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툭하고 러시아어로 부끄러워하는 옆자리의 아랴 양 <번외편> 3-4

선생님~, 회장과 부회장이 아침부터 러브 코미디 찍어요~
- 3권 BOOK☆WALKER 특전 -

※ 3권의 내용을 보완하는 SS이므로, 본편을 읽은 후에 읽어 주십시오.


학생들이 모여 들기 시작한 세이레이 학원. 그 곳의 학생회실에는, 창문에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을 등지며 업무에 힘 쓰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좋아. 이걸로 동문회와의 협의도 끝났으니까… 이제 이걸 교무실에 제출한 다음, 학교 측의 대답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는걸."
"수고했어. 어찌어찌 해 냈네."
"응…. 공약을 지켜서 한 숨 돌렸어."
그 두 사람은 학생회장인 켄자키 토우야와 부회장인 사라시나 치사키였다. 현 학생회를 대표하는 2인조이자, 교내에서 가장 유명한 커플이기도 했다.
현재 두 사람은 휴일에 치른 동문회와의 협의 내용에 관한 자료를 한창 정리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세이레이 학원의 교복 변경에 관한 제안이다. 토우야가 회장 당선 시에 내건 공약 중 하나다.

"그건 그렇고, 동문회의 고지식함에는 놀랐어. …매 년 더위를 먹고 쓰러지는 학생이 있다고 해도, 좀처럼 동의하지 않더라니깐."
"뭐, 어느 세상이나 연장자는 고지식한 법이거든…. 그래도, 치사키 덕분에 어찌 어찌 해결됐어."
"뭐? 나? …내가 뭘 했어?"
"그게…."
연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토우야는 마음 속으로 '내 옆에서 살기를 팍팍 뿜어 댔잖아' 하고 생각하면서도 솔직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대기업 중역이나 일류 정치가도 속해 있는 동문회 멤버들이 치사키가 뿜는 '됐으니까 잔 말 말고 고개나 끄덕여' 하고 말하는 듯한 살기에 압도 당했지만, 본인이 자각을 못하고 있었다. 토우야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무난한 대답을 입에 담았다.
"…네가 옆에 있어 준 덕분에, 나도 그 사람들을 상대로 당당히 교섭할 수 있었어. 그러니까, 네 덕분이야."
회장 자리에 앉은 토우야가 옆에 서 있는 치사키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멋쩍은 듯이 미소 지으며 토우야를 돌아 보았다.
"토우야…. 아냐, 토우야가 최선을 다한 결과야."
"치사키…."

그대로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두 사람의 주위에서 달콤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요염한 미소를 머금으며 토우야가 앉은 의자를 휙 돌린 치사키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의자의 팔걸이를 움켜 잡았다. 치사키가 자신을 덮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자, 토우야는 의자 위에서 뒤편으로 몸을 젖혔다.
"치, 치사키? 뭐, 뭐 하는 거야. 여기는 학생회실이라고."
"괜찮아…. 아무도 안 와."
"그건… 그렇지만, 학생들의 대표인 우리가 풍기를 어지럽히는 짓을 하는 건 좀…!"
토우야는 허둥지둥 연인을 말리려 했지만, 치사키는 희열에 찬 미소를 머금은 채 얼굴을 내밀었다.
"풍기를 어지럽히는 짓이… 어떤 건데?"
아, 잡아 먹히겠네….
그런 직감이 뇌리를 스친 토우야가 눈을 치켜 뜬 채 각오를 다지려고 한─ 바로 그 때였다.

"앗!"
치사키가 고개를 퍼뜩 들더니, 학생회실의 문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윽! 숙여!"
"어, 우왓?!"
치사키 탓에 몸을 한껏 뒤편으로 젖히고 있던 토우야는 의자 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쪽이야!"
"아얏. 무슨─."
아파 할 사이도 없이, 토우야는 영문도 모른 채 치사키에 의해 책상 아래 편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그리고 치사키도 책상 아래 편으로 몸을 비집어 넣자, 두 사람은 치사키가 토우야를 덮치려는 듯한 자세로 책상 아래 편에 쏙 들어갔다. 그 직후에 학생회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오자, 토우야는 반사적으로 문 쪽을 돌아 보았다.
"왜 그래?"
그 순간, 학생회 서무인 마사치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 뒤를 이어 회계인 아리사의 목소리도 들려 왔다. 아무래도 둘이서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하지만, 토우야는 그 대화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들이 발각된다면 완벽하게 끝장이다.
(아니, 이유는 알겠지만… 우리 둘 다 숨을 필요는 없지 않아?)
애초에 숨을 필요 자체가 없다. 엉큼한 짓을 하려던 것 때문에 찔려서 숨기는 했지만, 그냥 떨어져서 업무를 봤으면 됐을 것이다.
(오히려 이 모습을 저 애들이 본다면 변명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처구니 없음과 약간의 비난을 시선에 담아서 앞을 바라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까운 위치에 연인의 얼굴이 있었다. 그 늠름하면서도 아름다운 얼굴이 서서히 빨개지자, 토우야는 무슨 일인가 싶어 눈썹을 찌푸렸고… 곧, 눈치 챘다.
어중간하게 세워 둔 자신의 다리, 그 무릎에, 치사키의… 탄탄한, 복근이 닿아 있었다. 무릎을 통해 어마어마하게 단단한 감촉이 느껴지자, 토우야도 깜짝 놀랐다.
(뭐, 뭐가 이렇게 탄탄해…! 큭, 나도 질 수야 없지!)
어째선지, 토우야는 연인의 몸에 닿은 남자 고등학생 답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한편, 치사키는 연인의 몸에 닿은 여자 고등학생다운(?) 반응을 보였다.
밀착한 몸을 꿈틀거리더니, 눈가가 촉촉히 젖어 든 얼굴을 토우야 쪽으로 내밀었다. 코 끝이 닿을 듯 몸이 밀착하자, 토우야는 몸을 젖히려 했지만… 그럴 공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목소리를 내는 건 위험하며, 몸을 지탱하는 팔을 움직였다간 자세가 무너지며 소리가 날지도 모른다. 그 결과, 토우야는 연인의 접근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런데, 언제까지 거기 숨어 있을 생각이죠? 회장님, 사라시나 선배."
그 순간에 마사치카의 목소리가 느닷없이 들려 오자, 치사키는 튕기듯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치사키가 뒷통수를 부여잡은 채 책상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걱정과 안도가 반씩 섞인 눈길로 바라보면서, 책상 아래에서 기어 나온 토우야는 후배에게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치사키가 박치기를 날린 부분이 완전히 찌부러졌단 사실은, 눈치 못 챈 척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