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전사 건담 시드 -3권- 평화의 나라 :: 해설/역자 후기

 

 

[해설]

 

아스란 자라 역－이시다 아키라

 

이번 권은 제가 해설을 맡게 되었습니다. 방송에는 출연자로 관여하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제가 작품의 해설을 할 수 있을 만큼 올바르게 건담 SEED를 이해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해설은 마지막 권에 예정되어 있는 후쿠다 감독님께 양보하고, 여기의 해설은 제가 개인적으로 해석한 가벼운 읽을 거리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소설판 <기동전사 건담 SEED> 시리즈를 TV 방송을 전혀 모르는 채 읽고 계신 분은 없겠지요. 하지만 나중에 새로운 세대가 그 시대의 건담 시리즈로 이어지는 혈통을 되짚으며 이 건담 SEED 소설을 읽을 때를 위해, 우선 최소한의 데이터를 밝혀 두기로 하겠습니다. <기동전사 건담 SEED>는 마이니치 방송을 중심으로 후쿠다 미츠오 감독의 지휘 아래 제작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2002년 10월 5일부터 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스토리는 이렇게 소설을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 새삼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원고를 쓰고 있는 2003년 7월 시점에는 이야기의 막바지를 향해 각 캐릭터들의 운명에 대전환이 찾아오는 중입니다. 싸움의 목적과 선의, 일부 그룹의 사상이 전체 집단의 목표로 뒤바뀌는 현상, 눈 앞의 현실과 순수한 이상과의 격차 등 여러 상황과 의도가 교차하는 가운데, 제가 연기하는 아스란도 자신의 가치관을 잃고 매우 불안한 상황에 빠져 있다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존재 의의를 되찾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문장으로는 술술 적었습니다만, 사실 아스란이 직면한 사태는 꽤 큰 문제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때까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모두 거부되거나 부정되고, 그럼에도 자신은 아무런 반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으니 상당한 정신적 타격을 받은 것이지요. 이처럼 자기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는 상황은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기에, 매일 매일을 평화롭게 지내는 우리는 그리 쉽게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스란처럼 전쟁의 목적과 의미를 본질적으로 질문 받는 일은 없을지라도, 좀 더 사소한 것에 대해서는 평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여러 가지 판단과 비평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그 때 자신에게 '올바른 것'과 '잘못된 것'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고 있을 겁니다. 그럼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을 때, 즉 자신의 가치관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경우에는 항상 자신에게 객관적인 정의가 있는 걸까요?

절대적인 정의의 척도를 신도 부처도 아닌 우리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선택 받는 정의는 달라집니다. 그러한 가운데 개개인이 자기 가치관의 근거로 삼는 발상도 소속된 사회가 향하는 방향에 좌우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편이 그 집단에서 생활할 때 쓸 데 없는 리스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때, 그 사회와는 맞지 않는 가치관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주장이 부정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럴 때 사람들은 사물의 이치를 다시 생각하기보다는, 생각을 바꿨을 때 자신이 믿어 왔던 가치관이 뒤집어질지도 모르고 소속된 사회에서 쓸 데 없는 리스크를 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부정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지킬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 경우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자신을 위기 상황에 노출시키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에 그것은 에고이즘(이기주의)에 기초한 행위죠. 소설에서는 조금 나중에 나오는 에피소드입니다만,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면 라크스가 "아스란이 믿고 싸우는 건 무엇입니까? 수여 받은 훈장입니까, 아버님의 명령입니까?" 라고 추궁했을 때, "나는 한 사람의 코디네이터로서, 그리고 자프트의 군인으로서 잘못된 일은 하지 않았다." 고 대답하며 그 후에도 자신의 가치관을 계속 밀어 붙이는 것과 같은 행위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뒤의 전개도 아스란에게는 비교적 쉬운 것이 되었을 겁니다.

