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17권 챠오 소렐라 -9- 산타 마리아 노벨라

산타 마리아 노벨라

 

 

1

 

오전 10시를 넘어 산타 마리아 노벨라역을 출발한 유로스타는 오후 1시반경에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에 도착했다. 약 3시간 걸리는 계산이었지만 도중에 깜빡 졸았기 때문에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동안의 피로가 이곳에 와서야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역에 도착하고나서는 수상버스를 타고 산마르코 광장으로 갔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 자동차는 한대도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내일 귀국하기 때문에 베네치아에서는 하루만 묶는다. 실질적으로는 반나절만 여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산마르코 광장에 면한 오픈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호텔에 짐을 맡긴다음 서둘러 거리로 나왔다. 
제일먼저 산마르코 대성당을 견학하고나서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베네치아의 명물, 곤돌라 타기에 도전했다. 곤돌라 탑승장으로 가서 요금 교섭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 
"처음에는 값을 비싸게 부른다니까 조심해야해." 
4명은 각자 가진 가이드북을 대조해 보면서 사전 회의를 했다. 
"그럼 한사람당 최고 2500엔까지 된다면 낸다고 하자." 
코스에 따라 약간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시세는 엔화로 1만엔정도 된다고 한다. 요금은 곤돌라 한척당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는 계산이기 때문에 승선한 인원수에 죄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인원수끼리 나누는 것이라 한사람당 얼마까디 되는지 얘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단순계산으로 10000÷4=2500(엔). 
"2500엔을 넘으면?" 
"다른 곤돌라와 교섭하는 거야. 우리가 시세를 무시하고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탄다는 것도 아니니까."
다른 곤돌라를 눈여겨보는 기색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상대가 굽히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사실 츠타코씨는 처음 예산의 2배이상의 요금을 부르는 곤돌라측의 흥정에서 이겨 예산내의 범위에서 내는데 성공했다. 
"그런 돈은 없으니까 됐어요." 
일본어로 말하고는 돌아서서 유미들의 어깨를 감싸고 떠나려고 했다. 곤돌라사공은 서둘러 쫓아오며 '그럼 얼마면 되겠나'라는 말을 이탈리아어가 섞인 영어로 말했다. 거기서 너무 낮은 금액을 제시하면 교섭이 결렬되니까 한사람당 2000엔정도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쪽도 장사하는 사람이라 '그 가격은 무리다'라는 포즈를 취했다. 결국 45분 코스를 약 만엔에 합의를 봤다. 하지만 시세대로니까 손해본 것도, 이익을 봤다고도 할 수 없다.
나중에 들은 얘기에 의하면 어떤 그룹은 교섭을 잘하는 사람이 없어서 똑같은 45분코스에 엔화로 약 2만엔을 지불했다고 한다. 6명그룹에 한사람당 3천엔정도 냈는데, 장소도 협소한데다 비싼 값까지 치뤄야 해서 그녀들은 굉장히 분했단다. 교섭에 성공한 4명은 산마르코 광장 근처에 있는 선착장에서 곤돌라를 탔다. 노젓는 사공은 곤돌리에라고 부른다. 유미들이 탄 곤돌라의 곤돌리에는 젊은 오빠. 가로줄무늬 셔츠와 챙이 넓은 모자는 유니폼인지, 곤돌라 위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다. 대운하를 가볍게 지나친 후, 소운하로 들어간다. 큰길목에서 뒷길로 빠지는 감각이랄까? 
파스텔컬러가 칠해진 3층건물아니 4층건물이 늘어선 뒤편을 곤돌라는 거침없이 나아간다. 곤돌라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낮은 다리는 벽돌로 만든 것과 대리석 같은 하얀 석조물등 다양해서 어느것이나 다 아름다웠다. 곤돌리에는 무척 말이 많다. 느린 영어를 사용해서 도중에 멈추지도 않고 마을에 대해 해설해주고 있다. 
"3분의 1도 못알아듣겠어." 
