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국 이야기 (彩雲國物語) 1권 -5장-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자

제5장. 두개의 얼굴을 가진 자

 

 

……수려는 어둠 속에 있었다.

몸이, 몹시 무겁고, 나른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마저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일어나 있는 것인가, 자고 있는 것인가도 알 수 없었다. 눈이 제대로 떠져 있는 건가? 아니면 감겨져 있는 것인가? 사고능력의 대부분을 빼앗겨,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 의해,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감각. 그것은 결코 다정하다고 말할 수 없는 손놀림이었다.

(좀더 다정한 손을, 내가 알고 있는…..)

멍하게 그렇게 생각하며, 운반되면서, 그 순간, 수려는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사람이 사는 장소와, 그렇지 않은 장소와의 경계선을 넘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둠. 짙은 어둠.

지금까지도 어둠 속에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피부에 느껴지는 어둠의 색이 한층 짙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원한 어둠)

머리 속에서, 그런 말이 떠올랐다. ---이곳은, 영원한 어둠의 세계.

몸 속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손쉽게 몸을 옆으로 할 수 있었다. 입가에 천 같은 것이 둘러져 있다.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말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둠을 막으려는 듯, 수려의 의식은 거기서 중단되었다.

 

 

***

 

 

“향령 외에---- 또 있었던 건가?”

장수로부터 보고를 받고, 류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쓰러져있던 여자—향령에게 외상은 없었지만, 지금도 의식불명인 채였다.

“그 여자로부터 건네진 향은, 무해한 것으로 살짝 바꾸어 두었습니다.”

주영은 드물게 날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수의 말에 의하면, 다른 복병이 있다는 것이군요. …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는 곳에서 수려님을 데리고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것은, 상당한 솜씨로 보입니다.”

이변을 눈치챈 류휘들이 이전부터 모습을 엿보고 있던 것은 향령이었지만, 그녀는 임무를 완수하기 전에 그 어떤 자에게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향령의 동기는 판명되었습니다.. 그녀의 배후에 있는 인물도요. 그렇다고 해도, 향령의 일은 그도 예상외였을 테지요.”

장수는 비꼬듯이 중얼거렸다.

수려를 데려간 것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함구령이 내려져 있다. 그러니까 아마, 상대방은 소란을 아직 알지 못할 것이다.

생각한 것은 수분. 류휘는 곧 결단을 내렸다.

“주영은 그의 신병을 즉각 압류하도록. 본가, 별가, 관련된 토지, 어디라도 덮쳐서 반드시 압류해. 저항은 최소한으로 해둬. 좌우 우림군으로부터 인원을 할애해도 좋다. 필요하다면 나중에 특별수당을 주겠다고 말하고, 휴가중인 자도 불러들여.”

“------말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반짝하고, 주영의 두눈에 기쁜듯한 빛이 일순 머물렀다 사라졌다.

“장수는, 향령 곁에 있어. 소하에게만은 몰래 보고를 하도록. 그리고, 긴급으로 도노사 이하, 의관을 전부 깨워줘.”

도노사는 고관직의 필두 시의였다. 아직 아침해도 얼굴을 보이지 않은 시각에 불려 나오게 할 정도로,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입장의 인물이 아니다. 류휘도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말하지 않았다.

“조금 더 신중하게 진행하려고 했지만, 하는 수 없어. 어떻게 하더라도 오늘 중으로 결말을 내겠다. ---예측 못한 사태가 일어난다면, 이쪽에도 부상자가 생기겠지. 바로 치료할 수 있도록 준비해줘. 궁 하나를 사용해도 좋다. 약과 물건을 아끼라고 말해 둬.”

“알겠습니다. -----그런데 주상, 행방불명된 사람이 또 한명 있습니다.” 

류휘는 입을 다물었다. 장수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이 상황 하에서, 정란이 행방불명이라는 것은 상당히 부자연스럽습니다. 정란은----“

“-----틀.려.”

류휘는 거칠게 장수의 말을 가로막았다.

“근거는?”

“없-----지만----“

“말이 안됩니다.”

장수는 짧게 잘라 버렸다. 류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불신의 빛은 떠오르지 않았다.

주영은 팔짱을 끼고 상대를 살피듯이 류휘를 보았다.

“…..주상, 정란에게는, 꽃을 주시지 않았다고 하셨지요? 어째서 입니까?”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류휘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런 것으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아도, 정란은 수려와----나를, 배신하지 않아. 스스로의 의지로 꽃을 받아들인 너희들이, 나를 위해 힘을 빌려줄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과 같이.”

“이런,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군요.”

“평가가 아니다. 알.고.있.는. 거야. 완고하고 융통성 없이 딱딱하게 굴지만, 권력에 절대 아첨하지 않지. 두 사람과 모두 과거 몇 번이나 바보 같은 상사에게 사표를 내던졌고, 그때마다 홍, 남 양가가 수습했었다. 내려주는 녹도 소량으로 거절하고. 오만할 정도로 자존심이 높은데다, 자신에게 확고한 자신과 신념이 있고, 불합리한 일에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주영과 장수는 침묵했다. ….이것은 칭찬받고 있는 것인가?

어쨌든----나쁘지 않다. 두 사람의 청년은 대담하게 입술을 끌어 올렸다.

“그렇다면, 주상의 그 감식안으로는, 정란은 결백하다는?”

“그래.”

상냥한 미소가 거짓이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것을 류휘는 믿고 있었다.

그 망설임없는 눈에, 주영은 웃었다.

“----합격입니다, 주상.”

주영은 옷에서 한장의 서신을 꺼냈다.

“정란이 써둔 것입니다. 정말은 보여드리지 말라고 했습니다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류휘는 손에 건네진 서신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것을 옆에서 엿보고 있던 장수의 눈이, 문자를 쫓자마자 곧 커다래졌다.

종이를 든 류휘의 손이 떨렸다. ------이것, 은.

“…..주….영은 알고, 있었나?”

“검술도 본 적이 있고, 개인적으로도 그와는 여러가지가 있었으니까요.”

그는 주영을 올려다보았다. 한심한 듯이 그 얼굴이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어쩔 수 없지요. 그 얼굴로 스물하나 라고 한다면 믿겠지요. 그야.”

일부러 가볍게 받아넘기자, 류휘는 번진 눈물을 닦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먼저 해야만 할 일이 있다.

“…..만 기다려.”

서신의 내용을 되새기고 있던 장수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이것을 건네주고, 지금 행방불명이라는 것은, 정란은 혼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인가?”

“아아, 무엇인가 실마리를 잡은 것인지도 모르겠군.”

고개를 끄덕인 주영의 어깨를 붙잡은, 류휘가 안색을 바꾸었다.

“거기까지 알고 있다면, 어째서 가게 했지? 혹시, 저…정란에게 만일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진정하셔요. 가는 곳이 그의 생각대로라면, 아마 위험할 염려는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 휘익 바람을 가르고, 열려진 창으로 날아들어온 것이 있었다.

반사적으로 류휘를 감싸고, 바로 창 근처로 달려간 주영은, 몸을 앞으로 내밀어 밖을 내다보고, 작게 혀를 찬 후 실내를 뒤돌아 보았다.

“달아나는 게 빠르군. ….장수.”

예리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꽂힌 그것은, 검은 칼깃이 달린 화살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장수는, 보통의 것보다 가늘고 짧은 몸통 부분에 묶인 종이 조각을 재빨리 풀었다.

류휘가 그 손에서 종이 조각을 빼앗아 들고 안을 살펴보았다. 그 눈동자에 강한 빛이 빛났다.

“주상.”

“주영, 장수. 조금 전의 지시를. 이곳은, 내가 가겠다.”

“설마 혼자서, 가시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류휘는 휙, 하고 주영의 목언저리에 검끝을 들이댔다. 장수는 언제 뽑았는지 조차 알지 못했을 정도의 빠르고 능란한 솜씨였다. 주영은 움직임을 멈추고, 흥미있는 듯이 검끝을 응시했다.

