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사 -데 크레센초의 친구들- 젠나로 벨라비스타, 변호사 타누치

젠나로 벨라비스타

 

우리는 누구나 두 개의 서로 다른 충동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사랑을 갈구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욕구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고 하는 충동이 그것이다.

 

 

고등학교 교사였다가 은퇴한 벨라비스타 선생(나의 책 『벨라비스타는 이렇게 말하였다』 의 주인공인데, 사랑과 자유에 대한 벨라비스타의 주장이 이 책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을 그리스 철학사에 끼워 넣는다 해서 큰 무리가 되지는 않으리라. 이 양반의 사상이 엠페도클레스의 우주론이나 에피쿠로스 선생의 윤리론과 거의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간단하게나마 선생에 대한 소개를 했으니 그의 지론 중 우주의 구조론에 대한 이야기를 바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벨라비스타 선생의 이론 중에서 나폴리 종족의 윤리관, 다시 말해 '나폴리 정신'에 대해서는 제2권에서 다루기로 한다.

 

벨라비스타 선생에 따르면, '아르케', 곧 세상을 지을 때 사용된 기본재는 에너지이다. 에너지를 움직이는 것은 두 가지 능동 원리인데 선생은 그것을 '사랑'과 '자유'라고 부른다. 이미 앞서 이야기한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증오'와는 달리, 벨라비스타 선생이 말하는 두 힘은 서로 적대적이기는 하지만 둘 다 긍정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생명을 불어넣는 힘을 지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엠페도클레스에 대해 퍼붓던 비평이 벨라비스타 선생 앞에서 효력을 잃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슷한 것끼리를 결합시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분리시킨다는 사랑의 이율배반적인 성향에 대한 비판이 더 이상 쓸모 없게 된다는 말이다.

벨라비스타 선생에 따르면 에너지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형태로 자연 속에 스며들어 있다. 물질 본연의 잠재력과 폭발력이라는 두 형태가 그것인데 원자 내부의 양성자와 중성자 사이에 사랑이 더 크게 영향력을 미치는가 아니면 자유가 더 크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라 그 물질의 형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벨라비스타 선생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천체 물리학의 몇 가지 개념을 먼저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머나먼 1596년, 이상한 형태를 보이는 별 하나가 발견되었다. 일정 기간 밝게 빛나다가 그 기간이 지나면 한동안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빛이 약해지는 습성을 가진 것으로 지구로부터 163광년 떨어진 고래좌의 별이었다. 당시 이런 현상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이름조차 놀라움과 경이라는 의미의 '미라'라고 명명될 정도였다. 이 때 발견되었던 '미라 게티' 같은 별은 오늘 날 4천 566개나 발견되었는데 이런 별들을 변광성(變光星; 케페이드)이라고 부른다. 변광성은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있는데 주기에 따라 별 자체의 크기가 커졌다 작아졌다 맥동(脈動)하고 그에 따라 별의 밝기도 바뀐다. 예를 들면 미라의 주기는 331일이다.

변광성의 주기는 이 별을 구성하고 있는 가스 덩어리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가스 덩어리가 안으로 오그라들면서 수축할 때에는 내부의 온도가 엄청나게 높아지고, 높아진 열 때문에 다시 폭발적인 팽창을 시작하게 된다. 팽창을 하면서 크기가 점점 커짐에 따라 온도가 떨어져 다시 수축을 하게 되는 현상을 반복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변광성은 두 개의 극한, 곧 극대와 극소 사이에서 수없는 반복을 하는 셈이다. 이런 반복 과정 중 때로는 균형이 깨져서 거대한 원자폭탄처럼 폭발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밀도가 높게 쪼그라들기도 한다. 원자폭탄처럼 촉발하는 경우를 신성(新星)이라고 하는데 보통의 경우보다 특별히 밝고 격렬한 경우는 초신성(超新星)이라고 한다.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은 어둡게 보이던 하늘에서 갑자기 새로운 별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엄청난 밀도로 수축하는 경우를 블랙홀이라고 하는데, 블랙홀은 밀도가 무한대로 높고, 따라서 끌어당기는 힘이 무한대여서 빛조차 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 있는 곳이다.

