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9권 [번외] 백그라운드 노이즈 -4- 종교재판, 그 이면

마리아 제의 종교재판, 그 이면(裏 マリア 祭の宗敎裁判)

 

1

 

유미는 벌써 두근거리고 있었다.
이번 일의 주모자격인 4명과 덤으로 따라붙은 토우코는 아침 7시반 전에는 장미의 저택에 모여서 
최종회의를 끝마쳐 둔 상태다.
오늘의 주인공 두 사람보다 먼저 등교해서 미리 함정을 파놓지 않으면 안되니까...
"요시노는 시마코가 오면 성당으로 데려가는 역할이야."
"라져-"
"유미는 1학년 신발장 앞에서 대기하다가 니죠 노리코양이 등교하면 바로 알려주고."
"예."
한사람 한사람, 맡은 역할을 최종 확인해 주신건 레이님.
"그리고 토우코."
"옛- 전 묵주를 가져 올께요."
저건 너무 들떠있어...
요즘 들어 익숙해진 용수철 머리조차 오늘은 한층 더 파워업된 느낌이다.
"니죠 노리코양이 오늘도 묵주를 가져와 줄까?"
아침에 약한 사치코님이 느릿느릿 말했다.
그래, 묵주...
그게 오늘의 제일 중요한 아이템이다.
그게 없으면 레이님이 수정한 '마리아 제의 종교재판' 시나리오는 써먹을 수가 없으니까.
"그치만 어제까진 매일 가방 안에 넣어서 갖고 다니던걸요? 아마 마리아 제가 끝나고 로사 기간티아가 한숨을 돌렸을 때 돌려줄 생각인거 같아요."
"응?!"
그 얘긴...
토우코, 넌 매일 같은 반 친구의 가방 속을 몰래 들여다 봤다는 얘기잖아?!
'우정이야. 우정!'
유미는 고개를 좌우로 도리질치며 마음 속으로 주문을 외워본다.
"그럼 모두 건투를 빌께."
레이님의 말을 끝으로 각자 자기가 맡은 곳으로 흩어진다.
이후에 이 멤버가 모일 경우라면 아마 실제 상황이겠지.
이제부턴 각자의 연기력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유미도 빠른 걸음으로 신발장 앞으로 향한다.
길을 가다 복도 끝에 있는 마리아 상이 문득 눈 안에 들어왔다.
여느때는 볼수없는 꽃장식이 되어 있었다.
그래, 오늘은 마리아 제야.
어릴때는 오늘 하루만큼은 착한 애로 있어야지, 친구랑 싸우지 말아야지.. 라고도 생각했었지...
하지만 오늘은 왠지 마리아 상을 똑바로 쳐다보기가 두렵다.
모든게 끝난 후, 마리아님께 오늘 있었던 일을 당당하게 보고할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건 우정이었어! 라며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길...
'앗- 이런 생각에 빠져있을 틈이 없어!'
복도 저쪽에선 예상보다 일찍 등교한 시마코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
"들키면 안돼..."
허둥지둥 기둥 뒤로 몸을 숨긴다.
이런데서 만나버리면 시작부터 계획이 틀어져버려.
계획대로라면 집합시간에 한참 늦은 유미가 해야할 일을 도우러, 요시노가 시마코를 데리고 나가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하지?"
니죠 노리코를 기다리려면 신발장 근처까지 가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 길엔 시마코가 있어...
아직은 이른 시간이어서 떼지어 등교하는 학생들 틈에 섞여 슬쩍 지나치는 기술도 쓸 수 없는거다.
"에잇, 이렇게 되면 할수없지."
유미는 왔던 길을 되돌아서 계단을 오른 뒤, 신발장 쪽으로 복도를 나아가 다시 계단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밟기로 한다.
"후쿠자와양, 복도에선 정숙하게 다니세요."
서두른 덕분에 복도에 있던 선생님께 주의를 받아버렸다.
그래도 급한 건 어쩔수 없어.
시계를 슬쩍보니 벌써 7시 45분.
니죠 노리코의 평균적인 등교시간은 8시를 조금 넘긴 즈음이지만, 어디가지나 평균치니까 조금은 들쭉날쭉할 거였다.
게다가 역에서 버스로 통학하는 학생에겐 길이 얼마나 막히냐에 따라서 10~15분 정도의 차이가 생기는건 일상 다반사.
계단을 내려와 신발장에 다가가며 아까 유미가 서있던 곳을 쳐다보니, 아무 것도 모르는 시마코의 뒷모습이 보였다.
'미안...'
자기도 모르게 두손이 모아진다.

