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시드 -4권- 강림한 검 :: PHASE.2 재회

조명을 끈 집무실의 침대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모니터의 빛에 비친 엄숙한 얼굴은 패트릭 자라였다. 책상 위의 모니터에는 특징적인 은색 마스크가 비치고 있었다. 방금 화상 통신으로 연결된 상대가 보고했다.

「스핏 브레이크, 전군 배치 완료했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통화 상대는 라우 르 크루제였다. 패트릭은 침묵한 채, 모니터 안에서 여느 때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떠올리고 있는, 심복이라고도 동지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인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돌이켜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답지 않은 망설임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패트릭은 침묵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

같은 시각, 위성 궤도 상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송선이 모빌 슈트를 수용한 대기권 돌입용 캡슐을 강하 지점으로 운반하고 있었다.한편 지구상에서도 각 거점에서 수송기가 이륙을 시작했고, 또한 선행해서 진격하고 있던 잠수 모함도 예정 지점에 집결하여 대기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진 플랜트 본국의 패트릭이 한 마디만 하면 그것들 모두가 움직인다. 병사도 사령관도 모두 마찬가지로 하나의 지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라우는 아슬아슬하게 그 가장자리에 서 있는 남자의 등을 떠밀듯 말했다.

「…남은 건 명령 뿐입니다.」

 

 

"상황은?"

상관의 물음에 서덜렌드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순조롭습니다."

JOSH-A의 최심부에는 극히 일부의 군 관계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어두운 방이 있었다. 그리 넓다고 할 수 없는 이 방은 뭔가의 제어실인 듯 전면에 제어판으로 보이는 계기들이 늘어서 있었고, 그것을 통해 지하에 뚫린 광대한 공간의 바닥 부분이 엿보였다. 고요한 지하 공간에는 소형 접시 안테나가 무수히 늘어서 있어서 위에서 보면 마치 거대한 애꾸눈처럼 보였다. 그 앞에서 서덜렌드는 조용한 웃음을 흘렸다.

'이걸로 모든 것이 변한다.'

개전 이후 그들은 본의 아니게 패배를 계속했다. 그 이유는 코디네이터들이 비겁하게 뉴트론 재머 같은 고약한 것을 이 청정한 대지에 박아 넣고 모빌 슈트라는 병기를 전장에 내보냈기 때문이다.

'건방진 코디네이터 놈들. 놈들이 지구에 무슨 권리가 있어서?'

지구는 우리들의 것이다. 대지 위에서 올바르게 진화한, 만물의 영장인 인류의 것이다. 놈들처럼 부자연스런 가공에 의해 태어난 괴물은 애당초 있어서는 안 될 존재에 불과하다. 조금 외견과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것이 어쨌다는 것이냐? 그것들은 소위 말해 부정을 저질러서 얻은 것이 아닌가? 부정은 고쳐져야 한다.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원래대로 먼지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기다리도록 해라….'

그는 조용한 희열에 잠기면서 눈 아래의 장치를 내려다 보았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잘못된 전황을 뒤바꾼다. 과오는 수정되고 이윽고 존재해서는 안 될 것들은 모두 무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가 기다려진다.

"모든 건 예정대로 시작되고, 예정대로 끝나겠지…."

 

 

불타는 듯 오렌지 색으로 물든 하늘이 이윽고 그 광체를 잃고 차가운 우주의 색으로 변해 가는 동안 아스란은 아무 것도 할 생각이 들지 않아서 창 밖을 보고 있었다. 니콜이 좋아했던 하늘 색이다.

셔틀은 생각보다 조금 늦게 이륙했다. 대기권을 벗어나자 아스란은 쭉 창 밖을 보고 있던 눈을 그제야 무릎 위로 떨구었다. 플랜트로 가는 동안 지금까지 체크하지 않았던 뉴스라도 봐 두기 위해 가방에 손을 뻗었다. 가방을 연 순간, 악보 다발과 훈장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스란은 돌연 엄습해 온 답답함을 피하기 위해 소형 PC를 꺼낸 후 난폭하게 가방을 닫았다. 키라의 죽음에 의해 초래된 현기증과도 같은 가슴의 통증은 평소에는 의식 밖으로 몰아내고 있지만, 이렇게 갑자기 엄습해 온다. 딱지가 떨어지며 피가 분출하듯.

'임무만 생각하자.'

그렇게 하면 언젠가 이 가슴의 응어리도, 온 몸을 뒤덮는 권태감도 잊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언젠가….

'언젠가…?'

그런 날이 올까? 키라를 죽인 것을 잊고, 이 가슴의 통증도 잊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을 수 있을까? 그런….

'그런 날이 올 바엔 죽는 편이 낫다…!'

아스란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다가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서울 만큼 뚜렷한 별들과 그 틈새에 있는 절대적인 어둠이 눈에 들어왔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잘 했다고 칭찬하며 아스란의 진급에 축하 인사를 했다. 성가신 '지구군의 신형 모빌 슈트'를 해치운 자로서 만난 적도 없는 병사에게까지 악수를 요구 받았다. 그들에게 아스란은 영웅인 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견딜 수가 없다. 키라의 피로 얻은 훈장 따위는 필요 없다. 니콜이 살아 돌아온다면 모를까 다른 것 따위는 필요 없다.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를 죽인 냉혈한이다. 어째서 모두에게 칭찬 받는 거지? 차라리 매도해 줬으면 한다. 너는 살인자라고. 그 소녀가 울면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창에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이 비쳤다. 지금이라도 숨이 막혀서 죽을 것처럼 보인다. 그 때… 전방의 어둠 속에서 반짝 빛나는 것이 보였다.

'뭐지…?'

아스란은 반사적으로 눈에 힘을 주었다. 별들 틈새에서 꼬리를 끌며 그 빛이 다가오나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셔틀과 엇갈려 지나갔다.

'모빌 슈트?!'

아스란은 방금 전까지의 어두운 생각을 잊고 몸을 내밀었다.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 형상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진이나 시그와는 분명히 달랐다. 고속으로 지나쳐 간 무언가는 아스란의 시선을 벗어나 그가 떠나 온 파랗게 빛나는 행성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잠시 아이처럼 창에 뺨을 대고 유성처럼 떨어져 간 기체의 잔상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선명한 꿈처럼 느껴졌다.

 

 

"싫어…! 싫다고요, 전. 놔 주세요!"

통로 반대편에서 프레이가 외치면서 나탈에게 거의 끌려 오듯 오고 있었다. 마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그들을 기다렸다. 아크 엔젤 해치 부근의 통로에서 마류를 비롯한 승무원들은 정렬해 있었다. 지금까지 함께 지냈던 동료들을 전송하기 위해.

"함장님! 왜 저만…?!"

프레이가 울면서 호소하자, 마류는 얼굴을 흐렸다. 의존심이 강한 이 소녀가 친구들과 떨어지는 상황에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군의 선전물로 이용 당하는 운명이다. 위험에 직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여성에게 맞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본인은 불안할 것이다.

"적당히 좀 해!"

울면서 보채는 아이를 나무라듯 나탈이 말했다.

"이건 본부의 명령이야! 넌 따라야만 해!"

그 말을 납득하지 못한 프레이는 구원을 요청하듯 마류를 쳐다보았다. 마류는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어. 군 본부에서 떨어진 명령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거든. …미안해."

프레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군인인 그들이 전속 명령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함장인 그녀가 참견할 권한은 없다.

"이의가 있다면 인사국에 신청해 볼 수는 있지만…."

마류가 말한 제안을 다음 순간 나탈이 매정하게 부정했다.

"받아 줄 리 없습니다."

프레이는 궁지에 몰린 표정으로 구원해 줄 사람을 찾아 주위를 둘러 보았다. 멍하니 이 쪽을 지켜 보는 사이가 눈에 들어오자 매달리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프레이…."

사이도 복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나탈이 자신과 프레이의 짐을 바닥에 내려 놓고 척, 경례했다.

"그럼 함장님."

마류도 경례로 답했다.

"…지금까지 고마웠어, 버질 중위."

"아뇨…."

나탈도 그 순간에는 주저하듯 약한 표정을 지었다. 마류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충돌해 온 상대였지만, 그녀의 냉정한 판단이 없었다면 그들은 이 곳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만나길 바래. 전장이 아닌 어딘가에서…."

마류가 한숨을 섞어 가며 현 시점에서는 꿈에 불과한 바람을 입에 담자 나탈은 대답했다.

"종전이라도 되면 가능하겠죠."

그 딱딱한 말투와, 그것과는 안 어울리지만 그 목소리에 깃든 바람에 마류는 미소 지었다.

"그래…."

종전이 된 후 군인이 아닌 나탈과의 재회를 상상하자 조금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그런 날이 언젠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애를 부탁할게."

마류가 프레이를 쳐다보고 한 말을 신호로, 나탈은 짐을 들고 다시 한 쪽 손으로 프레이의 팔을 붙잡았다. 끌려 가면서 마지막으로 프레이가 사이를 쳐다보자, 사이 역시 뒤를 쫓듯 한 발짝 내딛다가 마음을 고쳐 먹은 듯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 어깨 위에 어디선가 날아 온 토리가 내려 앉았다. 소년과 소녀는 안타까운 시선을 주고 받았지만, 이윽고 멀어져 갔다. 끝까지 그 사이에 응어리를 남긴 채…. 그 다음 마류 앞에 선 사람은 장신의 모빌 아머 파일럿이었다.

"나도 일단 말은 해 볼까…?"

익숙치 않은 제모(制帽)를 비스듬하게 머리에 쓴 무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인사국에 말이야."

마류는 미소 지었다.

"받아 줄 리 없다던데요?"

"하지만 하필이면 이런 때 교관을 하라니."

무우는 캘리포니아의 사관 학교로 전속되었다. 그는 놀랍게도 그 곳에서 교관으로 복무할 예정이다. 실전에서 모빌 슈트와 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파일럿인 그에게 일선을 떠나라니, 상층부는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류는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무우를 격려했다.

"당신이 가르치면 전선에서 신병들의 사망률이 낮아지겠죠."

이 남자에 대한 깊은 신뢰가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하게 했다. 위로해 주려고 한 말이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남자'니까…. 무우는 삐친 것 같은 얼굴로 물끄러미 그런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교관'이 된 그를 상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학생들에게 나쁜 것도 가르쳐 줄 것 같아서 조금 걱정 되었다.

"…자, 늦겠어요."