뽑았을 때와 똑같이 거침없이, 류휘는 조용히 검을 넣었다.

“나 혼자 간다. 다른 자 따위는 거치적거려.”

“…..그런 것 같군요.”

주영은 빙그레, 웃었다.

“나중에, 한수 부탁 드려도 될까요?”

“전부, 끝난 다음이라면.”

류휘는 그제서야 겨우, 조금 웃었다.

 

 

***

 

 

아련한 향의 냄새가 떠도는 방은, 폐허처럼 만들어진 외관에 반해, 자그마하고 아담하면서도 상당히 취미가 좋은 가구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정란의 냉랭한 눈에 비추어진 것은 세간이 아닌, 눈 앞의 인물 뿐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라고 해야 하는 걸까요? ----청온공자.”

차태보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사람좋은 할아버지의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아가씨는, 어디냐?”

정란은 상대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하지만 차태보의 웃음은 바뀌지 않았다.

“…..이야기라도,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뭘 들어? 나는, 당신이 찾는 자가 아니야.”

차태보는 목 안으로 웃었다.

“당신을 보고 있으면, 아득한 옛날이 떠오릅니다, 청온공자.”

목에 검을 들이대진 채로, 그래도 차태보는 태연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당신의 아버님을 섬기고 있었을 때는, 전화가 끊어지지않는 시대였습니다. 시대가 바뀔 때----였던 것이었을까요? 소와 송과 함께 전장을 누비면서, 륙하의 뒤를 좇아, 저는 아무 생각없이 앞을 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7가문의 중에서도 격이 낮은 차씨 가문으로부터 남들을 제치고 올라가겠다고, 단지 그것만을 생각하고, 선왕 륙하를 섬겼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달성했어. 그 지위도, 권력도 흔들리지 않는, 태보라는 조정백관의 장 중 한 사람으로까지 올랐다. ….왜, 지금 와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내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기?”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정란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차태보는 담담하게 말했다.

“7 가문의 누구보다도 위에----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때에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아버렸지요. 가장 위에는 절대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홍,남 양가를 턱으로 부리게 되었어도, 륙하의 오른팔은 언제나 소였습니다. 저의 위에는 언제나 그 남자가 있었지요. 그래요----언제나.”

말과는 달리, 차태보의 목소리는 무척 침착했다.

“……선왕 륙하의 실력주의는 철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의 위로 올라갈 수 없었지요. 제가 그렇게나 노력했는데도, 소는 간단히 그것을 넘었습니다. 천재-----라는 것이겠지요? 분했지요. 범인의 노력을 비웃는 것 같아서.”

“……당신도, 태보의 지위까지 올랐잖아.”

“저는 범인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세배의 노력을 하고, 죽을 힘을 다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출세와, 명예와, 지위와, 권력과----그런 것을 양식으로 해서요. 범인 중에서도 속물입니다. 하지만 소는 다릅니다. 그는 그런 것에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꾸미는 것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심으로, 단지 륙하를 위해서만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항상 저의 위에 있었지요. 냉정한 표정을 하고. 저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체의 권력을 쥘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후원해 줄 가문도 없는데, 그것이 무엇이라도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자신이라는 존재 하나만 있으면 좋다는 듯이.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소를 증오합니다.”

정란은 이야기를 가로막으려 하지 않았다. 정란의 인생 따위는, 차태보가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상당히 짧다.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범인은, 천재를 동경합니다. 하지만 손이 닿는 곳에 있는 천재 따위는, 근소한 차이의 속물에 있어서는 증오의 대상밖에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소처럼은 될 수 없습니다. 그 남자를 손놓고 상찬하고, 따르는 것 같은 짓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짓을 한다면, 저의 지금까지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는 자신이 사는 방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살고, 노력하고, 붙잡아 왔습니다. 기어오르고, 타인을 따라잡고, 지금까지 위에 있으며 저를 내려다보고 있던 무리를 되받아보는 것은 즐거웠습니다. 바라는 것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만은 남아 있답니다.” 

차태보는 뒤돌아, 똑바로 정란을 보았다. 마치 들이대어진 검 따위는 없다는 듯이. 

“-----소의 위에.”

향의 아련한 냄새가, 늘어난 기분이 들었다. 방향이 코에 닿아, 현기증이 난다.

검을 고쳐 잡았다. 그가 정말로 단순한 속물이라면, 정란도 그런 말 따위 냉정하게 잘라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자신을 아는 자의, 그것은 압도적인 존재감.

“소의 위에. ---지금의 바람은 그것뿐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움직일까? ---제가 그를 추락시킬 것인가? 아니면-----.”

차태보는 갑자기 웃었다. 일순,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두눈을 빛냈다.

“내기를 했습니다. 나도 늙었소. 늙었으니까 가능한 내기입니다. ---지금에도 소의 권력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녀석이 왕위다툼에도 전혀 관여하지 않아서, 그 지위도 권력도 똑같은 채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까지 그것을 입 다물고 보고 있는 것 보다는----그렇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남아있는 짧은 인생에 미련도 없고, 잃을 것도 없소. ---최초이자 최후의 내기입니다. ….사실, 늙은이란 귀찮은 존재지요.”

“그것을 위해서----아가씨를.”

정란의 말에, 차태보는 웃었다.

“어중간한 지혜를 가진 아가씨가 방해가 되었으니까요. 류휘님이 빠져든 것도 계산 외였습니다. 손녀딸에 대한 화제를 꺼내도 그 작은 아가씨가 좋다고 하셨으니까----어쩔 수가 없지요. ----그래서 다음 수단을 모색하고 있던 중에, 당신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청온공자.”

정란의 눈매가 예리해졌다.

“….저는, 청온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의 그 눈 등은, 선왕 륙하의 젊었을 때를 빼다 박았소. 그래도 부정하신다면, 뭐 그것도 좋겠지요. 이쪽은, 당.신.이. 청.온.공.자.가. 아.니.라.고.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혈통의 진위 따위는 아무래도 좋소. 그 공자가 돌아왔다는 것을 안다면, 모두 기쁘게 왕으로 모시겠지요.”

“바보 같은 소리를. 채운국의 왕은 류휘님 하나요. 당신은 또, 8년 전의 다툼을 되풀이할 작정인가?”

“그렇지 않으려면, 주상이 죽어주면 되는 겁니다. 그래요---불의의 사고가 어떻겠습니까? 다행히, 그 분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다툼이 될 일은 없지요.”

확, 정란의 안색이 바뀌었다.

“….무슨 짓을 한거냐.”

“왕좌에 오를 준비를 하시지요, 청온공자. 그때까지 궁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류휘에게, 무슨 짓을 한거냐!!”

팍, 하고 정란이 검을 벽으로 쑥 내밀었다. 차태보의 머리를 스칠 정도로 아슬아슬한 곳으로. 그 분노로 불타는 눈동자에, 차태보는 웃었다.

“….변함없이ㅡ 동생을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외톨이인 류휘님을, 당신만이 진심으로 귀여워해 주셨지요. 자신도, 같은 처지였기 때문입니까?”

“틀려.”

그것은 뜻밖에도 사실을 인정하는 대답이 되었다. 하지만 정란은 이제 더 이상 꾸미지 않았다.

“그 아이만이, 나를 그리워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속셈도 없고, 오직 순수하게. 마음의 의지가 되었던 것은 내쪽이야. 류휘가 있었으니까, 나는 궁성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다.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내쪽이다!”

어린 류휘를 이용했던 것은,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따금,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아이에게 사랑받았기 때문에, 이 마물의 소굴에서, 마음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다.

유배되어, 아무 것도 알리지 못한 채 궁성을 떠나게 되어버렸던 그 때부터, 언제나 마음에 걸렸다. 외톨이로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막내 동생. 오직 한 사람 나를 사랑해주었던 어린 동생.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아이의 마음은. 그 아이가 머무는 장소는.

---이제 두번 다시, 후회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말해라. 무슨 짓을 한거냐?”