빙긋 웃으면서 요시노씨가 말했다. 응, 확실히 그래. 하지만 군데군데 들리는 단어를 조합해서 '대충 이런 말을 하고 있을 거야'정도로 생각하면서 멍하니 곤돌라에 타고 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왜냐면 12세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옛날 이 주변을 지배하고 있던 사람의 얘기들은 나중에 조사해보면 된다. 오래된 뒷골목의 배경을 바라보고 운하를 빠져나가는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 여행초기에 취재메모만 적던 마미씨도 요즘에는 수첩을 펴지않고 있다. 리리안회지판 독자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전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이 피부로 체감하고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망이 안좋은 운하의 교차점에서는 곤돌리에는 울부짖는듯한 목소리를 냈다. '나의 곤돌라는 지금 교차점에 접어들고 있습니다'와 같은 신호일 것이다. 신호가 없으니까 사고방지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도중에 꽤 강폭이 좁은 장소도 있었는데, 그런 때에 한해서 반대편에서 짐을 실은 보트가 오곤 했다. 
"부딪히지 않을까?" 
하지만 곤돌라를 조종해서 잘 빠져나가니 역시 프로다. 젊지만 오빠는 곤돌리에 3대째로 할아버지가 타고 있던 곤돌라를 몇번이나 수리하면서 사용했다고. 곤돌라는 일견 똑같아보이지만 주인에 따라서 내부장치나 장식이 다르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차를 이리저리 만져서 자신만의 독특한 차를 만드는 것과 똑같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런점은 각자의 '취향'일 것이다. 
일단 넒은 운하를 나와서 리알토다리를 건넜다. 다리 위에는 리리안 교복을 입은 소녀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누군지 모르지만 다리 위에서 곤돌라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리알토 다리를 빠져나가자 아까와 또다른 소운하로 들어간다. 노젓기도 신바람이 난 곤돌리에는 칸소네를 한소절 불러 주었다. 아주 훌륭한 목소리다. 
"노래 못하는 이탈리아인도 있을텐데 못하는 사람은 부르지 않을까? 아니면 노래를 못하면 곤돌리에가 될 수 없는 걸까?" 
소박한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런 질문을 할수 있을 정도의 어학실력은 없다. 
"대대로 곤돌리에라니까 핏줄과 환경으로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요시노씨가 말했다. 
"과연." 
핏줄과 환경으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하는, 검도를 시작한 사람의 말은 묘한 설득력이 있는 법이다. 다만 그녀의 경우, 어떻게든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조금 시간이 더 걸렸다. 
산마르코 대운하에 접어드는 앞쪽에 '한숨의 다리'가 있었다. 
"이 다리 아래를 지날때 키스하면 영원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마미씨가 그렇게 중얼거렸을때 곤돌리에의 해설에 '키스'나 '트래디션'과 같은 말이 들렸다. 
"키스구나." 
그 사실을 알았다고 여자고교생 4인조끼리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아, 그렇군요, 하고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다. 그러자 곤돌리에는 '다음번엔 연인과 같이 와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치만." 
한숨의 다리를 다 빠져나온 곳에서 마미씨가 흐지부지된 방금 전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실은 그 다리 말야, 옛날에 죄수들이 지날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자신의 신분을 한탄하며 한숨을 쉬었다고 해서 '한숨의 다리'라고 한대. 환상을 깨뜨려서 미안하지만." 
"뭐?" 
두칼레 궁전과 거기에 인접하는 감옥 사이를 잇는 다리――― 그것이 한숨의 다리다. 그래서 아마도 그 얘기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다리 아래에서 키스한 수없이 많은 커플들의 마음은 어떻게 되어버리는 걸까? 
"설사 죄수들의 한숨이 원래 이름의 유래라고 해도 키스의 전설까지 부정하지 않는 게 좋아." 
"뭐, 그렇지." 
하지만 죄수들의 한숨이 배어있는 다리 아래에서 키스한다는 것. 아는 순간, 생각을 바꾼 커플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으――음. 나라면 어떨까?" 
상대도 없으면서 고민하는 여고생 4인조. 일본어를 모르는 곤돌리에는 손님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빙긋 웃음을 지은 채 운하의 물에 노를 저었다. 
마지막 지점. 
곤돌라의 선착장이 점차 보였다.

