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사 -下- 스토아 학파

스토아 학파

 

여린 마음은 단점이요, 영혼의 결점이다.

마음이 여린 사람은 어리석고 경솔한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감동하지 않으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관대히 대하지도 않는다.

간청한다고 설득되거나 단호한 자세를 포기하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까지 믿음과 인내심으로 이 책을 읽어 준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그대가 어느 인종에 속한 사람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대의 성별도 중요하지 않고, 그대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는 띠가 무엇인가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따지고 보면 그대는 결국 스토아 학파이거나 에피쿠로스 학파, 둘 중의 어느 하나에 속하느 사람일 테니…. 끝까지 잘 읽어 보라. 깨닫게 되리라!"

이런 식의 주장을 한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철학사상을 다룰 때 우리는 언제나 이런 류의 편 가르기를 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만큼 이 두 학파의 특징은 분명하게 차이가 있다.

스토아 학파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끊임없이 에피쿠로스의 사상과 견주어 보아야 한다. 마치 서로 반대되는 사상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다른 두 개의 사상이 모두 지혜롭게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똑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에피쿠로스 학파에서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혜가 쾌락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토아 학파에서는 그것을 본분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다.

하나 덧붙인다면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은 여러 세기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 반면,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은 시대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서, 같은 스토아 철학이라도 초기 시대인 기원전 3세기 무렵의 사상과 서기 1,2세기 로마 시대의 사상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토아 철학은 세 개의 시대로 나누어 보는 것이 좋다.

 

－초기의 스토아 철학자 : 제논, 클레안테스, 크리시포스

－중기의 스토아 철학자 : 파나이티오스, 포세이도니오스

－신(新) 스토아 학파 또는 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 :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초기의 스토아 철학자 : 제논, 클레안테스, 크리시포스]

 

초기 스토아 철학의 첫 번째 철학자는 제논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키프로스 섬의 키지코스에서 기원전 333년 또는 332년에 태어난 셈족 출신이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해 주는 내용을 보면 이 사람은 외모가 꽤나 볼품 없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바싹 마른 몸에, 목은 구부정하고, 다리도 짧은 데다 피부도 푸르뎅뎅해서 그야말로 신에게 감사는커녕 일생을 아무 생각 없이 보내기에 충분한 모든 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아버지 므나세아스는 소아시아와 그리스 사이의 바다를 끼고 수출과 수입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었는데 아테네에 들를 때마다 철학 책을 사서 아들에게 주었다.

 

제논은 어렸을 때, 신탁을 청해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내가 갈 곳이 어디입니까?"

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죽은 이에게 가라!"

신탁의 내용이 죽으라는 것은 아닐 터인즉, 그는 신의 계시를 이미 죽은 철학자들의, 다시 말해 고전 철학자들의 책을 읽으라는 것으로 해석했다. 제논의 스승은 플라톤주의자인 크세노크라테스와 폴레몬 그리고 소크라테스파의 스틸폰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키니코스 학파의 크라테스였다. 그와 크라테스가 처음 만나던 장면은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으리라.

제논이 탄 배가 아테네 근처에서 난파해서 우연히 아테네에 들르게 된 것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페니키아에서 융단 천을 싣고 오던 무역선이 페이라이에우스 항구 근처에서 좌초되고 말았는데, 험한 바다를 겪고 나자 제논은 아버지의 직업에 회의를 느낄 정도로 완전히 기진맥진하고 만다. 나이도 이미 서른이 되었으니 뭔가 다른 삶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몸과 마음이 모두 피곤해진 그는 휴식을 취할 생각으로 한 서점에 들어가 우연히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의 회상』이라는 책을 뒤적이게 된다. 그런데 책 첫 머리에서부터 그만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에게 매혹되고 만 것이다. 탐욕스럽게 책을 읽어 내려가던 그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자 서점 주인이 때 마침 가게 앞을 지나가는 한 노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영감을 따라가 보시오!"

다름아닌 크라테스였다.

 

제대로 된 키니코스 학파의 추종자가 되려면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 하지만 제논은 지나치게 점잖은 사람이라서 얼굴이 두껍지 못했다. 스승 크라테스는 그에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말라고 별의 별 수단을 다 해 가르쳐 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크라테스가 어느 날 그에게 콩이 담긴 질그릇을 손에 들려 주며 케라메이코스 데모스의 거리를 지나가게 했다. 그러나 이 '페니키아 젊은이(크라테스는 제논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는 그 짓만은 못 하겠다고 버텼다. 철학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노예가 할 일이라고 하면서…. 그러자 크라테스는 지팡이라 그가 들고 있는 질그릇을 깨뜨렸고, 걸쭉한 콩 요리가 손이며 옷에 엎질러졌다.

크라테스와의 만남은 그에게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제논은 그 날을 회상하며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바다 여행은 최악이었지만 좌초는 최선의 사건이었다."

