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국 이야기 (彩雲國物語) 3권 -5장- 화려한 서곡

제5장 화려한 종언(終焉)의 서곡

 

 

귀양 화류계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전통 있는 기루인 항아루는, 왕가의 이궁도 이러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호화로운 구조를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정점에 선 명기·호접이, 열려진 문 너머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잘 왔어. 수려, 꼬마."

그 미소 하나를 보기 위해서 재산 전부를 아낌없이 내놓는 자도 드물지 않은, 호접의 미소.

"상당히, 오랜만이지. 급제 이후, 처음이던가? 편지를 읽어 준 것 같아서 기뻐."

수려는 궁녀보다도 뛰어나게 아름답고 교양있는 그 미녀를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는 말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수려가 받아들인 수많은 삯일 중에서도, 유곽은 특별했다. 어머니가 죽고, 돈도 바닥이 나, 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 하나로, 수려는 유곽으로 갔다. 수려는 아직 10살도 되지 않아서, 기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대로 팔아치워져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을, 방의 청소와 장부 정리와, 비품의 매입 등, 오시(낮 12시)의 일을 주선해 주었던 것이 이 항아루--그리고 중재해 주었던 것이 10대에 이미 명기로서의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던 호접이었다.

그때부터 10년 가까이, 수려는 매일같이 각 기루에 가서 일을 하고 왔다. 특히--호접이 있는 항아루에서.

가장 배당이 좋았던 것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강하고 아름답고 다정한, 여자로서의 긍지로 가득 찬 호접을 수려가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만나러 오지 않겠냐는 편지를 받고, 뛸 듯이 수려는 기뻤다. 그런데.

미소짓는 호접에, 수려는 위화감을 느꼈다. ........평소와, 어딘가가, 다르다---고.

"호접 언니---?"

갑자기 호접의 뒤에서 인상이 나쁜 건달이 죽 나타났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수려와는 반대로, 미녀는 힐끗 건달들을 보았다.

"이봐, 이 아이는 여기서 오랫동안 삯일을 해서, 상당히 신세를 졌어. 대단한 양반은 아니지만, 관사님이 되자마자, 소식이 없어져 버렸지만 말이야."

수려는 얼어버렸다. 갑자기, 서먹서먹해진 마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호접언니도---?

그러나 호접은, 국시를 치는 수려의 등을 밀어 주었다. 웃으며, 힘내라고 말해 주었다. 급제한 후에도---.

그리고 호접이 급제를 축하해 주었던 때를 떠올렸다. 축하해 라고 말해주었지만, 그 직후, 호접은 조금 곤란한 듯한 얼굴로 눈을 피했다.

무엇인가가, 변했던 것이다. 호접이, 이런 식으로 자신을 대할 정도로, 나쁜 일을 했던 것일까? 관사가 되고 나서는, 더 이상 같은 존재가 아닌 것일까?

너무 많은 충격을 받아, 수려는 그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호접은, 이제껏 수려가 본 적이 없는 웃음을 떠올렸다.

"잠시, 이곳에 머물러 줘. 그것을 바라는 분이 계셔. 거절할 권한은 없어. 무위무관인 너희들이 거스를 수 있는 분이 아니야. 게다가, 소중한 아버님에게 무언가 좋지 못한 일이 생기기를 바라지는 않겠지?"

새파래진 얼굴로, 수려는 주먹을 꼭 쥐었다.

"알--았어요."

이 격식 높은 전통 있는 기루의 경호원을 하기에는 천해 보이는 남자들이, 한 걸음 내딛은 수려의 어깨를 붙잡아 안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아가씨!!"

무의식중에 검을 빼든 정란의 손등을, 날카롭게 공기를 가른 무엇인가가 세게 쳤다.

부채였다. 틀림없이 겨냥해서 던져진 그것은, 가벼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얼떨떨해 하고 있는 정란에게, 호접은 비웃음을 띄었다.

"너는, 돌아가. 초대받은 것은, 작은 이 두 명뿐이니까."

노기를 띤 정란을 둘러싼 건달들을 알아차리고, 수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

입술을 깨문 정란의 손바닥에, 뒤에서 살짝 떠맡겨지는 것이 있었다.

"---정란씨."

미미한 놀라움을 숨기고 앞을 응시한 채인 정란에게, 영월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거, 폐하에게서 맡아두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사용해 주셔요. 어쩐지 그쪽의 모두는 저도 데리고 가고 싶어하시는 것 같고, 여기서는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요."

얇은 천에 싼 그것을 더듬어 보고, 정란은 건네진 것의 정체를 알았다. 엉겁결에 뒤를 돌아본 정란에, 영월은 웃어 보였다.

"저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스로의 무력함을 곱씹듯이, 정란은 꾸러미를 꼭 쥐었다.

"--알았다. 아가씨를 부탁해."

"예."

자씨의 문장. 류휘는 그것을 자신이 아닌, 이 소년에게 맡겼던 것이다. 지금의 정란에게는, 정면으로 나서서 수려를 지켜줄 힘이 없기 때문에. ---그 판단은 옳다.

역시 표정이 굳어진, 영월도 남자들에게 억지로 끌려갔다.

"자, 너는 빨리 돌아가."

수려와 영월이 건달들에게 기루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노려보듯이 보고 있던 정란을 향해, 미모의 기녀가 아리땁게 웃었다.

"상당히 무서운 얼굴이네. 하지만, 무리하게 들어온다면, 그야말로 그 아이들이 무서운 꼴을 당할 거야. ---네가, 남장군처럼 권력이 있는 무관님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정말 유감이야."

정란, 하고 그녀는 한숨 같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금까지처럼은, 중요한 것을 지킬 수 없어."

얇은 초승달을 생각나게 하는 윤기 나는 입술. 그녀는 정란의 어깨를 꾹, 누르고, 문을 닫았다.

정란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돌변한 냉엄한 표정을 하고---백대장군에게로 향하기 위하여 발을 돌렸던 것이다.