 

 

2

 

집합시간 5시까지는 조금 시간이 있어서 선물가게를 보러 가기로 했다. 베네치아라면 역시 베네치아 글래스. 집에 뭐 좀 사가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격표를 보다 깜짝 놀랐다. 
“의외로 비싼걸.” 
“관광지가격 아냐?” 
관광객은 가격이 다소 비싸도 사간다. 하지만 보잘것 없는 여고생의 용돈으로는 비싼 물건에 손이 가지 않는다. 
결국 가게를 몇 개 돌아본 후, 유미는 엄마한테는 베네치안 글라스 펜던트, 아빠한테는 베네치안 글라스 넥타이핀, 유키한테는 베네치안 글라스의 북마크를 선물로 샀다. 어떤 가게의 주인은 서툴지만 일본어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아마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해가 지는 리알토다리에 서자 웬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발 아래를 보니 악단을 태운 곤돌라가 음악을 연주하면서 다리 아래를 통과하는 참이었다.

 

 

3

 

베네치아의 요리는 어패류가 많아서 정말 맛이 있다. 새우, 게, 오징어, 그리고 조개. 일본을 생각나게 하는 재료가 잔뜩 등장한다. 역시 물의 도시다. 피렌체의 육류로 지쳐있던 위가 제대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물론 회가 아닌 올리브 오일로 요리되어 있지만 말이다. 호텔방은 넓고 멋있고, 고풍 있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카드키가 아닌 금속의 무거운 열쇠이고, 자물쇠도 무거워서 여는 것도, 잠그는 것도 기술을 요했다. 하지만 그 덕에 열쇠 받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복도에 나가 잠그면 되니까, 호텔직원들의 폐를 끼치는 학생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욕실에서 나오자 요시노씨가 빨강, 분홍, 금색의 꽃잎이 수놓인 침대 위에 짐을 벌려놓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봐, 이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소리는 일본어였는데, 화면에는 일본가정의 다도실이 비치고 있었다. 
“뭐야, 이게?” 
“일본 드라마.” 
그런데 배경이 너무나 배경스럽다는 느낌이다. 배우들은 심각한 연기를 하고 있는데 왜인지 다도꽁트처럼 보였다. 
“아마 20년전에 했던 걸꺼야.”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자 요시노씨의 엄마가 옛날에 좋아했던 배우가 나온다고. 그 배우, 유미들이 태어나기 몇 년전에 죽었다. 
“아, 이 오빠 알아. 이 사람 말야, 아마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지금 하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나쁜 아저씨야.” 
“맞다!” 
요시노씨의 짐꾸리는 손이 멈춰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에서 일본 텔레비전 방송을 본다는 것은. 그리고 할말이 잔뜩 있는 옛날 드라마.
“지난주에 정말 못됐어. 그치만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니까 매회 나와.” 
“나, 그 드라마 안 볼 수가 없어. 매주 목요일이 기대돼ㅡ” 
한바탕 들떠 있던 두사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늘 무슨 요일이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주아주.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요시노씨가 전화있는 데로 뛰어갔다. 
“여보세요, 큰엄마? 레이언니 바꿔주세요!” 
시계를 보자 밤 11시가 되기 조금 전이다. 8시간을 더해야 하니까 일본은 아침 7시경인가. 레이님은 슬슬 깨어날 시간이지만. 
“아, 레이언니?” 
요시노씨는 ‘잘 있지?’ 라든지, ‘아침 일찍 미안해’ 같은 인사도 없이 갑자기 본론을 빠른 말로 떠들었다. 
“뭐? 응, 그렇구나. 아니, 그렇다면 됐어. 잘 갔다와.” 
요시노씨가 힘 없이 전화기를 놓는 모습을 보니 아마 예상이 빗나간 모양이다. 
“맞아. 레이 언니는 그 드라마가 너무 슬퍼서 보기 힘들었대. 그래서 중간에 그만뒀다나봐. 아ㅡ, 실패했다. 목요일 밤에 드라마를 보고 금요일 밤에 부랴부랴 떠나느라 완전히 잊고 있었어. 아아, 요시노 이 바보.” 
정말 분하다는 듯이 발을 동동 구르고 나서 요시노씨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유미의 어깨를 덥썩 안았다. 
“유미씨.” 
“으, 응.” 
“물론 유미씨는 녹화해놨겠지? 있잖아, 다 보면 그 비디오 빌려줘. 가능하면 다음주 방송이 나오기 전에.” 
그렇게 무지무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졸라봤자. 
“사실은···, 나도 잊어버렸어.” 
“뭐?” 
“미안.” 
유미도 요시노씨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것이 금요일 드라마였다면 출발하면서 ‘녹화해 놔야지’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요일 밤에는 드라마를 보고 만족한 상태였으므로 다음주 방송날이 귀국하는 날과 겹치는지 아닌지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옛날 드라마가 끝나고 화면은 뉴스방송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한밤중인데 일본에서 매일아침 보는 친숙한 아나운서가 상큼한 얼굴로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날짜를 말한 후에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금요일, 아침 7시 뉴스입니다.” 
목요일 밤에 하는 드라마는 모두 즐겁게 곤돌라를 탔을 때 이미 방영되어 끝났던 것이다.

