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사 -下- 플라톤

플라톤

 

자유에 굶주린 백성의 지도자가 백성의 요구대로

취할 때까지 술을 부어 주는 사람이라고 가정해 보라.

만약 이 지도자가 점점 심해지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는다면

그는 폭군으로 치부된다.

 

 

아리스톤과 페릭티오네의 아들이요, 플라톤(이 예명은 어깨의 넓이 때문에 생긴 것이다. 플리우스의 티몬은 『실로이』에서 플라톤이 어깨가 딱 벌어진 사람이라고 묘사하고 있다)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아리스토클레스는 기원전 428년 경, 아테네에서 황소자리의 별빛 아래 태어났다. 전설에 따르면 플라톤이 태어난 것은 아폴론이 태어난 날이었다고 하는데(현재의 5월과 6월에 해당하는 타르겔리온 달의 제7일), 플라톤의 부모는 이에 대해 아폴론 신에게 감사하기 위해 아직 강보에 싸인 아이를 데리고 히메토스 산 꼭대기로 갔다고 한다. 산 정상에서 감사의 의식을 하려고 하는데 난데없이 벌 떼가 나타나 아기의 입에 꿀을 흘려 주었다.

이 이야기는 거의 십중팔구 아니 백 퍼센트 꾸며 낸 이야기이다. 하지만 고대 사람들이 그의 천재성에 얼마나 감탄했는지를 보여 주는 일화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귀족 출신이었다. 아버지 쪽은 아테네의 마지막 왕 코드로스의 후손인데 그렇게 따지면 포세이돈의 후손이기도 한 것이다. 외가 쪽으로는 외증조부의 증조부가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요 입법자인 솔론의 동생 드로피데스이다. 역시 외가 쪽으로 삼촌인 카르미데스와 크리티아스는 30인 참주 중의 일원이었다. 한 마디로 이 집안은 기원전 5세기의 케네디 가라 할 만한 명문 집안이었고, 그러다 보니 플라톤 역시 자연스레 정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시라쿠사 사람들에게 보낸 일곱 번째 편지(시칠리아 여행에 대해 쓴 짤막한 회상기인 이 편지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 진위에 대해 의심을 품는 사람이 없었지만, 최근 컴퓨터 분석 결과, 그 시대 인물인 스페우시포스가 쓴 가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우리는 정보화 기기에 적극 찬동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이 직접 쓴 글이라고 믿고 있다)에서 플라톤 자신이 정치에 관심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그런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어렸을 때, 나는 다른 아이들이 겪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독립할 나이가 되면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민주정이 들어서고 몇 해 동안 정치계가 돌아가는 꼴에 실망한 그는 정치가들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만인의 존경을 받던 정치가 페리클레스도 이미 세상을 뜬 지 오래고, 그와 함께 아테네의 계몽주의 시대도 막을 내렸으니 플라톤의 실망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사실 페리클레스의 뒤를 이은 선동 정치가, 클레온과 히페르볼로스는 큰 그릇이 되지 못했고, 알키비아데스는 뛰어난 머리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인 면에서 믿을 만한 구석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플라톤이 민주정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몇 해 뒤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났는데, 아이고스포타모스 해전의 철저한 패배로 말미암아 아테네에서는 승자 스파르타의 효율성이 일종의 신앙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아테네에 30인 참주제가 부활하게 된 것은 그런 사정 때문이었다. 크리티아스 삼촌과 카르미데스 삼촌이 플라톤에게 정치를 하라고 권했던 것도 일 년이 채 안 되는 이 시기였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소위 귀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체제 아래서 당한 불이익에 복수를 일삼는다는 것을 확인한 플라톤은 완전히 정치를 포기하고 몸과 마음을 다해 오로지 철학에만 전념하게 되는 것이다. 플라톤으로서는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처단한 원흉도 따지고 보면 새로이 세워진 민주정 체제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평생 반민주적인 태도를 지니고 살았다고 해서 놀랄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소크라테스와의 만남은 플라톤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 없는 사건이었다. 스무 살까지 시만 쓰며 살던 플라톤은 어느 날 시 낭송 대회에 참석하러 극장에 가다가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소크라테스를 보게 되었다. 젊은이 숲에 싸여 있는 늙은이가 자신의 정신을 이끌어 줄 안내자라는 걸 알아 본 그는 그 때까지 썼던 시를 모두 불태워 버리고 그를 따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스승이 죽자, 플라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박해를 피해, 메가라에 사는 에우클레이데스의 집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3년 동안 살았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에 갈증을 이기지 못한 어느 날, 당시로서는 철학자들의 기초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여행을 시작했다. 키레네의 수학자들을 방문하기도 했고, 이집트의 예언자들과 이탈리아의 피타고라스 학파도 방문했다. 코스를 마치려면 소아시아의 마기인들도 찾아가야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 쪽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터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칠리아에 갔던 것은 관광이 목적이었고, 엠페도클레스가 자살한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가 정확히 어디였는지 보러 갔던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이 곳에서 자신의 생애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 바로 디온을 만난다.

 

디온은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오스의 처남이었다.*

권위주의적이고 잔인한 사람이었던 참주 디오니시오스와는 달리 디온은 이상주의자였는데, 플라톤의 명성이나 정치적인 생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시라쿠사에 모시려 생각하고 있었다. 매형의 생각을 바꾸게 해서 좀 더 나은 정치를 펴게 하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디온이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플라톤은 플라톤 나름대로 궁정의 생활에 환멸을 느꼈고, 디오니시오스는 디오니시오스대로 신탁의 말씀처럼 말을 해 대는 아테네 양반을 일그러진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대(大) 디오니시오스는 같은 날 두 여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도리데와 아리스토마케라고 하는 여자였는데, 디온은 아리스토마케의 동생이었다. 결혼 첫날 밤, 디오니시오스는 두 부인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부터는 교대로 파트너를 바꿨는데 홀수 날은 도리데와, 짝수 날은 아리스토마케와 잠을 잤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기원전 4세기 경 시라쿠사 궁전의 분위기는 한 번 연회가 시작되면 90일 동안 계속되는 분위기였다. 여러 해 뒤, 플라톤은 시칠리아에서 보낸 사절을 되새기면서 "사람들이 부럽다고 하는 이탈리아식 연회며, 하루에 두 차례씩 배가 터지도록 먹는 음식 그리고 밤이면 누군가가 항상 옆에 있어 주는 그런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 고백한다.

그런데 더욱 상황이 나빠진 것은, 디오니시오스와 플라톤이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부터였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주제는 덕에 관한 것이었다. 우선 플라톤이 덕이 있는 사람은 참주보다 더 행복하다는 말로 서두를 꺼냈다. 그러자 그러잖아도 합당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던 디오니시오스가 느닷없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 하러 시칠리아에 왔는가?"

"덕이 있는 사람을 찾으러 왔소이다."

