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사 -下- 에피쿠로스

에피쿠로스

 

 

인생의 목표는 쾌락이다.

육체의 쾌락은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이요,

영혼의 쾌락은 번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가장 훌륭한 철학자였다는 평과 최악의 철학자였다는 평을 동시에 듣는 사람이다. 방탕한 사람이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요, 여자를 홀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성인군자요, 예언자였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키케로는 그를 증오했지만, 루크레티우스는 그를 숭배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에피쿠로스 같은 사람이라는 말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어 사전 중에서도 누오보 징가렐리 사전에는 '안일하고 즐거운 삶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지만, 팔라치 사전에는 '호색적이고, 대식, 대주가에 방탕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서 그의 글을 직접 읽어 본 사람에게 있어서 그는 절제 있는 사람이요, 너무 많이 먹어서 불편한 몸으로 잠자리에 들지 않기 위해 식사량을 조절하는 사람일 뿐이다.

 

언젠가 그는 제자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빵과 물로 연명하며 호사스런 삶의 쾌락을 멀리 할 때, 나의 몸은 상쾌하기 그지 없네. 호사스런 삶을 멀리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런 생활 때문에 오는 불편 때문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일세."

그는 이와 반대 되는 면을 보여 주기도 하는데, 역시 제자에게 보낸 다른 편지에서 이렇게 부탁한다.

"가끔씩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치즈 한 냄비 보내 주게나."

문제 제기를 위한 서론은 이 정도로 해 놓고, 이제부터는 이 철학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작업을 시작해 보기로 하자.

 

아테네의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아테네가 아니라 사모스 섬에서 물병자리를 타고 태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이방인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아테네의 가장 유명한 가르게토스 데모 사람인 아버지 네오클레스와 어머니 카이레스트라테가 모두 아테네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나이가 들 때까지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시민만 사는 마을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가 태어나기 11년 전 약 2천 명의 일자리 없는 아테네 시민들은 아테네 당국으로부터 사모스 섬의 원주민을 몰아 내고 그 곳에 식민 도시를 건설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는데 이 사람들 중에 에피쿠로스의 부모도 끼어 있었던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네 형제 중의 둘째였다.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수업 시간이면 어린 에피쿠로스를 데리고 강의실에 들어가 수업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수업 말고도 에피쿠로스는 열네 살이 되자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 열두 살에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는데, 스승은 사모스 섬에 살던 플라톤 주의자인 팜필로스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에피쿠로스는 공립 학교에 갔는데 이 학교에서는 단 몇 분도 앉아 있질 못했다. 섹스투스 엠페이리코스가 전해 주는 장면을 소개하면 이렇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말했다.

"태초에 카오스가 생겨났다."

그러자 에피쿠로스가 물었다.

"무엇으로부터 생겨났지요?"

"그것은 알 수가 없어요. 그건 철학자들의 몫이니까."

"그렇다면 여기 있을 필요가 없군요? 직접 철학자들에게 가서 배우겠어요."

 

열 여덟 살이 되자, 군복무 때문에 아테네로 가야 했다. 아테네에서 훈련 기간을 거치는 동안 에피쿠로스는 희극 배우인 메난드로스와 함께 생활했다. 때는 기원전 323년이었다. 크세노크라테스가 아카데미아에서 가르치던 때이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산책을 하면서 지혜와 개념에 대해 강의를 하던 때였다. 에피쿠로스는 군대 생활 도중, 시간이 날 때마다 두 곳의 학교를 번갈아 찾아가 이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에피쿠로스는 이 때 위의 두 사람에게서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 뿐 아니라 그는 아낙사고라스와 데모크리토스를 제외하고 어떤 철학자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 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사모스 섬의 원주민들은 마케도니아의 새로운 왕, 페르디카스의 도움을 받아 섬을 다시 점령하고 아테네 사람들을 바다로 몰아낸다. 에피쿠로스의 부모들도 이들 중에 있었음은 물론이다. 에피쿠로스는 부모가 걱정되어 콜로폰으로 이주한 가족들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이 곳에서 형제인 네오클레스, 카이레데모스, 아리스토쿨로스, 그리고 노예인 무세와 함께 학교를 세워, 에피쿠로스 학파의 첫 그룹을 이루게 된다.

