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님이 보고계셔 (マリア樣が見てる) 4권 [번외] 나카키요노 -3- 천적이 있는 풍경

천적이 있는 풍경(天敵のいる 風景)

 

 

    1

 

"도착했어"
어딜 어떻게 달려 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차는 사고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다. 알고 있는 기도란 기도를, 몇번이나 되풀이했는지 모르겠다.
"아직 천국이, ......아닌 것 같네요"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조심스레 창 밖을 내다본다. 그곳은 '한적한' 이라고 표현하는 게 딱 맞는 느낌의, 나무가 많은 주택가였다. 단순히 밋밋하다는 의미를 많이 포함해서 한적하다고 불리우는, 우리집 주위와는 전혀 다르다. 미적감각 같은 걸 계산해서 심어놓은 듯한 나무들이, 넓은 땅의 높은 담과 거리 외곽의 낙낙한 산책로를 채색하는 가로수로서 멋지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여기 어디에요?"
"그야, 오늘밤 잘 곳이지"
"그거, 정말이었나요"
로사 기간티아는 맨날 장난만 치니까, 합숙이라는 것도 농담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정말이고 말고. 잠깐만 기다려"
로사 기간티아는 혼자 차에서 내리더니, 눈 앞에 있는 인터폰을 울렸다.
'인터폰?'
당연하게도, 그곳은 한 채의 집인 것 같았다. 단지, 굉장히 위화감이 드는 건, 그 규모가 일반 서민인 자산의 허용범위를 넘어서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알기쉽게 말하자면, 우리 집에 비해 상당히 큰 것이다. 그것도, 말도 안 될 정도로.
그러고 보면 전화에서, 로사 기간티아의 아는 사람 집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큰 집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이 집 땅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차 안에서의 시계로는, 담장 끝을 확인할 수가 없을 정도. 주눅 마구마구, 다.
"기다렸지"
로사 기간티아가 다시 운전석에 타자, 동시에 정면의 문이 열렸다.
"굉장했"
문이 자동으로 열린 것 만으로 놀라운데, 그 앞에 펼쳐진 세계는, 무심코 침을 삼킬 정도로 초박력.
"여기, 학교라거나 병원 같은거 아니죠"
"하하하. 과연"
호탕하게 웃은 후, 로사 기간티아는 차를 몰며 '명패 있잖아' 하고 문기둥에 걸려 있는 훌륭한 명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걸 읽었다.
<오가사와라>
'에?'
잘못 본 건가 하고, 눈을 비빈 후 다시 한 번 본다.
오가사와라.
차는 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잔상이 확실히 뇌리에 문자를 떠오르게 한다.
"저, 저깃"
당황해서 입이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뻐끔뻐끔하고 입을 움직이며, 로사 기간티아의 팔에 달라붙어 운전을 멈추도록 부탁했다. 제스쳐를 섞어 가며.
"어때, 유미쨩. 좋아?"
"그럼, 역시 여기는 사치코님의-"
"딩동댕-"
"너무햇, 로사 기간티아 거짓말쟁잇. 사치코님 댁에 온다고 한마디도 안 하셨잖아요"
"했었어. 나 아는 사람 집이라고. 사치코는 나 아는 사람이잖아? 거짓말 아니잖아"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궤변이다. 날 놀라게 하려고, 일부러 얼버무려서 이야기 한 게 틀림없다.
"상관없잖아, 그런거 어떻든. 유미쨩, 사치코 만나고 싶었잖아"
"그, 그야 그렇지만요. 하지만, 그런게 아니......라"
그럼 뭐, 라고 물어 봤자. 나로선 대답할 수가 없다. 그저 이대로 사치코님 앞에 나서게 된다면, 역시 곤란하다. 아무래도 상황이 안 좋다. 그 뿐이었다.
"마음의 준비랄까"
"어째서-? 학교 가는 날은, 사치코랑 매일 만나잖아. 뭘, 굳어 있어. 릴랙스 릴랙스"