"벌써 찾았다고 생각지 않는가?"

"천만의 말씀이오이다."

"그대의 말에는 노망기가 있도다."

디오니시오스는 어느 때보다도 얼굴을 붉히며 외쳤다. 플라톤도 지지 않았다.

"나으리의 말에는 폭군의 말투가 스며 있구려."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아 플라톤은 오랏줄에 묶여 스파르타 사람들의 배에 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이기나의 노예 시장에 데려가 팔아 버리라는 불호령과 함께.

"어차피 철학자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깨닫지도 못할 걸세."

디오니시오스는 자신의 결정을 그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천만 다행으로 마침 아이기나에는 리비아에서 온 플라톤의 팬이 한 사람 있었다. 키레네의 안니케리스였다. 이 사람은 20미나를 주고 플라톤을 풀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를 세우라며 땅을 살 돈까지 주었다. 이렇게 하여 실현된 아카데미아의 설립은 고대 세계의 문화 활동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아카데미아는 유명 인사들의 묘지가 늘어선 길을 따라, 아테네에서 2킬로미터 쯤 떨어진 넓은 공원 안에 세워진 학교였다. 『파이드로스』에 그려진 이 학교의 정경은 이렇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풀밭이었지요. 비스듬한 언덕에 부드럽게 자라나, 그 위에 누우면 편안하게 머리를 고일 수 있었습니다.

 

이 학교 바로 옆에는 아카데모스라고 하는 영웅에게 헌납된 숲이 있었는데, 솔직히 이 영웅이 무엇으로 그런 대접을 받을 만한 영웅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운 좋은 사람이 많다지만 이 사람처럼 운 좋은 사람이 있을까! 아카데모스라는 이 사나이는 수 세기를 두고 성스러운 문화의 전당들이 모두 자기 이름을 따서 지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바로 이 곳에 자리 잡은 플라톤의 주위에는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 들었다. 남자 제자로는 크세노크라테스, 스페우시포스, 아리스토텔레스, 폰토스의 헤라클레이데스, 칼리포스, 에라스토스, 티몰라오스 등이 있고, 여자 제자로는 라스테나이아와 남장을 하고 다닌 악시오테아가 있다. 이들의 생활은 개울이 흐르는 그늘 길에서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평화로운 삶이었다. 시라쿠사의 디온이 다시 그 곳으로 돌아와 달라는 편지를 끊임없이 보내지만 않았다면 이 곳에서 보내는 평화로운 생활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디온이 또 다시 편지를 보낸 것은 대 디오니시오스가 죽고 그 자리를 맏아들 소 디오니시오스가 물려 받았기 때문이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아버지 디오니시오스는 아들이 자기 자리를 넘볼까 두려워한 나머지, 어릴 때부터 집 안에 가두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내내 목공 일을 하며 의자며 작은 등이며, 탁자를 만드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군주가 권력을 잡자, 그가 온건한 성품이라는 걸 알고 있는 디온은 플라톤식 공화국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첫 번째 여행에서 쓴 맛을 본 경험이 있는 플라톤은 사실 시칠리아로 항해할 생각이 없었다. 거리가 멀다는 것 말고도 젊은이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라서 온갖 영예로운 대접을 다 받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그를 시기하는 신하들이 디온과 그가 역모를 꾸미고 있다고 모함을 했던 것이다. 어쩔 줄 몰랐던 젊은 왕은 우선 삼촌을 추방하고, 플라톤은 출국 금지령을 내렸다. 출국 금지령을 내린 것은 아테네에 돌아가 그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다니는 꼴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카데미아에 그렇게 얘깃거리가 없어 그런 얘기나 하리라 생각하오?"

플라톤이 빈정거리며 쏘아 붙인 말이었다.

플라톤은 그 곳에 머무르는 동안 내내 융숭한 대접을 받았지만 사실은 갇혀 있는 것이나 다를 게 없었다. 젊은 왕과 외삼촌 사이의 대립은 플라톤이 외삼촌만 좋아한다는 시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따위의 얘기는 있지도 않았다. 소 디오니시오스는 철학을 사랑하기는 했지만 말 뿐이었고, 실제 생활에서는 아버지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위인이었다. 플라톤은 다시 한 번 이 곳에서 탈출하는 데에 성공하고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로 돌아가는데, 다른 제자들은 물론 디온과도 다시 만나게 된다.

 

플라톤의 시칠리아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몇 해가 지나서 디오니시오스 자신이 플라톤에게 다시 시라쿠사로 돌아와 달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보낸 것이다. 타란토의 피타고라스 학파를 통해서 부탁을 하기도 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스승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삼단 노를 단 배를 보내기도 했고, 심지어 그가 시라쿠사로 돌아오지 않으면 디온의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플라톤은 이미 나이 일흔 일곱이 넘은 노인이었다. 아테네에서 시라쿠사까지 가는 여행은 당시로서는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디온과의 우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는 다시 저 '죽음의 카립디스 소용돌이(이것은 플루타르코스가 『디온의 생애』에서 한 말인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플라톤이 아테네에서 시라쿠사로 가면서 무엇 때문에 상식적인 항로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한 오늘의 메시나 해협인 '죽음의 카립디스 소용돌이'를 지나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를 지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디오니소스는 또 다시 자기가 한 약속을 꿀꺽 삼켜 버렸고, 플라톤은 세 번째로 목숨을 건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타란토 출신의 친구이자, 피타고라스 학파에 속한 철학자였던 아르키타스가 한밤중에 삼단 노를 가지고 와 피신시켜 주었기 때문에 겨우 도망을 칠 수 있었다. 그 뒤의 일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밝히자면, 몇 해 뒤 디온은 800명의 청년으루 무력 혁명을 일으켜 디오니시오스를 옥좌에서 몰아내고 말았다. 하지만 얼마 뒤, 디온은 플라톤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칼리포스라고 하는 사람에게 배신 당해 죽음을 맞게 된다. 이렇듯 제자들 중 8.33퍼센트는 언제나 문제가 있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인 것이다(8.33퍼센트는 12분의 1. 열두 제자 중의 하나는 언제나 문제아라고 주석을 붙이면 쉽게 이해가 가리라).

 

플라톤은 여든 한 살을 채우고, 어떤 결혼식 연회장에서 숨을 거두었고, 영웅 아카데모스의 숲에 묻혔다.

그의 생애에 덧붙이고 싶은 말은, 기나긴 한 평생 동안 그가 웃는 얼굴을 본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상국가]

 

그러면 이제 한 가지 가정을 해 보기로 하자. 철학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플라톤의 『국가』를 집어 들고 처음의 다섯 권을 읽었다고 치자. 책을 다 읽은 다음 그는 『국가』를 쓴 플라톤이라는 사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히틀러나 스탈린, 아니면 폴 포트 같은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런 생각을 가졌던 이 사람이 역사 속에서 그토록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잠깐!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라구!"

