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 라우라 에스키벨

마마 엘레나는 티타를 무섭게 한 번 째려 본 후 말을 이었다. 티타는 가족 모두를 무겁게 짓누르던 그 따가운 눈총 아래 기나긴 억압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너에게 청혼을 하러 오는 거라면 아예 그만 두라고 해라. 그 청년이나 나나 괜한 시간만 낭비하는 거니까. 네가 막내딸이라 내가 죽는 날까지 나를 돌봐야 한다는 건 너도 잘 알잖니?"

"하지만 내 생각에는…."

"네 생각은 필요 없다.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몇 세대를 내려오면서도 우리 가문에서 이 관습에 토를 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 딸이 토를 달 수는 없는 일이야."

티타는 고개를 떨구었다. 식탁 위로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처럼 그녀의 운명 역시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 때부터 티타와 식탁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방향을 조금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식탁은 티타가 태어나면서부터 흘린 슬픈 눈물을 받아 내며 그녀와 운명을 함께 해야 했으며, 티타는 이 어처구니 없는 결정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중략)

 

파스쿠알 씨와 페드로는 화를 삭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하면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왜 그랬니, 페드로? 로사우라와의 결혼을 받아들여서 일이 더 난처하게 되었다. 네가 티타한테 맹세했던 사랑은 어디로 간 거냐? 그 맹세를 지키지 않을 셈이야?"

"물론 지킬 겁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와는 절대 결혼할 수 없고, 그녀 가까이에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녀의 언니와 결혼하는 길밖에 없다면 아버지 역시 저와 똑같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사랑 없는 결혼을 하겠다는 거냐?"

"아니에요, 아버지. 나는 티타를 향한 크고 영원한 사랑으로 결혼하는 겁니다."

 

- 1월, 크리스마스 파이 中

 

 

로사우라는 혹시나 하고 의심은 했지만 페드로가 티타를 헤아릴 수 없이 사랑한다는 건 몰랐다. 그러니 나차가 티타 편을 들며 티타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애끓어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차가 티타의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을 앞치마로 닦아 주며 말했다.

"얘야, 이제 케이크를 끝내야지."

하지만 티타의 눈물 때문에 반죽이 묽어져서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티타의 눈물이 말라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두 사람은 서로 꼭 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티타는 눈물이 마른 채로 계속 울었다. 마른 눈물은 양수 없이 출산할 때처럼 아프다는 말도 있다. 그래도 최소한 케이크 반죽은 묽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케이크 속에 바를 잼을 만드는 일이었다.

 

(중략)

 

티타가 식용 색소를 넣지 않을 거냐고 물었을 때 나차는 티타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얘야, 방금 넣었잖아. 이 분홍색이 안 보이니?"

"예…."

"얘야, 그만 자러 가는 게 좋겠다. 캐러멜은 내가 만드마. 끓는 수프는 냄비가 안다지만 너는 내가 알아. 자, 이제 그만 울어. 크림이 너무 묽어져서 못 쓰겠구나. 자, 얼른 가."

나차는 티타에게 여러 번 뽀뽀한 후 부엌 밖으로 밀어냈다. 눈물이 어디서 더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물 때문에 캐러멜이 묽어져 버렸다. 제 상태로 만들려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중략)

 

아무 이유 없이 크나큰 그리움이 느닷없이 밀려들어 왔다. 매 번 다음 결혼식은 자기 결혼식이 될 거라는 환상으로 애써 준비했던 데 라 가르사 가문의 결혼식 피로연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올랐다. 이제 여든 다섯의 나이에 그토록 기다렸던 결혼식이나 피로연을 하지 못했다고 울어도, 한탄해도 다 부질 없는 짓이었다. 그래도 애인은 있었다! 물론 애인은 있었다! 하지만 마마 엘레나가 그 애인을 멀리 쫓아 버렸다. 그 때부터 나차는 남의 결혼식을 보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아무런 불평 없이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 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새삼스럽게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차는 최선을 다해 케이크에 캐러멜을 바른 후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자기 방으로 갔다. 그녀는 밤새도록 울었고 결국 다음 날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 2월, 차벨라 웨딩 케이크 中

 

 

티타는 너무 자기 생각에만 몰두한 나머지,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광경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 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 케이크를 한 입 깨무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에 휩싸였던 것이다. 평소에는 침착했던 페드로도 눈물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남편이 죽었을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마마 엘레나도 조용히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었다. 눈물은 이 괴이한 식중독의 첫 번째 증세에 불과했다. 모든 하객들은 크나큰 슬픔과 좌절감의 포로가 되었다. 결국 하객들은 모두 옛사랑을 그리워하며 안뜰이나 뒤뜰, 화장실로 흩어졌다. 모두 마법에 걸린 것 같았다. 몇몇 운 좋은 사람들만이 제때 화장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마당 한가운데서 단체로 함께 토해야 했다. 케이크를 먹고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티타 한 사람 뿐이었다.

 

(중략)

 

로사우라 역시 구역질을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했다. 어떻게든 메스꺼움을 참아 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로사우라는 친지들과 친구들이 토해 낸 구토물이 웨딩 드레스에 묻지 않도록 애썼지만 안뜰을 지나가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웨딩 드레스는 온통 구토물 범벅이 되었다. 로사우라는 흥건한 강물을 이룬 구토물 위로 몇 미터를 미끄러지면서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녀는 페드로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쳐다보는 앞에서 마치 용암이 터져 나오듯이 토하고 말았다. 로사우라는 자기 결혼식을 망친 이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많이 속상해했다. 그리고 티타가 케이크에 뭔가를 넣었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옆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절대 바뀌지 않았다.

 

- 2월, 차벨라 웨딩 케이크 中

 

 

로사우라는 그토록 오랫동안 정성껏 수놓은 혼수 이불을 당장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밤새 흐느끼며 속상해했다. 페드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첫날밤은 다음 날 치르자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드로가 첫날밤에 대한 의무를 느끼고, 로사우라가 이제는 다 나았다고 감히 얘기를 꺼낼 때까지는 몇 달이 흘렀다. 그제야 페드로는 더 이상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 밤 페드로는 첫날밤을 위해 준비한 혼수 이불이 펼쳐진 침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느님, 이것은 결코 욕정이나 탐욕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을 섬길 아들을 갖기 위한 것입니다."

티타는 그 우여곡절 많은 결혼이 성사될 때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첫날밤이 어떻게 치러졌는지 궁금하지 않았으며, 첫날밤을 결혼식 날 당일에 치렀는지, 다른 날 치렀는지는 더더욱 궁금하지 않았다.

 

(중략)

 

티타는 멍든 상처 때문에 2주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티타가 나차와 짜고 케이크에 구토제를 넣어서 로사우라의 결혼식을 망치려고 계획한 거라고 마마 엘레나가 믿었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벌을 받았던 것이다. 티타는 그 안에 다른 게 들어갔다면 케이크를 만들면서 흘린 눈물밖에 없다고 설명했지만 마마 엘레나를 납득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젠 나차도 그녀 편에서 증언할 수도 없었다. 결혼식 날 티타가 나차를 찾아갔을 때 나차는 양 손에 옛 애인의 사진을 꼭 쥐고 두 눈을 뜬 채 죽어 있었던 것이다.

 

- 2월, 차벨라 웨딩 케이크 中

 

 

티타는 식민지 전 시대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요리 비법을 전수받은 마지막 계승자였다. 그녀는 요리라는 이 신비한 예술을 최고로 잘 표현할 줄 아는 요리사였다. 그래서 티타가 농장의 공식 요리사로 임명되자 모두들 대환영이었다. 티타도 나차를 잃어서 슬프기는 했지만 기꺼이 그 자리를 받아들였다.

나차의 불행한 죽음으로 티타는 아주 상심이 컸다. 나차의 죽음 이후 티타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마치 친엄마를 잃은 것 같았다. 페드로는 티타가 그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티타가 농장의 요리사가 된 지 1년이 되었을 때 장미 꽃다발을 선물하면 그녀에게 많은 위로가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첫 아이를 임신 중인 로사우라는 생각이 달랐다. 그녀는 남편이 장미를 들고 들어와 자신이 아닌 티타에게 주는 것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리며 거실을 뛰쳐나갔다.

마마 엘레나는 눈짓 한 번으로 티타에게 거실 밖으로 나가 장미꽃을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페드로는 그제야 뒤늦게 자기가 겁 없이 괜한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마마 엘레나는 페드로에게 아직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는 눈길을 보냈다. 그래서 페드로는 양해를 구한 후 로사우라를 찾아 나섰다.

티타는 장미꽃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그래서 부엌에 들어왔을 때는 원래 분홍색이었던 장미꽃이 티타의 손과 가슴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티타는 그 장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얼른 생각해야 했다. 장미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난생 처음 꽃을 선물 받았고, 그것도 다름아닌 페드로의 선물이었기 때문에 장미를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었다. 그 때 장미 꽃잎으로 만드는 식민지 전 시대의 전통 요리법을 귓가에 속삭이는 나차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 왔다.