그 무렵 콜로폰 근처의 테오스라는 곳에서는 데모크리토스의 추종자인 나우시파네스라는 사람이 철학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원자론을 열심히 믿던 에피쿠로스는 그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그러나 팜필로스와 크세노크라테스에게 그랬듯이 그는 나우시파네스에게도 전혀 감사하는 마음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등 연체동물이요, 무지한 사람에, 매춘부" 라고 악평을 하고 있다. 선남선녀들에게는 그토록 부드럽고 친절하던 에피쿠로스가 지식인들에게는 왜 그토록 냉정했는지, 특히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들에게는 왜 그리도 표독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자신을 독학을 한 사람으로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사상과 다른 사람들의 사상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서른 두 살이 되자 에피쿠로스는 형제들과 노예를 데리고 미틸레네로 옮겨 가 정식으로 첫 번째 에피쿠로스 학교를 연다. 그러나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힘이 있고 또 정치적인 성격을 짙게 띠고 있던 플라톤 계통의 학교들이 젊은이들을 종교와 정치로부터 빼앗아 가는 에피쿠로스 학교를 받아 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람프사코스로 옮겨 가 다시 학교를 세운다. 이 곳에서 5년 동안 시골 생활을 하고 난 뒤, 기원전 306년 드디어 아테네로 입성해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 때부터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그리스 전 지역은 물론 소아시아, 이집트, 이탈리아 등 국경을 넘어 곳곳으로 퍼져 간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에피쿠로스의 친구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도시 전체가 그의 친구가 되곤 했다" 고 밝히고 있다.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80미나를 주고 집 한 채와 농지를 샀는데, 이것 때문에 에피쿠로스 학파는 '정원의 철학자들'이라 불리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정원은 꽃이 만발한 정원이 아니라 배추와 무, 오이 등이 심어진 농장이었다.

 

이 학교는 우의와 우정에 바탕을 둔 학교였기 때문에 입학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곳에 드나드는 사람은 모든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남자와 아이들과 외국인과 노예와 아테네의 저명 인사와 아름다운 헤타이라들도 있었다. 학생 중에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오래 가지 않아 스캔들이 되었고, 사람들은 에피쿠로스와 메트로도로스가 레온티온, 맘마리온, 헤디아, 에로티온, 니키디온 등 다섯 명의 헤타이라와 동거를 한다느니, 모두 함께 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느니 하는 헛소문을 내기도 했다. 특히 키케로는 이 학교를 '온갖 향락 속에서 초췌해져 가는 쾌락의 정원'이라고 정의하기까지 했다.

 

에피쿠로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그를 헐뜯는 것이거나 말도 안 되는 것들 뿐이니 말이다. 디오티모스라고 하는 스토아 학파의 한 사람은 에피쿠로스를 헐뜯기 위해, 50여 편의 음탕한 서간문을 쓰고는 모두 에피쿠로스가 쓴 것이라고 하기도 했고, 스토아 학파의 포세이도니오스는 에피쿠로스가 동생에게 매춘을 하라고 강요했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다. 테오도로스는 『에피쿠로스에 대한 반박』이라는 책 제4권에서 에피쿠로스가 레온티온의 아내인 테미스타와 함께 술을 마시고 곤드레 만드레가 되었다는 말까지 미주알 고주알 적고 있다. 티몬은 그를 변태성욕자라고 했고, 티모크라테스는 에피쿠로스가 음식을 더 먹기 위해 하루에 두 번씩 음식을 토해 냈다고 적고 있다. 어디 그 뿐일까? 플루타르코스는 에피쿠로스가 어떤 사람과 몇 번 성행위를 했는지를 쓰는 일기를 적었다고도 한다.