“…..아무리 해도, 그렇게 간단하게 왕좌에 오르실 것 같지는 않군요.”

문득, 정란의 눈에 동정의 빛이 지나갔다. 왕족으로서의 배려를 떠올리며, 정란은 말했다.

“….어리석었어, 차태보. 너의 눈도 흐려졌던 것이다.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무엇을?”

“조정은 이미, 다음 세대로 대가 바뀌려고 하고 있다. 너는 시기를 놓친 거야. 남주영도 이장수도 이미 주인을 정했다. 그 충성의 소재를. 꼭두각시 따위를 왕위에 올린다면, 그들은 나와 함께 너를 실추시키는데,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차태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정란은 차갑게 웃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막내 동생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리고 나도, 네 생각만큼 고분고분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것 같군요. ----하지만, 고분고분하게 되어 주셔야 겠습니다.”

차태보는 갑자기 재빠르게, 오른손에 들고 있던 향로를 휘둘렀다. 바닥에 떨어진 향로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화악 향기가 떠돌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정란은 10명 이상의 복면의 남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남자들과 똑같은 검은색 천으로 목덜미부터 입, 코를 감싸고,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차태보는 웃었다.

“따르지 않는 자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기술 따위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게다가 당신이 자랑하는 류휘님은, 지금쯤은 이미 홍귀비와 함께 돌아가셨을 겁니다.”

“그러면”

차태보의 눈이 가늘어졌다.

“----붙잡혀서, 갇혀주시지요.”

한번에 덮쳐온 남자들에게, 정란은 혀를 차며 검을 겨누었다.

틈을 타 위험에서 벗어난 차태보는, 재빨리 방 구석으로 이동했다. 눈깜짝할 사이에 몇 명을 베어버린 정란은,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몸이 마비되어, 검을 떨어뜨렸다.

“좋은 향이지요?”

묻는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불의에 덮쳐온 현기증에, 머리조차 들 수 없었다.

“차…..”

“조금, 주무십시오. 다음에 눈을 뜨실 때는, 왕좌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차태보는 웃으며 발을 돌렸다. 

남자들에게 어깨를 붙잡히고, 머리에 엷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란은 그대로 완전히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등을 향한 차태보를 향해, 정란의 두 눈동자가 반짝였다. 장검의 옆에 꽂아둔 단검을 흔들리는 손가락으로 뽑아, 주저없이 자신의 허벅지를 찔렀다. 통증으로 얻은 한 순간의 각성으로, 붙잡힌 어깨를 뿌리치고, 그리고 자신의 피로 젖은 단검을, 차태보를 향해 던졌던 것이다.

단검은 곧바로 차태보의 등에 꽂혔다.

그러나 곧 붙잡혀, 남자들의 심한 구타를 당한 정란은 정신을 잃었다.

“읏….”

검을 맞은 아픔에 비틀거리며, 어떻게든 버텨선 차태보가 뒤돌아보았던 그 때였다.

핑하고 미세하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한 순간, 열명 이상 있었던 남자들 반수의 머리가 몸통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남은 남자들의 머리가 떨어졌다.

한 순간에 벌어진 참극.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신의 큰 낫에 머리를 베인 것 같은 광경은, 취미 나쁜 마술을 보고 있는 듯 했다. 그 정도로, 현실감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잠시 후, 잘려진 머리에서 한꺼번에 피기둥이 솟아 올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 방에서 숨쉬고 있는 것은, 이제는 혼절한 정란과 차태보뿐이었다.

----아니.

다음 순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사람에, 차태보는 눈을 크게 떴다.

피에 젖은 검을 한번 흔들고, 그 자는 말했다.

“왕은 당신을 특정하셨습니다. 곧 수하를 거느린 남장군이 도착합니다. 포박은 시간 문제입니다. ……자수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어떻게?”

“당신이 후궁에 들여보낸 딸---향령이, 꼬리를 밟혔습니다.”

“…..향령, 이라고? 그 애에게는 아무 말도 한 적 없다!”

예, 하고 암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가씨는, 당신의 야망을 어딘가에서 알아챘습니다. 사랑으로 키워준 당신의 도움이 되기로, 스스로 판단해 홍귀비 암해를 꾀했지요. ----그녀 때문에, 당신이 표면에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차태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남자는 계속했다.

“향령은….확실히, 8년 전 왕위다툼의 시기에, 아사하기 일보직전으로 문 앞에 쓰러져 있던 것을, 당신이 구해주었지요.”

얄궂군요----하고, 그는 쓸쓸한 듯 웃었다.

“당신의 계획은, 당신의 양심에 의해 무너졌던 것입니다.”

차태보는 머리를 흔들었다. 슬쩍 품에 넣은 손가락이, 국화자수를 놓은 손수건에 닿았다.

“바보 같은….주취는 그런 것은 한마디도.”

갑자기 드러난 그 이름에, 암살자는 한순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갑자기 눈을 감추고, 모든 것을 알아챈 듯이 조용히 말했다.

“……주취……그것이 내가 아는 살수라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바람의 늑대” 입니다. 그녀를 수하로 부릴 수 있는 것은, 선왕 륙하와 저와, 그리고 -----소태사뿐.”

차태보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런가? …..네가 “흑랑” ..이었던가…..?”

그리고 다음 순간 차태보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그럼, 녀석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건가! 나는 또, 녀석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고 있었던 것이군. 마지막의….마지막까지-----소!!”

웃음을 거두고, 그는 몸을 훌쩍 날렸다.

“너도, 잘도 지금까지 나를 속여왔구나. 설마, 네가 선왕 륙하의 “흑랑” 이라고는. ----공자를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거다.”

그는 어디까지나 그였다. 어떠한 것도,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망가뜨릴 수 없었다. 지위도 권력도, 패배도, 나이도, 그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가 의존하고 있었던 것은, 그 누구보다도 긍지 높은 강한 마음가짐.

의연한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이 목숨을, 주어야 할 자는 자네가 아니야.”

등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흔들림없는 발걸음을 옮긴 차태보를, “흑랑”은 쫓지 않았다.

소리없는 기도를 하듯이 눈꺼풀을 내리고, “흑랑”은 피투성이가 된 바닥에서 정란을 가볍게 안아올리고, 그리고 그 허벅지에 입은 상처를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다시 바닥에 옆으로 누이고 응급조치를 하고, 세게 얻어맞아 피와 멍투성이가 된 정란의 얼굴을 살짝 어루만졌다.

“….무모하셨습니다. 그대로 얌전히 정신을 잃었다면, 상처없이 구해졌을텐데…”

중얼거린 후, 돌변한 진지한 얼굴로, “흑랑”은 얼굴을 들었다.

그에게는 아직, 갈 곳이 남아있었다.

 

 

***

 

 

수려는 멍하니 눈꺼풀을 들었다.-----그럴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계는 어둠으로 덮힌 채였다.

“………..?”

천천히 몸을 비틀어 일어났다. 심하게 몸이 나른했다. 머리 속이 욱신욱신했다. 그리고 문득, 입을 막아둔 수건을 알아채고, 고개를 기울여 잡아 당겼다.

(………….여기는……어디……?) 

자신의 방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이마를 누르고, 기억을 더듬었다. 확실히----향을 피우고, 차를 마신 후 무척 졸려서----잠들어 버렸던 것까지는 기억하고 있지만.

(…..혹시 나….)

수려는 기분나쁜 예감이 들었다. ….무엇인가 의심스러운 방법으로 유괴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몸이 나른한 것도 재갈 같은 수건도 납득이 된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수려는 새파래졌다. ----농담이 아니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그리고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눈 앞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의지할 것이 없나 해서 여기 저기 몸을 조금 옮겨보았지만, 허사였을 뿐 벽에는 닿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약 같은 것을 섞여 먹였는지도….)

게다가, 눈이 보이지 않는 이 어둠. 옆으로부터 손이 뻗어나와, 그대로 어둠에 삼켜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슬슬 수려의 등으로 기분 나쁜 것이 기어갔다. 