당구도사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일 것이다.

"우선 그 『대화편』이라는 것부터 읽어 보고 말을 하자니까!"

 

『국가』는 케팔로스의 집에 친구들이 모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참석한 사람은 폴레마르코스, 에우티데모스, 글라우콘, 트라시마코스, 리시아스, 아데이만토스 그리고도 몇몇이 더 있다. 이 날의 주제는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케팔로스인데, 그는 정의가 빚을 갚는 것이라고 말한다. 폴레마르코스는 친구들에게 선을 행하고 적들에게는 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트라시마코스는 정의가 강한 자에게 유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까지는 그저 여러 가지 의견들로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러나 이 때 소크라테스가 끼어들면서 대화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여기서 잠깐, 정의라든가 민주주의 등 가장 기본적인 개념들도 그리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오늘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해 둔다. 그러기에 플라톤이 하는 말 중에는 우리가 보기에 그야말로 반동적인 말로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프랑스 혁명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우리들에게 정의란 무엇보다도 '에갈리떼', 곧 '시민권의 평등'을 뜻한다. 하지만 플라톤과 그의 친구들에게 정의란 '질서'를 의미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본분에 간섭함이 없이 각자 자기의 본문에 충실할 때 이루어지는 질서가 곧 정의였다. 어쨌거나 여기 『국가』의 몇 부분을 리더스 다이제스트식으로 추려서 소개하기로 한다.

 

소크라테스 말하기를,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하나의 국가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살펴 보기로 하세."

"좋습니다."

모두 한 목소리로 찬성하자, 우리의 철학자 어른께서 계속한다.

"내 생각에는 말일세. 하나의 국가가 태어나는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네. 인간이란 필요한 게 워낙 많아서 서로서로 도우며 여럿이 함께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일세. 이렇게 함께 모여서 사는 걸 국가라 부르기로 하세."

"물론이지요."

역시 아무런 이견이 없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다른 사람들은 그저 삥 둘러서서 들어 주기만 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먹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는 집이고, 세 번째는 입을 옷이 아니겠나? 계속하자면 한이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나라에 있어야 할 사람은 농부일세. 집을 짓는 미장이도 있어야 하고, 옷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신발 만드는 사람도 있어야겠지. 이들 각 사람은 자기 하는 일을 전문화해서, 자기가 필요한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까지 만들어 내야 하네. 그리고 최대한 능률을 높이기 위해, 자기가 맡은 일만 하지 다른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하네. 하지만 농부와 미장이와 옷 만드는 사람이 일을 하려면 쟁기니, 흙손이니, 가위니 하는 도구가 있어야 하니, 목공과 대장장이와 다른 기술자들이 필요하겠지. 보다시피 말을 하면 할 수록, 이 나라의 인구는 자꾸만 늘어나게 되겠지."

"오, 소크라테스. 사실 벌써 인구가 꽤 많은데요."

"헌데 하나의 나라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을 수도 있네. 결국 이웃 나라와 교역을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날랜 상인이나 교역 전문가도 있어야겠지. 바다로 물건을 옮기려면 뱃사람도 있어야 하고 항해사도 있어야 하고 선장도 있어야지. 우리 나라에도 다른 나라 상인들이 올 테니, 외국 상인들과 우리 농부들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해 주는 사람도 필요할 걸세."

플라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소크라테스에게 조금씩 조금씩 일에 바빠 북적거리는 공동체를 만들게 한다. 그 버릇 어디 남 주겠냐마는, 그는 여느 때처럼 먼 데서부터 빙빙 돌려 가며 이야기를 좁혀 간다. 하기야 그리스에 넘쳐 흐르는 게 있다면 그건 시간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겠지만….

 

이번에는 글라우콘이 말한다.

"하지만, 오 소크라테스, 선생님께서는 인간이 필요한 것을 열거하면서 음식과 옷과 집에 대해서만 말했으니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만 말씀하셨습니다. 돼지들만 사는 나라를 만든다 해도, 지금 말씀하신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괜찮게 사는 사람들의 습관도 생각해 주십사 하는 겁니다. 편안하게 드러누울 침대라든가, 무화과로 만든 과자라든가…."

"무슨 말인지 알겠네, 글라우콘. 사치가 넘치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그런 말이렷다? 향수 냄새며, 헤타이라들의 분 냄새가 풍기는 그런 나라 말인가? 광대며, 악사며, 음유시인에, 무희와 배우와 흥행사에, 합창단원에, 여자들이 좋아할 보석장이와 가재도구를 만드는 사람이 사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말 아닌가?"

"그게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소크라테스가 대답한다.

"그렇게 되면 말일세. 그 사람들을 모두 먹여 살리려면 훨씬 더 넓은 땅이 필요할 거고, 결국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도 우리처럼 욕심이 많게 되면 우리 땅을 뜯어 가려고 하지 않겠나?"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우리와 이웃 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겠지. 우리 나라를 지켜야 할 뿐 아니라 때로는 다른 나라로 쳐들어 갈 필요도 있을 테니 잘 훈련 받은 병사들이 있어야겠지."

"시민들만으로는 안 될까요?"

"안 되지. 처음에 이런 원칙을 세우지 않았나? 각자가 자기 일만 하지 다른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렇게 해서 플라톤은 농업과 기능직과 서비스업까지 손을 보고 나서는 직업 군인까지 만들어 낸다.

"이 병사들을 국가의 수호자라고 이름 짓기로 하세. 이들은 전우들에게는 온순하고, 적에게는 사나워야 하네."

"오, 소크라테스. 어떻게 온순하면서 동시에 용맹스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요?"

"음악과 체육으로 훈련시키면 되네."

"음악이라 하면 글로 쓰는 운율도 포함하는 건가요?"

"뮤즈 여신*들이 관장하는 것이면 모두 음악일세. 다만 거짓으로 꾸며 내는 이야기는 빼야 되네."

"꾸며 낸 이야기란 뭘 말하는 거지요?"

"호메로스*나 헤시오도스*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시인들이 지어 낸 이야기들 말일세."

"오, 소크라테스. 그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까닭이 뭔가요?"

"그 사람들은 신들이 우리 인간의 모든 결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고 하잖는가? 맹세를 저버린 신들이 있다고 하질 않나,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신들이 있다고도 하잖는가? 영웅들은 눈물을 흘리지, 신들은 킬킬대며 웃어대지…."

"신들이 킬킬댄다구요?"

"그렇다네, 신들이 낄낄거린다니까!"

소크라테스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신들은 원래 웃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데, 호메로스는 이런 시를 쓰지 않았는가 말일세. '복되신 신들 사이에 끝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네. 헤파이스토스*가 집 안을 이리저리 헤매며 보았다네.' 내 생각에는 말일세. 이런 이야기들이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어린 아이들이나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들려 주어서는 안 되네. 이런 이야기는 숫제 비밀로 하거나, 아니면 소수의 사람들만 모아 놓고 들려 주어야 할 걸세. 그것도 값지고 큰 희생 제물을 바친 다음에 말일세."

