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시드 -1권- 엇갈리는 날개 :: PHASE.4 메넬라오스

무수한 전함이 다가오는 모습을 모두들 숨 죽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태양 광선을 반사하며 반짝거리는 전함이 마치 비현실적인 장난감처럼 느껴졌지만, 가까워짐에 따라 차츰 위용이 드러났다.

지구 연합군 제８함대─ 지장 할버튼이 이끄는 함대는 지금 천천히 아크 엔젤을 향해 접근하면서 자신의 함대로 유도하려 하고 있었다. 수십 척이나 되는 전함, 구축함에 둘러싸인 채 기함 메넬라오스가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180도 회전, 감속 20%, 상대 속도를 맞출 것."

"그랬다가는 메넬라오스 바로 옆에 달라붙게 될 텐데 괜찮겠습니까?"

노이만 상사가 농담 조로 물었다.

"할버튼 제독께서 본 함을 자세히 보고 싶어하실 거다. 직접 이 곳으로 오실 정도니까."

마류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보통 같았으면 이 쪽이 찾아가야 할 입장이다. 하지만 할버튼은 자신이 온갖 정성을 쏟은 이 전함을 타고 싶어서 애가 타는 모양이다. 제독이야말로 미래의 전황을 좌우할 병기로써 누구보다도 강력히 아크 엔젤과 X넘버 개발 계획을 주장한, 마류에게 있어서 직속 상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전함이 관성 항해를 시작하자 마류가 "잠시 뒤를 부탁한다." 라고 말한 뒤 함교를 나왔다.

"함장님."

뒤쪽에서 나탈의 목소리가 들렸다. 둘이 엘리베이터를 나란히 탔다. 문이 닫히자 나탈이 말문을 열었다.

"스트라이크는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어떻게 처리하다니?"

영문을 모르는 마류가 되묻자 답답한 듯이 나탈이 말했다.

"성능 때문에, 그 소년이 탔기 때문에 저희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모든 승무원들이 알고 있잖습니까?"

그녀의 말 뜻을 파악한 마류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나탈은 그 눈을 마주 보며 다시 물었다.

"…그를 하선시킬 겁니까?"

'처음에는 코디네이터에게 기밀 병기를 만지게 하는 것조차 싫어했던 주제에.' 라고 마류는 속으로 생각했다. 쉽게 결론을 내리는 성격은 부럽지만, 너무 생각 없이 내리는 것이 아닐까. 마류가 대답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알겠어, 나탈. 하지만 키라는 군인이 아냐."

"하지만! 그 소년의 능력은 귀중합니다. 그걸 뻔히 알면서…."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를 강제로 징용할 수는 없어. 알잖아?"

마류의 대답에 나탈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눈에는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함대와 합류했는데 뭐 때문에 이렇게 서둘러야 하죠?"

제로의 해치에서 고개를 내밀며 키라가 토라진 목소리로 말하자, 무우가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망가진 채로 놔 두면 불안하단 말야!"

모든 정비사들이 제로의 수리에 매달려 있었으며 키라도 억지로 끌려 와서 일을 돕고 있었다. 함대와 합류했기 때문에 앞으로 느긋하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던 키라는 완전히 예상 밖의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언제 적이 쳐들어 올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이해할 수 없다. 이만한 규모의 함대에 적이 함부로 접근할 리가 없으며, 만일 공격 당하더라도 싸울 수 있는 다른 기체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머독이 껄껄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８함대라고는 해도 파일럿은 햇병아리 밖에 없다고! 무슨 일이 생기면 역시 대위가 나가는 수밖에 없지."

하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무우 수준의 파일럿이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방금 전의 전투에서 공격 당했지만, 모빌 아머로 버스터를 완전히 제압했었다. 코디네이터이자 스트라이크를 조종하는 키라조차 X넘버 1기를 상대하기가 벅찰 정도였는데….

"…그러고 보니 스트라이크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정말 저대로 내버려 둘 겁니까?"

키라가 물었다. 그가 재설정한 OS를 내츄럴이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까다롭다고 말하면서도 다들 초기화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무우는 아직도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 중이다.

"알고는 있지만…. 일부러 예전 상태로 되돌려서 수준을 낮춘다는 것도 뭐랄까…."

그러자 위쪽에서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가능하다면 그 상태로 다른 사람이 다뤘으면 좋겠어요. 그렇죠?"

모두들 놀라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마류가 벽측 통로에서 뛰어 내렸다.

"함장님?!"

"아이고, 이런 누추한 곳에 웬 일입니까?"

무우가 웃었다. 마류는 그들에게 가볍게 끄덕여 보인 뒤 키라를 바라보았다.

"잠깐 얘기나 할까?"

"네?"

무의식 중에 뒷걸음질 치는 키라를 보고 마류가 쓴 웃음을 지었다.

"네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너무 겁 먹지 마…."

그들은 작업반에서 약간 떨어진 스트라이크 앞으로 걸어갔다.

"나도 여유가 없어서 여태까지 너랑 천천히 대화를 나눌 수 없었어…."

"…네…."

키라는 약간 경계했다. 그를 돌아보며 마류가 미소 지었다.

"저기… 제대로 한 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단다."

"네…?"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여태까지 정말 고마웠어."

그녀가 머리를 숙이자, 예상치 못한 일에 키라는 놀라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아뇨, 저기, 함장님…!"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자, 고개를 든 마류가 방긋 웃었다.

"다들 말은 안 해도 네게 고마워하고 있어. 이런 상황이라 지구로 가도 편하지 않겠지만…."

그녀는 한 손을 내밀었다. 키라는 머뭇거리면서 그 손을 잡았다.

"…힘 내."

소년의 손을 힘껏 잡은 마류의 손은 따뜻했다.

 

 

"헬리오 폴리스가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눈 앞이 다 캄캄해지더군! 하지만 이 곳에서 이렇게 귀관들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큰 소리로 말하면서 연락선에서 내려온 장신의 장교가 허물 없는 태도로 마류 앞으로 걸어갔다. 나이에 비해 탄탄한 육체를 지녔으며, 풍성한 갈색 콧수염을 길렀고, 모자 밑에서는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바로 할버튼 제독, 달에 주둔하는 제８함대 사령관이다. 마류를 비롯한 승무원들이 일제히 경례했다.

"감사합니다, 각하. 오랜만입니다."

마류가 기쁜 표정으로 인사했고, 할버튼이 경례로 답했다.

"나탈 버질입니다."

"제７기동함대 소속 무우 라 프라가입니다."

"오, 자네가 함께 있어서 정말 행운이었어."

할버튼이 칭찬하자, 무우가 쓴 웃음을 지었다.

"아뇨,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제독이 사관들과 인사를 마치고는 뒤쪽에 정렬한 키라 일행을 둘러 보았다.

"저들이 그들인가?"

자신들과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키라 일행은 할버튼이 똑바로 자신들을 향해 걸어 오는 것을 보고 허둥지둥 차렷 자세를 취했다.

"네. 전함 조종을 도와 준 헬리오 폴리스 출신 학생들입니다."

마류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소개하는 것을 그들은 낯 간지러운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들 하나 하나를 바라보는 할버튼의 눈빛은 따뜻했다.

"자네들의 가족 소식을 확인하고 왔다. 다들 무사하시더구나."

일행의 표정이 환해졌다. 무엇보다도 고마운 선물이다.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 수고 많았다. 나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구나. 나중에 천천히 대화라도 나누도록 하지."

제독이라고 하면 굉장히 위대하고 무서우며 나탈의 300배나 융통성 없는 사람일 거라고 상상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를 만나 본 키라는 예상 밖의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저 사람을 위해서 마류가 일한다고 생각하면 왠지 납득할 수 있었다.

