의 관리라고 해서, 그 사람이 특별 취급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 자식들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에게는 각자의 환경이 있습니다. 부잣집 자식도 있고, 가난한 집 자식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자기 스스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유로 해서 여러분의 가치가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자기 스스로 발견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모토부치 교이치 군도 자신만은 특별하다는 오해를 해서는 안 돼!」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교이치는 털썩 주저앉았다. 사카모치는 잠시 교이치를 노려보다가, 다시 싱글싱글 웃는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여러분에 관한 소식이 뉴스에 나갔습니다. 물론 프로그램은 비밀 실험이기 떄문에 종료될 때까지 자세한 내용은 발표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연락을 다 해 두었습니다.」 

 

　아직 모두들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클래스메이트끼리 서로 죽이라고? 설마! 

 

　「뭐야. 아직 믿어지지 않는다는 건가, 여러분은?」 

　사카모치는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나서 입구 쪽을 향해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봐─ 들어와─」 

 

　그러자, 다시 입구의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리며 세 명의 사내가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세 사람 모두 얼룩무늬 전투복에 전투화, 분홍색 마크가 정면에 찍힌 철제 헬멧을 쓰고 있었다. 전수방위군 병사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어깨에는 라이플을 메고 있었고, 허리 벨트의 홀스터에는 자동 권총의 손잡이가 보였다. 

 

　한 사람은 묘한 곱슬머리에 키가 컸다. 상당히 실없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또 한 사람은 중간 키에 얼굴이 어려 보이는 미남이다. 마지막 한 사람은 피부가 약간 탔으며, 다른 두 사람에 비해 얼굴 윤곽이 뚜렷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두꺼운 비닐로 만든 커다란, 검은 슬리핑 백 같은 것을 안고 있었다. 파인애플이라도 들었는지, 여기저기가 불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사카모치가 창가로 가자, 세 사람이 슬리핑 백 같은 것을 교단 위에 올려놓았다. 교단 가장자리로 양쪽 끝이 삐죽이 튀어나왔는데,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상당히 부드러운지, 창가를 향한 쪽이 유난히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사카모치가 말했다. 

 

　「소개합니다. 여러분의 프로그램을 도와줄 다하라 군, 곤도 군, 노무라 군입니다. 자, 보여드리지.」 

　이름이 다하라인 듯한, 실없이 보이는 사내가 복도 방향에서부터 슬리핑 백의 지퍼를 잡고 지익, 잡아당겼다. 뭔가 붉은 액체에 젖어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아직 지퍼가 다 열리기도 전에, 맨 앞쪽에 있던 한 여학생이 소리를 질렀고, 바로 뒤이어 몇 사람이 더 비명을 질렀다. 

　「엥, 뭐야?」 라는 소리와 함께 덜컹덜컹, 책상과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고, 바로 소프라노의 합창처럼 높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슈야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막 반쯤 열린 슬리핑 백 안에는, B반 담임인 하야시다 마사아키 선생님이 있었다. 아니, 이제는 옛 담임인가? 아니, 그것은, 전에 하야시다 선생님이었던 사람의 시체였다. 옅은 블루 그레이색 양복은 피에 젖어 있었다. "잠자리"라고 하는 애칭의 원인이 된 검은 테의 큰 안경은 왼쪽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긴, 머리가 왼쪽 반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뿐인 렌즈 아래로 새빨갛게 물든 유리구슬처럼 툭 튀어나온 눈이 천장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남아있는 머리카락에 군데군데 뇌수같은 회색 젤리가 묻어 있다. 손목시계를 찬 왼팔이, 좁은 곳에서 빠져 나와 시원하다는 듯이, 슬리핑 백에서 교단 앞쪽으로 늘어져 있었다. 제일 앞줄에 앉은 사람에게는 그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고 있는 것까지 보였을지도 모른다. 

 

　「자, 자, 자. 조용히, 조용히, 조용히. 정말이지, 너희들은…」 

 

　사카모치가 손뼉을 짝짝 쳤지만, 여학생들의 비명은 가라앉지 않았다. 갑자기 이름이 곤도인 듯한, 어려 보이는 얼굴의 병사가 권총을 뽑았다. 슈야는 천장을 향해 위협사격을 하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병사는 한 손으로 하야시다 선생님이 들어 있는 슬리핑 백을 옴켜쥐고, 그 것을 교단에서 끌어내렸다. 하야시다 선생님의 머리를 위로 향하게 하여, 자기 얼굴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아주 큰 도롱이 벌레와 격투하는 SF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했다. 

 

　병사는 그대로 하야시다 선생님의 머리에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하야시다 선생님의 머리 잔해가 흩어졌다. 뇌와 뼈의 파편이 고속 충탄의 에너지 때문에 피와 범벅이 되어, 맨 앞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얼굴과 가슴에 안개처럼 내려앉았다. 총성의 메아리가 가라앉자, 하야시다 선생님의 머리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병사가 교단 옆에 하야시다 선생님을 내던졌다. 비명은 이미 그쳐 있었다. 서 있던 학생들이 대부분 슬금슬금 주저앉았다. 제일 가장자리에 있던 얼굴 윤곽이 뚜렷하지 않는 병사가 하야시다 선생님의 시신이 들어 있는 슬리핑 백을 교실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가자, 다른 두 명은 나란히 교단 옆쪽으로 가서 섰다. 사카모치가 다시 교단으로 돌아왔다. 침묵이 흘렀다. 누군가가 뒤쪽에서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더니, 바닥에 토하는 축축한 소리가 이어졌다. 이윽고 역한 냄새도 풍겨왔다. 

 

　「잘 듣도록, 하야시다 선생은 여러분을 프로그램 대상으로 삼는데 굉장히 반대했었다.」 

　사카모치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면서 조용히 말했다. 

　「아, 예상치 못한 일이고, 우리도 미안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교실 안은 아주 조용해졌다. 모두가 깨달은 것이다. 이건 분명 현실이다. 농담이 아니다. 자기들은 이제부터 서로를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슈야는 그제야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눈 앞에서 진행되는 사태가 워낙 비현실적이라 멍했던 머리가, 하야시다 선생님의 처참한 시체 덕분에, 그리고 그 시체가 등장한 끔찍한 쇼 때문에 제 정신이 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서 도망쳐야만 한다. 그렇다. 어쨌든 구니노부 요시토키 그리고 미무라 신지, 스기무라 히로키와 의논해야 한다. 그런데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그 상세한 내용은 일반 국민들에겐 공개되어 있지 않다. 무기를 받아들고 서로를 죽인다고 하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서로 대화는 나눌 수 있을까? 정부는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일까? 

 

　「아, 나는─」 하는 목소리에 슈야의 생각은 끊겼다. 고개를 들고 눈을 떴다. 

　구니노부 요시토키가 엉거주춤 일어서서, 과연 말을 계속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직 판단을 못 내린 듯이, 사카모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발언을 할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말이 그만 입 밖으로 나와 버린 듯한 표정이었다. 슈야는 바짝 긴장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는 안돼. 요시토키! 

 

　「뭔가? 뭐든 물어봐라!」 

　사카모치가 싱긋 웃었다. 요시토키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말을 이었다. 

 

　「나는 부모가 없는데, 누구에게 연락했지?」 

　「아하.」 

　사카모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복지시설에서 사는 학생이 있었지. 나나하라 슈야 군인가 자네가? 내신서에 따르면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던데, 그리고…」 

　「나나하라 슈야는 나다.」 

　슈야는 거의 악을 쓰다시피 하면서 끼어들었다. 사카모치는 힐끔 슈야를 쳐다보더니, 다시 요시토키에게 눈길을 돌렸다. 요시토키도 왠지 멍해 보이는 표정을 한 채, 슈야를 잠깐 돌아보았다. 

