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１부 - 시합 개시 #.1

[제１부]－시합 개시 

 

 

　버스가 현청 소재지인 다카마츠 시로 들어서자 차창 밖의 풍경이 지원 지대에서 천천히 도시다운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울긋불긋한 네온사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 아직도 꺼지지 않고 있는 사무실 건물의 불빛들.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길가 음식점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회사 동료 사이로 보이는 단정한 복장의 남녀들. 깨끗한 편의점 주차장,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지친 듯한 젊은이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육체노동자처럼 보이는 자전거를 탄 아저씨. 5월치고는 아직 쌀쌀한 밤이라, 그 아저씨는 낡아빠진 점퍼를 걸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물론 그 아저씨도 다른 여러 가지 풍경과 마찬가지로 버스의 낮은 엔진 소리와 함께 금방 뒤로 흘러가 버렸다. 버스 운전석 위에 붙어 있는 디지털 시계의 표시가 막 8시 57분으로 바뀌었다. 

 

　나나하라 슈야(가가와 현 시로이와 읍의 시로이와 공립 중학교 3학년 B반 남자 15번)는 왼쪽 자리, 창가에 앉아 짐을 뒤적이고 있는 구니노부 요시토키(남자 7번)의 옆얼굴 너머로 그 밤의 풍경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좌석 사이의 통로로 내민 오른쪽 발, 게스 브랜드의 스니커 발끝을 약간 뻗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찾아 돌아다니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구하기 힘든 신발이다. 슈야의 스니커도 오른쪽 발뒤꿈치 안쪽의 캔버스 천이 해져, 실밥이 고양이 수염처럼 튀어나와 있다. 메이커는 미국이지만, 만든 곳은 콜롬비아. 1997년 현재, 이 대동아공화국은 결코 물자가 부족한 상태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물자가 넘쳐 난다고 해야 좋을 정도지만, 어쨌든 수입품은 구하기가 힘들었다. 하긴 거의 쇄국정책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게다가 미국은(정부는 그들을 미제(米帝)라 부르며, 교과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적성국가로 분류돼 있다.

 

　비교적 버스 뒤쪽에 위치한 자기 자리에서 차 안을 한 번 둘러보니, 천장의 그리 깨끗하지 않은 패널에서 흘러나오는 흐릿한 형광들 불빛 아래, 2학년 때부터 바뀌지 않고 그대로 진급한 41명의 클래스매이트들은 아직도 신이 나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학교가 있는 시로이와 읍을 출발한 지 아직 1시간이 채 안 된 상태이니 당연한 일이다. 첫날을 차 안에서 자는 싸구려라고 할까, 강행군이라고나 할까, 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드는 수학여행이지만, 차가 나중에 세토 대교를 건너 목적지인 규슈로 가는 산요 자동차 도로를 타게 될 때 쯤이면 좀 조용해질 것이다. 

 

