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4권 [번외] 나카키요노 -4- 언니의 곁에서

언니의 곁(お姉樣の隣)

 

 

    1

 

화장실 휴식에서 돌아온 유우키 일행과 함께, 초밥으로 저녁식사가 되었다. 용기의 뚜껑을 연 나는, 무심코 그 자리에서 뒤집어질 뻔 한 걸 겨우 눌렀다.
'히에에......'
그릇부터 다르긴 했지만, 우리 집에서 시키는 초밥과는 내용물도 전혀 달랐다. 그러니까 문어라거나 간고등어라거나 오이말이 같은 건 보이지 않고, 전부 도미니 전복이니 성게니 다랑어니 새우등등, 척 봐도 비쌀 것 같은 것들 뿐. 그래도 달걀은 있지만, 밥에 올려서 김으로 허리띠 매어 놓은 예의 그게 아니다. 밥 없이 완숙 달걀을 둘로 잘라서, 주위에 톡톡 장식해 놓았다. 오징어나 연어알이나 방어도, 좋은 재료 썼구나- 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동통통 쫄깃쫄깃 하다.
'이런 걸 한번 먹어 버리면, 앞으로는 보통 초밥을 못 먹게 되잖아-'
몰래 내쉰 한숨은, 우연히 유우키의 그것과 겹쳐졌다. -같은 집에 사는 동지. 생각하는 건 같은 거다. 우리는 이웃끼리, 눈을 맞추고는 어깨를 으쓱 했다.
"와, 호화. 잘먹겠습니다-"
로사 기간티아는 무서운 게 없다. 이 사람의 평소 생활이라는 것도, 전혀 모르겠다.
"유미쨩네는, 초밥 안 좋아해?"
뚜껑을 연 채 아직도 젓가락을 대지 않고 있는 우리 남매를 보고, 사야코 고모님이 걱정스러운 듯 중얼거린다.
"아, 아뇨"
"무지 좋아해요"
황급히 부정하자, 사치코님이 조용히 말했다.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직 배 고프지 않은 거 아니니?"
그런 말을 듣고서야, 안 먹을 수 없다. 더군다나 사야코 고모님이 슬픈 듯한 얼굴로, 아직 뚜껑도 벗겨지지 않은 옻칠 상자를 바라보고 계시니까.
"그렇지 않아요, 잘먹겠습니다"
유우키는 마음을 굳히고, 젓가락을 갈랐다. 각이 둥글게 되어 있고, 윗부분만 붙어 있는 젓가락.
"난, 용궁에 와 있다고 생각하기로 할래"
도미와 넙치의 댄스.-가 아니라,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한동안 몸을 맡기고 있다고. 그런 의미인 것 같다.
그야 그렇다.
그래서, 나도 젓가락을 갈랐다. 생각해 보니, 이 집에 온 뒤로 보자면, 그 호화로움에 놀라고만 있었지만. 우리집과 비교해서, 일일이 튀어올라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사치코님도 자랑하고 싶어서 날 초대해 주신 게 아닐 테고. 마음 속이라곤 해도, 너무 놀라고 있는 건 상대에게 실례일지도 모른다. ......반성.
'아아, 그건 그렇고 도미란 맛있어-'
사치코님의 말씀대로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또 하나' 하고 젓가락이 가게되니까 맛있는 것의 인력이란 굉장하다.
'맛있어라-. 하지만, 오늘 칼로리 섭취량 굉장하겠다. 정월이라고 살찌는 건 좀 싫은데. ......응?'
그때 내 눈 가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비쳤다.
'설마하니'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해서, 나는 한번 눈을 돌렸다. 하지만 역시 신경쓰여서, 다시 한 번 시선을 그쪽으로 되돌려 보고, 그게 현실이라는 걸 깨닫고 얼굴이 굳어졌다.
'뭐, 뭐 하는 거야 카시와기씨잇......!'
그는 당연한 듯이 사치코님의 초밥 상자에서 성게니 연어알이니 전복 같은 걸 가져다, 자기 상자로 옮겨담고 있었던 것이다.
'초밥이 모자라면, 아직 손도 대지 않은 게 2인분 있는데'
네이놈 카시와기, 하고 로사 기간티아 같은 말투로 화내고 싶어 졌다. 아무리 사촌남매라곤 해도, 허락도 없이 초밥을 가로채다니 비겁자, -하는 식으로.
사치코님도 사치코님이다. 그럴때는 한마디 쏘아 붙이면 되는 거다. 언젠가 처럼.
<우쭐해서 멋대로 구는 것, 그만 두는 게 어때요!> 하고. 그때는 속이 시원했었지-.
하지만, 사치코님에게 나의 텔레파시 같은건 전혀 닫지 않아서. 당연하다는 듯이 그걸 놔두고 있다.
'어째서-!?'
도미를 어금니로 몇번이나 곱씹으면서, 나는 속이 바작바작 탔다. 로사 기간티아께 그걸 알리고 싶어도, 초밥 먹는데 정신이 없어서 알아채지도 못한다. 기쁜 듯이, 새우 꼬리 같은거나 입으로 내밀고 있고.
하지만.
계속 관찰하고 있자, 그게 아닌가 하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사치코님이 빼앗기고만 있다, 는 게 아닌듯 한 거다. 카시와기씨는, 사치코님 초밥 상자의 빈 곳에다 자기 것에서 도미와 오징어와 새우를 옮겨놓은 것이다. 그 뿐인가, 카시와기씨가 놓아 둔 초밥을, 사치코님은 아무런 의문도 없이 드시고 있다. 카시와기씨는 내 시선을 알아채고는, 여유있는 웃음을 띄우며 윙크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머리 속에서 패닉을 일으키고 있을 때, 옆의 유우키가 내 초밥 상자에 달걀구이를 던져 넣었다.
"대신, 생강 줘"
"응, 마음대로 가져가"
나는 달콤한 달걀구이를 좋아하고, 유우키는 매운 생강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주고 받고. 아빠와 유우키의 감씨 땅콩처럼, 교환해서 서로서로 행복. 이런 거, 가족이니까 할 수 있는 거지만.
'......앗!'
사치코님과 카시와기씨의 초밥 용기를 다시 한번 보고, 나는 잔뜩 패배감을 맛봤다. 카시와기씨의 그 행위는, 오랫동안 쌓아 온 친밀한 관계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나는,사치코님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파악하고 있는 카시와기씨에게 질투하고,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치코님에게 분개했다.
'사치코님은 남자 혐오증 아니었어? 카시와기씨를 싫어하셨던 거 아니었어? 그런데도, 카시와기씨의 젓가락이 닿은 초밥을, 어떻게 입에 넣으실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는. 맛있어야 할 초밥의 맛이, 아쉽게도 전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카시와기씨도 유우키도, 아무런 걱정도 없이 2인분씩 먹었는데.
언니란 신기한 존재다.
별 것 아닌 몸짓이나 행동으로, 동생을 행복하게 했다가도, 이렇게 밑바닥까지 떨어뜨릴 수 있는거니까.

