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２부 - 중반전 #.2

　사카키 유코(여자 9번)는 수풀 속을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달리는 것은 위험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도망쳐야만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유코의 머릿속은 금방 본 장면이 되살아났다. 수풀 속에 숨어서 지켜본 그 장면, 쩍 벌러진 오오키 다츠미치의 머리. 피에 젖은 손도끼를 그 머리에서 뽑아든 나나하라 슈야의 모습. 끔찍했다. 나나하라 슈야는 오오키 다츠미치를 죽였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슈야가 다츠미치의 머리에서 손도끼를 뽑을 때까지, 유코는 넋이 빠진 듯이 그 장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는데, 그 손도끼에 묻어 있던 붉은 피를 보고서야, 마침내 유코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데이 팩을 집어 들고, 그냥 있으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리를 지르고야 말 것 같은 입을 틀어막으며 도망쳤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뒤에서 총성이 들렸지만, 유코는 그 소리를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슈야와 노리코가 처음에 있던 수풀로 돌아와, 짐을 지어 들었다. 가와다가, 「여기는 전망이 좋지 않구나.」 라고 했다. 

　슈야는 그래도 애써 생각을 해서 장소를 고른 셈이었지만, 가와다가 기묘하게도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한 모습을 보고는, 그의 말을 따라 셋이서 약간 산 쪽으로 이동햇다. 그 지저분한 고양이는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잠깐 기다려. 교이치와 오오키 다츠미치의 짐을 찾아보고 올게.」 

　근처의 수풀 속으로 들어온 뒤, 가와다가 그런 말을 남기고 나가자, 슈야는 일단 노리코를 앉히고, 자기도 그 옆에 앉았다. 가와다가 교이치의 시체에서 집어와 슈야에게 건네준 리볼버(스미스 앤드 웨슨 칩 스페셜 38구경)를 들고 있었다. 슈야는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 그걸 지니고 있고 싶지는 않았지만-어쨌든, 세상에 그 끔찍한 "바통 터치"를 보고 말았던 것이다─참고 들고 있기로 했다. 

 

　「슈야, 이거.」 

　고개를 들자, 오오키 다츠미치의 손도끼에 찢어진 데이 팩에서 꺼낸 것인지, 노리코가 핑크빛 반창고를 슈야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슈야는 왼손으로 오른쪽 귀의 상처를 만졌다. 피가 거의 흐르지 않았지만, 뜨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가만히 있어.」

　노리코가 다가와, 반창고를 뜯었다. 슈야의 귓불에 조심스럽게 그걸 붙이면서, 노리코가 말했다. 

　「어째서 다들 이 근처에 몰려 있었던 걸까? 우리하고 가와다까지 포함하면 다섯 명이야.」 

　슈야는 노리코를 바라보았다. 힘든 액션 장면의 연속이어서 그런 건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그러고 보니 분명히 그랬다.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그렇지만 우리는 어쨌든 가능한 한 멀리 가고 싶어서 여기 왔잖아?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피하려 했고, 뻔히 드러나는 해안선을 이동하는 것도 피했어. 우리하고 같은 생각으로, 같은 장소를 찾아와, 여기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반장이나 오오키나.」 

　오오키 다츠미치의 이름이 나온 순간, 슈야는 다시 심한 구역질을 했다. 그 땅콩처럼 좌우로 반씩, 위아래로 갈라진 얼굴, 그 시체는, 지금 가까운 곳에 쓰러져 있다. 보세요,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땅콩 사내도 있습니다. 

 

　구역질과 함께 전투 때의 흥분으로 왠지 멍했던 슈야의 머릿속에이 빠른 속도로 식어, 반쯤 마비되어 있던 감각이 정상적인 감각으로 되돌아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슈야! 안색이 창백해. 괜찮아?」 

　노리코가 물었지만, 슈야는 들리지 않았다.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며, 바로 떨려 오기 시작했다. 아주 가늘게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가 부딪혀, 마치 어설픈 탭 댄스처럼 불규칙하게 덜덜 떨렸다. 

　「왜 그래?」 

　노리코가 슈야의 등에 손을 대고 물었다. 슈야는 이를 떨면서 대답했다. 

 

　「무서워.」 

 

　슈야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노리코를 보았다. 노리코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슈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서워. 너무 무서워. 나, 사람을 죽이고 말았어.」 

　노리코는 잠시 슈야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다친 오른발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슈야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살며시 팔을 펴서 슈야의 어깨를 껴안았다. 위아래로 가늘게 떨리는 슈야의 뺨에 노리코의 뺨이 닿았다. 노리코의 체온이 느껴졌고, 피비린내가 들러붙어 있던 슈야의 코에 향수인지 샴푸 냄새 같은 것이 맡아졌다. 

　슈야는 약간 놀랐지만, 그냥 그 편안한 체온과 냄새가 좋아, 무릎을 꿇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것은 어렸을 때, 사고로 죽기 전에 엄마에게 안겨 있을 떄의 느낌을 떠오르게 했다. 노리코의 세일러복 칼라 라인을 보면서, 멍하니 엄마 생각을 했다. 이야기도 확실하게 하고, 시원스럽게 행동해, 어린 마음에도 왠지 멋있다는 생각이 들던 엄마였다. 얼굴은 아아, 그런 그렇다, 니타니 가즈미와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코 아래에 수염을 기른, 결코 평범하나 샐러리 맨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아버지와(「아빠는 말이야. 법률관계 일을 하셔. 곤경에 처한 사람들 도와주는 게 일이지. 이 나라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란다.」품안의 슈야에게 엄마가 말해 주었다.)항상 웃는 표정을 나누고 있었다. 언젠가는 엄마 같은 사람과 결혼할 거다, 그래서 언젠가는 아버지와 엄마 같이 싱글벙글 웃으며 살겠다. 엄마의 웃는 얼굴은 늘 슈야에게 그런 생각을 갖게 했다. 

　이윽고 떨림이 잦아들다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이제 괜찮아?」 

　노리코가 물었다. 

　「응, 고마워.」 

　노리코가 천천히 몸을 뗐다. 조금 있다가 슈야가 입을 열었다. 

 

　「좋은 냄새가 났어.」 

　노리코가 부끄러운 듯이 웃었다. 

　「몰라. 어제 목욕도 하지 않았는걸.」 

　「아냐. 좋은 냄새가 났어.」 

 

　노리코가 다시 살짝 웃었을때, 부스럭 하고 수풀이 흔들렸다. 슈야는 노리코를 왼팔로 보호하면서, 스미스 앤드 웨슨을 잡았다. 

　「나야. 쏘지마.」 

　무성한 수풀을 가르며, 가와다가 들어왔다. 슈야는 스미스 앤드 웨슨을 내렸다. 가와다는 쇼트 건을 끈으로 어깨에 매달고, 두 개의 데이 팩을 안고 있었다. 데이 팩 하나에서 종이 상자를 하나 꺼내더니, 슈야에게 던져 주었다. 슈야가 그걸 받아 열자, 총탄이 금빛 뒷부분을 보이며 질서 있게 들어 있었다. 다섯 발 분만 이가 빠져 있었다. 

 

　「그 총의 탄환이야. 장전해 둬.」 

　가와다는 그렇게 말하더니, 쇼트 건을 옆에 놓고, 낡은 연실 같은 것을 손에 들었다. 한 가닥을 꺼내서 팽팽하게 잡아당기니, 그것이 수풀 안으로 똑바로 뻗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내 자루 안에 접혀 있던 칼날을 뽑았다. 가와다에게 지급된 무기는 쇼트 건인 것 같은데, 그럼 저 나이프는 원래 갖고 있던 것이다. 

　가와다는 옆에 있던 콜라 깡통 정도 굵기의 나뭇가지에 그 나이프로 틈새를 만들더니, 거기에 그 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끼우고, 나머지 부분을 나이프로 잘랐다 .남은 실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나뭇가지에 고정시켰다. 

 

　「뭐지, 그건?」 

　슈야가 가와다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거 말이야?」 

　가와다는 나이프를 주머니에 넣으면서 대답했다. 

 

　「뭐, 원시적인 방범장치야. 여기를 중심으로 반경 20미터의 원을 그리듯이 실을 펄쳐 놓았아. 2중으로 되어 있어 이게 거기 연결되는 거야. 누가 실을 건드리며 이 실이 끌어당겨져서, 이 나무에서 빠져. 실에 걸린 녀석은 눈치 채지 못할 거야. 어쨌든 그럴 때는 조심해야 하는 거지.」 

　「그 실은, 어디서 찾아낸 거야?」 

　가와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부두 근처에 잡화점이 있었어. 이것저것 필요한 것이 있어서, 처음에 들렀을 때 거기서 찾아낸 거야.」

 

　슈야는 어이가 없었다. 당연히 아무리 작은 섬이라고 해도 상점 하나 정도는 있을 것이다. 거기라면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여러 가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는 그런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못했다. 물론 노리코를 데리고 우물거릴 수는 없었을 테지만. 가와다는 슈야와 노리코를 마주 보는 위치에 앉더니, 오오키 다츠미치의 것인지 교이치의 것인지, 어쨌든 둘 중 한 사람의 것일 데이 팩을 뒤지기 시작했다. 가와다는 물병과 빵을 꺼내,「뭘 좀 먹지? 아침 식사 시간이야.」라며 두 사람에게 물었다. 슈야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식욕이 전혀 없었다. 

