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사 -데 크레센초의 친구들- 리카르도 콜렐라 선생, 레나토 카초폴리

리카르도 콜렐라 선생

 

세상에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있습니다.

혹 물음표를 달고 사는 사람을 만나거든 걱정 마세요.

틀림 없이 훌륭한 사람이고, 민주적인 사람이라 얼마든지 말이 통하는 사람일 테니까요.

하지만 느낌표를 달고 사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에요.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할 사람들이죠.

 

 

내가 리카르도 콜렐라 선생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언젠가 치즈를 사러 보메로 베키오에 있는 식료품 가게에 들어갔다가 이런 대화를 듣게 되었다.

 

"선생님, 정확히 300그램입니다. 5천 400리라예요."

식료품 가게 주인인 카르미네 씨가 안경을 쓴 작달막한 사람에게 물건을 건네 주며 하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왜 5천 400리라를 줘야 하오?"

작달막한 사람이 반문했다.

"햄 값으로…."

"무슨 햄 말이오?"

"손에 들고 있는 것 말입니다."

"카르미네 씨, 선생 생각에는 내가 손에 햄을 들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오. 그러니 한 푼도 줄 수 없어요."

 

카르미네 씨가 짐짓 짜증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거 참, 선생님, 또 그 소리세요? 5분 전에 선생님께 햄을 드렸잖아요? 여기 계신 손님도 증인이세요. 그러면 앞으로는 물건을 드릴 때마다 영수증을 끊어 달라고 할까요?"

"카르미네 씨, 나한테 치즈 300그램을 줬다는 걸 어떻게 그리 확신하십니까? '이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준 것이 치즈일는지도 모른다' 하고 생각하면 또 모르지만 말이오."

"그럴 것 같다, 그럴 것 같지 않다! 콜렐라 선생님, 그 손에 들고 있는 걸 한 번 열어 볼까요? 치즈인지 아닌지!"

식료품 가게 주인은 일부러 절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나 콜렐라 선생은 꿈쩍도 않고 계속했다.

"카르미네 씨, 바로 엊그제 설명을 하지 않았소. 세상에는 확신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이오. 내가 두 번 씩 돈을 내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그러자 카르미네 씨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되받았다.

"바로 5분 전에 선생님께 치즈 300그램을 손에 쥐어 드렸다는 건 틀림 없다니까요!"

 

"그럼 지금부터 가정을 해서 질문하겠소. 선생이 치즈를 준 적이 없는데도 내게 주었다고 생각한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는 말이오."

"좋구 말구요. 어디 한 번 들어 봅시다."

"카르미네 씨는 하느님을 믿나요?"

"물론이지요. 믿고 말고요. 5분 전에 선생님께 치즈 300그램을 준 것 만큼이나…."

말도 채 끝나기 전에 콜렐라 선생이 다시 말했다.

"그럼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고 믿나요?"

"그야 당연하지요."

"그렇다면 그 하느님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세상을 창조할 수 있겠군요? 커다란 세계, 조그마한 세계, 사람이 살 수 있는 세계, 사막 같은 세계…. 하여튼 마음 먹은 대로 세상을 만들 수 있겠군요?"

"그럼요. 그 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요."

식료품 가게 주인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러면 바로 이 순간 하느님이 우리와 똑같은 세상을 만들기로 했다고 생각해 보자구요. 별도 있고, 행성도 있고, 대륙이며, 나폴리며, 보메로 거리며, 선생님의 식료품 가게며, 게다가 나와 선생, 선생이 파는 치즈까지 하나도 틀리지 않게 똑같은 세상을 만들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구요.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그야 당연히 하실 수 있지요."

 

콜렐라 선생은 자기 말이 끝났을 때, 카르미네 씨가 지을 씁쓰레한 표정을 생각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무 문제도 없는 이 세상을 똑같이 다시 만들기로 하셨으니, 인간까지도 지금 우리와 똑같이 만들기로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왕 만들기로 한 김에 역사적인 기억을 가진 인간을 만들기로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역사적인 기억이라니 그게 뭐죠?"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지만 마치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느낌 같은 거지요. 다시 말하면 하느님이 우리를 창조할 때, 우리가 경험하지도 않은 어떤 생각을 마치 실제로 경험한 것처럼 기억나게끔 하는 착각을 우리 머리 속에 넣어 주셨다고 생각하자는 거지요."

뭐가 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어진 카르미네 씨가 물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요?"

