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사 -데 크레센초의 친구들- 쉬쇼 모란테, 알폰소 카로테누토, 살바토레 팔룸보

쉬쇼 모란테

 

자네를 좋아는 하네. 하지만 동시에 증오하네.

내게 돈을 줘서 파괴해 버렸으니 말일세.

 

 

1950년대에 나는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하나 알고 지냈다. 쉬쇼 모란테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주로 아말피의 해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신사였고 미남형에, 여자들에게는 친절했지만 일정한 거처가 없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사람을 깔보는 듯한 표정에, 스페인 귀족처럼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머니에는 땡전 한 푼도 없는 사람, 아니 포시타노에서 제일 가는 양복장이 페피토에게 주머니를 아예 꿰매 달라고 했으니, 땡전은 커녕 땡전 넣을 주머니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쉬쇼는 4월부터 10월까지 따뜻한 철에만 눈에 띄다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게 눈 사라지듯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어쩌면 겨울 잠을 자러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코르티나나 세스트리에레(이탈리아의 겨울철 고급 관광지)에서 여름철에 사귄 귀부인들과 보내는 그를 보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입 달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쉬쇼의 마지막 모험'식 이야기를 지어 내는 형편이었으니 그리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집안은 나폴리의 옛 부르주아 가문으로, 일은 일반 백성들이나 하는 것으로 아는 집안이었다. 오늘 날 사라진 전통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사고방식은 그리스 시대 이래 우리 남녘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 온 사고방식이다. 어쨌거나 가문의 전통에 따라, 일을 할 수 없는 처지라 쉬쇼는 고작해야 카푸치니 한 잔, 브리오쉬 빵 한 조각으로 주린 배를 채우거나 누군가 초대해 주는 저녁 식사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하지만 가문이 가문이다 보니 그는 누구에게도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일은 하지 않았다. 단 한 번 언젠가 프란카 발레리라는 여자한테 나치오닐리 담배 한 갑만 사게 천 리라만 달라고 했는데 잠시 뒤, 얼굴에 웃음을 활짝 머금고 돌아온 그의 손에는 담배 한 갑과 장미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고 한다.

"쉬쇼, 안녕하시오?"

그를 만날 때면 나는 언제나 그렇게 인사했다. 그러면 그는 늘 반갑게 대답했다.

"잘 지내고 말고. 요즘엔 냉장고까지 있다네."

 

그가 좋아하던 광장은 카프리와 포시타노였다. 가끔씩 이스키아로 가기도 했는데, 그 곳은 잘 사는 친척들이 있어서 환대를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친척 중에는 호텔 주인도 있었다고 하는데 친척들 문제에 관한 한 쉬쇼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잠자리 하나 구하려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힘들여 찾아가면서도, 친척들에게는 자신의 누추한 모습을 결코 보이려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가끔씩 이스키아에 있는 친척들에게 갈 때 그는 거나한 점심 식사에 초대를 받지 않으려고 길을 가는 동안 무화과를 질겅거리며 걷곤 했다고 한다.

언젠가 나는 쉬쇼에게 노란색 스웨터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좀 튀는 색깔의 옷이었다.

"고맙네. 하지만 노란색은 나한테 안 어울려. 살이 쪄 보이거든. 게다가 요새는 저녁 때 입는 옷으로 파란색이 유행이란 말씀이야."

예의 상 그 옷을 받기는 했지만 그리 오래 입지는 않았을 것이 틀림 없다. 재산 개념이 없던 사람이라, 길 가다 어느 담벼락에 걸쳐 놓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위스키 한 잔하고 바꿔 마셨는지도 모를 일이니까.

끼니를 때우기 위해 그는 식당 주인들과 일종의 협정을 맺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포시타노에 있는 식당은 모두 예순 하나일세. 돌아가면서 들를 테니, 두 달에 한 번씩 한 끼만 내라구. 아침 걱정은 말게나. 사겠다는 친구들이 즐비하니까."