크라테스와 그 밖의 선생님에게서 몇 해 공부를 한 제논은 독립을 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는데 그 장소로 쓰인 곳이 폴리그노토스의 '채색 주랑'*이라는 곳이었다. 이 곳은 몇 해 전 30인의 참주들이 1천 400명의 아테네인을 처형한 곳이기도 하다. 주랑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스토아'라고 하는데, 바로 여기서 그의 제자들에게 '스토아 철학자'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채색 주랑은 그리스어로 '스토아 포이킬레(stoá poikíle)'라고 하는데 '스토아'라는 말은 '주랑'이라는 뜻이고 '포이킬레'라는 말은 '갖가지 색깔이 칠해진'이라는 뜻이다. '폴리그노토스'라는 기원전 5세기 경의 유명한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제논이 외국인이라서 아테네에 땅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든지, 가난해서 돈이 없었든지, 아니면 자신의 철학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제논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산책로가 딸린 '리케이온', 에피쿠로스의 '정원'처럼 자기 소유의 학교를 갖지 못하고 이처럼 공공의 장소에서 강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제논은 도덕적으로 진지하고 결점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어린 아이들을 성희롱하는 것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니 대단한 도덕 군자였던가 보다! 평생 창녀를 찾은 일이 한두 번 뿐이었다고 하니 그의 고매한 인품(?)을 보여 주는 또 다른 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느 날 밤 피리 부는 일을 하는 아주 예쁜 여자 하나가 발가벗은 몸으로 그의 침실에 침입한 일이 있었는데, 그는 제자 중에서 페르세우스라고 하는 가장 젊은 사람의 침실로 그녀를 안내했다고 한다. 제논의 성격이 무뚝뚝하고 의심이 많은 데다 인색한 사람이었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주장은 피리 부는 여인을 쫓아 낸 까닭이 돈을 내랄까 봐 그랬다는 것이다.

어쨌든 아테네인들은 그를 매우 존경했기 때문에 도시의 열쇠와 황금 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죽은 다음에는 동상을 세우기까지 했다. 마케도니아의 왕 안티고노스에게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안티고노스는 아테네에 들를 때마다 빠짐 없이 그의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안티고노스와 제논은 편지도 많이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은 그 때마다 그를 자신의 궁정에 초대했지만, 축제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을 싫어한 우리의 철학자 양반께서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 갈 때면 그는 한 쪽 구석에 앉기를 좋아했는데 그것은 그렇게라도 해야 혼자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논은 여느 철학자처럼 유머를 좋아했는데, 언젠가 노예 하나가 도둑질을 하다 들킨 일이 있었다. 노에의 등을 벗기고 몽둥이질을 시작하자 이 노예는 살살 빌며 말했다.

"주인님,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제게 도둑질을 하라고 명한 운명 탓입니다요!"

그러자 제논은 시치미 뚝 떼고 말했다.

"그럼, 그럼. 잘 알고 있지. 문제는 도둑질한 다음에는 몽둥이질을 당해야 한다고 운명에 쓰여 있는 걸 어떻게 하나?"

끊임 없이 말을 해 대는 제자가 하나 있었는데 제논 어른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우리에게는 귀가 두 개, 입이 하나 있네. 듣기를 많이 하고 말은 적게 하라는 뜻이라네."

그는 평생 앓아 누운 적이 없는데, 나이 일흔 둘에 수업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주랑의 계단에서 떨어지는 대단찮은 일로 세상을 떠난다.

"그대가 나를 부르니 갈 수밖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제논에게는 제자가 많았다고 하는데, 필레몬이라고 하는 희극 작가는 제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얼마나 이상한 철학이란 말인가! 스승이라는 사람은 배고픔이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제자들은 그의 말을 넋을 잃고 듣고 있다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언제나 배가 고프니 독학으로 그의 철학을 깨달은 셈이 아닌가!"

제논의 제자들로는 앞에서 말한 키지코스 사람인 페르세우스, 무관심의 이론을 창시한 아리스톤*, 칼케돈의 헤릴로스, 변절자 디오니시오스*, 제논의 뒤를 이어 학파의 지도자가 된 클레안테스와 크리시포스 등이 있다.

 

*아리스톤은 모든 가치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인간 최고의 목표라고 말했는데, 고통에 대해서조차 무관심해야 한다고 한 그의 이론은 '무관심의 이론'이라고 한다.

*헤라클레이아 출신의 디오니시오스는 제논의 가르침에 대해 열광적인 추종자였지만 고통스런 병을 앓고 난 다음, 고통에 무관심해야 한다는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을 부정하면서 스토아 철학을 전면 부정했다. 이 때문에 그는 '변절자 디오니시오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파니아스의 아들 클레안테스는 아소스 출신으로 기원전 331년에 태어났다. 이 사람의 직업은 철학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권투선수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가난이 죄라고 어떻게든 밥벌이를 해야 했으니…. 낮에는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밤이 되면 우물에 가서 물을 길러 빵집에 가져다 주고 돈을 받는 일을 해야 할 정도로 째지게 가난했으니….

언젠가 운동 선수들이 행진을 하던 중, 바람이 몹시 불어서 입고 있던 망토 자락이 날렸는데 망토 밑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알몸이 드러났다는 일화도 있다. 이 일로 해서 그는 아테네 사람들 사이에서 더 유명해지게 되었지만, 그 자신은 이에 대해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꾸짖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혼자서 큰 소리로 말하는 모습을 보고 누구와 얘기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멍청한 늙은이를 꾸짖고 있는 중일세. 흰 머리는 가득한데 머리에 든 것은 없는 늙은이를 말일세."