 

(중략)

 

티타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한 다음, 나차가 하던 것처럼 첫 번째 메추리의 목을 비틀었다. 하지만 힘이 너무 약했는지 불쌍한 메추리는 죽지 않고 고개를 한 쪽으로 축 늘인 채 푸드덕거리며 부엌을 뛰어다녔다. 티타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끔찍했다!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하는 경우에는 마음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걸 티타는 깨달았다. 독하게 마음 먹고 단번에 끝내지 않으면 오히려 더 큰 고통만 안겨주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 티타는 마마 엘레나처럼 독한 게 이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경우에 마마 엘레나는 아무런 동정심 없이 단번에 죽였다. 하지만 티타는 예외였다. 티타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티타를 조금씩 조금씩 죽여 왔고, 아직까지도 완전히 죽이지는 않고 있었다.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으로 티타는 메추리처럼 고개가 꺾이고 영혼도 꺾였다. 그래서 티타는 마음을 굳게 먹고, 메추리도 자기와 같은 고통을 느끼기 전에 단번에 죽였다.

 

(중략)

 

페드로가 선물한 장미 꽃잎에 티타의 피가 스며들면서 엄청나게 폭발적인 요리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식구들이 식탁에 둘러앉았을 때에는 약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메추리 요리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살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페드로는 아내의 질투를 자극한 걸로도 모자라, 메추리 요리를 한 입 맛보고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황홀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감은 채 탄성을 질렀다.

"이건 신들이나 먹을 수 있는 황홀한 음식이야!"

마마 엘레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맛난 요리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사위가 한 말 때문에 기분이 상해서 이렇게 말했다. "너무 짜다."

임신 중인 로사우라는 속이 메슥거리고 어지럽다며 세 입 이상 먹지 못했다. 하지만 헤르트루디스에게는 이상한 변화가 일어났다.

헤르트루디스에게 그 음식은 최음제 작용을 일으킨 것 같았다. 다리에서부터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으며, 몸의 가운데 부분이 간질거려서 의자에 제대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헤르트루디스는 진땀을 흘리며 일주일 전 마을 광장에 들어서면서 보았던 혁명군 장교를 떠올렸다.

 

(중략)

 

뭔가 이상한 변화가 일어난 게 틀림 없었다. 헤르트루디스는 티타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티타는 그 곳에 없었다. 물론 티타의 몸은 의자에 똑바로 앉아 있었지만 그녀의 눈은 멍하니 넋이 나가 있었다. 연금술 같은 묘한 작용이 일어나 그녀의 존재 자체가 장미 소스, 메추리 고기, 포도주, 음식 냄새 하나하나 속으로 스며들어 녹아내린 것 같았다. 티타는 그렇게 달아오른 체취를 풍기며 육감적이고 섹시하게 페드로의 몸 속으로 파고들었다.

티타와 페드로는 새로운 소통 방식을 발견한 듯했다. 그 안에서 티타는 발신자, 페드로는 수신자였으며, 불쌍한 헤르트루디스의 몸은 그들의 성적인 메시지가 지나가는 매개체였다.

 

(중략)

 

헤르트루디스는 정말로 몸이 불편해 보였다. 온 몸이 땀 범벅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흐르는 땀방울은 분홍빛이었으며, 그윽하고 달콤한 장미 향을 풍겼다. 헤르트루디스는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서 샤워 준비를 하러 달려갔다.

 

(중략)

 

하지만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몸에 닿기도 전에 불행히도 헤르트루디스는 샤워를 즐길 수 없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어찌나 강했던지 나무 판자가 뒤틀리면서 불이 붙었다. 헤르트루디스는 불길에 휩싸여서 타 죽을까 봐 너무 두려웠던 나머지, 완전히 벌거벗은 채로 샤워장에서 뛰쳐 나왔다.

그 때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장미 향은 멀리, 아주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혁명군과 정복군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던 마을 바깥까지 퍼져 나갔다. 그들 중 유독 한 군인이 출중한 용기 때문에 돋보였다. 일주일 전 피에드라스 네그라스에 도착했을 때 광장에서 헤르트루디스와 마주쳤던 바로 그 혁명군 장교였다.

장밋빛 구름이 주위로 몰려와 그의 몸을 휘감자 잠시 후 그는 마마 엘레나의 농장 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말을 몰기 시작했다. 후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반쯤 죽여 놓은 적을 아무 이유도 없이 내버려 둔 채 전장을 등졌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장소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가야 한다는 절박감밖에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곳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헤르트루디스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향이 그를 인도했던 것이다. 그는 제때 도착하여 들판 한가운데를 뛰어다니고 있는 헤르트루디스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그제야 자기가 왜 그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이 여자에게는 타오르는 뜨거운 열정을 잠재워 줄 남자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이다. 그녀만큼 사랑이 절실한 남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그 같은 남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중략)

 

후안이 너무 빨리 달렸기 때문에 뒤를 따르던 혁명군 부하들은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실의에 빠진 대원들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나중에 그들은 대장이 전투 중에 갑자기 미쳐서 부대를 이탈했다고 보고했다. 역사는 대개 이렇게 써진다. 목격한 증인들의 진술로 이루어지지만 그 진술이 늘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마마 엘레나가 두 번째로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티타는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와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부터 얼른 생각했다. 안뜰 뒤편에서 불이 났다는 말부터 먼저 해야 할지, 헤르트루디스가 벌거벗은 채 혁명군과 함께 말을 타고 떠났다는 말부터 해야 할지. 어느 말부터 어머니에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티타는 자신이 싫어하는 정부군이 무리를 지어 몰려와 샤워장에 불을 지르고 헤르트루디스를 납치해 갔다고 하기로 결심했다. 마마 엘레나는 그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는 속상해서 앓아 누웠다.

 

(중략)

 

불이 난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예전에 샤워장이 있었던 곳에서는 아직도 장미 향이 가득하다. 페드로와 티타가 목격한 장면 역시 그들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영원히 각인되었다. 그 날 이후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는 그 황홀했던 경험을 말없이 되살리는 추억이 되었다. 티타는 언니가 쟁취한 자유를 기리기 위해 매년 그 요리를 준비했고, 메추리 요리 장식에 특별히 정성을 기울였다.

 

(중략)

 

티타는 하늘의 저 수많은 별들 중에서 그 순간 언니가 바라보고 있을 별을 찾고 싶었다. 그러면 언니에게 남아도는 열기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반사되어서 자기를 따뜻하게 데워 줄 것만 같았다.

티타는 이제 세 번이나 접을 수 있을 정도로 커진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요리책을 훑어보며 혹시 빠뜨리고 적지 않은 것은 없는지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요리를 먹은 헤르트루디스가 오늘 집에서 도망쳤다…."

 

- 3월,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티타는 혼자서 몰레 요리를 완성했다. 첸차가 그 소식을 듣자마자 다른 유모를 구하러 즉시 마을로 떠났기 때문이다. 밤이 되어서야 돌아왔지만 유모는 구하지 못했다. 아이는 화가 나서 마구 울어댔다. 우유를 먹여 보았지만 먹지 않았다. 그래서 티타는 나차가 했던 것처럼 차라도 먹여 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그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아이는 티타의 젖가슴을 비비며 젖을 찾았다. 티타는 누군가가 배가 고파서 음식을 찾는데도 먹을 것을 줄 수 없을 때가 가장 참을 수 없었다. 티타는 속이 상해 미칠 것만 같았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급한 마음에 블라우스를 열어 자기 젖을 아이게 물렸다. 젖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하면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기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궁리하는 동안 적어도 아이를 진정시키고 잠잠하게 할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는 허겁지겁 젖꼭지를 물더니 열심히 빨아댔다. 어찌나 세차게 빨아댔던지 처녀인 티타의 가슴에서 젖이 나올 정도였다. 티타는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평화로워지고 허겁지겁 삼키는 소리까지 들리자 설마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그녀의 젖을 먹고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얘긴가? 하지만 티타가 아이를 가슴에서 떼어내자 젖이 뿜어져 나와 흘러내렸다. 티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녀에게서 젖이 나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설명할 길이 없는 초자연적 현상이었다. 아이는 젖을 먹지 못하게 되자 또 울어대기 시작했다. 티타는 얼른 젖을 물리고 아이가 포만감에 평화롭게 잠들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정신없이 아이만 바라보느라 티타는 페드로가 부엌으로 들어오는 줄도 몰랐다. 그 순간 티타는 풍요의 여신 케레스처럼 보였다.

 

(중략)

 

초콜릿 시럽을 아무리 먹어도 로사우라의 젖은 나오지 않았다. 반면 티타는 그 날 이후 로베르토 뿐 아니라 갓난아이 둘은 더 먹일 수 있을 만큼의 젖이 나왔다. 로사우라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티타가 조카 먹이는 일을 도맡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페드로의 도움을 받아 몰래 아이에게 젖을 물렸기 때문에 아이가 뭘 먹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 4월, 아몬드와 참깨를 넣은 칠면조 몰레

 

 

마마 엘레나의 목욕 준비는 마치 무슨 의식 준비 같았다. 목욕물은 마마 엘레나가 가장 좋아하는 향인 라벤더 꽃잎을 넣어 끓여야 했다. 깨끗한 망으로 꽃잎을 떠낸 다음 브랜디 몇 방울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물을 양동이에 담아 하나씩 하나씩 '어두운 방'으로 날라야 했다. 그 방은 집 한 쪽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방으로 부엌 옆에 있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방에는 창문이 없어서 햇빛이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비좁은 문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방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항아리에 목욕물을 부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마마 엘레나가 머리를 감을 때 쓰기 위한 알로에 즙이 담긴 백랍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티타만이 이 의식에 참가에 벌거벗은 마마 엘레나의 몸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은 절대 안 되었다. 그래서 아무도 엿보지 못하도록 이 방을 만든 것이다. 티타는 먼저 어머니의 몸을 씻기고 나서 머리를 감겼다. 그리고 어머니가 따뜻한 물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목욕을 마친 후에 입을 옷을 다렸다.