벨라비스타 선생은 이와 같이 물질의 수축과 팽창을 일어나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심사숙고한 결과, 온 우주는 사랑과 자유라는 두 요인의 원심력과 구심력의 지배 하에 놓여 있다는 가정에 도달한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원자 내부의 양성자와 중성자는 서로 결합하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동시에 원자 외부로 탈출하려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 어떤 물질이든 수십 수백 억 개의 원자가 차곡차곡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쉬운 예로 재떨이를 보기로 하자. 비록 값 나가지 않는 재떨이라 하더라도 그 내부에 있는 모든 원자들의 응집력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못지 않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모든 물질의 내부에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겨울 잠 자는 동물처럼 잠 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부의 누군가가 그 깊은 잠을 깨울 수만 있다면 물질은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인슈타인의 저 유명한 공식 E = mc² 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재떨이의 질량 m과 이 재떨이로부터 나올 수 있는 에너지 E 사이에 일정한 비례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정리한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이론은 아마 르메트르 수도원장의 빅뱅 이론일 것이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온 우주는 '일렘'이라고 하는 초고밀도의 공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태초라는 말의 의미가 얼마나 모호한 것인지, 또 일렘이라는 이름을 그 태초에 누가 붙였는지를 굳이 따지자면 얘기가 한없이 복잡해질 테니 조용히 접어 두기로 하자. 어쨌거나 이 공의 내부 온도와 밀도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울 만큼 높았다. 그런데 르메트르의 말에 따르면 어떤 한 순간 이 공이 폭발을 해서 우주가 팽창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폭발이라는 말의 의미를 주의해서 알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보통 폭발이라고 하면 하나의 중심으로부터 주위의 공간으로 갑자기 퍼져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우주 대폭발 당시의 폭발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주 어느 구석에 있는 것이든 모든 부분들이 서로를 격렬하게 밀어내는 것이라서 중앙으로부터 주위의 공간으로 확산되는 폭발이 아니라 모든 지점으로부터 모든 방향으로의 폭발, 또는 모든 지점의 동시 대폭발이었다.

 

엠페도클레스와 마찬가지로 벨라비스타 선생도 태초에 우주를 지배하던 것은 사랑이었는데 자유가 주위를 맴돌며 물질의 응집력을 파괴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이 두 개의 엄청난 세력의 통제 아래 있던 일렘은 다른 여느 별과 마찬가지로 맥동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유가 사랑의 저항을 무너뜨려 모든 입자 부분들이 폭발을 했다는 것이다. 대폭발이 있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50억 년 전 일이었는데, 그 폭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확인하고 싶으면 분광기를 통해 은하계들을 바라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모든 은하계들이 임의의 어떤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즉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천체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지속적인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고 명확히 밝혀 주고 있다.

 

물질 안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사랑과 자유 사이의 갈등은 인간의 심성 안에도 존재한다. 벨라비스타 선생에 따르면 우리는 누구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충동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데, 첫 번째는 사랑을 갈구하는 성향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고 하는 충동이다. 하지만 인간의 심성은 매우 불안정하기 때문에 때로는 고독을 고통스러워하다가도 때로는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성가시게 느끼기도 한다. 그는 교통 체증 때문에 길거리에 꽉 막혀 있을 때에는 다른 운전자들에 대해 이유 없는 적의를 품는 것이 인간이지만, 동시에 배를 타고 여러 시간 넓은 바다를 지나다가 수평선 위에 나타난 다른 배를 발견하면 반갑게 손을 흔드는 인간의 마음을 예로 든다.

벨라비스타는 이런 두 가지 유형을 사랑의 인간과 자유의 인간이라고 정의했다. 두 개의 충동 중 어느 충동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가에 따라 사람을 분류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아가 각각의 민족들도 그 성향에 따라 이렇게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프라이버시라는 말을 만들어 낸 영국 민족은 당연히 자유의 민족일 터이고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나폴리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사랑의 민족에 분류될 수 있으리라.