(…..어쨌든 어딘가로 가지 않으면.)

몸을 숙이고, 천천히 기어 나갔다. 어둠을 향한 공포로, 식은 땀이 뱄다. 고동이 두근두근 시끄러울 정도로 귀를 때린다. 심연의 어둠. ----무서웠다. 지금까지 어둠을 무섭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는데, 무서웠다. 눌려 짜부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둠에--- 이 어둠에 있는 무언가에.

이. 어.둠.은. 다.르.다------. 느릿느릿했던 전진도 멈추어 버렸다.

그때였다. 한줄기 빛이 시계의 구석을 비추었다. 눈에 비친 시계의 오른쪽 아래의 어둠으로, 그곳만이 잘라낸 듯이 세로로 빛이 달렸다. 그곳으로부터 사람의 그림자가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수려는 도움을 구하려다가---- 문득 생각이 미쳤다.

(…..우, 우리 편이 아니라면 바보 짓이잖아.)

그래도, 이 어둠 속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울고 싶을 정도로 안심되었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았다.

(저런 곳에 문이 있다는 것은…. 여기는, 이층, 이상….?)

예를 들어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도 알아챌 수 없을 듯한 어둠 속이다. 서투르게 움직였다간 아래 층으로 떨어진다.

우선 공포심이 사라졌기 때문에, 슬슬 이동했다. 하지만 조금 전 한순간 어둠을 잘라낸 빛이---아마, 문이 닫혀버렸기 때문이겠지만, 또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어둠에 솟아난 어깨가, 난간 같은 부분에 닿았다. 수려는 몸을 더듬듯이 그것을 붙잡고 비틀비틀 일어섰다.

----그 순간, 등뒤에서 누군가가 양손을 겨드랑이 밑에 넣어 세게 죄었다.

 

 

….시간은 조금 거슬러 올라간다.

류휘는 선동성으로 가고 있었다.

궁성의 외곽에 있는 그곳은, 상당히 풍아한 몇층의 고층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안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특별히 열쇠가 채워진 것이 아닌데도, 어쩐지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보물이 들어있다고 믿고 과거 숱한 도둑이 숨어들려고 했지만, 문 앞에서 모두 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사심이 있는 자에게는 죽음을 주고, 보통 사람에게는 문을 닫는다. 채팔선 밖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날의 선동성은 여느 때와 모습이 달랐다.

보통 때는 확실히 닫혀 있을 터인 문이, 조금이지만 열려 있었던 것이다.

류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화살에 묶여있던 지시가 맞는다면, 이 안에 수려가 있는 것이다.

검의 손잡이를 고쳐 쥐고, 끼익, 하고 반쯤 열린 문을 열었다. 안은 짙은 어둠으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발이-----떨어지지 않는다. 밤을 혼자서 보낼 수 없는 류휘에게 있어서, 짙은 암흑에서 혼자가 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공포였다. 그것은 옛날의----괴로운 기억을 억지로 끌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꽉 손잡이를 쥐었다. 류휘의 표정이 달라졌다.

(----무엇을 위해서, 여기에 왔는데.)

류휘는 한숨을 쉬고, 안으로 들어갔다.

반사적으로 그는 검을 뽑았다.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어둠에 불꽃이 흩어지고, 설마 막아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듯 상대방의 동요가, 검을 통해 전해졌다. 그 틈을 타 검을 휘둘렀다.

맹장, 송태전에게 전수받은 검술은, 바로 실전에서 싸우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일격으로 상대방의 급소를 치고, 확실하게 절명시킨다. 그것을 골수까지 새기고 있는 그의 검은, 날카롭게 상대의 숨통을 베어 가르고 있었다. ---우선, 한 사람.

암흑에서 동요가 퍼지는 것을 알았다. 류휘는 재빨리 기척을 확인했다. 한 사람…..두 사람…..전부 다섯 사람. 

류휘는 기척을 찾아 가까운 상대부터 죽이기 시작했다. 예리한 검으로 연달아 공격당한 상대방은 깜짝 놀랐다. 받아내는 것도 겨우 한번, 다음 일격에 숨이 끊어졌다.

“…..읏, 이정도의 실력이라고는 듣지 못했어.”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위치로 심장이 있는 장소를 파악했다. 류휘는 즉시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단검을 던졌다.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남은 것은, 세 사람.

진심으로 습격해오는 잔당은 상당히 힘겨웠다. 그러나 이번만은 상대가 나쁘다. 류휘는 눈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을 베어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다리를 후려쳐, 쓰러뜨린 곳을 겨냥하고 검으로 꿰뚫었다.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는 왼쪽 어깨 부근을 맞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바로는 죽지 않는다.

“-----수려는, 어디냐?”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는, 많은 아수라장을 뚫고 온 살수마저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어디냐?”

말한 류휘는 무표정하게 칼날을 자기쪽으로 향하게 쥐었던 손잡이를 돌렸다. 어깨를 맞은 살수는 비명을 죽이고, 빈 왼손에 몰래 지녔던 단검으로 스스로 목을 찔러 절명했다.

그때, 갑자기 무거운 착지음이 연거푸 두번 들렸다. 낮은 소리가 당내에 울렸다.

“-----여기다. 아가씨는 여기에 있다.”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였다. 또 동료가 있었던 것이다. 류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확실히, 조금 전의 어둠 속에 두 사람의 기척이 있었다.

“…..정말로, 홍귀비인가?”

“아아, 공교롭게도 목소리를 빼앗겨서 들려줄 수는 없지만. 자, 무기를 버려주시지요?”

(트, 틀려------------ㅅ!!)

그때 약간 떨어진 위쪽의 어둠 속에서, 수려는 혼자 분투하고 있었다. 기둥인지 뭔지에 묶여진 채로 수려는, 아래로 내려간 살수 두 사람이, 류휘를 속여 죽이려는 것을 알아채고 새파래졌다. 그러나 다시 입이 수건으로 막혀져 버렸기 때문에, 소리칠 수도 없었다.

무기를 버리라는 소리 후, 사이를 두고 카랑 하고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류휘가 검을 던진 것을 알고, 수려는 더욱 초조해졌다.

(아아 바보! 아니라니까!! 그쪽으로 간 것은 두명 모두 살수아냐! 아앗 정말 이 수건 때문에!)

“잘했다.”

유쾌한 목소리. 남자 중 한 사람이 공격가능범위까지 류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수려는 어떻게든 알려주기 위해 빠져 나오려고 머리를 버둥거렸다. 그 때, 머리에 꽂아두었던 머리장식이 뚝 떨어졌다. 류휘가 준 금으로 된 장식. 수려는 문득 생각이 떠올라, 유일하게 자유로운 발로,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힘껏 찼다.

챙---하고 한층 더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남자가 반사적으로 등뒤를 돌아보았다. 그 때 입을 막아두었던 수건이 겨우 벗겨져, 수려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류휘! 그것은 제가 아니예요. 바보---------------ㅅ!!”

류휘는 미소지었다.

“----알고 있어.”

다음 순간, 살수인 남자 두 사람은 자신의 가슴을 검이 꿰뚫었다는 것을 알았다. 입에서 피를 흘리면서, 남자들은 천천히 뒤로 넘어졌다.

“…..무기는, 떨어뜨렸을텐데….”

“칼집이다. ---공교롭게도, 수려는 네 동료만큼 무겁지 않아.” 

그런 소리는 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한 류휘에게, 남자는 입술을 끌어올렸다.

“…..너, 좋은 살수가 되겠군….”

“그런 것이 된다면 수려가 싫어할거다.”

피묻은 검을 서슴없이 버리고, 류휘는 즉시 손으로 더듬더듬 찾아 달려 올라갔다. 묶여진 수려는,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깨의 포승을 풀려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류휫, 잠깐 당신 설마 죽은 건 아니지요……!?”

“죽지 않았어.”

귓가에서 속삭여, 수려는 펄쩍 뛰어 오를 정도로 놀랐다. 소도로 포승을 끊고, 자유로워진 수려를, 류휘는 아무 말없이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무사해서.”