"어쩌긴 뭐가 어쩌겠어요. 선생은 내게 치즈를 준 적이 없는데 준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라는 거지요."

"아니 5분 전에 드린 치즈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5분 전이라구요? 그 땐 선생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죠."

"허 거 참…. 치즈 그냥 안녕히 가져가시구려. 사모님께 받지요. 그렇지만 다음부터는 선생님이 먼저 내게 5천 400리라를 준 것 같지 않으면, 나도 선생님께 치즈를 드린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할 테니 그리 아세요!"

 

그 사람과 그냥 헤어지려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다가가기 전에 나는 가게 주인과 주인의 부인에게 그 사람에 대해 물어 보았다. 카르미네 씨의 말이었다.

"좋은 사람이에요. 그저 재미있으라고 그러는 겁니다. 단 한 푼도 떼어 먹지 않고 모두 갚으니까요. 모두 저 선생님만 같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외상 값을 갚지 않는 사람도 있고, 또 갚는다 해도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외상을 달아 놓기 십상이니까요!"

"직업이 뭡니까?"

"음악 선생님이지요. 성함은 리카르도 콜렐라라고 하는데, 피멘텔 폰세카 사범학교에서 가르친답니다. 결혼은 하셨구요, 아들이 하나 있어요."

"그렇지만 무신론자예요."

이야기 도중에 카르미네 씨의 부인이 십자 성호를 그으며 끼어 들었다.

"아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어요. 지금 애 나이가 열 여덟인데, 혹 무슨 일이라도 있어서 죽으면 지옥에 가고 말 거라구요."

그러자 카르미네 씨가 설명했다.

"콜렐라 선생님은 최후의 세례를 믿어요. 사람은 죽기 전에 자기 인생을 돌이켜 보며 세례를 받을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죽기 바로 전에 신부님이 병자 성사를 주러 올 때, 물과 기름을 같이 바른다는 거죠!*"

 

*가톨릭에서는 세례 때에는 이마에 물을 붓고, 임종하는 사람이나 환자에게 주는 병자 성사 때에는 기름을 바른다.

 

그 날 오후 집으로 찾아 갔을 때 콜렐라 선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맞아 주었는데, 부인 아멜리아 씨는 내 앞에 커피 잔을 놓고 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세요."

함께 자리에 있지 못하고 물러가니 죄송하다는 말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자기 남편이 하게 될 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이었다.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콜렐라 선생이 말을 시작했다.

"선생, 나는 회의주의를 지키는 병사요. 사람들이 함께 살아 가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 의심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모든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인생 철학이 있겠지만 나의 철학은 의심입니다. 자, 이리 와 보세요.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그가 복도를 따라 앞장 서 갔다. 이 곳에서 다시 아멜리아 부인과 마주쳤다. 부인은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라고 속삭였다. 마침내 우리는 커다란 피아노와 악보, 음반, 책, 꽁초가 가득한 재떨이가 뒤섞여 있는 어두컴컴한 방 한가운데에 앉았다.

 

"여기 보세요."

콜렐라 선생이 수 놓은 천으로 덮인 커다란 액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신입니다."

그가 끈을 잡아 당기자 액자를 덮고 있던 커튼이 열리고, 수백 개의 조그만 전등으로 만든 물음표가 나타났다. 스위치를 켜자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용 전구처럼 물음표의 전구들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정말 죄송해요."

고개를 돌리자 문간에 아멜리아 부인이 나를 바라보며 이해해 달라는 애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아멜리아, 제발 얘기 좀 하게 내버려 둬요!"

콜렐라 선생이 부인에게 나가라고 외치고는 내게 플라스틱 의자를 권하며 말했다.

 

"선생, 여기 앉아서 제 말을 잘 들어 보세요. 세상에는 물음표와 느낌표가 있습니다. 의심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절대적인 확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세상을 살면서 혹 물음표를 달고 사는 사람을 만나거든 걱정 마세요. 틀림 없이 훌륭한 사람이고, 민주적인 사람이라 얼마든지 말이 통하는 사람일 테니까요. 물론 의견이 다를 때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느낌표를 달고 사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에요. 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할 사람들이죠. 이제 제가 하는 말을 꼭 기억하세요. 신앙은 폭력입니다. 종교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스포츠에 관한 것이든, 어떤 형태든 신앙은 폭력이에요. 지금까지 일어난 전쟁에는 언제나 첫 번째로 방아쇠를 당긴 확신에 찬 사람이 있었어요. 아일랜드나 레바논, 이란 등에서는 신앙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낫을 들고, 피로 범벅이 된 옷을 입고 돌아 다닙니다. 사람을 죽일 때에도 사랑의 이름으로 죽이잖아요?"

