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국 이야기 (彩雲國物語) 3권 -4장- 휴식의 하루

제4장 휴식의 하루

 

 

청년은 평소처럼 신발을 집어들었다. 반짝반짝 닦여진 신발의 끝에는, 작게 접힌 종이가 살짝 놓여 있다.

특별한 방법으로 얇게 뜬 종이는, 놀랄 정도로 넓게 펼쳐졌다. 안의 문자를 쫓을 때마다, 청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문득, 한 점에 눈이 멈추었다.

".......내일이, 휴양일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그는 눈을 감았다. 주르륵 흘러내린 소매의 색은, 차분한 홍색.

그것은 금지된 색인 자색에 이어, 일곱 가지 금지색 중 하나. 기본색을 몸에 두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그 색의 이름을 가진 가계 중에서도 직계의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

 

 

"홍수려입니다! 여기 서한, 확실히 전했습니다."

밤도 새벽도 아닌 동틀 무렵, 소녀의 활기찬 목소리가 울렸다. 이 시각, 각 성청에 있는 것은 대개 숙직인 극소수의 관사들이었다.

척척 서한을 두고 꾸벅 고개를 숙인 후, 한껏 당긴 화살처럼 바로 달려나가는 수려를 보고, 숙직인 관사들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오늘도 시간에 맞추었어."

"매일이잖아. 언제 자는 거야? 내참 여자답지 않게 잘 하고 있군."

요 근래까지 <여자인 주제에><여자 따위가> 하고 깔보던 자들도, 겨우 감탄하는 듯한 말을 하게 되었다.

"부고를 엿봤는데, 서한의 양이 굉장했어. 덧붙여 노관사에게는 구박 당하고 동기에게도 험담을 듣고 말이야. 이것이 매일이니, 남자라도 도망가고 싶을 거야."

"아아. 다른 진사들은 이렇다 할 일을 맡지도 않았으면서, 노관사에게 뇌물을 줘서 일의 양을 줄인 놈도 있는 것 같더군. 그에 비하면 근성이 있지, 그 두 사람."

"장원과 탐화 아닌가. 일도 정확하고 꼼꼼해서, 상당히 도움이 돼."

한 사람이 툭 흘린 진심에, 다른 남자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예부의 놈들 너무 하잖아. 들었어? 진흙 덩어리 건. 쓸데없는 짓을 했지. 그런 짓, 사부와 호부였다면 즉각 해고야. 그럴 틈이 있으면 일이나 하지."

"거기는 위가 위니까. 노관사는 유망주를 괴롭히기만 하고, 봄의 제목을 향해 뒷돈을 쓰고 있다는 소문도 있어."

"그런데 탐화의 홍진사, 꽤 괜찮잖아. 활발하고 방글방글 잘 웃고. 역시 직장에 여자아이가 있으니까 좋네! 보탬이 돼. 분위기도 부드러워지고. 얼굴은 평범하지만 웃으면 귀여워."

"그래. 그 아이가 청소하면서부터, 변소도 깨끗해져서 감격했어. 게다가 어느 변소에도 다른 꽃이 장식되어 있고."

"그래, 맞아. 세심하게 마음을 써줘서 좋아. 서한도 상당히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잖아. 남자는 그렇게 못하지-, 글씨도 대략 적당하게 쓰여있고 말이야."

"작지만 장원급제도 가볍게 볼 수 없지. 겸허하고 정중하게 허리를 낮추길래, 처음에는 비아냥인가 했지만, 그건 성격이야.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들을 뛰어넘겠지만, 그 꼬마라면 괜찮지."

너 장원과 자신을 비교하지마, 하고 옆에서 농담을 걸어, 그 자리가 왁자지껄해졌다.

".....상당히 좋은 느낌이야. 금년도의 상위 진사. 여관사라는 것도."

얼굴을 마주 보고, 관사들은 웃었다.

 

 

*****

 

 

귀양 화류계는, 잠들지 않는 밤의 거리. 그리고 아름다운 여자들의 거리였다.

"여관사라니, 정말 바보 같군. 이 세상도 끝이야."

그 중에서도 더 한층 화려한 방에서, 평상시처럼 잔을 기울이던 초로의 남자가 내뱉었다.

"어머, 나으리는, 여자가 싫으셔요?"

매혹으로 가득 찬 간드러진 목소리와 함께, 남자의 잔에 새로 술이 채워졌다. 남자는 술을 따른 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술에 취해 붉어진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싫냐고? 너 같은 여자라면 불만 없지. 호접---너는 정말 아름다워. 너를 위해서라면, 하룻밤에 금백량을 써도 아깝지 않다."

"후후, 말씀을 잘 하시네요."

"여자는, 너처럼 남자에게 잘 하고, 즐겁게 해주고, 집에서 꼼짝 않고 있어야 하는 거다. 쓸데없는 지혜를 가지고 정사에 고개를 들이밀다니, 교만이 심하지.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어. 정말 악운만은 강한 형편이지. 궁중에서의 압력도 늘리지 않으면 안되겠어."

"어머, 무서워요. 저기 나으리, 그 작은 상자, 요전에 없어졌다고 말씀하셨던 거예요?"

사방침(脇息 : 앉아서 팔꿈치를 괴고 몸을 기대는 도구) 위에 얹어진 작은 세공 상자를, 매우 흥미가 있는 듯이 호접이라고 불린 기녀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황해서 원래대로 되돌리며, 남자는 조금 찔리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것.은, 아직 찾고 있는 중이다."

"어머. 멋진 반지였는데."

"호접, 여자는 보석을 잘 알겠지. 그리고 언젠가 너는, 한번 본 보석은 다시는 잊지 않는다고 말했었지. 어떠냐, 모양을 봐주지 않겠나? 일단 진짜를 찾고는 있지만, 찾지 못하는 경우를 위해 몇 개를 만들었다. 이것이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해."

"상관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상당히 집착하고 계시네요."

손안에 작은 상자를 들고 만지작거리면서, 남자는 즐거운 듯이 호접에게 가르쳐 주었다.

"후후, 이것은 금달걀을 낳는 닭이다. 진짜는 없어졌지만, 이것을 진짜라고 믿게 만들면 되지. 그렇게 되면 나는 크게 승진할 뿐 아니라, 큰돈도 벌게 된다. 채칠가와의 약정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되면 너도 몸을 되찾을 수 있다. 왕족보다도 호화로운 삶을 평생 살게 해주지."

화류계 제일의 기녀는, 황홀해질 것 같은 미소를 띄었다.

"기쁘네요. 후후, 지금까지 제 몸을 되찾아 주실 수 있는 나으리는 계시지 않았어요."

"뭣하면 이 기루를 통째로 사들여도 상관없다."

남자는 똑 잔을 놓았다.

"......그래. 잘 하면 그 부아를 치밀게 하는 여관사를 쫓아낼 계기가 될지도 몰라. 게다가 그 계집애의 후견은 홍리심이다. 그 녀석을 실각시킬 실마리가 된다면 잘된 일이지. 호접, 너에게도 조금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으리 뜻대로."

요염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띄우며, 그녀는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야---보고를 받은 류휘는, 최저한의 왕의 일 처리도 할 겸 집무실로 돌아가 있었다. 방에는 강유와 추영 뿐이었다.

"음. 이 반지인가?"