수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그러안을 기력도 없다.

“…..고마워요. 어둠 속에서, 무서웠을텐데. ….당신한테서 받은 머리장식, 발로 차서, 미안해요.”

“그런 건, 상관없어. 도움이 되서 머리장식도 기뻐할거야. 암흑도…..수려가 있다면, 무섭지 않아.”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어렴풋하게 달콤한 향기가 나는 머리카락에 뺨을 바짝 댔다. 지금 와서야 떨리기 시작한다. 수려는 달래려고 양팔을 등에 둘러주는 배려를 했다. 그러나 등에 손이 닿았을 때였다. 

그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부자연스러운 호흡과 함께, 쥐어뜯듯이 가슴을 누른다. 부자연스럽게 몸을 비틀고-----수려는 천천히 쓰러졌다.

“…..수려?”

류휘의 어깨에 매달린 수려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쓰러지는 몸을 끌어안으며, 류휘는 소리쳤다.

“수려-----------------!”

 

 

*** 

 

 

“장수.” 

주영은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서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뒤돌아 본 장수에게는 표정이 없었다. 

“향령의 상태는?” 

“…..발견한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죽었을거다.” 

눈 앞에 쓰러진 소녀의 창백한 얼굴. 그 눈가에 흘렀던 눈물 자국이, 아직 마르지도 않았다. 

소란 이후, 자신의 실수가 차태보의 야망을 폭로시켰다는 것을 알고, 망을 보던 위사의 눈을 돌리고 향령은 손목을 잘랐다. 서탁 위에 얌전히 놓인 서신에는, 모든 것은 자신이 혼자서 한 것이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차태보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라고. 

장수는 그 서신을 꽉 쥐고, 내뱉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여자는 바보라는 거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어. 어째서 소태사가 자신을 말려들게 하지 않았는지?------ 그 의미마저 생각하지 않고, 혼자서 마구 달리더니, 결국 자살인가?” 

죽어갈 때 주워져, 후궁의 여관이 될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을 받고----그렇게까지 소중하게 여겼다---. 

“향령은, 너와 많이 닮아 있어.” 

주영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어렸을 때 주워져, 소중하게 양육되고, 그리고….주워준 주인을 어디까지라도 경애하고 있지만.” 

하얗게 될 정도로 장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주영은 그 어깨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똑같지 않아.” 

주영은 속삭였다. 

“네가 혼자서 미친 듯 질주하려고 한다면, 내가 멈춰줄 테니까. 미아가 된 너를 데리고 돌아오는 것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의 역할인 것 같으니까.” 

장수는 주영의 가벼운 말에도 반발하지 않고, 그 어깨에 뺨을 기대었다. 꽉 어금니를 깨물었다. 

“….바보 같은 여자다.”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수려의 곁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차태보는 향령을 계획에 말려들게 하지 않았다. 만일, 자신의 계획이 탄로나도, 향령에게는-----하고, 그 생각도 알지 못하고. 길동무따위는 바라지 않는 차태보의 의도도 헤아리지 못했다. 향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는 알아버렸던 것이다. 향령의 필사적인 기분을. 소중히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과 같을 정도로, 상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그렇게 생각하는 기분을. 

“…..버려진 사람에게 있어서는, 주워준 사람이 절대적인 존재다.” 

검은 옥 같은 눈동자로, 장수는 휴우 한숨을 쉬었다. 

 

 

*** 

 

 

차태보는 발을 질질 끌듯이 걸었다. 

등에서 흐르는 피도, 그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했다. 

-----밤이, 밝아오고 있었다. 

환하게, 동쪽의 하늘이 남색에서 자줏빛으로 바뀌었다. 그는, 높이 솟아있는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까지 갔다. 그 언저리를 둘러싸고 있을 터인 추격자----남주영의 부하들과는, 어째서인지 마주치지도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득한 옛날을 떠올렸다. 소와, 송과 함께, 이전에 몇번이나 밤이 밝아오는 것을 보았을 때. 왕과 함께, 몇번이나 전쟁터를 달렸다. 모든 때를, 인생을, 생명을 불태우듯이 내달렸다. 

“….늙어버린, 건가?” 

“….아니.”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차태보는 놀라지 않았다. 뒤돌아----천천히 입술을 끌어올렸다. 

“너는,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고, 그가 기다리고 있었던 한 사람의 남자는, 풀을 밟고, 사박, 사박, 가까이 다가왔다. 발걸음마다,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하얀 머리는 검게, 세월을 알리는 주름은 사라지고, 등이 펴지고, 신체는 젊은이처럼 유연하게--- 한 발자국마다 젊은이로 돌아가는 남자를, 그러나 차태보는 놀라지도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 선 젊은이에게, 차태보는 코웃음 쳤다. ----젊었을 때처럼. 

“-----흥, 어디선가 본 얼굴이다. 수염은, 어디에 떨어뜨리고 온거지?” 

“….중요한 건 수염이 아닌 것 같은데.” 

조금은 놀란 듯, 투덜거리는 젊디 젊은 목소리. 그 모습도, 목소리도, 차태보는 잘 알고 있었다. 

“당신이 하는 짓에 일일이 놀랄 것 같은가? 바보. 그런 약한 심장이 아니다.” 

코웃음치는 차태보에, 남자는 웃었다. 상식적으로 사람에게 보이는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겨우 얼마 전이었다. 

“….달라지지 않았어, 너는. 똑똑한, 바보다.” 

웃음이 사라졌다. 차원준,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어째서, 나였지? 어째서, 너의 그런 생각이 향하는 것이 나였지? 알고 있었지. 원준….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였다.” 

차태보는 강한 시선을 눈 앞의 남자에게 머물게 했다. 쫓고, 쫓고, 계속 뒤쫓았던 남자. 언제나 자신의 한발자국 앞을 가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아득히 높은 곳에 계속 있었던 남자. 

“너니까, 뒤쫓았던 거다. 소.” 

남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차태보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네가 어떤 자든지, 상관없었다. 뒤쫓았던 것은, 너의 그림자따위가 아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너다.” 

남자는 웃었다. 쓴웃음과 비슷한----하지만 어딘가 기쁜 듯. 

“….역시 너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군.” 

남자는 손을 원준의 가슴으로 뻗었다. 그는 달아나지 않았다. 단지 눈 앞의 남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푹, 하고 자신의 가슴에 소의 손이 파묻히고 있는 것을, 그는 꼼짝않고 보고 있었다. 피는,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눈동자가 흔들렸다.-----황홀함과도 비슷한 빛이 그곳에 머물렀다 

“….15년을, 함께 보냈지. 나와, 너와, 송과---- 셋이서.” 

남자의 중얼거림에, 차태보는 목 안에서 웃었다. 마치 지나온 15년을 그리워하는 듯이. 

“-----그래.” 

탄식처럼, 차태보는 대답했다. ----이 남자를 쫓아왔다, 15년이라는 세월동안. 

“나는, 너를 아주 싫어했다. 언제나 항상 세상사에 얽매이지 않는 표표한 얼굴로 내 앞을 가는 네가 .” 

남자의 손바닥이, 손목이, 차태보의 가슴에 파묻혀 있다. 남자는 웃었다. 사랑스러운 것처럼. 

“마지막까지, 억지를 쓰는 녀석이군, 원준. 나는, 너를 좋아했다. ----정말로.” 

째릿, 하고 원준이 노려보았다. 그 모습이, 일찍이 전장을 내달리던 젊은 청년의 모습과 겹쳐졌다.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네 기를 확 꺽어놓고 싶었다.” 

“뭐야? 그게?” 

마침내 남자의 어깨가 팔꿈치까지 파묻혔다. 그는 비어있는 왼손으로 “원준”을 끌어안았다. 

“지금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네 기를 확 꺽어놓고 싶었어.” 

차태보의 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고통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어쩐지 나른한 졸음이 전신을 에워싼다. 