　앞쪽에서 떠들고 있는 한 무리는 담임인 하야시다 선생님을 애워싸고 있는 여자애들이었다. 땋아 늘린 머리가 잘 어울리는 반장 우츠미 유키에(여자 2번), 유키에와 함께 배구부원이며, 여자치고는 키가 상당히 큰 다니자와 하루카(여자 12번), 읍 의회 의원의 딸답게 귀티가 나는 가나이 이즈미(여자 5번), 보스턴 타입의 안경이 약간 쌀쌀맞게 느껴지는 얼굴에 잘 어울리는 우등생 노다 사토미(여자 17번), 늘 얌전해서 눈에 띄지 않는 마츠이 치사토(여자 19번) 등등. 이 애들은 여자 주류파, 혹은 중간파 패거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자 애들은 흔히 패거리를 만들기 좋아한다고 하지만, 시로이와 중학교 3학년 B반에는 이렇다할 패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기는 좀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패거리가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약간 망가진 느낌이 드는, 솔직히 말하면 불량소녀 계열인 소마 미츠코(여자 11번) 그룹일 것이다. 미츠코와 시미즈 히로노(여자 10번), 야하기 요시미 (여자 21번). 이 세사람이 그 그룹인데, 슈야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는 그애들이 어디 앉아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제일 앞, 운전석 뒤에 약간 높게 자리 잡은 좌석이 있었는데, 그만큼 등받이가 낮아, 그 위로 머리 두 개가 나란히 보였다. 야마모토 가즈히코(남자 21번)과, 오가와 사쿠라(여자 4번)였다. 반에서 제일 사이가 좋은 커플이다. 무슨 우스운 이야기를 하는지, 그 두 사람의 머리가 이따금 약간씩 흔들렸다. 하기야 워낙 순진한 두 사람이니, 아무리 사소한 이야기라도 둘 사이에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앉아 있는 자리 약간 앞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커다란 학생복이 통로로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아카마츠 요시오(남자 1번)다. 덩치는 반에서 제일 크지만, 너무 소심해서 이지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림을 당하는 타입이었다. 지금은 큰 몸집을 약간 앞으로 구부리고 한참 유행하고 있는 미니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오오키 다츠미치(남자 3번, 핸드볼부), 니이다가즈 시(남자 16번, 축구부), 하타가미 다다카츠(남자 18번, 야구부)등 체육부 쪽 남자 애들이 몰려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슈야 자신도 초등학교 때는 리틀 리그에서 뛰기도 했고(천재 유격수라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다다카츠하고도 사이가 좋았지만, 지금은 왠지 자주 어울리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슈야가 사정이 있어 야구를 그만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야구 대신에 일렉트릭 기타 같은 반정부적인 성향의 취미에 빠져 들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다다카츠의 어머니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잔소리가 심한 타입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랬다. 록 음악은 금지되어 있다, 이 나라에서는(물론 빠져나갈 구멍은 있었지만. 슈야의 일렉트릭 기타에도 어김없이 "이 악기는 퇴폐음악에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는 정부의 인증 스티커가 붙어 있다. 퇴폐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많이 바뀌었구나.' 하고 슈야는 생각했다.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아카마츠 요시오의 뒷자리에서 짧은 머리에 멋지게 피어싱을 낀 왼쪽 귓볼이 보였다. 그렇다, 저 친구가 그 가운데 한 명이다. 미무라 신지(남자 19번).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지만, 슈야도 그 이전부터 농구부에 "제３의 사나이"라고 불리는 천재 가드가 있다는 소문은 자주 들었었다. 물론 전에 리틀 리그에서 천재 유격수라는 칭찬을 듣던 슈야와 함께 뛰어난 운동 능력을 자랑하고 있으며(그렇지만 신지는 이렇게 말할 게 틀림었다.「내가 한 수 위야, 임마」), 2학년이 되자마자 열린 학급 대항 시합에서 슈야와 절묘한 콤비네이션을 보여준 친구다. 그래서 의기투합하기도 했지만, 신지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영어와 수학 이외의 성적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지만, 지식의 폭이 엄청나게 넓고, 사물을 보는 눈이 중학생 수준 이상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입수할 수 없는 해외 정보에 이르기까지, 물어보면 거의 거침없이 대답했고, 무슨 일이 있어 고민하고 있을 때는 적절한 어드바이스를 해 주었다. 게다가 그런 걸 뻐기는 일이 전혀 없었다. 아니, 신지 특유의 농담하는 듯한 말투로, 예를 들면「내가 영리한 거야 다 아는 사실이지. 너 물랐어?」 따위의 말을 하기는 하지만, 결코 기분 나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말하자면 미무라 신지는 아주 좋은 녀석이었다. 

 

　신지는 아마도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인 세토 유타카(남자 12번)와 나란히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유타카는 반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친구인데, 신지가 웃고 있는 것을 보면 유타카가 또 무슨 농담을 건넨 모양이다. 

