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로얄(BATTLE ROYALE) :: 제１부 - 시합 개시 #.3

　아카마츠 요시오는 바로 의식을 되찾았다. 그러나 머리를 심하게 맞아 실신한 그에게는 정신을 잃고 있던 그 시간이 거의 푹 자고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먼저 깨달은 것은 머리가 지독하게 아프다는 사실이었다. 머릿속이 몽롱했다. 대체 어떠게 된 것일까? 어젯밤, 늦게까지 패미콤을 지나치게 한 걸까? 그러고 보니, 어제가 토요일이었나, 아니 일요일이었나? 그러면 오늘은 월요일이어서 학교에 가야만 하는데, 지금 대체 몇시지? 어둡네, 아직 좀 더 자도…

 

　어찌된 일인지 하늘과 땅이 90도 뒤집어진 상태에서 텅 빈 공터가 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밤하늘보다 짙은 활 모양의 그림자 산이 있다. 순간 모든 기억이 되돌아왔다. 사카모치, 하야시다 선생의 시체, 출발, 일단 몸을 숨긴 오두막집 같은 곳에서 데이 팩 속에 들어 있던 보우건을 발견한 것, 되돌아온 것, 좀 깐깐한 느낌이 드는, 그러나 예쁜 얼굴이 긴장으로 잔뜩 찌푸려진 치구사 다카코(여자 13번)가, 육상부 대표선수의 실력으로 힘껏 달려 도망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는 건물 옆의 폭이 좁은 철사다리를 통해, 필사적으로 분교 옥상에 올라간 일. 허둥지둥 보우 건에 화살을 끼우는 동안에 즈키오카 쇼(남자 14번)를 놓쳐버린 일.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세일러복을 입은 여자애가 쓰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다. 요시오 자신에게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 때 기억과 함께 돌아온 것은 클래스 메이트를 죽였다고 하는 죄책감이 아니라, 공포감이었다. 그 공포는 요시오의 마음 속에 펼쳐진 황량한 대지 위에 서 있는 거대한 간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너를 죽여 주마!" 라는 피로 쓴 글자가 그 간판을 메우고, 배경에는 클래스메이트 전원이 도끼와 권총을 들고 3D 방식의 영화처럼 간판 앞에 서 있는 요시오를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물론 클래스메이트를 죽인다는 것은 나쁜 짓이다. 그리고 게임의 시간제한에 걸리면 모두 끝장날 테니 다들 다른 애들을 죽이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생각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이론상 그럴 뿐이다. 요시오는 죽고 싶지 않았다. 자기를 향해 이빨을 드러낼 클래스메이트들이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 생각 좀 해봐, 내 주위를 살인자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거야. 가장 효율적인, 그 "적들"을 없애는 방법을 선택한 것은 그의 생각이 아니었다. 더 깊은 곳에 숨어있던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누가 적이고, 누가 내 편이라고 하는 판단은 없었다. 모두 적일 것이다. 자기 자신이 사사가와 류헤이에게 이지메를 당할 때도 다른 애들은 모른는 척하지 않았던가? 

 

　요시오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우선 나나하라 슈야를 찾아야 한다. 그래, 나나하라 슈야는 어디 있지? 보우 건, 보우 건을 집어 들어야지, 보우건은 어디있지? 순간, 요시오는 목덜미 뒤를 곤퐁으로 맞은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요시오는 털썩 앞으로 고꾸라졌다. 몸이 ㄱ자로 꺾여, 얼굴이 꽤 축축한 땅바닥에 밀리면서 이마와 뺨의 피부가 주르륵 벗겨졌다. 그러나 요시오에겐 이미 관계없는 일이었다. 쓰러졌을 때는 벌써 목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의 머리 뒤에, 자신이 텐도 마유미에게 쏜 것과 같은 은빛 화살이 꽂혀 있었다….

