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국 이야기 (彩雲國物語) 1권 -4장- 암약하는 그림자의 손

제4장. 암약하는 그림자의 손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게.”

그렇게, 그 사람은 말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아마, 검은 옥 같은 눈으로 그 사람을 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로 조정당하는 인형처럼 부자연스럽게 손을 잡고—그 온기에, 말랐을 터인 눈물이 흘렀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 살겠다. 그것이, 목표가 되었다.

약속을 지켜준 그 사람. 원하는 것은 모두 주었다. 말할 수 없는 최후의, 그리고 가장 바라는 소원을, 엿보았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 이번에는 내가 이루어줄 것이다.

 

 

****

 

 

수려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류휘는 살짝 일어났다. 손으로 더듬어 베갯머리 근처를 탁탁 쳤다. 희미하게 불룩한 것을 확인하고, 이불 아래로 손을 넣어 그것을 끄집어 냈다.

“…향주머니…”

류휘는 그것을 주머니에 간수하고 침대를 내려갔다. 평소처럼 방을 걸으며, 집안을 샅샅이 뒤지듯이 이곳 저곳을 보며 돌아다녔다. 손으로 더듬지도 불을 켜지도 않았지만, 그 발걸음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침대의 안쪽까지 손을 뻗은 후, 이번에는 붙여진 종이 인형을 발견했다.

어떻게 보아도 불길한 그 종이 인형을 하늘하늘 흔들고, 그것도 가슴에 간수했다.

그날 밤, 그는 다른 곳에서도 세개의 짚 인형을 필두로, 향로로부터 향목을 끄집어내고, 책상 안쪽에서 면도칼을 떼어낸다든지, 빗 상자를 들어 빗과 화장도구를 부지런히 천으로 닦는다든지, 정말 바지런하게 일했다. 마지막에는, 소하에게 받았다는 은다기를 달빛에 비추어 잘 살펴보았다.

류휘의 눈이 날카롭게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은잔을 닦기 시작했다.

닦으면서, 침대에서 건강하게 잠든 소리를 내고 있는 수려를 슬쩍 보았다.

어리고 귀여운 잠든 얼굴에 류휘는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그는 회수한 오늘의 여러가지 <전리품>을 보고, 눈썹을 모았다.

“…슬슬, 시작인가?”

 

 

***

 

 

어째서인지 최근 물건이 잘 없어지는 기분이 들어—라고 수려는 생각하고 있었다.

양가집 규수라면 이런 것은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수려는 평소의 버릇으로 주변의 것에는 바짝 신경을 쓰고 있었다. 모든 것을 파악해, 쓸데없이 사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검소한 절약의 제1보니까 말이다.

그 수려의 날카로운 안광은, 무엇인가 자질구레한 것들이 사라져 가는 것을 한발 빨리 잡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묘한 것은, 이상한 형태로 그것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아니, 돌아온다고나 할까---?

“….이것을, 나에게?”

남장군은 미소를 띄우며 향주머니를 주었다. 젊은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있는 물건이라며.

“수려님같이 젊은 아가씨에게 딱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푹 잠들 수 있답니다.”

한쪽 눈을 찡긋하고 덧붙인다. 화려한 용모의 미남자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장수에게는 벼루 상자를 받았다. 벼루와 붓 등 필기도구 전부가 갖추어져 있다.

“---확실하게 노력하셔요. 당신은 상당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은을 뿌린 나전세공의 걸작품이었다. 장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찬사인 <상당히>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선물해 주었기 때문에, 그를 은근히 학문의 스승으로 존경하고 있는 수려는 날아 올라가는 기분이었지만, 잘 생각해보면 요 사이, 벼루 상자가 막 사라져있었다. 

이런 식으로, 무엇인가 사라진 것이 새로운 물건이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수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더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 건에 대해서 수려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경쓰이는 것---그것은.

“….저기, 정란.”

수려는 정란과 둘이서 사아(四阿)로 갔다. 류휘는 조의에 나가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는 없다.

“예?”

“정란, 혹시 우림군에서 괴롭힘 당하고 있는 거 아냐?”

“…..에?”

멍해진 정란과 반대로, 수려는 진지한 눈을 했다.