 

　그리고 그 뒤에 앉아 있는, 스기무라 히로키(남자 11번). 호리호리하고 큰 키를 좁은 좌석에 겨우 구겨 넣고는 문고판 책을 읽고 있다. 말이 별로 없는데다가 권법 도장에 다니고 있어 강한 이미지를 풍기지만 사람들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남자 애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내성적이고 착한 녀석이어서, 슈야와는 묘하게 마음이 맞았다. 읽고 있는 것은 아마 그가 좋아하는 중국 시집인가보다. 중국 문헌은 번역물로도 입수하기가 비교적 쉽다. 하긴 당연한 것이, 공화국은 중국을 "우리 나라 교유의 영토" 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전에 보급판으로 읽은 미국 소설(고서점 한쪽 구석에서 발견해 사전을 뒤져가며 읽었다)에 "친구란 생기고, 또 헤어지는 것" 이라고 하는 구절이 있었다.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다다카츠와 어울리지 않게 되었듯이 또 신지나 히로키하고도 헤어질 날이 올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그럴 일이 없을까? 

 

　슈야는 아직도 옆에서 짐을 뒤적이고 있는 구니노부 요시토키를 힐끔 쳐다보았다. 어쨌든 슈야는 구니노부 요시토키와 줄곧 함께 지내며,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기야 "자혜관" 이라고 하는 약간 거창한 이름의 가톨릭계 시설─부모를 잃었거나, "사정" 상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어린이들을 맡아주는 기관─에서, 밤중에 요에 오줌을 싸던 시절부터 함께 지낸 친구다.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은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이 기회에 종교에 대해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총통"이라고 불리는 최고 권력자를 장점으로 한, 특수한 국가 사회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는 이 나라에는(언젠가 미무라 신지가 인상을 쓰며 속삭인 적이 있었다. "이 나라는 말이야, 성공한 파시즘이야. 이런 형편없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있어?"), 적어도 국교라고 하는 것은 없다. 있다고 하면 그저 이 체제에 대한 신봉뿐이다. 그것은 특별히 기존 종교에 저촉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종교 활동은 정도를 넘어서지 않는 한 자유다. 그대신 종교에 대한 보호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만이 이럭저럭 종교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슈야 자신은 종교적 감정이라고 하는 것을 거의 느껴 본 적이 없었지만─적어도 그 종교 덕분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게, 그리고 아마도 제대로 자라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것은 분명히 고맙게 여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보육원도 있기는 하지만─그곳은 정말이지 시설이나 체제가 형편없어, 악명 높은 전수 방위군 병사의 양성소로 변했다는 소문이다. 

 

　슈야는 다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제일 뒷부분에 가로로 길게 놓인 좌석에 사사가와 류헤이(남자 10번)와 누마이 미츠루(남자 17번) 같은 불량한 티를 내는 패거리들이 앉아 있다. 그리고─슈야의 위치에서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좌석 사이로 뒷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이상해 보이는 올백스타일의 머리가 엿보였다. 자기 왼쪽에서(그래도 옆에 있는 사사가와 류헤이는 좌석 두 개를 비워놓고 앉아 있는 것 같지만) 약간 저속한 이야기와 거칠게 느껴지는 웃음이 계속 되고 있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잠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조금 전까지는 슈야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 녀석 기리야마 가즈오(남자 6번)가, 수학여행이라고 하는 애들 레크리에이션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 것이, 슈야에겐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기리야마는 류헤이나 미츠루는 물론이고 지역 불량 학생의 카리스마로 대접받는 녀석이었다.