 

　「아아. 미안, 미안. 또 한 사람이 있었지. 자네는 구니노부 요시토키 군이지. 그래, 자네들 두 사람의 경우에는 살고 있는 시설의 관장님에게 분명히 연락을 했어요. 그래, 예쁜 여자였지.」 

　사카모치는 자기 자신이 직접 그녀를 만나고 왔다는 뉘앙스로 말하며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은 아주 즐거워 보였지만, 어딘가 불쾌한 구석이 있었다. 슈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 안노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 

　「하야시다 선생과 마찬가지였다. 너희들 소식을 듣고는 저항을 해서. 얌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약간 좀….」 

　사카모치는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맛 좀 보여줬어. 아─, 걱정하지는 않아도 돼, 죽지는 않았으니까.」 

 

　붉은 빛을 띤 분노가 슈야의 가슴 속에서 솟구쳤다. 그러나 슈야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요시토키의 「패 죽여 버릴 테다!」 라고 하는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요시토키는 벌떡 일어나 있었다. 표정이 완전히 변했다. 항상 누구하고나 잘 지내고, 무슨 일이 있어도 거의 화를 내지 않는 요시토키가, 드물게 진짜로 화를 낼 때만 볼 수 있는 표정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본적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슈야는 오래 함께 살아오면서 두 번 정도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있다. 

 

　한 번은 "자혜관"에서 키우는 개 "에디"가 문 앞에서 자동차에 친 일이 있었는데, 운전자가 그냥 뺑소니를 쳐, 그를 쫓아갔던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그리고 또 한번은 약 1년 전, 자혜관의 빚을 빌미로 안노 선생님에게 치근대던 사내가, 간신히 돈을 마련한 안노 선생님으로부터 결국은 딱지를 맞고 나서, 일부러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안노 선생님에게 욕을 퍼부을 때였다. 슈야가 말리지 않았다면, 요시토키는 자신이 크게 다치더라도 그 사내의 앞 이빨 정도는 부러뜨려 놓았을 것이다. 요시토키는 정말, 아주 착했다. 자기가 바고 취급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어지간한 일은 웃으며 용서해 주는 녀석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를 입게 되었을 때만은 아주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슈야는 그런 요시토키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죽여 버리겠어, 콱!」 

　요시토키가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죽여서 똥통에 처박아 버릴 테야!」 

　「흥!」 

　사카모치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구니노부 요시토키!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냐, 그거? 잘 들어라. 사람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해.」 

　「웃기지 마! 꼭 죽여 버리고 말 테다. 두고 봐라!」 

　「요시토키! 그만 둬!」 

　슈야가 외쳤지만 요시토키의 귀에는 들리지않는 듯 했다. 사카모치가 이번에는 달래듯, 이상하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정부를 거스르겠다는 거야.」 

　「죽여 버릴 테야!」 

 

　슈야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다시 한 번 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사카모치가 고개를 저으며, 교단 옆에 서 있는 세 명의 전수 방위군 병사를 향해 손으로 슬쩍 신호를 보냈다. 

　포 플래시 맨이나 그 비슷한 그룹 같은, 어쨌든 코러스 그룹 같은 모습이었다. 다하라, 곤도, 노무라, 이 세명의 얼룩무늬 옷을 입은 사내들은 똑같은 동작으로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멋진 장면, 감정이 듬뿍 담긴 포즈, 다만 그들의 손에는, 물론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코러스는 예를 들면 이런 느낌. 베이비 플리즈, 베이비 플리즈, 스펜드 디스 나이트 위드 미─. 

　비스듬히 뒤쪾에 앉은 슈야는 요시토키의 동그란 눈이, 순간 더욱 커지는 것을 보았다. 

 

　세 자루의 자동 권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책상 사이로 반쯤 발을 내딛듯이 서있던 요시토키의 몸이, 마치 부갈루 춤을 추듯 움직였다. 요시토키의 바로 뒤에 앉은 나카가와 노리코를 비롯해, 다른 아이들이 몸을 움츠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총소리의 메아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요시토키는 천천히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자기 자리와 오른쪽의 가나이 이즈미 자리 사이에 털썩 쓰러졌다. 가나이 이즈미가「헉!」하고 비명을 질렀다. 

　3인조는 오른손을 수평으로 뻗은 포즈 그대로 서 있었다. 그 총구에서는 아직도 가느다란 연기가 나란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교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슈야는 보았다. 책상 다리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동그란 눈을 부릅뜬 채로, 바로 눈 아래, 교실 바닥의 한 지점을 보고 있다. 바닥에 붉은 피가 주르륵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바닥에 내던져진 오른쪽 어깻죽지부터 손가락 끝까지, 경련을 일으킨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요시토키! 

　슈야는 자리에 일어나 달려가려 했지만, 요시토키의 바로 뒷자리에 있는 나카가와 노리코가 더 빨랐다. 

 

　「노부!」 

　하고 비명을 지르며 요시토키의 곁에 꿇어앉으려고 했다. 그런 노리코를 향해 이번에는 실없어 보이는 사내가 혼자서 방아쇠를 당겼다. 노리코가 발목에 딴죽이 걸린 듯 앞으로 고꾸라지며, 아직도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요시토키의 몸 위에 털썩 엎어졌다. 실없어 보이는 사내는 바로 슈야에게 총구를 돌렸다. 슈야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선 상태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시선만 움직여, 요시토키 위에 엎어져 있는 노리코를 보았다. 오른쪽 종아리에서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멋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라.」 

　사카모치가 노리코에게 말했다. 그리고 슈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네도 마찬가지다, 나나하라 슈야 군! 자리에 앉아.」 

　슈야는 점점 피에 젖어 가는 노리코의 다리, 그리고 그 옆에 요시토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사카모치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쇼크때문에 자기 목 언저리의 근육이 푸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뭐야!」 

　실없어 보이는 사내가 여전히 자기 미간을 정통으로 겨누고 있어, 슈야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거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짓이야! 요시토키를, 요시토키를 치료해 줘야지. 노리코도─.」 

　자기 몸 아래 깔린 요시토키를 보고, 노리코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사카모치 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았다. 총에 맞은 상처의 통증이 심했을 테지만, 그보다는 분노가 더 컸던 모양이다. 눈썹을 치켜 올리고 있었다. 

 

　「요시토키를…」 

　한 마디씩, 또렷하게 말했다. 

　「치료해 주세요.」 

 

　요시토키의 오른팔은 아직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도 그 떨림은 급속하게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장 조치를 취해야만 할 치명적인 상처임이 분명했다. 사카모치는 휴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확인해 주게, 다하라 군!」 

　하고 실없어 보이는 사내에게 말했다. 

 

　뭐? 생각할 틈도 없이, 실없어 보이는 사내가 다시 총을 움직여, 약간 아래 방향으로 탕, 하고 방아쇠를 한 번 당겼다. 구니노부 요시토키의 머리가 꿈틀 튀어 올랐다. 그 머리에서 튀어나온 뭔가가 노리코의 얼굴에 쏟아졌다. 넋이 나가 입을 벌리고 있던 노리코 얼굴에, 검붉은 점들이 생겨났다. 슈야는 자기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졌다. 머리의 일부가 업어졌는데도, 요시토키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의 한 점 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경련은 사라진 뒤였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자.」 

　사카모치가 말했다. 

