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7권 챠오 소렐라 -3- 느긋한 문답

느긋한 문답

 

 

1

 

모닝콜이 오기 전에 눈을 떴다. 빗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어두운 건 날씨 탓인지, 아니면 커튼이 쳐져있어선지. 혹은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건가. 일어나서 창문 쪽으로 걸어가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인데 눈꺼풀과 몸이 무거워서 꾸물꾸물 모포를 돌돌 말았다. 코가 차갑다.
"맞아, 요시노양!"
그제서야 겨우 어젯밤 일이 생각나 유미는 단숨에 눈을 떴다. 하지만 옆 침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알맹이가 빠져나간 껍질처럼 사람이 잔 흔적은 유지된 채 모포 동굴이 남아있었다.
"화, 화장실?"
하지만 시트에 온기가 없다. 동굴 안에 손을 집어넣은채 유미는 굳어버렸다. 이 정도라면 침대를 빠져나온지 꽤 시간이 지난 것이다. 적어도 5분 이상은 되어보였다.
"어, 어..."
갑자기 기분이 안좋아져서 토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현재진행형이라면 괜찮다 치더라도 유미가 폭면을 취하고 있는 동안에 일어날 일이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라도 했으면 어쩌지. 허둥지둥 바스룸 앞으로 달려와 문을 열자
[...!]
안에서 문이 잠겨있는 것이 아닌가.
"요시노양!?"
상태가 안좋아서 화장실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문을 잠가서는 안됩니다. 시마즈가에는 그런 룰은 없는 걸까.
"요시노양, 괜찮아!?"
탕탕탕 문을 두들겨도 반응이 없다. 토한 게 기도를 막아서 질식하기라도 했으면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요시노양이 아무리 애원하더라도 역시 어제 밤에 선생님께 맡기는 게 좋았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좋지."
도움을 청하기로 결심하고, 문 앞에서 떨어져 발걸음을 옮길 때, 유미는 뭔가를 눈치 챘다. 커튼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에?)
그런데도 아직도 계속 되고 있는 빗소리. 그건 바스룸 안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요, 요시노양?"
귀를 기울여보니 그 안에는 콧노래같은 소리도 섞여들려온다.
설마.
유미는 문 앞에 멍히 서있었다. 그러자 곧 빗소리가 그치고, 저편에서 문이 열렸다.
"미안, 유미양, 화장실?"
"-"
놀랍게도 안에서 목욕타올을 걸친 요시노양이 머리가 젖어 있는 채 나온 것이다. 입을 뻐끔거리면서 유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럼 미안하지만 머리만 말리고 올게."
이렇게 말하며 문 저편으로 돌아가는 요시노양을 보내며, 유미는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말도 안돼. 몇시간 전에는 그렇게 몸이 안좋아보이더니 지금은 멀쩡히 나아서 샤워까지 한 것이다. 요시노양은.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반. 일단 침대로 돌아갔지만 잡생각이 떠올라서 진정이 되질 않는다.
(걱정해서 손해봤잖아)
친구관계에 득실은 없다고 어젯밤에 설파하던 게 누구더라.
(예정보다 30분이나 일찍 일어났잖아)
요시노양의 몸이 좋아졌으니 됐지 라고 모든 것을 좋은 방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17살이 있다면 그 사람은 후쿠자와 유미가 아니라 성인일 것이다. 리리안여학원에 다니며 예수의 가르침을 배울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아, 개운하다. 오래 기다렸지, 유미양."
기분 좋게 바스룸에서 나온 요시노양에게 유미는 단단히 한마디 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저기"
그러자 안색을 본 요시노양이 먼저 말했다.
"항상 있는 일이야, 이마를 식히고 자면 낫는다고 했잖아?"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보통 걱정한단 말야.
"교복은 샤워하기 전에 바스룸에서 꺼내서 클로젯에 넣어뒀으니까 습기차진 않았을 거야."
그러면서 요시노양은 커튼을 열고 TV를 켰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화면에 비친 캐스터는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뉴스를 전하고 있다. 유미가 아니라 화면을 보면서 요시노양은 말했다.
"걱정 끼쳐버렸네.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동급생 중에선 유미양 뿐이야."
그런 끝내주는 문구를 말해버리면 "뭐, 됐어"라는 기분이 들 수 밖에 없잖아. 뭐, 됐어.
요시노양한테 휘둘리는 레이님의 기분을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유미도 요시노양이 아니라 TV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걱정했단 말야."
TV 뉴스가 7시를 알리고 2분 후에 방 전화가 울렸다.