그녀가 재촉하자 무우는 제모를 거칠게 벗고 "아아, 정말 젠장!" 하며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그리고 다시 화난 것 같은 눈으로 마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의 의미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남자는 정말 못 말리겠다….'

그녀는 상대의, 그리고 자기 자신의 망설임을 끊듯 손을 들어 경례를 했다.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말 끝이 떨리고 말았다. 무우도 느릿느릿 손을 들었다.

"나야말로…."

두 사람은 잠시 애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무우는 마음을 굳힌 듯 등을 돌렸다. 그는 지나치면서 사이의 어깨를 두드린 후, 모두의 경례를 받으면서 해치로 향했다. 여느 때와 달리 의욕이 없어 보이는 걸음 걸이로 떠나가는 남자의 넓은 등을 마류는 눈물을 참으면서 지켜 보았다.

"제군들에 대한 통지를 전한다."

아크 엔젤의 함교에서는 전령을 맡은 장교가 마류 일행 앞에서 엄숙하게 고했다.

"잠정적인 조치이기는 하지만 제８함대 아크 엔젤은 오늘 부로 알래스카 수비군 제５호위대로 소속을 바꾸게 된다! 발령다는 윌리엄 서덜렌드 대령."

경례로 그 통지를 받기는 했지만 마류의 얼굴에는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의 뒤에서 파르와 찬드라가 들리지 않게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알래스카 수비군?"

"아크 엔젤은 우주함인데?"

이런 곳에서 잡담이 용인될 리 없다. 나탈이 없어져서 마음이 해이해진 걸까? 나중에 질책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류 역시 의문을 느꼈다.

"그 후속 조치로써 14시부터 귀함에 대한 보급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상이다!"

명령은 그것 뿐인가? 마류는 곤혹을 감추지 못하고 그 말을 끝으로 떠나려 하는 장교에게 "저, 저기!" 라고 말을 걸었다. 장교는 자신을 멈춰 세운 그 말에 불쾌한 표정을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뭐야, 불복인가?"

"그건 아닙니다만, 이 쪽에는 휴가, 제대를 신청한 사람도 있고, 포로의 취급 건도 아직…."

소속에 관해서는 잠정 조치인 만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제８함대에 적을 두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고, 조직으로서는 우주로 돌려 보낼 때까지 무소속으로 놔 둘 수도 없을 것이다. 수비군 소속이라면 끊임 없이 격침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전투가 벌어질 확률은 거의 없다. 자프트가 지금 노리는 것은 파나마이니 본부에 있는 동안은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입항한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승무원에게 땅을 밟게 하기는 커녕 포로의 이송도 없다니 꽤 이상한 조치로 생각되었다. 마류의 이의에 대해 여전히 전령 장교의 대답은 무뚝뚝했다.

"대령님께 전해 두도록 하지."

그 말만 믿고 벌써 며칠을 기다렸던가? 내심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류는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닥칠 파나마 침공을 생각하면 자신들의 불편 따위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 싸움에서 지구 연합군은 승리할 수 있을까? 얼마 전의 청문회를 떠올리고 마류는 자신의 무력함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디아카는 쭉 생각하고 있었다. 어둡고 좁은 독방 안에서는 달리 할 일도 없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그는 굳이 말하자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성격이었고, 어떤 일이건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살아 왔다. 마치 그것을 만회하려는 듯 그는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뭘 하고 있을까? 다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이 함에 수용된 후로 형식적으로 이름과 인식 번호, 소속 부대 등을 묻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식사만 제공될 뿐 심문도 이송도 없이 방치되어 있다. 본래라면 기지에 도착한 시점에 제대로 된 시설로 이송되거나 송환 교섭에 들어가야 마땅한데, 이래서는 본국에 보고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힘들다. 다들 자신이 죽은 걸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굉장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자크는…, 녀석은 아마 얼빠진 녀석이라고 깎아 내리면서도 니콜 때와 마찬가지로 눈물을 흘려 줄 것이다.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뜨거운 녀석이니까. 아스란도 짝이 안 맞는 녀석이기는 했지만 그 침울한 얼굴로 슬퍼해 주기는 할 것이다. 아니면 동정을 받게 될까? 상상하면 조금 열 받는다. 아무래도 녀석과는 죽은 후에도 마음이 안 맞을 것 같다.

'아직 안 죽었지만….'

그렇게 생각한 순간 자기 연민에 빠질 것 같던 마음이 확 식었다. 그렇다. 자신은 아직 살아 있다. 그 소녀의 연인과는 달리…. '토르'의 동료도 조금 전에 상상한 이자크와 아스란처럼 그 죽음을 슬퍼했을 것이다.

"슬픈 건 내츄럴도 똑같으니 말이야."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앞으로 본국에 돌아가서 다시 전선에 복귀한다고 해도, 자신은 전과 마찬가지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 적기를 볼 때마다 그 안에 얼굴도 모르는 '토르'가 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는 어두운 천장을 쳐다보며 생각을 계속했다.

 

 

플랜트 본국에서는 중요한 결단이 내려지고 있었다. 패트릭 자라가 전군에 대해 통신 회선을 열었다.

"이 작전에 의해 전쟁이 조기 종결로 향하기를 절실히 바란다. 진정한 자유와 정의가 보이기를…."

그는 벌떡 일어나서 선언했다.

"오퍼레이션 스핏 브레이크를 개시하라!"

그 지시는 대기 중이던 각 함과 각 기체 그리고 모든 거점에 보내졌다. 무수한 통신기 앞에서 그것을 전하는 오퍼레이터의 목소리가 거대한 소리가 되어 흘러 넘쳤다.

「오퍼레이션 스핏 브레이크 발동!」

「4시, 스핏 브레이크 발동.」

「사무국 제６호 작전 개봉 승인! 콜 사인 오퍼레이션 스핏 브레이크, 목표…」

「목표, 알래스카 지구 연합군 본부… JOSH-A!」

명령서를 개봉한 지휘관들 대부분이 숨을 삼켰다.

"JOSH-A?"

"알래스카라고?!"

한순간에 파나마를 비추고 있던 그들 앞의 모니터가 전환되며 북미 북단을 나타내는 지도로 바뀌었다. 오퍼레이터들도 자신이 전하는 내용에 놀라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스핏 브레이크가 발동되었습니다. 목표는 알래스카 JOSH-A입니다!」

당연히 그것을 전해 받은 병사들도 아닌 밤 중에 홍두깨였다.

"지구군 본부!?"

"파나마가 아니었어?!"

놀라는 병사들을 곁눈으로 보면서 혼자 싱글거리는 지휘관들도 있었다. 이 공격 목표를 사전에 알고 있던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었다. 그 안에는 물론 라우 르 크루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머리를 치는 편이 싸움은 일찍 끝나거든."

그는 짐짓 아는 척 중얼거렸다. 전에 패트릭이 '진정한 오퍼레이션 스핏 브레이크'라고 말한 작전…. 그것이 바로 이 알래스카 기습 작전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매스 드라이버를 빼앗기 위해 파나마를 습격하는 것처럼 속여서 지구군이 파나마에 수비군을 집결시키는 동안 허술해진 최고 사령부를 치는 것. 그것이 패트릭의 생각이었다. 그 후 최종 목적지는 엄중한 비밀에 부쳐져서 최고 평의회조차 모르게 수면 밑에서 준비가 진행되었다. 단숨에 본진을 함락하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어 플랜트는 지구의 지배권을 손에 넣는다. 그것은 파나마를 함락하여 지구군의 우주 보급로를 완전히 차단함으로써 플랜트를 방어하자는 수비 위주의 당초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적극적인 작전이었다. 경악에서 벗어나 패트릭의 의도를 깨달은 병사들이 자신만만하게 중얼거렸다.

"이걸로 끝장이구나, 내츄럴 놈들도."

 

 

"…어떻게 된 일이지, 이게?"

무우는 놀라서 중얼거렸다. 그랜드 할로우 안에 설치된 지하 독에는 여러 척의 잠수함이 분주하게 발착했고, 플랫폼에는 병사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거대한 공동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소용돌이 쳐서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또 파나마로 출동하는 부대가 있는 걸까요?"

옆에 있던 나탈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넌지시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이 소란 속에서는 알아 듣기 힘들었다. 파나마로 가는 증원 부대와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면 이 혼란은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JOSH-A의 구성원이 모두 이동하는 것 같다…, 라고 무우는 생각했다.

"네가 탑승할 배는 저 쪽이야."

나탈이 프레이의 발령지에 대한 문서를 살펴 본 후 짐을 건네며 그 쪽을 가리켰다. 프레이는 더 이상 저항하기를 중단했지만 혼잡한 주위의 모습에 겁 먹은 표정이었다.

"소령님은 어느 쪽인가요?"

나탈의 물음에 무우는 자신의 발령 통지서에 시선을 떨구었다.

"아, 나도 이 아이랑 같네."

"그런가요?"

나탈이 조금 안도의 빛을 보였다. 이런 혼란 속에서는 자신이 탑승할 배에 타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다. 프레이가 불안한 듯 무우에게 다가갔다.

"그럼…, 소령님."

그 말에 플랫폼을 확인하던 무우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래…. 여기서 작별인가?"

당연한 듯이 오른손을 내밀다가 나탈이 등을 꼿꼿이 세우고 경례하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무우가 내민 손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다가 들려던 손을 조심조심 내밀었다. 무우는 그런 그녀의 손을 움켜 잡았다.

"그럼, 뭐, 중위도 잘 지내라고."

"예…."

악수하는 것이 처음은 아닐 텐데 어색하게 눈을 깜박거리고 있는 나탈에게 무우는 미소 지은 후 손을 놓았다.

"꼬마 아가씨는 나한테서 떨어지면 안 돼."

그 말에 프레이는 허둥지둥 짐을 집어 들고 따라왔다. 다른 배로 향하는 인파를 거슬러 가서 두 사람은 정해진 줄에 섰다. 아무래도 두 사람을 태울 배는 아직 탑승이 시작되지 않은 듯 했다.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말한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무우는 좀 전에 헤어진 여자를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함장'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 젊음과 위태로움. 그러나 그녀는 틀림 없이 전사다. 설사 역전의 명 함장이라도 헬리오 폴리스로부터 시작된 긴 여로는 엄청난 중압이었을 텐데, 그 젊음과 부족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침내 이 곳까지 모두를 이끌고 도착했다. 그것은 그 완고할 정도의 강한 의지와, 때로는 무우조차 질릴 정도의 과감함,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저항 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약함'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런 여자는 아마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무우는 잠시 조바심 내며 앞에 늘어선 줄을 쳐다보았다. 당분간 탑승은 시작될 것 같지 않았다. 잠깐…, 그래, 잠깐 다녀 올 시간 정도는 있겠지. 뭐 배를 놓친다면 그 때는 그 때다. 그는 프레이를 돌아 보며 그녀 몫의 발령 통지서를 건넸다.