이처럼 언론 검열이 필요하다는 얘기로 『국가』의 제2권이 끝을 맺는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와 므네모시네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 초기에는 미술, 음악, 문학의 여신이었는데, 나중에는 역사, 철학, 천문학 등 광범위한 지적 활동을 맡아 보는 여신이 되었다. 이들의 역할은 시인들이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었기에 특히 시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기원전 8세기 경에 활동한 그리스 최고의 시인.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가로 추정된다. 이 두 작품은 고대 그리스 문화 뿐만 아니라 서양의 윤리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리스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그리스 문화의 통일성과 영웅주의의 상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르침과 실천적 교훈의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리적인 행동 규범을 제시하려던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걸림돌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기원전 700년 경에 활동한 그리스의 시인. 신들의 전설을 다룬 서사시 『신통기』와 시골 생활을 그린 『노동과 나날』이 완전한 형태로 전해진다. 그의 서사시는 주로 교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헤파이스토스는 대장간과 금속 가공의 신이요, 불의 신으로 화산 지대에서 숭배되었다.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절름발이라 어머니인 헤라가 신들의 나라 올림포스에서 바다로 던져 버렸다. 그러나 해저 동굴에서 구조된 그는 어머니에게 복수하려다 다시 올림포스로 올라가게 된다. 올림포스에 올라간 그는 절름발이라 다른 신들에게 비웃음을 받는다. 그러나 여기서 아프로디테와 결혼하게 되는데, 아프로디테는 그를 배신하고 군신(軍神) 아레스와 밀통한다. 헤파이스토스는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를 그물에 잡아 놓고 모욕을 주기 위해 모든 신들을 초대한다. 신들은 이들을 보고 포복절도 웃음을 터뜨렸다.

 

제3권에서는 국가의 수호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어떤 음악과 체육이 필요한지에 대해 다룬다. 이오니아나 리디아 풍의 사랑 노래는 연약한 병사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절대로 안 되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조국에 대한 사랑을 심어 주는 도리아나 프리기아 식 행진곡이 적당하다고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무술만 가르치는 교육이 돼서도 안 되는데 그럴 경우, 생각을 하는 능력이 없어질 뿐더러 말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줄 모르고 오로지 사납게 날뛰는 맹수가 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말한 다음, 다시 대화는 열기를 띤다. 병사들 중에는 명령을 내리는 일을 더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명령을 받아 따르는 데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따라서 세 부류의 사람이 생기게 된다는 말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명령을 하는 사람(철학자), 전투를 하는 사람(병사), 그리고 일을 하는 사람(농부와 다른 모든 노동자)에 대한 얘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플라톤이 생각하는 국가에는 1부 리그, 2부 리그, 3부 리그로 나누어진 백성들이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 어느 하나의 리그에 태어나는 사람은 거의 십중팔구 평생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물론 특별한 공이 있으면 승진할 수도 있고, 허물이 있으면 강등될 수도 있긴 하지만.

"선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하는 것도 허용되네. 그러니 백성들에게는 이렇게 말을 하세. 당신들은 모두 형제요. 그러나 신이 그대들을 빚을 때, 명령을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은 금을 섞어 빚었고, 그 보조자들은 은을 섞어 빚었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동을 섞어 빚었소."

"상류 계급에 속한 한 시민이 어느 날 아이를 낳고 보니 동으로 빚은 아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하지요?"

"여러 말 할 것 없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집어 넣으면 되네. 노동자 계급에서 태어난 아이에게서도 금이나 은의 낌새가 보인다면, 부모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적절한 계급에 넣어야 하는데 이 일은 국가의 수호자들이 해야 할 일이지."

"그러면 그 아이는 부자가 될 수 있나요?"

"아니, 천만에."

소크라테스가 계속해서 대답한다.

"국가의 수호자 계급에 속하는 사람은 철학자가 되든, 병사가 되든, 개인 재산을 가질 수 없네. 백성들만 개인 재산을 가질 수 있지. 먹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 말게. 국가의 수호자들은 필요한 모든 걸 백성들에게서 받게 되니까. 그들은 공동 생활을 하고, 군대의 막사에서 하듯 식사도 공동으로 해야 하네."

"그렇게 살다가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질문한 사람은 아데이만토스였다.

"손 안에 국가를 가지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이득도 없잖습니까? 헤타이라들한테 선심을 쓸 수도 없고, 넓고 아름다운 집을 가질 수도 없으니까요."

"여보게 아데이만토스. 우리가 지금 얘기하는 주제는 어떤 계층이나 개인을 행복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게 아니네. 하나의 국가 전체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 생각해 보게. 지나친 부(富)와 지나친 가난은 둘 다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네. 지나친 부는 사치와 게으름과 혁명적인 슬로건을 낳고, 지나친 가난은 천박함과 하기 싫은 일과 역시 혁명적인 슬로건을 낳네."

"그렇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부와 가난은 피할 수 없습니다!"

"물론이야. 하나로 통일된 국가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과 잘 사는 사람의 두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일세. '폴레이스 놀이(플라톤이 말하는 폴레이스 놀이는 오늘 날 유럽에서 많이 하는 모노폴리 게임이나 바둑 같은 것으로, 육십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진 판을 사이에 두고 서로 땅 따먹기를 하는 놀이이다)'처럼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두 계급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네."

 

이제 소크라테스는 '사회적인 정의'에서 '개인적인 정의'로 넘어가는데, 한 국가의 백성에 세 가지 부류가 있듯이 개인의 영혼에도 세 가지 상태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영혼이 있네. 첫 번째는 판단을 내리는 데에 쓰이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이성'이라고 부르기로 하세. 두 번째는 사람을 대담하게 하는 '기개'일세.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랑과 음식을 탐하게 하는 것으로 '욕망'이지. 그러면 이 세 개의 영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 주기 위해, 얘기를 하나 해 주겠네. 어느 날 아글라이온의 아들 레온티오스가 페이라이에우스 항구에서 올라오다가 사형 집행인이 방금 쓰러뜨린 주검을 보게 되었네. 이 젊은이는 한 편으로 그 주검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한 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했네. 그러나 결국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 보고는 말했네. '자 여기, 이 멋진 광경을 실컷 보아라. 불행한 나의 눈이여.' 이 경우 기개가 이성을 거슬러 욕망과 결탁을 한 것일세. 그러니 정의가 세워지려면 용기(무사 계급)가 이성(철학자 계급)을 섬겨야 하네. 절대로 욕망(일반 백성)을 따라서는 안 되네."

 

여기까지 말한 소크라테스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나 아데이만토스가 그의 망토 자락을 잡고 말렸다.