 

벨라비스타 이론의 독창성은 사랑과 자유를 좌표축에 올려 놓을 때 서로 반대되는 힘이 아니라 수직으로 만나는 두 개의 긍정적인 축 위에 표시된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해서 두 가지 성향이 모두 다 긍정적인 성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 식의 좌표축(┼)을 그리고 오른쪽의 가로축을 사랑의 축이라고 하고 위쪽의 세로축을 자유의 축이라고 한다면 그 사이에 있는 모든 P점들은 인간의 성향을 나타내는 점이 된다. 사랑을 추구하는 경향과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어떤 비율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나타내는 점이 된다는 것이다.

 

　　자유

증오 ┼ 사랑

　　권력

 

위 좌표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향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알면 정확한 인생의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의 인간형에 속하는 사람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 식물에게 물이 필요하듯이 그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은 그 사람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자유의 인간형에 속하는 사람은 반대로 자신의 생활 공간을 성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압박이 있다고 생각하면 최소한의 마음의 평화도 누릴 수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자유란 넓은 공기와 광활한 수평,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을 추구하는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이 좌표축을 보면 축에 의해 나누어지는 영역은 모두 네 개인데 각 영역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영역(자유└ 사랑)을 살펴보자. '현자의 영역'이라고 불리는 이 구역은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자신의 인격 안에 사랑과 자유의 충동을 동시에 키워 나가는 사람들이 표시되는 영역인 것이다. 다시 말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란 마음과 정신의 충동이 균형을 이룬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중용의 오솔길' 주변에 표시되는 사람이다. 이들은 사랑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억압적이지 않은 사람들이다. 행여 이런 사람을 발견하거든 절대로 놓치지 말라.

 

두 번째 영역(권력┌ 사랑)은 '교황의 영역'인데 사랑과 권력을 동시에 지닌 사람을 나타내는 영역이다. 이 영역에 속하는 사람으로는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남편을 소유하고자 하는 새신부들이야말로 이 영역의 전형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질투심이 많은 남자들이나 구식 생각을 가진 기업가들도 이 영역에 속한다. 봉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도 노동자를 대하는 마음만큼은 가상할 정도로 애틋한 그런 류의 사장들 말이다. 이 영역이 교황의 영역으로 불리는 까닭은 로마 교황청의 특성이 바로 사랑과 권력으로 정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대 교황들이 모두 이 영역에 속한다는 것은 아니다.

벨라비스타 선생의 의견으로는 요한 바오로 2세인 보이티와 교황*이 이 영역에 속할 것이라고 하는데, 요한 23세 교황*의 경우에는 이 영역이라기보다는 현자의 영역에 속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자유의 축보다는 사랑의 축에 더 가까운 곳이 그의 자리이리라. 알렉산데르 6세*나 보니파시오 8세*처럼 그도 저도 아닌 교황들도 있다. 엄청난 권력을 가진 교황으로 작은 문제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유형의 교황들이기 때문이다. 

 

*본명이 카를 보이티와(Karol Wojtyla, 1920~)인 그는 폴란드 출신의 교황으로 1978년 10월 16일에 선출되어 10월 22일 즉위하였다.

*본명이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Angelo Giuseppe Roncalli, 1881~1963)인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 주재 교황 대사, 베네치아 추기경 등을 거쳐 1958년 교황에 선출되었다. 가톨릭 교회의 현대화와 쇄신을 이룩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연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신자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 소외 받는 사람들로부터도 사랑 받은 소박한 성품으로 유명하다.

*알렉산데르 6세(1431~1508)는 세속적이고 야심에 가득 찬 교황으로 교회의 영적인 재산에 소홀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이 발전하는 환경을 제공했다.