스토아 학파의 사람들이 퍼뜨린 소문  때문에 에피쿠로스의 제자들은 종교적인 박해에 버금가는 박해를 받았다. 메세네에서는 도시의 권력자들이 군인들을 동원해서 에피쿠로스의 추종자들을 모조리 추방하고 그들이 살던 집을 불로써 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크레타에서는 유약한 철학을 믿는다는 죄로, 또 신들의 적이라는 죄목으로, 온 몸에 꿀을 발라 모기와 파리에게 회식용 잔칫밥이 되게 한 다음 국외로 추방하기도 했다. 추방된 사람들 중 되돌아 오는 사람은 여자 옷을 입힌 뒤 절벽에서 밀어 버리겠다는 단서 조항까지 붙여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에피쿠로스 사상이 그토록 미움을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정치인을 멸시했을 뿐 아니라 하층 계급의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의 사회에서 우정은 같은 계급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인정되는 것이었는데 에피쿠로스는 그것을 무시했던 것이다. 플라톤은 『법률』에서 노예를 복종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말을 하지 못하도록 여러 종족의 사람들을 골고루 섞는 것이고, 스스로 노예라는 걸 잊지 않도록 체형을 가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에피쿠로스는 노예들을 두 손 벌려 환영하고 친구처럼 대했던 것이다. 에피쿠로스로부터 300년 가까이 흐른 뒤, 예수도 똑같은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음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에피쿠로스는 나이 일흔 둘에 신장결석으로 죽는다. 그는 한 제자에게 자신의 최후의 날에 대해 전해 주고 있는데 직접 들어 보자.

"오, 헤르마르코스. 이제 내 최후의 날이 다가오고 있네. 방광과 장의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이보다 더 심한 고통은 없을 걸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영혼은 우리의 사상과 우리가 발견한 진리를 기억하며 기쁘기 그지 없네. 이제 부탁을 하나 하겠네. 자네는 언제나 내게 너그러웠던 사람이었으니, 내가 죽은 뒤에도 자네 답게 헤트로도로스의 아이들을 돌보아 주게."

헤르미포스에 따르면 에피쿠로스는 죽기 전에 청동으로 된 목욕통의 따뜻한 물에 들어가 죽는 순간까지 포도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에피쿠로스 사상의 특징]

 

철학이란 참으로 이상한 학문이요, 정의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학문이다. 실제로 처음에는 철학이 자연과 천체와 우주와 윤리, 시학, 정치학, 논리학, 수학, 인식론, 존재론 등 거의 모든 문제를 다루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중 몇 가지가 떨어져 나가, 오늘 날에는 거의 존재만 다루는 존재의 학문이 되고 말았다. 그러기에 철학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보조 방법 중의 하나는 그가 철학의 여러 분야 중 어떤 분야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지를 먼저 가리는 것이다. 존재론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던 엘레아 학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에게는 우주론과 자연이 첫 번째 관심사였다. 소크라테스는 윤리학을 발명한 사람이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졌지만 존재론에 무엇보다 관심이 있었다. 에피쿠로스의 경우는 자연학보다는 윤리학이 더 우위에 있다. 그러나 인간을 시민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면서 '에토스', 곧 윤리를 의무와 본분이라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나 플라톤과는 달리, 에피쿠로스는 인간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개인일 뿐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에피쿠로스가 생각하는 인간은 반드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할 '정치적인 존재'가 아니라, '삶을 드러내지 말라'는 말을 첫 번째 철칙으로 삼는 개인인 것이다.

 

 

[윤리학]

 

지금부터는 우정과 욕망, 쾌락과 죽음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자.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지혜가 우리에게 주는 것 중에서 가장 값진 것은 우정이다."

에피쿠로스 자신의 이 말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에 꼭 필요한 열쇠이다. 사실 정의에 입각한 사회보다는 우애에 입각한 사회가 누가 뭐래도 백 번 낫다.

에피쿠로스가 세운 학교 '정원'은 학교라기보다는 선교사들을 양성하는 곳이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는 인간적인 관계인 우애는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염되듯이 퍼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여기서 우애라는 말을 사랑이라는 말로 바꾸기만 하면 우리는 에피쿠로스가 아니라 성 프란체스코 성인*의 전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의 메시지가 군중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은 까닭은 우애가 사적인 가치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이념적인 수단이 될 수 있는 정의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애는 매일 아침 온 땅을 돌며 사람들을 일깨워 서로 서로 즐거운 삶을 누리게 한다."

