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 조나단 스노우

Jonathan Snow, <IL PEGALOPIÚ BELLO>

 

 

 

1. 아름다운 선물, 눈송이

 

마크는 난롯가에 앉아 있었다. 크레용으로 색칠 그림책에 나와 있는 바니 래빗을 색칠하려 하고 있었다. 어떤 색을 골라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름다운 하늘색은 어떨까?

"그런 토끼는 세상에 없잖아."

분명하진 않지만 어디선가 가까운 곳에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달나라에도?" 하고 마크가 물었다. 비록 곁엔 아무도 없었지만 누군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다른 모든 아이들이 혼잣말을 하며 혼자서 지내는 것처럼, 여덟 살이란 아직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없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건 달나라에도 없어."

보이지 않는 친구는 끝까지 편을 들지 않았다.

마크는 손에 들고 마시고 있던 체리 주스의 붉은 색깔을 이리저리 살펴 보았다. 어쩌면 이 색일지도 몰라. 마트는 작은 소리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얼른 크레용으로 토끼를 칠해 버렸다. 그러고 보니 토끼는 마치 커다랗고 잘 익은 체리로 변한 것 같았다.

"괜찮은데, 뭐." 하고 12월의 희미한 빛 아래서 색칠공부를 하며 마크는 말했다. "정말 괜찮아."

이제 그림의 나머지를 칠해야 할 차례다. 아주 커다란 눈을 가진 소나무, 등산모를 쓰고 있는 오소리, 하늘 높이 빛나며 마치 웃는 듯한 모습의 수많은 별들. 어떤 영감이라도 얻으려는 듯 마크는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늘은 회색으로 낮게 드리워져 있었고, 대기는 무척 고요했다. 여기저기 민들레 홀씨같이 보이는 것들이 떠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민들레 홀씨가 아니다. 봄은 아직 멀었다. 크리스마스가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틀만 지나면 크리스마스인 것이다.

"눈이다." 마크는 색칠 그림책을 한 쪽으로 밀치며 소리쳤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체리주스를 쏟을 뻔했다. 만약 바닥에 주스를 엎질렀더라면 엄마, 아빠에게 귀가 울릴 정도의 커다란 소리로 야단 맞아야 했을 것이다.

 

마크는 재빨리 신발을 신고 코트를 손에 쥔 채 서둘러 바깥으로 나갔다. 눈송이가 자그마한 솜처럼, 아주 달콤한 솜사탕 조각처럼 스프링밸리에 내리고 있었다. 많이 내리는 것은 아니었다. 애플파이 위에 뿌리는 계피 가루보다는 많이 내리고 있었지만, 아이는 그런 데는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첫 눈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첫 번째 신호였다.

엄마, 아빠도 사무실에서 눈이 오는 걸 보고 있지는 않을까? 그럴 리 없어. 엄마, 아빠는 아마도 일에 파묻혀 있을 거야. 그리고 그들은 저녁이면 피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루 종일 한 사람처럼 지치고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마크는 눈이 어디에서 오는지 보려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분명히 누군가 눈을 흩뿌려야만 한다. 샌드맨(아이들 눈에 모래를 뿌려 잠이 들게 한다는 동화 속의 요정 -역주)이 그러는 것처럼 스노우맨이 눈을 뿌릴 것이다. 그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마크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어쩌면 신비스러운 작은 사람이 눈 만드는 기계─세상에서 가장 큰 이탈리안 셔벗을 만들어 내는 거대한 얼음 뿌리개 같은─를 가지고 구름 뒤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 열심히 관찰하는 사람의 눈을 피해 높은 곳 어딘가에 있을 거야.

눈송이가 마크의 코에 떨어졌다. 마크는 그 눈송이를 자세히 주의깊게 들여다 보았다. 아름다웠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만든 아주 작은 유리로 된 별 같았다. 땅 깊은 곳에서 발견되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래서 여러 빛의 광선으로 그 즐거움을 나타내려는 다이아몬드 같기도 했다. 마크는 그 눈이 녹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두 손가락으로 눈송이를 들어 손바닥에 올려 놓았다. 그 작은 수정 가루의 무지개빛 빛깔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아주 소중한 보물을 손에 들고 있는 것처럼 근심스럽게 집으로 향했다. 현관 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이 눈이 올 때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정적에 싸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옆 방에서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오후 5시가 되면 할아버지는 일어날 것이고, 우유를 한 잔 준비하고는 마크에게 그가 알고 있는 선원, 왕자와 공주, 외계에서 온 우주인, 미지의 땅에서 온 거인의 이야기 중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한 가지를 해 주실 것이다. 마크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게 무척 좋았고, 그 이야기들은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마크는 냉장고를 열고 안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우유 팩, 선키스트 오렌지 주스, 은색으로 포장되어 있는 저녁 식사 등이 보였다. 그 인스턴트 음식들은 엄마, 아빠가 먹을 음식이었다. 마크는 뭔가 다른 것을 먹고 싶었다. 사실 엄마, 아빠조차도 종종 그 음식들을 마지 못해 먹는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다른 음식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왜 너는 그런 음식을 먹니?" 아까와 같은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그런 찌꺼기 같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보다는 신선한 사과나 달콤하고 즙이 많은 배 같은 걸 먹는 게 좋지 않니?"

마크는 냉장고 쪽으로 손을 뻗으며 음식에 대한 생각을 지워 버렸다. 어쨌든 오늘은, 냉장고는 더 중요한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그러나 냉장고는 그리 차갑지 않았다. 눈송이가 녹을 수도 있다. 사실, 눈송이는 이미 마크 손에서 조금 녹아 있었다. 걱정하면서 마크는 냉동실 문을 열었다. 커다란 칠면조 고기가 보였다. 칠면조 역시 인스턴트 식품으로 포장돼 있었고, 그 옆으로 셀로판지에 싸인 크랜베리 소스가 보였다. 엄마 아빠는 늘 그렇게 준비했다. 얼음 상자 옆의 조그만 공간만 빼고는 이 커다란 칠면조가, 아기 공룡만한 크기의 칠면조가 온통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주 없는 것보다야 낫지. 마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매우 조심스럽게 눈의 결정을 그 조그만 공간에 놓고는 문을 닫았다.

"뭐 하는 거니?" 작은 소리가 속삭였다. "제정신이니? 왜 눈송이를 보관하려는 거니?"