그 여유의 10분의 1이라도 나눠 받고 싶다. 로사 기간티아는 내 애원을 무시하고, 차를 느긋하게몰아간다. 문 안은 자그마한 숲처럼 되어 있지만, 부드럽게 구부러진 길 주위만 터널이나 아치처럼 튜브 형태로 공간이 열려 있었다.
"아무튼. 뭐 사치코네 부모님께 '딸을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러 가는 게 아니라구"
"부, 부모님!?"
생각도 안 해봤다. 사치코님의 집이라는 건, 당연히 가족이 계신다는 거고. 정월 2일부터 쳐들어간다니, 이렇게나 비상식적인 '동생'이 또 있을까.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로사 기간티아가 인터폰을 누른 시점에서, 이미 '자택방문'은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로사 기간티아, 원망할 거에요'
숲이 끝나고 시계가 열렸다. 영국풍 정원 안에, 저택 혹은 성成이라고 부르는게 좋을 듯한 건물이 나타난다.
"어디 보자, 오른쪽이랬던가"
로사 기간티아가 핸들을 꺾자, 주차장같은 게 나타났다. 같은, 이라는 건 다른 차가 서 있었기 때문이고, 그게 없었다면 뭔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합쳐서 스무대는 여유롭게 들어갈 정도로 넓디 넓은 공간이니. 넓어도 슈퍼 같은 곳의 주차장과 다른 건, 지붕이 확실히 달려있다는 점이다.
"뭔가, 안좋은 예감이 드는데"
먼저 온 손님의 반짝반짝하는 새빨간 오픈카를 보고, 로사 기간티아가 중얼거렸다.
"안좋은 예감, 이라뇨?"
"근거는 없지만, 좌악-하고 닭살이 돋거든. 저 차를 보고 있으니"
"하아?"
"아니, 저거에 어울리는 남자를 잠깐 상상해 버려서 말이지"
로사 기간티아는, 빨간 차에서 제일 먼 곳을 일부러 골라 주차했다. 빨강과 노랑. 이제 녹색 차만 있으면 신호등이 되는데, 서 있는 게 이 두 대뿐인 걸 보면, 여기는 손님 전용 주차공간인 것 같다.전에 봤던 검은 차는 보이지 않았다.
"오라이- 오라이-"
조수석에서 내려와 차를 유도하며, 나는 로사 기간티아가 말한 '저 차에 어울리는 남자' 라는 걸 상상해 보았다. 왠지 외견이 괜찮고, 자신에게 무지무지 자신이 있는, 겉멋 잔뜩 든 데다 나르시스트의 젊은 남자.
"아-앗!!"
"왜, 왜 그래, 유미쨩"
아직 주차에 익숙치 않은 로사 기간티아는 내 목소리에 반응해서, 브레이크를 밟은 후에 황급히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어딘가에 차를 부딧히거나, 긁히거나 할 뻔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 아직 오라이- 에요"
"......겁주지 마"
다시 제대로 차를 주차시키고, 로사 기간티아는 가슴을 누르며 비척비척 운전석에서 내려왔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면허증 딴 후 첫번째 운전이라 긴장한 모양이다. 듣자하니 차는 어머니 것이라고.
"혹시나, ......왕자님, 인가요"
"아아, 저 차 주인 말이야? 아마도, 은행나라 왕자님 아닐까나"
우리는 노점상에서 산 대량의 선물과 각자의 짐을 뒷좌석에서 꺼내고, 건물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정월이니까요 뭐. 사촌오빠니까요 뭐. 약혼자니까요 뭐."
나는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중얼거렸다. 예의 그가 사치코님의 집에 있다고 해서, 아무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라고.
"하지만, 유미쨩은 재미없는 걸요 뭐"
"하아"
하지만 재미있고 없고를 따질 입장이 아니니까, 내 경우엔.
"혹시, 그래서 부른 걸까나"
언제나 그렇지만. 로사 기간티아의 이야기는, 중간부분을 상당히 생략해 버리는 경향이 있으니까. 해설자가 없는 이상, 나는 스스로 물어서 들어내야 한다.
"불렀다뇨, 누가요?"
"사치코"
뭘 이제 와서, 하는 얼굴로 보다니 로사 기간티아. 자기는 다 알고 계실지도 모르지만, 전 조금 전에서야 겨우 상황이 파악되었을 뿐이니까요. 그것도 꽤나 대강대강.
"그럼, 사치코님이 부르신 건가요"
"그으래. 뭐라고 생각했어 그럼"
