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1권 파라솔을 쓰고서 -1- 차색 우산의 그녀

    마리아님이 보고계셔(マリア樣が見てる).

    파라솔을 쓰고서(パラソルをさして)

저자: 콘노 오유키, (그림) 히비키 레이네

 

 

이럴 리가 없었다.
로자리오를 받았던 날,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는 쇠르라고 스스로도 생각하긴 했었다.
언젠가는 싫증나고 기가 막혀서, 동생으로서 버림받을 날이 있을지도 몰라...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언니가 아무 말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려 멀리 가버리는 것 같은 건...
"폐를 끼치게 되는군요."라며, 자신이 간단하게 누군가에게 건네어 질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젠 됐어... 라며 도망친 것은, 분명. 뒤쫓아 와주시길 바랬던 기분의 왜곡된 표현.
무엇을 놓아두어도, 가장 중요하다고, 겉으로 표현해주시길 바랬다
이렇게 될 바에야, 스스로 입을 열어 말했다면 좋았을 것을...
언니를 좋아해요. 항상, 언제나. 같이 있고 싶어요... 라고.
하지만... 이젠 목소리가 닿질 않아.
젖은 몸으로 식은 마음을 안고, 버려진 작은 고양이처럼 비를 맞으며 울 수밖에 없었다.

 

 

 

   차색 우산의 그녀(茶色い雨傘の彼女)

 

       
1

 

비 때문에 뿌옇게 된 차도를, 라이트를 빛내며 자동차가 미끄러지듯이 달려나간다. 
아직 네시 전인데도, 주변은 어두워져, 물이 막을 이룬 것처럼 펼쳐진 아스팔트에, 외등과 신호등 불빛과 자동차의 라이트가 비쳐서, 마치 도심의 야경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눈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눈물이 반짝반짝 빛나서, 한층 더 환상적인 광채가 만들어진다.
...이 무슨 비아냥일까.
이대로, 계속 비속에서 있으면, 사라져버릴 수 있을까.
절망적인 생각도 함께, 사라져버릴 수 있을까.

요 반년간, 유미는 언니만을 바라보았다. 눈동자는 언니를 뒤쫓았고, 귀는 언니의 목소리를 찾았으며, 입술은 언니에게 말을 거는 것만으로 기쁨에 떨었다. 고쳐진 세일러의 타이마저, 언니의 손끝을 바라고 있었다.
오가사와라 사치코님은 유미의 생활을 변하게 했다. 꽃, 보석, 스웨터의 레이스, 향수 등에 비할 수 없을만큼 반짝이는 보물. 이런 두근거림을 전해주는 사람은 없어. 분명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꺼야. 때문에, 그런 멋진 언니에게 버려진 난, 더 이상 아무런 가치도 없을지도 몰라.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하는 그런 현실적인 이미지가 아닌, 유미는 단지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치코님이 더 이상 필요없다고 하신다면, 이 몸을 사치코님의 앞에 나타나지 않게 하고 싶어. 버림받았어도 언니를 그리워하는 이 기분이 남게된다면, 이 마음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어.
내리는 비는 몸을 차갑게 식혔다. 유미는 양 어깨를 감싸쥐고는 웅크려앉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차도는 별들의 깜빡거림과 닮아있었다. 진짜 하늘은 두꺼운 구름에 가려져,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유미짱"
등 뒤에서 나타난 우산이 빗방울을 가려주었다. 유미를 현실에 되돌려 놓은 것은, 세이님의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새삼스럽게 우산을 씌워주어도 무의미할 정도로 젖어있었지만, 남성용의 커다란 우산의 안에 들어와서 세이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조금이나마 지쳐있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자신에게 신경써주는 사람이 이곳에 한명 있다... 라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면, 이 사람의 상냥함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된다... 라고..
"내 친구가 이 근처에 하숙하고 있거든. 잠깐 같이 오라고 하길래 말야..."
세이님이 고개를 문쪽으로 돌리자, 커다란 다색(갈색)의 우산을 쓴 사복의 여성이 인사를 하려는 의도였는 듯, 조그만 우산이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하지만"
"이대로는 유미짱, 감기들어. 게다가, 그 모습으로 버스를 두번이나 갈아타야 할텐데, 모습도 그리 좋지 않을테고..."
유미는 그 말을 듣고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다시 훑어보았다. 마치, 물을 양동이채 맞은 것 같은 모습이다.
두번째로, 묶여진 머리의 끝부분에서는, 똬리를 튼 뱀의 주둥이처럼 방울방울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세번째로는, 축 늘어진 양말은 진흙범벅이 되어 달마시안의 얼룩처럼 되어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분명히, 이목을 끄는 모습을 하고 있음에 틀림 없었다.
"..."
"저 녀석이 나에게 그러지 않겠냐고 말한거니깐, 그다지 부담갖지 않아도 돼."
부담갖지 않아도 돼....라고 제삼자가 그랬더라도, 도대체 유미는 갈색의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과는 전혀 아는 사이가 아니였으니까...
"신경 써주신 것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에 대해선..."
그냥 놔두세요... 라고 말할 생각으로 등을 돌렸다. 진흙이 붙어있어 질퍽질퍽 거리는 다다미 우산의 손잡이를 잡고서 보란듯 우산을 폈다. 그러자 세이님은 측은한 시선으로 유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 싫다면, 내가 유미짱의 집까지 바려다줄께."
"엣!?"
힘이 너무 들어갔기에 관절이 역으로 꺾어져버린 우산을 서둘러 접으며, 유미는 뒤돌아보았다.
"당연하잖아.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되니깐 말야. 집에 가서도 사정 설명을 해야 할 터이고..."
"..."
우산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어머니께선 상당히 놀라시겠지... 아무 것도아니에요... 라고 말하는 정도로 납득해버릴만큼 유미의 가정은 방임주의적이지 않은데다가, 조만간, 정황이란건 금새 밝혀질 테니깐....
그렇게 되는 것은 곤란하다구. 이번 일 같은 건 가족들에게는 알릴 수 없어.
사치코님이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도 싫었고,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말한다는 것도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비참한 것으로 말하자면...몇번을 시도해도 안되는 엉망으로 되어버린 우산을 접고 있느라 악전고투하고 있는 모습도, 꽤나 비참하긴 했다...

