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운국 이야기 (彩雲國物語) 1권 -1장- 최초의 바람은 붉게

채운국 이야기 ~최초의 바람은 붉게

(彩雲國物語-はじまりの風は紅く)

 

채운국이라는 나라 이야기를 해보자.

아득한 옛날, 나라 안에 여러 괴물이 발호되었던 시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혼돈 속으로, 한 사람의 젊은이가 여행을 떠났다.

제멋대로 날뛰는 요괴를 쫓아내, 백성의 안녕을 되찾기 위하여,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여행을 그는 계속했다.

 

이윽고 그 생각에 마음이 움직인 8명의 선인들이 모여들었다.

남선, 홍선, 벽선, 황선, 백선, 흑선, 차선, 자선 – 색의 이름을 가진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채팔선이라고 불리며, 불가사의한 힘을 구사하여 젊은이를 도왔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창현. 8선의 지혜를 빌려, 나라의 기초를 세우고, 인간 세상에 어둠을 밝힌, 채운국 최초의 국왕.

창현의 사후, 8선은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그가 선인을 위해 지었던 풍아의 궁은, 선인의 거처-선동궁이라 불리며, 지금도 여전히 왕성의 일각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채운국 나라 이야기 – 이야기하는 사람은 전해지지 않음>

 

 

서장

 

심야-왕궁의 깊은 곳에, 중신들이 모여 은밀하게 비밀회의를 열고 있었다.

“….큰 문제군요.”

“예. 그뿐이 아닙니다.”

“주상이 즉위하신지도 반년.”

“무슨 수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 늙은이가 최근의 풍조에 따라갈 수도 없고.”

“바보녀석! 그런 것에 끌려 가라고 했낫.”

노인이지만 혈기 넘치는 중신이 버럭 소리쳤다. 그는 젊었을 때 전쟁의 제1선에서 활약했던 이름난 무장이었고, 60을 넘은 지금까지도 빨리 달아오르는 성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는-“

“그렇소. 이대로는 언제가 되든 아첨꾼, 간신들이 잔뜩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소.”

“뿐만 아니라, 왕위를 노리는 괘씸한 자마저 나타날지도.”

“눈앞의 큰 사건은-“

다른 사람들보다 침착하게 목소리로, 그러나 역시 찌푸린 얼굴로 중얼거린 것은 한 사람의 노신.

“아랫 것들에게 퍼지기 시작한 그 소문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되오.”

그 자리가 조용해졌다. 그렇다, 먼저 무엇보다도 그가 말하는 소문, 그것이야 말로 문제였다.

“화, 확실히.”

다른 한 사람이 땀을 훔치며 헛기침을 했다.

“나타날지도 모르는 간신에게 신경을 쓰기보다, 먼저 백성의 심정을 심사숙고하는 것이 선결입니다.”

“그그그러나, 손을 써야 하오.”

“이 이상 어떻게.”

명안을 떠올리지 못한 채, 분규하고 있는 비밀회의에서,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던 한 사람이 불쑥 입을 열었다.

“-저에게 한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나라의 일등 중신이었기 때문에, 주위의 목소리가 단번에 멎었다. 일동은 기대의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흔히들 말하고 있지 않소?”

백발을 풍성하게 기른 노신은, 의미있게 입언저리를 누그려뜨렸다.

“부인이야말로 천자의 대적이라고, 말이오.”

 

 

제1장. 좋은 이야기에는 내막이 있다.

 

 

그 절은, 어느 시각이 되면 언제나 아름다운 니코(중국의 현악기)의 소리가 흘러 넘쳐 나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것은 정말로 멋진 음색이었기 때문에, 절 옆의 주막과 찻집에는 시간을 가늠해 들으러 오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거리의 누구나가 사랑해 마지않는 니코였지만, 그 연주하는 손을 가진 소녀는 니코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 –알지 못하는 것은 본인 뿐이었지만.

이 날도, 언제나처럼 아이들이 졸라, 수업을 끝낸 후에 소녀-홍수려는 니코를 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악곡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채운국의 나라 이야기였다.

음색의 여음과 함께, 수려는 언제나처럼 말을 맺었다.

“….그리하여, 채팔선은 모습을 감추어버리고 말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고 있다고 하니, 혹시 지금도,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려는 웃으며 <그럼, 끝>하고 말했다. 그 순간, 진지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은 호오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요 수려 선생님.”

“응?”

“선동궁은 지금도 정말로 성에 있어요?”