 

 

2

 

7시 20분에 로비층과 1층 사이에 있는 식당에 도착하자, 이미 일부 클래스메이트들은 자리를 잡고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유미양, 요시노양, 이쪽이야."
식당에 들어서자, 츠타코양과 마미양이 손을 흔들며 불렀다. [마침 두자리가 비어있다]고.
"안녕하세요(ごきげんよう)."
인사를 나누고 요시노양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웨이터같은 남자가 다가와 두사람에게 뭔가를 물었다. 처음의 [봉주르] 밖에 들을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건 인사니까 이쪽도 일단 [봉주르]라고 답했다.
"마실 건 뭘로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어보는 거야."
츠타코양이 가르쳐주었다. 식사는 뷔페스타일이지만 먼저 마실 것만 주문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굉장한 히어링력이다. 빠른 말로 나직히 말하고 있어서 유미는 하나도 못알아 들었는데.
"우리도 몰랐어. 하지만 아까까지 그 자리에 있던 등나무반 학생이 가르쳐준 거야. 뭘로 할래?"
"뭐냐니."
메뉴도 없는데 하고 있으려니 요시노양이 주저없이 주문했다. 
"카페오레 플리즈"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웨이터.
"츠타코양 컵에 들어 있는 건 뭐야?"
유미가 물었다.
"까페라떼."
"그럼 나도. 까페라떼 플리즈."
요시노양도 이어서. 
"미 투."
이번에는 제대로 주문이 통했다. 잘 생각해보니 까페오레는 프랑스의 음료였다. 츠타코양과 마미양은 얼굴을 맞대고 웃었다. 두사람도 역시 먼저 왔던 등나무반 학생들을 흉내내서 까페라떼로 한 거라고. 처음부터 스마트하게 될 리가 없다.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 설탕뿌른 크로와상을 접시에 담아와보니 이미 자리에 까페라떼가 놓여있었다. 야채가 부족하려나 싶었는데 요시노양이 토마토쥬스를 컵에 따라다줬다.
"마실 수 있지?"
어젯밤 일이 있어서 그런지 특히 서비스가 좋다.
"그래, 어제밤엔 어땠어?"
까페라떼를 한잔 더 따르면서 마미양이 화제를 걸고들어왔다. 평소에 지니고 있는 취재용 메모가 없는 걸 보니 이건 그냥 잡담인가보다.
"샤워가 쓰기 힘들더라."
"아, 화장실 물 흘리는 거 어떤 건지 모르겠지 않았어?"
마미양은 용무를 본 후 같은 방 츠타코양을 불러서 상담한 모양이다. 그야 일본에 흔히 있는 레버같은 모양은 보이질 않아, 유미도 처음에는 고민했다. 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사각형 버튼(책상 서랍정도 크기)이 그거란 걸 알았을 때에는 조금 감동했다. 역시 환경이 변하면.
"화장실 변기가 작고 차갑지 않아?"
"응, 앉았을 때 오싹하던걸."
"저기, 그정도로 해두지?"
식사할 때의 그런 화제는 빨리 끝내버리는 게 좋다."
"그러고보니 자명종 가져왔었어?"
유미는 어제 밤 패닉을 일으키며 부탁했던 모닝 콜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자
"TV에 붙어있었지?"
마미양과 츠타코양이 마주보며 말했다.
"정말?"
"예약녹화같은 방식이랄까? 시간이 되면 TV 스위치가 자동으로 들어와서 깨워주는 거야."
"...몰랐어."
아니, TV를 켜봤다면 알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어젠 그럴 정신이 없었으니.
"뭐 어때? 덕분에 귀중한 체험을 했는걸."
먼저 식사를 끝낸 두사람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자리를 뒤로 했다. 나중에 온 사람들이 자리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 괜찮을까?"
같은 소나무반 미치요양과 이츠에양이다. 벚꽃반 학생의 얼굴도 슬쩍슬쩍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으응, 물론."
유미와 요시노양은 씨익 웃으며 두사람을 맞이했다. 웨이터가 새로운 손님께 "봉쥬르"라고 인사해온다.
"마실 건 뭘로 하겠냐는 말이야."
그렇게 가르쳐준 건 말할 것도 없다.

 

 

3

 