 

 

    2

 

"저, 저기. 이런 걸 부탁드릴 처지는 못 되지만"
유우키가 그렇게 말하며 로사 기간티아와 사치코님에게 머리를 숙인 건, 밤 11시 반을 조금 지난 때였다. 우리는 늦은 저녁식사 후, 다시 나눠서 뒷정리를 하고, 이미 리리안 조와 하나데라 조로 나뉘어해산한 상태였다.
이 집에는 손님방이라는 게 몇개나 있다고 하지만, 다들 세미더블이나 트윈의 침실이라, 두명이잘 곳은 확보할 수 있어도 세명이서 자는 건 무리인 관계로, 우리는 사야코 고모님의 제안으로 화실에 이불을 깔고 내 천(川)자로  자게 되었다. 역시 합숙이라고 한 이상 사치코님도 같이 자야지.
우리는 이불방(!)에서 좀 전에 트럼프 대회를 한 화실에 이불 세짝을 옮기고, 양쪽에서 잡은 시트를 낙하산처럼 펼치거나 하면서 즐겁게 이불을 깔았다. 시계에서 카시와기씨가 사라진 것만으로 울적했던 내 기분도 상당히 나아져 버리는 거니까, 서글플 정도로 타산적이다.
이불을 다 펴고 나서는, 사치코님 방의 욕실에 나이순으로 들어가서(아무리 그래도 다같이 들어갈 만큼 넓지는 않다), 사치코님이 애용하시는 바디클린저나 샴푸 등의 향기에 감싸여 있는 동안,완전히 기분이 좋아져서 저도 모르게 콧노래가 튀어나와 버렸다. 사치코님의 방을 이 눈으로 볼수 있었던 것도, 한가지 원인일 지도 모른다. 생각대로 굉장히 고져스한 방이었지만, 일일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기왕에 기분 좋아졌는데, 내 방이랑 비교해서 풀이 죽어 버리면 바보같으니까.
그렇게 해서, 유우키가 칸막이를 열고 화실에 들이닥친 건. 자아 누가 어디서 잘까 하는 걸 결정하려는 때였다. 우리는 '무슨 일이야?' 하며 놀라고, 사치코님은 황급히 네글리제 위로 가운을 걸치는 판이었다.
"그러니까, 뭐야. 너는, 카시와기랑 단둘이 한 방에서 자고 싶지 않다, 라는 거지. 그래서, 이 젊은 처녀 세사람의 방에 굴러들어왔다. 그런 게로군"
흠흠, 하고 친한 듯이 듣고 있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절대로 재미있어하고 있는 로사 기간티아가,요약해서 확인했다.
"예에"
유우키는 복잡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과아-연"
나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윽고 카시와기씨의 취향을 떠올리고 '설마' 하고 생각했다.사치코님도 로사 기간티아도, '어째서' 하고 묻지 않았다. 왜냐니, 물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카시와기씨가 동성애자라고. 그저, 아마 두 사람 다, 나와 마찬가지로 지금껏 그걸 싹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하지만'
남자 동성애자란, 상대가 남자라면 아무나 좋다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데라 학원은 남학교니까, 양떼 사이에 늑대 한마리를 같이 풀어 놓은 거나 마찬가지로, 대단히 위험한 거 아닌가하고 생각하는데.
"어지간히 신용없구나, 카시와기는"
"실례로군, 로사 기간티아. 나는 언제나 신사야"
유우키를 쫓아서, 카시와기씨가 등장했다. 이번엔 내가, 잠옷 위로 스웨터를 뒤집어 썼다. 
로사 기간티아는 티셔츠와 스패츠 차림으로 잘 예정이었기 때문인지, 일일이 남성의 눈을 신경쓰지 않았다. -조금쯤 신경쓰는 게 좋다고 생각해.
"농담이야, 유키치. 자, 이리 돌아오렴"
양손을 펼치고, 레트 버틀러처럼 느끼하게 웃는다. 이건, 유우키가 아니라도 도망치고 싶어질 만도하지. 저절로, 온몸에 닭살이 돋아 버렸다.
"설령 놀린 것뿐이라고 해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게 네녀석의 평소 행실을 반영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카시와기"
-라니 로사 기간티아. 당신이 그런 말 해도 되는 건가요, 당신이.
"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진 않군"
거봐.
괜히 말 꺼내 가지고. 카시와기씨의 반격이 시작됐다.
"대체, 넌 뭐하자는 거냐. 여자가 남자한테, 그 말투라니. 아가씨 학교라는 리리안에선, 요즘 그런 식으로 교육하고 있는 건가. 귀엽지 않게스리"
"흥. 쓸데없는 참견이다. 하지만, 학생회장이 여자는 여자답게 어쩌고 따위 케케묵은 생각을가지고 있을 정도라니, 하나데라도 별 것 아니구만. 부처님도 어지간히 한탄하시겠지"
"무슨-!"
상대가 싫어서일까, 겨우겨우 드잡고 싸우진 않지만 왁자지껄 굉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렇잖아도 엄청 달변인 두 사람인데다, 뭐니뭐니 해도 양쪽 다 학생회장이니까. 결국엔 학교를 등에 업고 싸움을 시작해 버렸다. 애초에 원인이었던 유우키 같은 건, 일이 예상외로 너무 커져버려서, 어쩌면 좋을지 우왕좌왕 할 뿐이다.
"그래요, 유우키씨. 이불 가지고 오도록 해요. 같이 자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칸막이를 하고 다음 칸에서 자면 되겠죠"