수려는 니코를 옆에 두고ㅡ <으응>하며 웃었다. 그리고 소년의 머리를 부비부비 쓰다듬었다.

“지금은 선동성이라고 불리지만, 왕성의 일각으로 정말 있다고 정란이 말했어.”

“수려 선생님도 본 적이 있어요?”

동그란 머리가 귀여운 소녀가 눈을 반짝거리며 수려의 무릎에 손을 댔다.

그 순간에, 수려는 진심으로 탄식했다.

“유감스럽게도, 아니야. 나도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보고 싶단다. 하지만 역시 성이니까. 국식을 받아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은 남자 아이밖에 받을 수 없고.”

“그렇다면 언젠가 제가 국식을 받아서, 훌륭한 관리가 되어, 수려 선생님을 신부로 맞을께요. 그렇게 하면 성에 데려갈 수 있을 거예요.” 

우쭐거리며 가슴을 펴는 활기찬 소년을 향해, 수려는 웃었다.

"정말? 그건 기쁜데. –하지만 유진, 그러기 위해서는 좀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돼. 어제 낸 숙제, 잊어버렸지.”

“그, 그건.”

당황한 소년의 옆에서, 동그란 머리의 소녀가 수려에게 안기면서 베-에하고 혀를 내밀었다.

“흥, 너 같은 건 절대로 무리야. 언제나 숙제를 안해오잖아.”

“유진은 관리보다 정란처럼 국무시험을 봐서 무관이 되는 쪽이 빠를지도 몰라.”

“아-맞아요. 싸움은 잘하니까. 싸움뿐이지만.”

“하지만 어머니와 수려 선생님에게는 약하잖아. 아니야?”

“너, 너희들.”

얼굴이 새빨갛게 된 소년이 주먹을 들어 올렸을 때, 절의 문이 똑똑 두드려졌다.

“실례합니다.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아가씨.”

들어온 장신의 사람을 보고, 수려는 깜짝 놀랐다.

“-정란, 어떻게 된 거야. 이런 곳에.”

“아-앗, 정란이다.”

“정란 칼싸움 놀이 하자.”

눈깜짝할 사이에 아이들에게 둘러싸여진 청년-정란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어, 미안. 오늘은 조금 볼일이 있어. 다음에 놀자.”

에-엣하고 입을 내민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그는 수려 쪽을 향했다.

“아가씨, 곧 저택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 전원이 에-엣하고 소리를 높였다.

수려도 예정 외의 손님에 내심 신음했다. –어찌된 일인가 하니. 오늘은 지금부터 대단히 중요한 <일>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허리를 올려, 이별이 아쉬운 듯이 옷자락을 잡아오는 아이들 하나하나의 머리를 부비부비 쓰다듬었다.

“미안.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 했던 것, 잊어버리면 안돼? 유진은 숙제도야.”

한쪽 눈을 찡긋하며, 수려는 정란과 함께 길을 나섰다. 그리고 이상한 듯이 머리를 갸웃했다.

 

“-그런데 정란, 어째서 이 시간에 여기에 있어? 오늘은 조정에 출사하는 날이잖아?”

“예…그렇습니다만, 저택에 오신 손님과 동행을 부탁받아서….”

“그 사람의 사적인 용무로 돌려지게 된 거야? –어떤 손님인데 그렇게 신분이 높은 사람이야?”

“예. 뭐….”

묘하게 분명하지 못한 태도에, 수려는 더욱 더 의심스러웠다.

정란은 온화한 용모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한 검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에, 수려의 집안-홍씨 가문의 후원이 없는 것과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빠르게 출세해, 지금은 무관으로서 제대로 된 지위에 있었다. 물론 조정 전체에서 본다면 인물 축에 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수려에게 있어서는 충분히 큰 인물이었다.

“누가 무슨 용무로 나를 만나러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전에 한마디라도 해줬어야 하는 거 아냐? 급하게 불러내서…. 덕분에 예정이 엉망이 됐어. 엉망이 됐다구.”

꾹 주먹을 쥐고, 수려는 기세 좋게 정란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 가슴에 매달렸다.