　「이제 죽었다. 알았으면 둘 다 자리에 앉도록.」 

　「아…」 

　요시토키의 그 부서진 머리를 내려다보던 노리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럴 수가…」 

　슈야도 마찬가지로 넋이 나갔다. 책상과 책상 사이에 쓰러져 있는 요시토키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치 자기 자신의 뇌수가 터져버린 것처럼 사고회로가 마비되었다. 그 멍한 머릿속을 요시토키와 함께 지낸 시간의 기억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캠프나 급류타기 같은 작은 모험들, 낡아빠진 보드 게임에 정신이 팔려 있던 장마철, 몰래 유통되던 미국 영화 「블루스 브라더스」가(이상하게도 제대로 더빙이 되어 있었다. 성우의 목소리야 형편없었지만) 역시 보육원 출신 두 명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어, 한동안 「제이크와 엘우드 놀이」에 신이 났던 일, 그리고 바로 얼마 전 「나, 좋아하는 애가 생겼어」 라고 말하던 요시토키의 표정, 그리고….

 

　「들리지 않나. 둘다.」 

　사카모치가 반복했다. 그러나 슈야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슈야는 계속 요시토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리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계속 그 상태로 있었다면 두 사람 모두 구니노부 요시토키의 뒤를 따르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카모치 곁에 있던, 실없이 보이는 병사는 노리코를, 그리고 나머지 두 병사는 슈야를 총으로 겨누고 있었다. 

 

　그 순간,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하는, 맥빠지는, 그래서 경박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슈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적어도 소리가 난 쪽으로 넋 나간 표정의 얼굴을 돌렸다. 빈 자리가 된 요시토키의 책상 너머에서 미무라 신지가 손을 들고 있었다. 노리코도 마침내 그 쪽을 바라보았다. 

　「음─. 자네는 미무라 신지 군인가? 뭐지?」 

　신지는 손을 내리고 말했다. 

　「나카가와 노리코가 다쳤는데, 자리로 돌아오는 걸 도와줘도 됩니까?」 

　보통이 아닌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전혀 변함이 없는 "제３의 사나이"의 말투였다. 사카모치는 눈썹을 약간 치켜 올렸지만,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해 줘라. 선생님은 진도를 빨리 나가고 싶으니까.」 

 

　그러자, 신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노리코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주머니에서 깔끔하게 접은 반다나를 꺼내 들고, 요시토키의 시체와 노리코 사이에 무릎을 꿇었다. 먼저 요시토키의 피가 튄 노리코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노리코는 거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런 다음, 신지는, 「자, 일어서.」 라고 말하며 노리코의 오른 쪽 팔 아래 손을 넣어, 노리코가 일어서도록 도왔다. 그리고 사카모치를 등진 신지는 노리코를 부축하면서, 아직도 엉거주춤 서 있던 슈야 쪽을 바라보았다. 시원스럽게 치솟은 눈썹 아래, 평소에는 약간 유머가 담겨 있던 눈이, 지금은 진지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른쪽 눈만 치켜뜨며, 고개를 살짝 젓듯이 턱을 움직이고, 왼손을 슬쩍 아래로 누르는 듯한 동작을 해 보였다. 슈야는 그 의미를 깨달았다. 

 

　신지가 또 한 번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슈야는 아직도 제 정신은 아니었지만, 신지가 "진정해" 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지의 눈을 마주보며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신지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나서, 노리코를 자리에 앉힌 다음, 돌아서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은 노리코의 오른쪽 다리, 그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러 나와 흰 양말과 스니커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오른쪽 다리만 산타클로스의 빨간 부츠를 신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노리코는 그제야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는지, 고맙다고 말을 하려는 듯이 신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신지는 마치 뒤가 보이기라도 한다는 듯이, 어깨를 움직여 말을 막았다. 노리코는 몸을 뒤로 당겨, 다시 자기 오른쪽에 쓰러져 있는 요시토키를 내려다보았다. 울음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리코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는 것 같았다. 

 

　슈야도 책상 틈새로 보이는 구니노부 요시토키의 시체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랬다. 의심할 나위 없이, 그것은 시체였다. 아직 잘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그것은 시체였다. 10년 동안 함께 지내 온 자기 친구의 시체인 것이다. 요시토키의 여전히 부릅뜬 눈을 보고 있다 보니, 슈야의 마음 속에서 분노가 일어나더니, 요동치기 시작해 조금씩 더 커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는 슈야의 온몸을 쿵쿵거리며 뒤흔드는 것 같았다. 쇼크 때문에 마비되었던 감정이 돌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슈야는 이를 악물고, 사카모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카모치는 슈야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용서할 수 없다, 절대로. 죽여 버리고 말 테다! 

 

　조금만 더 그대로 있었다면 슈야는 요시토키와 마찬가지로 끝장이 났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바로 그 때, 미무라 신지가 방금 자기에게 진정하라고 사인을 보내왔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랬다, 물론 지금 여기서 박살이 나 버리면 자기는 요시토키와 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름 아닌 요시토키가 좋아했던 여학생인 나카가와 노리코는 지금 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이다. 자기가 죽어 버리면 나카가와 노리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슈야는 억지로 사카모치에게서 눈길을 돌려,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출구를 찾지 못하는 분노와 슬픔 때문에 자신의 심장이 터져 버리는 것 같았다. 사카모치가 후후, 하고 웃으며 슈야로부터 시선을 거둔 것 같았다. 

 

　슈야는 그냥 놔두면 덜덜 떨릴 것 같은 몸을 어떻게든 진정시키려고, 책상 아래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세게, 더 세게 움켜쥐었다. 그렇지만 바로 눈 앞에 요시토키의 시체가 쓰려져 있는 상황에서, 억지로 기분을 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잃는다고 하는 것,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누군가를 잃는다고 하는 일이….

　요시토키는 내내 나와 함께 지내오지 않았는가? 물론 대단한 추억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둘이서 물놀이 갔다가 요시토키가 물에 빠졌을 때는 내가 구해 주었다. 반은 장난삼아 메뚜기를 잔뜩 잡아 작은 상자에 넣어서 거의 전부 죽어 버렸을 때는 둘이 함께 반성했다. 키우던 개인 "에디"가 누구를 더 잘 따르는가 다투기도 했고, 언젠가는 장난기가 발동해 학교 교무실 지붕 아래로 숨어들었다가, 들킬 뻔하여 간신히 도망친 뒤에 배를 잡고 웃었던 그 요시토키는 정말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잃은 건가? 

 

　신지가,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선생님.」 하고 손을 들었다. 

　「또냐? 그래, 뭐지?」 

　「나카가와 노리코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프로그램이라는 걸 한다고 하는데, 불공평한 것 아닙니까?」 

　그러자 사카모치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음, 뭐 그렇긴 하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니까 노리코를 치료하고, 나을 때까지 좀 연기할 수 없습니까, 이걸?」 

 

　격한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를 쓰던 슈야였지만, 미무라 신지의 그 차분한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의미에서 감탄을 했다. 감탄할 감정의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그랬다. 미무라 신지는 분명히 슈야보다는 훨씬 냉정했던 것이다. 신지의 말대로 된다면 자기들은 시간여유를 가질 수가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탈출할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카모치는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로구나, 미무라 신지.」 

　그러나 사카모치는 다른 해결책을 내놓았다. 

　「좋아, 그럼. 나카가와 노리코를 죽이면 공평해지나?」 

 

　노리코 자신은 물론 교실 안에 다시 긴장이 가득 찼다. 신지의 교복 안에서 등의 근육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신지가 바로 대답했다. 