*보니파시오 8세(1235~1303)는 서유럽, 특히 프랑스의 강력한 신흥 군주들로부터 교황의 권위가 미치는 범위를 둘러싸고 거센 도전을 받았다. 교회 역사 상 처음으로 1300년을 희년(希年)으로 선포해 최초의 성년(聖年)으로 삼은 것이라든가 교회법 대전의 일부를 발행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변화된 상황을 잘 읽지 못했고 또 급한 성격 때문에 경솔한 행동을 많이 한 것으로 비판 받고 있다.

 

벨라비스타 선생은 이들을 그 다음의 영역(증오 ┐권력)에 넣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증오와 권력을 공유하는 '폭군의 영역'이다. 이 영역의 중간선을 차지한 인물로는 히틀러와 스탈린,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 등이 있다. 그러나 악마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악마는 증오의 화신이므로, 증오를 나타내는 왼쪽 축의 가장 왼쪽에 자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솔리니 역시 중간선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파시즘의 창시자인 그는 권력의 축으로 더 가까이 가 있을 것이다.

 

*본명은 가이우스 카이사르(Gaius Caesar, 12~41). 군대의 지휘권을 황제의 군통수권 아래에 독점케 하여 황제의 권한을 강화했다. 즉위 후 7개월 동안 병을 앓고 난 다음 반역 재판을 열어 몹시 잔인한 판결을 내렸으며 전제 정치를 지향하는 난폭한 행동과 변덕스러운 기질을 드러냈다.

 

마지막의 영역(증오 ┘자유)인 '반항아의 영역'은 얼핏 서로 반대되는 증오와 자유가 섞여 있는 곳이다. 어쩌면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영역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베두인 아랍 게릴라들을 생각해 보면 증오와 자유가 어떻게 하나의 폭발물 안에 공존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재가 있는 곳이면 자유에 대한 갈망과, 증오와 폭동에 대한 유혹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적군파나 자유롭고 행복이 넘치는 이상향을 그리는 무정부주의자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벨라비스타 선생은 극단주의자들이야말로 거의 언제나 이러한 경향을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이론에 대한 소개를 끝내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의 성격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변심했다든가 참기 어려운 불의, 때로는 가까운 친구가 2주 이상 우리 집에 빌붙어 살려고 할 때에도 우리의 심성을 나타내는 P점은 빠른 속도로 다른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마음 상태는 그리 쉽사리 변화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의 평상심을 나타내는 좌표가 주로 맴도는 일정 지역이 존재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벨라비스타 선생의 좌표축은 우리의 행동 성향을 분석해 보려는 기하학적인 시도일 뿐이라는 데에 주의해야 한다. 인간의 심리 상태가 사랑과 자유라는 두 개의 충동에 의해서만 좌우된다고 단순화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마음은 도형이 아니라 개념적인 심상이기에 벨라비스타 선생의 방법은 참으로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각 개인의 특성을 나타내는 변수를 2차원이 아니라 n이라는 부정수의 차원으로 확대하기만 한다면 시기심이라든가 경쟁심, 성욕, 식욕 등이 그 나름의 축으로 표현될 것이고 각 사람의 성향은 그런 요인들의 조합에 의해 n차원 상의 하나의 점으로 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벨라비스타 선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n차원의 공간을 발전시켜 신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까지 한다. 신은 인간 능력의 극대치를 소유한 존재, 곧 전지전능한 존재이므로 신을 나타내는 지점은 모든 좌표축들의 무한대 위의 점들로 이루어질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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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타누치

 

법이란 마치 꼭 끼는 구두 같은 것이다.

구두에 발을 끼워 넣기 위해서는 구두칼이 필요하다.

 

 

아르만도, 승소는 우리 것이니

용기를 잃지 말거라.

적들에게 포르치오 변호사가 있다면

우리에겐 마르치아노 변호사가 있지 않니?

 

이것은 로코 칼디에리의 시 「나폴리의 한 어머니」에 나오는 것으로 나폴리의 한 어머니가 죄수들을 호송하는 차를 따라가며 부르짖는 절규이다.