"여기 서 있다가 네 차례가 오면 그것을 보여 주고 타. 알았지?"

"예? 저기…!"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프레이를 그 자리에 남겨 두고 그는 갑자기 통로 쪽으로 달려갔다.

"난 깜박 잊고 온 것이 있어서!"

돌연 울려 퍼지기 시작한 경보에 마류는 놀라 CIC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지?"

상황을 알지 못하는 당직자들도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기지 전체에 비상 사태를 알리는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밖에 있는 병사들도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며 달려가고 있었다. 아크 엔젤의 함교에서는 팔이 소리쳤다.

"통합 작전실로부터 입전!"

모니터에 비친 장교의 얼굴을 보고 마류는 물었다.

"서덜렌드 대령님, 이건…?!"

그 목소리를 중간에 끊듯 서덜렌드는 명령을 내렸다.

「수비군은 즉시 발진하여 요격을 개시하라!」

마류와 다른 승무원들은 갑작스러운 발진 명령에 허를 찔렸다.

'요격? 그렇다면 설마 적의 공격? 이 곳 JOSH-A에?'

화면의 서덜렌드는 말을 이었다.

「당했군. 놈들은 직전에 목표를 이 곳 JOSH-A로 바꾸었다.」

상대의 태연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어조에 방금 한 말의 의미가 잠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해해 감에 따라 마류는 등골에 스멀스멀 차가운 것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다.

'파나마가 아니었다고?'

파나마에 대한 침공은 양동 작전이었던 것이다. 자프트가 노리는 곳은 이 곳 JOSH-A, 알래스카였다!

「이 곳을 적의 손에 넘겨 줄 수는 없다. 어떻게든 사수하라.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각자 건투를. 이상이다.」

그렇게 고하고 통신은 끊어졌지만 승무원들은 다들 그대로 멍하니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마류는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요격하라고 해도… 지금은 아크 엔젤이 의지할 수 있는 스트라이크가 없다. 그리고 스카이 글래스퍼의 조종사도 이제 없다. 보유하고 있는 기동 병기도 없이 어떻게 자프트의 모빌 슈트 부대와 싸우라는 것인가? 이 함이 최신예 병기를 장비하고 있는 특장함이라고는 해도 모빌 슈트를 상대로 버티는 데에는 한도가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싸우라는 건 너무 무모한 일이지만 본부가 당하게 놔 둘 수는 없어."

이 곳은 지구 연합군의 가장 중요한 거점. 파나마와 마찬가지로, 아니 오히려 파나마보다 중요한 거점이다. 그 곳을 호락 호락 넘겨 줄 수는 없다.

"함장님…."

노이만이 돌아 보며 절망적인 눈으로 마류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에 시선을 던진 후, 그녀는 소리 높여 명령했다.

"전원 제１전투 배치! 아크 엔젤은 방어 임무를 위해 발진한다!"

"그런…."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를 낸 것은 카즈이였다.

"키라도 소령님도 없는데 어떻게…?"

그의 제대 신청은 결국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괴로움을 곱씹으면서 마류는 전방을 응시했다.

"아크 엔젤 발진!"

 

 

우주에서 강습용 캡슐이 투하되더니 상공에서 씨앗이 틔듯 터졌다. 그 곳에서 나타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긴과 시그가 북쪽 끝 대지에 내려 섰다. 상공을 뒤덮은 대형 수송기와 부상한 잠수 모함에서 잇달아 딘이 날아 오르며 지상으로부터의 요격을 피해 다가와서 폭격을 개시했고, 얼음 바다를 통해서는 군과 조노가 다가왔다. 자우트가 2연장 캐논과 중 돌격기 총을 연사하면서 포격을 개시한 토치카로 쇄도했고, 그 등 뒤에서 민첩한 움직임으로 바쿠가 도약했다. 격렬한 전투가 시작된 지상에서 유콘 강 위를 저공 비행으로 다가오는 기체가 있었다. 라우 르 크루제가 탑승한 딘이다. 그 기체는 대공 포화를 피해 순식간에 JOSH-A의 게이트로 쇄도했다. 모빌 슈트가 보유한 MMI-M7S 76mm 중 돌격기 총이 불을 뿜으며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포대를 박살 냈다. 라우는 그대로 폭포에 돌진하여 게이트에 침입했다. 그리고 내부 통로를 나아가며 중얼거렸다.

"흥…. 아즈라엘의 정보는 확실한 것 같군."

그가 노려보는 모니터에는 어떻게 입수했는지 JOSH-A의 정밀한 공격 목표도가 있었다. 이 정보를 얻기 위해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결국 상대와 라우 쌍방이 만족한 유용한 '거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라우에게는 '일석이조'에 불과했지만…. 그는 그대로 통로를 나아가서 거의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랜드 할로우에 도착했다. 그것은 선택한 루트가 침입하기 쉬워서이기도 했지만, 시설 안에 있는 적들이 이상하리만치 적은 탓도 있었다. 그는 휑한 그랜드 할로우에 도착하자 딘에서 내려 한 쪽 손의 소형 컴퓨터의 정보를 확인한 후 달려 나갔다. 내부 통로를 나아가는 동안 사람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열려 있는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니 서둘러 방치한 듯 어질러진 방에는 사람의 모습이 없었다. 라우는 잰걸음으로 그 곳을 지나쳤다.

한편, 지하 독을 떠나 아크 엔젤로 돌아가려던 무우는 그 도중에 경보를 들었다.

"…적의 습격?"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두근거린 그는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다. 독으로 가는 통로를 거슬러 가다가 그는 문득 몸을 훑고 지나가는 감각에 놀라 발을 멈추었다.

"이 느낌은…?"

전장에서 몇 번이고 느낀 적이 있는 전율과도 같은 불쾌한 감각.

'설마… 이런 곳에 녀석이…?'

"…라우 르 크루제인가?!"

그렇다면 JOSH-A는 적의 침입을 허용했다는 말이 된다.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다. 그는 권총을 확인한 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부응하듯 과감한 발걸음으로 '감각'이 오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관제실 앞에서 그는 발 소리를 낮추었다. 반 쯤 열린 문 틈새로 실내를 들여다 보니 경보가 발령 중임에도 불구하고 실내는 어둡고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아니…, 한 남자가 콘솔 앞에 웅크리고 있었다. 어깨까지 물결치는 머리카락은 무우와 같은 금색, 그리고 자프트의 지휘관용 제복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

'이 녀석이…?!'

무심코 경계하는 것을 잊고 몸을 내민 탓에 그림자가 자프트 지휘관의 발 밑에 드리워졌다. 곧바로 적장은 돌아보며 들고 있던 권총을 쏘았다. 무우는 실내로 뛰어들어 콘솔 뒤에서 반격했다. 잠깐 보인 얼굴은 은색 마스크로 덮여 있었다. 틀림 없다. 자프트의 '가면 남자' 라우 르 크루제!

"오랜만이다, 무우 라 프라가…."

유연한 목소리가 총성이 반사되는 실내에 울려 퍼졌다. 적이 뚜렷하게 자신을 식별하고 있다는 것을 무우는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 '감각'은 일방 통행이 아닌 모양이다.

"모처럼 만났는데 아쉽군. 지금은 너와 놀고 있을 시간이 없거든."

맨 몸으로 직접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텐데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는 목소리였다. 무우는 그늘에서 라우의 목소리가 난 쪽을 살펴 보았다. 그러나 움직인 순간 총성이 울리더니 콘솔을 맞고 불꽃이 튀었다.

"이 곳에 있는 걸 보니 네놈도 지구군에서 버림 받은 모양이군. 몰락했구나, '엔듀미온의 매'도…."

야유하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리더니 그림자가 잽싸게 움직였다. 무우는 콘솔 뒤에서 뛰쳐 나와 그 쪽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하지만 라우는 재빨리 밖으로 뛰쳐 나갔다. 닫히는 문 틈새로 힐끗 그의 모습이 보였지만 다음 순간 문이 꽉 닫혔다.

"쳇…!"

뒤를 쫓을까 망설였지만, 그보다도 그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가 마음에 걸렸다. 이런 긴급 사태에 이 곳에 왜 아무도 없을까? 설마 그것도 라우가? 한 순간 그렇게 생각했지만 놈의 습격을 받았다면 시신이 나뒹굴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가 이 곳에 왔을 때 이미 당직자는 없었다는 말인가? 이상했다. 이 곳에 도착할 때까지도 통로에 그림자조차 없었고 묘하게 썰렁한 분위기였다. 적이 습격해 왔다면 좀 더 소란스러워야 마땅한데…. 무우는 의심을 품으며 일단 라우가 보고 있던 데이터 패널을 쳐다보았다.

'뭐야, 이게…?'

그 곳에는 거대한 애꾸눈과도 같은 구조물이 비치고 있었다. 무우는 처음엔 이상하다는 듯이 데이터를 읽어 내려 가다가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자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다시 한 번 재빨리 데이터를 읽어 내려갔다. 착오였다면 좋겠다고 기원하면서…. 그러나 그 바람은 배신 당했다. 그는 몸을 돌려 관제실을 뛰쳐 나갔다.

'이럴 수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분노가 돌연 가슴에 치밀어 그는 무작정 통로를 달렸다. 서두르는 것만이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서둘러야 한다. 어떻게든 아크 엔젤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늦기 전에…!'

 

 

혼잡한 지하 독에서 프레이는 잠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서 있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무우가 돌아오지 않자 그녀는 살피듯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그녀는 몰래 줄을 빠져나와 통로를 되돌아 가기 시작했다.

'아크 엔젤로 돌아가자…!'