“어떻해 정라안! 이번 달도 적자가 되버려. 이 뒤에 상당히 수지 맞는 일이 있었는데 전부 없어져 버렸어, 없어져 버렸다구! 이번 달은 꼭 쌀을 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또 보리 같은 건… 보리 따위… 보리 따위!!! 그 보리의 한가운데를 달리는 그 선! 쌀과의 차이를 똑똑히 보여주는 그 선에 이번 달도 <나는 쌀이 아니야> 라고 비웃음 당하는 거야. 아- 이제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어! 그 손님 평생 미워할거야~”

“아, 아가씨.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으니까. 보리는 말하지 못해요.”

정란은 사람들 눈이 신경 쓰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왕래가 잦은 길 한가운데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으니 당연하지만…. 길을 가던 사람의 시선이 차갑다.

“괜찮아요. 나도 부업을 늘렸으니까. 요사이 큰 바람에 날려간 기와의 수리는 빨리 하지 않으면 비가 내렸을 때 큰일이고, 나무통 가격도 지불해야 하니까요. 기와만 사면 수리는 제가 하니까, 그 부분은 줄어요. 고장난 격자도 성에서 가져온 물건으로 고칠 수 있고….그러니까 울지 마셔요. 저는 보리밥이 제일 좋아요. 영양가도 있고.” 

“우아아앙. 정란. 항상 항상 폐만 끼쳐서 미안해. 우리 바보 아버지가 좀더 확실히 해준다면 이런 것은.”

“그런 것은 신경쓰지 마셔요.”

“급료도 주지 못하는데 계속 우리 집에 있어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렸는데. 어엿한 조정의 무관에게, 주루의 계산대를 맡긴다든가, 책을 대필하게 하고, 상가의 일을 대신 부탁하게나 하고.”

“…..”

그야 분명 그 말대로다, 라고 정란은 생각했다.

“정란 혼자라면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녹을 받고 있는데, 우리 집에 있으니까 집의 유지료라든가 생활비에 전부 없어져버리고… 그런데도, 우리 집은 신경쓰지 말고 좀더 좋은 가문을 섬겨도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우리 부자를 용서해 줘. 하지만 하지만, 정말로 좋은 일자리가 생긴다면 우리들은 신경쓰지 마.”

“아가씨.”

정란은 쓴웃음을 지으며 수려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 것은 신경쓰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나가라고 하실 때까지 곁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폐라든가 하는 생각은 하지 마셔요. 게다가 겨우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쁜걸요.”

“은혜라고…”

“12년전, 근본도 모르는 저를 거두어 댁에 있을 수 있게 해주신 은혜는 일생동안 갚으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가씨는 걱정하실 필요가 전혀 없어요.”

“….정라아안…”

수려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정말- 왜 우리는 이렇게 영락한거야! 신분만 높은 주제는 이제 싫어-엇!!”

“….”

수려의 등을 쓰다듬으면서, 정란도 마음 속으로 곰곰이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신분만은 높지만…)

 

 

원래 이 채운국은 8주로 나누어져 있고, 각자를 남주, 홍주, 벽주, 황주, 백주, 흑주, 차주, 자주라고 한다. 이러한 주명은 예전부터의 호칭이지만, 600년 정도 전, 당시의 왕이 묘한 생각을 일으켜, 각주를 다스리던 귀족들의 성을 바꾸었던 것이다. 즉, 남주후는 남씨로, 홍주후는 홍씨로, 라는 방식으로. 동시에 8명의 제후와 같은 성을 가지는 것을 백성에게 금지시켜, 이 8색의 성을 갖는 것은 즉 대귀족이라고 암암리에 알리는 것이 되었다. 더욱이 수도-조정을 두고 있는 자주의 제후는 왕이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래로 자씨는 왕족을 나타내는 성이 되었다. 

그로부터 600년. 통치체제는 각주의 귀족이 다스리는 봉건제로부터, 조정의 중앙관청에 의한 파견제로 이동하면서도, 일곱 가문-자씨는 왕족이기 때문에 격이 다르다-은 아직 건재했다.

귀족의 자제가 차지하고 있던 고관으로의 길을 서민에게도 여는, 관리등용제도-국식제가 시작된지 수십년, 최종시험인 전시에까지 겨우 당도하는 것은 많은 수가 일곱 가문과 관련된 자였다. 일곱 가문은 국식제로 바뀌는 것과 동시에, 그때까지 비축해두었던 재물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어, 인재육성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 결과, 일곱 가문에서 차례차례 인재가 배출되어, 그 위세는 더욱더 높아졌다. 물론, 고관이 되면 많은 액수의 녹을 받기 때문에, 일곱 가문에 거스르지 않았다. 

