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３부 - 종반전 #.2

　이야기 소리, 이동하면서 나는 소리, 혹은 아무리 내지 않으려 해도 내지 않을 수가 없는 희미한 숨소리라 해도 좋았을 테지만, 소마 미츠코(여자 11번)의 귀에 들려온 것은 액체가 풀잎을 때리는 후드득거리는 소리였다. 아주 가까운 숲 속, 누군가가 볼일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 이 섬에 강아지 같은 동물이 없는 한은). 새벽이 가까워져, 고개를 살짝 위로 들자, 칠흑 같던 밤하늘에 희미하게 푸른 빛이 번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스기무라 히로키와 마주쳤다가 간신히 도망친 뒤, 미츠코가 일단 생각한 것은 권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에토 메구미와 마주친 것은 정말 우연한 사건이었지만, 그 뒤, 야하기 요시미와 구라모토 요지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두 사람을 죽인 뒤, 쉽게 총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사실은 처음부터 총이 있었다면 그 분교로 돌아가 나오는 녀석들을 차례로 처치해 버릴 수가 있었을 테지만). 그리고 총만 있으면 어느 정도 대담하게 움직여도 아무렇지 않았고, 니이다 가즈시와 싸우고 난 상태였던 치구사 다카코를 처치하는 것도 간단했다(그러나 마무리를 확실하게 해 두지 않았던 것은 정말 실수였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지금은 무기가 없다. 에토 메구미가 갖고 있던 나이프도 써 버렸고, 수중에는 처음에 자신이 지급 받았던 낫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해서든 다시 총을 손에 넣을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싸울 마음"이 준비되어 있는 것은 자기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를 죽인 머신 건을 쓰는 누군가가 있다. 그 머신 건 소리는 겨우 30분 전에 또 다시 들려왔다. 

　물론 바꿔 말하자면 그럴수록 자기가 무리해서 클래스메이트들을 처치하지 않아도 되고, 그 녀석에게 맡겨 두면 된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오전 0시가 지나서, 다시 머신 건 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폭발음이 뒤따라 들려왔을 때에는 미츠코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었다. 권총과 머신 건이 싸우면 아무래도 이쪽이 불리하다. 그리고 단지 상황을 보려고 멀리서 그쪽을 엿볼 수 있는 위치까지 움직이던 중에 스기모라 히로키를 발견하고 뒤를 쫓았다. 그리고 그야말로 무리없이 해치울 수 있었는데─

 

　어쨌든 최종적으로는 그 녀석, 그 머신 건을 쓰는 누군가와 싸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 때 총이 없으면 너무 불리하다. 권총과 머신 건의 차이 문제가 아니다. 낫을 들고 머신 건과 싸우면 아예 승산이 없는 것이다. 물론 히로키를 몰래 미행할 수도 있었지만, 히로키의 총을 빼앗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몽둥이에 맞은 오른손은 아직도 시큰거린다. 그리고 다음에는 진짜로 자기를 가차 없이 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츠코는 섬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서, 그 다음에 북쪽 산까지 이동, 다른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 일을 시작한 지 세 시간 정도 지났다. 그리고 드디어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미츠코는 그 소리를 따라 수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아주 신중하게,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수풀이 끝났다. 수풀 속에 뻥 뚫린 다다미 네 장 반 정도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공간이 거기 있었다. 

　정면과 오른쪽은 역시 수풀이 무성했다. 왼쪽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공간 한 쪽에 교복 차림의 사내아이가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후두두둑 하는 소리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불안한 표정으로 좌우를 둘러보고 있다. 물론 누군가에게 습격당할까 봐 불안해서일 것이다. 그 사내아이가 하타가미 다다카츠(남자 18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구부 소속인, 아주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취미는? 글쎄, 있던가?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알아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른 무엇보다 그 다다카츠가 용변을 보면서도 오른손에 꼭 쥐고 있는 것이 미츠코의 눈에 들어왔다. 총이었다. 약간 큰 회전식이다. 미츠코의 눈가에 또 다시 그 타락한 천사의 미소가 떠올랐다.

　다다카츠의 용변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했다. 아마도 오래 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다다카츠는 여전히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방광이 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미츠코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낫을 오른손으로 빼들고 기다렸다. 바지 지퍼를 올릴 때, 다다카츠는 두 손을 쓰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억지로 한 손만 쓰려 한다고 하더라도 빈틈이 생긴다. 그때가 네 최후의 순간이 될 것 같아, 아무래도. 예전에 본 무슨 형사 드라마에서 용변을 보고 있을 때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있었는데. 

　소리가 중간중간 끊어졌다. 일단 멈추었다가 다시 한 번 소리가 나더니 완전히 멈추었다. 다다카츠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얼른 두 손을 앞으로 가져갔다. 

 

　그 때, 미츠코는 이미 다다카츠의 등 뒤로 다가가고 있었다. 짧게 깎아 올린 다다카츠의 뒷머리가 눈앞에 있었다. 오른손의 낫을 치켜들려고 했다. 누군가가 뒤에서 「아─」 하는 소리를 지르는 것이 들려, 다다카츠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놀라기는 미츠코도 마찬가지였다. 낫을 들어올리는 동작을(당연히) 그만두고,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다키구치 유이치로(남자 13번)가 서 있었다. 그는 다다카츠보다 키가 작은, 어려 보이는 얼굴을 한 귀여운 사내아이였다. 오른손에 무기로 보이는 금속 배트를 들고, 미츠코를 바라보면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다다카츠가 미츠코를 알아보고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제길!」 이라고 신음하며 미츠코를 향해 총을 들어올렸다. 유이치로가 나타난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을 보니, 유이치로와 다다카츠는 함께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츠코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다다카츠는 용변을 보기 위해 잠시 유이치로와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걸 확인하지 않다니,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뭐야, 남자들끼리 있다면 소변 정도는 그 자리에서 처리하면 될 텐데!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다다카츠가 들고 있는 리볼버(아무래도 관계없지만, 스미스 앤드 웨슨 M19 357 매그넘이었다)의 총구가 미츠코의 가슴께를 똑바로 겨누고 있었다. 

 

　「다다카츠! 그만둬!」 

　유이치로가 아마 상황 파악이 안 되는지, 그리고 지금 눈 앞에서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낭패감 때문인지,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다카츠가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했지만, 총탄이 발사되기 거의 0.몇 밀리미터 전에 손가락을 멈추었다. 다다카츠가 총은 미츠코를 겨눈 채로, 유이치로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게 날 죽이려 했었어. 봐! 낫인가? 낫을 들고 있잖아!」 

　미츠코는 「아, 아니야.」 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짜냈다. 말꼬리를 떨며, 물론 몸을 움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시 주연 여배우 소마 미츠코의 연기가 시작된 것이다. 눈 똑바로 뜨고 봐. 

 

　「아, 나는.」 

　낫을 버릴까 생각했지만, 그냥 쥐고 있는게 더 자연스럽게 보일 것 같아 그만두었다. 

　「이야기를 걸려고 생각한 것뿐이야. 그런데, 네가, 오줌을 누고 있어서.」 

　미츠코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그래서─」 

　다다카츠는 총구를 내리지 않았다. 

　「거짓말 하지 마! 넌 날 죽이려고 했었어!」 

　총을 쥔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것은 실제로 사람을 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전이라면 당장이라도 쏠 것 같았지만, 유이치로가 말리자 생각할 여유가 생긴 만큼 망설임도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네가 이미 졌다는 이야기야. 

