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툭하고 러시아어로 부끄러워하는 옆자리의 아랴 양 <번외편> 3-2

스오우 유키는 최종 보스가 될 수 없다
- 3권 애니메이트＆게이머즈＆토라노아나＆멜론북스 특전 -

※ 3권의 내용을 보완하는 SS이므로, 본편을 읽은 후에 읽어 주십시오.


"유키 님, 돌아왔습니다."
심술궂은 시어머니도 질릴 수준의 청소를 마치고 마사치카의 집을 나선 아야노가 스오우 가로 돌아와 보니, 유키는 자기 방 침대에 엎드린 채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유키 님? 몸이라도 안 좋으신 겁니까?"
"으응~ 아냐~. 살짝 자기 혐오 중…."
유키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서 아야노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더니, 신음인지 괴성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를 흘렸다.
"끄으으응~~ 아랴 양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 마음이 아파아아아~~."
"……."
"좀 심했을까?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고, 기왕이면 전력을 다해야겠다 싶은데, 할아버님한테 마구마구 압박을 받으니까~~ 끄아아아아~~."
유키는 얼굴을 베개에 비벼 대며 몸을 배배 꼬더니, 발까지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아야노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야노는 유키가 아리사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짓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유키의 반응을 보니, 아리사와의 우정에 금이 갈 만한 행위를 했으리란 것을 어렴풋이 눈치 챘다.

(원래라면, 제가 그런 일을 맡아야 하겠습니다만….)
고뇌에 빠진 주인을 본 아야노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남의 위에 서는 자는 깨끗해야만 한다. 깨끗한 눈으로, 아름다운 이상(理想)을 진지하게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모여 든다.
그리고… 위에 서는 자가 깨끗하기 위해선, 더러운 역할을 대신 맡아 줄 자가 필요하다. 마사치카가 그런 자였다. 과거에는 유키, 지금은 아리사에게 청렴결백한 리더라는 역할을 맡기고, 자신은 교섭이나 계략, 대립 후보와의 은밀한 심리전 같은 더러운 일을 도맡았다.
하지만 아야노는 그런 것을 못 한다. 심리전은 아야노가 어려워하는 분야이며, 성격이 너무 선량한 탓에 남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는 것을 못 한다.
(저는 뭘 위해서, 유키 님의 파트너가 된 걸까요….)
일반적인 학생회 업무라면, 아야노는 얼마든지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학생회 임원에게 필요한 능력이며, 선거전에서 도움이 되는 능력이 아니다. 마사치카와 노노아 같은 인맥과 교섭력을 지니지 못한 자신이 대체 뭘 할 수 있는가…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아야노는 유키가 엎드려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그러자, 버둥거리고 있던 유키의 발이 움직임을 멈췄다.

"하아…. 이래 가지곤 최종 보스가 될 수 없어…."
늘어진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유키의 뒷통수를 응시하며, 아야노는 입을 열었다.
"유키 님."
"응~?"
"이야기해 주십시오. 속마음을 전부 말입니다. 하다 못해 함께 짊어지고,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침대 옆에서 몸을 웅크린 아야노가 유키와 같은 눈 높이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유키는 눈을 살짝 치켜 뜬 후, 다시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저기, 아야노에게 푸념을 늘어놓을 만한 일은 아닌데… 뭐, 좀 이러다 보면 부활할 거야."
나른한 분위기에 휩싸인 유키가 아야노의 제안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평소의 아야노라면 그 말에 담긴 '내버려 둬'란 뜻에 따라, 조용히 방에서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아야노는 그 자리에 남아서, 유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유키 님."
"……."
"주인인 유키 님께서 종자인 저에게 어리광을 부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유키 님의 종자이자, 함께 회장 선거에 나가는 파트너이기도 합니다."
"……."
"부디 파트너인 저에게 의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않으신다면… 제가 유키 님의 파트너를 맡은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뭐야.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거야?"
유키는 머리를 들더니, 아야노의 앞으로 이동해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코 앞에서 아야노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확실히 오빠 레벨의 만능 치트 캐릭터가 서포트를 해 준다면 편리하긴 하거든? 완전 농땡이를 부려도 될 정도야."
"……."
역시 자신은 마사치카를 대신할 수 없는 걸까. 자신의 한심함을 느끼며 눈을 내리 깐 아야노의 귀에, 유키의 무사태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없더라도 문제 될 건 없어."
"어…."
아야노가 의외라는 듯이 눈을 치켜 뜨자, 유키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리를 꼬았다.
"왜냐하면, 나도 만능 치트 캐릭터거든."
당당히 가슴을 펴며 그렇게 말한 유키는 아야노를 내려다 보며 말을 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나에 대한 이해도와 충성도가 높은 파트너야. 인맥? 교섭력? 그런 건 필요 없어. 내가 가지고 있는걸."
"……."
"내가 파트너한테 원하는 건, 내가 가진 힘을 전부 발휘하게 해 주는 거야. 그런 점에서 본다면, 아야노 이상의 적임자는 없어. 내 모든 것을 알 뿐만 아니라, 서포트 역할로서 충분히 활약해 주잖아…. 이번에도 그래. 그 오빠에게, 우리가 한 방 먹여 준 거잖아?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무리야."
유키가 그렇게 말하자, 아야노는 마음 속의 응어리가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아야노가 망설임이 사라진 아름다운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다 보자, 유키는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아야노는 앞으로도 나에게 충실하게 행동해 주면 돼. 그러면… 나는 오빠한테도, 아랴 양한테도 절대 지지 않아."
"…네. 앞으로도, 변함 없는 충성을 유키 님께 바치겠습니다."
아야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더니,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야노가 마치 오체투지라도 하는 자세를 취하자, 유키는 거북하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아아~ 하지만 이번에는 아야노에게 안 좋은 역할을 맡겼네…. 오빠에게 독을 먹였다…는 건 좀 과한 표현이겠지만, 거의 비슷한 짓을 해서 괴로웠지?"
"……."
아야노가 고개를 숙인 채 침묵으로 긍정하자, 유키는 쓴웃음을 흘렸다.
"뭐, 그 답례 삼아 뭐라도 해 주고 싶은데… 바라는 거 있어?"
"…그럼, 외람됩니다만…."
"오~, 있어?"
평소에는 그런 희망을 전혀 입에도 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어도 사양하던 아야노가, 뜻밖에도 자기 희망을 털어 놓으려 한다는 사실에 유키는 놀라움과 기쁨을 느꼈다.
"응? 뭔데? 말해 봐."
"그럼…."
표정이 환해진 유키가 눈을 반짝이며 몸을 쑥 내밀자… 아야노는 약간 부끄러운 듯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제 머리를… 밟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