마크는 그 질문에 대답하려고 굳이 애쓸 필요가 없었다. 이미 마음 속에 계획을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이 눈송이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에게 줄 것이다. 아주 훌륭한 선물이 될 것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다른 모든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특별한 것이다. 선생님이 전에 말했던 것처럼 어떤 눈송이도 똑같이 생긴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송이는 말 그대로 불가사의한 것이다.

 

마크는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후 4시 10분 전이었다. 엄마, 아빠가 집에 돌아오기 전에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계획은 실패할 것이다. 벌써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눈송이를 선물로 준다고? 세상에! 누구에게 준다는 거니?" 게다가 마크 혼자서 집을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마크는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눈은 그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물은 훨씬 더 소중한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런 선물을 주거나 받지 못할 것이다.

마크는 현관으로 가서 천천히 문을 열었다. 할아버지의 방에서는 여전히 낮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할아버지는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크는 그의 보물을 받을 만한 사람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2. 상표가 붙은 눈송이

 

마크가 가게에 들어갔을 때 잭 스켈리는 바쁘게 옥수수 캔을 선반에 쌓고 있었다. 잭은 발그레한 뺨의, 혈색이 좋고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건강한 사람이다. 마크는 잭을 좋아했다. 종종 잭은 마크에게 스틱이나 캐러멜, 과일 사탕을 주곤 했다. 그러나 마크는 잭에게 느끼는 애정보다도 잭이 정말로 마크의 선물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잭." 마크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인사했다.

"안녕, 마크." 잭이 대답했다. "이 시간에 웬일이니?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니?"

"학교는 끝났어요. 방학이거든요. 크리스마스까지 이틀 밖에 안 남았잖아요."

잭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장식물과 크리스마스용 화환을 창문에 걸어 놓고도 잊어버렸지 뭐니."

잭은 옥수수 캔을 맨 꼭대기에 하나 더 올려 놓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손바닥을 비볐다.

"마크, 내게 뭐 부탁할 게 있니?"

마크는 잠시 동안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 아저씨. 방학 숙제 중에 설문 조사에 대한 숙제가 있거든요."

"설문 조사라고? 어떤 설문 조사인데?"

"누군가에게 어떤 한 가지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공책에 적는 거예요."

마크는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만 그건 선의의 거짓말일 뿐이다. 즉,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거짓말이다. 할아버지가 종종 말씀하신 대로 선의의 거짓말은 다른 사람을 도울 수도 있으며, 오히려 알려지면 좋지 않은 진실을 감추어 주기도 한다. 결국 선의의 거짓말은 악의에서 하는 거짓말처럼 해가 되지도 않고, 말할 때 침을 꿀꺽 삼키지 않아도 된다. 잭은 엷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 내가 비록 우주 조종사가 아니라 가난한 가게 주인일 뿐이지만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대답해 주마."

마크도 웃으며 물었다.

"아주 쉬운 질문이에요. 만약 누군가 아저씨에게 눈송이를 준다면 아저씨는 그걸로 뭘 하시겠어요?"

스켈리 아저씨는 잠시 어리둥절해 했다.

"눈송이라고?"

"네."

잭은 또 한 번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것 참 이상한 선물이구나. 생각해 보자…."

 

몇 분이 지난 후 그는 말했다.

"나라면 그것을 예쁜 상표를 붙인 캔에 집어 넣겠다."

마크는 잭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마크는 자신의 귀를 믿고 싶지 않았다.

"아저씨, 아저씨는 그걸… 팔겠다는 뜻인가요?"

"바로 그거야."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으면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아마 몇몇 사람들은 매우 좋아할 거야. 만약 그 캔을 파는 데 성공하면 나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 눈이 내릴 때마다 눈송이를 한아름 모아 캔에 넣고 계속해서 그걸 파는 거야.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아. 벌써 상표에 쓸 문구도 생각나는걸? 잭 스켈리의 순수한 눈송이! 인공 색소나 방부제는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차가운 곳에 보관하시오!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마크는 당장 가게를 뛰쳐 나가고 싶었다. 잭에게 그만 가 봐야겠다고 말하며 가게를 나왔다. 스프링밸리의 큰 길가를 내려오며 곰곰이 생각했다. 아마 확신할 수 없었지만 작은 목소리에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눈송이를 캔에 넣겠다고?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그건 로빈 새를 새장에 넣는다거나, 무지개를 잡는다거나, 산 속의 신선한 공기를 가져와서 스프레이 캔에 넣는다거나 하는 것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눈은 하늘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공기의 흐름대로 날아다니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야. 내 눈송이를 선물로 받으려면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3. 현미경 속의 눈송이

 

두꺼운 안경을 쓴, 마르고 이마가 조금 벗겨진 사람이 악수를 하며 마크를 맞이해 주었다.

"어떤 심각한 문제 때문에 날 찾아오지 않았기를 바래, 꼬마 친구야. 예를 들면, 네 등 뒤에 난 혹 같은 문제라도 말이야. 아무렇지 않은 것이 큰 고통이 될 수 있거든."

그리고 그는 호쾌하게 웃었다. 마크는 그의 주변을 둘러 보았다. 벽에는 해골 그림과 금연 표지가 붙어 있었고,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랜즈 박사는 거의 오전에 진료를 끝마치고, 오후에는 몇몇 환자만 진찰한다.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단지 한 가지 여쭤 볼 게 있어서요."

마크는 자신의 숙제에 대해 말했다. 이번에는 스켈리 씨 같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박사에게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마트는 자기가 원하는 알맞은 대답을 얻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박사는 마크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하얀 가운의 한 귀퉁이로 안경을 닦으며 말했다.

"매우 재미있는 질문이로구나."

그의 벗겨진 머리가 램프의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마치, 그 머리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을 때처럼 불이 켜지는 것 같았다.

"난 제일 먼저 그 눈송이를 현미경의 유리판에 놓고 자세히 살펴보고 싶단다."

"그렇지만 곧 녹을 텐데요."

마크는 반대했다. 이미 시작부터 잘못되었으니 어떻게 이야기가 계속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랜즈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물체를 고정시키는 것…," 그는 손을 뻗쳤다.

"어쨌든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거야. 그냥 물로 녹는 것을 방지하는 일종의 풀이라고나 해 두자. 아니면 액체 상태의 질소를 사용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크리스털의 구조를 연구할 수도 있을 거야. 너도 알겠지만 현미경을 통해 보면 정말 대단하단다."

"그렇지만, 그냥 눈으로만 봐도 눈송이는 정말 예뻐요!"

마크는 다시 한 번 실망해서 그렇게 주장했다.

"과학은 맨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거란다."

