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시드 -2권- 사막의 호랑이 :: PHASE.0 조지 그렌

이것은 한 남자의 이야기다.

조지 그렌.

A.D라는 연호가 사용되던 시대 후반에 태어나 고아로 성장했다. 열 일곱 살에 메사추세츠 공과 대학(MIT)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풋볼의 스타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또 육상 400m 경주에서도 재능을 발휘,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의 눈부신 경력은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공군의 에이스 파일럿이자 일류 연구원이었다. 항공 우주 공학 분야에서는 C.E(코즈믹 이러) 4년도 노벨상 후보에 오를 만한 업적을 이루었고, 당시 건조 중이던 목성 탐사선의 기본 설계에도 참가했다.

그야말로 영웅 중의 영웅, 시대의 총아였으며, 능력 뿐 아니라 잘 생긴 외모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C.E.15년, 자신이 설계한 탐사선 '치올코프스키'의 선장이 되어 편도 7년 간의 목성 탐사를 떠나면서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이 때, 사람들의 관심과 숭배를 한 몸에 받으며 지구 궤도 상에서 중계된 그렌의 고백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 만한 충격을 주었다.

"지금부터 제 비밀을 밝히겠습니다. 저는 자연 그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조지 그렌은 자신의 성공의 비밀을 밝혔다.

그는 수정란 단계에서 인위적인 유전자 조작을 받고 태어난 새로운 인류였다. 남보다 월등히 뛰어난 체력,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두뇌를 태어나기 전부터 부여받은, 인간을 초월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저를 이런 인간으로 만든 사람이, '우리 인간에게는 아직 미지의 가능성이 있다. 그걸 최대한 끌어 낼 수 있다면 우리 미래는 끊임 없이 펼쳐질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만들어 낸 유전자 조작 기술에 관한 데이터를 전 세계 네트워크에 공개했다.

"그는 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우주의 조화를 이루는 조정자(코디네이터)가 되어라'. 이게 바로 그와 제 자신의 바람입니다. 제 뒤를 잇는 자들이 앞으로 나타나리라 굳게 믿습니다."

조지 그렌은 목성으로의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세상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사람들은 금단의 과실과 그 결과를 동시에 목격한 셈이다.

조지 그렌이 공개한 데이터는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공식적으로 유전자 변형을 합법으로 인정한 국가가 없었음에도, 남 몰래 자신의 아이들에게 수술을 받게 하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들을 제２의 조지 그렌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가 뚜렷해졌다. 훗날 코디네이터라고 불리는 새로운 인류 제１세대의 탄생이다.

그들이 각자 눈부신 재능을 꽃피우는 사이, 세상에 또 다른 충격을 던지기 위해 조지 그렌이 왕복 14년에 이르는 여행을 마치고 귀환했다.

그는 목성에서 어느 거대한 돌을 가지고 돌아왔다.

'에비던스 01'─다른 은하계로부터 날아 온 지구 밖 생명체의 증거(Evidence)를….

세상은 14년 전과 마찬가지로, 아니 더욱 격렬하게 논쟁에 휩싸였다. 조지 그렌을 사기꾼 취급하는 자, 열광하는 자, 의심하는 자, 신앙을 포기하는 자들로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하지만 이 암석 하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더욱 높은 곳을 지향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훗날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유전자 변형이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명백해졌다.

─우리는 더 멀리 갈 수 있다.

─우리들의 앞길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더… 더욱 멀리… 더 높은 곳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언젠가 저 신비로운 생명체가 살고 있을 머나먼 별을 향해, 진공의 바다를 헤엄쳐 갈 그 날을 위해….

 

그리하여 새로운 인류를 원래의 인간들보다 우주 생활에 쉽게 적응했으며, '에비던스 01'을 연구하기 위해 우주 공간에 설치한 우주 시설(현재의 플랜트의 전신)로 이주했다. 분명 그들은 우주와 친숙한 새로운 인류였다.

그러나 흐름에서 뒤떨어진 자들은 스스로 달성할 수 없는 높은 곳에 도달한 새로운 인류를 질투하고 증오했다. 아무리 기를 쓰고 육체적인 개조를 시도한다고 해도, 후천적으로 획득한 특성만으로는 결코 코디네이터를 앞지를 수 없었다. 그들이 코디네이터가 될 수 없다는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결정된 사실이었다.

갖지 못한 자는 가진 자를 시샘하는 법, 자신과 다른 존재를 사람들은 깎아 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내츄럴의 증오심이 필연적으로 한 인물에게 집중되었다.

C.E.53년, 조지 그렌이 내츄럴에 의해 살해 당했다. 암살자는 자신이 결코 우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십대 소년이었다. 소년의 절망이 '퍼스트 코디네이터'라고 불리는 새로운 인류의 상징적인 인물에게 집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렌의 죽음이 모든 일의 시초가 되었다. 지구 각지에서 코디네이터에 대한 박해가 점차 심해졌고, 그들이 우주로 떠나 버리자 생활 공간의 차이에 따른 의식 격차가 심화되었다.

플랜트를 소유한 이사국은 우주 자원이 낳은 부를 독점했고, 소유하지 못한 다른 국가와의 격차가 더욱 커졌다. 훗날 플랜트가 독립을 요구하면서 이사국에 전쟁을 선포했을 때, 플랜트를 지지한 자들은 다름 아닌 비(非) 이사국이었다.

코디네이터들이 조지 그렌의 암살범을 인도하도록 요구했을 때, 지구 측은 이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신경 쇠약이라는 명목으로 조지 그렌을 살해한 소년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것도 그들의 미래를 암시했다.

이사국의 억지스러운 요구에 반발한 플랜트 측이 몇 차례 교섭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결렬되면서 이들 사이의 긴장감이 서서히 고조되었다. 이사국이 무력 보유를 금지시킨 플랜트가 은밀하게 자프트(Zodiac Alliance of Freedom Treaty)를 설립한 것도 이러한 흐름 때문이었다.

내츄럴과 코디네이터, 이들의 분쟁의 역사는 '퍼스트 코디네이터'라고 불린 한 남자의 죽음에서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