"제 생각에는 뭔가 더 하실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아까 국가의 수호자들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여자까지 말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지요?"

소크라테스가 당황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런 얘기는 말하기 쉽지 않네. 이봐, 사랑하는 친구들. 내가 제시하는 해결책이라는 게 하나같이 평범한 것이 아니니 유토피아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말일세."

"오, 소크라테스. 망설이지 마십시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우둔한 사람도 아니고, 적대적인 사람도 아니잖습니까?"

"좋네. 그럼 계속하지. 우선 여자들이 남자들과 평등하다고 가정해 보세…."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국가의 수호자 역할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는 말일세. 차이가 굳이 있다면 여자는 힘이 좀 약하고, 남자는 조금 더 힘이 셀 뿐이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린데요…."

"국가의 수호자들에게 시키는 교육도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시키는 걸세. 음악과 체육 말이네."

"그건 정말 웃기는 일일 텐데요!"

"뭐가 웃긴다는 말인가?"

소크라테스 어른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자들과 발가벗고 함께 운동을 한다는 게 웃긴다는 말인가? 먼저 단련을 시키지 않으면 어떻게 국가에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선생님의 말씀은 우리의 관습을 부수어 버리는 엄청난 파도 같이 느껴집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 파도가 높다 하니, 그럼 이제 두 번째 파도를 조심하게나."

"오, 소크라테스. 조용히 듣고 있겠습니다."

 

"바로 이 여자들을 남자들에게 준다 이런 말일세. 남자들 모두에게 여자 모두를 공동으로 주는 걸세.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맺어지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네. 자식들도 공동으로 키워야 하네. 누구도 자기 자식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도록 말일세."

"남자와 여자가 짝짓기를 하는 것은 어떤 근거에 따라 하게 되지요?"

"우수한 사람은 우수한 사람끼리, 덜 떨어진 사람은 덜 떨어진 사람끼리 해야 하네. 덜 떨어진 사람이 불평을 하지 않게 제비 뽑기를 하는 것처럼 꾸며야겠지. 그러면 상대가 성에 안 차더라도 재수 탓으로 돌릴 게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고귀한 목표를 위한 것이라면 거짓말도 허용되는 것일세."

"자식은 어떻게 되나요?"

"우수한 사람들이 낳은 자식은 유치원에 보내 유방이 크고 젖이 풍부한 어머니들이 키우게 하는 거지. 물론 자기 자식이 누구인지 모르게 해야 하네. 덜 떨어진 사람들의 자식은 눈에 띄지 않는 비밀 장소에서 키우는 걸세."

(플라톤이 열등한 사람들의 자식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그리스 시대에 갓 태어난 아이들은 끔찍한 위기를 넘겨야 했다. 때로는 울음 소리만 시원찮아도 튼튼하지 못한 아이로 단정될 수 있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연약한 아이들을 아예 없애 버렸고, 아테네 사람들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아이들이 태어나면 진열대에 내어 놓았다. 다시 말해 광장에 내어 놓고 노예로 키우고 싶은 사람은 데리고 가서 키우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득이 되는 게 뭡니까?"

"자기 자식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국가의 수호자들이 국가보다 가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게 된다는 것이 득일세. 젊은이들도 자기 친부모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어른들을 함부로 때리지 못할 거고 말일세. 전쟁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렇네. 몸이 건장한 젊은이들을 직접 전투 장면을 볼 수 있도록 전장에 데리고 가는 걸세. 혹시라도 우리 편이 지는 경우엔 날랜 말을 타고 줄행랑치게 해야겠지. 그렇게 직접 가서 보게 하면, 용감한 병사를 흠모하고, 비겁한 병사를 경멸하게 되지 않겠나? 그 중 가장 용감한 사람에게는 동료들로부터 월계관을 받게 하는 거네. 그리고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남자든 여자든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누구하고나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해 주는 걸세. 어떤 여자도 그 바람을 거절해서는 안 되겠지."

 

이제 우리는 이 『대화편』을 거의 반 쯤 살펴 보았다. 그러면 플라톤을 나치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마음이 들기 전에 여기서 잠깐 멈춰 그 당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당시의 그리스는 산악 지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도시 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시와 도시는 거의 언제나 완전히 격리된 적국이었다. 적들이 쳐들어오는 날에는 성인 남자는 죽음을 당했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가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따라서 그리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도시를 둘러싼 높다란 성벽과 적당한 위치를 가진 아크로폴리스와 막강한 군대가 있어야만 했다.

플라톤은 겨우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배한 전쟁을 경험했다. 스파르타의 리산드로스 장군은 아테네 군을 격파한 뒤, 아테네의 성벽을 허물게 하고, 민주정의 지도자들을 처형했다. 그 대신 과두정을 세웠는데, 과두정의 지도자들이 공포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자란 우리의 철학자께서 강력한 질서, 아니 그가 말하던 정의를 이룰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모델은 승자가 가진 체제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스파르타의 공산 체제를 만들어 낸, 저 전설적인 리쿠르고스야말로 신념을 가지고 따라야 할 마오쩌둥 같은 인물이었을 것이다.

플라톤이 생각한 국가가 적들로 둘러싸인 작은 나라요, 도시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나라여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국가의 백성들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국가의 넓이에 대해 그는 아테네와 그 주변의 경계를 벗어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는다. 광대한 영토를 가진 대제국이 결코 아니다. 어쩌면 수많은 민족들로 바글대는 닭장 같은 나라도 하나의 제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제 이상적인 국가는 어떤 곳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플라톤은 바다 가까이에 있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법률』의 한 부분을 보자.

 

바다는 하루 하루 생활하기에는 좋은 곳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고통스럽고 눈물 맺힌 현실과 가까워지게 된다. 바다 가까이에 도시가 있게 되면 언젠가는 온 도시에 상인들과 사업가들이 가득해질 것이고, 이들은 시민들에게 거짓과 불안정의 씨앗을 심어 주게 된다.

 

쉬운 말로, 농부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생산하거나 고작해야 물물 교환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것만 생산하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상인은 그저 돈을 끌어 모으는 일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땅에서 나는 소출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쌓아 놓는 일 자체가 어렵지만, 돈은 얼마든지 쌓아 둘 수 있어서 욕구 불만과 불행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당시 아티케 지방은 변변한 길이 없었기 때문에, 무역은 오직 바닷길로만 이루어졌다. 따라서 바닷가에 있는 도시는 상업 도시가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평화로운 곳이 될 수가 없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이상 도시 건설을 위한 마스터 플랜에 바다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표시하기까지 하는데, 14킬로미터 하고도 700미터 떨어져 있어야 된다고 자상하게 밝혀 주셨다.

친구들이여, 나한테 그 이유까지는 묻지 말기를!