　「취소, 취소. 정말 싫다.」 

 

　그 꺼벙한 말투에 사카모치는 다시 크게 웃엇다. 아까부터 홀스터에 손을 뻗고 있던 실없어 보이는 사내의 오른손도, 어깨에서 등 쪽으로 맨 라이플의 띠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서 사카모치가 손뼉을 짝짝 쳤다. 

 

　「자, 잘 들으세요. 여러분의 능력은 애당초 각자 다 다릅니다. 지능이라거나 체력이라거나 여러 가지 능력이 있는데, 애당초부터 불공평한 겁니다. 그러나 나카가와 노리코의 치료도 해 줄 수가… 야, 거기! 잡담하지 마!」 

 

　사카모치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슈야 앞쪽, 반장인 우츠미 유키에의 옆에서 뭐라고 말을 걸려 하고 하고 있던 후지요시 후미요(여자 18번)를 향해 뭔가 하얀 물체를 던졌다. 슈야는 순간 분필인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퍽, 하고 관에 목을 박는 듯한 소리가 나고, 후미요의 하얗고 약간 턱은 이마 한복판에 뾰족한 나이프가 꽂혔다. 유키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후미요는 후미요대로 이마에 박힌 그 나이프를 확인하려고 필사적으로 눈을 치켜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보니 고개가 자연히 뒤로 젖혀졌다. 다음 순간,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쓰러질 때, 옆에 앉은 유키에의 책상에 왼쪽 관자놀이 부분이 걸려, 책상이 덜컹 하고 움직였다. 이번에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마에 나이프가 박혀 있는데, 어떻게 살아 있을 수가 있겠는가? 

 

　이제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유키에는 숨을 삼키며, 후미요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리코도 멍한 표정으로 그쪽을 보고 있었다. 미무라 신지도 입술을 움츠리고, 요시토키와 마찬가지로 책상 사이에 쓰러진 후미요를 바라보았다. 바짝 마른 목구멍으로 침을 삼키면서 슈야는 생각했다. 기분 내키는 대로군. 제 멋대로야, 제길! 우리들의 생사는 저 사카모치라고 하는 개자식이 쥐고 있구나! 

 

　「아, 이런. 미안. 선생님이 죽이면 룰 위반인데.」 

　사카모치가 눈을 꾹 감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나 바로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멋대로 구는 행동은 금지다. 잡담도 금물이다. 잡담하는 녀석에게는, 선생님도 괴롭지만 나이프를 던지겠다.」 

 

　슈야는 이를 악물고, 그저 참아야 한다고 자기 자신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두 명의 클래스메이트가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이 상황에서는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자꾸 요시토키의 얼굴에 눈이 가는 것은 피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지고 말 것만 같았다. 

  

【남은 인원 40명】

 

 

　「그럼 룰을 설명하겠습니다.」 

　사카모치는 다시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야시다, "잠자리" 선생님의 말라붙은 피와는 달리, 구니노부 요시토키가 막 쏟아낸 피비린내가 교실 안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후지요시 후미요의 얼굴은 슈야가 있는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피는 거의 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들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룰은 간단합니다. 서로를 죽이면 되는겁니다. 반칙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카모치는 히죽 웃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총통 폐하의 표창장도 받게 되고… 대단하죠?」 

　슈야는 마른침을 삼켰다. 

 

　「여러분은 지나친 룰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알겠어요?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 자신을 확실하게 다잡아 놓아아죠. 이번에는 그 연습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녀 평등이니까, 남녀의 핸디캡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학생들에게 기쁜 소식을 하나 들려 주겠어요.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실시한 결과를 보면, 우승자 가운데 무려 49퍼센트가 여자라는 사실입니다. 다 사람 나름이라는 거예요. 겁 먹을 것 없습니다.」 

 

　그리고 사카모치의 지시에 따라, 얼룩무늬 트리오가 복도에서 검은 나일론 천으로 된 데이 팩을 교실 안으로 옮겨 들이기 시작했다. 그 데이 팩들은 하야시다 선생님의 시체 바로 옆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 안에는 몽둥이 같은 것이 들어 있는지, 비스듬하게 삐죽 튀어나온 것도 있었다. 

 

　「그럼 한 명씩 여기서 나가게 될 겁니다. 각자 출발하기 전에 이 데이팩을 받게 됩니다. 안에는 약간의 음식과 음료수, 무기가 들어 있어요. 무기는 각각 다른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여러분들은 각자 능력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약간 불확정적인 요소, 아, 좀 어려운 용어인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모르는 요소를 늘리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어느 데이 팩을 주는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위에서 순서대로 집어 줄 겁니다. 그리고 데이 팩 안에는 이 섬의 지도와 자석, 시계도 들어 있습니다. 시계가 없는 사람 있나? 음… 없나? 아, 내가 깜빡 까먹었군. 이곳은 섬입니다. 둘레가 6킬로미터 정도 되는. 프로그램 실시 장소로는 처음 선정된 곳이지만, 주민들은 이미 다 내보냈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그리고…」 

 

　사카모치는 칠판을 향해 돌아서더니, 분필을 들고, 자기 이릎 옆에 약간 둥글게 보이는 마름모꼴을 큼직하게 그렸다. 오른쪽 윗부분에 위로 향한 화살표와 "N" 이라고 하는 글자를 써넣었다. 마름모꼴 한복판에서 약간 오른쪽에 표를 하더니, 분필을 칠판에댄 채로 얼굴만 돌렸다. 

 

　「잘 들어요. 여기가 이 섬의 분교입니다. 이 그림을 섬이라고 하면 분교는 여기, 알겠어요?」 

　사카모치는 표시를 분필로 쿵쿵 두드렸다. 

　「선생님은 계속 여기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볼 거예요.」 

　그러더니 사카모치는 섬을 표시하는 마름모꼴 주변에 거의 동서남북으로 흩어진 형태로, 추 모양의 표시를 네 개 그려 넣었다. 

　「배입니다. 바다로 도망치는 사람을 사살하는 게 주요 임무입니다.」 

 

　이번에는 섬 위에 종횡으로 평행선을 몇 개 그렸다. 섬을 나타내는 마름모꼴은 왠지 불에 타서 찌그러진 그물처럼 보였다. 사카모치는 그 그물코 안에 왼쪽 위부터 A=1, A=2, …하는 식의 기회를 순서대로 적어 넣었다. 다음 줄에는 B=1, B=2, …하는 식이었다. 

　「이건 대략적인 그림이긴 하지만, 데이 팩 안에 있는 지도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카모치는 분필을 놓고, 손을 탁탁 털었다. 

 

　「그럼 잘 들으세요.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건 상관없습니다. 그렇지만, 오전, 오후, 0시와 6시에 섬 전체에 방송을 합니다. 하루에 네 번이죠. 그 때 이 지도의 표시에 따라 몇 시부터 이 지역은 위험하다, 라고 선생님이 알려줄 겁니다. 지도를 잘 보고, 자석과 지형을 이용하여 재빨리 위치를 파악한 다음, 그 지역을 빠져나가세요. 왜 그러느냐 하면…」 

　사카모치는 교단에 손을 짚고, 학생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건 바로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목걸이 때문입니다.」 

 

　그러자 몇 사람인가가 그제야 목걸이의 존재를 알게 된 듯이 자기 목덜미를 더듬어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우리 공화국의 하이테크 기술을 결집하여 만든 것입니다. 완전 방수, 충격 방지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아아, 안됩니다. 절대로 벗지 말도록. 떼어내면 안 됩니다. 만약에 억지로 벗어내려 하면…」 

　사카모치는 잠시 숨을 돌린 뒤 말했다. 