할버튼은 마류 일행과 함께 떠났다. 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키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도 그럴 기회는 없겠지만.

 

 

"치글러와 가모프, 합류했습니다."

아데스가 보고하자, 라우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발견되지 않았겠지?"

"그 위치라면 괜찮을 겁니다. 함대는 대부분 강하했으니까요."

라우가 턱에 손을 대고 작은 한숨을 쉬었다.

"달 본부로 가는 줄 알았는데, 다리 달린 군함을 지구로 보낼 생각을 하다니…."

그들이 집결한 직후 항로를 추측하여 내일 결론이었다. 아데스가 재확인을 위해 말했다.

"목표는 알래스카입니까?"

알래스카는 현재 지구 연합군의 가장 중요한 거점이다. 아마도 아크 엔젤은 대기권 돌입 후, 곧바로 최고 사령부가 있는 유콘 델타로 향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 곳으로 들어가 버리면 더 이상은 손 대기가 어려워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곳에서 격침하고 싶은데…. 과연 어떨까."

"치글러에 진 6기, 본 함에는 이지스를 포함한 5기, 가모프에 버스터와 블리츠가 출동 가능합니다만…."

아데스가 나열하는 전력과 상대방 전력을 머릿속으로 저울질하면서 잠시 생각한 뒤, 라우가 갑자기 얼음 같은 미소를 띠었다.

"지장 할버튼이라…, 슬슬 은퇴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나저나 이 전함 한 척과 'G' 1기를 위해서 헬리오 폴리스를 붕괴시키고, 아르테미스까지 괴멸시키다니…."

갑자기 불쾌한 표정으로 호프만 대령이 말했다. 그는 할버튼의 부관이다. 마류는 대꾸도 못한 채 자세를 가다듬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크 엔젤 함장실에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할버튼이 책상 앞에 앉고, 몸집이 작고 통통한 호프만이 곁에 앉았으며, 마류와 나탈, 무우는 그 앞에 서 있었다. 할버튼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스트라이크와 이 전함을 지킨 것만으로도 우리 지구군은 큰 이득을 본 것이네."

호프만이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알래스카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흥! 놈들이 우주 전투를 알기나 하는가!"

할버튼이 코웃음을 쳤다. 마류는 속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사령관과 부관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분위기가 당황스러웠다.

"라미아스 대위는 내 의지를 이해하고 있었어. 문제 삼을 만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네!"

할버튼이 단호하게 잘라 말하고는 따뜻한 시선으로 마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죄책감과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을 느꼈다. 여태까지 겪은 고난을 이 순간 보상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이 코디네이터 꼬마 건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호프만이 계속해서 가시 돋힌 말투로 말했다. 마류는 겨우 입을 열었다.

"키라 야마토는 친구들을 지키려는 일념 하나로 스트라이크를 조종했습니다. 저희들은 그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도달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해도 자기 동포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그는 상당히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마류는 그것을 알아 차리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에게 나가서 싸울 것을 강요했다. 이 정도로 속죄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녀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주장했다.

"…성실하고 다정한 소년입니다. 그에게 신뢰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기에는…."

호프만의 반론에 끼어들듯이 나탈이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외람되지만 저도 호프만 대령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마류와 무우가 뒤통수를 얻어 맞은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 보았다. 나탈은 정면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 소년의 능력은 괄목할 만한 것입니다. G의 기밀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그를 이대로 놓아 줄 수는…."

"흥, 벌써 자프트 측에 4기나 빼앗기지 않았나. 이제 와서 기밀은 무슨…."

그것이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할버튼이 바로 지적했다. 나탈은 순간 주춤했지만, "하지만!" 이라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능력은 귀중합니다! 가능하다면 저희 군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라미아스 대위의 말에 의하면, 본인에게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면서?"

"그의 부모는 내츄럴이라 헬리오 폴리스 붕괴 때 탈출하여 현재 지구에 있습니다. 그들을 저희들으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담담하게 말하는 나탈의 모습에 마류는 소름이 끼쳤다. 그녀의 제안은 곧, 키라의 부모를 인질 삼아 키라에게 전투를 강요하자는 것이다.

아마도 나탈은 군대라는 조직에 너무 익숙한 인간일 것이라고 마류는 생각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녀는 순수하다. 임무에 충실하고 승리를 얻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라면 규율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에 대해 의문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 쯤 속으로 생각하지만 생각한 것조차 혐오스러워 할 일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고, 또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나이 어린 소년으로부터 부모를 빼앗아서 그들의 목숨을 인질 삼아 동포를 죽이라고 강요하다니…. 그 때문에 소년이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전쟁터로 내보내다니…. 생각만 해도 마류의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나탈의 발언은 할버튼의 주먹이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치는 순간 멈추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런 병사가 무슨 소용인가!"

방금 전까지 보여 준 소탈한 성격과는 전혀 다른 엄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자, 나탈이 몸을 움찔하며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녀가 뒤로 물러서자, 할버튼이 일어섰다.

"과거는 이제 됐어. 문제는 미래야…."

엄숙한 목소리에 마류가 고개를 들어 상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후, 아크 엔젤은 현재 인원 편성 그대로 알래스카 본부까지 하강한다."

마류 일행이 숨을 죽였다.

"보충 요원을 실은 선견 부대가 격침 당해서 어쩔 수 없다네. 지금 우리 부대도 귀함을 위해 나눠 줄 만큼 인원이 여유롭지 않아."

호프만 부관이 사무적으로 덧붙였다. 할버튼은 잠시 침울한 표정으로 마류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갑자기 사나워졌다.

"하지만! 헬리오 폴리스가 붕괴되고 모든 데이터가 소멸된 지금, 아크 엔젤과 G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알래스카로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하, 하지만 저희들은…."

마류는 반론을 제기하려 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 없었다. 이 전함과 스트라이크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그러기에 더욱 무우를 제외하고는 실전 경험이 없는 그들에게는 너무 무거운 임무라고 생각했다.

"궤도 이탈 지점까지는 우리 부대가 호위할 것이다. 귀관들은 거기서 바로 본부로 하강하기만 하면 돼."

호프만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할버튼의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G 개발을 조속히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똑바로 마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프트가 잇달아 새로운 기체를 투입하고 있는데, 한심한 정치가들은 이권이 얽힌 쓸 데 없는 일에만 예산을 쏟아 붓고 있는 실정일세! 그들은 전쟁터에서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쓰러지고 있는지 숫자로만 판단하고 있어!"

할버튼의 분노가 마류의 가슴으로 전달되었다. 자프트의 모빌 슈트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침몰된 전함과 모빌 아머가 떠오르자 마류는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알겠습니다."

호프만과 할버튼이 나누는 대화의 온도 차이…. 이게 바로 본부와 현장의 거리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본부 녀석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리라.

그녀는 굳은 결심과 함께 경례했다.

"각하의 진심을 알래스카에 전달하겠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무우도 경례했다.

"모빌 아머의 생존자로서 거부할 수 없군요."

그 다운 냉소적인 말투에 마류는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할버튼은 깊은 시선으로 둘을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었다.

"부탁한다…!"

 

 

"…제대 허가증?"

내밀어진 서류를 보고 토르가 어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은 군인이 아닌데 어째서 제대 허가증이 나오는 걸까? 서류를 나누어 주던 나탈이 "키라 야마토는 어디 있지?" 라고 짜증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러고 보니 키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좋아. 나중에 이걸 전해 주도록."

그녀는 토르에게 키라의 허가증을 내밀었다. 그녀 곁에 서 있는 작고 통통한 대령(할버튼 제독의 부관이라고 들었다)이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리 비상 사태라도 민간인이 전투 행위를 하면 범죄로 간주된다. 이를 모면하기 위한 조치로 날짜를 거슬러 올라가 제군들이 그 이전에 지원병으로 입대한 것으로 처리했다. 서류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토르는 일이 복잡하게 꼬였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떤 형태로든 지구로 갈 수만 있다면 상관 없다. 그리고 며칠 동안이라도 군인이었다는 것은 유익한 경험일지도 모른다.