"로사 기간티아가 억지로 쳐들어온건가 하고"
정직하게 대답하자, 로사 기간티아는 '실례잖아' 하며 빈 왼손으로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연말에 정월 예정 물었더니, '괜찮으시면 놀러 오시지 않으시겠어요' 라면서. 굳이 오늘을 골랐어, 
사치코가"
로사 기간티아는 정말로 세 장미 패밀리를 모아서 새해맞이 가려고 생각했지만, 앞에서 말한 이유로 로사 키넨시스와 로사 페티다께 거절당하고(당연하다. 그 생각을 한 게 섣달 그믐날 오전이었다니까), 한때는 단념할까 했을 때 사치코님에게서 반가운 권유가 있었으니 날 데리고 왔다, 라는 거다.
"그럼, 전 안 부르신 게"
"왜? 유미쨩 이름 꺼냈더니, '데려오세요' 라고 했었어"
"정말요!?"
로사 기간티아의 말을 듣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너희들 말이야. 전혀 닮지 않았는데, 밀어붙이는 게 모자라는 점만은 닮았지. 저기 말이야, 양쪽 다 기다리기만 하면, 백년 지나도 그대로야"
잠깐 떠올랐나 싶더니, 단번에 지상으로 추락. 하지만. 백년 지나도 그대로-. 어지간히도 엄한 지적이시군요.
"그건 그렇고, 은행 왕자 이름이 뭐였더라"
로사 기간티아도 참, 벌써 존재 자체를 이름째 머리에서 지워버리시려는 건 아니겠지. 은행나라왕자님의 이름은, 말이죠. 그러니까.
"에 그러니까-"
어라, 안 나온다.
사치코님의 사촌오빠지만, 성이 '오가사와라'가 아니었던 것 만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아아, 요즘 사람 이름이 나오질 않는다. 또, '아'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 까나.
"뭐, 어찌되건 상관없지. 그런 녀석이야"
로사 기간티아는 정면 현관이라고 생각되는 커다란 문 앞에 서더니, 눈 앞에 있는 사슬을 당겨 초인종을 울렸다.
뭔가, 굉장해. 잘 보니, 건물 자체가 굉장히 앤티크. 분명히 외국 영화에서 밖에 볼 수 없을 듯한, 검은 정장을 딱 차려 입은 백발 섞인 초로의 신사가 맞으러 나오는 거 겠지. 집시, 가 아니라 집사던가 하는 사람.
곧 안에서 자물쇠를 여는 기색. 대문과는 달리, 이쪽은 수동인 모양이다.
"사토 님이시군요.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렸다. 그러나, 안에서 얼굴을 드러낸 사람은, 내가 상상하고 있던 '집사' 가 아니었다. 공통점이라고 하면 남자라는 점 뿐이고, 정장도 입지 않은데다 백발도 없다. 게다가, 본 적 있는 얼굴이 아닌가.
"에?"
"에?"
우리는 동시에 똑같은 소리를 냈다. 나와 로사 기간티아, 가 아니다. 나와, 문을 연 인물, 이다. 서로가, 거기 거울이라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킨 듯이 복잡한 표정으로 상대를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 있는 사람은 '거기 있어야 할 사람' 이 아니니까.
"유우키......?"
"유미......?"
나는 옆에 있는 로사 기간티아에게 대답을 구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깜짝쇼의 연장선은 아닌 듯하다. 로사 기간티아도, 눈을 반짝거리며 우리 남매를 번갈아 보고 있다.
"어떻게 된 거야"
중얼거리는 유우키의 뒤쪽 복도를, 천천히 키 큰 청년이 걸어온다.
"야, 어서 와요"
그 인물을 본 나는, 바로 그 때, 어제부터의 몽실몽실이 단번에 풀린 느낌이 들었다.
'카, 였구나!'
유우키의 연하장에 적혀 있던, 어딘가 본 적 있다고 생각했던 발송인 이름. 그건 눈 앞에 있는 키 큰 청년의 것이 틀림없다. -카 행,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뛰어넘어 버렸던 것 같다.
카 는 카시와기의 카.
카시와기. 카시와기 스구루.
나도 로사 기간티아도, 저기 있는 걸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은행왕자 즉 카시와기 스구루씨는. 언제나처럼 어디까지나 상쾌한 웃음을 띄우고, 자기 집인 양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동생의 어깨에 손을 얹고.