 

 

*****

 

 

수려들은 최상층의 한 방에 내던져졌다. 오랫동안 이 기루에서 삯일을 해온 수려는, 이 방이 누구의 방인지 물론 알고 있다.

"....이런 일이 될 줄이야. 미안, 영월군, 함께 데려와 버려서."

"아니요-. 어떻게 해서든지 데려 왔을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 신경쓰지 마셔요. 그보다 수려씨, 괜찮아요? 얼굴색이 심해요."

수려는 웃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툭 중얼거리는 수려에, 영월의 얼굴이 흐려졌다.

"하지만 모두의 기분도.......알지 못하는 건 아니야. 그야, 꺽이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어쩔 수 없지. 이런 사태를 가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던 내가 나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국시에 급제하든지, 성으로 들어가게 되든지. 그러나 틀렸다.

수려 자신은 변하지 않았어도,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단지 지위 하나로.

"모두, 조금 당황했을 뿐 이예요."

수려는 조금 웃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을 돌리는 것처럼 다른 화제를 꺼냈다.

"........저, 영월군은, 왜 관사가 되기로 했어?"

겨우 13세에 장원급제를 이루었다, 그의 강한 소원은 무엇일까? 분명, 한심하게도 흔들리고 있는 자신의 마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확고한 의지가---.

"에? 저요? 돈을 많이 받고 신분이 높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헤?"

영월은 무릎을 껴안고, 조금 눈을 내리깔았다.

"저, 정말은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예전에, 죽을 뻔했던 것을 당주님이 구해주시고 나서, 저도 누군가를 그런 식으로 도와주려고. 하지만, 의사는 가난해요."

"에, 아니, 뭐, 그, 그렇지."

"당주님도 가난해요. 언제나 누군가를 도와주고, 받는 돈보다 만드는 약으로 나가는 쪽이 많아요. 애당초 거의 돈을 받지 않는 사람이고요-. 그래서 돈 때문에 자주 울었어요. 먹을 것이 없다든지 하는 건, 괜찮아요. 단지 돈이 없는 탓에, 부탁해온 사람을 도와줄 수 없을 때, 무척 괴로운 얼굴을 하고--숨어서 울었어요. 평소에는 전혀 돈에 개의치 않는데, 그 때만은 돈이 더 있다면---이라고."

"............."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있는 쪽이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좋은 약을 많이 만들고, 새로운 치료법과 신약 개발도 할 수 있어요. 애당초, 환자는 평가할 수가 없잖아요? 자칭 선인과 요술사가 만든 이상한 약을 믿고, 많은 돈을 지불하고 우는 사람이 끊이지 않아요. 각지에서 유명한 의사의 소문은 자주 들었지만, 그 분들이 확립한 많은 대단한 의술법은 거의 다른 의사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어요. 부자인 사람이 고용해서 외부에는 비밀이 되어버리는 일도 간혹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 의사가 아닌 관사가 되자고 생각했어요."

싱긋, 영월이 웃었다. 수려는 처음으로, 13세 장원으로서의 영월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하지만 그것보다, 더 돈과 권력을 가지려고 해요. 나, 당주님이 훌쩍훌쩍 우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관사가 되면, 돈도 많이 들어오고, 할 수 있는 일도 늘어나요. 신분이 높아지면, 공권력도 사용할 수 있어요. 우선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하고, 그리고 아직 시간이 나면 의사가 되기로 했어요. 인생은 짧으니까, 가능한 한 빨리 라고 생각해서 국시를 치렀어요. 몇 년이나 조금씩 저축하고, 근처의 모두의 후의도 있어서 겨우 1회분의 수험료가 되었지요. 정말, 이번에 붙어서 다행이었어요."

---수려는 생각이 났다. 자신의 소원. 아득히 응시했던 그 과거를.

간단히 눈앞의 일에 미혹된 자신을 수려는 한심하게 생각했다.

머리를 한번 흔들고, 수려는 얼굴을 들었다. 늠름해진 그 얼굴에, 영월은 조금 눈을 크게 떴다. 

"고마워. 영월군."

"에?"

그때,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이 자세를 갖출 틈도 없이, 인상이 나쁜 건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이쪽의 꼬맹이냐? 나으리가 작은 상자의 소재를 자백하게 하라고 하셨다."

"확실히 술은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는 소문의 희소생물이지."

"그렇다면 간단하군. 술을 마시게 해서 말하게 하면 되잖아."

영월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보고, 남자들은 경멸하는 웃음을 띄었다.

"술을 마시게 해주겠다고 말한 거야. 감사하라고. ---이곳은 좋은 술이 갖추어져 있지. 애송이는 일생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말이야."

"일생이란 말을 바꿔야지. 술에 약하다면, 그 전에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고."

"꼬마 계집애 쪽은 어찌 되었든 간에, 꼬맹이가 관련된 그 상자의 일 만큼은 말하게 하지 않으면 안돼. 네가 요령 좋게 누군가 신분 높은 분을 후견으로라도 붙잡으면, 살겠지만 말이야. 어쨌든 우리 나으리는 권력 앞에서는 전혀 힘을 못쓰니까. 그렇지 않으면 얌전히 사위가 되든가."

"뭐, 확실히 그런 여자를 신부로 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는 해. 서른 고개의 부친을 닮았고 말이야. 나으리도 누구든 상관없이 혼담을 걸고 있지. 하지만 돈은 남아서 넘칠 정도로 있으니까. 지참금을 목적으로 해도 좋았잖아? 바보구나, 애송이."

팔을 비틀어 올려도, 영월은 확실하게 말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공개된 곳에서 거절해버린 것에 화가 났다면, 사과합니다. 하지만."

"그런 건 우리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아."

남자들이 우격다짐으로 옆방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수려는 엉겁결에 발을 내딛었다.

"에. 영월군!"