 

　「왜 그래? 오오키를 죽여서 기분이 좋지 않은 거니?」 

　가와다는 슈야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예를 들어 순서대로 한 사람이 한 사람씩 죽여 나간다면, 토너먼트 같은 거지. 42명, 아니 40명이겠다, 대여섯 명을 죽이고도 살아 있다면 너는 우승이야. 이제 너댓 명이면 돼.」 

　슈야는, 물론 가와다가 그걸 농담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아니 농담이었기 때문에 가와다를 노려보았다. 가와다는 슈야의 험악한 눈빛에 겁을 먹은 듯이 몸을 뒤로 뺐다. 

　「미안해. 농담이야.」 

 

　슈야가 물었다. 말투에 가시가 돋친 느낌이 들었다. 

　「너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반장 이전에 벌써 누군가를 죽인 적이 있다는 거야?」 

　가와다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어쨌든, 이번엔, 처음이야.」 

　슈야는 그 표현이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디가 이상한지, 그때는 몰랐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가와다가 소문대로 불량소년이라면 배짱은 슈야 같은 애들과는 상당히 다를지도 모른다. 

 

　머리를 저으며, 대신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저어, 나 이해 안 가는 게 있는데.」 

　가와다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왼쪽 눈썹 옆의, 흉한 칼자국이 함께 움직였다. 

　「뭔데?」 

　「반장은, 교이치는….」 

　「이봐!」 

　가와다가 턱을 저으며 말을 막았다. 

　「아까 확인했잖아.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가만히 있다가 내가 죽었으면 좋았겠어? 나는 그리스도에겐 흥미 없어. 부활하는 능력도 없고 말이야. 시험에 들어 본 적도 없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을 계속하면서. 슈야는 지금 이야기가 농담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가와다 쇼고라고 하는 녀석이 농담을 즐기는 타입인가? 

 

　「교이치가 나를 쏜 건 아마 내가 오오키 다츠미치를…. 어쨌든 눈 앞에서 쓰러진 것을 보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아니, 내가 오오키를 죽인 거지. 오오키가 공격해 왔기 때문에….」 

　가와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서 교이치가 나를 죽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어도 그건 이상할 게 없는거지.」 

　「그래. 그랬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아냐!」 

　이번엔 슈야가 말을 막았다. 

　「그건 이제 됐어. 그게 아니라, 오오키는-오오키는, 내가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공격해 왔어. 그리고 나는 노리코와 함께 있었고. 그러면 갑자기 공격해 올 일은 없는 거 아니야?」 

　가와다는 어깨를 움츠리더니, 물병과 빵을 자기 발 옆에 내려놓았다. 

 

　「오오키는 싸울 생각이었어. 그런 거 아니야?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아니야. 그러니까 논리적으로는 그렇지. 그렇지만 나는 아무래도 납득할 수가 없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 오오키가..」 

　말을 더듬는 슈야를 가로막듯이, 가와다가,「이해할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 

　「뭐?」 

　가와다는 약간 쓴웃음에 가까운 느낌이 들게 입가를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아직 이 반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너희 두 사람까지 포함해서 누가 어떤 녀석인지 잘 몰라. 그렇지만 너도 오오키에 대해 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어? 그렇지, 어쩌면 녀석에게 난치병을 앓는 가족이라도 있어서, 도저히 자기가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혹은 단순히 그 녀석이 에고이스트였던 걸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으면 공포감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져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이럴 가능성도 있겠지. 너는 저 누님과 함께 있었어. 어쩌면 패거리를 짜고 있는 셈이지. 그렇지만 자기를 그 한 패로 받아들여 줄 거라고는 자신할 수 없잖아? 두 사람이, 저 녀석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당장이라도 죽이려고 할지도 모른다, 자기를. 어쩌면, 네가 싸울 마음을 먹었다면, 자기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너, 혹시 오오키를 도발할 만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어?」 

 

　「그런 일은….」 

　슈야는 말을 하다가 생각이 났다, 오오키와 서로 마주보고 있을 때, 자신은 무의식적으로 나이프에 손을 댔다, 분명히. 슈야 자신도 무서웠던 것이다. 오오키 다츠미치가. 

 

　「뭐 마음에 짚이는 거라도 있니?」 

　「나이프에 손을 댔어.」하며 가와다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지만 그런 정도로….」 

　가와다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유는 그걸로 충분해, 나나하라 슈야! 오오키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몰라. 바로 앞에서 무기에 손을 대는 너를 먼저 쓰러뜨려야만 한다고. 이 게임은 도화선이 아주 짧아.」 

 

　그리고 나서 확인시키듯 덧붙였다. 

　「그렇지만 역시 오오키는 싸울 의사가 있었다고 하는 게 가장 알기 쉬운 설명이야. 잘 들어, 이해할 필요 같은 건 없어. 어쨌든 상대가 자기에게 무기를 겨누면 용서하지마. 그러지 않으면 네가 죽어. 상대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의심해야 해. 가능하면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 게 좋아, 이 게임에서는.」 

 

　슈야는 한숨을 쉬었다. 오오키 다츠미치는 진짜로 "싸울 의사" 였던 것일까? 하기야 가와다가 지금 이야기한 대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슈야는 다시 한 번 가와다 쪽을 올려다 보았다. 

 

　「아. 참!」 

　「왜?」 

　「그걸 물어보는 걸 까먹고 있었어.」 

　「도대체 뭘? 어서 말해.」 

　슈야가 말을 이었다. 

　「어째서 너하고 우리가 함께 있는 거지?」 

　가와다가 눈썹을 치켜올리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렇군. 나도 너희들의 적일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아.」 

　슈야는 고개를 저었다. 

 

　「넌 나를 구해 주었잖아. 아니, 어쨌든 교이치를 말리려고 했잖아.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널 의심하지는 않아.」 

　「그건 틀렸어, 슈야! 너는 아직 이 게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무슨 뜻이지?」 

　가와다가 말을 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료가 있는 게 유리해, 이 게임은.」 

 

　슈야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이다. 교대로 보초를 서면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고, 누구에게 습격당해도 여러 명이 있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생각해 봐.」 

　가와다는 무릎 위에 눕혀 놓은 쇼트 건을 손으로 약간 움직였다. 

 

　「과연 내가 모토부치 교이치를 막은 게 그렇게 위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교이치에게 그만두라고 명령했다고 해서 녀석이 그만두었을 걸로 생각해? 내가 정신이 이상해진 그 녀석을 쏴 죽일 작정이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까? 나는 진짜로 그 녀석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던 걸까? 교이치는 아무래도 동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에게 멈추라고 한 것은 너를 동료로 삼을 수 있겠는가 어떤가를 확인하기 위한 연기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나는 단순히 한 패가 필요했을 뿐이고, 결국 언젠가는 너희들을 죽일 거라고는?」 

 

　슈야는 잠시 가와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조금 전부터 계속되는 그 명쾌한 논리에, 거의 놀라움에 가까운 느낌을 받으면서. 분명히 가와다는 나이가 슈야 또래보다 한 살 많다. 그렇지만, 그건 완전히 어른의, 그것도 아주 괜찮은 어른의 말투였다. 그런 인상을 주는 점에서는 미무라 신지와 약간 닮았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슈야는 고개를 저었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지. 나는 네가 적이 아니라고 생각해.」 

　노리코 쪽을 보았다. 

　「난 그렇게 생각해.」 

　「나도!」 라며 노리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우리는 지게 될거야. 난 그렇게 생각해.」 

　「그 생각은 훌륭하군, 누님.」 

　가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걸로 됐어. 그렇지만 이 게임에서는 항상 조심하는 게 좋다는 것을 명심해야 해.」 

 

　그리고 나서 가와다는, 「그런데?」 라고 물었다. 슈야는 그제야 자기가 질문을 시작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 문제는 네 쪽이야. 어째서 너는 우리를 믿는 거지? 우리 둘이 함께 있다고 해서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또는 두 사람 모두가, 적의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네가 이야기한 대로 아니야? 네겐 우리를 믿을 이유가 없어.」 

　「하하!」 

　가와다는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응용문제로군. 슈야! 꽤 이해가 됐나봐?」 

　「얼버무리지 말고 대답해 줘.」 

　슈야가 권총을 든 손을 움직이자, 가와다는 위험한 짓 하지 말라는 듯이 몸을 피했다. 

　「어서.」 

　슈야가 재촉하자, 가와다는 또 눈썹을 치켜뜨고, 다시 그 희미한 웃음 같은 것을 보였다. 잠시 머리 위의 나뭇가지를 올려다보더니, 얼굴을 슈야와 노리코 쪽으로 되돌렸다. 진지한 표정이었다. 

 

　「잘 들어, 우선….」 

　슈야는 가와다의 조용한 눈에 얼핏 격력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격력한 눈빛이었다. 

　「나에겐 이유가 좀 있어. 이 게임의 룰에, 아니 이 게임에 이의가 있거든.」 

　가와다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계속했다. 

　「그래서, 분명히 네가 한 말이 맞아. 이런 이야기하기는 부끄럽지만, 나는 언제나 내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 즉….」 

　가와다는 무릎 사이에 세워둔 쇼트 건의 총신을 두 손으로 지팡이처럼 짚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숲 속에서 짹짹짹, 하고 작은 새가 울고 있었다. 가와다의 엄숙한 표정 때문에, 슈야는 긴장하고 귀를 기울였다. 