수려는 그 중 홍씨 가문-게다가 유서깊은 직계의 아가씨였다. 홍씨 가문이라고 하면 일곱 가문 중에서도 남씨 가문에 이어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왕의 성인 자씨는 홍색과 남색이 섞인 색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세력이 있었던 두 가문에 그 색을 추서했다는 일화도 있을 정도였다.

(…정말이라면 아가씨도, 여러 하녀들이 시중드는 우아한 생활을 하고 있었을 텐데.)

이번 달도 보리밖에 먹지 못하고, 아아 장부는 적자, 날아가버린 기와를 고치지 못해 비가 새서 곤란하지만 돈이 없으니 어떻하지, 하고 울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어째서 혈통좋은 홍씨 가문의 아가씨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아무래도 홍씨 가문의 장자인 수려의 아버지, 소하는 예전부터 대범한 학자 기질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일족의 종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야기 되어졌던 듯 하다. 바로 아래의 동생이 지나칠 정도로 유능하다는 평판이었던 것도 있고, 소하의 아버지는 돌아가실 무렵, 동생 쪽을 차기 종주로 한다는 뜻을 전했다. 원래 자신에게 종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소하는, 오히려 기뻐하며 이 유언을 받아들였다.

다만, 동생이 가문을 계승하게 되자, 장자인 소하의 입장은 미묘한 것이 되어버렸다. 생각한 끝에, 그는 처자를 데리고 홍주를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홍씨 가문의 장자를 떠돌이가 되게 해서는 안되어, 홍씨 일족은 자주에 저택을 짓고, 조정고관의 지위도 준비했다. 그리하여 소하는 이곳 자주로 옮기는 도중 쓰러진 정란을 주워 지금의 저택으로 옮겨 살았던 것이다.

조정의 고관이기는 하지만, 부고(府庫)-도서관-의 관리라는 상당히 좋은 관직으로, 그런 직위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를 위한 재정을 관리하는 호부도 여러 차례 소하에게 녹을 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직, 소하가 그것에 불만을 말하거나 하지 않기 때문인지, 어쩐 일인지 녹은 매년 줄고 있어, 끝내는 일가가 총출동-이라고 해도 소하와 수려와 정란의 세사람-하여 알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소하는 부고에 담긴 서책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아, 실제로 수려와 정란이 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정란은 옛날을 떠올리며 잠깐 그리운 눈빛을 했다.

(…이 광대한 저택의 유지비 같은 건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당초에는 수려도 정란도 비교적 낙관하고 있었다. 별로 사치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삼인분의 식사비를 벌 수 있다면 좋으니까, 어떻게든 될 거라고. 그러나.

그 바보같이 넓은 저택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녹의 반 이상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따위는 설마 생각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녹이 점점 줄어갔기 때문에, 저택에 들어가는 돈은 늘어만 갔다. 규정대로의 녹을 확실히 받아오라고 소하에게 엄명해도 마이동풍. 출사해 부고에 틀어박히면 끝장. 잡.념.은 전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듯 하다.

“아가씨… 아가씨는 잘 하고 계셔요. 매일 매일 가사를 돌보고, 절에서 아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저녁 무렵까지 어딘가로 일하러 나가서… 분명 오늘은 아가씨에게 있어서 휴일이지요. 그리고 조금이지만 제 급료도 올랐으니까…”

수려는 기세좋게 고개를 들었다. 삽시간에 그 얼굴이 기쁨으로 환해졌다.

“그건 또 승진했다는 거지? 대단하잖아. 정란! 좋아. 오늘 밤은 한턱낼게.”

“에? 하지만.”

“괜찮아! 재료는 적지만, 여러가지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 내 솜씨를 보여줄게. 앗 하고 놀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줄 테니까.”

기분좋게 달리기 시작한 수려를 보고, 정란은 피식 웃었다.

급료가 오른 것은 아닌, 승진했다는 그것에 기뻐해주는 수려의 마음씨가, 그는 무엇보다도 기뻤다.

 

 

***

 

 

“조정삼사인-소태사시라구!?”

손님이 누구인가, 말하기를 망설인 정란을 추궁한 결과, 나온 말에 수려는 매우 놀랐다. 무심코 열려고 했던 찻잎을 전부 쏟아버렸다. – 위험하다, 찻잎값도 찻잎값이지만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정도로, 정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조정삼사. 그 사람은 왕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스승인 관리로, 그 지위는 왕의 다음. 실무에 관계하는 일은 없지만, 틀림없는 백관의 한사람으로, 말석의 왕족따위보다 상당한 권위가 있다.

