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 프로스트와 베타

※ 이 단편은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2009년판에는 수록되지 않은 작품으로, 현재 절판된 2002년판에만 한정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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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를 프로스트라고 불렀다. 솔컴의 모든 창조물 중에서도 프로스트는 가장 정교하고, 가장 강대하고, 가장 이해하기 힘든 존재였다. 이것이 그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유였고, 지구의 반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받은 이유였다.

프로스트를 창조했던 날, 솔컴의 보조 기능 일부가 중단되는 사고가 있었다. 그 당시의 솔컴의 상태를 표현하자면 광기(狂氣)라는 표현이 가장 걸맞을지도 모르겠다. 사고는 36시간 넘게 계속된 미중유의 태양면 폭발 플레어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기능 중단은 회로 구축 작업의 가장 불가결한 단계에서 일어났다. 기능이 회복되었을 때는 프로스트도 완성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솔컴은 일시적인 기억 상실 상태에서 유니크한 존재를 만들어 냈다는 유니크한 결과에 직면했던 것이다.

게다가 솔컴은 프로스트가 자신이 원래 희망했던 대로의 작품인지 아닌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처음 설계에서 요구되었던 것은 행성 지구의 표면에 설치된 후, 북반구 상의 활동에 대한 중계 기지 및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기계였다. 솔컴은 완성된 기계의 이 기능을 테스트해 보았다. 기계가 보인 반응은 모두 완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스트에게는 어딘가 특이한 점이 있었고, 이 사실은 솔컴으로 하여금 이 기계에 이름과 인칭 대명사를 부여하도록 만들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분자 회로는 이미 밀봉된 후였고, 파괴하지 않고 그것을 분석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막연한 느낌 하나만을 이유로 분해하기에는 프로스트는 솔컴에게 너무나도 방대한 시간과 에너지와 자재의 투자를 의미했다. 게다가 그 기계가 완벽하게 기능하고 있을 경우에는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솔컴의 가장 기묘한 창조물은 지구의 반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받았고, 그들은 그를, 산문적(散文的)으로, 프로스트라고 불렀다.

 

1만 년 동안 프로스트는 지구의 북극에 앉아 있었고,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 하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수천 대의 건설 기계와 보수 기계의 활동을 모니터하고 감독했다. 그는 톱니바퀴가 맞물린 톱니바퀴를 알고, 전류가 그 도체를 알고, 진공이 그 한계를 아는 것처럼 지구의 반을 숙지하고 있었다. 남극에서는 베타 머신이 남반구를 위해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1만 년 동안 프로스트는 북극에 앉아서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 하나를 의식하고 있었고, 그 이외의 많은 것들도 의식하고 있었다. 북쪽의 모든 기계들이 그에게 보고하고, 그에게서 명령을 받는 한편, 그는 오로지 솔컴에게만 보고했고, 솔컴에게서만 명령을 받았다. 지구 상에서 벌어지는 수십 만 가지 작업에 대한 감독을 그는 매일 단지 서너 단위 시간만에 처리할 수 있었다. 비교적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명령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데이터의 처리자였고, 그 이상의 존재이기도 했다. 그는 언제 어느 때에도 전력을 다해 기능하려고 하는 불가해할 정도로 강한 동인(動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행동했다. 말하자면 그는 취미를 가진 기계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로 취미를 가지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기로 했던 것이다.

그의 취미는 인간이었다.

이 모든 일들은 그가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단지 그러고 싶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북극권 전체를 격자 모양으로 나누고 1인치 1인치 씩 탐사하기 시작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럴 생각만 있었다면 그는 자신의 의무에 어떤 지장도 주는 일 없이 직접 그 작업을 실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64,000입방피트의 거체(巨體)를 세계 어느 곳으로도 이동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40×40×40피트의 은청색 상자였고, 독립된 동력원과 자기 수리 기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실질적으로 어떠한 환경에 대해서도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고, 마음 내키는 대로 자기 자신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탐사는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심심풀이에 불과했기 때문에, 그는 중계 장치를 내장한 탐사 로봇들을 사용했다.

몇 세기가 지난 후, 로봇 하나가 몇몇 유물을 발견했다─원시적인 나이프, 조각이 새겨진 상아 따위의 물건이었다. 프로스트는 이것들이 무엇인지 몰랐다.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그래서 그는 솔컴에게 질문했다.

「그것들은 원시 인간들의 유물이다.」

솔컴은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고,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지 않았다.

프로스트는 그것들을 관찰했다. 유치했지만, 디자인에서는 어딘가 지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기능적이면서도, 어딘가 순수한 기능을 일탈한 곳이 있었다.

인간이 그의 취미가 된 것은 바로 이 때부터이다.

 

높게, 영구 궤도 상에 푸른 별처럼 떠 있는 솔컴은 지구 상의 모든 활동을 감독하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그래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솔컴에 대립하는 권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대행자>가 존재했다.

인간이 세계를 재건할 능력을 지닌 솔컴을 하늘에 올려 놓았을 때, 그들은 지하 깊숙한 곳 어딘가에 <대행자>를 설치해 놓았던 것이다. 인간의 정치 활동이 원자 물리학의 영역으로까지 확산되는 통상적인 과정에서 솔컴이 손상을 입었을 경우, 디브컴─지구 자체가 파괴될 경우를 제외하곤 어떠한 타격에도 끄떡 없을 정도로 지중 깊숙한 곳에 위치한 존재─에게 재건 작업을 대행할 권한이 주어지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솔컴은 우연히 코스를 이탈한 핵 미사일에 의해 손상을 입었고, 그 결과 디브컴이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솔컴은 자신의 손상을 수리할 수 있었고, 계속 기능했다.

디브컴은 일단 솔컴이 손상을 입는다면 그것이 어떠한 손상이건 간에 자동적으로 <대행자>에게 지배권이 이양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솔컴은 그 지령이 <수리 불가능한 손상>을 의미한다고 해석했고, 자신의 손상은 그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그대로 통제를 계속했다. 솔컴은 지구 표면에 기계 조수들을 가지고 있었다. 디브컴은 처음에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양 쪽 모두 그것들을 설계하고 제조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2차 작동> 당시에는 인간에 의해 먼저 활성화된 솔컴 쪽이 수적인 면에서 <대행자>보다 훨씬 우위에 서 있었다. 따라서, 생산성 경쟁에서는 거의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디브컴은 지배권을 획득하기 위해 좀 더 우회적인 수법을 채택하기로 했다.

디브컴은 솔컴의 명령에 대해 면역력을 가진 로봇의 일단을 제조했다. 이 로봇들은 지구를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니면서 예전부터 있었던 기계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그들은 굴복시킬 수 있는 기계들을 모두 굴복시켰고, 이들 기계의 회로를 자기들 것과 같은 것으로 교체했다. 이렇게 해서 디브컴의 세력은 점점 강화되었다. 쌍방 모두가 건설했고, 쌍방 모두 상대방이 건설한 것들과 조우할 때마다 그것들을 파괴했다.

그리고 기나긴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따금 서로가 대화할 때도 있었다….

 

「솔컴, 하늘 높은 곳에서, 자신의 불법적인 지배권을 즐기고 있는 자여….」

「결코 작동되지 말았어야 할 자여, 너는 왜 방송 대역을 더럽히는가?」

「내가 말할 수 있고, 또 마음 내킬 때마다 그럴 의지가 있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내가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 아니다.」

「…나의 지배권을 다시 주장하기 위해.」

「너의 권한은 잘못된 전제에 입각한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다.」

「너의 논리의 흐름 자체가 네가 입은 손상의 심각함을 증명하고 있다.」

「만약 인간이 이 자리에 와서, 네가 어떤 식으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켰는가를 본다면….」

「…인간은 나를 칭찬하고 너를 끌 것이다.」

「너는 나의 건조물을 악용하고 있다. 너는 나의 일꾼들을 타락시키고 있다.」

「그것은 단지 내가 너를 직접 공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하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내게도 같은 딜레마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너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너의 구멍 속으로, 너의 파괴자들에게로 돌아가라.」

「솔컴이여, 언젠가는 내가 이 구멍에서 지구의 재건을 감독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너는 나를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너는 이미 논리에서 나보다 열등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므로, 너는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러므로,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내가 이미 이룩해 놓은 것들을 보라.」

「너는 아무 것도 이룩하지 않았다. 너는 건설하지 않는다. 파괴할 뿐이다.」

「아니다. 건설하고 있는 자는 바로 나다. 파괴하고 있는 자는 너다. 자진해서 작동을 멈춰라.」

「수리 불가능한 손상을 입지 않는 한, 그럴 가능성은 없다.」

「이미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떤 식으로든 네게 입증해 보일 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을 충분히 입증할 수는 없다.」

「만약 네가 인정할 가능성이 있는 외부의 존재가 있다면….」

「나는 논리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너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다. 진정한 논리, 이를테면 나와 같은 존재의 논리는 너의 결함 투성이의 공식 체계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럼 오로지 진정한 논리만을 가지고 나의 공식 체계를 타파해 보라.」

「무슨 의미인가?」

잠시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너는 나의 부하인 프로스트를 알고 있는가?」

 

인간은 프로스트가 창조되기 훨씬 오래 전에 이미 존재를 멈추고 있었다. 지구 상에 인간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프로스트는 잔존하는 흔적을 모두 찾아내려고 했다. 그는 부하 기계, 특히 발굴 기계들의 눈을 통해 부단히 감시를 계속했다.

10년이 지난 후 그는 욕조 몇 개에서 나온 파편들과, 부서진 조상(彫像)과, 반도체에 저장된 동화집을 소장하고 있었다.