　「폭발합니다.」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몇 사람이 깜짝 놀라 손을 뗐다. 사카모치는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목걸이는 여러분의 심장 전류 박동을 모니터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이 분교에 있는 컴퓨터까지 전파를 보내 알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분이 섬의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럼 다시 지도 이야기를 합시다.」 

 

　사카모치는 오른팔을 뒤로 뻗어, 칠판의 지도를 가리켰다. 

 

　「선생님이 "이 구역은 위험하다" 고 알려주는 구역은 분교의 컴퓨터가 무작위로 선정한 지역입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안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아, 이미 죽은 사람은 관계없고, 살아 있는 사람이 남아있으면 컴퓨터가 자동적으로 식별하여 여러분 목걸이에 거꾸로 전파를 보냅니다. 그러면…」 

 

　슈야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 목걸이는 역시 폭발합니다.」 

 

　예측대로였다. 사카모치는 잠시 말을 멈춘 뒤, 학생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아, 왜 그러느냐고? 그건 말이야, 여러분이 한 곳에 숨어 있기만 하면 게임이 진행되지 않잖아요? 그래서 여러분이 움직이게 해야만 하거든요. 따라서 여러분이 움직일 수 있는 구역은 점점 좁아져요. 알겠죠?」 

 

　사카모치는 그것을 "게임" 이라고 불렀다. 진짜 밥 맛 없는 표현이지만, 어울리는 표현이기는 했다. 그리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상황은 이해한 것 같았다. 

 

　「말하자면 건물 안에만 있어도 안 되는 겁니다. 굴을 파고 숨어 있어도 전파는 닿죠. 아, 그래, 그렇지. 이것도 설명해야겠군. 건물 안에 숨건 말건 그것은 본인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전화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에게 연락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모두 혼자서 싸워야 합니다. 원래 인생이란 그런 겁니다. 자, 그러면 아까 이야기한 위험 구역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그 목걸이가 폭발할 금지 구역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분교가 있는 지역만은 예외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출발하고, 20분 뒤에 금지 구역이 됩니다. 그러니 일단 여기서 멀리 떨어져 주세요. 그래요, 최소한 200미터는 떨어져야 합니다. 알겠죠? 아, 그리고 방송은 6시간마다 합니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시간제한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계속 죽어 갈 텐데, 24시간 동안 죽은 사람이 없으면 바로 그 때, 시간 제한에 걸리는 겁니다. 몇 명이 살아남아 있건 관계없이…」 

 

　슈야는 다음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컴퓨터가 작동해서 남은 사람 전원의 목걸이가 폭발합니다. 그리고 우승자는 없습니다.」 

 

　예상대로였다. 

　사카모치가 아무 말을 안하자, 교실 안은 침묵에 빠졌다. 여전히 구니노부 요시토키의 피 비린내가 짙게 났지만,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자기들이 이제부터 살인 게임에 투입된다고 하는 상황이….

 

　「자, 복잡한 설명은 다 끝났습니다. 이제부터 더 중요한 내용을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이 어드바이스 하는 겁니다. 잘 들으세요. 클래스메이트끼리 서로 죽인다니, 이럴 수가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잊지 마세요. 다른 학생들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슈야는 헛소리다,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아까 "후지요시 후미요(잡담으로 인한 처형)"가 떠올라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도 말이 없었지만, 다만 이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슈야는 확실히 느꼈다. 

 

　누구부터라고 할 것도 없이 주위로 눈을 돌려, 서로가 서로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당황해서 얼굴을 사카모치 쪽으로 돌렸다. 아주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각자의 얼굴에 떠오른 그 표정은 변하지는 않았다. 일그러진, 의심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눈 앞에 있는 이 녀석은 이미 싸울 마음가짐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눈치였다. 차분해 보이는 것은 미무라 신지와 그 밖의 몇 사람뿐이었다. 슈야는 또 이를 악물었다. 제길, 그거야 저 놈들이 노리는 거 아니야? 다들 잘 생각해 봐, 우리는 친구야. 서로를 죽일 수는 없는 거잖아! 

 

　「자, 그럼 확인, 확인. 책상 서랍 안에 종이와 연필이 들어 있으니 꺼내세요.」 

　다들 머뭇머뭇 종이와 연필을 꺼냈다. 슈야도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럼 쓰기 시작합니다. 뭔가 암기를 할 때는 쓰는 게 최고입니다. 씁시다! 우리는 서로 죽인다. 세 번 쓰세요.」 

 

　연필이 종이 위를 달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노리코가 어두운 표정으로 연필을 잡는 것이 보였다. 슈야도 그 터무니없는 문장을 갈겨쓰면서 책상 사이로 보이는─바닥에 나뒹굴고 있는─요시토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언제이던가, 요시토키가 밝게 웃던 얼굴이 되살아났다. 사카모치가 계속해서 말했다. 

 

　「자,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 이것도 세 번 쓰세요.」 

 

　후지요시 후미요 쪽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세일러복 소매 밖으로 나온 하얀 손가락은 작은 그릇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학급의 보건위원으로 무척 조용했지만 다른 애들에게 잘 대해주던 여자 아이였다. 그리고 사카모치를 바라보았다. 

 

　개자식, 이 연필을 심장에 박아 넣어 줄 테다! 

 

　「자, 그럼 한 사람씩, 2분 간격으로 교실을 나갑니다. 이 교실 문을 나가서 복도를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분교의 출구가 있습니다. 출발하면 바로 그 출구로 나갈 것. 복도에서 우물쭈물하면 사살합니다. 그러면 누구부터 출발하느냐 하는 게 문제인데, 일단 프로그램의 룰에 따르면 누구든 일단 제일 먼저 나갈 사람을 결정하고, 그 사람 다음부터는 출석번호 순서대로입니다. 남자, 여자, 남자, 여자 하는 식으로. 그렇게 해서 마지막 번호까지 가면 출석 번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설명을 듣고, 슈야는 나카가와 노리코가 여자 15번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자기와 같은 번호였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기는 노리코와 함께 여기를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노리코가 맨 처음이고 자기가 맨 마지막이 되지 않는 한). 그런데 노리코가 걸을 수 있을까? 

 

　사카모치가 가슴 쪽의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맨 처음에 나갈 사람은 제비뽑기로 뽑았는데, 여기 그 결과가 들어있습니다. 잠깐 기다리도록…」

 

　사카모치는 주머니에서 꺼낸 핑크빛 리본이 달린 가위를 꺼내, 조심스럽게 봉투의 끄트머리를 오려내기 시작했다. 

　그 때 기리야마 가즈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도 미무라 신지와 마찬가지로 차분했다. 그러나 기리야마의 목소리는 약간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언제 시작되는 건가, 이 게임은?」 

 

　모두들 맨 뒷줄에 앉아 있는 기리야마를 돌아보았다(기리야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껌을 씹고 있었다). 사카모치가 가위질을 계속하면서 대답했다. 

　「여기서 나가면 바로 시작이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일단 몸을 숨기고 각자 작전을 짜는 것이 좋겠지? 마침 지금은 밤중이니까.」 

　기리야마는 달리 말이 없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슈야는 지금이 한밤중, 오전 1시, 아니 이미 1시 30분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카모치가 가위질을 끝내고, 안에 들어 있는 백지를 꺼내 펼쳤다. 