남자는 원준을 껴안으면서, 그 귀에 속삭였다. 

“-----그렇지, 원준. 그런데도 내가, 좋은거지? 임종의 때를 나에게 맡기고 싶을 정도로.” 

“흥----….” 

차태보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겼다. 그리고, 두번 다시 떠지지 않았다. 

“원준-----“ 

차태보는 힘을 담아, 친구의 유해를 껴안았다.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는 웃었다. 

“너를, 사랑했어, 원준--. 정말은 어떻게든 떠날게 분명했던 조정에서---50년이나---시간을 보내면서……..함께 나이를 먹은 것이…..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였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자준전을 여관들이 핏기가 사라진 얼굴로 오갔다. 

류휘는 하나의 문 앞에서, 종이처럼 하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수려와---중상으로 옮겨져 온 정란이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용히 방 문이 열렸다. 팟 얼굴을 든 류휘의 앞에, 초췌한 시의와 송태전이 나타났다. 송태전은, 류휘를 보고 일갈했다. 

“이….바보 제자갓! 반한 여자 하나 지키지 못하고 뭘 했어!!” 

“송태전, 도노사. 청…정란과, 수려는…..” 

도노사는 새파래진 얼굴을 한 채 말했다. 

“….위사 쪽은..중상입니다만. 송태전께서 전력을 다해 주셔서 어떻게 회복되었습니다. 하지만…..홍귀비님 쪽은…..” 

“뭐냐!” 

좋지않은 소식이다---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파래진 채, 도노사는 말했다. 

“…..주상께서 수중에 가지고 계시는 해독약-----그것은 만능의 묘약. 그 약을 주상이 먹이신 덕에, 대부분의 독은 중화되었습니다. 하지만…단지 한 종류가.” 

도노사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알지 못하는 독이었습니다. 즉 해독을….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독약을 조사해, 어떻게 잘 일이 풀린다고 해도, 해독약을 만들 때까지는 3일이 걸립니다. 홍귀비님의 전신에 독이 퍼져가는 것은 빠르면 반나절…. 늦으면 하루.” 

“뭐……라고…..?” 

도노사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다. 

-----수려의, 목숨이------어떻게 된다는 거지. 뭐, 라고----. 

“헛소리 하지마.” 

류휘는 거의 반사적으로 외쳤다. 

“헛소리 하지마! 수려의 목숨이….뭐라고? 어떻게든 갖춰 봐. 나라 안의 어디서라도 어떤 재료라도 찾아오겠어. 그러니까 어서 방으로 되돌아가서 빨리 독을 없애!” 

“주상….” 

“당신은 시의잖아! 왕 직속의….나라 제일의 명의잖아!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다른 누가 안다는 거야!! 다른…… 누가……” 

목소리가 메었다. 목에서 치밀어 올라온 것을 삼키자-----눈물이 흘렀다. 

뺨으로 흐르는 눈물과 동시에,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던 감정도 넘쳤다. 

“…..가지 마……” 

이 느낌을 뭐라고 해야 하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눈이 내려 쌓이는 것처럼 조용히, 자신마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쌓여왔던 느낌. 

거리에 내린다 해도 좋았다. 누구를 좋아해도 상관없다. 외로움도----자신은 이제, 이전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을 테니까. 쫓아갈 수 있을 정도로 어른이 되었다. 

그.날.이 온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오랫동안, 그 사람을 계속 기다린 것처럼. 

하지만. 

이런 식으로,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것은 허락할 수 없어----. 

손을 빠져나가, 두번 다시 붙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은 인정할 수 없어……! 

무심코 얼굴을 손으로 감싼 순간-----어느 사이에 나타난 것인지, 소태사의 목소리가 류휘의 귀를 때렸다. 

“---주상. 해독약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목소리는 몹시 냉정했다. 류휘는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별실에서 두 사람만 되었을 때, 소태사는 두개의 작은 병을 탁자에 놓았다. 

“한쪽은 맹독, 한쪽은 해독약입니다.” 

빙그레 소태사는 웃었다. 

“어느 쪽을 고르시겠습니까?” 

류휘는 소태사를 쏘아 죽일 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당신은, 언제나 그랬어.” 

꽉, 어금니를 물었다. 

“언.제.나., 그.랬.어.” 

그리고 류휘는, 천천히 작은 병으로 손을 뻗었다. 

 

 

*** 

 

 

훤히 밤이 밝아오는 속에서, 소태사는 선동성으로 닿은 소로를 혼자 걷고 있었다. 

갑자기 목언저리에 차가운 칼날이 대어져도, 그는 조금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불온하구나, <흑랑>” 

“수려와 정란은----어떻게 되었습니까?” 

훗, 하고 소태사는 웃었다. 

“선왕 밑에서 여러 명을 직접 암살한 전설의 살수도, 딸과 가인의 일이 되면 아버지로 돌아가버리는 건가?” 

“대답해 주십시오.” 

소하는 단도를 쥔 손에 칼을 포함시켰다. 소태사는 천천히 미소지었다. 

“류휘님이 정말 왕에 어울리게 되셨다.” 

소태사는 킥킥 웃었다. 

“거래는, 상대방과 자신의 아슬아슬한 선을 확인하고, 교섭의 장으로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관건--- 이 나를 상대로, 잘 확인했지.” 

“….거래가 성립된 거라는?” 

“그래. 지금쯤 수려님도 회복되고 있을 거네. 안심했나?” 

소하는 딱딱한 표정을 한 채 소도를 거두었다. 

“…..정말로, 선왕 륙하의 때부터, 당신은 어느 것 하나 달라지지 않으셨습니다, 소태사.” 

“호오? 흥미있는 말을 하는군.” 

당.신.은., 언.제.나. 그.렇.다.---소하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언제나, 왕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아. 이번에도, 8년 전에도.” 

8년 전의 왕위다툼. 이 노신이라면, 그렇게까지 나라가 기울기 전에 어떻게든지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최소한의 일 밖에 하지 않고, 공자들의 다툼과, 조정의 부패를 단지 입을 다물고 지켜보았다. 

“….제가 몇번이나 수습을 부탁드려도, 당신은 결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지요. 단지 지켜보고,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섬.기.기.에. 알.맞.은. 왕.이 나타나는 것을. 만일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면, 혼란이 극도에 이른 국정따위는 돌아보지도 않고, 조정을 물러나 어딘가로 떠날 작정으로.” 

소태사의 웃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후의 최후에 류휘님을 보게 된 당신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나라를 다시 세웠지. 규율을 세우고, 국토의 황폐를 저지하고, 백성을 구하고, 백관을 바로잡아----20년이 걸릴 것을 겨우 몇 년만에, 부패한 냄새로 가득찬 옥좌를 깨끗이 해, 당신은 류휘님을 왕으로 맞을 준비를 갖추었지요. 이것도 저것도-----모.든. 것.은. 왕.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도, 백성을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섬기게 될 왕을 위해서 밖에, 이 명신으로 이름높은 노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챈 것이 언제였던가?----. 

“….당신은 아무래도 왕의 일밖에 생각하지 않아. 자신이 확인한 왕을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걸고 전력을 다하지만, 그 이외에는 상당히 냉혹하지요. 누가 죽든지 관계없고, 누구의 인생을 망쳐놓는데도 상관없습니다. 몇천 몇만의 백성이 시체가 되어도 전혀 개입하지 않았지요.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당신은 왕 이외의 사람을 보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어째서 그 정도로 왕에게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까?” 

소태사는 웃었다. 입가만. 

“집착하고 있는….것인가? 꽤 잘 말했어. 그래…. 나는 집착하고 있는 거라네. 왕이 아닌, 약속에.” 

“약속…..?” 

“아득한 옛날이네. ----섬기기에 충분한지 확인한 왕에게만 충성을 다하고, 야심없고 사심없이 그를 도와, 이끌어 나갈 것. 모두 왕만을 섬길 것. 그 왕이 없다고 판단될 때에는, 빨리 조정을 떠날 것. 결코 나라와 백성을 섬기는 것 등은 생각하지 않을 것.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스스로의 의지와 판단으로 인해 국사를 행하지 않을 것. 따라서 그 정도로 나라가 황폐해져도, 모실 왕이 없는 한, 무엇을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네. 나는, 그 약속을 지키지않으면 안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약속을…..누구와…..” 