 

　「너희들, 좋은 커플로 보였던 거야. 아까. 그리고 지금도,」 

 

　슈야는 순간 멍해졌다. 커플? 노리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아니야! 우리는 그런 게 아니라고! 나 같은 애가 슈야하고….」 

　가와다는 그런 슈야와 노리코를 보며, 히죽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크게 웃었다. 뜻밖에 보기 좋은 웃음을 지으며, 크크크하고 소리를 냈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믿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 금방 이야기했지만, 의심하자면 끝이 없어. 이제 됐니?」 

 

　슈야는 그제야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했다. 

　「고맙다. 기쁘구나. 믿어줘서.」 

 

　가와다는 웃음을 지우면서, 「천만에, 형씨.」 라고 말했다. 

　「너는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했어, 전학 온 이래.」 

　「어려운 말 쓰지마. 내가 붙임성이 없는 건 타고 난 성품이야, 형씨.」 

　노리코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야. 함께 있을 사람이 늘어서… 마음이 든든해.」 

　가와다는 그런 노리코의 말에 손가락 끝으로 수염이 돋아난 코 밑을 문지르면서 의외의 행동을 했다. 슈야를 향해 오른손을 내민 것이다. 

　「나도 다행이야. 혼자 있으면 외로운데.」 

　슈야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가와다의 손바닥은 두틈하고, 그 생김새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어른의 손처럼 느껴졌다. 

　가와다는 상반신을 일으키며, 슈야 뒤에 있던 노리코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누님도.」 

　노리코가 손을 잡았다. 그리고 가와다는 붕대가 묶여 있는 노리코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 

 

　「깜박했군, 일단 다리 상처 좀 보여줘. 그러고 나서 앞으로 어떡할지 의논하자.」

 

【남은 인원 29명】

 

 

　표면에 작은 무늬를 넣은 불투명한 유리창에 비치는 햇빛이 점점 강해지며, 밝아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유리 윗부분으로 직사광선이 쏟아져 들어오자 구사카 유미코(여자 7번)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부모가-그리고 당연히 그녀가 호적에 이름도 올리기 전에 입교한 "광륜교(光輪敎)}의 지역 주교가 설교할 때 반복하던 진부한 문구가 떠올랐다. "어느 날이나 빛은 다시 찾아오고, 만물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래, 난 은혜를 받았어. 이렇게 즐거운 게임에 참가할 수 있게 되다니, 하하하. 

 

　유미코는 사내아이처럼 짧게 깎은 머리를 살짝 저으면서, 빈정거리는 웃음을 짓더니, 옆에서 모포를 두른 채 자기와 마찬가지로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기타노 유키코(여자 6번)를 바라보았다. 유키코 역시 초첨 없는 눈으로, 빛으로 뒤덮이기 시작한 판자가 깔린 바닥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입구에 쓰여 있었던 "오키 섬 관광협회" 라고 하는 거창한 이름치고는 보잘것 없는, 마을 자치회 집회장 같은 건물이다. 약간 낮은 입구 쪽에는 사무용 책상과 의자, 그리고 여기저기 녹이 슨 서류 케이스가 하나씩만 있고, 책상 위에는 전화가 놓여 있다. 물론 걸어 보았지만, 사카모치가 이야기한 대로 수화기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서류 케이스에서는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할 관광 전단이 두 세장 끄트머리만 비죽 나와 있었다. 

 

　유미코와 유키코는 유치원 시절부터 친구였다. 유치원 때는 반이 달랐고 집이 그다지 가깝지 않아서 별로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친해진 것은 광륜교 때문이다. 처음 만난 것은 부모를 따라 간 교회에서였다. 유미코는 세 번째로 간 교회였는데 유키코는 처음 왔는지, 기도에 맞추어 두드리는 종소리라거나 어수선하게 장식된 교회의 분위기 같은 것 때문에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유미코는 거기서 기도가 끝난 뒤, 혼자 있던 얌전한 여자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여기, 바보같다고 생각하지 않니?」 

　여자애는 약간 놀라는 것 같았지만, 방긋 웃었다. 두 사람은 그 때부터 친해졌다. 

 

　두 사람은 이름이 비슷하긴 했지만, 공통점은 거의 없었다. 유미코는 어렸을 때부터 「사내아이 같네-」하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활달했고, 지금도(그렇지만 그 "지금"을 무사히 되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적다. 아주 적다.) 소포트볼부에서 4번 타자를 맡고 있다. 유키코는 가정적인 것을 무척 좋아하는 여자 애로, 자주 유미코에게 직접 만든 쿠키 같은 것을 갖다 주었다. 키는, 지금은 유미코가 15센티미터 정도 더 크다. 유키코는 유미코에게,「키가 커서 좋겠네. 얼굴도 윤곽이 뚜렷하고.」하는 소리를 자주 하지만 유미코는 유키코의 작은 키와 통통한 뺨이 훨씬 더 부러웠다. 

　그렇다, 둘은 전혀 다른 타입이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임엔 변함이 없다. 

 

　행운이었던 것은(이렇게 이야기하면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구니노부 요시토키(남자 7번)가 출발하기 전에 죽어서, 두 사람은 겨우 2분 간격으로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미코는 교실에 나와, 분교의 출구 기둥 뒤에서 창백한 얼굴로 나오는 유키코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함께 도망쳐(겨우 2분 뒤에 아카마츠 요시오가 돌아와 살육을 시작했지만, 두 사람은 몰랐다), 마을의 훨씬 북쪽, 섬의 동쪽 해안 도로에서 북쪽 산을 향해 약간 올라간 고지대에 달랑 한 채만 있는 이 집을 발견하고는,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틀어박혔다. 

 

　이제 네 시간 정도가 지났다. 극도로 긴장했기 때문에 둘 다 모두 지쳐서, 그냥 나란히 바닥에 앉은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미코는 다시 유키코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자기도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멍하니 있으면서도,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지금 무얼 해야 하는 걸까? 오전 6시에 흘러나온 사카모치의 방송은 건물 안에서도 들렸다. 구니노부 요시토키와 후지요시 후미요는 그렇다 쳐도, 이미 아홉 명이나 죽었다. 오가와 사쿠라와 야마토모 가즈히코는 몰라도 다른 애들이 모두 자살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죽이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6시의 방송 바로 다음에 멀리서 총소리 같은 것이 들려 온 것도 같다. 

 

　도대체 클래스메이트를 죽인다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아니, 물론 그건 룰이지만, 유미코에게는 그런 룰을 따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방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면, 적어도 그럴 마음이 있다면 나도 싸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유미코는 방 한쪽 구석에 뒹굴고 있는 메가폰 모양의 핸드 마이크를 바라보았다. 저것은 쓸 수 있는 것일까? 만약에 쓸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단지 나는 그게 두려울 뿐이다. 그 일을 하는 것이. 이 게임을 하려는 인간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일말의 공포는 남아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유키코와 단 둘이, 여기까지 도망쳐 온 것이다. 만약에-만약에 그런 애가 있다면? 그래도…. 

 

　유미코의 머릿속에서 그 모습이 되살아났다. 유키코를 제외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가장 사이가 좋았던 친구의 얼굴이다. 친구는 울상을 하고 있었다. 묘하게도 유미코는 그 친구의 그 때 모습 가운데 핑크색 스니커만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유미코!」

　유키코가 불렀다. 유미코는 생각을 멈추고 유키코를 다시 바라보았다. 

　「빵, 먹자. 뭘 좀 먹어야지 좋은 생각도 떠오를 거야.」 

　유키코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억지로 웃고 있다는 느낌도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늘 보던, 부드러운 유키코의 웃는 얼굴이었다. 

　「어서.」 유키코가 재촉하자, 유미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럴까?」 

 

　두 사람은 각자 자기 데이 팩에서 빵과 물을 꺼냈다. 유미코의 데이팩 안에 있는 두 개의 통조림 같은 것이, 순간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초록빛이 도는 은색인데, 제일 뒤에 담배 굵기 정도의 막대가 튀어나와, 거기에 레버 같은 것과 직경 3센티미터 정도의 금속제 고리가 붙어 있었다. 수류탄이라고 생각했다. 유키코의 "무기"는 어이없게도 다트세트였는데 고맙게도 둥근 나무 표적까지 딸려 있었다. 잠시 후, 빵 한개를 반정도 베어 먹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유미코가 말했다. 

 

　「좀 진정됐니, 유키코?」 

　유키코는 빵을 씹으면서 둥근 눈을 약간 더 동그랗게 떴다. 

　「내내 떨고 있던데.」 

　「아아!」 

　유키코는 웃으며 말했다. 

　「응, 괜찮아. 유미코가 같이 있는걸.」 

 

　유미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도 "해야 할 일" 에 대해 유키코와 의논할까 망설였지만, 입을 다물었다. 아직 자기 생각에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아주 위험한 일이다. 그걸 하자고 하는 것은, 자기만이 아니라, 유키코까지도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자기들을 서서히 데드라인을 향해 몰고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 옳은지, 아직 유미코에게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잠시 두 사람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문득 유키코가 입을 열었다. 

 

　「저어, 유미코.」 

　「응? 뭐?」 

　「이런 때 바보 같은 소리 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유키코는 도톰한 작은 입술을 살짝 꺠물었다. 

　「뭔데?」 

　유키코는 다시 약간 망설이는 듯하다가, 결국 이야기를 꺼냈다. 

　「유미코는 우리 반에 좋아하는 애가 있어?」 

 

　유미코는 눈이 동그래졌다. 대단해. 이건 완전히 수학여행 가서 밤에 하는 이야기다. 트럼프나 배개 던지기, 여관 탐험도 일단 끝난 깊은 밤, 선생님 흉보기라거나, 장래 희망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들을 따돌리고 1순위로 등장하는 화제. 밤의 어둠 속, 그 안에 있는 자기들의 작은 축제를 위한 신성한 화제다. 물론 그 버스에서 잠이 들기 전까지는, 아마 이번 여행 중에도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거, 남자애 이야기?」 

　「그래.」 

　유키코는 부끄러운 듯이 눈을 내리깔며, 흘기는 듯한 느낌으로 유미코를 보았다. 

