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1권 파라솔을 쓰고서 -3- 밀크티와 우롱차

밀크 티, 우롱차(ミルクティ-、ウ-ロンティ-)

 

 

1

 

"어서오렴."
백발의, 귀품이 있어보이는 노부인이, 나무문을 열고는 유미를 맞이했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손님이 보이는 예감이 들었거든. 때문에 차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후후후. 예상이 적중했네. 와주어서 기뻐."
"하아?"
당황하는 유미의 손을 잡은 뒤, "들어와, 들어와"라며 정원으로 끌고 갔다.
물론, 이 나무문의 앞에 서있던 때부터, 안으로 들어갈 것을 결심하고 있긴 했지만. 손잡이에 손을 댄 순간. 건너편측에서 문을 활짝 열어, 이쪽이 방문의 이유를 말할 틈도 없이, 안쪽으로 끌려 들어왔기에, 가볍게 패닉상태에 빠진 상태였다. 마치 동화에서의 '마법사 할머니'에게 붙잡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저기요..."
아마, "손님"이라고 하셨었지. 사람을 잘못보신건 아닐까...라고 유미가 불안해 하고 있자, 노부인은
"알고있어. 케이양의 친구의 친구지?"
집게 손가락을 세워서, 코잔등을 어루만졌다.
"케이양의 친구의 친구..."
그렇다면 잘못 본건 아냐. 유미는, 저번 비오는 날에 신세를 졌던 카토씨를 방문하기 위해, 이곳에 온거니깐...

오늘은 토요일.. 오랜만에 구름 사이로 해가 나와 있었다.
리리안 여대에 다니고 있는 카토 케이씨를 만나기 위해, 어째서 일부러 집까지 찾아오게 되었냐 하면, 대학 내에서 학생을 찾는 것은 꽤나 어렵다는 걸, 유미는 경험상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심코 전화번호를 적을 기회를 놓쳐버리는 기본적인 실수를 해버렸기 때문에, 특정한 곳에서 만나자는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케이양은 지금 없단다. 그러니까 안채에서 나의 이야기 상대를 해주지 않으련?"
노부인은, 정원에 마주한, 대형 창문을 열고는 손짓으로 불렀다.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 유미가 망설이던 도중, "큰일났네. 물을 올려 놓았었는데!" 라며 노부인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에, 일단 뒤를 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다니, 어렸을때로 돌아간 것처럼 그리운 느낌이 든다.
"...실례하겠습니다."
그 방은 다다미를 닮은 리빙룸이었다.
회반죽의 벽에 검은색 기둥. 수수한 일본식 방에, 서양풍의 테이블 셋트가 놓여져 있고, 나무 창틀로 되어있는 창문에는 레이스가 달린 커튼이 달려있었다. 창 근처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흔들의자가 놓어져 있어, 위에 얹혀진 꽃무늬 쿠션이 흔들리고 있었다.
"주전자의 물이 흘러넘쳐서, 하마터면 가스 사고가 날 뻔 했네."
웃을 일이 아니였지만, 즐거운 듯이 미소를 지으며 리빙 룸에 들어오는 노부인. 매듭진 백발에, 황색 꽃무늬 에이프런 드레스가 정말 잘 어울려서, 연상의 사람에게는 실례긴 하지만 매우 귀여워 보였다.
"맘에 드는 의자에 앉으렴."
"예."
해서... 제일 가까이 있는 의자에 유미는 앉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윗자리라던지, 아랫자리라던지가 있었을테지만, 방이 서양식을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가 어딘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밀크티... 괜찮을까?"
"저... 괜찮습니다."
이분이 집주인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최초 이곳을 방문했던 그때 느꼈던 인상과는 어딘가 틀렸다.
"전에는 미안했어. 비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아서..."
"에.. 예.. 아.. 아뇨.."
또다시 타인에게 생각하고 있는 바를 읽혀버렸다. 유미가 허둥대고 있자니, 노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티 컵을 눈 앞에 내려두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이란 말을 하며 컵을 집으려 했을때, 유미는 퍼득 정신이 차려졌다, 이런... 일단 컵을 잡으려 내밀었던 손을 다시 공손히 모았다.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어.
"어제는, 갑자기 폐를 끼쳐서 죄송했었습니다..."
공손한 얼굴로, 재봉상자 사이즈의, 예쁜 종이로 포장된 상자를 꺼내 내밀었다.
"아... 뭐 이런..."
"어머님도 안부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친절하게도... 하지만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걸. 이런건, 케이양에게 인사할 때 가져가도록 해."
"아뇨. 카토씨에게 드릴 것도 따로 있어요."
받아주세요... 라고 억지로 밀어넣자, 노부인은 "그렇다면..."라며 순순히 받아주고는, 즉석에서 상자를 열었다.
"고마워. 메이플 상점의 두툼하게 구워진 쿠키... 이거 밀크티와 어울리겠네. 기다리게 했지?.. 같이 들자."
하나하나 비닐에 포장되어있는 쿠키가 두 봉지, 유미의 쟁반에 놓여있었다. 쵸코와 프렌, 모두 정말 좋아하는 거다.
"이름.. 물어봐도 될까?"
"아.. 유미예요. 후쿠자와 유미라고 합니다."
"아아. 우연이네."
노부인은 눈동자를 빛내며 손뼉을 쳤다.
"나도 유미라고 한단다. 뒤에 '코'가 붇지만말야."
집주인은 이케가미 유미코(池上 弓子)라는 이름으로, 리리안 출신이라고 했다. 그걸로 단번에 친근감이 생겨서, 서로 '유미양', '유미코씨'라고 부르게 되었다. 전통에 따라 '유미코님'이라고 부르려 하자, 본인이 '유미코씨'로 좋다고 했다.