"사토양, 이야기 했어?"
갈색 우산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긴 long length의, 어깨까지 오는 스트레이트 헤어... 흑녹의 안경 안의 길게 올라간 눈끝과, 엷은 입술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깐... 유미양... 이었지? 사양할 필요 없어. 혼자사는 좁은 하숙집이긴 하지만..."
"저..."
자세히 보긴 했지만, 역시 안면이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세이님을 "사토양"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다른 고등학교 출신일 가능성이 컸다.
"버스 두정거장분 정도는 걸어도 괜찮겠어?"
"아... 예..."
"그럼, 갈까?"
"엣!?"
하지만 갈색 우산을 쓴 그녀는, 빠르게 차도의 사이의 도보를 걸어가버렸다. 유미는 버스 두 정거장 분정도는 걸울 수 있다.. 라는 의미로 "예"라고 답한 것 뿐이었는데, 그것이 저쪽에게는 실례를 범한다는 것(하숙집으로 따라오겠다는 것)에 대한 승낙이라고 해석된 것이리라...
"자... 가자."
세이님은 유미의 우산의 손잡이를 뺏어들어, 환상적인 솜씨로 순식간에 접은 뒤 다시 내밀었다.
"자... 이후는 자리를 옮겨서 계속하자구. 이곳에서 구경거리가 되고 싶진 않잖아?"
그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문뜩 정신이 차려진다. 교문과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학생들 중, 이쪽을 의아해하며 쳐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확실히, 교문에서 나오자 마자 접해있는 차도 근처에서 우산도 쓰지않은 채 흠뻑 젖은 학생을 보고, '무슨 일이 있는 건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그것이 로사 키넨시스 앙 부통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더욱 더 주목받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있잖아. 유미짱."
"...예."
이 상황에서는, 일단 이 장소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명할거야. 유미는 붉은 우산을 쓰고, 세이님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버림받았다 하더라도, 모두의 눈에는 아직 유미는 오가사와라 사치코님의 동생이었다. 최후의 마지막까지 언니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평소에는 버스를 타고 갔었던 길을, 비에 젖어 무거워진 제복과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우산에는 여전히 흙인지 모래인지, 질퍽한 흙탕물이 붙어있는 채였지만, 지금에 있어선 분명, 내리고 있는 비의 피신처는 되었다. 게다가 우산을 쓴 채 걷고 있었으므로, 적어도 우산 겉쪽만은 빗물에 씻겨 내려 가겠지.
차도보다 한턱 높은 좁은 보도를 일렬로 걷고 있다. 비는 좀전에 비해 약해지긴 했지만, 우산을 접을 정도는 되지 않았다. 담담히, 장기전을 각오하고 내리는 것 같은 날씨다. 눈 앞에는, 세이님의 검은 우산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름도 모르는 친절한 여대생의 갈색 우산이 있다.
세이님의 모습에 간혹 모습을 비치는 그 우산은 가진 주인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조금 표고버섯을 연상시킨다. 그렇게 다시보면, 세이님의 검은 우산은, 형상이 어쨋튼 목이버섯 같이 보인다. 물을 뱉어내는 목이버섯... 그 모양이다.
(어라...?)
무심코 쓴 웃음을 지었던 유미는, 자신이 웃을 정도의 여유가 있었던 것을 느끼고서는 조금 놀랐다.
인간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수백배의 넉살좋은 신경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정말로 벼랑에 다다르게 되었다면, 분명 다른 사람 우산의 일 따위는 신경쓸리가 없을텐데 말야.
사치코님의 일로 크게 정신혼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유미의 몸은, 단지 다리를 교차해 앞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는 따분했던 것이다. 결국,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뇌는 맘대로 사고를 시작한다. 외부로부터의 접속을 요청하고, 시각과 청각도 가동되고 있다.
몸은 건강했다.
상처받은 것은 마음뿐... 이 육체에 직접적인 데미지는 없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것은 무엇일까...
뇌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부분일까?
유미는 가방을 가지고 있는 손을 조금 들어올리며, 손등을 가슴 근처에 얹어보았다. 그곳에서는 심장이 있다.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쨌튼 심장 근처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자봐.)
결국 이런 식으로 사고를 하고 있다. 역시나 머리 속은 따분해하고 있는 거야.
(응)
표고버섯의 우산을 응시하며, 문득, 유미는 생각했다.
전에 보았을 때, 세이님이 있었던 무리에 이런 색의 우산이 있었던가... 하고.
핑크빛 꽃무늬, 감색 체크무늬, 황색 줄무늬였던가, 물방울 무늬였던가, 그런 우산은 기억났지만, 갈색은 기억에 없었다. 무릇, 여성용 우산 중에 하나만 남성용이 섞여있었기에, 세이님의 우산이 눈에 들어온 터였다. 그 갈색 우산은, 가까이에서 보니, 세이님의 우산과 견줄만한 커다란, 신사용 우산이었다.
"세이님."
유미는 표고버섯 우산을 향해 말을 걸었다.
"응~"
"저 분... 세이님의 친구분은 어떻게 되시나요?"
"에?"
"그러니깐... 성함말이에요."
세이님의 앞에 걸어가고 있는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그러면서 세이님에게는 들리도록 목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세이님은 유미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 구조상, 귀는 전방에서 오는 정보들을 많이 catch하도록 되어 있다.
결국.
"아? 미안. 잘 안들리니깐 나중에 말해줄래?"
이런 세이님의 shut mouth로, 그 친절한 여대생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 유미는 이름도 모르는 채, 그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버스 두 정거장 분보다 조금 가까운 지점에서, 커브를 틀었다. 차도에서 주택지로 들어와, 그곳부터는 버스 한 정거장분 정도 되는 거리에, 그녀의 하숙집은 위치하고 있었다.

