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시드 -1권- 엇갈리는 날개 :: PHASE.2 아르테미스

「X105=스트라이크, 응답하라─」

통신기는 아까부터 같은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 댔다. 조종석에서는 키라의 가쁜 숨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헬리오 폴리스가….'

방금 전까지 키라가 밟고 섰던 대지는 산산 조각 나서 우주 공간을 떠 다니고 있었다. 잔해와 금속 파편에 섞여 낯 익은 간판과 건물 일부가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어째서…?'

내일도 모레도 변함 없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상 생활. 그것은 이토록 허무한 것이었을까.

「X105=스트라이크!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응답하라!」

통신기의 목소리는 초조한 듯 했다.

「키라 야마토!」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키라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마류의 목소리였다.

「내 말이 들리면… 무사하다면 어서 응답하라, 키라 야마토!」

"아… 네, 키라입니다."

키라는 통신기 스위치를 누른 뒤 응답했다. 마류의 목소리에 안도의 한숨이 섞여 들렸다.

「무사한가?」

"네."

「이 쪽 위치를 알 수 있나? 귀환할 수 있겠나?」

"네…."

키라는 입가에 힘을 주고 다시 레버를 손에 쥐었다. 부모님이 무사한지 걱정 되었지만 무사히 피난했을 것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 전자음이 울리면서 모니터에 어떤 표시가 떠올랐다.

"구조 신호…?"

그 곳에는 램프를 깜빡거리는, 가늘고 긴 원통형 표류물의 모습이 있었다.

 

 

"추진부가 고장나서 표류하고 있었어요."

키라는 아크 엔젤에 무사히 돌아왔지만, 우현에 마련된 출입구에서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가 양손으로 한 척의 구명 보트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우주에 내버리라는 말입니까?! 헬리오 폴리스의 피난민이 타고 있잖습니까!"

키라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모니터 너머로 마류가 한숨을 쉬었다.

「…좋아. 허락하마.」

그러자 또 다른 여사관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들은 아직 전투 중입니다! 피난민을 받아 들일 여유는….」

「고장났다니까 별 수 없지. 지금은 이런 일로 다투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스트라이크와 구명 보트가 착함한 곳은 캐터펄트(사출기) 레일이 길게 늘어선 발착을 위한 통로였다. 스트라이크를 내부 격납고에 들여 보내자 공기를 차단하기 위한 거대한 문이 닫혔다. 모빌 슈트용 정비대가 안쪽에 마련되어 있었으며 옆에는 손상을 입은 모빌 아머가 수용되어 있었다.

스트라이크의 해치가 열리면서 키라가 고개를 내밀자, 승무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이, 저게 뭐야? 애송이 아냐? 저 꼬마가 저걸 타고 있었다고?!"

정비사 머독이 노골적으로 다른 이들의 의견을 대변했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까치집 같은 머리카락에 수염을 깎지 않아 텁수룩한 얼굴을 한, 결코 미남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내였다.

스트라이크가 착함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친구들이 조종석에서 뛰어 내린 키라를 에워쌌다.

"키라, 다행이야!"

"무사했구나!"

토르가 끌어안고, 사이가 머리카락을 마구 휘젓는 바람에 키라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마음이 놓였는지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 때 격납고 반대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사이!"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구명 보트에서 밖으로 나온 소녀는 프레이 알스터였다. 그녀는 곧바로 사이의 가슴에 뛰어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헬리오 폴리스는 어떻게 됐어? 제시카랑 따로 떨어져서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끌어 안긴 사이는 놀라면서도 곧 기쁜 표정으로 프레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눈을 크게 뜬 키라는 두 사람의 친밀한 모습에 약간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모두 다 무사했다. 재회를 기뻐하며 흥분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은 주위 환경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무우 라 프라가가 다가갔다.

"이야, 이거 참 놀라운걸?"

그는 미소 띤 얼굴로 키라 앞으로 걸어왔다.

"뭐, 뭐가요?"

갑자기 눈 앞을 가로막고 선 키 큰 군인의 모습에 키라는 뒷걸음질 쳤다. 무우는 미소와 함께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이렇게 말했다.

"너, 코디네이터지?"

무우의 말에 주위의 공기가 얼어 붙었다.

함교에서 내려온 마류가 씁쓸한 표정으로 무우를 노려보았다. 키라는 머뭇거리다가 무우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올려다 보았다.

"…네."

그 순간 마류와 나탈의 뒤쪽에 서 있던 병사들이 총을 겨누었다. 총구는 키라를 노리고 있었다.

그건 바로 이번 전쟁의 축소판이나 다름 없었다. 내츄럴 대 코디네이터.

코디네이터! 그 말은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태어난 자들을 가리킨다. 사람이 지닌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고 사람의 손으로 창조해 낸 초인들. 그들은 지능, 체력이 일반인보다 월등히 뛰어나며, 거의 모든 병에 항체를 지닌 강인한 육체를 지니고 있다. 예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손꼽히는 유전병에 대한 대응책으로도 각광받았으며, C.E.20년대부터는 세계적으로 유전자 조정 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코디네이터와 내츄럴(유전자 변형을 받지 않고 태어난 인간) 사이의 능력 차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자 그것을 배척하는 세력이 떠올랐다. 유혈의 역사를 되풀이한 뒤, 내츄럴에 비해 우주에서의 생활에 적합하다는 것이 판명된 코디네이터들은 지구 밖으로 이주했다. 그들이 생활의 터로 정한 곳은 L5에 건조된 우주 콜로니 군─ 일명 '플랜트'였다.

그리고 현재, 플랜트의 군사 조직인 자프트와 지구─ 즉 코디네이터와 내츄럴이 전쟁이란 이름 아래 서로를 죽이고 있다. '코디네이터'라는 명칭에 병사들이 반사적으로 무기를 겨눈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대체 뭐 하자는 겁니까!"

토르가 외치며 키라를 감싸듯이 앞으로 나왔다.

"코디네이터라도 키라는 적이 아니에요! 자프트와 싸워서 우리들을 지켜 줬잖아요?! 당신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습니까!"

그는 키라를 향한 총구를 노려보며 필사적으로 호소했다.

"총을 내려라."

마류가 명령했다.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어. 헬리오 폴리스는 중립국 콜로니였으니까. 전쟁에 휘말리기 싫어서 이 곳으로 이주한 코디네이터가 있다고 해도 신기한 일은 아니야."

"네…. 전 '1세대'거든요…."

'1세대'란 초창기에 변형된 유전자를 가진 자들을 가리킨다. 즉 내츄럴인 부모가 자신들의 수정란을 유전자 변형시킨 뒤 출산한 아이라는 뜻이다. 부모가 내츄럴이라면 중립 콜로니에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한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미안해. 괜히 일을 꼬이게 할 뻔했군."

소란을 일으킨 장본인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난 그저 궁금했을 뿐이야. 이 곳으로 오는 내내 스트라이크의 파일럿이 될 뻔한 녀석의 시뮬레이션을 봐 줬거든. 그 녀석들이 얼마나 둔하고 느린지 내가 식은 땀이 날 정도였어."

무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뒤돌아 갔다.

"그런 걸 갑자기 그렇게 쉽게 조종하니까 누군가 했지."

 

 

"자프트함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겠나?"

마류의 물음에 대해 레이더 패널을 지켜보던 파르 하사의 대답은 시원찮았다.

"불가능합니다. 헬리오 폴리스의 잔해 중에 아직도 열을 지닌 것들이 많아서 레이더나 열 탐지가 아직까지는 어렵습니다…."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겠지."

무우가 약간 위안이 되는 말을 던졌다. 마류는 생각에 잠겼다.

"…지금 공격을 받으면 우리 쪽에 승산이 없어요."

"그렇겠지. 우리 쪽에 남은 것이라고는 비장의 무기인 스트라이크와 너덜너덜한 내 제로 밖에 없으니까. 전투는 좀 곤란해…. 그럼 최대 속력으로 뿌리쳐 볼까? 제법 고속함이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적군도 고속함 나스카 급을 갖고 있어요. 뿌리칠 수 있을지 어떨지…."

"그럼 순순히 투항하시든지."

그 말에 마류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무우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다지 나쁜 방법은 아닐 거야."

마류는 미소 띤 얼굴로 엄청난 발언을 입에 담는 남자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자신을 시험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갑작스레 함장이라 불리며 이 자리에 앉게 되었으나,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그녀는 솔직히 아직도 당황스러웠다. 물론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미래가 암담하게 느껴졌다. 무우 라 프라가라는 남자는 물론 나탈 버질 또한 얼굴은 알고 있지만 여태까지 같은 부서에서 일한 적이 없어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그들을 자신이 통솔해 나갈 수 있을까? 특히 저렇게 미덥지 않은 성품의 남자를?

"투항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녀는 단호한 어투로 대답했다.

"이 전함과 스트라이크는 절대로 자프트 측에 건네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들을 무사히 대서양 연방 사령부에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월면 기지에 있는 본부와 연락조차 취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의욕은 좋지만 그것밖에 없으니…."

이번에는 단순한 야유가 아니라 무우도 함께 난감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러자 나탈이 끼어 들었다.

"함장님, 저는 '아르테미스'에 기항할 것을 권장합니다."

그 제안에 두 대위가 고개를 들었다.

"그 곳은 현재 본 함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코스에 있는 동맹군입니다."

"'아르테미스의 우산'이라…."

무우가 중얼거렸다. 아르테미스란 현 지점에서 가까운 우주 공간에 있는 유라시아 군사 위성을 말한다. 아크 엔젤이 속하는 북대서양 연방과는 군사 동맹을 맺고 있다. 그러나….

"하지만 'G'나 이 전함이나 공식 발표는커녕 동맹군의 인식 코드조차 없는 상황이니 원…."