"그러나 저의 아버지는 제게 물음표야말로 관용과 호기심의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었어요. 젊은이들은 호기심은 많지만 너그러운 관용의 마음이 없어요. 나이 든 사람들은 관용은 있지만 호기심의 맛은 잃어 버렸어요. 위대한 사람은 호기심과 관용을 동시에 간직한 사람이지요. 신앙을 가진 사람은 모든 문제에 대해 미리 답을 알고 있기나 한 것처럼 생각하곤 해요. 의심도 없고 웬만한 일에 놀라는 능력도 없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놀람이야말로 탐구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우리는 오류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는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요. 신앙이란 즉각적이고 맹목적이고 절대적으로 순명하는 거니까요. 저의 아버지는 철학 선생님이셨는데, 사람들이 집으로 전화를 해서 '콜렐라 선생님이십니까?' 하고 물으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고 대답했지요. 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렇지만 어떤 일을 시작하려면 어느 정도의 신념은 필요한 것이 아닙니까? 신념이 없었다면 아메리카 대륙도 발견하지 못했을 거고, 페니실린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 아닙니까?"

나의 반박에 콜렐라 선생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의심으로부터 나오는 신념이어야 해요.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끌어 낼 줄 아는 신념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맹목적인 신념이 아니라 뜬 눈으로 받아 들이는 신앙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뜬 눈으로 받아 들이는 신앙이라니요?"

"예를 들겠어요. 선거가 있는데 내가 공산당에 투표를 한다고 칩시다. 우리 이탈리아에 약간의 신념을 요구하는 정당이 있다면 그건 공산당일 테니까요. 내 생각에 찬성하세요?"

"글쎄요. 하기야 공산당이 신념을 요구하는 정당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요."

"좋습니다. 그러면 이럴 경우 나는 어떻게 할까요? 투표를 하러 가기 전에 공산당 서기에게 전화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 거요. '서기 동무, 나는 공산당에 투표를 하고 싶은데 당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반민주적인 사람이 될까 두렵단 말입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하겠지요. '지금 농담하십니까? 우리는 민주 정당입니다. 최근 몇 해 동안 우리 정당을 지켜 보지 못했습니까?'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지요. '그건 그래요. 당신들이 민주적이라는 건 알아요. 그렇지만 야당이니까 그렇지 일단 정권을 잡고 나면 태도를 바꿀지 어떻게 압니까? 로베스 피에르(급진적 자코뱅당 지도자로 프랑스 혁명의 주요 인물)도 학창 시절에는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논문을 썼는데, 나중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이쯤 되면 서기 동지는 욕설을 하며 말하겠지요. '여보시오, 콜렐라 동무. 마음대로 하시오. 표를 주고 싶으면 주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대로 하시오. 다만 신념이 없으면 어떤 투쟁에서도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두시오.'"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요?"

"그 다음은 내가 공산당에 투표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맑은 정신으로 눈을 뜨고 확인한 신념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호메이니의 졸개들처럼 맹목적으로 전차를 향해 돌진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간단히 말해서 '회의(懷疑)', 곧 의심은 수단이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 의심을 품는 사람이면서도, 회의주의자이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던질 어떤 사상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에요. 나는 회의주의잡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리스도 교인일 수도 있고, 공산주의자일 수도 있고, 나폴리 팀의 팬이 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회의하는 그리스도교인, 회의하는 공산주의자, 회의하는 나폴리 팬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때 내가 물었다.

"그렇긴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 계실 때만큼은 음악의 즐거움에 완전히 사로잡히실 것 아닙니까? 자신이 연주하는 그 음악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항상 확신을 갖는 건 아닙니다."

콜렐라 선생은 깜박이는 물음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베토벤 음악을 연주할 때, 나는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이것이 내가 연주하는 것인가 하늘에서 직접 내려오는 것인가? 혹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음악에 맞춰 손가락을 움직이는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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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토 카초폴리

 

뭔가 두려운 게 있으면 그것을 수치로 계산해 보라구.

그러면 그 두려움도 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말이야.

 

 

뭔가 자랑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면,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카초폴리 교수님과 수학에 대해, 미적분에 대해 논한 사람이라구."