"유미양은, 좋은 집안의 영애인가 보네."
쿠키가 들어있는 작은 봉지를 뜯으며, 유미코씨가 중얼거린다.
"에.. 설마 그럴리가요. 저희 집은 대대로 평범한 서민층이에요."
유미는 허둥대며 고개를 저었다. 그다지 겸손같은게 아닌, 후쿠자와가는 정말로 극히 평범한 가정이었다.
"부자이던가, 가문이던가를 말하는게 아니야. 교양이 있는 양친에게 길러져, 예의범절을 갖춘 아가씨라는 의미야."
"아... 그런건가요."
그런 식으로 칭찬받은 적은 그다지 없었기에,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의미로 리리안 여학원은, 천성이 예의바른 영애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유미의 클래스의 학생에겐 흔한 일이어서, 이 정도 만큼의 특별한 평가를 받은 적은 없었다. 양친이 교양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쪽이 아닌, 좀 더 평범한 부모이기에.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과소평가할때가 있어."
"하아..."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라는 건 뭐지? 그런 의문을 가지기 이전에, 스스로의 모국어 이해력에 의문을 가지게 되는 유미였다. "눈앞에 계신 노부인이 하고 계신 말의 진의를, 일백자 이내로 설명하시오."라고 하는 문제가 나오더라도, 정답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 일을 생각하고 있자나, 유미코씨가 '호호홋'라며 웃는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유미양을 말해줄까?"
"에?"
"굉장히 착실한 아이. 분명히, 그 학생수첩에는 담임 선생님에게 가는 곳에 대해 허락를 받고 있다거나..."
"..."
정답. 하지만, 착실하다기보다는 소심할 뿐이야.
전날, 이곳에 왔을때는, 예정 외여서, 비에 젖었다고 하는 어쩔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에 허락을 받지 못했지만, 처음부터 신세를 질 예정이었다면, 허락을 받지 않고는 정말 불안했을꺼야. 혼나면 어쩌지...라며 움찔움찔해버렸을텐데...
역 빌딩에 있는 서점에 가는 것과는 틀린거니깐, 과자상자를 든 채,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는 거니까.
"상급생한테 인기 있지?"
"글쎄요."
"그럼, 하급생에게?"
"아뇨, 그쪽은 그다지..."
하급생이라는 말을 듣자, 토우코짱의 얼굴이 떠올라버렸다.
"그래?"
유미코씨는, 홍차를 마시며, 눈을 가늘게 떳다.
"언니는 있니?"
"언니..."
"이런. 물어보면 안되는 거였을까..."
머뭇거리는 유미를 보며, 유미코씨는 잘못한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건 아니에요. 사소한 싸움이라고 할까... 지금, 조금 불편한 관계라서..."
붕괴 직전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말해도 별수없는 일인데다가, 말해버리면 눈물까지 덤으로 나올 것 같았기 때문에...
혼자서 안고 있는 걱정은 누군가에게 말해 훌훌 터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말하면 더욱 더 괴로운 경우도 있다.
사치코님의 동생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지도 몰라요...라고 말해버린다면, 그 날이 더욱 빨리 오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니... 좋아하니?"
유미코씨는, 갑자기 물어왔다.
"예."
상당히 갑작스러웠기에, 생각할 시간도 없이 유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치코님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라는 거나, 토우코짱에 대한 것...을 떠나서, 단지 순수하게 사치코님이 좋았다.
"그럼 괜찮아."
"예?"
"유미양이 그 언니를 좋아한다면, 둘 사이는 원래대로 돌아갈꺼야. 그도 그런게 그 사람은, 유미양이 선택한 사람이잖아?"
"제가, 선택했다구요?"
선택 받은 것이 아니라, 선택했다? 
"그래. 유미양이 선택한 사람이니까. 유미양을 내버려둘 정도로 바보짓은 하지 않을꺼야."
"너무 과대평가 하시는 것 같아요."
유미는 어깨를 움추리며 웃었다. 하지만 예언자 같이, 유미코씨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좀 더 자신을 가지렴. 유미양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꺼야."
"그렇지 않아요."
토오코짱은 "최저야", "잘못봤어요"...라고 까지 말했는걸요. 연기도 무엇도 아니었다구요. 그것은 진심이었어요.
"날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더라도, 심한 말을 듣게되면, 역시 조금 쇼크에요."
유미가 무심코 푸념을 늘어놓자, 유미코양이 말했다.
"그 아이는, 부러워 하고 있을지도 몰라."
"부러워한다고요?"
굉장한 positive thinking. 토우코짱의 캐릭터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인간관계는 어울리고, 그렇지 않고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끼리는 서로 멀어지는 거야. 자연스럽게..."
"그런걸까요."
"신경쓰이는 존재기 때문에, 심한 말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어. 맞아... 그 진위를 밝히는 것이 어려운 것이지..."
중얼거리며 유미코씨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비디오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컵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잡은 모양 그대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유...유미코씨?"
불안해하며 말을 걸자, 그녀는 최면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아.. 미안... 나 지금 굉장히 예전 생각이 났거든."
"깜짝 놀랐어요."
유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쯤, 심장쇼크라던지, 뇌출혈 같은 것을 의심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미코씨는 고령이니까.
"유미양과 같은 제복을 입고 있을 때의 생각... 정말로 우리들은 먼 곳까지 와버렸네."
우리들...
유미코님은 자신과 또 다른 누군가의 일을 말하고 있는 거겠지.
"...만나고 싶어."
창 밖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꿈꾸는 것처럼 나직히 중얼거렸다.