아무리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입씨름을 내버려 두고, 사치코님이 유우키에게 돌아섰다.
"가, 감사합니다. 사치코씨"
'사, 사치코씨라고-'
피를 나눈 동생이지만, 머리에 팍 하고 올라왔다. 나의 소중한 언니께, '씨'를 붙여서 부르다니 이 무슨.
"유미. 안내해 드리렴"
"......예"
나는 떨떠름하게 일어났다. 언니의 명령은 절대적이고. 사치코님 자신이 '사치코씨'라고 불리우는 데 위화감을 느끼지 않으시는 것 같으니까, 내가 혼자 소란떨어 봤자 별 수 없는 일이다.
"아, 그럼 나도 갈께"
카시와기씨가 싸움을 멈추고 따라왔다.
"잠깐"
로사 기간티아가 황급히 잡았다.
"어째서 네녀석이 같이 가는 거야?"
"유키치가 여기서 잔다면, 내 이불도 가지고 와야지"
자신의 정당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카시와기씨는 '생각해 봐' 하고 말을 이었다.
"옆 방이라곤 해도, 칸막이 하나 뿐이야. 건강한 소년인 유키치가 말이지, 유미쨩은 그렇다 치고, 삿쨩이나 널 덮치면 어쩔 거야. 그렇게 되지 않도록 감시하겠다는 거야"
당신 쪽이 위험해요, 라고 생각했지만, 카시와기씨는 여자에게 흥미없었던가. 가족의 편견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물론 고등학교 1학년의 남자는 위험한 존재일 지도 모르지만. 으-음, 하지만 그런 물컹물컹한 이야기, 좀 하지말아 주셨으면 좋겠는데. 이번엔 특히, 상대가 동생이고.
그럴 때.
"사치코, 아직 깨어 있어?"
복도쪽 칸막이가 스윽- 하고 열리고, 사야코 고모님이 나타났다.
"어머, 스구루네도 있었어?"
"좀 들어 보세요 외숙모님. 다들 합세해서 저만 따돌리려고 하잖아요"
아양떠는 것도 아니고, 농담 티도 내지 않고, 카시와기씨는 담담히 사실을 전했다. 확실히, 카시와기씨를 빼놓으려고 하는 거니까 '따돌림' 이라는 표현은 맞다.
"어머나, 왜?"
"분명히, 제가 멋있어서 그러겠죠"
-요시노양 식으로 말하자면, 이 사람 머리 속도 절대로 녹아 있다.
"아뇨, 그게 아니고 말이죠-"
내가 말하려는 차에, 로사 기간티아가 '엇험'하고 헛기침을 해서 말렸다. 잘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사야코 고모님은 카시와기씨의 '취미'에 대해 모르시는 듯 하다. 확실히, 사야코 고모님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고 있으면, 그런 얘기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못써, 사이좋게 지내야지. 그렇지?"
"......예에"
그렇게 해서, 여기 있는 대다수가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카시와기씨는 유우키와 함께 우리 방 옆에서 자게 되어 버렸다.
"-별 수 없지. 잘 들어 유우키. 카시와기가 덮치면, 큰 소리로 우릴 불러"
이불방에 카시와기씨와 이불을 가지러 가는 유우키를 불러세우고, 로사 기간티아가 조그맣게 어드바이스 했다. 조금 한숨을 쉬고 그들을 본 후, 사치코님은 사야코 고모님에게 돌아앉아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님께선 무슨 일이라도?"
'잘 자렴'하고 헤어진 뒤 한시간도 넘었는데, 갑자기 찾아 오신 건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전통 잠옷에 가운을 걸치고 계시는 걸 보면, 사야코 고모님은 이미 주무실 태세에 들어가 계셨을 것이다.
"아아, 맞아맞아. 사치코. 오늘 밤은 보물선 띄우는 날 아니었던가?"
"아, 정말. 매년, 2일이었죠. 깜빡 잊고 있었어요. 금방 준비할께요"
사치코님은 그렇게 말하고, 화실을 나가 어딘가로 가 버리셨다. 그리고는 붓펜이랑 가느다란 매직펜이니 볼펜 같은 '쓸 것'과, 깨끗한 치요가미(千代紙. 색깔로 무늬가 들어간 일본 전통 수공 종이 - 역자주)를 가지고 돌아오신 걸 보면, 그 '보물선을 띄우기' 위해 그것들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되었다.
"대체 뭐가 시작되는 거에요?"
로사 기간티아도 모르시나 보다. 방 한켠에 있던 책상을 전등 옆으로 가지고 와서, 치요가미 뒷쪽에 뭔가 쓰기 시작하신 사야코 고모님께 여쭤본다.
"'나카키요', 세이양 집에선 안 해?"
"나카키요?"
당연한 듯이 말씀하시지만, 후쿠자와 가에서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뭘하는건지 조차 모르겠지만.
"아, 나카키요? 헤-에, 오랜만이네요. 외숙모님, 아직 하셨었군요"
카시와기씨가 안고 온 이불을 내려놓으면 말했다.
"뭐에요, '나카키요' 란 거"
유우키가 묻는다.
"안 하냐, 너희 집도"
-안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그 '나카키요' 란 게 뭐냐구. 보물선이라는 거랑, 뭔가 관계있는 거야?
"주술 같은 거야. 나카키요노, 부터 시작하는 노래를 쓴 돛단배를 베개 밑에 두고 자면, 좋은 첫 꿈을 꿀 수 있다고 해"
사치코님이 설명해 주시는 동안, 사야코 고모님은 그 문장을 다 쓰신 듯, 붓펜을 놓았다. '이거야' 하고 보여주신 글자는, 흐르는 듯이 아름다운 히라가나 문자였다.