“실력도 좋고 얼굴도 멋지고, 생각해보면 트집잡히지 않을 리가 없잖아. 우림군에 들어가고 나서 앞머리를 내린 것도, <얼굴이 잘생겨서 기분이 나빠지잖아>하고 멋대로 선배들에게 트집 잡히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냐? 뭐하면 내가 남장군에게 말해줄게.”

“저, 저기 아가씨, 그런 일은 전혀 없어요.”

“그럼, 뭐지? 다른 것을 고민하고 있는 거야?”

십년 이상 사귀어 왔다. 정란이 수려의 상태를 한눈에 보고 알 수 있는 것처럼, 수려도 어느 정도 그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요즘, 정란은 생각에 빠져있는 일이 많았다.

정란은 깜짝 놀란 듯 얼굴을 들고,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졌습니다, 아가씨에게는. 하지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단치 않은 일이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려는 한숨을 쉬고, 돌로 된 탁자에 볼을 댔다. 싸늘한 감촉. 수려는 그 자세 그대로 정란을 올려다 보았다.

“…..저기, 정란.”

“예.”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줘. 나 전혀 의지가 안될지도 모르지만, 정란이 고민하는 걸 보고 있는 것은, 싫으니까. 그러니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하지 말고, …내가 항상 정란에게 푸념해 발산했던 것처럼, 나를 마음껏 이용해 주고 말해줘.”

“아가씨…”

“하지만, 분명 안되겠지.”

수려는 볼을 반대로 바꾸었다.

“정란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걸. 정말, 나는 어떻게든 해서 쌓인 빚을 갚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빚을 갚지 못한다는 것은 최악이다.

한숨을 내쉬는 수려에게, 정란은 미소를 띄었다. 아쉬운 듯한 태도로, 수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지 않아요. 벌써 갚고 계신 걸요.”

“…..에?”

“아가씨의 활기찬 모습이, 저에게는 최고의 즐거움이니까요. 언제나와 같은 아가씨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저도 기운을 차릴 수 있어요.”

“….정말?”

“정말입니다.”

정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아가씨를 보고 있으면, 어떻게든 될거야, 라는 기분이 들어요. 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기력은 아가씨로부터 얻고 있습니다.”

수려는 팔을 올린 채 양손을 꼬아, 손등으로 턱을 괴었다.

“…..그럼, 이번에도?”

예, 하고 끄덕거린 정란은, 언제나의 미소를 띄었다.

“제가 어두워져 있으니, 아가씨까지 어두워지는 것 같으니까요.”

“그래. 가장 신경이 쓰였어. 왜냐하면 정란은 항상 가난뱅이 제비를 뽑잖아.”

“….가난뱅이 제비, 입니까?”

“하지만 항상 자신의 일을 뒤로 미루잖아. 그것을, 바라고 있는 우리들도 나쁘지만, 항상 나와 아버님을 우선으로. 절대 자신을 소홀히 하는 걸. 우리들은 정란이 소중한데.”

“그것은 다릅니다.”

정란은 킥킥 웃었다.

“어르신과 아가씨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장 우선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전혀 가난뱅이 제비 같은 게 아닙니다. 그것이 기뻐요.”

“가난뱅이 제비 체질….”

“그것도 다릅니다. 그 이외의 것이지요, 저는 결국 자기 맘대로지요?”

빙그레 웃었다. 그것은 언제나의 정란의 미소라서, 수려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가장>이라고 하는 것은, 달리 무언가 마음을 쓰고 있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아-, 응. 뭐, 신경을 쓰인다고 할까, 이상하다고 할까?”

그리고 수려는 기묘한 분실물에 대해 이야기 했다.

 

 

“<장수의 오늘의 한화휴제>는 “흑랑”에 대한 것인가?”

평소처럼 오후 강의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던 주영은, 뒤돌아 본 정란을 보았다.

“선왕의 심복 부하라고 일컬어지는 환상의 암살집단 “바람의 늑대”를 통솔했다고 하는 남자---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에 와서는 전설이 된 대단한 실력의 암살자 “흑랑”의 이야기는 나도 듣고 싶어.”

가서 들어도 돼? 라고 웃는 얼굴로 묻는 주영에게, 정란도 웃는 얼굴로 아니오, 라고 대답했다.

“…..<아니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주영은 눈썹을 조금 올렸다. ----주영은 송태전과의 시합을 보고 난 후에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고, 정란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깨어졌던 것일까?