기원전 262년 경, 제논이 세상을 뜨자 클레안테스는 나이 육십에 스토아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그리고 거의 백 살에 가까운 나이에 죽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잇몸에 염증이 나서 의사를 찾아갔는데, 의사들이 이틀 간만 단식을 하라는 처방을 주었다고 한다. 이틀이 지난 뒤에도 클레안테스 어른은 다시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고맙네만,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이틀을 지내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 그래서 계속 하기로 결심했네."

 

아폴로니오스의 아들, 크리시포스는 기원전 281년 솔로이에서 태어났다. 아테네에 간 것은 마라톤 선수로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길로 그 곳에 눌러 앉아 제논의 제자가 되었고, 제논이 죽은 뒤에는 클레안테스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머리가 매우 좋고 무슨 일이든 바로 알아 듣는 수재였는데 스승 클레안테스와 철학에 대해 얘기할 때에도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스승님께서는 그저 결론만 말씀하시지요.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크리시포스는 스승 클레안테스와 자주 언쟁을 했는데 그 때마다 후회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난 모든 일에서 행운아였다. 스승을 잘못 만난 것만 빼고는."

스승은 책을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글에는 여러 사람의 글을 인용하는 부분이 많았다. 정원의 군주, 아폴로도로스는 이를 두고 이렇게 빈정거렸다.

"크리시포스의 책에서 인용한 부분을 빼고 나면 구두점밖에 남지 않는다."

기원전 232년 클레안테스가 죽자 크리시포스는 '채색 주랑'의 교장이 되었다. 그는 상대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변증론자였는데 특히 삼단 논법의 기술을 기발하게 발휘한 사람이었다. 한 예를 소개해 본다.

 

어떤 것을 잃지 않았다면 그대는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대는 (그대 머리의) 뿔을 잃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대는 (머리에) 뿔을 가지고 있다.

 

크리시포스는 일흔 세 살의 나이에 지나치게 웃은 탓에 목숨을 잃었다. 집에 있던 노새가 무화과 한 바구니를 먹어 버렸다고 하는데, 노예에게 포도주까지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포도주를 거나하게 마신 노새가 비틀거리며 뜰 안을 돌아다니는 걸 보며 얼마나 웃어 댔는지 그만 뻣뻣하게 굳은 채 땅바닥에 쓰러졌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철학을 과수원에 비유하기를 좋아했다. 울타리에 해당하는 것은 논리학이고, 과일 나무는 자연학이고, 열매는 윤리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들이 말한 것이 과연 맞는 말인지 확인해 보기로 하자. 논리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연학이라는 나뭇가지를 기어 올라가 보자는 말이다. 윤리라는 열매를 딸 수 있는지 없는지 보기 위해서.

 

 

 

[자연학]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제논도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신성과 영혼도 물론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하느님 같은 신성을 이루는 물질은 최고 품질의 물질인 불이고, 영혼을 이루는 물질은 뜨거운 입김, 곧 '프네우마'다. 에피쿠로스와 제논이 생각하는 우주관의 근본적인 차이는 제논의 하느님이 우주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하나라는 점이다.

"제논의 제자들은 신이 온 우주 안에 스며 있다고 말한다. 신은 때로는 이성적인 힘이 되고, 때로는 영혼이 되고 또 때로는 자연이 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서양 철학사에 있어서 최초의 범신론주의자인 셈이다.

 

그러면 이런 사상의 결과는 무엇일까? 온 우주 안에 신이 스며 있는 까닭에 무엇보다도 에피쿠로스가 아끼던 '우연'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자신의 갈 일을 아는 이성적인 힘이 차지하게 된다. 이성적인 힘 안에는 우연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동물이 존재하는 이유는 다른 동물에게 잡아 먹히기 위함이요, 또 다른 동물의 존재 이유는 용맹성의 본보기가 되기 위함이지, 결코 우연히 존재하는 동물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빈대조차 그 존재 이유가 있다. 아침에 늦잠 자지 못하도록 우리를 깨우지 않는가?

 

이처럼 자연에는 선을 지향하는 힘이 들어 있다. 제논은 이 힘을 '로고스 스페르마티코스'라고 부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제논의 '로고스'를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나 아낙사고라스의 '누스'와 혼동하면 곤란하다. 제논이 말하는 로고스는 자기 일에 바쁜 이기적인 '정신'이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진정한 힘, 또는 충동이다. 금방이라도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할 법한 강력한 힘인 것이다.

"여보게들, 제발 무슨 일이든 하게나! 지금 이 순간부터 그대들의 슬로건은 '존재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존재는 존재해야 한다'라고 바뀌어야 하니까. 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그만큼 그대 자신에게 손해가 될 뿐이네."

'본분'이라는 의미의 그리스 말 '카테콘'도 제논이 만들어 낸 말이 아닌가 추측된다.

 

스토아 철학자들에게 있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는 능동과 수동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는 언제나 실력을 행사하는 쪽과 그러한 힘에 당하는 쪽이 있다는 것이다. 당하는 쪽은 물질이고 실력을 행사하는 쪽은 신 또는 하느님이다. 물질 속에 스며들어 있는 이성(理性)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태초에는 신성(神性)만이 존재했다. 신성, 곧 하느님은 영원한 불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공기와 물과 땅이 태어나는 과정에서 신성은 물체와 완벽하게 혼합되는 특성 때문에 모든 사물 안에 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신성과 물질의 완벽한 결합은 무한히 나누어질 수 있다는 물체의 특성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이런 모든 것이 대화재로 말미암아 끝나 버리고 만다고 한다. 물론 신은 이 때 끝나지 않고 남아 또 다른 세계를 낳는다.