방에서 사라진 영월을 쫓아가려던 수려를, 다른 남자가 꽉 눌러 잡았다.

"아가씨는 여기 얌전하게 있어."

"혼자서 심심하다면, 상대해 줄까? 여기는 그런 곳이잖아."

남자들이 히죽히죽 기분 나쁜 웃음을 띄었다.

"뭐야, 너, 이런 게 취미야?"

"가끔씩은 괜찮잖아."

주고받는 대화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사정에 어두운 수려라고 해도, 대화가 의미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그래. 수려의 생각이 맞다면, 어쩌면--.

뻗어오는 손을 뿌리치고, 수려는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았다. 건달들은 휘파람을 불었다.

"울보는 아니군. 힘내, 나는 그런 여자가 좋거든. 얼굴은 평범하고 가슴도 없지만, 그 눈은 제법 자극적이야."

---평범하고 가슴이 없어서 미안하군. 하고 내심 상처 받았지만, 역시 되받아 칠 배짱도 여유도 없다.

"최초의 여관사와 한다면, 역사에 남을지도 모르겠군."

웃으면서 뻗어오는 손에, 수려는 반사적으로 펄쩍 뛰어 피했다. 손에 닿는 것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진다.

(아앗, 이 단지 하나면 집을 지을 수 있을텐데에에에)

이 때에도 확실히 계산해 버리는 자신이 슬프다. 그래도 그것은, 아직 수려에게 희미하게 희망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위험하잖아, 이--꼬마 계집이."

"*사나운 말이지. 올라타기만 하면 별 거 아니잖아?"

성가신 듯 투하물을 피하고 있던 건달들의 눈이, 차츰 위험스러워졌다.

넓은 방을 요리조리 피해 다닌 끝에, 수려는 마침내 방구석으로 바짝 몰려 버렸다.

"뒤쫓아가는 건, 끝이야."

그 순간, 옆문이 날아갔다. 문의 경첩과 벽의 파편과 함께 방안으로 내던져진 것은, 웬일인지 입구를 지키고 있었을 터인 졸개들이었다.

"뭐, 뭐야?"

공중제비를 돌아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남자들은, 피를 토하고 기절했다. 그 이상한 형태로 함몰된 코와 볼을 보고, 수려를 포함한 실내의 사람들의 움직임이 일순 멈추었다.   

".......내참, 또 너야? 정말로 얼빠진 여자군."

날아간 문의 건너편에서 나타난 것은, 술병을 한 손에 들고 지금까지 늘어진 기미였던 눈을 고양이처럼 치켜올린, 영월이었다.

 

 

*****

 

 

(나, 나왔다!)

이전, 비슷한 상황에서 이 급변한 모습을 눈으로 보고, 이번에도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던 수려 마저 한쪽 뺨이 굳어질 정도로 그 낙차가 심했다. 당연히, 면역이 없는 건달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입을 떡 벌리고 있다.

"바보가. 나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것은 운이 다했다는 거 라구."

싸늘하게 영월이 웃었다. 그 얼굴은 지금까지의 영월에서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두영월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면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아니, 이미 그것은, 사람이 변했다기 보다---.

"여자, 나는 사람 좋은 영.월.과는 달라.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실수야."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얼굴 생김도 어조도 그 움직임마저도.

문의 건너편은 틀림없이 겹겹이 쌓인 시신. 족히 소년의 3배는 체격차가 있을 듯한 남자들이 모조리 뻗어 있다. 영월은, 비틀거리며 얼굴을 든 한 사람을 무조작적으로 술병으로 때렸다. 병이 깨지고, 남자는 피를 흘리면서 기절했다. 손으로 튄 술을 핥으면서, 영월이 말했다.

"오늘은 특별이다, 급제 축하라고 생각해 둬. 영월도 화가 난 것 같고. 녀석이 불평도 하지 않고 마시는 것은 드물지. 평소였다면 내가 나올 정도라면, 고분고분 당한 채로 있을 녀석이니까." 

부랴부랴 달려온 다른 건달들을, 차례차례 주먹과 축기(蹴技)로 쓰러뜨렸다. 그것은 정말 멋진 움직임이었다.

"......숫자만 많고, 속은 이건가? 약한 주제에 분수도 모르고 싸움을 걸어 와? 귀찮아."

차례차례 바닥에 쓰러진 동료의 비참한 모습에, 남은 남자들은 겨우 사태를 이해했다.

"호접! 호접!! 항아루의 경호원도 데려 와!!"

고함 소리에, 그 방의 주인인 미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어떤 여자라도 발 밑에도 미치지 못할 미모와 교양과 긍지. 귀양에서 가장 뛰어난 명기.

"---바보라고 말로 하지마."

아름다움 그대로, 늠름한 목소리가 그 자리에 울렸다.

하늘의 도움이라도 받은 듯 달려든 건달들을, 계속 호접의 앞에 서 있던 거한이 용서없이 세게 후려쳤다.

"......호, 호접!?"

"너 협력하겠다고 말했잖아!"

아우성치는 건달들을, 절세의 미녀는 코웃음쳤다. 어조가 싹 바뀐다.

"질렸어. 이 호접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것은 이미 손님을 상대하는 우한(優閑)한 언동이 아니었다.

"......너.."

배신당한 것을 안 한 사람이, 주먹을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호접의 호위인 거한이 차서 날려버렸다. 종이처럼 날려간 그 남자를, 영월은 더 이상 손댈 가치도 없다는 듯이 가볍게 날아 피했다. 수려의 옆에 착지해, 힐끗 고양이 눈을 던졌다.

"아, 저기, 고마워, 영월군."

"그냥 변덕이야. 그리고 나는 양.월.이다."

"에?"

되묻는 수려의 턱에 손을 대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물끄러미 응시해왔다.

"그렇군. 감사라면, 말이 아니라 몸으로 받아볼까?"

"--------에!? 뭐!?"