"자.. 들어와." 
갈색의 우산을 작게 오므린채, 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눈으로 쫓으면서, 유미는 눈을 깜빡거렸다.그 외관은 어떻게 봐도 한 세대가 사는 단독이었다. 그것도, 꽤나 멋진 느낌. 그도 그런게, 정문이울타리로 오인될만큼 커다란 여닫이문으로 되어있었였으며, 문 가운데 있는 문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흐음..."
세이님도 조금 예상밖이라는 느낌.
얼핏 보기에도 오래 되어 보이는 여닫이문을 올려다보며 작은 탄성을 냈다.
"이곳이... 그..."
하숙집... 이라고 불렸기에, 유미는 멋대로 좁은 아파트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단독주택에 전세를얻어 하숙하는 것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면, 홀딱 젖은 여고생을 맘대로 데리고 오는 것은, 집주인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세이님... 저..."
비스듬히 앞쪽에 있는 팔꿈치에 유미가 무심코 손을 가져다 대자, 세이님은...
"실례하겠습니~다."
갈색 우산의 뒤를 이어,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앗. 잠시만요."
망설일 여유 같은 건 없어. 유미는 허둥대며 뒤를 따랐다.
처음 따라 오기 시작했을때, 이미 돌아갈 수 있을리 없었다. 리리안 학원의 근처긴 하지만, 버스를 도중에 내려 본 경우는 거의 없었던 유미에게 있어 이곳은 미지의 대지였다. 이런 곳에서,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하물며 날씨가 좋은 한낮이었더라도 불안했을 터였다.

부지 내에 한걸음 들어오니, 그곳에는 돌으로 깔려진 길이 이어져 있었다.
"어렵게 대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 방은 따로 떨어져 있으니깐. 자... 저곳"
갈색 우산의 주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니, 길 끝에 정말로 조그마한 건물이 있었다. 그 옆에는 오래된 방 안채가 덩하니 놓여있었다.
"잠깐 기다려. 일단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올테니까..."
그녀는 눈앞에 있는 안채의 현관이 아닌, 깔려진 돌을 즈려 밟으며 정원 쪽으로 돌아갔다. 한장의유리창의 나무창틀을 살짝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서부터 누군가가 창물을 열었다. 생각했던 것이상으로 정원이 넓었기에, 유미의 위치에서는 그 '집주인'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위기로부터 어쨋튼 어느 정도 나이를 잡수신 여성분일꺼야... 라고 생각되었다.
"OK. 자 들어와."
돌아와서,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 어쨌든 허락을 받은 모양이다.
"남자는 출입금지라서말야. 여자는 괜찮지만... 집주인에게 사전에 허락을 맡는다는 것이 약속이라."
"꽤나 엄하네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학교의 근처이기 때문에, 완전 여관이 되어버리니깐..."
"아아... 과연..."

돌길을 걸어갔다.
정원은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높지 않은 산 들판 근처에 있는 손이 가지 않은 풍경 같았다. 돌다다미의 옆에는 간신히 지면이 보일 정도였지만, 한걸음 발을 내딛으면 잔디를 심어놓은 것인지, 잡초인지는 잘 모를 풀이 지표를 덮고있었고, 고목에는 넝쿨이 이리저리 얽힌채 자라고 있는 상태였다.
안채의, 좀 전 집주인이 있었다고 생각되는 창의 앞을 가로질러 갈 때, 유미는 얇은 커튼을 살짝 열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의 여성과 눈이 맞았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엉겁결에 자세를 고치며 예의를 갖추자, 그분은 당황하신듯 커튼을 닫아버렸다.
"뭐? 뭐야?"
몇발자국 앞서 걷던 세이님이 되돌아와 물었다.
"아뇨... 지금 사람이..."
"사람? 집주인?"
그렇다면, 인사정도는 드려야겠지?...라고 하시는 세이님. 이제와서 창쪽으로 시선을 돌려봤자 늦었다구요. 커튼은 이미 닫혀버린데다가, 그 커튼도 얇기 때문에, 뒤에 숨어있는지 정도는 보기만해도 알 수 있다구요.
"왜 그래? 들어와."
갈색 우산의 그녀가 입구의 자물쇠를 열고는 손짓했다.
"예~엣."
세이님과 유미는 대답을 하며, 별채로 이어진 돌다다미 위를 걸어갔다.
길을 가는 도중, 한번 더 뒤돌았지만, 그 창문은 커튼이 닫혀진 채였다.