"그렇다고 이대로 진로를 달로 정한다고 해서 도중에 전투가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지 않습니까. 아무런 물자 반입 없이 서둘러 발진한 저희들에게는 보급이 시급합니다."

나탈의 말이 옳다. 이대로 지구를 끼고 위성 궤도 반대 방향에 위치한 달까지 가기에는 너무나도 멀다. 전투가 없다고 해도 도중에 물자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나탈이 이어서 말했다.

"이번 사태는 유라시아 측에서도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가능하면 전투를 회피하고 아르테미스에서 보급을 받아 그 후에 달에 있는 본부와 연락을 취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르테미스라…."

무우가 비관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우리 생각처럼 잘 될지 어떨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 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군요."

마류가 망설이면서도 결단을 내렸다.

명령이 떨어지자 아크 엔젤의 함교가 약간 떠들썩해졌다.

"교란 물체 준비! 발사와 동시에 아르테미스로 향하는 항로 수정을 위해 메인 엔진을 분사할 것이다. 그 다음 관성 항해로 이동. 제２전투 배치! 전함 제어는 빠른 시간 내에 실행할 것!"

마류가 지령을 내렸다. 교란 물체를 발사한 뒤 거기서 발신되는 거짓 정보로 적함의 주의를 끄는 동안 최소한의 동작으로 방향을 전환시킨다. 그 뒤로 첫 분사 때 얻은 추진력을 이용하여 관성 항해를 시도한다. 엔진을 가동시키면 열량이 적에게 탐지되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스까지 무음 잠항이라…. 두 시간 가량 걸리겠군."

무우가 중얼거렸다. 승무원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흐른다.

"…나머지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마류가 명령했다.

"교란 물체 발사! 메인 엔진 분사! 전함, 아르테미스를 향해 항로 수정!"

 

 

"이런 사태가 벌어질 줄이야…."

베사리우스 함교에서 아데스 함장이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헬리오 폴리스가 존재했던 우주 공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태까지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그저 전전긍긍하고 있었으나, 약간 냉정함을 되찾자 이번에는 새로운 의혹이 떠올랐다. 그는 라우를 돌아 보았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중립국 콜로니를 파괴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평의회가…."

"지구군의 신형 병기를 제조하던 콜로니가 무슨 중립국이란 말인가."

라우의 표정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후회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주민 대부분이 탈출했으니까 별 다른 문제는 없어. '피의 발렌타인'의 참극과 비교한다면."

아데스는 입을 다물고 다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그렇다. 분명히 지난 참극과 비교한다면….

하지만 '피의 발렌타인'과 비교할 만한 만행을 자신들이 저질렀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이런 일을 실행하고도 저토록 침착한 라우가 끔찍하게 여겨졌다.

"아데스, 적함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나?"

라우가 묻자 아데스는 당황스러워했다.

"아직도 쫓아갈 생각이십니까? 하지만 방금 전의 전투 때문에 저희 측은 이미 모빌 슈트가…."

"아직 남아 있지. 그것도 네 대 씩이나."

무슨 뜻인지 알아 차린 아데스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구군으로부터 탈취한 모빌 슈트를 투입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데이터 분석만 끝나면 문제 없어. 지구군의 새 전함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대로 내보내서는 안 돼."

놀란 표정의 함장을 무시하고 라우는 전략 패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곳에 떠오르는 우주 도면을 바라보며 잠시 후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물을 펼칠까…."

"그물…이라뇨?"

"베사리우스는 먼저 가서 이 곳에 적함을 대기하라. 가모프는 이 코스를 따라서 은밀하게 적을 탐색하면서 따라오게 하도록."

라우가 가리킨 장소를 보고 아데스가 눈썹을 찌푸렸다.

"아르테미스… 말입니까? 하지만 이렇게 목적지를 정해 버리면 달 방향으로 이탈했을 경우…."

그의 반론은 통신병 목소리에 지워졌다.

"대형 열량 감지! 전함이라 추측됩니다! 해석 가능한 예측 코스, 지구 중력을 이용한 월면 지구군 대서양 연방 본부!"

아데스가 쳐다보자 라우가 고개를 저었다.

"저것은 교란용이 분명하다. 틀림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

라우는 그렇게 단언했다.

"저들은 아르테미스로 향하고 있다. 베사리우스 발진 준비. 가모프를 호출하라."

 

 

"이봐, 그건 너무 무리한 요구 아냐?!"

무우가 크게 손을 저었다. 그들은 아직도 회의 중이었다. 마류가 말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의 힘이 필요해질지도 모릅니다. 프라가 대위님이 탑승하신다면…."

"농담하지 마. 그 꼬마가 재설정했다는 OS 데이터를 봤잖아? 그런 것을 내가… 아니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다뤄!"

마류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 자신도 키라의 OS 설정 과정과 조종 기술, 그리고 자신이 다룬 것과 똑같은 기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운동성을 보여 준 스트라이크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탈이 끼어 들었다.

"그럼 다시 처음 주제로 돌아와서…. 여하튼 민간인 소년, 그것도 코디네이터에게 소중한 기체를 더 이상 맡길 수는 없습니다…!"

그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혐오감이 떠올랐다. 뼛속까지 군인 기질로 똘똘 뭉친 그녀에게 있어서 코디네이터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증오의 대상, 즉 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내츄럴이 한둘이 아니다. 마류 자신은 코디네이터라고 할지라도 한 사람의 인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뛰어난 능력을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다른 사람들의 심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현재 싸우는 대상이 코디네이터라는 사실이다.

무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나보고 느릿느릿 나가서 적의 표적이라도 되라는 뜻인가?"

"그런 말이…!"

난처한 듯이 마주보는 나탈과 마류 앞으로 무우가 몸을 내밀었다.

"저기, 만일 전투가 시작되면 그 꼬마가 최대한 높인 기체 성능, 그리고 그것을 다룰 수 있는 파일럿, 둘 다 갖추지 않으면 적과는 도저히 싸울 수 없어."

그 말은 필연적으로 유일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아크 엔젤 내부에 마련된 주거 구역의 한 방에 소년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이 전함의 주거 구역은 중력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리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불안이 카즈이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헬리오 폴리스가 붕괴되는 것을 그들도 선내 스크린을 통해서 목격했다. 여태까지 존재를 의식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확고했던 현실이 눈 앞에서 물거품처럼 부서져 버렸다.

편안한 콜로니를 잃고 부모나 가족과 떨어져서 안부를 확인할 방법조차 없었다. 이렇게 지구 연합군 군함을 타고 있는 이상, 언제 또 다시 전투가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기… 저 아이, 코디네이터였니…?"

프레이가 사이에게 물었다. 그녀는 이층 침대에 누워 있는 키라를 경이롭다기보다는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카즈이가 중얼거렸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잠이 오는지 모르겠어."

"피곤해서 그래. 키라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밀리아리아가 대답하자, 카즈이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기분 좋은 웃음이 아니었다.

"고생이라…. 키라에게는 그런 일조차 단지 '고생'이라고 말할 수 있구나."

"카즈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질책하는 시선을 던지며 토르가 말했다.

"아니 뭐…. 키라가 그 기체의 OS를 재설정했다는 말 들었냐? …그게 언제라고 생각해?"

"언제…라니…."

다들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알아 차렸다.

키라는 모빌 슈트에 대해서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다. OS를 재설정했다면 그것을 타고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실행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키라의 전투 능력은 프레이를 제외한 전원이 목격했다. 싸우던 도중, 스트라이크의 움직임이 놀라우리만치 매끄러워졌다.

'그 잠깐 사이에…? 게다가 진과 싸우면서?!'

다들 키라가 코디네이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뛰어난 능력을 인정한 카토 교수가 여러 가지 잡무를 떠맡기고 있었다는 것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압도적인 능력이라고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코디네이터에게는 그런 일조차 '고생 좀 했어' 라는 한 마디로 끝이야. 자프트에는 그런 녀석들이 널려 있겠지?"

어두운 목소리로 카즈이가 말했다.

"…지구군은 그런 녀석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그들은 조심스레 잠든 키라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열 여섯 살의 어린 소년다운 표정이었다. 여태까지 모두들 그를 조금 영리하지만 어수룩한 면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해 왔다. 그와 자신들 내츄럴 사이에 이렇게 결정적인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때, 방에 깔린 침묵을 깨는 소리가 들려 왔다.

"키라 야마토!"

문가에 마류와 무우의 모습이 보였다. 토르가 서둘러 키라를 흔들어 깨웠다. 아직 몽롱한 상태에 있던 키라는 마류가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말을 듣고 잠이 확 달아났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는 분노의 목소리로 외쳤다.

"어째서 제가 그것을 타야 하죠?! 당신이 하는 말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우리는 전쟁이 싫어서 중립국 헬리오 폴리스를 선택한 겁니다! 더 이상 우리들을 끌어 들이지 마세요!"

마류는 힘든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곁에서 무우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너밖에 탈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어쩔 수 없다고요?! 전 군인도 뭣도 아닙니다!"

"언젠가 다시 전투가 시작되면 그렇게 외치면서 죽을 거냐?"

무우가 가볍게 던진 한 마디에 키라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이 전함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너와 나 밖에 없어."

"하지만… 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키라를 바라보며 무우가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

"네게는 능력이 있잖아? 그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봐."

키라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고통스러운 듯이 고개를 떨구고는 그를 밀치며 방을 뛰쳐 나갔다.

 

 

"아스란 자라입니다! 통고를 받고 출두했습니다!"

대장실에 불려 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경례하는 아스란을 앞에 두고, 라우는 느긋하게 손가락을 깍지 끼웠다. 부하들과의 회의실 겸용으로 사용하는 방임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저 기능적이고 살벌한 공간이었다.

"자네와 얘기하는 것이 늦었군. 어째서 불려 왔는지 알고 있겠지?"