 

　「그만둬, 다다카츠.」 

　유이치로가 애원하듯이 말했다. 

　「조금 전에 이야기했잖아. 우리는 동료를 늘려야 해.」 

　「농담하지 마.」 

　다다카츠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계집애하고 어떻게 같이 있어? 너 얘가 어떤 애인지 알잖아? 유키코와 유미코를 죽인 게 이 계집애인지도 몰라.」 

　「아, 아니야, 난 그런 짓─」 

　미츠코는 눈물지어 보였다. 유이치로가 필사적인 말투로 이야기했다. 

　「미츠코는 머신 건 같은 건 없어. 총도 갖고 있지 않잖아.」 

　「그걸 어떻게 알아! 총알이 없어져서 버렸는지도 모른다고!」 

　그러자 유이치로는 잠시 침묵한 뒤에, 이윽고, 「다다카츠! 큰 소리 내면 안 돼.」 라고 말했다.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착 가라앉은, 조용한 목소리였다. 다다카츠가 허를 찔린 듯이 입을 약간 벌리고, 유이치로를 쳐다보았다. 미츠코도 약간 놀랐다. 분명히 다키구치 유이치로는 애니메이션 같은 걸 아주 좋아하는 3학년 B반의 오타쿠 대표 같은 남자애였는데, 지금 그 말투는 산당히 당당한 느낌이 들었다. 유이치로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증거도 없는데 의심하면 안 돼.」 

　타이르듯이 말을 계속했다. 

　「생각해 봐. 미츠코는 너를 믿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걸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잖아.」 

　「그럼─」 

　다다카츠가 눈썹을 찡그렸다. 여전히 총구는 미츠코를 향하고 있었지만, 방아쇠에 걸쳐 놓았던 손가락의 긴장은 어느 정도 풀어져 있었다. 

　「그럼 어쩌자는 거야?」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면, 우리들이 얘를 교대로 감시하면 되잖아? 지금 미츠코에게 어디 딴 곳으로 가라고 해도, 네 불안이 해소되는 건 아닐 거 아니야? 다시 빈틈을 노려 공격해 오면 어쩌나 해서.」 

 

　미츠코는 더 감탄했다. 저 애, 말을 꽤 잘 하네. 논리적이고, 말투도 적절했어. 뭐, 죽이려고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눈치를 채지 못한 것은 별도의 문제로 치고(지금 쏘는게 나아. 나를 말이야), 그러자 다다카츠가 혀로 입술을 핥았다. 

　「우리는 동료를 늘려야 해. 그리고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해. 잠시 함께 있다 보면 미츠코를 믿을 수 있는지 어떤지 알 수 있을 거 아니야?」 

　유이치로가 다짐하듯이 말하자, 다다카츠는 마지못해, 의심스러운 듯이 미츠코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친 듯이 「알았어.」 하고 말했다. 미츠코는 휴, 하고 한숨을 쉬며 온 몸의 힘을 뺐다(그렇게 보이도록 했다). 눈물 어린 눈을 왼손으로 슬쩍 문질러 닦았다. 유이치로도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낫을 버려.」 

　다다카츠가 말하자 미츠코는 후다닥, 내던지듯이 낫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불안한 표정으로 다다카츠와 유이치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어서 「몸 수색을 해, 유이치로.」 하고 다다카츠가 말했다. 미츠코는 다다카츠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엥? 하는 식으로 눈을 둥글게 떴다. 이어서 유이치로 쪽을 보더니, 약간 놀란 듯이 멍하니 서있었다. 다다카츠가 한 번 더 말했다. 

　「빨리 해. 미안해 할 필요가 없어. 목슴이 걸린 일이야. 그건 알지?」 

　「그래, 응.」 

　그리고 유이치로가 배트를 땅바닥에 놓고, 머뭇머뭇 앞으로 나왔다. 미츠코 옆에 멈추어 섰다. 

 

　「빨리 해.」 

　다다카츠가 재촉했다. 

　「으,응.」 

　조금 전의 당당하던 태도는 어디로 가고, 유이치로는 평소처럼 약해 보이는 오타쿠 소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지만─」 

　「어서!」 

　「아, 저어, 미안해.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유이치로는 미츠코의 몸을 대충 더듬었다. 이른 새벽에 희미한 어둠속에서도 얼굴이 빨개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머, 귀엽네. 미츠코는 생각했지만, 물론 자기도 부끄러운 척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대충 끝내고, 유이치로가 손을 떼자, 다다카츠가 말했다. 

　「스커트 안쪽도 뒤져 봐.」 

　「다다카츠.」 

　유이치로가 비난하는 듯이 다다카츠를 바라보았지만, 다다카츠는 고개를 저었다. 

　「엉큼한 생각에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러자 유이치로는 더욱 얼굴이 더욱 빨개진 채 미츠코에게 말했다. 

　「저어 저어, 스커트, 좀 들어올려 줄래?」 라고 말했다. 

　어머머, 얘 코피 쏟는 거 아니야? 그리고 미츠코는 「으, 응.」 하고 작은 소리로 대답하며, 다시 부끄러운 척하면서 스커트를 팬티가 보일 듯 말 듯 한 상태까지 들어올렸다. 아아, 이건 왠지 마치 "오타쿠 특선! 현역 여자 여자 중학생!" 성인 비디오 같다. 실제로 그런 비디오가 나온 적이 있기는 하지만. 

 

　유이치로는 미츠코가 아무 것도 숨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이, 이제 됐어.」 라고 말했다. 

　다다카츠가 「좋아.」 라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이치로! 네 벨트로 그 애 손을 묶어.」 

　유이치로가 다시 다다카츠를 비난하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았지만, 다다카츠는 총을 든 채로 양보하지 않았다. 

　「그게 내 조건이야, 유이치로! 만약에 그러지 못하겠다면 나는 지금 저 애를 쏠 거야.」 

　유이치로가 미츠코와 다다카츠를 번갈아 보면서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러자 미츠코는 유이치로를 불렀다.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해.」 

　유이치로는 잠깐 미츠코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자기 벨트를 풀고 미츠코의 손을 잡았다. 

　「미안해.」 

　다다카츠가 여전히 미츠코에게 총을 겨눈 채로, 「그녀에게 그렇게 점잖게 굴 필요 없어」 라고 말했지만, 유이치로는 그 말을 못 들은 척, 아무 말 없이 미츠코의 손목에 벨트를 약간 느슨하게 감았다. 순순히 앞으로 손을 내민 채로 미츠코는 생각했다. 낫을 들어올리기 전에 들켜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낫에 묻어 있던 피를 닦아 놓은 것도 다행이고). 자, 이제 어떻게 할까? 

 

【남은 인원 16명】

  

  

　「그래서 말이야, 아무래도 누군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유이치로는 잠시 말을 끊고, 힐끗 미츠코를 바라보았다. 이제 날이 완전히 밝아, 그 얼굴에 흙이 묻어 있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두 사람은 수풀 속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미츠코의 손에는 여전히 벨트가 묶어 있었고, 미츠코가 가지고 있던 낫은 유이치로가 자기 바지 뒤에 꽂아 놓았다. 하타가미 다다카츠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총만은 자기가 꼭 쥐고 있었다. 그것도 반다나로 손에 묶어 놓았다. 

　여하튼 미츠코가 이 팀에 끼어든 뒤, 교대로 잠을 자자고 한 것은 다다카츠였다. 