상당히 익숙한 태도로, 입술을 접근해 온다. 차가운 시선으로 부드러움은 일절 없고, 무엇인가를 정탐하고, 확인하는 듯했다. 그러나 입술이 닿기 직전, 소년은 훌쩍 몸을 날리고, 비틀거렸다. 안절부절못하는 것처럼 관자놀이를 누른다.

"쳇. 더 마셨으면 좋았을 걸. 시간이 다 됐군."

쓰러진 소년을, 수려는 당황하며 그러안아 붙잡았다. 들여다보니 이미 건강하게 자는 숨소리를 내고 있다.

 

 

(......지, 지금 것은 대체......)

수려가 필사적으로 상황파악을 시도하고 있는 사이에, 위축된 건달들은 호접의 수하에 의해 차례차례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저항하고 있던 필두격인 건달이 하나 남았다.

"호접! 너 어쩔 생각이냐. 나으리에게 실컷 귀여움 받고 있으면서----!!"

"배신했다, 고? 바보로구나. 나는 원.래. 이.쪽. 편.이.야. 속아넘어간 너희들이 바보지."

호접은 방울을 울리는 듯한 목소리로 웃었다.

"이 호접을 귀.여.워.한다고? 나를 기적에서 빼낸다고 잠꼬대를 하는 너희 나으리와 똑같이 한심한 입버릇이군. 이 호접을 기적에서 빼내려고 하는 건, ......백년은 빨라."

호접은 미려한 발로 바닥을 쳤다. 그 순간, 바닥에서 구르던 건달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단련되고, 통솔된 강한 남자들이 죽 늘어섰다.

"귀양 하가를 통솔하는 두목들 중 하나, 항아루의 호접을 잘도 단순한 여자라고 얕보고, 지저분한 손으로 만졌겠다. 결국, 나의 소중한 수려를 이렇게까지 멸시하고 말이야."

수려는 팟 얼굴을 들었다. 나.의. 소.중.한.---?

"뭐, 너 따위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지. 호접의 이름도 모르는 삼류가, 잘도 바보같은 짓을 했어. 일단, 흠을 냈다면 아래에 매달린 것을 잘라버리려고 했다. 비열한 놈에게는, 그런 것을 붙여둘 가치가 없을 테니 말이야."

선뜻 하는 말이지만, 확실한 진심이었다. 건달들은 떨기 시작했다.

이미 아무런 관심도 없어진 듯이 일별하고, 돌변한 근심 어린 표정으로, 호접은 수려에게 걸어갔다.

"잘 했어, 수려. .......무서운 생각이 들게 해서, 미안해."

수려는 안도한 나머지 현기증이 났다. 악몽을 꾸는 도중에 눈을 뜬 것처럼, 전신에서 힘이 빠졌다.

"호접언니......언제나의 호접언니야......"

"바보네, 이 아이는. 10년 가까이 보살펴 온 아가씨를, 내가 내팽개칠 리가 없잖아."

호접은, 겨우 수려가 알고 있는 아름답고 다정한 웃음을 띄었다.

"하지만.....하지만, 호접언니 한테까지 미움받는다면, 어떻하나 하고."

이 항아루에서 호접과 보낸 시간은, 수려에게 있어서 무척 소중한 것이었다. 수려를 형성하는 반은, 호접에게서 받았다고 해도 좋다.

어머니를 잃은 수려에게, 호접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긍지 높고 아름답고, 스스로에게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언제 누구를 대하더라도 확실히 가슴을 펴는 진짜 강함을 가진 그녀는, 계속 수려에게 있어서 동경하고, 존경하는 여성이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그 한마디는 심하게 사무쳤었다.

"미안하지만, 수려----당분간, 여기에는 오지 말아주겠어."

급제하고 나서 방문한 수려에게, 조금 곤란한 듯이. --눈물을 참는 것이 고작이었다.

영월을 무릎에 재운 채 털썩 주저앉아 있던 수려의 옆에, 호접은 살짝 웅크리고 앉았다.

그래, 그래 하고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달래주었다. 눈물샘이 약해진 것을 숨기려고, 수려는 호접의 어깨죽지에 이마를 댔다. 하지만 익숙해진 친근한 향기에, 점점 눈가가 뜨거워졌다.

"미안해, 미안. 너의 모습을 예의 어르신에게 보여서는 안되니까, 오지 말라고 한 거야...... 수려를 위해서 추영님의 부탁을 받아들였지만, .......그때의 너의 얼굴을 보았을 때는 마음 속으로 후회했어. 정말로 미안했다."

추영님, 이라는 것은, 남추영도 한통속이라는 건가?

온통 덮여 있던 실이 툭 끊어진 기분이었다. 필사적으로 참고있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지, 지금까지 울지 않았는....데. 정란 앞에서도."

"아아, 알고 있어. 훌륭해. 추영님에게도 듣고 있었어. 남자를 상대로 싸우고 있으면서, 남자에게 울며 매달릴 수 없다고 생각한 거지? 설령 정란이라 할지라도. 정말 너는 자신에게 너무 엄격해. ....하지만, 잘 했어. 자랑스러워, 귀여운 나의 아가씨."

호접은 꼭 수려를 끌어안았다.

".....이런 때가 아니라면, 하룻밤 울도록 해주겠지만."

호접은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수려의 눈물을, 잘 손질된 예쁜 손끝으로 살짝 닦았다.

"자, 눈물을 닦아.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이제---뭐가 뭔지."

"아차, 그것을 설명해줄 두 사람이 도착한 것 같네."

높게 울리는 발소리가 부서진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내참, 남자라면 반한 여자의 대사(大事)에는 급하게 달려와야지, 늦어서는 안된다구요. 작은 꼬맹이가 제일 좋은 때를 차지해 버렸잖아요? 한심하기는."

중얼중얼 입 속으로 호접이 중얼거렸다. 수려는 칠칠치 못하게 뻗은 건달들을 문답무용으로 짓밟으며 달려온 류휘와 정란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신기해, 하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으니, 어딘가 닮았네...........)

