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지혜의 나무 :: 현자의 타락

현자의 타락

프랑스

 

 

옛날 어느 마을에 한 현자가 살았다. 그 현자의 심성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맑고 소박하고 또 자상했기 때문에, 신은 자기 아들 예수만큼이나 그를 사랑했다. 이 천상의 또 다른 아들은 신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일 따위는 조금도 저지르지 않았다. 그는 그마큼 깨끗했다. 높푸른 산 허리께에 난 동굴 안에서 거의 아무것도 없이 살면서, 그저 가끔 산 속에 있는 야생 열매나 아니면 주일마다 벌어지는 그의 소박한 만찬을 위해 찻잎사귀를 따러 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매 주 동굴 어귀에 있는 바위에 보따리를 걸어 두면, 어쩌다 선량한 사람이 지나가면서 빵 같은 것을 놓아 두곤 했고, 그러면 그는 그것을 먹었다. 그러지 않을 때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양식을 대신했다.

 

'그러니 대체 어떻게 그를 유혹한담?' 하고 어느 날 악마가 생각했다.

'무슨 수로 매일 성모 마리아가 물을 뿌려 주는 그 마음의 밭을 사악하게 만들지?'

악마는 현자의 동정을 몰래 살폈고, 발자국 냄새까지 맡아 가면서 그의 몸 샅샅이 자기가 숨어 들 만한 빈 구석이 없는가를 조사했다. 그러나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악마는 약이 오르고 화가 나서, 신에게 따지러 갔다.

"신이여, 저는 공평함을 요구합니다."

"누구와 비교해서 공평할 것을 요구한단 말이냐, 저주 받은 아들아?"

"바로 당신과 비교해서요." 라고 악마가 대답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신이여, 당신은 전지전능함을 너무 남용하고 있어요. 저기 어떤 동굴 안에 악의 손길이 미칠 수 없는 은자 한 명이 살고 있답니다. 당신은 왜 그에게 다른 사람들처럼 제 사악한 능력 앞에 꿇어 엎드릴 것을 금하셨나요? 기분을 상하게 해 드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솔직히 말해 이건 지나친 편애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가 하는 일은 바로 사람들을 고통받도록 만드는 것 아이겠어요? 그렇게 원한 것은 당신 아닙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제가 그 일을 순조롭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셔야 합니다."

"그럼 좋다." 하고 신이 대답했다.

"그 사람을 유혹할 권한을 네게 내 주겠다. 하지만 너는 어차피 그를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자리는 벌써 저 천국에 예비되어 있느니라."

"고맙습니다, 신이여. 그럼 안녕히!" 하고 악마는 물러갔다.

 

악마는 당장 현자의 동굴로 달려갔다. 현자는 동굴 어귀에서 바위 위에 놓인 빵조각과 물을 먹고 있었다.

"안녕하쇼." 악마가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내가 누군지 혹 아시는지?"

"마귀 사탄 아닌가?" 현자는 미동도 않고 대답했다.

"신께서 내가 댁의 휴식을 방해해도 좋다고 그러셨거든. 나는 댁이 무슨 커다란 잘못을 좀 저질러 줬으면 하는데."

"말해 봐라. 들어 줄 테니." 하고 현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하나 죽여 줘."

"그건 안 되지." 현자가 말했다.

"좋아. 그러면 여자를 범하는 건 어때."

"너무 큰 죄악이네. 짐승 같은 짓이야. 이보게 사탄. 다른 종류를 말해 보시게."

"그렇다면 술을 보통 이상으로 마셔 줘야겠어. 그건 뭐, 별 것 아니잖아. 이것만은 거절하지 말아 달라구."

그러자 현자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만일 내가 정신 나간 짓을 꼭 저질러야만 한다면, 그래 차라리 술 속에서 그 일을 잠시 잊어버리는 것이 좋겠군."

현자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아담한 술병 하나가 눈 앞에 나타났다. 현자는 병을 들고 마시기 시작했다. 이내 불그레한 얼굴이 된 그는 기침을 해 댔고, 침을 뱉고 숨을 몰아 쉬면서 투덜거렸다.

"아, 이런. 지독한 술이군!"

"한 모금만 더 마셔 봐. 자, 용기를 내라구."

현자는 다시 몇 모금을 입 안에 흘려 넣었따. 그러고는 또 기침을 해 댔다.

"견디기 힘들군."

그렇게 말하면서 현자는 킬킬 웃었다. 그리고 다시금 마귀의 도움도 없이 팔꿈치를 대고 일어나서 반쯤 남은 술병을 마저 다 비웠고, 마침내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렇게 외쳤다.

"뜨겁군. 좋아, 아주 악마 같은 술이야!"

현자는 딸꾹질을 하면서 거나하게 웃어 댔다. 그가 술김에 자기 넓적다리를 치며 막 아름답다고 감탄하고 있을 때, 갑자기 길 위에 여자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현자님. 우리 과수원에서 딴 사과를 좀 드셔 보시라고 가져왔어요."

"아, 당신은 썩 내 맘에 들게 생겼어."

현자는 열정 어린 얼굴로 이렇게 말하고는,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덤불 위에 쓰러뜨렸다. 그러고는 마치 늙은 늑대와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여자는 도와 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때마침 근처에서 나무를 하고 있던 그녀의 남편이 비명 소리를 듣고 황급히 달려왔다. 그는 자기 아내의 치마 속에 그 선량한 현자의 다리가 뒤범벅이 되어 있는 광경을 보고는, 놀라서 재빨리 그 죄인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불미스런 쾌락의 한 중간에서 갑자기 쫓겨나온 현자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짜증이 왈칵 치솟았다. 자신도 모르게 주위에 있는 바윗돌을 집어 든 그는 두 눈을 꼭 감고 사내의 이마를 내리쳤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사내는 이미 골이 으깨진 채 그의 발 밑에 널부러져 있었다.

"내 보기에는 죽은 것 같군." 옆에서 악마가 겸허한 투로 말했다.

악마는 꽃을 한 송이 꺾어 죽은 사내의 입 위에 올려 놓았다. 술이 깬 현자는 극심한 괴로움으로 제 머리를 쥐어 뜯었다.

"오 신이여, 제가 이 무슨 짓을!" 하며 현자는 신음했다. 그러자 악마가 말했다.

"세 가지 잘못된 일 중에서도 너는 가장 경미한 것을 골랐지. 그래도 세 번이나 죄를 저질렀어. 사실 많이 마셨다는 건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야. 하지만 술 때문에 여자를 범하고 그 남편을 죽이게 됐어. 자, 그거야말로 네가 나의 오랜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약속이지 뭐겠어."

악마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는 투로 일어났다. 몇 걸음 가다가 우뚝 멈춰 선 악마가 뒤를 돌아다 보며, 마치 오랜 길동무를 부르는 듯 친근한 말투로 물었다.

"이봐 현자 양반, 같이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