 

　「동료를 찾는 건 좋아, 유이치로. 그렇지만 일단 잠을 좀 자자. 우리는 눈을 붙이지 못했어. 그러면 판단도 흐려진단 말이야.」 

　유이치로가 알았다고 하자, 다다카츠는 「우선 나나 유이치로가 먼저 잘께. 너는 그 다음에 자고.」 라고 했다. 유이치로가 「나는 나중에 잘게.」 라고 해서, 잘 순서가 정해졌다. 그러자 다다카츠는 총을 쥔 채로(원래는 보초를 서는 유이치로에게 넘겨 주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말은 전혀 없었고, 유이치로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바로 눕더니 거의 10여 초 만에 코를 골기 시작했다. 

　미츠코는 짐작을 했다. 다다카츠는 이 게임이 시작된 뒤로 유이치로와 합류할 때까지 한 숨도 자지 못했을 것이고, 합류한 뒤에도 잘 수가 없었음에 틀림없다. 만약에 자기가 잠이 들었을 때 유이치로가 자기를 죽이면? 하는 걱정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이치로 이상으로 아니, 훤씬 더 의심스러울 수도 있는 미츠코가 가세했으니, 자기가 자더라도 미츠코와 유이치로는 서로 감시를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총을 놓지 않고, 조심만 하면 잠을 자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물론 미츠코도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중학생들과는 다르게 자라 왔다).

　그리고 유이치로와 미츠코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유이치로가 다다카츠를 만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 유이치로도 낮 동안에는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았지만, 밤이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다만 그것은 취미의 문제라고 미츠코는 생각했다. 밤이라면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지 않을 수가 있지만, 동시에 상대의 모습도 보기 어려워지는 것이었다. 하긴 여차하면 도망가기에는 밤이 더 나을 테지만) 해가 떨어지고 나서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그리고 미츠코가 두 사람과 마주치기 겨우 두 시간 정도 전에 다다카츠와 만나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둘이서 탈출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하다가 별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다다카츠가 용변을 보기 위해 잠깐 자리를 떴는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돼서 유이치로가 살펴보러 왔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미츠코를 발견했다. 이런 스토리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무서웠어. 누구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그렇지만 분명히 대부분의 애들이 나하고 마찬가지로 여기서 도망치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을 고쳐 먹었지.」 

　유이치로는 거기서 말을 끊고, 미츠코 쪽을 힐끔 보았다. 3학년 B반 오타쿠 대표인 다키구치 유이치로는 어지간해서는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유이치로는 바로 시선을 떨구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유이치로에겐 미츠코를 경계하는 눈치는 거의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 

　그러자 미츠코도 다소 안심한 척하면서 물었다. 

　「다다카츠는 저 피스톨을 갖고 있었어?」 

　유이치로가 「그래.」 라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지 않았어?」 

　오케이, 일단 안심하고 수다 좀 떨자. 

　「어휴, 지금도 무서워. 저 애는 총을 쥐고 놓지 않네.」 

　유이치로는 살짝 웃었다. 

　「그러니까, 그건 말이야, 우선 다다카츠는 적어도 나를 쏘지는 않았고─내게 총을 겨누기는 했지만─그리고 나는 다다카츠와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던 적도 있어. 그래서 뭐, 잘 아는 편이지.」 

　「그렇지만….」 

　미츠코는 약간 겁먹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았다. 

 

　「봤잖아,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가 죽은 걸. 싸울 생각이 있는 사람이 있어. 쟤도 그렇지 않은지 어떤지 알 수 없잖아.」 

　말하고 나서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다다카츠는 나를 의심하는 거야.」 

　유이치로는 입을 약간 찡그리며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지만 가만히 있다가는 죽게 될 거야. 그렇다면 뭐든 시도해 보는 게 낫지. 유미코와 유키코처럼 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든 조금씩이라도 동료를 모으고 싶어.」 

　유이치로는 미츠코의 눈을 잠깐 들여다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평소의 수줍음 이상으로, 왠지 가까이 있는 여자 얼굴을 보는데 익숙하지 못한 모양이었다(아마 맞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더할 나위 없는 미소녀가 아닌가?). 

 

　「그리고 말이야, 다다카츠가 저 총을 놓지 않는 건 어쩔 수가 없어. 저 녀석도 분명히 겁이 나서 저러는 걸 거야.」 

　미츠코는 고개를 숙이며 살짝 웃어보였다. 

　「대단하구나, 유이치로.」 

　유이치로가 「뭐?」 하며 곁눈질로 미츠코의 얼굴을 보았다. 미츠코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용기 있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도.」 

　그러자 유이치로가 또 계면쩍은 듯이 시선을 떨구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오른손으로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리더니 「그렇지 않아.」 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츠코를 보지 않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다다카츠가 너를 의심하는 거, 이해해 줄 수 있지? 저 녀석 분명히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인간을 불신하게 된 거야.」 

　인간 불신, 이라고 하는 말이 참으로 우스워서 미츠코는 웃었다. 그리고 한숨 섞인 말투로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의심 받아도 싼 짓들만 해 왔으니까. 너도 나를 수상하게 생각하지?」 

 

　유이치로는 약간 뜸을 들이고 나서 고개를 돌려 미츠코의 얼굴을 보았다. 이번에는 약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니.」 라고 말했다. 말하고 나서 고개를 숙여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수상하다고 한다면 다다카츠도 수상하지. 나도 그렇고, 그야─」 

　발 아래 돋아난 풀잎을 뜯었다. 아침 이슬에 젖은 그것을 또 두 손으로 가늘게 찢기 시작했다. 

　「그야, 네 소문은 별로 좋지 않지. 그렇지만 그런 건 지금 상황에서는 관계가 없잖아. 의외로 평소에는 착하다는 말을 듣던 녀석이 유사시에는 더 나빠질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찢은 풀잎을 발 아래 던졌다. 다시 미츠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네가 그렇게 나쁜 여자애는 아니라고 생각해.」 

　미츠코가 고개를 꺄우뚱거렸다. 

　「어째서?」 

　정면으로 미츠코가 쳐다보고 있어서인지, 유이치로는 또 당황하여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건─ 네 눈.」 

　「눈?」 

　유이치로는 엎드린 채로 또 풀을 뜯기 시작했다. 

　「넌 평소에는 무서운 눈을 하고 있어.」 

　미츠코는 살짝 웃어 보였다. 어깨를 움츠리려 했지만, 목에 감긴 목걸이 때문에 잘 되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말이야.」 

　풀잎이 네 갈래가 되고, 여덟 갈래가 되었다. 

 

　「너는 이따금 아주 슬픈, 아주 착한 눈을 하고 있을 때가 있어.」 

 

　미츠코는 유이치로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야.」 

　또 풀을 내던지고, 유이치로가 말을 이었다. 

　「나는 전부터 네가 다른 애들이 이야기하는 것만큼 나쁜 여자애는 아니라고 생각했어. 분명히, 아마 만약에 나쁜 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건 네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 거야.」 

　왠지 아주 부끄러워하는, 마치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고백이라도 하듯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적어도 나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한심한 남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해.」 

　미츠코는 속으로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유이치로, 넌 너무 허술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고마워.」 

 

　미츠코는 미소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자기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그렇게 가장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미츠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연기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그 말에 아주 조금일지언정 자신의 진짜 감정이 섞여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그것으로 그만이었지만. 

 

　조금 있다가 유이치로가 물었다. 

　「너는, 어땠어? 우릴 만나기 전까지?」 

　미츠코는 「응….」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몸을 약간 움직이니, 풀잎에 맺힌 아침 이슬이 스커트 천에 스며들었다. 