 

　체격은 결코 큰 편이 아니고, 기껏해야 슈야와 비슷한 정도의 중간 키였지만, 고등학생을 간단하게 물리치고, 지역 야쿠자 조직과도 맞서는 등, 그의 존재는 가가와 현에서는 거의 전설이 되어있다는 소문이다. 아버지가 현에서 최고로 꼽히는 기업체의 사장이라는 방패막이가 있어서이기도 할 테지만(원래는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문도 있었다. 슈야는 흥미가 없어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물론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적이고 단정한 얼굴과, 낮은 톤의 목소리도 아닌데도 묘하게 위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B반에서는 남자 반장인 모토부치 교이치(남자 20번)가 잠 잘 시간도 없이 공부해야 간신이 뒤를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학년 톱 클래스 우등생이다. 운동을 시켜도 누구보다 우수하고 뛰어났다. 기리야마가 마음만 먹고 운동을 한다면 시로이와 중학교에서 겨우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예전에 천재 유격수라는 소리를 들었단 슈야, 아니면 현재 시로이와 중학교 농구부의 천재 가드인 미무라 신지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기리야마 가즈오는 어느 모로 보나 완벽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완벽한 녀석이 왜 불량학생들의 우두머리가 된 것일까? 그것은 슈야도 알 길이 없었다. 단지 슈야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기리야마에게서 느껴지는, 일종의 초감각에 가까운 듯한, 뭐라 표현하기 힘든 위화감이다. 그것은 꼭 접어서 표현 할 수가 없다. 기리야마는 결코 학교에서 나쁜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사사가와 류헤이 같은 녀석들이 이따금 아카마츠 요시오에게 하듯이 다른 애들을 못살게 굴지도 않는다. 그러나 뭔가가 지나치게 희박하다고 하면 좋을까, 그런 느낌이다. 학교에 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도대체 기리야마가 "공부" 하는 걸 봤다는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농담일 것이다. 기리야마는 어느 수업 시간이든 그냥 자리에 앉아 조용히, 뭔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정부가 극성스러운 의무교육 정책을 펴고 있지 않았다면, 학교에는 전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청개구리처럼 더 자주 올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수학여행 같은 데는 당연히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떡 하니 나타났다. 이것도 청개구리 심보일까? 

  

　「슈야.」 

 

　천장의 조명 패널을 바라보며 멍하니 기리야마 생각을 하고 있던 슈야는 자신을 부르는 맑은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옆자리에 앉은 나카가와 노리코(여자 15번)가 깔끔한 느낌이 드는 투명 셀로판지로 싼 꾸러미를 두 손으로 든채 내밀고 있었다. 노리코의 손 안에 들어갈 정도인 꾸러미는 천장에서 쏟아지는 불빛을 물처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옅은 갈색의 작은 원반이─쿠키인 모양이다─가득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금빛 리본으로 주둥이를 꼭 묶어, 나비넥타이 모양으로 매듭지어 놓았다. 

 

　나카가와 노리코도 우츠미 유키에 등과 마찬가지로 중간파에 속하는 여자애였다. 착해 보이는, 약간 검고 큰 눈이 돋보이는 소녀다운 둥근 얼굴과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카락, 자그마한 체구에 아주 여성스러운, 평균적인 여학생이다. 특이한게 있다면 국어를 잘 하고, 작문이 학급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점일까? 그래서 슈야는 비교적 노리코와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다. 슈야는 쉬는 시간이면 자주 오리지널 곡을 만들려 고 노트 가장자리에 가사를 쓰곤 했는데, 노리코가 이따금 그것을 보고 싶어했다. 평소에는 중간파 애들과 함께 어울리는 일이 많았지만, 오늘은 집합 시간에 약간 늦어,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앉게 된 것 같았다. 슈야가 손을 머뭇머뭇 내밀면서 뭐냐는 투로 눈썹을 치켜올리자, 노리코는 왠지 약간 허둥대는 듯한 느낌이 드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어. 오늘 동생이 졸라대서 만들었어. 별 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맛이 없어지니까. 괜찮으면 노부하고 먹어.」 

 

　"노부"는 구니노부 요시토키의 별명이다. 붙임성 있어 보이는 동그란 눈,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묘하게 세상사를 달관한 아저씨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요시토키의 퍼스널리티에는 잘 어울리는 별명일지도 모른다. 