 

1948년 나폴리 대학, 공학부 2년 과정. 메조칸노네 가에 있는 강의실은 그야말로 초만원이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나는 한 시간 전에 강의실에 들어와 기다리고 있다. 시간은 오전 10시. 모두 레나토 카초폴리 교수님을 기다린다.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러 모이는 사람 중에는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다. 학점을 따기 위해 수강하는 사람, 이미 과거에 수강한 적이 있는 사람, 미적분과는 영 거리가 먼 사람들도 있다. 의학을 공부하는 사람,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서 그저 호기심 때문에 온 사람, 문화계 인사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그 분의 열렬한 제자다.

 

카초폴리 교수님이 도착한다. 여느 때처럼 정장 차림이다. 짙은 색 양복 소매 끝이 분필 가루로 더러워지긴 했지만, 단추 구멍에는 어김 없이 금단추가 반짝인다. 십중팔구 어제 입었던 그 옷이리라. 지난 밤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을 테니까…. 사랑과 정치에 대해 토론을 했을 것이고, 피아노 연주에,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불렀으리라.

저녁 시간을 혼자 보낸다는 것은 그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나폴리의 거리를 온통 휘젓고 다니며, 스페인 거리에 있는 조그만 술집을 드나들기도 하고, 세르젠테 마조레 거리에선 꼬냑을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 나르도네스 거리를 지날 땐 그라파(고량주와 비슷한 맛과 알코올 도수를 가진 이탈리아의 전통 술)를 한 잔 반드시 걸쳐야 하고, 아무리 뒤져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적막이 흐를 때에야 키아이아 거리를 터덜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어젯밤에도 틀림 없이 그렇게 보냈을 그 교수님께서 이제 여기 갓 피어난 장미처럼 싱싱한 모습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등장하신 것이다. 피아노 연주자 답게 커다란 두 손을 양 옆으로 벌려 학생들의 환호에 응답하면서…. 흘러내리는 머리가 이마의 반을 가리는데, 교수님의 천재성은 행동 거지에서도 여지 없이 드러난다. 여느 학자처럼 근엄한 표정이지만 눈가에는 웃음이 묻어 있다. 느릿 느릿한 걸음을 문득 멈추고는 손가락으로 맨 앞 줄에 앉아 있는 학생을 가리킨다.

"학생, 자네가 지금 부엌에서 스파게티를 한 접시 만들어야 한다고 가정해 보세. 스파게티 국수를 끓일 물 냄비는 부엌의 식탁 위에 있네. 가스레인지 불이 이미 켜져 있다면 자네가 해야 할 첫 번째 행동은 무엇인가?"

학생은 기다릴 것도 없이 바로 대답한다.

"그야 물이 든 냄비를 불 위에 올려 놓는 일이겠지요."

"냄비가 식탁 위가 아니라 찬장 위에 있다면?"

"그 때도 마찬가집니다. 불 위에 올려 놓아야겠지요."

"아닐세. 자네가 진정한 수학도라면 먼저 그 냄비를 식탁 위에 옮겨 놓고, 그러고 나서 다시 들어서 불 위에 올려 놓아야 하는 걸세."

 

레나토 카초폴리는 1904년 1월 20일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미하일 바쿠닌으로, 노동자보다는 농부를 더 믿었던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이다.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나폴리의 농촌에서 세계적인 혁명을 시작하려고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남부 사람들은 언제나 왕정을 사랑한 민족이었다는 것을 몰랐던 그는 결국 권력에 대항해 싸운다는 위대한 목표를 위해 겨우 열 한 명의 귀족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카초폴리는 겨우 스물 여섯 살에 파도바 대학의 미적분학 정교수가 되었는데, 1933년에는 나폴리 대학의 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미분 방정식과 함수, 계량 이론 등에 큰 공헌을 했고, 1953년에는 이탈리아 학술원에서 당대의 최고 가는 수학자에게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의 학문적인 공헌이 아니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그의 자유분방한 정신과 따뜻한 마음씨와 피아노 연주 솜씨, 그의 철학과 시였다.

히틀러가 나폴리에 들어오던 날, 카초폴리는 마테르데이의 한 식당에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그는 의자 위에 올라 서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침 없이 쏟아 냈다. 그러고 나서 애인인 사라 만쿠소와 두 명의 기타 연주자를 앞세우고, 라 마르세예즈(프랑스의 국가)를 부르며 나폴리의 거리를 행군했다. 다음 날 새벽 그는 어디론가 끌려갔고, 유명한 화학 교수였던 고모, 마리아 바쿠닌의 도움으로 겨우 국경으로 끌려 가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구실은 정신 이상자라는 것이었고, 풀려 난 다음에는 레오나르도 비안키의 정신병원에 들어가야 했다.