 

    なかきよの
    나카키요노
        とおのねふりの みなめさめ
        토오노네후리노 미나메사메
    なみのりふねの
    나미노리후네노
        おとのよきかな
        오토노요키카나

 

"아하아, 회문(回文)이군요"
로사 기간티아가 말했다.
"회문, 이라뇨?"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유우키가 '그런 것도 모르냐' 하고 얼굴을 붉히며 조그맣게 말했다.
"거꾸로 읽어 봐"
"나카키요노-앗"
굉장해. '토마토' 라거나 '기러기' 같은 거랑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니, 우리 반에 '코이케 케이코'양이 있었지. 나 같은건 '미유와자쿠후'라서, 전혀 재미있지 않은데.
"그런데. 무슨 뜻이에요, 이거"
주술이라기 보단 주문 같아서,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애초에, '나카키요' 란 게 뭐지.
"'나카키요노' 는 말이지, '나가키요노(長き夜の - '긴긴 밤의'. 히라가나로 쓰면 ながきよの가 된다 - 역자 주)' 야. 탁음(가나 왼쪽 위의 작은 점 두개가 붙은 글자 - 역자 주)은 청음(탁음, 반탁음이 없는 글자 - 역자 주)으로 고쳐 놓은 거지. 이로하 노래(이로하니호헤토, 로 시작하는 일본의 옛 노래. 옛날 50음도로 쓰였다 - 역자 주) 도 그렇잖아?"
"이로하 노래?"
"그 왜. '이로하니호헤토'는 '이로와니오에도(色は香えど - '색깔은 냄새가 나지 않으나' - 역자주) 잖아?"
"예에"
가 아니라, 그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하지만, 더 이상 언니인 사치코님을 창피하게 만들면 죄송하니까, 잠자코 있었다.
  