 

 

    2

 

"아아, 어서오세요. 로사 기간티아, 유미"
카시와기씨의 등장에서 약 10초 정도 지나, 사치코님이 기모노 차림으로 현관에 나타났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니. 오늘은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허겁지겁 코트를 벗고, 새해 인사를 했다. 하지만, 과자상자가 들어 있는 종이봉투와 오코노미야키 같은게 들어 있는 비닐봉지, 그리고 숄더백이 방해해서, 아무래도 스마트하게 되질않는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올해 처음으로 뵙는 사치코님은, 꽃이 피는 듯 미소지었다.
어두운 분홍색 바탕에 노란색 꽃문양(소문(小紋)이라고 하는 모양이다)의 기모노. 그 위에, 나비문양의 적갈색 겉옷이라는, 전에 일본화 개인전에 가실 때에 비해 화려함은 조금 떨어지는 차림이지만, 그게 평상복 느낌이 나서 굉장히 좋다. 살랑살랑하는 검은 머리를 비녀 하나만으로 모은, 소박한 머리 모양이 또 딱 맞다. 화장도 하지 않았는데, 굉장히 성숙해 보인다. 사치코님은 '이쪽으로' 라고 한 후, 앞장서서 복도를 걸어간다.
아아, 아무나 붙잡고 자랑하고 싶어. 이렇게 예쁜 사람이 내 언니야, 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다니고싶어. -라고, 우쭐대고 있을 때가 아니었지.
"어째서, 네가 여기 있는 거야"
걸어가며, 나는 유우키의 소매를 잡고 추궁했다. 누나로서 그리고 사치코님의 동생으로서, 여기서는 반드시 유우키에게 사정을 들어야 한다.
"어째서, 라니"
몰아붙이자, 유우키는 우물쭈물했다.
"어째서 여기가, 유우키의 '친구네 집'인 거야?"
"나도 모른다구.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뿐이고. 그게, 정말로 고바야시네 집에서 잘 예정이었단말이야. 그런데 중간에, 카시와기 선배한테 납치당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고바야시군과 카시와기씨가 유우키를 걸고 오락실에서 게임을 해서, 고바야시군이 졌다는 거였다. 하지만, 어째서 유우키가 상품이 되어야 하는 걸까.
"정말?"
애초에 카시와기씨랑 무슨 관계야, 라고 유우키 옆에 당연한 듯이 있는 그를 보자, 눈이 마주친 그 사람은 또다시 상큼하게 웃었다.
"후쿠자와라는 거, 드물지 않은 성이니까 몰랐어. 유미쨩이, 유키치의 누나였을 줄이야"
"유미쨩, 이라니 친한 척 부르지 말았으면 좋겠군. 카시와기씨"
로사 기간티아가 옆에서 카시와기씨에게 주의를 주었다.
"호오, 로사 기간티아에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나. 그녀는 삿쨩의 동생이잖아? 
삿쨩의 동생은, 나에게 있어서도 동생이나 마찬가지야"
"나는, 그 '삿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그건 어쩔 수 없어. 나는 삿쨩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부르고 있으니까"
로사 기간티아 왈 '동류'의 두 사람은, 천정이 높고 조금 어두운 복도에서, 보이지 않는 불꽃을 파직파직 튀겼다. 그걸 곁눈질하며, 나는 유우키에게 질문했다.
"너, 학교에서 '유키치' 라고 불리는 거야?"
"......묻지 말아 줘"
동생은 동생대로, 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어서오세요. 손님이 늘어나서 기뻐요"
한눈에 사치코님의 어머니라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꼭 닮은 여성이, 거실 의자에서 일어나 맞아주셨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랜만에 뵙네요, 사야코 고모님"
"어머나, 세이양. 잘 있었나요?"
"예. 덕분에"
로사 기간티아는 대 어른용 모드로 생글생글하며 대응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 사치코님의 어머니께.
"어머님, 소개 드리겠어요. 제 동생, 후쿠자와 유미에요"
"처,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은 초대해 주셔서......"
"어머, 귀여워라. 역시 사치코, 보는 눈 있구나"
섬세한 꽃문양이 들어간 올리브색 소문 위에, 진홍색 무늬가 들어간 겉옷으로, 이쪽은 눈에도 선명하다. 하지만 전혀 야하지 않고 오히려 품위있어 보이는 건, 역시 옛 귀족가문 태생이신 때문일까.
"나는 사야코(小笠原 淸子)라고 불러 주렴. 나도 유미쨩, 이라고 부를 테니까"
"옛"
당연한 듯이, 이번엔 로사 기간티아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카시와기씨에게 '쨩' 붙여서 불리우는 건 싫다. 사치코님의 어머니께라면 괜찮지만.
"그럼, 유미쨩. 오가사와라 가家는 매년 정월 일에 휴가야. 집안일을 해 주는 사람들도 없어서 충분히 대접은 못 하겠지만, 그 대신 신경써야 되는 남자분들도 안 계시니까 편하게 지내 주렴"
"그건 너무하시네요, 외숙모님. 그럼, 꼭 제가 온 게 폐가 되는 것 같잖아요. 할아버님이나 외삼촌이 안 계셔서 불안하실 거라고, 이렇게 후배를 데리고 경호원으로 왔는데"
카시와기씨가, 차를 나르며 말했다.
"어머, 미안해. 하지만 스구루는 다르지. 차를 끓여 주는 남자분이라면 언제든지 대환영"
"감사합니다"
만족스럽게 웃고 카시와기씨는 테이블 위에 일본차가 담긴 찻잔을 사람 수 대로 놓았다. 사치코님이, 나와 유우키가 따로따로 가져온 똑같은 과자를 과자접시에 담아 '지금 받은 거긴 하지만' 하고 내어 주셨다.
나는 로사 기간티아의 조수로, 노점에서 사 온 타코야키라던가 오코노미야키라던가 군옥수수 같은 걸 전자렌지에서 찡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치코님 집의 부엌은 굉장히 커서, 업소용의 커다란 오븐렌지 같은 것도 있었지만, 아무도 쓸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하나 더 있던 가정용 전자렌지를 몇번이나 풀가동시켜서 전부 데웠다.
"이런거, 처음 먹어 봐"
사야코 고모님은, 노점에서 사온 것들을 굉장히 기뻐하며 드셨다. 오가사와라 가의 사모님에게 있어서, 그건 거의 입에 대 볼 수 없는 별미였나 보다. 로사 기간티아는 그런 것까지 생각해서 사셨던 걸까. 그렇다면, 역시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건 그렇고, 뭐랄까'
신기하게 모여앉은 면면들이, 노점에서 산 선물을 먹고 있는 그림이라는 거, 위화감을 느끼는 건 나 뿐인 걸까.
시계는 오후 4시를 지난 참이었다.