두 달에 한 번씩 들르는 식당이었건만 그는 최소한의 요기거리 이상은 절대로 시키는 법이 없었다. 조개 소스로 만든 스파게티와 포도주 한 잔이 고작이었다. 손님의 신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결코 그런 특권을 남용하는 법이 없었다.

언젠가 이스키아 항구에 있는 산드로 페티의 멋진 란초 펠로네 식당에 좀 오래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이 식당을 광고해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주인 산드로가 그에게 사례조로 돈을 주겠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쉬쇼는 이 집에서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늘 '부지런한 매미'라는 제목의 회상기를 쓰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제목만 붙였지 실제로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런 쉬쇼가 <사자와 태양>이라는 비토리오 카프리올리 감독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자신이 비토리오 감독에게 불평을 할 정도로,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완전히 사람이 뒤바뀌고 만 것이다.

"자네를 좋아는 하네. 하지만 동시에 증오하네. 내게 돈을 줘서 파괴해 버렸으니 말일세."

<사자와 태양>이라는 영화는 우리 나폴리 사람들에게는 펠리니 감독의 <작은 악당들>에 견줄 수 있는 영화였다. 나른하고 흐드러지는 여름철의 휴양지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스웨덴 여자와의 만남, 밀라노 사람들처럼 오가며 가볍게 하는 식사 등 60년대 포시타노에서 일어나는 낭만적인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해변에 흐드러지게 누워 있는 사자로 등장하는 사람들로는 쥬쥬, 프리키, 쉬쇼, 사사, 코코, 쿤페티엘로 등이었는데 자기 이름 그대로 영화에 출연한 사람은 물론 쉬쇼 뿐이었다. 카프리올리와 함께 영화를 기획하고 만든 사람은 나폴리의 정경을 진솔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책, 『죽음의 상처』의 저자 두두 라 카프리아였다.

먼저 말한 대로, 이 영화에 출연해서 받은 돈 50만 리라는 그를 완전히 버리고 말았다. 처음엔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 모조리 써 버리려고 발버둥쳤는데, 다시 빈털터리가 되자 예전의 그 초연하고 점잖은 태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인삿말에 괜한 심술로 대답하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쉬쇼, 안녕하시오?"

"웬 참견인가? 잘 있고 말고."

그러나 잘 있다는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었다. 빈 속에 끊임 없이 마셔대는 술 때문에 건강이 남아 날 리 없었고, 결국 어느 해 성탄절 전날, 쉰 다섯의 나이에 간 경화로 죽고 말았다. 병원의 침대에서 홀로 임종을 맞았는데, 젊고 융통성 없는 당직 의사는 그의 마지막 소원인 위스키 한 잔도 거절했다고 한다. 어쩌면 그것 한 잔이면 며칠 더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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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카로테누토

 

일이란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 살려고, 싫지만 억지로 하는 그런 게 아니오.

단순히 담배 가게 주인 일을 '하는 것'과, 담배 가게 주인이라는 '존재가 되는 것'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아십니까?

 

 

"사장님, 우리 이탈리아 사람들의 가장 큰 단점이 뭔지 아쇼? 무슨 일이든 대충 대충 하는 거요.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을 한 번 지켜 봐요. 그리고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말해 보라니까요. 구두를 사는 사람들이 어쩌는 줄 압니까? 유리창 앞에서 가게 안에 있는 구두를 물끄러미 들여다 보는 거예요. 게슴츠레한 눈으로,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가는 불쑥 안으로 들어와서는 이러는 거 있죠. '저 구두 줘요! 260밀리짜리루요.' 맞는 사이즈를 갖다 주면, 발에 맞는지 보고는 그 자리에서 그냥 돈하고 바꿔 가는 거예요. 아니, 이게 구두를 사는 겁니까? 그럼 나는 뭘 하러 여기 있는 겁니까? 자동 판매기 하나 갖다 놓는 게 낫지."