8시 반에 1층 현관을 나와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안에서 간단한 기도를 드리고 나서 출석을 불렀다.
오늘은 반마다 한사람의 가이드가 붙어 안내해 줄 것이다. 소나무반 버스에 탄 가이드는 어머니 또래의 일본인 여성으로 이탈리아에 부임한 남편을 따라온지 벌써 7년이나 됐단다.
"지금부터 바티칸시로 향하겠습니다. 우선 미술관, 그 후에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을 견학할 겁니다. 모두 컨디션은 좋은가요?"
"네-에."
곧장 그 누구보다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하는 요시노양. 유치원 아동처럼 손을 힘껏 들고 있다.
"...뭐야, 가이드는 어제 밤이란 말은 안했잖아?"
시선을 느꼈는지 유미는 아직 아무 말도 안했는데도 옆자리에서 몸을 뒤로 제끼고 있는 요시노양이 변명하듯 말했다.
"어쨌든 지금은 절호조란 말이지."
"그런 거야."
작은 피스 사인, 뭐 몸도, 기분도 안좋은 것보다야 좋은 게 낫지. 요시노양 뿐만 아니라.
"잊어버리기 전에 연락사항. 호텔 방의 사용방법에 대해서, 2, 3가지 주의 및 설명이 있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메모를 보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홈룸이다.
"자명종은 TV에 붙어 있습니다. 기계 조작에 자신이 없는 학생은 레셉션 버튼을 누르고 모닝콜을 부탁하도록 하세요."
역시 몰라서 고민한 학생들의 보고가 있었나보다. 누군지 모르지만 유미는 동료를 발견한 듯 기뻤다.
"바스텝 위에 달려있는 끈은 환기구의 스위치가 아닙니다. 그건 긴급호출용 끈이니 막 잡아당기지 말도록."
선생님의 말에 학생의 반 정도가 웃었고, 나머지 반 정도는 조금 파랗게 질렸다. 호텔 종업원이 달려올 정도의 케이스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이게 뭘까]하고 가볍게 꾹꾹 당겨본 학생이 반 정도 가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는 유미도 그런 케이스다. 꽤 힘을 주고 잡아당겨봤지만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길래 포기했다. 포기하길 잘했지 하고 이제 와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정말 긴급 상황일 때 그렇게 엄청난 힘이 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화장실은 벽에 달려있는 커다란 버튼으로 내리는 겁니다... 이건 이미 다들 해결했겠죠?"
이 말에는 전원 다 웃었다. 내리지 못하고 나온 사람은 없나보다. 선생님의 주의사항이 끝나자마자, 버스가 정차하더니 승강용 문이 열렸다. 10분 정도 탄 거 같은데 생각보다 훨씬 빠른 도착이다.
"정말 도착한 거야?"
창 밖을 보니 그럴법한 건물이 없다. 분위기로는 어딘가 역앞 큰길같은 느낌의 장소다.
"자, 여러분. 짐을 들고 내리세요. 이 버스는 호텔로 돌아가 벚꽃 반이 탈 거니까요. 내리시면 제 앞에 2열로 서 주세요."
가이드는 척척 지시를 내렸다. 얘길 들어보니 미술관 입구는 꽤 멀었지만 줄이 늘어서 있어서 행렬 맨 뒤에 버스를 세웠단다. 한번 입구까지 갔다가 열 맨뒤까지 돌아와서 줄을 서는 건 시간과 체력의 낭비니까.
어디까지 줄이 섰는지 파악하는 것도 역시 현지에 살고 있는 가이드만의 특기라 할 것이다. 소나무반의 깃발을 들고 있는 가이드가 선두, 후미에는 선생님. 두 사람의 어른 사이에 꼬불꼬불한 줄이 생겨났다. 앞 뒤를 두리번두리번거려보니 다양한 타입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역시 보든 길은 이어져있다는 로마.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것이다. 한걸음 먼저 호텔을 출발한 등나무반의 집단이 앞쪽에 보인다. 교복 탓에 전체적으로 어둡고 어떤 의미로는 눈에 띈다. 교외에서 교복 집단은 눈에 띄는 법. 그러니 학교측은 수행여행에서까지 교복을 착용시키는 거겠지. 학생들이 사고나 트러블에 휘말리는 경우, 눈에 띄는 게 선생님들도 빨리 대응할 수 있을테니까.
"버스에 타고 있는 시간이 훨씬 짧았네."
요시노양이 중얼거렸다.
행렬은 느리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대로에서 조금 좁은 길로 들어서자 화려한 펄이나 아파트가 나타나, 그걸 보면서 나아가는 게 유미는 결코 싫지 않았다.
"이 나라 너무 느슨해."
그 목소리는 바로 뒤에 줄을 서고 있던 마미의 것이었다.
"느슨해?"
유미는 뒤돌아보았다.
"규칙이나 도덕, 환경문제 그런 점에서 말야."
메모를 하면서 마미가 말했다.
"우선 길이 더러워."
분명히 담배꽁초나 종이조각, 비닐 등이 당연한 듯 떨어져 있다. 도쿄도 길은 그렇게 깨끗한 건 아니지만 조금은 쓰레기가 적은 기분이 든다.
"게다가 흡연자의 천국같은 장소네, 이 나라는."
마미 옆의 츠타코양이 덧붙였다. 지금 세계의 대부분 나라에서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흡연자. 호텔 로비에서도 까페의 테이블에서도 글바닥에서도 모두들 당당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리고 교통규범도."
신호가 없는 장소에서도 보행자는 횡단한다. 차의 흐름이 끊어졌을 때만이 아니라 평범하게 차가 달리는 사이에도 휙휙 건너가는 것이다. 운전자도 익숙한 것인지 급 브레이크를 밟거나 하지 않고 보행자를 피해간다.
"하지만 전부 부정하고 있는 건 아냐."
그점은 착각하지 말아줘, 라고 마미양이 말했다. 츠타코양도 끄덕인다.
"느긋하다는 건 너그럽다 할 수 있는 거고, 관용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거니까. 저기 봐."
턱으로 휙하고 가리킨 방향을 보니 길끝에 할아버지가 앉아계셨고, 할아버지 앞에 높인 깡통에 통행인이 막 돈을 넣는 참이었다.
"저건...?"
"자신의 부를 타인에게 나눠주는 행위. 일본에서는 좀처럼 거리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잖아."
여긴 크리스트교의 나라니까 라고 츠타코양이 중얼거렸다.
자비심이 만들어낸 문화. 공공 룰이 느슨한 것도 역시 문화. 어느쪽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게 바로 국민성이라는 것. 단지 다른 문화에 놀라기만 하는 것은 실례란다. 분명히 그렇다.  어떻게 말을 하든 우린 여행자. 이 나라에 잠시나마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인 것이다.
"여러가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여행에서, 유미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고, 일단 받아들여본다. 그건 어려운 일이지만 무척이나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여러가지?"
요시노양이 되묻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거냐고.
"그야, 여러가지니까 여러가지가 있지."
그래 예를 들면-
유미가 그렇게 말할 때 , 요란한 클랙션 소리가 울렸다. 무의식중에 그쪽을 주목한 학생들은 [아!]하는 탄성을 높였다.
"결혼식이다."
잔뜩 장식된 오픈카에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하얀 턱시도의 신랑이 타고 있었다.
"아아, 그렇지. 오늘은 토요일이지."
친구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탄 차가 앞뒤에 바싹 붙어서, 축하한다기보다 놀리는 것처럼 분위기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좋겠다."
여고생들은 녹아버린 듯한 눈으로 한참 소란스러운 차를 바라보았다. 그 바로 뒤에 주인의 끈에 질질 끌려가는 달마시안이 x을 흘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역시 느슨해."
마미양이 질려버린 듯 투덜거렸다. 뱃 속의 상태가 안좋았는지 개가 떨어뜨른 물건도 꽤나 무른 편이었다.

