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국 이야기 (彩雲國物語) 3권 -3장- 봄의 신인

제3장   봄의 신인 연수현장 안

 

 

"바보 같으니.......그, 그 작은 상자를 잃어버렸다고!?"

기루의 최상층에서 그 정보를 들은 초로의 남자는, 진땀이 배어서 방을 조급하게 돌아다녔다.

"이미 발견했다면 연락해 버렸겠지. 큰돈과, 모처럼의 승진의 기회가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닌가!"

"어르신, 제발 진정하셔요."

화려하고 요염하고 귀에 기분 좋은 목소리가, 달콤하게 울렸다. 그 목소리 이상으로 아름답고 요염한 미인이, 술을 잔에 따른다. 진정하지 못하면서도 일단 의자에 앉은 남자는, 째릿 건달들을 노려보았다.

"이 무능한 것들! 모처럼 많은 돈을 지불해 키우려고 했는데---"

"나, 나으리. 마, 마음이 짚히는 곳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아마, 빼앗겼을 겁니다."

"---누구에게냐! 되찾을 수 있나!?"

"그, 그것이......., 하지만 빼앗은 놈의 거처를 알고 있습니다. 나으리도 알고 계시지요? 지금 소문의, 그 여관사라는 놈과 함께 있는 꼬마입니다."

술잔을 단숨에 들이킨 남자는, 묘한 얼굴을 했다.

"뭐라고? ---그 애송이가?"

건달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서, 조금 거짓말을 했다.

".......그, 떨어뜨린 작은 상자가 그 꼬마가 있는 곳으로 굴러가서, 녀석이, 눈 깜짝할 사이에 주워가 버렸습니다. 나으리가 부랑자로 만드셔서,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여관사와 함께 걷고 있어서---"

"어째서 그것을 빨리 보고하지 않았나! 제길, 머리는 어쨌든 혈통과 가정교육이 나쁜 것은 숨길 수가 없는 건가? 그러나---흥, 뭐 좋아. 그 애송이라면 이쪽의 손 안......"

남자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다시 뚝뚝 땀이 솟기 시작한다.

".......여하튼, 애송이와 계집애가 함께 있다.......계집애의 후견인은 홍리심."

남자는 잊지 않았다. 홍리심이 이강유에게 명해 자신에게 했던 일을. 그 굴욕적인 일이 생긴 이래, 남자에게 있어서 리심은 미워하고도 남을 원수가 되었다. 게다가 리심은 눈치가 빠른 애송이다. 수려인가 하는 계집애를 거쳐, 그 반지가 그의 손에 전해지기라도 한다면---.

(반지도, 돈도 출세도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 계집애와 꼬마 중을 위협해서 반지의 소재를 불게 할까? 그러나 때가 좋지 않은 것이 그들은 궁성에 틀어박혀 있다. 서투르게 위협해서 리심에게 이야기한다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요즘 리심에게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반지의 일 따위는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짓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럼 어떻게 한다?---남자는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생각을 짜냈다.

"......그래."

진짜를 잃어버렸다면, 지금부터 가짜를 만들어서, 그쪽을 진짜인 것으로 하면 된다. 원래 발견 소식을 입수한 것은 자신이다. 신빙성이 있다. 그렇다면 가짜 반지가 완성되기 전에 만의 하나라도 그 애송이들이 외부에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재빨리 손을 쓴다면.

손을 써? 남자는 웃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좋았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 따위.

"죽은 자는 말이 없지--."

"어르신?"

"호접, 볼일이 있다. 아쉽지만 오늘 밤은 작별하지."

아쉽군요, 라고, 여자는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한숨을 흘렸다. 

 

 

*****

 

 

가면의 호부상서는, 결재 도중에 갑자기 손을 멈추었다. 생각에 잠긴 듯이 날씬한 손끝을 턱에 댄다. 그리고 천천히 결재가 끝난 서한에서 몇 장을 골라냈다.

그 때, 경시랑이 한숨을 쉬며 방으로 들어왔다.

".......하아, 수군들 불쌍하게도...."

"또 말하는 건가?"

작년 여름, 수려는 혹서로 픽픽 쓰러져 전대미문의 일손 부족이었던 호부에서 소년인 척하고 일을 도우러 들어왔었다. 바지런히 일을 잘하는 수려를 경시랑은 <수군>이라고 부르며 귀여워했고,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된 지금도 어쨌든 그렇게 부르고 있다.

"당연하잖아요? 수군에게 주어진 일, 각 부서의 변소청소 잖습니까!? 두진사는 신발닦이! 다른 진사들은 각 부서로 분배되어, 여러 가지 일반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뭐라고 해도 나라의 보물일 터인 상위 두 사람이 변소청소와 신발닦이라니 믿어지십니까!?"

"그 노관사니까 말이야. 어쩔 수 없어."

"......그러고 보니, 당신의 때에도 그 분의 지도를 받으셨지요."

"아아. 나는 조리소에서 매일 접시를 닦았어. 리심이라는 놈은 마구간에서 일을 도왔고."

경시랑의 눈썹이 올라갔다.

"뭐라고요? 당신이 겨우 그런 일을!? 어째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아닙니다. 어째서 노관사를 방치해두시는 거지요? 지금의 당신이라면 퇴관으로 쫓아내는 것도 가능할 텐데."

"기어올라올 자는 기어올라온다. 내버려 둬."

"하지만."

"그것보다 유리, 이것을 수려와 두진사의 일에 추가해 줘."

황상서는 몇 십장의 서한을 경시랑에게 떠맡겼다.

"확실히 변소청소와 신발닦이는 오전 중까지로, 오후부터는 서한의 정리로 부고에 있겠지. 두 사람이 부고에 오기 전에, 이것을 일 중에 적당히 섞어 둬."

간단히 명령받자, 드디어 경시랑의 분노가 폭발했다.

"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잘못 봤습니다. 지금도 미움을 받아, 그들이 주어진 일 이상의 일을 각 관사들에게 떠맡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일을 안주고 괴롭히는 것보다 더 낫잖아. 됐으니까 말한대로 해."

"봉주!"

"---가봐. 너는 나의 부하잖아. 불만은 가는 도중에 그 서한이라도 보면서 생각하라고."

분노로 뺨을 붉히면서, 경시랑은 서한으로 눈을 돌렸다---그리고 보는 동안 표정이 달라졌다. 차례차례 서한을 넘기고, 마지막에는 낮게 중얼거렸다.