류휘는 손바닥에 놓인 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불완전하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야."

확실하게 말하는 주인에, 남추영은 간신히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예. 아마, 차주에서 보내온 특징이 적힌 문서와, 자신이 보아 기억하고 있는 것을 연결해서, 보석장인에게 의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진짜> 대신으로 하려고 몇 개를 만들었는데, 결국 쓸모없게 된 시작품 쪽을, 돈을 노린 수하가 살짝 가지고 나와 암시장에 팔아버려서, 그것이 돌고 돌아 저에게 온 거지요."

"하찮은 자로군. 수하 하나도 다루지 못하는 건가?"

"차태보와 비교하는 쪽이 잘못입니다."

류휘가 손바닥에서 적당히 다루고 있던 그것은, 차가 당주임을 증명하는 반지의 위조품이었다. 대를 옮겨 그대로 차가의 당주인이 되는 이것을 잃어버리고서는, 아무도 차가 당주라는 이름을 댈 수 없다.

일찍이 차태보가 끼고 있던 그것은, 유체가 된 그의 손가락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이후, 차씨 본가는 물론 류휘들도 혈안이 되어 사라진 당주인을 찾고 있었는데--.

"하지만, 그 바보가 찾았다가 간단히 잃어버렸다는 <진짜>가, 정말로 <진짜> 였을까요? 대체, 일년이나 계속 찾아도 찾을 수 없었는데, 지금 와서 어떻게 찾아낸 건지, 아무래도 시기가 너무 좋아서, 기분이 나빠요."

강유는 눈을 가늘게 했다. 마치 누군가가 무대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듯한, 불가사의한 우연의 겹침. 추영도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연청의 정보에 의하면, 차가 본저에는 없는 것이 확실한 듯 합니다. 뭐,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훨씬 전에 누군가가 당주 자리에 앉았을 테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진짜가 없는 덕분에, 아직까지도 차가는 어수선하고, 차주 정사에까지 간섭할 수 없었다고도 할 수 있지요. 이렇게 되고 보면 반지가 행방불명되어 다행이었습니다. 그것마저도 차태보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류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건가?"

1년 전에 진짜 차가의 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어쨌든 틀림없는 당주인 차태보였다. 그것이 그의 죽음을 전후해서 모습을 감추고, 지금 이 시기를 겨냥하여 다시 나타났다.

우연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멋지게 이런 짓을 해버릴 사람은, 자신들보다 아득히 많은 경험과 실적을 가진 그 곤란한 노사들 뿐 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봄의 제목, 인가?"

류휘는 초조하게 먹통에 붓을 넣었다. 처음으로 궁중 인사에 손을 댐으로서, 그도 차츰 알아차리게 된 것이 있었다.

"추영, 너의 형은 9년 전의 난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한 것이 없었나?"

"......조정이 젊어지고 있다고, 한마디 중얼거린 것은 들었습니다."

"역시. 도저히 남주에 은거한 몸이라고 생각할 수 없군. 나는 요즘에서야 알아 차렸는데."

9년 전의 내란은, 당시의 고위고관의 대부분이 말려들어, 나라의 근저를 흔들 정도의 대란이었다. 그리고 조정을 근거지로 삼고 있던 늙은 너구리들은, 난의 종식과 동시에 남김없이 차태보에 의해 숙청되었다. 그때 상당히 대량의 관사가 없어졌기 때문에, 공위의 관이 지금까지 많지만--요직에는 홍상서, 황상서를 필두로 능력 있는 젊은 관사의 기용이 실현되었다.

"강유, 너의 시랑 취임도 그 중 하나였다. 보통 그렇게 젊다면 아무리 능력 있는 관사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그 난에서---궁중을 근거지로 삼고 있던 호리요괴들을 쫓아내, 새로운 바람이 불어 와ㅡ 조정 전체를 젊어지게 만들었지. 이 일을 도맡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은, 소태사 였다."

강유는 팔짱을 끼었다. 그 사려 깊은 얼굴은, 그도 그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나타냈다. 

"모든 호리(여우와 너구리)가 꼬리를 내밀기를 기다려, 마지막에 남김없이 꼬리를 잘라내기 위해서, 확대할 하나의 방법로 그 난을, 그냥 입 다물고 지켜보고 있었다는?"

"소태사는 아바마마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왕 이외의 것을 위해 움직였던 때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한 거다. .....아바마마의 병은, 정말이었던 것일까 라고."

강유와 추영은 숨을 삼켰다. 그러나 류휘는, 오랫동안 마음에 맺혀있었던 의문을 억지로 말했다.

"아바마마가 진짜, 중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초기의 수년은.....만나 뵙지 못했다."

선왕이 병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8년의 세월이 걸렸다. 8년이다. 왕위 다툼이 일어날 정도의 심각한 병이었는데, 아무리 최고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젊었을 때, 수많은 전란을 헤치고, 채운국의 왕위를 이은 선왕. 그 수완을 가지고 곪은 환부를 잘라내고, 새로운 시대를 쌓아올렸다고 칭송되는 명군.

왕이 되겠다고 말했다. 소재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강한 의지가 담긴 목소리로.

일찍이 나라를 새로 만든 그 기개가, 조금도 쇠퇴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리고 또 하나 알아차린 것이 있다. 9년 전, 차태보는 차 일족의 폭주를 온 힘을 다해 억누르고 있었다."

"사람은 변합니다."

매우 조용히 추영이 대답했다.

"그러나, 난의 종식에서 수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권력을 추구한다고?"

".......후회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아. 내가 취한 조치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제대로 이야기를 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 차태보의 죄를 묻기 전에,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추적자를 뒤쫓게 할 때, 생포할 수 있었다면 그것도 가능했을 테지만, 그 노신은 입을 열기 전에 시체로 발견되었다. 정란이 한 말로 진상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그것뿐이었던 것일까? 그도 또한, 일찍이 소태사와 함께 나라를 세운 명대신이었던 것이다.

류휘는 한숨을 쉬었다.

"......미련이겠지. 요즘 차주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까."

자조하는 듯한 중얼거림에, 강유와 추영의 입술이 웃었다.

1년 전에 비해, 이 얼마나 왕다워졌는가? 통치하는 자의 눈으로 조정을--나라를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과연 본인은 알아차리고 있을까? 류휘는 이미, 한 명의 소녀를 위한 왕이 아니었다. 그 긍지는 왕의 것. 그들 두 사람을, 무릎 꿇게 하기에 합당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래도, 솔직하지 못한 측근들은 그런 것을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진짜 쪽, 찾아볼까요?"

"아아, 그래, 찾도록 해."

주사위를 던진 것이 소태사라면, 진짜가 나돌 리도 없겠지만, 만의 하나라는 것이 있다.

"예부 쪽의---포박의 시기는? 증거는 모았습니다만."

"아니...., 조금 더 기다려. 제목의 때에 규탄하는 게 좋겠지. 지금은, 중요한 시기다."

누군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시기겠지---추영은 미소했다.

"알겠습니다. 뭐, 그 남자는 놓아두면 놓아둘수록 스스로 무덤을 파주겠지요. 자, 강유, 알아두라고. 멍청하게 그 녀석의 딸과 혼인해버리면 안돼."

잠시 대답이 없었다.

"......강유?"

"아? 어어, 알았어."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강유에, 추영은 눈을 가늘게 했다.