 

 

*****

 

 

사정을 들은 수려는 생각에 잠긴 듯 턱에 손을 댔다.

"......즉, 나는 지금, 급제는 실력이 아니라 속여서, 진사 반상 하게 되었다?"

"그래. 너의 후견인이 부정 개입해서 너를 급제시켰다고."

"그리고 멋지게 후견인 사람이 구속되었다는 건데, 그거, 괜찮아? 모처럼 여관사의 후견으로 불리한 일을 일부러 받아들여주었는데.....폐를 끼치다니."

류휘와 정란은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아니, 정말 괜찮을 거야."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 말 없이 구속되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무런 걱정하지 마셔요."

라고 딱 잘라 말하자, 수려는 당황했다.

"그, 그래?"

그러나 류휘는 어쨌든 정란까지, 자신의 후견인을 알고 있는 말투인 것에는 깜짝 놀랐다.

"아아, 그쪽은 놔두어도 괜찮아. 그보다는, 너의 일이다."

"---내일 정오의 사문에 나가서, 인정받으면 되는 거지? ----받아들이겠어."

확실히 단언하는 그 떳떳함에, 류휘와 정란은 조금 웃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런 기회를 만들려고 했어. 우선 오늘밤은 정란과 영월도 함께, 이 항아루에 묵는 게 좋겠지. 단속은 완벽해. -----호접."

류휘가 돌아보자, 팔짱을 낀 호접이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나의 귀여운 아가씨에게 손을 대는 건, 천년은 빠르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지 않으면 안되지. 붙잡힌 녀석들은, 전원 운이 다한 거야. 가장 그렇게 해주고 싶은 것은, 그 어르신이지만."

이 여장부라면 할지도 모른다. 류휘와 정란은 같은 남성으로서 그저 조금 상대에게 동정했지만, 현명하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고는 전부 남장군에게. 주상씨, 달리 무언가, 제가 힘이 될 만한 일이 있을까요?" 

귀양 하가의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것은 각기 일가를 이룬 두목들---통칭 <조연(組連)> 이라고 불리는 조직으로, 호접도 그 중의 하나, 귀양 화류계 기녀들을 통솔하는 두목들 중 한 사람이었다. 어르신이든지 귀족이든지 머리를 숙일 의리 따위는 없다는 그들은, 물론 왕에 대해서도 동료의 태도를 관철한다. 그러나 올 겨울에 일어났던 한 건으로, 류휘는 그들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왕으로서가 아닌, 류휘 자신에게 힘을 빌려준다는 약속을 해 주었던 그들은, 그러므로 류휘의 부탁밖에 듣지 않는다.

호접의 물음에, 류휘는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부터 어떤 어수선한 일이 일어나도, 성 아래의 건달 무리를 붙들어 주었으면 해. 아직, 그 남자의 저택 주위에 파수꾼을 두었으면 좋겠어. 만의 하나라도 도망친다면 곤란해."

"쉬운 일입니다. 개미 한 마리 지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단, 우리들이 막는 것은 어디까지나 성 아래. 그 어르신이 성에서 기르는 녀석들에게는 손댈 수 없습니다."

"알고 있다."

류휘는 말하고, 수려 쪽으로 돌아섰다.

"수려. 내일, 정오까지 오라고 했지만, 틀림없이 방해가 있을 거야. 호위로 우림군을 붙이려고 했지만, ---증거 수집의 일단으로 그만 두었다. 자력으로 해주었으면 해."

"......나, 약해?"

"그러니까 정란을 붙일게. 지금의 정란이라면, 어떤 상대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 무슨 말이야?"

"머지않아, 알게 될 거야."

류휘는 기쁜 듯이 정란을 보았다. 정란은 어쩔 수 없다는---하지만, 어딘가 개운해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려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깊은 것은 묻지 않았다.

"....알았어요. 그런데, 저기,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

"뭔데?"

"해두고 싶은 것이 있어요. 부고에 놓아둔 것이 있는데."

"아아, 그거라면 가져왔어."

".........어떻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말해 줘. 바로 가져올게. 내일 정오 전에 완성시켜 보내준다면 도움이 될 거야. 정란이 자씨의 문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을 사용해서 보내주면 돼."

류휘가 영월에게 맡겨두고, 다시 정란의 손으로 전해진 자씨의 문장은 여러 가지 용도가 있지만, 그 하나가 봉랍으로 누르면 누구에게도 개봉되지 않고 초고속으로 직접 왕에게 전달된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가장 중요한 기밀편지로 취급되어, 봉인을 개봉할 수 있는 것은 왕과 삼사, 재상 밖에 없다.

짖궂은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띄운 류휘에, 수려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표정은 언제나 뚱딴지같은 짓만 하던 때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지만.

치면 금방 소리가 나듯이,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그 놀랄만한 통찰과 총명함은.

(.....아아, 그래서였구나.)

기쁘다. 하지만 분하다.

그러나---이 왕이라면 섬길 수 있어. 강유와 추영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저택에 남겨진 소하와 <손님>을 걱정한 정란은, 한번 상태를 보고 오겠다고 하고 항아루를 나왔다. 호접도 잠들어 있는 영월을 침대로 옮기도록 수하의 자에게 지시를 하고, 방의 여기 저기에 구르고 있는 건달들을 회수해, 의미 있는 웃음을 남기고 별실로 가버렸다.

두 사람이 가버리자, 뒤에는 수려와 류휘가 우두커니 남겨졌다.

수려는 슬쩍 류휘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응?"

".........혹시 나, 당신에게 이용당한 거야?"

류휘는 잠시 말이 궁해졌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 미안해."

수려는 갑자기 웃었다.

"고마워."

"응?"

"당신도 강유님도 남장군도, 내가 궁성에 오고 나서, 무엇 하나 봐주지 않았어. 누군가에게 노려질 가능성도, 나를 이용한 것도, 정직하게 이야기해 주었어. --1년 전과는 달리."