 

 

4

 

50분 정도 줄을 선 후 겨우 미술관 입구에 도착했다.
미술관이라는 건 거기 있는 전부를 똑같이 흡수하려 해선 안된다-고 유미는 입관하자마자 10분만에 깨달았다. 처음에는 정신을 집중하고 보고 있었지만 계속 나타나는 전시품은 너마누 장대해서 한 인간의 뇌 용량으로는 수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전에 기억한 그림이 머리에서 튀어나오지 않게 하려고 하면 다음 그림이 들어가질 않는다. 그러다가 금방 전환작업이 이루어지질 않게 된다. 전부 훌륭한 종교화건만, 마리아님께 면목이 없을 지경이다.
"그러면 되는 거야."
카토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은 알아볼테고. 한 미술관에서 한 점이나 두 점, 좋아하는 그림을 발견한다면 "성공"이라고 봐도 돼. 안 그러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걸."
"요소요소에서 해설은 하겠지만 제 말은 BGM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흥미 있는 그림일 때에만 귀를 기울이세요."
가이드도 그렇게 말해주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도 그림 때문에 배가 꽉 찰 것만 같은 장소였다.
유미가 바티칸 미술관에서 "성공"이라고 생각한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었다. 예배당의 커다란 벽면 중앙상부에 심판자인 크리스트, 곁에 성모 마리아가 있고, 주위에는 심판을 받는 많은 사람들이 배치되어있는, 너무나도 유명한 벽화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천국과 지옥. 유명한 그림이라 끌린 면도 있긴 하지만 반대로 사람의 마음에 뭔가를 호소하는 듯한 그림이었기에, 이만큼 유명해진 건지도 모른다. 크기도 그렇고 엄청난 박력이다.
망연히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 틈에 시마코양이 옆에 서 있었다. 아니 등나무반이 먼저 출발했을 터이니 어느 샌가 유미가 시마코양 옆까지 걸어와 명화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만난 것도 멋진 우연. 유미는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지만 친구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에!?"
시마코양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 시마코양?"
"어째설까, 눈물이 멈추질 않아."
커다란 눈물이 뚝뚝 흐르면서 볼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심판받는 인간을 불쌍히 여겨 흐른 눈물일까. 아니면 심판할 수 밖에 없는 크리스트의 절망과 눈길을 돌린 성모의 슬픔에 빠진 눈물일까. 시마코양 자신도 어째서 흘리는 눈물인지 알 수가 없단다. 하지만 단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곳에 신앙이 있었다는 것이다. 벽화를 바라보는 시마코양은 마리아님처럼 아름다웠다.
등나무반의 집합시간이 되어 시마코양이 예배당을 나서자, 요시노양이 유미에게 다가와 슬며시 말했다.
"어머, 살이 많이 붙으신 예수님이네."
찰나의 순간에 양극단이라 할만한 반응을 접하고 말았다.
하지만.
양쪽 모두 유미의 소중한 친구인 것이다.

 

 

5

 