마마 엘레나가 부르면 티타는 어머니가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얼른 몸을 닦고 따뜻한 옷을 입혀 주었다. 그리고 방이 갑자기 추워져서 체온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기지 않도록 문을 일 밀리만 살짝 열어 놓았다.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줄기 아래서 티타는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 내렸다. 그럴 때면 수증기에서 여러 가지 신기한 모양들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머리카락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빗긴 다음 세 갈래로 땋아 내리면 의식은 끝났다. 티타는 어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만 목욕하는 걸 하느님께 늘 감사드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정말 십자가의 길처럼 고난 그 자체였을 것이다.

 

(중략)

 

사흘 후 그들은 농장을 떠났다.

마마 엘레나가 부엌으로 돌아오자 추억도 멀리 달아났다. 티타는 들고 있던 초리소를 떨어뜨렸다. 어머니 뒤로 첸차가 대성통곡하며 들어왔다.

"울지 마! 우는 꼴 따윈 보기 싫다! 대체 무슨 일이냐?"

"그게 그러니까, 펠리페가 왔는데요…. 죽었대요!"

"누구 말하는 거냐? 누가 죽어?"

"아기 말이에요."

"어떤 아기?"

"어떤 아기겠어요? 마님 손자 말이에요. 뭘 먹어도 다 탈이 났다나 봐요. 그래서 죽었대요!"

티타는 머리 속에서 선반 하나가 뚝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 후에는 그릇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티타는 용수철이 튕겨 나가듯 벌떡 일어났다.

"앉아서 일해! 눈물은 보기 싫다. 불쌍한 것, 하느님의 품 안으로 가길 바라야지. 하지만 하염없이 슬퍼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할 일이 아주 많아. 우선 하던 일부터 끝내고 나서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하지만 질질 짜는 건 절대 안 된다. 알겠니?"

티타는 온 몸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초리소를 만지작거리며 어머니를 무섭게 째려보았다. 그러더니 어머니 말에 복종하기는커녕, 앞에 있던 초리소들을 모두 집어 들어서는 미친 듯이 소리지르며 갈기갈기 찢어댔다.

"자, 어머니 명령대로 하고 있으니까 잘 보세요! 나도 이젠 지쳤어요! 어머니한테 복종하는 데도 지쳤다고요!"

마마 엘레나는 티타에게 다가와 나무 주걱으로 티타의 얼굴을 세차게 후려갈겼다.

"엄마가 로베르토를 죽였어!"

티타는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는 코피를 닦으며 뛰쳐나갔다.

 

- 5월, 북부식 초리소

 

 

티타는 자신을 공포에서 구해 준 그 믿음직하고도 사랑스러운 손길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나중에 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존에게 이 마음은 꼭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침묵을 지키고 싶었다. 마음 속에 정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농장을 떠난 후로 마음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는 이 느낌은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중략)

 

티타는 성큼성큼 안뜰을 가로질러 가 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여든 살쯤 되어 보이는 온화한 인상의 노파가 앉아 있었다. 나차와 아주 많이 닮은 노파였다. 길게 땋은 머리채를 곱게 머리 위로 올리고, 앞치마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있었다. 분명 인디언의 혈통을 이어받은 얼굴이었다. 진흙 냄비에서는 차가 끓고 있었다. 노파는 고개를 들어 티타에게 온화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고 권했다. 티타는 노파가 권하는 대로 했다. 노파는 곧 티타에게 향기로운 차 한 잔을 대접했다.

티타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허브 차의 맛을 최대한 음미하며 천천히 마셨다. 차의 온기와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티타는 한참을 이 노파 곁에 있었다. 노파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 둘 사이에는 언어를 초월한 교감이 이루어졌다.

 

(중략)

 

"인은 상온에서는 산소와 잘 결합하지 않지만 온도가 상승하면 이내 불꽃을 내며 타오르지요. 보세요…."

박사는 수은이 가득 담긴 시험관에 인을 조금 집어넣었다. 그리고 시험관을 촛불에 대고 인을 녹였다. 그런 다음 산소가 가득 담긴 종 모양의 유리관 안으로 인 가스가 조금씩 들어가게 했다. 산소가 종 모양 유리관 윗부분에 있던 인 가스와 만나는 순간 커다란 불꽃이 일었다. 마치 번개가 번쩍이는 듯한 빛을 발했다.

"아시다시피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그보다 더한 것도 있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알려 드릴까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듯한 열기가 피어 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 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 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혼은 육체에서 달아나 자신을 살찌워 줄 양식을 찾아 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을 헤매게 됩니다. 남겨두고 온 차갑고 힘없는 육체만이 그 양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아! 얼마나 맞는 말인가! 티타는 그 누구보다도 그 말에 공감했다.

티타는 불행히도 자신의 성냥이 이미 축축해져서 곰팡이가 가득 슬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제 다시는 그 누구도 불을 지필 수 없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무엇이 자신의 불씨를 일으켜 줄 수 있는지 알고 있는데도 성냥에 불이 붙으려고 할 때마다 불이 가차없이 꺼져 버린다는 거였다.

존이 티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서 차가운 입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장 강렬한 불길이 꺼질 수 있으니가요. 그 결과는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 입김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가 훨씬 더 수월하답니다."

존은 양손으로 티타의 한쪽 손을 감싸며 간단히 덧붙였다.

"축축해진 성냥갑을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이 있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티타의 얼굴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존이 손수건을 꺼내어 다정하게 눈물을 닦아 주었다.

 

(중략)

 

"할머니는 당신처럼 아주 조용하신 분이었어요. 머리를 땋아 올리고 이 화덕 앞에 앉아서 늘 내가 하는 생각을 맞혀 내시곤 했지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도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가르쳐 달라고 마구 졸랐지요. 할머니는 내가 보지 못하게 하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체를 이용해 벽에다가 문장을 적으셨어요. 나는 밤에 그 벽을 바라보면서 할머니가 뭐라고 썼는지 알아맞히려고 노력했지요. 우리도 그 놀이 할까요?"

그 얘기로 티타는 그 곳에서 자기와 함께 있었던 노파가 돌아가신 존의 할머니라는 걸 알았다. 이제는 물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박사는 인 한 조각을 천에 싸서 티타에게 주었다.

"난 당신의 침묵을 깨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 둘만의 비밀로 ㅎ 하고, 당신이 왜 말을 안 하려고 하는지 내가 나간 후에 벽에 적어 주시겠어요? 그럼 내일 당신이 보는 앞에서 알아맞혀 볼게요."

물론 박사는 티타에게 어두운 데서 빛을 발하는 인의 특성을 말해 주지 않았다. 티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존이 이런 속임수를 쓴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티타가 글을 통해서라도 세상과 새로이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존은 티타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박사가 나가자 티타는 인을 집어 들고 벽으로 다가갔다.

존 브라운은 밤에 실험실로 돌아와 벽에 적힌 글씨를 보고 환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반짝였다. 티타는 이 문장으로 자유를 향한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 때 티타는 존의 말을 거듭 생각하며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영혼이 다시 떨릴 수 있을까? 티타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티타는 자신의 정열에 불을 지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 했다. 그 사람이 존일까? 티타는 존이 실험실에서 손을 잡았을 때 온 몸이 짜릿했던 느낌을 떠올려 보았다. 아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다시는 농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이제 더 이상은 마마 엘레나 곁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 6월, 성냥 반죽

 

 

계단을 올라오는 존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매일 반복되는 방문인데도 애타게 기다려졌다. 존은 그녀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함께 있어 주고 이야기를 나눠 주는 게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그에게 말해 줄 수만 있다면. 뛰어 내려가 알렉스에게 친아들처럼 뽀뽀하고, 지칠 때까지 함께 놀아 줄 수 있다면. 계란으로 아무 요리든 만드는 법을 기억해 낼 수 있다면. 뭐든 좋으니 맛난 요리를 먹을 수 있다면…. 다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티타는 음식 냄새를 맡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 집의 음식 냄새는 아니었다. 존이 문을 열더니 소꼬리 수프 한 그릇을 쟁반에 담아 들고 들어왔다!

소꼬리 수프! 티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존의 뒤로 눈물 범벅이 된 첸차가 들어왔다. 수프가 식을까 봐 포옹은 그리 길게 하지 않았다. 티타가 한 입 삼켰을 때 나차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렸을 적에 티타가 아팠을 때처럼, 나차는 밥 먹는 동안 티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마에 계속 뽀뽀해 주었다. 어렸을 때 부엌에서 하던 놀이, 시장에 갔던 추억, 막 만들어 따끈따끈했던 토르티야, 색색가지 살구 씨, 크리스마스 파이, 집, 우유 끓는 냄새, 생크림 빵, 초콜릿, 정향, 마늘, 양파가 나차와 함께 그 곳에 있었다. 티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양파 냄새를 맡자 눈물을 흘렸다. 태어난 이래 한 번도 울어 보지 않은 사람처럼 하염없이 울었다. 나차가 살아 있을 때, 둘이 함께 수도 없이 소꼬리 수프를 만들던 그 옛날과 똑같았다. 그들은 함께 그 때를 떠올리며 웃다가, 요리 만드는 순서를 떠올리며 울었다. 마침내 티타는 요리법을 기억해 냈다. 처음에 양파 써는 게 생각나자 모두 기억이 났다.