 

　여자애들은 별명을 부르는 일이 거의 없지만 노리코는 늘 가볍게 남자애들의 별명을 부르곤 한다. 그런데도 모가 나거나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노리코 답다면 노리코다운 모습이었다. 왠지 포근하게 느껴지는 여자애. 그리고 슈야는 별명다운 별명을 가져 본 적이 없었지만(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약간 묘한, 무슨 담배의 이름 같은 "통칭"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미무라 신지의 "제３의 사나이"처럼, 슈야를 부를 때 쓰지는 않았다, 나를 부를 때 친근한 듯이 부르는 여자애는 이 애뿐이구나 하는 생각을 전부터 했었다.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요시토키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진짜? 괜찮아? 웬 떡이냐. 노리코가 만든 거라면 분명히 맛있을 거야.」 

 

　슈야가 내민 손끝에서 봉투를 홱 가로채, 금빛 리본을 재빨리 풀고는 한 개를 집어 먹었다. 

 

　「우와, 무지 맛있네.」 

 

　곁에 앉아 요시토키가 노리코에게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슈야는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요시토키, 이 녀석 노골적이로군. 하긴 노리코가 슈야의 옆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이쪽을 힐끔거리더니, 묘하게 가슴을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등 평소에는 하지 않던 짓을 했다. 그렇다. 약 한 달 반 정도 전인 봄방학 떄, 동네 수원지인 댐의 호수로 둘이 블랙 배스 낚시를 하러 갔을 때, 요시토키가 슈야에게 불쑥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저어, 슈야. 나, 저기, 좋아하는 애가 생겼어.」 

 

　슈야가 「뭐어? 누군데?」 라고 묻자, 「나카가와!」 라고 요시토키가 대답했다.

 

　「우리 반?」 

　「그래.」 

　「어느 쪽이야? 두 명이잖아. 유카?」 

　「야! 나는 너처럼 통통한 여자애 좋아하지 않아.」 

　「나쁜 놈. 가즈미가 뚱뚱하다는 거야? 잠시 약간 부은 것뿐이지.」 

　「미안, 미안해. 어쨌든 그래, 응, 노리코를 좋아해.」 

　「흐음. 좋은 애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지?」 

　「알았어, 알았다고.」 

 

　그렇게 완전히 빠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리코는 요시토키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듯 하다. 둔한 것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모습이 오히려 노리코다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슈야는 요시토키의 손에 있는 봉투에서 쿠키를 하나 꺼내, 눈앞에 들어올렸다. 그리고 노리코를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맛이 없어진다고?」 

　「응.」 

 

　노리코가 묘하게 눈을 크게 뜨며 두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적어도, 기본적으로는 맛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로구나.」 

 

　이런 식의 빈정거리는 듯한 말투는 미무라 신지에게서 전염되었는지, 최근 슈야가 자주 쓰는 말투다. 이따금 이런 말투 때문에 화를 내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노리코는 왠지 아주 행복하다는 듯이 호호거리며 웃었다. 

 

　「그러네.」 

　「너.」 

 

　또 요시토키가 끼어들었다. 

 

　「내가 맛있다고 했잖아. 그치? 노리코.」 

 

　노리코가 「고마워, 노부는 참 착해.」 라며 웃자, 요시토키는 갑자기 전극에 손가락을 댄 것처럼 굳어지더니 입을 다물었다. 아무 말 없이 무릎께로 시선을 떨구고는, 쿠키를 와삭와삭 먹기 시작했다. 슈야는 또 씁쓸하게 웃으며 쿠키를 입 안에 밀어 넣었다. 달콤한 맛과 향기가 살며시 퍼졌다. 