하소연을 늘어놓는 사람은 노동기사 훈장에 빛나는 알폰소 카로테누토 씨다. 1896년에 설립된 '카로테누토와 그의 아들들'이라는, 초창기만 해도 왕가에 구두를 납품하던 쟁쟁한 구두 가게의 사장님이시다.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곳은 톨레도 가에 있는 가게이고, 알폰소 씨는 팔걸이가 너무 좁아 꼭 끼는 등나무 의자에 갇힌 꼴로 앉아 있다. 꽤나 더운 날씨인데도 양복에 넥타이를 맨 모습이 역사와 전통을 수호하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 주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와이셔츠의 목은 조금 풀어 놓기는 했지만….

때는 아침 아홉 시 쯤이고 가게 안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검은 와이셔츠에 안경을 쓴 점원만 체념한 얼굴로 알폰소 씨를 바라보고 있다. 하기야 알폰소 어른의 구두에 관한 변론은 이미 골백 번도 더 들었을 테니까.

 

"나는 말이오. 길 가는 사람들을 잡고 이렇게 묻고 싶어요. 미안하지만, 어디를, 뭣 때문에 그리 급하게 가는 거요?"

"젊은 사람들이라서 그렇겠지요."

그의 질문에 아무 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생각 없이 그렇게 내뱉었다.

"아니, 요즘 젊은이들도 젊은인가요?"

알폰소 씨가 정색을 하고 말했고, 나는 그의 말 뜻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씀이신지요?"

"아니, 선생. 솔직하게 말해 보쇼. 요새 젊은이들 춤 추는 것 본 적 있소? 나는 애가 둘이라 잘 알아요. 큰 놈이 스물 두 살, 딸아이가 열 여덟 살인데, 가끔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지요. 저희들 말로는 몸을 흔든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걔들 몸 흔드는 걸 몇 번 봤지요. 아니 그런데 그게 어디 춤을 추는 겁니까? 무슨 큰 일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얼굴은 잔뜩 찌푸리고, 세상의 고통은 온톤 다 제 것인 양, 춤 추는 사람이 웬 슬픈 얼굴이랍니까? 같이 추는 사람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제 기분만 낸다니까요! 그렇게 하는 게 하드 록이라나요. 우리 때는 완전히 달랐지요. 왈츠에, 차차차에, 맘보에, 코티용에…. 코티용 생각나오? 체인징 파트너 같은 것 말이오. 요새 젊은이들은 그런 것 안 해요. 우리 때는 코티용을 추다가 요절복통 웃어대곤 했는데 말이오."

 

"헌데 말이오.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내 나름의 이론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론이라고나 할까요. 우리 세대는 모두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우리 세대만 해도 모두 엄마 아빠가 살던 아늑한 방에서 태어났다 이겁니다. 그런데 요새 젊은 사람들은 모두 병원에서 태어났지요. 한 마디로 병원 세대란 말입니다. 그 애들이 태어나자마자 본 게 뭡니까? 고작 해야 의사님 얼굴이거나 아니면 응급 수혈용 혈액 주머니 밖에 더 봤겠어요?"

"근데, 저…. 아까는 구두 얘기였던 것 같은데…."

나는 다시 오늘의 주제로 되돌리려고 한 마디 했다.

"아, 그렇지요. 구두 얘기 하다 말았죠?"

기사 양반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요새는 구두가 뭘 뜻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한때는 구두가 곧 명함이나 다름 없었고, 사회적인 지위를 나타냈는데 말입니다. 알라바르디에리 가에 있던 아버지 구두 가게에 손님에 올 때면 아버지와 조수인 오스카리노 아저씨는 사보이아 왕국의 왕자처럼 손님을 모셨지요. 먼저 커피를 대접하고, 얘기를 나누는 겁니다. 발이 편히 쉬어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요. 그 다음에 치수를 재는 겁니다. 먼저 오른 발을 쟀는데, 아버지는 이리저리 발을 잘 살펴 보았지요. 그러고는 호두나무 판자에 발을 올려좋게 했습니다. 발이 바닥에 착 달라붙는지 아니면 발허리께가 구부러졌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지요. 발이 완벽하면 아버지와 오스카리노 아저씨는 칭찬을 했어요. 때로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까지 불러다가 구경을 시키기까지 했는걸요. 그러고 나서 석회로 거푸집을…."