"유미...? 뭐하는 거니?"
"우와-!"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마.. 마미?!
"안녕(ごきげんよう), 시마코한테 뭔가 한거야?"
"아니, 아무 것도..."
"정말?"
"으... 으응."
"뭐 상관없어. 왠지 뭔가 꿍꿍이 속이 있을 법한 냄새가 요 몇일동안 계속 풍겼거든.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그냥 구경만 해두기로 할께. 무슨 일이 터지든 난 바로 옆에서 볼수 있을테고 말이야."
"하하핫..."
그랬었지...
여기서 얼렁뚱땅 넘겨도 어차피 다 들킬테지.
마미는 오늘 시마코의 보조역할이니까.
"저기.. 마미?"
"알았어, 시마코한텐 비밀인 거지? 그대신 다 끝나면 꼭 취재하게 해줘야 해. 로사 키넨시스나 로사 페티다의 인터뷰를 곁들여서 리리안 백서에 낼거야."
"약속은 할수 없지만 장미님들에겐 얘기를 해둘께."
"OK, 그럼 오늘은 조용히 있기로 할께."
기대되네, 라며 멀어져가는 마미의 걸음걸이가 경쾌해 보인다.
하지만 함정을 파야하는 입장으로썬 마냥 즐기고 있을수만은 없는거다.
"안녕하세요(ごきげんよう), 유미님."
"안녕하세요(ごきげんよう), 로사 키넨시스 앙 뷔통."
입학한지 몇일 되지도 않았을텐데, 산백합회 임원들의 얼굴을 알고있는 신입생이란건 매년 있는 모양이다.
1학년 신발장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미에게 처음보는 신입생들이 차례로 인사를 하며 지나간다.
예의바른 후배들이란건 솔직히 귀엽긴 한데...
"누구를 기다리시는 건가요?"
따위 물어보는 애들도 한둘은 꼭 나온다.
'안돼...'
이래선 너무 눈에 띄인다.
스쳐 지나가도 노리코의 눈에 띄지 않을꺼란 이유 하나만으로 유미가 이번 역할을 맡은 거였는데 말이다.
이렇게 주목을 받아버려선 안되는 거다.
'장소를 바꿀까?'
이미 여기를 지나가버린 시마코가 유미를 발견할 위험도 없을테고...
신발장에서 벗어나 복도에서 니죠 노리코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럼에도 아까하고 그다지 상황이 바뀐게 아니어서, 신발장이 겨우 보일락 말락하는 곳까지 더욱 안쪽으로 들어간다.
'일자머리.. 일자머리....'
8시를 넘기자 유미는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노리코의 얼굴을 본적이 없었다.
한 열명정도 일렬로 세워놓고 고르라면 아마 틀릴 일은 없겠지만, 순간 지나쳐버린 정도로는 금방 알아채지 못할런지도 모른다.
'역시 조금 눈에 띄더라도 확실한 신발장 앞으로 갈까?'
되돌아 가려고 한발짝 내딛던 그 순간, 한명의 소녀가 유미 옆을 스쳐 지나간다.
'응....?!'
이 애야! 라고 누군가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잠시 반짝반짝, 하고 빛이 나 보인다.
눈을 비비며 다시한번 쳐다봤지만, 형광등이나 반짝이가 붙어있을 리가 없다.
그저 흔한 보통 교복의 뒷모습이 보일 뿐.하지만 기다리던 니죠 노리코임에 틀림없었다.
'아.. 와...!'
유미는 허둥거리며 필사적으로 뒤를 쫓는다. 시나리오대로라면 1학년 참죽나무반에 들어가는걸 확인한 뒤, 옆 건물과의 연결통로에서 대기하시는 사치코님과 레이님께 보고하기로 되어 있었다.
선배가 미행하고 있다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니죠 노리코는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껀지, 아마 상상도 못하겠지...그렇게 유미가 동정을 느끼려는데,
'응?'
아무 것도 없는 복도 한가운데서 어째서인지 갑자기 걸음을 멈춘다.
'뭐야?'
미행하는걸 들킨거야?
화들짝 놀란 유미가 몸을 숨기려 주변을 둘러보지만, 안타깝게도 복도에는 숨어들만한 장애물 따윈 없었다.
'밖을 보는거야?'
니죠 노리코는 열려진 창문 너머로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야 분명히 오늘은 날씨가 좋아.
마치 마리아님의 마음인 것처럼.
'그렇다고 저런 표정을 할까?'
멀리서 보아도 그 옆모습은 온화하고 평안해 보인다.
행복해보여, 라고 말을 바꾸어도 될만큼...
니죠 노리코가 사라진 뒤, 같은 장소에 선 유미는 똑같이 창 밖을 바라봤다.
"......!"
완벽히 졌어.
아니, 처음부터 이기고 지는 것 따윈 없었지만...
니죠 노리코란 1학년에게 시마코를 맡겨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치밀어 온다.
창문 저쪽에는 메다이가 든 박스를 들고 걸어가는 시마코와 요시노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2

 