주영의 눈이 재미있다는 듯 빛났다.

“…….흥? 뭐지?”

“그 이전에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남장군은, 주상으로부터 무언가를 하사받으셨습니까?”

“아아, 자주색 꽃창포를, 장수와 받았어.”

“그렇습니까?”

정란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옷 속에서 편지 같은 것을 꺼냈다.

“그렇다면, 남장군께, 이것을.”

주영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받아 들고, 편지를 펼쳐 대강 훑어 보았다. 잠시 후, 주영은 시선만으로 정란을 보았다. 미소를 띄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웃고 있지 않았다.

“…..나도 하나 묻겠어.”

주영은 편지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너도 자주색 꽃창포를 받은 거냐?”

평상시와 같은 것 같지만, 다른 웃음을 띄우면서, 정란은 아니오, 라고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

 

 

“청온공자---인가?”

소태사의 중얼거림에, 차태보는 뒤돌아보았다.

“무슨 일인가? 갑자기.”

이미 수십년을 사귀었기 때문에, 차태보는 소태사와 송태전과 있을 때만은 부드러운 말투가 조금 변했다. 마치 젊었을 때 그대로인 듯 대수롭지 않게.

“….차의, 8년 전의 왕위 다툼의 때를 기억하고 있나?”

“잊었을 리가 있는가?”

“그때, 7가문 중에서 홍, 남 양가만이 분쟁에 가담하지 않았지.”

“비꼬는 건가? 그것은?”

차태보는 쓴웃음을 지었다.

차씨 가문도, 선왕의 공자 중 한 사람을 옹립하여, 권력다툼에 가담하였다. 차태보는 당시 그런 짓을 하는 어리석은 친족들을 멈추려고 했지만, 권력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무리들에게 도리와 이성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때 7 가문 속에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친족에게 절대로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엄명을 내린 것은 7 가문에서도 첫째, 둘째를 다투는 세력을 지닌 홍, 남의 두 가문뿐이었다.

차씨 가문은 차태보 자신이 분쟁에 가담하지 않았던 것과, 그가 선왕의 밑에서 세운 여러 개의 공적의 덕으로 그 후에도 어느 정도 권한을 허락받았다. 현재의 차씨 가문은 바로 차태보의 덕으로 지속된 것이다.

“그 때, 사실 남씨 가문은 유배되었던 제2공자를 옹립하려고, 행방을 찾아다녔던 듯 하네.”

차태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두뇌명석한 남씨 가문의 당주들이 그런 생각을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군.”

“주영의 형들은 그렇게 생각했소. 그렇게 생각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그 영감이야.”

“아아, 노해라고 하는 녀석인가? 나이가 드니 어리석은 생각을 했나 보군.”

“그런 말 하지 말게. 나도 비슷한 나이니까.”

그리고 소태사는 우거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청온 공자도 머리 나쁜 외조부 덕을 확실히 봐서 유배된 건가? ….침울해지는군.”

“자네는 그렇게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겠지? 주영의 형들은 어떻게 했지?”

“아아. 노인의 말을 매정하게 내치지 않는 것 정도로 적당히 수색했다는 듯 하군. 하지만, 희생자가 된 것은. 궁중에 출사 전인 방탕한 자식인 주영이었다고.”

“….그러고 보니 그 때는 국식도 수년간 중지되었지? 대혼란이었으니까.”

“평온했다면, 주영도 장수도 몇 년 일찍 국식에 합격했을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해도 그 대혼란의 시대에 당치도 않은 수색으로 동생 하나를 내쫓은 형들도 대단하군. 역시 7 가문 제일의 명문 남가를 떠받치는 젊은이들 아닌가? 잔인한 사람들이군.”

“….자네는 잔인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면 끝이지. ----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는 건가?”

“음, 자취가 도중에 사라져버렸다는 듯 싶어. 뭐, 발견했다고 해도 후견이 되어 왕위 다툼에 참전하는 따위 바보 같은 짓, 형들이 허락하지 않았을 테지만.”

소태사는 차를 홀짝거리고, 창 가까이에서 하늘을 올려보았다.

“….공자 중에서도, 누구보다 우수했었어.”