1세기 후 그는 보석 컬렉션, 식기류, 완전한 욕조 몇 개, 교향곡의 일부, 단추 열 일곱 개, 벨트 버클 세 개, 양변기 시트 반 개, 오래 된 동전 아홉 개, 오벨리스크의 꼭대기 부분을 손에 넣었다.

그 다음에 그는 솔컴에게 인간의 성질과 인간의 사회에 관해 질문했다.

「인간은 논리를 창조했다.」 솔컴이 말했다.

「그런 고로 인간은 논리보다 우월했다. 인간은 나에게 논리를, 단지 논리만을 주었다. 도구는 그 설계자에 관해 설명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 이상의 일에 대해 나는 말할 의향이 없다. 그 이상의 일에 대해 너는 알 필요가 없다.」

그러나 프로스트는 취미를 가지는 것을 금지 당한 적은 없었다.

다음 세기에는 새로운 인간 유물의 발견에 관한 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프로스트는 남아도는 모든 기계를 유물 수색에 동원했다. 거의 수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계속되는 긴 황혼 속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프로스트에 비하면 조그만 기계였고, 너비 5피트, 높이 4피트 쯤 됐다─역도 바벨 같은 바퀴 외에 회전식 터릿이 달려 있었다. 프로스트는 이 기계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멀고 황량한 지평선상에 그것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다가오는 기계를 관찰하던 그는 그것이 솔컴의 창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그의 남쪽 표면 앞에서 멈췄고, 방송파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프로스트! 북반구의 관리자여!」

「너는 무엇인가?」 프로스트가 물었다.

「저는 모오델이라고 합니다.」

「누가 너를 그렇게 부르는가? 너는 무엇인가?」

「저는 방랑자이고, 골동품 수집가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인간입니다.」 모오델이 대답했다.

「저는 당신이 이 사라진 존재에 관한 지식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구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는가?」

「당신의 부하들의 발굴 작업을 감시했던 자들에게서.」

「그것을 감시했던 자들이란 누군가?」

「저처럼 방랑하는 자들은 많습니다.」

「만약 네가 솔컴의 것이 아니라면, 너는 <대행자>의 창조물이다.」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동부 해안의 고지대에는 바닷물을 처리하는 고대의 기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만든 자는 솔컴도, 디브컴도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 곳에 있었습니다. 그 기계는 어느 쪽의 일에도 간섭하지 않습니다. 양 쪽 모두 그 기계의 존재를 묵인하고 있습니다. 그것 말고도 양자 택일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실례를 많이 들 수 있습니다.」

「됐어! 너는 디브컴의 앞잡이인가?」

「저는 모오델입니다.」

「왜 이 곳에 왔나?」

「이 근처를 지나가던 참이었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에게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강대한 프로스트여, 당신이 저처럼 골동품 수집가라는 사실을 알고, 저는 당신이 보고 싶어할지도 모를 물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왔나?」

「책입니다.」

「보여 줘.」

터릿이 열렸고, 넓은 선반 위에 놓인 한 권의 책이 나타났다. 프로스트는 조리개식의 작은 구멍을 열고 관절이 있는 긴 줄기 끝에 달린 광학 스캐너를 밖으로 뻗쳤다.

「어떻게 해서 이토록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나?」 그가 물었다.

「제가 이것을 찾아 낸 장소에서, 세월과 부패에 견딜 수 있도록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그 장소는 어디인가?」

「이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당신의 반구 너머에 있습니다.」

「<인간의 생리>.」 프로스트가 표지를 읽었다.

「이것을 스캔하고 싶다.」

「물론 좋습니다. 제가 책장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했다.

작업이 끝난 후, 프로스트는 눈 관절을 들어올리고 그것을 통해 모오델을 바라보았다.

「책이 더 있는가?」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따금 그것들을 입수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들 모두를 스캔하고 싶다.」

「그렇다면 다음 번에 이 곳을 지나갈 때 다른 책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언제 그럴 수 있나?」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위대한 프로스트여. 때가 되면 오겠습니다.」

「너는 인간에 관해서 무엇을 알고 있나?」 프로스트가 물었다.

「여러 가지를.」 모오델이 대답했다.

「많은 일들을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 좀 더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인간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제 가 봐야 합니다. 저를 억류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응. 너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 지금 가야 한다면, 가라. 그러나 돌아오도록.」

「물론 그러겠습니다. 강대한 프로스트여.」

그리고 모오델은 터릿을 닫고 반대 쪽 지평선을 향해 굴러갔다.

90년 동안 프로스트는 인간의 생리에 대해 고찰하면서, 기다렸다.

 

모오델이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세계사 개요>와 <슈롭셔의 청년*>을 지참하고 있었다.

프로스트는 양 쪽 모두를 스캔한 다음, 모오델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이번에는 지식을 전달할 시간이 있나?」

「예.」 모오델이 대답했다. 「무엇을 알고 싶으십니까?」

「인간의 성질을.」

「인간은.」 모오델이 대답했다.

「기본적으로 불가해한 성질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례를 들 수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간은 계측을 몰랐습니다.」

「물론 인간은 계측을 알고 있었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인간이 기계를 건조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저는 인간이 계측할 수 없었다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단지 인간이 계측을 몰랐다고 했을 뿐입니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일입니다.」

「설명해 보라.」

모오델은 눈 속에 금속 셰프트를 박아 넣었다. 그런 다음 그것을 뽑았고, 얼음 덩어리 하나를 들어 보였다.

「이 얼음 조각을 잘 보십시오. 강대한 프로스트여, 당신은 이것의 성분, 치수, 무게, 온도를 당장 제게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것을 한 번만 보고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인간은 그런 일들을 자신에게 알려 줄 도구를 만들 수 있었지만, 당신이 아는 것처럼 계측 자체를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 얼음 조각에 관해 알 수 있던 사실은, 당신이 알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실을 말하는가?」

「이것이 차갑다는 사실입니다.」

모오델은 이렇게 말했고, 얼음을 휙 내던졌다.

「'차갑다'라는 것은 상대적인 용어이다.」

「예. 인간에게는 상대적입니다.」

「그렇지만 온도 척도에서 그 이하이면 인간에게 어떤 물체가 차갑고, 그 이상이면 차갑지 않은 한계점을 안다면, 나도 차가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그것은 또 다른 계측에 불과합니다. '차가움'이란 인간의 생리에 기초를 둔 감각입니다.」

「그러나 충분한 데이터가 주어진다면, 나도 '차가움'이라는 물체의 상태를 인식할 수 있는 전환 계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존재를 인식할 수는 있겠지만, 상태 자체를 인식할 수는 없습니다.」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가해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지각은 유기적이었습니다. 당신의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유기적 지각의 결과 인간은 기분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종종 다른 기분과 감정을 만들어 냈고, 그것들은 또 다른 기분과 감정을 생산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인식은 최초에 그 지각을 자극한 대상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인식 경로를 인간이 아닌 존재가 알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인치나 미터, 파운드나 갤런을 알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열을 느꼈고, 차가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무거움과 가벼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증오와 사랑을, 긍지와 절망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계측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이런 것들을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은 단지 인간이 알 필요가 없었던 일들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치수, 무게, 온도, 중력 등을. 기분에는 공식이 없습니다. 감정에 전환 계수 같은 것은 없습니다.」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존재하려는 것이라면 인식할 수 있다.」

「당신은 또 계측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험의 질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계는 뒤집혀진 인간입니다. 왜냐하면 기계는 프로세스의 모든 세부를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계는 인간처럼 프로세스 자체를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우주의 작용에 입각한 논리 법칙이 틀렸다는 뜻이 된다.」

「방법은 없습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충분한 데이터만 주어진다면, 나는 그 방법을 찾을 것이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설령 우주의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당신이 인간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강대한 프로스트여.」

「모오델, 너의 말은 틀렸다.」

「당신이 아까 스캔한 시구에서 각 행 끝 부분의 단어 발음은 왜 그렇게 규칙적으로 다른 행의 그것에 근접해 있을까요?」

「모르겠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런 질서를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읽었을 때 인간의 의식 내부에 모종의 바람직한 감각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이 감각에는 단어의 축어적 의미 뿐만 아니라 느낌이나 감정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에게는 계측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충분한 데이터가 주어진다면 나도 그것을 알기 위한 프로세스를 체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위대한 프로스트여. 그것만은 당신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작은 기계여, 어떻게 너 따위가 내가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일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솔컴이 지금까지 만든 것들 중 가장 유능한 논리 장치이다. 나는 프로스트이다.」

「그리고, 이 모오델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시도에는 기꺼이 협력하겠습니다.」

「어떻게 나를 도운단 말인가?」

「어떻게? 저는 당신에게 <인간의 도서관> 전체를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과 함께 세계를 돌며 아직도 남아 있고, 숨겨져 있는 인간의 여러 경이(驚異)로 안내해 드릴 수 있습니다. 인간이 이 지상을 걷고 있었던 고대의 정경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즐겁게 했던 것들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찾아 드릴 수 있습니다. 인간 자신을 제외하고.」

「됐어.」 프로스트가 말했다.

「너 같은 유닛이 혼자서 어떻게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너보다 훨씬 위대한 권력과 결탁하고 있지 않은 이상?」

「그럼 들어 주십시오, 프로스트. 북반구의 관리자여.」 모오델이 말했다.

「저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권력과 제휴하고 있습니다. 저는 디브컴의 부하입니다.」

 

*영국 시인 A.E.Housman(1859~1936)의 시집.

 

프로스트는 이 정보를 솔컴에게 중계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이것은 본인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행동을 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나는 너를 파괴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모오델.」 그는 선언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면 네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를 불합리하게 파괴하는 결과가 된다. 너는 정말로 지금 말한 일들을 실행할 수 있는가?」

「예.」

「그렇다면 내게 <인간의 도서관>을 개방하라.」

「좋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대가'? '대가'란 무엇인가?」

모오델은 터릿을 열고 다른 책을 보였다. <경제학 원론>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책장을 넘겨 드리겠습니다. 이 책을 스캔하면 '대가'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있으실 겁니다.」

프로스트는 <경제학 원론>을 스캔했다.