미술관내에는 가끔 상점이 생긴다. 대부분 테이블 위에 상품을 진열해두는 정도의 간단한 가게로 바티칸 미술관에 관련된 물건을 팔고 있다. 다양한 나라의 말로 번역되어 있는 가이드북이나, 눈부신 세공품이나, 전시품의 복제나 미니츄어 등 가게에 따라 물건은 다양하다.
"요시노양, 뭐하고 있어?"
넓은 복도에 생겨난 가게 앞에서 유시노양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거라도 발견했나 하고 돌아보니 거기에는.
"로자리오..."
진지한 눈빛으로 테이블에 진열되어 있는 로자리오를 바라보는 요시노양, 로자리오 옆에 놓은 마리아 초상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정말 단단히 결심했구나."
아마도 미래의 동생 용으로 삼을 생각일까. 가까운 시일 내에 동생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형태로 보이려는 듯 하다.
"새걸 살거야?"
"응, 시마코양은 노리코짱한테 세이님께 받은 걸 준 모양이지만."
세이님도 언니한테 받은 물건이었다니까 백장미 가계 몇대를 걸친 로자리오인 셈이다.
"내 건, 날 위해서 레이짱이 사준 거거든."
레이님은 에리코님께 받은 로자리오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쇠르의 의식으로 수수(授受)한 로자리오는 대대로 이어지는 물건이든, 새로 구입한 물건이든 상관 없나보다. [대대]로 한정지으면 여러가지 불편이 생길테니.
"유미양의 로자리오는? 사치코님이 요코님께 받은 물건이야?"
"모르겠어."
그러고보니 물어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날 위해서 준비해주신 물건이 아니란 건 확실하지만."
사치코님은 처음으로 말을 나눠본 그날 돌발적으로 자매선언을 했다. 결국 그 때 유미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현재 유미의 목에 걸려있는 건 처음 수수할 뻔 했던 때의 로자리오였다.
"그래, 사치코님은 유미양 전에 시마코양에게도 신청하셨었지."
그다지 상기해주지 않아도 될 일을 요시노양이 중얼거렸다. 미래의 동생을 위해 산 물건이라면 막연히 시마코양을 떠올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조금 복잡.
"저기, 유미양도 사지 않을래?"
"아, 공범을 끌어들일 생각이구나?"
"그보다 괜찮은 생각이 났거든, 로자리오 점."
"그게 뭔데?"
"여기 있는 로자리오 중에 연(인스피레이션)이 느껴지는 걸 사는 거야. 그리고 귀국 하고나서 학교 안에서 제일 그 로자리오가 잘 어울리는 1학년을 동생으로 삼는 거지. 어때?"
"어떠냐니."
신발 사이즈로 왕비가 된 신데렐라도 아니고. 게다가 점이라 그래놓고 전혀 점이 아니잖아.
"관둘래."
유미는 그렇게 말하고 테이블에서 떨어졌다. 로자리오점은 제껴두고라도 거기 나열되어 있는 로자리오 중에서 고를 맘은 들지 않았다.
색깔 있는 돌이 박힌 화려한 물건보다 훨씬 심플한 게 좋아. 일단 그런 걸로 해두기로 했다.

 

 

6

 

미술관 다음은 상 피에트로 대성당으로.
이곳은 카톨릭의 총본산. 로마교황이 계시는 곳. 순교자 성 피에트로의 묘 위에 세워진 성당이라고 한다. 광장으로 지나가는 입구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린다.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굉장한 수의 관광객이다.
2학년 소나무반 일동 10명 정도 앞의 서양인인 듯한 중년 아저씨와 직전의 동양계 커플이 입장 거부를 당했다. 아저씨는 반바지에 샌들을 신었기 때문이고, 커플은 여성 쪽이 피부 노출이 심한 슬립드레스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가이드께서 설명해줬다. 신성한 장소기 때문에 그에 어울리는 복장을 하지않으면 발도 디딜 수 없다고 한다. 커플 쪽은 여성이 남성의 셔츠를 걸쳐 피부를 감췄기 때문에 입장이 허가됐지만 반바지의 경우에는 즉석에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아저씨는 어깨가 축 쳐져선 돌아갔다.
"저 사람은 기독교 교도가 아닌 걸까?"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미양이 말했다.
"자기가 어떤 종교를 믿건 신성한 장소를 찾아간다는 의식이 있다면 나름대로의 복장을 해야할 거 아냐."
요시노양이 쐐기를 박았다. 정론이긴 하지만 꽤나 엄격한 의견이다.
"그럼 일본인은 위험하지 않아? 평소부터 신앙심을 품고 사는 사람이 적다던데."
유미가 생각한 대로를 말하자, 츠타코양이 말했다.
"일본인은 그럭저럭 괜찮을걸."
"어째서?"
가이드 북을 사서 예습을 하고 오잖아? 복장에 신경쓰라고 적혀 있거든."
마미양도 요시노양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세명 다 가이드북을 구석구석까지 읽으면서 예습을 하고 온 타입인가보다.
"그러고보니 들어갈 때 여권이 필요하려나?"
문득 생각난 듯한 마미양의 말이었다.
"여권?"
"바티칸 시는 말 그대로 하나의 나라니까."
맞아맞아, 세계 최소의 독립국이었지.
"그럼 이 안은 이탈리아가 아닌 거야."
"그렇게 되는 거지."
"하지만 그렇다면 미술관에 들어갈 때에는? 여권은 보여주지 않았잖아? 하지만 거기도 바티칸 시의 일부지?"
바티칸 미술관이라는 명칭이니까 아마도 그렇겠지.
"이탈리아가 아닌데 로마교황이 통치하는 건 왜지?"
"바티칸 시인데도 스위스 병사들이 지키는 거나 마찬가지지, 자 가자."
체크에 걸린 아저씨와 커플 다음에는 한동안 복장에서 걸리는 사람이 없었던 탓인지 입장은 멈추는 일 없이 이어져, 눈 깜짝할 사이에 유미들의 순서가 되었다. 과연 교복의 경우에는 앞사람 한사람만 보면 나머지는 일일이 조사할 필요가 없으니까 스무드하게 이어진 거구나.
여권을 제시하지 않아도 상 피에트로 광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구에 서있는 관리 앞을 지나갈 때 비행기에 타기 전, 짐검사를 할 때처럼 두근두근거렸다. 물론 리리안 여학원의 교복이 [어울리지 않다]는 지적을 받을 리는 없겠지만.
광장의 첫인상은 [야외 스테이지]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시설 안의 콘서트장 객석]이라고나 할까. 사원 쪽을 바라보는 형태로 장대한 수의 의자가 세워져 있었다.
"내일의 준비를 하고 있는 거에요."
가이드가 가르쳐줬다.
일요일 미사에는 세계 각지에서 신자들이 모여든단다. 카톨릭의 총본산에서 이루어지는 미사에 참가하는 건 신자에게 있어서는 평생의 꿈일지도 모른다. 대성당은 외견도 빠지지 않지만 내부도 정신을 쏙 빼놓을 듯 했다. 우선 천정이 엄청나게 높다. 그리고 호화찬란, 미려, 위엄, 장엄, 화사. 그냥 [굉장하다]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 듯 했다. 미술관에서 고져스한 것들을 엄청나게 보고 온 후였는데도, 일개 일본의 여고생들은 입을 멍히 벌린 채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세계는 넓다. 이런 건물은 본 적이 없어. 머리 속이 멍해진 채, 가이드에게 이끌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나 [성 피에트로상]을 보았다. 그 유명한 상이 여기 있었구나 하는 감상 밖에 없었던 유미는 역시 엄청난 컬쳐쇼크를 받는 것이었다.