 

 

    3

 

그 자리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그리고 정월이니까 하고 어쩌다 보니 백인일수(百人一首. 정초에 하는 일본 전통 놀이- 역자 주) 같은 게 시작되어 버려서, 분위기에 휩쓸리기 쉬운 나는 본분을 잊고 사치코님의 적인 카시와기씨 같은 사람과 함께 꽤 재미있게 놀아버린 것이다.
승부는, 장소를 화실로 옮겨 계속되었다. 새로 깐 다다미 냄새가, 콧구멍을 간지럽힌다. 멋진 상석(다다미를 한 단 높여 놓은 곳)에는, 정월 답게 후지산이 그려진 수묵화 족자와 송죽매의 꽃꽂이. 우리가 지금 있는 다다미 8장짜리 방은, 칸막이를 들어내면 두배로도 세배로도 커지는 구조다.
결과는, 우아한 놀이에 익숙하지 않은 후쿠자와 남매의 참패. 전통있는 오가사와라 일족과는, 역시 실력차가 너무 난다. 처음부터 승부의 결과는 명백했지만, 역시 지는 건 분하다.
"그럼 말이지. 팀 전으로 해서, 이번엔 트럼프로 할까"
한장 차이로 카시와기씨에게 진 로사 기간티아는, 설욕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듯 두말않고 동의한다.
"그건 좋지만, 팀은 어떻게"
"후쿠자와 남매, 오가사와라 집안으로 하면, 남는 게 나와 로사 기간티아가 되는데-"
"에-엣!?"
나와 유우키, 그리고 로사 기간티아가 동시에 불평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야 그렇다. 팀 전으로하는 건 핸디캡을 없애는 게 목적인데, 똑같은 급의 후쿠자와 남매로 팀을 짜서 어쩌려고. 애초에 로사 기간티아의 불만은, 또 다른 곳에 있는 모양이다. 팀을 나누기도 전에 내분 일으키고 있는 두 사람이라서야, 역시 같이 싸울 순 없겠지.
"과반수가 반대라서야 부결이구만"
아마, 그냥 한번 말 해 보고 싶었던 것 뿐이겠지. 카시와기씨는, 곧바로 그 제안을 집어 넣었다. 백인일수 카드를 상자에 집어넣고 있는 사치코님을 곁눈으로 보자, 그다지 누구랑 한 팀이 되건 상관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사야코 고모님도 마찬가지. 어른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나 같은건, 소리내서 말하진 않지만 사치코님이 카시와기씨와 팀이 된다거나 하면 싫다고 생각하고 있다. 로사 기간티아와 마찬가지로, 나 자신이 카시와기씨와 한 팀이 되는 것도 좀 사양하고싶고.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제멋대로 하고 싶어 하면 팀 같은건 애초에 나눌 수가 없다.
"나랑 고모님, 사치코랑 유미쨩, 남자 둘이 적당하지 않아?"
-라고, 로사 기간티아는 고마우신 제안을 해 주셨다. 기뻐한 건 카시와기씨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제법 풍류란 걸 알잖아. 유키치, 이리온"
자기 옆에 빈 공간을 만들고, 카시와기씨는 어딘가 기분이 좋다.
'......?'
카시와기씨는 동성애자라고 알고 있지만, 너구리 얼굴의 유우키라도 남자라는 것만으로 곁에 두고 싶은걸까. 나 자신이 남자 동성애자가 아니니까, 그 쪽 기분은 전혀 알 수가 없다. 굳이 말하라면, 유우키 쪽은 싫어하는 모양인데.
"언니, 제가 그쪽으로 갈까요"
"그러렴"
유우키가 빠진 곳에, 나는 재빨리 들어갔다. 로사 기간티아가 조금 사야코 고모님 옆으로 붙어서, 그렇게 정해진 페어대로 앉을 수 있었다.
"처음엔 뭐부터?"
플라스틱 카드를, 로사 기간티아가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섞는다.
"처음엔, 역시 할머니 뽑기잖아?"
사야코 고모님이 부드럽게 웃었다.
"유미, 너는 옆에서 카드를 뽑는 걸 맡도록 하렴"
"예에"
"잘 들어, 아무 생각말고 뽑아서, 이쪽으로 넘기는 거야. 들어 온 카드는 내가 관리할테니까"
스타트 시점에 사치코님은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뭐-야, 작전회의? 사이도 좋으셔라"
로사 기간티아가 놀리는 듯 웃었지만, 아무래도 그 '작전'이라는 게 잘 이해되지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할머니 뽑기, 라는 건 다분히 운에 좌우되는 게임 아닐까나. 카드를 뽑거나 뽑히거나 하면서, 같은 숫자가 두장이 된 만큼을 버려 간다는 단순한 게임.
하지만, 시작하고 보니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개인전으로 할 수 있는 게임을 굳이 2인 1조로 하다 보니, 각 팀에 한명분의 여유가 생긴다. 그걸 어떻게 활용하는가 하는 게 승부의 포인트라는 것이다.
'뭐, ......뭐야?'