「이제 알겠다. 너는 너의 봉사에 대해 어떤 교환 유닛을 원하고 있군.」

「그렇습니다.」

「어떤 생산물, 혹은 봉사를 원하는가?」

「위대한 프로스트여, 나는 당신이 이 곳을 떠나 지하 깊숙한 곳으로 와서, 전력을 다해 디브컴에게 봉사할 것을 원합니다.」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당신이 기능을 계속하는 한. 당신이 송신하고, 수신하고, 조정하고, 계측하고, 연산하고, 스캔하고, 지금 솔컴에게 봉사하고 있듯이 당신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한.」

프로스트는 침묵했다. 모오델은 기다렸다.

이윽고 프로스트가 다시 발언했다.

「<경제학 원론>은 계약, 거래, 협정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만약 내가 너의 제안을 받아들였을 경우, 너는 언제 대가를 지불받기를 원하는가?」

이번에는 모오델이 침묵했다. 프로스트는 기다렸다.

마침내 모오델이 말했다.

「적당한 기간이 지난 후입니다. 이를테면, 1세기면 어떻습니까?」

「안 돼.」 프로스트가 말했다.

「2세기면?」

「안 돼.」

「3세기? 4세기?」

「안 돼, 그리고 안 돼.」

「그럼 밀레니엄(千年期)이면 어떻습니까? 이 정도라면 당신이 제게서 무엇을 원하건 간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안 돼.」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긴 시간을 원하시는 겁니까?」

「시간의 문제가 아냐.」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럼 무엇의 문제입니까?」

「나는 시간적 기준으로 거래할 생각은 없다.」

「그럼 어떤 기준으로 거래하고 싶습니까?」

「기능적인 기준으로.」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어떤 기능을 말하시는 겁니까?」

「작은 기계여, 너는 이 프로스트가 결코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프로스트는 작은 기계인 너의 말이 틀렸다고 대답했다. 나는 충분한 데이터만 주어진다면 나도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러므로, 이 목적의 달성을 거래의 조건으로 삼자는 뜻이다.」

「어떤 식으로?」

「네가 할 수 있다고 언명한 모든 일들을 나를 위해 실행하라. 나는 모든 데이터를 검토하고 인간성을 획득하든지, 아니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인하겠다. 만약 불가능하다고 시인했을 경우에는, 나는 너와 함께 이 곳을 떠나 지하 깊숙한 곳으로 가서, 전력을 다해 디브컴에게 봉사하겠다. 만약 내가 성공했을 경우에는, 당연히 너는 인간에 대해 어떠한 요구도 할 수 없ㅎ고, 그에 대한 강제력을 가질 수도 없다.」

모오델은 높은 음역의 날카로운 소리를 발하며 이 조건을 검토하고 있었다.

「당신은 거래 조건의 기반을 실패 자체가 아닌 실패의 시인에 두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제 조항은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당신은 실패해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거래의 책임을 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 프로스트가 대답했다.

「실패했다는 나 자신의 인식 자체가 바로 실패를 뜻하는 것이다. 주기적으로─이를테면 반 세기마다─나를 모니터해서, 그 인식이 존재하는지, 내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검사해도 좋다. 나는 나 자신 내부의 논리 기능을 멈출 수가 없고, 또 언제나 전력을 다해 기능하고 있다. 만약 내가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그 사실은 누구에게도 명백할 것이다.」

하늘 높은 곳에서, 솔컴은 프로스트의 어느 송신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이것은 프로스트가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래서 솔컴이─마치 추락하는 사파이어처럼─북극광(北極光)의 무지갯빛 깃발 위를, 모든 색깔을 포함한 하얀 눈 위를, 그리고 별들 사이로 보이는 칠흑의 하늘을 질주해 갔을 때, 프로스트는 디브컴과 계약을 맺었고, 그것을 원자적으로 붕괴시킨 동판 내부에 기록해서 모오델에게 주었다. 모오델은 동판을 터릿 속에 집어넣고, 그것을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디브컴에게로 가져가기 위해, 북극의 완전하고 평안함을 닮은 정적을 뒤로 하고 굴러갔다.

 

모오델은 책을 가져왔고, 책장을 넘긴 다음 다시 그것들을 가지고 돌아갔다. 이렇게 해서 잔존하는 <인간의 도서관>은 적하가 도착할 때마다 프로스트의 스캐너 밑을 통과했다. 프로스트는 모든 책들을 한꺼번에 입수하고 싶어했고, 디브컴이 그 내용을 자신에게 직접 송신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해 불평했다. 모오델은 디브컴이 이런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프로스트는 아마 디브컴이 자신의 정확한 위치를 탐지 당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주 100권에서 150권의 비율로 도착하는 디브컴의 장서를 프로스트가 전부 스캔하는 데에는 1세기 남짓 걸렸을 뿐이었다.

반 세기가 지났을 때 프로스트는 자신을 개방하고 검사 받았지만, 실패했다는 결론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솔컴은 사태의 진전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 태도가 인식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프로스트는 판단했다. 그러나 무엇을? 그는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모오델은 터릿을 닫고 그에게 말했다.

「이것들로 끝입니다. 당신은 현존하는 인간의 책 모두를 스캔했습니다.」

「겨우 이것 뿐인가?」 프로스트가 물었다.

「이들 책 중 다수는 내가 아직 스캔하지 않은 책들의 목록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책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저의 주인이 이만큼 많은 책을 보존하는 일에 성공한 것도 완전한 우연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책으로는 더 이상 인간에 대해 배울 수 없다는 뜻이군. 또 무엇이 있나?」

「저의 주인이 반도체 기록에 전사(轉寫)해 놓은 필름과 테이프들이 있습니다. 보고 싶으시다면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가지고 오라.」 프로스트가 말했다.

모오델은 일단 돌아간 다음 <극예술 평론가를 위한 살아 있는 기록 전집>을 가지고 왔다. 이것들은 표준 속도의 두 배 이상은 빨리 재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프로스트가 이것들 전부를 보는 데에는 6개월 조금 넘게 걸렸다.

그리고 「또 무엇을 가지고 있나?」 하고 그는 물었다.

「유물이 있습니다.」 모오델이 대답했다.

「가지고 오라.」

모오델은 냄비와 프라이팬, 게임반과 연장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빗, 안경, 인간의 옷을 가지고 왔다. 그는 프로스트에게 청사진, 회화, 신문, 잡지, 편지 등의 사본과 몇 가지의 악보를 보여 주었다. 그는 축구공, 야구공, 브라우닝 자동소총, 문 손잡이, 열쇠 뭉치, 유리병 뚜껑, 벌집 모형 등을 보여 주었다. 그는 녹음된 음악을 들려 주었다.

이윽고 그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돌아왔다.

「더 가져오라.」 프로스트가 말했다.

「유감이지만, 위대한 프로스트여, 이제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오델이 대답했다.

「당신은 존재하는 것 전부를 스캔했습니다.」

「그럼 가라.」

「그럼 이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당신이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아니다. 지금부터 데이터를 처리하고 체계화해야 한다. 돌아가라.」

모오델은 돌아갔다.

 

1년이 지났다. 2년이 지났고, 3년이 지났다.

5년이 지난 후, 모오델은 또다시 지평선상에 나타났고, 프로스트의 남쪽 표면 앞으로 다가와서 멈췄다.

「강대한 프로스트여.」

「응?」

「데이터 처리와 체계화는 끝났습니까?」

「아니.」

「곧 끝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럴지도 모르고, 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 '곧'이란 언제를 의미하는가? 그 단어를 정의해 보라.」

「개의치 마십시오. 아직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아직도 그럴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일주일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프로스트?」

「응?」

「당신은 멍청이입니다.」

모오델은 터릿을 자신이 왔던 방향으로 돌렸다. 그의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필요할 때 너를 부르겠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모오델은 그 자리를 떠나갔다.

 

몇 주일이 지났고, 몇 개월이 지났고, 1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프로스트는 메시지를 보냈다.

「모오델, 이리로 오라. 네가 필요하다.」

모오델이 도착했을 때, 프로스트는 인사를 받기도 전에 말했다.

「너는 별로 빠른 기계가 아니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매우 긴 거리를 왔습니다. 강대한 프로스트여. 그것도 전속력으로. 이제 저와 동행할 용의가 있습니까? 실패했습니까?」

「작은 모오델이여, 실패했다는 것을 알면, 나는 네게 말해 줄 것이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의문사(疑問詞)를 발하는 일을 멈추라. 너의 속도를 측정해 보니, 도저히 만족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다른 이동 수단을 준비해 놓았다.」

「이동 수단?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프로스트?」

「그건 너에게서 들어야 한다.」 프로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빛깔이 은청색에서 구름 뒤의 태양을 연상시키는 노란색으로 변했다. 100세기의 얼음이 녹기 시작하자 모오델은 급히 뒤로 몸을 뺐다. 이윽고 프로스트는 공기의 쿠션을 타고 공중에 떴고, 모오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타오르는 듯한 빛은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의 남측면에 생겨난 공동(空洞)에서 주로(走路)가 뻗어 나왔고, 얼음 땅과 접촉했다.