　「응.」 

　유미코는 약간 망설였지만, 정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있어.」 

　「그래?」 

 

　유키코는 시선을 자기 주름치마의 무릎 언저리로 떨어트리며 말을 이었다. 

　「저어, 미안해. 지금까지 내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나, …나나하라 슈야를 좋아해.」 

　유미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그건 알고 있었다. 

　유미코는 머릿속에서 나나하라 슈야에 관한 파일을 떠올렸다. 

 

　신장 170 센티미터, 몸무게 58킬로그램, 시력은 오른쪽 1.2, 왼쪽 1.5. 호리호리한 타입이지만 근육질. 초등학교 때는 리틀 리그에서 유격수. 1번 타자를 맡았었지만, 지금은 야구를 그만두고 음악을 좋아해, 기타와 노래를 아주 잘 한다. 별명은 없지만, 리틀 야구 시절에 팀의 와일드카드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과 이름의 "나나"(七)를 따서 "와일드 세븐"이라는, 담배 이름과 같은 별명이 있다. 혈액형은 B형이며, 10월 13일, 이름 그대로 가을에 태어남. 어렸을 때 사고로 부모를 잃고, 지금은 시로이와 읍의 변두리에 있는 "자혜관"이라는 가톨릭계 시설에 살고 있다. 함께 자혜관에 살고 있는 구니노부 요시토키와는 아주 친한 친구(아, 그렇지만 그는 죽었다.). 공부는 영어와 국어 등 문과 계통이 뛰어나고, 얼굴은, 입술을 약간 찡그리는 듯한 버릇이 있지만, 그래도 또렷하게 쌍커풀진 눈이 부드럽고, 꽤 잘 생겼다. 머리카락은 웨이브가 져 있으며, 목이 여자애처럼 길다. 그렇다, 유미코의 나나하라 슈야에 관한 파일 케이스는 아마 흘러넘칠 것이다. 이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마도 유키코의 파일 케이스보다 자료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파일 중에 특히 키 부분은 중요 사항이었다. 왜냐하면, 나나하라 슈야의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면, 나는 하이힐을 신을 수 없겠다, 함께 걸으면 내가 더 커 보일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쩌면 이런 사실을 유키코에겐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다. 

 

　「헤에!」 

　유키코는 가능한 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그래?」 

　「응.」 

　유키코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말했다. 어쩌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보고 싶어, 아주 많이. 슈야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스커트 양쪽 허벅지 아래로 손을 마주잡은 자세로, 그녀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유미코는 유키코의 어깨를 손으로 살짝 토닥였다. 

　「괜찮을 거야, 슈야라면. 어떤 상황이라도.」 

　그리고는 이야기하는 방식이 좀 서툴렀나, 하여 서둘러 덧붙였다. 

　「생각해 봐, 걔는 운동도 우리 반에서 제일 잘하고, 배짱도 있는 편이잖아? 난 잘 모르지만.」 

　유키코는 눈물을 닦으며,「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기운을 차린 듯이 물었다. 

　「유미코는? 누굴 좋아하는데?」 

 

　유미코는 일단 천장을 올려다보며, 「으음」하는 소리를 내며, 동시에 생각에 잠겼다. 이런. 누군가 적당한 이름을 대고 대충 넘어갈까? 오오키 다츠미치는 핸드볼부의 에이스로 얼굴은 좀 거칠어 보이지만, 마음씨는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미무라 신지는 농구부의 천재가드로 불리며, 뭐든 잘 알아, "오빠 부대" 가 있을 정도로 일부 여자 애들에겐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다만 B반에서는 그렇지도 않았지만. 플레이 보이라는 것이 B반 여자 애들의 거의 공통된 생각이었기 때문일까? 누마이 미츠루는 나쁜 짓을 하긴 하지만, 원래 나쁜 아이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 든다. 여자 애들에겐 친절하다(아아, 그렇지만 그도 죽었다, 이미). 스기무라 히로키는 좀 허무해 보이는 느낌이 좋았다. 왠지 무도 도장에 다닌다든가 해서, 무섭다고 하는 애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런게 더 멋지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만 그는 치구사 다카코와 사이가 좋잖아. 아마 잔소리 할 거야. 다카코는 깐깐하니까. 그렇지만 다카코도 좋은 애지. 그래. 다든 좋은 애들뿐이었어. 남자 애들이나, 여자 애들이나. 

 

　「응? 누구야?」 

　유키코가 또 물었다. 유미코는 다시 유키코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어쨌든 의논해 보자. 무슨 의논을 하기에는, 유키코가 자기에게 가장 편한 상대이니까. 

　「저어, 잠깐, 내 의견 좀 들어 볼래?」 

　유키코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 

　「저어, 정말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금, 우리 반에.」 

 

　유키코는 눈썹을 약간 찡그렸다. 

　「글쎄. 그래도 실제로 죽었잖아.」 

　"죽었잖아"라고 발음하는 유키코의 목소리는 떨렸다. 

 

　「아까 아침 방송에서 얘기했잖아. 출발한 뒤로 벌써 아홉 명이나...다들 자살한 거라고 생각할 수는 없고. 그리고, 아까도 총소리 같은 것이 들렸잖아.」 

　유미코는 유키코의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두 팔을 펼쳐 보였다. 그리고 세일러복의 왼쪽 소매가 약간 찢어졌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건 말이야, 생각해 봐. 우리들, 여기서 이렇게 무서워하고 있어. 둘 다. 그렇지?」 

　「응.」 

　「그러니 아마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분명히 다들 무서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유키코는 약간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무서워서 그런 거 잘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유키코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지만, 혼자 있었다면 분명히 훨씬 더 무서웠을 거라고 생각해.」 

　「응, 그래.」 

　「그래서, 그렇게 겁을 먹고 있는데 혹시 누구하고 마주치면 어떡할 것 같아, 유키코?」 

　「도망치지, 물론.」 

　「도망칠 여유가 없다면?」 

　유키코는 아마 고민하는 모양인지 천천히 말했다. 

 

　「음, 나는, 싸울지도 몰라. 뭔가 갖고 있다면 던지기도 할 테고─. 그래, 어쩌면 총 같은 걸 갖고 있다면, 어쩌면 쏠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이야기는 해 볼거야. 그렇지만, 만약의 경우에, 어쩔 수가 없다면.」 

 

　유미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말이야. 나는, 사실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거야. 무서워서. 상대가 나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싸우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상대가 공격해 오지 않아도, 자기가 먼저 싸우려고 드는 일이 또 생길지도 몰라.」 

 

　일단 말을 끊고,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풀어 두 손을 바닥에 대면서 말을 이었다. 

　「다들 두려워하고만 있는 건 아닐까?」 

　유키코는 또 약간 내밀었던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면서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더니, 더듬더듬 말했다. 

　「그럴까? 나는 믿을 수가 없어. 소마 그룹이라거나 기리야마 패거리라거나….」 

　유미코는 살짝 웃어 보이더니, 주름치마 아래로 다리를 움직여 고쳐 앉았다. 

 

　「내 생각을 이야기할께, 유키코.」 

　「응.」 

　「이대로 있다간 우리들, 죽어. 시간 제한, 24시간 동안 아무도 죽지 않으면, 그 때까지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죽을 테니까.」 

　유키코가 또 약간 겁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그래서, 우리들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모두가 협력해서 어떻게든 탈추랄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밖에 없어. 그렇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난 말이야.」 

　유미코는 유키코의 말을 막으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사람을 믿지 않아서 실수한 적이 있어. 초등학교 때.」 

　유키코가 유미코의 눈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유미코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울상을 짓고 있던 친구의 얼굴이 되살아 났다. 그리고 핑크색 스니커. 

　다시 유키코를 쳐다보았다. 

　「그 때 아주 소중하게 여기던─그래, "알 고양이" 라고 유행했던 거, 기억나지?」 

　「응, 캐릭터 상품이었지. 나도 깔개를 갖고 있었어.」 

　「그래, 나는 3색 볼펜을 갖고 있었어. 한정 판매한 거였지. 지금 생각하면 하찮은 거였지만, 그래도 아주 소중하게 여겼어.」 

　「응.」 

　「그런데 어느 날 그게 없어졌어.」 

　유미코는 시선을 떨구었다. 

 

　「나는, 친구가 그걸 훔쳐간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어. 그 애가 그걸 무척 갖고 싶어했거든. 그리고 그게 없어졌다는 걸 안 게 첫째 시간인 체육 시간 뒤였는데, 그 애는 몸이 안 좋다고 체육을 하지 않고, 제일 먼저 교실로 들어와 있었지. 그리고, 아,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지만, 어쨌든 그 애는 아버지가 없어서 엄마가 스낵바에 일을 나갔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 좋게 여기지 않고 있었지.」 

 

　유키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그 애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애는 모른다고 했어. 그런데 나는 선생님에게까지 이야기했어. 선생님도, 그래, 편견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 애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어. 그렇지만 그 애는 모른다고 하면서 울었어.」 

　유미코는 다시 유키코를 바라보았다. 