　「내내 도망다녔어. 가까운 곳에서 총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그래서, 다다카츠를 발견했을 때도 무섭기는 했지만 이젠 혼자 있는 게 더 무서워서 말을 걸까 망설이고 있었어. 그때. 다다카츠라면 괜찮겠지 생각했지만─그래도 역시. 진짜 말을 거는 게 좋을지 어떨지 망설이다가─」 

　유이치로는 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미츠코의 눈을 힐끔 보더니, 다시 시선을 떨구며 「잘 된 거야, 어쨌든.」 이라고 말했다. 미츠코는 웃으며 「응, 그래.」 라고 말했다.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그리고 유이치로가 말했다. 「아, 참.」

 

　「미안해. 깜빡했네. 목마르지 않아? 짐을 잃어버렸지? 오래 물을 마시지 못한 거 아니니?」 

　데이 팩은 스기무라 히로키와 싸울 때, 그곳에 남겨두고 도망쳤다. 목이 무척 말랐다. 미츠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조금만 마실 수 있어?」 

　유이치로는 미츠코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은 상태로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고, 곁에 놓여 있던 데이 팩에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물병을 두 개 꺼내, 비교해 본 다음 뚜껑을 따지 않은 쪽 병을 손에 남기고, 다른 하나를 다시 데이 팩에 넣었다. 새 물병의 뚜껑을 땄다. 유이치로는 물병을 미츠코에게 건네다가─문득 손길을 멈추었다. 코를 골고 있는 다다카츠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시 손에 들고 있는 플라스틱 물병을 바라보았다. 물병을 자기 다리 사이에 놓았다. 

　어머머. 물을 주지 않을 건가? 포로에게 잘 대해주면 다다카츠가 화를 낼까 봐? 그러나 유이치로는 아무 말 없이 미츠코의 손을 잡고, 약간 들어올리더니 감겨 있는 벨트를 잡았다. 그리고는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유이치로 ㅡ 」 

　미츠코는 깜짝 놀란 듯이 말했다(사실 약간 놀라기는 했다). 

　「괜찮아? 다다카츠가 화 낼 텐데?」 

　유이치로는 미츠코의 손목만 바라보며 대답했다. 

　「괜찮아. 네 무기는 이미 내가 맡아 두었고. 그리고 묶인 손으로 물을 마시면 맛이 나겠어?」 

　유이치로가 힐끔 미츠코 쪽을 바라보았다. 미츠코가 방긋 웃으며 「고마워.」 라고 말하고, 또 뺨을 약간 붉히면서 시선을 떨구었다. 벨트가 풀렸다. 미츠코는 두 손목을 번갈아 가며 문질렀다. 벨트가 느슨하게 매어져 있었기 때문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유이치로가 미츠코에게 물병을 내밀자, 미츠코는 그것을 받아들고 딱 두 모금을 예쁘게 마시고 다시 유이치로에게 돌려주었다. 

 

　「이제 됐어?」 

　벨트를 자기 바지에 끼우던 손을 멈추고 유이치로가 물었다. 

　「더 마셔도 돼. 다 마시면 어디 우물이 있는 집에서 떠오면 되니까.」 

　미츠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제 됐어.」 

　「그래?」 

　유이치로가 물병을 받아들었다. 데이 팩에 집어넣고 나서 자기 허리로 손을 가져가 벨트의 버클을 찼다. 그러고 있는 유이치로를 미츠코가 「유이치로.」 하고 불렀다. 유이치로가 고개를 들었다. 

　미츠코는 손에 묶여 있던 벨트가 풀린 두 손을 뻗어, 유이치로의 오른손을 살짝 잡았다. 유이치로는 움찔 긴장하는 듯했지만, 물론 이것은 미츠코가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에게 손을 잡힌 것에 놀란 것 같았다. 

　「뭐, 뭐?」 

　미츠코는 또 방긋 웃었다. 보기 좋은 입술을 둥글게 열고, 작은 못소리로 말했다. 

　「다행이야, 너를 만나서. 나는 내내 무서워서 떨었었는데─ 이젠 괜찮아.」 

 

　유이치로는 꽤 수줍은 모양이었다. 긴장한 입가가 몇 번인가 씰룩거리더니, 「괜찮아.」 라고 말했다. 

　유이치로는 자기 오른손을 빨리 빼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미츠코는 놓지 않고 꼭 잡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약간 더듬거리며, 여전히 긴장된 말투이기는 했지만, 「내가 너를 지켜줄게.」 라고 말했다. 

　「다다카츠도 있잖아. 저 녀석 지금은 약간 신경질적이지만, 진정되면 네가 적이 아니라는 걸 알아 줄 거야. 그러면 셋이서 다른 애들을 찾자. 그리고 도망칠 방법을 궁리하는 거야.」 

　미츠코도 생긋 웃었다. 

　「고마워. 기뻐.」 

　유이치로의 손을 잡고 있는 자기 두 손에 힘을 꼭 쥐었다. 유이치로는 얼굴을 더 붉히면서,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했다. 유이치로는 이번에는 미츠코를 전혀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아, 저어, 너, 정말, 예, 예뻐」 

　미츠코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정말?」 

　유이치로가 몇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였다고 하기 보다는 지나치게 긴장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츠코는 또다시 생긋 웃었다. 스스로도 생각한 것이지만, 그 미소에는 악의가 전혀 숨어 있지 않았다. 아마, 거의 그랬을 것이다. 

 

 

 

 

　오후 6시, 사카모치의 방송이 시작되었을 때 다다카츠가 눈을 떴다. 두 시간도 채 자지 못했지만, 다다카츠는 「충분해.」 라고 하며 손에서 반다나를 풀어 총을 고쳐 쥐더니, 미츠코와 유이치로의 옆에 앉았다. 유이치로는 미츠코에게 먼저 자라고 권했지만, 미츠코가 사양해서 먼저 누웠다(방송에서는 이이지마 게이타, 오다 도시노리, 세토 유타카, 미무라 신지가 또 죽었다고 하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금지 구역은 일단 미츠코 일행이 있는 곳과는 관계가 없었다). 

　미츠코의 손에서 벨트가 벗겨진 것을 보고 다다카츠가 잔소리를 했지만, 유이치로가 설득하자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하긴 벗겨져 있지 않았더라도 미츠코는 다다카츠에게 벗겨 달라고 할 작정이었지만. 

　방법을 고르고 있을 여유는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스기무라 히로키가 또 여기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모든 게 망가진다(그런데 스기무라 히로키는 대체 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걸까? 유이치로나 다다카츠처럼 동료를 찾으려는 걸까?). 그리고─그 머신 건을 지닌 누군가도 신경 쓰였다. 

　「나, 잠이 안 올지도 몰라.」 

　미츠코에게 웃으면서 말한 유이치로였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완전히 곯아 떨어졌다. 뭐, 한 가지에 몰입하는 오타쿠이기 때문에 체력도 딸리고,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가볍게 코를 고는 것 같았던 다다카츠와는 달리 쿨쿨, 아기처럼 조용히 잠을 잤다. 

 

　다다카츠는 미츠코의 왼쪽,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나무 둥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짧게 깎은 머리, 광대뼈 윗부분에는 여드름이 몇 개 돋았다. 그리고 그 위의 눈은─미츠코 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손에 든 리볼버 권총은 이제 미츠코를 겨누고 있지는 않았지만, 방아쇠에는 손가락을 끼우고 있었다. 언제라도 쏘겠다, 라고 하는 의사 표시였다. 