".....봉주, 당신은."

"가봐. 이제 불만은 듣기 싫어."

예를 취하고 퇴출한 부하의 모습을 바라본 후, 황기인은 다시 일을 시작했던 것이다.

 

 

*****

 

 

(.......후. 상등이 아니잖아!)

수려는 빡빡 기세좋게 변소의 바닥을 닦고 있었다.

"이런 일로 지쳐서 주저앉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야! 변소청소 같은 삯일 지금까지 썩어날 만큼 많이 해왔으니까 말이야!"

기운찬 목소리도, 냄새를 막고 있는 수건 덕에 이상하게 분명치 못했다.

"두고 봐. 반짝반짝하게 닦아서 노관사를 깜짝 놀라게 할거야."

오전 중은 각 부서의 변소청소---그것이 노관사가 선고한 수려의 일이었다.

영월의 구두닦이와 더불어, 상당한 술렁거림이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는 대부분 조소로 바뀌었다. 어울리는 일이라고.

항의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노관사의 표정은 잠시도 흔들리지 않았다.

"일을 정하는 것은 나다. 각 진사에게 어울리는 일을 배정할 작정인데, 무언가 이견이라도 있는 건가?"

째릿 영월과 수려를 보았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영월은 변함없이 태연한 웃는 얼굴로. 수려는 반발을 띤 결의의 얼굴로.

절대 주저앉지 않겠다---그렇게 생각했다.

"아아 정말, 그렇다고는 해도 지독하네. 위대한 관사님도 내놓는 것은 같은 거군."

일단 명가의 영애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잡스러운 말을 하며, 뾰로통 화를 내면서, 좍 나무통의 물을 뿌렸다. 이것으로 여기는 종료. 아니.

"잊어버렸다. 이거 이거."

수려는 피기 시작한 벚꽃 한 송이를 창 근처에 두었다.

"뭐, 이것으로 변소도 조금은 나아졌네."

볼의 땀을 닦아낸 후, 밖으로 나왔다. 부드러운 봄바람에, 수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그렇게 하면 마음에 쌓인 것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오, 구리다, 구려. 어쩐지 돼지 냄새가 나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수려는 뒤돌아보았다. 두 명의 관사를 확인하고, 고개를 숙였다.

"봐. 암퇘지가 있네."

"더럽군요. 돼지라고 해도, 역시 암컷의 출입은 금하는 법인데. 변소라고 해도 신성한 조정을 돌아다니는 것은 불쾌합니다. 이번에 진언하지요."

"좋아."

무슨 말을 해도, 수려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본 관사들은 사관들은 재미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 변소로 걸어갔다.

"그래. 자네 들었는가? 예의---"

"아아, 상당한 액수가 움직이고 있는 듯 합니다. 어떻게 해서 조달하고 있는 건지."

두 사람이 변소로 들어간 후, 수려는 등을 폈다. 찌르르, 양손이 저렸다. 너무 세게 쥐고 있어서, 새하얗게 된 손바닥에는, 진한 손톱자국이 남아있었다.

그것을 응시하면서, 수려는 조금 눈을 감고, 얼굴을 들었다.

"이거, 미안하군. 장원하신 분께 신발닦이 같은 걸 시켜서."

말과는 반대로, 조소와 신발을 던지는 관사에, 영월은 웃는 얼굴을 보였다.

"아니요- 일이니까요."

장원이라고는 해도, 영월은 아직 13세이고, 게다가 귀족과 대가의 후원도 없다. 권력을 갖지 못한 지금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괴로운 대관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영월에게, 시기하고 질투하는 시선을 보내는 자가 있고, 호의적인 자는 역시 드물어서,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있어서도 궁중은 마음 편한 장소는 아니었다. ---수려 정도는 아니었지만.

"흑주라는 시골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는 너에게는, 익숙한 일일까?"

"예. 그 말씀대로입니다-. 아, 하지만 그런 멋진 신발은 닦아본 적이 없어요."

영월은 무슨 말을 해도 항상 빙긋빙긋 웃고 있었다. 그것이 반감을 더 한층 부채질하는 일도 있다. 신발을 신고 떠나기 직전, 실수한 척 일부러 영월을 차고 가는 자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영월의 웃음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오늘은 이것으로 49명 째네요-. 이제 한 명이면 50명 달성입니다."

"그럼, 부탁해."

살짝 단에 올려진 멋진 상등의 신발에, 영월은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빙그레 웃었다.

"--임금님의 신발을 닦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예요-."

"음. 나도 눈앞에서 닦아주는 것은 처음이야."

흥미진진한 듯이, 류휘는 쪼그리고 앉아 신발을 닦는 것을 보고 있었다.

".....과연, 신발은 이렇게 해서 반짝반짝해지는 건가?"

"신발에 따라서, 닦는 천의 종류도 다릅니다-. 상처 나기 쉬운 신발은 부드러운 천이지요."

"흐음. 할머니의 지혜 주머니라는 거군. 아니면 꼬투리 완두(莢豌豆) 지혜."

"......콩(豆) 지혜인가요-?"

잠시 대화가 중단되었다. 천이 스치는 작은 소리 속에서, 류휘가 갑자기 물었다.

"괴롭지는 않나?"

영월의 미소가 깊어졌다. 아니요-, 라고 그는 말했다.

"신발닦이라도, 많은 공부가 되고 있으니까요."

"......그런가. 이제 조금만 참아,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그만 두겠다."

"저보다, 수려씨 쪽을 신경 써주셔요. 계속 큰일이예요."

류휘는 살짝 웃었다.

"알고 있다. ---영월."

"예?"

"그대에게, 이것을."

손에 건네진 작은 꾸러미에, 영월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 생각 없이 펼치고, 흠칫 눈이 휘둥그래졌다.

"무슨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써."

"에, 하, 하지만 이것은--차라리 정란씨가 가지고 있는 쪽이."

"아니.....지금의 정란에게는, 수려의 곁에 계속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곁에 있다고 해도, 영월처럼 당당하게 모습을 나타낼 수는 없다. ---지금처럼.

그것이, 지위의 차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끝났습니다. 자아."

내밀어진 신발을 보고, 류휘는 감탄했다. 마치 새것 같다.

"그럼, 슬슬 시간도 되었으니,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갈까요-?"

"흐음. ........그대는 항상 빙긋 웃고 있군. 무슨 말을 들어도."

비웃음도 아무것도 아닌 진지한 얼굴의 왕에, 영월은 쓴웃음을 지었다.