“자네는 알 필요가 없네. ---소하, 자네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선왕 륙하를 섬겼다. 하지만 나는 왕을 위해서 나라와 백성을 섬긴다. 내게 있어서는 왕이 제일이야. 따라서 왕을 이끌기 위해서라면, 누구를 희생시켜도 상관없다. 예를 들어, 그것이 자네 딸의 목숨이라도 말이네.” 

소하의 눈이 조용한 분노로 불타올랐다. 

“…..저는 당신의 말을 쫓아 지금까지 많은 목숨을 사냥해왔습니다. 당신의 판단은 언제나 옳았고, 한 사람의 머리를 떨어뜨릴 때마다 선왕 륙하의 치세가 조금씩 좋아졌지요. 그러니까 결코 자랑할 수 없는 일도 납득함으로써 손을 더럽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라는 진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람의 늑대>를 해산시켰지요. 사냥하는 것은 죄인뿐-----그것이, 제가 양보할 수 없는 선이니까요.” 

“기억하고 있어. 내가 그 약정을 깬 적이 있었나?” 

“주취도 “바람의 늑대”입니다. 저의 부하를 어떤 일에 쓰셨는지----“ 

“차태보는, 죄인이지 않은가? 류휘님을 시해하려고 했네.” 

“그렇게 만든 것은, 당신이지 않습니까!” 

소하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차태보는----확실히, 당신의 위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속으로 삭일만한 이성이 있었습니다. 의지의 강함도. 그것을, 당신이 아주 간단하게 붕괴시켜버렸습니다. 꿈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한순간이라도 그렇게 생각하도록, 강고한 그의 마음에 금을 만들었지요. 그 금을 크게 하기 위한 수단을 차례차례 취했습니다.” 

소태사의 웃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소하는 주먹을 쥐었다. 

“----수려를, 후궁으로 보낸 것도, 정란을 류휘님의 곁에 둔 것도, 그리고 주취를 차태보의 밑에서 일하게 한 것도, 모든 것이 그것을 위해서였습니다. 수려가 후궁에 들어, 왕이 스스로 정사를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려 이외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지요. 수려를 귀비로 추천한 것은 당신입니다. 차태보는 내심 차분할 수 없었겠지요? ----그리하여 첫번째로, 그의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주취를 그의 밑에서 일하게 했지요. 주취는 여성이면서 대단한 솜씨의 살수. 차태보는 좋은 부하가 생겨서 기뻐했을테지요? 귀비의 필두 여관으로 후궁에 들인다면, 수려의 정보도, 왕의 주위의 상황도 알 수 있다----이것으로 두번째. 그리고 최종 확인으로 청온공자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이전의 둘째공자로, 그 비운을 동정하는 자도 많았지요. 인망이 두텁고 총명했던 그라면, 옥좌에 올리기가 쉽겠지요. ----모든 것을, 준비하고, 당신은 차태보의 마음에 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모반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리고 당신의 위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흠. 무엇을 위해서.” 

“-----왕을 위해서.” 

소하는 즉시 대답했다. 소태사는 웃었다. 마치 성적이 좋은 제자를 보는 듯이. 

“당신은 정말 잘 상.황.을 이용했습니다.” 

소하는 한숨을 쉬었다. 

“수려는 기한부의 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집착하게 되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밤을 함께 하기 시작한다면 아이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기한부가 무기한으로 늘어날지도 모르지요.----그 상황하에서, 향령이 차태보의 초조함을 알고, 수려에게 독을 섞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를 전후해 당신도 은잔을 보냈지요. ---경고해주실 생각이셨겠지요.” 

-----한달. 그 즈음이 경계였다고, 소하는 생각하고 있었다. 왕은 예상 이상으로 수려에게 관심을 가졌다. 기한부를 무기한으로 늘이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움직였다면, 그 시기였다. 그것을 왕에게 어떻게 알릴 것인가 생각하고 있던 그때, 장수를 통해서 은잔을 보내왔다. 

보낸 사람은 홍사부상서----장수의 상사로, 소하의 바로 아래 동생, 즉 현 홍가의 당주. 

소하가 누구보다 신뢰하는 동생은, 역시 일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은잔을 보내왔던 것이다. 순은은, 독에 반응한다. 그것을 보냈다는 것은, 신변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경고. 

“류휘님은 바로 눈치채고, 장수님과 남장군에게 자주빛 꽃창포를 주었지요.” 

“하사의 꽃” -----그 꽃창포는, 그것만의 의미가 아니었다. 

꽃창포의 잎은, 검처럼 길고 날카롭다. 게다가, 검사의 꽃이라는 다른 이름을 가진다. 잎에 둘러싸인 꽃은 왕가를 나타내는 자주색. 그것을 준 의미는 <왕의 꽃을 지켜라> ----즉, 수려를 지켜라, 라는 것이었다. 

“가장 유능하고, 가장 충성심을 얻는 것이 어려운 두 사람의 청년은, “꽃”을 받았지요. 그리고 그들 둘의 수단으로 후궁에 포위망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당신은 향령을 눈감아 주었다.------소하는 담담하게 계속했다. 

“주취로부터 향령에 대한 보고를 받아도, 내버려두었지요. 그것은 그렇습니다. 주취가 위장하고 있고, 그 차태보의, 절호의 틈이었으니까요. ---아니, 만일 그렇다면 차태보의 마음 속을 향령에게 알린 것은 당신이 아니었습니까? 그것을 들은 향령의, 뒤의 행동을 예상하고.” 

소태사는 입술에 엷게 웃음을 지은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취에게 류휘님과 수려의 상황을 지켜보게 했습니다. 차태보는 그 시점에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요. 신중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류휘님이 향령을 조사해, 그녀를 기른 아버지가 차태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와 동시에, 차태보도 주취를 이용해 움직이기 시작하여, 정란과 수려를 빼앗았지요. 류휘님은 바로 탈환하려고 했고, 그 사이, 당신은 최종 확인으로써 수려가 있는 장소를 알리는 서신을 주취에게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때, 이미 차태보는 당신에게 있어서 쓸모가 없게 되었겠지요.” 

정사, 여자, 유능한 신하, 수려와 정란의 목숨의 위험에 접하면서의 심적 성장, 왕으로서의 자각, 그리고 불온분자의 일소----모든 것을, 그 한건으로 소태사는 정리해버렸던 것이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모든 것은, 류휘님을 왕에 걸맞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차태보는 단지 그것을 위해서 이용되었습니다. 그가 계획을 실행에 옮기자 마자 그 때에 류휘님에게 알림으로써, 종막----“ 

“……후…너는 옛날부터, 누구보다 우수하고, 유능했었다. 선왕 륙하가 내린 명실공히 밀어낼 수 없는 지위를 거절하지 않았다면, 부고 따위에 파묻혀있지 않았을 남자다. 8년 전에도, 네가 중신이었다면, 이 정도까지 나라가 황폐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하는 꾹 입술을 깨물었다. 

“…..예, 부고로 간 것을 후회한 것은, 그때뿐입니다.” 

소태사는 갑자기, 웃었다. 이 남자가 권력을 쥐고 있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도 있다. 

“시정란인가? …..좋은 이름을 붙였군.” 

정란의 이름은, 시정란. 정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내. 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소하였다. 

시는 꽃의 이름. 자주빛 꽃이었다. 아무도 사용할 수 없는, 왕가인 자씨와 통하는 것----. 

“너에게는 감사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유배되었던 청온공자를 주우러 가고, 류휘님에게는 학문을-----송에게 부탁해서 무술도 연마하도록 했지. 그리고 멋진 딸을 길러 주었다.” 

소하의 눈에는 불이 켜졌다. 