  

【남은 인원 38명】

 

 

　나카가와 노리코보다 2분 늦게 건물에서 나온 니이다 가즈시(남자 16번)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잠시 제자리에 멈추어 서 있었다. 아카마츠 요시오의 몸 옆에 떨어져 있던 보우 건에는 화살이 장전되어 있었다. 주워들기는 했지만 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요시오가 일어나는 순간, 반사적으로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가즈시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다, 일단 여기서 도망가야만 한다. 그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애당초 아카마츠 요시오나 텐도 마유미의 시체 같은 것에는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도망쳤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다. 요시오를 죽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황으로 미루어 보면, 분명히 텐도 마유미를 죽인 것은 아카마츠 요시오다. 나는 나쁜 짓을 한 게 아니다. 그는 핑계를 워낙 잘 대는 편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마비된 것 같았 던 머리의 일부에 감각이 돌아왔다. 

 

　가즈시는 보우 건을 살며시 내리고, 화살이 담긴 요시오의 데이 팩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집어 들었다. 그대로 발길을 떼려 하다가 다시 멈추어 서서, 텐도 마유미의 데이 팩도 주워 들었다. 그리고 서둘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10분 가까이 달렸을까? 슈야는 노리코의 몸에 두른 팔을 노리코가 당기는 느낌이 들어 발길을 멈추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희미한 달빛 아래, 노리코가 자기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거의 압도적인 소리의 벽처럼 느껴졌지만, 슈야는 그 벽을 뚫고 어둠에 싸인 주위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귀를 기울였다. 추적자의 발소리는 없었다. 숨이 차서 한숨을 내쉴 수도 없었지만, 어쨌든 약간은 마음을 놓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른쪽 어깨에 메고 있던 두 사람 몫의 짐을 내려놓자 어깨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났다. 운동 부족이다. 일렉트릭 기타는 야구 방망이보다 무겁지만, 계속 휘두루지는 않는다. 짐을 내려놓고, 무릎에 손을 살짝 얹고 쉬었다. 

 

　슈야는 노리코를 어둠에 싸인 그 수풀 속에 앉혔다. 주위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지 잠시 더 주위를 기울인 다음, 슈야도 노리코 옆에 주저앉았다. 잎이 꽤 두꺼운 풀이 엉덩이에 눌리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 꽤 달려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수풀 속을 지그재그로, 게다가 산을 오르며 마구잡이로 달려왔으니, 그 분교에서는 기껏해야 몇 백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그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인공적인 불빛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완만한 산비탈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짙은 어둠 속에 있는 게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적인 판단이었지만, 적어도 시야가 뻥 뚫린 바다 쪽으로 간 것보다는 안전하리라. 노리코를 바라보면서 속삭이듯 물었다. 

 

　「괜찮아?」 

 

　노리코는, 「응.」 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슈야는 잠시 그대로 앉아 쉬고 싶은 욕심이 들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일단 자기에게 지급된 데이 팩을 열었다. 손을 쑤셔 넣고 뒤지니, 물병 같은 것 안쪽에서 뭔가 딱딱하고 가느다란 것이 손에 닿았다. 슈야는 그걸 끄집어냈다. 가죽 감촉의 칼집과 거기서 튀어나온 가죽을 두른 손잡이. 군용 나이프였다. 사카모치는 "무기가 들어 있습니다" 라고 했는데, 이게 그 무기인가? 데이 팩 속을 좀 더 뒤졌지만, 빵 봉지같은 것과 플래시가 있을 뿐, 달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슈야는 칼집의 단추를 벗겨, 나이프를 뽑아 칼날이 15센티미터 정도 된다는 것과 쓸만한 것이라는 사실만 확인하고는 칼집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칼집의 단추를 벗긴 상태로, 나이프를 교복 바지 벨트에 끼워 넣었다. 저고리 제일 아래 단추를 풀어, 쉽게 뽑을 수 있도록 했다. 슈야는 노리코의 데이 팩을 끌어당겨 아무 말 없이 지퍼를 열었다. 여자의 짐을 뒤지는 것은 실례지만, 그렇다고 노리코가 직접 꾸린 짐도 아니었다. 이상한 것이 나왔다. v자로 모양이 구부러진, 길이 40센티미터 정도 되는 몽둥이였다. 단단하고 매꾸러운 나무 감촉이 느껴졌다. 부메랑 같은 걸까? 미개인들이 전투, 수렵용으로 사용하는, 던지는 무기였다. 아보리지니 부근 마을의 수렵 챔피언이 사용하면, 병들어 비틀거리는 캥거루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도대체 이런 것으로 뭘 하란 말일까? 슈야는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다시 노리코의 데이 팩 안에 집어넣었다. 거의 죽어가는 환자처럼 가빴던 숨이 겨우 가라앉았다. 