조반니 포르치오와 젠나로 마르치아노는 20세기 초 나폴리 법조계에서 이름을 날린 변호사들이다. 당시 형사 재판은 사람들의 큰 관심거리였다. 요새 사람들이 연속극을 보려고 시간 맞춰 텔레비전 앞에 다가앉듯이 그 때 사람들은 시간 맞춰 법정으로 향했다. 그리고 "포르치오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한대!" 라는 말이 들리면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전형적인 치정 사건이었던 '베네치아의 미녀' 재판이 열렸을 때, 온 나폴리 시민들은 열광했다. 안토니에타 카툴로라고 하는 미혼모가 코무날레 저택에서 자신을 유혹한 남자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변호를 맡은 사람은 알프레도 카타파노였는데 그는 이렇게 변론의 끝을 맺었다.

"폭력과 속임수와 사기로 피해 입은 모든 여성들의 이름으로 그녀를 놓아 주십시오. 오로지 사랑 때문에 남자의 거짓된 선의와 성실을 믿은 여성의 이름으로, 비참과 배고픔에 내팽개쳐진, 그러나 사랑으로 생명을 낳고 자식을 보호함으로써 새로이 일어서서 용기를 잃지 않는 모든 여성의 이름으로 그녀를 풀어 주십시오."

베네치아의 미녀는 석방되었고 온 나폴리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백여 명의 여자들이 승리의 합창을 부르며 카타파노 변호사를 에워싸고 행진을 했다.

 

오, 알프레도 카타파노,

당신이 이겼군요.

수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당신께 박수를 칠 거예요.

 

나폴리 법원은 서기 1000년 경 굴리엘모 2세에 의해 지어진 저 악명 높은 카푸아노 성의 중세식 대저택에 들어 있다. 이 건물은 애초에 성곽으로 지은 탓에 뒤에는 왕궁으로 쓰이다가 개인 소유로 넘어갔고, 스페인 톨레도 출신의 돈 페드로 총독 당시에 감옥 겸 법정으로 자리를 굳혔다. 주변에 주차한 자동차만 빼면 오래 된 성곽 주변의 풍경은 스페인 총독 당시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우중충한 건물이 주변의 경관을 무겁게 압도하고 있는 모습이 그렇고, 거리와 카페의 모습도 그렇다. 법조계 인사며 행상인, 할 일 없는 사람, 가석방 된 피의자, 죄인 호송차를 기다리는 죄수의 친지들, 남의 호주머니를 실례하려고 대상을 고르는 사람 등 온갖 사람들이 섞여 흥청거리는 모습도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고, 인도를 반쯤 잡아먹은 행상인들이 늘어놓은 물건들이 돈벌이 하려는 상품 치고는 너무나 값싼 물건들이라는 점 역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자동차 소리까지 겹쳐 그 시끌벅적한 포르타 카푸아나 근처의 거리에 솟아 있는 법정은 오늘도 변함 없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삼키고 뱉기를 되풀이한다. 하지만 대부분 법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날씨도 화창한데 그런 법에 걸리다니 재수 옴 붙은 거지.'

 

하지만 지금부터 얘기하려고 하는, 카스텔 카푸아노의 그 넓은 홀을 가득 메운 변호사 양반들이 모두 다 진짜 법조계의 어른 양반은 아니다. "변호사 양반!" 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실제로 다섯 부류로 구분된다. 목청 큰 변호사, 보통 변호사, 팔리에타, 굼벵이, 그리고 견습 젊은이.

목청 큰 변호사들은 법조계의 역사에 나름의 족적을 남긴 변호사들이다. 니콜라 아모레, 엔리코 페시나, 레오폴도 타란티니 등은 19세기를 빛낸 변호사들이고 젠나로 마르치아노, 조반니 포르치오, 엔리코 데 니콜라, 알프레도 데 마르시코 등은 20세기를 빛낸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나름의 성격과 언변으로 독특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치아노는 격정적이었고, 데 마르시코는 서정적이었고, 데 니콜라는 차갑고 예리했다.