 

 

2

 

몸 전체에, 따뜻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몸이 식어 있었나보다. 욕실의 건조한 타일에 발을 내려놓은 순간도, 샤워를 시작했을 때, 미처 덥혀지지 않은 물로 손을 적실때에도, 차갑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미지근하다는 감상에 젖어 있을정도였다. 때문에, 이곳의 주인인 '갈색 우산의 그녀'가 말릴 틈도 없이 유미를 욕실에 밀어 넣은 것은, 분명 정답에 해당하는 조치였다.
망설이는 유미에게, 세이님이 "꾸물꾸물거리면 억지로라도 벗겨버릴테야."라고 하신 것도, 농담이 아닌, 차가워진 몸을 걱정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저 한마디로 샤워하는 것에 대해 탄력이 붙은 것은 분명했다.

"유미짱. Bath towel하구 갈아입을 속옷, 이곳에 놓아둘테니깐~"
갈색 우산의 그녀가, 탈의실에서 말을 걸어왔다. 이 정도에서, 이름을 물어보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한번 들을 기회를 놓치니 좀처럼 절묘한 타이밍이 오질 않았다.
"...죄송합니다."
인사를 하자, 복잡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곳은 목욕탕이기 때문에, 전신 샤워를 하고 있는 중이니깐, 일단 유미는 지금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다. 태어났을때의 모습 그대로, full-nude인 상태. 여러가지로 표현될 수도 있을테지만, 결국 말하자면, 전나인 상태인 거다. 억지로 밀려들어온 탈의실에서, 젖어 무거워진 제복을 비교적대담하게 벗는 것은 할 수 있었지만, 속옷 부분은은 조금 곤란했다.
갈아입을 속옷을 가져오지 않았어.
브래지어와 슬립은 비교적 저항감이 없지만, 쇼츠 같은 경우 한번 두 다리로부터 벗겨진 것을 세탁하지 않은 채 또다시 입고 싶지는 않은 거니깐...
어찌할래? 유미.
이럴 줄 알았다면, 도중 편의점에서 속옷을 사가지고 올걸 그랬어. 뭐라 하더라도 후회라는 것은, 그 상황에 접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 지금 세탁할까? 하지만 마르는 동안, 무얼 입고 있으면 되지? 슬립 옷자락의 레이스도 비 때문에 축축해졌고...
이렇게 곤란해하며 샤워를 하고 난 후였기 때문에, 갈아입을 속옷이라는 말에 감사했다. 하지만 사치코님의 란제리(속옷이란 단어와 함께 표현되는 것은 있을 수 없어!)처럼 굉장히 고져스한 물건이라면 어쩐다. 용돈정도로 사서 돌려줄 수 있는 범위의 물건이엿으면 좋겠는데 말야....라며 탈의실과의 경계에 있는 불투명 글래스 문을 열어보니, 바구니 안에, bath towel과 갈아입을 옷 한벌이 들어있었다.
상점에서 접어둔 상태 그대로 주름이 가있는 순면 100퍼센트의 하얀 탱크탑과 쇼츠, 그리고 신품은 아니지만 세탁비누의 냄새가 남아있는 그레-의 스웨터 상하.
혼자있는 탈의실에서 "잠시 빌리겠습니다."라고 머리를 숙인채 인사하며, 옷을 갈아입었다. 마른 의류는 옷에 걸칠 때 포근한 느낌이 들어, 사람의 샹낭함 같은 것도 함께 모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또다시 아주 조금이지만 유미는 눈물을 흘려버렸다.
신체에게 있어 불쾌한 환경은, 마음을 마이너스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일지도 몰라. 항상 깔끔한 상태로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자포자기상태에 빠져있는 내 모습은, 그다지 좋은 모습으로 보이진 않을꺼야. 유미는 문득, 타이를 고쳐주는 언니의 손이 생각나버렸다.