몰래 돌아가서…, 그래, 사이에게 어떻게 해 달라고 부탁해 보자. 함장님은 그렇게 말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이상하니까. 난 아크 엔젤을 떠나고 싶지 않아. 그런데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나만 전속시키다니 너무 이상해. 그 함의 사람들 말고는 군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녀에게는 자신이 명령을 위반하려 한다는 의식도 없었다. 어찌 됐건 함으로 돌아가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눈물로 호소하면 자신의 요구가 관철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지금까지 그녀의 인생에서는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낯선 사람들 속에 내팽개쳐지는 것이 불안해서 그 때까지 그렇게 불만이었던 생활에 매달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십여 분 후 그녀는 그랜드 할로우 내부에 미로처럼 얽혀 있는 통로 안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어정쩡한 기억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왔지만, 어디든 비슷한 통로 뿐이었고 방향도 알 수 없었다. 요소 요소에 안내를 위한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기는 했지만, 애당초 기지 내 시설을 파악하지 못한 그녀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후로도 몇 분 더 헤맸지만, 이제 자신이 아크 엔젤로 다가가고 있는지, 아니면 같은 장소를 빙빙 돌고 있을 뿐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올 때 주위를 좀 더 살펴 둘 것을.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기만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붙잡고 길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주변에 사람의 기척은 없고 주위는 고요했다. 그것이 더욱 불안을 부채질했다.

"아크 엔젤은… 어디 있는 거야…?"

프레이는 거의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항상 주위에는 그녀를 떠받들어 주는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곤경에서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않고 돌아 보지도 않아서 홀로 헤매고 있다. 이것은 무언가의 벌일까? 그렇다. 그녀의 눈이 눈물로 흐려졌다. 분명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이를 배신하고 키라를 상처 입혔으며 결국에는 죽게 만들고 말았다. 사과도 못한 채…. 그럼에도 외롭고 허전해서 사이에게 의존하려고 했다. 그 때는 생각했던 것이다. 처음의 의도대로 키라가 죽어서 복수는 끝났다. 그래서 자신은 원래대로 사이에게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굳이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이는 그녀를 마치 더러운 것을 보는 눈으로 보며 거절했다. 그 때는 그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고 지금도 돌이켜 보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확실히 자신은 더러운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자신은 왜 이런 전재가 되어 버린 것일까? 어디서 잘못돼 버린 것일까…? 울고 싶은 심정으로 이제는 그저 되는 대로 걷고 있던 프레이는 들려 온 사람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무심코 그 쪽으로 가려다가 이번에는 뚜렷한 목소리가 들려 움찔 발을 멈추었다.

"자프트 병사다!"

"적이 침입했다!"

'자프트 병사? 코디네이터가 어떻게 이런 곳에?!'

그리고 총성이 울려 퍼졌다. 멍하니 서 있는 그녀 앞으로 통로를 돌아 한 병사가 달려 왔다. 그는 등 뒤를 향해 권총을 쏘면서 후퇴했지만 다음 순간 총성이 들리더니 털썩 쓰러졌다.

"꺄악!"

이 쪽으로 쓰러진 병사의 모습에 프레이는 혼란에 빠져 비명을 질렀다. 도망치려다 발이 꼬여서 벽에 매달린 채 주저앉고 말았다. 돌아 본 시선 저 편에는 총을 맞고 죽은 병사의 손에서 떨어진 권총이 있었다. 가벼운 발 소리가 들린 후 그녀의 앞에 훤칠한 남자가 나타났다. 자프트 제복 차림, 물결치는 금발, 손에는 권총을 쥐고 있었다. 이 남자가 아까 그 병사를 쏘아 죽인 것이다. 프레이는 비명을 지르며 허겁지겁 권총을 집어 들었다. 자프트 병사는 그녀를 눈치 채고 멈추어 섰다.

"호오, 이건…?"

야유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 프레이는 숨을 삼켰다.

"…아빠?"

'닮았다….'

그녀의 눈은 빨려들 듯 자프트 병사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상한 은색 마스크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 곳에 그녀가 찾는 풍모는 없었다. 가면 밑의 얇은 입술에서 웃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빠가 그리운가 보지?"

놀리듯 토해 낸 목소리는 프레이의 아버지 조지 알스터의 그것과 비슷했다. 무심코 총을 거두고 멍하니 서 있는 그녀의 눈 앞에 다음 순간 자프트 병사가 다가왔다.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그의 주먹이 그녀의 명치에 박혔다. 자프트 병사…. 라우 르 크루제는 의식을 잃은 소녀의 몸을 가볍게 들쳐 메고 그 자리를 떠났다.

 

 

폭포를 가르며 백아(白亞)의 거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크 엔젤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 진입하자마자 마류는 외쳤다.

"원 배트, 발리언트 발사!"

발사된 미사일을 눈치 채는 것이 늦었는지 1기의 딘이 회피하지 못하고 격추되었다. 폭발의 불꽃에 휩싸여 떨어져 가는 기체를 지켜 볼 틈도 없이 아크 엔젤은 회피 기동을 하면서 화포를 쏘았다. 1기를 격추한 정도로 기뻐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상공에서는 딘과 구울을 타고 진이 자유자재로 날아 다니며 대공 포대와 수비군의 함대를 공격하고 있었다. 하나의 포대가 자우트의 강대한 포화를 맞고 허무하게 박살 났지만, 다음 순간 그 자우트는 전차가 쏜 미사일을 사출기에 맞고 쓰러졌다. 그리고 전차는 자우트의 뒤 쪽에서 도약해 온 바쿠에 의해 한 순간에 밟혀 으스러졌다.

"미사일이 옵니다!"

아크 엔젤의 함교에서 토노무라가 소리쳤다. 마류가 외쳤다.

"회피!"

그러나 1기의 딘이 흉부에서 쏜 대공 미사일이 노이만의 필사적인 조종에도 불구하고 아크 엔젤을 쫓아 와 우현 발굽 부분에서 작렬했다. 격렬한 진동 속에서 찬드라가 보고했다.

"우현 플라이트 덱, 피격!"

그 곳에서 발착하는 기체가 없는 현 상태에서는 그리 심각한 피해는 아니었다. 그러나 눈 앞에 전개된 함대 중에는 주위를 날아 다니는 모빌 슈트에 대항하지 못하고 갑판에서 불을 뿜으며 격침되는 함도 있었다.

"올레그 격침!"

마류는 지시를 내렸다.

"함수를 왼쪽으로! 올레그가 빠진 구멍을 메운다!"

"다시 딘이 접근! 숫자 여섯!"

토노무라의 목소리에 노이만이 무심코 항의의 목소리를 냈다.

"이런 진용으로는 대항할 수 없습니다!"

마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주력 부대는 파나마에 파견되어 남아 있는 것은 얼마 안 되는 수비 병력 뿐이다. 이런 부족한 전력으로 이렇게 많은 숫자의 모빌 슈트에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제기랄! 완전히 한 방 먹었어! 사령부도!"

찬드라가 투덜댔다. 사이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력 부대는 전부 파나마에 가 있나요? 돌아와 주겠죠?!"

토노무라가 외쳤다.

"이 쪽이 전멸하기 전에 와 주면 좋겠지만 말이야!"

전투기가 날아 다니며 모빌 슈트와 교전했지만 잇달아 격추되고 있었다. 눈 앞에서는 마치 벌 떼가 모여 들 듯 모빌 슈트가 전함을 주위에서 포위한 채 교모하게 포화를 피하면서 오히려 미사일과 총알을 명중시키고 있었다. 동료 함은 필사적으로 대공 포화를 퍼붓지만 버티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올레그, 로로, 류리크…. 유라시아의 함이 많았다. 마류는 한 순간 전개되어 있는 함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곧 토노무라의 외침에 주의를 돌렸다.

"미사일 접근!"

"회피!"

그녀는 외쳤다. 쓸 데 없는 것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가 아니다. 이겔슈테른이 간신히 모든 미사일을 격추시켰고,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폭발에 함교는 드르르 진동했다. 긴 사투는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무우는 인적이 없는 기지의 안을 오토바이로 질주하다가 게이트에 도달하자 오토바이를 버리고 뛰어 내렸다. 주위에는 전투기가 늘어서 있고, 손상을 입고 귀환한 기체에서는 부상 당한 병사가 실려 나왔으며, 사람들이 소리치며 오가고 있었다. 무우는 가까운 곳에 있는 정비사에게 달려가 어깨를 붙잡았다.

"이 봐! 이 곳 지휘관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폭음이 그 목소리를 가로막았다. 두 사람은 놀라서 돌아 보다가 파괴된 게이트를 통해 거대한 기체가 들어오는 것을 목격하고 얼어 붙었다. 무우가 곧바로 정비사를 엄폐물 뒤로 잡아 당겼다. 모노 아이가 쓱 움직이나 싶더니 딘의 76mm 중 돌격기 총이 불을 뿜었다. 대기 중이던 전투기에 잇달아 구멍이 뚫리며 불꽃이 솟구쳤다. 총성과 거대한 탄피가 떨어지는 금속성이 주위에 울려 퍼졌다. 침입한 진은 대충 쏜 후 내부 해치를 파괴하고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몇 기의 모빌 슈트가 그 뒤를 따르는 것을 무우는 묘하게 차가운 기분으로 지켜 보았다. 모빌 슈트 부대가 통과하자 무우는 옆에 있는 정비사에게 몸을 돌렸다.

"이 봐!"

멍하니 앉아 있던 정비사는 그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그를 향해 눈을 돌렸다. 무우는 그의 몸을 난폭하게 일으키고 말했다.

"여기서 철수해! 기지는 이미 포기 상태야!"

"예…?"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 젊은 정비사는 입을 떡 벌릴 뿐이었다.

"생존자들을 모아서 어서 탈출해! 자, 정신 차리고!"

벽에 떨어져 있던 누군가의 헬멧을 집어 든 후 무우는 상대의 몸을 흔들었다. 정비사는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연기를 내뿜는 기체와 파괴된 해치, 그리고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피투성이의 시신들…. 일찍이 동료였던 자들을 둘러 보고 있었다. 무우는 기적적으로 파괴를 면한 1기의 전투기를 향해 달리면서도 돌아보며 다짐을 받았다.

"최소한 기지에서 10km 이상은 떨어져야 돼! 알았지?! 이건 명령이야!"

넋 놓고 있던 정비사는 그제야 그에게 눈을 돌리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심코 돌아가서 꾸짖어 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무심코 돌아가서 꾸짖어 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그가 '명령'을 따르기를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무우는 조종석에 뛰어들어 허둥지둥 기체를 기동시켰다.

"쳇…, 난 영웅 체질이 아닌데!"

짧게 투덜거린 후 그는 흩어져 있는 잔해를 능숙하게 피하면서 기체를 발진시켰다.

