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그 날 - 정민경, 518 문학상 청소년 백일장 대상 수상

그 날 - 정민경­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정민경 18세, 5.18 문학상 청소년 백일장 대상 수상 (2007년)

5.18 민중항쟁 서울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제3회 서울청소년 백일장 및 사생대회’ 에서 대상을 탄 한 고등학생의 작품이 네티즌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청소년 백일장 및 사생대회는 청소년들이 5.18민주화 운동을 되돌아보고 민주주의, 공동체 정신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한다는 취지로 열렸다.
응모분야는 백일장과 사생대회로 나뉘는데 네티즌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백일장 운문 부문의 대상 작품이다. 대상을 탄 ‘그 날’은 경기여자고등학교 3학년 정민경(18) 학생이 작성한 산문형식의 시다.

‘그 날’은 작품 속 화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구수한 사투리로 시작한다고 해서 ‘그 날’이 정겨운 시 일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 날’ 속 화자는 총을 든 사람에게 쫓기던 학생의 도움 요청을 들어주지 않고 집에 돌아온 뒤 괴로워한다. ‘그 날’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인의 총부리에 쫓기던 학생과 목숨은 건졌지만 그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는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들어 있다. 짤막한 글이지만 마치 자신이 직접 체험한 것처럼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해 잘 알지 못하는 고3 여학생이 지은 글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해당 작품은 여러 커뮤니티 게시판에 게재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게시물을 본 네티즌은 ‘소름이 돋는다’며 어린 학생의 작문 실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사투리를 사용해 현장감을 살린 아이디어도 매우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몇몇 네티즌은 ‘천재’라며 정민경 학생이 문학을 전공했으면 좋겠다는 댓글도 남겼다.

5.18 민주화 운동은 광주를 비롯한 전라남도 시민들이 전두환 군사정권에 반대하며 벌인 민주화 운동이다. 당시 계엄군에 의해 죄 없는 많은 시민이 죽었다. 5.18 민주화 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큰 상처. 5.18민주화운동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비롯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많다며 안타까워하는 네티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