언젠가 유명한 나폴리의 형사 전문 변호사 가에타노 만프레디는 다소 과장된 어조로 이렇게 변론을 마쳤다.

"법정의 복도에서 내가 이 소송에 졌다고 수군거린다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추락해야겠지요. 그러나 본인은 부상 당한 독수리처럼 날개를 활짝 펴고 태양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추락할 것입니다."

그러자 빈정거리기 잘하는 것으로 이름 난 상대편의 카를로 피요란테 변호사가 우레 같은 소리로 반박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그대가 추락한다는 사실일 따름이오. 추락하는 장소가 어디가 되건 그건 그대가 알아서 결정하시오!"

 

굼벵이들 중에는 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다. 법무와 관련된 일을 하기도 하고, 여권 수속도 해 주고, 자동차 면허증 갱신에, 과태료 납부 대행 등 별별 것을 다 한다. 굼벵이라는 별명이 붙은 까닭은 적당하다 싶은 고객을 만나면 최대한 일을 끌어서 조금이라도 더 돈을 뜯어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견습 젊은이들은 실제로 젊은이가 아니다. 변호사들의 일을 도와주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벌써 몇 십 년 쯤 그 방면에서 잔뼈가 굵은 몸이라 대학은 다니지 않았어도 자신들이 모시는 변호사 양반들보다 법조문을 더 잘 아는 어른들이시다.

 

'팔리에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나폴리의 역사와 더불어 그 맥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팔리에타들이 나폴리에 등장한 것은 17세기 경의 일이었다. 카밀로 구르고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제 같기도 하고 기사 같기도 한 이들은 배가 불룩 튀어나온 우스꽝스런 모습이었다. 견사로 짠 바지와 번쩍거리는 금속 장식을 단 커다란 구두, 사라카라고 불리는 얇은 옷에, 팔리에타라고 불리는 맥고 모자를 목에 걸고 다녔는데 맥고 모자는 검은 비단과 짚을 섞어서 짠 널따란 채양이 달린 모자였다. 거기다 통상적으로 허리에는 칼을 차고 있었다."

18세기가 되자 팔리에타들, 즉 좀 경시하는 말로 표현해서 나폴리의 소피스트들은 외모가 조금 바뀌었다. 몸도 가늘어졌고, 옷도 그렁저렁 대충 입었다. 당시의 희극 작가인 체를로네라는 사람은 자신의 작품 속에 허풍쟁이에다 횡설수설하는 사기꾼인 '돈 파스티디오 데 파스티디이스(이탈리아어로 '성가신 양반 중의 성가신 양반'이라는 뜻)'라는 인물을 설정함으로써 팔리에타들을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베네데토 크로체*는 나폴리의 모든 변호사들의 이름으로, 아니 어쩌면 그리스의 소피스트들까지 대변해서, '데 파스티디아스'는 팔리에타들을 희극화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생각 없는 어떤 사람을 희화화한 인물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팔리에타들은 음흉하지 않은 것만 빼면 직업 윤리 면에서 비난 받아 마땅한 사람들인데 반해, 돈 파스티디오 데 파스티디이스는 그냥 능청맞은 얼간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데 파스티디이스는 어떤 희극에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한 귀부인에게 감사를 드린다는 것이 그만 "오, 나의 창부여!" 라고 말한다.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 1866~1952)는 나폴리 출신의 철학자, 역사가, 문학 비평가이며 파시스트 정권 이전 이탈리아의 문교부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다. 그는 공직을 사퇴하고 강력한 반파시스트 운동을 전개한 도덕성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오늘 날에도 팔리에타들은 그 때와 마찬가지로 법정 주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어쩌면 '철가면의 사나이'처럼 시대를 초월해 사는 인물들인지도 모른다. 하기야 플라우투스(로마의 희극 작가. 기원전 250~184)는 입으로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들의 입 속에는 혀와 사악함과 악의와 뻔뻔스러움, 잘난 체 하는 마음과 고집과 교활함이 들어 있다."