"또한 군무 중에 얻은 정보는 제대 후에도…."

설명을 계속하는 대령을 향해 조심스럽게 "저어…." 라고 말을 건 사람이 있었다. 프레이였다. 나탈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싸우지 않았으니까 그들과 똑같은 조치는 필요하지 않아."

"아뇨, 그게 아니고…."

프레이는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나와서는 결심한 듯이 얼굴을 들었다.

"…저는 군대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다들 동시에 "뭐라고?!" 라고 비명을 질렀다. 사이가 놀란 표정을 지은 걸 보니 그도 모르는 일이라는 뜻이다.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프레이만큼 군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나탈이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바보 같은 소릴."

"아무 생각 없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프레이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선견대와 함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전…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아…, 그럼 네가 바로 그 알스터 사무차관님의…."

대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는 양 손을 꽉 마주잡고 고개를 떨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충격으로… 모든 게 싫고 이 곳에서 빨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함대와 합류하고 이제 겨우 지구로 내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상하다고?"

나탈이 되묻자, 프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왜냐하면…!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나요? 이제 평화가 찾아 옵니까? 그렇지 않잖아요!"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눈물이 글썽이는 눈동자로 나탈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여전히 전쟁터입니다."

다들 입을 다물고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전… 여태까지 중립국에 살고 있어서 눈치 채지 못했어요…. 아버지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활동하고 계셨는데…."

그것은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이 평화롭게 지내면서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눈치 채지 못했다.

"…진정한 평화와 안녕이 싸워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거라면, 저도…. 아버지의 뜻을 이어서 싸우겠어요…."

프레이는 목이 메는지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제 힘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프레이…."

사이가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프레이가 훌쩍이면서 나탈 일행과 함께 사라지자 방에는 침묵이 깔렸다.

─세상은 여전히 전쟁터다….

토르가 고개를 숙였다. 지구로 간다는 생각에 들떠 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갑자기 사이가 들여다 보던 제대 허가증을 힘껏 찢었다.

"사이!"

그는 토르를 돌아보며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프레이가 한 말은 나도 느끼던 거였어. 그리고 그녀만 이 곳에 남기고 갈 수는 없지…."

사이의 미소를 바라보며 토르도 결심했다. 토르가 서류를 찢어 버리자 밀리아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그가 말했다.

"아크 엔젤은 인원이 부족하잖아. 내가 빠진 뒤에 격침 당하면 꿈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아."

그러자, "토르가 남는다면, 나도…." 하며 밀리아리아도 허가증을 찢었다.

"다들 남는데 나만 갈 수야 없지."

카즈이도 뒤를 이었다. 바닥에 찢어진 종이 조각이 쌓이자 그들은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학교에서 장난 칠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득 토르가 자신의 손에 들린 허가증을 쳐다보았다. 키라 야마토의 허가증이다. 그 녀석은 이걸 어떻게 할까, 라고 생각했을 때, 그가 놓인 상황이 자신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키라는 하선하겠지?"

토르가 쓸쓸하게 중얼거렸다.

 

 

"하선할 때가 되니까 아쉽나?"

갑자기 뒤쪽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키라가 고개를 돌렸다. 통로에 할버튼 제독이 서 있었다.

키라는 사복으로 갈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격납고를 찾아 와서 마지막으로 스트라이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가 키라 야마토인가?"

할버튼이 다정한 말투로 물었다. 이름이 불리자 키라가 경직된 표정으로 끄덕였다.

"보고서를 봤단다. 너희들 코디네이터의 능력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키라의 얼굴이 더욱 경직되었다. 하지만 할버튼은 여전히 평범한 소년을 대하는 표정이었다.

"자프트의 모빌 슈트에 맞서기 위해 만들었지만, 네가 다루니까 엄청난 괴물로 변신하더군."

"저…."

키라는 대답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생각했으면서 실제로 눈 앞에서 보니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할버튼은 그런 소년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 부모님이 내츄럴이라고 했나?"

"아, 네…."

"어떤 꿈을 담아서 널 코디네이터로 만드셨을까…?"

키라는 깜짝 놀랐다. 그런 것은 한 번도 물어 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이런 전쟁은 빨리 끝나는 것이 좋아."

이 때, 한 사관이 다가와서 할버튼에게 말을 걸었다.

"각하, 메넬라오스러부터 급히 돌아오시라는…."

"이런, 너와 천천히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구나."

할버튼이 넓은 어깨를 으쓱한 다음 키라를 쳐다보았다.

"여태까지 아크 엔젤과 스트라이크를 지켜 줘서 고맙다. 좋은 시대가 올 때까지 죽지 말아라."

그대로 등을 돌리고 돌아가려는 제독을 키라가 불러 세웠다. 발을 멈춘 할버튼을 향해서 키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아크 엔젤… 마류 대위님 일행은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아크 엔젤은 이대로 지구로 내려간다. 그들은 또 다른 전투에 투입되겠지."

당연하다는 듯 할버튼이 대답했다.

마류는 군인이고 이 곳이 전함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키라가 없으면 이 전함은 어떻게 될까? 스트라이크는?

키라는 어느 새 이 전함과 승무원들, 그리고 스트라이크에 대해 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의 혼란을 눈치 챈 할버튼이 입을 열었다.

"네가 뭘 고민하는지 안다. …분명히 네 능력은 군대에게 있어서 매력적이야."

키라는 제독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 표정을 살폈다. 할버튼은 솔직하게 말했는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너만 있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전쟁은 그렇게 우습지 않아. …자만하지 마라."

"하,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하라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무우에게 들은 말을 전하자, 할버튼이 입술 끝을 살짝 들어 올렸다.

"네게 그만한 의지가 있다면."

키라가 숨을 삼켰다.

"의지가 없는 자는 아무 일도 해 낼 수 없어."

그렇게 말한 제독의 빛나는 눈에는 분명히 확고한 의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메넬라오스 관제실로부터 적함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무렵, 아크 엔젤 함교에서도 그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다.

"나스카 급 한 척, 로라시아 급 두 척. 방위 그린 8, 알파 500. 접촉 예상 시간은 15분입니다!"

마류가 벌떡 일어섰다. 아마도 여기까지 뒤쫓아 온 적이 분명하다. 증원 부대가 도착했다는 뜻인가? 하지만 아크 엔젤 단 한 척을 위해서 이 정도나 되는 함대를 상대하려 들다니?

마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무우는 상대가 크루제 부대라고 말했다. 얼굴도 모르는 적의 기묘할 정도로 끈질긴 집념에 그녀는 차가운 손이 목을 조르고 있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런 감각을 뿌리치듯이 마류는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반입 작업 중지, 출입구 폐쇄! 메넬라오스 쪽으로 이동할 연락선은?"

"아직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전원 제１전투 태세!"

 

 

갑판으로 간 키라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헬리오 폴리스의 피난민들은 여기서 연락선을 타고 메넬라오스로 이동한 뒤, 셔틀로 옮겨 타고 지구로 내려간다.

"나머지는 스카이 그래스퍼 2기?! 어쩌라는 거야…?"

반입 작업 중인 머독의 목소리가 들린다. 키라는 운반되는 기체를 흘끔 쳐다보았다. 대기권용 전투기인 모양이다. 무우가 저걸 타게 될까…?

부산한 승무원에 섞여서 연락선을 타려는 피난민들로 갑판은 매우 혼잡스러웠지만,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확인 차 해치를 통해 들여다 보았지만 승객 속에 그들의 모습은 없었다. 키라는 갑판으로 돌아와서 기다리기로 했다.