"별 것 아니예요. 게다가 저,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먹고 있습니다. 단 한번의 인생이니까요-. 웃으며 지나가는 쪽이, 더 낫잖아요?"

".......젊은데도, 진리를 깨닫고 있는 건가?"

"아하하-그런 말 자주 들어요. 옛날에, 죽을 뻔해서 인지도 모르겠어요-."

시원시원하게, 명랑하게 영월은 웃었다.

정오의 종이,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또 온 거예요?"

당연한 얼굴을 하고 태연하게 곁에 선 류휘에, 수려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 호위라고 말하지 않았어? 지금부터 46시간 달라붙어 있을 생각이야. 부르면 어디라고 해도 나타난다."

"--저주같이 성질이 나쁘네요. 그렇지만 당신 부르지 않아도 오잖아요."

"틀려. 달라붙어 있을 작정이니, 여분을 두는 거 같은 거야. 이것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안심이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은 확실히 불안해욧!"

점심은 부고의 가까이, 사람이 오지 않는 연못의 근처에서 먹는 것이 수려와 영월의 일과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려는 기탄없이 노성을 질렀다.

"---당신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 나의 얼굴을 알고 있는 자는 중신 정도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영월은 평소처럼 조마조마해 하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대체, 호위라면 전처럼 정란으로 된 거 아니예요."

"안돼."

"어째서요."

"정란은 그냥 문지기다. 십육가에서도 중간 계급의 무관으로, 입전하는 데도 상당한 제한이 있어. 원래 누군가의 호위가 임무가 되는 지위가 아니다."

"그래서, 당신이."

말을 하고, 수려는 입을 다물었다.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아무 것도 아니예요."

슬쩍, 류휘는 시선을 엉뚱한 쪽으로 향했다. 나무 그늘에서 완전히 기척을 숨기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인가?---류휘는 알고 있다. 누구보다 걱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지금의 정란은 모습을 나타낼 수 없다.

"그대들 두 사람은, 지금이 가장 위험하다. 관위도 역직도 이렇다할 후견도 없고, 갑자기 모습이 사라져도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나도 공연히 수색할 수도 없고, 죄도 물을 수 없다."

"---목숨이 위험하다는 건가요?"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류휘는 숨기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그렇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간단하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하는 무리는, 보통 그 근처를 활보하고 있어. 원래, 여인관사등용은 맹렬한 반대를 받았고, 지금도 그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쫓아내려고 하는 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영월은, 내밀려고 했던 세 사람 분의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당황하며 주워 들어 손수건으로 닦았다.

"영월군도?"

"수려 쪽이 위험하지만. 영월은, 귀족들이 진사를 위해 여기 저기서 개최하는 연회에서, 야단스럽게 혼담을 거절했지. 그 다음 술도."

"아아, 상당히 딱 잘라 거절했어요."

"에? 하, 하지만 저는 아직 13살이고, 게다가 술을 마시지 못해서."

"거절하는 방법이 서툴렀어. 술을 마시지 못해도 마시는 척 했다면 좋았을 거야. 바로 정면에서 잔을 거절하면, 거만한 귀족들은 바보취급 한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아. 혼담도 애매하게 해두고 나중에 살짝 거절하는 것이 지위가 높은 자의 몸가짐으로, 여러 사람의 면전에서 차면 <너와 친척? 후하하하하. 얼굴을 씻고 다시 오라고> 라는 것이 돼."

소태사로부터 또 이상한 본을 받은 것 같네, 라고 수려는 생각했다. 은밀하게 요즘의 왕의 치우쳐진 독서경향을 염려하고 있는 수려였다. 

그러나 그런 예의범절을 전혀 알지 못했던 영월은 뛰어오를 듯 깜짝 놀랐다.

"에에!? 그, 그-런 건가요!?"

"귀족 쪽에서 본다면, 무위무관의 평민을 우리 가문의 사위로 맞아주려고 하는데 뭐냐 그 태도는, 하고 격노하는 거다. 조정에 모인 자들은, 권력다툼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소재로 삼는다. <들었나? 어디의 그 대감, 무위무관의 평민 출신에게 혼담을 거절당했대> 라는 소문 하나로 엉망진창으로 바보취급 당하고 깔보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두영월의 탓이라고 도리어 원한을 품는 거지. 그러니까 이미 원한을 사고 있어. 이것도 상당히 위험하다. 체면에 이상하게 구애되는 자라면 특히."

"....................... ......................에-, 수려씨, 식기 전에 차 드셔요."

명백하게 현실도피를 하는 영월에, 수려는 동정하며 입을 다물고 찻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조금 이상한 맛이다.

"하지만, 괜찮아. 그대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류휘는 조리소에서 매일 배달해주는 도시락을 부랴부랴 열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건 생각하지 않아도 좋아. 확실히 지킨다."

일순간 드러난 예리한 표정에, 수려는 숨을 삼켰다.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볼에 밥풀 묻히고 말해도. 당신 전혀 진보가 없어요."

볼에 붙은 밥풀에, 잘못 보았다, 고 수려는 생각을 고쳤다.

 

 

*****

 

 

"오오, 이 시기의 너의 방은 굉장하네."

강유의 집무실로 들어가며, 추영은 과장되게 눈썹을 올려 보였다.

그러나 실체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고가의 편지함과 번쩍번쩍하는 물품들이 산처럼 수북히 방의 한쪽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강유는 지긋지긋한 듯이 한숨을 쉬었다.

"흥, 뇌물을 보내 오는 놈에게 내가 좋은 얼굴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고나 할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배짱이 없는 것뿐이잖아. 대부분은 단지 문안을 드리는 거지."

적당히 훌훌 편지을 넘기는 추영. 거기에는 <제발 제발 제발 잘 부탁합니다> 라고, 목적어가 없는 편지 내용이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필사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편지였다.

"이번 제목에서 최종적인 지위를 결정하는 것이 너와 호부상서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물건은 차라리 나아. 판다든지 협박의 증거로 쓴다든지 하는 사용 방법도 있으니까 말이야."

한창 기분이 좋지 않은 강유에, 추영은 바로 분명히 깨달았다.

"하하아, 또 오싹오싹한 때가 시작되고 있는 건가, 혼담."

"--내참, 나는 여자를 싫어한다고 얼마나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대체, 승진 목적으로 맞선 이야기를 가져오는 놈 따위라면 잘라버리는 게 나을 거다. 바보 아니냐, 정말."