사치코님과 레이님이 나란히 걸어가신다.
목적지는 1학년 참죽나무반.
5분정도 전에 니죠 노리코가 들어간 교실이다.
두사람 뒤를 쫓아가던 유미는, 자신이 맡은 역할도 잊어버리고 몇번이나 그만두게하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런 일을 벌여서 정말 괜찮은 걸까?
시마코에게 있어선 모두 앞에서 고백할 기회라는건 그저 귀찮은 것일수도 있는데...
니죠 노리코란 애와 서로 의지하며, 그저 조용하고 무난한 학교 생활을 보낼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런지도 모르는 거잖아.
"유미, 혼자 뭐라고 중얼대는거니?"
"예? 아무 것도 아니예요..."
어차피 들어줄 것도 아니라면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조금 떨어져 있으렴, 이란 사치코님의 말에 유미는 5미터 정도 슬금슬금 뒤로 떨어져 벽쪽으로 바짝 붙었다.
그냥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척을 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 란 분위기를 내비치는 거다.
어색하건 뭐건, 기왕 이렇게 되어 버린거.. 할수 있는데까지 해 보는거야!
"니죠 노리코양을 좀 불러줄래?"
사치코님이 교실 앞문 근처에 있던 학생에게 말을 건넨다.
"옛?!"
그 애는, 갑자기 두 장미님들이 나타난 것 때문인지 굉장히 놀라는 것 같았지만 바로 정신을 차리고 대꾸를 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저 정도면 훌륭한 거지...
그 애가 교실 안으로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복도에서 대기하던 토우코가 뒷문을 통해서 슬쩍 교실 안으로 들어간다.
'시작되버렸어... 어떻게 해-'
이제 되돌릴 순 없어.
나중 일을 생각해서 멈칫멈칫하는 것보단, 최선을 다해 보는거야.
니죠 노리코가 교실에서 나오는게 보인다.
불러낸 인물이 의외였는지 사치코님과 레이님을 보고 조금 놀라는 눈치다.
"안녕(ごきげんよう), 니죠 노리코양이지?"
첫 타자는 레이님...
"맞는데요...?"
상대의 의중을 헤아리려는 듯, 노리코는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다.
"흐응-"
사치코님이 위아래로 훑듯이 쳐다본다.
이건 예정에 없던건데...
아무래도 화제의 주인공을 눈앞에서 만난 덕에 흥미가 생기셨나 보다.
"이 애가 말이지..."
5미터 가량이나 떨어져 있자니, 유미가 있는 곳에선 거의 대화 내용이 들리지 않는다.
이게 시나리오대로라면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대강은 알수 있을테지만, 돌발상황이 생겨버리면 그저 넋놓고 바라볼 수 밖에...
현실에도 리모콘이란게 존재한다면, 음량 버튼을 마구마구 눌러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앗-?!'
이번엔 레이님이 대담한 행동을 하신다.
니죠 노리코의 턱을 쥐고 이리저리 돌려보고 계시잖아?!
"무슨 짓이예요!"
꽤나 큰 소리여서 유미가 있는 곳까지 들려온다.
니죠 노리코는 손을 쳐내며 장미님들을 노려본다.
의외로 기가 센 성격인가 보네...
유미가 있는 곳에선 사치코님도 레이님도 뒷모습밖에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일부러 표정을 확인하지 않아도 두분이 니죠 노리코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게 한눈에 느껴져온다. 기가 약하고 누군가의 한마디에 울먹이는 사람이라면, 시마코의 '쁘띠 쇠르' 후보로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셨겠지만...
레이님이 수정한 시나리오에선 두 장미님들은 몇가지 질문만 하고 니죠 노리코와 헤어지는 걸로 되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외워두는 것과, 토우코가 묵주를 손에 넣을 시간을 버는게 목적이니까.
그렇지만 사치코님도 레이님도 이상하리만치 연기하시는데 열심이었다. 마치 싸움을 거는 것처럼 도발하시기도 하고...조금 오버하시는게 아닐까? 유미는 그런 걱정이 들기 시작한다.
"기다려 주세요."
거봐, 내가 뭐랬어...?
화가 난 니죠 노리코가 발걸음을 돌리던 두 장미님들을 불러 세운다.
그녀는 자기가 당한 일들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레이님이 혼자 노리코 앞까지 돌아가 이렇게 대답하셨다.
"우리가 온 이유는 말이지... 노리코양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니까."
"얼굴을 보러...?"
의외여서 기가 꺾인 것일까? 어리둥절 하고있는 니죠 노리코에게 레이님이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넌 토도 시마코를 좋아하니?"
그 대답만은 이상하게도 유미의 귓가에 뚜렷이 들려왔다.
"좋아해요."
'좋았어-!'
유미는 복도 구석에서 혼자 승리포즈를 취해본다.
방금 펼쳤던 바보같은 포즈를 얼른 감추던 유미였지만, 그래도 앞길에 한줄기 서광이 비추이는 것만 같아서 기뻤다.
"OK, 잘 해보렴."
레이님의 그 한마디에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니죠 노리코는 교실 안으로 사라져 갔다. 그 순간, 스치듯이 토우코가 교실에서 나온다.
이윽고 유미의 모습을 발견한 토우코는, 치마 주머니를 손으로 가리키며 싸인을 보내온다.
운명의 묵주는 이렇게 해서 산백합회 임원들 손에 떨어진 것이다.