 

 

얼음 바다 깊숙한 곳에서 여러 척의 잠수함이 고속으로 잠행하고 있었다. 어느 함이건 한계에 가까운 인원이 탑승해 북적대고 있었다. 그 안에 나탈의 모습도 있었다. 그녀는 다른 장교와 병사들과 함께 선창에 수용되었다. 잡다한 짐이 놓인 창고 같은 방에는 당연히 좌석이 없어서 그녀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앉을 수밖에 없었고, 누울 공간조차 없었다. 마치 짐짝과 같은 취급이었다. 오일 냄새가 코를 찌르고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희미한 조명에 비친 얼굴들은 다들 매우 지쳐 있어서 자신들이 장교가 아니라 평범한 난민처럼 생각되었다. 그것이 명령이라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 의문을 제기할 여지 따위는 없다고 평소부터 그렇게 믿고 있던 나탈도 이렇게 낯선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어린 아이처럼 무릎을 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비참한 기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아크 엔젤에서는 부함장의 지위에 있었고, 함교에는 자신의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가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알고 있었고 고생이 많은 지위이기는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시간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충실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마음껏 함을 조종했고, 부하들도 못 미덥기는 했지만 그녀의 지시를 잘 따라 주었다. 예전에는 무르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던 함장도 지금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 곳에 애착을 가지고 있음을 나탈은 처음으로 깨닫고 그런 자신의 마음에 당혹했다. 군대란 서열과 효율을 중시하는 곳이지 그런 개인적인 감정을 기르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홀로 동료들과 떨어진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허전함과 외로움이었다. 전속에 대해 그렇게나 저항하던 그 소녀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했다.

아크 엔젤은… 묘한 곳이었다. 우군으로부터 고립된 채 온갖 수단을 다 써서 살아 남으려고 했던 만큼 본래의 군 조직에는 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떠돌고 있었다. 그 분위기에는 함장의 기질과 야전 임관한 소년, 소녀들이 초래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군에 소속되어 있는 이유는 목적에 이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다. 대대로 군인을 배출한 가문에서 자랐고 사관 학교를 거쳐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나탈의 눈에는 그런 그들의 마음가짐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때도 있었지만…. 그리고 "그럼 잘 지내." 라며 악수를 청하다니, 군대의 인사에 그런 것은 없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무우가 잡았던 손을 쳐다보았다. 그도 지금쯤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일 냄새가 밴 선창에서 무릎을 안고 있을까? 아니, 그라면 분명 주위의 병사들에게 마구잡이로 말을 걸어 서로 친해지든지 모두를 압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멍하니 과거 동료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화물 뒤쪽에서 작게 이야기를 하던 누군가가 돌연 큰 소리를 냈다.

"뭐?! 설마 그런…!"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 있던 병사가 조심성 없는 큰 소리에 투덜투덜 욕지꺼리를 했고, 화물 뒤쪽에서는 "쉿!" 하고 상대의 큰 소리를 나무라는 소리가 났다.

"위험한 얘기란 말이야, 이건…."

나탈은 속닥거리는 소리로 나누어지고 있는 대화에 흥미가 끌려 귀를 기울였다.

"…그럼 알래스카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방금 전 소리를 지른 사람이 조심스레 묻자 상대는 씁쓰름한 어조로 말했다.

"분전하겠지만 전멸…할 거야…."

나탈의 등줄기를 타고 전기가 흘렀다.

'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이들은?'

"그리고 본부는 마지막 순간에 나서서… 모두 쾅…이야."

'뭐라고?! 전멸…?! 그럼 아크 엔젤은…? 함에 남은 승무원들은…?!'

나탈의 뇌리에 남겨진 동료들의 얼굴이 차례로 스쳤다.

"이 봐! 그 얘기…!"

그녀는 무심코 일어나서 말이 들린 방향에 대고 소리쳤다.

마찬가지로 알래스카 근해를 항해하는 잠수함 한 척. 잠수함 내부라는 장소적 특성 상 조금 좁기는 하지만 병사들이 맛보고 있는 혼잡과는 거리가 먼 쾌적한 함장실에 여러 명의 장교가 앉아 있었다. 어느 인물도 본래라면 JOSH-A에서 자프트의 기습에 놀라 필사적으로 방어전의 지휘를 하고 있어야 할 면면들이었다. 그 안에는 윌리엄 서덜렌드 대령의 모습도 있었다. 그와 다른 한 명의 장교가 테이블 위에 듀랄루민으로 만들어진 서류 가방을 놓고 눈짓을 나누었다.

"제４게이트가 돌파된 듯 합니다. 기지 내부에 대한 침공이 시작되었군요."

서덜렌드가 사전에 정해진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듯 담담히 보고하자 장교들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흥. 좀 더 버텨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유라시아 녀석들도 해이해져 있었던 것 아닐까요?"

동맹국의 병사들을 비웃는 말에 희미한 웃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니, 너무 잘 싸워 주면 오히려 곤란하지요…."

"메인 게이트도 금방 뚫리겠군요."

서덜렌드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들에게서는 아군의 가장 중요한 거점인 JOSH-A가 아깝다는 눈치는 보이지 않았고 자프트의 급습에 놀란 기색조차 없었다.

"최소한 8할은 유인하고 싶은데…."

서덜렌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눈 앞에 놓인 서류 가방의 뚜껑을 열었다. 그 내부는 통신 기기와 비슷한 어떤 장치였다. 옆에 있는 케이스도 완전히 똑같았다. 서덜렌드는 앞으로 이 장치가 만들어 낼 '전과'를 몽상하며 어두운…, 어딘지 악마적인 색채가 깃든 눈으로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무우는 기지 상공으로 전투기를 몰았다. 유콘 강 하구 부근에 전개한 함대와 그것들을 공격하는 모빌 슈트들이 보였다. 포화 틈새로 백아의 거함이 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어깨에서 힘을 뺐다.

"좋아! 아직 버텨 줬구나!"

아크 엔젤은 이미 이곳 저곳이 손상되어 연기를 내뿜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기체를 선회시켜 그 쪽으로 향하려고 했다. 그 때 무우의 기체를 눈치 챈 시그가 구울을 몰며 76mm 중 돌격기 총을 쏘아 댔다.

'바빠 죽겠는데 쓸 데 없는 방해를!'

무우는 기체를 비틀어 피하려고 했지만 그 일격이 날개를 스쳤다.

"쳇!"

무우는 기체를 바로 잡고 이탈하면서 통신 회선을 열었다.

"여기는 프라가! 아크 엔젤, 응답하라! 아크 엔젤!"

그러나 뉴트론 재머의 강도 탓인지 돌아오는 것은 귀에 거슬리는 잡음 뿐이었다.

"제기랄!"

무우는 화가 치밀어 통신기를 두들기며 하얀 함을 쳐다보았다.

'통신이 무리라면 직접 귓전에 대고 외칠 수밖에 없지.'

"발리언트 1번 침묵!"

"함의 손상율이 30%를 넘었습니다!"

아크 엔젤의 함교에서는 절망적인 보고만이 들려 왔다. 마류가 카즈이를 돌아 보며 물었다.

"사령부와 연락은?!"

"안 됩니다!"

카즈이가 우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느 채널이건 계속 같은 전문이 돌아올 뿐이라고요! '각자 방어선을 유지하면서 임기 응변으로 응전하라'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마류는 이를 갈았다. 아군의 손상이 극심해서 방어선은 이미 와해됐는데, 전황을 보면서 병사를 움직여야 할 사령부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미 지휘 계통은 끊어졌습니다! 함장님, 이래선…!"

노이만이 외쳤고, CIC에서는 사이가 다급하게 토노무라를 쳐다보았다.

"파나마에서 구원 부대는요?!"

"그림자도 안 보여!"

그 때였다.

"우군기 접근! 손상을 입은 듯 합니다!"

밀리아리아의 외침에 마류는 놀라 전방 모니터를 쳐다 보았다. 날개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1기의 전투기가 이 쪽으로 돌진해 오고 있었다.

"착함하려는 건가?!"

마류의 혼잣말에 노이만이 "말도 안 돼요!" 라고 소리쳤다. 마류는 허겁지겁 함 내 통화를 켜고 소리쳤다.

"정비반! 어떤 바보가 단독으로 돌입할 모양이니까 대피해!"

"비켜 줘, 다들!"

뻔뻔한 요청을 하며 무우는 공격을 받아 해치가 날아간 우현 사출기로 기수를 돌렸다.

"으랏차!"

그대로 그 곳으로 돌진해서 역제동을 걸었다. 무우의 기체를 보고 놀라 사방으로 도망치는 정비사들 앞에서 기체는 착함용 네트에 무사히 감겼다. 과연 일류 정비병 머독 다웠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무우는 헬멧을 벗어 던지고 캐노피를 연 후 조종석에서 뛰어 내렸다. 이미 떠난 줄 알았던 그의 모습에 머독이 입을 떡 벌리는 것을 곁눈으로 보면서 그는 함교로 달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에서 뛰쳐 나온 무우의 모습에 마류는 놀라서 숨을 삼켰다.

"……! 소령님?! 다, 당신 대체 무슨 짓을…!"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무우는 똑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보다 당장 이탈해!"

"예…?!"

예상치도 못한 말에 할 말을 잃은 마류의 얼굴을 본 순간 무우의 마음 속에 다시 분노가 끓어 올랐다. 역시 그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작전이라고! 수비군은 대체 어떤 명령을 받은 거야?!"

"소령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무우는 마류의 양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됐으니까 잘 들어!"

그 표정에 마류가 몸을 경직시켰다. 무우는 자신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본부 지하에 '사이클롭스'가 설치돼 있어! 작동되면 기지에서 반경 10km는 용광로가 돼 버릴 사이즈의 것이!"

마류가 눈을 크게 치켜떴다.

"이 전력으로 방어는 불가능해. 파나마로부터의 구원은 기대하기 힘들고…."

억누른 목소리로 한 단어, 한 단어 또렷하게 말하는 무우의 말을 승무원들은 멍하니 듣고 있었다.

"곧 수비군이 전멸하고… 게이트가 파괴되면… 본부는 시설의 파기를 겸해 사이클롭스를 작동시킬 거야…."

사이클롭스…. 그것은 강력한 마이크로 파 발생 장치다. 이 병기의 개발이 진척되어 실용화 단계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개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달 표면에서 사용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분명치는 않다. 실전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도 제한적인…, 그리고 비인도적인 병기다.