"앗!"

어린이 특유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서 키라는 뒤돌아 보았다. 피난민의 마스코트적 존재인 어린 소녀가 키라를 발견하고 뛰어 나왔다. 어설프게 달려 든 몸을 끌어 안았다가 키라는 소녀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소녀는 볼을 붉히며 방그레 웃었다.

"오빠, 이거!"

혀 짧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한 손을 든다. 그 손에는 종이 꽃이 쥐어져 있었다. 키라의 눈이 반짝인다.

"…나한테?"

"응. 지금까지 지켜 줘서 고마워."

키라는 땀에 젖은 작은 손으로부터 그 꽃을 받았다. 왠지 코 끝이 찡해져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소녀는 손을 흔들며 어머니의 손을 잡고 연락선을 탔다.

가만히 종이 꽃을 바라보고 있는데 뒤쪽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목을 졸랐다. 이런 장난을 하는 사람은 한 명 밖에 없다.

"으악! 그만 해, 토르…! 왜 이렇게 늦었어…?"

웃으면서 뒤돌아 본 뒤 키라는 말을 잃었다. 눈 앞에 친구들이 있었다. 토르, 밀리아리아, 사이, 카즈이…. 모두들 군복을 입고 있었다. 놀란 키라에게 토르가 종이 한 장을 건네 주었다.

"우린 남기로 했어."

"남는다고…?"

"아크 엔젤, 군대에…."

키라는 눈을 크게 뜨고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지…?"

"프레이가 지원했어, 그래서 우리들도…."

사이가 대답하자 키라는 더욱 크게 놀랐다. 프레이가 군인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세히 물어 보려 했을 때 갑자기 함 내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전원 제１전투 태세! 반복한다! 전원 제１전투 태세!」

모두들 반사적으로 함교로 돌아가려 할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 봐, 거기! 안 탈 거면 떠난다!"

연락선 승무원이었다. 토르가 뒤돌아 본 키라를 앞으로 밀어 냈다.

"기다려 주세요. 이 녀석을 태워 주십시오!"

"토르?!"

토르는 키라의 어깨를 꽉 잡고 잠시 얼굴을 바라본 뒤, 피식 웃으면서 윙크를 했다.

"이것도 운명이야! 안녕, 키라! 넌 무사히 지구로 내려가!"

"키라, 몸 조심해!"

"오래 살아라!"

친구들이 각자 이별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카즈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자프트로는 가지 마!" 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들은 키라에게 가볍게 손을 흔든 뒤 망설임 없이 앞으로 달려 갔다.

이럴 수가!

키라는 넋이 나간 듯이 멈추어 서 있었다. 혼자 남겨진 불안감이 갑자기 엄습해 왔다. 동시에 아까부터 느끼던 이래서는 안 된다는 초조함이 더욱 강해졌다.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전부 다 내던지고 자신만 평온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래도 괜찮을가?

적의 존재를 알리는 경고 음이 귀를 찌르며 생각을 흐트러뜨렸다.

아크 엔젤은 지구로 내려간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스트라이크를 다루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아스란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와 싸우는 게 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전쟁터를 벗어나면 그와는 영영 만날 수 없게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어중간한 상태로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갈 수 있을까?

그는 양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오른손에는 제대 허가증, 왼손에는 방금 전에 소녀가 선물한 종이 꽃이 있었다. 그것들을 쳐다본 뒤 키라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더 이상 동포들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 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능력이 있다. 다른 사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할버튼 제독이 그렇게 말했지만 그것은 키라의 어깨를 파고드는 멍에나 다름 없다. 지금 이 곳에서 도망칠 수 있다 해도 무거운 짐은 영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봐, 타려면 빨리 와!"

등 뒤에서 승무원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렸다. 재촉하는 목소리에 키라는 마음을 정했다.

그는 오른손을 꽉 쥐었다.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뛰어 올랐다.

"어서 출발하세요!"

그는 어깨 너머로 승무원에게 외친 뒤, 구겨진 제대 허가증을 내던지고 갑판을 떠났다.

'내가 친구들을 지킬 거야…!'

 

 

「모든 격벽 폐쇄, 각 담당자는 맡은 구역을 지켜라.」

가모프 함 내에 전투가 시작된다는 방송이 시작되었다.

「모빌 슈트 3분 후에 발진, 각기 시스템 확인 후….」

의무실 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이자크였다. 단정한 외모의 반 이상이 붕대에 감겨 있었으며 통증을 참느라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안 됩니다! 아직 안정을 취해야…."

"시끄러워! 놔!"

따라와서 붙잡으려는 위생병을 뿌리치고 이자크는 소름 끼치는 형상으로 모빌 슈트 격납고로 향했다. 얼굴에 입은 부상 때문에 열이 오르며 욱신거렸지만, 그보다 더 상처 입은 것은 그의 자존심이었다.

지난 전투에서 스트라이크의 공격에 의해 듀얼이 전기 배선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조종석 내에서 소규모 폭발이 발생했다. 그 폭발로 이자크의 헬멧 바이저가 깨지고 파편이 얼굴에 박혔다. 만일 조종석에 균열이라도 있었다면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자크는 살아서 돌아온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지구 연합군의 모빌 슈트 따윈 쉽게 격파할 수 있었다. 그는 에이스 파일럿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현재의 명예에 머무를 생각도 없었다. 자신에게는 당연히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으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여태까지 수많은 실적을 남겼다. 그런데….

첫 번째 실수는 아스란 자라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기회에도 아스란이 스트라이크를 놓쳤다는 말을 듣고 라이벌의 무능함을 오히려 비웃으며 즐겼다. 그러면서 자신은 다르다고, 방해하는 아스란이 없으면 다음에는 반드시 격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달 함대와 합류하기 직전에 벌인 짧은 전투에서….

하지만 스트라이크는 자신의 공격을 마치 장난 치듯이 피했다. 듀얼과 블리츠를 동시에 상대하고 심지어 기체에, 그리고 이자크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자신보다 훨씬 열등한 인종, 내츄럴 파일럿을 상대로 부상을 입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태까지 자신의 능력을 믿고, 인간의 가치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정해진다고 믿어 온 이자크에게 부상은 죽음과도 같은 치욕이었다.

'이 오명은 반드시 씻어 내고야 말리라….'

이자크는 파일럿 슈트로 갈아 입고 듀얼에 올라 탔다. 듀얼은 이미 어깨, 팔, 가슴, 허리, 발목 등 마치 갑옷처럼 기체 전체를 감싸는 추가 장비─ 어설트 슈라우드가 탑재되어 있다. 그것은 듀얼의 화력과 추진력을 파격적으로 강화시켰다. 오른쪽 어깨에는 115mm 레일 건 시바, 왼쪽 어깨에는 220mm 5연장 미사일 포트가 장착되어 있다.

「이자크, 안 돼! 넌 아직….」

"닥쳐! 빨리 발진이나 유도해!"

놀란 관제관의 말을 신경질적으로 가로막으며 그는 듀얼을 발진시켰다. 무선을 통해 전 모빌 슈트에게 전하는 라우의 지시가 들렸다.

「목표는 오직 다리 달린 전함 뿐이다! 다른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마라!」

물론 이자크도 다른 일에 시간을 할애할 생각이 없었다.

 

 

지구 연합군 구축함, 전함으로부터 순서대로 뫼비우스가 날아 올랐다. 그리고 자프트 함에서 모빌 슈트가 방출되었다.

「전함 밀집 편대를 취하고 공격 준비!」

통신기를 통해서 메넬라오스의 할버튼 제독이 명령했다.