 

 

4

 

이탈리아 시간으로 금요일 아침. 산마르코 광장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마르코폴로 공항으로 가서 밀라노행 비행기를 탄다. 밀라노 마르펜서 공항은 일주일전에 최초로 이탈리아에 하행한 정겨운 공항이다. 나리타행 비행기가 출발하기까지는 2시간정도가 남았기에 1시간의 자유행동이 허락되었다. 그래서 유미들은 장미관에 선물할 물건을 사기 위해 공항 면세점으로 향했다. 
“피렌체 거리에서 센베는 못찾았어. 같은 조였던 사람들도 들은 적 없대.” 
걸으면서 말하는 시마코씨. 의리있게도 자유행동시간에 찾아봤다고 한다. 
“파는 건 아닌가봐, 그런거.” 
요시노씨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잉꼬의 말을 듣고, ‘혹시 있을지도 몰라’라고 말한 게 누군데. 
“그럼 어떡하지?” 
가게 내의 과자매장을 샅샅이 찾아봤지만 역시 ‘로마 만두’와 ‘피렌체 센베’는 찾지 못했다. 
“초콜렛으로 괜찮을까? 작년하고 똑같겠지만.” 
“무난한 거지만 맛있었잖아.” 
시마코씨와 요시노씨는 작년 이맘때즘 이미 장미관의 주인이었으니까 작년의 수학여향의 선물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알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물론 먹기까지 해서, 그런 사실이 유미에게는 꽤, 아니 굉장히 부러웠다. 결국 여러 가지 종류의 초콜렛이 상자안에 정렬되어 있는 초콜렛 한상자를 세사람이서 돈을 합해서 샀다. 하지만 아직 용돈이 남아서 유미는 집에 드라이 토마토와 건조된 포르치니 버섯을 사러가기로 했다. 사실은 올리브오일도 사고 싶었지만 병이 무겁고 도중에 깨져버리면 난처하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저기, 시마코씨. 세이님말인데.” 
계산대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면서 유미가 말했다. 피렌체에서 겪었던 잉꼬 사건을 아직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얘기를

다 하기도 전에 시마코씨가 대답했다. 
“역시 계셨던거지?” 
“만났어?” 
놀란 나머지 요시노씨와 함께 두사람은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시마코씨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지만 느꼈어. 가까이에 있구나, 하고.” 
닮은 사람을 봤다는 증언보다, 잉꼬가 사토씨라는 이름을 말한 사실보다, 시마코씨의 ‘느꼈어’라는 한마디가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렇다면 왜 세이님은 만나러 오시지 않지?” 
시즈카님처럼. 자유행동 시간이었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텐데. 유미는 묻고 싶었다. 그것은 세이님의 마음이니까 시마코씨