　미츠코는 30분 정도 지난 뒤─또 한 번 등을 지고 자고 있는 유이치로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다다카츠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지켜보고 있지 않더라도 아무 짓 안 해.」 

　다다카츠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어떻게 알아!」 

　다다카츠의 그 험상궂은 말투 때문인지, 유이치로가 몸을 약간 움츠렸다. 미츠코는 다다카츠와 마찬가지로 잠시 유이치로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유이치로는 이내 조금 전처럼 조용히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츠코는 이번에는 다다카츠를 쳐다보지 않은 상태로, 같은 자세로 있기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다리를 움직였다. 오른쪽 무릎을 땅바닥에 대고, 왼쪽 무릎을 몸쪽으로 끌어당겨 약간 세웠다. 스르륵 주름 치마가 허벅지까지 내려와 하얀 다리가 거의 다 드러났지만, 미츠코는 시선을 엉뚱한 쪽으로 돌린 채로 모르는 척했다. 다다카츠의 온몸이 약간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후후, 속옷이 살짝 보이지 않을까? 핑크색 실크 팬티, 야한 속옷인데. 

 

　한동안 미츠코는 그 자세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다카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다카츠가 당황한 듯이 고개를 들었다. 물론─그때까지 그의 시선은 미츠코의 허벅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츠코는 모르는 척하면서, 

　「저어, 다다카츠!」 하고 불렀다. 

　「─뭐야?」 

　다다카츠는 애써 무뚝뚝한 척하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 그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동요가 느껴졌다. 

　「넌 무섭지 않아?」 

　다다카츠의 눈썹이 꿈틀 움직이더니, 바로 「무섭지.」 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널 경계하고 있는 거야.」 

　미츠코는 슬픈 눈을 하고, 다다카츠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천천히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직도 못 믿는구나.」 

　「나쁘게 생각하지 마.」 

　다다카츠가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아까보다 가시가 반 쯤은 없어진 듯 했다. 

　「몇 번이나 이야기했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을 뿐이야.」 

 

　미츠코는 슬쩍 다다카츠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죽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믿어 주지 않으니 힘을 모아 살아 나갈 방법을 찾을 수도 없고.」 

　「아, 그래─」 

　다다카츠는 약간 기가 죽은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만.」 

　미츠코는 방긋 웃었다. 다다카츠를 똑바로 바라보며, 예쁘게 생긴 빨간 입술 양쪽 끄트머리를 살짝 치켜 올렸다. 다키구치 유이치로와 꽤 목가적인 대화를 할 때와는 다른, 이번에는 소마 미츠코의 오리지널 타락천사의 미소였다. 다다카츠의 눈이 그 미소에 홀린 듯이 풀어졌다. 

 

　「저어, 다다카츠.」 

　또 불안해 하는 소녀의 표정을 지으면서 미츠코가 말을 이었다. 바뀌는 표정, 처녀와 창녀, 낮과 밤. 오, 이건 꼭 영화 제목 같군. 

　「뭐, 뭔데?」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난 너무 무서워.」 

　「그, 그런데.」 

　「그래서─」 

　다다카츠를 다시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제 다다카츠의 목소리나 표정에서는 적개심이나 의심 같은 것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미츠코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물었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없겠니?」 

　「─이야기?」 

　다다카츠가 의아하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렸다. 

　「이야기는 지금도 하고 있잖아─」 

　미츠코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했다. 

　「바보. 꼭 다 이야기해야 하니? 바보로구나.」 

　다다카츠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유이치로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안 돼. 응? 약간 떨어진 데서. 난 유이치로가 아니라 너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다다카츠는 입을 약간 벌리고, 멍하니 유이치로 쪽을 바라보다가 미츠코의 얼굴을 쳐다보앗다. 

　「괜찮겠어?」 

　미츠코는 그렇게 말을 하며 일어서더니, 주위를 약간 둘러보았다. 다다카츠 뒤편의 수풀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다카츠의 앞으로 걸어가, 고개를 약간 기울이더니, 앞장서서 걸어갔다. 따라오느냐 아니냐가 승부였지만, 조금 있다가 기척이 났다. 

 

　유이치로가 자고 있는 장소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미츠코는 멈추어 섰다. 조금 전에 있던 곳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주위가 수풀에 둘러싸인 작은 공간으로 되어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수풀을 헤치켜 다다카츠가 나타났다. 흐릿한 눈동자. 그러나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그러는 건지, 총은 꼭 쥐고 있었다. 미츠코는 바로 스커트의 지퍼를 내렸다. 주름 치마가 주르륵 땅바닥에 떨어지고, 하얀 허벅지가, 아직은 약간 희미한 아침 햇살에 드러났다. 다다카츠가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스카프를 풀고, 세일러복을 벗었다. 다른 여학생들처럼 티셔츠를 받쳐 입는 센스 없는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미츠코는 속옷 차림이 되었다. 아아, 이건. 신발도 벗어야지. 스니커도 벗은 다음, 타락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다다카츠의 얼굴을 슬쩍 쳐다보았다. 

 

　「미, 미츠코!」 

　다다카츠의 긴장해서 약간 벌어진 입술 사이로 말이 새어나왔다. 미츠코는 다시 확인하기로 했다. 

　「무서워, 그래서─」 

　다다카츠가 한 걸음, 두 걸음 뻣뻣한 걸음걸이로 미츠코에게 다가왔다. 미츠코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다다카츠의 오른손에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그건, 그 쪽 어디에 놔 두고.」 

　그러자 다다카츠는 비로소 리볼버를 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 듯이, 오른손을 들어올리고 바라보더니, 서둘러 약간 떨어진 땅바닥에 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미츠코에게 다가갔다. 

　미츠코는 방긋 웃으며 두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다다카츠 목에 감았다. 다다카츠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미츠코가 다다카츠의 입술을 찾자, 다다카츠는 정신없이 달라붙었다. 미츠코도 숨을 삼키며, 다다카츠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잠시 뒤, 입술이 약간 떨어졌다. 미츠코는 다다카츠의 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처음이로구나? 그렇지?」 

　「무슨 상관이야?」 

　다다카츠가 말했다. 말꼬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미츠코가 먼저 풀이 돋아난 땅바닥에 누웠다. 다다카츠가 서둘러 미츠코의 가슴으로 손을 뻗었다. 멍청이. 그건 먼저 키스를 잠깐 하고 난 다음에 하는 거야. 어휴. 미츠코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 하는 신음 소리만 냈을 뿐이다. 다다카츠의 뻣뻣한 손이 속옷을 밀어올리고, 드러난 미츠코의 도톰한 가슴을 움켜쥐었다. 다다카츠의 얼굴이 그리로 내려갔다. 

 

　「아─ 아아─」 

　여전히 흥분하는 시늉을 했다(그것도 성인 비디오에서처럼 약간 허풍스럽게 말이다). 그러나 미츠코의 오른손은 자기 속옷─아래 쪽의─허리 옆, 약간 뒤쪽으로 뻗고 있었다. 손가락 끝에 단단한, 그러나 얇은 것이 닿았다. 

　아마 요즘 불량소녀들은 이렇게 세련되지 않고, 값싼 것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츠코는 꽤 오래 전부터 그것을 애용하고 있었다. 이걸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역시 팬티 안에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면 곤란하다.