 

 

　　　　2

 

"이상한 일이네. 유미코씨가 타인을 리빙룸에 데려 온 채로, 주무시다니..."
귀가한 카토양이,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며, 나직히 중얼거렸다.
이상하다는 것은 유미코씨가 손님을 초대한 것에 대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 앞에서 앉은 채 주무시는 것에 대한 것일까. 유미는 판단이 서질 않았지만,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기에, 단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유미코씨가 눈을 뜨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무척 유미양을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네. 조금 샘나는데? 인간불신 같은 면이 있으신 분인데 말야."
"인간불신? 유미코씨가요?"
가토씨의 말에 유미는 무심코 웃어버렸다. 그야, 처음 만났던 날은 창문의 커튼을 치고 나오지 않으셨지만, 그것은 비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으셨을때의 이야기... 하지만 카토씨는 진심인듯 싶었다.
"좀 까다로우신 분이야. 사실은..."
"카토씨에게도요?"
"난 예외. 유미코씨의 맘에 들었던 것이, 시가보다 싸게 집을 빌릴 수 있었던 이유니까."
흔들의자에서 주무시고 계신 유미코씨에게, 카토씨는 어디에선가 무릎방석을 가져와 덮어드렸다. 
유미코씨는 "우-응"이라시며 조금 몸을 움직이긴 했지만, 금방 다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장소를 옮기자...라고 카토씨가 말했기 때문에, 별채로 따라갔다.
"이곳에 방을 얻으려면, 꽤나 엄한 면접을 봐야 되거든."
방에 들어가서 가토씨는 냉장고로부터 우롱차를 꺼내 유미에게 내밀었다.
"유미코씨의?"
"...와 친척"
"친척?"
유미코씨 댁에서 밀크티를 마셨었지만, "잘 마시겠습니다."라며 캔의 따개를 열었다. 푹푹 찌는 시기였기에, 어쩔수 없이 목에 갈증을 느낀 터라, 우롱차는 상당히 맛있었다.
"자제분이 오시질 않기에, 먼데 살고 계시는 친척들이, 노인네께서 혼자 사시는 걸 걱정하셔서, 하숙하는 사람을 두는 것이거든. 그러니깐, 집세 때문에 방을 빌려주는게 아냐. 세를 들어왔다기 보다는, 말상대겸, 시중겸, 연락책인거지."
그것이 가토씨인 것 같다.
"때문에, 시가지에서 1킬로 정도의 거리에다가 bath toilet이 붙어있는데도 파격적으로 가격이 싸."
정말로 가격이 싸기 때문에, 인기가 있긴 하지만, 면접과 꽤나 엄한 조건을 클리어하지 않으면 입주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유미쨩. 리리안 여대에 올꺼라면, 내 다음으로 추천해줄까?"
"엣?"
"농담이야. 유미짱, 가족과의 사이도 좋은 것 같으니깐, 가출할 일도 없을테고 말야."
가토씨는 웃었다. 농담도 하는구나...라고, 당연한 것에 감탄했다.
"헌데... 오늘은 무슨 일이야?"
"아."
유미는 그제서야 정신차리며, 유미코씨에게 드렸던 것과 똑같은 쿠키 상자를 내밀었다.
"이야~ 이런걸 받으려고 집으로 부른건 아닌데 말야. 하지만... 굉장히 고마워~"
제복을 말려주었던 물질적인 면도 물론이었지만, 차갑게 식었던 마음에 여유를 불러들일만한 시간을 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것과... 이거..."
과자와 함께, 어머니께서 사가지고 오신, 비닐에 싸여있는 물건을 꺼냈다. 백엔 샵의 탱크탑과 쇼츠였다. 완전히 똑같은 물건은 아니었지만, 백엔이라고 하는 점이 중요했다.
"다음에 이곳에서 신세를 지실 친구분의 몫이에요."
"의리있네~"
쓴 웃음을 지으며, 카토씨는 "그럼, 사양않고..."라며 받아들고는, 속옷을 옷장 서랍에 집어넣고, 과자는 창가쪽에 있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액자가 있었다.
전에 이곳에 왔을 때에는 눈치채지 못했었다. 장식되어 있는 스냅 사진은, 햇볕에 바래서인지 꽤나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젊은 부부와 4살정도의 아이랄까. 배경으로 유원지 풍경이 찍혀 있는, 행복한 분위기의 사진이다.
유미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카토씨가 말했다.
"불단 대신이야."
"불단..."
"부모님과 나야. 세명중 두명은 아직 살아있긴 하지만 말야. 같이 찍힌 사진쪽이 덜 쓸쓸해보이잖아? 때문에 가족사진을 세워둔거야. 어머니도, 셋이 같이 찍혀있는 쪽을 좋아하실거라고 생각하거든."
"어머님께서..."
우왓... 이를 어째... 유미는 순간, 패닉상태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자신과 그다지 나이차가 나지 않는데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이 있다니, 지금껏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혹시나 자신의 어머니가 내일 당장 돌아가신다라고 생각하는 것 뿐만으로, 암흑 속으로 떨어져버리는 것 같은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아니, 내 감정은 일단 덮어두고라도... 좀전부터 "어머니께서 사가지고 오신..."이라던지, "어머니도 안부전해달라고 하셨어요."라던지 등, 아무 생각없이 어머니와 관계되는 말을 해버린 것이 신경쓰였다. 듣고있던 카토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 미안. 심란하게 만든 것 같네."