박사는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이 진실임을 강조하려고 그의 안경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면서 대답했다. 마크는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과학이라는 명분으로, 박사는 마크가 이 세상에서 본 것 중 가장 완벽한 창조물을 파괴하려 한다.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자연은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보호해야만 하는 아름다움이란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자연을 잃게 될 거야."

 

"난 말이다, 현미경을 사용할 거란다." 랜즈 박사는 계속해서 말했다.

마크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들을 기운도 없었다. 완전히 기운에 빠져 머리가 숙여졌다. 벽에 걸려 있는 해골 그림이 마치 마크의 슬픔을 놀리려는 것처럼 악의에 찬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4. 철학자의 눈송이

 

스프링밸리 대로변에서 멀지 않은 작은 집에 루이스 로드가 살고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그는 도시 근교의 대학에서 철학 강의를 했다. 지금은 그 일에 지쳐 은퇴를 하고 여섯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마크는 문을 두드릴 때 뼛속까지 떨리는 기분이었다. 엄마가 로드 씨는 이상한 사람이니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자 머리가 길고 때가 묻은 체크 무늬 스커트를 입고 귀걸이를 한 남자가 나타났다. 마크는 가능하면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용기를 내, 용기를 내라고!'

마크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그리고 로드 씨에게 학교 숙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얘기가 끝나자 로드 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했다. 안은 거실이자 부엌, 침실로 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사방에 고양이가 보였다. 소파나 냉장고 위, 심지어 싱크대 안에까지 고양이가 있었다. 로드 씨는 색이 바랜 녹색 소파에 앉았고, 마크도 그를 따라 소파에 앉았다.

 

"눈송이는," 하고 그 사람은 아주 천천히 말했다. 거의 등 뒤로는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책꽂이가 보였다. 거의 이해할 수 없는 제목들이었다. <순수 이성 비판>, <죽느냐 사느냐>, <반(反) 오이디푸스 신화>. 철학자만이 그러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크는 이번에는 제대로 사람을 찾았구나 싶었다.

"참 이상한 숙제로구나."

로드 씨는 이상한 향을 풍기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계속 말했다.

"저희 선생님이 이상한 숙제를 내신 거죠."

"그래 얘야," 로드 씨는 잠시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그의 무릎에 앉아 있는 회색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선생님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실 거다."

그는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우린 눈송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맞아." 그는 엄지와 검지로 그의 코를 쥐었다. 담배 연기와 고양이 털 때문에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았다.

"넌 눈송이가 표시되기 바라니,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를 바라니?"

"글쎄요…."

마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마크는 로드 씨가 말한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본질적으로 그건 해석 상의 문제란다." 그는 마크가 어리둥절해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했다. "종말론에서도 그렇단다. 눈이 어디서 유래했으며, 어디서 끝날 것인가?"

그는 담배를 세 번 길게 빨아들인 후 돌로 된 마룻바닥에 던지고는 구두 뒤축으로 비벼 껐다. 그 주변은 담배 꽁초로 가득했다.

"하늘에서요. 하늘에서 내려와 땅에 내리잖아요." 하고 마크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모든 거창한 말투가 성가시게 느껴졌다.

로드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반쯤 눈을 감고 입술에 손을 갖다 댔다.

"그건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란다. 현실에선 모든 것에는 최초의 시작과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끝이 있단다. 눈에 대해 말하자면…."

 

마크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고양이 털과 담배 연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마크는 로드 씨가 결코 빨리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 챘다. 로드 씨는 소파에서 일어나 말을 계속 하며 문 쪽으로 걸었다.

"만약, 그리스 어의 에스카테(éscate)가 끝을 의미한다면─또는 추락─어떤 일종의 추락과 연관된 정의가 얼음 결정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구나. 자, 곰곰이 생각해 봐…."

마크는 조용히 빠져나와 문을 닫았다. 밖에서도 로드 씨의 말은 계속해서 들렸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작은 목소리가 마크에게 말했다.

"시간이 있다면 이 철학자가 결정해도 괜찮겠지만 그러기 전에 이 눈은 녹을 거야."

마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 30분이다. 엄마, 아빠가 곧 돌아올 시간이다. 마크는 아직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5. 할아버지 거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크는 길에서 마주친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모든 게 허사였다. 항상 화려하게 옷 입기를 좋아하는 친구 제니는 "내 예쁜 인형 집에 눈송이를 넣으면 눈송이는 행복할 거야" 라고 말했다. <파워 레인저> 만화 주인공을 좋아하는 소꿉친구 해리는 눈송이를 돌연변이 로봇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한 방법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스프링밸리의 신문사에 다니는 피바디 씨는 눈송이를 일요 신문의 부록으로 파는 게 어떻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마크는 우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크는 짜증난 표정으로 코트의 단추를 풀렀다.

"왜 아무도 올바른 대답을 하지 않는 거지? 모두 눈을 팔거나 연구하거나 하는 것만 생각하잖아. 눈송이가 무슨 서커스단의 동물이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지."

마크는 발을 질질 끌며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서는 거스 할아버지가 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우유에 담가 적신 쿠키를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 좋았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마크는 우울한 기분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크야, 아무 말도 없이 나가면 어떡하니. 그렇게 행동하면 엄마 아빠가 좋아하지 않잖니."

 

할아버지의 이마에는 굵게 곱슬진 하얀 머리가 내려와 있었고,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폭풍 치는 날의 바다 거품과도 비슷했다. 할아버지의 눈은 푸른 하늘색인데, 눈 주위의 잔주름 때문에 눈이 더 밝아 보였다. 할아버지 입가에는 항상 조용하고 확신에 찬 잔잔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따라서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 마크의 가족과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할머니의 죽음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인생이란 여러 출발들로 이루어진 거란다" 하고 그는 즐겨 말하곤 했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그냥 잠시 산책하러 갔었어요. 눈이 내리기를 빌었어요. 내일 모레는 크리스마스고, 크리스마스 때는 눈이 오는 게 훨씬 더 아름답잖아요."

"그래, 그래도 눈보라가 불었었잖니" 하고 할아버지는 쿠키를 조금씩 깨물며 말했다. 그리고는 집 앞의 길거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넌 누가 눈이 오게 하는 건지 아니?"

마크는 잠시 머뭇거렸다. 루이스 로드의 지루한 논리를 또 듣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믿지 못할 철학자가 아닌 할아버지가 물어보시는 건데.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모르겠어요."

"아주 긴 이야기란다. 듣고 싶니?"