    長き夜の
    나가키요노(긴긴 밤의)
        遠の眠の皆目ざめ
        토오노네부리노미나메자메(아득히 잠자던 모두 눈 뜨고)
    波乘り船の
    나미노리부네노(파도 넘는 배의)
        音のよきかな
        오토노요키카나(소리도 좋구나)

 

사치코님은, 다시 한자와 가나를 섞어서 그 노래를 써 주셨다. 그러자 의미불명이었던 주문이, 제대로 지어진 싯귀로 보이니까 신기한 일이다.
"긴긴 밤의-"
자세한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큰 배에 탄 듯 기분좋게 흔들리며 밤새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야 '소리도 좋구나' 니까.
"이거, 오가사와라 가의 습관인가요?"
"아니. 내 친정집 거야. 시집와서 처음 정월때, 이 집에서 아무도 보물선 접지 않으니까 깜짝 놀랐어"
사야코 고모님은 돛단배를 접으면서, 소녀처럼 웃었다. 확실히, 그다지 세상에 퍼져 있진 않은 것 같지만. 적어도, 나는 처음 들었고. 로사 기간티아도 그런 것 같으니까. 하지만, 과연 옛 귀족 가문. 우아한 걸로는, 더할 나위 없다. 사야코 고모님은 '돈 많은 오가사와라 가의 사모님' 이 아니라도, 이런 식으로 우아하게 살아가시지 않았을까 싶다. 이것 말고도 우리는 생각지도 못할 습관이, 이 집에선 당연한 듯이 존재하고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사치코님이 함께 보물선을 접는다. 사치코님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하지 않으시지만, 2일에 손님이 있다거나 종업원이 남아 있거나 하면, 신기해하며 같이해준다고 한다. 카시와기씨도 그중 한명. 사촌오빠니까, 어렸을 때부터 자고 가거나 했었겠지. 분하지만, 좀전에 로사 기간티아께 했던 '제가 동생이 되기 전 일이니까요' 라는 말을 마음 속으로 기도처럼 되뇌이며 자신을 납득시켰다. 옛날 일은 옛날 일.
물론, 보물선을 접는 작업에 우리도 기꺼이 참가했다. 이렇게 드문 체험도 하고, 게다가 좋은 꿈까지 꿀 수 있는데 안할 수 없죠.
"나카키요노토오노네부리노미나메사메......"
사치코님이 써 주신 견본을 보면서, 우리는 그걸 베껴쓴다. 붓펜으로 시원시원하게 적힌 히라가나는 예술적이지만, 그에 비해 가느다란 사인펜으로 쓴 내 글자는, 가늘고 작고 딱딱할 뿐 아니라, 평소 가로쓰기에 익숙한 것도 있어서 점점 비뚤어져 가 버린다. 덤으로 글자 분배 같은게 엉망진창이어서, 왼쪽과 아래에 여백이 생기는 바람에 볼품도 없었다.(원래는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나가는 방식임 - 역자 주)
"괜찮잖어. 접으면 안보이니까"
독심술이라도 쓴 것처럼, 로사 기간티아가 위로해 주셨다. 어차피, 또 내가 백면상하고 있었겠지만. 좁은 책상을, 두 사람씩 번갈아 가며 어깨를 맞대고 썼다. 다 쓴 것과 쓰기 시작한 걸 힐끔 훔쳐보니, 로사 기간티아도 카시와기씨도 멋지게 잘 쓰고 있었다. 뭐랄까, 가로세로 한쪽이 길지도, 치우치지도 않고 원고용지의 공간을 충분히 사용하는, 그런 견본 같은 글자. 그런데도 두사람 다, 어딘가 미묘하게 독특한 버릇이 있달까. 그러니까 인상이 전혀 다르다. 뭐어, 사람 자체가 강렬한 개성덩어리 같은 사람들이니까 그것도 납득할 만 하다.
유우키의 글자는 크고 당당하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나름의 맛이 있다. 평소에 많이 본 글자인데도, 이렇게 다른 사람들 것과 비교하니 왠지 신선했다. 노래를 다 쓴 다음엔, 거꾸로 다시 한번 읽어서 틀린 곳이 없나 확인한 후, 글자를 안쪽으로 해서 종이를 접는다. 일단은 쌍배를 만들고, 그걸 응용해서 돛단배를 만든다. 종이접기 같은 건 오랜만이라서 조금 헷갈렸지만, 그래도 도중에 나오는 바람개비를 여차저차 접다 보니 그럭저럭 완성했다. 
"그게 아냐, 유우키씨. 여기는 비스듬하게 접는 거야"
먼저 보물선을 다 접은 사치코님이, 뒤늦은 유우키에게 붙어서 접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불안하지 좀"
카시와기씨가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지만, 그 의미는 헤아릴 수 없다.
"잘 자요"
이번에야 말로 정말, 하고. 사야코 고모님은, 모두 배를 다 접고 나자 자신의 침실로 돌아가셨다. 유우키는 칸막이가 닫히기 전에, 우리 방과의 경계선 아슬아슬하게 까지 자신의 이불을 가져오고, 반대로 카시와기씨의 이불을 반대편 끝으로 잔뜩 떨어뜨려 놓았다.
"사치코 저기, 유미쨩 한가운데, 그리고 내가 여기지"
이불을 깔 때는, 잘 곳은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하던 로사 기간티아였지만,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잘 때가 되어서 갑자기 각자의 이불을 지정했다. 하나데라의 두 사람이 자고 있는 방에 가까운 순서대로 로사 기간티아, 나, 사치코님이라는 형태다.
"내 천(川)자라면, 애가 한가운데잖아 원래. 유미쨩 키도 나이도 가슴도 작으니까 애지"
"......그럼, 사치코님이 엄마고 로사 기간티아가 아빠인 건가요"
생각한 그대로를 이야기하자 '버릇없는 애구나' 하고, 목에 팔을 감아 졸랐다.
"불만 없잖아, 유미쨩한테는. 사치코 옆이니까"
"하아"
기쁜 것 같기도 하고 곤란한 것 같기도 하고. 사치코님의 잠든 얼굴을 볼 수 있는 찬스지만, 반대로 이쪽의 바보같은 얼굴을 보이게 될 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로사 기간티아"
사치코님이 미소짓는다.
"그럴 순 없어"
로사 기간티아는 눈에 힘이 들어가 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말이지"
칸막이를 의심스러운 듯이 힐끔 본다.
'......아, 알았다!'