"몸 좀 녹였어? 시간이 좀 걸렸긴 해도, 역시 욕실에서 몸을 녹이는 쪽이 괜찮았지?"
유미가 욕실에서 나오자, 유미의 제복은 행거에 걸린채 창가에 매달려 있었다. 갈색우산의 그녀는 젖은 수건으로 스커트의 주름에 묻어있는 진흙을 정성껏 털어주고 있었다.
"아.. 예. 충분히 따뜻해졌어요. 고맙습니다."
"그래. 다행이다. 적당히 그 근처에 않아서 좀 쉬는게 어때?"
들었던 대로, 낮은 탁자 옆의 방석에 몸을 앉혔다. 테이블에 쿠션은 없었다. 옛날 그대로 낮은 탁자에, 센베이 부톤이 아닌 센베이자 부톤이였다.
세이님은, 키친에 서서 무언가 하고 계셨다. 이쪽도, 구분을 짓자면, 키친이 아닌 부엌이라고 부르는 쪽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저..."
"갈아입은 속옷이라면 부담가질 필요 없어. 그냥 주는 거니, 그대로 입고 돌아가도 되니까... 
벗어놓고 돌아가면 나도 곤란하다구..."
"..."
그도 그렇네.
"친구가 신세를 질 경우에 대비해서, 100엔샵에서 몇장 사두었거든. 이런 때야말로 사용할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예."
토탈 200엔, 플러스 소비세. 사람의 성의는 물론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자신을위해 상대방이 얼마나 지출했는지의 여부는, 큰 관심거리다. 물론 이번과 같은 경우는 적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지갑 안에는, 100엔짜리 동전 두개가 들어있긴 해. 그것을 드린다면 눈앞에 있는 그녀는, 분명 기분 상하겠지. 그러니깐 지금은 단지 솔직하게 감사하다는 것을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라고 유미는 생각했다.
갈색우산의 그녀는 제복의 표면에 붙어있던 진흙을 털어내고는, 이번에는 드라이어로 말리기 시작했다.
"보고 있을때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원피스 제복이라는 것은 여러 면에서 불편하네."
갈아입을 때라던지, 손질하는 것이라던지... 라며 중얼거린다.
"아... 제가 할께요.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어서..."
허둥대며 달려나가자, 그녀는 드라이어를 높이 올려 뺏기지 않으려 한다.
"괜찮아. 내가 하게 해줘. ...오히려 하고 싶기도 하니깐."
니코리(?)처럼 하지 말아줘요. 그런 식으로 주시받는 것도 좀... 그러고보니, 이 사람 그다지 웃질않잖아.
"그래. 맞겨두라구. 그 녀석 유미짱보다는 잘할테니깐."
세이님이 키친으로부터 돌아와, 등뒤에서 머그 컵을 내놓았다.
"밀크 코코아야. 유미짱에게는 특별히 설탕 집어넣었으니깐~"
유미는 드라이어를 구하기 위해 길게 내뻗은 손으로, 온기가 나고 있는 컵을 받아 쥔채, 원래의 자리에 자리를 고쳐 잡았다.
"...잘마시겠습니다."
달아서 맛있어. 세이님은 유미의 취향을 꿰고 있으니깐... 때문에 절대 실패는 없겠지.
이런 응석부림을 이 이상 봐주면 안돼요... 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어. 잠시동안, 이 따뜻하고 달콤한 공간에 녹아들고 싶어. 그렇게 허락받고 싶다고 생각했으니깐…
"여기에 놓을께~"
세이님은 낮은 탁자 위에 갈색 우산의 그녀 몫의 컵을 내려놓고는, 유미의 옆에 앉았다.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다. 하지만 빗소리는, 그것이 빗소리인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했다. 어쩌면, 단지 귀가 빗소리에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일지도 몰라.
"이곳... 꽤나 안정되는 곳이네..."
차를 천천히 음미하며, 세이님은 천정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예."
유미도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안정된다"라고 하는 것이 제일 적당한 감상인 것 같아.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이상한 살림이었다.
떨어져는 있다지만, 안채로부터 이어진 복도 등으로 이어져 있지도 않은, 완전히 독립되어있는 건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한시적으로 지어진 조립식 주택 같은 간소한 것도 아닌, 지붕에 기와를 사용한, 단지 작을뿐이긴 하지만 외관상으로는 보통의 주택이었다.
현관에 들어서면, 원룸 맨션을 떠올리게 하는 방의 배치들. 키친, 화장실과 욕탕이 각각 있고, 안쪽에 있는 한칸의 방. 그것이 거실식의 서양식 방으로 되어 있다면 원룸에 흔히 보이는 모습이지만, 순수한 일본식의 육첩간(의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있는 일본가옥을 본따 재현한 것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쇼와 30년대 혹은 40년대즈음에 만들어진 것 같은 부분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은 오래된 느낌이었다. 유미는 아버지의 서가에서 이런 방들만 모아둔 사진집을 본 적이 있었다.
"맞다. 세이님."
유미가 곁에 있는 팔꿈치 셔츠의 소매자락을 잡고는 작게 속삭였다.
"응?"
"저... 좀전의..."
"좀전? 아아... 응."
말하면서 세이님은 창문가에서 제복을 말리고 있는 그녀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있잖아. 유미짱이 이름이 뭐냐고~하고 물어봤었는데 말야."
"!"
세이님, 어째서 이런... 이런 문제라는 것은, 조용히 가르쳐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본인에게 물어볼 생각이 있었다면, 좀 더 스마트하게 물어봐야지... 라고 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아아"
드라이어의 스위치를 off시키며, 그녀가 얼굴을 들었다.
"아아. 미안. 자기 소개가 아직이었네. 카토라고 해. 카토 케이(加東 景)."
"...카토, 케이"
우왓. 누군가와 이름이 똑같잖아... 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온다고 생각했던 순간.
"앗!"
그 누군가가 소리질렀다.
"그랬나. 네가 가토 케이였구나...!"
"에"
유미는 이유도 모른채, 두명의 얼굴을 번갈아보았다. 두명이라는 것은, 물론 세토 세이와, 가토 케이...
조금 놀란 듯 감개무량한 표정의 세이님에 비해, 가토 케이씨는 표정이 모자란 얼굴을 약간 움찔거리며, 기가막히는 듯, 포기했다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사토양. 설마...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온거야?"
"우왓...!"
유미는 엉겁결에 소리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그랬던거다.
사토 세이라는 인물은, 그런 사람이었던 거야.