탁하고 호화로운 두루마리로 책상을 두드렸다. 아무래도 맞선 상대의 실물 그림인 듯.

"앗핫하, 진사급제 때가 생각나는군."

"생각하지마! 어둠에 묻어둬. 기억에서 삭제 말소해----!!"

"너는 별반 여성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던 탓에 완전히 비뚤어졌지."

"비뚤어진 게 아냐! 여자의 본성을 알게 된 거지. 그래, 좋은 경험이었다고!"

"궁지에서 몇 번이나 구해준 재치있는 친구가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지."

"도도도도와주다니 한번도."

"응, 완고한 너는 절대 말하지 않겠지, 궁지에서 구해준 내가 도와준 거잖아."

"-------읏"

"이심전심이라는 건 역시 사랑일까?"

"큿, 너 따위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어 버렷!!"

굉장한 기세로 날아온 그림 두루마리를, 추영은 어렵지 않게 받았다. 펄럭 두루마리가 풀렸다.

"그때 호부상서도 재미있어서 마지막까지 도와주지 않았---어라, 이 그림의 여성은."

본 적이 있는 그림에, 추영의 시선이 멈추었다. 강유가 픽 코웃음을 쳤다.

"재미있지? 가지고 싶다면 가져."

"확실히 재미있군. 받아두지. .....하지만 너와 호부상서님에게 호된 꼴을 당했는데, 아직 딸을 혼담상대로 보내다니. 변함없이 얼굴이 두꺼운 남자군."

"그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 사람이--"

"하지만 실행한 것은 너잖아."

괴로운 과거를 떠올리고 반박하는 강유를, 추영은 가볍게 막았다.

"뭐-볼 만했지. 사람들의 면전에서 멋지게 네가 가발을 날려버렸잖아. 날아간 가발이 또 멋지게 등불에 타서, 한순간에 재가 되었을 때의 이 세상이 끝난 것 같은 그 남자의 비명에 또 대폭소. 그것으로 어떻든 홍리심의 눈을 거스르면 무섭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었지. 본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필사적으로 가발을 계속 쓰고 있다는 것도 근성이 있지만."

"---무언가 할 얘기가 있었던 거 아니야?"

"아아, 그래, 그래."

추영은 솜씨 좋게 두루마리를 말고, 톡톡 자신의 어깨를 두들겼다.

"연청에게서 차주를 나왔다는 편지가 도착했어. 도착은 한달 반 후. 그 아가씨--향령도 함께라는 것 같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강유는 눈을 크게 떴다.

"이유는?"

"자신이 차주의 내정을 전하고 싶다는 듯 하다. 그리고 수려님과도 만나고 싶다고."

"............."

"어떻게 할거야? 수려님은 향령이 차주로 간 진짜 이유를 모르고 있어."

"어떻게 할거냐고? 망설일 필요가 어디 있어."

강유는 일어섰다. 차분한 얼굴로 창가에서 아래를 보았다. 그 시선의 끝에는 부고가 있다.

"그때와는 달라. --지금의 수려는 관사다."  

추영은 웃었다. 그가, 그렇게 스스로 대등하게 대하는 여성은, 그녀 하나다.

"......그렇군. 나도 그렇다고 생각해."

추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의 무뚝뚝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강유, 너, 여성의 본성을 알았다고 말했지만, 수려님도 그런대?"

"그 애는 제자다. 여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하지만, 어엿한 여성이다. 그러니까 강유, 여성을 싫어하는 건 좋지만, 이것만은 잊지 말아줬으면 해. 네가 알고 있는 것은 여성의 근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척 하는 강유에, 추영은 조금 웃었다.

"그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더군. 싫어도 소문이 귀에 들어오고, 곤란한 광경도 눈에 보여. 수려님의 그 웃는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는 것은 정말로 유감이다."

그녀의 입장을 생각하고, 그들은 홍가를 방문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회랑 등에서 가끔 만나는 일도 있지만, 수려는 반드시 얼굴을 숙이고 있다. 같은 성내에 있으면서도, 그 얼굴을 정면으로 보는 일도 없어지게 되어버렸다. 조정에 편입된 그 때부터, 자신의 차이, 지위의 상하가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무관인 수려가 정면으로 그들을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나도 외롭다고 생각될 정도니까 말이야. 그것을 주상이 당한다면, 상당한 타격을 받겠지."

지고의 자리, 절대의 존재.

스스로 어리광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공사를 혼돈하지 않는 그녀라면, 망설이지 않고 왕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할 것이다. 자류휘라는 한 사람의 남자가 아닌, 일국의 주인에게.

"수려님에게는 귀찮기 짝이 없겠지만, 호위의 건을 승낙한 것이 정답이었다고 생각해. 왕의 부재를 얼버무려야 하는 너는 큰일이겠지만 말이야."

"큰일이라는 한마디 말로 끝낼 게 아니야. 주위를 속이는 것도 힘들다고."

"힘내. 그럼, 나는 갈게. 이쪽도 다른 일로 좀 바쁘거든."

빙긋 웃고, 추영은 방을 나갔다.

 

 

회랑을 걸으면서, 남추영은 시선만으로 지금 막 나온 집무실을 보았다.

--강유는 제대로 알아차리고 있을까? 수려의 입장과, 그리고 자기 자신의 입장을.

(리심님에게는, 아이가 없다.)

있는 것은, 이씨 성을 부여받은 양자뿐. 어쨌든 사상 최연소의 재상이 될 거라고까지 일컬어지는 그를, 그 홍씨 일족이 방치해 둘 턱이 없다.

그리고 또 한 사람--본래라면 정통 홍가의 종주였을 장남, 소하의 딸. 누구보다도 피가 진한 홍가 직계의 장녀.

재능과 혈통. 이 두 사람을 홍씨 일족은 어떻게 생각할까?---조금 생각을 하면 누구라도 용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부터 홍가에는, 그 무거운 가명을 이어야 할 아이가 의외일 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리심님은, 강유에게 홍씨 성을 주지 않았지?)

이것만은 리심에게 몇 번이나 캐물으려고 했으나 할 수 없었다. 소중한 친구가, 정말은 그것을 굉장히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추영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

 

 

정오를 지나고 나서가, 수려와 영월에게 있어서 진짜 승부였다,

".......으.....끄.....끝나지 않아....."