에고이즘이라면 별로 좋은 이미지는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자신을 쓸 데 없이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발상이기에 그 선악을 묻기 이전에 인간이 생리적으로 갖고 있는 성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거친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인간 관계부터 국제 문제까지 사람이 싸움을 일으키는 것은 돈이나 종교, 자존심처럼 그 계기가 되는 이유는 다르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상대의 의향에 따르지 않고 자신을 굽히지 않는다는 에고이즘이 이성적인 판단을 우선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을 테마로 그리고 있는 <건담 SEED>는 이론으로 무장한 에고이즘의 충돌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으며, 더 나아가서 그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이야기를 아스란으로 되돌리겠습니다. <건담 SEED>의 이야기 전반은 죽마고우인 키라와 아스란이 전쟁이라는 상황 하에서 재회하고 그 후 적대하게 된다는 처지가 명확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스란은 친구와 싸워야 한다는 고뇌를 안으면서도, 자신이 자프트에 속한 이유와 목적에는 한 점의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아스란의 현 상태와는 정반대의 입장으로, 현 상태에까지 이르는 동안 아스란은 말 그대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더듬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스란으로서는 키라와 재회한 시점에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초기에 아스란이 가지고 있던 코디네이터로서의 의식, 자프트군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로 보건대 그것은 역시 무리일 것 같습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완강한 가치 기준에 물든 사람일 수록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의 갈릴레오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보여 준 사례가 있고, 무엇보다 마류와 나탈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 아스란의 생각을 깨뜨리는 결정타를 날리는 것이 라크스이므로 다음 권 이후를 기대하시길. 다만, 스토리 중반에 해당되는 이 3권에서는 이미 또 하나의 히로인인 카가리와의 만남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아스란은 시종 자신이 자프트 사람이라는 태도를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상대가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군율에는 맞지 않는 개인 대 개인 수준의 느슨한 처우를 했고, 그 때문에 훈훈한 분위기가 흐르기도 합니다만 자신의 가치관은 아직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고 있던 아스란의 총을 카가리가 빼앗은 후의 대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아스란 개인과 카가리 개인이라는 두 사람이 싸워서 결판을 보아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무력 전쟁에 있어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상대방의 전력을 깎아 상대의 전의를 상실시키는 것이 목적이기에, 결과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2차적인 문제가 됩니다. 인명 경시로 이어지는 해석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도자가 멀쩡한 정신으로 전쟁을 일으켜서 제압을 명령하는 데는 이러한 트릭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물론 실제로 그 행위를 하고 거기서 여러 가지 것들을 목격하는 현장의 병사로서는 그것을 받아 들이는 데 커다란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카가리도 이지스라는 전력을 보자 그 때까지 동료들이 당했던 일들이 떠올라서 한 행동으로 보입니다만, 아무튼 전쟁은 개인 대 개인의 싸움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격한 감정을 터뜨리는 일은 그저 복수일 뿐이지, 반격할 수 있는 힘을 과시하기 위한 전략적인 보복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그것을 혼동한 위정자에 의해 사태가 악화되는 일도 있는 것이 현실이겠죠. 본편에서 아크 엔젤과 행동을 함께 하려는 카가리를 막을 때 우즈미가 한 말은 그것을 바탕으로 글로벌적인 시점에서 세운 하나의 이상이라고 생각하시길.

여하튼 결국 이 때는 애당초 아스란을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던 카가리가 발트펠드의 말을 떠올리다가 적대의 의미를 깨닫고 총을 내던진 덕분에 무사히 끝났습니다만, 이 사건은 아스란에게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TV 방영분으로는 24화 두 사람만의 전쟁에 해당되는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대사는 "군인도 아닌데 다들"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군인이 아니면 싸움에 참가하지 마라. 그러면 어젯밤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으로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라는 아스란의 마음이 잘 나타납니다. 전쟁이라는 대의 속에서 개인적으로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것은 맨 처음 키라와의 재회로부터 계속되어 온, 가능하면 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다는 친한 사람에 대한 마음의 발전이고, 그런 의미에서 아스란에게 카가리는 제２의 키라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또한 이 두 사람에 의해 아스란의 마음 깊은 곳에 자신이 싸우는 목적을 생각하게 하는 방아쇠가 생겨 났다고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 권 이후의 소설판 <기동전사 건담 SEED>도 TV 방송과 마찬가지로, 그 때까지 당연한 것들처럼 받아 들였던 사회에 영합한 가치관을 일단 캐릭터들에게서 떼어 낸 후 각자가 스스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게 될 겁니다. 그것이 어떻게 그려질지 매우 기대됩니다.

 

 

[역자 후기]

 

김정현 씨에 이어 <기동전사 건담 SEED>의 번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나저나 요즘에는 다른 분들의 번역을 이어 받아 번역하는 일이 부쩍 늘었네요. 물론 학산의 익스트림 노벨 시리즈는 이번이 처음입니다만, 다른 곳에서 일감을 받을 때 최근 왠지 그런 경향이 좀 있었거든요. 다른 분들의 번역을 이어 받아 번역하는 것은 의외로 껄끄러운 일입니다. 고유 명사나 말투 등을 통일해 주어야 하므로 앞 권들을 참조하면서 번역해야 하고, 또 전체적인 위화감이 없도록 문체도 조정할 필요도 있거든요. 여하튼 앞 권과 최대한 위화감이 없도록 번역해 갈 생각이니 기대해 주시기를.

 

이번 권을 번역하면서 느낀 점은 애니메이션으로 본 작품을 소설로 다시 읽는 것은 색다른 맛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상이 머릿속에 이미 입력되어 있는 탓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가 조금 줄어드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입니다만, 영상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심리 묘사라든지 정경 묘사 등이 자세하게 쓰여 있어서 작품에 대한 이해가 더욱 높아지더군요. 가령 프레이의 심리 변화 같은 것은 영상 만으로는 완벽히 알기 어려운 측면이 많은데 소설 판에서는 그것이 뚜렷하게 그려지고 있으므로, 행동의 이유라는 면에서 훨씬 개연성이 사는 것 같네요.

 

3권은 중반부의 클라이맥스에서 끝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클라이맥스 전후 부분을 꽤 흥미진진하게 보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4권을 빨리 읽어 보고 싶습니다.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본 상태라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압니다만, 소설 판에는 애니메이션에는 없는 '심리 묘사'가 있거든요. 키라와 토르를 잃은 승무원들의 심리가 어떻게 그려질지 개인적으로 정말 기대가 됩니다.

 

역자 김영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