"…그걸로 자프트 전력의 대부분을 빼앗을 생각이야! …그게 높은 분들이 쓴 이번 전투의 시나리오지!"

"그런…."

마류가 이윽고 소리쳤다.

"그럴 리가!"

"난 이 눈으로 보고 왔어! 사령부는 이미 텅 비었다고! 남아서 싸우고 있는 건 유라시아의 부대와 아크 엔젤처럼 그 쪽 사정으로 버림 받은 녀석들 뿐이야!"

사람들의 말 소리가 끊겨 고요해진 함교에 바깥의 폭음만이 울려 퍼졌고 그것을 배경으로 무우는 씁쓸하게 내뱉었다.

"그런…."

마류는 힘이 빠진 듯 좌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겔슈테른이 자동으로 격추한 미사일이 섬광을 내뿜으며 아무도 움직이는 이가 없는 함교를 하얗게 비추었다. 멍하니 듣고 있던 노이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들 보고 여기서 죽으라는… 그런 말인가요?"

무우가 씁쓸하게 대답했다.

"철수한 것이 간파되지 않게끔 분전하다가 말이야."

그렇다. 그들은 산 제물이었다. 본부를 적의 손에 넘겨 줄 수는 없다. 그래서 대적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원군의 도착을 믿고 필사적으로 싸워 왔던 것인데…. 지켜야 할 것은 없었다. 원군 따위는 오지 않는다. 그들의 죽음은 예정되었던 것이다. 보다 많은 적을 없애기 위한 미끼로….

"이…."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 왔기에 무우와 마류는 그 쪽을 쳐다 보았다.

"이런 게… 작전인가요?"

밀리아리아가 우는 듯 웃는 듯 굳은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전쟁이니까…, 우리들은 군인이니까…, 그렇게 명령 받으면 그 명령대로… 죽어야 하나요?"

마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소녀의 물음에 상관인 그들은 대답할 수 없었다. 눈 앞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는 순간에도 몇 십 명의 목숨이 저항도 못 해 보고 사라져 간다. 그러나 그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이 곳에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에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마류의 눈에 강한 빛이 돌아왔다.

"…자프트 군을 유인하는 게 이 전투의 목적이라면."

그녀는 고개를 들고 도전하듯 무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본 함은 이미 그 임무를 달성했다고 판단합니다!"

지휘부의 그 누구도 불평할 수 없다는, 자포자기와도 같은 격한 마음이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건 아크 엔젤 함장인 마류 라미아스의 독단일 뿐, 다른 승무원들은 일절 이 판단에 책임이 없습니다!"

승무원들은 숨을 삼킨 채 그녀의 말을 들었다. 마류는 힐끔 무우를 쳐다 보았다.

"만약의 경우 그렇게 증언해 주시겠죠?"

이런 때에도 함장으로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하는 그녀의 마음에 무우는 감복함과 동시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는 타이르듯 미소 지었다.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돼."

마류는 잠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곧 표정을 굳히며 선언했다.

"본 함은 지금부터 현 전투 해역을 포기하고 이탈합니다!"

마른 침을 삼키고 지켜보던 승무원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감돌았다. 그들은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동료 함에 타전! '나를 따르라!' 기관 전속력! 함수를 왼쪽으로! 만 부분의 왼쪽 날개를 돌파한다!"

뭔가를 떨쳐 내듯 마류는 잇달아 명령을 내렸고 승무원들은 기세 좋게 그에 따랐다. 엔진이 우웅 소리를 내며 선체가 급격히 가속을 시작했다. 아직 양 손을 굳게 움켜 쥔 채 괴로움을 참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 마류의 어깨에 무우는 가볍게 손을 얹었다.

"탈출도 꽤 힘들지만… 포기하지 마. 나도 출격할 테니."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이자, 마류의 촉촉한 눈이 놀란 듯 그를 쳐다 보았다.

"소령님…."

"걱정 말라고."

무우는 후훗 하고 웃었다.

"잊었어? 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남자라는 걸."

알래스카 근해에 부상하여 대기하고 있던 잠수 모함 쿠스토에 라우의 딘이 착함했다. 기체의 전원을 끈 라우는 캣 워크로 나왔다.

"대장님!"

아래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 오며 격납고 안에 울려 퍼졌다. 라우는 그 쪽을 쳐다보다가 붉은 파일럿 슈트의 소년이 흰 얼굴을 약간 상기시킨 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자크, 보급인가?"

그 물음에 이자크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게이트４를 함락했습니다! 이번에는 내부에서 날뛰고 오겠습니다!"

라우는 흥분한 소년의 모습을 내려다 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 '다리 달린 전함'이 있는 탓인지 메인 게이트가 아직 돌파되지 않았다."

의기양양하던 이자크의 얼굴이 굳어졌다. 스트라이크는 이제 없었지만 악연이 있는 함이다. 무관심할 수는 없다.

"가능하면 그 쪽을 지원해 줬으면 하는데…."

라우의 말을 이자크는 자신의 심정을 배려한 것으로 생각했는지 가슴을 펴며 "고맙습니다!" 라고 대답한 후 자신의 기체 듀얼을 향해 걸어갔다.

'저 녀석이 좀 더 활약해 줘야 한다. 그 곳에서 목숨을 건질지 어떨지는 운에 달렸지만 그것 또한 하나의 볼거리겠지….'

라우는 몰래 미소를 흘렸지만 등 뒤에서 작게 숨을 삼키는 소리를 듣고 돌아 보았다.

"정신이 들었나, 아가씨?"

딘의 조종석에서 빨간 머리 소녀가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 참이었다. 그랜드 할로우에서 만난 소녀를 라우는 혼절시켜 그대로 이 곳으로 데려왔다. 소녀의 얼굴이 공포로 굳어지는 것을 그는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았다. 그녀는 흐릿한 비명을 지른 후, 보금자리로 도망치는 작은 동물처럼 다시 조종석으로 도망쳤다.

"이런, 이런…."

라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 행위에 과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그곳에 계속 숨어 있을 수도 없을 텐데.

'정말… 어리석다. 내츄럴은… 그리고 코디네이터도….'

라우는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떠올리며 홀로 웃음 지었다.

 

 

수중에서 군과 조노의 공격을 받은 메인 게이트가 마침내 돌파되었다. 아크 엔젤은 만 부분을 돌파해서 근해로 도망치려 했지만, 그 앞을 모빌 슈트 부대가 막아 섰다. 런처 장비의 스카이 글래스퍼로 발진한 무우가 투덜댔다.

"이미 게이트는 내 줬으니까 우리 쪽은 못 본 척 해 줘도 좋잖아!"

아그니가 불을 뿜으며 교차한 딘의 날개를 꿰뚫었다. 만의 입구에는 자프트의 잠수 모함이 횡으로 대열을 이룬 채 해상 봉쇄 라인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 함들이 일제히 대공 미사일을 쏘아 전투 해역을 이탈하려는 아크 엔젤과 동료 함들을 덮쳤다. 아크 엔젤은 급격한 회피 기동과 이겔슈테른의 요격으로 간신히 그 포격을 피했지만, 몇 안 되는 동료 함들은 눈 앞에서 격침되어 해상에 불꽃을 뿌렸다.

"쳇!"

무우는 격침되는 전함을 지켜 보면서 이를 갈았다. 그 때….

「후방에서 듀얼!」

무전기에서 노이즈와 함께 들려 온 목소리에 무우는 놀라 돌아 보았다. 그 곳에는 구울을 타고 날아 오는 숙적의 모습이 분명히 있었다.

"제기랄! 하필 이럴 때!"

딘과 진 만으로도 벅찬데 거기에 X 넘버까지! 무우는 기체를 돌려 아그니를 쏘면서 듀얼을 공격해 갔다. 최소한 적기의 발을 묶어 놓기만 해도 된다. 그 동안 아크 엔젤이 도망칠 수 있다면…!

한 편, 아크 엔젤의 함교에서는….

"류리크 제어 불능!"

"로로 격침!"

절망적인 보고가 잇달아 울려 퍼졌고, 함은 피격의 충격으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64에서 72블록 폐쇄! 함 가동율 43% 저하!"

사이의 목소리와 겹쳐 토노무라의 외침이 터졌다.

"진 접근!"

"우와앗! 이젠 틀렸어!"

우는 소리를 내는 카즈이를 파르가 "침착해, 이 바보야!" 라고 꾸짖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도 혼란의 편린이 엿보였다.

"원 배트 발사! 기관 최대! 따돌려!"

마류가 있는 힘껏 외쳤다. 승무원들은 그녀의 결단에 일시적으로 기운을 되찾기는 했지만 또 다시 절박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등 뒤에서 스멀스멀 사신의 손이 뻗어 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노이만이 비명과 같은 소리를 질렀다.

"추력 저하! 함의 자세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도망칠 수 없어…?!'

모두의 얼굴이 공포로 굳어진 그 순간…. 함교의 정면 창에 요격을 피해 접근한 진이 육박했다.

"……!"

함교의 공기가 얼어 붙었다. 밀리아리아는 자신들을 죽이려는 자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는 듯 눈을 감았고, 노이만은 반대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카즈이가 도망치기 위해 일어섰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엘리베이터에 도착하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마류는 유리 창 너머로 적을 노려 보았다. 진이 이 쪽으로 총구를 겨누는 것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걸로 끝장인가…?'

이 곳에 오기까지의 여정이 마류의 머리를 한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나 고생해서…, 그렇게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도착한 곳에 기다리고 있는 게 이런 형태의 죽음이라니. 승무원들에게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미숙한 자신을 믿고 따라 왔는데…, 그 노력에 무엇 하나 보답하지 못했다. 아이들도… 역시 그 때 잡지 말았어야 했다. 키라와 토르, 그리고 결국 전원을 죽게 만들다니…!

'이걸로 끝….'

후회의 상념에 괴로워하며 그녀는 자신에게 겨누어진 총구가 불을 뿜는 것을 기다렸다. 그 때, 돌연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쏟아지더니 지금이라도 발사될 것 같던 진의 기총을 박살냈다.

"……?!"

눈 앞에서 일어난 폭발에 마류는 한 순간 눈이 멀었다.

'원군…?!'

진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모노 아이를 상공으로 돌렸다. 다음 순간 그 머리를 하늘에서 내려 온 뭔가가 날려 버렸다.

"아니…?!"