 

 

*****

 

 

"........우-응, 뭔가-, 이상하네."

수려는 변함 없이 서한의 산을 정리하면서, 잠시 그 손을 멈추고 혼잣말을 했다.

반달이 지났을 때부터, 조금씩 일의 양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다기 보다, 어찌되든 좋다는 듯이 잡무를 떠맡기는 관사가 줄어들고 있다는 쪽이 맞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그 진흙 덩어리 사건 이래에 관사들의 반응이 다정해지고, 지금은 기쁘게도 인사를 해주는 사람도 늘었다.

그리고 수려 자신도 일에 익숙해져 가기 때문인지, 여러 가지 생각하는 것도 생겨났다.

"아, 제 쪽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요."

영월도 산반에서 얼굴을 들었다.

"이것 좀 봐주셔요."

"아, 그럼 영월군도 이것 좀 봐."

서로 자신이 보기 쉽도록 쓴 책자를 교환했다.

---침묵에 잠겼다.

"......이거."

"같은 부서네요."

수려는 턱에 손을 댔다. 연일의 피로로, 어쩐지 여윈 기분이 들었다.

"저기, 노관사의 과제, 이걸로 할까? 연명으로. 말단이 하기에는 조금 큰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그야말로 관위도 아직 없는 신참이니, 조금쯤 잘못을 해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아아,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무엇을 써도 자유라고 말했으니까요."

수려와 영월은 얼굴을 마주 보고, 장난꾸러기처럼 빙긋 웃었다.

"그럼, 빨리."

"예, 일이 끝난 뒤에라도 정리하도록 할까요-?"

".....일이 끝난 뒤에도, 또 뭔가 할 작정이야?"

질린 듯한 목소리였다. 뒤돌아보자 두 사람과 같은 하얀 진사복을 입은 소년이 서 있다.

"포씨! 또 와주셨군요."

지난번, 노관사를 향해 똑바로 반론했던 소년 진사--벽포명은, 그 이래, 자신의 일이 끝난 후, 부고에 도와주러 오게 되었다.

그가 말하기를, <너희들을 위해서가 아니야. 너희들이 피로해서 쓰러지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을 수면실로 억지로 끌고 가는 도중에도 <이렇게까지 고집을 피우기 전에, 한마디도 안한 너희들은 엄청난 바보다>라고 분개했던 그는, 어쩐지 계속 안절부절하며 도움을 구하는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국시 중에도 수려들과 같은 숙소였으니까, 입으로 이러쿵저러쿵 말해도 정말은 바르지 못한 것을 몹시 싫어하는 소년인 것을 알고 있다.

"저기, 정말로 괜찮은 거야? 왜냐하면 당신 벽가의 도련님 아니야. 후견도 머리도 말할 것 없고, 우리들 중에서 가장 장래 유명주잖아. 일부러 노관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그때부터 당신의 일의 양도 늘어났잖아."

"그래. 내가 도우면 너희들도 말려들게 되지."

수면실에 데려다 주었던 밤, 포명이 부고에 와서 계속 불만을 터트리며 도와주었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수려도 영월도 눈의 기미와 작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너희들에게 이 일을 하라고 말했다. 정말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냐? 결국, 도움이 되는 것은 변소 청소와 신발 닦기라는 건가? 한심한 장원과 탐화도 다 있군."

노관사는 사람들 앞에서 길게 싫은 소리와 질책을 늘어놓았다. 뒤에서 다른 진사들의 거리낌없는 조소도 뒤집어 씌여져, 확실히 말해 최악이었다. 그런데.

"제가 멋대로 도왔습니다, 노관사. 한가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말이지요."

쓱 포명이 앞으로 나선 것이다.

"나잇살이나 먹어 할 일은 없고 승진도 못하는 원숭이 산의 대장관사는 되고 싶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겨울의 눈보라도 이러리라 싶을 정도로 공기가 얼어붙었던 것을 수려는 떠올렸다.

그 때, 마침 지나가던 제예부상서가, 당황하여 사이에 끼어 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제상서는 지나치다며 노관사를 타일렀고, 포명을 두둔해주었지만, 결국 포명의 일은 그 날부터 배로 늘었다. 그러나 그때부터도 포명은 스스로의 의지로 해질 무렵에는 일을 끝내고, 매일 빠지지 않고 부고로 도우러 왔다가, 다음날 아침 함께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이 일과가 되어 있다. 반골정신이 여기서 극에 달했던 것이다.

"나는 별로 상관없어, 지금 와서 하나쯤 찍힌 게 늘었다고 해도 별 거 아니고, 도와 준 덕분에 수면시간도 늘어나서, ......기뻐-"

"저도예요-. 이런 거라면 함께 야단을 맞아도 전혀 상관없어요."

"착각하지마. 이것은 이제 나의 의지다!"

두 사람의 촐랑거리는 대답에, 포명은 불유쾌한 듯 털썩 의자에 앉았다.

"알았어? 나의 목표는 이강유님이다. 칠가가 아닌데도 그렇게 젊은 나이에 사부시랑 겸 주상의 측근. 실력 뿐 아니라 최단거리의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조정제일의 재인. 사상 최연소 재상 취임이 틀림없는 두뇌. 냉정침착, 재기종횡, 깊이 생각하고 과감하게 결정하는 <철벽의 이성>--."

도도하게 말하는 포명과 반대로, 실물을 알고있는 수려는 입을 다물었다. 출세가도는 최단거리지만 현실가도에서는 늘상 미아라던가, 상당히 자주 끊어지는 <철벽의 이성>이라든가, 수려의 저택에 와서 밥을 먹고 돌아간다던가--역시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저기, 네가 16세에 장원을 한 강유님에게 경의를 표해 1년 국시수험을 늦추었다는 소문, 정말이야?"

멋대로 서한의 처리를 시작하면서, 포명은 기분 나쁜 듯 힐끗 수려를 노려보았다.

"정말이면 안돼? 뭐 결국, 작년의 회시는 중지되었잖아. 확실히 말해서 금년에는 17세로 국시 장원 급제할 자신이 있었어. 그런데 무심코 1년이 늦어진데다가, 뚜껑을 열어보니 고작 13세의 느긋한 작은 동물이 장원을 차지하고, 봉안은 진사직을 팽개친 남가의 바보가 차지하고, 탐화까지 계집애가 차지하고 이 내가 제4위라고!? 정말 어떻게 된 거야. 잘도 처음부터 계획을 무너뜨려 주었군."

"......죄, 죄송해요....."

무척 당당한 상대방의 꾸짖는 어조에, 작은 동물이라고 불린 영월이 엉겁결에 사과했다.

"이 이상 나의 계획을 무너뜨릴 수는 없지. 그런 무능한 진사와 함께 뇌물을 받고 일의 양을 가볍게 해주는 승진도 못하는 영감 따위에게 굽실대지 않아도, 나는 실력으로 대관가도로 쏜살같이 나갈 거다. 후, 강유님도 같은 길을 지났다고 하잖아? 같은 일이 내 몸에 닥친 것도 운명. 나는 절대 굴하지 않아. 두고 봐, 이제 몇 년이 지나면 녀석들보다 승진해서 코웃음치며 혹독하게 부려줄 테니까. ---너희들, 손을 움직여. 오늘은 7일에 1번인 휴일이다. 끝내지 못하면 또 휴일에 출사해야 해."