 

보다시피 에피쿠로스의 마음에 들면서 동시에 제논에게도 통하는 것은 없다. 에피쿠로스는 물질이 무한히 나누어질 수 없다고 했지만 제논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를 따르는 데 반해 제논은 헤라클레이토스를 따른다. 에피쿠로스는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하지만 제논은 이미 예정된 계획을 믿는다. 에피쿠로스 주의자들은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스토아 철학자들은 유일하고 완성된 세계에 대해 말한다. 에피쿠로스의 추종자들은 허공을 받아 들이지만 스토아 철학자들은 허공을 부정한다. 에피쿠로스는 제우스가 우주의 밖에 존재한다고 하지만 제논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한 마디로 스토아 철학은 에피쿠로스에게 무작정 반대하기 위해 태어난 사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 하나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스토아 철학처럼 순수하게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태어난 철학이 어떻게 한 순간에 종교적인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었으며, 또 어떻게 그처럼 높은 도덕적인 규범을 가질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이다. 스토아 철학자 클레안테스의 '제우스 찬가'를 보면 그리스도교의 '주의 기도(주기도문)'와 매우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 시작 부분을 소개해 본다.

 

오, 세상 무엇보다도 영광스러운 분, 지극히 높으신 분

영원한 권능이요,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시는 신, 제우스여

당신은 자연의 인도자요 주인이십니다.

당신은 법으로써 우주를 다스리시나이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면 "찬란한 우주가 당신께 복종하고, 당신의 명을 자신의 원의로 삼나이다"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것은 주의 기도(주기도문)에 나오는 "아버지의 뜻이…이루어지소서" 하는 구절을 상기시킨다.

 

 

[윤리학]

 

"쾌락과 고통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중요한 것은 덕행일 뿐이다."

이것은 제논의 윤리학을 요약하는 말이다. 하지만 치통으로 끙끙 앓는 것과 예쁜 여배우와 사랑을 나누는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하는, 아니 차이가 있어도 별 게 아니라고 하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에 따르면 선과 악은 오로지 정신과 관련이 있는 것이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은 생명이나 건강, 아름다움, 부유함 등의 긍정적인 것이든 죽음, 병, 추함, 가난 등의 부정적인 것이든 모두 육체와 관련된 것이기에 도덕과는 무관한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선한 것과 악한 것, 그리고 선이나 악과 상관이 없는 무관한 것으로 나누어진다. 선한 것은 지성, 절제, 정의로움, 용기 등 덕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고, 악한 것은 어리석음, 방탕, 정의롭지 못함, 비열함 등 악습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관한 것은 삶과 죽음, 유명함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음, 고통과 쾌락, 부와 가난, 건강과 병 등이다."

 

진정한 선은 도덕적인 것, 다시 말해 로고스와 일치하는 선이다.

벌써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되풀이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로고스는 자연 속에 스며 있으면서 우주를 완벽함으로 안내하는 이성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도덕과 무관한 것들을 또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이기에 좋지 않은 것으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노예에게 키스하는 행위는 도덕적인 가치를 따지지만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파테이아(초연함)'을 잃지 않는 것이요, 정념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정념이란 우리를 이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영혼의 본성에 반대되는 것이다."

정념 중에서도 쾌락과 고통, 욕망과 두려움 등 네 가지는 가장 위험한 것이다. 이것 말고도 70여 가지는 더 있지만, 이 책의 성격에 비추어 그것을 모두 늘어놓지는 않겠다.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들이 말했듯이 정념에 의해 좌우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지혜로운 사람은 그와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한 사람이다. 스토아 철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나를 감옥에 넣을 수도 있고, 고문을 가할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그렇게 한다고 나를 어떻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지 말라. 그대는 나의 목숨을 빼앗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내 영혼을 바꾸지는 못한다!"

"아니토스와 멜레토스가 나를 죽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나의 영혼을 손상시킬 수는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이므로 부유하고 자유로운 사람이며, 자기 자신의 참된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스토아 철학자는 원래 덕이 있는 사람이라서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덕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선을 행하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는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완고한 사람이다. 스토아 철학자는 연민을 결점이라고 생각하며, 여자들에게나 허용되는 나약함이라고 생각한다.

"여린 마음은 단점이요, 영혼의 결점이다. 마음이 여린 사람은 어리석고 경솔한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감동하지 않으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관대히 대하지도 않는다. 간청한다고 설득되거나 단호한 자세를 포기하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 아니다."