"네…, 명령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징벌을 내릴 생각은 없지만 이유를 알고 싶군. 너무나도 자네답지 않은 행동이었어."

아스란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라우는 일어나서 그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

"부하로부터 정확한 보고를 받지 못하면 어느 명장이라도 실수할 수 있는 법이지, 아스란."

"죄송합니다…. 생각지 못한 일에 동요한 나머지…."

아스란은 고통스럽게 한숨을 쉬며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탈취하지 못한 마지막 기체…, 그것에 타고 있었던 자는 키라 야마토. 달의 유년 학교에서 제 친구였던… 코디네이터입니다. 설마 그런 장소에서 재회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라우는 말 없이 아스란의 고백을 듣고 있다가 잠시 후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 전쟁이란 모순이군."

그는 책상으로 돌아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동요한 것도 무리가 아냐. 친한 친구였나 보군?"

"네…."

"알았다. 그렇다면 다음 출격에서 자네를 제외하도록 하겠네."

아스란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런 상대에게 어떻게 총을 겨눌 수 있겠는가. …나도 자네에게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

"대장님, 아닙니다! 그것은…."

아스란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 책상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키라는… 그 녀석은 내츄럴에게 이용 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우수하지만 맹한 구석이 있고 사람이 좋아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니까 저는… 설득하고 싶습니다! 그도 저희들과 똑같은 코디네이터입니다. 제 말을 알아 듣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자네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만일 상대방이 거절할 경우에는?"

"그 때는…."

아스란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곧바로 라우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제 손으로 쓰러뜨리겠습니다."

 

 

아크 엔젤 함교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대형 열량 감지! 전함 엔진으로 추측됩니다. 거리 200, 옐로 3317, 마크 02 찰리, 진로 제로, 시프트 제로!"

"옆에 붙었나?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나?"

이 쪽을 눈치 챈 것이 아닐까 다들 전율했다.

"하지만 그것치고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나탈이 중얼거렸다. 적함은 아크 엔젤 좌현 방향과 평행을 이루면서 항해하고 있었다.

"목표는 초고속으로 이동 중. 가로 축에서 본 함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확인! 나스카 급입니다!"

무우가 신음했다.

"…선수 쳤군. 앞으로 가서 우리 머리를 노릴 생각이다."

"로라시아 급은?!"

나탈이 서둘러 물었다. 파르 하사가 급히 계기판을 조작한 뒤,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본 함의 후방 300에 진행 중인 열원…! 어느 새…."

두 전함 사이에 낀 꼴이 된 것이다. 공포로 물든 침묵이 잠시 함교를 가득 채웠다. 이윽고 침묵을 깨듯이 무우가 입을 열었다.

"당했군. 이대로 가면 로라시아 급이 따라 잡아서 발견할 테고…, 도망가자고 엔진을 사용하면 당장 나스카 급이 선두를 돌려서 쫓아 오겠지?"

마류와 나탈도 말문이 막힌 채 가만히 있었다. 잠시 동안 꿈 꾼 희망이 산산 조각 나 버렸다.

"이봐! 두 전함의 데이터와 우주 도면을 이 쪽으로 보내 줘."

무우의 목소리에 두 여성 사관이 정신을 차렸다.

"무, 무슨 방법이 있나요?"

마류가 함장 답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에 무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이제부터 생각해야지."

 

 

「적함 발견! 적함 발견! 제１전투 배치! 군에 소속된 자들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하라.」

긴박한 함내 방송을 들은 토르 일행은 모두 고개를 들었다. 수용된 피난민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전투가 시작되는 거야…?"

겨우 휴식을 취하려고 했던 병사들이 각자의 방에서 제복을 입으며 뛰쳐 나왔다.

「키라 야마토는 함교로, 키라 야마토는 함교로 오십시오.」

그 말을 들은 밀리아리아가 토르에게 조용히 물었다.

"키라… 어떻게 할 것 같아?"

사이가 중얼거린다.

"그 녀석이 싸우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해지겠지…."

토르는 아까부터 입술을 쭉 내밀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밀리아리아가 토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토르, 우리만 여기 앉아서 언제까지나 키라의 보호를 받을 순 없잖아…?"

밀리아리아 뿐만 아니라 토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했어…."

프라가 대위라는 청년 사관이 키라에게 건넨 말이 토르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분명히 키라는 코디네이터이자 자신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지녔으며 키라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짐을 그에게만 짊어지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자신이 가진 힘은 작고 보잘것 없다. 하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틀림 없이 있을 것이다.

토르는 굳은 결심과 함께 일어나서 친구들을 둘러 보았다. 다들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함교로 향했다.

 

 

방송을 들은 키라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망설이고 있을 여유가 없다. 자신이 싸우지 않으면 전함이 격침될 게 분명하다. 친구들과 다른 피난민들, 그리고 승무원들도 죽는다. 물론 자기 자신도. 싸운다고 해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만일 싸우지 않는다면 살아 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째서 나여야만 하는 걸까? 싸우고 싶지 않다. 자신이 격파한 모빌 슈트, 그 안에도 사람이 타고 있었을 것이다.

죽고 싶지 않다. 하지만 죽이고 싶지도 않다. 어째서 자신이 직접 손을 더럽혀야 하는 걸까. 그리고….

"아스란…."

그 이름을 중얼거리자,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음에 만나면 그와 싸우게 될지도 모른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함교를 향해 걸었다. 한 발 씩 뗄 때마다 밧줄이 옭아 매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모퉁이를 돈 키라는 멈추어 섰다. 반대편에서 친구들이 걸어 오고 있었다.

"토르…, 너희들… 그 옷차림은 뭐야?!"

소년들은 모두 지구 연합군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함교로 들어오려면 제복을 입어야 한대."

카즈이가 명랑하게 말했다. 사이는 꼼꼼하게 깃을 세우면서 영문을 몰라 하는 키라에게 설명했다.

"우리도 전함을 돕는 일을 해 보려고 해. 사람이 모자란다면서? 우린 일반인보다 기계나 컴퓨터를 다루는 일에 능숙하잖아?"

"군복은 자프트 쪽이 훨씬 멋있는 것 같아. 계급장이 없어서 그런지 좀 한심해 보이지 않냐?"

토르가 웃으면서 말하자, 곁에 서 있던 찬드라 하사가 "건방진 말 하지 마!" 라고 호통 쳤다. 키라는 아직도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를 향해 토르가 씨익 웃었다.

"넌 싸우는데 우린 늘 보호만 받았잖아…. 이젠 우리도 함께 싸울게."

밀리아리아도 말했다.

"상황이 그렇잖니.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너희들…."

키라는 가슴이 벅차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의 뜨거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난 혼자가 아냐.'

 

 

격납고에 키라가 파일럿 슈트를 입고 나타나자 무우가 놀리듯이 말했다.

"그 모습을 보니 겨우 싸울 생각이 들었나 보군."

키라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대위님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전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 둘 뿐이라고…. 싸우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이 전함을 지키고 싶습니다. 친구들이 타고 있으니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무우가 대답했다.

"아무런 의미 없이 싸우는 사람은 거의 없어. 싸우지 않으면 지킬 수 없기에 싸우는 거야."

키라는 다시 그를 올려다 보며 그렇구나, 라고 생각했다. 군인들은 모두 자신과 동떨어진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근원에 깔린 감정은 모두 같다고….

부끄러운 생각에 키라는 화제를 돌리듯이 말했다.

"…이거, 약간 큰 것 같습니다."

파일럿 슈트의 깃을 잡아당기자, 무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너무 말라서 그래."

허둥지둥 브리핑이 끝나자 키라는 스트라이크, 무우는 제로를 향해 달렸다. 제로의 이중 해치가 닫히는 것을 본 뒤에야 키라는 조종석에 올라 탔다. OS를 기동시키고 안전 띠를 착용했다.

「로라시아 급, 후방 90에 접근!」

「함장님, 슬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출동하겠습니다!」

「네, 부탁합니다.」

함교의 보고와 무우와 마류의 대화가 통신 회선을 통해 들려온다.

「꼬마에게도 작전을 설명해 뒀어.」

작전─ 그것은 무우의 아이디어였다. 적함이 뒤쫓아 와서 아크 엔젤을 발견하고 공격하는 사이에 제로를 탄 무우가 몰래 앞장 서서 전방에 있는 나스카 급을 기습한다는 내용이다.

「이 작전은 타이밍이 아주 중요해. 그럼 뒤를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함교와의 통신을 끝내자, 무우는 키라에게 말을 걸었다.

「꼬마야. 무조건 전함과 자신을 지키는 일만을 생각해라.」

"네, 넷! 대위님도 조심하십시오!"

모니터 너머로 무우가 대담한 표정으로 웃으며 통신을 끊었다.

「무우 라 프라가, 출격! 돌아올 때까지 무사하도록!」

제로가 가볍게 허공에 떨어지듯이 전함을 떠났다. 그것을 지켜 본 키라는 조종석에서 중얼거렸다.

"과연 잘 될까?"

무우가 충분히 적에게 접근할 때까지 시간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동안 키라 혼자서 아크 엔젤을 지켜야 한다. 과연 할 수 있을까?

키라는 중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때 통신기로부터 낯 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키라.」

"밀리아리아?!"

인터컴을 쓴 밀리아리아가 모니터 너머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앞으로 모빌 슈트 및 모빌 아머의 전투 관제를 맡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해.」

부끄러웠는지 끝에 가서 약간 웃으면서 윙크하자, 뒤쪽에 서 있던 토노무라가 "잘 부탁합니다, 라고 말해야지!" 라고 야단 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키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약간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장비는 에일 스트라이커를 사용하도록. 아크 엔젤이 엔진을 가동시키면 바로 접근해 올 거야, 알았지?」

토노무라가 당부했다.

"넷!"