각 팀이 카드를 부채 모양으로 펼친 순간, 카시와기씨가 물끄러미 내 얼굴을 봤다. 시계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우리 왼쪽에 있는 그들이 사치코님이 가지고 계신 카드를 뽑게 되어 있다. 신경이 쓰이면서도, 나는 사야코 고모님이 히나 인형처럼 펼치고 계신 트럼프 카드 중에 한장을 뽑았다.
'무심 무심'
그러나. 사치코님께 넘기는 중에 그 카드를 힐끔 보고, 무심코 '겟!' 하는 얼굴을 하고 말았다.
'조, 조커......'
조커라고 하면, 말할 것도 없이 '할머니'다. 첫번째부터 할머니를 뽑는 이 불운함. 그때, 카시와기씨의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유미쨩. 지금, 할머니 뽑았지?"
"앗"
내가 소리치자, 적일 터인 유우키와 로사 기간티아가 거의 동시에 '바보' 라고 말했다. 사치코님으로 말하자면 내 옆에서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할머니를 뽑았을 때의 반응은 물론이고, 그걸 지적당했을 때의 그 낭패한 반응이 더더욱 심했던 모양이다. 그래서야 '우리는 지금 조커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고 인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듣고 보니 그렇지만.
"생각없이, 란 게 이런 거 말씀이셨군요"
추욱하고 늘어진 내 어깨에, 사치코님은 '아직 이제 막 시작한 거니까 괜찮아' 라고 하시며 살짝 손을 올렸다. 또 한 가지 배웠다. 할머니 뽑기를 얕봐선 안된다. 할머니 뽑기는, 포커와도 통하는 어른의 게임인 것이다.
그 뒤, 나는 마음 속으로 '마리아님의 마음'을 부르며 기계적으로 카드를 뽑아 나갔다. 덕분에 운에 기대는 게임 전개가 되어서, 멋지게 맨 처음 손을 털 수 있었다. 어쩌면, 마리아님이 도와 주신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7장 늘어놓기나 다우트같은 두뇌전이 되자, 카시와기씨와 로사 기간티아가 굉장한 재능을 보였다.
"유미쨩, 잘 기억해 둬. 일곱장 늘어놓기에 강한 남자는, 절대로 성격 나쁘니까 말이야"
"미안하지만. 그렇다면, 다우트를 잘하는 여자는, 거짓말장이란 걸 증명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저렇게 말하면 이렇게 받아친다. 로사 기간티아와 카시와기씨는 그야말로 천적. 닮은 사람끼리, 반발하는 걸까.
"잠깐 쉬도록 할까요"
사야코 고모님의 한마디로, 둘러 앉았던 동그라미가 우르르 무너졌다. 편하게 있는 듯 하면서도, 다들 알게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나 보다.
백인일수 다음에 할머니 뽑기, 일곱장 늘어놓기, 다우트, 대빈민, 세븐 브릿지, 신경쇄약, 
페이지원으로 해 나가다 보니, 이미 오후 여덟시를 지나 있었다. 놀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건 굉장히 빠르다. 광고지 뒷면에 쓴 성적표를 보고, 이렇게나 했나 하고 놀랐을 정도.
"화장실은"
내가 일어서자,
"아, 그럼 안내하지"
로사 기간티아도 따라왔다. 잘 알고 있는 다른 사람 집. 내 손을 잡고,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간다.
"로사 기간티아, 전에도 오신 적 있으세요?"
사치코님의 어머니랑도 아는 사이 같고.
"그렇죠. 올해, 아니, 이제 작년 여름이 되나. 놀러 왔었어요. 로사 기간티아랑 같이 왔었지만"
"흐-응"
"재미 없어?"
멈춰서서, 로사 기간티아는 내 볼을 콕콕 찔렀다. 그다지 부루퉁하고 있지 않대니깐.
"제가 동생이 되기 전 일이니까 말이죠"
샘 낼 수도 없는 일이겠지, 하고. 그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친해지기 전의 사치코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역시 부럽다고 생각해 버리니까. 마음 속으로도 복잡한 거다.
"그래그래. 미래가 있는 젊은이가, 옛날 일 같은거 신경쓰면 못써"
로사 기간티아는 눈 앞의 갈색 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거기가 화장실이었던 모양이다. 안에는 개인실 하나만 있는 구조가 아닌 듯, 로사 기간티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함께 따라온다.