“비웃으시는 겁니까?” 

아니, 하고 소태사는 웃음을 지우고, 달을 올려보았다. 

“마음으로부터의 감사한다네. 자네같은 자가 있으니까, 이 나라도 아직 해나갈 수 있겠지.” 

소태사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스쳐 지나갈 때, 소하는 소태사에게 말했다. 

“저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차가운 목소리로 소하가 말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수려와 정란을-----왕을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는 둘을, 당신은 쓸모없어진 세간을 땔감으로 해서 불을 지피는 것처럼 마지막까지 이용하고, 죽이는 것도 꺼리지 않았습니다.” 

“죽이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죽는다고 해도 그다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소태사는 단지 웃을 뿐이었다. 소하는 단도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 눈에도 띄지않을 정도로 빠르게 던져진 단도는, 소태사의 손목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 나뭇가지에 꽂혔다. 

“-----각오해 두시기 바랍니다. 이 망할 영감. 언젠가 절대로 죽이러 갈테니까요.” 

소태사는 또 웃었다. 뒤돌아 보고, 기대하고 있겠네---하고 상관없다는 듯 유유히 웃었다. 

그리고 그는 선동성을 향해 곧바로 걸어갔던 것이다. 

 

 

“소하님.” 

소태사가 떠난 후-----갑자기 나타난 인영에, 소하는 뒤돌아 보았다. 

“…..주취.” 

주취의 몸을 흔들며, 소하는 조용히 물었다. 

“…..어째서, 왕궁에 머물러 있었지? 나는 그때 말했다. 각자의 길을, 생각대로 살아갔으면 한다고. ….자랑할, 일은 결코 없었으니까, 나는 항상, 모두에게 빚이 있었다. 특히, 너는…. 내가 주운 탓에, 이 길로 억지로 끌려들어오게 되어버렸으니까…..” 

주취는 얼굴을 들었다. 그 얼굴은 울 것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소하님! 저는, 바라는대로” 

“하지만, 너는 너무 어렸다. 이 일을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 

“후, 후회, 하고 계십니까? 저를 주운 것을?” 

소하는 깜짝 놀랐다. 주취의 눈가에서 주룩주룩 흐른 눈물을 닦아 주었다.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내가 후회하고 있는 것은, 너에게 바른 길을 걷도록 하지 못했던 것이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예뻤고, 머리도 좋았다. 얼마든지, 훌륭한 미래가 있었을 텐데….” 

주취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것은, 필요없었다. 단지 이 사람의 곁에 있고 싶었다. 그것만이 바램이었다. 그래서 왕궁에 남았고, 소태사의 부탁도 받아들였다. 물론, 소하의 곁에서 살아가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그가 선택한 부인을 무척 좋아했었고, 그의 딸을 사랑했다. 소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그러나----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미안…합니다…..죄송해…요.” 

주취는 훌쩍훌쩍 울었다. 이 사람 앞에서 주취는 언제나----단지 어린아이로 돌아가버렸다. 

불쑥 내밀어진 손수건을 확인한 주취는,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것은-----. 

“…..어느 사이엔가 부고에 놓여져 있었다. 내 앞으로, 보낸 사람은 불명이지만.” 

소하는 웃었다. 지그재그로 놓인 자수를 살짝 쓰다듬었다. 

“이 자수, 전에 본 기억이 있나 생각해서. ….너지? 주취. ------고마워.” 

주취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기뻐서, 주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잘했는걸. 내가 봐도 훌륭하게 되었어. 이 사자.” 

“…….에?” 

“자수는 곤혹이었던 네가 잘도 여기까지. 아내가 본다면 감격했을 거야. 이 갈기 같은 부분은 정말로.” 

“….꽃이예요.” 

“에?” 

“꽃병을 자수한 거예요. 그거.” 

소하는 말을 잃었다. 뒤이어 새파래져서 안절부절하는 소하의 모습에, 주취는 그만 웃어버렸다. 

달라지지 않았다----이 사람은. <일> 이외에는 언제나 손재주가 없고,------둔감하고. 

겨우 웃은 주취에, 소하는 안심했다. 그리고 살짝, 주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망할 영감에게, 수려의 목숨이 달려있다고, 들은 거겠지?” 

주취는 잠시 후,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역시, 하고 소하는 혀를 찼다. 

“예전부터, 그 사람은 정말 잔인한 사람이었다. 당분간 느긋하게 지내고 있었으니까, 나도 주의가 부족하게도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너는 잘못이 없어----하고 소하는 속삭였다. 

“<늑대>인 네가, 소태사에게 명령을 받았다면 수행할 수 밖에 없지. 눈치채지 못했던, 내 잘못이다. 정말로, 괴로운 생각을 잔뜩 하게 했구나.” 

주취는 어린아이처럼 훌쩍였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소하는 갑자기 물었다. 

“…..수려에게 독을 마시게 한 것이 너인가?” 

“아니요. 후궁에서 나온 차태보의 수하에게 건네주었지만----설마, 그런 일이 있을 줄은.” 

“그 도노사마저도 알지 못하는 독을…..더구나 저 해독약을, 어떻게 소태사가 가지고 있었을까?” 

그 노신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저 앞에 있는 고루를 아무런 생각없이 올려다 보고, 소하는 전율했다. 

----어째서, 그는 이 시간에 선동성으로 향한 것인가. 전설의 채팔선 이외에, 아무도 들어간 적이 없었다고 하는 풍아의 고루에? 

 

 

계속 걸어서, 소태사는 선동성에 닿았다. 고루를 조용한 눈길로 올려다 보았다. 

“…..소하, 너는 한가지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 

내가, 녀석을 곤경에 빠뜨린 것이 아니다-----녀석이, 그것을 원한 것이다. 

생각대로 살고, 죽는다.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로 움켜쥐어 왔다. 온갖 노력을 다해 기어올라 왔다. ----- 함께 보내온 시간은, 우리들밖에는 모른다. 

우정과 미움. 자신에게 향해진 그 생각을, 그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어째서, 라고 생각했다. 어째서, 너의 그 생각이 향하는 것이 <나>였던 것이지? 

하지만 그는 말했다. 내가 어떤 자라도, 설사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관계 없었다고. 뒤쫓고, 목표로 한 것은, <나>였기 때문이었다고. 

소태사의 입술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항상 보이던 것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기뻤다, 원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너를 놓을 수 없었다. 그 변함없이 격렬한 마음을 사랑하고 있었다. 

손에 잡고 있는 것처럼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죽였다. 

누구보다 긍지 높은 네가, 이것이 마지막의 마지막이라고 결정했으니까. 

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내가 그것에 어울리는 끝을. 마지막까지, 네가 붙잡을 수 없는 높이에 있는 것-----그것이, 네가 바라는 것이었겠지? 차원준----. 

나를 실각시키고 싶다고 바라면서, 계속 앞에 있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는 옛날부터, 제멋대로인 녀석이었으니까.”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 생각이 마음에서 넘치고, 하지만 입가에는 오르지 못한 채, 다시 마음 속 깊이 가라앉았다. ------오래고 오랜 동안, 함께 보냈던 것이다. 송과, 너와, 나 세 사람은. 

내가 없었다면, 너는 이 나라, 이 시대에 있어서 왕의 편이 되었을 것이다. 긍지 높은, 노력가로, 흔들림 없는 충성심을 가진-----사람을 싫어하는 나의 마음마저도 얻은 너는. 

“하지만, 너를 죽이는 것은 나의 임무였다.” 

너의 인생을 미치게 만든 남자로서. 네가 증오하고, 사랑한 친구로서. 너를 사랑한 친구로서. 

“늙었다고, 너는 말했지.” 

소태사는 밝아오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가, 늙은 것인가? 너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젊었을 때의, 야성적으로 격렬하고, 그리고 여자에게 상냥한 남자인 채였다-----“ 

그는 웃었다. 자조하는 듯, 자칫하면 울 것처럼도 보이는 얼굴로. 

“부러워. 원준…..사람인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