마크는 냉장고를 한 번 쳐다보았다. 내일까지, 아니 적어도 눈송이를 줄 사람을 찾을 때까지 눈송이를 냉장고에 넣어 두어야만 할 것이다. 지금은 계속해서 사람을 찾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다. 마크가 고개를 끄덕이자 할아버지가 미소 지었다.

 

 

6. 천사 카몰리노 이야기

 

옛날 옛날에 아주 오랜 옛날에, 하나님은 천국에서 어떤 경연 대회를 열기로 결정했단다. 하나님은 이미 거의 모든 것─산과 골짜기, 바다와 땅, 낮과 밤, 달과 별, 사계절, 가장 용감한 모습의 동물들, 심지어 사람까지─을 창조했단다. 그러나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단다.

그래서 어느 아름다운 날, 그는 천사들을 모아 "각자 한 가지씩 좋은 생각, 아주 훌륭한 생각을 해 내거라. 가장 훌륭한 제안을 한 사람에게는 누구보다도 빛나는 후광을 상으로 주겠다" 라고 말하셨단다. 허영심이 강해서가 아니라 천사들은 후광을 아주 소중히 여긴단다. 매일 구름으로 만든 솜으로 후광이 대낮의 햇빛처럼 빛나게 깨끗이 닦는단다. 천사들은 무척 기뻐하며 하나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빛나는 천사들은 곧바로 일을 시작했지. 이틀 동안 천국에는 커다란 외침 소리, 기쁨의 함성이 끊이지 않았단다.

 

땅의 시간으로 이틀이 지나갔을 때 모든 천사가 하나님 앞에 모였단다. 날개를 접고 턴 테이블 위의 레코드 판처럼 머리 위의 후광을 돌리며 모두 한 줄로 서 있었단다. 하나님이 위엄 있는 목소리로 "첫 번째로 말할 천사는 앞으로 나오너라" 라고 말하셨단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라고 천사 루시퍼가 대답하며 인사를 했단다.

"저는 이런 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조그만 불꽃비를 땅에 내리게 하면 어떨까요? 인간들이 몸도 따뜻하게 하고 음식도 익힐 수 있게요."

하나님은 잠시 생각했으나 곧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지.

"그래, 물론 몸을 따뜻하게 할 순 있겠지. 그러나 숲이나 건물이 전부 타 버릴 게 아니냐.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구나, 루시퍼. 자, 다음?"

하나님은 손을 저으며 그를 물러나게 하셨단다.

하나님은 루시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때때로 그는 매우 이상한 생각을 해 냈기 때문에 하나님은 루시퍼가 문제를 일으킬까 봐 늘 잘 지켜 봐야만 했었단다.

 

두 번째 천사가 말하기 시작했단다.

"매일 필요한 모든 것을 인간에게 제공해 주는 나무가 있다면 어떨까요? 빵은 물론이고 고기, 인간이 입는 옷까지도요."

하나님은 머리를 흔드셨지.

"그러면 인간들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한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거다. 게으름만 피우게 될 거야. 그 생각도 좋지 않은 것 같다."

 

세 번째 천사가 겁에 질려 떨면서 앞으로 나왔단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찬란한 영상으로 밤 하늘을 밝히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늘에 존재해 계심을 알게 될 테니까요."

하나님은 잠시 생각한 후 실망해서 고개를 숙이셨단다.

"안 된다.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낮이 일하고 인간의 활동을 위한 시간이라면, 밤은 휴식을 위한 시간이다. 게다가 공공연하게 나 자신을 내보인다면 인간들은 나의 존재를 확신하고는 더 이상 믿음을 지니지 않게 될 것이다."

 

네 번째 천사인 가브리엘이 힘차게 앞으로 나왔단다.

"저는 천 년에 한 번씩 지구상을 깨끗하게 청소할 거대한 흐름, 강력한 태풍을 만들고 싶어요. 천 년이 지날 때쯤이면 문명이란 것은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해 있을 테니까요."

하나님은 셀 수 없이 머리를 흔드셨지.

"이런 식으로는 단지 인간에게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빼앗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가브리엘 왜 너는 가장 성공적인 나의 창조물을 천 년마다 파괴하기를 원하느냐? 천 년이란 시간도 인간에게는 긴 시간이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짧은 시간이지 않니. 그러한 결정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구나."

 

라파엘이 천천히 앞으로 나왔단다.

"저는 새로운 동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쳐다보셨지.

"어떤 동물 말이냐? 난 벌써 아주 많은 동물을 만들어 내지 않았느냐. 네 생각은 정말로 근사한 것이어야만 한다."

"제가 생각해 낸 동물의 이름은 부마사우르가 될 것입니다."

"난 벌써 그 이름이 싫구나. 하지만 계속 말해 보도록 해라. 그 동물은, 부마…."

"부마사우르예요."

"그래, 간단히 말해 보아라."

"그 동물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느 것에도 쓸모 없을 동물이죠."

"뭐라고?"

하나님은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소리치셨지. 라파엘은 하나님의 분노에 깜짝 놀라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단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들은 모두 나름대로 쓸모가 있지요. 예를 들면, 양은 털을 이용할 수 있고, 소는 고기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젖소는 우유를 제공하고, 닭은 달걀을 제공하지요. 반면에 부마사우르는 완전히 아무 것에도 쓸모가 없어요. 털은 옷으로 만들기엔 너무 뻣뻣하고, 고기는 먹을 수 없고, 성질은 유순하지 않지요. 잠이나 자고 하루 종일 불평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지요."

"그런 동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제가 말씀드린 대로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지요. 그냥 세상의 모든 것이, 이런 경우엔 모든 동물이 어떤 정확한 용도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인간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서요."

하나님이 손으로 무릎을 세게 쳤기 때문에 온 하늘에 천둥이 울려 퍼졌단다.

"됐다! 너희의 위대한 발견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었으니까 그만 해라!"

하나님은 업신여기며 비웃듯이 말씀하셨단다.

"만약, 너희들 중 누군가 또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더 이상 내 앞에서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곧 거의 모든 천사들은 구름을 부풀려야 한다든지, 후광을 닦아야 한다든지, 만나를 모아야 한다든지 등의 여러 핑계를 대며 물러갔단다. 잠시 후, 작은 천사 한 명만이 남았지. 그 천사는 아주 희미한 후광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저기 기운 옷을 입은 부끄러운 표정을 한 천사였단다. 이름은 카몰리노라 했지. 그는 어린 천사로, 날개는 아직 짧았고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졌단다. 종종 하나님은 구름을 따라다니거나 번개를 타고 놀거나 여기저기 땅 위를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창조물에 경탄해서 눈을 크게 뜨는 카몰리노를 놀라게 하곤 하셨단다.