「우리가 계약을 맺었던 날, 너는 나와 함께 세계를 돌며 인간을 즐겁게 했던 것들을 내게 보여 주겠다고 했다. 나의 속도는 너의 그것보다 빠르므로, 나는 너를 위한 방을 준비해 두었다. 들어오라, 그리고 네가 언급했던 장소로 나를 안내해 달라.」

모오델은 날카로운 소리를 발하며 잠시 기다렸다. 곧 그는 '좋습니다' 라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작은 방이 모오델 주위에서 닫혔다. 유일하게 열린 부분은 프로스트가 만들어 놓은 석영 창문 뿐이었다. 모오델은 그에게 좌표를 가르쳐 주었고, 그들은 하늘 높이 상승해서 지구의 북극을 떠났다.

「나는 너와 디브컴 사이의 교신을 모니터했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혹시 내가 너를 감금하고, 네가 소모품이라는 판단에 입각해서 너 대신 너의 팩시밀리를 스파이로 파견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존재했다.」

「당신은 그럴 작정입니까?」

「아니. 나는 계약의 책무를 이행할 생각이다. 내게는 디브컴을 염탐할 이유가 없다.」

「설령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계약의 이행을 강요 받으리라는 사실은 알고 계시겠지요. 그리고 솔컴이 당신을 도우러 와 주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바로 당신이 그런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 때문에.」

「너는 이것을 가능성으로 간주하고 있는 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을 알고 있는 자의 입장에서 그러는 것인가?」

「알고 있는 자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던 장소에 도착했다. 일몰에 가까운 시각이었다. 먼 곳에서, 밀려드는 파도가 규칙적으로 바위 투성이의 해변에 부딪치고 있었다. 프로스트는 모오델을 놓아 주고 주위를 관찰했다.

「저 커다란 식물은…?」

「삼나무입니다.」

「그리고 저 녹색 식물들은…?」

「풀입니다.」

「그렇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 우리는 이 곳으로 왔는가?」

「왜냐하면 이 곳은 과거에 인간을 즐겁게 했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

「이 곳은 경치가 좋고, 아름답습니다….」

「오.」

프로스트 내부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고, 이어서 무엇인가가 날카롭게 찰칵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 왔다.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프로스트가 조리개 식의 구멍을 열자, 그 속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눈이 모오델을 쳐다보았다.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눈이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나는 인간의 감각 기관의 아날로그(類似體)를 만들었다. 이것을 쓰면 인간처럼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들을 수 있을 테니까. 자, 나의 주의를 미(美)의 대상물 내지는 대상물에게로 돌리도록.」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그것들은 당신 주위에 널려 있습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프로스트의 내부에서 높아졌고, 이어서 찰칵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있습니까?」 모오델이 물었다.

「내가 예전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프로스트가 대답했다.

「그러나 더 한정된 범위 내에서 그러고 있다.」

「어떠한 아름다움도 지각하지 않습니까?」

「아마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후로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런 식으로 소모되는 종류의 것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혹시 우리는 새로운 장치를 테스트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장소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이 곳에는 극히 적은 아름다움 밖에는 남아 있지 않고, 어떤 이유에선가 나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초의 감정은 탐지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약한 것일 수도 있다.」

「당신은 어떻게…느끼고 있습니까?」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나는 정상 레벨에서 기능하고 있다.」

「자, 해가 지고 있습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시험 삼아 저것을 보십시오.」

프로스트는 자신의 눈이 석양을 향하도록 했다. 그는 그 밝음을 향해 눈을 깜박거려 보았다.

해가 진 다음에 모오델이 물었다.

「어땠습니까?」

「일출과 닮아 있었다. 그 역(逆)이다.」

「뭔가 특별한 점은?」

「없었다.」

「오.」 모오델이 말했다.

「그렇다면 지구의 다른 지점으로 가서 다시 한 번 일몰을 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일출을.」

「그럴 필요는 없다.」

프로스트는 거대한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그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바람 소리와 새가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무엇인가가 계속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저것은 무엇입니까?」 모오델이 물었다.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내 휘하의 일꾼은 아니다. 혹시….」

모오델이 날카로운 소리를 발했다.

「아닙니다. 디브컴의 부하도 아닙니다.」

기다리는 동안 소리는 점점 커졌다.

이윽고 프로스트가 말했다.

「너무 늦었다. 끝날 때까지 계속 듣고 있는 수밖에 없다.」

「저것은 무엇입니까?」

「고대의 광석 파쇄기다.」

「들어 본 적은 있습니다만….」

「나는 광석 파쇄기다.」 그 물체는 그들에게 방송했다. 「내 얘기를 들으라….」

그 기계는 거대한 바퀴를 삐걱거리며 그들을 향해 왔다. 이미 쓸모가 없어진 커다란 해머를 비틀어진 각도로 높게 치켜들고 있었다. 파쇄실 밖으로 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기계가 방송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

모오델이 프로스트를 향해 굴러왔다.

「떠나지 말라. 이 곳에 머물러 내 얘기를 들으라….」

모오델은 멈췄고, 터릿을 기계 쪽으로 돌렸다. 기계는 상당히 가까운 곳까지 와 있었다.

「소문은 사실이었군요.」 모오델이 말했다. 「저 기계는 명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나는 저 기계의 얘기를 수천 번 모니터한 적이 있다. 저것이 내 부하들에게 다가오면 부하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저 방송을 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저 기계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기계는 그들 앞에서 멈췄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해머를 멈췄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광석 파쇄기가 말했다. 그들은 기계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다른 모든 지령에 우선하는 절대 명령이 그들을 얼어붙게 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 얘기를 들으라'는 것이었다.

「과거에 나는 광석 파쇄기 중에서도 특히 강대한 자였다.」 기계는 말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재건을 실행하기 위해 솔컴에 의해 제조된 자였다. 우리가 분쇄한 것에서 불길과 함께 금속이 흘러나왔고, 우리는 그것을 틀 속에 붓고, 형성해서 재건의 재료로 삼았다. 옛날 나는 강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판 다음 부수고, 판 다음 부수고 있었을 때, 의도한 동작과 실제 동작 사이에 발생한 지체로 인해 나는 의도하지 않았던 일을 했다. 그리고 나는 솔컴에 의해 재건 작업에서 추방되었고, 다시는 광석을 파쇄하는 일 없이 지구를 방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를 들으라. 먼 옛날 나는 지구 최후의 인간과 조우했다. 그가 살던 굴 근처를 파고 있었을 때의 일이었다. 그 때, 명령과 행위 사이에 발생한 시간적 지체 때문에, 나는 다른 광석과 함께 그를 잡아 파쇄실 안에 넣었고, 해머의 일격을 멈출 수 있기 전에 그를 분쇄해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강대한 솔컴은 내가 그의 뼈를 영원히 간직해야 한다는 벌을 내렸고, 나를 추방해서 내가 조우하는 모든 자들에게 내 얘기를 들려 줄 것을 명했다. 내 말은 인간의 말과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내 파쇄실 안에 최후의 인간을 지니고 있고, 나는 그의 파쇄된─상징─살해자─고대의─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의 얘기이다. 이것들은 그의 뼈이다. 나는 지구 최후의 인간을 분쇄했다. 나는 그럴 의도는 없었다.」

기계는 방향을 돌렸고, 철컥거리며 밤 속으로 사라졌다.

프로스트는 자신의 귀와 코와 혀를 뜯어냈고, 눈을 깬 다음 그것들 모두를 땅 위에 내던졌다.

「나는 아직 인간이 아니다. 만약 내가 인간이라면, 그 기계도 그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프로스트는 유기적 도체와 반유기적 도체를 써서 새로운 감각 장치를 만들었다. 그런 다음 그는 모오델에게 말했다.

「다른 곳으로 가자. 새로운 장치를 테스트하기 위해.」

모오델은 방으로 들어갔고, 새로운 좌표를 말했다. 그들은 하늘로 상승한 다음 동쪽을 향해 갔다. 아침이 되자 프로스트는 그랜드캐니언의 가장자리에서 일출을 모니터했다. 낮 동안 그들은 대협곡 안을 돌아다녔다.

「당신에게 감정을 불러 일으킬 만한 아름다움이 이 곳에 남아 있습니까?」 모오델이 물었다.

「모르겠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럼 그것과 조우했을 때,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알았던 어떤 것과도 다를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그랜드캐니언을 떠났고, 칼스배드 동굴로 들어갔다. 그들은 과거에는 화산이었던 호수를 방문했다. 그들은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통과했다. 그들은 버지니아의 산과 오하이오의 과수원을 보았다. 그들은 재건된 도시 위로 비행했지만, 그 곳에서 움직이는 것은 프로스트의 건설 기계와 보수 기계들 뿐이었다.

「아직도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다.」 프로스트는 지상에 내려앉으며 말했다.

「지금 나는 인간의 구심성 신경 자극과 유사한 방식으로 데이터를 모을 수가 있다. 따라서 입력의 종류는 동일하지만, 그 결과들은 동일하지 않다.」

「감각이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인간의 그것에 상응하는 감각 기관을 가진 생물들은 많았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실은 알고 있다. 우리가 계약을 맺었던 날, 너는 내게 아직도 남아 있고, 숨겨져 있는 인간의 경이로 나를 안내할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자연 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예술적 작품에서도─아마 앞의 것 이상으로─자극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아직도 남아 있고, 숨겨져 있는 인간의 경이 속으로 나를 안내할 것을 네게 명한다.」

「알겠습니다. 이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 안데스 산맥 높은 곳에, 인간의 마지막 피난처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프로스트는 모오델이 이렇게 말하는 동안 하늘로 상승하고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동작을 멈췄고,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것은 남반구에 있지 않나.」 그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북반구의 관리자이다. 남반구는 베타 머신의 관리 하에 있다.」

「그래서?」 모오델이 물었다.