심란한 것과는 정반대로, 카토씨는 밝은 모습으로 말한다. 
"15년도 더 지난 이야기니깐 신경쓰지 않아도 돼."
"15년..."
그렇다는건, 이 사진을 찍을 사이도 없이, 카토씨는 한쪽 부모를 잃었다는 것이 된다.
"그럼, 카토씨가 하숙을 해버리면, 아버님은 적막하지 않으실까요?"
별 생각없이 해버린 한마디였지만, 그 한마디가 문제가 됐다.
"그게 말야. 새어머니가 생겼거든. 최근에."
"에?"
그렇다는건, 카토씨의 아버님은 재혼 하셨다는 것이 되겠지.
어떻게 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인데 집안 사정을 캐묻는 결과가 나와버리다니...,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점점 일은 커져갔다.
"저..."
축하드려요...라고 말해야 하나? 하지만, 뭔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딸의 입장에서 보면, 반드시 기뻐할 일인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유미에게,
"나.. 1년 늦었어."
"엣?"
예상했던 방향과는 조금 틀린 곳에서, 펀치가 날아온다.
"늦었다..."
말하자면, 현역으로 대학에 들어온 세이님과는 같은 1학년생이라고 하더라도, 나이는 틀리다는 의미다.
"재수한건 아니고, 작년 리리안에 입학해서 두번째의 1학년 생활이랄까. 작년 여름에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의식불명의 중태셨거든. 우리 집은 아버지와 나밖에 없잖아? 아무래도 공부같은게 손에 잡히지 않기에, 휴학했었어. 고비는 넘겼었어도, 아버지가 걷을 수 있을 때까지, 꽤나 시간도걸렸기에 말야. 지금도 약간의 마비가 남아있어서, 아직 재활훈련을 하고 계셔."
"..."
이젠, 적당히 받아칠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점점점점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이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지게 되는걸까...
"하지만 나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냐. 쓰러지신 것을 계기로, 아버지와 10년동안 애인관계로 있던 사람을 알게 되어서, 퇴원과 동시에 호적에 올리게 되었어. 물론, 처음에는 그 사람의 존재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말야. 아버지에게는 과분할 정도였어. 양어머니가 아버지의 간병을 해주고 계셔서, 복학할 수 있었거든. ...이상한 해후지? 일년 늦었기에, 마침 이곳이 빈방으로 나와서, 방을 얻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한문시간에 배운 '새옹지마'가, 교과서에서 뛰쳐나와 머리 속을 이리저리 맴돌았다.
인생이란건,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니까, 비관적일 필요는 없어. 좋은 일도 마찬가지... 계속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해서, 마음이 들떠있어도 안된다.
카토씨는,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걸까. 유미를 격려해주려는 속셈일까?
"들어주길 바랬던거야. 분명히."
단지, 누군가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랬던 거다. 그래, 카토씨는 말했다. 아버지의 병세에 대한 것이라던지, 양어머니에 대한 것이라던지, 그 당시에는 왠지 입 밖으로 내질 않았었다... 라고...
이런 와중에 있자니, 생각만 앞서서, 상황을 냉정하게 설명하는 것이 할 수 없게된다.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는 것들만 너무 많은 나머지, 아무 것도 말하고 싶지 않게 되고, 아무 것도 듣고싶지 않아지는 거겠지. 하지만, 어떤 날에 돌연 훗~하고 힘이 빠지며, 타인에게 자신의 일을 말하고 싶어지게 된다. 카토씨의 경우엔, 우연히 그 상대가 유미였다는 이야기다.
"비를 맞았던 유미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 있어선 그 날 비가 내려서 다행이었어."
"세이님과 알게 되어서... 인가요?"
"세이님? 아아.. 사토양의 이야긴가."
카토씨는 웃으면서 머리를 쓸어올렸다.
"재미있어. 리리안의 전통. 가끔 그녀를 로사 기... 뭐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고 말야."
"로사 기간티아."
"맞아. 로사 기간티아! 뭐야 그거? 평생 그렇게 불리는 거야?"
"지금은, 대물림해서, 제 친구가 로사 기간티아에요."
"유미짱은?"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 일단은..."
"일단은 말이지?"
카토씨도, 사치코님과 토우코짱이 검은색 자동차를 타고 가는 광경을 목격했을거다. 유미가 "언니"라고 외치는 것도 들렸을지도 몰라. 때문에 어쨋든, 어떤 경위로 물에 빠진 생쥐 한마리가 되어버렸었는지, 짐작하고 계시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고백을 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에게까지 그것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그,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관계가 기분 좋았기에, 유미도 침묵했다. 침묵한 채, 두사람은 우롱차를 마셨다.