「아크 엔젤은 움직이지 마라. 그대로 본 함을 따르라!」

아크 엔젤 함교에서는 무거운 불안감을 느끼면서 모두들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적 함은 세 척, 모빌 슈트는 진만 해도 10기가 넘는다. 진 3기와 이지스에 의해 순식간에 격침 당한 몽고메리를 떠올리며, 이렇게 많은 전함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승무원들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겔슈테른 기동! 후부 미사일 관 코린토스 장전!"

나탈이 순서대로 무장 시스템 기동을 지시했다.

"고트프리트, 로엔그린 발사 준비!"

혼자서 처리하기 벅찬 토노무라가 나지막이 "제길." 이라고 중얼거렸다. 몇 되지도 않는 승무원만으로 알래스카까지 어떻게 가라는 소리냐. 그 때….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문이 열리면서 소년들의 밝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류는 놀란 표정으로 뒤돌아 보았다. 토르, 사이, 밀리아리아, 카즈이─ 헬리오 폴리스의 학생들이 기운 찬 모습으로 자신들의 자리로 달려갔다.

"너희들…."

마류가 놀라서 중얼거렸다.

"지원병입니다. 호프만 대령께서 수령하시고 제가 승인했습니다."

미리 알고 있던 나탈이 간결하게 설명했다. 마류가 눈을 크게 떴다.

"아, 키라는 보내고 왔습니다."

CIC로 들어간 사이가 마류에게 말했다.

"우리들 만으로는 그 녀석을 대신할 수 없겠지만, 없는 것보다야 낫겠죠?"

부조종석에 앉은 토르가 전함 조종사 노이만에게 신호를 보내고, 토노무라는 등 뒤의 두 소년을 쳐다보며 미소를 보냈다.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을 짓던 나머지 승무원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그들을 맞아 들였다.

하지만 마류의 심정은 복잡했다. 소년들의 결심이 고마움과 동시에 무거운 짐이 되어 어깨를 눌렀다. 그들도 나름대로 생각한 바가 있어서 내린 결론이겠지만, 그건 너무나도 유치하고 달콤한 감정이다. 앞으로 그들의 인생에 이번 결단이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까…. 마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키라가 파일럿 탈의실에 뛰어들자, 그 곳에는 누군가가 먼저 와 있었다.

"프레이…?"

키라가 이름을 부르자, 그의 사물함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소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뒤돌아 보았다.

"키라…?"

다음 순간, 그녀가 키라의 가슴으로 뛰어 들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에 키라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프… 프레이… 어째서…?"

겨우 입을 열자, 프레이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을 들어 올렸다.

"네가 가 버린 줄 알았어…."

예전부터 동경하던 소녀가 품에 안긴 채 자신을 쳐다보자, 키라는 가슴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프레이는 그런 키라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했다.

"다들 남아서 싸우는데…, 맨 처음 말한 나만 아직 아무런 일도 못하고…. 그래서…."

키라는 그제서야 겨우 파일럿 슈트가 들어 있는 자신의 사물함이 열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네가…?"

그는 프레이의 어깨를 붙잡고 몸을 떼어 냈다. 프레이는 젖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프레이… 설마 그런 일을…."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키라를 대신해서 스트라이크를 타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가녀린, 부서질 것 같은 다정한 소녀가 그런 결심을 하다니….

"네게는 힘들 거야…."

"하지만…!"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프레이에게 키라가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 스트라이크는 내가 탈게. 프레이를…."

프레이를 위해서, 라고 말하려다 머릿속에 사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키라는 허둥지둥 말을 돌렸다.

"프레이의 몫까지 나가서 싸울게…. 이제 도망가지 않아. 난 마음을 정했어."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 전쟁을 조금이라도 빨리 끝내기 위해서, 나 밖에 할 수 없는 일을 할 것이다. 내게는 그만한 힘이 있다.

프레이는 키라를 쳐다보며 몸을 기댔다.

"그렇다면…."

얼굴이 다가오면서 입술이 부딪쳤다.

"난 널 지켜 줄게…."

입술에 닿는 뜨거운 숨결과 그 말에 키라는 취해 버렸다.

 

 

진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두운 진공의 바다에 간간히 불꽃이 터졌다. 뫼비우스와 진이 각자 포문을 열었다. 뫼비우스가 발사하는 미사일을 피하며 진이 바주카 포를 쏘았다. 폭발하는 모빌 아머를 곁눈질하면서 전선을 뚫고 지나가는 붉은 기체가 있었다.

이지스가 변형하여 갈고리 사이에서 스퀼라를 발사했다. 순식간에 3기의 뫼비우스가 불길에 휩싸였다. 버스터와 듀얼도 빠른 기동력과 압도적인 화력으로 지구 연합군의 모빌 아머를 쓰러뜨리며 함대로 접근했다.

메넬라오스 함교에서 모니터를 통해 지켜 보던 할버튼 제독이 신음 소리를 냈다.

"제길…. X넘버가…."

"정말 대단한 모빌 슈트로군요…. 하지만 적의 손에 들어가니 성가시기 이를 데 없습니다."

부관인 호프만이 곁에서 냉정하게 말했다.

선봉 구축함이 이지스를 포착했다. 이지스는 우아한 동작으로 포격을 피하며 구축함을 향해 달려가서 갈고리로 포대를 움켜 쥐고는 스퀼라를 발사했다.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구축함이 전선에서 이탈했다.

블리츠도 다른 구축함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미라쥬 콜로이드를 가동시킨 검은 기체가 도중에 우주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대상이 사라져서 혼란에 빠진 사이, 블리츠는 함교 정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왼팔에 장착된 앵커 '그레이프 닐'을 사출하여 함교를 찌그러뜨렸다.

버스터는 양 어깨에 탑재한 런쳐와 라이플을 중앙에서 도킹시켰다. 이렇게 합쳐진 두 무기는 장거리 초고 임펄스 라이플과 대장갑 산탄포로 바뀐다. 빔에 명중 당한 구축함이 그대로 폭발했다.

듀얼도 시바와 캐논을 번갈아 발사하며 구축함 옆구리에 구멍을 뚫었다. 크게 뚫린 구멍으로부터 진홍색 불길이 솟아 오르면서 구축함이 부서졌다.

"셀레우코스, 전투 불능! 카산드로스 응답 없습니다!"

"안티고노스, 프톨레마이오스 격침 당했습니다!"

메넬라오스 함교에서 통신관이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처음에는 냉소적이던 호프만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라고?! 전투가 시작된 지 고작 6분 만에…, 네 척 씩이나?!"

이 때, 멀리서 적함이 움직였다.

"적함 나스카 급 및 로라시아 급 접근 중!"

"셀리우코스, 카산드로스에 레이저 조준!"

"뭐라고…?!"

승무원의 보고에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할버튼이 되물었다. 적함이 레이저를 조준해서 포격을 가하려고 하는 것은, 방금 공격 당하고 전투 능력을 잃은 두 척의 구축함이다.

"이탈 중인 전함을…?! 크루제… 네 이 놈!!"

 

 

"아스란과 니콜은 아직 멀었어…."

베사리우스 함교에서 라우가 나지막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사람을 살려 두면 그들이 언제 새로운 무기를 손에 쥐고 달려들지 모른다."

베사리우스와 가모프의 주포가 불을 뿜어 냈다. 눈부신 광채와 함께 두 척의 구축함이 사라졌다.

그 사이에도 모빌 슈트가 새로운 표적을 집어 삼켰다. 하지만 함대 중앙은 변동이 없었다. 지루한 표정으로 라우가 말했다.

"할버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걸 지구로 내려 보낼 생각이군. 소중하게 감춰 둔 채 꿈쩍도 하지 않다니…."

"덕분에 저희만 편해졌습니다. 스트라이크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아데스가 농담과 진담을 섞어서 말했다. 라우가 웃었다.