　「집에 돌아와서야, 책상 위에 깜빡 놔두고 간 걸 알게 된 거야, 그 3색 볼펜을.」 

　유키코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 애에게 사과했어. 그 애도 괜찮다고 했어. 그렇지만 왠지 어색했고, 그 애도 결국 엄마가 재혼하고 난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학을 갔어. 그 뒤로는 만나지 못했지. 나는 그 애하고 사이가 아주 좋았었는데, 유키코하고 비슷한 정도로. 그런데, 나는 그 애를 믿지 않았던 거야.」 

　유미코는 어깨를 움츠리며 말을 이었다. 

　「그 뒤로 나는 가능한 한 사람을 믿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는 사람을 믿고 싶어. 그러지 않으면 모든 일이 제대로 안 돼. 이건 별 볼일 없는 광륜고 아저씨나 아줌마들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거야. 내 신념이지. 알겠어?」 

　「응. 이해해」 

 

　「그래서, 지금 이야기를 해 보자고. 하긴 소마 같은 애들은 나쁘게 볼 수 있지. 그런 소문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자신이 살아 가기 위해 기꺼이 사람도 죽일, 그럴 정도로 나쁜 애는 아닐 거야. 그런 사람은 우리반에는 없을 거야. 그렇지?」 

　「…응.」 

　유키코는 잠시 공백을 두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유미코는 말을 이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다들 싸우는 걸 멈춰 줄 거야.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아니, 가령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모두가 서로를 죽이는 일은 피할 수 있어. 그렇지?」 

　「응….」 

　유키코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직 망설이는 것 같았다. 

　유미코는 말을 좀 많이 했다 싶어, 숨을 돌리며 다리를 고쳐 앉았다. 

　「그게 내 의견이야. 그럼 유키코 의견을 이야기해 줘. 유키코가 반대하면 나는 그러지 않을 테니....」 

 

　유키코는 잠시 눈길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넉넉잡아 2분 정도 지나서, 불쑥 입을 열었다. 

　「유미코, 내게 언젠가 이야기했었지? 내가 다른 사람 말을 너무 잘 듣는다고.」 

　「응? 그래, 그랬었지.」 

　유미코는 유키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유키코가 고개를 덜어,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유미코의 말이 정말 맞는다고 생각해. 이건 내 의견이야.」 

　유미코는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유키코가 스스로 생각해서 그렇게 이야기해 준 것이 기뻤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랬다. 역시 해야 한다. 아무런 노력도 안해보고 죽어가다니, 그런건, 난 싫다. 가능성이 있다면 시도해 보자. 그래, 유키코가 말한 대로다. 나는 사람을 믿고 싶다. 해 보자. 그리고, 유키코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할 거지?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거.」 

　유미코는 방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핸드 마이크를 가리켰다. 

　「저걸 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유키코는 몇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더니, 잠시 후 불쑥 말했다. 

　「잘 되면 슈야를 만날 수 있겠네.」 

　유미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서 우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거야.」 

 

【남은 인원 29명】

 

 

 

 

　「좋아, 됐어.」 

　가와다가 곁에 놓인 데이 팩 위에 시로가 바늘을 던지며, 슈야에게 말했다. 

　「네 위스키 좀 빌리자.」 

 

　노리코가 가와다 앞으로 구부린 오른쪽 다리를 옆으로 뻗고 있었다. 오른쪽 종아리의 상처는 지금, 엉성한 목면실로 꿰매어져 있었다. 가와다가 봉합 수술을 해 준 것이다. 물론 마취를 못했지만, 약 10분 동안 노리코는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슈야는 작은 술병을 가와다에게 내밀었다. 옆에 돌을 쌓아 만든 작은 아궁이가 있고, 탄 위에 놓아둔 빈 깡통 안에서는 물이 계속해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 탄은 실, 바늘과 마찬가지로 잡화점에서 구해 온 것이라고 가와다가 설명했다. 바늘과 실은 그 물로 소독했지만, 상처에 직접 끓는 물을 부을 수는 없었다. 가와다는 봉합 수술을 하기 전에도 상처를 슈야의 위스키로 씻어 냈었다. 다시 소독을 하고, 일단 한숨을 돌렸다. 노리코의 얼굴이 다시 한 번 일그러졌다. 슈야는 시계를 보았다. 물이 충분히 끓기까지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이미 8시를 넘어서고 있다. 

 

　「오케이!」 

　가와다는 끓는 물에 소독한 반다나를 가제 대신 눌러 붙이고, 재빨리 그 위에 또 한 장의 반다나를 노리코의 발에 대고 감아 묶으며 말했다. 

　「이제 다 끝났어, 누님.」 

　그리고 약간 걱정스럽다는 듯이 덧붙였다. 

　「지금 이상한 잡균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노리코가 다리를 접으며, 가와다에게 인사를 했다. 

　「고마워.」 

　「잘하네.」 

　「의사 놀이는 내 특기지.」 

　가와다는 말하며 주머니에서 "와일드 세븐"이란 이름의 담배를 꺼내 한 개비 물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이것도 잡화점에서 멋대로 가져온 것일까, 아니면 원래 자기가 가져온 것일까? "버스터"라거나 "하이나이트"와 함께 대중적인 담배 상표다. 

 

　슈야는 이유는 모르지만 바이크와 라이더의 실루엣이 찍혀 있는 패키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의 별명을 얻어 본 적 없는 슈야였지만, 그러나 그 담배 이름이 자기를 부르는 별명으로 사용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지극히 단순했다. 리틀 리그 시절, 슈야는 항상 팀의 와일드 카드였다. 찬스가 나면 반드시 쳐 내고, 치고 나가면 뒤를 받쳐 주지 않아도 도루로 찬스를 만들고(한 시즌에 홈 스틸 3회라고 하는 대단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만루의 핀치, 안타성 타구도 그의 묘기로 병살로 막았다. 피처가 지치면 유격수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일도 있었다. 와일드 카드 "나나"(七)하라. 와일드 세븐. 머 그런 식인가? 

 

　2학년이 되어 농구부의 천재 가드, 미무라 신지와 같은 반이 되었다. 신지에게도 "제３의 사나이" 라는 별명이 있다. 그것은 신지가 아직 1학년이었을 때, 농구부의 가드 포지션, 제２후보 선수였을 때에 붙여진 것 같다. 그가 5분을 남겨 놓고 코트에 들어가, 시로이와 중학교는 우승 후보였던 상대 팀과의 20점 차이를 뒤집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때의 충격과 "미무라"(三村)라는 성을 따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그랬다. 4월에 있었던 올해의 학급 대항 시합에서 여자 애들이 장난 삼아 7번과 3번의 백 넘버가 달린 유니폼을 준비해 아, 슈야와 신지는 그걸 입고 시합을 했다. 그 일들이 왠지 먼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슈야는 또 생각했다. 미무라 신지는 어디 있는 걸까? 그 녀석이라면 분명히 도움이 될 텐데….

 

　가와다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한 번 주머니를 뒤져, 가죽으로 만든 동전 지갑 같은 것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약을, 플라스틱과 은박지로 포장한 하얀 알약을 끄집어내더니 노리코에게 내밀었다. 

　「진통제야. 먹어 두는 게 좋아.」 

　노리코는 눈을 껌뻑였다. 그렇지만 받아 들였다. 

　「이봐!」 

　슈야는 가와다에게 말을 걸었다. 

　「왜?」 

　가와다는 담배를 맛있게 피우며, 슈야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아니꼽다는 눈으로 보지 마. 중학생도 담배 정도는 피워. 나는 사실 고등학생하고 같은 나이야. 게다가 너는 술을 갖고 왔잖아.」 

 

　고등학생이라면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투의 이야기였지만, 어쨌든 슈야는 「그게 아니라….」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약도 잡화점에 있었던 거니?」 

　가와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지, 뭐. 원래는 파는 게 아닐 거야. 카운터 뒤쪽에 있는 약 상자에서 슬쩍한 거지. 그냥 두통약이야. 약 이름은 고메스라고 하던데. 이름이야 상관없지만, 오히려 두통이 심해질 것 같은 이름이지. 그래도 좀 나아질 거야. 」 

　슈야는 입술을 오므렸다. 뭐, 그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준비가 너무 철저하잖아? 그리고 어떻게 상처를 꿰맬 줄도 알지?」 

　가와다는 입술의 양쪽 끝을 끌어 올리고 웃으며, 어꺠를 움츠렸다. 

　「난 의사 아들이야.」 

　「뭐라고?」 

　「고베에 있는 슬럼가의 작고 지저분한 보건소였어.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사람들을 꿰매는 걸 봐왔거든. 괜찮아. 나는 뛰어난 간호 조수였고, 아니, 이따금 비슷한 일을 하기도 했었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네. 아버지에겐 간호사를 쓸 돈이 없었으니까.」 

　슈야는 다음 할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인가? 가와다는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를 들어올리며, 슈야를 가로막는 듯 한 포즈를 취했다. 

　「거짓말이 아니야. 잠깐만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에서는 약이 필요해질 거라는 건 뻔하잖아?」 

　슈야는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또 하나 이상하게 생각되는 점이 떠올랐다. 

 

　「아, 참.」 

　「또 뭐?」 

　「 그때 너….」 

　「편하게 이야기해, 슈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슈야는 한쪽 어깨를 움츠려 보이고 나서 다시 말했다. 

　「너 버스 창문을 열려고 했었잖아. 눈치 챘던 거지, 최면 가스가 나오고 있다는 걸?」 

　그 말을 듣고, 노리코가 가와다를 의문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가와다가 어깨를 움츠렸다.