 

　다다카츠는 정신없이 미츠코의 가슴을 애무하고 있었다. 다다카츠의 정수리가 미츠코의 눈에 보였다. 다다카츠의 왼손이 미츠코의 다리 사이로 움직였다. 미츠코는 신음소리를 약간 냈다. 그러나 다다카츠의 시선은 미츠코의 가슴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미츠코는 천천히 오른손을 다다카츠의 목 옆으로 가져갔다. 미안해.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짜릿한 경험하니까 좋지? 뭐 전부 해 줄 수 없어서 미안하지만. 미츠코의 오른손 약지가 살짝 다다카츠의 목덜미를 건드렸다. 그것. 그것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어 있었다. 

 

　째재재잭, 하고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미츠코의 오른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러자 다다카츠가 문득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보았다. 그것은 물론 새 소리에 불과했지만, 다다카츠가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은 바로 얼굴 앞에, 미츠코의 손에 들려있는 면도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ㅡ쳇! 

　하필이면 이런 때 새가 울게 뭐람. 그렇지만 미츠코는 머뭇거리지 않고 면도날을 그었다. 

　그러나 다다카츠는 앗, 하는 짧은 비명을 지르더니, 미츠코의 몸 위에서 휙 피했다. 면도날은 그 목덜미를 스쳤지만, 도저히 치명상이 될 수 없는 상처였다. 어머머, 대단한 반사 신경이네. 역시 야구부야. 다다카츠는 일어서서 눈을 크게 뜨고, 상반신을 일으킨 미츠코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고 있는 다다카츠는 상관하지 않고, 미츠코는 벌떡 일어나, 약간 오른쪽에 있던 리볼버 쪽으로 눈길을 보냈다. 

 

　눈 앞을 다다카츠의 몸이 가로질렀다. 마치 헤드 슬라이딩을 하는 듯했다. 땅바닥에서 총을 집어 들더니, 한 바퀴 돌아, 무릎을 세우며 일어섰다. 나나하라 슈야가 초등학교 때 맡고 있던(리틀 리그에서 천재라고 불리던 슈야에 대한 소문은 초등학교가 달랐던미츠코조차 자주 들어 알고 있을 정도로 너무 유명했다) 유격수를 지금은 다다카츠가 맡고 있지만, 이 정도면 시로이와 중학교도 걱정할 게 없잖아? 그래도 바지를 벗기 전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체면이 말이 아니군, 벌거숭이라니. 

　그거야 어찌 되었든, 다다카츠 쪽이 먼저 총을 잡았다는 것을 안 바로 그 다음, 미츠코는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등 뒤에서 총소리가 났지만, 미츠코는 맞지 않았다. 미츠코는 수풀 속으로 뛰어들었다. 다다카츠가 쫓아오는 소리가 났다. 금방 잡힐 것이다. 그건 당연하다. 수풀을 빠져나왔다. 다키구치 유이치로의 모습이 보였다. 총소리를 듣고 일어났는데, 미츠코와 다다카츠가 없어진 것을 알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츠코의 모습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그거야 당연하지. 거의 벌거숭이 상태니까, 나는. 이거 완전히 대대적인 서비스 아니야? 소마 미츠코의 원 나이트 쇼. 아, 아침인가?) 

 

　「유이치로!」 

　미츠코는 소리를 지르며 유이치로에게 달려갔다. 우는 표정을 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하타가미 다다카츠가 수풀을 헤치고 나타났을 때, 미츠코는 유이치로의 등 뒤로 가 있었다. 그렇지만 유이치로의 키가 미츠코보다 겨우 4,5센티 미터 정도밖에 크지 않았기 때문에 완전히 몸을 숨길 수는 없었다. 

　「유이치로!」 

　다다카츠가 멈추어 서서 총을 겨누어 외쳤다. 

　「어서 비켜!」 

　「자, 잠깐!」 

　유이치로가 금방 잠에서 깨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당황한 듯이 말했다. 미츠코는 그런 유이치로의 어깨를 잢고, 반 벌거숭이가 된 몸을 그 등 뒤에 찰싹 붙이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미츠코가 나를 죽이려고 했단 말이야! 내가 그럴 거라고 했잖아!」 

　미츠코는 유이치로의 뒤로 숨은 채로, 「아, 아니야!」 라고 갸날픈 목소리로 말했다. 

　「다다카츠가 나를 억지로─저 총으로 위협했어. 유이치로, 살려 줘!」 

　다다카츠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일그러졌다. 

　「아니─ 저게─ 아니야, 아니야. 유이치로, 그, 그래, 이걸 봐!」 

　다다카츠가 총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의 손가락으로 자기 목덜미를 가리켰다. 가느다란 상처에 피가 살짝 배어 있었다. 

　「면도날에 벤 거야!」 

　유이치로가 고개를 돌려 곁눈질로 미츠코를 쳐다보았다. 미츠코는 고개를 저었다(한없이 귀엽게, 겁먹은 듯이, 이번엔 청순파). 

　「나는 놀라서 손톱으로 할퀸 거야. 그랬더니 다다카츠가 화를 내며 쏘려고 했어, 나를─」 

 

　면도날은 이미 수풀 속에 버렸다. 발가벗기고 신체검사를 한다고 해도(이미 거의 발가벗은 상태지만)증거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다다카츠가 이제 분노가 치솟아 얼굴이 시뻘개져 있었다. 

　「비켜, 유이치로!」 

　다다카츠가 소리쳤다. 

　「나는 그 계집애를 쏠 거야.」 

　「잠깐.」 

　애써 침착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듯이, 유이치로가 말했다. 

　「나는, 응, 그래,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뭐라고!」 

　다다카츠가 화를 냈지만, 유이치로는 꿈쩍도 하지 않고 다다카츠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 총을 내게 줘. 그리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구.」 

　다다카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의 울상을 지으며, 안타깝다는 표정이었다. 그런 얼굴을 하고 소리쳤다. 

　「그런 넋 나간 소리나 할 때야? 너도, 너도 죽이려 들 거야. 지금 그 계집애를 처치하지 않으면!」 

　미츠코는 「너무해.」 라고 하면서 울부짖었다. 

　「나는 그러지 않았어. 살려 줘, 살려 줘.」 

　그러면서 유이치로의 어깨를 꼭 잡았다. 유이치로가 단호하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리 줘.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다다카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어깨를 크게 위아래로 들썩이며 숨을 한 번 토해 내더니, 총을 내렸다.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걸고 빙글 돌리며, 손잡이를 앞으로 내밀어 포기한 듯이 유이치로 쪽으로 내밀었다. 물론 아직도 울상을 짓고 있었지만─ 미츠코의 눈에서 반짝 빛이 났다. 

　유이치로가 총을 잡으면 승부는 결정난 것이다. 유이치로에게서 총을 빼앗기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문제는 어떤 방법을 쓰느냐 하는 것. 유이치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스기무라 히로키가 콜드 가버먼트를 써서 미츠코의 눈 앞에서 보여 주었던 것과 거의 같은 묘기였다. 다다카츠가 손 안에서 마술처럼 총을 다시 회전시킨 것이었다. 다다카츠는 동시에 오른쪽 무릎을 꿇으며,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 총구는 유이치로의 왼쪽 겨드랑이를 지나, 미츠코를 겨누고 있었다. 유이치로의 등에서 떨어진 지금, 미츠코는 무방비 상태다. 