 

　「맛있구나.」 

 

　슈야가 말하자, 가만히 보고 있던 노리코가「고마워.」하고 소리쳤다. 공연한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요시토키에게「고마워」라고 할 때와는 톤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랬다. 적어도 그녀는 슈야가 쿠키를 입에 넣는 모습을 진지한 눈길로 가만히 보고 있었다. 진짜 이 쿠키를 동생이 졸라서 만든 것일까? 그녀는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 만들어 온 게 아닐까? 에이, 역시 쓸데없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슈야는 문득 "가즈미"를 떠올렸다. 

　음악부에서 작년까지 함께 활동하던 한 살 위인 여학생이다. 대동아공화국의 학교 특별 확동에서 록 뮤직이 연주회의 레퍼토리에 오르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그렇지만 고문인 미야다 선생이 없을 때는, 부원들은 멋대로 록을 연주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자주 있었다. 음악부는 그런 녀석들이 모인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니카니 가즈미는 여자 부원으로는 유일한 색소폰 연주자였는데, 록 색소폰을 불 때는 다른 남자 부원 그 누구보다 실력이 뛰어났다. 키가 크고(170센티미터인 슈야와 거의 비슷할 정도였다) 약간 통통하지만, 목 언저리에서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카락, 언제나 세상살이를 초월한 듯한 느낌의 어른스러운 표정으로 알토 색소폰을 손에 든 모습은 참으로 멋있었다. 그런 모습은 슈야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녀는 슈야에게 어려운 기타 코드를 짚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나도 약간 만져봤어. 색소폰 시작하기 전에」). 슈야는 그때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타를 만져, 2학년 중반에는 음악부에서 가장 뛰어난 기타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게 노력한 이유는 누구보다도 가즈미에게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침 단둘이 남게 된 방과 후의 음악실에서 슈야가 "서머타임 블루스"를 노래하며 연주해 보였을 때, 그녀가 칭찬해 주었다. 

 

　「대단하구나. 슈야. 멋져.」 

 

　슈야는 그 날 처음으로 캔 맥주를 사서 혼자 축배를 들었다. 무지하게 맛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사흘 정도 지난 뒤 슈야가 그녀에게 또박 또박.「저, 선배를 좋아합니다.」 라고 말한 날, 그녀도 확실하게 말했다. 

 

　「미안해, 난 사귀는 사람이 있어.」 

 

　그리고 그녀는 졸업을 해 버렸다. 그 "사귀는 사람" 과 함께, 음악과가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지난 봄 방학 때, 댐의 호수에서 요시토키가 노리코 이야기를 한 뒤, 슈야에게 물었었다. 

 

　「너, 그 선배를 아직도 좋아하니?」 

 

　슈야가 대답했다. 

 

　「그래. 좋아해. 죽을 때까지 좋아할 것 같아.」 

 

　요시토키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 선배, 사귀는 사람이 있잖아?」

 

　슈야는 오버 슬로의 요령으로 은빛 루어를 힘껏, 멀리 던지면서 대답했다. 

 

　「상관없어─.」 

 

 

　슈야는 여전히 쭈그리고 있는 요시토키로부터 쿠키 봉투를 빼앗아 들었다. 

 

　「너만 먹으면 어떡해. 노리코는 먹을 수가 없잖아.」 

　「아, 이런, 미안.」 

 

　슈야는 봉투를 노리코에게 돌려주었다. 