 

 

7

 

반쯤 방심상태로 상 피에트로 대성당에서 나온 2학년 소나무반 일동이었지만 약간의 시간동안 걸으며 평상심을 되찾음에 따라, 어떤 감정이 끓어올랐다.
"배고파."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2시가 다 되어간다. 미술관과 사원을 돌아봤으니. 그정도 시간이 되었어도 이상할 게 없다. 이것도 급하게 돌아본 거니까. 천천히 견학하려면 하루종일 걸려도 부족하다는데.
"조금만 더 기다려요."
어미새에게 먹이를 조르는 새끼처럼, 행렬의 여기저기서 [배고파]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했던 학생들까지도 자신의 공복을 알아채게 되니 귀찮은 일이다. 예약해둔 오픈 까페(같은 곳)에 도착하자 숙녀들은 탐욕스럽게 파니니를 먹었다. 잔뜩 걸었더니 맛있다.
이탈리아의 미네랄워터에는 탄산이 들어 있다. 그래서 평범한 물을 마시고 싶을 때에는 [개스가 없는 것]을 주문해야만 한다. 유미 일행은 같은 테이블의 친구들과 의논해서 반씩 부탁해서 비교해보았다. 처음에는 모두 참신함에 [탄산함유]를 시켰지만 식사가 끝났을 때에는 모두 [개스가 없는 것]에 손이 갔다. 역시 사람은 익숙한 걸 찾는 법인가 보다. 그 중에는 [탄산함유]가 마음에 들었는지 일본에 사가자고 제안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탈리아 선물로 물이라. 무거워서 귀찮을텐데.
자, 챌린저 유미는 이 가게에서 화장실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청소중인 아주머니가 있을 때를 생각해서, 동전을 가지고 가게 뒤편으로! 가이드북에 의하면 이탈리아 어로 화장실은 빠뇨. 여성용은 돈나. 밖에서 열쇠로 잠겨있는 화장실의 경우, 카운터에서 빌리는 열쇠는 키아붸. 까먹지 않게 중얼거리면서 객석 사이를 빠져나가자, 눈 앞에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앞의 벽에 붙어 있는 종이에는 아래로 향한 화살표와 toilette라는 문자가 씌여져 있다. 아무래도 이 가게의 화장실은 지하에 있는 모양이다. 유미는 어두컴컴한 지하를 향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갔다, 라니 왜 그렇게 질질 끄는 거야. 보고는 신속, 간략하게 해줘."
화장실을 다녀온 유미가 테이블로 돌아와 빠뇨 첫체험 리포트 & 감상을 세세히 전하고 있자 요시노양이 짜증난다는 듯 끼어들었다.
"즉, 화장실은 지하에 있었다는 거지? 그래, 돈은 냈어? 안내고 끝났어?"
"...안냈습니다."
"휴지의 유무는?"
"유."
"좋아 그것만 들으면 충분해. 보고하느라 수고했어."
"아, 요시노양."
부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빠뇨 첫체험 제 2부대는 종종걸음으로 가게 안으로 사라져갔다. 꽤나 급한 상태였나보다.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좌변기가 아니란 말은 왜 안했어."
돌아오자마자 불평이라니. 그러자 유미는.
"다리 근육을 단련하는 데에는 최고의 화장실이라고 생각하지 그래?"
나사 풀린 대답을 해줬다.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근육 이전에 평형감각 아냐?"
아무래도 요시노양은 허리를 들지 않고 양식변기 위에 올라가서 용뮤를 본 것 같다. 그게 훨씬 힘들 것 같은데.