양파와 마늘은 잘게 다져서 기름을 약간만 두르고 볶는다. 양파가 익어서 투명해지면 감자, 콩, 토마토 썬 것을 넣고 익을 때까지 볶아 준다.

존이 갑자기 뛰어 들어오는 바람에 티타의 회상은 중단되었다. 그는 계단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 때문에 깜짝 놀라서 쫓아 올라온 것이다.

존은 그게 티타의 눈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첸차와 소꼬리 수프를 축복했다. 그가 온갖 약을 쓰고도 이루어 내지 못한 일을 첸차와 소꼬리 수프가 해낸 것이다. 티타가 드디어 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존은 방해해서 미안하다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 때 티타의 목소리가 나가지 말라고 했다. 6개월 동안 한 번도 들을 수 없었던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존! 가지 말아요, 제발!"

 

(중략)

 

마마 엘레나는 티타를 아무 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 때 티타는 처음으로 마마 엘레나의 시선을 똑바로 응시했고, 마마 엘레나 쪽이 먼저 시선을 거두었다. 티타의 시선에는 이상한 빛이 서려 있었다.

마마 엘레나가 자기 딸을 몰랐던 것이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 상대방을 비난했고, 그걸로 항상 그들을 묶어 왔던 혈육과 복종의 관계는 완전히 깨어져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티타는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돌보려고 했다. 어머니에게 드릴 음식, 특히 소꼬리 수프를 정성껏 준비했다. 자신이 완쾌되었던 것처럼 어머니도 완쾌되었으면 하는 좋은 의도에서 정성껏 요리했던 것이다.

소꼬리를 끓였던 냄비에 감자, 콩과 함께 미리 간을 맞춰 놓은 묽은 수프를 붓는다. 여기에 모든 재료를 다 집어넣고 삼십 분 정도 푹 끓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 다음 불에서 내려 뜨거울 때 먹는다.

티타는 수프를 그릇에 담고, 예쁘게 수놓아서 제대로 풀을 먹인 새하얀 면 냅킨으로 덮은 다음 예쁜 쟁반에 담아서 어머니에게 가지고 올라갔다. 티타는 어머니가 첫 숟가락을 떠먹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길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마마 엘레나는 음식을 이불 위에 내뱉고는 어서 빨리 쟁반을 자기 눈 앞에서 치우라며 티타에게 소리소리 질렀다.

"왜 그러는 거예요?"

"구역질이 나올 것처럼 쓰니까 그렇지. 먹기 싫으니까 가지고 나가! 내 말 안 들리니?"

티타는 어머니 말에 복종하는 대신, 어머니가 자신의 좌절감을 보지 못하도록 뒤돌아 섰다. 혈육 관계가 있고 없고를 떠나 사람이라면 저렇게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채 독살스럽게 친절을 물리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티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프가 기가 막히게 맛있는 것은 확실했다. 들고 올라가기 전에 그녀가 직접 맛까지 보았던 것이다. 정성껏 요리를 준비했으므로 맛이 이상할 수는 없었다.

티타는 어머니를 돌보겠다고 농장으로 돌아온 자신이 정말이지 한심하고 어리석게 느껴졌다. 마마 엘레나가 어떻게 되든 걱정 않고 그냥 존의 집에 머물렀어야 했다. 하지만 양심 상 그럴 수가 없었다. 어머니에게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머니가 죽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죽을 날은 아직도 멀어 보였다.

 

- 7월, 소꼬리 수프

 

 

티타는 빈소를 지키는 동안 어머니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티타는 처음으로 어머니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중략)

 

티타는 증오심만 가득한 저 입으로 누군가에게 열정적으로 키스를 했으리라고, 혹은 지금은 노랗게 된 저 볼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던 날 밤에 발갛게 상기되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마 엘레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티타는 너무나 늦게, 그것도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략)

 

신발을 신고 깨끗한 시트 사이에 숨은 것은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죽은 후 그 함 안에 들어 있던 편지를 읽고 나니, 자기가 벌을 받았던 것은 옷장 속에 숨었기 때문이 아니라 함 안의 내용물을 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티타는 병적인 호기심을 느끼며 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일기장과 호세 트레비뇨라는 남자가 마마 엘레나에게 보낸 편지 한 묶음이 들어 있었다. 티타는 편지들을 날짜별로 정리했고 비로소 어머니의 진짜 사랑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호세는 어머니의 운명의 남자였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흑인의 피가 흘렀기 때문에 마마 엘레나와 결혼할 수 없었다. 호세는 호세 트레비뇨 1세와 아름다운 흑인 여자 사이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였다. 마마 엘레나의 부모는 자기 딸과 혼혈아가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라서 그 즉시 티타의 아버지인 후안 데 라 가르사와 마마 엘레나를 강제로 결혼시켜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도 마마 엘레나가 호세와 몰래 편지를 주고받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리고 편지만 주고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편지 내용에 의하면 헤르트루디스는 후안이 아닌 호세의 딸이었던 것이다.

마마 엘레나는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호세와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어두운 발코니에 숨어서 호세를 기다리던 날 밤, 그녀는 어떤 낯선 남자가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몰래 나타나 아무 이유도 없이 호세를 습격해 죽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마마 엘레나는 그 끔찍한 슬픔을 겪은 후 모든 걸 체념하고 합법적인 남편 곁에서 살기로 했다. 오랫동안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냈던 후안 데 라 가르사는 티타가 태어나던 날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딸의 탄생을 축하하러 술집에 들렀다가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에 의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그 끔찍한 소식을 들은 순간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세상을 하직했다.

티타는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 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그 편지들을 어찌 해야 좋을지도 알 수 없었다. 불태울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도 감히 태우지 못한 것을 자기가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티타는 발견했던 그대로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장례식 내내 티타는 진심으로 어머니를 위한 눈물을 흘렸다. 일생 동안 자신을 억압하고 거세시켰던 여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좌절된 사랑을 겪어야 했던 여인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티타는 마마 엘레나의 무덤 앞에서 자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 7월, 소꼬리 수프

 

 

냄비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김과 티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한데 뒤섞였다.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는 빵 반죽의 이스트처럼 부풀어 올랐다. 마치 조그만 그릇에 담긴 이스트가 그릇 밖으로 흘러넘치는 것처럼, 티타의 몸 구석구석까지 점점 더 화가 치밀어 올라서 코며 귀며 몸에 있는 구멍 하나하나에서 분노가 수증기처럼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페드로와의 말다툼, 조금 전의 사고와 부엌일은 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극히 부분적인 원인을 제공했을 뿐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며칠 전에 로사우라가 한 말이었다. 그 날 티타와 존, 알렉스는 모두 언니 방에 모여 있었다. 알렉스가 한 집에서 살던 티타와 떨어져 살게 되자 티타를 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존이 왕진 올 때 알렉스를 데리고 왔던 것이다. 알렉스는 요람에 있는 에스페란사를 들여다보다가 아기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래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그 또래 아이들처럼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나도 아빠처럼 결혼하고 싶어. 하지만 나는 이 아기하고 할 거야."

모두 알렉스가 한 엉뚱한 말 때문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로사우라가 알렉스에게 아기는 죽는 날까지 자기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는 말을 할 때 티타는 머리카락이 모두 쭈뼛 곤두서는 것 같았다. 로사우라만이 그런 비인간적인 관습을 이어 가겠다는 끔찍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중략)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 왜 이렇게 불쾌한 생각을 해야만 하는 건지 티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경이 왜 그렇게 날카로운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페드로의 저기압이 전염된 건지도 몰랐다. 페드로는 농장에 돌아와 티타가 존과 결혼할 생각이라는 걸 알고부터는 계속 저기압이었다.

 

(중략)

 

티타의 마음은 말 그대로 '초콜릿을 끓일 물' 같았다. 그 이상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비둘기 우는 소리까지도 그녀를 짜증나게 했다. 지붕 아래 비둘기장에서 들려오는 비둘기 소리가, 집에 돌아오던 날에는 그녀를 그렇게 기쁘게 하더니 지금은 팝콘 튀길 때처럼 머리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중략)

 

존이 티타에게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 줌으로써 약혼이 성립되었다. 티타는 손가락에서 빛나는 반지를 한참 동안 들여다 보았다. 반지의 광채가 조금 전에 벌거벗은 그녀를 바라보던 페드로의 눈에서 빛나던 광채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그 때, 어렸을 때 나차가 가르쳐 준 오토미 족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햇살이 이슬 방울을 반짝이며 비추네

이슬 방울이 사라졌네

당신은 내 눈 안에서 빛나네

나는, 나는 살아가네…

 

- 8월, 참판동고

 

 