심야--수려와 영월은 부고에 틀어박혀 있었다. 방대한 일의 무게에, 첫 출사이래 두 사람은 한번도 저택으로 돌아간 예가 없다. 부고에서 새벽녘을 보는 것도 이것으로 연속 10일째에 돌입이다.

"끄, 끝나질 않네요."

피로의 정점을 넘은 탓인가, 묘하게 맑아진 눈을 말똥말똥 크게 뜨고, 수려와 영월은 필사적으로 방대한 서한의 산과 격투를 하고 있었다. 류휘로 말하자면, 두 사람이 부고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어정어정 어딘가로 나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것은 공부에, 이쪽은 형부, 이쪽은 예부에......이것과 이것과 이것은 문하성과 중서성으로 가. 아-9사와 5감은 이쪽으로 합쳐서 나중에 정리!"

"전년도의 예부 예산 잔고는-, 그러니까 고관의 록 내역이......."

오늘의 수려는 귀신과 같은 형상으로 분류를 하고, 영월은 초속으로 계산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그들의 일을 방해하고 싶은 일이 없는 관사들이, 자주 왔다.

"오오, 늦게까지 수고하는군. 하지만 국시에서 멋지게 장원과 탐화 급제한 너희들이니까, 공기놀이를 하는 것 같겠지. 그럼, 이것도 부탁해. 이 몸은 바빠서. 하루종일 말이야."

모처럼 수려가 분류한 장소에 일부러 새로운 서한의 산을 떨어뜨리고, 지나가는 척 하며 영월의 산반을 흔들어, 지금까지의 계산을 전부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 것이 매일이었다.

관사가 돌아간 후, 수려는 부들부들 주먹을 쥐었다.

"........저 자식들. 언제나 변소 청소 직후에 일부러 바닥을 더럽히고 있어. 그 낯짝과 관위 확실히 기억해두겠어. 뭐가 <이 몸>이야! 뒷 공작으로 지금의 관위에 있다는 소문, 변소에서 들었어!"

"확실히, 예부의 화관사네요-. 내가 있는 곳에도 자주 신발을 닦으러 와요."

"그건 그렇고 계산 괜찮아?! 굉장한 자리수 계산하고 있었던 거잖아."

"아, 조금 전까지의 계산은 잘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그것보다 수려씨야 말로 분류한 거."

"훗,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야. 분류한 것에는 잘 표시해 두었으니까 괜찮아."

수면부족으로 수척해지고 기미투성이의 눈을 마주 하고, 빙긋 웃는 두 사람.

삐죽 책장 뒤에서 얼굴을 내민 홍소하는, 유령같은 사랑하는 딸과 소년에게 조심조심 말을 걸었다.

"......아-, 괘, 괜찮아 둘 모두? 차라도 마실래?"

"그만 두셔요, 아버님! 아버님의 차를 마시면, 남은 체력이 즉시 0으로 날아가 버려요!"

한번 흘겨보자, 심하네, 하고 소하는 내심 깊이 침울해졌다.

"대체 왜 돌아가시질 않아요? 아버님. 정란이 집에 혼자 있잖아요."

"나도 일이 남아있어.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다고."

아버지의 서툰 거짓말에 속아넘어가는 척 하기로 하고, 수려는 한번 한숨을 쉰 후, 분류를 재개했다. 소하의 다정함이 정말은 기뻤다.

---동쪽 하늘이 물들기 시작할 즈음, 수려는 충혈된 눈으로 일어섰다.

"좋아, 뒤는 이것을 각 성으로 보내는 것 뿐."

"다, 다녀오셔요, 수려씨."

"응. 영월군도 그 계산, 이제 금방 끝나지? 그러면 나 상관말고 자."

"하지만, 이 양은 묘시(6시)까지 때에 맞추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저도 도울게요."

"괜찮아. 최단거리가 머리에 들어있으니까. 작년의 여름에 실컷 이리저리 뛰어다니........"

문득 입을 가렸다. 앗차. 머리가 멍해진 탓인지 쓸데없는 것까지 무심코 지껄인 듯 하다.

"어, 어쨌든, 잘 수 있을 때 자! 너는 나와 달리 성장기니까."

그렇게 말하고, 비틀비틀 부고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을 크게 떴다.

"......또, 놓여 있어, 영월군." 

"에? 오늘도예요?"

아직 어두운 문 밖에, 다기와 주먹밥이 놓여 있었다.

첫날부터, 매일 빠뜨리지 않고 어느 사이엔가 숨겨두고 있는 2인분의 쟁반이 나란히 놓여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주먹밥이지만, 가끔 과자가 있거나, 간식이 있거나 한다.

맛으로 봐서 아버지는 절대 아니다. 류휘인가 해서 물어봤지만 아니라고 했다. 짓궂은 장난의 일단인가 해서, 처음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었지만, 류휘가 묘하게 자신만만하게 절대 틀림없음을 보장했다.

"오늘의 차잎은 용천차네."

"이거, 피곤함을 없애주는 차군요."

지친 얼굴을 마주 대하고, 두 사람은 조금 웃었다.

지금 두 사람의 상황에서, 이런 아무 일도 없는 듯한 누군가의 다정함은 정말로 가슴에 사무쳤다.

"돌아와서 먹을게 먼저 먹어요. 그럼, 다녀올게. 알았지, 제대로 자라고요."

수려는 대량의 서한을 가슴에 안고, 회랑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영월은 무엇인가 호주머니에서 새 수건과 액체가 든 작은 병을 꺼내어, 수건에 뿌렸다. 그리고 신중하게 양손을 닦고, 얇은 장갑을 낀 후, 수려가 이제부터 다룰 책자와 서한의 산을 주의 깊게 살피고, 몇 십 점을 골라 뽑아내어, 다른 지면에 베껴 쓰기 시작했다. 베끼기가 끝나자 마자 수장을 치우고 망설임 없이 같은 서한을 파괴하고, 불을 질러버렸다. 그 얼굴은, 평소의 영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귀기가 서린 것이었다.

그것이 끝나자 이번에는 무엇인가를 다른 종이에 술술 쓰기 시작했다. 먹이 마른 것을 확인하고, 이상할 정도로 작게 접어서, 살짝 겹옷에 넣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일을 재개하기 시작한 영월은, 책장 그늘에서 기척을 죽이고 있던 소하가 그 모습을 엿보고 있었던 것을 알지 못했다.

 

 

"----다음은 예부네."