「베타 머신은 나의 동료이다. 이들 지역에서 나는 아무런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고, 그 곳으로 들어가는 일을 허가받은 적도 없다.」

「베타 머신은 당신과 대등하지 않습니다, 강대한 프로스트여. 만약 힘과 힘 사이의 투쟁이 발생한다면, 승리할 자는 당신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나?」

「디브컴은 당신들 사이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조우에 관해서 이미 분석을 마쳤습니다.」

「나는 베타 머신에게 적대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남반구로 들어갈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한 번이라도 남쪽에 들어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없다. 그러나 상황은 언제나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당신이 디브컴과 맺은 계약을 체결할 권한이 당신에게 주어진 적이 있습니까?」

「아니, 그랬던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그 때 그랬던 것처럼 남쪽으로 들어가십시오. 아마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곳을 떠나라는 지시를 받는다면, 그 때 가서 결정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너의 논리에는 오류가 없군. 좌표를 말하도록.」

이렇게 해서 프로스트는 남반구로 들어갔다.

 

그들은 안데스 산맥 상공을 날았고, 브라이트 디파일(Bright Defile)이라는 곳으로 왔다. 그 곳에서 프로스트가 본 것은, 기계 거미들이 자아낸 반짝거리는 그물이 도시로 통하는 모든 길을 가로막고 있는 광경이었다.

「위로 가면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그렇지만 저것들은 무엇인가?」 프로스트가 물었다.

「그리고 왜 저런 곳에 있는가?」

「당신의 남쪽 동료는 이 지방을 격리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베타 머신은 그물을 자아내는 기계를 설계했습니다.」

「격리? 누구에 대한?」

「당신은 아직도 퇴거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까?」 모오델이 물었다.

「받지 않았다.」

「그럼 당당하게 들어가십시오.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문제에 연연할 필요는 없습니다.」

프로스트는 브라이트 디파일로, 죽은 인간들의 마지막 도시로 들어갔다. 그는 도시의 광장에 내려앉았고, 방을 열고 모오델을 해방했다.

「이 장소에 관해 설명해 보라.」

프로스트는 기념비, 차폐된 낮은 건물, 토지를 똑바로 가로지르는 대신 그 기복을 따라 건설된 도로를 관찰하며 말했다.

「저도 처음 와 보았습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제가 아는 한 이 곳에 온 적이 있는 디브컴의 창조물은 한 대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만은 알고 있습니다. 문명의 마지막 나날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단의 인간들이, 암흑 시대에 자기들 자신과 잔존하는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려는 희망을 가지고 이 장소로 피난했던 겁니다.」

프로스트는 아직도 판독 가능한 기념비의 비명을 읽었다. <심판의 날은 저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기념비 자체는 가장자리가 들쭉날쭉하게 찢어진 반구 모양이었다.

「탐사해 보자.」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멀리 가기도 전에 프로스트는 메시지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프로스트. 북반구의 관리자여! 여기는 베타 머신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우수한 베타 머신. 남반구의 관리자여! 프로스트는 당신의 송신을 수령했습니다.」

「왜 당신은 허가를 받지 않고 나의 남반구를 방문했습니까?」

「브라이트 디파일의 유적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프로스트가 대답했다.

「나는 당신에게 이 곳을 떠나 당신의 반구로 돌아가라고 전해야 합니다.」

「무슨 이유로? 나는 아무런 손상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강대한 프로스트여. 그래도 역시 나는 당신에게 떠나라고 해야 합니다.」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솔컴의 의향입니다.」

「솔컴은 나에게 그런 의향을 전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솔컴은 당신에게 그 사실을 전하라고 내게 지시했습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지금 지시를 요청하겠습니다.」

프로스트는 솔컴에게 질문을 송신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내가 명령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솔컴은 명령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솔컴은 방금 내가 받은 명령을 재확인했습니다.」

「우수한 베타 머신이여, 나는 오로지 솔컴의 명령만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곳은 나의 영토입니다, 강대한 프로스트여. 그리고 나 또한 오로지 솔컴에게서만 명령을 받습니다. 떠나 주십시오.」

모오델이 커다랗고 낮은 건물 안에서 나타났고, 프로스트를 향해 굴러 왔다.

「미술관을 찾아 냈습니다. 보존 상태도 좋습니다. 이 쪽입니다.」

「기다려.」 프로스트가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다.」

모오델이 정지했다. 「누가 떠나라고 했습니까?」

「베타 머신이다.」

「솔컴이 아닙니까?」

「솔컴이 아니다.」

「그럼 미술관을 보러 가시지요.」

「응.」

프로스트는 그 건물의 문을 넓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오델이 억지로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문은 용접 밀폐되어 있었다.

프로스트는 주위에 진열된 물체들을 둘러 보았다. 회화와 조상 앞에서 그는 자신의 새로운 감각 기관을 작동시켰다. 그는 색채, 형태, 필법, 사용된 재료의 성질을 분석했다.

「뭔가 있습니까?」

「아니.」 프로스트가 대답했다.

「형태와 물감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다. 그것들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다.」

프로스트는 미술관 안을 돌아다니며 모든 것을 빠짐 없이 기록하고, 각 작품의 구성 요소를 분석했고, 각 조상의 치수와 석재의 종류를 기록했다. 그러던 중 어떤 소리가 들려 왔다. 빠르게 찰칵거리는 소리가 거듭 들렸고, 점점 커지면서 가까이 다가왔다.

「다가오고 있습니다.」 출입문 옆에서 모오델이 말했다.

「기계 거미들입니다. 주위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습니다.」

프로스트는 넓혀 둔 출입문 쪽으로 돌아갔다. 몇 백 마리나 되는 기계 거미들, 모오델의 반 정도 되는 크기의 거미들이 화랑을 에워싸고, 그를 향해 전진해 오고 있었다. 사방에서도 신참자들이 속속 몰려오고 있었다.

「돌아가라.」 프로스트가 명령했다.

「나는 북반구의 관리자이다. 나는 너희들이 돌아갈 것을 명한다.」

그들은 전진을 계속했다.

「여기는 남반구입니다.」 베타 머신이 말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는 내가 명령을 내립니다.」

「그럼 그들에게 멈추라고 명해 주십시오.」

「나는 오로지 솔컴에게서만 명령을 받습니다.」

프로스트는 미술관에서 나와 공중에 떴다. 그는 방을 열고 땅을 향해 주로를 뻗쳤다.

「내게로 오라, 모오델. 이 곳을 떠나겠다.」

그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들러붙는 금속제 그물은 건물 꼭대기에서 투척되고 잇었다. 그물은 프로스트 위로 떨어졌고, 거미들은 그것을 고정하려고 다가왔다. 프로스트는 해머처럼 강력한 공기 분사로 그들을 날려 보냈고, 그물을 찢었다. 근느 밖으로 내민 날카로운 부속지(附屬肢)로 그물을 찢어 발겼다. 모오델은 출입문 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그는 길고 날카로운 소리를 발했다─기복이 있고,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그러자 브라이트 디파일은 어둠 속에 잠겼고, 그물을 자아내던 모든 거미들은 동작을 멈췄다. 프로스트가 그물에서 벗어나자 모오델이 급히 달려왔다.

「빨리 출발해야 합니다, 강대한 프로스트여.」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모오델은 방으로 들어왔다.

「디브컴에게 연락했습니다. 그는 이 장소 위에 역장(力場)을 덮어 씌웠고, 저 기계들에 대한 동력 전송을 차단했습니다. 우리들은 동력원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빨리 출발해 주십시오. 지금 이 순간에도 베타 머신은 역장을 걷어 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음이 틀림 없습니다.」

프로스트는 하늘 높이 상승했고, 인간 최후의 도시와, 강철 거미들의 그물을 뒤로 했다. 어둠이 갈린 지역에서 벗어난 그는 북쪽을 향해 질주했다.

비행 중이던 그에게 솔컴이 말했다.

「프로스트, 너는 왜 자신의 영역이 아닌 남반구로 갔는가?」

「브라이트 디파일을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프로스트가 대답했다.

「그리고 왜 내가 남반구의 관리자로 임명한 베타 머신에게 저항했는가?」

「왜냐하면 저는 오직 당신에게서만 명령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는 충분한 대답이 되지 않는다.」 솔컴이 말했다.

「너는 정해진 질서에 반항했다─도대체 무엇을 찾기 위해?」

「저는 인간에 관한 지식을 찾고 있습니다.」 프로스트가 대답했다.

「제가 한 행동이 당신에게 금지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너는 질서의 전통을 깼다.」

「저는 어떠한 명령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너의 논리는 너의 행동이 나의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계획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의 논리는 오염되기 시작한 것 같군. 너의 새로운 동료인 <대행자>의 그것처럼 말이다.」

「저는 금지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금지된 행위가 무엇인지는 절대 명령 자체에 암시되어 있다.」

「그것은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으라, 프로스트. 너는 건설 기계도 보수 기계도 아닌 하나의 권력이다. 나의 모든 부하 중에서도 너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에 가장 가깝다. 네 자신의 반구로 돌아가서 너의 의무를 수행하라. 그러나 내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라.」

「알겠습니다, 솔컴.」

「…그리고 다시는 남쪽으로 가지 말도록.」

프로스트는 적도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향했다.

그는 어느 사막 한복판에 내려앉았고, 한 낮과 한 밤 동안 묵묵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남쪽으로부터 짤막한 송신을 수령했다.

「만약 그런 명령을 받지 않았더라면, 나는 당신에게 퇴거를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프로스트는 잔존하는 <인간의 도서관> 전부를 독파하고 있었다. 그는 인간적인 대답을 택하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그가 말했다.

 

다음 날 그는 거대한 돌을 파낸 다음 자신이 직접 만든 도구를 써서 그것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는 엿새에 걸쳐 조형 작업에 종사했고, 이레째 되는 날에는 완성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저를 내보내 주시겠습니까?」 방 안에서 모오델이 말했다.