자신의 말에 분노가 끓어올랐는지, 포명은 맹렬하게 서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도 열심히 하고 있군."

킥킥 웃으면서 들어온 추영에, 세 사람은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추영은 손에 들고 있던 큰 쟁반을 탁자의 한쪽에 놓았다. 그 위에는 언제나처럼 다기와 과자가 놓여 있다.

"이거, 문 옆에 있었어. 그립군. 우리들의 해에도 같은 일이 있었지."

"에, 그, 그랬어요!? 헤에에......., 어? 접시가 세 개로 늘어났네."

"혹시 포씨의 몫이 아닐까요-? 요즘 매일 와 주셨으니까요."

"뭐? 한가하게 과자 따위를 먹고 있을 틈이 어디 있어! 그리고 작은 동물, 너는 과자보다 먼저 술에 익숙해져! 이제 관사가 되면 마시지 못한다고 할 수도 없다고. 주연에서의 그 꼬락서니는 뭐야!"

"하하하지만 마시지 못하는 건 마시지 못하는 거예요."

"마시고 뱉는데 익숙해지라고! 술이란 건 그런 거다!"

"하지만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예요오, 포씨!"

흐뭇한 광경에 미소를 지으면서, 추영은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소하님, 실례합니다."

아이들의 큰 소란을 마음에 두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던 소하는, 말을 걸자 깜짝 놀란 듯이 얼굴을 들었다.

"이런 남장군, 무슨 일로?"

"예. 소하님께,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

 

 

다음 날 새벽녘--포명의 덕분에 정말 한달 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수려는, 철야로 날을 샌 긴장이 풀린 건지, 실이 끊어진 것처럼 맥없이 쓰러졌다. 함께 돌아온 영월도, 같은 모습으로 부석부석한 눈을 문지르면서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죽은 듯 잠들어버린 두 사람을 각자 방으로 옮긴 후, 소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무리도 아니지. 이 한달, 심신 모두 지칠대로 지쳤을 테니까."

".......그렇습니다."

차의 준비를 마친 정란을, 소하는 뜰로 불러냈다.

"음. 너도, 정말로 차를 맛있게 끓이게 되었구나."

"예, 옛날 일은 잊어 주십시오."

차를 끓여주겠다고 하고, 차잎을 직접 몽땅 찻잔에 넣고 물을 부어 가지고 갔던 과거를 떠올리고, 정란은 얼굴이 붉어졌다. 이 집의 주인들은 웃으면서 전부 마셔주었지만 말이다.

봄의 정원은, 한달 전보다 화려해져 있었다. 자두나무 꽃이 보기 좋게 만개해, 어렴풋한 꽃의 향기를 전해온다.

"너는, 네 생각대로 하거라."

자두나무 꽃을 바라보고 있던 정란은, 그 말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곁에 앉은 소하에게 시선을 옮기자, 온화한 웃는 얼굴과 마주쳤다.

"주인 어른....."

"너를 줍고, 아내와 함께 이름을 붙였을 때부터, 나는, 너를 진짜 내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가, 자식의 무거운 짐이 될 수는 없어. 그러니까 내 일은 아무 것도 걱정할 것 없다."

빙그레 웃는 소하에, 정란의 가슴이 메었다.

"네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 마음껏 고민해라. 너라면 마지막에는 분명 자신의 생각대로 결단을 내릴 수 있겠지. 그러니까 죽은 아내도, 너에게 수려를 맡긴 걸 테니까 말이다."

".......아니요. 주인마님은, 저를 위해 약속을 해주신 겁니다."

웃는 얼굴을, 마음을, 행복한 시간을 주었다. 가족을 주었다. <정란>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따스하게 머물 장소까지도.

"약속했지......정란? 딸을 지키겠다고. 아내가 죽었어도, 그 약속은 유효했지. 딸이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는 그 날까지." 

마지막까지 웃고 있었다. 그리고 잠긴 목소리로 지켜야 할 약속을 해주었다.

걸핏하면 간단히 삶을 포기해버릴 것 같았던 어리석은 자신을, 이 세상에 붙잡아 두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오랫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도, 아직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정란을, 그녀는 임종의 때를 맞을 때까지 걱정해 주었다.

이유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리석은 자신을 위해서, 그 여인이 주었던 다정한 속박.

이 저택에서, 앞으로도 예전처럼 지내도 좋다 라는--.

"저는 아가씨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저택에--계속, 있었습니다. 이 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의 때가 가까워져 오고 있다. 이 손으로 지키고 있던 소녀는, 스스로의 발로 걷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하는 약간 쓴웃음을 지었다.

"말했잖아. 너는 우리들의 가족이다. 약속에 속박 당하지 않고도, 언제나 이곳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나의--그리고 수려의 곁에 있어 주었으면 해."

"......주인어른, 저는 상당히 제멋대로고, 자기 맘대로입니다."

"응, 알고 있다. 그리고 무척 다정하지."

선뜻 말하자, 정란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네가 고민해서 내놓는 답은, 결코 틀리지 않을 거야. 다시 한번 말하마. 너는 우리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너 자신을 위해 사는 거야."

톡하고, 소하는 찻잔을 놓았다.

"수려의 배속이 정해질 때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천천히 생각하거라. 등을 떠밀지 말아. 너는 긍지가 높으니까 말이다."

정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하고, 마치 어린 아이처럼.

 

 

정오가 조금 지난 뒤, 수려와 영월은 비틀비틀 일어났다.

"......너, 너무 자버렸어요...... 다른 분의 방에서 이렇게 푹 자버리다니."

"푹 잔 것 같아."

"아가씨, 영월군, 배고프지 않으신가요? 가볍게 차라도 드시지요."

수려는 정란의 상냥한 얼굴에 눈을 멈추었다. 어쩐지 속 시원한 표정. 요즘 가라앉아 있던 정란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부상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수려는 마음을 놓았다. ---이럴 때, 정말로 아버지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소하가, 생각난 듯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아아, 그래, 그게, 실은 오후부터 손님이 올 예정이다."

"에에? 빨리 말씀하셨어야죠, 아버님!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잖아요! 청소도."

깜짝 놀란 수려에, 소하가 척하니 얼굴 앞에서 양손을 옆으로 흔들었다.

"아-,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괜찮아. 그런데, 둘만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미안하지만 셋이서 함께 지금부터 밖에 나가주지 않겠어? 대단히 바쁜 사람이니까, 저녁 식사 재료라도 사오는 사이에 돌아갈 거고, 잠시면 되니까."

".....아버님과 1대1이네요. 곁들일 과자를 준비해 둘 테니, 꼭 차를 끓이셔야 해요. 아아, 냉차를 만들어서 컵에 담아둘게요. 따르기만 하셔요. 꼭 이것만 내셔야 해요."

심한 말을 들은 것처럼, 소하는 풀이 죽어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맛이 없었나 라고 단념하지 못하고 중얼거린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한다?"

차를 다 마셨을 때, 문 쪽에서 <누구 계신가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려가 나가자, 낯익은 우편배달 아저씨가 흠칫 눈을 돌렸다.

".......편지를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저어, 2통입니다."