에피쿠로스의 이 시적인 표현은 우리에게 그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는 우애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요, 이데올로기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비록 필요에 의해 태어난 것이지만 쾌락과 동일한 것이요, 인생 최후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13세기 경 이탈리아에서 성 프란체스코회를 창설한 가톨릭 성인으로, 복음의 정신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면서 가난과 사랑을 실천하고자 했다. 예수와 가장 가까운 삶을 산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에피쿠로스가 주장하는 사회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18세기 독일의 사회학자인 페르디난트 퇴니에스는 인간의 공동체를 두 개의 유형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는 '정의에 기반을 둔 사회(게젤 샤프트)'이고, 두 번째는 '우애에 기반을 둔 사회(게마인 샤프트)'이다.

'게젤 샤프트'는 수평적인 사회이다. 모든 시민은 법 앞에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이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친척이나 친구들의 추천이 없이도 살아 갈 수가 있다. 한 개인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라면 다른 사람 앞에 가서 굽신거릴 필요가 없는 사회이다. 게젤샤프트의 전형적인 예는 영국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소호 지역의 즐비한 음식점에서 식기를 닦는 사람도 사회 안에서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법 앞에서는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

'게마인 샤프트'는 그와 반대로 피라미드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 관계가 우애, 곧 인간적인 유대 관계로 맺어져 있다. 사회 안의 모든 무리들은 가족적인 그룹, 정치적인 그룹, 문화적인 그룹 안에 소속되고, 모든 그룹, 곧 피라미드의 정점에는 우두머리가 있다. 그리고 최상층부와 최하층 사이에는 중간층이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추천이나 부탁, 인척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탈리아의 남부 지역이야말로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게마인 샤프트의 첫 번째 예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 놓고 보면 게마인 샤프트는 마치 전염병을 피하듯 피해야 할 마피아 사회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에피쿠로스의 사고 방식에 따라 이러한 사회를 분석해 보고 그 사회에 맞는 규범을 끌어 내 보자.

우애에 기반을 둔 사회에 사는 사람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따라서 이런 사회의 구성원은 점점 더 사회적인 성향을 갖게 되고, 이웃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게젤 샤프트 속에서 사는 사람은 헌법에 규정된 권리가 확실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리게 된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게젤 샤프트의 구성원들은 각각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조금 비약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한 마디만 덧붙일 테니 용서해 주시라. 플라톤은 그의  『향연』에서 사랑을 가난의 여신과 임기 응변의 신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으로 표현하고 있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노력을 기울일 때 사랑이 태어난다는 말이다. 그러니 나폴리의 친구들이여,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시라.

에피쿠로스의 윤리학에서 가르치는 것은 항상 중용을 지니라는 것이다. 식사를 잘 하되 과장되게 하지 말고, 사랑을 하되 일정한 범위 안에서 하라는 것이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지나치게 조용함은 태만이요, 과장된 활동은 광기이다. 우애도 따지고 보면 중용이다. 무관심과 사랑의 중간 쯤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욕망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 번째는 자연적이면서 필요한 것이고, 두 번째는 자연적이긴 하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고, 세 번째는 자연적이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이다.

자연적이면서 필요한 욕망은 먹고, 마시고, 잠자고, 추울 때 몸을 감싸는 것 등 삶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것이다. 당연하거니와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이요, 목이 마를 때 마시는 것이요, 계절에 맞는 옷을 입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나폴리의 기후라면 밍크 옷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자연적이지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이라는 것이다.

자연적이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욕망이란 우리의 감각을 만족시켜 주기는 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은, 필요 이상의 욕망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고급 요리를 먹고 고급 포도주를 마시는 것 따위이다. 고급 파스타에 고급 요리는 즐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특별한 노력을 들이지 않더라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욕망이면 얼마든지 추구해도 좋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냥 없이 사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다. 예술이나 고귀한 감정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영예나 덕이나 그와 비슷한 어떤 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면, 그것을 기리고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쁨을 주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낫다."