서한을 안고서, 수려는 조금 무거운 기분이 되었다. 다른 성부에서도 괴롭힘과 험담은 끊임없었지만, 특히 예부에서는 그것이 노골적이었다. 이유는 예부 교도관인 노관사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 편협하고 완고한 성질 나쁜 교도관이다.

(확실히 그 사람의 괴롭힘이야!)

장관인 제상서는 좋은 사람인데, 어째서 부하는 그런 걸까? 갔다가 돌아오는 것만으로 심하게 정신을 소모하는 부서였지만, 수려는 오늘도 기력을 분발하고 예부로 향했다.

예부로 빠지는 통로를 평소처럼 돌았을 때였다.

갑자기 수려의 왼쪽 어깨에 조금 무거운 충격이 왔다.

당황하여 엉겁결에 걸음을 멈추자, 이어서 진흙 덩어리가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서한을 가슴에 껴안고 피했지만, 수가 너무 많아 전부는 피하지 못하고, 몇 개를 맞아 버렸다. 하얀 진사복이 암갈색의 얼룩으로 더러워진 것을 내려다보고, 수려는 겨우 사태를 파악했다.

"맞았다, 맞았어."

나잇살이나 든 관사들이 히죽히죽 수려를 보고 웃었다. 정말로 즐거운 듯 하다.

(애들처럼 괴롭히는 거냐------ㅅ)

"정말 여자가 졸랑졸랑. 눈에 거슬려."

또 다시 진흙 덩어리가 날아왔다. 그러나 두뇌노동의 관사들과, 지금까지 악동들을 쫓아다닌 수려와는, 격이 달랐다. 수려는 재빨리 구석에 서한을 두고, 눈싸움의 요령으로 슬쩍슬쩍 몸을 피했다. 확실히 말해서 이런 어설픈 것은, 수려의 상대가 아니다.

"피하지 마-"

관사들은 발끈했다. 그리고 기를 쓰고 차례차례 던지기 시작했다.

(이, 이 녀석들 바보 아냐!)

수려는 한심해서 소리칠 기력도 없었다. 이것이 나라의 두뇌라고 불리는 관사인가?

기둥에 숨어서, 기가 막혀 한숨을 쉬었을 때, 갑자기 진흙 덩어리가 날아오지 않게 되었다.

묘한 정적에, 수려는 기둥에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관사들이 창백한 얼굴로 수려의 후방을 보고 있었다. 따라서 뒤를 돌아보자, 굽은 모서리에 강유가 서있었다. 그 관복의 가슴 언저리에 멋지게 진흙 자국이 남아있다.

"......예부에서는, 묘한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제상서."

강유는 진흙을 털면서, 옆에 동반하고 있던 예부상서를 보았다. 언제나 싱글벙글하던 예부상서도, 역시 이때만은 창백해졌다.

"무, 무슨 짓을---너희들! 도, 도대체 이것은---"

젊은 관사들은 푹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노, 노관사가....."

강유가 그 이름에 반응했다. 제상서도 똑같이 그 이름에 안색이 달라졌다.

"나, 나의 감독이 미치지 못해서.......예부에 갈아입을 관복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니요, 됐습니다. ---이런, 소문의 노관사가 아니십니까?"

청년 관사들의 뒤에서 모습을 나타낸 노관사는, 그 자리의 상황을 한번 힐끗 보았다. 그리고 문득 기둥 그늘에 앉은 채인 수려를 알아채고, 사나운 눈길을 던졌다.

"무엇을 하고 있지? 홍진사. 이런 데서 쉬고 있을 틈이 있나? 그 정도 여유가 있으면 여기 회랑의 청소는 너에게 맡기도록 하지. 조례까지 깨끗이 해두도록."

수려는 흠칫했다. 지금 이 바보같은 진흙 덩어리 공격 탓으로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해, 지시받은 일을 시간에 맞추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그런........"

"무슨 불만이라도?"

강유의 시선을 아플 정도로 느꼈다. 수려는 이를 악물고, 부복하며, 받아들였다.

어느 사이엔가 회랑에는 사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노관사는 사나운 얼굴로 그들을 해산시켰다.

"구경거리가 아니다. 모두 빨리 맡은 장소로 가도록 해. 여기는 청소가 끝날 때까지, 잠시 통행불가로 한다. 괜찮겠지요, 제상서."

그것만 말하고, 노관사는 제상서와 강유에게 인사를 하고 떠나버렸다. 청년 관사들도 살금살금 모습을 감추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인파가 회랑에서 사라졌다.

제상서와 함께 예부로 향하는 강유는, 수려를 보지도 않고 지나갔다.

"나와 추영의 도움은 기대하지 마라."

그때 했던 말대로, 강유는 완전히 타인으로서 수려를 대하고 있었다. 마치 얼굴을 대했던 적마저 없었던 것처럼.

아무도 없게 되자, 수려는 느릿느릿 얼굴을 들었다. 형편없이 얻어맞은 진흙 덩어리 덕분에 걸을 장소도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구석에 피해두었던 서류 상자가 기적적으로 무사했던 것이 유일한 구원이다.

".....하...아무리 나라도, 이것은 좀 시간이 걸리겠어."

메마른 목소리로 웃으면서, 수려는 청소도구를 가지러 갔다.

몸이 무겁다. 멍하니 시선을 떨구고, 하얀 진사복에 묻은 마른 진흙을 보았을 때, 갑자기 마음이 흔들렸다. 수려는 눈을 감고, 깊이 숨을 쉬었다.

(울면 안돼. 울지 않기도 했잖아.)

혼자가 되자, 마음이 약해졌다. 설령 아무도 없다고 해도, 수려는 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은 우는데 허비할 시간이 없다. 우는 것이 아마 지는 것은 아니라 해도, 한번 울면 마음이 약해진다.

맞은 진흙 덩어리는, 여자라는 것만으로 인격마저도 바닥까지 부정당했다는 증거였다. 수려라고 하는 인격은 의미가 없고, 단지 여자라는 사실이 어떠한 노력도 없애버린다---그것은 지독하게 불합리한 현실. 분노로 불쾌함을 잊는다면 슬픔에 지배될 정도로 괴롭고, 억울하고, 슬프다.

하지만 여기는 울 장소가 아니다. 싸울 장소다.

---얼굴을, 들어.

주문처럼 중얼거리고, 수려는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왔는지, 눈앞에 선 가신의 모습을 알아차렸다.

"......정란."

어느 사이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정란은 수려의 곁에 있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돼. 가. 정란은 나를 응석받이로 만드니까."