에게 물을 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자만일수도 있지만.” 
시마코씨는 조금 씁쓸한듯이 미소지었다. 
“나를 위해서였다고 생각해.” 
시마코씨를 위해. 
시마코씨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아마 ‘정답’일 것이다. 세이님은 시마코씨를 위해 만나러 오지 않았다. 그렇구나, 그런 것이었구나. 시마코씨와 세이님은 떨어져 있어도 항상 어딘가에서 이어져 있다. 유미에게 그것은 굉장히 멋있는 표본으로 느껴졌다.

 

 

5

 

기내에서는 갈 때와 마찬가지로 자고, 일어나서 먹고 손을 씻으러 2번정도 반복했다. 그리고나서 드디어 일본으로 돌아왔다. 갈 때보다 돌아오는 쪽이 빠르게 느껴진 것은 단순히 비행시간이 짧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아마 피곤해서 자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토요일 오전. 
주위에 뒤섞인 일본어를 듣고 귀국을 찡하게 실감했는데, 외국시차로 얼떨떨한 유미는 나리타공항 화장실에서 문을 열고 나온 앞사람에게 그만 ‘땡큐’하고 말해버렸다. 상대는 일본인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반마다 간략하게 HR을 하고 공항에서 해산. 선생님이 얘기한 내용은 주로 주의사항. ‘조심해서 돌아갈 것’ ‘샛길로 빠지지 말 것’ ‘월요일부터 수업이니까 주말은 집에서 휴식을 취할 것’. 아마 일부러 주의를 주지 않아도 학생들은 그 사항들을 실천할 것이다. 모두다 피곤해서 빨리 자신의 이불을 덮고 쉬고 싶어할 터이다. 토요일이라 도로가 막히겠다, 또는 이 시간엔 교통혼잡은 피할 수 있겠다, 등의 생각을 하며 유미는 전차로 집에 가기로 했다. 
“안녕.” 
K역까지 버스로 자면서 온 요시노씨와는 공항에서 헤어졌다. 
“선물 맡겨서 미안해.” 
시마코씨가 요시노씨에게 말했다. 
“괜찮다니까, 괜찮아. 내가 학교에서 제일 가깝고, 걸어서 다니니까 전차나 버스가 만원일 때는 상자가 눌리지도 않고 초콜렛이 녹을 염려가 없어.” 
언제나 서비스정신이 투철한 요시노씨다. 
“그보다 유미씨.” 
휙, 고개를 뒤로 돌려 유미에게 다가갔다. 
“응.” 
“유키한테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고 전해줘.” 
“···전할게.” 
유미가 대답하자 요시노씨는 만족스러운 듯이 끄덕거리고 꽤 무거운 짐을 흔들면서 버스정류장으로 사라져갔다. 
“왜?” 
시마코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시노씨가 비디오 녹화를 잊어버린 드라마를 우리 유키가 센스있게 녹화해둔 걸 알고. 그게 목적인 거야.” 
“어머나. 그런데 저렇게 기쁜듯이···.” 
“그러니까 말야.” 
그런데 저렇게 가방을 흔들어대면 혼잡하지 않아도 초콜렛이 망가지지 않을까? 두사람은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지만 얼굴을 마주보고는 둘다 입밖에 내지 않았다. 이제 요시노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으니까. 
“유미씨, 시마코씨, 가는데까지 같이 집에 갈래?” 
마미씨와 츠타코씨가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좋아.” 
대답을 하고 나서 유미와 시마코씨는 둘과 합류했다. 아주 조금 세일러 칼라가 뒤집혔지만, 그것은 요시노씨의 기분 좋은 가방과 그리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몸은 피곤했는데 어쩐지 모두 들뜬 기분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아, 즐거웠다, 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