 

　호, 하고 놀라는 듯이 입을 둥글게 오므리더니, 「우연이군, 남자 1번 아카마츠 요시오.」 라고 말했다. 창(칠판)쪽 주의 제일 앞에 있던 아카마츠 요시오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키 180센티미터, 몸무게 90킬로그램이나 되는 큰 덩치지만, 정면으로 오는 가벼운 플라이성 타구도 잡지 못하고, 장거리 달리기에서는 트랙 한 바퀴만 돌아도 지쳐버리며, 체육 시간에는 항상 실수만 하는 요시오의 두툼한 입술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요시오 군, 어서 일어나세요.」 

　사카모치가 독촉하자, 요시오는 수학여행을 위해 준비해 온 자기 짐을 안고, 머뭇머뭇 자리에서 일어섰다. 앞으로 나가자, 이미 라이플을 허리춤에 옮겨 잡은 얼룩무늬 3인조에게 떠밀려, 데이 팩을 받아들고 어둠을 향해 열려 있는 문 앞에 섰다. 잠시 겁먹은 표정으로 다른 클래스메이트들을 돌아보았지만, 다음 순간 문 밖으로 사라졌다. 두세 걸음 걷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 쿵쾅쿵쾅 하고 달리는 소리로 변하고, 그 소리도 멀어져 갔다. 한 번 넘어지는 소리가 났지만,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조용한 교실 안에서, 몇 사람인가가 숨을 죽이고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2분 간격을 두겠습니다. 다음은 여자 1번, 이나다 미즈호 양이군.」 

　이런 식으로 호명과 출발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여자 4번인 오가와 사쿠라가 출발할 때, 슈야는 뭔가를 보았다. 사쿠라는 슈야의 두 칸 뒤인 맨 뒷자리였는데, 교실 앞쪽 출구까지 걸어가는 동안에 슈야의 바로 앞에 앉은 자신의 애인 야마모토 가즈히코의 자리를 손으로 짚는 척하면서 종이쪽지 같은 것을 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서로 죽인다" 라고 쓴 그 종이에 뭔가 메시지라도 적은 것일까? 

　그걸 본 것은 슈야뿐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사카모치가 눈치를 챈 것 같지는 않았다. 가즈히코는 그 종이 쪽지를 얼른 손으로 집어, 책상 밑에서 꼭 쥐었다. 슈야는 아직 광기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약간 안심했다.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된 끈은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쪽지에 적힌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쿠라가 교실을 나가고나서 슈야는 생각했다. 어쩌면 사카모치가 칠판에 그린 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저 기호를 적은 것은 아닐까? 거기서 기다렸다가 서로 만나자고? 그러나 저 지도는 아무래도 너무 대충 그린 것 같다. 우선 지급된 지도가 칠판에 그려진 상태 그대로라고는 할 수 없다. 방향이나 거리 같은 것을 적었을까? 그리고 둘이서만 만난다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다른 모두를 믿지 않는다는, 다른 애들은 자기들을 죽일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사카모치가 노리는 것이다. 

 

　슈야는 생각했다. 여기를 나가면 어떤 곳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자기 바로 뒤에 나올 녀석을 기다렸다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을 것이다. 사카모치가 말한 룰에 따르면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막지는 않는 것 같았다. 다들 의심으로 가득 차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차분히 이야기하면 좋은 대책을 의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리코는 자기 바로 뒤에 나온다(노리코는 걸을 수 있을까?). 미무라 신지도 그 다음이다. 스기무라 히로키는 먼저 나갈 테지만.

　슈야는 스기무라 히로키에게 메모를 전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자리가 너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서툰 짓을 하다가는 후지요시 후미요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금방 스기무라 히로키의 출발 순서가 왔다. 교실 앞의 미닫이문을 나서기 직전에 슈야와 잠깐 눈이 마주쳤지만, 그러나 그뿐이었다. 슈야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히로키도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른 애들도 데리고 있어 준다면….

 

　가와다, 기리야마, 소마 미츠코 등, 조금 전에 "조용히 있던" 애들이 계속해서 출발했다. 가와다는 껌을 씹으면서 담담한 표정으로 출발했다. 사카모치와 얼룩무늬 트리오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기리야마도 조용히 나갔다. 미츠코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다. 사카모치가 "다른 학생들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고 했다. 그리고 아마 그 세 사람은 반 아이들이 제일 먼저 의심할만한 대상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애들은 "불량학생" 들이니까. 자기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애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겠지. 

 

　그러나, 슈야는 일단 기리야마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리야마에게는 동료가 있다. 게다가 어설프게 사이좋은 그룹보다도 그들의 연대감은 훨씬 강했다. 구로나가 히로시와 사사가와 류헤이, 즈키오카 쇼, 그리고 누마이 미츠루. 이 게임의 룰에 따르면 자기 이외에는 모두 적이지만, 설마 이 다섯 사람이 서로 죽일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기리야마가 출발할 때, 기리야마의 자리 주변에 있는 그의 동료들은 묘하게 시침을 똑 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랬다. 아마 기리야마는 자기 동료들에게 뭔가 메모 같은 것을 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섯 사람은 아마도 함께 도망치려는 속셈임에 틀림없다. 기리야마라면 정부를 따돌릴 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물론 기리야마가 자기 동료 이외에는 믿지 않는다는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소마 미츠코도 마찬가지로 동료들이 있다. 시미즈 히로노, 야하기 요시미와는 자리가 떨어져 있어, 메모 같은 것을 건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마 미츠코는 아무리 뭐라 해도 여자 애다. 설마, 이런 게임에 적극적으로 나설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와다만은 슈야의 마음에 걸렸다. 

　가와다 쇼고에겐 학급에 동료라고 부를만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아예 전학 온 이후에 같은 반 애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도 거의 없다. 게다가 가와다에겐 분명히 정체를 알수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소문은 그렇다치더라도, 그 온몸에 난 상처. '어쩌면 가와다만은 이 게임을 할 것이다.' 라고 생각해야 하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의심이 지나치면 정부에 지는 꼴이 되니까, 그런 생각을 바로 지워 버렸지만, 왠지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 속 한 구석에 께름칙한 부분이 남았다. 

 

　시간이 흘렀다. 

 

　여자애들 가운데는 울면서 나가는 애들도 많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지만, 계산해 보면 한 시간 가까이 지났을 것이다(다만, 구니노부 요시토키의 몫인 2분만큼은 짧았을 테지만). 여자 14번인 텐도 마유미가 출구 쪽으로 사라지자, 사카모치가, 「남자 15번, 나나하라 슈야 군!」 하고 불렀다. 슈야는 짐을 들고 일어섰다. 교실을 나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만을 생각한 채… 출구 쪽으로 똑바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나갔다. 노리코가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슈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나하라 슈야!」 

　사카모치가 나이프를 들고 슈야에게 소리쳤다. 

　「방향이 틀렸다.」 

 

　슈야는 일단 발걸음을 멈추었다. 세 명의 병사도 손을 총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목이 약간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운을 내서 말했다. 

　「요시토키는 내 친구다. 눈 정도는 감겨 주게 해 줄 수 있겠지? 총통의 교육 지침에도 죽은 사람에게는 예의를 다하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사카모치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마침내 후후 웃으며 나이프를 내렸다. 

