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학과 대원군

안종학은 한양의 유명한 기생집을 돌아다니며 대원군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당대의 문사이기도 한 그들은 돈을 펑펑 쓰고 다니며 자신들을 대접하는 안종학을 졸부 쯤으로 여기고 그리 거리를 두지 않았다.

하루는 흥선 대원군이 직접 시회(詩會)를 연다고 하여 많은 문사들이 초대를 받았는데 평소 그들과 친분을 나누고 있던 안종학도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안종학은 초대 받은 문사들이 시를 다 지을 동안 조용히 앉아 그 모습을 지켜 보고만 있었다. 안종학은 아버지 안 학자 밑에서 글 공부를 하여 시문에 조예가 깊었지만 섣불리 나서지 않고 문외한인 듯 잠자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을 무지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도 좋을 듯하여, 문사들이 보이는 정자에 '무량수각(无量壽閣)'이라고 써 있는 현판을 일부러 '원량수각(元量壽閣)'으로 읽기도 했다. 그러자 문사들은 그를 놀리며 '원량'이라고 불렀다. 그 자리에 있던 대원군도 안종학을 보고 비웃듯 쓴 웃음을 지었다.

그 뒤로도 안종학은 매 번 시회에 참석하였지만 문사들이 글을 지으면 옆에서 감탄하는 척만 할 뿐이었다. 어쩌다 자신에게 시를 지으라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하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회는 대원군이 띄우는 운자로 시를 짓지 못하면 다시는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조건이 뭍어 있어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다. 대원군이 제일 먼저 지목한 사람은 다름 아닌 안종학이었다.

"오늘은 마침 천렵(川獵)"도 하고 했으니 운자를 고기 어(魚) 자로 하지. 어디 안공 먼저 지어 보게."

안종학은 기다렸다는 듯이 글을 써서 대원군에게 바쳤다.

 

새는 붉은 산에 들어간 후에야 봉황이 되었고 [鳥入丹山 然後鳳]

용은 푸른 바다를 날기 전에는 한낱 물고기였을 뿐이다 [龍飛碧海 以前魚]

 

대원군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는 분명 대원군 자신을 빗대어 지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대원군이라는 지위와 권력을 얻었기에 영웅이 된 것이지, 그것이 아니면 당신도 우리와 별다를 것이 무엇이냐' 하는 뜻이 담겨 있는 글이었다. 대원군은 안종학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지금까지 느껴지지 못했던 무언가가 느껴졌다.

'허허, 그랬었군. 일부러 자신을 숨기고 있었군.'

그 뒤 안종학은 대원군의 신임을 얻어 차후 장단부사(長端府使)라는 벼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