 

 

3

 

뭐야 그건... 이라고 생각했다.
선배이긴 하지만, 존경하고는 있긴 하지만, 매우 좋아하긴 하지만, 언제나 도움받고 있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일단 접어두고서, "그런건 이상하잖아요!!" ...라고 유미는 정면에서 똑바로 올려다보며 말해주고 싶었다.
세이님의 친구라길래, 사양하지 않고 실례를 무릅썼던 거야. 이름도 몰랐던 사람의 집에, 흠뻑 젖은 생쥐 몰골을 하고 있는 후배를 데리고 오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낯두꺼운것도 정도가 있지... 라는 생각에 앞서, 지금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자체가, 유미에겐 부담이 되었다.
"얼굴은 어쨋든 본적이 있는 것 같았던데다가, 나를 사토양이라고 불렀으니깐. 게다가..."
세이님은 주눅드는 기색도 없이, 설탕도, 밀크도 들어가지 않은 코코아를 꿀꺽 마셨다.
"유미짱을 어디에서라도 쉬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였거든."
그렇게 말하다니 매정해요. 원흉은 내가 되는거잖아. 하지만 이곳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다가, 부엌에 서있는 세이님의 모습을 보고, 어느 누가 두명의 우정을 의심할 수 있겠냔 말야.
"저... 그럼 가토씨는..."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던 세이님에게 말을 걸어, 그 후배를 집으로 데려오게 하려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세이님과 잘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돌봐줄 마음이 있었을꺼야...라고 유미는 지금까지 생각해왔었다.
"그다지 사토양 혼자였다면 말을 걸지는 않았을꺼야. 알지도 못하는 고등부의 학생에게도 물론일테고..."
대범하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었지만, 침착한 어조로 담담히 가토씨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손에 들린 드라이어는 지금 스커트의 프릿츠 부근을 바람으로 말리고 있었다.
"그도 그런게, 사정도 모르면서 손을 내미는 것 따위는 하지 않는 편이니까."
"그건... 현명한 판단이군."
떡을 칠 때, 치고 있는 떡을 뒤짚는 것처럼, '사토씨'가 절묘한 타이밍으로 받아넘긴다.
"비를 맞으며 울고있는 여자아이가, 기대고 있었기 때문일까... 사토양의 표정이 변했거든. 평소의 찰랑찰랑할 뿐이었던 여대생이 아니였어서 말이지."

찰랑찰랑

세이님의 표면적인 부분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는 단어였다.

"꽤나 잘 말하는군. 그런 너는 어때? 내 인상에 남지 않을 정도로 사교성 없던 인간이, 잘도 이런 귀찮은 일을 떠맡겠다고 하다니 말야."
"대학은 공부하러 오는 곳이잖아. 사교활동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아~ 슬슬 생각나기 시작하네. 카토 케이. 너 처음 봤을 때, 날 노려봤었지?"
"노려본 건 아냐. 어이가 없어 보고 있었을 뿐. 피해망상이로군."
"피해망상이라구?"
듣고있자니, 두 사람에겐 딱부러진 첫만남이 있었던 것 같아.
대학의 같은 교실에 항상 있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은 들었을 테지만, 뭐랄까, 인식의 수단은 없이, 제대로 눈과 눈이 마주쳐 상대를 인식했던 것이 분명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클래스별로 모였을 때, 출석을 불렀어. 어떤 이름이 불렸을 때 대답을 했던 두 사람이 있었는데..."
"사토 세이가 잘못들어서, 가토 케이를 호명할 때 '예'라고 말해버렸었지?"
"말 그대로..."
눈에 선하군. 하지만, 그런 강렬한 만남이 있었음에도, 얼굴을 잊어버렸다는 세이님은 도대체...
"어쨋든, 사람이란건 대화해보지 않으면 알수가 없는 거로군. 그렇지? 사토양?"
"이런 정도로, 날 파악했다는 생각이 드는건가?"
"극히 일부긴 하지만... 적어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속이 깊은 인간이라는 것은 알겠어."
자. 됐다. 가토 케이씨는 드라이어의 스위치를 끄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 그러면 다음은 유미짱의 순서로군."
 유미 스스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씨는 유미의 머리카락을 말려주었다. 모근 주변까지 닿을 정도로, 손가락을 사용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었다. 가볍게 흔들리는 것처럼, 포근한 바람이 맨살갗까지 불어들어왔다. 정말 기분이 좋았기에 졸음마저 왔다.
잠깐 깜빡깜빡한 사이에, 꿈에서 사치코님을 보았다.
사치코님은 울고계셨다. 넓은 방의 한 구석에서, 어깨를 감싼 채 앉아계셨다. 근처는 어두웠다. 
눈물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울고계셨다. 
유미가 아닌, 토오코짱을 선택한 것은 사치코님. 헌데, 어째서 울고 계신걸까.
아아... 맞아. 이것은 꿈이니깐...
유미와 헤어져서 쓸쓸해...라며 사치코님이 흐느끼시는 것을 바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유미의 소원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좀 풀렸다면, 집에 전화해 줄께."
세이님의 목소리가, 유미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괜찮아. 내가 잘 설명해드릴 테니깐."
사치코님의 환상을 쫓아 버리곤, 그리고 자장가처럼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세이님도 가토씨도,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았어.
단지, 마음 외적인 것들을 충분히 care해 주셨을 뿐. 언 몸을 녹여주고, 말려진 옷들을 주시고, 문제없이 가족 곁에 돌아가게끔 신경써 주시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유미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4