 

자연적이지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은 억견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금으로 만든 롤렉스 시계를 생각해 보자. 확언하건대 이것은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갖고 싶어 하는 까닭은 모든 사람이 그것을 값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뿐이다. 시간을 보는 것으로 기쁨을 느끼는 것이 전부라면 솔직히 말해서 가짜 롤렉스 시계를 차도 마찬가지 기쁨을 느껴야 할 것이 아닌가? 오늘 날 인류는 상품의 품질보다는 어떤 상표인가 하는 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자연적이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성 문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욕은 자연적인 욕망임에는 틀림 없다. 그러나 꼭 필요한 욕망일까? 자식을 낳는 데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도 꼭 필요한 욕망이란 말인가? 에피쿠로스는 부정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육체적인 쾌락을 즐길 경우에, 그것이 법에 어긋나지 않고, 좋은 풍습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몸에 해가 되지도 않고, 또 그것 때문에 파멸하지도 않는다면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 그러나 지금 말한 이런 모든 가능성 중에 하나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육체적인 쾌락을 즐기면서 아무 것도 잃는 것이 없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한 마디로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윤리는 매우 기초적인 것이다. 자연적이고 동시에 꼭 필요한 욕망은 언제나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자연적이지도 않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욕망은 절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 그것은 경쟁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자연적이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욕망은 다음 질문을 던진 후에 응해야 한다.

"이 욕망을 따르는 것이 내게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지금까지 말한 것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에피쿠로스의 황금률로 정리된다.

 

－어떤 사람을 부유하게 하려면 더 많은 재물을 주기보다는 그의 욕망을 줄여 주어라.

－우리는 언제나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항상 부족하게 사는 것이 본분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걱정을 덜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과 정치의 사슬로부터 벗어나라.

－황금의 침대에서 불안하게 잠자는 것보다는 허술한 잠자리에서 두려움 없이 자는 것이 낫다.

－어떤 쾌락도 그 자체로 악은 아니다. 그러나 쾌락이 즐거움보다 불편을 초래한다면, 그것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은 악일 수도 있다.

－손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은 욕망을 위해 가지고 있는 선을 놓치지 말라.

 

에피쿠로스는 쾌락에 대해 늘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목표는 쾌락이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방탕하고 향락적인 쾌락은 아니다. 육체의 쾌락은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이요, 영혼의 쾌락은 번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영혼에 번민을 안겨 주는 것이므로 그것은 쾌락이 아니라 노이로제와 같은 것이라고.

진정한 쾌락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이 하는 말을 들으면 된다.

"우리의 몸은 굶주림과 갈증과 추위를 겪고 싶지 않다고 외친다. 그러므로 이런 욕망을 모두 충족시킨 사람은 행복에 관한 한 제우스 신과 다름 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모두 지당한 말씀 뿐이다. 그러나 어려운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토바이를 사 달라고 졸라 대는 아들에게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에피쿠로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 죽음은 존재하지 않고, 죽음이 존재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죽은 뒤에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서 미칠 듯이 괴로워하지 않는가? 에피쿠로스는 이런 일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는 늘 그렇듯이 우리에게 어떤 걱정도 하지 말라고 한다. 현재와 미래의 어떤 걱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하고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을는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런다고 무엇이 바뀌는가? 그것에 대해 생각지도 말고 차라리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지 않은가? 때로는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니 용기를 갖고, 죽음에 대해 생각지 말자. 그리고 모두 함께 노래를 부르자.

 

오 죽음이여, 그대에게 고하노니

나는 그대의 어떤 계략에도 넘어가지 않으리.

마침내 그 날이 오면

나는 삶을 향해,

그리고 삶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침을 뱉으리.

내가 살아 온 날에 대해

찬가를 부르며 떠나리!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에피쿠로스는 네 개의 알약으로 조제한 만병통치약을 제시한다.

 

－신을 두려워하지 말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쾌락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알라.

－오래 가는 고통은 참을 만 하고, 강한 고통은 오래 끌지 않음을 알라.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고통 중에서도 행복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자연학]

 

에피쿠로스의 자연학은 다른 사람의 주장과 혼동되지 않도록 소개할 수 있을 만한 특징이 없다. 우선 자연에 대해서는 원자론자들의 이론을 그대로 되풀이하는데 그가 주장하는 우주는 데모크리토스의 우주관을 그대로 복사한 느낌이 들 정도다. 전제는 이 정도로 하고, 그의 주장 중 대표적인 것을 열거해 보자.

 

－어떤 것도 무에서 태어나지는 않는다. 우주는 무한하며 물체와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체의 존재는 감각에 의해 입증된다.