"아가씨......"

"이것만은 누구에게도 기댈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정란에게도 아버님에게도. 왜냐하면 내가 정하고, 내가 바래서 고른 길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누구에게도 응석부릴 수 없어."

딱딱하게 잠긴 목소리였지만, 수려는 꽉 눈을 감고 확실히 말했다.

"나---행복해."

여러 가지 험담을 듣고, 바보취급 당하고. 오전은 변소 청소에, 오후부터 새벽까지는 관사들이 떠맡긴 일과 잡일의 처리에 쫓긴다. 제대로 잠잘 수도 없고, 매일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고. 싫은 일도, 울고 싶어지는 일도 끊임없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1년 전, 후궁에서 아무것도 부족함 없는 공주님처럼 모셔졌던 나날보다 훨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꿈이 이루어졌다. 일생 입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진사복을 걸치고, 여자의 몸으로 외조에 드는 것을 허락 받았다.

손에 넣은 것이 있다. 손에 넣을 수조차 없었던 예전을 생각하면, 괴롭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다.

"변소 청소도, 험담도, 얼굴도 변변히 들지 못하는 것도, 그것이 어때서?---라고, 1년 전의 나라면 분명히 말했을 거야. 희망의 계단을 한 발짝 올라간 나는 우는 소리 같은 건 하지 않아. 지금까지 잔뜩 정란에게 푸념을 늘어놓고 울면서 매달렸지만, 이번은 그럴 수 없어. 정란에게 응석부려서는 안돼. 울고 싶을 때는 혼자서 울 거야. 그것이 나의 의지야."

"아가씨......."

볼에 뻗어진 손을, 수려는 눈을 감고 밀어냈다.

"안돼. 눈을 감고 있는 동안에 가. 지금.....몹시 불안정하니까, 조금 전 말했던 것도 잊고 훌쩍훌쩍 울면서 푸념할지도. 나, 정란 앞에서는 간단히 울어버리니까."

겨우 닿았던 손끝이, 살짝 거두어졌다. 그리고 조용한 한숨이 한번.

"...........아가씨."

"왜?"

"이제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제가 있는 곳으로 와 주셔요. 아가씨를 위해서가 아니라---저를 위해서."

마지막의 속삭임은 깜짝 놀랄 정도로 얼굴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숨이 닿는 감촉에, 수려는 무심코 눈을 떴다. 하지만 정란의 모습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나와 계시면 안되지요."

수려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류휘를, 추영이 꼼짝못하게 했다.

"무엇 때문에 강유에게 가게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추영은 드물게 목소리를 거칠게 했다.

"말했지요. 당신이 지금 지키려는 것은, 비방과 중상으로부터가 아니라, 그녀의 긍지와, 생명의 위험으로부터 만입니다. 수려님은 스스로 길을 열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기서 쓰러진다면 거기까지. 약한 채여서는, 이 궁성에서, 오직 한 사람인 여관사로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수려님도 그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녀가 이를 악물고 노력하며, 정란의 손마저 잡지 않았는데, 왕 자신이 감싼다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됩니다!"

야단맞은 어린애처럼, 류휘는 그 아름다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추영은 주의를 늦추지 않고, 타이르듯이 말했다. 

"권력으로 지키는 것에는 아무 의미도 없어요. 그녀 자신의 힘으로 올라오지 못하면, 아무도 그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강유도, 무엇을 보고 들어도 절대로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수려님을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함께 걷는 동기인 진사들 뿐 입니다."

류휘는 이를 악물었다. ---알고 있다. 그런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당신이 해야할 일은 따로 있잖아요."

"---통지....를 낸다. 금후 여인관사를 하녀처럼 취급하는 자는 즉각 관위 박탈 및 전 가산 몰수, 자주에서 추방에 처한다---고. 어엿한 한 사람의 관사를 멸시하는 자에게는 당연한 처치다. 사관까지로 법제화할 준비와, 조의에 올릴 사전준비를."

"예."

겨우 추영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류휘는 고통을 참는 듯 이마를 눌렀다.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요? 이 바보같은 행위를 사전에 살피고, 강유에게 알리고 있고.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리고---오오."

얼굴을 든 추영은, 조그마한 장원이 회랑에서 달려와, 수려가 있는 곳에 당도하는 것을 보았다.

"수려씨-. 부고의 서한, 전부 전했어요. 자려고......했지만 수려씨도 항상 나를 도와주었고---, 어떻게 된 거예요? 진흙투성이네!"

류휘는 꽉 손을 쥐고, 추영을 돌아보았다.

"수려가, 좋은 관사가 될 거라고 생각하나?"

"지금의 수려님인 한, 아마도 그렇겠지요."

"그래. 관사인 수려도, 수려다. 나는, 그대로의 수려의 곁에 있고 싶어.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추영은 눈을 크게 떴다. 그 의미를 곧 이해하고, 싱긋 웃었다.

"형들이 듣는다면, 재미있다고 하겠군요. 여인관사도 그렇지만, 그것도 역사상 유례가 없습니다. 수려님 나름이겠지요. 그녀가 모두가 인정하는 대관이 된다면, 어쩌면."

"오래 걸리겠군."

"그녀와, 당신이 하기 나름이지요."

"......기다려, 볼까."

불안한 듯이 중얼거리는 류휘에, 추영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수려님의 국시에 대한 마음을 생각하고, 1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계속 기다렸던 당신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 솔직한 다정함이 있으니까, 청온공자도 이 막내 공자를 사랑했던 것이겠지. 추영마저도, 진짜 동생처럼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내 경우는, 진짜 동생이 귀엽지 않으니까, 더 한층 그런지도.)

맞은편 광장에서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두 명의 나이 어린 진사가, 사이좋게 바닥 청소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보면서, 추영은 회랑의 끝에 있는 예부로 눈을 돌렸다.

노관사인가---라고, 낮게 중얼거렸다.

 

 

*****

 

 

주위가 완전히 밝아지고 있었다.

댕, 하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수려와 영월은 회랑을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최후의 종이 울리기 직전, 두 사람은 문을 차 부술 듯이 방으로 뛰어들었다.

"호, 홍수려, 다녀왔습니다."

"두....영월입니다. 아....안녕하셔요."

숨이 차서 어깨를 들썩이는 두 사람을, 노관사는 새벽녘의 일 따위는 모른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아슬아슬하게 도착인가? 일은 모두 해결했겠지?"