 

　「미안해.」 

　「아니야, 난 됐어. 너희 먹어.」 

　「그래? 그렇지만 우리들끼리만 먹는다는 것도…….」 

 

　슈야는 그제야 처음으로 노리코 건너편에 읹아 있는 남학생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 남학생 가와다 쇼고(남자 5번)는 교복을 걸친 큼직한 몸을 유리창에 기대고, 팔짱을 낀 채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거의─ 까까머리에 가까울 정도로 짧게 깎은 머리카락, 왠지 명절 때 길에서 요상한 말로 사람들을 꼬드겨 수상한 물건을 파는 형들을 떠올리게 하는 그 얼굴에 듬성 듬성 수염 같은 것이 나 있다. 수염이라니… 이런! 중학생치고는 너무 나이들어 보이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나름대로 사정이 하나 있었다. B반 학생들은 2학년 떄부터 같은 반이었지만, 가와다 쇼고만은 4월에 고베에서 전학을 왔다. 그리고 가와다 쇼고는 다쳐서인지, 병을 앓아서인지(병을 앓을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다쳤기 때문일 것이다), 반 년 이상 학교를 쉬었었기 때문에 유급을 했다. 그러니 사실은 슈야나 다른 친구들보다 1년 선배인 셈이 된다는 이야기다. 본인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렇게 들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가와다에 대한 소문은 별로 좋지 않았다.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불량학생이었고, 학교를 쉬게 된 이유가 된 부상은 싸움이 원인이었다고 하는 소문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가와다에겐 온몸에 상처가 있었다. 오른쪽 눈썹 위에 난 커다락 칼자국 같은 것도 그랬지만, 체육 시간에 옷을 갈아입거나 할 때, 슈야는 그의 팔과 등에도(쓸데없는 이야기지만 남자인 슈야가 보기에도 멋진, 마치 미들급 복서 같은 체격이었다) 비슷한 상처가 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기도 했다. 왼쪽 어깻죽지 같은 데는 무슨 상처인지 알 수 없는 둥근 상처가 두 개 나란히 나 있었다. 마치 총알을 맞은 것 같은 상처였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이러저러한 소문이 나돌 때마다,「언젠가는 기리야마하고 한 판 붙는 거 아니야?」하는 이야기들을 수군거리곤 했다. 사실 가와다가 전학 온 직후, 촐랑거리며 까부는 사사가와 류헤이가 멋모르고 가와다에게 집적거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일에 대한 경위와 마찬가지로 결과도 소문으로 들었는데, 류헤이는 창백한 얼굴로 돌아와서는 기리야마에게 울면서 매달렸다. 그렇지만 기리야마는 흥미가 없다는 듯이, 그런 류헤이를 힐끗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략 그런 상태여서 당사자인 두 사람이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면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기리야마는 가와다에게 흥미가 없는 듯했다. 가와다도 기리야마에게는 흥미가 없는 듯했다. 덕분에 B반은 다행히 평온할 수 있었다. 

 

　어쨌든 나이가 위인데다 그러한 소문까지 있고 해서, 학급의 다른 학생들은 가와다를 피해 다녔다. 그러나 슈야는 사람을 소문으로만 판단하기는 싫었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건 자기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슈야는 노리코를 향해 턱으로 가와다를 가리켰다. 

 

　「자고 있니?」 

　「응.」 

 

　노리코는 가와다 쪽을 힐끔 돌아보았다. 

 

　「그래. 내 생각에도 깨우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쿠키를 먹을 타입은 아니잖아? 어쨌든.」 

 