떠맡기듯이 편지함과 편지를 건네고, 달아나듯이 나가버렸다. 이전에는 편지도 전할 겸 서서 따뜻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급제한 후에는 이렇게, 마치 이제 연이 끊어졌다고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수려는 조금 침울해졌지만, 무리하게 다시 기운을 냈다.

"에-, 한 통은 내 앞으로, 또 한 통은 조마(早馬)......어머, 이거 요전에 영월군이 우리 쪽에서 보냈던 것의 답장 아냐? 후후, 분명 기뻐할 거야."

방으로 돌아오는 동안, 걸으면서 자신의 앞으로 온 호화로운 편지함을 열고 안을 보았다.

내용을 보고---수려는 이번에야말로, 활짝 웃었다. 

"오후에 갈 곳, 정했다!"

그리고 수려는 날 듯이 방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신이 나서 딸들이 나간 후, 소하는 자두나무를 볼 수 있는 뜰에서, 차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자두나무 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나풀나풀 눈송이처럼 꽃잎을 흩날리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아무도 없는 저택에 조금 망설이는 듯한 얼굴을 하고 들어온 것은, 강유였다.

"잘 왔어요. 일하는 중인데, 불러내서 미안합니다. 자아, 앉아요."

"아, 예...."

두 사람이 앉은 장소는, 이 쓸쓸한 정원에서 유일하게 화려한 곳. 하얀 자두나무 꽃이 핀 나무를 바로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강유는 살그머니 자두나무에서 시선을 돌렸다.

"드문 일이군요. 소하님이 저를 불러내시다니."

"당신이,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것보다는 드물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강유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알아차린 것은.

".....소하님."

"지금 이 집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대단한 일은 할 수 없지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동생이 또 당신에게 뭔가 실수를 저질렀다면, 특히."

강유는 쓴웃음을 지었다.

살랑살랑,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미덥지 못한 손놀림으로 소하가 차를 따르는 소리가 귀에 기분 좋게 들렸다.

이윽고, 강유가 툭 중얼거렸다.

".......만일, 제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수련을 나가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맘대로 가라고 하셨어요."

소하의 손이 멈추었다. 이어서 커다란 한숨이 한번.

동생의 관계가 나쁜 것과 입이 거친 것과 아무렇게나 하는 경향에, 소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내참, 강유에 대해서는 언제나 이렇다니까.)

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 생각하며, 소하는 입을 열었다.

"강유, 이 자두나무 말입니다, 올해 보내 왔답니다."

"......? 예, 들었습니다. 누구 보낸 건지는 모릅니다만."

"왕이 벚나무를 보내서 심었다고 듣기가 무섭게, 솜씨 좋은 정원사와 함께 보냈습니다. <이 정원에서 제일 먼저 피는 것이 자두나무가 아니라면, 설령 형님이라도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편지에 붙여서."

강유의 눈이 조금 둥그래졌다. 소하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부터, 그 애는 꽃으로도 열매로도 자두나무를 가장 좋아했으니까요."

".......자두나무!? 정원에 자두나무 같은 건 한 그루도 없습니다. 열매도 먹었던 적이."

"비뚤어져 있으니까요. 좋고 싫음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동생이 아닙니다. 하물며 <제일 좋아하는> 것은 오기로라도 숨기는 성격이니까요.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은 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한서에 강하고,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고, 꽃도 열매도 뿌리도 약용이 된다. 그리고 눈 같은 꽃을 피운다.

"예쁘고 맛있을 뿐 아니라, 뿌리마저 약이 된다니,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근성이 들어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어디에나 싹을 틔우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열매가 달콤한 것만은 아닌 것도, 제 취향입니다----라며 웃던 동생.

"......그 애는, 홍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숨과 함께 중얼거린 말에, 강유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제 일로 여러 가지가 있었으니까요. 극에 달한 것은 그 애가 없는 사이에 일족회의에서 저를 빼놓고 당주로 삼아버렸던 것이겠지요. 저는 이거 잘됐구나 하고 떠들썩한 틈에 홍주를 나와버렸지만......그것을 안 리심은 열화같이 화를 냈습니다. <이대로는 일족과 가신을 모두 죽이겠다>고 파랗게 질린 사자가, 여행중인 우리들을 쫓아 달려올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리심은 결국 당주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정도로 오만불손,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동생이라도, 홍가의 얽매임에서 놓여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유아독존인 리심이다. 그 후 소하를 쫓아 왕도 차주로 온 후, 갑자기 국시를 쳐서 단번에 합격, 어쨌든 7가의 당주이면서, 자주에서 관사로 일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리심의 홍씨 일족에 대한 무언의 저항일 것이라고 소하는 생각했다.

"당신은, 속박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7가와, 집안과, 거기에 소용돌이치는 추악한 어둠에. 홍씨 성을 준다면, 당신은 좋든 싫든 거기에 말려들게 됩니다. 리심마저 놓여날 수 없었는데, 소중한 사람을 어떻게 그런 곳으로 끌고 갈 수 있겠습니까?"

어째서, 소하님은 자신의 고민을 이 정도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당신에게는 원하는 길을 걷게 하고 싶다. 홍가에 얽매이지 않아야, 원하는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굳이 이씨 성을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리심은 확실히 표시를 해 두었잖아요? 총명한 당신이 모를 리가 없지요."

희미하게, 강유의 목이 아래 위로 움직였다. 소하는 온화하게 웃었다.

"강유--강은 홍보다도 한층 깊은 심홍. 당신은 자신의 아들이라는, 긍지의 증표입니다. 그리고 유는 물이 흐른다는 의미입니다. 유수처럼 자유롭게 생각하는 대로,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원하는 곳으로---이강유는 그런 이름입니다. 동생이, 좋은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생각해요."

시원한 바람이 안개를 흩뜨려서, 지금 겨우 시계가 열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가고 싶다면, 맘대로 가도 좋다. 너의 인생이잖아.>

자신이 무엇을 해도, 옆에서 없어져도 상관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그때의 말이, 다른 의미를 가지고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애는, 언제나 한마디 밖에 안 할 뿐 아니라 쓸데없는 것만 말하고, 중요한 것은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항상 괴롭고 힘든 일 뿐이라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잊지 말아 주십시오. 리심은 당신을 얻고 달라졌습니다. 그 애는 아마, 자식이 생기지 않도록 할 작정이었을 겁니다. 홍가에의 앙갚음이겠지요."

그래서 소하는, 동생이 아이를 주었다고 들었을 때, 정말로 깜짝 놀랐다. 애당초 약간의 예외를 빼면 타인을 저쪽에 난 풀 정도로 밖에 인식하고 있지 않던 동생이, 아이를 주워? 세상의 종말인가 라고 생각했지만---리심에게서 성장하고 있는 강유를 보고, 하늘의 배제(配劑)라고 생각했다.

"......당신이 <자식>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던 그 애의 생각을 돌려놓은 겁니다. 그것은 어떤 천변지이(天變地異)와도 같다고나 할까, 당신이라면 알 것입니다. 당신은, 리심에게 있어서,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양자>입니다. 당신이 장원급제했을 때의 그 애의 자랑스러워 하는 얼굴로 말한다면, 형인 나도 본 적이 없었을 정도입니다."

수려가 급제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리심은 진심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때에도 정말로, 그런 얼굴을 지어 주었던 것일까--?

강유는 찻잔을 꼭 쥐었다.