 

 

3

 

그 의식은, 선생님이나 수녀님들을 제외하고 치뤄진다.
리리안 고등부에서는 학생들의 자치권을 존중해서, 학생회의 일에는 가급적 어른들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불문률이 있었다.
'와- 그리워지네....'
유미는 문 뒤쪽에서 홀 안쪽을 바라보며 흥분하고 있었다.
오전에 신부님의 인도로 열렸던 미사도 끝나고 시간은 이미 오후.
성당 안에는 1학년 약 2백명 정도가 이미 6개의 소집단으로 나뉘어서 앉아 있다.
딱 1년전, 여기서 오르간을 치시던 사치코님을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던 거였다.
그때는 1년후에 설마 자기가 로사 키넨시스 앙 뷔통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
"뭘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거니?"
그 말에 뒤돌아보니, 1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사치코님이 서 계신다.
가슴에 달려있는 새빨간 장미꽃이 눈부실 정도다.
아쉽게도 로사 키넨시스(월계화)는 아니었지만 흰 장미도 로사 기간티아는 아니였고, 노랑 장미도 역시 로사 페티다는 아니었으니까 뭐.. 이걸로 쎔쎔인 거지. 어떤 꽃이라 해도 사치코님의 가슴에 달려 있으면, 겨우 장식일 수밖에 없는거니까.
"장미가 비뚤어져 있어."
유미는 정말.. 이라시며 유미의 가슴에 꽂아놓은 서몬 핑크색 장미를 고쳐 주신다.
아까랑 똑같아 보이긴 하지만, 분명 사치코님에겐 신경이 쓰이는 문제인 거다.
그게 아니라면, 그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서라거나...
"유미"
"예?"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사치코님은 무언가 얘기를 꺼내시려다 그만둔다.
손끝이 조금 떨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유미는 불안해하거나 고민하거나 하는 사치코님의 모습을 보자, 도리어 안도의 기분이 든다.
때때로 그런 면을 살짝 내비치는 쪽이 훨씬 사람다워서 왠지 기쁜거다.
"언니, 굉장히 예뻐요."
"응?"
유미는 희미하게 떨리는 그 손을 가만히 마주쥔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테니까요."
".....그래."
사치코님이 '그럼 잘 보고 있으렴'이라고 하는 것과 동시에 셔터 소리가 들려온다.
"츠타코?!"
"난 개인적으로 빨간 장미쪽에 더 흥미가 있거든."
츠타코는 '어디 보자'라며 문을 조금 열고 안쪽을 들여다 본다.
"무슨 소리야?"
"마미가 불었어. 시마코랑 니죠 어쩌구 하는 애를 주목해 두라고 말이야. 괜찮은 사진이 나오면 리리안 백서에 제공해 달라면서."
"마미....."
유미는 조금 덜어진 곳에서 서몬 핑크색 장미를 달고있는 마미에게 시선을 옮겨본다.
분명히 아무 것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그녀는 꽤 진실에 다가선 추리를 하고 있는거다.
"뭐 어때? 환영회가 진행될 동안엔 약속대로 가만히 있을께."
손을 흔들며 웃음짓는 마미, 정말 얕볼수 없는 존재라니까!
만약 적이 된다면 굉장히 무서울지도 몰라...
"조금 늦었어요."
식이 시작되기 아슬아슬한 때에 시마코와 요시노가 성당 안에 들어온다.
장미의 저택에 놓아둔 '아베 마리아'의 악보가 없어졌다며 점심시간 내내 찾아다녔던 모양이다.
물론 그건 요시노가 일부러 감춰둔 거였다.
적당한 때를 골라서 찾아낸다는 계획이었던 거다.
왜 그랬냐구?
그야 점심 시간에 시마코가 노리코를 만나서 없어진 묵주에 대한 상담을 하거나 하면 이쪽의 계획이 엉망이 되어 버리니까...
"시마코가 글쎄, 악보가 없어도 외워서 칠수 있어요... 라는거야! 정말이지 말리느라 가슴이 조마조마했다니까."
시마코가 하얀 장미를 가슴에 다는걸 곁눈질하며, 요시노가 작은 소리로 소근거려 온다.
계획은 이제 막 시작하려는 참인데 벌써 수차례의 돌발상황이라니...
애초의 시나리오는 벌써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리고 있는게 아닐까?
현실이란 원하는 대로만 진행되는게 아니라지만 말야...
과연 이래서 끝까지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으려나?
그런 유미의 불안도 모른채, 신입생 환영회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4

 