티타는 초콜릿 모양을 만들면서, 심각한 고민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주현절이 서글플 정도로 그리웠다. 그 때는 동방박사들이 티타가 원하는 선물은 가져오지 않고, 마마 엘레나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선물을 가지고 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그녀가 바라던 선물을 받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몇 년 전에야 그 사연을 알게 되었다. 나차가 오랫동안 모은 월급을 가지고 가게 진열대에서 본 '꼬마 극장'을 티타에게 사 줬던 것이다. 그것은 조명 역할을 하는 석유 램프를 비롯해 벽에다 화면을 비추는 기계로 영화 비슷한 효과를 냈다. 원래는 '주마등'이라는 이름이었지만 '꼬마 극장'이라고 불렀다. 아침에 일어나 그게 자기 신발 옆에 있는 것을 보고 티타는 얼마나 행복해했던가! 언니들과 함께 작은 유리 조각을 통해 비치는 연속된 장면들을 바라보고, 상황에 따라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 많은 오후를 얼마나 즐겁게 보냈던가! 나차와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나차! 나차에게서 나던 파스타를 넣은 수프 냄새, 칠라킬레스(멕시코에서 아침 식사로 즐겨 먹는 음식. 잘게 썰어서 튀긴 토르티야 위에 토마토 소스와 칠레고추, 치즈, 크림 등을 섞어 끼얹은 요리), 참푸라도(초콜릿에 옥수수 가루, 우유, 설탕 등을 넣고 걸쭉하게 끓인 음료), 몰카헤테 소스(칠레고추, 양파, 고수를 몰카헤테(화산암으로 만든 돌절구)에 빻은 다음 토마토, 아보카도와 섞어 만든 소스), 생크림 빵, 이젠 먼 과거가 되어 버린 것들이 그리웠다. 나차가 만든 소스나 아톨레, 차, 나차의 웃음, 이마의 주름, 나차만의 방식으로 땋아 주던 머리채, 밤에 잘 때 이불을 덮어 주던 것, 아플 때 돌봐 주던 것, 티타가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던 모습, 초콜릿을 젓던 모습, 모두가 그리웠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그 때로 돌아가 그 시절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와서 그 때와 같은 흥분과 열정으로 주현절 빵을 만들 수 있다면! 옛날처럼 언니들과 함께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주현절 빵을 먹을 수만 있다면! 한 남자를 두고 로사우라와 싸우기 전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녀가 평생 결혼할 수 없다는 운명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헤르트루디스가 집을 뛰쳐나가 창녀촌에서 일하게 되리라는 걸 몰랐던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주현절 빵에서 인형을 꺼낸 사람의 소원이 기적처럼 이루어질 거라고 곧이곧대로 믿었던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삶은 그녀에게 모든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삶은 그녀에게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고, 그것도 몇 가지밖에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이 싸움은 그녀 혼자서 해야만 하는 싸움이었으며, 티타에게 삶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중략)

 

티타는 빵 안에 집어넣기 전에 도자기 인형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전통적으로 1월 6일에 빵을 잘랐을 때 그 안에 숨겨 두었던 도자기 인형을 찾아 낸 사람은 아기 예수가 봉헌된 것을 기념하는 2월 2일 성촉절 날 파티를 열게 되어 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전통은 그녀와 언니들 간의 경쟁처럼 여겨졌다. 운 좋게 인형을 찾아 낸 사람은 정말 운이 좋은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날 밤에는 인형을 두 손으로 꼭 쥐고 무슨 소원이든 빌 수 있었다.

티타는 인형의 섬세한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 보며 어렸을 때 소월을 비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었던가 생각했다. 그 때는 불가능이라는 게 없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다 바랄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 9월, 초콜릿과 주현절 빵

 

 

"로사우라 언니도 알고 있니?"

"아니. 로사우라 언니가 진실을 알게 되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진실, 진실! 티타,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진짜 진실이야. 진실은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예를 들어, 네 경우에는 너와 페드로가 진심으로 사랑하는데도 로사우라 언니가 아랑곳하지 않고 일부러 페드로와 결혼했다는 게 진실이야. 내 말이 틀렸니?"

"그래. 하지만 지금은 내가 아니라 로사우라 언니가 아내야."

"그게 뭐가 중요한데? 그 결혼이 페드로와 너의 진실한 감정을 바꿔 놓았니?"

"아니."

"정말 아니지? 물론 당연히 아니겠지! 너희의 사랑은 내가 여태껏 본 사랑 중에서 가장 진실한 사랑이야. 페드로와 너는 진실을 묵과하는 실수를 범했어.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마.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어. 어머니하고는 얘기가 통하지 않았지만 로사우라 언니는 달라. 로사우라 언니는 진실을 알고 있고, 그 진실을 이해해야만 해. 어쩌면 이미 마음 속으로는 이해했을지도 몰라. 그러니 페드로와 너는 진실을 밝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중략)

 

부엌에 있는 헤르트루디스는 트레비뇨 상사에게 별의별 명령을 다 내렸는데도 자기가 원하는 시럽을 완성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헤르트루디스는 그렇게 중요한 일을 트레비뇨에게 맡긴 것을 후회했다. 그녀가 1파운드가 얼마나 되는지 부대원들에게 물었을 때, 트레비뇨가 1파운드는 460그램이고 1쿠아르티요는 0.25리터라고 얼른 대답했기 때문에 그가 요리에 대해 많이 아는 줄 알았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1파운드는 453.6그램, 1쿠아르티요는 약 0.5리터이다.

사실 트레비뇨가 그녀가 맡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헤르트루디스는 그가 부대 안의 스파이를 색출했던 때를 떠올렸다.

스파이의 정부였던 매춘부가 낌새를 알아채자 스파이는 자기를 밀고하기 전에 가차 없이 그 매춘부를 총으로 쏴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헤르트루디스가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다가 다 죽어가던 매춘부를 발견했던 것이다. 매춘부는 스파이가 누군지 찾을 수 있는 단서 하나를 간신히 내뱉었다. 배신자의 사타구니에 거미 모양의 빨간색 반점이 있다는 거였다.

헤르트루디스가 부대원 모두를 조사할 수는 없었다. 괜한 오해를 살 뿐만 아니라 잡기도 전에 스파이가 눈치 채고 미리 도망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트레비뇨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하지만 그에게도 쉬운 임무는 아니었다. 그가 남자들의 사타구니 사이를 들여다 보고 다닌다면 그 때는 헤르트루디스보다 더 심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트레비뇨는 살티요 시에 도착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살티요 시에 도착하자마자 트레비뇨는 그 즉시 그 곳에 있는 창녀촌들을 모두 돌아다니며 아무도 모르는 기술을 사용해서 그 곳의 창녀들을 모두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트레비뇨가 그녀들을 귀부인처럼 대하며 왕비가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한 것이 가장 주효했다. 그는 창녀들과 사랑을 나눌 때 시를 낭송하며 그들을 아주 예의 바르고 점잖게 대했다. 그래서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그의 덫에 걸려들어 혁명을 위해 일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배신자를 찾아내고 창녀들과 함께 덫을 놓기까지는 사흘 이상 걸리지 않았다. 배신자는 싸구려 금발 머리 창녀 '허스키'의 방으로 들어왔다. 문 뒤에서는 트레비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신자가 들어오자 트레비뇨는 발길로 걷어차서 문을 닫고는 전례 없이 가혹하게 그를 때려 죽였다. 그리고 그의 숨이 끊어지자 칼을 꺼내 고환을 도려냈다.

헤르트루디스가 총 한 방으로 간단하게 해치우지 않고 왜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는지 이유를 묻자 트레비뇨는 복수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했다. 옛날에 사타구니에 거미 모양의 빨간색 반점이 있는 남자가 그의 어머니와 누이를 강간했던 것이다. 누이는 죽기 전에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가족의 명예도 함께 회복했다. 이게 트레비뇨가 그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저지른 잔인한 행위였다. 그 외에는 그는 살인할 때조차 항상 품위 있고 우아했다. 그는 항상 명예를 중히 여기며 일을 처리했다. 스파이를 잡은 것 말고도 트레비뇨는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사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영원한 사랑은 헤르트루디스 뿐이었다. 트레비뇨는 몇 년 동안 헤르트루디스를 정복하려고 무진장 공을 들였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래도 헤르트루디스가 다시 후안과 만나기 전까지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후에는 헤르트루디스를 영원히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녀에게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는 충실한 개처럼 늘 그녀 뒤를 지키며 섬길 뿐이었다.

 

(중략)

 

티타는 밀이나 콩, 자주개자리(자줏빛 꽃이 피는 콩과의 식물)의 씨앗은 자기 모습이 완전히 일그러지고 바뀌는 것도 아랑곳 않고 계속 싹을 틔운다고 생각했다. 이제 티타는 씨앗이나 곡물들이 새 삶을 주기 위해 자기 몸을 터뜨려 가며 껍질을 벌여 물을 깊이 빨아들이는 게 놀랍고 존경스러웠다. 씨앗이나 곡물들은 자기 몸 속에서 첫 번째 뿌리 끝이 삐죽 튀어나오는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의 원래 모습이 망가지는 것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새싹을 당당하게 세상에 보여주었다. 티타는 자신도 그런 단순한 씨앗이었더라면 하고 바랐다.

 

(중략)

 

"떠나야 할 사람은 어머니예요. 어머니가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데 지쳤어요. 제발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둬요!"

"네가 양갓집 규수답게 행동하기 전까지는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다. 아니면 최소한 정숙하게라도 굴든지!"

"정숙하게 행동하는 게 어떤 건데요? 어머니처럼 행동하는 거요?"

"그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게 바로 그거예요! 어머니도 불륜으로 딸을 낳지 않았던가요?"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넌 지옥에 떨어질 거다!"

"어머니보다 더한 데는 가지 않겠어요."

"입 닥쳐! 도대체 네가 뭔 줄 알고 이러는 게냐?"