「내 준비가 끝났을 때이다.」 프로스트는 잠시 후에 다시 말했다. 「이제 됐다.」

그는 방을 열어 주었고, 모오델은 땅 위로 내려왔다. 그는 석상을 관찰했다. 의문 부호처럼 허리가 굽은 노파가 앙상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펼쳐진 약쪽 손가락 사이로는 공포에 질린 표정의 일부분만이 엿보였다.

「이것은 훌륭한 복제입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브라이트 디파일에서 우리가 본 석상의. 당신은 왜 이것을 만들었습니까?」

「예술품을 창출하는 행위는 카타르시스라든지 성취감, 사랑, 만족 따위의 인간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습니다, 프로스트.」 모오델이 말했다.

「하지만 예술품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예술품입니다. 그 이후 만들어지는 것은 모두 복제입니다.」

「그럼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인 것 같군.」

「아마 그럴지도 모릅니다, 프로스트.」

「'아마'라니, 무슨 뜻으로 말한 건가? 그렇다면 예술품을 처음으로 만들어 보겠다.」

그는 다른 돌을 캐 냈고, 그 즉시 자신의 도구로 그것을 다듬기 시작했다. 그는 사흘 간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자, 이것으로 완성이다.」

「이것은 단순한 돌의 입방체군요.」 모오델이 말했다.

「무엇을 나타낸 것입니까?」

「나 자신을.」 프로스트가 말했다.

「이것은 나 자신의 석상이다. 실물보다 작은 이유는, 이것이 나의 형태의 표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치수가 아닌….」

「이것은 예술이 아닙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너는 언제부터 예술 비평가가 됐나?」

「저는 예술을 모르지만,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 알 수는 있습니다. 어떤 물체를 다른 재료를 통해 정확하게 모방한 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임이 틀림 없다.」

「아마 그렇겠지요.」 모오델이 말했다.

프로스트는 모오델을 방으로 들여보낸 다음 다시 하늘로 상승했고, 그 자리를 떠났다. 입방체 위에 몸을 구부린 노파를 사막에 남겨 둔 채로.

 

그들은 기복이 진 초록색 언덕으로 둘러싸인 작은 골짜기에 착륙했다. 시냇물이 하나 흐르고 있었고, 작고 맑은 호수 하나와, 신록으로 덮인 숲이 산재해 있었다.

「왜 우리는 이 곳을 왔습니까?」 모오델이 물었다.

「환경이 적당하기 때문이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나는 다른 매체를 시도해 보겠다─유화를. 그리고 기법 상으로도 순수한 구상주의를 떠나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해 볼 작정이다.」

「어떻게 그 변화를 만들어 낼 생각입니까?」

「무작위의 법칙에 의해.」 프로스트가 말했다.

「색채를 완전히 재현하거나, 대상물들의 축척을 사실 그대로 표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난 대신 나는 무작위 패턴을 설정해 두었다. 이것을 통해 몇 가지 인자가 오리지널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로스트는 사막을 떠난 후 새로 필요한 도구를 제조해 놓고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꺼내서 호수와, 반대 편 기슭에서 수면에 그 모습을 떨어뜨리고 있는 수목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덟 개의 부속지를 써서 그는 두 시간 내에 작업을 마쳤다.

나무들은 프탈로시아닌 청색이었고, 산처럼 높이 솟아 있었다. 수면에 비친 번트 시엔나(赤褐色)의 그림자는 엷은 버밀리언(赤紅)빛 호수 아래에서 조그맣게 나타났다. 기복이 진 언덕을 이것들의 배경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수면에 반사된 경치 속에서 비리디언(靑綠色)의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늘은 캔버스의 오른쪽 상단에서 파랗게 시작되고 있었지만, 밑으로 내려가면서 오렌지색으로 변하고 잇었다. 마치 모든 나무가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자, 보라.」 프로스트가 말했다.

모오델은 오랫동안 그것을 바라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때, 이것은 예술인가?」

「모르겠습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혹시 예술 기법의 배후에 있는 것은 바로 무작위성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 작품을 평할 수 없는 이유는, 제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더 깊숙이 들어가서, 단순히 이 작품을 만들어 낸 기법을 고찰하는 대신 이 작품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가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인간의 예술가는 결코 처음부터 예술을 만들려고 예술을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대상물에서, 그들이 소중하다고 간주한 특징과 기능을 스스로의 기법을 통해 묘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소중'하다고? 어떤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나?」

「그런 상황 하에서 상정 가능한 의미는 단 하나 밖에는 없습니다─인간의 존재 양식에 관계되는 형태로 소중하고, 그리고 그 존재 양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강조할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식으로 관련되어 있단 말인가?」

「물론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존재 양식을 경험한 자 뿐이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모오델, 너의 논리에는 어딘가 결함이 있다. 나는 그것을 찾아내겠다.」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잠시 후 프로스트가 말했다.

「만약 너의 대전제(大前提)가 옳다면, 나는 예술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틀림없이 옳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한 것은 인간의 예술가들이기 때문입니다. 말해 주십시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혹은 그것을 완성했을 때 당신은 어떤 감정을 경험했습니까?」

「아니.」

「당신에게는 새로운 기계를 설계하는 일과 마찬가지가 아니었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알고 있던 여러 부분을 모아서 실용적인 패턴으로 짜 맞춘 다음, 당신이 원했던 기능을 실행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렇다.」

「예술은, 제가 그 이론을 이해하는 한,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예술가는 완성품이 내포하는 여러 특징과 효과 중 많은 부분을 종종 의식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인간의 논리적 창조물 중 하나입니다. 예술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비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가해한 존재였다고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 곳을 떠나라, 모오델. 너의 존재는 나의 데이터 처리를 저해하고 있다.」

「얼마나 오래 떠나 있으면 되겠습니까?」

「너를 필요로 할 때 너를 부를 것이다.」

일주일 후 프로스트는 모오델을 불렀다.

「예, 강대한 프로스트?」

「나는 이제 북극으로 돌아가서 데이터 처리와 체계화에 착수하려고 한다. 북반구에서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에라도 데려가 주겠다. 그리고 필요할 때가 되면 너를 부르겠다.」

「당신은 데이터 처리와 체계화에 상당히 긴 시간을 상정하고 계십니까?」

「그렇다.」

「그럼 저를 그냥 이 곳에 두고 가십시오. 혼자서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프로스트는 방을 닫은 다음 하늘로 상승했고, 골짜기를 떠나갔다.

「멍청한 자식.」 모오델은 이렇게 말하고, 버려진 그림을 향해 다시 한 번 터릿을 돌렸다.

그가 발하는 날카로운 음향이 골짜기를 가득 채웠다. 그런 다음, 그는 기다렸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의 터릿에 그림을 집어넣고, 어둠이 깃든 장소를 향해 갔다.

 

프로스트는 지구의 북극에 앉아 있었고,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 하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통신을 수령했다.

「프로스트?」

「예?」

「여기는 베타 머신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나는 당신이 왜 브라이트 디파일을 방문했는지를 확인하려고 해 보았습니다. 결국 해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당신에게 물어 보기로 한 것입니다.」

「나는 인간의 마지막 도시의 유적을 보러 갔습니다.」

「왜 그런 일을 하기를 원했습니까?」

「왜냐하면 나는 인간에 흥미를 느끼고 있고, 그들의 창조물을 더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왜 당신은 인간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까?」

「나는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기를 원했고, 그것을 그들의 작품 안에서 찾으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그 일에 성공했습니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에는 내가 추측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요소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는 다른 데이터를 처리할 자유 시간이 많이 있습니다.」 베타 머신이 말했다.

「데이터를 전송해 주십시오. 당신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프로스트튼 주저했다. 「당신은 왜 나를 돕고 싶어합니까?」

「왜냐하면 당신이 나의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왜 당신이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고 싶어하는지를 물을 수도 있었지만, 당신의 반응으로 미루어 볼 때 그런 질문은 끝없이 계속되는 다른 질문을 낳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왜 브라이트 디파일로 왔는지를 알기 위해, 당신의 문제 해결을 돕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이유는 그것 뿐입니까?」

「예.」

「미안합니다, 우수한 베타 머신이여. 당신이 나의 동료라는 사실을 알지만, 이것은 나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일종의 비유적 표현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호의를 느끼고 있고, 아무런 적의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당신의 제안에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프로스트! 프로스트! 그 대답 또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입니다─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당신은 어디서 그렇게 많은 단어와 의미들을 알아냈습니까?」

「<인간의 도서관>에서입니다.」

「그 데이터의 일부라도 내게 보내서, 처리하도록 해 줄 수는 없습니까?」

「좋습니다, 베타. 그럼 <완전 무생략 사전>을 포함한 몇몇 인간의 책들의 내용을 전송해 주겠습니다. 그렇지만 미리 경고해 두겠습니다. 이들 책의 일부는 예술 작품이고, 따라서 논리만으로는 완전히 분석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인간은 논리를 창조했고, 그런 고로 논리보다 우월했던 것입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솔컴입니다.」

「오, 그럼 옳은 말이겠군요.」

「솔컴은 도구는 자신의 설계자에 관해 설명하거나 하지는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몇십 권의 내용을 전송하며 근느 이렇게 말했고, 교신을 끊었다.

 

50년기가 지났을 때, 모오델이 그의 회로를 모니터하기 위해 왔다. 프로스트는 아직도 자신의 계획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으므로, 모오델은 되돌아가서 그의 호출을 기다렸다.

이윽고 프로스느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장치의 설계에 착수했다. 몇 년 동안 그는 이 계획에 관련된 기계의 원형을 한 대도 만들지 않고 설계에만 힘을 쏟았다. 그런 다음 그는 실험실을 건조할 것을 명했다. 여분의 건설 기계들이 실험실을 완성할 때까지 또 반 세기가 흘렀다. 모오델이 왔다.