－허공의 존재는 운동에 의해 입증된다. 허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체는 운동 시 갈 곳이 없을 것이다.

－허공은 존재하지 않는 '비존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존재'이다.

－물체는 복합적인 것과 단순한 것으로 나뉜다. 이 중 단순한 것은 '원자'라고 하며, 말 그대로 나뉘어지지 않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태초에 원자들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빗방울처럼 떨어졌는데 어느 날 두 개의 원자가 서로 부딪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두 원자의 충돌로 말미암아 연쇄적으로 충돌과 결합이 일어났고, 그 결과 이 세계와 복합적인 물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모든 원자들의 궤도가 평행이었는데 어떻게 충돌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하는 비판을 낳는다. "아래가 막혔다고 하면 모르지만…." 이라는 것이 비판하는 쪽 사람들의 반박이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한다.

"원자들이 떨어지는 동안 약간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에 서로 충돌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원자가 방향을 틀었는가?" 라는 질문이 나올 것은 당연한 이치이건만 그는 이 물음에는 답을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클리나멘 이론'*이라고도 불리는 원자들의 방향 전환에 관한 이 주장은 아무도 받아 들이지 않는 허황된 이론이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우주에 관한 그의 유물론적인 설명을 근근이 살려 주는 것이기도 했지만,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운명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가능성, 곧 '자유 의지'라는 개념을 도입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제우스 신이나 데미우르고스나 부동의 원동력 앞에서 굽신거릴 필요도 없고, 이미 짜여진 운명이나 필연도 설 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클리나멘(clinamen)이라는 용어는 잠시 뒤에 이야기하게 될 로마의 시인 루크레티우스가 붙인 이름이다. 이 말은 '경사' 또는 '편차'라는 뜻인데 에피쿠로스는 이를 그리스어로 '파렝클리시스'라고 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눈물겨운 노력을 한 에피쿠로스가 왜 여기에서는 신들의 존재를 다시금 인정했는가 하는 점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는 신이 존재한다고 말했는데, 다만 신들은 신들끼리 따로 살면서 인간을 돌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말만 덧붙였다.

이미 데모크리토스의 이론을 빌려 그럴싸하게 우주를 설명한 마당에 왜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야만 했을까? 상상하건대 이런 사족을 덧붙인 유일한 까닭은 불경죄로 재판에 넘겨지는 일 없이 조용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보게들,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신을 믿는데, 내가 또 무슨 말을 해 주기를 기대하나? 신들은 당연히 존재하겠지,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무지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신을 생각하지 않는 걸세."

 

지금부터는 에피쿠로스가 우주의 생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살펴 보기로 하자. 그에 따르면, 원자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여러 지점에 축적되었는데 이 때 수없이 많은 세계가 만들어진다. 이 세계들은 '인테르문디아'라고 하는, 세계와 세계 사이에 있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다. 여러 지점에 축적된 덩어리 안에서 가장 무거운 원자들은 그 덩어리의 중심에 모여 땅이 되고, 가벼운 원자들은 외부로 밀려나 하늘이 되었다. 무거운 원자들 중 어떤 원자들은 지나친 압력 때문에 물이 되었다. 이런 세계에서는 영혼조차 원자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영혼은 당연히 최상품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합리적인 영혼은 불, 공기, 프네우마로 이루어져 있고, 합리적인 영혼은 최고도의 세밀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솔직히 말해서 마지막 말에 관한 한 에피쿠로스는 적당한 형용사가 없어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밀한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 '최고도의 세밀함'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영혼은 물질이므로 언젠가는 죽게 되고 육체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단테 알레기에리는 이를 근거로 에피쿠로스에게 벌을 내리는데, 그를 지옥에서 이단자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의 무덤이 여기 있으니

영혼이 육체와 더불어 죽는다고 한

에피쿠로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있노라.