"변덕스럽게 주워졌다가, 설령 다시 한번 버려진다고 해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때까지는, 곁에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무언가, 도움이....."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고, 재미있어 하고. 하지만 언제나 옆에 있어 주었다. 돌려주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을 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 싫다고 고집을 피우며 그 손을 거부해도, 무리해서 주워주었다. ........그것이 굉장히 기뻤다.

단지 그것만으로, 강유의 세계는 일변했다.

이 사람을 위해서 살자고 생각했다. 이제 너 따위는 필요없다고 할 때까지, 곁에 있자. 가능한 도움이 되고, 기뻐해 준다면.

원하는 길은 오직 하나. 모든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만.

"언제 또 버려진데도, 지금까지 곁에서 지낸 것만으로,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타인의 하찮은 말에 간단하게 현혹되어, 침울해지다니."

"어째서요? 소중한 사람의, 소중한 사람으로 있고 싶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감정이잖아요."

"하지만, 그 사람에게만은 돌아봐 주기를 바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을 바라는 것은 오만입니다."

"그래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일방통행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이 리심에게 무언가를 받았다면, 리심도 당신에게 무언가를 받고 있겠지요. 그 성격으로 봐서 그런 상태로 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오히려 리심이 끼치고 있는 폐를 생각하면, 차감을 해도 비중은 거꾸로 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하고 소하는 생각했다. 오.히.려. 그뿐 아니라, 실제 소중한 것을 받고 있는 것은 리심 쪽일 것이다. 예전의 리심을 생각하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가능하면, 당신 쪽이 그 애에게 정나미가 떨어질 때까지, 곁에 있어주면 기쁘겠습니다. 물론 전국으로 수련을 나가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가지 않습니다."

"상당히, 안색이 좋아졌군요. 다행이다.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조카니까요."

강유는 무의식적으로 가슴이 뭉클해졌다. 소하님의 조카......얼마나 좋은 울림인가.

"고맙습니다, 소하님. 이제, 괜찮습니다."

"인사라면, 남장군에게."

".........예?"

"당신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아마 홍상서 일로, 그렇다면 나 이외의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좋은 친구를 가지셨어요."

소름이 끼쳤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녀석에게 알아차리게 하다니!

"다, 단지 끈질긴 인연입니다. 이, 이제 일하러 돌아가겠습니다!"

나중에 패준다, 꼭 패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강유는 발을 돌리다가, 문득 발을 멈추었다.

"맞다, 여기에 저--누군가 홍가의 분이 오셨었나요?"

"아니요?"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됐습니다."

그럼, 하고 가려다가,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아, 저....계속 말씀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리심님을 조금 더 신경 써 주십시오. 부고에서도 타인처럼 예의를 차려, 항상 침울해져 있어요. 그 사람, 정말로 소하님을 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하는 미소했다.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그 애는 귀여운 동생이니까요."

이런 점이 소하의 대단한 점이다. 저 리심에게 <귀여운> 이라는 형용사를 담담히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채운국이 넓다고 해도 이 사람 뿐일 것이다.

그 리심을 공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단 한사람인 형. 강유가 소하를 각별히 존경하는 것도 이 점이 제일 크다. 평소 자신은 리심에게 공처럼 다루어지고 있을 뿐인데.

(......소하님들이 그것을 이용한다면, 이 나라는 완전히 지배될 것 같군.)

자신과 리심은 소하의 손에, 왕은 수려에게 잡혀서, 참모에는 추영마저 이길 수 없는 우수한 가인이 붙어있다. .....무서워서 그 이상 생각하는 것을 강유는 그만 두었다.

소하의 저택을 나선 강유는, 태양이 눈부신 듯이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올려다보니 구름 한점 없는, 푸르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다시 조용해진 저택에서, 스륵, 하고 자기 이외의 옷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와도, 소하는 놀라지 않았다.

정원을 향해 개방된 문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소하의 발치로 냉랭하게 떨어졌다.

"......이강유는, 꽤나 훌륭한 젊은이가 된 것 같군요."

"응. 무척이나 말이지. 너도, 잘 왔다. 언제 올지 기다리고 있었어. ---지랑."

탁--하는 신발 소리가 돌계단에 울렸다.

뜰의 저쪽 끝에서 모습을 나타낸 30세 전후의 청년은, 한눈에도 대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풍격이 감돌고 있었다. 시선 하나로 다른 사람을 복종시킬 것 같은--주위를 압도하는 그 공기가 다르다. 몸가짐도 언동도, 틀림없는 귀인이었다. 그리고 기본색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금지색인 홍색.

"홍가 직계의 저택이, 설마 문지기도 없는 누옥일 줄이야."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고, 청년은 힐끗 웃지도 않고 소하를 보았다.

"오랫만입니다. 소형님."

차가운 눈과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

 

 

"겨우 돌아온 거냐? 형님이 계신 곳에서, 여러 가지 즐거운 생각을 하고 왔겠지."

상사의 비아냥도, 지금의 강유에게는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았다.

"예. 무척이요."

리심은 양자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하고, 부채 너머에서 살짝 웃었다. 그러나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지랑이 왔다."

일을 다시 시작하려던 강유는, 그 이름에 놀라 돌아보았다.

"지랑님이요!?"

"저런, 그 모습은 네가 있는 곳에는 오지 않은 듯 하군. 그렇다면......역시, 형님이 계신 곳으로 간 건가."

리심의 눈이 냉랭한 빛을 더했다.

"형님을 쫓아냈으면서, 잘도 뻔뻔스럽게 그 집에 발을 들여놓다니."

"기다려 주십시오. 지랑님이 직접 오셨다는 것은, 설마 홍주에 무슨 일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왔겠지. 그렇지 않다면, 녀석이 본가를 내버려두고 나왔을 리가 없다."

"그럼 무엇 때문에?"

잠시, 리심은 침묵하고, 양자를 힐끗 보았다.

"녀석이 움직이는 것은 예전부터 가문을 위해서 뿐이다. 그것을 위해서 나마저 속였던 놈이지."

분한 듯 리심은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지랑---녀석이 없었다면 벌써 옛날에 홍가 따위는 근절되었을 것을."

현재 차주에서 도망친 리심의 대행자가 되어, 딩주 대리로서 일족을 통솔하고 있는 홍지랑은 상당한 수완가로, 명실공히 리심 다음의 실력자였다. 그리고 근본적인 부분에서 리심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그리고 단 하나가, 결정적으로 달랐다. 큰형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보면.

소하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리심과, 몹시 싫어하는 지랑. 단 이 하나로, 그들은 마치 마주보는 거울 같은 존재가 되었다. 당주로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소하를 쫓아낸 지랑과, 그 판단에 열화같이 화가 난 리심. 지랑은 홍가의 장자답지 않은 큰형에 반발해서, 홍씨 일족 직계로서 홍씨 본가를 지탱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고, 한편 리심은, 경애하는 큰형을 싫어하는 홍가와 홍씨 일족을 미워하고 있었다.

리심이 홍가 당주의 자리에 오른 것은, 차남이야말로 홍씨 일가 당주에 걸맞는다고 지랑이 여러 가지 책략을 써서 그런 준비를 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리심이 소하 본인에게 강하게 설득당한 탓이었다.

"뭐, 좋아. 지금 시기에 녀석이 왔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건방지게도 여러 모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고 말이야. --강유."

"예." 