"자, 카몰리노. 너의 얘기를 들어 보자."

그 천사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단다.

"그… 그러니까, …저… 저는…."

"더 용기를 내서 말해 보려무나."

"오늘 저는 너무나 터무니 없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일일이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예요."

카몰리노는 허파 가득 공기를 집어넣고 숨을 들이마신 후 단숨에 말하기 시작했지.

"저는 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한 달 전에 이미 만들었지 않니. 전혀 새로울 게 없구나."

"마…맞아요. 저도 알아요. 그렇지만 비도 고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체라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작은 천사는 옷 안에 손을 집어넣고는 은으로 된 술잔을 꺼냈단다.

"만약, 비가 언다면 이렇게 될 거예요." 라고 말하면서 잔을 뒤집었지. 눈처럼 가벼운 수많은 하얀 가루들이 쏟아져 나와 구름 위로 흩어졌단다. 하나님은 조심스럽게 손에 그것을 얹어 보았단다. 그것은 금세 녹아 물이 되었지.

"이걸 어디에 쓴단 말이냐?"

하나님의 목소리는 조금 느긋해졌고 흥미 있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단다. 카몰리노는 하나님의 마음의 변화를 알아채고는 기뻐서 웃었단다.

"예를 들면, 겨울에 이 하얀 눈이 내린다면 얼어붙은 땅을 담요처럼 덮어서 나무를 지켜 줄 거예요. 사람들은 눈송이를 모아 갈증을 없앨 수도 있고요. 눈송이가 녹으면 나머지는 말할 것도 없고, 강과 시냇물도 채울 수 있을 거예요."

"계속 해 봐라."

드디어 하나님은 카몰리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셨단다. 묘하게도 그들의 역할이 뒤바뀐 셈이지.

"이 하얀 수예품은 모든 소음을 부드럽게 하여 마치 요정의 나라와 같은 신비한 세계를 만들 거예요. 아이들은 눈싸움을 할 수도 있고, 만약 12월에 눈이 온다면…."

"왜 꼭 12월이지?"

하나님이 물어보시자 천사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단다.

"하나님도 아시다시피 이 곳에서 소문은 빨리 퍼지지요. 만약 하나님이 12월을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날로 정하신다면, 사람들은 제가 생각해 낸 이 눈을 볼 때마다 언제나 자선 행위에 대해 떠올리게 될 거라고요."

하나님은 긴 수염을 쓰다듬으셨단다. 게다가 카몰리노의 생각은 정말 하나님을 기쁘게 했단다.

"네가 생각해 낸 눈은 만들기 어렵지 않아야 하는데…. 바다를 창조할 때처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단다."

카몰리노는 고개를 흔들었지.

"그건 무척 간단해요. 그냥 비를 차갑게 만들기만 하면 되는 일인걸요."

하나님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단다.

"네가 생각해 낸 것에 붙일 세례명은 생각해 두었느냐?"

"아 물론이죠." 천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잠시 동안 생각한 후 "눈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하고 말했단다.

"눈이라고? 그건 무슨 뜻이냐?"

"아무런 뜻도 없어요." 카몰리노는 대답했지.

"그냥 짧은 이름이라 쉽게 기억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누─운이라고 말할 때 겨울을 한껏 느낄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혀 끝으로 그 말을 굴려 보셨단다.

"그래, 눈이라고 하자." 하나님은 손을 뻗어 천사의 오른쪽 날개 위에 손을 올리셨지.

"넌 내가 약속한 상을 받을 만하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밝은 후광을."

그러자 천사는 머리를 굽혀 인사하며 물었단다.

"괜찮으시다면 다른 것을 가져도 될까요?"

"뭐라고? 내 선물이 싫단 말이냐?"

하나님은 버럭 소리를 지르셨단다.

"아니에요." 카몰리노는 다시 더듬거리기 시작했지.

"하나님을 불경스럽게 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하나님도 아시는 것처럼, 저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니까 제 후광이 불꽃처럼 빛을 내며 반짝인다면 전 무척 당황할 거예요. 대신…."

"대신 무얼 원하느냐?"

"대신 저는 언제 어떻게 눈을 내리는가를 결정하는 책임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눈을 생각해 냈다는 걸 고려한다면 정도를 넘는 중요한 임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님은 잠시 생각하신 후에 "좋다" 라며 동의하셨단다.

"지금부터 너는 눈송이를 책임지는 천사가 될 것이다. 이에 만족하느냐?"

카몰리노는 아주 커다랗게 미소를 지었지. 절을 하며 하나님 앞에서 물러 나와서는 그가 좋아하는 구름에 누워 아래의 세상을 바라보았단다. 인간 세상은 아직 이른 7월이었고, 하늘에는 태양이 높이 빛나고 있었단다. 천사는 12월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지. 그래서 그 때까지 그는 잠을 자기로 결정했단다. 그의 잠은 반짝이는 눈송이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서 얼음처럼 차갑고 깃털처럼 가벼웠을 게다.

 

 

7. 눈송이의 주인을 찾아서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쿠키 한 개를 남겨 두고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는 마크를 보고 미소 지으며 윙크했다.

"누가 눈을 만들었는지 이제는 알겠지?"

"예." 마크는 달콤한 코코아 같은 할아버지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대답했다.

"그렇지만 궁금한 게 있어요."

할아버지는 마크를 쳐다보았다.

"그래? 그게 뭔데?"

"카몰리노의 생각이 12월에 눈을 내리는 것이었다면 왜 지금 당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왜 크리스마스가 되기 전이나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에나 눈이 내리곤 하는 거죠?"

할아버지는 손으로 그의 하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건 매우 간단한 문제란다. 카몰리노는 매우 착한, 아마도 제일 착한 천사임에 틀림 없지만, 좀 산만한 편이란다. 종종 날짜를 잘못 헤아리기도 하지. 너도 알겠지만 하늘 나라의 시간은 인간 세상의 시간과는 다르니까 말이다. 또, 어쩌면 자신이 한 말을 잊어버리거나 눈사태나 다른 자연 재해가 일어나 그 일을 처리하느라 그럴 수도 있지. 이 일이 성가셔서가 아니라 마음이 산만한 탓일 거야."

"내가 숙제를 잊어버리는 것과 비슷하겠군요" 하고 마크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수정처럼 맑게 울렸고, 듣는 사람을 기쁘게 했다.

"그래, 그렇기도 하겠구나. 그러나 카몰리노는 특별한 경우지만, 너의 건망증은 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구나."