그 때 내가 말을 멈추게 할 생각으로 끼어 들었다.

"아, 그러니까, 발 모형을 만드는 거군요. 그래야 손님이 다시 치수를 재려 오지 않도록 말이죠?"

"아니오. 그런 게 아니라…."

알폰소 씨는 내가 말을 끊자 언짢아하는 기색을 보이며 계속했다.

"석회로 발 모양을 뜨는 건 완전한 구두를 만드는 여러 단계 중 겨우 첫 번째에 지나지 않는 거요."

"다른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전 그냥 지금까지 하신 말씀을 정리해 보려던 것 뿐입니다. 맞춤 구두하고 다른 구두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몰라서…."

"거 참 이상하군요. 선생님은 젊은 사람도 아닌데 꼭 젊은 애들처럼 말을 하십니까? 너무 서두르시는 것 같은데요."

알폰소 씨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힐끗 쳐다봤다. 나 역시 조금 반발하고 싶었다.

"아뇨, 천만에요. 열심히 듣고 있는데요."

"좋습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설명하죠."

알폰소 씨는 와이셔츠 목을 조금 열어 젖히고, 칼라와 목덜미 사이에 손수건을 끼워 넣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카로테누토 사의 목표는 구두를 파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아니었다고 하는 편이 낫겠군요. 최대한 완벽한 구두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였으니까요."

"이상적인 구두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거요. 이상적인 구두! 그거 참 딱 맞는 말이오! 그럼 지금부터 차근차근히 그 얘기를 해 봅시다. 만약 사장님이 우리 아버지 시대에 살았다면 사장님은 우리 카로테누토와 그의 아들들 회사에 '데 크레센초 오른발'과 '데 크레센초 왼발'을 남기게 되었을 거요."

"그럼 모든 손님들의 발 모형을 다 가지고 있었나요?"

"웬만한 나폴리 귀족과 전문직 어른들의 발 모형은 모두 다 있었소."

 

"지금은 맞춤 구두를 만들지 않는가요?"

"거의 하지 않소.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 않소? 생각해 봐요. 옛날에는 처음 구두를 맞추러 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먼저 신던 낡은 구두 한 켤레를 가지고 와서 아버지께 보여 주어야 했어요."

"낡은 구두 한 켤레요?"

"그렇다니까요? 어떻게 닳았는지 보여 줘야 했으니까 말이오."

"아니, 신발은 모두 똑같이 닳는 게 아닌가 보지요?"

"오, 이런 참. 그런 말 하면 신발 모독죄에 걸릴지 몰라요. 사람마다 신발이 닳는 게 다른 건 당연하지요. 보폭이 길면 뒤꿈치가 먼저 닳고, 걸음걸이가 재면 앞창이 먼저 닳아서 구두가 마치 오징어 뼈처럼 쭈글쭈글해지는 거요. 다리가 꾸부정한 사람은 '기사(騎士) 다리'라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구두 바깥 쪽부터 닳아요. 손님이 가게에서 나가면 아버지는 그 사람이 알라바르디에리 거리를 벗어날 때까지 바라보곤 했는데, 그 사람의 걸음걸이를 연구하는 거였어요. 신발 닳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면 일단 염소 가죽으로 만든 예비 신발을 신게 했지요. 손님은 이 예비 신발을 한 달 동안 신고 다녀야 했어요. 그러고 나서야 최종적으로 진짜 구두를 만들었죠. 정말이지 그런 구두를 신고 거리에 나서면,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어요. 건너편 인도에 있는 사람까지 다 알아 봤다니까요. 사람들은 '저거 카로테누토 구둔데!' 하고 말했지요."

 

"아버님께서는 구두 하나 하나를 온 영혼을 다해 만드셨군요."

"바로 그거요. 어떤 때는 손님들과 심하게 다투기도 했어요."

"다투다니요?"