 

 

[중기의 스토아 철학자 : 파나이티오스, 포세이도니오스]

 

파나이티오스는 기원전 185년 경 로도스 섬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에는 포세이돈 신전에서 사제를 했던가, 아니면 사제를 도와 주는 일을 했던 것 같다. 아테네로 간 뒤로는 아카데미아와 리케이온 등 여러 곳의 학교를 옮겨 다니다가 결국 셀레우키아의 디오게네스라는 사람의 제자가 되어 몸과 마음을 오롯이 스토아 철학에 전념한다. 나이 사십에 그는 로마로 건너 가는데 이 곳에서 그리스 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지식인들과 친분을 맺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역사가 폴리비오스와의 친분 덕에 스키피오의 식객이 된다. 그 무렵만 해도 그리스의 철학자가 로마 거리를 활보하거나 '콘퍼런스'를 여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아직은 그리스 철학자들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가는 지식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그리스 철학을 받아 들이려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파나이티오스와 몇 해 뒤에는 포세이도니오스가 로마 세계에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을 소개하게 되는 것이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가신이 된 파나이티오스는 그와 함께 오리엔트 지방을 함께 여행하게 되는데, 덕분에 제논의 가르침과 중동 지방의 철학을 비교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129년 아테네로 돌아온 그는 안티파트로스의 뒤를 이어 스토아 학파의 지도자가 되었다가 일흔 둘의 나이로 죽는다. 작품으로는 단편 몇 가지를 제외하면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포세이도니오스는 대부분의 스토아 철학자들처럼 아시아 사람으로, 기원전 140년과 130년 사이에 시리아의 아파메이아에서 태어났다. 아테네에서 공부했고, 파나이티오스의 제자이기도 했는데, 기원전 86년에는 로도스의 정부가 그를 로마에 대사로 파견한다. 포세이도니오스는 그리스 철학자들 중에서도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다.

"나는 나의 눈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저 쪽, 대서양으로 지는 해를 보았고, 아프리카의 해안에서 원숭이가 주렁 주렁 매달린 나무들도 보았다."

한 마디로 그는 만물 박사여서 그가 가르친 분야만 해도 기상학, 인종학, 천문학, 심리학, 자연학, 역사학 그리고 철학 등이었다. 그는 로도스 섬에 학교를 세우기도 했는데 짧은 시간에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로마에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올 정도였다. 폼페이우스와 키케로 같은 유명 인사들도 여럿 이 곳에 유학했다. 폼페이우스가 이 곳에 도착하던 날, 포세이도니오스는 몸이 몹시 아팠다. 관절염 때문에 온 몸의 관절이 욱신거리는 통증이었다. 하지만 훌륭한 스토아 철학자 답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손님을 맞았다.

"내가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그렇게 멀리서 나를 만나러 온 손님들을 외면할 수 있나!"

키케로의 말에 따르면 이 때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은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포세이도니오스는 덕이 없으면 선이 있을 수 없다는 이론에 대해 오랜 시간에 걸쳐 장황하게 설명을 했는데,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고통이여, 그대는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네. 그대가 아무리 성가시게 군다고 한들 나는 그대를 악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터이니!"

실제로 고통은 그를 이기지 못했다. 거의 아흔 살이나 되어서야 세상을 떠났으니까.

 

파나이티오스와 포세이도니오스는 많은 여행과 경험을 통해 개방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초기 스토아 철학의 경직성을 누그러뜨렸고, 도덕과 무관한 것들의 범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이미 앞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티카 니코마케이아』에서도 확인했듯이 그는 "덕만으로는 좋은 삶이 보장되지 않으며, 건강과 약간의 돈도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로마에서 생활하는 동안 파나이티오스는 로마인들의 투철한 도덕관에 큰 감명을 받게 된다. 그리스 사람들의 절제되지 않은 생활에 익숙해 있던 그에게 로마 시민들의 생활 방식은 마치 그리스 고대의 황금기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당시의 로마 사람들은 아직 로마 제국이 정복한 영화에 물들지 않았던 때였고, 실용주의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던 때였다. 세련된 그리스 사상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는 정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스토아 철학의 가르침과는 통하는 데가 있었다. 로마인들이 쾌락과 고통이 무관하다는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에 찬동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의무나 본분에 관한 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먼저 조국이 있고, 가정이 있고, 그러고 나서도 여유가 있다면 개인의 관심사를 돌보는 것이 당시 로마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중기 스토아 철학의 가장 큰 변화는 신을 재평가한 점이다. 더 이상 제우스 신과 자연과 운명이 동등하게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첫 자리에는 제우스 신이, 둘째 자리에는 자연이, 그리고 운명은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위계 질서를 만들어 냄으로써 새로운 스토아 철학은 초기의 유물론적인 특징으로부터 벗어나 종교적인 면을 강하게 띠게 된다.

 

 

[신(新) 스토아 철학자들 :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신(新) 스토아 철학은 순수하게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서 발전한 것이다. 신 스토아 철학의 대표 주자는 세네카와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는데 세 사람 모두 로마에서 생활한 사람이다. 이 세 사람의 신분이 귀족과 노예와 황제였다는 것만 보더라도, 스토아 철학자들이 사회적인 신분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세네카는 기원전 4년 코르도바에서 태어났지만 갓난 아기일 때 로마로 이사를 한다. 한동안 이집트에서도 살았는데 이 곳에서는 기원후 32년까지 생활한다. 스승은 신(新) 피타고라스 학파의 소티온과 스토아 학파의 아탈로스였고, 변호사로 시작해 정치에 입문하게 되는데 두 번째 직업에서부터 그의 역경과 난관이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정치를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위험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황제의 변덕 때문이 아니라 여자들의 야심 때문에 생겼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리비아 드루실라, 율리아 아그리피나, 발레리아 메살리나 등은 당시 정치계를 휘두르던 여걸이었는데, 이들은 밤낮으로, 아니 특히 밤에 손 보아 줄 정치가를 골라 함정을 파는 일에 분주했다. 세네카는 이런 여자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우선 칼리굴라 황제 치하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는 이 때 자신은 결핵 환자에다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나서야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다스릴 때 메살리나의 입놀림으로 생긴 일이었다. 세네카가 황제의 숙모와 내밀한 관계를 가졌다고 모함을 한 사건인데 덕분에 세네카는 8년 동안 코르시카에 유배 되어야 했다. 메살리나처럼 그를 미워한 여인이 있었는가 하면 아그리피나처럼 보호해 주는 여인도 있었다. 메살리나가 죽은 뒤 세네카를 로마로 불러 당시 열두 살 된 어린 네로의 가정 교사로 삼은 사람이 바로 아그리피나였다.