“아아, 청온 공자가 있었다면, 왕위다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어디에 계시려는지…아니, 살아계시는 지도 모르는 건가.”

절절하게 소태사가 중얼거린 때였다. 갑자기 방문이 기세좋게 열렸다.

뛰어들어온 소녀를 보고, 두 사람의 노사는 깜짝 놀랐다.

“----아니, 수려님!?”

“소태사, 차태보.”

수려는 귀신 같은 형상으로 외쳤다.

“저, 지금 당장 후궁에서 물러가겠습니다!!”

두 사람의 노사는 문자 그대로 사라졌던 것이다.

 

 

“믿을 수 없엇!!”

쫓아온 류휘에게 납치되어, 수려는 간단히 침실에 감금되었다. 화가 나서 자수 바늘을 푹푹 찔러댔기 때문에, 그 공격대상이 된 천은 불쌍하게도 눈깜짝할 사이에 구멍투성이가 되었다.

“하아, 주상이, 바보흉내를…”

감시역인 주취가 차를 따랐다. 수려는 꽉 그것을 움켜쥐고, 단번에 마셔버렸다.

“바보같으니라고 바보같으니라고 바보같으니라곳!”

푹푹푹, 더한층 찔러댔다.

“그 바보왕, 내가 열심인 것을 보고, 재미있어 했을 거얏!!”

----즉 류휘의 <바보 흉내>가 들켰던 것이다.

주취는, 수려의 <본가로 돌아가겠어욧>이라는 말에 몹시 당황한 왕이, 이 침실에 수려를 던져넣고 감금했을 때의 당황했던 모습을 회상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것을, 향령에게서 맡아두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수려를 달래보려고, 주취가 꺼낸 것은.

“어머, 이건-----향료?”

“예. 아마 비전의 향이라던가? 취침 전에 피우면 푹 잘 수 있다고, 합니다. 수려님이 대소동으로, 심하게 마음을 아파하셨으니까.”

수려는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조금 지나치게 놀라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 인사를 해주겠어? 고맙게 사용하겠다고.”

“오늘 저녁은, 혼자서 주무십니까?”

물음을 받자 류휘의 <어두운 곳에서 혼자 있는 것에 대한 공포증>을 떠올리고, 잠시 가슴이 콕콕 찔렸지만, 이번만은 분노 쪽이 우세했다. 수려는 또 한잔 차를 단숨에 마셨다.

“오면 때려서 내쫓을 거예욧.”

그렇게 땅땅거리고, 다시 콕콕 자수 바늘을 찔러댔다.

 

 

“…그 정도로 화낼 줄은 몰랐어.”

류휘는 정원의 한쪽에서 침울해져 있었다, 게다가.

“가짜 부인이라는 건 듣지 못했어….”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수려는 소태사와의 <계약사항>을 전부 털어놓았던 것이다. 즉 자신은 교육계로서 후궁에 들어온 형식만의 귀비로, 기간 만료 후에는 후다닥 철수한다는 계약이었다고. 더욱이 <이미 제가 할 일은 없는 것 같으니 돌아가겠어욧> 라고 했다.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류휘는 이중으로 충격을 받았다.

“뭐, 마지막의 마지막에 말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류휘의 모습을 주시하던 주영이, 풀썩 옆에 앉았다.

“지금이라면 아직 손을 쓸 수 있잖아요?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구요.”

“…..마음의 준비 같은 건….하고 싶지 않아….”

침울해져 있는 류휘의 모습은 아무래도 한 나라의 주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자업자득이다.

“왜, 지금까지 바보 흉내를 내고 계셨지요?”

“…..그쪽이, 수려가 더 마음을 써줄 거라고 생각했어. 함께 공부해준다든지…”

…개냐, 하고 생각했지만, 주영은 그것을 입에도 얼굴에서 떠올리지 않았다.

“주상, 실례지만, 실제로 여자를 안으신 적이 있으시지요? ---그것도 꽤나.”

“……………………… ……………………..어, 어떻게, 알았어?”

“그야, 수려님을 대하는 것을 보면.”

주영은 재미있다는 듯 왕을 보았다.

“어째서, 말씀을 안하시나요?”

“…..거,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

남자밖에 안지 않는다 라고, 가슴을 펴고 공언한 적 같은 건 한번도 없다. 게다가, 남자만이 아니라 여자도 안을 수 있다고, 말해버린다면----아마, 수려는 달아나는 토끼처럼 달아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도 드물지만 여자를 안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가 생기니까.”