2천 년이 지난 지금 마달라리라는 사람은 이렇게 주장한다.

"팔리에타들은 나폴리에서 이상(理想)의 병에 걸리지 않은 유일한 사람들이다. 수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들도 팔리에타들에게는 당하지 못한다."

 

나는 전형적인 팔리에타 한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는 안니발레 타누치라는 변호사다. 타누치 변호사의 좌우명은 이런 것이다.

 

"법이란 마치 꼭 끼는 구두 같은 것이다. 구두에 발을 끼워 넣기 위해서는 구두칼이 필요하다."

이 사람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변론을 직접 들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여기 소개하기로 한다.

 

법정에 계신 여러분, 저는 오늘 사기와 상표 도용의 죄로 기소된 에스포시토 알레산드로 씨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여기 서 있습니다. 우선 저는 이번 일이 사기와는 전혀 관계 없다는 것, 그리고 그의 행위가 상표 도용이라는 범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 합니다.

성지 주일이었던 지난 3월 27일 일요일 아침은 무척이나 맑고 쾌청한 날씨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가 가득한 그런 아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본단자 미켈레라고 하는 경찰관이 키아이아의 성 안드레아 성당 앞 인도에서 핸드백을 팔고 있던 에스포시토 알레산드로 씨를 적발했습니다. 라이센스 없이 상표를 도용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 다음 날에는 재무 경찰이 에스포시토 씨가 사는 비코 세르펜테 25번지의 집을 수색해서 가족들이 만들어 놓은 핸드백 벨트와 롤렉스, 카르티에, 포르세, 피아제 등의 상표를 단 모조 시계들을 압수했습니다. 이 시계들은 정확하게 시간이 맞는 훌륭한 시계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에스포시토 씨가 핸드백에 붙이기 위해 마련해 놓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에스포시토 씨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데서 산 것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이 플라스틱 조각에는 변형된 형태의 L자와 V자가 가로 세로로 포개어져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 글자는 루이 뷔통이라는 프랑스 사람의 이름 첫 글자라는 것인데, 솔직히 말해 이 사람은 이 법정에 출두하지도 않았고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행여 이 법정에 계시는 여러 선생님들 중에서 파리의 루이 뷔통이라는 회사가 자신들의 제품에 어떤 가격을 붙이는지 모르시는 분이 있을까 싶어 알려 드리겠습니다. 질 좋은 프랑스제 플라스틱을 사용해 만든 중간 정도 크기의 핸드백 하나의 가격이 자그마치 40만 리라나 합니다. 우리의 에스포시토 씨가 판매하는 가방은 겨우 2만 5천 리라 밖에 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저녁이 다 되도록 하루 일당을 충분히 벌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에스포시토 씨의 핸드백 값은 더 내려가기도 합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것을 귀 담아 들어 주십시오. 에스포시토 씨가 파는 가방에는 이런 글귀가 반드시 적혀 있습니다.

 

진짜 루이 뷔통 가방, 완전 무결한 모조품

 

여러분 이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알레산드로 에스포시토 씨가 사기를 친 겁니까? 사기죄란 어떤 죄입니까? 형법 제460조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행위나 책략으로 다른 사람을 오도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한 사람은 피해를 입은 사람의 고소에 의해, 최하 3개월에서 최장 3년의 징역과 최하 4만 리라, 최고 40만 리라의 벌금형에 처한다.