"신입생 여러분, 우선 입학을 축하드려요"
사치코님의 저 인삿말로 신입생 환영회가 시작되었다.
뒤에 서있는 탓에 사치코님의 훌륭한 모습을 정면에서 볼수는 없었지만, 1학년 애들의 동경섞인 시선을 느끼자 유미는 혼자 만족한다.
내 언니는 이렇게나 멋져, 라면서...
이거야 완벽한 팔불출이겠지만 그게 뭐 어때서?
좋아하는 언니를 위해서라면 조금쯤 바보가 되어도 상관 없잖아.
1학년 참죽나무반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니죠 노리코가 보였다.
그 노리코의 시선이 사치코님을 지나 뒤에 있는 유미 쪽으로 날카롭게 꽂힌다.
매달리는 듯한 그 시선에 한순간 가슴이 철렁 했지만, 그녀가 보고 있는건 물론 유미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로사 기간티아이자 시마코인 것이다.
아마 묵주가 없어진 걸 빨리 알리고 싶은 거겠지.
반면 시마코는 앞으로 진행될 식순이라도 생각하는건지, 니죠 노리코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같다.
그야.. 알아챈다고 해도 이제 와선 아무 것도 할수가 없겠지만 말이야...
니죠 노리코가 앉아있는 의자 뒤로 같은 반인 토우코의 모습도 보인다.
토우코 쪽은 여유만만. 유미랑 눈빛이 마주치자 웃어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먼저, 기념으로 메다이 증정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사치코님은 그 말을 끝으로 레이님께 마이크를 넘긴다.
'메다이'라는 단어에 유미는 정신을 차린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거의 유일한 일꺼리가 시작되는 거다.
그리고 시나리오에선, 메다이 증정식 도중에 그 '사건'이 일어나기로 되어 있기도 하고...
'긴장, 긴장...'
옆에 놓여진 6개의 바구니 가운데 제일 끝에 있던 '자두'란 표찰이 달린 녀석을 잡아 들었다.
요시노는 그 옆에 있는 '등나무'를, 마찬가지로 마미도 '국화'라 적힌 녀석을 들고 각자 장미님들 옆에 선다.
"유미, 바구니에서 표찰 떼어내야지."
"아... 맞다!"
떼어낸 표찰을 바닥에 내려놓고 얼른 사치코님 옆에 선다.
에휴.. 도우미로 부른 마미쪽이 훨씬 더 능숙하네...
이래저래 준비하고 있자니 레이님의 안내대로 자두, 등나무, 국화반이 가운데 통로에 가지런히 일렬로 서서 준비를 한다.
"마리아님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뷔통'들이 들고있는 바구니 속에는 메다이가 인원수만큼 서로 얽히지 않도록 놓여 있다.
그걸 장미님들이 한명씩 직접 목에다 걸어 주시는 거다.
약 30여개의 메다이가 바구니에서 없어지는데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다음은 복숭아반, 소나무반, 참죽나무반 앞으로."
레이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서 들려온다.
참죽나무반, 이제 시작이야...
유미는 복숭아반 바구니를 들고서 약간의 흥분에 몸을 떨었다.
이 상황에서 '뷔통'들에겐 별달리 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지켜보는 것만으로 긴장되는건 어쩔수 없는거다.
작년엔 1학년 복숭아반이어서 예전의 로사 키넨시스가 메다이를 걸어 주셨었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침착해 보려 했지만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불면증인 사람이 '양이 한마리, 양이 두마리..' 하고 세어봤자 눈만 말똥말똥해지는거랑 같은 이치다.
"좀 진정하렴."
사치코님이 조그맣게 주의를 준다.
하지만 그 목소리조차도 미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바구니 속의 메다이는 절반도 채 남지 않은 상태.
어느쪽 줄이나 거의 비슷한 속도니까, 시마코 옆에 있는 마미의 바구니 속에도 메다이는 아마 반 정도만 남아있을 테지.
슬쩍 옆을 바라본다. 니죠 노리코가 메다이를 받기까지 이제 3명이 남아있다.
"마리아님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시마코의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뚜렷히 유미의 귓속에 파고든다.
두근 두근
마치 영화 속의 효과음 처럼, 자기 심장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한명.
사치코의 손이 멈춘다.
토우코가 서있던 줄에서 걸어 나오는게 보인다.
그리고 니죠 노리코가 시마코의 앞으로 나선 그때,
"잠깐 기다려 주세요!"
절묘한 타이밍으로 그 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진다.
"그 사람은 로사 기간티아에게 메다이를 받아들 자격 같은건 없어요!"
토우코는 성당 안을 쩌렁쩌렁 울리며 등장했다.
평소에 훈련했던 성과인지 훌륭하게 복식 호흡을 해내고 있다.
"토우코?!"
지적당한 니죠 노리코는 놀라서 토우코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세 분 장미님들, 신성한 의식을 방해해서 먼저 사과드려요."
토우코는 니죠 노리코를 한번 노려본 뒤, 세 장미님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이지? 이름이.... 토우코양?"
사치코님의 연기력도 대단하시다니까.
잊지않고 토우코 '양' 이라니...
"로사 키넨시스, 들어주세요. 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자칭이건 타칭이건 역시 여배우 지망생이야. 정말로 울먹이면서 호소를 하고 있잖아?! 마치 그녀야말로 진짜 피해자인 것만 같아...
"방금 노리코양이 메다이를 받아들 자격이 없다, 고 한 것 같은데?"
"맞아요, 로사 페티다."
그때, 시마코의 안색이 급변했다.
토우코가 왼손에 쥐고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겨우 알아챈 것이다.
몇초 뒤늦게 니죠 노리코의 표정도 굳어간다.
그대로 '그 물건'을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간발의 차이로 미리 기다리던 토우코의 왼손이 크게 들어 올려졌다.
스테인드 글래스에서 눈부신 빛을 받은 수정 묵주는, 토우코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마치 후광처럼 환하게 빛나는 거였다.