류휘는 퍼뜩 놀라 수려를 보았다.

"그냥 감이야. 1년 전의 그 때, 당신들은 <적이 숨어들었다>라고 밖에 말해주지 않았어. 아무도 없는 후궁에 갑자기 귀비가 들어갔던 것, 지금 생각한다면 수면 밑에 무언가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차태보도 급사되었는데,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나는 지켜지고 있었어. 소중히 간직된 공주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도록."

"수려......"

"비난하는 거 아니야. 왜냐하면 그때는 정말로 지켜질 수 밖에 없는 공주님이었는 걸. 정사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 줄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하지만-----지금은 달라. 다른 거지? 그것이 기뻐."

수려는 관사가 되고 싶었다. 두 번 다시 9년 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 하나 할 수 없었던 예전과는 달리, 관사가 된다면, 손안의 소중한 것을 꼭 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는 장소에 있고 싶었다. 지켜지는 쪽이 아니라, 지켜야만 하는 쪽이 되고 싶었다. 감싸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등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감쌀 수 있도록.

류휘들과의 거리는 끝없이 멀지만, 수려는 지금 확실히 선을 밟고 넘는 것이다. 지키는 쪽으로. 그것을 그들도 인정해준 것이다.

"지켜야만 한다든가 약한 여자가 아니라, 대등하게 이야기 할 관사로서 나를 대해 주어서 고마워. 그리고, 도우러 와 줘서 기뻐요."

수려는 진지한 눈동자로 류휘를 응시했다.

"한가지만 물을게. 두 번 다시 묻지 않아. 그러니까 거짓말은 하지마."

숨을 한번 내쉬고, 수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떳떳한 관사가 될 수 있을까? 양심의 가책을 받을 일은 정말 없어?"

저신의 급제에 정말로 관대한 조처가 없었던 것인가 라고, 묻는 수려에.

류휘는 거리낌없이 미소지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

류휘는 무심코 손을 뻗다가, 그만 두었다. 그리고 한숨을 한번 쉬었다.

"나의 소원도, 하나 들어 준다면 기쁘겠어."

"뭔데?"

"......배속이 결정된 후라도 좋아,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줬으면 좋겠어."

좋아요, 라고 말하려고 했던 수려는 류휘를 보고 조금 숨을 삼켰다.

어른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수려의 생각을 전부 쓸어버릴 정도로, 조용하고 강한 의지를 속에 감춘 듯한 표정.

---그는 자신보다 세 살 연상이라고, 이제야 수려는 알아차렸다.

"수려? 어, 어떻게 할거야. 직접 만든 만두를 먹고 싶다든가, 니코를 듣고 싶다든가 제멋대로 굴지 않을게."

순식간에 원래의 류휘로 되돌아 왔지만, 조금 전의 얼굴은 수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틈이 난다면요."

그는, 정말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남자였던 것일까?---하고. 작은 잔물결이 일어, 수려의 마음은 흔들렸다.

그 때였다. 호접이 불쑥 모습을 나타냈다.

"잠깐 주상씨."

"무슨 일이야."

"연락이 왔어요. <사반각 전을 기해 성 아래의 기능의 반 정지. 즉각 돌아오지 않으면 죽인다>고, 강유님으로부터의 전갈."

아연한 수려의 옆에서, 류휘가 낮게 신음했다. 그는 그 연락을 반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오늘밤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

훌쩍훌쩍 류휘는 울었다. 귀양 제일의 기루의 최상층에서는 매일 밤처럼 들리는 대사였지만, 오늘은 또 일찍이 없었을 정도로 절실하고 슬픈 울림이었다.

 

 

*****

 

 

"---늦었어!"

입을 열고 제일 먼저, 강유의 욕설이 류휘를 맞이했다.

"우......미, 미안해."

"빨리 문을 닫아!"

"예!"

엉겁결에 힘을 잔뜩 주어 문을 닫자, 그 여파로 근처의 서한이 무너져 내려, 류휘는 파묻혔다.

"아앗!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당신은!!"

근처에 있던 추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서한의 산을 헤집고 임금님의 발굴에 뛰어들었다.

"주상, 괜찮으십니까?"

"......나는 이대로 파묻혀 있고 싶어......"

"잠꼬대는 잠잘 때 해주십시오."

추영은 상냥하게, 한편 문답무용으로 파묻힌 류휘를 억지로 끄집어냈다.

"냉큼 책상으로 가!"

가차없이 강유가 노성을 지르자, 류휘는 무릎 위까지 육박해오고 있는 서한을 문자 그대로 헤엄치듯이 헤집고 필사적으로 책상에 당도했다. 책상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서한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천천히 의자를 잡아당기려고 했지만, 우선 의자를 잡아당길 틈을 만들 수가 없었다. 털썩 주저앉아, 부지런히 개헤엄을 치듯이 서한을 치우고, 겨우겨우 의자에 앉았다.

"일단 묻겠습니다만, 수려님은 무사합니까? 뭐 호접에게 맡겼으니 틀림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무사하다. 게다가 정란도 마침내 백대장군에게로 발을 옮겼다. 검을 가지고 싶다며."

강유와 추영은 눈썹을 올렸다.

"겨우 마음을 정했군요. 하지만 우우림군 쪽이라니. 유감이네. 좌우림군으로 왔으면 했습니다만. 이것으로 당분간, 우리 흑대장군이 비뚤어지는 것 결정입니다."

".....설령 모양새만이라도, 너의 밑이라는 건 죽어도 싫었던 것 아닐까?"

"이런 주상,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미안. 실언이었다."

강유는 그 주고받기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국시에 장원급제를 할 수 있는 머리지요. 일손이 부족했을 때, 어떻게든 문관으로 선발했다면 둘러대기 좋았겠지만."