대형 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유닛이 기체 등 뒤에 탑재되었다. 날개가 달린 것 같은 그 유닛은 4기의 고출력 버니어에 의해 우주 공간, 혹은 대기권 내에서 스트라이크의 기동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는 추가 장비 '에일 스트라이커'다. 무기는 양 어깨 부분에 수납된 빔 사벨과 57mm 빔 라이플이 있다.

장착과 동시에 날개가 십자 모양으로 펼쳐지는 것을 확인한 뒤, 키라는 스트라이크를 움직여서 사출 장치에 올라 탔다.

「엔진 시동! 동시에 주포 발사! 목표, 전방 나스카 급!」

마류의 목소리와 함께 엔진이 낮게 울리기 시작했다. 양 현으로부터 225cm 2연장 고에너지 수속 화선포 '고트프리트 Mk.71'이 올라온다.

「주포, 발사!」

포구로부터 눈부신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찬드라 하사의 비명이 통신기를 통해 들려 왔다.

「전방 나스카 급으로부터 모빌 슈트 발진을 확인! 이지스입니다!」

그 목소리에 키라가 움찔했다.

'아스란!'

밀리아리아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인터컴을 향해 외쳤다.

「키라! 스트라이크 발진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출구가 서서히 열리며 별들이 점점이 박힌 어두운 하늘이 밖으로 펼쳐졌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과 이미 몇 차례 경험한 전투에 대한 공포심에 솟아올라 자기도 모르게 레버를 쥔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키라는 눈을 꼭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은 어둠 속에서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난 혼자가 아냐.'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앞을 쳐다보았다.

"키라 야마토! 건담, 출격합니다!"

사출 장치가 스트라이크를 우주 공간으로 밀어 냈다. 늘어난 배터리 케이블이 튕겨 나가듯이 기체에서 떨어지고 급격히 가해지는 압력에 키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허공에 내던져지듯 떠올랐다.

"페이즈 시프트 기동… 화기관제 잠금 해제…."

은회색을 띤 기체가 트리콜로르(삼색기; 프랑스 국기)로 물들었다. 키라는 적을 찾아서 모니터와 레이더를 들여다 보았다.

 

 

함교에 있는 찬드라 하사가 한 발 먼저 적을 발견했다.

"후방에서 접근하는 열원 3! 거리 67! 모빌 슈트입니다!"

왔구나, 라는 긴장감이 승무원들을 감쌌다. 나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 모빌 슈트 전투 준비! 미사일 발사관, 13번부터 24번 '코린토스' 장전! '발리언트' 양 현 기동! 목표 데이터 입력을 서둘러라!"

정규군에 섞여서 토르와 다른 친구들도 심각한 표정으로 계기판을 바라보고 있다.

함미에서 전 12문의 대형 미사일 발사구가 열리면서 양 날개의 바깥 측에 달린 원판에 접힌 채 수납되어 있던 리니어 캐논 '발리언트 Mk.8'이 우뚝 섰다.

전투 준비가 갖추어지자 적기의 정보 분석을 하던 찬드라 하사가 숨을 죽였다.

"적기 확인! 이것은…! X넘버, X102=듀얼, X103=버스터, X207=블리츠입니다!"

"뭐라고…?!"

그 순간 얼어 붙은 승무원 중에서 마류가 쥐어 짜듯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빼앗은 'G'를 전부 투입하겠다는 거야…?!"

 

 

스트라이크 조종석에서도 적기가 접근한다는 경고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키라는 버니어를 가동하고 빔 라이플을 빼 들었다. 붉은 색 기체가 접근한다. 이지스다.

"…아스란?!"

서로 고속으로 접근하던 2기는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엇갈려 스쳐 지나갔다.

「키라!」

지나치면서 스피커를 통해 아스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만 해! 우린 적이 아냐! 안 그래?!」

키라는 흠칫했다. 그렇다. 이 전쟁은 키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 이전에 아스란과는 친구 사이다. 둘이 적이 되어 싸울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같은 코디네이터인 네가 어째서 우리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지?」

아스란의 한 마디가 귀를 찔렀다. 키라의 망설임이 되살아 났다.

「네가 어째서 지구군에 있는 거야?! 왜 내츄럴 편을 들고 있냐고!」

"난 지구군이 아냐!"

키라는 무의식 중에 반박했다.

"하지만… 저 전함에는… 내 친구들이 타고 있어…!"

이 때 다른 2기가 아크 엔젤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린 키라는 그 쪽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이지스가 끼어 들었다.

「그만 둬!」

"아스란…!"

초조함을 느끼면서도 공격을 하지 못하는 키라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상대방에게 터뜨렸다.

"너야말로… 어째서 자프트에 있지?! 전쟁이 싫다고 늘 말했잖아!"

키라의 외침을 한 줄기 빔이 덮어 버렸다. 갑자기 키라와 아스란 사이에 새로운 기체가 끼어 들었다. 둘은 정신을 차리고 코디네이터 다운 반사 신경으로 그것을 피했다.

「뭘 우물쭈물하고 있는 거야, 아스란!」

낯선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들려 온다. 키라는 적기의 데이터를 보고 숨을 죽였다.

'X102=듀얼?! 그럼 이것도….'

탈취 당한 X넘버 중 하나, '듀얼'이다. 5기 중 가장 표준적인 성능을 지닌 이 기체는 청백 두 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양 어깨에 빔 사벨을 장착했고, 손에 든 무기는 175mm 그레네이드 런쳐와 함께 사용하는 57mm 고 에너지 빔 라이플 등, 스트라이크와 기본적으로 같은 것들이다.

순간적으로 이탈하려는 스트라이크를 따라 빔 라이플을 사격하면서 듀얼이 뒤쫓아 왔다.

「네게 버거운 존재라면 내가 해치워 주지! 물러 서 있어!」

 

 

한편 '버스터'와 '블리츠'가 붙은 아크 엔젤은 회피 기동을 전개하면서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고 있었다.

"안티 빔 폭뢰 발사! '이겔슈테른', 모빌 슈트를 전함에 접근시키지 마라! '헬다트'는 자동 발사로 셋팅!"

폭뢰가 발사되어 일정 거리에서 터지면서 가는 입자를 주위에 흩뿌렸다. 양 현에 12문씩 배치된 75mm 대공 자동 발칸 포탑 시스템 '이겔슈테른'이 2기의 모빌 슈트를 자동 추격하여 탄막을 펼쳤으며, 함교 후방의 대공방어 미사일을 순서대로 발사했다. 신형함 아크 엔젤의 화력에 버스터와 블리츠는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버스터의 94mm 고에너지 수속 화선 라이플이 발사되었다. 안티 빔 입자가 그것을 흩어지게 했으나, 위력을 잃지 않은 빔이 현 측에 적중하자 그 충격으로 전함이 흔들렸다. 순백의 장갑이 붉게 달아 올랐다. 함교에 있는 토르 일행은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블리츠가 아래쪽으로 들어서자 함저부의 이겔슈테른이 포구를 열었다. 마류가 외쳤다.

"고트프리트를 사용한다! 전함 좌측 롤 각도 30, 좌현 20도 잡아!"

아래쪽으로 포구를 향하기 위해서 전함은 급속 선회했다. 피난민들이 거주하는 중력 구역에도 그 충격이 전달되어 미끄러져 넘어진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홀로 주거 구역에 남겨진 프레이는 필사적으로 침대에 매달려 있었다.

포탑이 선회한 후 고트프리트에서 대출력 열선을 뿜어 냈다. 가까스로 블리츠가 그것을 피했다. 예상 외로 만만치 않은 아크 엔젤 앞에서 2기의 X넘버가 고전하고 있었다.

 

 

키라는 듀얼을 떨쳐 내지 못하고 있었다. 모니터를 통해 공격 받는 아크 엔젤의 영상이 보였다. 1초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지만 쏟아지는 빔을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윽…!"

여태까지 그저 도망쳐 다니면서 방어에만 치중하던 키라가 드디어 스코프를 눈 앞으로 잡아당겼다. 빔 라이플을 들고 조준을 맞춰서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듀얼은 가볍게 그것을 피했다. 공격에 대한 당초의 망설임은 서서히 초조함과 공포로 변해 갔다. 아무리 쏴도 기체를 포착할 수 없었다. X넘버의 기동성은 키라 뿐 아니라 적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무작정 라이플을 쏴 대는 스트라이크 앞으로 어느 새 듀얼이 다가와 빔 사벨을 휘둘렀다.

"으아아악!"

키라는 가까스로 안티 빔 실드를 펼쳐서 이를 막았다.

두 기체는 엉켰다가 떨어졌다. 접근시키지 않으려고 라이플을 연속해서 쏘는 스트라이크와 접근해서 해치우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듀얼. 둘은 무의식 중에 아크 엔젤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전함을 둘러싼 공격에 슬슬 지쳐 가던 버스터가 그들을 발견하고, 맛있는 먹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기체를 그 쪽으로 돌렸다. 오른쪽 어깨에 탑재된 350mm 건 런쳐를 허리에 고정시키고 스트라이크를 노리면서 사격했다.

페이즈 시프트를 전개 중인 X103=버스터는 베이지 색을 바탕으로 흉부가 카키 색과 붉은 색으로 나뉘어 칠해진 강력한 화력을 지닌 후방 지원형 기체다. 양 어깨에 220mm 6연장 미사일 포트를 탑재했으며, 어깨 뒷부분에 탑재한 건 런쳐와 빔 라이플은 떼어 내서 서로 포신을 연결하면 사정 거리를 더욱 늘릴 수 있다.

듀얼을 상대하느라 이미 녹초가 된 키라는 조종석에 울린 경고음을 듣고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다.