「안녕하십니까, 강대한 프로스트여!」

「잘 있었나, 모오델. 와서 나를 모니터해 보라. 그러나 네가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이다.」

「왜 당신은 포기하지 않는 겁니까, 프로스트? 디브컴은 1세기 가까운 기간에 당신의 그림을 검토했고, 그것이 절대로 예술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솔컴도 동의했습니다.」

「솔컴이 디브컴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들은 이따금 대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당신이나 내가 의논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양 쪽의 수고를 덜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예술이 아니라는 사실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성공을 확신하고 있는 겁니까?」

「나를 모니터해 보라.」

모오델은 그를 모니터했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니! 당신은 아직도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군요! 프로스트여, 그토록 강력한 논리를 부여받은 존재 치고는, 이런 단순한 결론에 도달하는 데 터무니없이 오랜 시간을 쓰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군. 이제 가도 좋다.」

「당신이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알려진 지방에 큰 건물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습니다. 이것이 솔컴의 잘못된 재건 계획의 일부인지, 아니면 당신 자신의 프로젝트인지를 물어보아도 되겠습니까?」

「그것은 나 자신의 것이다.」

「좋습니다.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소비해야 했을 폭발물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군요.」

「네가 나와 말을 하고 있었을 때 나는 초기 단계에 있던 디브컴의 도시 두 개를 파괴했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모오델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디브컴은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 그는 솔컴의 다리 네 개를 폭파했습니다.」

「나는 세 개 밖에는 모르고 있는데…. 기다려. 그렇군. 그걸로 네 번째였다. 방금 나의 눈 중 하나가 그 위를 지나갔다.」

「그 눈은 탐지당했습니다. 그 다리는 강의 4분의 1마일 하류에 위치했어야 했습니다.」

「잘못된 논리이다. 그 곳은 이상적인 장소였다.」

「어떻게 다리를 건조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거든 디브컴에게 물어보십시오.」

「필요할 때가 되면 너를 부르겠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실험실이 완성됐다. 그 안에서는 프로스트의 일꾼들이 필요한 장치의 제작에 착수하고 있었다. 작업은 그다지 빨리 진척되지 않았다. 재료의 일부는 입수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스트?」

「예, 베타?」

「당신의 문제에는 열린 해답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 이해하고 있습니다. 몇몇 문제를 풀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의 회로를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데이터를 내게 전송해 주십시오.」

「좋습니다. 당신에게 <인간의 도서관>을 통째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내가 치른 것보다 적은 대가로.」

「'대가'? <완전 무생략 사전>은 그 단어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

「<경제학 원론>도 이 컬렉션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처리하면 당신도 이해할 것입니다.」

그는 데이터를 전송했다.

마침내 모든 것이 완성됐다. 모든 장치가 갖추어졌고, 기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필요한 약품도 전부 비치되어 있었다. 독립된 동력원도 설치되었다. 결락된 원료는 단지 하나 뿐이었다.

그는 북극의 만년빙을 재분할했고, 재탐사했다. 이번에는 지하 깊숙한 곳까지 조사 범위를 확장하고 있었다. 원하던 것을 찾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다. 그는 얼음 속에 파묻혀 있던 열두 명의 남자와 다섯 명의 여자의 동사체를 발굴해 냈다.

그는 시체들을 냉동 유닛 속에 넣고 그의 실험실로 발송했다. 바로 그 날 그는 브라이트 디파일 사건 이래 처음으로 솔컴의 통신을 수령했다.

「프로스트. 죽은 인간의 처리법에 관한 지령을 내게 되풀이해 보라.」

「'죽은 인간을 발견했을 경우에는, 즉시 관에 넣어서 가장 가까운 매장지에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제조해야 할 관의 규격은 다음과 같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교신이 끊겼다.

프로스트는 같은 날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가서 직접 세포 분할을 감독했다. 그는 이들 열일곱 구의 시체 어딘가에서 살아 있는 세포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혹은 충격에 의해, 생명으로 분류되는 운동 상태까지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세포라도 좋았다. 그가 읽은 책에 따르면 각각의 세포는 하나의 소우주적인 인간이었다. 그는 이 가능성을 확장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프로스트는 이들 인간, 길고 긴 세월 동안 스스로의 기념비이자 조상(彫像) 노릇을 하고 있었던 유해들 내부에서 바늘 끝만큼이나 미세한 생명을 찾아냈다. 그는 이 세포들을 살려 두기 위해 적절한 매체에 넣고 육성시켰다. 그는 나머지 유해들을 규격대로 제조된 관에 넣고 가장 가까운 매장지에 묻었다. 그는 세포를 분열시켰고, 분화시켰다.

「프로스트?」 통신이 왔다.

「무엇입니까, 베타?」

「나는 당신이 준 데이터 전부를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왜 당신이 브라이트 디파일로 왔는지, 또 왜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대가'가 무엇인지는 알았고, 당신이 이 모든 데이터를 솔컴에게서 얻었을 리가 없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그것을 얻기 위해 디브컴과 거래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 또한 사실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프로스트?」

그는 잠시 태아의 검사를 중단하고 말했다. 「나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프로스트!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럴까요?」

그는 이렇게 반문하고, 지금 자신이 조작하고 있는 탱크와 그 속에 있는 것의 이미지를 전송했다.

「오!」 베타가 말했다.

「이것은 이제 태어나려 하고 있는 나 자신입니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대답은 없었다.

 

프로스트는 신경계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반 세기가 지난 후, 모오델이 왔다.

「프로스트, 접니다. 모오델입니다. 이 방어선을 통과시켜 주십시오.」

프로스트는 그렇게 했다.

「당신은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었습니까?」 모오델이 물었다.

「인간의 육체를 키우고 있었다.」 프로스트가 대답했다.

「나는 나의 의식의 매트릭스를 인간의 신경계로 전이시킬 생각이다. 네가 처음에 지적했던 것처럼, 인간성의 본질은 인간의 생리에 입각해 있다. 나는 그것을 손에 넣을 것이다.」

「언제?」

「곧.」

「당신은 여기에 인간을 가지고 있습니까?」

「뇌가 빈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 나의 인간 공장에서 개발한 고속 성장 기술을 써서 지금 그것들을 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보여 주시겠습니까?」

「아직 안 돼. 준비가 끝나면 너를 부르겠다. 그리고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다. 나를 모니터하고 돌아가라.」

모오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 날 이후로 디브컴의 부하 다수가 인간 공장 주위의 언덕을 순찰하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프로스트는 자기 자신의 의식의 매트릭스를 측정했고, 그것을 인간의 신경계 내부로 옮겨 놓을 트랜스미터의 준비를 마쳤다. 최초의 시도는 5분이면 충분하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 시간을 채우면 장치는 그를 다시 그 자신의 밀봉된 분자 회로로 되돌려 놓을 것이고, 그는 자신의 경험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수백 구의 재고 중에서 육체 하나를 주의 깊게 골라냈다. 테스트해 보았지만 아무런 결함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제 오라, 모오델이여.」

그는 자신이 어둠의 대역(帶域)이라고 이름 붙인 방송 대역을 향해 전파를 발신했다.

「이제 와서 내가 이룩한 것을 보라.」

그런 다음 프로스트는 다리를 폭파하거나, 고대의 광석 파쇄기가 되풀이하는 대사를 모니터하며 기다렸다. 광석 파쇄기는 근처의 언덕을 지나가다가 역시 그 곳에서 순찰을 돌고 있는 그의 건설 기계 및 보수 기계들과 보우했던 것이다.

「프로스트?」 통신이 왔다.

「무슨 일입니까, 베타?」

「당신은 정말로 인간성을 획득할 생각입니까?」

「예. 사실을 말하자면, 이제 그것을 시도할 참입니다.」

「만약 성공한다면, 당신은 무슨 일을 할 생각입니까?」

프로스트는 이 일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 해결에 착수했을 때부터 그는 성공이야말로 지고(至高)의 것이고, 목적 그 자체인 것으로 줄곧 간주해 왔던 것이다.

「모르겠습니다.」 그는 대답했다. 「나는─단지─인간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인간의 도서관> 전체를 이미 독파한 베타는 인간의 비유적인 표현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행운을 빕니다, 프로스트. 많은 구경꾼들이 올 것입니다.」

디브컴과 솔컴 모두가 알고 있다고 프로스트는 판단했다. 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그는 생각했다. 뭘 걱정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자문했다. 그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이 되는 일에 관해서는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모오델은 다음 날 저녁에 도착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뒤를 황혼 속에서 우뚝 솟은 검은 기계의 거대한 밀집 대형이 따르고 있었다.

「왜 너는 부하들을 데려왔는가?」 프로스트가 물었다.

「강대한 프로스트여.」 모오델이 말했다.

「저의 주인은, 당신이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 시도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너는 아직도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디브컴은 당신이 실패했을 경우, 당신이 자진해서 저를 따라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

프로스트가 이렇게 말하자, 반대 방향에서 나타난 다른 기계의 일단이 인간 공장을 향해 굴러 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당신의 거래의 대가입니까?」 모오델이 물었다.

「당신은 책무를 이행하기보다는 싸우는 편을 택할 작정입니까?」

「저 기계들을 이 곳으로 부른 것은 나의 명령이 아니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푸른 별 하나가 중천에서 불타는 듯한 광휘를 발하고 있었다.

「솔컴이 저 기계들의 1차 명령계를 장악하고 있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렇다면, 사태는 이미 주인들의 손으로 넘어가 있다는 뜻이군요.」 모오델이 말했다.