로사 기간티아, 카시와기씨를 경계하고 계시는 거다. 기뻐해야 할지 한탄해야 할지, 유우키는 전혀 안중에 없다. 카시와기씨가 쓸데없는 생각을 품었을 때를 생각해서, 자는 위치를 지정한 거다. 예를 들면, 유우키를 덮쳤을 경우. 곧바로 칸막이를 열고 뛰어들어갈 수 있도록. 예를 들면, 사치코님께 가까이 가려고 했을 경우. 사이에 자고 있는 두 사람이 장해물 역할을 해서, 막을 수 있도록. 남자에게 밖에 흥미 없다곤 해도, 사치코님께 키스하려고 했던 전과가 있으니까 방심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난 그냥 한낱 장해물인 거지.
"전등은 어떻게 하지?"
"갈색으로 합시다!"
나는 기운좋게 손을 들었다.
"갈색, 이라니?"
두 사람이 동시에 되묻는다. 이상하네, 보통 갈색이라고 하지 않나? 그러자, 칸막이 저편에서 쿡쿡쿡 하고 웃음을 참는 소리가 흘러 나온다. -카시와기씨다.
"미안, 고의는 아니지만 들어 버렸어. 유미쨩, 그거 혹시 작은 전구 하나 말이야?"
"예에"
"좋은 표현이구나. 확실히 방이 갈색으로 변하지"
카시와기씨에게 칭찬받아도 기쁘지 않은데요. 아아, 하지만 이미 그의 웃음이 이쪽 방까지 전염되어 와서, 당황스럽게도 사치코님까지 쿡쿡 웃고 계셨다. 로사 기간티아는 아주, 이불에 얼굴을 부비고 몸을 비틀며 목소릴 죽이고 계시고.
"과연 유키치의 누나로군. 유미쨩, 아주 좋아"
칸막이 저편, 배를 안고 웃는 카시와기씨 옆에서 머리를 감싸안고 있을 유우키의 모습이, 나에겐 보이는 것 같았다. 맹하기 그지없는 누나라 미안하구나, 동생아.
옆 방은 '갈색'이 아니라 '검은 색'을 고른 모양이다. 칸막이 틈새로, 불이 꺼진 게 보였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이쪽.
"캄캄한 쪽이 푹 잠들 것 같지않아요?"
"사치코 말 대로야. 2대 1로, 유미쨩 의견 기각. 그러므로, 소등"
스피드 결정, 스피드 시행에 따라, 순식간에 전등은 꺼졌다.
"아, 너무해"
"유미. 혹시, 어두운 게 무섭니?"
사치코님이 속삭인다.
"아, 아니에요"
"아, 딱 맞췄다"
로사 기간티아가 짓궂게 웃는다.
"그러니까, 아니라니까요"
사실은 정답이지만, 인정하기 뭐하니까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아니라고 하면 하는 만큼, 맞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에-이, 주절주절 하고 있으면 보쌈 해 버릴거야"
보쌈? -이라고 생각하는 틈에, 아마도 로사 기간티아겠지만, 나에게 이불을 뒤집어 씌우고 양옆에서 꼬옥하고 끌어안았다. 하지만 이거, 보쌈이 아니라, 굳이 예를 들자면 벨기에 와플 아닐까나.
"무서우면, 무섭다고 정직하게 자백해버렷"
"히잉-"
꼬옥꼬옥.
"언니, 살려주세요"
로사 기간티아도 참, 지금이다 하는 듯 날 끌어안는다. 이불 위에서지만. 옆에 사치코님이 계시다 보니, 날 놀려먹는 데도 힘껏이다.
"살려달라니, 뭐 하고 있는 거야?"
"로사 기간티아가-"
내가 말한 것과 동시에 불이 켜졌다. 밝은 불빛 아래, 로사 기간티아는 나에게서 몸을 떼고 사치코님께 항복 포즈를 했다.
"전언철회. 역시, 갈색을 지지할께. 어두우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발견이 늦어"
"그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전등 줄을 쥔 채, 사치코님도 쓴 웃음짓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두 사람의 시선 끝을 보자, 칸막이가 두장만큼 열려 있고, 거기 카시와기씨와 유우키가 지금 그야말로 방에 뛰어들려는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어둡게 해 두면 칸막이가 열려도 알아채기 힘들다, 는 말이다. 문틈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 불빛이 있으니까, 완전히 캄캄한 건 아니지만.
"말해 두겠는데, 좋지않은 목적으로 이걸 연 게 아니야"
카시와기씨는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돈하며 말했다. 그에 대해, 로사 기간티아는 웃으며 끄덕인다.
"그런거, 알고 있어. 자는 걸 덮치기(원문은 夜這い(요바이). 옛날, 밤에 남자가 연인의 방에 몰래 숨어들던 일본 풍습 - 역자 주)엔, 등장이 너무 일러"
"그럼, 됐어"
좀전까지 어린애같이 싸우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이렇게 어른같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걸까 이 사람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많은 걸 설명하지 않아도 제대로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잘 알았다고 사인도 확실히 주고받고. 그리고, 살짝 겉멋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어쩌면 로사 기간티아와 카시와기씨는, 대화 레벨이 맞는 걸 지도 모른다. 나 같은 건 가끔 미궁속에 빠져버릴 듯한 대화도, 카시와기씨라면 캐치볼하듯 퐁퐁 주고받고 할 수 있다거나. 말싸움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이 맞달까. 그런 얘길 입 밖으로 냈다간, 로사 기간티아께 또 괴롭힘 당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夜這い라니, 대체 언제적 사람이야.
"유우키, 너희 누나, 이제 놀리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고 자도록 해"
상황이 파악되지 않아서 멍하니 있던 유우키지만, 지명당하자 핫하고 정신을 차리더니 황급히 자기가 연 칸막이 한 장을 닫았다.
"아, 안녕히 주무세요"
"응, 잘 자. 귀엽구나, 유우키는"
로사 기간티아는, 내 동생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다. 너구리 얼굴이 좋은 걸까나.
"그럼, 귀엽지 않은 나도 철수하도록 하지"
"보디가드, 수고하셔"