느닷없이 전투에 끼어 든 버스터를 포함한 2기의 X넘버를 상대로, 키라는 정신 없이 스트라이크를 몰았다. 위 아래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 자신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무엇을 상대하고 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그저 무작정 조준에 포착되는 대상을 공격하면서 날아 오는 빔을 피하는 수밖에 없었으며, 눈 앞의 에너지 게이지가 조금씩 줄어 들면서 레드 존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릴 여유조차 없었다.

 

 

"가모프로부터 통신문 수신! '본 함이 확인한 적기는 모빌 슈트 1기 뿐'이라고 합니다!"

미리 보낸 전신에 대한 아군의 답변에 라우 르 크루제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베사리우스는 무우의 제로를 발견할 수 없었기에 확인 차 가모프에게 확인을 요청했었다.

"…그의 모빌 아머는 아직 출격할 수 없다는 뜻일까…?"

중얼거리면서도 뭔가 마음 속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무우가 아직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스트라이크 파일럿에게 모든 것을 떠맡길 리가 없다. 하지만 라우는 그의 제로에 상당한 손상을 입혔다. 탈 수 있는 기체가 없다면 출격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적함, 거리 630까지 접근! 곧 있으면 본 함의 유효 사정 거리에 들어옵니다!"

보고를 들은 라우는 고개를 들었다.

"아데스, 이 쪽에서도 공격을 개시한다."

"모빌 슈트 부대가 전개 중입니다. 주포 발사는…."

당황스러워하는 아데스에게 라우는 차갑게 웃어 보였다.

"우리 부대에 아군의 함포에 맞을 만한 바보는 없어. 적군이 공격하기 전에 어서 공격해!"

아데스는 할 말이 많은 것 같았지만 명령대로 호령했다.

"주포 발사 준비! 조준, 적함!"

 

 

아크 엔젤에서 계기판을 보던 찬드라 하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전방 나스카 급으로부터 레이저 공격 예상이 포착되었습니다!"

눈 앞의 모빌 슈트에만 집중하던 승무원들은 보고를 듣고 창백해졌다. 나탈이 황급히 지시를 내렸다.

"로엔그린 발사 준비! 목표, 전방의 나스카 급!"

함장석에 앉은 마류가 서둘러서 CIC를 뒤돌아보며 그 지령을 취소했다.

"잠깐! 프라가 대위의 제로가 그 쪽으로 접근 중이야!"

특장포 로엔그린…. 명중한다면 전함조차 단번에 날려 버릴 수 있는 양 전자파성 포다. 그런 것을 발사했다가는 만일 작전대로 제로가 적함에 접근해 있는 경우, 그가 무사할 리 없다.

"위험합니다! 쏘지 않으면 저희가 당합니다!"

나탈이 소리쳤다. 하지만 마류는 동의하지 않았다.

"쏘지 마라! 전함, 회피 기동 개시!"

그녀는 단호히 말했다. 여기서 초조해져서 스스로 작전을 포기한다면 남는 것은 패배 뿐이다. 적은 전후 두 척, 모빌 슈트도 수적으로 열세하다. 기습이 실패한다면 형세 역전의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함장인 그녀는 무우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움켜 쥔 주먹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만일, 프라가 대위가 실패한다면….'

 

 

갑자기 라우는 고개를 들었다. 오싹 하고 전기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완전히 익숙해진 그의 내면적인 증오와 희열이 뒤섞인 전율을 떠올리게 하는, 이 감각은….

"아데스! 기관 최대, 함수 하강! 피치 60도!"

느닷없이 그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아데스는 놀라서 그저 라우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쩔 수 없다. 아데스에게 이 감각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둔감한 반응을 보이는 아데스에게 라우는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 때, 관제 요원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함저부로 접근하는 열원! 모빌 아머입니다!"

"이야압!"

무우가 소리 지르면서 최대 가속으로 베사리우스를 향해 돌진했다. 그 직전에 베사리우스의 엔진이 굉음을 내며 슬러스터를 분사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제로는 자동 방어 장치의 공격을 수월하게 피하면서 건 배럴을 전개시켰다. 목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동 중인 거대한 기관부. 무우는 리니어 건을 발사하면서 모든 화력을 쏟아 부었다.

스쳐 지나가는 동안 기관부가 불을 뿜어 내는 것을 본 무우는 "좋았어!" 라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베사리우스 상부로 빠져나간 제로는 전선을 사출했다. 베사리우스 외벽에 앵커를 박아서 시계 추처럼 관성으로 방향을 전환한 뒤, 무우는 전선을 끊고 재빨리 그 곳으로부터 이탈했다.

 

 

베사리우스 함교는 마구 흔들렸고,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기관 구역 손상! 추력 저하!"

"제５나트륨 벽 손상! 화재 발생! 데미지 컨트롤, 격벽 폐쇄!"

승무원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전함 상황을 전달했다.

"적 모빌 아머 이탈!"

모니터로 이 상황을 목격한 아데스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격추시켜라!"

하지만 요동 치며 심하게 기울어진 전함에서 조준을 맞추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장군을 부르기도 전에 판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아군 전함과 모빌 슈트─ 지켜야 할 전력을 미끼 삼아 단 1기의 구식 모빌 아머로 공격할 줄이야….

'건방진 녀석 같으니….'

아데스는 이를 갈면서 라우를 돌아 보았다. 그리고 잠시 숨을 멈추었다.

"무우, 네 놈이 감히…!"

라우는 신음하며 팔걸이가 부서져라 움켜 잡았다. 가면 틈새로 보이는 얼굴은 악마처럼 일그러졌다. 상관이 이토록 격정을 보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프라가 대위로부터 레이저 통신! '작전 성공, 귀환 중'!"

아크 엔젤의 함교에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토르와 친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마류는 꽉 움켜 쥔 손을 겨우 풀면서 등을 꼿꼿이 세웠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전방 나스카 급을 공격하라!"

승무원들 사이에 다시 긴장이 흘렀다.

"알겠습니다! 로엔그린 1번, 2번, 발사 준비!"

"양전자 뱅크 체임버 임계에 도달했습니다. 머즐 초크 전위 안정!"

아크 엔젤의 양 현 함수에 탑재된 로엔그린 발사구가 열렸다.

"발사!"

나탈의 호령과 동시에 특장포 로엔그린이 불을 뿜었다. 그 압도적인 화력이란…. 소용돌이 치는 플라즈마가 우주 공간을 뚫고 나가더니 손상된 엔진과 함께 필사적으로 회피 기동을 전개하는 베사리우스의 우현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마어마한 충격이 적함을 덮쳤다.

베사리우스는 완전히 전투 능력을 잃고 전선을 이탈하는 수밖에 없었다.

 

 

듀얼, 버스터와 스트라이크의 전투에 개입하지 못한 채, 망설이면서 지켜 보던 아스란은 특장포의 위력에 숨을 멈추었다. 거의 같은 시각에 가모프로부터 레이저 통신이 들어왔다. 그것은 베사리우스가 공격 당했다는 내용이었으며, 전투 구역으로부터 철수하라는 명령이었다.

처음에는 압도적으로 유리하게 느껴진 전황이, 어느 새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잠시 넋이 빠졌던 아스란은 아크 엔젤로부터 신호탄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귀환 신호…? 그렇게는 할 수 없지!'

이자크 쥴이 스트라이크를 공격했다. 철수하기 전에 모빌 슈트만이라도 해치우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아군이 완패 당한 것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이자크는 키라가 코디네이터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그에게 있어서 내츄럴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이자크! 철수 명령이다!"

아스란이 외쳤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디아카도 전투를 그만 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스란은 입술을 악물었다.

 

 

2기의 X넘버에 휘둘리는 스트라이크는 아크 엔젤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키라…!"

그를 지켜 보던 밀리아리아가 불안한 듯이 말했다.

"엄호 사격 할 수 없나?"

마류가 외치자,

"혼전이라 불가능합니다!"

하고 나탈이 대답했다.

보기에도 어지러울 정도로 뒤엉키며 스쳐 지나가는 모빌 슈트전에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아군에게 피해를 줄 수가 있다.

"…스트라이크의 파워 잔량이 걱정됩니다."

나탈이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제로의 무우에게도 레이저 통신으로 전달되었다.

"아직 돌아가지 못했다고? 쳇, 바보 같으니!"

 

 

스트라이크 조종석에서는 키라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필사적으로 기체를 조종하고 있었다. 울려 퍼지는 경고음이 들리지 않는지 정신 없이 빔 라이플을 쏘고 있었다. 그러나 곧 방아쇠가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

키라는 놀라서 에너지 게이지를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울리던 경고음이 갑자기 더욱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에너지 잔량을 표시하는 게이지는 레드 존까지 떨어져 있었다.

"파워가 모자란다고?! …이럴 수가!"

스트라이크의 장갑 색이 흐려지면서 차츰 본래의 짙은 잿빛으로 돌아갔다. 페이즈 시프트가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듀얼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 들었다. 눈 앞으로 뛰어 든 듀얼의 사벨을 본 키라는 숨을 죽였다.

'당한다!'

다음 순간 느낀 것은 사벨에 의한 충격이 아니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기체에 압력이 가해지자, 키라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스트라이크는 모빌 아머 형태로 바뀐 이지스의 갈고리 모양의 팔에 사로잡혔다. 아스란이 듀얼의 사벨로부터 아슬아슬하게 키라를 끌어 낸 것이다.

"키라!"

지켜보던 동료들이 비명을 질렀다.

"스트라이크가 이지스에게 포획당했습니다! 페이즈 시프트가 떨어졌습니다!"

서늘한 전율이 마류의 등을 타고 흘렀다.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났다.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기체까지 자프트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게다가 저 기체에는 마류 일행이 요청하여 억지로 파일럿으로 만든 민간인 소년이 타고 있다.

"키라! 키라! 어서 응답해!"

밀리아리아가 계속해서 이름을 불렀다. 아직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마류의 가슴을 내리쳤다. 자신들은 한 소년의 운명을 완전히 망쳐 놓은 것이 아닐까.