그것은 아크 엔젤에 닥친 위협을 배제한 후, 빙글 함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빛나는 흰색의 사지, 몸체는 회색과 청색의 두 가지 색깔, 머리에는 뿔을 닮은 네 개의 안테나…. X넘버와 매우 흡사한 형상이었지만, 프레임에 공통되는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미지의 기체는 함교 앞에서 거대한 여섯 개의 날개를 펼쳤다. 모습은 흡사 인류를 심판하기 위해 내려온 천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승무원들은 아연실색해서 모빌 슈트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때 통신기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여기는 키라 야마토.」

승무원들은 일제히 숨을 삼켰다. 사이와 밀리아리아가 눈을 크게 뜨고 서로 쳐다보았다.

"키…라…?"

「엄호하겠습니다. 그 틈에 후퇴를!」

믿을 수 없었다. 마류는 잠시 멍하니 눈 앞의 기체에서 들려 온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키라는 분명 죽었을 텐데. 하지만… 그 목소리는 틀림 없는 그의 것이었다.

"키라…?!"

살아 있었나?! 하지만 어떻게? 그 기체는…? 여러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 그러나 키라가 탑승한 기체는 그 의문을 뒤로 미루듯 등을 돌렸다. 기체의 등에 전개된 날개 안에서 한 쌍의 긴 포신 같은 것이 회전해서 어깨 너머로 앞을 겨누더니, 동시에 양 쪽 허리에 장착된 포신도 움직였고 오른손에 들려진 빔 라이플과 함께 다음 순간 다섯 개의 포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 포격은 한 순간에 아크 엔젤 앞에 전개되어 있던 모빌 슈트의 카메라와 기총, 구울을 파괴하여 전투 능력만을 빼앗았다. 잇달아 연사해서 적기를 정확히 명중시키는 사격에 마류 일행은 그저 아연실색했다. 엄청난 화력….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한 순간에 그렇게 많은 기체를 록 온(Lock on) 하는 키라의 능력이었다.

「마류 씨, 어서 후퇴를!」

키라의 목소리에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아니, 아…."

여기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나머지 조리 있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본부… 지하에 사이클롭스가 있는데…."

짧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조바심을 내면서도 마류는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은 미끼에 불과해…! 작전이야! 몰랐다고!"

다시 다가오는 적 모빌 슈트를 상대로 포격의 손을 늦추지 않는 키라에게 그녀는 울 것 같은 심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후퇴할 수 없어. 좀 더 기지에서 떨어져야…!"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이 괴로웠다. 키라의 동료들을 맡고 있는 함장으로서, 지구 연합군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자신들은 버려졌다'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 괴로웠다. 키라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아크 엔젤을 향해 발사된 미사일을 잇달아 격추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뜸을 들이고 나서 말했다.

「자프트와 연합, 양 군에 전합니다!」

마류는 숨을 삼켰다. 모든 주파수의 통신을 열고 키라는 뚜렷한 어조로 고했다.

「알래스카 기지는 곧 사이클롭스가 작동되어 자폭합니다!」

이자크는 듀얼 안에서 그 통신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양 군 모두 전투를 중지하고 철수하십시오! 반복합니다!」

발신원은 돌연 상공에서 내려와 아크 엔젤을 지키며 싸우고 있는 낯선 기체였다. 언뜻 보니 GAT 시리즈와 비슷한 형태지만, 대기권 내에서 비행이 가능한 거대한 날개 모양의 버니어 슬러스터를 가지고 있다. 지구 연합군의 신형 모빌 슈트인가? 그게 분명했다. 지구 연합군의 함을 지키고 있으니 달리 생각할 여지가 있을까? 그렇다면….

"어디서 허튼 수작을…!"

이자크는 외치며 그 기체에게 공격을 가했다. 이 쪽을 교란시키기 위한 허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이클롭스를 작동시킨다고?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아군 병사도 몰살당한다. 설사 그런 비 인도적인 행동을 취한다 해도 그런 작전을 스스로 밝힐 리는 없지 않은가? 자프트가 도망치면 작전 자체가 좌절되고 마니까. 그 때문에 이자크는 동료 함을 구하기 위해 적기가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였다.

'꼴 보기 싫은 녀석!'

그는 빔 사벨을 뽑아 든 후 구울을 타고 미지의 기체에 육박해 갔다.

"하아아앗!"

그러나 적기는 가볍게 그것을 피하고 듀얼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만 두라고 했잖아! 죽고 싶어?」

스피커에서 들려 온 말에 이자크는 발끈했다.

"뭐라고?!"

마치 자신은 상대도 안 된다는 듯이 말한 것이다. 그는 냉정을 잃고 무작정 베어 갔다. 그러자 미지의 기체는 그 일격을 쉽게 피하면서 허리에 장착되어 있던 빔 사벨을 뽑아 들었다.

'이런…!'

조종석을 향해 날아 오는 빛의 칼날을 쳐다보며 이자크는 등골이 얼어 붙었다. 당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사벨의 궤적이 부자연스럽게 비껴 나갔다. 그 빛의 칼날은 듀얼의 양 다리를 베었고, 이자크가 어리둥절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적 모빌 슈트는 균형을 잃은 기체를 세게 걷어 차 버렸다.

"……?!"

떠밀린 곳에는 동료 딘이 비행하고 있어서 양 다리를 잃은 듀얼을 받아 주었다.

「어서 탈출해…!」

방금 전 말을 걸어 온 목소리가 괴롭게 말했다.

「이제… 그만 둬…!」

그 목소리는 꽤 젊어서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소년 같았다. 이자크는 영문을 모른 채 그 목소리를 들었다. 방금 전 자신은 이제 죽을 줄 알았다. 상대가 휘두른 검의 궤적은 확실히 조종석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칼날은 도중에 비껴 나가서 듀얼의 다리를 베었을 뿐이다.

'왜지…?'

조금 전 적은 이자크를 죽이는 걸 주저한 것처럼 보였다.

'저건… 적이… 아닌가?'

「괜찮아?」

갑자기 다른 목소리가 들려 와서 이자크는 정신을 차렸다. 듀얼을 받아 준 딘의 파일럿이었다.

"으…, 응."

「우선 귀환하자.」

"하지만…!"

무심코 이자크는 반론하려 했다. 하지만….

「다리가 없으면 싸울 수 없잖아. 다리는 장식이 아니니까. 어찌 됐건 우리가 지금 물러나도 우리의 승리는 확실해.」

밝은 목소리의 대답에 이자크는 침묵했다. 그는 미련이 남은 심정으로 모니터 안에서 멀어져 가는 수수께끼의 기체를 쳐다보았다.

"저건… 대체 누구지?"

 

 

기다리는 시간 동안 차를 마시면서 우아하게 잡담을 나누던 장교들은 문득 시계를 쳐다보았다.

"슬슬… 시작할 시간이군요."

마치 앞으로 시작되는 것이 티 타임의 여흥이라도 되는 것 같은 어조로 서덜렌드가 말하며 목에서 열쇠를 풀었다.

"괜찮겠습니까?"

다른 하나의 열쇠를 맡고 있던 장교가 서덜렌드의 주저 없는 태도를 나무라듯 쳐다본 후, 역시 열쇠를 손에 쥐고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 곳에는 방금 전에 셋팅된 서류 가방이 있었다. 이 장치가 바로 JOSH-A 지하에 감춰진 사이클롭스의 기폭 장치였다. 두 장교는 엄숙한 얼굴로 장치에 키를 꽂았다.

"이 희생에 의해 전쟁이 조기 종결로 향하기를… 절실히 바란다."

묘하게도 패트릭 자라가 한 말과 같은 말을 하며 장교들은 실제로는 느끼고 있지도 않은 비통을 곱씹는 듯 뜸을 들였다.

"푸르고 청정한 세계를 위해. 셋… 둘…."

망설이는 자가 있다고 해도 아무도 열쇠를 쥔 손을 멈추려 하지는 않았다.

"하나…."

두 개의 손이 동시에 열쇠를 돌렸다.

 

 

가장 앞장 서서 제４게이트를 돌파한 모빌 슈트 부대는 이미 그랜드 할로우의 내부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내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시설은 보는 대로 철저히 파괴해 갔다. 그것을 저지하려는 자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곳을 지켜야 할 자들은 이미 도망치고 만 건가?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의문을 품는 자도 있었지만, 병사들은 기세를 타고 잇달아 파괴를 일삼으며 더욱 안 쪽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 모빌 슈트 중 1기, JOSH-A 중심부에 가장 가까이 있던 기체에 이변이 일어났다. 돌연 붕 하는 짧은 울림 소리를 내고 모든 모니터가 꺼진 것이다. 파일럿은 놀라 계기를 둘러 보았다. 계기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배터리가 다 떨어졌나? 아니, 에러 사인조차 없이 일제히 모든 기기의 전원이 꺼지는 일은 있을 리 없다. 그는 그 때 기체 내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갑자기 내장이 압박되는 것 같은…, 아니 부풀어 오르는 것 같은 감각…. 그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다가 그 '감각' 그대로 자신의 몸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보고 공포에 절규했다. 목구멍으로는 내장이 솟구쳐 터지며 선혈이 분출했다.

'뭐냐, 이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거기서 그의 사고는 정지되었다. 강렬한 마이크로 파가 그의 뇌를 증발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몸은 파일럿 슈트 내부에서 순식간에 터져 버렸다. 그리고 그 몸을 구성하는 분자를 격렬하게 진동시켜 파괴한 이 무서운 병기의 영향은 그랜드 할로우 깊은 곳에 감춰 진 거대한 하나의 눈을 중심으로 동심원 모양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그 발동은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프트 함에서도 관측되었다.

"알래스카 기지 내에서 강렬한 에너지 방사를 확인!"

오퍼레이터가 숨을 삼켰다.

"이것은…?!"

"사이클롭스 기동!"

사이의 비명 같은 외침이 아크 엔젤 함교에 울려 퍼졌다. 마류는 온 몸의 피가 얼어 붙는 것 같았다. 키라의 엄호 덕분에 함은 겨우 버텨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곳은 아직 기지와 너무 가깝다.

"기관 전속력! 대피!"