"수려가 없었던 하루 사이에, 상당히 성내의 공기가 바뀐 것 같지?"

"예. 묘한 소문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퍼뜨리고 다니는 것 같더군요."

문득 강유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희미하게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온 것 같군. 뒤는 네가 어떻게 해둬."

"......예."

강유는 침착하게 물러나며 대답했다. 그 때---제지하는 목소리를 뿌리친 무관이 여러 명 들어 왔다. 리심은 시선 하나로 그들의 발을 멈추었다.

"용건은?"

눈앞에 냉정하게 선 귀인 중의 귀인에, 하급 무관들은 꿀꺽 숨을 삼켰다.

".....구, 국시 부정 개입의 의혹으로, 홍상서, 귀하의 신병을 일시적으로 구속하게 되었습니다."

잘도, 하고 강유의 눈이 험악해졌다. 어리석은 음모가 눈에 훤하게 보인다. 게다가---.

---그 아가씨가 필사적으로 붙잡은 것을,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더럽히려고 하는가--!?

"............대머리가."

리심은 들은 사람 모두가 동사될 것 같은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알고 있었지만, 잘도 이 손에." 

완전히 위축된 하급무관들에게, 리심은 얼음의 미소를 띄워 보였다.

"아아, 구속인가? 상관없다. 데리고 가도 좋아. 구속시키도록 하게. ......그 결과, 너희들의 몸에 금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 없겠지만."

 

 

*****

 

 

"----주상, 정란으로부터, 자문(紫紋)이 찍힌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추영의 입실하면서 하는 말에,  류휘는 안색이 달라졌다.

"그 인장은 영월에게 주었다. 영월은 어떻게 되었지?"

"수려님과 함께, 유곽에 감금된 모양입니다."

"......네가 단골인 항아루에 말인가?"

"그렇습니다."

검을 움켜 쥔 류휘를 제지하듯이, 추영은 말을 끊었다.

"또, 십육가의 하부조직의 일부가 멋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십육가?"

십육가는 정예 근위인 우림군과는 달리, 잡다한 병사들의 모임이었다. 상층부라는 자가 된다면 통솔도 자각도 실력도 갖추고 있는 자가 있지만, 하급에는 힘자랑이나 하는 영락한 건달들도 많다. 덧붙여 말하면 홍가의 가신·정란도 이 십육가의 중부조직에 소속되어 있다.

"무엇 때문에?"

"......홍리심님을 포박하기 위해서 인 듯 합니다."

류휘는 말을 잃었다.

"하? 어째서 그렇게 된 거야!"

"오늘 하루, 굉장히 예의 소문이 퍼졌습니다."

"아아, 수려가 국시를 부정으로 급제한 것 아닌가 하는 거 말이지."

주목받고 있는 자의 소문은 흥미 본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인구에 회자된다. 특히---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자인 만큼 악의 있는 소문은 천리를 돌 듯이 퍼진다. 궁중이라는 장소라면, 더 한층.

"국시를 담당하는 예부가 소문의 발원지인 듯 하니까, 묘한 신빙성이 있습니다. 원래 여성관사를 유쾌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관사들의 사이에 맺혀 있던 것이 폭발한 것도 있습니다만, 그것을 일부러 부채질 한 자도 있습니다. 그녀를 인정해 주는 관사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아직 소수파입니다. 분명 그 남자도 이 사이에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요. 그리고 어리석게도 수려님의 후견인 리심님에게 까지 죄를 물으려고 한 거지요."

류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뭐라고 해도 바보로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강유도 아닌 리심에게 손을 대다니."

"그건 그렇고 여기서 또 하나, 남가의 정보망에 걸려든 것이 있습니다."

".....뭐, 뭐야?"

"현재, 홍가의 대리인·홍지랑님이 귀양에 입도, 소하님에게 가 있다던가 어떻다던가 하더군요."

류휘는 새하얘졌다.

"최근, 수려님의 신.변. 정.리.를 해주고 있는 것은, 리심님이 아니라 그였던 것 같습니다."

"............................................"

"울고 싶은 듯한 얼굴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봐요, 그러니까 최소한의 피해로 하도록, 노력해 달라고 했잖아요. 그 리심님을 상대로 아슬아슬 할 때까지 버티고, 결국 당주로 만들어 버린 사람입니다. 화나게 한다면 무서워요."

".....조, 조금 더 녀석이 우쭐해 준다면, 손쓸 방법도 있겠지만....."

"---안심하셔요. 우쭐해져 있습니다."

강유의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성큼성큼 책상까지 와서, 양손에 안고 있던 서한을 털썩 놓았다.

"--홍수려의 진사 반상을 요구하는 연명서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연이어 오겠지요."

강유는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띄었다.

"<홍진사가 정당하게 급제했다는 것을 증명할 때까지는, 진사로 인정받을 수 없다. 내일 정오에, 그녀에 대한 사문회를 연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 서류."

류휘가 일어섰다.

"--잘 했군, 강유! 잘 말하고 쓰게 했어!"

"강유, 만일 딸과의 결혼을 안건으로 내놓는데도, 걱정하지마. 이 친구가 궁지에서 구해주고 없었던 일로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런 건 안나와-----ㅅ"

류휘는 먹과 붓을 꺼내어, 맹렬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조서를 바로 각 고관에게 돌려. 하는 김에 연명서와 그 서류도 붙여서 회람시켜라. 내일 정오에 사문회라고? 열리도록 내버려 둘 수 없지."

거의 갈겨쓰기를 끝내고, 류휘는 검을 들고 일어섰다.

"--수려가 있는 곳에는 내가 간다."

강유는 다짐을 두었다.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오십시오. ......도망가지 마시고요."

"......아, 알았어."

"원망하려면, 그 우두머리 영감을 원망하라고요."

류휘는 지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팔랑팔랑하고, 자두나무 꽃이 흩어지고 있었다.

하얀 꽃잎이 눈처럼 춤추고, 빙글빙글 날리면서 찻잔에 부어진 채인 차 위로 떨어졌다.

"제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까?"

그 꽃잎에 시선을 떨어뜨린 채 지랑은 묻자. 소하는 확실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영월군에게 들었으니까. 너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실은 수려에게 주워지기 전에, 영월은 지랑에게 주워졌다. 길가에서 자고 있던 그를 수레에 실어, 저택으로 데리고 돌아와 하룻밤 머물 곳을 주고 밥을 먹여주었던 것이다. 출사 때까지 있으라고 말했지만, 고지식한 영월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기댈 수 없다고 말하고 나왔던 듯 하다. 그 후, 굳이 사양해도 용납하지 않는 수려에게 억지로 주워졌던 것이지만.

"취해서 길에 구르고 있었던 그 소년이 통행에 방해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장원이 아니었다면 돕지 않았을 거구요."

"그럴까?"

꽃잎이 떨어진 차를 다시 끓여오겠다는 소하의 손을, 지랑이 멈추었다.

"제가 끓이겠습니다. 소형님의 차는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냉정하게 그렇게 말하고, 지랑은 형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정말로, 여전하십니다. 미적지근하고,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하시는군요. 홍가 직계로서의 긍지도 없고, 단지 책만 읽을 뿐. 관위를 가져도 그 이상으로 나갈 마음도 없지요. 아무리 비방을 당해도 헤실헤실 웃고 말입니다. 내참, 어째서 당신 같은 사람이 홍가의 장자로 태어난 것인지---"

정확히 둘로 따라진 찻잔에, 소가는 눈초리를 부드럽게 했다.