 

　「물, 마실래?」 

　슈야가 노리코에게 물었다. 노리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만.」 이라고 대답했다. 

　슈야는 일단 자기 데이 팩에서 플라스틱 병을 꺼내, 돌려 따게 되어있는 마개를 열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손바닥에 물을 약간 발라서 조심스럽게 핥았다. 그리고 한 모습을 마셔본 뒤,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노리코에게 건네주었다. 노리코는 병을 받아들고, 딱 한 모금만 꿀꺽 마셨다. 아마 물이 귀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병은 겨우 1리터 정도의 용량으로, 한 사람에게 두 개씩 밖에 없었다. 사카모치가 전화는 쓸 수 없다고 했는데, 수도는 쓸 수 있는 것일까? 

 

　「다리가 어떤지 좀 보여 줘.」 

　슈야가 말하자, 노리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스커트 아래로 접어 넣었던 오른쪽 다리를 천천히 폈다. 슈야는 데이 팩 안에서 플래시를 꺼내, 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조심스럽게 노리코의 다리에 난 상처를 살폈다. 

　상처는 종아리 바깥쪽에 있었다. 위에서 아래쪽으로, 살이 깊이 1센티미터 정도, 길이 4센티미터 정도 패어 있다. 분홍색 살이 드러난 상처의 그트머리에서 피는 아직도 가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꿰매 주어야 할 정도의 상처였다. 슈야는 바로 플래시를 끄고, 데이 팩이 아니라 자기 스포츠 백을 끌어 당겼다. 버번이 들어 있는 작은 물병과 여행을 위해 준비해 온 깨끗한 반다나를 두 장 꺼낸 다음, 병뚜껑을 열었다. 

 

　「약간 아플 거야.」 

　「응, 괜찮아.」 

　노리코는 그렇게 말했지만, 슈야가 병을 기울여 버번으로 상처를 소독하자, 신음소리를 냈다. 슈야는 반다나 한 장을 접은 상태로 상처에 대고, 또 한 장을 펴서 띠 모양으로 접어 붕대 대신 힘주어 감기 시작했다. 일단 이정도면 지혈은 될 것이다. 한 바퀴 둘러 감은 천의 약쪽 끝을 꽉 조여 묶으면서 슈야는 「제길」 하고 내뱉었다. 노리코가 조용히 물었다. 

　「노부 때문에?」 

　슈야는 이를 악물었다. 

　「요시토키 일도 그렇고, 요시오 일도 그렇고, 모두 다 마음에 안 들어.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슈야는 손을 움직이면서 노리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천을 완저히 매듭지었다. 노리코가 고맙다고 하면서 발을 거두었다. 

 

　「마유미는, 그 애는 요시오가…」 

　노리코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죽인 거지?」 

　「그래. 그 녀석은 출구 위에 있었는데, 내가 화살을 던져서 떨어졌어」 

　슈야는 그제야 아카마츠 요시오를 그대로 버려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기절해서 당분간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아까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러나 의외로 바로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그 보우 건을 들고 지붕 위로 올라가 다른 애들을 계속 죽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내가 너무 어수룩하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내가 차라리 녀석을 거기서 죽여야 했던 걸까? 