 

밖으로 나서니, 따뜻한 공기가 몸을 감싼다.
비는 어느덧 그쳐, 잠시 해가 나왔었는지, 기온이 꽤나 올라가 있었다.
어디로 흘러갔을까. 그렇게 세계를 암흑으로 만들었던 두꺼운 구름 천막은, 지금 얇은 레이스의 커튼 정도로 밖에 하늘을 덮고 있지 못했다.
결국, 그 시점에서, 세이님은 친숙한 우등생 모드의 목소리를 내며, 유미의 집에 전화를 걸어주셨다.
단지, 폭우로 인해 옷이 젖어버렸기때문에, 옷을 말리기 위해 학교 근처의 친구 집에 오게되어 귀가가 늦어집니다...라고... 대사를 적어놓은 메모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물흘러가듯 막힘없이설명해 버리셨다.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과장으로 인하여 사실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세이님의 말에 의하면, 거세게 옆으로 몰아치는 비였기 때문에, 같이 있던 세이님도, 가토씨도 완전히 젖어버린 것으로 되어있었다.
물론 어머니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공손하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후에 전화를 건네받은 유미에게도, "감사하다고 한 다음 돌아오렴."..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 덧붙히자면, 리리안 출신의어머니는, 전 로사 기간티아이신 세이님의 팬이기도 했으니까.

"시간이 거꾸로 된 것 같잖아."
세이님이, 세워둔 목이버섯, 원래는 검은색 신사용 우산을 한번 털어, 물방울을 제거했다. 정진정명의 황혼인데도, 두시간 전이 훨씬 어두웠다.
이상한 날씨.
세이님이 말씀하셔서가 아니라, 확실히 시간감각이 이상해졌어.
비를 헤치며, 검은 자동차가 지나간 차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때부터 두시간. 그것은 겨우 두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나 라고도 생각되고, 벌써 두시간이나 지났나... 라고도 느껴졌다.
그것은 정말로 있었던 일이었을까. 혹시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거나 해서, 이제부터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이 집을 들어오기 전과 후의 갭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무언가 꿈을 꾸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밖을 나서보니, 감이 잡혀진다.
비가 그친 것 처럼, 눈물도 완전히 그쳐버렸다.
사치코님의 일을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아파오긴 했지만,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기분은 이제 들지 않았다.
"여러가지로 고마웠습니다."
"아냐~. 귀여운 손님을  초대할 수 있어서, 기뻤어. 난 형제가 없어서, 여동생 뒷바라지 같은거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
가토씨는 접혀진 붉은 우산을 유미에게 건내주었다. 어느샌가, 안쪽에 붙어있던 진흙들도 씻낸 후,드라이어로 건조까지 한 모양이다. 반듯하게 정리된 주름은, 정리한 인물의 꼼꼼한 성격을 말해주고 있었다.
"괜찮다면, 또 왔으면 좋겠어."
"알았쓰~"
세이님이 먼저 대답하셨다. 하지만 가토씨에게 차가운 냉대를 받을 뿐이었다.
"사토양에겐 권유하지 않았어. 유미짱에게 말한거야."
"예."
유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말려져 가볍게 된 두갈래 머리가 살짝 흔들거렸다.
버스 정거장까지는 마중나가주겠다는 것을 거절하고는, 문의 안쪽에 가토씨에게 인사를 했다. 정글같은 정원을 되돌아보니, 시간 때문인지, 근처의 조명 때문인지, 좀전보다 더 운치있게 보였다.그곳에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미는 그 창문 앞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레이스의 커튼이 희미하게 흔들린 것처럼 보인 것은, 기분탓일까.