명령할 것도 없이 승무원들 모두가 필사적이었다. 등 뒤에서는 발생하는 전자파의 영향인지 기지를 중심으로 푸르스름한 왕관 같은 빛이 희미하게 확산되어 갔다. 그 빛의 내부에서는 그 때까지 가동되고 있던 모빌 슈트가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잇달아 쓰러지더니 다음 순간 폭발했고, 건물은 모래 탑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 영향을 깨달은 자프트의 모빌 슈트 부대는 최대한 폭심지에서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구울을 조종하며 기체의 버니어를 분사했다. 푸르스름하게 일렁이는 죽음의 손에 따라 잡혀 구울을 잃은 1기의 진이 발판을 잃고 추락했다. 그 때 키라의 기체가 내려와서 힘차게 진의 팔을 붙잡아 건져 올린 후 가속했다. 아크 엔젤도 손상된 부분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기울면서도 남은 엔진을 풀 가동하여 멀어지려고 했다. 지금 여기서 1개의 엔진이라도 정지한다면 삼켜지고 만다! 승무원들의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하구에서 동심원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해면이 수증기 증발을 일으켰다. 굉음과 함께 대지가 침몰을 시작했고, 아직 무너지지 않았던 건조물들도 쓰러지며 파편과 흙먼지를 일으켰다. 그리고 기지 중심에서 격렬한 폭발의 불꽃이 피어 올랐다. 불꽃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며 더욱 탐욕스럽게 부풀어 올랐다. 폭풍이 휩쓸고 간 후에 반경 10km에 이르는 거대한 분화구가 생겼다. 지구 상의 풍경으로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 뻥 뚫린 대지의 구멍에 북해의 차가운 물이 소용돌이 치며 흘러 들어갔고, 뜨거워진 대지가 탁류를 가열하여 모락모락 수증기를 피어 오르게 했다. 그 상공에서는 7색의 오로라가 미친 듯이 춤을 추며 더욱 이 광경의 비현실감을 조장했다.

알래스카 앞 바다에 늘어서 있던 자프트 잠수 모함에서는 다들 그저 망연자실하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한 지휘관이 말을 흐렸다. 압도적인 승리로 끝날 줄 알았던 기습 작전 오퍼레이션 스핏 브레이크…. 자프트가 총력을 기울인 이 싸움은 마지막에 가서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귀결되었다. 확실히 지구 연합군의 가장 중요한 거점은 궤멸했다. 자프트의 거의 모든 모빌 슈트 부대와 함께….

"당하고 말았군, 내츄럴 놈들한테…."

다들 모니터 안의 비현실적인 광경에 눈을 빼앗겨서, 중얼거리는 라우 르 크루제의 얼굴을 주시하는 이는 없었다. 그 가면 밑에 떠오른 일그러진 미소를 본 사람도….

 

 

"사… 살아 남은 거야…, 우리들은…?"

토노무라의 중얼거림이 들려 오자 승무원들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힘이 빠져서 자리에 축 늘어졌다. 아크 엔젤은 참상의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에 거의 돌진하듯 착륙해 있었다. 있을 수 없는 풍경….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과 모빌 슈트가 격렬하게 싸우던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공허한 풍경을 눈 앞에 두자, 마류의 마음 속에서는 안도를 밀어 내고 얼어 붙는 것 같은 공포가 일었다. 역사를 되풀이할 필요는 없아. 하지만 이 날 인류는 다시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다. 그들은 함에서 내려 바위가 많은 해안으로 나갔다. 아크 엔젤 옆에 착륙한 스카이 글래스퍼에서 무우도 내렸다. 조금 전까지 가까운 곳에서 펼쳐졌던 사투의 뜨거움과는 반대로 뺨에 불어 오는 바람은 차가웠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마류는 이것이 몇 주 만에 밟는 대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모빌 슈트도 함에서 가까운 내륙부에 내려 서 있었다. 지금은 디액티브 모드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GAT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PS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옆에 쓰러져 있는 진 안에서 소년은 파일럿을 끌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파일럿은 이미 마이크로 파의 영향을 받았는지 바로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소년이 분한 듯 땅을 두드리는 것을 마류 일행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 보고 있었다.

얼마 후 소년은 일어나서 그들에게 걸어 왔다. 검은 머리를 산들 바람에 나부끼며, 기분 탓인지 전보다 침착한 걸음걸이로…. 마류는 그가 자프트의 파일럿 슈트를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당황했다. 그러나 눈 앞으로 다가오며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은 틀림 없는 키라 야마토였다. 마류와 다른 승무원들은 꼼짝도 못하고 그저 그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가슴이 벅차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키라는 그 침묵에 어색함을 느꼈는지 억지로 미소지었다.

"마류 씨…, 늦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마류는 눈을 깜박거렸다.

"정말… 키라니…?"

"예."

헤어져 있는 동안 키라는 매우 어른스러워져 있었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러나 그 얼마 안 되는 동안 죽은 줄 알았던 그에게 품고 있던 마음이 단숨에 되살아 나서 마류는 역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갑자기 승무원 사이에서 우는 듯, 웃는 것 같은 목소리가 나며 밀리아리아가 튕기듯 뛰쳐 나왔다.

"키라…아아…!"

소녀가 울면서 그에게 뛰어 들자 그에 촉발된 듯 승무원 모두가 살아 돌아 온 동료를 에워 쌌다.

"너…!"

"정말, 정말 유령이 아니지?!"

"이 바보 녀석! 걱정했잖아!"

"대체 어떻게…."

모두에게 환영 받고 있는 키라의 모습을 무슨 까닭인지 사이와 카즈이는 압도된 듯, 한 발짝 물러선 곳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사이…, 카즈이…."

키라가 그들을 발견하고 말을 걸자, 사이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에 희미하게 눈물이 고였다.

"잘… 살아 돌아 왔어…, 너…."

그는 간신히 그 말만을 하고 눈물을 참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응…."

키라는 그에게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얹고 속삭였다.

"미안해…. 고마워…."

튀어 나온 두 개의 단어에 사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옆을 지나친 키라는 수수께끼의 기체를 쳐다보고 있는 무우에게 다가갔다. 마류도 그들과 함께 다시 그 모빌 슈트를 쳐다보았다.

"할 얘기가 많네요."

키라가 조용한 어조로 말하자, 마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떻게 살아 남은 것인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그리고 이 기체는 어디서…?

"저도 묻고 싶은 것이 많아요."

"…그렇겠지."

키라의 말에 이번에도 마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무엇보다 그가 묻고 싶은 것은 본부 지하에 왜 그런 것이 있었는지, 지구 연합군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하는 것일 테니까. 마류 자신도 알고 싶었다. 가라앉는 분위기를 깨뜨리려는 듯 무우가 키라의 파일럿 슈트를 쳐다보며 혼잣말처럼 물었다.

"…자프트에 있었던 건가?"

키라는 침착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만 전 자프트가 아니에요…."

그건 그럴 것이다. 만약 자프트에 있었다면 마류 일행을 구하러 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이어진 말에 마류 일행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제 지구군도 아니고요."

마류는 무심코 소년의 얼굴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냉정하게 그 시선을 받아 넘겼다. 그렇다. 짐작했던 일이었다. '함장'이라는 직함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른 순간부터…. 그래서 그는 양 군에게 모두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류는 전과는 다른 의지가 깃든 소년의 눈을 쳐다보며 수긍했다.

"알았어. 일단 이야기부터 하자. 저 기체는 어떻게 해야 될까?"

그가 탑승했던 기체를 가리키며 묻자, 이번에도 그는 이 쪽이 아연실색할 만한 대답을 했다.

"정비나 보급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아직은 필요 없을 겁니다. 그리고 뉴트론 재머 캔슬러가 탑재되어 있어요."

"뉴트론 재머 캔슬러?!"

다들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뉴트론 재머 캔슬러…. 그 명칭으로 알 수 있듯 뉴트론 재머를 무효화시키는 것이 탑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럼 핵 에너지로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야?"

찬드라가 안경 뒤의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중얼거리다가 자신이 한 말에 겁을 먹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 만약 동력으로 핵 에너지를 쓰고 있다면 보급은 반 영구적으로 필요 없을 것이다. 마류도 복잡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키라의 기체에 시선을 던졌다. 지구의 모든 국가들이 뉴트론 재머 캔슬러의 개발에 기를 쓰고 있지만, 이것이 자프트의 물건이라면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뉴트론 재머는 플랜트가 만든 것. 그것을 만들어 낸 두뇌라면 무효화시키는 기계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술이 있다면…, 다시 핵의 힘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지구의 에너지 위기는 완화될 것이다. 전파를 쓰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그 힘은 양날의 검이다. 핵의 거대한 힘을 이용할 수 없게 되었기에 양 군은 대량 살육의 공포에서 보호 받고 있다. 만약 그 힘이 다시 사용된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방금 전에 본 광경을 떠올리면 알 수 있다. 핵이 금지되었음에도 여전히 인간은 보다 강한 힘을 추구한다. 보다 많은 적을 죽일 수 있는 병기를….

"그런 걸… 어떻게…?"

파르도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다들 기대와 공포의 극단적인 마음을 안고 미지의 힘이 내재된 기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키라가 조용히 말했다.

"데이터를 얻고 싶다고 말씀하신다면… 거절하고 전 이 곳을 떠날 겁니다."

마류는 깜짝 놀라 그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녀의 마음에 싹튼 한 순간의 욕망을 키라는 간파하고 있었다. 소년은 온화한 눈에 한 순간 얼어 붙는 듯 강한 빛을 내뿜었다.

"빼앗으려 한다면… 적대하면서라도 지킬 겁니다."

"키라…."

마류는 압도되어 중얼거렸다.

"저것을 맡고 있는 저의 책임입니다…."

키라의 표정에 드러난 결의를 보고 그의 변화가 어떤 것인지 그 편린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류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단호하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제 두 사람은 상관과 부하가 아니다. 연령의 상하도 관계 없는 일이다. 그들은 인간과 인간으로서 완전히 대등한 위치에 서 있었다.

"기체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다들 알았지?"

마류가 승무원 모두에게 다짐을 받자, 키라는 안도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완전히 믿겠다는 듯 마류 일행을 따라 아크 엔젤로 향했다. 키라 역시 그들을 대등한 상대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기뻤다. 함으로 가면서 무우가 힐끔 등 뒤를 돌아 보았다.

"저 자프트 병사는…?"

"한 발 늦었습니다. 전… 구하지 못했어요."

키라는 괴롭게 대답했다. 그런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무우는 물었다.

"…넌 왜 우리들을 구한 거지?"

그러자 소년은 그에게 맑은 시선을 던졌다.

"…그러고 싶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