 

　「미안하지만 돕지 못했어.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냄새도 없었고….」 

　「냄새는 났어.」 

　가와다가 말하며 반 정도 태운 담배를 땅바닥에 눌러 껐다. 

　「약간이지만 말이야. 아는 사람은 알 수 있어.」 

　「어떻게 알았니?」 

　노리코가 물었다. 

　「우리 숙부가 실은 정부의 화학 연구소에 있어서....」 

　「이봐!」 

　슈야가 말을 막았다. 가와다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필요하다면 나중에 이야기할게. 하긴 내 입장에서 보면 그건 최대의 실수지, 너무 늦게 깨달았으니까.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 그보다 지금 현재가 더 중요해. 무슨 계획이 있어?」 

　필요하면 이야기해? 그 말투가 마음에 걸렸지만, 분명히 가와다의 말대로 도망가기 위한 의논이 가장 중요했다. 그래서 더 이상 캐묻는 걸 그만두었다. 

 

　「우린 도망갈 생각이야.」 

　가와다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막 생각났다는 듯이 돌을 쌓아 만든 아궁이 안의 탄에 흙을 끼얹었다. 노리코가 물과 함께 약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슈야는 말을 이었다. 

　「힘들 거라고 생각하니?」 

　가와다가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이 있느냐고 물어봐야지. 그러면 난 이렇게 대답할 거야. 가능성은 아주 적다. 그런데, 그래서?」 

　「우리 이거….」 

　슈야는 자기 목덜미에 손을 댔다. 가와다의 목에도, 노리코의 목에도 감겨 있는 그 것. 

　「목걸이 때문에 도망쳐도 곧 발각될 거야.」 

　「그렇겠지」 

　「그리고 그 분교에도 접근할 수 없고.」 

 

　사카모치가 이야기했었다. 

　"이 분교가 있는 지역은 바로 금지 구역에 들어갑니다" 아니 "들어갑니다─" 라고 말끝을 길게 끌었던가, 제길. 

 

　「그렇지.」 

　「그렇지만 어떻게든 거기서 사카모치를 끌어낼 수는 없을까? 그래서 사카모치를 인질로 잡는 거야. 그리고 이 목걸이의 잠금 장치를 해제시키는 거지.」 

　가와다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리고?」 

　슈야는 입술을 핥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래. 먼저 배를 구해 두었다가, 사카모치를 태우고 도망치는거지.」 

　말하면서 스스로도 승산이 거의 없는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카모치를 분교에서 끌어낼 방법도 생각해 내지 못했으니 아예 작전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만. 

 

　「이상인가?」 

　가와다가 말했다. 슈야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와다는 다시 담배를 빨며, 이렇게 말했다. 

 

　「우선, 첫째로 배 같은 건 없어.」 

　슈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거야 모르잖아.」 

　가와다는 슬쩍 웃으며,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나는 부두 근처의 잡화점에 갔었다고 했잖아. 배는 없었어. 한 척도 말이야. 보통이라면 물에 올려놓았을 낡은 배도 전부 치워 놓았어. 전혀 없어.」 

　「그럼 감시선을 사용해도 돼. 사카모치만 인질로 잡을 수 있으면….」 

　「불가능해, 그런 건.」 

　가와다가 말을 가로막듯이 말했다. 

　「그 전수방위군 녀석들이 몇 명인지 봤을 거 아니야? 게다가….」 

　가와다는 자기 목에 감긴 은빛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목걸이는 놈들이 마음 내킬 때, 금지 구역이건 머건 상관없이 수동 조작으로 폭파할 수 있어. 언제 어디서든 말이야. 우리는 상황이 안 좋아. 만약에 그런 일이 있어났다고 하더라도 정부는 사카모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게 놔 둘 거야, 아마.」 

　슈야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밖에 무슨 좋은 생각이 있어?」 

　가와다가 재촉했다. 슈야는, 「아니」 하며 고개를 저었다. 

　「노리코는?」 

　노리코도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저어, 우리들 말이야, 그러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들만 모아서 뭐든 함께 생각할 수 없을까. 여럿이 생각하면 좋은 방안이 떠오를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슈야는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걸 까먹었다. 가와다가 상처가 난 오른쪽 눈썹만을 치켜올렸다. 

　「미무라 신지 말이야. 그리고 스기무라 히로키라거나, 여자 애들 가운데는 우츠미 유키에 같은 애들, 특히 신지는 대단한 녀석이거든. 그녀석은 모르는 게 없어. 기계 같은 것도 잘 알고. 그 녀석이라면 뭔가 아이디어가 있을 거야.」 

　그러자 가와다는 슈야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수염이 난 턱을 왼손으로 잠시 문질렀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미무라 신지…?」 

　슈야의 눈이 약간 커졌다. 

 

　「왜 그래?」 

　「아니….」 

　가와다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봤어, 내가.」 

　「뭐라고? 어디서!」 

　슈야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곁에 있던 노리코와 얼굴을 마주보았다. 

 

　「어디서? 어디서 봤어?」 

　가와다는 턱을 동쪽 방향으로 살짝 움직였다. 

　「밤에. 그 분교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곳이었어. 어떤 집에 들어가 뭔가를 찾는 것 같았어. 총도 들고 있었는데, 내가 보고 있다는 건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어.」 

　「왜 말을 걸지 않았지?」 

　비난 섞인 투로 이야기하는 슈야에게, 가와다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내가 그랬어야 하지?」 

　「그야, 그 분교에서, 그 녀석이 노리코가 자리에 돌아가는 걸 도와 주었잖아. 봤지? 그리고….」 

　가와다가 가로막았다. 

　「노리코가 부상당했으니 이 게임을 연기하자고 했다? 모두들 도망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기도록?」 

　「그래 맞아.」 

　슈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가와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로 내게 그 녀석을 믿으라고 하는 거야? 그건 무리야. 그리고 그 녀석은 말하자면 그렇게 해서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지. 그리고 나서 나중에 사람들을 죽이면 쉽잖아.」 

　「말도 안돼!」 

　슈야는 소리를 질렀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삐뚤어진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그 녀석은 그런 녀석이 아니야. 그 녀석은….」 

 

　가와다가 잠자코 두 손바달을 앞으로 내미는 포즈를 취하자, 슈야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 큰소리를 내면 곤란하다. 아주 곤란하다. 그리고 나서 가와다가 말했다. 

　「나쁘게 생각하지 마. 나는 신지를 잘 몰라.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이 게임에선 남을 믿는 게 아니라, 의심하는 게 원칙이야. 특히, 머리가 좋은 녀석은 조심해야만 해. 그리고 내가 그 때 함께 행동하자고 했어도 그 녀석은 아마 쉽게 그러자고 하지는 않았을 거야.」 

　슈야는 또 뭔가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한숨을 내쉬고는 그만두었다. 가와다의 이야기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가와다가 자기와 노리코를 믿고 있다는 것조차 이상한 이야기다. 가와다는 그 이유를 "좋은 커플로 보였기 때문에" 라고 했지만. 

 

　「그럼….」 

　슈야는 말을 이었다. 

　「어쨌든 네가 미무라 신지를 봤다고 하는 곳까지 가 보자. 그 녀석은 믿을 수 있어. 내가 보증할게. 그 녀석이라면 분명히 뭔가 좋은 생각이 있을 거야. 그 녀석은….」 

 

　그러나 슈야는 다시 도중에 말을 끊지 않을 수 없었다. 가와다가 고개를 젓고 있었다. 가와다가 말했다. 

　「네 말대로 개가 끝내주는 녀석이라면 말이야. 그 녀석이 내게 모습을 드러냈던 곳에 아직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맞는 말이었다. 슈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깊고 싶은 한숨이었다. 

 

　「저어….」 

　노리코가 입을 열었다. 

　「가와다, 지금부터라도 신지나 다른 애들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가와다는 다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없을 것 같아. 불특정 다수를 모은다면 몰라도, 특정한 애들에게만 연락을 취하기는 어렵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슈야는 입술 사이에 담배를 문 가와다를 잠시 쳐다 보았다. "와일드 세븐"을 불이 붙은 끄트머리에서 치직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짧아져 갔다. 

　「그럼….」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들에겐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건가?」 

　그러나 가와다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아니, 그렇지는 않아.」 

　「엥?」 

　「내겐 계획이 있어.」 

 

　토해내는 연기 너머로 슈야는 다시 가와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잔뜩 흥분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거야?」 

　가와다는 슈야와 노리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담배를 문 채로, 약간 생각하듯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목에 감긴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그 매끄러운 표면을 오른손 손가락으로 만졌다. 담배 연기가 천천히 퍼져 나갔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가와다가 말을 이었다. 

　「다만, 조건이 있어.」 

　「어떤?」 

　가와다는 가볍기 고개를 저으며, 또 입가로 담배를 가져가며서 말했다.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다음의 일이야.」 

　슈야는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의미지?」 

　「물론….」 

　가와다는 슈야와 노리코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우리 세 사람이 남을 때까지, 라는 의미야. 다른 녀석들은 모두 죽고.」 

 

　「그건….」 

　노리코가 바로 소리를 질렀다. 

　「그건 너무해. 그럼 우리들만 살 수 있다는 거야?」 

　가와다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무릎 사이에 담배를 끼운 손을 놓은 채로, 눈썹을 치켜올렸다. 

　「슈야가 도망친다고 한 것도 같은 의미잖아.」 

　「달라!」 하고 소리치며 슈야가 끼어들었다. 