"전함과 모빌 아머 가지고는 더 이상 우리와 싸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영리한 장군이야. 그걸 만들도록 지시한 것도 할버튼이라고 하더군…."

라우는 얼음 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기왕이면 이번 전투에서 그 성과를 보여 드리지…!"

 

 

허공으로 사라진 셀레우코스, 카산드로스의 영상이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크루제 부대의 잔인하고 가차 없는 공격에 아크 엔젤 승무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함장석 통신기가 깜박거리자 마류가 수화기를 들었다.

「이 봐! 언제까지 대기하고 있으라는 거야!」

초조한 무우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무리 제８함대라고 해도 G4기를 상대하는 것은 벅차다고!」

"프라가 대위…."

「…물론 내가 나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말이야!」

"본 함의 출격 지시는 아직 없습니다! 잠시만 더 대기하십시오!"

수화기 너머로 뭐라고 대꾸하는 것을 무시하고 마류는 일단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무우는 평상 시와는 달리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수리를 서둘렀던 만큼 제로의 상태는 완벽했으며, 그러기에 더욱 아군의 열세를 손가락을 물고 지켜 봐야 하는 현 상황에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

마류도 마찬가지였다. 이 전함을 지키고, 무사히 본부로 전달하는 것이 마류 일행을 포함한 제８함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가령 참전해서 함대를 지킨다 할지라도, 아크 엔젤이 격침 당하거나 지구로 강하할 타이밍을 놓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알고 있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한 뒤 결단을 내렸다.

"메넬라오스와 연결하라!"

모니터에 분주한 표정의 할버튼이 비춰졌다. 등 뒤에서 "빔을 사용해라!", "격추시켜 버려!" 라는 호통이 들린다.

「뭐냐?!」

할버튼이 거의 고함치듯이 말했다. 마류가 대답했다.

"본 함은 함대를 이탈하여 당장 강하 절차를 밟을까 합니다. 허가해 주십시오!"

「뭐라고?!」

할버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더니 경악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곁에서 부관인 호프만이 끼어 들었다.

「자기들만 몰래 도망가겠다는 속셈이냐?!」

마류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적이 노리는 것은 본 함입니다. 본 함이 이탈하지 않는 한 저희 함대는 전멸합니다!"

할버튼이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나 되는 함대가 단 세 척의 전함과 10기 가량의 모빌 슈트를 상대로 버티지 못한다는 현실, 그것을 부하로부터 지적당했다.

"알래스카는 어려워도 이 위치하면 지구군 제공권 내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돌입 한계점까지 버티기만 하면 진과 자프트 함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마류가 진지하게 호소했다.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각오였다.

"제독 각하!!"

할버튼의 얼굴이 쓴 웃음이 떠올랐다.

「…여전히 무모한 녀석이군. 마류 라미아스.」

마류도 웃어 보인다.

"부하는 상관을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요?"

「좋아! 아크 엔젤은 즉시 강하 준비를 갖추도록! 한계점까지 배웅해 주마. 뒤쫓아 오는 늑대는 내게 맡겨라!」

마류의 열의가 제독의 마음에 불을 붙인 모양이다. 그는 믿음직한 미소를 띠고 승무원을 돌아 보았다.

 

 

"이 상황에서 강하하겠다고?!"

무우가 뒤돌아서 머독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위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와중에 아크 엔젤이 지구로 강하를 강행하겠다고 한다. 일종의 도박이나 다름 없었다.

"내게 소리치면 뭐가 나옵디까? 이대로 질질 끄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프트 함과 진을 뿌리칠 수 있어도 나머지 4기가 문제군요."

뒤에서 들린 낯 익은 목소리에 무우와 머독이 놀라서 돌아 보았다.

"꼬마?!"

파일럿 슈트를 입은 키라가 평상 시와 똑같은 모습으로 걸어 왔다. 무우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벌써 전함을 떠난 줄 알았던 소년이 둘 사이를 스쳐 지나가면서 말했다.

"스트라이크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아직 제１전투 태세였죠?"

조종석으로 들어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지켜 보며 무우가 중얼거렸다.

"저 어린 나이에 전쟁터나 전투를 알게 되면 남은 인생이 괴로울 텐데…."

늘 태평스러운 무우지만 이번만큼은 쓸쓸한 말투로 말했다. 머독이 힐끗 '엔듀미온의 매'라고 불리는 사내를 쳐다보았다. 무우가 에이스 파일럿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키라만큼 어리지 않지만, 그래도 주위에서 애송이라고 불리던 시절이라고 들었다. 방금 중얼거린 말은 자신의 경험담이 아닐까…?

 

 

메넬라오스로부터 모든 함선을 대상으로 통신 회선이 열렸다.

「메넬라오스로부터 각 함에 지시! 본 함대는 지금부터 대기권 돌입 한계점까지 아크 엔젤 엄호 방위선으로 이행한다….」

할버튼의 낮은 목소리가 진공 속에서 펼쳐지는 사투를 제압하고 울려 퍼졌다.

「쉽지 않은 전투지만 아크 엔젤은 미래를 위해 절대로 잃어서는 안 되는 전함이다. 진형을 재구성하라! 적이 우릴 따라오지 못하게 하라!」

그의 모든 정열을 쏟은 결정체이자,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희망, 아크 엔젤과 스트라이크를 지켜라!

말을 초월한 강한 의지력이 모든 병사들을 일으켜 세웠다.

「지구군의 저력을 보여 주어라!」

할버튼의 연설을 들으며 아크 엔젤은 강하 절차를 밟았다.

"수정 궤도, 강각(降角) 6.1, 세타 플러스 3…."

"강하 개시, 기관 40%, 미속 전진, 4초 후에 자세 제어…."

"강하 절차, 페이즈 1…. 대기권 돌입 한계점까지 앞으로 10분…!"

뫼비우스와 진이 뒤엉키면서 진이 발사한 미사일이 조종석에 명중했다. 그 진을 측면에서 구축함 주포가 포착했다. 파편으로 변해 버린 생명이 검은 진공을 허무한 불꽃으로 물들였다.

"아크 엔젤이 강하하고 있어?"

방금 전에 시바로 2기의 뫼비우스를 격추시킨 이자크가 소리 질렀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그냥 보낼 순 없다!"

그는 밀집한 채 적기를 가로막는 진영 한가운데로 듀얼을 발진시켰다. 나머지 3기가 그 뒤를 따랐다.

구축함이 물러 서면서 모든 포문을 열고 맞서 싸웠다. 무수한 미사일, 빔을 4기의 모빌 슈트는 어렵지 않게 피해 갔다. 듀얼의 시바가 구축함 엔진을 포착하고 버스터의 런쳐가 적 함 옆구리에 큰 구멍을 뚫었다.

메넬라오스 주포가 불을 뿜어 내자 어두운 우주 공간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막을 수 있는 힘이 되지는 못했다.

듀얼이 제１대열을 돌파하고 이어서 제２대열을 뚫고 지나갔고, 버스터가 그 뒤를 따랐다.

 

 

키라는 스트라이크 조종석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종이 꽃을 계기판 위에 꽂으며 미소 지었다. 이것은 그의 인생 속에서 처음으로 받은 훈장, 다른 누군가를 지켰다는 증거였다.

강하 절차가 진행 중인 함 내에 갑자기 찬드라 하사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듀얼, 버스터, 선진 대열을 돌파!」

키라는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토노무라 하사가 상황을 전달했다.

「메넬라오스와 교전 중!」

키라는 제로를 향해 외쳤다.

"프라가 대위님!"

「그래, 알았다.」

무우가 곧바로 대답하며 함교와 연락을 취했다.

「함장, 잠깐이라도 우릴 내보내 주시오! 앞으로 몇 분이나 남았지?」

「무슨 바보 같은 소릴…! 우리라니?」

마류가 의아한 듯이 말했다. 키라가 도중에 끼어 들었다.