"아니, 뭘"
카시와기씨가 나머지 칸막이 한장에 손을 대자, 사치코님이 조그맣에 말했다.
"카시와기씨,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잘 자"
굉장히 살며시, 카시와기씨는 칸막이 틈을 맞댔다. 그리고 옆 방에서는, 어찌된 건지 말없이 베개던지기가 시작되어서, 이쪽을 황당하게 만들었지만. 덮치네 마네하는 이야기 다음이니까, 웬지 건강해 보여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져 버렸다.
"저래서야, 보물선이 행방불명 되어버리겠구나"
작은 전등을 하나 남기고 방을 갈색으로 하자, 사치코님은 내 옆의 이불에 살며시 들어가셨다. 그 때, 희미한 바람이 일어나 샴푸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내 머리카락인지 사치코님의 머리카락인지, 아니면 로사 기간티아의 머리카락 냄새일 지도 모르지만. 그다지 그런 건 관계없이, 그 공기에 감싸여 있는 것이 왠지 행복하게 느껴졌다.
"맞아맞아, 유미쨩. 내일 아침, 6시 반 기상이야"
어느 틈에 준비했는지, 로사 기간티아는 다 맞춰 놓은 자명종 시계를 내 머리맡에 놓았다.
"에엣-"
학교 가는 날도 아니니까, 조금쯤 느긋하게 있고 싶었지만 그렇게 놔 두시질 않는다.
"다같이 아침밥 만드는 거야. '합숙' 이니까 말이지"
듣자하니, 사야코 고모님이 만드신 요리라는 건 맛은 있지만 대단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사야코 고모님이 아침밥을 만들기 시작하시기 전에 부엌을 점거해서, 재빨리 간단한 아침밥을 만들자는 계획이라고.
"아침에 빵 먹고 싶다고 하면, 먼저 소맥분 양부터 재기 시작하시는 분이야"
질린 듯이, 사치코님은 중얼거렸다. 뭐어, 차 끓이려고 우왕좌왕하시는 걸 봤으니, 묘하게 납득이 되어버리긴 하지만. 평소 식사는, 당연한 듯이 전속 요리사가 만들어 준다고 한다.
"...여기다 라디오 체조만 있으면, 완벽히 합숙이네요"
설핏 말을 꺼내자, 로사 기간티아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거 좋으네, 할까"
"마음대로 하시죠. 하지만, 전 하지않을 테니까요"
-확실히. 사치코님께 라디오 체조는, 조금 미스매치.
아침식사를 끝내고 나면 유우키와 함께 차로 집까지 바래다 주겠다고 로사 기간티아가 말씀하셨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하지만 제일 가까운 역까지 걸어 간다면 꽤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카시와기씨 차에 태워 달라고 하는 것도 사양하고 싶다. 그야 로사 기간티아랑 같은 나이니까, 카시와기씨도 면허 갓 딴 초보운전이잖아. 핸들 테크닉 같은 것도 믿을 수 없고, 무엇보다 저 새빨간 차. 보는 것만으로도 창피하기 짝이 없다. 어떡하지.
몽실몽실 생각하다 보니, 이불이 내 체온으로 따뜻해져 와서, 왠지 꾸벅꾸벅 졸리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옆방의 베개 던지기도 끝나고, 조용해져 있다. 자기 전에 그만큼 운동했으면, 두 사람 다 이불에 들어가자 마자 푹 자겠지.
나는, 카시와기씨를 전면적으로 좋아하게는 될 수 없지만, 생각보다 싫은 사람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야 사치코님과 피가 이어져 있고, 그리고 사치코님이 먼.옛.날.(여기 강조!)에 좋아했던 사람이니까. 그렇게 나쁜 사람일 리가 없다고.
나는, 돌아누우며 조금 사치코님께 가까이 갔다. 춥지 않도록, 우리는 서로의 이불을 꼭 붙여놓고 있다.
'주무시는 걸까나, 언니'
등에 느껴지는 로사 기간티아의 기척은, 이미 안녕히 주무세요 모드였다. 이봐요 이봐요, 우릴 지켜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자그마한 코골이는, 못 들은 걸로 해 드렸다. 로사 기간티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로사 기간티아의 수많은 팬 후배들을 위해서.
'그건 그렇고, 꼭 꿈같아'
갈색으로 물든 방 가운데, 손을 뻗으면 금방 닿을 듯 가까이 사치코님의 주무시는 얼굴이 보인다. 이 모습을,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것은 나 뿐이었다. 사촌오빠라도 약혼자라도, 남자인 카시와기씨는 볼 수 없다.
나는, 사치코님의 동생이 될 수 있는 여자로 태어나서, 그리고 사치코님과 같은 시대에 리리안 여학원의 학생이 될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리아님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위를 보고 자지만, 오늘은 오른쪽 어깨를 아래로 하고 자기로 했다.
-가, 갑자기. 사치코님의 눈꺼풀이 반짝 열렸다.
'엣!?'
훔쳐보다 들킨 중년 아저씨처럼 나는 패닉상태에 빠졌지만, 사치코님은 그다지 야단치시려는 것도 아니었다.
"유미"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사치코님은 말을 거셨다.
"예, 예엣"
"오늘은 와 줘서 기뻤어"
"옛"
"싫지 않았다면, 또 놀러 오렴"
"옛"
한심하게도 나는 '예'를 연발할 뿐, 제대로 된 대답 하나 하지 못해서. 사치코님은 질리신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살짝 웃고 '잘 자' 하고 다시 눈을 감아 버리셨다. 모처럼 말 걸어 주셨는데-. 자기혐오에 빠지면서, 사치코님의 말을 머리 속에서 재생시켜 보고 날아오를 것 같아졌다.
'기뻤어, 라고 하셨었지? 게다가, 또 놀러 오라고?'
흥분해서, 좀전에 찾아왔던 수마(睡魔)같은 건 날아가 버렸다.
모처럼 보물선 접었는데. 빨리 자지 않으면, 꿈 꾸기 전에 아침이 와 버린다.
하지만, 나의 단순한 머리 속은, 사치코님의 목소리가 도돌이표마냥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이다.
  