　노리코가 킥 웃자, 슈야도 웃었다. 그 때 문득, 「난 됐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슈야는 가와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낮고 힘 있는 목소리의 울림이 귀에 남아 있었다. 슈야에게는 그다지 귀에 익은 목소리가 아니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가와다의 목소리 같았다. 가와다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동시에 슈야는 가와다가 전학을 온 지 이미 1개월 이상 시간이 지났는데, 그의 목소리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노리코는 다시 가와다 쪽을 힐끔 돌아보고, 다시 슈야의 눈을 바라보았다. 슈야는 어깨를 으쓱 움츠려 보이며 쿠키를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 뒤로 잠시 노리코와 요시토키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슈야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차 안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왼쪽에 있는 요시토키가 어느새 코를 골고 있었다. 미무라 신지의 몸이 좌석에서 통로 쪽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나카가와 노리코도 눈을 감고 있었다. 어느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잠들어 버린 것 같았다. 물론 아주 착실한 녀석이라면 잠자리에 들 시간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즐거운 수학여행인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모두가 다 잠들어 버리다니, 너무 이른 시간 아닌가? 왜 노래라도 부르지 않을까? 이 버스에는 가라오케인지 뭔지 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저속한 장치까지 설치되어 있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상한 것은 슈야 자신도 지독하게 졸리다는 사실이다. 몽롱한 상태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그리고 고개를 움직이기도 귀찮아져서 좌석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시선이 허공을 떠돌다가 버스 안의 좁은 공간 제일 앞쪽, 어둠에 녹아들어간 듯한 커다란 앞 유리창 한복판에 달린 룸 미러에 머물렀다. 슈야는 그 거울 안으로 언뜻언뜻 비치는 운전사의 상반신을 보았다. 그 운전사의 입 주위에는 마스크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그 마스크 아래쪽으로는 무슨 호스 같은 것이 늘어져 있었고. 귓볼 위아래를 가로질러 감겨 있는 폭이 가느다란 밴드. 저건 뭘까? 호스가 아래로 뻗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그것은 마치 비행기의 비상용 산소마스크 같았다. 버스 안에서 숨을 쉴 수 없는 걸까? 여러분, 이 버스는 엔진 고장으로 비상 착륙하겠습니다. 벨트를 꼭 매시고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산소마스크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 웃기는군. 

 

　오른쪽에서 '끼익'하며 뭔가를 세게 긁는 듯한 소리가 나서, 슈야는 간신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왠지 투명한 젤 안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가와다 쇼고가 유리창을 열러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녹이 슬어서 그런지, 잠금 장치가 망가져서 그런지 창은 열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자 가와다가 왼쪽 주먹으로 유리를 두드렸다. 깨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창을. 왜 저러는 거지? 그러나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한 번 더 유리창을 두드리려던 가와다의 손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그의 몸이 의자에 털썩 파묻혔다. 조금 전에 들었던 그 낮은 목소리로, 

 

　「제길!」 

　하고 내뱉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했다. 슈야도 이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무렵, 검은 색 세단을 탄 사내들이 시로이와 읍에 있는 3학년 B반 학생들의 집을 방문하고 있었다. 늦은 밤에 무슨 일인가 하며 나와 본 학부모들은, 도장이 찍힌 정부의 서류를 보고는 하나같이 할 말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학부모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아마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자식의 얼굴을 떠올리는데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달려든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특수 경찰봉을 한 방 맞고 기절하거나, 또는 운이 나쁜 경우에는 서브 머신 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끈따끈한 총탄을 맞고, 사랑하는 자기 자식보다 한 걸음 먼저 이 세상에 작별을 고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시로이와 중학교 3학년 B반의 수학여행 버스는 이미 다른 버스들이 이루고 있는 대열에서 빠져나와, 다카마츠 시를 향해 U턴했다. 시내로 돌아와 혼잡한 길을 한동안 달린 뒤, 조용히 엔진을 멈추었다. 40대의, 인상이 무척 좋은 반백의 운전기사는 약간 주름진 얼굴에 산소 마스크를 쓴 채로 몸을 돌려, 다소 측은하다는 듯한 눈길로 B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곧 창 바깥에 다른 사나이들이 나타나자, 얼른 표정을 바꾸고 공화국 표준인, 언뜻 보기에는 이상한 거수경례를 했다. 그리고 스위치를 조작하여 문을 열었다. 그리로 전투복에 마스크를 쓴 사내들이 우르르 올라타는 동안, 그는 시선을 먼 곳으로 던졌다. 달빛 아래, 뼈처럼 푸르스름한 콘크리트로 된 부두 너머로 검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선수"들을 태우기 위한 배가 출렁출렁 흔들리고 있었다. 

  

【남은 인원 4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