 

서양 사상사에 있어, 플라톤은 자신의 대화편 『국가』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아야 했다. 누구보다도 신랄한 비판을 한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칼 포퍼이다. 포퍼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백을 등에 업고, 플라톤을 자유의 적이요,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못 박는다. 포퍼는 특히 플라톤이야말로 전제주의를 꿈 꾼 모든 사람의 마음을 들쑤셔 놓은 장본인이라고 하면서, 민주정을 비판하는 플라톤의 구절을 인용한다. 한 예를 들자면 포퍼는 자신의 책 『열린 사회와 그의 적들』에서 플라톤이 민주주의에 대해 한 말 중 다음 내용을 인용한다.

"민주주의란 가난한 사람들이 승리를 쟁취한 후 적들 중 일부는 처치하고 일부는 추방한 다음 남아 있는 사람들로 정부와 공적인 직책을 나누어 가질 때 태어난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포퍼의 결점은 플라톤을 기원전 5세기의 눈이 아니라 후세, 곧 오늘의 눈으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독재를 선호한 것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더 좋아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 체계를 다스리는 자리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에 따라 어느 것이 더 좋고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정치 체제에 대해 말하면서 중요도에 따라 순서대로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한 사람이 다스리는 정부, 곧 철학자가 왕이 되는 군주정이다. 자기 입으로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왕은 자기 자신이다. 두 번째는 소수의 사람이 다스리는 귀족정이고, 세 번째는 여러 사람이 다스리는 민주정이다. 여기까지는 다스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때의 경우인데, 반대로 다스리는 사람이 불한당일 때는 순서가 바뀐다. 그리하여 첫째 자리에는 여러 사람이 다스리는 선동 정치가 오고, 두 번째 자리에는 소수가 다스리는 과두 정치가 오고, 세 번째 자리에는 폭군 정치가 오게 된다.

 

일부 사람들이 플라톤을 비판하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플라톤을 좋아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것은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었고, 자신의 반동적인 주장을 합리화하는 경우였다. 쉽게 말해서, "이것 보쇼! 플라톤도 이렇게 말했단 말이오!" 하고 언성을 높이면서 다른 사람을 기 죽이는 경우 말이다.

1968년의 폭풍이 세차게 몰아칠 때의 일인데, 어떤 회사의 사장실에 다음과 같은 플라톤의 문장이 걸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유에 굶주린 백성의 지도자가 백성의 요구대로 취할 때까지 술을 부어 주는 사람이라고 가정해 보라. 만약 이 지도자가 점점 심해지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는다면 그는 폭군으로 치부된다…. 윗 사람들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자기 주장이 없는 노예 같은 사람이라고 몰아 붙이는 경우도 있다. 자식이 무서워 자신과 동등하게 자식을 대해 주는 아버지가 자식에게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제자를 감히 나무라지 못하는 스승은 제자들의 조롱을 받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나이 많은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요구하는데도, 완고하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젊은이들의 말을 따르는 늙은이도 있다. 자유가 판치는 분위기와 자유의 이름이 날뛰는 곳에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도 존경도 있을 수 없다. 방종한 곳에서는 좋지 않은 나무가 자라나니, 그것이 바로 폭군 정치다."

내가 그 글을 다 읽었을 때 사장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봤지요? 플라톤도 우리하고 똑같이 생각했다니까요! 바로 오늘 이 자리에서 쓴 글 같지 않습니까?"

 

 

[추신]

 

『국가』에 나오는 소크랕체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와는 전혀 다르다. 내 생각에 『국가』는 참으로 소크라테스 답지 않은 작품이다. 어느 날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게 자신이 쓴 『대화편』 중 하나를 들려 준 적이 있는데 끝까지 듣고 난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했단다. 

"오 이것 좀 보게나. 이 젊은 친구가 나한테 온갖 쓰잘데기 없는 말은 다 시키누만!"

 

 

[동굴의 우상]

 

"비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비존재가 눈에 보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플라톤은 실재(實在)와 현상(現象)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유전'을 조화시키려고 동굴의 우상을 들려 준다. 유일하고, 순수하며, 변화하지 않는 것과, 다양하고, 순수하지 못하며, 변화하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보여주기 위해 동굴의 우상을 들려주는 것이다.

 

커다란 동굴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안에는 어릴 적부터 사슬에 묶인 채, 입구 쪽으로 몸을 돌리지 못하고 동굴 안쪽의 벽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의 등 뒤, 그러니까 동굴 바로 밖에는 둑 위로 난 길이 있고, 길 양 쪽으로는 길다란 담이 쳐져 있다. 그리고 그 담 뒤로 동상이나 온갖 형태의 물건을 둘러 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마치 청중들에게 꼭두각시를 보여 주는 인형극 예술가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큰 소리로 말을 하며 지나가는데, 동굴 속에서는 울림 때문에 그 말 소리가 웅웅거리는 소리로만 들린다. 길 위의 사람들 뒤로는 태양이 빛난다. 아니면 커다란 불빛이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비추어 준다고 해도 좋다.

그렇다면? 이제 플라톤은 질문을 던진다.

"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들은 동굴 벽을 따라 끊임없이 오고 가는 그림자와 웅웅거리는 소리를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플라톤 자신이 답을 들려 준다.

"그림자와 소음이, 존재하는 유일한 현실이라고 철썩같이 믿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새로운 가정을 해 보자. 동굴 속에 갇혀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사슬을 풀고 몸을 돌려 동상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햇빛에 눈이 부셔 제대로 보지 못하고, 동굴 벽의 그림자가 오히려 더 선명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동굴 밖으로 나와 태양 빛에 눈이 익숙해지자, 그 때까지 자기가 보았던 것은 사물의 그림자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면 무슨 얘기를 들려 줄지 상상해 보자.

"헤이, 친구들. 자네들은 아무 것도 몰라! 저기 밖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것들이 있네. 엄청난 빛이 있는가 하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는 물건들이 있단 말일세! 끔찍할 정도로 완벽한 동상들이 있네. 여기 우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는 건 저런 것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고작해야 그를 놀려 댈 것이고, 그래도 계속 고집하면 소크라테스 어른처럼 사형시켜 버릴지도 모른다.

 

이제 동굴의 우상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태양은 '존재' 또는 '지식(또는 앎)'을 상징하고, 그림자는 '비존재' 또는 '현상'을 상징한다. 태양과 그림자 사이에는 감각적인 사물에 대한 우리의 '억견'이 있다. 지식은 억견과는 다른 것이다. 지식은 사물의 본질을 보지만, 억견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서 바래지고 흐릿한 형태로 상상을 할 뿐이다.

 

"이 사설이 모두 무슨 쓸모가 있는가?"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에는 돈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성공이라든가 하는 거짓된 목표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이런 말장난 같은 얘기가 쓸모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훨씬 더 진실된, 어떤 현실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우쳐 주기 위해 이런 비유가 필요한 것이다. 빛(하느님)이 우리를 비추어 주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처럼 진실된 현실을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철학자 어른이 우리에게 빛을 주러 올 때,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는 사슬을 풀고 직접 진리를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동굴 밖으로 나가는 것은 변하지 않는 이데아의 지식(앎)에 도달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과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다른 것이다. 이것은 철학자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이르려면 먼 여정을 거쳐야 한다.