"유미짱. 고론타를 만났을때 이야기, 기억하고 있어?"
갑작스럽게, 세이님이 중얼거렸다. 민가가 주욱 늘어서있는 사이에 있는 넓지 않은 길을, 큰 길을 향하며, 두명이서 나란이 걷고있던 때였다.
"고론타? 아.. 예."
세이님은 고론타, 유미 학년은 런치, 레이님의 학년은 메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고등부의 교사부근을 자기 영역으로 하고 있는, 들고양이의 이야기다. 예전 새끼 고양이였을 때 까마귀에게 공격받고 있는 것을 세이님이 도와주었다는 과거가 있다. 지금 검은색 점박이 고양이는 아무 사고없이 성장해, 정원과 교사의 뒷편에서 지금도 이따금씩 목격되고 있다. 
"지금 유미짱은 상처입은 새끼 고양이 같은 모습이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돼...라는 식으로 결론을 이어가지 않은 채, 세이님은 이야기를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미는, 그 뒤에 있을법한 이야기를 무리하게 구하지 않았다. 그저 "예"라고 말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간에 세이님이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큰길로 나가자, 그곳은 정확히 버스정류장과 버스정류장 사이의 장소였기 떄문에, 진행방향에 맞추어 걸어나갔다.
"하지만. 인간이란건, 대화해보지 않으면 모르는거네... 확실히."
"에?"
순간, 사치코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가토 케이 말야."
"아아..."
"의외로 사이좋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네요."
말하면서, 유미는 살며시 웃었다. 본인은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세이님은 남을 돌봐주는 것을 좋아하는 빈틈없는 사람이 좋은걸지도 몰라. 친구인 사치코님의 언니, 미즈노 요코님도 역시그런 타입이야. 세이님은 정말로는 후배를 챙겨준다기보단,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리는 쪽이 어울릴지도 몰라. 본인은 부정할지도 모르겠지만, 무의식중에 요구하고있다...라는 것처럼도 보이니까.
"엇"
세이님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등뒤에서는 M역행 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유미짱! DASH!!"
지시를 기다렸던 것처럼, 유미도 달리기 시작했다. 이걸 놓칠순없어!...라며...
전차와 틀리게 버스는, 노선의 상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한번 놓쳤다가는 다음번 차를 상당히 오랬동안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간신히 먼저 정류장에 도착한 두명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버스에 올랐다.
"기운찬 아가씨들이로구만."
아버지 나이 즈음 되어 보이는 기사 아저씨가, 밝게 웃으며 두명을 맞이해주엇다.
"그런가요?"
정기권을 제시하며, 유미는 버스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운차다구...
아아. 사실이지 뭐. 겉으로 보기엔 건강한 여고생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꺼야.
이렇게 달릴만한 힘이 아직 몸 안에 남아 있어.
"기운차대."
세이님도 유미의 귀밑에 속삭이며 미소지었다.
버스 안은, 남는 자리가 있을 정도로 비어있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혼잡하지는 않았다. 클럽활동이 끝나고 하교하는 학생들인지 고등부의 제복 모습이 열몇명... 학원의 두 정거장 전에서 버스를 탄 유미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곤,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한다. 유미도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약 두시간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선, 아마도 여기에 있는 고등부 학생들은 알지도 못할테고, 게다가 지금 유미의 모습만 보고는 상상도 할수 없겠지.
몇 개의 정거장을 통과한 후, 버스가 교착점을 돌아간다. 손잡이를 잡은 손의 팔꿈치를 유미의 팔꿈치에 가볍게 부딛히면서, 세이님이 말한다.
"갈 수 있겠어?"
"예."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버스에 올라 타기 위해 달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학생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눌 정도의 여유도 있다.
그러니까, 괜찮아. 혼자서도 충분히 갈 수 있어.
언제나처럼, 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정류장에서부터 항상 같은 거리를, 그냥 집을 바라보면서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그렇게 걸으면 금새 집에 갈 수 있어.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이런 식으로 분명, 내일이라는 날도 오게 될 꺼야.

 

 

5

 

 

집에 돌아가니 벌써 7시... 저녁식사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옷갈아입고, 양치질하고 손씻어. 5분내에 끝내고 식탁 앞에 집합!"
세이님의 전화가 효력이 있었을까. 어머님은 아무 것도 묻지 않으셨다. 신세를 졌던 가토씨 집에 대한 것을 두 세가지정도 물어보셨을 뿐. 뭐, 후쿠자와가는 자식들을 전면적으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의심 같은 것은 한 적이 없다.
때는 저녁. 내일 있을 과목의 교과서를 준비하기 위해 가방을 열고는 흠칫했다. 오늘 가져갔던 교과서들이, 전혀 생각치도 못한 상태로 되어있었다.
"왓... 왓... 왓..."
일순간, 안쪽에서 무슨 일이 있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교과서의 윗부분, 즉 위쪽 모서리 부분이 물을 흡수해 흐물흐물한 물결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이 가방, 세이님에게 안겨있을 때, 우산과 함께, 땅에 떨어졌었다. 아마도 그때, 가방의 뚜껑의 빈틈으로 물웅덩이의 물이 스며들어온 것이겠지.
"...아아"
수학, 현대국어와, 영문법 교과서를 바로 세운 뒤 위에서 내려보니, 페이지의 사이에 공기 층이 만들어져, 밀피유같이 되어있었다.
젖었을 당시 적당이 조치를 했다면 어떻게든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말라버린 것을 다리미를
사용한다고 해서 원래대로 돌아오진 않는다. 한번 더 적셔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다시 심한 몰골이 될 것 같아 단념했다. 
이 교과서는 2학년동안 사용하는 것이다. 이 얼룩을 볼때마다, 분명 오늘 일이 생각나게 되어, 떨쳐버릴 수 없겠지..라고 유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잖아.
얼룩진 교과서는,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없는거야.
유미는 책상 위에 책꽃이에 교과서를 꽃아놓고, 내일 수업 준비를 했다. 아주 조금... 이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지만, 참지 않고 흘릴 수 있을 만큼 흘려버렸다.
지금은 힘낼 수 없어.
무리해서 건강한 모습은 하지 않을꺼야. 지금은 상처입은 새끼고양이니깐. 상처를 핥고, 감싸서 상처받은 마음과 몸을 돌보면 되는거야.
분명, 언젠가 진정으로 기운차려질 날을 위하여, 지금은 충분히 쉬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면 되는 거니까.
전등을 끄고, 이불에 얼굴을 묻으며, 유미는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던 오늘에게 이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