게다가 소태사라고 하면, 영주로 이름이 높은 선왕을 그늘에서 빛으로 이끌어냈다는 명재상으로 이름 높은 인물이다. 수려에게 있어서 구름 위라고나 할까, 전설 속의 사람이었다.

“어, 어, 어째서 그런 사람이 나를 만나러 왔다는 거얏!!”

“그게.”

정란도 전혀 목적을 알 수 없었다. 그 자신도, 소태사로부터 직접 <홍씨 가문의 영애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안내를 부탁하네.> 등을 들었을 때는, 일순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영애>라는 단어가 수려와 연결되지 않았고, 안내를 부탁해도 무엇도 정란이 섬기고 있는 가문에는 의지할 정도의 일손이 없다. 대체로 그의 딸은 낮동안에 방문해도 저택에서 나가 있었기 때문에 부재였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지금 그. 아버님이 혼자서 상대하고 있다는 거야….?”

“예.”

“차도 내지 않고.”

“…찻잔이 있는 장소를 몰랐어요.”

정란은 피곤한 듯이 웃고, 과자를 접시에 담았다.

부엌에는 도둑에게 털린 후처럼 접시와 젓가락이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소중한 찻잔은 전부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찻잔을 찾는 노력은 한 모양이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 것 같았다. 주인어른에게 가사능력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뭐, 손님이 오셨으니 차를 내려고 생각한 그 행동은 높이 평가해줘도 좋아. 평소의 아버님을 생각하면 굉장한 거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수려는 완전히 준비가 된 쟁반을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수려의 동작이 달라졌다. 좍 등줄기를 펴고, 미끄러지듯이 걷기 시작했다. 그 훌륭하고 우아한 행동에, 언제나처럼 정란은 감탄했다. 이렇게나 완벽한 행동은, 궁전의 여자 관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정란등은 아깝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가는 것은. 수려는 마을에서 생애를 마치기에는, 상당히 아까운 지식과 교양을 몸에 익히고 있으니까. 

 

객실에 도착했을 때, 방에서 들려오는 담소에 수려는 의외인 듯이 눈썹을 올렸다.

“…이야기가 잘되시는 모양이네. 아버님께 화술의 재능 같은 게 있으실 턱이 없는데. 취미라도 맞으시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소태사께서 이야기를 맞춰주시고 계신 걸까?…아마, 아니 절대로, 후자일 것이다.

수려가 표정을 다잡음과 동시에, 정란이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과 손님을 향하고, 무릎을 꿇었다.

“-수려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오오, 그런가.”

빙긋이 온화한 웃음을 띄우고 일어난 남자야말로, 이 저택의 주인, 홍소하였다. 아직 마흔이 될까 말까한 그는 수염을 기르지 않아, 자칫하면 서른으로도 보일 정도로 젊어 보였다. 

“저…아…차의 준비는….?”

꾸물꾸물 중얼거리는 주인에게, 정란은 무심코 웃었다.

“아가씨께서 가져오셨습니다. 주인님께서 좋아하시는 콩과자도 입니다.”

그 순간, 팟하고 소하의 얼굴이 빛났다.

솔직한 반응에 정란은 무심코 웃음이 나오려고 하자, 당황해서 배에 힘을 주었다. 역시나 소리 내어 웃는 것은 곤란하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소하 뿐이 아닌 것이다.

어떻하든 진지한 표정을 꾸미고, 정란은 문을 천천히 열었다.

수려는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와, 들고 있던 쟁반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세걸음 뒤로 물러서, 꿇어 앉았다.

“-수려,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제가 집을 비웠던 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래 기다리시게 한 것, 깊이 사죄드립니다. 이렇다 할 대접도 하지 못합니다만, 부디 편안히 쉬시기를.”

양손을 가슴 앞으로 모은, 완벽한 예의.

그 일거수 일투족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던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를 폈다.

“…일어서시게. 수려.”

수려는 고개를 들었다.

세월과 함께 새겨진 주름, 입가를 덮은 긴 수염, 깊은 예지를 띤 두개의 눈동자 – 등을 펴고 일어선 그는, 마치 나이든 큰 나무 같았다. 수려는 자연히, 머리가 숙여졌다.

“만나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소태사.”

“자아, 자아, 인사는 이제 되었으니, 탁자로 오시게. –정란도.”