 

 

                                       5

 

반짝반짝 빛나는 묵주는 정말로 예뻤다.
하늘에서 누군가가 내려올 전조인 것 마냥, 성당 안에 빛무리를 흩날리고 있다.
"이건 노리코 거지?"
"내 것이 아니야."
니죠 노리코는 딱잘라 부정했다.
원래는 자칭 여배우인 토우코의 독무대가 될 예정이었지만, 저쪽도 지지않고 맞선다는 느낌이야...
어째서 그 묵주가 자기꺼라고 단정지었는지 되물어 왔고, 그에 대해서 토우코 쪽도 그냥 입에서 아무 말이나 뱉어내고 있었다.
마치 사나운 개들의 으르렁거림처럼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사치코님이 개입한다.
"노리코양, 어떻게 된거죠? 토우코양의 말대로 이건 당신 건가요?"
"아니라고 하잖아요."
흥분되서 상대가 누군지도 파악이 안되는 걸까?
니죠 노리코는 로사 키넨시스에게 까지 적의를 드러낸다.
"마리아님 앞에서 맹세할수 있니?"
"물론."
저 묵주는 시마코의 것이니까 그렇게 대답하리란 건 이미 예상하던 바다.
"그럼 이건 버려도 되는거네?"
"엣?!"
당당하던 니죠 노리코였지만, 버린다는 말을 듣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묵주는 토우코의 손을 벗어나 반원을 그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걸 받아든건 레이님.
"네가 이 묵주의 주인이 아니라면 어떻게 처리해도 상관 없는거지?"
일부러 화를 돋구듯이 레이님은 묵주를 손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거나 빙빙 돌리거나 하고 있다. 니죠 노리코의 얼굴이 한눈에도 점점 빨갛게 변해간다.
"알겠어요, 인정합니다. 그건 분명히 제가 가지고 온 물건이예요."
"노리코!"
시마코가 앞으로 튀어 나온다.
이제 한 고비만 더 넘기면 돼!
시마코를 제외하고 그 자리에 있던 산백합회 임원들 전원이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야말로 클라이막스!
여기서 시마코가 묵주가 자기 거라고 인정한 뒤, 나아가 자기 집 사정을 고백한다면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구경꾼으로 전락한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아무런 사정을 모르고 있는 탓에 갑자기 등장한
로사 기간티아의 모습을 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시마코, 지금이야!'
유미는 안타까운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감독처럼 큐 싸인을 보내고 싶어졌다. 하지만...
"시마코씨는 쓸데없는 말하지 말아요."
놀랍게도 니죠 노리코가 시마코를 만류하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건 나니까' 같은 멋진 대사를 하면서 말야...
"대단한 각오구나."
사치코님이 우아하게 웃음짓는다.
누구라도 빠져버릴 것만 같은 비장의 미소다.
하지만 니죠 노리코는 항복하지 않았다. 논리적인 이유를 들이대고 손바닥을 뻗어 '묵주를 돌려 주세요' 라며 다가온다.
"아직 어리구나."
레이님이 웃는다.
"돌려받고 싶다면 원래 주인의 이름을 대렴."
다 알고 있으면서...
야금야금 궁지로 몰아간다.
두 장미님들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그 입에서 나오는 추궁은 무서운 법이다.
이미 시나리오를 알고있는 유미마저 그렇게 느껴지는 거다.
니죠 노리코는 지금 굉장히 무서워하고 있을테지..울어버린다 해도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응?!'
쓱싹쓱싹 하는 소리가 들려와서 그쪽을 바라보니, 옆에 있던 마미의 등 뒤로 돌린 두 손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엉덩이 쪽을 자세히 쳐다보니 학생수첩에 속기로 메모를 하고 있는게 보인다.
'굉장해....!'
역시 뼛속까지 기자라니까...
게다가 저 기술이라니!
마치 등 뒤에 눈이라도 달려있는 것만 같아 보인다.
"노리코양, 어서 대답하세요."
사치코님의 목소리에 유미는 얼른 시선을 되돌린다.
아직 추궁은 계속되고 있는거다.
"그건...."
거기서 겨우 말문이 막혔나 보다.
어딜보나 니죠 노리코의 형세가 불리해 보인다.
"왜 말이 없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걸까?
니죠 노리코는 자기에게 향해진 질문들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다.
자기 안 어딘가에서 해답이 있는건 아닐까 찾고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뭐라고 대답을 해보렴, 노리코양."