"나는 나예요! 원하는 대로 자기 삶을 살 권리를 가진 인간이란 말예요. 제발 날 좀 내버려 둬요! 더 이상은 참지 않을 거예요! 나는 어머니를 증오해요! 항상 증오해 왔다고요!"

티타가 그 말을 마치자마자 마마 엘레나는 마술처럼 영원히 사라졌다. 위풍당당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더니 조그마한 빛이 되었다. 유령이 사라짐에 따라 티타의 몸도 점점 안도감에 젖어 들었다. 배의 부기와 젖가슴의 통증도 점차 사라졌다. 그녀의 몸 가운데 근육들도 긴장이 풀리면서 생리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며칠이나 뒤늦게 나온 생리로 티타의 고민은 줄어들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임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 10월, 크림 튀김

 

 

로사우라는 티타가 에스페란사를 위해 준비한 이유식을 가지고 부엌에서 나갔다. 티타에게 이보다 더 심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로사우라는 어떻게 해야 티타의 마음이 가장 많이 아픈지를 잘 알고 있었다.

에스페란사는 티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였다. 티타가 느낀 뼈저린 고통이란! 티타는 손으로 마지막 토르티야 조각을 뜯으면서 언니가 땅 밑으로 꺼져 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로사우라는 그런 벌을 받아 마땅했다.

티타가 로사우라와 말다툼을 벌이는 내내 계속해서 토르티야 조각을 잘랐기 때문에 이제는 아주 작은 부스러기가 되어 있었다. 화가 잔뜩 난 티타는 토르티야 부스러기를 접시에 담아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닭들에게 던져 주었다.

 

(중략)

 

안뜰에서 암탉들이 난리 법석을 피우는 통에 티타는 더 이상 생각에 잠겨 있을 수도 없었다. 닭들이 미쳤든지, 아니면 싸움에 맛을 들인 게 분명했다. 닭들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마지막 토르티야 조각을 차지하려고 서로 부리로 쪼아댔다. 거칠게 공격하면서 정신없이 사방을 뛰어다니고 날아다녔다. 그 중에서도 제일 사나운 암탉 한 마리가 닥치는 대로 다른 암탉들의 눈을 쪼아대는 바람에, 에스페란사의 하얀 기저귀에 피가 튀었다. 티타는 깜짝 놀라 물 한 양동이를 퍼부어서 싸움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하지만 닭들의 성질을 더 돋우어 싸움의 강도만 높여 놓은 셈이 되었다. 닭들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서로 정신없이 쫓아다녔다. 곧 그들은 자기네들이 만들어 낸 광란의 추격에서 스스로 헤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닭 털과 피, 흙먼지가 뒤섞여 휘몰아치면서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켰고 닭들조차도 그 회오리 바람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었다. 회오리 바람은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는데, 가장 가까이 있던 에스페란사의 기저귀부터 제일 먼저 집어삼켰다. 티타는 기저귀 몇 개라도 건져 보려고 다가갔다가, 오히려 그 회오리 바람에 휘말려서 바닥에서 몇 미터 위로 붕 떴다가 정신없이 세 바퀴를 돈 다음 안뜰 저편에 감자 자루처럼 나가 떨어지고 말았다.

티타는 공포에 질려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회오리 바람에 휘말린다면 닭들이 눈을 쪼아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닭들로 인한 회오리 바람이 점차 거세지더니 잠시 후에는 안뜰 바닥에 깊은 웅덩이가 파였다. 그리고 닭들이 그 안으로 모두 사라져 버렸다. 땅이 닭들을 집어삼켜 버린 것이다. 이 싸움에서 털이 몽땅 뽑히고 애꾸눈이 된 암탉 세 마리만이 간신히 살아 남았다. 기저귀는 단 한 장도 건지지 못했다.

 

(중략)

 

티타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콩 요리 준비하던 걸 마치려고 했다. 하지만 콩을 불 위에 올려놓은 지가 벌써 몇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제대로 삶아져 있지 않아서 티타는 깜짝 놀랐다.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타말을 준비할 때, 싸우면 타말이 익지 않는다고 했던 나차의 말이 떠올랐다. 타말이 화가 나면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익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타말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익을 수 있도록 노래를 불러 줘야 한다고 했다. 티타는 자기가 로사우라와 싸워서 콩들이 화가 난 거라고 미뤄 짐작했다. 티타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콩들에게 노래를 들려 주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손님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은 티타가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티타는 두 눈을 감고 '그대를 본 순간부터 나는 행복했지. 그대에게 내 사랑을 바치고 영혼을 잃었지….' 라는 가사의 왈츠를 부르기 시작했다. 페드로와 어두운 방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물 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그의 뜨거운 손길이 피부 밑으로 파고드는 순간 살이 다 타서 녹아 내릴 것만 같았다. 혈관 속에서는 피가 요동치며 들끓었다. 심장은 열정적으로 쿵쾅거리며 터질 것만 같았다. 격렬했던 열정이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지친 영혼도 더할 나위 없는 포근함에 휩싸였다.

티타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콩 국물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국물이 안으로 스며들어서 콩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티타는 눈을 뜨고 콩 하나를 꺼내어 다 익었는지 살펴 보았다. 콩은 아주 제대로 삶아졌다.

 

(중략)

 

"존, 결혼을 취소하는 게 낫겠어요."

"왜죠?"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어요."

"이제는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모르겠어요."

존의 얼굴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지자 티타는 더 이상 얘기하기가 힘들었다. 존은 곧 평정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당신이 떠나 있는 동안 내가 항상 사랑해 온 남자와 관계를 맺어서 순결을 잃었어요. 그러니 이젠 당신과 결혼할 수 없어요."

존이 한참 침묵을 지킨 끝에 티타에게 물었다.

"나보다 그를 더 사랑하나요?"

"대답 못하겠어요. 나도 모르겠어요. 당신이 이 곳에 없을 때는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당신을 본 순간 모두 바뀌었어요. 당신 옆에서는 편안하고, 든든하고, 차분해져요. 하지만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당신한테 이런 얘기를 하게 되어서 정말 미안해요."

눈물 두 방울이 티타의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 내렸다. 메리 숙모가 티타의 손을 잡고는 매우 감격한 듯 영어로 얘기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이 감격해 우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아름다워요! 나도 결혼할 때는 그렇게 많이 울었어요."

존은 그 말이 티타의 울음보를 터뜨려서 상황이 더 걷잡을 수 없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숙모의 말에 동의하는 듯 환한 미소를 머금고는 손을 뻗어 티타의 손을 잡고 말했다.

"티타, 당신이 뭘 했든 나는 상관 없어요. 본질적인 게 바뀌지 않았다면 살면서 어떤 행동을 하든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내 생각은 당신이 한 말에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당신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인생의 동반자가 될 남자가 나인지 아닌지는 잘 생각해 봐요. 당신의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며칠 내로 결혼식을 올립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가 제일 먼저 페드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고 당신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할 거요."

티타는 존의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의 말에는 그의 성격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존이 자신의 경쟁 상대가 페드로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티타는 존이 그렇게 뛰어난 직관력을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존은 떠날 때 티타의 손에 키스하면서 말했다.

"당신에게 부담은 주고 싶지 않아요. 단지 당신이 제 곁에서 행복할 거라는 확신만은 당신에게 주고 싶습니다."

"나도 알아요."

물론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그들의 미래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을 결정을 내리더라도 존이 그 결정을 존중해 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11월, 칠레고추를 곁들인 테스쿠코식 굵은 강낭콩 요리

 

 

티타는 식탁 위에 조금 남아 있던 호두를 마저 까면서 언니를 생각했다. 로사우라가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쌍한 언니가 죽은 지도 1년이 지났다. 이 기간 동안에는 언니에 대한 조의로 종교적인 행사는 일체 미루었다. 언니의 죽음은 정말 이상했다. 로사우라는 평소처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곧장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에스페란사와 티타는 식당에 남아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페드로는 로사우라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침실은 식당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티타와 에스페란사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침실 문이 닫혀 있는데도 로사우라의 방귀 소리가 들려 왔지만 페드로는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치 끝나지 않을 것처럼 평소보다 훨씬 더 길게 들리자 기분 좋지 않은 이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중략)

 

페드로는 걱정이 되어 두 사람의 방 사이에 있는 문 옆으로 가서 노크를 하고는 로사우라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페드로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로사우라는 입술이 보랏빛이 돼서 퉁퉁 부은 몸으로 두 눈을 휑하게 뜨고 넋을 잃은 채 마지막 호흡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존은 급성 위경련이라고 진단했다.

 

(중략)

 

페드로와 티타는 최대한 솜씨를 발휘하여 멋지게 춤을 추었다. 티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식 이후 22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에게서는 세월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서른 아홉의 나이에도 방금 딴 오이처럼 싱싱하고 상큼했다. 그들이 춤추는 모습을 바라보는 존의 눈길에는 애정과 체념이 섞여 있었다. 페드로가 자신의 볼을 티타의 볼에 부드럽게 스쳤다. 티타는 자기 허리를 잡고 있는 페드로의 손길을 그 어느 때라도 뜨겁게 느꼈다.

"우리가 맨 처음 이 노래 들었을 때 기억해?"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 날 밤 나는 당장 당신에게 청혼하고 싶은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 당신에게 나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다시 이렇게 청혼하게 될 때까지 22년이란 세월이 흘러야 할 줄은 정말 몰랐어."

"진심이에요?"