 

서기 54년 아그리피나가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독살하고 네로를 황제위에 올리자, 세네카는 자동으로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가가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여인 포페이아가 시비를 걸 때까지 모든 일은 순조로웠다. 포페이아가 괜히 시비를 걸자 세네카는 정치계에 환멸을 느끼고 조용히 시골로 물러났다. 그러나 정계를 떠나 낙향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그를 평화로이 버려 두지 않았다. 결국 피소*의 역적 모의에 가담했다는 부당한 모함을 받고 자살하라는 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네로 황제의 전령이 그에게 '선물' 사발을 들고 도착했을 때 그는 군 소리 하나 하지 않았다. 노예에게 로마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쓰게 하고 아내에게 작별의 포옹을 하고는 독미나리 사발을 쭈욱 들이켰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목욕탕 속에서 정맥을 끊어 버리기까지 했다.

당시 그는 이미 일흔이 넘은 나이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평소에도 죽음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죽음은 비존재이다. 죽은 다음 나는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고, 태어나기 전에 고통을 당하지 않았으니 죽은 다음에도 고통은 없으리라. 인간은 불이 꺼진 뒤에도 그 불을 켜기 전보다 나빠질 것이 없는 반딧불 같은 존재이다. 죽음의 문을 통과하는 잠깐 동안의 순간에만 고통이 느껴질 뿐이다."

 

*고대 로마의 평민 계급 중 주요 가문의 사람으로 기원전 1세기 경 로마 왕국의 두 번째 왕인 누마 팜필리우스의 아들 칼푸스에게 저항하는 역모를 꾸몄다.

 

나는 세네카가 스토아 철학자들 사이에 끼게 된 것은 죽음에 대한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해 왔다. 그의 삶을 돌이켜 보면 사상과 실제 생활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해 말은 번드르르하게 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했다는 얘기다. 언젠가 자기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부자란 자신들이 돈을 넣고 다니는 전대 만한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네. 인간이라기보다는 장식품인 셈이지."

한 손으로는 이런 편지를 쓴 그가, 다른 한 손으로는 계속해서 재산을 늘리는 일에 분주했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타키투스가 남긴 글에 따르면 그는 죽어 가는 어떤 사람을 협박해서 자기에게 재산을 남기도록 유언하라고까지 했다지 않는가!

정치에 관한 관심만 하더라도 그렇다. 정치와 정념으로부터 해방된 마음, 곧 '아파테이아'가 어떻게 양립될 수 있겠는가? 유일한 가능성은 그가 나이가 들어 정계를 은퇴한 다음에야 진정한 철학자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노예의 노예였다. 네로 황제에 의해 자유인이 된 해방 노예 에파프로디토스의 노예였으니, 노예의 노예가 아니고 무엇일까. 어쨌거나 에픽테토스는 서기 50년 경 프리기아의 히에라폴리스에서 태어났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아직 어린 나이에 로마로 끌려 와 노예가 되었다고 하는데, 노예의 신분에 어떻게 철학을 사랑할 수 있었느냐고 놀라지 말라. 당시만 하더라도 철학에 관심을 가진 노예들이 무척이나 많았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노예들의 절망적인 상황이 인간사에 대해 초연해지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테오프라스토스의 노예였던 폼필로스, 에피쿠로스의 노예였던 무세, 데모크리토스가 1만 드라크마를 주고 샀던 디아고라스, 제논의 노예였던 페르세우스, 비온, 메니포스, 파이돈 등이 모두 노예 출신 철학자들이다.

노예 철학자에 대해서는 『노예와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두 권의 책이 쓰여지기까지 했다(이 책은 헤르미포스가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픽테토스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중 하나로 틀림 없이 지어 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스토아 철학자들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있기에 소개해 본다.

어느 날, 에픽테토스의 주인인 에파프로디토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에게 벌을 주려고 한 쪽 다리를 비틀기 시작했다.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뎁쇼!"

하지만 주인 양반은 노예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자 불쌍한 에픽테토스가 되풀이했다.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뎁쇼!"

갑자기 "딱!" 하는 소리가 들렸고, 조금도 말투를 바꾸지 않은 목소리로 에픽테토스가 말했다.

"다리가 부러질 것 같다고 하잖았어요!"

에파프로디토스가 에픽테토스를 해방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 돈으로 공부까지 시켜 주었다는 걸 보면 이 이야기는 아까 말했듯이 사실이 아니라, 에픽테토스가 절름발이라는 사실에 착안해서 누군가 지어 낸 이야기일 것이다.