계속해서 키라의 이름을 불러 대는 밀리아리아 뒤쪽에서 새로 들어온 통신문을 읽던 토노무라가 눈을 크게 떴다.

"함장님! 프라가 대위님의 레이저 통신이…. '런쳐 스트라이커, 사출 준비하라'?!"

 

 

「아스란! 뭐 하는 거냐?!」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키라의 귓가에 통신기를 통해 무선으로 주고 받는 긴박한 대화가 울려 퍼졌다.

「이 기체를 포획한다!」

「뭐라고?! 격파하라는 명령이었어!」

「포획할 수 있다면 상관 없어! 철수한다!」

이지스는 키라를 끌어 안은 채 서둘러 그 구역에서 벗어났다. 나머지 3기가 뒤따라 왔다.

"아스란…! 이게 무슨 짓이야?!"

키라의 물음에 아스란이 대답했다.

「이대로 가모프로 연행한다.」

"싫어! 난 자프트 함으로 가고 싶지 않아!"

「닥쳐!」

아스란의 강한 목소리에 눌려 키라는 입을 다물었다. 스피커를 통해서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따라 와, 키라. 그렇지 않으면…. 난 널 쏠 수밖에 없어….」

"아스란…."

「피의 발렌타인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난… 더 이상…!」

스트라이크 조종석에서 키라는 숨을 죽였다. 두 사람은 서로 할 말을 잃었다.

그 때다.

갑자기 충격이 엄습했다. 모니터에는 낯 익은 붉은 기체─ 무우의 제로가 날아 오는 모습이 보였다. 건 배럴을 전개하더니 미사일로 사방에서 이지스를 공격한다.

방어 태세를 취하기 위해서 이지스는 모빌 아머 형태를 해제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유를 되찾은 스트라이크의 조종석에 무우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도망 쳐! 아크 엔젤이 런쳐 스트라이크를 사출한다!」

"네…?!"

「후방에 아직 적기가 깔려 있어! 서둘러 장비를 교환해라!」

키라는 잠시 이지스를 돌아 보았다.

"…알겠습니다."

이지스가 제로와 싸우는 동안, 키라는 그 구역에서 벗어났다.

「키라─!」

뒤쪽에서 들리는 아스란의 목소리가 가슴에 칼처럼 꽂혔다. 그것을 뿌리치듯이 키라는 버니어를 가동시켰다.

도망치는 스트라이크를 보고 듀얼이 쫓아 왔다. 아크 엔젤의 엄호 사격을 피해 가며, 가속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스트라이크와의 거리를 서서히 좁혀 왔다.

아크 엔젤의 사출 장치에서 런쳐 스트라이커가 튕겨져 나왔다. 키라는 그것을 확인하고 기체로부터 에일 스트라이커를 떼어 냈다. 컴퓨터가 스트라이크와 파워 팩의 상대 속도와 자세를 제어하고 곧 있으면 손이 닿는 거리에서….

조종석에 경고음이 울려 퍼지자, 키라는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조준 사격에 포착되었나?!

듀얼이 그레네이드 런쳐를 발사했다. 그것은 수직으로 스트라이크를 향하더니 1초 후에 어두운 진공에 무수한 섬광으로 흩어져 나갔다.

"키라!!"

아크 엔젤 함교에서 토르, 밀리아리아, 사이가 절규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검은 연기를 뚫고 한 줄기 빔이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에너지가 듀얼의 오른 팔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화염 속에서 스트라이크가 튀어 나왔다. 하양 빨강 파랑, 선명한 삼색으로 물든 장갑이 보였다.

"키라─!"

거대한 런쳐가 불을 뿜었다. 완전히 노출된 듀얼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필사적으로 후퇴했다. 형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아크 엔젤의 승무원들은 4기의 X넘버가 후퇴하는 것을 지켜 보다가 그들이 레이더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다들 긴장이 풀린 듯이 의자에 축 늘어졌다. 자신들의 힘으로 겨우 적을 격퇴시킨 것이다.

그들은 살아 남았다─.

 

 

 아스란의 몸이 세차게 벽에 부딪혔다.

"이 자식, 잘도…!"

이자크 쥴이 단정한 외모를 잔뜩 찌푸리며 아스란의 멱살을 잡았다.

"네가 거기서 쓸 데 없는 짓만 하지 않았다면!"

"실수도 그런 실수가 없지. 누가 명령을 어긴 덕분일까?"

탈의실 벽에 기댄 디아카 엘스먼도 씁쓸한 듯이 말했다. 아스란은 반박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들과는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옛날부터 아스란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이자크는 물론, 야심 만만한 디아카도 아스란이 팀에 합류한 이후로 라이벌 취급을 해 왔다. 한편 아스란은 군대에서의 자신의 지위나 공적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초연한 태도가 더욱 그들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계속해서 이자크가 목을 조르는데, 문이 열렸다. 들어 온 니콜 아말피가 험악한 상황을 목격하고 크게 소리쳤다.

"이런 곳에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어서 멈추세요!"

"4기가 덤볐단 말이야! 그런데도 격파시키지 못했어! 이런 굴욕은 참을 수 없어!"

"그렇다고 아스란을 질책하면 뭐가 변합니까?!"

온화한 표정으로 니콜은 이자크의 분노에 침착하게 대처했다.

차분하면서도 의외로 슬기로운 성격을 지닌 니콜은 서로 적대시하는 아스란과 이자크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자크는 다시 한 번 아스란을 째려 본 뒤, 뿌리치듯이 손을 놓고 방을 나갔다. 디아카도 그 뒤를 따랐다.

둘만 남게 되자 니콜은 아스란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아스란… 당신 답지 않다고 저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스란은 고개를 돌렸다.

"니콜…. 지금은 날 그냥 내버려 둬…."

상대방의 얼굴에 떠오른 걱정스러운 표정을 외면한 채, 아스란은 휘청거리면서 탈의실 밖으로 나왔다. 통로를 천천히 이동하던 아스란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그는 벽을 힘껏 내리쳤다.

"키라…!"

그의 입에서 새어 나온 것은 자신의 손 안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친구의 이름이었다.

설득할 수 있다고, 다시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같은 동포다. 제대로 설득하면 반드시 이해해 주리라 믿었는데….

라우와 나눈 약속을 떠올리자 그는 온 몸의 피가 얼어 붙는 것 같은 절망을 느꼈다.

'키라…, 난 널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무우가 격납고에 착지했을 때, 먼저 귀함한 스트라이크의 해치는 여전히 닫힌 채로 있었다. 정비사 머독이 안쪽으로 말을 걸고 있다.

"왜 그래?"

곁으로 가서 묻자, 머독이 난처한 표정으로 무우를 바라보았다.

"저기…, 꼬마가 나오려고 하지 않아서…."

"이런."

무우는 상황을 파악하고 외부 잠금 장치를 조작해서 해치를 강제로 개방했다. 안에는 아직까지 레버를 쥔 채 얼어 붙은 표정의 키라가 앉아 있었다. 무우는 해치 너머로 미끄러지듯이 곁으로 다가갔다.

"뭐 하고 있냐? 이 봐…. 키라 야마토!"

이름을 부르자 키라는 움찔 하고 몸을 떨더니 꿀꺽 하고 침을 삼키며 겨우 숨을 크게 내쉬었다.

무우는 갑자기 이 소년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키라에게 있어서 이번 전투는 첫 출진이나 다름 없었다. 신참자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이다. 두려워서 토하거나 소변을 지리는 것은 일상 다반사며 그나마 살아서 돌아오면 다행이다. 그러나 아직 나이 어린 키라가 훈련도 받지 못한 채 갑자기 실전에 투입된 초보자라는 사실을, 그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자꾸 잊어버리게 된다.

아직 허공을 쳐다보는 눈동자를 무우가 들여다 보았다.

"꼬마야, 이제 다 끝났어."

마치 접착제로 붙인 듯 단단히 레버를 쥐고 있는 손가락을 하나 하나 떼어 주며 무우는 키라의 헬멧을 툭 하고 쳤다.

"잘 했다…."

키라는 눈을 깜박거렸다. 공포로 얼어붙은 몸이 그 말에 반응하며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우는 아버지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너도 나도 살아 남았어. 전함도 무사해. 더 이상 뭐가 필요해?"

"아…."

그제서야 키라의 몸이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무우는 다정한 손길로 소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소년 역시 그가 여태까지 봐 온 다른 평범한 신참병들처럼 여리고 상처 받기 쉬운 존재라고 느껴졌다.

 

 

"크루제 대장님, 본국에서 온 통신문입니다."

아크 엔젤을 추격하는 것을 일단 중단하고, 스페이스 데브리의 그늘에 정박해 있는 베사리우스에 통신이 도착했다. 통신병이 출력한 메시지를 라우에게 건네 주었다.

라우는 문장을 가볍게 읽은 뒤, 그것을 아데스 함장에게 내밀었다. 통신문을 받아서 내용을 읽은 아데스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럴 수가…!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헬리오 폴리스 붕괴 건으로 의회가 떠들썩한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라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베사리우스도 이래서야 꼼짝도 할 수 없으니…. 수리 상황은 어떤가?"

"곧 있으면 항해가 가능합니다."

"아스란에게 가모프로부터 이 함으로 돌아오도록 전하라. 수리가 끝나는 대로 본 함은 본국으로 돌아간다. 나머지는 가모프에 맡기도록 하지."

지시가 끝나자 라우는 함교에서 나왔다. 그 모습에서는 방금 전의 격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먹이를 빼앗겼다는 초조함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평의회에 소환되면 헬리오 폴리스 붕괴에 관한 책임을 추궁 당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걱정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아데스는 그런 상관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크 엔젤은 아르테미스에 입항했다.