"정란이 승낙하지 않았어. 근위에 들어오는 것 마저, 그 정도로 미루고 있었다. 더군다나 문관으로는---위험성이 너무 높아."

정란이 왕궁에서 추방되었던 것은, 아직 겨우 14년 전. 공자 중 제일 우수하다고 평가되었던 그는, 아직까지도 그 기량이 아깝다고 속삭여지고 있는 존재다.

"게다가, 정란을 문관으로 할 정도라면---"

류휘는 눈을 감았다. 검을 원하고 있는 형에, 문득 두 자루의 검이 떠올랐다.

"왕으로 한다."

"........주상."

눈썹을 모은 강유에, 류휘는 간신히 웃었다.

"알고 있어. 그냥 농담이야. 다만, 나는 왕이 아니라, 형님의 보좌로 있고 싶었다."

강유는 류휘의 감상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바보같은 소리를. 정란은 당신의 형이 아닙니다. 따라서, 왕위에 오를 일은 없습니다. 그런 가공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 지금! 눈앞의 서한의 산을 어떻게든 해 주십시오."

"......심술궂네."

"공교롭게도 저는 추영과는 달리, 청원공자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 말해 두겠습니다.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한다면 마지막, 저는 조정을 그만 두겠습니다. 저는 당신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겁니다."

류휘는 입을 다물고, 쑥스러운 듯 새빨개졌다. 그것은 일찍이 아무도 뒤돌아 봐주지 않았던 류휘에게 있어서, 보석보다도 나은 말이었다.

옆에서 추영이 히죽히죽 웃었다.  

"죽이는 문구야. 강유, 나에게도 말해줬으면 좋겠다. <네가 있으니까 여기에 있어>라고."

"......너는 서한에 파묻혀서 지금 당장 질식사해버려!"

강유는 근처의 책자를 연타로 던졌지만, 추영은 솜씨좋게 전부 피했다.

"일단 묻겠는데, 이것은 전부 탄원서인가?"

"그렇습니다!"

".....우, 음......설마, 이렇게까지 해 줄 거라고는...."

류휘는 책상에 푹 엎드렸지만, 엎드려 있을 틈이 없었다.

쌓여진 탄원서를 앞에, 대단한 추영도 어딘지 모르게 웃음소리가 딱딱하다.

"이런-, 하지만 정말 호쾌하군, 너의 상사."

".....그렇다고나 할까, 이것은 구랑님의 소행이다. 그 사람은 홍씨 일족의 소중한 사람이니까."

홍려심이 구속되고 나서 정말 일각도 지나지 않아, 성 아래는 큰 소란이 일어났다. 귀양의 홍씨 일족 모두가 일을 중지했던 것이다.

직을 막론하고 모든 분야에서 절대의 권력과 영향력을 자랑하는 홍씨 일족의 업무가 정지하면, 성 아래의 반의 기능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정지한다. 거래 상대가 비난을 해도, 입을 맞추어 <불만은 성으로>라고 말했기 때문에, 얼마 되지 않는 사이에 그 집무실에는 헤엄칠 정도의 양의 탄원서가 쌓아 올려졌다. 지금도 도착하고 있는 탄원서는 착착 계속 늘어나고 있고, 밀려나온 서한이 범람하는 강처럼 복도를 점거하고 있다. 성내에도 완전히 대혼란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래봬도 구랑님에게 있어서는 적당히 봐주고 있는 거야. 소금과 철과 쌀에는 제한을 가하지 않았으니까. 범위도 귀양에만 한정하고 있고, 홍씨인 관사에게 사표제출도 하게 하지 않았어."

"여기에서 홍가 연고의 관사가 모여 업무를 방기해버리면, 농담이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

"......이것이, 홍가의 힘인가?"

한숨을 쉬면서, 류휘는 탄원서의 산을 둘러보았다.

"과연 그렇군. 나도 좋은 공부가 되었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잘도 나 같은 애송이에게 나라를 맡기고 있는 거로군."

"나라를 정점에서 지배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홍남 양가는 이렇게까지 강대해질 수 없습니다. 왕 같은 건 고생스러울 뿐이고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 말대로 현재 수지가 맞지 않는 일을 하는 처지가 되어 있는 류휘는,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서, 가장 묻고 싶지 않은 것을 물었다.

"홍상서는 지금 어떻게 하고 있지?"

"이궁의 하나를 통째로 점거하고, 자발적 연금 상태에 들어가 있습니다."

한숨 섞인 목소리로 강유가 보고하자, 추영이 일부러 인 듯 눈을 크게 떴다.

"에, 그건 연금이 아니잖아. 주상보다 우아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풀려나지 않았지?"

"......부당한 오명이 풀릴 때까지는, <연금>된다는 각오라고 합니다. 당연히 괴롭히고 있는 거예요."

성가신 일이다, 하고 류휘는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강유의 허리까지 서한이 육박해오고 있다. 무너졌던 탄원서의 산을 옆으로 쓸어내면서, 절실하게 추영이 중얼거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당당하게 엄청 압력을 가해 오는데도, 정말 압력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드니 신기하군. ......홍가가 정의롭게 보이고 있다는 것일까?"

진짜 드물게 류휘는 두통을 느끼고 있었다. 신참 왕이니까 이제 좀 적당히 봐줘. 

"---추영. 이제 반절의 기능은 남가의 지배하다. 지금의 상황으로 어느 정도 유지하지?"

추영은 킥킥 웃었다.

"이것이 다른 가문에서 한 일이었다면, 이 기회에 모든 지반을 흡수병합해서, 성 아래의 기능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구랑님이 상대여서는 그렇게도 말하지 못하겠지요. 그도 필시 단순히 뒤흔들 작정이고요. 유지하겠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겠지만---필시 이 혼란은, 남가가 나올 것도 없이 하루에 진정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구랑님으로부터의 무언의 요구입니다. 하루에 결말을 내려고 하는."