 

끝내기 전에 감각에 대해 한 마디만 하겠다. 그에 따르면 물체는 '에이돌라'라고 하는 '상(像)'을 방출하는데, 이것들이 공간을 돌아다니다가 우리의 감각과 생각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마치 텔레비전 전파가 공기를 타고 날아와 탤런트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원의 철학자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그리스 세계와 라틴 세계에 엄청나게 퍼져 나갔고 거의 5세기 동안 사방으로 전파되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정원은 그리스와 소아시아, 이집트 그리고 이탈리아에 두루 생겨났다. 그리스인 제자들로는 스승보다 먼저 세상을 뜬 메트로도로스와 람프사코스의 폴리아이노스가 있고, 스승의 뒤를 이어 정원의 지도자가 된 미틸레네의 헤르마르코스와 레온티온, 그리고 그의 아내 테미스타, 콜로테스, 이도메네우스, 디오니시오스, 프로타르코스, 폴리스트라토스, 바실레이데스, '정원의 군주'라는 별명을 가진 아폴로도로스, 히포클레이데스, 시돈의 제논 등이 있다.

 

에피쿠로스를 가장 열렬하게 따른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온이노안다의 디오게네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서기 2세기 경에 살았던 돈 많은 사람으로, 스승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아주 특별한 수단을 선택했다. 자신이 살던 마을 근처의 언덕을 사 들여 언덕 위의 빈 터에 타원형의 주랑을 건설하게 했는데, 주랑의 전면에 100미터도 더 되는 명문을 새기게 한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요약하는 내용이었다. 몇 권의 책으로 만족하지 않고 거대한 건축물을 세워 그 건축물 전체로 새로운 사상을 선포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곳에 새겨진 명문은 대략 이렇게 시작한다.

 

나 이제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었으나, 세상을 뜨기 전에 훌륭한 가르침으로 내게 기쁨을 준 에피쿠로스 스승께 합당한 찬가를 올리려 하노라. 무엇보다도 나는 후세에 이런 생각을 전하고자 하노라. 땅은 여러 곳으로 나뉘어져 모든 민족에게 각기 다른 조국이 되었다. 그러나 우애를 나눌 줄 아는 모든 사람에게 세상은 단 하나의 공동의 집이니, 이름하여 땅이라 하노라.

 

이 명문은 1884년 두 명의 프랑스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고대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아름다운 국제주의의 메시지이다.

 

기원전 1세기,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자 중에 가다라의 필로데모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야말로 에피쿠로스의 사상과 우리 나폴리의 기질을 맺어 준 연결 고리가 아닌가 싶다. 필로데모스는 나폴리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헤라클레이아에 정원의 분교를 세웠는데 아직까지도 칼푸르니오 피소네 빌라 근처에서는 그가 파피루스에 대해 쓴 단편들이 발견되고 있다. 필로데모스는 그리스어로 가르치고 그리스어로 글을 썼기 때문에 당시의 지식인들만 이해했을 것이다. 여기 그의 글 중 가장 의미 있는 두 구절을 소개해 본다.

"우애의 정신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타격을 받은 이는 누구인가? 바로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들이 첫째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시기와 질투를 보라. 서로 다투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경쟁심과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을 보라. 그리고 전쟁을 생각해 보라. 이런 것들은 정치인 개인 뿐 아니라 온 백성에게까지 화를 미친다."

"우리 학파의 철학자들에게 있어 정의란 선함이요, 아름다움이며, 덕행이다.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우리의 이상은 감정적인 것에 바탕을 두지 않고 명상을 통해 얻어진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로마에 전하고자 한 첫 시도는 기원전 155년에 무참히 실패하고 만다. 알카이오스와 필리스코스라고 하는 정원의 제자 두 사람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건너갔는데, 입도 뻥긋하기 전에 무참히 추방되고 말았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당시의 로마인들이라야 힘 세고 튼튼한 젊은이 같은 사람들이었을 뿐, 그리스 철학의 섬세함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 전통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니까. 기원전 2세기의 로마 시민들에게 존재가 무엇인지 설명한다는 것은 오늘 날 람보에게 선(禪)이 무엇인지 이해시키려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그러나 끈질긴 노력의 결과,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이탈리아에 발을 디디게 된다.

기원전 50년 경, 아마피니우스, 라비리우스, 크라티우스, 사페이우스 등 몇몇 철학자들이 에피쿠로스의 어록을 라틴어로 번역했는데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들의 시 덕분에 루크레티우스, 호라티우스 등의 시인들이 뒤를 잇게 되는데, 호라티우스는  『서간』에서 자신을 "에피쿠로스의 무리 중에 속한 돼지" 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런 노력으로 앞서 말한 혼란을 없애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사람들이 번역한 글들은 지금 남아 있지 않지만 키케로의 말에 따르면 대단한 베스트 셀러였던 것 같다.