 

　슈야는 그제야 손목시계를 달빛에 비추어 보았다. 국산 핫토리한조라는 시계회사가 만든 구형 다이버용 손목시계(이건 선물이었다. 시설에서 사는 슈야의 소지품들이 대부분 그렇지만)는 2시 40분이 약간 지나 있었다. 지금쯤이면 모두가 교실에서 나왔을 지도 모른다. 남아 있어봐야 두 세 명일 것이다. 아카마츠 요시오가 그 뒤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미무라 신지만은 아카마츠 요시오에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슈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애들을 모두 모아서 어떻게든 해 보자고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나 바보처럼 여겨졌다. 

 

　「그 녀석이 그런 녀석일 줄은 몰랐어.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려 들다니. 이 게임의 룰이야 나도 알지. 그렇지만 진짜로 죽이려는 놈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그게 아닐지도 몰라.」 라고 노리코가 말했다. 

　「뭐?」 슈야는 달빛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은 노리코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노리코가 말을 이었다. 

　「생각해 봐. 요시오는 소심하잖아. 겁을 먹었던 게 아닐까? 분명히 그랬을 거야. 누가 자기를 공격해 올지도 모르는 거니까. 그래, 요시오는 틀림없이 다른 애들이 다 자기를 공격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그래서 아마도, 가만히 있다가는 자기가 당할 뿐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슈야는 노리코처럼 가까이에 있는 나무 둥지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다리를 뻗었다. 겁먹은 애들은 서로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그 논리 자체는 슈야도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슈야는 그냥, 겁먹은 녀석들은 기본적으로는 숨기 급급할 것이라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더 심하게 겁을 먹으면 오히려 다른 애들을 먼저 공격할 지도 모른다. 

 

　「그런가?」 

　「응.」 

　노리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아무나 공격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가 슈야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럼 만약에 우리가 둘이 있는 것을 보았다면 그 애는 공격을 안 하지 않았을까? 둘이 함께 있다면 다른 사람을 죽일 의사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잖아.」 

 「그렇지. 그럴지도 모르지….」 

 

　슈야는 잠시 생각했다. 노리코의 말대로, 요시오가 단순히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 상태에 있었을 뿐이었다고 한다면. 아까 그 순간, 슈야는 '다른 애들을 죽일 작정을 한 녀석이 있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클래스메이트를 죽인다는,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있을 수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역시 자신은 거기서 다른 애들을 기다려야 했던 게 아닐까? 요시오를 어떻게 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더라도? 

　그러나 그것은 이미 지난 일이었다. 지금 돌아가 봐야 다들 출발한 뒤일 것이다. 그러고, 정말 그럴까? 요시오는 정말 겁을 먹어서 그랬던 걸까? 뭐가 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노리코.」 

　노리코가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생각하니? 나는 요시오와 똑같은 녀석이 있으면 곤란할 것 같아서, 아까 일단 그 분교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었어. 그렇지만 그 녀석도 겁을 먹고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면, 그러니까, 이런 게임에 적극적으로 나설 녀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애들을 모두 모아서 이 말도 안 되는 게임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어떨까?」 

　「모두?」 

　「응.」 

　노리코는 입을 다물고, 스커트의 무릎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서, 「나는 나쁜 여자앤가?」 라고 했다. 

　「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유키에 같은 애들은…」 

　노리코는 반장인 우츠미 유키에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슈야도 유키애를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있다. 