제５우주 구역에 위치한 유라시아의 군사 기지 아르테미스. 변경의 소행성에 조성된 소규모 기지라서 군사 거점으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지는 독특한 방어 장치로 명성이 자자했다. 소행성 전체를 광파 방어대가 둘러싸고 어떠한 물체나 무기, 레이저조차 실드 밖으로 튕겨 내는 난공불락의 요새, 통칭 '아르테미스의 우산'이라고 불리는 절대 방어 병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크 엔젤이 극비리에 건저되어 군의 인식 코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쉽사리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마류의 생각과는 달리, 바로 입항이 허가되었다. 하지만 입항 직전에 무우가 은밀하게 키라에게 말했다.

"스트라이크의 기동 프로그램을 잠그는 게 좋겠어. 너 이외의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말이야."

처음에 키라는 그 말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잠시 후에 깨닫게 되었다.

입항하자마자 아크 엔젤은 무장한 병사와 모빌 아머에게 둘러싸였다. 공기 차단 문이 열리면서 병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놀란 표정의 승무원들은 총을 든 병사들에게 끌려가서 식당에 모이게 되었다.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분개하는 마류를 향해 유라시아 사관이 끈적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조치로 전함 컨트롤과 화기 관제를 봉쇄하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귀함은 선적 등록은 물론 저희 군대의 인식 코드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상황으로 판단해서 입항을 허가했으나, 안타깝게도 아직 아군이라고 인정할 수 없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순 투성이였다. 적이라고 생각했다면 아크 엔젤을 입항시키지 않았을 테니까.

아크 엔젤의 사관들은 승무원들과는 달리 아르테미스 내부로 안내되었다. 물론 주위에 무장한 병사들이 에워싼 상태였지만…. 사령관실로 이동한 그들을 듬직한 체격의 대머리 사관이 맞아 들였다. 제라드 가르시아, 아르테미스의 사령관이었다.

"아르테미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가식적인 정중한 태도로 마류, 나탈, 무우를 맞이했다.

"과연, 귀관들의 ID는 틀림없는 대서양 연방의 것이로군요."

각각 이름을 물어 본 뒤, 눈 앞에 놓인 컴퓨터로 검색한 모양이다. 이에 대해 무우가 비아냥거렸다.

"확인하시느라 귀한 시간을 할애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엔듀미온의 매'의 눈부신 활약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 영웅을 이런 곳에서 만나뵙게 될 줄이야…."

"특수 임무를 맡고 있어서 안타깝지만 더 이상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부드럽게 말을 가로막는 무우를 향해 가르시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비밀이라는 것은 반드시 새어 나가기 마련이죠. 물론 '더이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이' 새어 나왔는지가 정보 차원에서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둘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어서 머뭇거리는 마류와 나탈 곁에서 무우가 약간 얼굴을 찌푸렸다. 가르시아의 생각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맞아 떨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가르시아의 계략을 눈치 채지 못한 나탈은 자신의 요구를 직설적으로 말했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보급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저희들은 당장 달의 본부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프트의 추격도 멈추지 않은 상태라서…."

"자프트? 이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녀의 말을 가로막으며 가르시아가 코웃음을 쳤다. 한 손으로 벽 면 모니터를 조작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아르테미스에서 멀지 않은 인근 우주 구역에 정박한 전함의 모습이었다.

"로라시아 급!"

숨을 죽인 마류와는 대조적으로 가르시아는 전혀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다.

"보시다시피 저들은 한참 전부터 우산 밖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긴장한 표정의 세 사람을 보며 그가 미소 지었다.

"이래서야 보급이 끝나도 나갈 수 없겠군요."

"그들이 노리는 것은 저희 함선입니다."

무우가 말했다.

"이대로 머무르다가는 아르테미스까지 피해를 입게 될지도…."

그의 말은 느닷없이 튀어나온 가르시아의 웃음 소리에 의해 지워졌다.

"피해라고요? 우리 아르테미스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저들도 우리 위성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늘 그렇듯이 제풀에 지쳐서 잠시 후에 물러나겠죠."

마류 일행은 사령관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웃음을 그치고, 가르시아는 다시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저들이 사라지면 달 본부와 연락을 취할 수도 있겠죠. 그 때까지 편히 쉬도록 하십시오. 보아하니 많이 지치신 것 같은데…. 방을 준비하도록 하리다."

'쳇! 허울 좋은 감금이겠지.'

무우는 입을 꾹 다물고 생각했다. 병사들에게 연행되어 나가면서 그는 가르시아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아르테미스가 그토록 안전한가요?"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던 사령관은 힐끔 뒤돌아보면서 비웃듯이 대답했다.

"안전하고 말고요. 어머니 뱃속에 있는 것만큼."

 

 

"우산은 레이저와 실탄 모두 다 튕겨 낸다. 물론 그건 상대방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서 공격해 오지 않는 겁니까? 한심한 일이군요."

디아카가 질렸다는 듯이 말하자, 젤만 함장이 노려 보았다. 풍성한 수염을 자랑하고 복장에 흐트러짐이 없는, 보기에도 고지식한 인물이다.

아르테미스와 마주 보는 위치에 정박한 가모프 함교에서는 젤만 함장과 이자크, 디아카, 니콜이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자프트 군에는 엄밀한 계급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저 대장, 함장이라는 역할이 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지적 수준이 높은 군대이기에, 그저 상관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이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디아카는 늘 태도가 삐딱했지만, 니콜은 몹시 심각한 표정으로 전략 패널에 전개된 아르테미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우산을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아무 것도 없다. 귀찮은 곳으로 숨어 들어갔군."

"그럼 어쩌지? 나올 때까지 기다려?"

키득거리는 디아카를 초조한 이자크가 째려 보았다.

"디아카, 농담할 때가 아냐. 넌 일을 끝마치고 전선으로 돌아간 크루제 대장님께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라고 보고할 생각이냐?! 부끄러운 줄 알아!"

그 말을 듣자 디아카는 입을 다물었다. 이 때 니콜이 갑자기 말했다.

"우산이 늘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겠죠?"

"그래. 주변에 적이 없을 때는 펼치지 않는다고 하더군. 하지만 우산이 닫혔을 때를 노리고 접근하면 우리가 위성 사정 거리 내로 들어가기 전에 펼쳐지고 말겠지."

마찬가지 아닌가. 디아카가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하지만 니콜이 이렇게 말했다.

"제 기체, 블리츠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여태까지 그를 완전히 무시해 온 이자크 일행이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온화한 니콜의 얼굴에는 어느 새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블리츠에는 페이즈 시프트 이외에도 흥미로운 기능이 달려 있습니다…."

 

 

아크 엔젤 내부에서는 사람들이 불안한 듯 소곤거리고 있었다. 입구에는 총을 겨눈 병사들이 서 있었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지?"

"글쎄,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소곤거리는 피난민들과 마찬가지로 승무원들도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라시아는 아군이잖아요? 대서양 연방과 사이가 안 좋아졌나요?"

사이가 토노무라 하사에게 물었다.

"그런 문제가 아냐!"

토노무라가 대답하자, 파르 하사가 한숨을 쉬었다.

"식별 코드가 없어서 그래…."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닌 것 같지만…"

머독이 중얼거리자 노이만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끄덕였다.

지구 연합군은 연합이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결속력이 강한 군대는 아니다. 플랜트에 대항한다는 목적으로 C.E.70년에 설립된 지구 연합이지만, 애당초 각자 별개의 국가가 모여서 만든 것이다. 북미 대륙과 중남미를 포함한 강대국들이 대서양 연방을 결성했고, 유라시아 연방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라시아 대륙의 북부에서 서부, 북유럽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유럽 각국을 모체로 삼는다. 지구 연합은 이 두 연방과 함께 동아시아 공화국과 기타 소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공동체가 그러하듯이 이권과 강대국의 계산, 서로에 대한 견제 등으로 보조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아크 엔젤과 스트라이크는 북대서양 연방이 총력을 다해, 다른 공동체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로 건조한 병기였다. 아무리 동맹국이라고 해도 유라시아가 이를 간과할 리가 없다.

이 때, 유라시아 사관들이 발 소리를 내며 황급히 들어섰다. 선두에 선 대머리 사내가 거만한 말투로 물었다.

"난 이 위성 기지 사령관인 제라드 가르시아다. 이 전함에 실려 있는 모빌 슈트의 파일럿과 기술자는 어디 있나?"

"아…."

순진하게 손을 들어 올리려는 키라의 팔을 머독이 붙잡았다. 영문을 모르는 키라는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자, 노이만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째서 저희들에게 물으십니까? 함장님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키라는 겨우 눈치를 챘다. 입항 전에 무우가 스트라이크의 프로그램을 잠그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다.

"스트라이크를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가르시아는 신경에 거슬린다는 표정을 지은 뒤, 키득거리며 질문을 한 노이만에게 다가갔다.

"우리가 뭘 하겠나? 그저 공식 발표가 있기 전에 미리 구경할 수 있는 기막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일세. 파일럿이 누구지?"

머독이 대답했다.

"프라가 대위입니다. 궁금한 게 있다면 직접 가서 여쭤 보시죠."

"방금 전의 전투를 이 쪽 모니터로 관찰하고 있었지. 건 배럴이 장착된 제로를 다룰 수 있는 자는 그 남자 밖에 없어.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지."

가르시아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가까이 있던 밀리아리아의 팔을 붙잡았다.

"꺅…!"

그는 느끼한 미소를 띠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밀리아리아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설마 여성 파일럿일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 전함은 여자가 함장이니까 혹시…."

가르시아의 무례한 태도에 키라가 벌떡 일어섰다.

"그만 하세요! 그걸 탄 사람은 바로 접니다!"