뒤늦은 점심을 먹은 후에는 상탄젤로 성 견학후, 버스로 일단 호텔로 돌아간 뒤, 반 단위 자유행동에 들어갔다. 사전에 HR시간에 의논한 결과, 유미들은 오늘 저녁 선보로 스페인광장과 트레비샘에 가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역시 자유행동인 내일은 코로세움과 진실의 입이 예정에 잡혀 있었다. 즉 소나무반의 테마는 [로마의 휴일]인 것이다.
"사람들이 굉장히 몰려있는 것 같아."
유명한 스페인 계단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앉아있을 뿐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에는 앤 여왕을 흉내내어 제리트를 먹고 있는 사람도 있다.
"계단에 앉아 있을 뿐인데 무슨 재미가 있을까."
투덜거리면서도 앉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인 법. 세속적이라고 웃을테면 웃어라.(이거 맞나..; 모르겠네요;) 여기까지 왔는데 앉아봤다고 벌을 받지야 않겠지. -이리하여 흉내뿐이라도 계단에 앉아보는 소나무반의 얼굴들. 그틈을 놓치지 않고 츠타코양이 사진을 찍었다. "옆에 있는 아저씨가 방해돼"라고 투덜대며.
"유미양,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에?"
"가끔 멍해져 있잖아. 오늘... 그래, 낮부터."
카메라의 렌즈 너머로 츠타코양이 말했다. 과연 사진부의 에이스. 사람의 얼굴을 정확히 보고 있다.
"벌써 향수병이야? 아니면 언니를 보고 싶어졌어?"
"에이, 아냐."
고개와 손을 저으며 유미는 부정했다. 일본을 떠난지 아직 하루 반 밖에 안지났다. 항상 주말이면 언니와 그정도는 못만나는 게 보통이고, 쇠르가 된 후로 장기 연휴도 몇번이나 경험하고 있다.
"그럼 왜 그래?"
츠타코양이 웃으며 카메라를 내리곤 유미 옆에 앉았다. 요시노양과 마미양은 한번 계단에 앉아보곤 만족한 듯 분수를 보러갔다. 팔을 걷고 팔에 물을 게우며 소란을 피우는 중이다. 즐거운가 보다.
"아까 상탄젤로 성에 갔었잖아."
유미는 츠타코양에게 고백했다.
"아아, [토스카]의 무대가 되었다는 그 성."
가극 [토스카]는 연인을 구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지만 아무런 보답도 받지 못하고 연인을 총살로 잃게된 여성이 테라스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다는 비극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가극이라는 말을 듣고 문득 카니나 시즈카님이 떠올랐어."
"로사 카니나."
이전 시마코양과 로사 기간티아의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가희. 3학년으로 진학하기 전에 음악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사람이다.
"잘 지내실까 하고."
지금, 이탈리아 땅에 와 보니 당연한 거지만 넓은데다가 사람도 많다. 이 넓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 시즈카님이 계실지 모르지만 번지는 커녕 살고 있는 도시 이름도 모르는 수학여행자는 만나고 싶어도 찾아낼 수가 없겠지 하고 생각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잘 지내지 않겠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잖아."
츠타코양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등 뒤에서 마미양이 [소식이라]하면서 나타났다.
"깜짝 놀랐네. 언제 돌아왔어."
"방금 츠타코양과 유미양이 무드 좋게 밀담을 나누는 것 같아서 귀를 기울였지."
"별로 밀담은 아닌데, 그래, 뭔가 [소식]이 있었던 거야?"
"아 맞다. 그거 알아? 바티칸 미술관 안에 우체국이 있는데 거기에서 일본으로 보내는 엽서를 썼대, 벚꽃반 학생들."
"가족한테?"
"아니, 언니나 동생한테."
언니라는 말을 듣자 유미는 갑자기 부러워졌다. 향수병은 아니지만 언니를 만나고 싶어서 참을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해외에서 언니에게 엽서를 보낼 찬스, 다음에는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지금이라도 보낼까 했지만 지금은 토요일 저녁. 이 나라의 우체국 영업시간도 모르고, 우표를 사지 않고는 우편함을 발견해도 보낼 수가 없다.
"자, 트레비 샘에 가자, 소나무반 집합."
선생님의 호령에 일어나서 스커트를 털었다. 여행자는 머리회전도 안되고 자유도 없는 법이다.

 

 

9

 