 

　「항상 함께 지내던 애라면 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다른 애들은 도저히 안 돼. 도저히 함께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 그렇잖아? 요시오가 진짜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다른 애들이 무서워. 그러고 나,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는데, 아무것도 몰라. 다른 애들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마음 속이야 들여다볼 수도 없는 거잖아.」 

 

　아무것도 모른다. 다른 애들에 대해서. 맞는 말이었다. 학교에서 낮 시간에 함께 지낼 뿐인 애들에 대해, 대체 내가 뭘 알고 있는 걸까? 슈야는 또 슬며시, 역시 적이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리코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마 의심하게 될 거야. 어지간히 믿을 수 있는 애가 아닌 한, 함께 있게 되면, 그 애가 나를 죽이려고 들지 않을까 하고 의심하게 될 거야.」 

 

　슈야는 한숨을 내쉬었다. 엿 같은 게임이다. 그러나 너무나 잘 짜여져 있다. 결국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어느 누구도 동료로 끼워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자고 있다가 당하게 된다면? 자기만이 아니라, 노리코까지 위험 해질 수가 있게 된다. 그래, 먼저 출발한 녀석들이 재빨리 모습을 감춘 행동이야말로 당연한 것이었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잠깐만.」 

　슈야가 말하자, 노리코가 시선을 들어 슈야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우리 둘이 있어도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겠네. 나도 의심받겠지? 언젠가는 노리코를 죽이려 할 거라고.」 

　노리코가 끄덕였다. 

　「그렇겠지. 나도 의심받겠지, 마찬가지로. 둘이 있으면 덤벼들지는 않을지도 모르지만, 함께 있다고 하면 상대도 싫어할 거야, 아마.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슈야는 침을 삼켰다. 

 

　「무섭군.」 

　「응, 너무 무서워.」 

 

　결국 분교 앞에서 도망친 것은 잘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나카가와 노리코를, 요시토키가 좋아한 여자애를 여기서 무사히 구해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카가와 노리코가 무사히 내 곁에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나는 최소한 신지만이라도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신지라면 분명히 뭔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거야. 노리코도 신지라면 걱정없지?」 

　노리코는, 「물론이지.」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슈야와 자주 이야기하는 만큼, 노리코도 미무라 신지와 이야기 할 기회가 꽤 많았다. 슈야는 신지가 노리코를 일으켜 세워주고, 자신에게 진정하라는 사인을 보내 주었던 것을 생각해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신지가 그렇게 해 주지 않았다면 자기나 노리코나 멍한 상태에서, 요시토키와 마찬가지로 사살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노리코가 그런 기억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노부는 이제 없네.」 

　「그래.」 

　슈야도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구나.」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난 추억들을 이야기할 수는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다. 그리고 슈야 입장에서 보면 요시토키의 이야기를 그렇게 지나간 일 이야기하듯 해 버릴 수는 없었다. 

 

　「어쩌면 좋지, 이제부터.」 

　노리코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신지나, 다른 믿을 수 있을 만한 애들을 모을 수 없을까?」 

　「그건…」 

　노리코는 잠시 생각하더니, 결국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랬다. 그럴수 있는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슈야는 결국 다시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 위의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 때문에 흐릿한 회색빛을 띤 밤하늘이 보였다. 막막하다고 하는 표현은 이럴 때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누구나 동료가 될 수 있다면 큰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는 것은 "적"에게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그런 녀석이 없기를 바라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두려워하는구나.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다시 노리코를 보며 물었다. 

 

　「나, 두렵지 않았니?」 

　「응?」 

　「내가 너를 죽이려고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어?」 

 

　달빛만으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노리코는 눈을 약간 크게 뜨는 것 같았다. 

 

　「슈야가 그럴 리가 없는걸.」 

 

　슈야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지만 사람 마음이란 건 모르는 거야. 네가 아까 이야기했잖아.」 

　「아니야.」 노리코가 고개를 저었다. 「난 알아. 슈야, 너만은 그런 짓 하지 않을 거야.」 

　슈야는 노리코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잠이 덜 깬 듯한 표정이었음에 틀림 없었을 것이다. 

　「안다고?」 

　「응. 알아, 나는.」 

　노리코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러나 곧 말을 이었다. 