굳이 사양하려고 한 정란의 선수를 친 소태사는 거듭 이야기했다.

“정란에게도 관계가 있는 이야기니까 말일세. 자, 둘다 탁자로 오시게.”

수려과 정란은 무심코 얼굴을 마주보았다. …정말로,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가?

“차를 끓여 주겠나? 역시 물만으로는 배가 조금 차가워서.”

조금 슬픈 듯이 소태사가 배를 문질렀다. 언틋 탁자를 본 수려는 다음 순간 창백해졌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찻잔을 발견하지 못하자 대신 물을 그대로 낸 듯하다. 잘 보면 마루에 나무통이 놓여 있다. 그렇다는 것은 우물에서 길어 와서, 태사의 눈 앞에서 직접 나무통에서 공기에 담아낸 것인가? 말이나 소도 아니고 – 도대체 조정백관의 우두머리에게 무슨 짓을.

(아버지--------ㅅ!!)

수려는 내심 절규했지만, 소하는 빙긋이 웃고 있다. 아무래도 <손님은 제대로 대접했다>고 생각해 칭찬받고 싶은 듯. 수려는 침착해질 사이도 없이, 당황해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소태사는 곧 본론에 들어가지 않았다. 차를 홀짝홀짝 마신다거나, 약간 팔을 뻗어 만두를 집어먹는다든지 했다. 그리고 휴우 한숨을 쉬었다.

“대단히 맛있었네. 수려가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네.”

“아, 예. …칭찬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만두가 사라진 것을 보면서, 수려는 내심 크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야기라고 하는 것을 빨리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꺼낸 말은 다른 것이었다.

“더 드시겠습니까?”

손님에게 불쾌한 생각을 들게 해서는 안돼요. –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 중 하나. 절대 이쪽에서 무엇인가 요구를 해서는 안됩니다. 저 분이 자연히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셔요. 그것을 위해 정성껏 대접하고 배려하도록 하셔요. 자신은 두번째입니다. 그것이 손님을 대접할 때의 예의.

(예. 어머님.)

수려는 천천히, 정중하게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정란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소태사의 작은 접시에 새로 만두를 담았다.

소대사는 슬쩍 소하를 보았다. 소하는 시선을 눈치채고, 미소로 답했다. 조금 기쁜 듯이. 어떻습니까? 좋은 아이들이죠? 그렇게 자랑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침묵은 잠시. 소태사는 가볍게 헛기침을 한 후, 찻잔을 놓았다.

“-수려, 정란. 갑자기 미안하네. 부탁이 있다네.”

수려와 정란은 등줄기를 바로했다.

“만약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 사례로서, 이것만이라도 치루려고 생각하오.”

소태사는 바로, 오른손을 펼쳐 들이댔다.

갑자기 돈 이야기를 하자, 정란은 눈이 점이 되었다. 그러나 수려는 달랐다. –그녀는 일가의 빚진 가계를 변통하는 주부였다. 좋은 일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머리 속에 손익계산을 하고, 즉시 물었다.

“-어느 정도 입니까? 동오십량? 동오백량? ….서, 설마, 은다섯량, 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면서 아직 머리를 끄덕이지 않는 소태사. 수려는 손바닥에 땀이 배는 기분이었다. …이, 이것은…어쩌면 대단히 구미당기는 이야기…!?

덧붙여서 소하와 정란은, 둘의 이상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슬슬 몸을 빼고 있었다.

소태사는 그렇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금, 오백량, 이오!”

수려의 눈의 색이 변했다. 믿을 수 없는 액수였다. 일가 다섯 사람이 십년을 편하게 지낼 수 있다 – 그리고 이 쓸데없이 너무 큰 심한 저택의 유지 및 수선, 그리고 매일 약간의 사치 – 즉 쌀빕을 먹고 싶다는 것 등을 생각한다면 딱 맞는 가격이었다.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시켜주십시오.”

탈출. 보리밥. 비오는 날의 나무통은 안녕. 지금 그녀의 머리에는 그것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소태사는 두말하기 없기 등을 확인받았다.

“정란은 일시적으로 우림군으로 특진하여, 주상전하를 수행하도록 하시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대출세였다. 정란은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소태사는 거듭 수려에게 말했다.

 

“-수려. 그대는 후궁에 들어, 왕의 비가 되도록 하시오.”

 

그 순간 수려의 얼굴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볼만한 것이었다고, 정란은 훗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