"꼬마야, 여자 친구를 구하려는 기사도 정신은 훌륭하지만 너 같은 애송이가 다룰 수 있는 기체가 아니란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

가르시아가 느닷없이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코디네이터인 키라에게 이 정도 주먹은 아무 것도 아니다. 살짝 몸을 틀어 피하면서 반대로 가르시아의 팔을 잡고 비틀었다. 가르시아의 거구가 꼴사납게 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병사들이 입을 벌린 채 쳐다보았다.

"내가 어째서 당신에게 얻어 맞아야 하죠?"

"뭐가 어째?!"

가르시아의 얼굴이 분노와 굴욕감으로 검붉게 물들었다. 부관과 병사들이 서둘러 달려와서 키라를 구속하려 했다.

"무슨 짓이야!"

일어나서 그들을 막으려 한 사이가 얻어 맞고 쓰러졌다. 프레이가 비명을 지르며 사이에게 매달렸다.

"그만 하세요! 저 애가 파일럿 맞아요! 코디네이터란 말이에요!"

머독과 다른 승무원들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며, 가르시아와 다른 유라시아 병사들은 기겁을 하고 멈춰 섰다. 키라는 그들의 시선을 뿌리치듯이 노려보았다.

키라가 유라시아 병사들에게 연행되어 나가자, 토르가 프레이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너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한 거야?"

"사실인데 뭐가 어때서?"

프레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넌 키라가 어떻게 될지 걱정도 안 되냐?!"

"자꾸 너라고 하지 마! 여긴 아군의 기지잖아! 파일럿이 누구냐고 묻길래 대답했을 뿐이야. 뭐가 잘못이지?"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프레이를 보고 토르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지구군이 누구랑 싸우는지 몰라서 그래?!"

 

 

"OS 잠금 장치를 해제하기만 하면 되는 거죠?"

스트라이크 앞에서 키라가 멈추어 섰다. 가르시아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흠…. 그야 물론 그렇게 해 주면 고맙지. …넌 그 밖에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지? 가령 이 기체의 구조를 해석해서 똑같은 것을 만들거나, 반대로 이러한 모빌 슈트에 대해 유효한 병기를 만든다든지 하는…."

"전 평범한 민간인입니다. 군인도 아니거니와 무기 생산에 관여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넌 '코디네이터의 배신자' 아니냐?"

가르시아의 느끼한 목소리로 그 단어를 듣는 순간, 키라는 충격을 받았다.

"배신자…?"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몰라도, 어차피 동포를 배신한 몸 아닌가. 그렇다면 유라시아에서 싸우나 다른 곳에서 싸우나 마찬가지겠지?"

가르시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아냐… 난…!"

"아니, 지구군에 소속된 코디네이터는 진정 귀한 존재라고 할 수 있지. 걱정하지 마라. 네가 우대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마. 우리 유라시아에서."

'배신자.'

여태까지 살아 오면서 키라는 자신이 코디네이터라고 강하게 자각한 적이 없었다.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적군, 아니면 아군. 중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전쟁이다.

이 사실을 키라는 더러운 사내를 통해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정기 정찰, 근접 방공권 내에 적기 없음."

가모프가 인근 우주 구역에서 떠났다.

"좋았어. 이제 괜찮겠지. 전체 광파 방어대 수용 개시! 제２경계 체제로 이행하라…."

아르테미스 관제실은 적함이 공격을 포기했다고 판단했다. 여태까지 찾아 왔던 다른 적함들과 마찬가지로….

'아르테미스의 우산이 사라졌다.'

그것을 기다리던 니콜은 해당 우주 구역을 일시적으로 이탈한 가모프로부터 블리츠를 발진시켰다.

갑판에서 그것을 바라보던 디아카는 '쳇' 하고 혀를 찼다. 이번에는 니콜의 단독 출격인 것이다. 이자크도 출격을 지켜 본 뒤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지구군도 참 재미있는 것을 만들었군."

"겁쟁이 니콜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아?"

우주 공간을 가로지르는 블리츠의 검은 그림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아니, 기체 각 부위의 분사구로부터 흘러나온 가스가 퍼져 나감으로써 서서히 사라져 갔다.

"미라쥬 콜로이드 생성 이상 무…. 산포 감손율 37%….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80분이 고작이군…."

블리츠 조종석에서 니콜이 중얼거렸다.

이윽고 블리츠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각 뿐 아니라 레이더조차 감지할 수 없었다. 이게 바로 블리츠의 '흥미로운 기능'─스텔스 시스템이다. 가시 광선을 일그러뜨리고 레이더 파를 흡수하는 가스 상태의 물질, 미라쥬 콜로이드를 분무하여 그것을 자기장으로 기체 주위에 끌어 들임으로써 블리츠는 완전히 투명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현재 블리츠는 아무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아르테미스로 접근하고 있었다.

니콜은 오른팔에 탑재된 '트리케로스'를 준비했다. 50mm 빔 라이플과 빔 사벨, 랜서 다크가 장착되고 실드를 겸한 공수 일체 시스템이다.

아르테미스의 표면 암벽에는 공기 통로와 안테나 이외에 용도를 헤아릴 수 없는 몇몇 설비가 무수히 튀어나와 있었다. 니콜은 그 중에서 광파 방어대를 만들어 내는 반사경을 정확히 발견하여 조준했다. 트리케로스의 빔 라이플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조종석으로 들어간 키라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에 지켜 보던 아르테미스의 기술자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들 몇 명이 달려 들어도 해석할 수 없던 OS 잠금 장치를 키라는 간단히 해제하고 있었다. 키라는 밖에 서 있는 병사가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 신경 쓰였다. 스트라이크를 조작해서 밖으로 도망칠까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맨 처음 학교 친구들에게 자신이 코디네이터라는 사실을 밝혔던 날이 떠오른다. 처음에는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사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건 상관 없어. 네가 우리 친구라는 사실은 변함 없잖아?"

"아, 하지만 나중에 내 양자 물리학 리포트 도와 주지 않을래?"

토르가 농담을 던지자, 밀리아리아가 "까불지 마!" 라고 야단치며 다 함께 웃었었다. 달에서 아스란과 함께 지낸 날들과 견줄 만큼 소중한 추억이다.

지금 조종석 밖에서는 가르시아가 키라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느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것은 귀한 먹이를 눈 앞에 두고 혀를 날름거리는 늑대와도 같았으며, 상대가 키라를 단순히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전문 학교의 카토 교수도 키라를 자주 부려 먹었지만, 교수에게 키라의 능력이란 단지 한 학생이 지닌 개성에 불과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취급했었다.

그 시절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키라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자신이 코디네이터라는 사실이 키라의 의지나 희망과는 무관하게 그의 운명을 가차 없이 휘저어 놓았다.

OS가 기동하고 스트라이크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그 때 멀리서 들리는 굉음과 함께 기체가 흔들렸다. 키라가 고개를 들었다.

"관제실, 이 진동은 뭔가?!"

무전을 통해 돌아온 답에 가르시아의 부관은 난처한 빛을 띄었다.

「알 수 없습니다! 주변에 적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폭발 진동이 아닌가?!"

잠시 후에 두 번째 총격이 왔다. 쾅, 하고 낮게 울리는 폭발음과 함께 바닥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공격인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 온 목소리는 비명이나 다름 없었다.

「바, 방어 구역으로 모빌 슈트가?!」

"뭐라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가르시아 일행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우산의 절대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들에게 이 일은 있을 수 없는 악몽 같은 사건이었다.

"우산을 뚫고 들어오다니…? 그럴 리가 없어!"

놀란 표정의 병사들이 키라를 향한 총구를 잠시 내려놓은 사이, 키라는 해치의 단추를 눌렀다. 잽싸게 문이 닫히며 스트라이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르시아가 정신을 차렸다.

"이 봐! 무슨 짓이냐!"

"공격 당하고 있다면서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습니까!"

외부 스피커를 통해 대답하면서 키라는 소드 스트라이커를 선택하여 사출 장치로 향했다. 대형 크레인을 이용해서 스트라이크는 파워 팩을 장착했다.

'난 대체 뭘 하려는 걸까.'

키라의 가슴에 씁쓸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이 검으로 자신과 똑같은 코디네이터를 공격해야 하나? 자신을 편리한 도구처럼 생각하는 내츄럴을 위해서?

가슴을 짓누르는 고독감을 느끼면서 키라는 스트라이크를 조종하여 밖으로 뛰쳐 나갔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로 노이만 일행이 폭발에 놀란 감시병을 진압하고 있었다. 그들은 감시병을 쓰러뜨린 뒤 곧바로 함교로 향했다.

"기동한다!"

"하지만 함장님 일행은 어쩌고요?!"

"이대로 있다가는 다 죽어!"

그들은 서둘러 각자의 자리에 앉아 전함을 기동시켰다. 잠시 후에 독자적으로 탈출한 마류 일행이 아크 엔젤에 도착했다.

"함장님!"

승무원들이 환호성을 질렀으며, 무우가 "잘 했어! 기특한 녀석!" 이라며 가까이 있는 사이의 머리카락을 마구 휘저은 뒤 좌석에 앉았다.

"이 위성은 대체 뭡니까?"

아까 얻어 맞은 사이가 입술을 쭉 내밀고 묻는다. 마류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소리 높여 지시했다.

"아크 엔젤, 발진합니다!"

어느 새 밖에서는 듀얼과 버스터가 공격에 가담하고 있었다. 우산이 없는 아르테미스는 그들에게 커다란 표적이나 다름 없었다. 블리츠가 트리케로스로 거대한 작살 모양의 랜서 다트를 쏘면서 아르테미스에서 발진한 뫼비우스를 격추시켰다. 버스터의 런쳐가 관제실을 공격하자, 어마어마한 불길이 구멍을 통해 솟아 올랐다. 차례로 주위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위성 표면 위로 불꽃을 피웠다.

아르테미스는 함락되었다.

스트라이크를 뒤따라 아크 엔젤은 간신히 폭발로부터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