 

보시는 바와 같이 사기죄가 성립되려면 무엇보다도 오도되어 피해를 본 사람, 즉 속아서 피해를 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에스포시토 씨에게 속임수를 당한 사람이 과연 누구란 말입니까? 물건을 산 사람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위에 소개한 상품 선전 문구를 끝까지 읽은 사람은 그것이 단순한 모조품이라는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알 수 있습니다. 어쩌다 '진짜 루이 뷔통 가방'이라는 말만 읽은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이 경우에 정말로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은 에스포시토 씨가 아니라 거의 50만 리라나 하는 물건을 단돈 2만 5천 리라에 슬쩍 챙기려고 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부당한 이득을 취한 사람은 또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집에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려고 핸드백 하나 팔아서 9천 리라나 1만 리라를 버는 것이 부당 이득이라는 말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법정에 서 계신 여러분, 사기를 당한 사람이 없으니 사기죄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기로 하겠습니다. 다름 아닌 상표 도용 건 문제입니다. 조토, 치마부에, 마사초 등 우리 이탈리아의 위대한 화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에 서명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림은 그림 자체로 평가되어야지, '누구'라는 서명이 있기 때문에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사실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하는 것은 소비주의에 물든 오늘의 잘못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나친 말을 써서 미안합니다만 오늘 날 쓰레기 같은 우리 인간들은 서명만 그럴싸하게 붙어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살 정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1950년대에 있었던 일입니다만 화가 피에로 만조니가 의도적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깡통 속에 자신의 배설물을 담아 '예술가의 대변'이라는 상표까지 붙여 파는 데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설마라구요? 파리의 루이 뷔통이라는 사람도 이와 똑같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수천 수백 개의 핸드백을 만들고 내 이름의 첫 글자를 붙여야지. 그런 다음 실제 값어치보다 열 배 쯤 비싸게 파는 거야. 그걸 사겠다는 머저리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어디 한 번 봐야겠어.

지금 예를 든 것은 뷔통이지만 구치, 펜디, 아르마니, 롤렉스 등등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하기야 이제는 화장실에 앉아도 발렌티노라는 고굽 상표에 둘러싸여 있을 정도가 아닙니까!

누구는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겠지요.

"루이 뷔통은 자신의 핸드백을 사라고 아무에게도 강요하지 않았잖소? 그렇다면 변호사 양반의 고객이신 에스포시토 씨도 다른 사람의 상표를 쓸 생각 말고 자신의 이름을 넣은 상품을 팔 생각은 왜 하지 않았소?"

글쎄올시다. 그럴싸한 말이기는 하지만 그건 좀 억지가 아니겠습니까? 어떤 부인이 자신의 친구에게 이렇게 호들갑을 떤다고 상상을 해 보십시오.

"얘, 얘, 나 어제 에스포시토 핸드백 하나 샀다!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볼래?"

 

그렇다면 어떤 개인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결정해 주는 법이 과연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그것은 시장의 법칙입니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상품에 지나치게 높은 값을 붙인다면 그의 제품은 다른 사람의 제품과 가격 경쟁 떄문에 잘 팔려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고객을 현혹시켜서, 비록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지만 특별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는 믿음을 주었다고 합시다. 지금부터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뷔통 씨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자, 형법 제603조의 유인죄 조항을 들어 보십시오.

 

누구든지 속이거나 유혹하거나 또는 그 밖의 거짓된 책략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는 사람은 최하 3년 최장 15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여러분, 만약 어떤 사람이 수천 수백만 명의 사람을 속여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핸드백이 멋진 상표만 달면 가죽 핸드백보다 낫다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그 모든 사람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파리의 루이 뷔통 씨를 유인죄로 고발합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상표를 마구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부인들과 자녀들을 자신들의 지배하에 둔 세상의 모든 허풍쟁이들을 고발하는 바입니다. 또한 물신 숭배라는 새로운 신앙을 세상에 퍼뜨린 고급 상품 잡지들을 고발합니다. 매스컴과 광고업자들과 상인 등 불법 이득을 위해 결탁한 모든 사람들을 고발합니다.

세상에 정의를 일으켜 세워야 할 재판장님과 법정의 모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저울의 한 쪽에는 국제적인 사기꾼 루이 뷔통이 올려져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진 거대한 식탁에서 빵 부스러기하도 얻어먹어 볼까 노심초사하다 현행범으로 검거된 우리 나폴리의 초라한 사기꾼 에스포시토 알레산드로 씨가 올려져 있습니다. 여러분, 정의의 심판을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