 

 

[이데아의 세계]

 

동굴의 우상은 논리적인 이론인 동시에 형이상학적인 이론인 이데아의 이론으로 안내하는 문이다.

만약 닭을 한 마리 보고 '저것은 닭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 때 나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동물은 다른 닭들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저것은 닭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내가 "세상의 모든 닭은 초감각적인 세계에 저장된 이상적인 닭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면, 이 때 나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표현한 것이 된다. 내가 마음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실제로 내 눈 앞에 살아 있는 닭은 냄비 속에 들어가 먹혀 버릴 염려가 결코 없는 그 축복 받은 '이상적인 닭'의 못생긴 복사판이라는 것도 모르는 채, 끊임없이 땅바닥을 쪼고 있을 것이다.

논리적인 이론과 형이상학적인 이론 사이의 차이야말로 플라톤과 그 이전 철학자들 사이의 차이점이다. 논리를 통해 우리가 이를 수 있는 곳은 고작해야 보편성이라는 개념일 뿐이다. 그러나 이데아의 이론이 있기에 우리는 철학의 역사 상 처음으로 우주 밖에 있는 어떤 것을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하나 같이, 사물의 근원인 아르케를 찾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모두 다 물이라든가 공기, 불 등 물질적인 것이 사물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지고의 정신, '누스'를 고안해 낸 아낙사고라스조차 정신은 다른 것에 비해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이긴 하지만 물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 플라톤은 그리스의 선원들이 즐겨 부르던 제2의 항해, 곧 '노를 사용하는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바람을 이용하는 범선이 자연 현상을 극복하지 못해 활동에 제약을 받다가 이제 노가 있기에 자유자재로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듯이, 플라톤도 이제 새로운 수단이 있기에 전혀 새로운 형태의 항해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금 전에는 닭이라는 아이디어로 잘 넘어갔지만 이제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그리 쉽지 않다. 어쨌거나 다시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하자.

만약 내가 "마리나는 예쁘다" 고 한다면, 이 때 나는 아름다움의 한 예를 보여 줄 뿐이다. 무엇보다도 마리나(마리나는 바로 우리 앞집에 사는 예쁜 아가씨의 이름이다)가 항상 그렇게 예뻤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마리나는 열두 살 때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아이였다. 나이가 들어 늙으면 또 미워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마리나가 가지고 있는 그 아름다움의 이데아, 곧 아름다움 그 자체는 불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리나에게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리오데자네이루의 경치 속에도 있고, 몬탈레(이탈리아의 노벨상 수상 시인)의 시에도 들어 있고, 마라도나의 속임수 속에도 들어 있다. 마리나는 손으로 만질 수 있지만(말하자면 그렇다는 뜻이다), 아름다움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이데아란 생각이자 정신의 흐름이요, 한 마디로 우리 뇌 속에 형성되는 어떤 것이지만 플라톤에게 있어서 이데아는 오로지 정신으로만 '볼(이데아란 '보다'라는 뜻의 'idêin'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 수 있는 외부의 대상이었다. 이데아는 유일성과 불변성과 영원성을 가진 것이기에, 플라톤에게는 비비고 기댈 안전판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플라톤과 같은 시대의 사람들은 사실 모두 이런 안전판을 바라고 있었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기원전 5세기 말 엽은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다. 선동 정치가들과 소피스트들이 긴 세월 두루두루 설치고 다녔기 때문에, 아무도 좋은 것이 무엇인지 정의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불확실의 시대요 혼돈의 시대였다. 윤리 정치적인 혼란이 판치는 이런 상황에서 플라톤은 질서를 잡아 주고, 인식(앎)의 세 등급을 보여 주는 것이다.

 

- 지식 : 이데아처럼 변함이 없는 개념에 대한 완전한 이해.(존재)

- 의견 : 감각으로 느껴지는 세상에 대해 여러 가지 판단을 하게 하는 인식.(유전)

- 무지 : 사물의 까닭을 묻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물 인식.(비존재)

 

이처럼 인식을 단계 별로 분류하는 것으로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유전'을 철학적으로 절충한다. 존재는 이데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데아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고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플라톤의 '존재'도 변화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의 '존재'는 이데아가 다수이기 때문에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처럼 유일한 것은 아니다. 반면에 존재와 비존재의 중간 지점에 있는 유전은 감각적인 세계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매일 매일의 세계이다. 따라서 여기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것 때문에 성스러운 원칙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다.

 

이데아들 중에도 위계 질서가 있다. 이데아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 그 자체이다. 그 다음의 자리에 오는 이데아는 아름다움, 정의, 조국애 등의 도덕적인 가치들이고, 다음 자리에 오는 이데아는 직선, 삼각형, 숫자 4, 크기, 꼭 같음 등의 수학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이데아는 개, 탁자, 나무, 여자, 포도, 냄비 등의 자연 속에 존재하는 사물의 이데아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파르메니데스가 소크라테스를 어려움에 빠뜨리는 대목이 있다. 부정적인 사물의 이데아, 즉 쓰레기라든가, 비열함, 기생충의 이데아도 있는가 하고 질문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부정적인 사물은 이데아가 없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파르메니데스는 지혜롭게도 이렇게 말한다.

"이건 말일세, 오 소크라테스, 자네가 아직 젊기 때문일세. 자네가 아직 철학에 흠뻑 빠져들지 못했기 때문이지. 언젠가는 어떠한 사물도 소홀히 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지닐 날이 올 걸세."

 

속이 메스꺼워지는 부정적인 사물의 이데아들은 그렇다 치고,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완벽한 모델(이데아들)과 그 이데아들의 완성도 떨어지는 복사판(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사물) 사이의 관계이다. 이제 내가 손으로 원을 하나 그린다고 하자. 틀림 없이 내가 그리는 원은 그리 신통한 원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불평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재빨리 "자, 이걸 원이라고 칩시다" 하고 말을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쨌더나 나처럼 서툰 그림장이의 솜씨는 용서하기가 쉽다. 하지만 대자연이 완성도가 떨어지는 불완전한 남자나 여자나 동물을 세상에 마구 내보낸다고 할 때에는 문제가 심각해진다.