마크는 눈썹을 찌푸렸다. "생각해 보신다는 건 무슨 뜻이죠?"

"일부러 숙제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하며 할아버지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쨌든…."

 

순간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할아버지는 말을 멈췄다. 마크의 부모님이 돌아온 것이다.

"우릴 보니 기쁘지 않니?"

마크의 아버지가 서류 가방을 식탁 의자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는 키가 작고 혈색이 좋은 40대 남자였다. 어쨌든 마크는 아빠를 보자, 크리스마스 때쯤이면 제과점에서 파는 마지 팬 케이크(아몬드, 설탕, 달걀 흰자로 만든 케이크 -역주)가 떠올랐다. 마크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았다.

"정말 좋아요. 할아버지가 카몰리노의 얘기를 해 주시는 중이었어요."

"누구라고?"

레인 코트를 벗으며 엄마가 물었다. 그녀의 머리는 부엌의 희미한 불빛에 금처럼 반짝였다. 마스카라를 칠한 눈에서 깊지 않은 주름이 보였다.

"마크와 나 사이의 작은 비밀이란다."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음모를 꾸몄구나!" 마크의 아빠는 마크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마크가 웃기 시작했다. 마크는 모두 함께 있을 때 무척 행복했다. 할아버지, 엄마, 아빠, 마크. 마크는 완벽한 가정에 대해 생각할 때면 이러한 순간을 떠올렸다.

 

저녁 식사 중 마크는 엄마, 아빠에게 오후 내내 다른 사람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물어보았다. 할아버지는 이미 한 잔의 차와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추리 소설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빠가 먼저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걸." 입을 벌린 채 아빠가 말했다. 그는 닭의 가슴 부위─물론 어느 정도 요리가 되어 있는 인스턴트 닭고기─를 포크로 찍었다.

"나는 눈송이가 녹는 걸 기다리며 눈송이를 바라볼 것 같구나."

마크는 너무 놀라 "그게 다예요?" 라고 물었다. 마크의 앞에는 녹은 냉동 옥수수가 놓여 있었다.

"그 밖에 뭘 하겠니? 영원히 보관할 수는 없을 텐데. 게다가 눈은 땅에 쌓인 것보다 하늘에서 내려올 때 아름답지 않니."

"금방 녹기 시작할 거다." 엄마가 말했다.

"너도 오늘 눈 덮인 시내를 봤어야 했는데. 눈이 약간만 내려도 모든 게 금세 더러워지거든."

엄마는 그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어깨를 흔들었다. 마크는 옥수수를 깨물었다. 옥수수 알은 무르고, 물에 잠겨 있어서 맛이 없었다. 만약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마크는 여름에만 옥수수를 먹을 것이다.

마크는 아버지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땅에 떨어진 눈은 거의…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은 천사 카몰리노가 그런 것까지 생각했을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마크는 다음 날도 계속 질문할 사람을 찾으러 다녀야 할 것이다. 마크는 포기할 수 없었다.

저녁 식사 후 마크는 부지런히 엄마와 아빠가 식탁 치우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곧장 침대로 갔다. 텔레비전에서는 마크가 좋아하는 <스타 트렉>이 방송되고 있었지만 생각은 다른 데에 가 있었다. 눈송이… 눈송이… 눈송이.

 

 

8. 죽어 버린 눈송이

 

마크는 아침 8시 쯤─방학이란 걸 감안한다면 무척 이른 시간임에 틀림 없는─에 일어났다. 밤 새 이상한 꿈을 꾸었다. 비스듬하게 구부러진 후광과 그 안에 수정구를 든 짧은 날개의 천사가 나왔었다. 그 수정구 안에는 스프링밸리의 모형이 들어 있었다. 천사는 수정구를 뒤집었다. 그러자 엄청나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눈은 들판과 지붕과 굴뚝을 다 덮어 버렸다.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주었음에 틀림 없다.

 

마크는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식탁에는 엄마, 아빠가 준비해 둔 콘 플레이크와 우유, 그리고 메모가 놓여 있었다. '4시 쯤에 돌아오마'.

평소보다는 빠르구나, 하고 마크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니 일도 빨리 끝날 텐데. 할아버지는 창문 앞에 앉아 지평선을 바라보고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 그는 마크가 내려온 것을 알고 돌아보며 "마크야, 잘 잤니?" 하고 말했다. 마크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는 콘 플레이크에 우유를 부었다.

"네, 할아버지. 천사 꿈을 꾸었어요."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셨다.

"그건 당연한 일이란다. 비록 눈이 안 온다 하더라도 오늘은 12월 24일이잖니."

그는 긴 한순을 쉬었다.

"하얀 눈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구나. 마치 눈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 양 바라볼 거다. 사실, 눈이 내리지 않는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라 할 수 없지. 카몰리노가 자신의 할 일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빌어 보자꾸나."

마크는 우유를 잘못 삼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재채기를 몇 번 하고는 마크는 물었다.

"눈송이로 무얼 하신다고요?"

할아버지는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방금 얘기했지 않니.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인 양 바라볼 거라고. 그러고 나서 바람이 눈을 하늘 나라에 전하도록 하늘 높이 던질 거다. 그러면 카몰리노는 자신이 일할 시간임을 알게 될 게 아니겠니?"

 

단숨에 마크는 냉장고로 달려갔다. 냉동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았다. …칠면조는 그 자리에 그대로, 여전히 커다란 모양으로 있었지만, 크랜베리 소스도 빨간 색을 뽐내며 가까이 그대로 있었지만, 눈송이는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눈이 있었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얼음 위에 아주 작은 점 같은 흔적만이.

"할아버지! 내 눈이요!"

마크는 소리쳤다. 할아버지는 일어나 냉장고로 달려갔다. 마크는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니? 무엇을 잃어버렸니?"

"어제 눈송이를 잡았어요. 그리고 녹지 않게 냉동실에 넣어 두었어요. 그런데…."

마크는 얼음통 위의 흔적을 가리켰다. 할아버지는 머리를 끄덕이며 마크의 어깨를 토닥였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냈니?"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에게 주고 싶었거든요."

 

마크는 숨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모든 이에게 눈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어요. 하지만, 전부 이상한 대답들만 했어요."

마크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할아버지께 여쭈어 보지도 않았는데 할아버지는 가장 아름다운 대답을 하셨어요."

할아버지는 마크를 안았다.

"눈이 얼음 조각이 된다는 걸 몰랐었니? 눈은 물일 뿐이란다."

"아, 아니에요." 마크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래, 그래." 할아버지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주 오래 된 이야기가 하나 떠오르는구나. 한 번 들어 보렴."