"예를 들면 델 발조 백작 같은 자하고 그랬는데, 엠마누엘레 델 발조 백작은 새 구두라면 죽어라 싫어했어요. 그래서 하인 중에 발 크기가 같은 안토니오라고 하는 사람에게 한 열흘 쯤 먼저 신어서 길을 들이곤 했으니까요. 그 동안 여러 가지 다 감안해서 만든 공이 헛수고가 된 우리 아버지 기분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쇼!"

"그렇지만 저어, 기사 어른! 좋은 구두 한 켤레가 뭐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아니, 지금 누구 놀리는 거요?"

"천만에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발에 대해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내 말해 주리다. 그런데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알아야 할 게 있소. 인생이란 말이오, 사랑과 일이 반반이란 말이오. 내가 말하는 일이란 불평스럽게 하는 그런 일이 아니오.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 살려고 싫지만 억지로 하는 그런 게 아니란 말이오. 천만에요. 오히려 내 인생에 의미를 주기 위해 하느님이 준 좋은 기회란 말입니다. 담배 가게 주인이나, 은행원이나, 기계공도 자기 일을 사랑하면 행복한 사람이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할 수밖에요. 그저 어떻게 하면 근무 시간이나 줄여 볼까 궁리를 하게 될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하루에 여섯 시간 일을 한다 해도 그 시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겁니다. 단순히 담배 가게 주인 일을 '하는 것'과 담배 가게 주인이라는 '존재가 되는 것', 다시 말해 어떤 일을 '하는 것'과 '어떤 존재가 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런 말입니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구두에 대해 이해하도록 가르치셨지요. 함께 가게 밖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두를 살펴보게 하셨어요.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얘야, 저건 괜찮은 구두고, 저건 아니야. 저건 앞 장식 가죽이 너무 짧고, 이건 목이 땡겨서 구두가 휘었어. 저기 저건 구두도 아니지…. 이건 진짜 좋은 건데! 이것도 괜찮고…. 저건 여러 개를 한꺼번에 만든 거야.' 그렇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나는 구두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배운 겁니다. 이젠 손님이 가게에 들어오면 우리 카로테누토 구두를 신은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와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딱 맞는 구두를 골라 주고 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아, 참 아까 질문을 뭐라고 했더라? 좋은 구두 한 켤레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그랬던가요? 그야 당연하지요. 저녁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구두를 한 번 보시구려. 완전하고, 날렵하고, 깨끗하고, 클래식한 구두가 거기 반들거리며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장님이 하루 동안 한 일을 지켜 보면서 친구가 되어 준 귀한 물건 아닙니까?"

"그런데도 요새 사람들은 구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요. 그저 불쑥 들어와서는 '저 구두 줘요! 260밀리짜리루요' 하고는 발에 맞는지 꿰지른 다음 그냥 돈으로 바꿔 간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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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토레 팔룸보

 

사람이건 사물이건 그 기질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훌륭한 수학 선생 답게

여러 사람이 말하는 의견의 중용 또는 평균치를 내서 결론을 내야 한다.

 

 

"디 코스탄초 선생…."

"데 크레센초라고 합니다만."

"아, 그렇군요. 데 크레센초 선생.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시오. 하지만 선생께서 쓴 나폴리적인 특성이라는 데 대해 나는 도무지 관심이 없소이다. 내 생각요? 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잡니다. 중용을 믿는 사람이라는 말이지요. 경험이나 확률이나 통계에서 따 온 중간치를 믿는다는 말입니다. 숫자를 대고 싶다면 좋습니다. 얼마든지 들어 드리지요. 엉뚱한 소리를 늘어 놓겠다구요? 좋습니다. 고맙긴 하지만 그런 말은 사양하겠습니다!"

"선생님!"

뱃머리에서 닻을 손에 든 채, 타니노가 소리쳤다.