 

카초폴리 교수님은 에두아르도 데 필리포, 앙드레 지드 등과 친구였고, 수많은 나폴리의 지식인들과도 친구였다. 공산주의자였지만 공산당에는 입당하지 않은 독특한 유형의 사람이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웅변가요, 방랑하는 설교가였던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으로서는 감지덕지해야 할 선전 활동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중산층이 사는 지역의 광장처럼 가장 어려운 지역을 골라 대중 연설을 하면서 지식인들의 위선과 성직자들의 오만에 대해 날카로운 공격을 퍼부어 댔으니 말이다. 때로는 스탈린의 포악성에 대해서도 비판했는데 사실 그는 적군 아군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비난의 화살을 날려 댔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돌연 반항아가 되기도 했는데, 언젠가 자기 집에 있던 오래 된 가구에 권총질을 해 댄 일도 있었다.

 

그가 구두 시험을 치를 때면 시험을 치르는 학생 자신은 괴로울지 몰라도 참관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절대 놓칠 수 없는 확실한 구경거리였다. 언젠가 그리스어를 공부한 적이 없는 한 학생이 수학 공식에 나오는 '엡실론(ε)' 이라는 글자의 발음을 잘 알지 못했다. 그 날 구두 시험 광경을 묘사하면 이렇다.

학생이 설명을 시작했다.

"뒤집어 쓰인 조그만 숫자 삼은…."

표정이 야릇해진 카초폴리 교수가 첫 문장부터 끊고 나섰다.

"학생, 뒤집어 쓰인 뭐라고 했지요?"

"삼 말입니다. 숫자 삼이요."

학생은 방금 흑판 위에 써 놓은 엡실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교수가 반문했다.

"오, 그래? 뒤집어 쓴 조그만 숫자 삼이라고 했겠다? 그럼 이왕 시작한 김에 조금 더 작게 다시 한 번 써 주겠나?"

"네…."

학생은 또 힘들여 숫자 '3'을 좌우로 뒤집어 칠판에 썼다.

"아, 한 번만 더 작게 써 주겠나?"

"?"

교수님과 학생 사이의 개그는 계속 되었고, 학생은 더 작게는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까지 되고 말았다. 참관하던 학생들은 킥킥거리는 소리를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카초폴리 교수님 과목의 점수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30점 만점에 21점을 받았는데, 그것은 카초폴리 교수 자신이 '기를 꺾기 위한 21점'이라고 말하는 그런 점수였다.

"학생에겐 21점보다 좀 더 줄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21점을 주는 건, 이 점수로 인해 학생이 전공을 바꾸면 좋겠다는 뜻이에요. 학생, 학생은 상상력이 좋아요. 시인이 될 수도 있을 거란 말이에요. 인생 전문가가 하는 말이니 듣도록 해요. 공학을 포기하고 대신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을 찾도록 해요."

 

언젠가 밤 한 시 쯤 성녀 카테리나 성당 앞 계단에 앉아 있는 교수님을 만난 적이 있다.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에 도와 드릴 일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분은 나더러 옆에 와 앉으라고 하고는 계량학의 치유 능력에 대해 말했다.

"너도 뭔가 두려운 게 있으면 그것을 수치로 계산해 보라구. 그러면 그 두려움도 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말야."

나는 그 분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나한테 한 그 격언 같이 훌륭한 말 때문이 아니었다. 내게 반말을 썼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어에도 높임말(del Lei)과 반말(del tu)이 있다. 그러나 윗사람일 때 높임말을 쓰고 아랫사람일 때 반말을 쓴다기보다는 가까운 사이가 아닐 때 높임말을 쓰고,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가깝고 다정한 사이가 되면 서로 반말을 쓴다. 저자는 여기서 카초폴리 교수가 다정한 말투인 반말(del tu)을 쓴 사실에 놀라고 있다.

 

그 날은 그를 사랑하던 여인이 떠난 지 며칠 되지 않던 날이었다. 사람들 말로는 그 여자는 공산당 남자와 눈이 맞아 카프리로 도망을 갔다고 한다. 1959년 5월 8일 밤이었는데, 바로 그 날 오후 레나토 카초폴리는 첼라마레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자살을 하고 말았다. 바로 하루 전 그는 몇몇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떤 경우든 실패는 용서 받을 수 있네. 하지만 자살하는 경우는 사정이 다르지. 일단 결심을 했으면 절대로 실수를 해서는 안 되니까."