마크는 냉동실 문을 닫고 눈물을 닦았다. 그러곤 식탁 의자에 앉았다. 아직도 눈이 충혈되어 있었지만 눈물은 그쳤다. 할아버지는 마크의 앞에 앉았다. 할아버지의 하얀 머리는 산뜻하게 씻어 낸 구름 같았다.

 

 

9. 마음의 행복

 

옛날에, 공주와 용이 살던 시절에, 부펠로라는 아주 솜씨 좋은 마법사가 있었단다. 이 마법사는 세상에 만들어 놓아야 할 모든 것을 만들었단다. 금으로 바꿀 수 있는 연금술사의 돌이라든지 3백 년이나 살게 할 수 있는 생명의 정수라든지, 사람을 돌로 변하게 하는 메두사의 눈이라든지, 1백 가지 사랑의 묘약이라든지, 치통을 치료하는 수천 가지 약 등 이루 셀 수 없었단다. 그는 이 땅 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단다.

 

어느 날, 왕이 그 마술사를 불렀단다. 서둘러 궁전으로 갔더니 왕은 기적의 발명인, 크리스마스의 마음을 만들라고 했단다.

"이 계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훨씬 착한 사람이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 악마나 나쁜 마음은 나타날 수 없으니까. 나는 네가 1년 내내 크리스마스가 계속되게 할 약을 만들기를 원하노라."

부펠로는 왕에게 절을 하고 물러나와 실험실로 가서 곧바로 일을 시작했단다.

 

그는 좋은 마법이든 나쁜 마법이든 그의 모든 서적에서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단다. 땅에서 캐 낸 맨드레이크(마취제로 쓰이는 유독 식물 -역주)의 뿌리, 황소개구리 샐비어, 뱀 변종 달팽이 점액 등 다른 마법의 재료들을 모았단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솥에 넣고 거의 하루를 끓였단다. 그러고 나서 그 결과를 직접 시험해 보았지.

처음에는 그 약초들을 먹자 푸른 콩박쥐로 변했고, 두 번째는 뱅골 호랑이로, 세 번째는 등에 커다란 혹이 달린 노란 난쟁이로 변했단다. 그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가능한 빨리 해독제를 만들려고 애썼단다. 몇 번 실패한 끝에야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 실패는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단다. 그는 다른 수천 개의 약물, 다른 수백 개의 정수를 준비했지만 어느 것에서도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없었단다. 어쩌다가 오른쪽 발에 생긴 굳은 살을 없앨 수는 있었지만 왕이 명령했던 것과 똑같은 것을 얻을 수는 없었단다.

 

어느 날, 평소보다 의기소침해서 색깔의 연기와 반짝이는 불꽃 더미 속에 잠겨 있을 때 손자 부페토가 찾아왔단다. 비록 어린 아이였지만 매우 단단한 머리를 하고 있고, 1분 동안 1.6킬로미터에 이르는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말이 많은 아이였지.

"할아버지, 무얼 만들고 계세요?" 하고 부페토는 계속해서 끓고 있는 솥을 쳐다보며 물었다.

"조용히 해라, 부페토야." 마법사는 시험관의 내용물에 하늘색 먼지를 넣으며 대답했다.

"이번 실험에 실패하면 왕은 무척 화를 낼 테고 아마 왕궁 마법사의 자리에서 나를 쫓아낼 거다."

부페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실험실이 이렇게 어질러졌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진정하세요, 할아버지. 도대체 임금님이 무엇을 하라고 했는데요?"

"크리스마스의 마음을 만들라고 했지 뭐니." 부펠로는 조급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1년 내내 착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게 말이다."

부페토는 할아버지를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불가능하다는 건 무슨 뜻이냐?"

마법사는 증류기 안의 것을 단지 안에 넣으며 말했다. 아이는 계속해서 웃다가 숨을 고르고는 말했다.

"그럼요. 그건 말도 되지 않는 명령이라고요."

부펠로는 기운 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아마도 부페토의 말이 맞을 것이다. 여러 날 애를 썼지만 굳은 살을 치료한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해 낸 것이 없었다.

"그러면 어떡하지?" 부펠로는 몹시 실망하며 말했다.

"빈 손으로 왕에게 갈 수는 없단 말이다. 아마 나를 쫓아낼걸. 나를 추방할 수도 있지."

부페토는 주위를 둘러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 가지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아요." 그는 손가락 끝으로 뺨을 긁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부페로는 부펠로에게 속삭였다.

 

그 다음 날 마법사는 궁전에 갔단다. 아주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말이야.

"어서 오널, 부펠로." 왕은 그를 반갑게 맞이했단다.

"크리스마스의 마음은 찾아 내었나?"

"물론입니다. 바로 이 안에 있지요."

"좋다, 자 어서 보여다오."

부펠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손으로 보따리를 풀은 후 뒤집어 들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단다. 하다 못해 마법의 약초라든지 동물이라든지 연금술사의 돌 따위 같은 것도 없었단다.

"이게 뭐란 말이냐?" 왕은 얼굴빛이 변하며 물었다. 심지어는 왕 가까이 서 있는 시종들조차도 얼굴빛이 변했단다.

"내, 경고하는데 나를 놀리려 한다면…."

부펠로는 미소로 대답했다. 그는 그 전날 손자가 해 주었던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마음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건 보거나 만지거나 맛볼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는 집게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어떠한 약품으로도 이런 불가사의하고 경이로운 것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시종이 참견하며 말했다.

"눈, 미슬토우(mistletoe; 크리스마스 장식에 쓰는 가지로, 그 아래에서는 소녀와 키스해도 좋다는 관습이 있다 -역주)의 작은 가지, 선물, 아이들의 캐롤 같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오?"

"아니요, 그것들도 무척 소중한 것들이지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우리들 마음 속에 행복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마법사가 대답했다.

"1년 동안 좋지 않았거나, 나쁜 행동을 했다면, 크리스마스의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지요. 모든 것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마음에 달린 일이지요. 얼음처럼 차가운 가슴은 12월에도 녹지 않을 테니까요."

 

왕은 잠시 동안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단다.

"임금님, 이 사람은 우리를 기만하는 겁니다." 시종이 속삭이며 말했다.

"그에게 벌을 내리신 후 왕국에서 쫓아 내십시오."

"닥쳐라! 바로 너 같은 사람이 얼음 같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 라고 왕이 소리쳤다.

그는 봉을 들어 마법사의 어깨에 놓으며 "부펠로, 너는 우리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상으로 금화 1천 개와 새 시험관 세트를 주겠노라" 라고 말했단다.