 

　「노리코가 이야기하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니야. 결국 다른 애들이 죽고, 대신 우리가 살아남는 거냐고 묻고 있는 거야. 노리코, 그렇지? 그건 마치…. 너무해, 어쨌든.」 

　「아아, 잠깐.」 

　가와다가 손을 저었다. 담배를 땅바닥에 비벼 껐다. 

　「우리 편이 늘어나는 건 상관 없어. 믿을 수 있는 녀석들이라면 말이야. 그러나 어쨌든 우리 그룹의 멤버 이외의 녀석들이 모두 죽으면, 이라는 상황을 말하는 거야.」 

　「그렇다면.」 

　슈야는 힘주어 말했다. 

　「다른 애들에게 그걸 알리면 되잖아. 그게 확실한 방법이라면 반대할 녀석은 없을 거야. 그러면 다들 살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슈야의 말에 가와다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약간 나른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야기하기도 전에 상대가 공격해 오면 어쩔 셈이야?」 

　슈야는 숨을 삼켰다. 

　「적어도 자기가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 않은 한, 이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교적 현명한 방법은 움직이지 않고 숨어 있는 거야. 그래서 바로 이 안의 폭탄으로….」 

　가와다는 자기 목걸이를 가리켰다. 

 

　「정부는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거지. 이건 대원칙이야. 잊지 마. 어슬렁어슬렁 움직이다가는 뒤에서 공격받을 가능성도 있는 거야. 특히 우리는 지금 노리코가 부상당한 상태야. 좋은 표적이지.」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말이야. 모두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여기서는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뿐이야. 탈주자가 되면 정부에 쫓겨 언젠가는 죽게 될 가능성이 높아. 그런 이야기에 누가 선뜻 알겠다. 하고 믿어 주겠어? 잊었어? 이 게임에선 누가 적인지 몰라. 어설프게 아무나 한 패로 끌어들이다간 큰일 날 수밖에 없어.」 

　「그럴 녀석은….」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거니?」 

　가와다의 눈이 진지해져 있었다. 

　「하기야, 이 반 녀석들 모두 다 착한 놈들이라면 좋지. 그렇지만 경계하는 게 현실적 아닐까? 너도 실제로 아카마츠 요시오와 오오키 다츠미치에게 공격을 받았잖아?」 

 

　출발 직후에 아카마츠에게 습격당한 이야기도, 가와다가 노리코의 다리를 치료할 준비를 하는 동안에 이야기해 주었다. 맞는 말이다. 아카마츠 요시오에 대해서도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요시오는 싸울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슈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말을 뱉어냈다. 

　「그럼 우리들은 대부분의 정상적인 애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 있어야만 하는 건가? 그런 이야기야?」 

　가와다는 몇 번인가 턱을 위아래로 끄덕였다. 

　「마음 아프지만, 그래.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가와다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골초로군, 중학생 주제에.

　그 때 노리코가 말했다. 「잠깐만!」 

　슈야는 노리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애들이 모두 죽으면이라고 했는데 제한 시간에 걸릴 가능성도 있잖아. 24시간안에 아무도 죽지 않는다면 말이야.」 

　「그래.」 가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그 때는 가와다가 말한 계획도 쓸모 없어지는 거네?」  

　「그렇지. 하지만 일단 그럴 일은 없어. 그리고 가령 다들 사이가 좋아진다고 하면 전원이 내 계획을 따라도 좋아. 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프로그램에서 제한 시간이 적용되는 일이 발생한 경우는 겨우 0.5퍼센트였다고 하니까.」 

 

　슈야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어?」 

　「아, 잠깐.」 

　가와다는 다시 두 손으로 앞에 있는 뭔가를 누르는 듯한 포즈를 취해 보이며 슈야를 막았다. 

　「그거보다 중요한 게 있잖아. 너희들 아직 내게 묻지 않았어. 도대체 그게 어떤 방법인지를.」 

　슈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물었다. 

　「어떤 방법인데?」 

　가와다는 어깨를 움츠렸다. 담배를 문 채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말할 수 없어.」 

 

　슈야는 눈썹을 찡그렸다. 

　「뭐라고?」 

　「지금은 말할 수 없어.」 

　「왜?」 

　「어쨌든.」 

　「지금 말할 수 없다고? 그럼 언제 가르쳐 줄 수 있는데?」 

　「그렇군. 우리 세 사람만 살아남게 되는 그 때가 될까? 단, 이것만은 이야기해 두지.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누가 방해를 하면 제대로 안 통해. 그래서 우리 세 사람만 살아 남을 때까지, 그 방법은 쓸 수 없어.」 

 

　슈야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가와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는 슈야의 머릿속 어디서 누군가가 뭐라고 속삭였다. 들릴 듯, 들리지 않을 듯한 소리로 속삭였다. 마치 그 속삭임을 들은 듯이 가와다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 전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나는 탈출을 빌미로 너희를 같은 편으로 만들어 쉽게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렇지만 사실 탈출 방법은 없고, 나는 세 사람만 남게 되면 너희 두 명을 죽이고 우승한다. 내겐 아주 간단한 이야기지. 틀렸어?」 

 

　슈야는 약간 난처해했다. 

　「그런 건….」 

　「아니야?」 

　슈야는 입을 다물고 힐끔 노리코 쪽을 보았다. 노리코는 입을 다물고 그저 가와다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슈야는 가와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는 않아. 다만….」 

　슈야는 도중에 말을 끊었다.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아주 멀리서, 도구를 통해서인지, 약간 변형된 『얘들아ㅡ』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목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얘들아, 내 말좀 들어봐ㅡ』 라고 하는 여자애 목소리였다. 

 

　「유미코 목소리네.」 

 

　노리코가 말했다. 구사카 유미코(여자 7번)다. 여자 소포트볼부에서 4번 타자를 맡고 있는 키가 크고 활달한 여자애였다. 

 

　「잠깐 상황을 보고 올게.」 

　긴장으로 찌푸린 얼굴로 가와다가 쇼트 건을 들고 일어섰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 동쪽 수풀 속으로 걸어 나갔다. 

　「나도 갈게.」 

　이야기 도중이었지만, 슈야는 일단 스미스 앤드 웨슨을 바지 앞쪽에 꽂고, 노리코를 어깨로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가와다는 힐끔 뒤돌아 보았지만,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걸어 나갔다. 가와다는 수풀이 끝나는 곳까지 가서 멈추어 섰다. 슈야와 노리코도 발길을 멈추었다. 등을 지고 선 가와다가 말했다. 

　「저 애들이….」 

　슈야는 가와다의 바로 뒤까지 가서 노리코와 함께 가와다와 마찬가지로 수풀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산 꼭대기였다. 북쪽 산, 산 꼭대기의 듬성듬성 자란 나무들 사이로 무슨 전망대 같은 구조물이 보였따. 슈야 일행이 있는 산기슭에서, 거리는 5,6백 미터 정도 될까? 그렇지만 확실하게 보였다. 전망대는 벽을 뜯어낸 오두막 같이 조잡한 형태였지만, 그 지붕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서 있는 것이. 슈야는 눈이 둥그레졌다.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얘들아! 싸움을 멈추고 이리 와!』 

 

　슈야는 그림자 가운데 키가 큰 쪽, 구사카 유미코가 머리 앞에 뭔가를 들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핸드 마이크인가? 농성하는 강도 같은 사람들을 경찰이 부를 때 쓰는 것? 왠지 우스운 느낌이 들었지만(『아ㅡ, 모두에게 알린다. 저항을 멈추고 나와라.』), 과연 저거라면 슈야 일행이 있는 근처뿐만 아니라, 섬 대부분의 지역까지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또 한 사람은?」 

　슈야가 묻자, 노리코가 대답했다. 

　「유키코야. 기타노 유키코」 

　「함께 있었구나. 저 두 사람은 사이가 좋으니까.」 

　「그게 문제가 아니야.」 

　가와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게 될 거야, 저러다간. 뻔히 보이는데.」 

 

　슈야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하자면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는 "설득"을 시도하려 하고 있는 거다. 싸우는 걸 그만두라고, 슈야도 한번은 생각했고, 아카마츠 요시오에게 습격당한 뒤에 포기했던 그것을 하려고 하고 있는 거다. 저 애들은, 그렇다, 아무도 "싸울 마음" 같은 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제일 많은 사람들이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저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저 근처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들 싸우고 싶지 않을 거야. 이리 와.』 

 

　슈야는 약간 망설였다.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아까 이야기는 결말이 나지 않았다. 만약에 만에 하나지만 가와다가 적이라고 한다면? 그렇지만 결국, 가와다에게 말했다. 

 

　「노리코를 봐 주고 있을래, 가와다?」 

　가와다가 고개를 돌렸다. 

　「뭘 하려는 거야?」 

　「저기 가 보려고.」 

　가와다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바보냐, 너?」 

 

　슈야는 그 말에 화가 좀 났지만 참고 반박을 했다. 

　「왜? 저 애들 위험하잖아. 두 사람 다 싸울 생각 같은 건 없어. 정말 없단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 편이 될 수가 있어. 그리고 네가 조금 전에 이야기했잖아. 저러면 위험하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야.」 

　가와다가 이를 드러냈다. 큼직하고 건강한 이로구나. 라고 슈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내가 조금 전에 이야기했잖아. 움직이지 않는 게 제일이라고, 이 게임에선. 여기서 저기까지 거리가 어느 정도나 되는 것 같아? 도중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잖아.」 

　「알고 있어!」 

　슈야가 되받았다. 