"아까까지의 기세는 벌써 끝난거니?"
두 장미님들의 공격은 용서의 여지가 없었다.
졸업해버린 예전의 장미님들께 단련된 사치코님과 레이님은, 마치 예전 장미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악역조차 생동감있게 연기하고 계신다.
조용히 지켜보던 시마코가 미약한 미소를 지었다.
니죠 노리코를 옆에서 한번 바라보고는...
"이제 그만하세요!"
외침 소리와 함게 앞으로 나온 것이다.
시마코가 저렇게 큰 소리로 외친 건 작년 학원제때 신데렐라 공연 이후로 처음 듣는다.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시마코의 말이 이어진다.
"그 묵주는 제 거예요."
"시마코씨!"
니죠 노리코가 비명을 지른다.
"시마코님!"
"로사 기간티아!"
시마코는 연이어 불려지는 자신의 호칭들을 그저 담담히 받아 들인다. 니죠 노리코가 찾아헤매인 해답에 시마코가 먼저 도달한 거다.
"설명해 주겠니?"
성당 안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사치코님은 시마코를 바라보며 마주선다.
"그 전에, 노리코의 일은 용서해 주세요. 노리코는 저를 감싸주고 있던 것 뿐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시마코는 벌서 니죠 노리코를 감싸안고 있었다. 벌이 내려진다면 모두 자기가 받겠다면서...
"아니요, 벌이라면 제가....!"
니죠 노리코가 튀어나오려 한다.
그때, 레이님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무언가 귓속말을 건넨다. 아마 잠시만 가만히 있어달라고 부탁하신 걸테지.
모처럼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또 다시 나서버리면 귀찮아 지니까...
"누구보다 경건한 크리스천인 네가 어째서....?"
여기 모인 누구나가 숨을 죽이며 이어질 한 마디를 기다린다.
"제 집이 불교의 사찰이라서 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당당히 선언하는 시마코는, 말로 다 표현할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 누군가를 구한 사람의 얼굴이다.
'드디어 말해버렸어....'
이렇게 일이 잘 풀리리라곤 전혀 믿지 못했었는데...
중간중간, 계획된 시나리오에서 조금씩 벗어나긴 했었지만 결과만 좋다면야 만사형통!
시마코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편해진 발걸음으로, 니죠 노리코 곁으로 다가갔다.
"일부러 감싸 주었는데 미안해."
"시마코씨!"
두 사람은 서로 껴안는다.
어딘지 차가워 보이던 저 니죠 노리코가, 마치 애들처럼 소리내어 울고 있다.
'아....'
어째서일까?
유미의 양 볼에도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린다.
'앗- 안되는데....'
한 방울이 두 방울로, 이어서 계속 넘치는 눈물이 턱을 지나서 성당 바닥에 무늬를 만든다.
함정을 판 사람이 울다니 바보같아, 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멈출수가 없다.
짝짝짝짝-
"이제야 말해 줬구나, 시마코."
사치코님이 박수를 치면서 그렇게 전한다.
"정말이지 올해 여흥꺼리는 정말 피곤했다니까."
목을 어루만지는 로사 페티다.
"에?"
껴안고 있던 시마코와 니죠 노리코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아름다운 자매애를 보여준, 시마코와 노리코양에게 성대한 박수를!"
마이크를 통해 사치코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해일처럼 밀려와 성당 안 구석구석에 울려 퍼진다. 마치 유명 콘서트장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누가 무슨 말을 한대도 'Yes!'라고 해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다.
시마코의 고백이 현실이었든 여흥꺼리였든 상관없는 거다. 그냥 감동을 받았어, 그렇게 생각하는 애들이 대다수일테지.
"이걸로 좋았던 걸까요?"
유미는 누군가에게 묻지 않을수가 없었다.
"좋았던게 아닐까?"
사치코님이 웃으며 대꾸해 주신다.
"그런가... 그런 거겠죠?"
어지됐건 묵주는 무사히 시마코 손 안에 되돌아 갔다.
시마코의 얼굴이 고민꺼리를 해결한 사람의 그것이 되어가는게 뚜렷히 보인다.
그 장면을 츠타코가 사진으로 남겼다.
마미는 이제 학생수첩을 아예 꺼내놓고 속기에 열중이다.
각자의 신입생 환영회가 끝나려던 그때,
"토우코-!"
니죠 노리코의 분노에 휩싸인 외침이, 성당의 높다란 천정 안을 끝없이 울리고 있었다.