부펠로는 미소 지으며 절을 한 후 궁전을 떠났다. 실험실에 돌아오니 부페토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요?" 하고 부페토가 물었다. 마법사는 부페토를 꼭 껴안고는 이마에 키스를 퍼부었다.

"임금님께서 상까지 주시지 않겠니! 당연히 너와 나누어 가질 테지만."

부페토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그건 할아버지 것이에요.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마세요. 크리스마스의 마음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어느 누구도 가벼운 공기 따위에서 그런 걸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거예요. 어느 누구도요."

 

 

10. 크리스마스 이브의 하얀 보석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끝마치고 할아버지는 마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알아 들었니? 눈송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단다. 내 말은, 너에게 눈이 중요했던 것은 눈이 크리스마스를 나타내기 때문이었다는 뜻이란다. 그렇지만 크리스마스의 마음은 영혼 속에 있는 것이므로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단다."

"그래서 눈이 얼음으로 변하든 변하지 않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지요?"

"그렇단다. 한 번 마음 속에 일어났던 생각은 두 번 다시 생겨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라. 그렇지만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하지만 첫눈이었거든요. 제게는 정말 소중했어요. 그게 바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에게 주고 싶었던 이유예요." 마크는 할아버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할아버지께요."

"오, 고맙다, 마크야. 그렇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아니란다. 누구나 결점이 있는 법이거든."

"어떤 결점이요?" 마크가 갑자기 매우 흥미 있어 하며 물었다.

"지금은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니란다. 세상에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걸 기억해라. 모든 사람은 단점 같은 걸 가지고 있게 마련이지. 아무튼 중요한 건 나름대로 좋은 점이 다 있다는 거지. 사람은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단다."

"가게 주인이나, 박사, 철학자 같은 사람들도요?"

"그래, 그렇단다."

 

갑자기 마크의 표정이 슬퍼졌다. 눈썹이 아래로 내려가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할아버지는 즉시 이를 알아채고는 "왜 그러니?" 하고 부드럽게 물었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걸 모두 이해해요. 그렇지만 적어도 눈송이 한 개만은 보관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더 이상 눈이 올 것 같지 않아서요."

"누가 그런 말을 했니?"

마크는 거리와 들판과 나무들이 보이는 창을 가리켰다.

"보세요, 하늘이 맑잖아요. 아마 크리스마스가 지날 때까지 눈이 내리지 않을 거예요. 눈이 없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할아버지는 일어나서 창 밖을 내다 보았다.

"글쎄,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그렇지만 한 가지 말할 게 있단다. 할아버지도 마술을 부릴 수 있단다. 아마 부펠로의 먼 친척일지도 모르지."

마크는 놀란 눈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때때로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희망에 정신을 모으고 계속해서 그것에 대해 아주 열심히 생각하면 이루어진단다. 자, 우리 같이 해 보자!"

"무엇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데요?" 라고 마크는 물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분명하게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물론, 눈에 관해서지. 그리고 카몰리노가 자신의 일을 하도록 결심하는 것에 관해서도."

마크는 고개를 숙였다.

"작은 천사야, 눈이 오게 해 줘. 집과 나무들을 덮는 하얀 담요 말이야. 그래서 아이들이 미끄럼틀에서 빨리 내려오고 당근 코와 단추 눈을 가진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 수 있게."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눈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보세요, 눈은 오지 않을 거예요.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요."

마크는 풀이 죽어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지? 저 쪽 구름 사이로 더 자세히 쳐다보렴."

마크는 일어나 유리창에 얼굴을 댔다. 갑자기 그는 저 높은 곳에서 후광을 머리에 단 짧은 날개를 본 것 같았다. 마크는 손바닥으로 눈을 비볐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후광은 마치 별처럼 하늘에서 계속 빛나고 있었다.

"할아버지." 마크는 너무나 놀라 가슴에 손을 대며 말했다. "카몰리노예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마크를 안으며 대답했다. "카몰리노가 일을 하기로 작정했나 보구나."

"하지만, 어떻게 카몰리노를 하셨죠? 어떻게 그에게 연락할 수 있죠?"

"네 덕분이기도 하단다. 어린 아이들은 천사 같잖니. 천사가 어린 아이가 된 것이니까. 그리고 우리 노인들은 곧 하늘 나라로 다시 가지 않겠니."

 

구름 사이로 바쁘게 움직이는 날개가 보였다. 아주 섬세한 한 움큼의 가루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또 다른 가루가 떨어지고 계속 떨어졌다. 곧 잔디밭은 밝게 빛나는 하얀 천으로 뒤덮였다. 나뭇가지도 밤색에서 반짝이는 하얀색으로 변했다. 세상은 칠판에 마치 하얀 분필로 칠한 것처럼 보였다.

"내일까지 계속 눈이 올까요?"

마크는 희망으로 가득 차서 물었다.

"물론, 그럴 거라고 생각한단다. 카몰리노가 가지고 있는 모든 눈을 내려 줄 거다."

할아버지는 소설 책을 들며 말했다.

"나가서 놀지 그러니?"

마크는 할아버지가 다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작은 목소리도 그에게 속삭였다.

"어서 나가 놀아, 자 어서."

하지만 마크는 여태 잠옷 차림이었다. 마크는 침실로 달려가서 스웨터를 입고 그 위에 두꺼운 점퍼를 입고 부츠를 신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마크는 손을 벌리고 눈을 받아 손가락으로 모아서 자신의 머리 위에 뿌리며 혀 끝으로 맛보았다. 그 맛은 마술 같고 멀리 떨어져 있는 요정의 나라 같았다. 세상에 있는 착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선물, 수없이 많은 작고 하얀 보석, 멀리서 종 소리가 울려 왔다. 대단히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거리 저 쪽에서는 두 명의 아이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마크는 그 애들과 같이 놀며 너무나 기뻐 소리를 질렀다.

정적이 거리의 모든 소음과 바쁜 움직임을 가라앉혔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고요가.

 

 

11. 메리 크리스마스, 땅 위에 평화를

 

부엌에서 할아버지는 시선을 위로 돌리며 "땅 위에 평화를" 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있어 온 동작,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손바닥을 맞대어 손을 모았다.

"땅 위에는 평화를, 사람들에게는 선한 마음을."

 

하늘 높은 곳, 아주 작은 구름에서 카몰리노는 후광을 곧게 펴고는 눈을 찡긋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지붕 위, 나무, 들판, 스프링밸리의 거리, 그리고 온 세상에 조용히 눈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