"물론이지! 당신이 내 아내가 되기 전에는 죽을 수 없어. 당신과 함께 하얀 꽃이 가득한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꿈을 늘 꿔 왔지. 물론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바로 당신이고 말이야."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고요?"

"물론! 아무도 당신을 막지 못할 거야! 우리가 결혼하면 당신과 아이를 갖고 싶어. 아직 늦지 않았어, 안 그래? 이제 에스페란사도 우리 곁을 떠날 테니 우리도 곁에 있어 줄 누간가가 필요해."

티타는 페드로에게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렸다. 처음으로 행복에 겨워 흘리는 눈물이었다.

 

(중략)

 

에스페란사는 알렉스의 눈길이 자기 몸에 닿은 순간 마치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넣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다고 티타에게 말했다. 그 때 티타는 알렉스와 에스페란사가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알았다.

로사우라는 그것을 막기 위해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다. 처음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드러내 놓고 반대했다. 페드로와 티타가 에스페란사 편을 들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정말로 살벌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로사우라는 페드로와 티타가 계약을 어겼으니 공정치 못하다며 큰 소리로 자신의 권리를 고집했다.

에스페란사 때문에 싸운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싸운 것은 로사우라가 에스페란사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했을 때였다. 로사우라는 학교에 다니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에스페란사의 유일한 의무는 영원히 엄마를 돌보는 것이기 때문에 수준 높은 지식은 아무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대신 피아노와 노래, 춤을 배우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재주를 익히면 살아가면서 아주 유용하다는 거였다. 우선 에스페란사가 로사우라와 함께 즐겁고 재미있는 오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고, 둘째로 사교 무도회에서 돋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서 상류층에서 늘 대접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페드로와 티타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오랜 대화를 가진 끝에 로사우라를 설득했다. 에스페란사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려면 제대로 노래 부르고, 춤 추고, 피아노를 치는 것 말고도 흥미롭게 대화를 잘 이끌어 갈 줄 알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이다. 로사우라는 마지못해 에스페란사를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로사우라가 에스페란사를 학교에 보낸 이유는 에스페란사가 즐겁고 흥미롭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 외에도 피에드라스 네그라스 사회의 상류층과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에스페란사는 교양을 갈고 닦기 위해 제일 좋은 학교에 들어갔다. 한편 티타도 나름대로 중요한 것을, 부엌에서 알게 된 인생과 사랑의 비밀을 에스페란사에게 가르쳤다.

마침내 로사우라를 설득해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알렉스가 등장할 때까지는 별다른 논쟁이 없었다. 하지만 알렉스가 등장함으로써 에스페란사가 남자를 사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로사우라는 페드로와 티타가 무조건적으로 에스페란사를 지지하는 것을 보고는 노발대발이었다. 로사우라는 자기 선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서 전통에 따라 자신에게 부여된 권리, 즉 죽을 때까지 딸이 자기를 보살펴야 한다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암사자처럼 싸웠다. 소리 지르고, 발버둥 치고, 악을 쓰고, 토하고, 필사적인 위협을 가했다. 로사우라는 처음으로 계약을 위반하고 페드로와 티타에게 악담을 퍼부어 댔다. 그 외에도 그들이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다며 대놓고 으르렁거렸다. 집은 살벌한 전쟁터로 돌변했다. 쾅쾅 문 닫는 소리가 일상이 되었다. 다행히 이 싸움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양편으로 나뉘어 격렬하고도 무시무시한 싸움을 벌인 지 사흘 만에 로사우라가 심각한 소화 불량으로, 죽음의 진짜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알렉스와 에스페란사의 결혼을 성사시킨 것은 티타에게 있어서 가장 큰 승리였다. 티타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에스페란사를 바라보며 더할 나위 없이 자랑스럽고 뿌듯해했다. 에스페란사는 너무나도 총명하고, 너무나도 지적이고, 너무나도 행복하고, 너무나도 능력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너무나도 참하고, 여러 의미에서 너무나도 여자다웠다. 웨딩 드레스를 입고 알렉스와 함께 「젊음의 눈동자」에 맞춰 왈츠를 추는 에스페란사는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증략)

 

하객들 모두 너무나 즐거운 모습이었다. 이번 결혼식과 불미스러웠던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때는 하객들 모두가 체해서 난리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와는 정반대로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를 입에 넣는 순간 크나큰 슬픔과 좌절감을 느끼는 대신, 헤르트루디스가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먹었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했다.

하객들은 모두 음탕한 시선으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양해를 구하고는 얼른 자리를 떠났다. 모두 떠나 버리자 신랑 신부도 빨리 가방을 챙겨서 떠날 수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고마워했다. 그들 역시 얼른 호텔로 가고 싶었던 것이다.

티타와 페드로도 그런 느낌이 들었을 때는 농장에 존과 첸차, 그들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 농장 일꾼들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곳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격렬한 사랑을 나누었다. 몇몇 사람들은 피에드라스 네그라스와 이글 패스 사이의 다리 밑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도로변에 대충 급한 대로 주차시켜 놓고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되는 대로 아무 데서나 사랑을 나누었다. 어디든 상관 없었다. 강이나 계단, 욕조, 벽난로, 오븐, 약국 판매대, 옷장, 나무 꼭대기도 가리지 않았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듯 알아서 잘 대처했다. 그 날은 인류 역사 상 가장 많은 창조가 이루어진 날이었다.

한편 티타와 페드로는 성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그 힘이 워낙 강해서 성욕은 그들의 피부를 뚫고 밖으로 나와 열과 특이한 체취로 발산되었다. 존이 이 사실을 눈치 채고 그 곳에서 자신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티타는 그가 혼자 떠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존은 그녀가 거절했을 때 다른 사람을 찾았어야 했지만 재혼하지 않았다. 존이 떠나자마자 첸차도 자기 고향에 다녀오겠다며 허락을 구했다. 며칠 전에 첸차의 남편이 건물 공사 일로 고향에 갔는데 갑자기 남편이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던 것이다.

페드로와 티타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달콤한 신혼 같은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자유롭게 사랑을 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무에게도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임신하지 않기 위해, 상대방의 몸 속에서 쾌락에 떨며 소리지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며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게 옛날 일이 되었다.

 

티타는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단지 자기가 너무나도 격렬한 절정에 올라 두 눈을 감고 있는데도 모든 게 밝게 빛나고, 자기 앞에 환한 터널이 나타났다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티타는 언젠가 존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주 강렬한 흥분을 느껴서 우리 몸 안에 있던 성냥들이 모두 한꺼번에 타오르면 강렬한 광채가 일면서 평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 그 이상이 보이게 될 겁니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잊어버렸던 길과 연결된 찬란한 터널이 우리 눈 앞에 펼쳐질 거고요. 그 곳은 우리가 잃어버린 신성한 근본을 다시 찾으려고 손짓할 겁니다. 영혼은 축 늘어진 육체를 남겨 둔 채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할 테고요…."

티타는 흥분을 간신히 억눌렀다. 티타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을 몇 번이고 더 만끽하고 싶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티타는 거친 호흡을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때 마지막으로 후다닥 떠나는 비둘기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 왔다. 이 소리 외에는 오직 두 사람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심장 고동 소리는 아주 격렬했다. 페드로의 심장이 그녀의 가슴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 고동이 멈추었다. 끔찍한 침묵이 방 전체에 퍼졌다. 페드로가 죽었다는 걸 티타가 알게 될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따.

페드로와 함께, 그녀의 마음 속 불길이 다시 타오를 가능성도 죽어 버렸다. 페드로와 함께 성냥들도 모두 떠나 버렸다. 티타는 지금 그녀가 느끼는 열기도 그걸 지탱할 연료가 없으면 차츰 식을 거라는 걸 알았다.

 

틀림없이 페드로는 환한 터널이 펼쳐진 그 황홀한 순간에 죽었을 것이다. 티타는 자신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게 못내 후회되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테니 그 빛을 다시 보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티타는 이제 혼자가 되어, 처절할 정도로 혼자가 되어 영원토록 안개 속을 헤매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자신의 근원으로, 페드로 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밝혀 줄 불을 인위적으로나마 켤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내야만 했다. 하지만 우선은 온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이 끔찍한 추위부터 잠재워야 했다. 고독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긴긴 밤에 떴던 커다란 담요를 찾아 뒤집어 쓰기 위해 티타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다. 그 담요는 3헥타르나 되는 농장 전체를 뒤덮고도 남았다. 몸 안에 많은 성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티타는 성냥갑 안에 들어있던 성냥들을 하나씩 집어 삼켰다. 티타는 성냥을 한 개비씩 씹을 때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페드로와 함께 했던 가장 격렬한 순간을 떠올려 보려고 했다. 페드로에게서 처음으로 뜨거운 눈길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손길이 스쳤을 때, 처음으로 장미 꽃다발을 선물 받았을 때, 첫 키스를 나누었을 때, 처음으로 애무했을 때, 처음으로 뜨거운 관계를 가졌을 때를 떠올렸다. 티타는 결국 원하던 바를 이루었다. 그녀가 씹고 있던 인과 격렬했던 추억이 부딪히자 드디어 성냥에 불이 붙었던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시야가 밝아 오면서 터널이 다시 그녀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터널 입구에서는 페드로가 환한 광채에 휩싸인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티타는 주저하지 않았다. 페드로에게 달려가 긴 포옹을 나누고 한참 동안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다시 절정에 오른 사랑을 느끼며 잃어버린 에덴을 향해 함께 떠났다.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불길에 휩싸인 페드로와 티타의 몸에서 환한 불꽃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불꽃이 담요에 옮겨 붙으면서 농장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동물들은 화재를 피해 제때 피신했던 것이다! 어두운 방은 격렬한 분화구와도 같았다. 돌덩이와 재가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하늘 높이 치솟은 돌덩이는 색색가지 황홀한 불꽃을 내며 폭발했다. 근처에 살던 주민들은 알렉스와 에스페란사의 결혼식이 끝난 후에 불꽃놀이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불꽃놀이가 일주일이나 지속되자 사람들은 호기심에 농장 근처까지 다가갔다. 몇 미터나 되는 재가 농장 전체를 뒤덮었다.