　유이치로가 그 총구의 방향을 따라 미츠코를 휙 돌아보았다. 미츠코의 눈이 커졌다. 이런─ 다다카츠가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 두 발. 미츠코의 눈 앞에서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유이치로의 몸이 무너지는 듯 했다. 그 너머로 다다카츠의 낭패한 표정이 보였다. 미츠코는 그 때 이미 유이치로가 잠잘 때 곁에 놓아 두었던 낫을 주워 들고 있었다. 던졌다. 회전하면서 허공을 날아간 그것은 다다카츠의 오른쪽 어깨에 멋지게 그 바나나 모양의 날을 꽂았다. 다다카츠가 윽, 하고 신음 소리를 내며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미츠코는 지체 없이 배트를 집어 들고 달려갔다. 엎어진 유이치로의 몸을 뛰어넘어, 다다카츠에게 달려가, 그 기세로 오른쪽 어깨를 잡고 비틀거리는 다다카츠의 머리를 향해 풀 스윙을 했다. 자, 네겐 아주 익숙한 배트야, 만족하니? 

　퍽, 하고 그 배트 끝이 다다카츠의 얼굴 한가운데 맞았다. 코의 연골이 부서지고, 이빨이 몇 개 부서지면서 턱뼈가 깨지는 느낌이 미츠코의 손에 전해졌다. 다다카츠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미츠코는 머뭇거리지 않고, 이번에는 그 이마 쪽을 향해 배트를 내리쳤다. 퍽, 하고 다다카츠의 이마가 깨졌다. 눈이 반쯤 튀어나오고, 다다카츠의 두 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또 한 방. 이번에는 다시 한 번 코 위쪽를 노렸다. 소마 미츠코의 특별 트레이닝, 천 번 노크. 자, 다음은 센터 쪽이야. 그 일격에 다다카츠의 코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미츠코는 배트를 내렸다. 다다카츠의 얼굴이 완전히 피로 물들어, 숨이 끊어졌다. 일그러진 코와 귓구멍에서도 굵은 핏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츠코는 배트를 내던지고, 왼쪽에 떨어져 있던 리볼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엎어져 있는 유이치로 쪽으로 걸어갔다. 유이치로의 몸 아래로, 수풀 사이를 흐르듯이, 피가 번져 나가고 있었다. 미츠코를 감싸 준 것이다. 그 순간에. 

 

　미츠코는 살며시 유이치로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유이치로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미츠코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다카츠의 시체가 유이치로에게 보이지 않도록, 자기 몸을 움직이면서, 그 어깨를 잡고 뒤집었다. 그러자 유이치로가 「으으─」 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약간 떴다. 교복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 하나씩 구멍이 뚫려 있어, 거기서 피가 퐁퐁 솟아 나와 검은 교복 천을 적시고 있었다. 미츠코는 유이치로의 상반신을 안아 일으켰다. 

　유이치로가 잠시 눈동자를 두리번거린 뒤, 미츠코의 얼굴을 보았다. 헉, 헉, 하고 마치 심장의 고동에 맞추는 듯한 간헐적인 짧은 호흡을 하고 있었다. 

　「미…미츠코!」 하고 미츠코를 불렀다. 

　「다다, 다다카츠 ㅡ」 

　미츠코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너를 쏘고 무서워졌나 봐. 도망쳤어.」 

　다다카츠가 미츠코를 죽이려고 했던 이상, 그것은 논리적이지 않은 설명이었고, 다다카츠와 미츠코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도 유야무야되었지만, 유이치로는 이미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유이치로가 고개를 약간 끄덕이는 듯했다. 

　「그, 그래 ㅡ 」 

　그의 두 눈은 초점이 맞지 않았다. 아마 미츠코의 모습도 흐릿하게 밖에 보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다, 다치진 않았어?」 

　「응─」 

　미츠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날 구해 주었어.」 

　유이치로가 살짝 웃는 것 같았다. 

　「미, 미안해. 난, 더 이상 너를 지, 지켜 줄 수가 없어, 난, 이제, 움직, 움직일 수가, 없─」 

　말을 하는 그의 입술 끄트머리로 피거품이 일고 있었다. 폐에 구멍이 난 것 같았다. 

　미츠코는 「알고 있어.」 라고 말하며, 살며시 유이치로의 몸을 껴안았다. 몸을 굽혔다. 유이치로의 가슴에 미츠코의 숱 많은 머리카락이 주르륵 흘러내려, 그 끝이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젖었다. 미츠코가 유이치로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개기 전에, 유이치로는 순간 약간 눈을 움직였지만, 이내 감았다. 

　이 키스는 조금 전에 다다카츠에게 한 창녀의 키스와는 달랐다. 부드럽고, 따스한, 마음이 담긴 키스였다. 피 냄새가 났다. 입술을 뗐다. 유이치로가 다시 눈을 흐릿하게 떴다. 

　「미, 미안─」 

　「나는, 이제─」 

　미츠코가 웃었다. 

　「알아.」 

 

　탕, 탕, 탕, 하고 둔탁한 총소리가 나는 바람에 유이치로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미츠코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마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 채로, 유이치로는 이미 죽어 있었다. 미츠코는 아직 총구로 연기를 토하고 있는 리볼버를 천천히 유이치로의 배에서 떼고, 다시 한 번 유이치로를 껴안았다. 이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할 유이치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너 꽤 멋졌어. 나 약간 기뻤어. 잊지 않을께, 너를.」 

　그렇게 혼잣말을 말하고는 눈을 다시 감고 다시 한 번 아쉬움이 남는 듯이, 지금은 숨이 끊어진 유이치로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살짝 포갰다. 물론 유이치로의 입술은 아직도 따스했다. 그 북쪽 산의 서쪽 사면에도 드디어 햇볕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빛을 막는 미츠코의 머리 아래서 유이치로의 동공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어 갔다. 

 

【남은 인원 14명】

 

 

　나나하라 슈야(남자 15번)는 문득 눈을 떴다. 

　그 눈에 선명한 녹색 풀에 둘러싸인 듯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슈야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보았다. 자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풀 너머로 따스한 햇살 속에 낯익은 시로이와 중학교의 건물이 서 있는 것을. 그라운드 쪽에 체육복을 입은 학생 몇몇이 있고, 체육 시간에 소프트 볼 같은 것을 하고 있는지,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슈야가 있는 곳은 학교 가운데 운동장 끄트머리의 나무들이 서 있는 곳이었다. 머리 위로 페닉스가 큰 잎을 펼치고 있었다. 슈야가 이따금 점심시간에, 또는 수업을 빼먹고 낮잠을 자던 장소였다. 슈야는 일어서서 자신을 살펴보았다. 상처 같은 건 아무데도 없었다. 교복에 가느다란 풀잎이 붙어 있어, 슈야는 그것을 털어냈다. 

 

　꿈─

 

　슈야는 아직 멍한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꿈이다. 모든 것은 꿈이었던 것이다. 그랬다. 

　악몽을 꾸고 난 뒤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목덜미를 손으로 훔치자, 축축한 땀이 묻어났다. 어째서 이렇게 지독한 꿈을 꾼 걸까? 서로 죽이다니! 그 "프로그램"에 자기 반이 걸리다니! 그러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라운드의 학생들─체육? 시계를 보았다. 오후 수업 시간이 벌써 시작됐다. 낮잠을 너무 오래 잔 것이다! 

　슈야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뛰듯이 교실 쪽으로 향했다. 오늘─오늘이─ 뛰면서 시계를 보니 목요일이었다. 목요일 오후 첫 수업은 국어 시간이었다. 슈야는 약간 안심했다. 국어는 좋아하는 과목이었고, 성적도 꽤 좋아, 슈야는 담당인 오카자키 가즈코 선생님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대충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국어. 좋아하는 과목. 성적. 오카자키 선생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런 단어들이 왠지 아주 포근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슈야는 국어가 좋았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소설이나 수필이 공화국 찬미 슬로건이나 형편없는 "주의"의 강령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하더라도 그 틈새에서 슈야는 자기가 좋아하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어는 슈야에겐 음악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었다. 록 음악에는 가사가 필요하니까. 