    기뻤어
       또 놀러 오렴
    기뻤어
       또 놀러 오렴

 

어느 틈엔가 말은 큰 바다에서 파도치는 작은 물결이 되어, 나는 그 위에 뜬 커다란 보물선 위에 있었다.
  
그 해 내가 꾼 첫 꿈은, 배 위에서 변재천(힌두 여신 사라스바티가 일본에서 변형된 신으로, 칠복신 중 한명. 변설,음악, 재복, 지혜를 맡음 - 역자 주)님 코스프레를 한 사치코님이, 탑처럼 높이 쌓인 초밥 상자를 열심히 옮기고 계시는 것이었다.
도와 드려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대흑천(힌두 시바신이 불교에서 변형된 또다른 이름. 일본에서는 칠복신 중 한명으로, 두건을 쓰고 요술 방망이와 큰 자루를 가진 채 쌀섬 위에 올라 선복덕의 신 - 역자 주) 차림의 로사 기간티아가 타코야키니 군옥수수 같은 게 든 커다란 자루를 왼쪽 어깨에 메고 나타나, 웃으며 오른손에 든 요술방망이를 휘두르며 날 쫓아왔다. 요술방망이에서 나온 것은, 사탕이 잔뜩. 그게 비처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그치지 않고 내려왔다.

 

    긴긴 밤의

    아득히 잠자던 모두 눈 뜨고

    파도타는 배의

    소리도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