부잣집의 집이라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일반 서민과는 규모가 다른가보다. 지난달 사촌오빠 결혼식이 있었던 고급 호텔 화장실의 그야말로 미니어쳐판. 바닥은 폭신폭신한 융단이고, 세면대와는 따로 화장 코너가 있고, 귀여운 바구니에 핸드타올이 '부디 써 주세요' 하는 느낌으로 접혀 있다. 조명기구도 꽃 모양이라서, 굉장히 멋지다.
개인실은 세개. 모두 서양식으로, 각각이 우리집 화장실의 두배쯤 크다. 듣자하니 이건 손님용 화장실이고, 이거랑은 별도로 종업원용이라거나 가족용 등등 잔뜩 있다고 한다. 사치코님 방은 욕실, 화장실이 붙어있다고 하니까, 아예 호텔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나, 이 집.
"우리가 졸업하면 말이지, 자주자주 놀러 오면 되잖아"
용무를 마치고 손을 씻고 있자, 뒤늦게 나온 로사 기간티아가 거울 속의 나에게 이야기했다.
"예?"
"가능하면, 오늘처럼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안 계실 때가 좋겠지"
"저기,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질문하자, '잠깐만 있어 봐' 하며 손을 씻고, 내가 쓰고 있던 핸드타올의 젖지 않은 부분으로 닦으며, 로사 기간티아는 진지한 얼굴로 돌아봤다.
"오늘 말이지. 오가사와라 가의 남자들, 밖에 거느리고 있는 여자한테 가 있는 거야"
"엣!?"
"이건 전에도 이야기 했었지. 이 집안은 조금 특수해서, 남자들은 본가 외에도 몇군데나 다른 집을 가지고 있어. 정월 초하루엔 가족끼리 꽤 호화로운 신년회 열잖아? 정월 2일이랑 3일은, 휴양일이라고 해서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휴가를 주는 거야. 그리고, 할아버지랑 아버지는 2호씨네 집에 가지. 아니, 반대일까나. 할아버지들이 없으니까, 종업원들이 쉴 수 있는 건가. 
뭐어, 어느 쪽이건 상관없지만"
"그럼, 3일은 3호씨, 4일은 4호씨네 집에......"
그다지 웃기려고 한 건 아니지만, 내 입을 통해 나온 말은 로사 기간티아에겐 대단히 잘 먹혔다.
"세 사람째 네 사람째를 그렇게 부른다는 사례는 들은 적이 없는데에. 하지만, 이 집 남자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있겠지. 4일은 회사 중역들을 불러서 회식이 있다고 하니까, 그때까지는 돌아오겠지"
"묘하게 잘 아시네요"
"질투나?"
"......조금"
내가 고개를 숙이자, 로사 기간티아는 씨익- 하고 웃는다.
"사람에겐 역할이라는 게 있는 거야. 동생인 너에게, 그런 약한 부분은 쉽게 보일 수 없는 거잖아? 애초에, 나한테도 사치코는 약한 모습 보이지 않지만 말이지"
"그렇, 어떻게"
"사치코의 언니는 내 친구니까"
"로사 키넨시스......!"
당연한 거지만, 사치코님은 로사 키넨시스 앞에선 동생이라는 존재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고민거리 같은게 있을 때 맨 먼저 언니께 상담하는 건 당연한 거고-.
"응. 그녀한테 들었어. 사치코도 그건 알고 있으니까, 괜찮지만"
"하아"
"결국 로사 키넨시스는, 날 믿어주고있다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해서, 날 잘 이용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난 그녀 생각대로 행동해버리고 있는 거지"
"에 그"
어쩌지, 또 무슨 얘길해야할 지 알 수 없어졌다.
"그러니까, 유미쨩을 데리고 시끌벅적하는게 목적인 거야.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다른 여자네 집에 가 있는 동안, 어머니와 둘이서 쓸쓸하게 보낸다니 좀 싫잖아. 그래서, 여기선 확- 하고 시끌벅적하게 해서, 싫은 걸 잊어버리자는 거"
"아, ......뭐야"
그럼, 다같이 노점에서 사 온 음식 먹으면서 차 마시거나, 카드게임 대회하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의문을 갖지않아도 되는 거였구나.
"예상외의 인물이 튀어 들어와서, 예상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결과가 괜찮았으니 뭐"
"죄송합니다"
예상외의 인물이라면, 물론 유우키 말이겠지. 데려온 건 카시와기씨지만, 역시 누나인 이상 아무래도 책임은 느끼게 된다.
"아니, 카시와기의 의도도 그거였을지 몰라"
"떠들썩하게, 라는 거요?"
"그래. 게다가 유미쨩의 동생은, 유미쨩이랑 비슷해서 굉장히 친해지기 쉬운 타입이니까 말이지. 과연 사촌오빠, 라고나 할까? 사치코가 받아들이기 쉬운 타입을 잘 알고 있어"
"하아"
조금은 다시 봤지만, 그래도 분명히 카시와기씨는 영원히 좋아할 수 없을 거라고. 로사 기간티아는 복도로 나가는 문 손잡이를 잡고, 코에 주름을 만들며 웃었다.