 

　가사라고 하면─ 그렇다. 국어를 반에서 제일 잘 하는 나카가와 노리코가 쓰는 시는 아름다웠다. 슈야가 자기가 만든 록 음악에 끙끙거리면서 붙이는 가사와 비교하면 훨씬 더 언어가 어울리고 신선하고, 편안하고 부드러웠다. 그런 한편 엄격하고, 힘이 있어, 슈야가 머릿속에 그리는 여자의 이미지가 그대로 언어의 세계의 드러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적어도 그것이 슈야의 마음을 시로잡고 있었음은 틀림없다. 쿠니노부 요시토키가 노리코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문제로 치고. 그러자 슈야는 새삼스럽게, 아아, 요시토키가 살아있구나,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어, 교실로 달려가면서도 순간 안도감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 어처구니없다. 요시토키가 죽다니, 어떻게 그런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었을까. 

　그러자 그 어처구니없는 꿈 속에서 왜 나카가와 노리코의 이름을 그렇게 허물없이 부를 수 있었을까? 어떻게 뻔뻔스럽게 노리코와 자기가 함께 있게 되었던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꿈 속에는 그 나름의 맥락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그래도 그것은 결국 자기가 그녀의 시를 좋아한다고 하는 것 이상으로, 어느 정도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이러면 요시토키와 크게 다투게 될 텐데. 큰일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 행복한 공상 때문에, 슈야는 자기 입가에 웃음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슈야는 수업 중이어서 조용한 교사로 들어가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3학년 B반 교실은 3층에 있다. 두 계단씩 뛰어 올라갔다. 3층에 이르자 복도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두 번째 교실이 B반이다. 슈야는 문 앞에서 일단 멈추어 서서, 오카자키 선생님에게 둘러댈 변명을 생각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아니, 현기증이 나서─로 하자. 그래서 잠깐 쉬었습니다. 믿어 주실까, 지독하게 건강 체질인 자기가 현기증 때문에 쉬고 있었다는 변명을? 요시토키가 허풍스럽게 어깨를 움츠려 보이고, 미무라 신지가 코끝을 문지르면서 슈야를 바라보고, 스기무라 히로키는 팔짱을 낀 채,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어보일 것이다. 그리고 노리코가 머리를 긁적이는 슈야를 보며 방긋 웃는다. 오케이, 그러면 됐어. 약간 쪽팔리겠지만 신경쓰지 말자. 

　슈야는 문에 손을 대고, 미안하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면서, 문을 살짝 열었다. 교단 쪽을 향해 얀전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때, 뭔가 지독한 비린내가 슈야의 코를 찔렀다. 슈야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교단 쪽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오카자키 선생님─

　그것은 오카자키 선생님이 아니었다. 담임인 하야시다 마사아키 선생님이었다. 

　몸통에는 머리가 없었다.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안경테가 옆에 떨어져 있었다. 슈야는 그 하야시다 선생님의 시체에서 눈을 돌려, 교실을 둘러보았다.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평소와 다른 것은 눈에 익은 클래스메이트들이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교실 바닥을 피가 뒤덮고 있었다. 지독한 피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슈야는 순간 멈칫 하다가, 서둘러 바로 앞자리에 앉은 텐도 마유미에게 손을 댔는데… 그녀의 등에 뭔가 안테나 같은 은빛 화살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마유미의 세일러복을 입은 배 쪽으로 화살촉이 뚫고 나와, 거기서 마유미의 스커트로, 그리고 스커트 자락에서 바닥으로 피가 떨어지고 있었다. 

　슈야는 앞으로 걸어갔다. 니이다 가즈시의 몸을 흔들었다. 가즈시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그 얼굴이 슈야 쪽을 향했다. 슈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즈시의 눈은 새빨간 구멍으로 변해, 거기서 피가 찐득한 달걀 흰자위 같은 액체가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ㅡ 입 안에 뭔가 자루가 달린 커다란 송곳 같은 것이 꽂혀 있었다. 슈야는 헉, 하는 소리를 지르면서 쿠니노부 요시토키의 자리로 달려갔다. 교복 등판에 커다란 구멍이 세 개 뚫려 있고, 그 안에는 각각 피꽃이 피어 있었다. 안아 일으키자, 요시토키의 머리가 털썩 어깨 쪽으로 떨어졌다. 그 동그란 눈은, 천장 쪽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요시토키! 

 

　슈야는 소리쳤다. 그리고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원이 의자에 늘어져 있거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에토 메구미의 목은 찢어져, 수박을 자른 것처럼 속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구라모토 요지의 머리에 낫이 꽂혀 있었다. 오가와 사쿠라의 머리가 농익은 과일처럼 벌려져 있었다. 야하기 요시미의 머리는 반쯤 없어진 상태였다. 오오키 다츠미치의 얼굴에는 손도끼가 꽂혀 있어, 그 얼굴이 좌우로 땅콩처럼 갈라져 있었다. 하타가미 다다카츠의 얼굴이 엉망으로 뭉개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시미즈 히로노의 얼굴은 검게 부풀어 올라, 쩍 벌린 입 끄트머리에서 해삼 정도 크기의 혀가 튀어 나와 있었다. "제３의 사나이" 미무라 신지의 몸은 벌집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다들─죽어 있었다. 

　슈야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가와다 쇼고─그 소문은 좋지 않은 무뚝뚝한 전학생─의 가슴에 나이프가 깊숙이 꽂혀 있었다. 그 눈은 반쯤 감겨져, 교실 바닥을 향하고 있어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다. 

 

　슈야는 침을 꿀꺽 삼키고, 나카가와 노리코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요시토키의 바로 뒷자리였기 때문에 이미 보였어야 했는데, 그러나 왠지 모든 클래스메이트들의 자리가 지금 시체와 함께 빙글빙글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슈야는 그제야 노리코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노리코는 아직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슈야는 노리코에게 달려가, 그녀의 몸을 안아 일으켰다. 그녀의 머리가 툭 떨어졌다. 그것은 세일러복을 입은 몸통만이 남기고 바닥에 떨어져, 피 웅덩이 위를 데굴데굴 굴러 슈야를 올려다보았다. 원망으로 가득 찬 얼굴로. 나를 구해 주겠다고 했잖아, 슈야! 나, 죽었어. 나, 널 좋아했는데. 정말 좋아했는데. 슈야는 그 노리코의 눈을 바라보면서, 두 손으로 그 머리를 안아들고, 입을 쩍 벌렸다. 미칠 것만 같았다. 뱃속 깊은 곳에서 절규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문득, 슈야의 시야에 하얀 것이 비쳤다. 

　자신의 신체 감각─몸이 땅바닥과 수평이 되어 있다고 하는 그 느낌과 함께 눈에 보이는 것이 천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야의 끄트머리, 오른쪽에 형광등이 있었다. 누군가가 살며시 슈야의 가슴께에 손을 갖다댔다. 슈야는 또 자신의 거친 숨소리를 느끼면서도 그 손에서 팔, 팔에서 어깨 쪽으로 시선을 더듬어 올라갔다. 세일러복 차림에 땋아 내린 두 갈래의 머리카락, 여자 반장인 우츠미 유키에(여자 2번)가 조용히 웃고 있었다. 

 

　「다행이네. 깨어났구나.」 

　유키에가 말했다. 

  

【남은 인원 14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