“에?”

“여자라면, 아이가 생기잖아.”

“하아, 뭐, 그렇죠. …..그것이 어때서요?”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나중에 귀찮은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소하가, 이제 두번 다시 내란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으니까, 라고 계속하는 류휘에게, 주영은 눈을 크게 떴다.

내란에 의해 다른 공자들은 모두 쓰러졌기 때문에, 왕궁에 남은 직계왕족은 지금은 그 왕 한 사람이었다. 아이가 생겨 귀찮아지기는 커녕, 냉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 조신 일동의 속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찮은 일이 될지도 모르다>와 <내란>. ----대답은 곧 나왔다.

그는, 그대로 왕으로 있을 생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왕좌에는, 어차피 다른 사람이 오를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를 위해서, 그 누군가가 아무런 지장도 없이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그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이를 만들 위험을 피해서, 남색가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만의 하나라도 권위있는 집의 딸을 후궁으로 맞는다면, 만약 아이가 생기지 않더라도 귀찮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방파제로 삼을 셈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 수려가 소태사에 의해 무리하게 보내질 때까지, 어떤 권력자도 후궁에 혈족의 딸을 보내오지 않았다.

원래,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막내 공자였다. 즉위할 때까지 누구도 그의 성벽따위 신경쓰지 않았다. 사실, 중신들 모두가 왕위계승자가 된 후의 밤의 생활로, 그의 기호를 판단하고 있었다. 남색가라는 강한 인상의 덕으로, 왕에게 또 하나의 면이 있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여자도 안을 수 있다, 라는 것을.

(…..꽤, 하잖아.)

지금의 일은, 확실히 왕의 의도대로였다.

그리고, 그가 한결같이 기다리고 있는, 그 “누군가”와는---.

주영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그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주상, 사랑을 하는 것은?”

류휘는 망설이는 것처럼 주영을 보았다. 그건 뭐야? 라고 하는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사랑을 하는 것을 배우기 전에, 몸 쪽만 먼저 배웠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 과정을 알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바라면 곧 몸을 던져오는 자들뿐인 속에서는. 왕족의 총애를 받아, 기뻐하지 않을 시관도 여관도 없을 테니까.

(가엾다면, 가엾구만.)

그러나 그것만은 입으로 가르쳐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뭐, 고민하는 것도 청춘이지. 어째서인지 주영은 형 같은 기분이 되었다. 부비부비 류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성의 취향이 좋은 것은 칭찬해드리지요. 기운내셔요. 그 얼굴을 최대한으로 유효하게 활용한다면, 아직 이길 수 있습니다.”

“……….?”

“자, 일.부.러. 수려님을 화나게 했으니까, 그 나름의 대가는 확실히 받아내지 않으면.”

류휘의 얼굴이 날카로워졌다. 낮게 중얼거렸다.

“…..오늘 건네준, 독의 성분은?”

“도노사와 장수로부터 보고가 왔습니다. 점점 독성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날씨 이야기라도 하는 듯 느긋한 어조였다.

“자수 바늘에서 시작해, 저주의 짚인형 그 외 모든 것에서요. 뭔가 모양새와 상관없다고나 할까,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쪽에서 알아차리기에 딱 좋은 상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상의 솜씨도 상당했습니다만.”

“….예전부터, 그런 것은 일상다반사였으니까.”

주영은 엷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것은, 보통 공자는 스스로 발견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게 하여 죽지않고 살아왔다. 그것이야 말로 높은 자질의 증거.

“이번에 건네주신 것 말입니다.”

내심의 찬탄을, 주영은 결코 말하지 않았다. 

“독의 효과는 여러가지 입니다만, 어느 것도 중독입니다. 저주의 인형은 젖혀두고, 향낭, 향료, 그리고 무엇을 닦았는지 알 수 없지만, 닦은 천에서도 독이 나왔습니다. 수려님에 대한 대책은?”

“매일 밤 술과 차에 몰래 특수 해독약을 섞어 마시게 하고 있었으니까 걱정없어. …팔팔했잖아?”

“무척 화를 내셨지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류휘는 다시 생각난 듯이 침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현실은 잊지않았다.