"여기 쯤이면 되겠지요? 닻을 내립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아말피 해안 앞 바다의 갈리 섬 근처이다. 갈리 섬이란, 말이 섬이지 포시타노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세 개의 바위다. 날씨는 무더운데 물은 호수처럼 잔잔하고 하늘은 맑다. 수평선에는 구름 한 점 보이지 않고 바람도 없다. 팔룸보 선생님은 잠바티스타 비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분으로, 오늘은 점심 포함해서 20만 리라에 어선을 빌려 이 곳까지 나왔는데 배에는 선원을 빼고도 우리 일행 다섯이 있다. 나와 팔룸보 선생과 팔룸보 선생님의 부인, 딸 미켈라와 미켈라의 친구 세레나. 세레나는 생물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사실 바다에서 하루를 보내기 위해 20만 리라를 쓴다는 건 고등학교 선생님에겐 부담 가는 일이다.

팔룸보 선생의 한 숨 섞인 사연은 이렇다.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니까요. 제 딸 아이가 로마에 있는 세레나의 집에서 석 달이나 묵었으니, 이번에 제가 갚는 겁니다. 그럴싸한 무언가를 딸 아이 친구에게 보여 줘야 하잖겠어요?"

 

우리는 모두 수영복을 입고 있는데, 팔룸보 선생만은 단정한 차림 그대로이다.

"선생님, 옷 안 벗으세요?"

뱃사람 타니노의 말에 팔룸보 선생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안 벗을 거요."

"왜 안 벗으세요?"

"이게 좋으니까."

팔룸보 선생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치면서 퉁명스레 말한다.

"난 말이요, 태양과 바다와 모래라면 질색이오. 수영도 싫고 피부 태우는 것은 더욱 싫소. 배 위에 말린 무화과처럼 꼼짝 없이 몇 시간이고 누워 있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해요. 글쎄, 나는 사람들이 뜨거운 여름 날 햇볕을 쬐는 거나 추운 겨울 날 눈을 찾아 나서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그 반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오?"

 

미켈라가 멋지게 물 속으로 다이빙했다가 솟아나와서 세레나에게 똑같이 해 보라고 권한다.

"세레나, 너도 해 봐. 물이 너무나 좋은걸!"

그러나 세레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 손으로 물만 젓다가 모기만한 소리로 고백한다.

"상어가 있을까 봐 무서워. 포시타노에서 들었는데, 여긴 상어가 나오는 곳이래."

팔룸보 선생은 이 말을 그냥 흘려 보내지 않았다.

"그런 멍청한 얘기를 믿니? 상어는 없어!"

"여기 갈리 섬에는 상어가 없나요?"

"갈리 섬에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해안 어디에도 상어는 존재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씀이세요?"

"상어에게 물렸다는 사람 들어 봤니? 있다면 어디 이름을 대 보렴. 상어한테 물린 사람 댈 수 있니? 없지? 그래서 상어가 없다는 거야. 차라리 자동차 사고를 겁 낸다면 이해가 가지만 상어가 무서워 수영을 못 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이탈리아에서 한 해에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아니? 죽거나 다치는 사람이 무려 20만 명이나 된다잖니? 그런데 로마에서 이 곳 포시타노까지 자동차로 오면서 무서워하지 않던 네가, 지금껏 사람을 해친 적이 한 번도 없는 불쌍한 동물이 겁 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냐? 그건 네가 통계적인 사고 방식이 없다는 뜻이야."

"하지만 식인 상어 얘기도 못 들어 보셨어요? …."

기 죽은 소리로 얼버무리는 세레나의 말을 팔룸보 선생이 재빨리 가로챘다.

"영화에나 나오는 얘기지. 문제는 그 상어가 네 머리 속에, 네 잠재의식 속에 꽉 틀어박혀 있다는 거야. 유령도 마찬가지고. 하기야 그런 것 말고도 우스꽝스러운 얘기는 얼마든지 있지만…."

 

그 때 팔룸보 선생의 부인인 아순타 사모님이 끼어들었다.

"그럼 유령도 없다는 말이에요?"

"그야 당연한 말이지. 유령 같은 것은 없어요. 아까 상어 얘기할 때와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거요. 당신 이런 말 들어 본 적 있소? 저기요, 어젯밤 잠을 자는데 글쎄 유령이 둘이나 나타나서 무서워 혼났다우 하는 말 들어 본 적이 있냐는 말이오."