 

 

    4

 

화실에 돌아오자 어째선지 아무도 없어서, 다들 어디 간 걸 까나- 하고 찾으러 가 보니 맨 처음 지나왔던 거실에서 사야코 고모님을 발견했다.
"앗. 두사람 다, 초밥 먹을 수 있지"
고모님은 어째선지 그 주위를 왔다갔다 하고 계셨지만, 나와 로사 기간티아를 보시고는 발을 멈추고 물었다.
"예에"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물어보신 건지, 아니면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확인하신 건지 알지 못한 채, 두사람은 어영부영 끄덕인다. 물론 초밥은 좋아하지만, 트럼프 하면서 과자 먹거나 했었으니까 그다지 배고프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건, 로사 기간티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어머니, 대체 얼마나 주문하신 거에요?"
현관 쪽에서, 사치코님이 옻칠한 나무상자를 세개 쌓아서 가져오셨다. 사야코 고모님은, 턱에 둘째 손가락을 받치고 위를 올려보며 생각하는 포즈.
"에 그러니까... 8인분이었나"
대답을 듣고, 사치코님의 눈썹이 한순간 꿈틀 하고 위아래로 움직였다.
"여기 몇 사람 있는지 아세요? 여섯명이에요"
그야 그렇지, 하고. 나는, 마음 속으로 사치코님을 지지. 여섯명밖에 없는데 8인분 주문한다는 건, 대체 어떻게 계산하신 걸까.
"하지만, 젊은 남자애들은 많이 먹겠지 해서"
"쉴 새 없이 먹고 있었는데, 그렇게나 배에 들어갈 리 없잖아요?"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는걸. 싫다, 사치코두 참. 그렇게까지 야단칠 거 없잖아"
사야코 고모님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 삐진 듯한 표정으로, 사치코님을 올려봤다.
'......귀엽다'
꽤 연상인 여성께 실례지만, 사야코 고모님은 무심코 껴안고 싶어질 정도로 귀엽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고, 품위가 있고. 히나 인형님처럼 방에 장식해 두고, 계속 바라보고 싶다는 느낌. 모녀지간이라 얼굴 같은 부분은 꼭 닮았는데, 분위기는 사치코님과 전혀 다르다. 아, 하지만 사치코님도 로사 키넨시스 앞에서는 삐지거나 하지.
"그보다 사치코. 찻주전자랑 차상자, 어디있는지 알아?"
"차라면, 아까 스구루씨가 끓였었잖아요?"
"스구루가 안 보여서 묻는 거야. 역시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이 다들 쉬어버리면, 여러모로 불편하구나"
진심에서 나온 말 같지만, 가정부라곤 없는 보통 가정에서 나고 자란 우리 서민으로선, 평생 말할 수 없는 대사일 거다.
'사치코님보다 더, 태어나면서부터 공주님이시겠지'
옛 귀족 가문에 태어나서, 재벌 집안에 시집와서, 고용인들도 잔뜩 있는 이런 큰 집의 사모님이라면, 자기 손으로 차를 끓일 필요 같은건 거의 없을 지도 모른다.
"티 포트 있는 곳은 알고 있는데. 저기, 사치코. 티 포트 안에 찻잎 넣으면 안되는 걸까? 하지만,
차상자도 행방불명이었어. ......저기, 분명히 연말 선물로 차 받았었지. 그거, 어디있었을까"
"..."
생각대로. 사야코 고모님은, 최근 몇년이나 차를 끓이지 않으셨다.
"사야코 고모님, 차라면 제가"
보다 못해, 로사 기간티아가 나섰다. 실은 나도 '말해야 할까, 어쩔까' 하고 망설이던 참이었다. 좀 전에 카시와기씨가 웨건 위에서 차를 끓이고 있었으니까, 아마 차상자는 웨건 위에 있을 거다. 백인일수를 시작하기 전에 먹었던 것들을 다들 나눠서 정리하고, 기왕 하는 거 설거지도 해뒀으니까, 찻주전자도 식기건조기 안에 들어있지 않을까나.
"그럼, 유미. 이쪽 도와 줘"
"예"
나는, 사치코님과 함께 초밥을 날랐다. 현관에는 검은 나무상자 다섯개가 찬합처럼 쌓여 있다. 정말로 8인분 주만하셨구나, 고모님은. 하지만, 초밥통이 아니라 네모난 용기에 들어 있는 초밥이란 거 처음 봤다.
내가 상자를 세개 들고 걷기 시작하자, 사치코님은 '잠깐 기다려' 하고 불러세운 후 하나를 덜어냈다.
"아, 언니. 제가 세개 들께요"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앞서 걸어 간다.
"유미"
다섯발 걸어간 후, 갑자기 사치코님은 멈춰섰다.
"예"
그래서 나도, 그에 맞춰 멈춰선다.
"......고마워"
"예?"
나는 무엇에 대해서 고맙다고 하시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묘하게 높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하지만 언니는 평소처럼,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곧장 등을 돌려 버리시는 거다.
"언니이"
초밥 상자는, 언니 쪽이 많이 가지고 가 버리셨는데. 어째서, 고맙다는 말을 듣는 걸까. 뒤에 남아 어두운 복도에 멀뚱 서서,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왠지 가슴이 뜨거워졌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언니가, 한발 나서서 말씀해 주신 것 같이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나는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예' 하고 대답하고, 언니 뒤를 따라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