 

 

6

 

"뭐야- 끝나버린 거야?"
성당을 나오자마자 사토 세이님을 만났다.
"끝나버리다니요?"
사치코님, 레이님, 요시노 그리고 유미 네명은 동시에 되묻는다.
"뭔가 있었던거 아니였어? 시마코에 대해서 중요한 이벤트 같은거 말야."
"이벤트라니요..."
그거랑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강의 끝나고 서둘러 와봤는데 말야... 아무래도 늦은 것 같네."
졸업했으니까 나한테 기대지 말아달라더니-!
신경쓰여서 직접 오는걸 보아하니 역시 마음 속이란건 편리하게 칼로 자를수 있는건 아닌건가 보다.
그것도 누군가가 부른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뛰어오다니 말이야...
"신경쓰이세요?"
"글쎄...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말 이겠지? 뭐.. 너희들 얼굴을 보니까 일이 잘 풀린 것 같네."
"신경써주신 덕분에요."
사치코님은 따로 비난하려던건 아니셨겠지만, 뒤에서 아무 것도 하지않은.. 아니 하지못한 세이님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맞아 맞아, 괜찮으면 이대로 같이가지 않을래? 내가 한턱 낼께."
조용히 성당으로 다가가 문 뒷쪽에 숨고는, 청소를 하고있는 시마코의 모습을 보고 온 세이님이 그런 제안을 해온다.
"고맙습니다만 요시노랑 전 다음 기회에.."
레이님과 요시노는 오늘 밤, 매월하고있는 '하세쿠라-시마즈' 양가의 저녁식사 예약이 되어있다는 얘기였다.
"그래? 아깝네- 그래서? 빨간 장미들 쪽은?"
이번엔 이쪽으로 시선이 향해져 왔다.
세이님과 함께 왁자지껄하는 것도 즐거워 보이겠지만 유미는 지금, 왠지 사치코님과 둘이서만 있고싶은 기분이었다.
"저희들도 실례할께요. 죄송하지만 이제부터 유미랑 이번 휴일 계획을 세워야 하거든요."
유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사치코님은 세이님의 제안을 거절해 버린다.
휴일 계획을 세운다는 약속 같은 건 한적이 없었으니, 사치코님도 둘만 있고 싶으신 거라고 혼자
해석한 유미는 조금쯤 우쭐한 기분이 든다.
"헤에-"
세이님은 휘파람을 분다.
"이거 외로운데? 후배들한테 버려졌으니 우리반 애들한테라도 위로를 받아야겠어. 앗! 거기 야마다- 역시 나도 같이 갈래-!"
대학 건물에서 걸어오는 한무리의 사람들을 향해 외치고는 '그럼 다음에' 라는 한마디를 남기며 뛰어가 버린다.
세이님이 합류하자 그 인원들 속에서 '꺄아-' 라는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뭐야, 인기있는 거잖아."
"그렇죠?"
"외롭다니... 다 뻥이었어."
뭐... 원래 저런 사람이었어.
이 자리의 모두가 그렇게 납득을 해버린다.
"레이하고 요시노의 가방은 교실에 두고왔지? 그럼 이대로 귀가해도 좋아."
고등부 건물 입구에서 사치코님은 그렇게 말하며 요시노가 들고있던 메다이 바구니를 건네 받았다.
"이건 유미랑 내가 장미의 저택에 가져다 놓을 테니까."
"그러고보니 둘이서 휴일 계획을 세운다고 했었지? 유미는 좋겠네-."
"아, 예...."
레이님께 허둥지둥 끄덕여 주며 미끄러져 떨어지려던 종이박스를 '영차' 하고 들어 올린다.
'휴일 계획'이란건 세이님의 제안을 거절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사치코님 본인이 모른체하고 
얘기를 진행시켜 버린 탓에 정정해야 하는건지 어떤건지 모르겠다.
"좀 기다려 주세요-."
장미의 저택 앞까지 오자, 사치코님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유미에게 묻는다.
"무언가 갖고싶은 물건은 있니?"
"예...?"
갑자기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야?
"화이트 데이 선물하고 생일선물이 겹쳐져 버렸지만, 네게 무언가 선물을 해줄께."
"옛-?!"
이거야말로 깜짝 이벤트다!
"여러가지 있어서 늦어져 버렸지만, 나도 신경쓰고 있었단 말이야."
미안한듯 속삭이는 사치코님은 정말로 귀여워 보인다.
"그럼.. 이번에도 반나절 데이트는 어떠세요?"
휴일 계획을 세운다던 거짓말이 생각나서 유미가 제안해 본다.
"좋아, 어디에 가고싶니?"
"......놀이동산."
놀이동산에서 데이트라니, 아무래도 분위기가 좀...
그래도 물어봐 주셔서 대답한 거고 정말로 가고싶기도 한데다 어차피 말하는건 공짜니까.
그 얘기를 듣자 사치코님은 조금 고민하시더니,
"88열차에는 안탈꺼야."
뭐.. 조건이 붙긴 했다지만, 그 말은 분명한 승낙의 뜻이었다. 벚꽃 같은건 이제 어디에도 피어있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