　「알았다. 너는 마음씨가 착하군.」 

　슈야는 살며시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걸었다. 노리코의 자리 바로 앞에 쓰러져 있는 요시토키의 시체 앞에 멈추어 섰다. 스스로 눈을 감겨 주게 해달라고 해 놓고도, 잠시 망설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실없어 보이는 병사가 실행한 확인 사살 때문에 총을 맞은 요시토키의 귀 위쪽, 피에 젖은 짧은 머리카락 안에는 붉은 살과 흰 것이 살짝 보였다. 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머리속에 총탄이 박혀서, 요시토키의 동그란 눈이 더욱 튀어나와 보였다. 멍하니 위를 쳐다보고 있는, 마치 식량 배급을 기다리는 기아 난민의 눈 같았다. 약간 벌린 입에서 침과 피가 섞인 핑크빛 액체가 주르륵 흘러 나오고 있다. 콧구멍에서는 찐득한 피가 흘려나오고 있다. 그런 액체들이 얼굴 아래,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에 천천히 흘러 들어가, 뒤섞이고 있었다.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짐을 옆에 두고, 꿇어앉았다. 엎어져 있는 요시토키의 몸을 일으켰다. 교복 가슴꼐가 세 군데나 터져 검게 변해 있었지만, 슈야가 안아 일으키자 주르륵 하고 피가 쏟아져 바닥에 튀었다. 비쩍 마른 요시토키의 몸은 너무 가벼웠다. 피가 너무 많이 흘러 나왔기 때문일까? 요시토키의 그 가벼운 몸을 안고 있는 동안, 슈야의 머릿속은 차가워져갔다. 분노가 슬픔과 공포를 넘어서고 있었다. 요시토키! 네 원수는 내가 갚아주마. 꼭 갚아주마. 약속할께. 

 

　시간이 별로 없었다. 얼굴에 묻은 피를 손바닥으로 쓱 닦고, 살며시 눈꺼풀을 내렸다. 그리고 요시토키의 시체를 내려놓고, 두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아 주었다.  그리고 짐을 다시 집어 드는 시늉을 하면서, 노리코의 얼굴 가까이에 입을 대고 재빨리, 「걸을 수 있니?」 라고 속삭였다. 

　그런 행동만으로도 전수방위군 3인조는 총에 손을 갖다 댔다. 그렇게만 노리코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슈야는 확인했다. 슈야는 얼굴을 사카모치와 3인조 쪽으로 돌린 후, 오직 노리코만 볼 수 있도록 낮은 위치에서 주먹을 꾹 쥐고, 출구 쪽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폈다. 기다릴게. 

　밖에서 기다릴게. 

 

　슈야는 노리코 쪽을 보지 않았지만, 시야 끄트머리, 원래 요시토키가 앉아있던 자리 건너편에서 미무라 신지가 눈은 앞을 향하고 팔짱을 낀 채로 입가에 웃음을 띠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슈야의 행동은 눈치 챘는지도 모른다. 슈야는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층 진청되었다. 신지, 신지가 함께 있으면 도망칠 수 있다, 충분히. 

 

　그렇지만 사실 미무라 신지는 슈야보다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웃음은 "이제 영원히 못 볼지도 몰라. 나나하라 슈야." 라는 의미의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슈야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대로 걸어 나갔다 검은 데이 팩을 받아들기 전에 잠깐 생각하고, 후지요시 후미요 시체로 다가가, 마찬가지로 눈을 감겨 주었다. 이마에 꽂힌 나이프를 뽑아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포기했다. 문을 나서면서 역시 뽑아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약간 들었다. 

 

　교실 문을 나섰다. 복도에는 불빛이 없었다. 교실에서 흘러나온 빛이 판자를 붙여 만든 바닥을 비추고 있었다. 복도쪽 창에도 교실 안과 마찬가지로 검은 철판이 붙여져 있다. 아마 이것은 슈야와 마찬가지로 게임에서 탈출하려고 저항을 시도하는 학생이 사카모치와 진행자들이 있는 이곳을 습격해 올 것에 대비한 방어벽일 것이다. 물론 그게 아니어도 출발 후에는 "금지구역"이 되어 이곳에 접근할 수 없을 테지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지금 슈야가 나온 방과 같은 방이 옆에 또 하나 있고, 그 맞은편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복도 끝이 출구인지, 좌우로 여닫을 수 있는 문이 어둠 속을 향해 열려 있다. 그리고 반대편 왼쪽, 복도가 끝나는 쪽에 또 하나의 방이 있었다. 저 방은 이 분교의 교무실인가? 그 문이 열려 있고, 조명도 켜져 있었다. 슈야는 그 맞은편에 싸구려로 보이는 긴 책상 앞의 파이프 의자에 전수 방위군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스무 명? 서른 명? 아니, 3학년 B반 인원과 거의 맞먹는 정도로 보였다. 

 

　사실 슈야는 만약에 자기가 맏아든 데이 팩 안에 총이라도 들어 있다면(가능성은 있다. "프로그램" 관련 뉴스를 할 때면 항상 "도검류에 의한 사망" "교살에 의한 사망" 등을 늘어놓고, "총기류에 의한 사망자"의 수도 보도했었다), 혹은 분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애들이 있고, 그전에, 그러니까 "금지구역"이 되기 전에 사카모치 일당을 습격하는 방법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병사들은 사카모치와 함께 나타난 세 명뿐만이 아니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병사 한 명이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찻잔 너머로 슈야를 힐끔 보았다. 교실 안에 있는 세 명과 마찬가지로, 이상하게 표정이 없었다. 슈야는 바로 발길을 돌려 출구 쪽으로 서둘러 나갔다. 초조한 생각이 머리 가득 들어찼다. 어쨌든, 이제 어쨌든 다른 애들과 합류하는 것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밖에도 병사가 있어서, 뒤에 나올 애들을 기다릴 수도 없는 상태가 아닐까? 아니야, 그렇다 하더라도….

　슈야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벗어나, 출구의 여닫이문을 나섰다. 서너 칸의 짧은 계단이 있어, 계단을 내려갔다. 건물 밖에는 달빛 아래 텅, 빈 테니스 코트 세 개 정도 넓이의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 맞은편에 숲이 보였다. 왼쪽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고, 오른쪽은 시야가 트여 있어 컴컴한 어둠이 보였다. 바다다. 그리고 그 바다 위 저 멀리에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불빛들. 육지일 것이다. 

 

　"프로그램"은 선정된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는 관할 지역 안에서 실시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실시 장소는 때로는 둘레를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책으로 둘러싼 산일 때도 있고, 철거하기 직전의 형무소인 경우도 있다고 들었지만, 가가와 현의 경우에는 거의 섬에서 실시되었다. 슈야가 지금까지 보아 온 가가와 현의 지역 뉴스에서도(다만 그 실시 장소는 항상 게임이 긑난 뒤에 나오는 뉴스에서 밝혀졌지만), 섬 이외의 장소에서 실시되었다고 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도 섬이다. 사카모치는 섬의 이름을 이야기해 주지는 않았지만, 섬의 모양을 지도에서 확인하면 어느 섬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섬의 이름이 적힌 건물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산들바람에 바다 내음이 실려 왔다. 5월의 밤 날씨치고는 기온이 낮은 편이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잠을 잘 때는 조심해야지, 자칫 체력 소모가 많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병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지만, 또한 슈야가 기대한 것처럼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던것이다. 다들 사카모치가 이야기한대로 어디론가 숨어버린것이다. 스기무라히로키의 모습조차 보이지않았다. 그저 바다내음 섞인 산들바람만 운동장을 스쳐 지나쳐갔다. 

　제길, 슈야는 얼굴을 찡그렸다. 제각각 흩어지면 정부에서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 오가와 사쿠라와 야마모토 가즈히코가 아마 어디선가 만나겠듯이. 혹은 기리야마 그룹도 그러겠듯이, 친한 애들끼리 집단을 이루는 거라면 그것까지는 괜찮다. 그렇지만 제각각 숨어 있다가, 1대 1로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 그 혼란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혼란이야말로 이 게임을 성립시키는 요소가 아닌가? 