"---이 한달, 수려를 조사했습니다."

"응, 그것도 들었어. 홍구랑이라는 수려의 숙부를 칭하는 남성으로부터, 하룻밤 숙소와 식사의 은혜 갚음으로 출사 후, 수려의 정보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주어도 좋을까요 라고."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소가는 알고 있었다. 급제했기 때문이라는 것, 여관사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관사들로부터 파견된 건달들의 괴롭힘. 그것을 안 구랑은 즉석에서 손을 써서, 수려와 이 저택을 지키기 위해 철저한 수비를 펼쳐 주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달 가까이 사람이 없었던 이 저택이, 엉망이 되지 않고 끝났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설령 소가를 싫어하고 있다고 해도, 그 이상으로 그는 올곧은 청년이었다.

".....정말 잘도 나불나불 거렸군요."

'영월군은 제대로 된 아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어땠지? 수려도 잘 컸지?"

"평범합니다. 서민의 딸과 큰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국시급제는 실력인 것 같더군요. 속은 당신보다 조금 나은 듯 합니다."

담담하게 대답하고, 구랑은 냉정하게 형을 보았다.

"형님은, 같은 성 안에 있으면서, 딸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정말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 알고 있을 리가 없겠지요.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소형님께서 무언가 할 수 있을 리도 없고요."

소가는 대답할 수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저는 당신이 싫습니다. 당신을 쫓아냈던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려형님이 아니었다면, 이 10여 년을 홍가는 헤쳐나가지 못했을 겁니다."

"아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도 당신은 우리들의 형님이고, 홍가의 장자입니다."

사르르 흩날리는 자두나무 꽃을, 구랑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신의 딸, 이 나라 최초의 여관사는, 홍가의 장녀입니다."

"구랑---"

"이번에는, 단지 미리 봐두는 겁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받아가겠습니다. 차대의 홍가를 위해서. 그 아가씨에게는 리희(李姬)가 되어 주도록."

그 의미를, 소가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구랑은, 지나치게도 올곧은 청년이었다. 설령 형 둘이 홍가를 나왔어도, 자신이 당주가 되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혈통과 순번에 구애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일 려심이 무능력했다면 망설이지 않고 당주의 자리에 올랐을 테지만, 려심의 능력이 높고, 일족 종주로 걸맞는다는 생각했으므로 그는 차남을 당주로 앉히기 위한 책략을 차례차례 썼다. 그는 항상 무엇이 가장 좋은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정하면 어떠한 어려운 일도---설령 그 려심을 화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망설이지 않고 실행해, 포석을 놓고 있다.

만일 구랑의 자식이 차기 당주가 된다고 해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구랑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소가도, 그렇게까지 구랑에게 짐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는 너무 구랑이 가엾다. 구랑이 그것을 알아채고 있지 못하니까, 더욱더.

눈같이, 자두나무 꽃이 피어 있었다.

소가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 기척은.)

정원의 나무가 흔들렸다. 입을 연 것은 구랑이었다.

"무슨 일이냐?"

"---종주님이 일시 궁성에 구속되었다고."

홍가 직속의 <그림자>의 말에도, 소가와 구랑은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이유는?"

"소가님의 따님, 수려 아가씨의 국시 급제에 관한 부정 행위를 저지르셨다고."

려심의 형제 두 사람은 이상한 얼굴을 했다.

"바보로군. 려형님이 들킬만한 부정을 저지를까? 누군가의 조작이다. 아니--형님이 간파하지 못했을 리가 없지. 그렇군, 일부러 잡혀준 건가?"

구랑은 힐끗 소가를 보았다.

".....괜찮겠지요, 저도 적당한 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홍씨 일족--게다가 홍씨 본가를 적으로 돌리면 어떻게 되는지, 눈으로 보게 해주지요. 상대방의 정보 및 금후의 상황을 상세하게 보고해라."

"예. 그리고 수려 아가씨 일입니다만--두영월과 함께 유곽 항아루에 감금되어 계십니다. 시정란은 지금 궁성에. 또, 성내에는 수려 아가씨의 진사 반상의 소란이 일어나, 내일 정오에 아가씨에 대한 사문을 열기로 결정된 듯 합니다."

과연, 하고 구랑은 처절하게 웃었다.

"그 사문에 나가지 못하도록, 유곽에 감금한 거군."

소가는 이마를 눌렀다.

수려와 영월의 몸을 염려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만은 아무런 걱정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왕도 알아차리고 있고, 무엇보다 려심을 두 번이나 화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구랑까지 있다.

(......그 남자도, 굉장히 때가 나쁘군.....)

아마, 이번에는 사람들의 앞에서 대머리라는 것을 폭로 당하는 것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소가의 지나치게 유능한 동생들과 정면으로 부딪힐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소태사 라든가 남가의 당주들 정도다. 애당초 들키지 않고 그것을 옮기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어리석은지 어떤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소형님, 당신은 한직이라고 하더라도 고관입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이것을 궁성에 있는 강유에게 전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요."

구랑이 겹옷에서 꺼낸 작은 상자를 보고, 소가는 엉겁결에 말을 삼켰다.

"술에 취한 작은 장원을 주웠을 때, 술값 대신으로 교환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증거가 되겠지요. 건달들을 고용한 주인은 이미 조사를 끝냈습니다. 홍가 당주 대인을 찍은 서한을 붙였으니, 훌륭하게 증명력을 발휘할 겁니다."

구랑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구랑, 너의 감정으로, 이 반지의 진위는?"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원래의 반지를 잘 알고 있는 자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만들 수 없지요. 차씨 본가도 속아넘어간 것 같더군요. 그 일족 중에서 진짜를 밝혀낼 수 있는 것은, 돌아가신 차원준님과, 대부인 표영희님 정도겠지요. ---정말 훌륭한 가짜입니다." 

얽힌 실이 손쉽게 풀려버린, 그런 감촉이었다.

적은 겨우 소인배 하나, 이쪽으로 말하자면 우수한 거물들만 와 있다. 아무래도 이번만은 자신과 주취가 나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고, 소가는 몰래 한숨을 쉬었다.

 

 

******

 

 

자문의 편지를 류휘에게 전하고, 정란은 빠른 걸음으로, 우림군의 무관 숙위 쪽으로 걷고 있었다.

제일 안쪽의 방으로 향했다. 낯익은 호위에게 중개를 부탁하자, 바로 통과되었다.

"여어, 겨우 온 건가?"

우우림군 대장군인 백뇌염이 히죽 웃었다.

"아가씨의 일이 소란스럽게 되었을 때부터, 슬슬 올 거라고 생각했지. ---좋은 낯짝을 하고 있군. 각오는, 되었나?"

정란은 포기한 듯이 눈을 감았다.

"백대장군."

"응."

"부탁이 있습니다."

"알았어. 들어주지. 그 소원. ---뭘 원하지?"

"검을."

정란이 조용히 대답했다.

지금 허리에 차고 있는 것 같은 무딘 칼이 아니라, 진짜로 사람을 베기 위한 검을 찬다. ---설 자리와 지위와 권력을.

시선만으로 그렇게 말한 정란에, 백대장군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