트레비 샘은 밤이 운치가 있어 좋다고 카토리 선생님은 말했다. 그 한마디에 소나무반은 토요일 저녁 스케줄로 트레비 샘을 정한 것이다. 명작 [로마의 휴일]은 50년이 지나도 여자아이들에게는 인기 있는 영화로 소나무반 뿐만 아니라 등나무반도 벚꽃반도 그 무대를 찾을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밤에 조명을 받은 트레비 샘을 볼 수 있는 것은 소나무반 뿐이다. 다른 두 반은 내일 낮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야기에 나오는 앤 여왕이 낮에 샘을 찾았기 때문인 것 같다. 선생님의 추천대로 밤의 트레비샘은 아름다웠다. 어둠 속에서 라이트 빛에 떠오르는 아름다운 하얀 조각상들. 그 발및에 샘 솟는 분수. 실은 이건 폴리 궁전의 벽화라지만 건물 벽으로 치기에는 너무나 예술적이다. 뒤 돌아서 샘에 동전을 던진다. 그러면 언젠가 다시 이 장소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유미도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에잇]하고 던졌다. 뒤돌아보고 있었기에 자기가 던진 동전이 어느 샘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게 아쉽다.
"타케시마양(츠타코)도 찍기만 하면 섭섭할테니 후쿠자와양(유미)들과 함께 거기 서보지? 셔터를 눌러줄게."
카토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츠타코양은 "신경쓰시지 않으셔도 되요."라고 사양했다. 찍히는 것보다 찍는 게 훨씬 좋은 것이다.
"선생님은 던지지 않으세요?"
"그렇네. 하지만 던지지 않아도 여긴 자주 오니까. 돈 아깝잖아?"
자주 오니까 [밤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낮의 트레비 샘도, 밤의 트레비 샘도 알고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
"선생님 시절에도 이탈리아?"
"아니,ㅡ 큐슈였어."
카토리 선생님은 리리안 여학원의 OG(old girl)이다. 십몇년 전에는 아직 해외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방안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것 같다.
"작년에도 올해도 2학년 담임이었으니까, 2년 연속으로 이탈리아에 오고 있는 거야."
작년 일은 잘 모르지만 리리안 여학원의 교사인 한, 또 몇번인가는 이탈리아 여행을 할 듯 하다고 카토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선생님, 리리안 교사인 거 좋으신가요?"
"응, 그래 좋지."
"그럼 역시 동전을 던지는 게 좋겠어요, 또 올 수 있게 해달라고. 수학여행의 동반자로 이탈리아에 오는 동안은 리리안의 선생님으로 있을 수 있잖아요."
"아니, 그럴 거면 개인여행으로 올 수 있기를 기원하고 싶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선생님은 동전을 던졌다. 동전은 커다란 호를 그리고, 라이트에 반짝반짝 빛나면서 샘 속에 빠져들어갔다.

 

 

10

 

"미확인정보이긴 한데."
저녁식사 자리에서 마미양이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호텔 옆 레스토랑에서의 일이다. 폴티니 버섯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흰살 생선과 함께 그릇에 옮겨져왔을 때.
"아까 벚꽃반 학생한테서 정보 제공이 있었어. 아, 이 얘기은 비공식이야. 뒤를 캐내면 리리안 신보에 실을 거니까."
하지만 벚꽃반 학생들한테 알려진 시점으로 그 소재는 특종이 아닌 게 아닐까. 게다가 발표 전에 스스로 소문을 흘리다니 어쩌려고. 하지만 마미양은 상관없이 계속했다. 이탈리아 체재중이라 기자의 혼도 흔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녁의 반별 행동에서 벚꽃반 사람들이 어디 갔는지 알아?"
"보르게제공원 산책이잖아?"
잠시의 틈도 두지않고 요시노양이 대답했다. 꾸물대지 말고 어서 말해! 라는 식이었다.
"그래, 거기서 사건이 있었대."
"한 명이 길을 잃었다지. 그 얘기라면 다들 알고 있어, 안됐지만 특종은 못되겠네."
츠타코양의 지적에 유미도 "그래그래"하고 수긍했다.
결국 그 학생이 울면서 헤메고 있으려니, 친절한 현지 노부부가 말을 걸어줘서 클래스메이트들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줬다. 마미양이 일보를 들은 것도 아마 그 때였을 것이다.
"나 단단히 마음을 먹고 그 사람 방을 찾아가서 인터뷰를 하고 왔거든.;
"...용케 대답해줬네."
"가명을 쓰겠다고 약속했거든 그러니까...A씨라는 식으로."
포르게제공원에 도착한 벚꽃반은 여러가지 조건을 단 채 몇명 단위 그룹행동을 허가받았단다. A양도 처음에는 물론 7명의 친한 그룹으로 지도를 가지고 공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훌륭한 조삭상 옆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여러명이 탈 수 있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현지 젊은이들에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꽤 재미있었나 보다.
"그런데 어째서 A양은 길을 잃은 거야?"
"그 점이야."
마미양이 목소리를 죽였다.
"그녀는 무언가에 신경이 쓰여서 그룹에서 벗어나 그쪽으로 걸어가버린 거야. 집합시간도 가까워졌는데, 슬슬 돌아갈까 했을 때까지 그룹 사람들도 한명이 없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데. 주변도 슬슬 어두워졌을 때였고, 계속 같이 행동하고 있었으니까, 그룹 안에서 한명씩 점호를 부르진 않잖아."
"그러니까 그 무언가가 뭔데, 정말 마미양은 말하기 아까운가봐. 좋은 성격이셔."
밉살스러운 말을 꺼냈지만 실은 요시노양은 그 다음 이야기를 알고 싶어 짜증이 난 거다. 그걸 알고 있는 마미양은 아마 리리안 신보에 실을 기사도 이런 패턴으로 쓰는 게 틀림 없겠지. 한낮의 바티칸이나 저녁의 트레비 샘 같은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학생들 중에 이 테이블만이 마치 밀담이라도 나누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작게 속삭이고 있다. 클래스메이트들은 신경 쓰이지도 않는 걸까 하고 유미가 되려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야기에 열중해서 전혀 이쪽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도 마미양은 목소리 톤을 더욱 낮추고 말했다.
"그 애 사토 세이님을 봤대."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