　「아냐, 넌 몰라. 다들 저 두 애들의 위치를 눈치 챘어. 그 가운데 저 두 사람을 노리고 있는 녀석이 있다고 한다면, 너처럼 어슬렁어슬렁 나오는 녀석도 기다릴 거야. 표적이 늘어나는 거지. 그러면….」 

 

　가와다의 이야기 내용보다, 오히려 그 조용한 목소리에 슈야는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제발ㅡ. 이리와ㅡ. 우리는 둘이 있어ㅡ. 싸울 생각 없어!』 

 

　슈야는 노리코의 오른팔 밑에서 어깨를 뺐다. 

　「갈 거야.」 

　스미스 앤드 웨슨을 움켜쥐고, 수풀 밖으로 걸어 나가려 했지만, 가와다가 슈야의 왼팔을 덥석 움켜잡았다. 

　「안돼!」 

　「왜?」 슈야의 언성이 높아졌다. 

　「죽는 걸 그냥 두고 볼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살아남는 데 우리가 없으면 곤란하다는 거야? 그런 거야? 결국 그런 거냐고? 넌 우리 적이야?」 

　「슈야, 그만둬ㅡ!」 

　노리코가 애타는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슈야는 뭔가 더 말을 하려다가 깨달았다. 자기 팔을 잡고 있는 가와다의 얼굴이 아주 차분해져 있는 것을. 그 표정은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자혜관"의 전 관장, 이미 돌아가신, 안노 선생님의 나이 든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부모를 잃고 난 뒤, 슈야에겐 단 한 분뿐인, 권위 있는 보호자였던 그 관장님이 어린 시절 슈야에게 설교하던, 바로 그 때의 표정을. 가와다가 말했다. 

 

　「네가 죽는 건 네 맘이다. 그렇지만 네가 지금 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노리코가 죽을 가능성은 훨씬 높아져. 그걸 잊었어?」 

　슈야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가와다가 조용히 말했다. 

 

　「이런 거야 뻔히 알고 있겠지만 말이야. 슈야!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야. 노리코가 소중하다면 가지 마라.」

 

　「그렇지만….」 

　슈야는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럼, 어쩌란 거야? 죽는 걸 보고 있으란 거야?」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가와다는 슈야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유미코가 소리치고 있는 산꼭대기를 바라보며, 쇼트 건을 겨누었다. 

　「조금은 우리 생존율이 낮아질 거야, 약간은.」 

 

　가와다가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향해 쇼트 건을 쏘았다. 가까이에서 터지는 화약 소리는 지독하게 커서, 순간 슈야는 고막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그 소리가 산의 경사면에 부딪혀 메이라기 울려 퍼졌다. 가와다가 왼손으로 잡고 있는 펌프가 움직이며, 케이스를 토해냈다. 이어서 또 한 발을 쏘았다. 총소리에 공기가 푸들푸들 떨렸다. 

　과연, 이 총소리를 들으면, 구사카 유미코와 기타노 유키코는 위협을 느껴 소리치는 일을 멈추고, 숨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핸드 마이크로 증폭된 유미코의 목소리가 멈추었다. 유키코와 둘이서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쪽은 수풀 사이에 몸을 거의 숨기고 있어 누구인지 알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 그래! 더 쏴 줘!」 

　힘을 주어 말하는 슈야를 가와다가 막았다. 

　「안 돼. 지금 두 발만으로도 우리가 있는 곳을 눈치 챈 녀석이 있을지도 몰라. 더 이상은 위험해.」 

 

　슈야는 조금 생각하더니, 스미스 앤드 웨슨을 머리 위로 겨누었다. 가와다가 다시 그 팔을 붙들었다. 

　「멈춰! 몇 번을 이야기해야 알아들어?」 

　「그렇지만….」 

　「이제 우리들이 할 일은 행운을 바라는 수밖에 없어. 저 녀석들이 빨리 숨기를 바라면서.」 

　슈야는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다시 구사카 유미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둬. 다들 싸우고 싶지 않을 거야.』 

 

　슈야는 가와다의 팔을 뿌리쳤다.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저 두 사람이 안전한 장소로 숨어 주기를 바랐다 .스미스 앤드 웨슨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치고. 

 

　따르르르르르륵, 하는 타이프라이터와 비슷한 느낌이 소리가 멀리서 들리더니, 이어서 유미코의 『윽!』 하는 신음소리가 들려 왔다. 물론 그 소리도 핸드 마이크로 증폭된 것이었다.  

　잠깐 틈을 두었다가 『꺄악!』 하는, 기타노 유키코의 목소리. 이것도 핸드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에, 슈야 일행의 귀에도 확실히 들려 왔다. 산 꼭대기 전망대의 지붕 아래, 키 큰 그림자가 천천히 쓰러지는 듯이 보이고, 『유미코!』 라고 외치는 유키코의 절규가 이어졌다. 쿵, 하는 잡음이 나더니, 핸드 마이크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또 따르르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번에는 그 소리가 상당히 작았다. 

　핸드 마이크가 망가져 소리가 작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유키코의 그림자도 전망대를 둘러싼 키 작은 나무들의 사이로 쓰러져, 유미코와 마찬가지로 슈야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슈야와 노리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기타노 유키코는 전망대 콘크리트 바닥을 기어, 구사카 유미코 쪽으로 갔다. 왠지 복부가 아주 뜨겁고,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아직 기어갈 수는 있었다. 하얀 콘크리트 바닥 위, 유키코가 지나간 자리는 붓으로 거칠게 그린 듯한 붉은 줄이 생겼다. 

　「유미코!」 

　유키코가 외쳤다. 그러자, 복부에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왔다. 그러나 그런 건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쓰러져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유미코는 엎어져서, 유키코 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 눈은 감겨 있었다. 유미코의 몸 아래는 끈적끈적한 느낌의 붉은 피가 퍼지기 시작했다. 유키코는 유미코 곁에 이르자, 온 힘을 다해 자기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리고 유미코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유미코! 유미코!」 

 

　소리칠 때마다 유미코의 얼굴에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지만, 유키코는 그것이 자기 입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따. 유미코가 천천히 눈을 뜨더니, 중얼거렸다. 

　「유키코….」 

　「유미코! 정신 차려!」 

　유미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간신히 버티더니, 「미안해, 유키코.」 라고 말했다. 

 

　「내가 바보였어. 어서. 도망쳐.」 

　「안 돼!」 

　유키코는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함께 가. 자, 어서!」 

　그러면서 유키코는 서둘러 주변을 살펴보았다. 자기들을 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저격한 것이다. 

 

　「어서!」 

　유미코의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곧 자기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부에 지금까지 느낀 것보다 훨씬 큰 통증이 와서, 유키코는 신음소리를 내며, 자기도 다시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만 얼굴만 유미코 쪽을 향하고. 유미코의 얼굴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힘을 잃은 눈이 물끄러미 유미코를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니, 유키코?」 하는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응.」 유키코는 억지로 얼굴 근육을 움직여 웃어 보았다. 

　「그런 것 같아.」 

　「미안해.」 

　유미코가 또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본 거 아니야? 유미코?」 

　그리고 유미코가 울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비교적 경상일 거라고 생각했던 유키코 자신의 의식이 더 먼저 빠르게 흐려져 가고 있었다. 눈꺼풀이 무겁다. 

　「유키코?」 

　유미코의 목소리에 유키코는 다시 현실로 되돌아왔다. 

　「응, 뭐?」 

　「나 아까 너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게 있어.」 

　「ㅡ?」 

 

　유미코가 살짝 웃었다. 

 

　「나도 나나하라 슈야를 좋아했어.」 

 

　순간 유미코가 뭐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기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청각 신경이 이상해졌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말은 유키코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아─ 그랬구나. 

　그리고, 점점 안개 속으로 가라앉는 유키코의 머릿속에, 어떤 광경이 되살아났다. 둘이서 쇼핑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겨우 3천 엔짜리 바겐세일 하는 물건이었지만, 그래도 너무너무 예쁜 귀고리가 있어─두 사람의 취미가 충돌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누가 살 것인가를 의논한 끝에 결국 반씩 돈을 내고 좌우 하나씩 나누어 가졌었다. 두 사람 모두 액세서리를 사기는 처음이었다. 그건 지금도 시로이와 읍과 이웃한 시의 경계 부근에 가까운 집, 내 책상 서랍 안의 가장 안쪽에 있다. 

 

　이상하게도 유키코는 아주 행복한 기분이 되었다. 이상하다, 죽어가고 있는데. 

　「그래─」 

　유키코가 말했다. 

　「그랬었구나.」 

 

　유미코가 또 살짝 웃어 보였다. 유키코는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앞으로 딱 한 마디 정도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그래.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몰라. 그렇지만 그 광륜교가 단 하나 아름다운 것을 나에게 주었다면, 그것은 유미코였다. 그 교회에서 만나, 우리는 항상 함께 지냈다. 

 

　「유미코, 나, 너하고 친구여서...」 

 

　정말 다행이야, 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바로 앞에서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유미코의 머리가 흔들렸다. 유미코의 오른쪽 관자놀이 위에 붉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유미코는 이미 멍해진 눈을 유키코를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먼 데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전망대라고 하는 장소에 어울릴지도 모른다. 공포와 경악에 입을 크게 벌린 유키코의 귀에 또 한 번 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시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왔다. 그것이 유키코의 마지막 감각이었다. 

 

　기리야마(남자 6번)는 전망대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낮은 자세를 취하며, 누마이 미츠루의 것이었던 월터 PPK의 총구를 내리고, 두 사람의 데이 팩을 집어 들었다.

 

【남은 인원 2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