"아마피니우스의 책이 나오자 사람들은 큰 인상을 받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지 않았는데, 이것이 이탈리아에 들어온 것으로 보아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키케로의 말에 놀라지 말라. 오늘날에도 키케로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니까.

"누구누구의 책 읽어 보셨습니까?"

"아니요, 그런 책은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요."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골백 번 양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정말로 잘난 사람이어서 할 일이 너무나 많고 그래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고작해야 듬성듬성 건너뛰며 훑어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그런 식으로 책을 읽는 것보다야, 남들에게서 주워 들은 대로 가치 없는 책을 읽는 데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평을 하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때때로 이런 사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영국의 한 비평가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편향된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먼저 비평을 하기 전에는 어떤 책도 읽지 않는다!"

 

다행히 루크레티우스의 걸작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라는 책은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긴 했지만 지금까지 전해진다. 이 책은 황제가 다스리던 로마 제국 시대에 큰 인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나자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새로운 종교의 지도자들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쨌거나 1417년이 되어서야 포조 프라촐리니라는 인본주의자에 의해 스위스의 한 수도원에 묻혀 있던 이 책이 다시 발견되었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의 중요성은 참으로 엄청난데, 그 까닭은 이 책이야말로 에피쿠로스의 자연학 이론을 완전하게 전해 주는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학을 어떻게 시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다. 자연이 제공하는 수많은 현상들을 이용하여 비유를 쓰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루크레티우스는 외형적으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보이는 물체이지만 그 안에 있는 원자는 끊임 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양 떼를 비유로 사용한다. 높은 산 위에서 멀리 있는 양 떼를 바라보면 움직이지 않는 하얀 점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보면 "풀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다가가 평화로이, 이슬 맺힌 풀을 뜯고 배부른 새끼 양은 평온한 장난으로 풀밭을 뛰논다".

라틴계 사람들에게는 그의 스타일이 훨씬 더 잘 통하는 스타일이었다. 어쨌거나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하든 라틴계 사람이라고 하든 이들에게는 시와 철학이 사이 좋은 형제처럼 한 묶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으니 얼마나 보기 좋은 일인가!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읽다 보면 때로는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제2권 시작 부분을 보자.

 

바다 위에서 바람이 부딪히고

광활하고 짙푸른 물결이 출렁이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구절을 보면 누구나 '루크레티우스는 과연 대단한 시인이구나. 얼마나 아름다운 시적 감수성을 지녔는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계속 읽어 내려가 보자.

 

육지에서 바라보는 먼 바다의 난파선,

다른 이의 낭패를 보며 기뻐하는 이 마음이여!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아니, 그렇지 않다. 루크레티우스는 사이스트가 아니다. 남의 잔혹한 꼴을 보며 좋아할 사람이 아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기 위해 언제나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 하는 말일 뿐이니까. 비유가 좀 지나치기는 하지만 당시엔 잔인한 일이 너무나 많았다. 스파르타쿠스가 일으킨 시민 전쟁의 마지막 장면을 상상해 보라.

아피아 가도를 따라 6천 명의 노예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을 장면을 말이다.*

 

*검투사였다가 도망친 스파르타쿠스가 노예들을 이끌고 일으킨 반란(기원전 73~71)을 말한다. 가장 맹위를 떨칠 때는 9만 명 이상의 노예가 이탈리아 남부의 거의 전 지역을 점령할 정도였다. 약 2년간 로마 군단을 농락하던 이들은 8개 군단을 거느린 크라수스에 의해 평정되었는데 최후에 붙잡힌 6천 명의 노예는 로마 제국의 전략 도로였던 아피아 가도를 따라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전시되었다.

 

지혜로 똘똘 뭉친 루크레티우스였지만 그의 최후는 매우 불행했다. 한 사악한 여인이 그에게 사랑의 묘약을 먹였기 때문이다. 질투에 사로잡힌 루크레티우스는 칼날 위에 몸을 던져 마흔 넷의 나이로 세상과 이별한다. 에피쿠로스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짓을 저지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