"알았다. 이렇게 되면 빨리 정리하지. 이 이상 바보를 멋대로 하게 두면, 연루되어서 조정이 먼저 가라앉겠다. .....내참, 권력에 약한 소인배인 주제에, 무엇을 실수하고 미쳐서 강유가 아닌 려심에 손을 댄 거야, 그 남자는."

분개한 류휘에, 추영이 문득 생각난 듯이 말한다.

"혹시 그는, 려심님이 홍가 당주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우리들은 사귀고 있으니까, 당연한 것처럼 알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려심님이 공공의 장소에서 자신의 입장을 밝힌 적은 없었고, 도대체 칠가 당주가 궁에서 일하고 있다고는, 보통은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잠잠히, 류휘와 강유는 입을 다물고 열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른다, 라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그것은 맹점이었다."

"그렇게까지 소인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여기서 하나 낭보가."

싱긋, 하고 추영은 웃었다.

"연청에게서 보고가 있습니다. 그럭저럭 동반한 소녀가 서둘러서, 상당히 빨리 도착할 것 같습니다. 내일 저녁까지는 도착합니다."

류휘는 당장 책상에서 먹과 붓의 발굴에 뛰어들었다.

"정오까지는 도착해 달라는 조서를 낸다. 대지급으로 보내 줘."

"황송합니다만, 이미 보내두었습니다. 사문회의 사전공작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의 작은 상자, 소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굉장한 증명서를 붙여서."

".......................... 누, 누가 가지고 있었지?"

"엉뚱한 연으로 구랑님이. 그러니까 발견될 리가 없지요. ......또 하나."

추영은 무엇인가 귓속말을 했다. 류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그리고 뺨에 손을 댔다.

"......수려는, 정말 대단해."

"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본인의 영지에서 <바보>와 <소인배>라는 호칭을 제멋대로 쓰고 있는 그는, 자신이 불러일으킨 사태에, 지금에서야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런 바보 같은.....바보 같으니! 려심에게---사부라고는 하지만 한 명의 상서에게 어떻게 이 정도의 힘이......아, 아니야, 아직 화는 내 몸에까지는 미치지 않았어. 정양(靜養)이라고 하고 자주를 나가자. 뒤는 이 반지만 있으면......"

감정사인 기녀·호접으로부터 필적을 받은 가짜 반지를, 남자는 소중한 듯이 쓰다듬고, 어느 장소에 소중한 듯이 감추었다. 고급 기루에서 거만한 태도를 취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굴함이었다. 그리고 그는 밉살스럽게 내뱉었다.

"그 꼬마 계집이! 내일 정오라고? 흥, 시간에 맞추도록 할 것 같아!"

도망 준비를 시작하면서, 그는 가신에게 명을 내렸다.

 

 

*****

 

 

밤---항아루의 한 방에서 부지런히 문서를 작성하면서, 수려는 저택에서 돌아온 정란에게 들은 마을의 모습과, 호접이 쓴웃음과 함께 전한 말을 떠올렸다.

"......홍씨 일족을 화나게 만들었군."

<홍가, 인가.>

이것이, 홍씨 일족의 힘. 겨우 수각으로 성 아래의 반을 기능 정지시켰을 정도의.

지금 처음으로, 수려는 아버지가 버린 것,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의 큰 힘을 이해했다.

홍씨 본가의 장자인 아버지는, 이 정도의 권력을 가진 일족의 차기 당주로 태어났던 것이다. 어쩌면 나라마저도 쉽게 움직일 수 있는, 이 강대한 성씨를 통솔하는 자로서.

(그건-, 그 아버님에게는 무리였겠지.)

그리고 무리라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를, 아버지와 어머니와 정란과, 넷이서 보낼 수 있었던 자신은, 무척 행복했었다고도. 가난해도, 괴로운 시간이 있었어도, 수려의 손  안에는 언제나, 가장 소중한 것이 있었다.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별실의 문이 열렸다.

"죄, 죄송합니다. 푹 잠들어 버려서."

"영월군! 원래대로 돌아왔구나."

원래의 늘어진 기미의 눈으로 돌아온 영월은, 태연하게 쓴웃음을 지었다.

"예-. 저, 도움이 되었나요? 뭔가 폐를 끼치지는 않았습니까?"

한 방울이라도 술이 들어가면 사람이 변하는(?) 영월이지만, 그 사이의 기억이 어째서인지 일절 없는 것이다.

".............. 멋지게."

"미, 미묘한 사이가 신경 쓰이는데요. 호접씨로부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도와드릴게요."

수려는 사양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거, 언제까지 끝내면 되나요?"

"........내일 정오."

"우와. 아슬아슬한데요."

영월은 자리에 앉자 즉시 작업을 시작했다. 묵을 보충할 틈마저 아쉽다고 생각되는 속도로 붓을 미끄러뜨려 간다. 그 야무진 표정에는 확실히 장원급제라고 인정될 만한 편린이 있었다.

수려도 똑같이 열심히 붓을 움직이면서, 얼굴을 들지 않고 물었다.

"저기 영월군,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신발닦이를 하면, 여러 가지 소문이 들어오니까요-. 수려씨도 그렇지요?"

".........하지만, 나는 늦었어."

"저에게는 사전 정보가 있었고, 그리고 오후에는 호접씨의 편지와 함께 조마로 제 앞으로 도착했던 고향으로부터의 편지가 있었지요? 이것도 무언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봐 주셔요."

수려는 아무 생각 없이 서한을 열었다. 그리고 내용을 살펴본 순간, 얼굴을 든 수려의 눈동자에는 활활 의욕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내일 정오까지, 해내자, 영월군."

"물론입니다. 아, 맞다, 수려씨."

"왜?"

"수려씨에게는, 다정한 숙부님이 계셔서 좋겠어요. 저 무척 부러워요."

작업을 재개한 수려의 붓이, 우뚝 멈추었다.

".....숙부님.....?"

---이라니,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