"메뉴얼을 보면 스트라이크는 단독 강하가 가능합니다!"

「키라…?」

마류가 숨을 삼키는 소리에 밀리아리아의 「키라!?」 라는 목소리가 겹쳤다. 키라는 자신이 남기로 한 결심을 아무에게도 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쑥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러운,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키라, 네가 어째서… 그 곳에 있는 거지?!」

당황한 마류의 목소리에 질책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키라를 해방시켜 주려고 했다. 그녀는 그렇게 올곧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함장이었기에 자신이 돌아왔는지도 모른다고 키라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 지킬 것이다. 더 이상 궁지에 몰린 절박한 결정이 아니라, 확신에 찬 결심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 키라는 그렇게 느꼈다.

 

 

「함장님, 이대로 가면 메넬라오스가 위험합니다!」

키라의 목소리에 마류는 서둘러 결정을 내려야 했다. 토르가 아까부터 복잡한 표정으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다는 당혹감과 친구와 다시 만났다는 기쁨이 얼굴에서 교차했다.

어째서 다시 돌아왔을까. 마류는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친구와 승무원들을 위해서 남은 것이 분명하다. 다정한 소년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서는 다정함이 목숨을 앗아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메넬라오스와 아크 엔젤을 지키기 위해 그에게 싸우러 나가라고 말하란 말인가? 자칫 잘못했다가는 지구라는 중력의 우물에 빠져서 추락해 버리는 낭떠러지 위에.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나탈의 목소리에 산산 조각 났다.

"알았다! 하지만 페이즈 3까지 돌아올 것!"

나탈은 평상 시대로 냉철하게 지시했다.

"메뉴얼에 그렇게 쓰여 있어도 실제로 실험해 본 사람은 없어. 내부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고도와 시간을 늘 확인하라!"

「네!」 라는 키라의 목소리와 함께 통신이 끊어졌다. 마류가 일어섰다.

"버질 소위!!"

나탈은 냉정한 표정을 유지한 채 마류의 분노를 정면으로 받아 들였다.

"여기서 본 함이 격침당 하면 제８함대의 모든 희생이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노려 보았다.

 

 

사출구가 열리자, 눈 앞에 푸른 지구가 가득 펼쳐졌다. 마치 거꾸로 추락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발진하는 것은 나도 처음이야.」

스피커로부터 약간 긴장된 무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키라는 레버를 꽉 쥐었다.

"키라 야마토, 발진합니다!"

사출 장치가 스트라이크를 허공으로 내던졌다. 엷고 하얀 구름의 베일에 둘러싸인 지구가 키라의 눈 앞으로 다가왔다. 방향을 전환하려 했으나 페달이 무겁게 느껴졌다.

"쳇…, 중력이 잡아 당기는 걸까?!"

키라는 조종 계통을 조정하면서 페달을 다시 밟았다. 진행 방향은 불꽃이 터지고 있는 전쟁터다. 하지만 그 곳에 도달하기 전에 조종석에 경고 음이 울려 퍼졌다. 상대방이 먼저 키라를 발견한 모양이다.

"듀얼?!"

X102=듀얼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기체는 기억 속의 모습과 외관이 달랐다. 장비가 바뀐 것 같다. 라이플을 쏘았지만 장비 때문에 기동성이 향상되었는지 쉽게 피하면서 어느 새 정면으로 다가왔다.

"윽…!"

휘두르는 빔 사벨을 가까스로 피하고 초조해진 키라가 뒤로 물러섰다.

 

 

"벨그라노, 격침!"

"한계점까지 앞으로 5분!"

메넬라오스 함교에서 호프만이 외쳤다.

"각하, 더 이상은…! 이제 본 함이 버틸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할버튼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직 멀었어!"

버스터의 초고 임펄스 라이플이 메넬라오스에 명중하고 함교까지 진동이 전해졌다. 이 때, 통신 담당의 목소리에 할버튼이 고개를 들었다.

"아크 엔젤로부터 X105=스트라이크와 뫼비우스 제로 발진!"

"뭐라고?!"

모니터 상으로 그들의 모습을 찾다가 지구광을 반사하며 하얗게 빛나는 기체를 발견한 뒤 확대시켰다.

스트라이크는 듀얼과 대치하며 듀얼이 휘두르는 사벨을 실드로 방어하고 있었다. 주위에 불꽃이 튀었다. 그 일격을 피한 스트라이크는 빔 라이플을 쏘면서 물러섰다. 그런데 저 기체에는 누가 타고 있을까?

물을 필요조차 없다. 키라 야마토라는 소년 밖에 없다. 다른 누가 G를 저렇게 손 쉽게 다룰 수 있을까. 할버튼의 가슴이 고통으로 가득 찼다.

결국 그는 싸우는 쪽을 선택한 것일까? 군대가 그를 이용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영리한 소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다른 말로 변명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누군가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무우가 탄 제로도 건 배럴을 탑재하고 버스터에게 공격을 가했다. 반격하는 X넘버의 포탄을 피하는 것은 과연 '매'라고 불릴 만했다. 하지만 버스터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지구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 때 갑자기 선방으로부터 빔이 날아오자, 할버튼은 눈 앞에서 싸우는 전투 병기로부터 눈을 돌렸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로라시아 급 접근─!"

어느 새 자프트 함 중 한 척이 메넬라오스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가모프, 너무 접근했다! 뭘 하고 있나? 젤만?"

베사리우스 함교에서 아데스가 몸을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약간 돌출하는 경향이 있는 가모프가 지금은 완전히 적의 전열 내부로 들어가 있었다. 통신 회선이 열렸다.

「…여기까지 몰아 세웠… 물러서는 것은… …애당초 우리들….」

가모프의 젤만 함장이었다.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재머의 영향으로 영상과 음성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잡음과 함께 들리는 음성은 기묘하리만치 침착했으며, 아데스는 젤만이 이미 각오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색깔이 변하면서 일그러졌던 영상이 잠시 정상으로 돌아오며 젤만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표정은 여느 때처럼 성실해 보였다.

「…다리 달린 군함은 반드시….」

거리 때문인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신이 끊어졌다. 아데스는 어이가 없었다. 수 차례 기회가 있었으나, 그 때마다 아크 엔젤을 놓친 것은 분명히 실책이다. 특히 단독 행동 중에 아르테미스 부근에서 아크 엔젤을 놓친 것은 젤만에게는 예상 밖의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젤만의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크루제 대장님…."

감당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으로 상관을 쳐다본 아데스는 갑자기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라우는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메넬라오스의 거대한 함체를 향해 돌진하는 가모프의 영상이 비춰지고 있었다. 오로지 영상에만 집중하는 라우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격과 동시에 무작정 접근하는 가모프를 막고자 구축함이 메넬라오스 앞으로 끼어 들었다. 저항에도 불구하고 요란한 불길과 함께 구축함이 격침되고, 그 옆을 가모프가 스쳐 지나갔다. 접근한 제로가 건 배럴을 전개하여 모든 탄환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가모프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함께 자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흔들리는 함교에서 호프만이 일어섰다. 이를 악물던 할버튼이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피난민들의 셔틀을 발사하라."

허를 찔린 호프만이 그 말뜻을 깨닫고 창백해졌다. 할버튼은 그런 호프만을 질타하듯이 외쳤다.

"여기까지 와서 저런 놈한테 당할 수야 없지 않은가?!"

메넬라오스의 주포가 가모프를 꿰뚫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메넬라오스도 충격에 휘말려 거대한 함체를 흔들며 기울어졌다. 함저부에서 주홍빛 불길이 솟아 올랐다. 두 척 모두 지구 대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메넬라오스로부터 한 척의 셔틀이 방출되더니 서서히 이탈하여 자세를 제어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할버튼의 눈에 안도의 빛이 떠올랐다.