 

에픽테토스의 첫 번째 스승은 기사 출신인 카이우스 무소니우스 루푸스였는데, 이 사람은 원래 평화를 사랑하는 에르투리라인으로, 정신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로마인들이 로마 정신에 대해 최고의 긍지를 느끼던 시대에 거리를 돌아 다니며 세계의 모든 백성들은 평등하다는 말을 외치고 다녔으니 말이다. 저녁이면 여러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아 초주검이 되곤 할 정도였다. 에픽테토스 역시 노예의 처지에서 해방되자, 거리에서 설교를 하며 다녔다. 그의 대중 설교는 로마 사람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다고 하는데, 세계의 중심 도시요 수도였던 로마에는 그 말고도 수많은 거리의 설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는 이렇게 외치며 다녔다고 한다.

"그대도 철학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조롱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 그대를 조롱하는 사람들이 내일은 그대를 예찬하는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알라."

그러나 서기 89년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그를 예찬하기는 커녕, 다른 철학자들과 함께 추방하고 만다. 에픽테토스는 에페이로스의 니코폴리스로 쫓겨나게 되는데, 이 곳에서 자신의 첫 번째 스토아 학교를 연다. 이 학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는데,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로마의 장군인 니코메데이아의 아리아누스는 그를 만나러 이 곳까지 직접 찾아 오기도 했다. 특히 아리아누스는 군대의 출세 가도를 벗어 던지고 에픽테토스가 가장 아끼는 제자가 되기도 했다.

아리아누스와의 만남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에픽테토스는 글 쓰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소크라테스처럼 글을 쓸 줄 몰랐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장군 출신 비서 겸 속기사가 없었다면 네 권이나 되는 그의 『어록』이나 자코모 레오파르디*가 수십 세기 뒤에 번역한 저 유명한 『제요(提要)』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자코모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i, 1798~1837) : 이탈리아의 시인, 학자, 철학자, 어린 아이 때에 독학으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고, 많은 고전을 번역했으며 자신의 어두운 인생을 시로 표현했다.

 

에픽테토스의 사상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우리 힘의 범위 안에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 힘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은 의견, 행동, 욕망, 적대적인 마음 등이고, 우리 힘의 범위 안에 있지 않은 것은 육체, 재산, 관직 등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위해 스스로를 해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몸이 아프거나 재산이 없는가? 그렇다면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에게 달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요』에 나오는 그의 격언 몇 가지를 보기로 하자.

 

－진흙으로 만든 것인지 알면서도 진흙으로 만든 그릇에 애착을 갖는다면, 언젠가 그것이 깨어져 버린다고 하더라도 불평을 하지 말라. 마찬가지로 아내나 자식에게 입맞춤을 할 때, 그대여, 언제나 이렇게 다짐하라. '지금 나는 언젠가 죽을 운명에게 입맞춤을 하고 있다' 라고. 그리하여 언젠가 그들이 죽는다 하더라도 슬퍼하지 않도록.

－공중 목욕탕에 가거든 누군가 그대에게 물을 튀기더라도 항의하지 말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 물건을 훔치는 사람, 등을 밀치는 사람 등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지 않는가? 인생살이도 그와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말할 때에 '나는 그것을 또는 그 사람을 잃었다'고 말하지 말라. '그 사람 또는 그것을 되돌려 주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대는 특정한 역할을 맡은 한낱 배우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그대의 역할이 길든 짧든, 걸인이든 재판관이든, 대단한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그대의 역할을 잘 연기하도록 노력하라.

－몸을 잘 가꾸려고 걱정한다는 것은 초라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증거이다.

－아니토스와 멜레토스가 나를 죽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내 영혼을 손상시킬 수는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겨우 열 두 살 때부터 침대에서 자지 않고 맨 바닥에서 잤다고 하니 일찍이 스토아 철학자다운 삶을 시작한 셈이다. 그는 서기 121년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미래의 카이사르로 지명되었고, 역시 황제였던 안토니우스 피우스로부터 황제 수업을 받았다. 그는 열 일곱 사람이나 되는 스승을 모셨다고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유니우스 루스티쿠스라고 하는 스토아 철학자였다.

나이 마흔이 되어 황제가 되자, 마르쿠스는 선정을 베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에픽테토스가 노예에 절름발이라는 슬픈 운명을 타고났다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충실하지 못한 부인과 아들 콤모두스 때문에 고통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파우스티나라는 이 황후는 검투사들과 관계를 갖는다는 소문이 파다할 정도로 정숙하지 못한 여자였고, 자신의 아들인지도 확실치 않은 아들 콤모두스는 말 그대로 후레자식이었다. 그렇지만 마르쿠스는 이 두 사람을 극진히 사랑했다.

우리의 황제 철학자, 마르쿠스는 평화를 사랑하는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르토이인, 쿠도이인, 마르코마노이인 등과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때마다 꽤 괜찮은 성과를 올렸다. 마르쿠스가 페스트에 걸린 것은 이들과의 전쟁 중 181년의 한 전투에서였다. 하지만 전혀 호들갑을 떨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운 그는 스스로 하얀 천을 머리 위까지 끌어 올린 다음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철학의 역사에 길이길이 전해지는 것은 그의 사상이 특별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로마 제국의 황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명상록』이라는 책을 남겼는데, 이 책은 주로 인생에 도움이 될 만한 금언과 불안정한 인생에 대한 염세주의적 슬픔이 뒤섞여 있는 책이다. 몇 구절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신들이 하는 일은 섭리로 충만하다.