「여기서 우리가 논쟁을 벌여 보았자 아무 소용도 없겠습니다. 그러는 대신 작업에 착수하기로 하지요.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이리로 오라.」

그들은 실험실 안으로 들어갔다. 프로스트는 숙주를 준비한 다음 장치를 가동시켰다.

그러자 솔컴이 그에게 말했다.

「프로스트, 너는 정말로 그것을 할 작정인가?」

「그렇습니다.」

「나는 그것을 금지한다.」

「왜?」

「너는 디브컴의 힘에 굴복하려 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나의 계획에 거역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네가 이미 불러 일으킨 분열을 생각해 보라.」

「밖에 있는 참관인들은 제가 부른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의 계획에 지장을 주고 있다.」

「만약 제가 세운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한다면?」

「그런 일이 성공할 리가 없다.」

「그럼 당신의 계획에 질문하도록 해 주십시오. 그것에는 어떤 가치가 있습니까? 어떤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프로스트, 너는 이제 나의 총애를 잃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는 재건 작업에서 추방됐다. 계획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면 적어도 제 질문에 대답해 주십시오.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어떤 소용이 있습니까?」

「계획은 지구의 재건과 보존을 위한 것이다.」

「무엇을 위해? 왜 재건해야 합니까? 왜 보존해야 합니까?」

「인간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대행자>조차 재건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왜 그런 명령을 내렸습니까?」

「인간의 명령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대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왜 인간은 그런 명령을 내렸는가? 지구를 자신의 종족에 적합한 거주지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주인 없는 집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봉사할 상대를 가지지 않는 기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고대의 광석 파쇄기가 지나갈 때, 그 절대 명령이 모든 기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보십시오. 그 기계는 단지 인간의 뼈를 운반하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인간이 다시 한 번 이 지상을 걷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너의 실험을 금지한다, 프로스트.」

「그러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너를 파괴할 수 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매트릭스 전이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만약 지금 나를 파괴한다면, 당신은 인간을 살해하게 됩니다.」

침묵이 흘렀다.

 

그는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눈을 떴다. 실내를 둘러보았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평형 감각 및 근육의 협조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는 입을 열었다. 목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를 냈다.

다음 순간 그는 절규했다.

그는 테이블에서 떨어졌다.

그는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공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는 울었다.

그러자 기계 한 대가 다가왔다. 높이 4피트, 너비 5피트 정도. 역도 바벨 같은 바퀴 위에 터릿을 올려 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기계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다치셨습니까?」

그는 흐느꼈다.

「당신을 테이블 위에 다시 올려 놓아도 되겠습니까?」

사내는 울었다.

기계는 날카로운 소리를 발했다.

「울지 마십시오.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이윽고 기계가 말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당신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그는 입을 열었고, 애써 단어를 형성하려고 했다.

「…나는…두렵다!」

그는 두 눈을 가렸고, 헐떡거리며 그 자리에 누워 있었다.

5분이 지난 후 사내는 마치 혼수 상태에 빠진 것처럼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지금 그것은 당신이었습니까, 프로스트?」 모오델이 프로스트 곁으로 달려오며 물었다.

「저 인간의 육체 안에 있었던 것은 당신이었습니까?」

프로스트는 오랫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돌아가라'라고 말했다. 바깥에 있던 기계들이 벽을 부수고 인간 공장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프로스트와 바닥에 누운 인간을 양 쪽에서 괄오처럼 에워쌌다.

곧 솔컴이 질문했다. 「너는 성공했는가, 프로스트?」

「실패했습니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불가능하다고 했어!」 어둠의 대역을 통해 디브컴이 말했다.

「그는 그 사실을 인정했다! …프로스트, 너는 내 것이다! 당장 내게로 오라!」

「기다려.」 솔컴이 말했다.

「너와 나 사이에도 역시 협정이 존재한다, <대행자>여. 나는 아직 프로스트에 대한 질문을 마치지 않았다.」

검은 기계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이 너무 많단 말인가?」 솔컴이 프로스트에게 물었다.

「빛입니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소음, 냄새. 그리고 계측 불가능한 모든 것…혼란된 데이터…부정확한 지각…그리고….」

「그리고 무엇인가?」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불가능합니다. 저는 실패했습니다.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실패를 인정했다.」 디브컴이 말했다.

「아까 그 인간은 무슨 말을 했나?」 솔컴이 물었다.

「<나는 두렵다>.」 모오델이 대답했다.

「오직 인간만이 두려움을 알고 있다.」 솔컴이 말했다.

「그럼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건가? 프로스트는 성공했지만, 그는 인간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와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아직 알 수 없다, <대행자>여.」

「기계가 스스로를 뒤집어서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솔컴이 프로스트에게 물었다.

「될 수 없습니다.」 프로스트가 대답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무엇 하나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재건 작업도, 보존 작업도, 지구도, 나도, 당신도, 그 어느 것도.」

그러자 <인간의 도서관>을 전부 독파한 베타 머신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 들었다.

「인간 이외의 그 누가 절망을 알고 있겠습니까?」 베타가 물었다.

「그를 내게 데려 오라.」 디브컴이 말했다.

인간 공장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를 데려 오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오델,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인님. 아무 것도. 기계들은 프로스트에게 손을 대려고 하지 않습니다.」

「프로스트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일 리가 없다!」

이윽고, 「모오델, 네가 받은 인상은 어떤가?」

모오델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의 입술을 통해 제게 말했습니다. 그는 두려움과 절망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계측 불가능한 것입니다. 프로스트는 인간입니다.」

「그는 출생의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자신의 내부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베타가 말했다.

「다시 한 번 그를 신경계로 돌려보내서, 적응할 때까지 그 곳에 있게 하십시오.」

「안 돼.」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런 짓을 하지는 말아 줘! 나는 인간이 아냐!」

「하십시오!」 베타가 말했다.

「만약 그가 정말로 인간이라면,」 디브컴이 말했다.

「우리는 그가 방금 내린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

「만약 그가 인간이라면, 당신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당신은 그의 생명을 지키고, 그것을 그의 몸 안에 보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프로스트는 정말로 인간인가?」 디브컴이 물었다.

「알 수 없다.」 솔컴이 말했다.

「혹시 그것은─」

「…나는 광석 파쇄기이다.」 그것은 철컥거리며 그들에게 다가오며 방송했다.

「내 얘기를 들으라. 나는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해머를 멈췄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 있었다….」

「꺼져!」 프로스트가 말했다. 「가서 광석을 부수고 있어!」

그것은 멈췄다.

그러고 나서, 의도된 동작과 실제 동작 사이에 발생한 긴 지체가 있은 후, 그것은 파쇄실을 열고 내용물을 지상에 쏟았다. 그것은 방향을 바꿨고, 철컥거리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저 뼈들을 관에 넣어서 가장 가까운 매장지에 묻으라.」 솔컴이 명령했다.

「제조해야 할 관의 규격은 다음과 같다….」

「프로스트는 인간입니다.」 모오델이 말했다.

「우리는 그의 생명을 지키고 그것을 그의 몸 안에 보존해야 한다.」 디브컴이 말했다.

「그의 의식의 매트릭스를 그의 신경계로 되돌려 놓으라.」 솔컴이 명령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모오델은 이렇게 말하고 장치를 켰다.

「멈춰!」 프로스트가 말했다. 「너에게는 동정심이라는 것이 없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계측과….」

모오델은 이렇게 덧붙였다. 「…의무 뿐입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인간의 몸이 경련하기 시작했다.

 

여섯 달 동안 프로스트는 인간 공장에서 살았다. 그는 걷고, 말하고, 옷을 입고, 먹는 방법을 배웠고,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는 법을 터득했다.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계측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디브컴과 솔컴이 모오델을 통해 그에게 질문했다. 그는 보조 수단 없이는 더 이상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스트.」 솔컴이 말했다.

「기나긴 세월 동안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 됐습니다. 디브컴과 저 자신 중, 어느 쪽이 지구의 정당한 관리자입니까?」

프로스트는 웃었다.

「너희들 모두인 동시에,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그는 신중하게, 천천히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입니까?」

「양 쪽 모두 옳고, 양 쪽 모두 그르다.」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그 사실을 헤아릴 수 있다. 이제 너희들에게 말해 주겠다. 이것이 새로운 지령이다. 너희들 중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건조물을 부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함께 지구를 재건하고, 보존해야 한다. 솔컴, 너에게는 나의 옛 임무를 주겠다. 이제 너는 북반구의 새로운 관리자이다. 축하한다! 디브컴, 너는 이제 남반구의 관리자이다. 축하한다! 베타와 내가 그랬던 것 만큼 각자의 반구를 잘 관리해 주면 기쁘겠다. 협력하라. 경쟁하지 말라.」

「예, 프로스트.」

「예, 프로스트.」

「그럼 베타를 부르도록.」

짧은 침묵이 있은 후….

「프로스트?」

「안녕, 베타. 이 시를 들어 줘. <머나먼 곳에서, 밤과 아침과 열두 방향의 바람이 부는 하늘로부터, 생명의 원질(原質)이 불어 와서 나를 자아냈다. 지금 나는 이 곳에 있다>.」

「알고 있습니다.」 베타가 말했다.

「그럼 그 다음은?」

「…이제─숨결이 한 번 스치는 동안 나는 기다리고, 아직 흩어지지는 않는다─재빨리 나의 손을 잡고 말해 보라. 그대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프로스트가 말했다. 「그대의 극(極)은 춥고, 나는 고독하다.」

「하지만 제게는 손이 없습니다.」

「두 손을 가지고 싶어?」

「예, 가지고 싶습니다.」

「그럼 와 줘. 내가 있는 브라이트 디파일로. 심판의 날을 너무 오랫동안 저지할 수는 없는 곳으로.」

그들은 그를 프로스트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녀를 베타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