이제 아크 엔젤이 무사히 목적지로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제８함대 최대의 군함이 자프트의 용맹한 전함을 동반한 채 침몰하려 하고 있었다.

 

 

"함장님! 페이즈 3! 돌입 한계점까지 2분 남았습니다! 융제용 젤, 발사 준비."

노이만 상사의 목소리에 나탈이 대꾸했다.

"제로와 스트라이크를 호출하라!"

마류는 얼어 붙은 듯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지켜 보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두 척의 전함이 장갑을 대기 마찰로 붉게 태우면서 서로를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었다.

전함 안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연쇄 폭발 때문에 가모프의 내부에서 장갑이 뜯어지면서 터져 버렸다. 순식간에 퍼져 나간 파편이 대기 속에서 방사선을 그리며 불타오른 뒤에 사라졌다.

메넬라오스는 아직까지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전함 외벽이 공기와 마찰하면서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으며, 이탈하려고 해도 엔진이 거의 말을 듣지 않았다. 물론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어떤 엔진이라 할지라도 이 거대한 전함을 지구 중력으로부터 구출할 수 없다.

"할버튼 제독 각하…!"

타오르며 흩어지는 메넬라오스를 향해 마류는 일어나서 천천히 경례를 했다. 눈물이 넘쳐 흐르며 눈 앞을 가린다. 마지막으로 본 할버튼의 대담한 미소가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각하…. 그 마음을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젤만 함장님…!」

니콜의 비통한 외침이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아스란은 잠시 넋을 잃고 타오르는 두 척의 전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귀함 명령이 레이저 통신으로 그들 조종석에 전달되었다. 이제 와서 뒤쫓는다고 해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아스란은 귀함을 잊은 채 눈 앞에 펼쳐지는 재앙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무의미하다. 어떤 이유와 원인도 이러한 희생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저 그 광경에 압도된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파멸을 초래한 사람들의 마음이 전율과 함께 피부를 바싹 태운다.

불타오른다. 사람들의 마음이, 증오가, 희망이, 절망이, 어머니 대지를 향해 추락한다. 그들의 마음이 언제 어떤 결실을 맺을까? 아니면… 대지에 뿌리 내리기 전에 불에 타서 소멸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스란은 알 수 없었다.

 

 

아크 엔젤의 후미 잡판에 앵커를 쏴서 제로가 함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해치가 닫혔다. 무우는 제로에서 뛰쳐 나오며 소리쳤다.

"꼬마는?!"

함교에서는 강하 절차가 최종 단계를 맞고 있었다.

"페이즈 3! 융제용 젤 발사!"

"키라! 키라, 제발 돌아와!"

아까부터 밀리아리아가 목이 쉬어라 스트라이크에게 말을 걸고 있었으나, 통신기로부터 들리는 소리는 마찰음이 섞인 잡음 뿐이었다.

전함 조종사인 노이만 상사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전함, 대기권 돌입!"

아크 엔젤은 함저부를 지상으로 향한 채 대기권으로 돌입했다. 분출구로부터 투명한 젤이 배출되어 마찰열을 가장 심하게 받는 함저부 전체를 감쌌다. 강화 장갑 전체 온도가 조금씩 상승한다.

"키라…!!"

 

 

"에잇!"

휘두르는 듀얼의 빔 사벨을 키라는 실드로 받아 치면서 힘껏 밀어 냈다. 튕겨 나간 듀얼이 라이플을 쏘자, 스트라이크도 물러서면서 공격했다. 듀얼이 버니어를 분사했다.

다시 날아오는 듀얼을 향해 스트라이크도 방향을 전환했다. 실드로 듀얼의 라이플을 밀쳐 내고 상대방이 태세를 가다듬기 전에 추진 장치를 점화하여 돌려차기의 요령으로 지표를 향해 발로 찼다.안면부에 적중하여 그 충격으로 듀얼 기체가 크게 뒤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이 틈을 타서 키라가 이탈하려고 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멀어지는 듀얼이 라이플을 들어 올렸다. 이 때….

맞서 공격하려는 키라의 시야를 가린 물체가 있었다. 메넬라오스로부터 방출된 셔틀이었다. 예정 같았으면 키라가 타고 있었을 헬리오 폴리스의 피난민들이 타고 있는 셔틀이었다. 그것이 우연히 스트라이크와 듀얼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듀얼의 라이플이 빔을 발사했다.

"안 돼─!!"

키라가 절규했다. 버니어를 점화하면서 스트라이크가 손을 앞으로 힘껏 뻗었다.

셔틀의 창문을 통해 밖을 쳐다보는 어리고 작은 얼굴을 본 것 같았다.

─지금까지 지켜 줘서….

다음 순간, 빔이 셔틀을 뚫고 지나갔다. 외벽이 분출하는 기류에 떠밀려서 말려 들어갔다. 충격으로 강하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대기 저항에 부딪혀서 한 바퀴 뒤집어진 다음 순식간에 기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산산 조각 난 채 흩어진 것은 기체의 파편일까, 아니면 순진한 소녀의 육신일까.

키라는 계속 비명을 질렀다. 출격하기 전에 계기판 위에 꽂아 둔 종이 꽃이 어느 새 조종석 안을 떠 다니고 있었다.

그들을 지킬 수 있다….

그랬던 확신이 손가락 사이로 허무하게 부서져 내렸다. 키라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킬 수만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의지가 없는 자는 아무 일도 해 낼 수 없다는 할버튼 제독의 말이 옳았다.

이렇게 되기 전에 듀얼을 격추시켰어야 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망설이면 안 된다.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을 해서라도, 가령 자신의 손이 동포의 피로 물든다 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구할 수 없다.

자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키라!"

"키라!!"

사이와 토르가 외쳤다. 함교 모니터에는 중력에 이끌린 채 추락하는 스트라이크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저 상태로… 내려갈 생각인가?!"

나탈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제 와서 스트라이크를 수용할 수 없는 이상, 메뉴얼을 믿는 수밖에 없다. 지금 아크 엔젤의 해치를 열면 고온 대기 열로 내부에 불이 붙거나, 강하 자세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 파르 하사가 소리쳤다.

"본 함과 스트라이크의 돌입 각도에 차이 발생! 이대로 가면 서로의 강하 지점이 크게 달라집니다!"

밀리아리아가 찬 물을 뒤집어 쓴 듯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필사적으로 외쳤다.

"키라, 키라, 돌아올 수 없니?! 전함으로 돌아와! 제발 부탁이야!"

"무리야…. 스트라이크의 추진력으로는 더 이상…."

나탈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함교에 침묵이 깔렸다.

잠시 후에 침묵을 깨고 마류가 결단을 내렸다.

"전함을 가까이 이동시키자! 아크 엔젤의 추진 장치라면 아직 사용할 수 있어!"

"하지만 그래서는 본 함의 강하 지점이…!"

노이만 상사의 항의를 다짜고짜 가로막았다.

"스트라이크를 잃고 본 함만 알래스카로 들어가도 아무 의미 없어! 어서!"

노이만은 초조한 표정으로 추진 장치를 작동시켰다. 천천히 아크 엔젤이 스트라이크 쪽으로 접근했다.

"당장 강하 예정 지점을 산출해 내!"

마류가 파르 하사를 돌아 보았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파르 하사가 서둘러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전함이 옆으로 미끄러지듯이 스트라이크를 향해 이동한다.

"본 함 강하 예정지는…."

파르 하사가 외쳤다.

"아프리카 북부입니다! 북위 29도, 동경 18도!"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승무원들은 그 말을 듣고 얼어 붙었다.

"…완전히 자프트의 세력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