그때.

"이상한 분위기잖아? 두명!"
정적의 가운데, 흙발로 밀고 들어오는 것 같은 침입자 한명.        
"아... 이상해?"
카토씨와 유미는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상해, 이상하다구. 카토양. 내 귀여운 인형을 빼앗아 가지 말아달라구."
흙발로...라는 것은 단지 비유였을 뿐, 세이님은 제대로 샌들을 벗은 채 안에 들어와 있었다.
"유미짱은 사토양의 인형이야?"
"그래. 이런 식으로 껴안으면, 푹신푹신. 덤으로 따뜻하기까지 하고 말야. 기분 좋아서, 금방 잠이 올 것 같단 말야."
세이님은 유미의 뒤쪽에 앉아, 머리부터 먹는 것처럼 껴안았다.
"웅. 오래간만이야. 유미짱, 차차리, 내 펫이 될래?"
두 팔 근처를 공략하며, 잠에서 덜 깬 것 같은 말을 한다.
"싫어요."
세이님에게 보살핌 받으면, 분명 안도감이 들어서 그야말로 자도 좋을 만큼 안심이 되긴 하지만, 야나. 가끔은 응석을 부리며 달려드는 강아지가 되는 것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면 스스로가 생각하거나, 고민하거나, 선택하거나, 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괴로워서 스스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필요해지는 사람이 세이님인거다. 비유하자면, 트럼프 게임의 죠커. 지구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야."
세이님은 유미를 놔주며, 웃으면서 말했다.
"유미짱을 상대한다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깐 말야."
정의의 사도도, 체력승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