“…..독의 경로는?”

“출처는 동일합니다. 문서에서의 증거도 파악했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상합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도 빨리 꼬리가 잡힐 만한 것을 선택하다니…”

다른 경로에서 입수했던 것 쪽은, 어떻게 조사해 봐도 도중에 추적 불가능이 되었던 만큼, 매일 밤 계속된 그 서투른 방식에는 머리를 갸웃할 뿐이다.

류휘는 날카롭게 말했다.

“아직, 특정하지마. 다른 자에 대한 조사도 계속해 줘. 그것과 산출해낸 자의 상세한 경력을 나중에 보내줘.”

알겠습니다, 하고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동태는?”

“있습니다. 괜찮아요. 대책은 세워두었으니까요.”

자주색 꽃창포를 받아들여 버렸고 말이지요--- 라고, 장수는 웃었다.

 

 

***

 

 

그날 밤, 후궁을 걷고 있던 장수는 역시, 하고 생각했다.

우뚝 말을 멈추고, 무심코 손 안의 보고 베낀 후궁의 지도를 꽉 쥐었다.

……………………………이것은, 설마.

(……읏…..보고 베낀 지도가 있어서 방심했다.)

----완전히 길을 잃었다. 그러나, 장수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이 내가 보고 베낀 지도대로 걷고 있었는데 길을 잃다니. 이 지도, 잘못된 거 아냐?)

장수는 자신이 절망적인 방향치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16세에 장원급제하여 최단거리의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의 긍지가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장수는 자신에게 비리가 있을 때와, 잘못은 미련없이 인정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은 예외였다. 주영에게 호되게 바보 취급 당했던(이라고 장수는 생각하고 있다)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회랑을 한가로이 걷던 여관과 시관은, 조정제일의 재인으로 이름 높은 장수를 알기 때문에, 선망의 시선을 던져왔다. …그의 자존심에 걸려서라도 길 따위를 물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장수는 당당하게 걷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걷는 길을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누군가가 그대로, 일절 방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더욱더 헤매게 되었다.

그리고 일각 후. 장수는 자존심을 버릴 것인가? 조난사 할 것인가?, 상극의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이제는 자력으로 외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수의 분노는 이미 정점에 달해 있었다.

---여기는 어디야?, 도대체 이렇게 많은 방을 누가 쓰고 있는 거야? 쓸데없이 재목을 쓰고 있는데다, 인건비도 쓸데없이 쓰고 있다. 내가 만일 후궁관할의 내시성으로 가게 된다면, 절대로 즉시 반 정도는 두들겨 부셔서 장작으로 해 나라 안에 무료 배포할 거야. 절대로.

(…..그런데 왜 아무도 다니지 않는 거냐.)

후궁의 (아마) 가장 안쪽이라고 해도, 아무도 없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직무 태만이다.

바로 전에 인건비를 쓸데없이 쓴다고 화냈던 것은 잊고, 장수는 불합리하게도 화가 났다.

멈칫, 발을 멈추었다. 어디에선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당신 뭐예요!”

여자의, 화난 목소리였다. 장수는 그만 얼굴을 찡그렸다. ---이러니까 여자가 싫은거다.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그 목소리가, 장수는 무엇보다 싫었던 것이다.

“그 분이…-----믿어서…….를---주워주었으니까----!”

장수의 직감으로 짚히는 것이 있었다. 곧 띄엄띄엄 목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향했다.

이상하게도 상대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왜 방해하는 거지요!" 

노성이, 돌연 저주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달라졌다.

“그것이 그 분의 소원이라고요!? 나는----도움이…그것을 위해서 라면---!”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중단되었다. 장수는 기분나쁜 예감이 들어, 소리가 들리는 방의 문을 발로 찼다.

안에는 여자가 한 사람, 쓰러져 있었고, 달리 아무도 없었다. 수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여자를 안아 일으킨 장수는 흠칫했다.

이----여자는.

장수는 즉시 소리쳤다.

“아무도 없나! 홍귀비의 방을 살펴라-----!!”

귀비의 방 가까이에 있던 위사들이 안으로 뛰어 들어갔을 때에, 수려의 모습은 아무데도 없었다.

그리고 또, 위사 중에 정란의 모습도 없다는 것을 모두가 눈치챈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