 

나의 엄마인 에스페란사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농장의 잔해 속에서 이 요리책 하나만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내가 물려받은 이 요리책의 요리법 하나 하나에는 사랑이 깃들어 있다.

사람들 얘기로는 그 잿더미 아래에서 갖가지 인생이 꽃을 피웠기 때문에 그 토양이 일대에서 가장 비옥해진 거라고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 곳에서 나는 맛난 과일과 야채를 마음껏 먹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른 후 엄마는 그 곳에 작은 아파트를 지었고, 나의 아빠인 알렉스는 아직도 그곳에 살고 계신다. 오늘은 내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아빠가 우리 집에 오실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파이를 준비하고 있다. 엄마는 매년 크리스마스 파이를 만들어 주시곤 했었다. 엄마…! 엄마가 만든 음식 냄새와 맛이 너무나도 그립다! 음식을 만들면서 엄마와 나눴던 대화,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크리스마스 파이가 너무 그립다! 내가 만든 크리스마스 파이는 왜 절대 엄마 것처럼 나오지 않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파이를 만들 때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도 정말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티타 이모할머니처럼 양파에 민감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티타 이모할머니는 누군가 그녀의 요리법으로 요리를 하는 동안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 12월,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

 

 

【작품 해설】

영혼에 주문을 거는 요리와 사랑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라우라 에스키벨의 첫 장편 소설로 33개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적으로 45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라우라 에스키벨은 첫 소설을 발표하기 전 시나리오 작가 및 아동 작가로 활동했고, 이 소설 역시 「구름 속의 산책」을 감독한 전 남편 알폰소 아라우 감독이 영화화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원제목인 'Como agua para chocolate'는 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리 상태나 상황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작품이 국내에서는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소개되었고, 그 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라는 매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에 이 책의 제목도 영화 제목을 따르기로 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연금술사의 주문처럼 "양파는 아주 곱게 다진다." 라는 문구로 부엌과 문학이라는 신비한 세계의 문을 활짝 열어 준다. 이 소설은 성(性)과 음식이라는 오묘한 관계를 통해 티타와 페드로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작가는 음식이 지닌 풍부한 감각을 통해 독자의 은밀한 감성과 욕망을 건드려 에로틱한 상상력을 부추긴다. 오감을 열어 풍만한 감각의 세계인 음식을 즐길 때 우리 인간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 에로틱한 정경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막내딸은 독신으로 남아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돌봐야 한다는 가족 전통을 고집하는 마마 엘레나 때문에 티타와 페드로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서로 안타깝게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멕시코 전통 요리의 향긋한 냄새와 맛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되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죽음 너머까지 이어진다.

 

작가는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나 호두 소스를 끼얹은 칠레고추 요리를 통해 끓어오르는 듯한 강렬한 사랑을 맛깔스럽게 표현한다. 이 소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최음제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신비한 세계와 현실 세계를 다양한 언어로 묘사한다. 이 소설에서 요리법은 페미니즘 담론의 또 다른 표현이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즘 문학도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을 전제한 상태에서, 억압적인 가부장제 하에서 수난을 겪는 여성의 상황을 증언하고 여성 자신의 위치를 재평가하여 정체성을 회복한다는 목표를 설정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페미니즘 문학에서 부엌이라는 공간은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남성들의 외부 세계와 분리된 폐쇄적인 공간으로 묘사되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사 활동은 소모적인 것으로, 그리고 그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되었다. 이렇듯 부엌은 오랜 세월 사회적으로 소외된 여성이라는 주체가 존재하는 상징적인 장소였고, 요리는 여성에게 주어진 의무에 불과했다. 그러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는 남성 중심 문학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던,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단어들과 상세한 묘사로 이른바 '요리 문학(literatura culinaria)'이라는, 페미니즘 문학이 애호하는 하나의 원형을 만들어 냈고 지금까지 거의 사용되지 않던 부엌과 요리라는 테마를 문학적 담론에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와 아울러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 금기시되어 오던 성적 담론, 특히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성적 표현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도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 부엌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여성의 시각에서 보면 신비로우면서도 남성들에게는 금지된 왕국으로 보르헤스의 우저적인 도서관처럼 다양한 공간들로 이루어진 열린 세계지만, 남성의 시각으로 보게 되면 복종으로 일관된 폐쇄된 공간일 수도 있다. 가부장적인 역할을 맡은 어머니 마마 엘레나는 남몰래 혼자 간직해야 하는 엄청난 과거 때문에 애써 사랑이란 감정을 외면하고, 티타를 낳은 후 젖이 마르면서 그녀의 인생도 함께 메말라 간다. 어머니의 사랑으로부터 외면당한 티타는 부엌에 갇혀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티타는 자기만의 은밀하고 신비스러운 세계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집에만 갇혀 지내는 언니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새장 안에 갇혀 자란 새가 새장 문이 열려도 두려움에 떨며 날지 못하는 것처럼 열린 세계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불륜으로 태어난 헤르트루디스만이 티타가 해 준 음식을 먹고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의 폭발을 느껴서 집을 떠나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혁명군 장군으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는 애절한 욕망에 불타는 티타와 페드로의 몸을 거쳐 헤르트루디스에게서 폭발한다. 그들이 먹은 음식은 티타의 욕망의 대상인 페드로가 티타에게 선물한 장미로 만든 것이고, 요리법은 저 세상에 있는 나차가 알려 준 것이다. 그리고 메추리는 마마 엘레나에게 머리와 영혼이 꺾인 또 다른 티타로, 티타는 그 요리법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사라지게 할 요리를 만들어서 자신의 욕망을 분출한다. 티타는 이 요리를 통해 자신의 기나긴 고통, 영혼까지 꺾인 서글픔, 어렸을 때부터 목구멍에 걸려 있던 미지근한 계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다. 단호하게 메추리의 목을 비틀어 죽여야 하는 이 요리법은 끔찍한 희생을 치른 후 쟁반이라는 제단 위에 올려지는 사랑의 공물이다. 하지만 결혼하도록 운명지어진 또 다른 자매는 첫날 밤 신부의 은밀한 부분만 살짝 비치는 이불을 덮은 채 자유를 저당잡히고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

티타는 음식을 통해서 평등을 위해 싸우고, 행복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전통을 깨기 위해서 싸우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위해 싸우고, 목소리를 갖기 위해 싸운다. 또 헤르트루디스는 멕시코 혁명이라는 남성 중심적 요소에서 억압되어 있던 여성을 해방시켜 사회 변화 과정에서 능동적인 여성으로 변화되었다. 작가는 헤르트루디스를 통해 혁명이라는 무장 투쟁은 물론, 계층 간의 싸움, 인종 간의 싸움도 극복하게 만들었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는 부엌이라는 우주 공간 이외에 시간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티타는 현재를 참고 버티기 위해 과거로 도피한다. 과거의 경험들은 그렇게 현재의 순간에 맞설 수 있는 커다란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이다. 티타는 페드로와 언니의 결혼식 날 자신을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에게 맞서서, 어렸을 때 동네 사내아이들과 빨리 헤엄치기 내기를 해서 1등 했던 기억과 폭죽에 놀란 말을 진정시켰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당당한 미소를 머금는다. 이렇듯 티타는 자유롭고 당당한 미래를 위해 부엌에 있는 음식 재료들과 시간에 주문을 걸어 향수와 추억, 잃어버린 것들이 가진 엄청난 힘을 발산시킨다. 또한 티타는 이승 뿐 아니라, 저승의 죽은 자들에게서도 사랑의 비법과 음식 비법, 민간 요법을 전수받는다. 이승과 저승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티타는 추억이 지배하는 현재에 살고 있는 반면, 존의 할머니와 나차는 미래를 지배하는 과거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들은 '새벽빛'의 성냥 이론과 나차가 켜 놓은 촛불과 함께 티타의 몸에서 현실로 실현되어, 페드로의 몸과 티타의 추억을 통해 무한대의 터널로서 활짝 열리게 된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성과 음식이라는, 당시로서는 참신한 주제로 새로운 페미니즘 문학을 구축했다. 너무 가볍다는 평과 지나치게 여성적이라는 평도 없진 않지만 이 작품은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는 대중소설을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 올렸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창출해 냈다. 여성의 구체적인 삶과 경험을 바탕으로 계급과 인종의 범주를 가미해 페미니즘 논의를 한층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라우라 에스키벨은 음식과 사랑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고 말했다. 작가는 우리가 거품을 걷어내며 정성껏 스튜를 끓이는 동안은 연금술사나 마법사처럼 잃어가고 있는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공허한 단어가 아닌, 가슴에 진한 감동을 전해 주는 뜨거운 불꽃 같은 작품이다.

 

- 2004년 가을, 역자 권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