 

　「슈야, 너를 줄곧 지켜봐 왔으니까.」 

 

　이런 말은, 원래는 좀더 힘겨운 말투로 했어야 할 이야기인지도 몰랐다. 가능하다면 좀 더, 사치를 부릴 수는 없지만, 조금만 더 로맨틱한 상황에서. 

 

　어쨌든, 그 이야기를 듣고, 슈야의 머릿속에는 연한 파란색 줄이 쳐진 편지지에 적힌, 발신자 없는 러브 레터가 떠올랐다. 그것은 4월 어느 날, 자기 책상 서랍 안에 들어 있었다. 예전에 리틀 리그에서 천재 유격수로 이름을 날린 적이 있고, 지금은 자칭(이따금 타칭) 시로이와 중학교의 록큰롤 스타이기 때문에 러브 레터를 받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 편지는 꽤 깊은 인상을 남겼고, 고맙게 받았다. 아마도 거기 적혀 있던 시같은 내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편지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꿈이라도 좋으니 제발 나를 돌아봐 줘" 라고 하면서 시작되고 있었다. "거짓말이 아니야, 꿈이 아니야. 어느 날 그대 웃던 얼굴은／그렇지만 내 거짓말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내 꿈일 지도 몰라, 그대 미소가 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은／그렇지만 거짓말일 수는 없어, 꿈일 수는 없어. 그대가 내 이름을 불러 준 날은." 그리고 "거짓말이었던 적 없어, 꿈이었던 적 없어, 나는, 그대가, 너무, 좋아요." 

　그게 노리코의 편지였을까? 하긴 글씨도 비슷하고, 이 정도의 시적인 표현은 노리코가 아니면 하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역시? 슈야는 순간, 그 편지에 대해 지금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만 두었다. 그럴 상황이 아니고, 나에게는 그걸 화제로 삼을 자격이 없을 것이다. 나야 니타니 가즈미에게, 옅은 파란색 줄이 쳐진 편지의 말을 빌리면 결코 "돌아봐" 주지 않을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 있어, 다른 여자 애들에게는 물론이고 그 러브 레터에도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그렇다, "구니노부 요시토키가 좋아한 여자애" 라는 사실이다. 그런 그녀를 무사히 지켜 주는 것이다. "나를 좋아해 주는 누군가" 의 일이 아니다. 그러자 또 언젠가 요시토키가 보여주던 수줍은 표정이 떠올랐다. "슈야, 나 좋아하는 여자 애가 생겼어." 하던 말과 함께. 

 

　이번에는 거꾸로 노리코가 물었다. 

　「슈야는 내가 두렵지 않아? 아니, 어째서 나를 구해준 거야?」 

　「그건…」 

　슈야는 또 잠시 생각했다. 요시토키 이야기를 해줄까, 하고. 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가 좋아한 여자애야. 그래서 나는 너만은 구해내야 해. 그건 당연한 일이야, 라고. 그러나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이야기는 아마도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나중이라는 시간이 온다면. 

 

　「노리코는 다쳤잖아. 그냥 놔둘 수가 없었어. 그리고 나, 노리코라면 믿어. 적어도 노리코처럼 예쁜 애를 믿지 않으면 벌 받을 거야.」 

　노리코가 살짝 웃는 것처럼 보였다. 슈야도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근육이 웃는 표정을 지을 수 있어 약간 마음이 놓였다. 슈야가 말했다. 

　「어쟀든 다행이야. 우리만이라도 함께 있을 수 잇어서.」 

　노리코가, 「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체 앞으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슈야는 일단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가령 잠시 쉬면서 무슨 궁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망보기 좋은 장소를 고르는 게 좋겠다. 다른 녀석들이 어떤 생각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적어도 준비만은 해 놓아야 하고, 그게 현실적이라는 생각이었다. 당연힌 이야기지만, 지도와 자석, 플래시를 손에 들었다. 사상 최악의 오리엔티어링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직 걸을 수 있니?」 

　「괜찮아.」 

　「그럼 좀 더 움직여서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아보자.」 

   

【남은 인원 3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