"그럼, 그 흔한 유령 얘기는 뭐죠? 장롱이 흔들거린다느니,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무당 얘기니 하는 건 뭐죠? 당신 설마 저 세상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겠죠?"

"한심한 사람들 같으니. 죽은 다음의 세상과 유령은 별개의 얘기예요. 유령이 정말 있다면 살인자들은 모조리 없어질 거요. 어떤 살인자가 밤에 마음 놓고 잠을 잘 수 있겠소? 유령이 정말 있다면 수천 명의 사람을 죽인 나치스 당원 같은 사람이 하나라도 살아 남을 수 있을 것 같소?"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유령 중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유령도 있다는데…."

"그렇다면 뭣 때문에 유령을 두려워하는 거요? 아니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유령이라면 그런 유령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겠소? 저 세상 소식을 물어 볼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껏 나는 단 한 번도 유령을 본 적이 없구려."

 

바로 그 때 나는 처음에 하던 얘기를 되살리려고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면 선생께서는 똑같은 이유로, 흔히 말하는 나폴리 사람들의 특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겁니까? 유령이 존재하지 않듯이 전형적인 나폴리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아니오, 그건 그렇지 않소. 내 말은 그게 아니오, 디 코스탄초 선생."

"데 크레센초라고 합니다만."

"아, 참. 데 크레센초 선생이라고 그랬지요. 미안합니다. 학교 다닐 때 친구 중에 디 코스탄초라는 친구가 있어서…."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 짐짓 위선적인 말투로 대꾸했다.

"걱정 마십시오. 그게 더 부르기 쉬우시면 그냥 디 코스탄초라고 부르세요. 그건 그렇고…. 선생님 생각에는 나폴리 기질이라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미안하지만, 데 크레센초 선생,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 바로 '나폴리 기질이 뭐요?' 하는 질문이오. 정말이지 난 그 말만큼은 못 참겠어요. 굳이 답하라면 이미 도메니코 레아라는 사람이 한 대답을 그대로 하고 싶소. '모르겠소' 라고 말이오. 그것 말고는 사실 적당한 대답이 없어요. 나폴리 사람이니, 나폴리 기질이니 하면서 나폴리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말하려는 것 같은데, 어디 한 번 말해 보시오. 이렇게 광범위하고 복잡한 현실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난 저 머저리 같은 지성인이라는 작자들이 하는 말을 들을 때면…."

그 때 팔룸보 부인이 남편의 상스러운 말투를 그냥 두지 않았다.

"살바토레, 애들이 들어요!"

팔룸보 선생님은 목소리를 조금 낮추더니 계속했다.

 

"그 멍청한 지성인들이 민속이니, 만돌린이니, 빈정거림이니 하며 나폴리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아는 척 하는 말을 들으면 역겹기까지 하다니까요. 모조리 감옥에 처 넣고 싶을 정도로 말이오. 아니 그 사람들을 모두 나폴리의 빈민 지역에서 강제로 살아 보게 하고 싶어요. 나폴리 서민들의 삶이 어떤 것이고, 그 곳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으며, 그들이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도록 말이오. 그러고 나서 그 사람들에게 그 곳에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만돌린을 본 적이 있는지 물어 보고 싶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폴리에서 산 지 50년이나 되지만 만돌린이라는 악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나폴리랑 만돌린을 한 묶음으로 묶은 사람이 누군지 참으로 기발한 발상 아니겠소? 아니 나폴리의 구석진 골목에서 평생 밥 한 끼 먹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 곳에 대해 말을 할 수 있답디까? 문제는 제노바나 토리노나 벨레트리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냥 재미있는 사건으로 끝나지만, 똑같은 일이 나폴리에서 일어나면 그건 바로 나폴리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요. 그래서 같은 말을 하더라도 빈정거리는 투로 하느냐 아니냐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어요. 빈정거리는 시선이 아니라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건 기본 아니오? 나폴리 사람들이 낙천적이라거나, 임기응변에 능하다거나, 질서의식이 부족하다거나, 가족 간의 유대가 강하다거나, 정이 많은 사람이라거나, 무식한 사람이 많다고 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요."