　그렇다. 적어도 나는 여기서 나중에 나올 애들을 기다리자. 일단 나카가와 노리코를 기다려야 한다. 

 

　슈야는 교사 안의 어둠을 힐끔 돌아보았다. "건물 안에서 얼른 나가지 않는 사람은 사살합니다" 라고 했지만, 복도 끝 방에 있던 병사들은 특별히 슈야 쪽을 지켜보지는 않았다. 잡담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의자에 우두커니 걸터앉아 있다. 무기도 들고 있지 않다. 슈야는 혀로 입술을 적시며, 어쨌든 문에서 떨어져 있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다시 눈길을 바깥쪽으로 돌렸다. 그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전에 주변을 둘러보느라 신경쓰지 않아 보지 못했던 바로 앞에, 쓰레기봉투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슈야는 누군가가 짐을 떨어뜨리고 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곧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쓰레기봉투도, 짐도 아니었다. 한쪽 끄트머리에 털이 나 있었다. 머리카락이. 

 

　사람이었다. 세일러복을 입었다. 몸을 ㄱ자로 구부린 채 옆으로 쓰러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슈야는 한가닥으로 땋은 머리 모양과 그 머리카락을 묶은 큼직한 붉은 리본이 눈에 익었다. 당연했다. 바로 3분쯤 전에 그 뒷모습을 배웅했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 그 애는 여자 14번인 텐도 마유미였다. 그리고 마유미의 세일러복 등에, 바다가재처럼 땋아 내린 머리카락 바로 옆에, 은빛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막대가 20센티미터 정도되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안테나처럼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그 막대 끝에는 아주 작은, 전투기의 꼬리 날개 같은 것 네 장이 붙어 있었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사실은 당장이라도 몸을 숨겨야 했지만, 슈야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게임이 언제 시작되느냐고 물은 기리야마의 질문에 대답하던 사카모치의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나가면 바로 시작이다." 

 

　누가 이런 짓을 한 걸까? 먼저 나갔던 누군가가 되돌아와, 막 나오던 텐도 마유미를? 

　그런 생각이 들자, 슈야는 후다닥 자세를 낮추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습격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한동안 멍하니 서있던 슈야에게 화살 같은 건 날아오지 않았었다. 어째서지? 텐도 마유미 한 명을 해치운 것만으로 만족하고 도망쳤나? 그렇지 않으면 혹시 이건 일종의 "계략" 인가? 싸울 의사가 있는 녀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 복도 끝의 방에 있던 놈들이 저지른 것인가?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어쩌면 텐도 마유미가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태를 한 번 살펴 봐야….

 

　막 움직이려던 발길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멈추지 않았다면 슈야는 이 게임에서 일찌감치 제외되었을 것이다. 슉,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나고, 슈야의 눈 앞에 은빛 물체가 스쳐 지나갔다. 그랬다. 위에서 아래로, 땅바닥에 새 안테나가 꽂혀 있었다. 슈야는 소름이 끼쳤다. 노리코를 기다리기 위해, 건물 출구 바로 앞에 서 있지 않았다면 당했을 게 틀림없었다. 습격한 녀석은 건물 위에 있었던 것이다. 슈야는 입을 꾹 다물고 잽싸게 화살을 땅에서 뽑아들고 오른쪽으로 달렸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러나 습격자가 예상하지 못할 방향을 선택했다. 몸을 휙 돌려 위를 보았다. 지붕이 평평한 분교의 옥상 위에, 달빛이 비치는 하늘을 배경으로 검고 큰 그림자가 보였다. 저건 설마, 가와다….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림자는 손에 든 것을 이쪽으로 겨누고 있었다. 슈야는 뽑아든 화살을 그림자를 향해 힘껏 던졌다. 어쨌든 상대방의 의표를 찌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화살은 매우 바르게 멋진 궤적을 그리며 일직선으로 그 그림자를 향해 날아갔다. 아마 왕년의 천재 유격수, 슈야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자는 억,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을 움켜쥐고 엉거주춤 주저앉는다 싶더니, 그 몸이 휘청 흔들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건물 출구에서 새어나온 빛 덕분에 슈야는 확인할 수 있었다. 교복을 입고 땅바닥에 엎어진, 그 큰 그림자는 겁먹은 표정으로 제일 먼저 출발한 아카마츠 요시오였다. 요시오는 정신을 잃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손 옆에는 활과 라이플을 조합한 것 같은─보우 건이라는 걸까?─물기가 떨어져 있다. 요시오의 발 쪽에 떨어진 데이 팩이 반쯤 열려 있어, 은빛 화살 묶음이 들어 있는 게 보였다. 슈야는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이 녀석은 분명히 시작한 거다! 적어도 아카마츠 요시오는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손에 무기를 들고 돌아와 텐도 마유미를 죽인 것이다! 

 

　바로 그 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뒤를 돌아본 슈야는 나카가와 노리코가 밖에서 일어난 상황을 보고, 숨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슈야는 그 노리코의 얼굴에서 다시 텐도 마유미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얼른 마유미에게 달려가, 목덜미에 손을 댔다. 죽어 있었다. 틀림 없었다. 뇌가 무슨 도화선 덩어리처럼 치지직 타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요시오 이외에도 같은 짓을 하려고 하는 녀석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디선가 훌쩍 돌아올 그 녀석은 이번엔 총을 손에 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슈야의 이 게임에 대한 입장은 이미 바뀌어 버렸다. 이런 거였다. 사카모치가 "여기를 나가면 바로 시작이다." 라고 한 것은 이런 의미였다. 슈야는 바로 일어서서 달려가 노리코의 손을 잡았다. 

 

　「뛰어! 뛸 수 있는 만큼만 뛰어!」 

 

　슈야는 다리에 부상을 입은 노리코의 몸을 거의 잡아 끌듯이 하면서 달렸다. 어디로 가야 하지? 정확한 판단을 내릴 틈도 없었다. 어쨌든 눈에 들어오는 숲으로 향했다. 일단 숲에 몸을 숨기고─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생각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노리코의 상태로는 누군가에게 습격당하면 잠시도 버틸 수가 없다. 이 근처에서 꾸물거리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건물 앞에 있다가 다른 애들을 기다리겠다는 생각은 싹 가셔 버렸다. 

 

　노리코를 데리고 숲 안으로 들어갔다. 높고 낮은 나무들이 뒤섞여 있고, 발 밑에는 고사리 같은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슈야는 뒤를 돌아보고, 아직 열한 명이 남아 있을(남녀 각각 21명인 학급에서 슈야와 노리코의 출석번호부터 나머지 인원은 열두 명이었지만, 후지요시 후미요는 제외해야만 했다) 건물을 향해 뭔가 경고 같은 것을 해 줄까도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을 떨쳐 버렸다. 아마 다들 바보는 아닐테니, 나오면 잽싸게 도망칠 것이다. 게다가 저 텐도 마유미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으니. 슈야는 약간 억지스럽게 결론을 내렸다. 미무라 신지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지만, 그것도 지워 버렸다. 분명히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중에 합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다, 라고 또 억지로 결론지었다. 어쨌든 이곳에는 단 1초라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나카가와 노리코의 몸을 꼭 껴안은 채, 무작정 어두운 숲 속을 헤쳐나갔다. 이름 모를 새가 바로 옆에서 케케케켁 하고 울더니,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설사 보였다 하더라도 볼 여유가 없었다. 

  

【남은 인원 39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