과연 그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베개 위에 머리를 반듯이 눕힌 다음 관자놀이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그의 나이 쉰 다섯이었다.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보았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때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참을 성 있게 자연사를 기다리기에는 지나치게 러시아적인 사람이었고, 지나치리만치 역설적인 사람인 데다, 지나치리만치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에 있어 사랑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것이었다. 루초 빌라리라는 친구가 언젠가 마리아 델 레 수학 교수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 준 적이 있다.

누군가 그에게 역사 상 인류가 남긴 말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는데 사람들은 뭔가 멋진 말이 나올 거라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사람의 마음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면 가장 유익한 발명품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야 오기노 크나우스 산아 조절법*이지요. 물론 제대로 됐을 때 말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그럼 최악의 발명품은 뭐죠?"

"그것도 오기노 크나우스 산아 조절법이지요. 실패했을 때 말입니다."

 

*1930년대, 일본 사람 오기노와 오스트리아의 크나우스가 배란기와 월경과의 관계를 밝혀 냄으로써 수태 시기를 예견할 수 있게 하였는데 이를 근거로 한 자연적인 수태 조절법을 '오기노 크나우스 산아 조절법'이라고 한다.

 

레나토 카초폴리를 그리스 철학의 역사에 포함시킨 까닭은 무엇인가? 그를 어떤 학파에 집어넣어야 마땅할까? 모든 학파에 든다고 할 수도 있겠고 반대로 어느 학파의 사상에도 집어넣을 수 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절충주의 철학자였기 때문이다.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사이의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절충주의라는 이름이 철학의 꽃을 피웠다. 학파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은 마음 내키는 대로 여러 사상에서 유익한 것을 따 와 자신들의 생활 방식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회의주의자들은 진실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했는데 절충주의자들은 회의주의자들과 똑같은 이론적 기초에서 출발해서 모든 것이 조금씩은 옳다고 주장했다.

이 무렵 공존하던 여러 학파의 사상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서로 조금씩 타협을 하게 되었고, 그에 맞추어 기존의 원칙들이 조금씩 시들해져 갔다. 따라서 각 학파의 특징도 퇴색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온갖 지혜를 두루 섞어 놓은 일종의 비빔밥 같은 형태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절충주의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절충주의 철학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라리사의 필론, 아스칼론의 안티오코스, 그리고 저 위대한 키케로 등이 있다.

 

자유와 쾌락과 친구와 술과 연회를 그토록 좋아했던 레나토 카초폴리는 분명 에피쿠로스 주의자이다. 그가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서 느끼던 애착은 출신 성분에 구애받지 않았던 에피쿠로스를 연상시킨다(에피쿠로스의 정원에는 노예와 아이들, 외국인, 여자, 저명 인사 등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점을 상기해 보라).

그는 스토아 철학자 같은 분위기도 가지고 있었다. 펠리체 이폴리토 교수는 카초폴리 교수와 자신의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이런 일화를 들려 준 적이 있다. 이폴리토 교수의 아버지는 광적인 바그너 팬이었는데, 맹장염이 도졌는데도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놓치지 않으려고 카초폴리 교수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자 이폴리토 교수의 아버지는 급히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기다리는 시간에 카초폴리 교수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자네가 정말 부럽네! 뱃속의 끔찍한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이졸데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다니!"

카초폴리 교수는 키니코스 철학자의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파도바 대학에서 이미 미적분을 강의할 때의 일인데, 가난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누더기 옷을 입은 모습으로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이 밀라노행 삼등열차를 탔다고 한다. 결국 닷새 뒤, 무전 취식으로 체포되기는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회의주의 철학자 다운 면을 지니고 있었다. 루치아나 비비아니 의원은 그에 대해 이런 기억을 들려 준다.

"1950년대 우리는 반전평화운동에 함께 참여했어요. 시위대에 참가하기도 했고, 모임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우리 젊은이들은 모두 열정과 확신에 넘쳤지요. 그러나 그에게서는 언제나 조금 비웃는 듯한 태도가 느껴지곤 했어요. 확신도 없는 것 같았고, 왠지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가 느껴졌어요. 친구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지요."

'나는 확신을 못 하겠어. 고작해야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