"실제로는 말이오, 디 코스탄초 선생, 나폴리 사람들에 대해서 온갖 말들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 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어요. 나폴리 사람들이 인간미가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반대 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나폴리는 뉴욕하고 달라서, 거리에 사람이 쓰러져 있으면 우루루 몰려들어 도와 준다고 하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듣습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어때요? 골목길에서 강도를 만났는데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 말이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도매금으로 넘겨 버리는 나폴리라는 지역이 얼마나 넓은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인구만 해도 400만인가 500만인가 되잖소. 사실 나폴리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그 지역이 어디서 어디까집니까? 포추올리에서 스타비아의 카스텔마레까지라 하더라도 끊임 없이 집들이 늘어서 있잖아요? 사는 사람도 다양하고, 서로 다른 사투리에 관습도 다양하고 전통도 다르단 말입니다. 이쯤 되면 한 마디로 일반화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소?"

 

"그렇긴 합니다만, 선생님의 평균 이론에 바탕해서, 나폴리인 고유의 특성이라는 것을 이끌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것 보세요, 데 크레센초 씨…."

"아이구, 이번엔 제대로 불러 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

"중간치는 틀림 없이 존재하고 말고요. 계산이 어렵긴 하지만 틀림 없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처럼 문제가 불확실할 경우,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바라는 대로 결론을 내리기 쉽다는 거요. 그러니 평균치의 평균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겠지요."

"무슨 말씀인지 아직 못 알아 듣겠는데요."

 

"데 크레센초 씨, 10여 년 전, 안토니오 기렐리라는 사람이 20여 명의 나폴리 출신 지식인들에게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나폴리 기질이라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나폴리 기질은 아직도 존재하는가? 질문을 받은 사람은 모두 자신의 의견을 냈는데 대답은 모두 서로 다른 내용이었소. 나폴리 기질이 지극히 좋은 것이라고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우 경멸한 사람도 있었소. 비코나 크로체 같은 사람들이 한 말을 인용한 사람도 있었고, 아무래도 좋다는 나폴리 사람들 특유의 기질을 강조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이 모두 제각각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진실된 의견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사람들의 대답이 모두 제각각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옳은 말이라는 것이었소. 루이지 콤파뇨네가 말하는 절망적인 나폴리도 맞는 것이고, 라파엘레라 카프리아가 말하는 관광객이나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는 돈 안나 섬의 아름다운 바닷가 모습도 맞다는 것이었지요. 당연히 오르테세처럼 성격이 괴팍하고 폐쇄적인 여자에게서 주세페 마로타처럼 추억 속의 나폴리를 진정한 나폴리라고 말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어요?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오르테세 같은 사람이냐 마로타 같은 사람이냐를 떠나 누구든 자기가 느끼는 대로 나폴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소.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그가 말하는 나폴리는 항상 옳은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면 역사적인 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적인 현실이 중요하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 말이오. 보르헤스의 말처럼 나폴리는 징이나 북을 칠 때 사용하는 북채와 같은 것이오. 북채는 언제나 같은 것이지만 그것으로 두드릴 때 나는 소리는 여러 가지라는 말이오. 징이나 북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오."

기회다 싶어 내가 재빨리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면 징이나 북은 우리가 되겠군요? 우리는 두드리는 쪽이 아니라 두들겨 맞는 쪽이니까요…."

"그래요. 한 마디로 말해서 나폴리 기질이 무엇인가 알려면 북이나 징에서 나는 소리의 중용 또는 평균치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선생, 이렇게 가정해 봅시다. 내가 선생에 대해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선생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생의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근데 이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십니까? 어떤 사람은 '그 친구는 이러니러한 사람이오' 라고 할 거고 다른 사람은 '천만에, 그건 옳지 않아요. 그 친구는 저러저러한 사람이오' 라고 할 거라 이런 말입니다. 그러면 나는 훌륭한 수학 선생 답게 여러 사람이 말하는 의견의 평균치를 내서 이렇게 결론을 낼 거라는 말입니다. '그래, 디 코스탄초라는 사람은 그러저러한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