－오, 만물은 얼마나 재빨리 지나가는가! 육체는 공간 속으로 사라지고, 기억은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아시아와 유럽은 우주의 한 모서리일 뿐이다. 저 넓은 바다를 모두 합쳐도 우주의 한 방울에 지나지 않고, 아토스 산*도 한 줌의 흙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순간은 영원한 한 점일 뿐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처럼 작고, 변화하는 것이며,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스 북부에 있는 산. 높이 2,033미터. 길다란 아티크 곶의 남단에 위치한 이 산은 오늘 날에도 주로 수도원으로 이루어진 반(半) 자치공화국이 있을 정도로 고대로부터 신성한 산으로 여겨져 왔다. 어쨌든 로마 제국의 황제가 다른 높은 산들을 제쳐 두고, 그리스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아토스 산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로마인들이 그리스 문명으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한 마디로 마르쿠스는 슬픈 황제였다. 그러기에 도덕적으로 엄격한 그의 행동은 스토아 철학자 다운 면모를 더 돋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은 운명에 의해 예정된 것이라고 굳게 믿은 그는 어떠한 적대감도 그리스도교 신자다운 체념으로 받아 들였다. 이것이 바로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라는 믿음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순간들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잘 살아 보려 했던 루크레티우스의 삶과 다른 점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 만이 아니라 그리스 사상 전체의 피날레를 장식한 사람이다. 그가 가고 난 뒤 그리스도교 정신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 와 여러 세기 동안 세상을 호령했다.

 

 

[스토아 철학자와 에피쿠로스 철학자에 대한 몇 가지 생각]

 

그렇다면 오늘 날 어떤 사람이 스토아 철학자 같은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에피쿠로스 같은 사람일까? 이들은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들 두 부류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스토아적인 사람이란 자신의 도덕적인 사명을 굳게 믿고 그것을 꼭 성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요, 인생에 의미를 주는 위대한 청사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처럼 원대한 이상이 정말 실현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언제나 매우 어렵고도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이상을 선택한다.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이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어떤 이상을 위해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기에 유일하고, 영원하며, 부정할 수 없는 원대한 이상을 믿는 사람은 스토아적인 사람이다. 그러한 이상을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은 지극히 명백하건만 이들은 결코 이상을 포기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과 타협도 하지 않는다. 이들의 좌우명은 "전부가 아니면 무(無)!" 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야말로 스토아적인 사람이다. 진정한 신념으로 신앙을 생활하는 신자들 말이다. 그들의 목표는 천국이고, 육체의 극기와 정신의 고양을 통해 천국에 이르려 한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좌우명은 "우리는 고통을 당하기 위해 태어났다", "꼴찌가 첫째가 되리라" 는 것이다. 마르크스 주의자들 역시 스토아적인 사람이다. 그들 인생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정의를 쟁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상 역시 도저히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즐겨 하는 말 중에 "미래의 태양"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에서 드러나듯이 그들의 이상은 어느 먼 뒷날의 일인 것이다. 먼 훗날의 것을 기다리면서 혁명과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독재와 그 밖의 달갑지 않은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마르코 판넬라(이탈리아의 정치가) 역시 스토아 철학자 같은 사람이다. 그는 전 세계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다. 만약 그에게 좀 더 작은 목표, 예를 들어 나폴리의 산 카를로 지역 주민들의 기아 문제를 해결하라는 계획을 맡긴다면, 그는 즉시 이를 거부할 것이다. 달리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실현될 위험이 있는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문이 금지되어 있는 나라에 살기 때문에 스스로 고문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단식으로 스스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인 것이다.

 

에피쿠로스 주의자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다. 에피쿠로스 주의자는 험난한 세상 물정을 잘 알기 때문에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추구한다.

에피쿠로스 주의자는 당면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월급을 올려 달라고 하는 사람이다.

에피쿠로스 주의자는 정의나 자유, 행복 등 거창한 이상을 제시하는 정당보다, 작지만 실현 가능한 정책 수단들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자신의 삶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정당에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다.

에피쿠로스 주의자는 더 이상 애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서로를 참아 내는 '모두스 비벤디', 즉 나름대로의 생활 방식을 터득하고 현재의 파트너와 평화로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에피쿠로스 철학에 따른 생활과 스토아 철학에 따른 생활 방식이 주는 장단점은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거기서 거기다. 일반적으로 에피쿠로스 주의자는 온순한 성격에 세상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언제나 웃음을 띠고 살아가는 반면, 스토아 주의자들은 모든 면에서 열심히 열과 성을 다해 근면하게 살아가는 특징을 지닌다. 심지어는 카드 놀이를 하더라도 최대한의 열의를 지니고 임한다. 에피쿠로스 주의자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을 얕잡아 보는 사람이요, 기업체의 경영자로는 적합치 않은 사람이다. 그보다는 사적인 생활을 좋아하고, 시민 사회의 일원이기를 좋아한다. 피렐리 사(社)의 주인 피렐리는 오늘의 피렐리가 되기까지 틀림 없이 스토아 철학자처럼 살았을 것이다. 에피쿠로스 주의자라면 그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저 조그만 공장 하나를 경영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만약 결혼을 앞둔 젊은 남녀라면, 상대방의 띠를 알아 보거나 사주를 보기보다는 그 사람이 스토아 철학에 가까운 사람인가 에피쿠로스 철학에 가까운 사람인가를 확인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