"예."

"끝냈.......습니다."

그 대답에, 좀처럼 표정이 달라지지 않는 노관사의 눈썹이 올라갔다. 두 사람은 비틀비틀 진사들 속을 헤치고 언제나의 좌석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도중에 누군가에게 어깨를 붙잡혔다.

"--노관사, 이 두 사람은 연일의 철야로 피곤함이 극한까지 달해있습니다. 몇 시간, 별실에서 자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늠름한 목소리였다. 수려도 영월도 그 목소리의 주인을 잘 알고 있었다. 벽포명이라는 이름의 그는, 회시에서는 같은 숙소, 급제 순위는 수려의 다음인 제4위 급제. 나이는 17세, 신동이라고 이름 높은 소년이었다.

"오전 중은 어차피 변소청소와 신발닦이 겠지요. 몇 시간 쉬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관사는 눈을 가늘게 하고 소년을 보았다.

"벽진사, 규정의 출사시각이라는 것이 있네."

"규정의 출사시각?"

과연 수재·노력파라고 나타나 있는 용모의 소년은 조소를 띄었다.

"이 두 사람의 근무시간은, 규정을 상당히 초과하고 있습니다. 충분할 텐데요."

"그럼 자네가, 그들을 대신해 오전 중, 변소청소와 신발닦이를 하겠나?"

술렁, 하고 진사들이 동요했다. 그러나 소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좋겠지요. 하겠습니다. 그럼 이 두 사람을 수면실로 데려다 주어야 하니, 실례하겠습니다."

"기다려라. 아직 어제의 보고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년은 수려와 영월의 어깨를 안고, 억지로 끌 듯이 하며 걷기 시작했다.

방의 공기가 맨송맨송해지고 있다. 누군가가 <바보 같은 놈이다>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것마저도 개념치 않는 소년 진사의 옆얼굴에, 올려다본 수려의 가슴에도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랐다.

계속 힘내자.

모든 싫은 것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사라졌다.

영월을 보니, 조용히 웃고 있었다. 수려는 웃는 얼굴로 답하고, 이번에는 확실히 얼굴을 들었다.

 

 

*****

 

 

시간은 조금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운 관복으로 갈아입은 강유는, 하사들에게 정중하게 배웅을 받으며 예부를 나왔다.

문득, 자두나무의 향기에 발을 멈추었다. 정원을 내려다보자, 눈처럼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이제 되었지 않습니까?"

수려를 두둔한 결과라고는 하지만, 예부에 들른 덕분에, 이런 다행이라며 그 남자는 자신을 붙잡았다.

"당신은 홍상서의 양자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홍씨 성을 내려주시지 않았지요. 홍상서에게는 아이가 없지만, 그래도 당신을 홍가로 맞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그 분은 변덕스럽고 냉혹합니다. 언제 또 당신을 몸뚱이 하나로 쫓아내도 이상하지 않아요. 어떻습니까? 당신은 이제 충분히 은혜를 갚았습니다. 슬슬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저는 당신의 재능이 아깝습니다. 이미 그 일을 화내고 있지도 않으니, 딸과의 혼인으로 인연을 맺어도 좋지요. 당신만 그럴 생각이 있으시다면, 독립할 때에는, 미흡하나마 이 제가, 힘을 빌려드리겠습니다......."

떠올린 것만으로, 차갑게 마음이 식었다.

---어쩔 것도 없는 말단 관리인 남자였지만, 그는 확실히, 모르는 사이에 강유의 마음의 약한 부분을 무너뜨렸다.

자두나무의 꽃이, 나풀나풀 흩어지고 있다. 마치 부서진 마음의 조각처럼.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 따위는 없어도 무엇 하나 난처할 것 없다. 달라지지도 않는다. 자신은 그의 사랑하는 형과 조카처럼, 어느 것으로도 대신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래도, 자신은.

"--강유, 이런 데서, 뭘 하고 있지? 미아가 되면, 근처의 사람에게 길을 물으라고 언제나 말했지 않느냐."

그 목소리에 자신으로 돌아온 강유는, 순식간에 평상시대로의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자두나무의 꽃을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당신이야말로 무슨 일이십니까?"

강유의 표정을 본 홍리심은 문득 미간을 찡그렸다. 부채 끝으로 강유의 턱을 위로 향하게 한다.

".......무슨 일이 있는 건 네 쪽이겠지. 강유."

무표정과 무관심을 가장하는 것은, 강유의 특기였다. 하지만 언제나, 단 한사람에게만은 통하지 않는다. 그는 목에 고였던 숨을 내쉬었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호흡이 반쯤 늦었을 뿐인 근소한 차이의 말에서도, 리심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평소라면 강유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추궁했을 리심이, 오늘은 어째서인지 그 이상 물어 오지 않았다.

"뭐, 좋아. .......아아, 홍씨 본가에서 귀양으로 사자를 보냈다는 것 같다."

갑작스럽게 화제를 바꾸어, 강유는 어리둥절했다.

"홍씨 본가에서, 말입니까?"

홍씨 본가는 홍주에 있지만, 리심은 소하를 쫓아 자주로 도망쳐온 후, 거의 본가로 돌아가지 않았다.

원래 홍씨 일족을 사갈처럼 싫어하고 있던 리심인데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소하가 쫓겨나 마침내 그 분노도 정점에 달했었다. 지금도 홍씨 본가라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그런 그가 그래도 홍가 종주를 하고 있는 것은--.

"혹시 모르니, 네가 저택에 가면 즉시 때려서 내쫓아라. 어차피 별 볼일 없을 테니. 그건 그렇고, 이런 곳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틈이 없다. 가거라. 조의에 늦는다."

"리심님."

"왜?"

"......제, 가, 만일 지금, 곁을 떠나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련을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침묵이 떨어졌다. 강유 자신은, 말을 하고서 몹시 후회했다.

(......어째서 수련을.)

리심은 강유에게 돌아서서, 손에 쥔 부채를 팔락 펼쳤다.

"네가 수련? 뭐 방방곡곡(*)의 <나루터(*)>에 도착하는데도 반생을 소비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버려두셔요."

"가고 싶다면 멋대로 가도 좋다. 너의 인생이잖아. 나에게 묻지 마."

어찌되든 좋다는 듯이 말하고, 리심은 이번에는 걷기 시작했다.

강유는 필사적으로 숨을 내쉬었다. 웃어야 좋을지, 울어야 할지, 스스로도 잘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