바로 이 시점에서 플라톤은 '데미우르고스'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데미우르고스는 이데아와 감각 세계 사이에서 일하는 신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데아에 따라 사물을 빚어내는 일을 맡은 존재이다. 데미우르고스는 자기가 맡은 일을 때로는 훌륭하게 소화해 내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한 마디로 데미우르고스는 대자연의 창조자인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이 신은 이데아보다는 한 계단 아래에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하느님과는 상관이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데아는 데미우르고스가 없어도 존재하지만, 데미우르고스가 세상을 만들려면 반드시 이데아가 있어야 한다. 하느님이라는 개념은 이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서, 모든 이데아의 가장 위에 존재하면서 다른 모든 이데아의 근거가 되는 선, 그 자체의 이데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플라토닉 러브]

 

'플라토닉 러브'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좋아하기는 하되 잠자리에 함께 들지는 않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말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다. 플라톤은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름다움을 낳는 데에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격식 갖춰 우리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온 인류 역사에 있어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향연』이라는 작품을 썼다. '향연'이란 쉽게 말해 거나한 만찬인데, 『향연』은 아가톤이 비극시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을 기리기 위해 자기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자리에는 파우사니아스, 파이드로스, 알키비아데스, 아리스토파네스, 그리고 의사 에릭시마코스 등이 참석했다. 소크라테스도 출전 선수 명단에는 들어 있었다. 그런테 파티가 있는 집 앞까지 기껏 잘 와서는 길가에서 무슨 생각에 그리도 골똘히 빠져 들었는지 음식이 다 끝나고 과일이 나올 때에야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날 저녁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에릭시마코스가 참석자들에게 오른쪽부터 한 사람 씩 돌아가면서 '사랑의 신'*에 대해 한 마디 씩 찬사를 해 보라고 장내 정리를 했고, 처음으로 말을 한 사람은 파이드로스였다. 그러나 파이드로스의 말은 별 신통한 재미가 없었다. 그저 사랑의 신 에로스는 다른 어떤 신보다도 힘이 세다느니,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에로스의 소유가 될 수 있으니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느니 하는 얘기였다. 파우사니아스의 말은 그에 비하면 훨씬 더 흥미로웠다.

"오, 파이드로스. 자네 얘기는 방향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네. 자네는 마치 사랑이 오직 한 종류만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두 종류가 있다네. 아프로디테 우라니아의 천상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아프로디테 판데미아의 세속적인 사랑이 있으니 말이네.* 사람들은 보통 두 번째 사랑만을 하기 때문에, 여자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영혼보다는 육체만을 원한다네. 그처럼 천한 목적만 생각하다 보니, 어리숙한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되는 거고 말일세. 반대로 진정한 사랑, 곧 천상의 사랑을 하는 사람은 남자들을 더 좋아해서, 남성의 강한 근성과 왕성한 지성에 감탄하게 되는 걸세.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이 점에 관한 한 법이 애매하네. 엘리스나 보이오티아나 라케다이몬(스파르타)에서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네. 반면에 이오니아와 외국의 모든 나라는 폭군들이 다스리는 나라라서 동성연애가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고 있지. 솔직히 우리 아테네 사람들의 생각은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네. 말로는 모두 다 좋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어느 아버지고 자기 자식들 옆에 가정 교사를 붙여 놓고, 남자 애인 사귀는 걸 금지하고 있지 않나. 친구들끼리 서로 감시하게 하기도 하지. 나는 사랑이라는 것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네.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좋은 방법으로 잘 하면 덕이요, 나쁜 방법으로 잘 못하면 부끄러운 사랑이 될 거라 이런 말이네."

 

*사랑의 신은 로마 시대에는 '아모르(amor)'라고 불렸지만, 그리스 시대에는 '에로스(eros)'라고 불렸다.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세상이 시작될 때, 카오스로부터 태어난 에로스는 원초의 부모인 '우라노스(하늘)'와 '가이아(땅)'를 결혼시킨 신이고, 그 이후의 모든 신들과 인간의 결혼을 맡아 보는 신이다. 에로스는 후대에 오면서 화살이 가득 든 화살통을 가진, 날개 달린 아기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화살 중에 어떤 것은 끝이 황금으로 되어 있어서 이 화살에 맞는 사람은 불타는 사랑을 품게 되고, 납으로 만든 화살촉에 맞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진다는 믿음이 퍼지게 되었다. 한 마디로 에로스는 사랑을 솟구치게도 하지만 식게도 하는 신인 것이다.

*아프로디테는 사랑과 풍요와 애욕의 여신이다. 우라니아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os)'에서 나온 말로 '하늘에 사는'이라는 뜻이고, 판데미아는 '판데모스(pandemos)'에서 나온 말로 '모든 사람과 함께 사는'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천상적인 사랑과 인간적인 사랑을 말하는데 파우사니아스가 말하는 천상적인 사랑은 남자들끼리의 사랑이다. 어쨌든 아프로디테가 사랑의 여신이라면 아모르 또는 에로스는 사랑의 남신이다.

 

파우사니아스 다음 차례는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였다. 그러나 딸꾹질이 나서 에릭시마코스에게 자기 대신 얘기를 하든가 딸꾹질을 멈추게 하든가 둘 중 하나를 하라고 말한다.

"둘 다 들어 주지. 자네 대신 먼저 말을 하지. 그 동안 자네는 한참 동안 숨을 가누고 있게. 그러면 딸꾹질이 멈출 테니까.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사랑은 내 직업인 의학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네. 파우사니아스는 두 종류의 사랑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훨씬 더 많은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네. 남자들의 사랑, 여자들의 사랑, 동물의 사랑, 식물의 사랑, 한 마디로 모든 생물체는 사랑을 하고 있네. 세상에는 어디에나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있지. 가득함과 텅 빔, 더위와 추위, 건조함과 습함 등등 말이네. 나는 사랑이 이런 반대되는 것들 사이에 들어가 대립을 없애고 조화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의학은 사랑의 도구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우리는 의학을 만들어 낸 아스클레피오스 신*에게 감사해야 하네. 저속한 사랑은 인간을 쾌락으로 몰고 가지만, 천상의 사랑은 의학의 형태로 적당한 정도가 어느 것인지 그 한계를 지어 주는 것일세."

아리스토파네스의 딸꾹질 소리와 거의 동시에 에릭시마코스의 얘기가 끝났다. 사람들은 모두 아리스토파네스를 바라보았고, 우리의 희극 작가께서는 이 기회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치료, 진료, 예언의 신인 아폴론과 님프 크로니스 사이에서 난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켄타우로스 사람 케이론한테서 의술을 배웠는데, 모든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까 두려워한 제우스 신이 그를 벼락으로 죽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오스가 꿈 속에서 병을 치료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의 사당에서 잠을 자는 관습이 생기기도 했다.

 

"오, 에릭시마코스. 몸 속의 조화, 그러니까 몸 속의 사랑이 작은 재채기 한 번으로 돌아올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일세. 보다시피 재채기 한 번으로 딸꾹질이 멈췄지 뭔가!"

그러자 의사인 에릭시마코스가 말했다.

"오, 아리스토파네스. 자네 결점이 뭔지 아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농담을 하는 거란 말일세.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 자네가 무슨 말을 하든 단단히 감시를 하겠네. 농담을 하는 건지 진지하게 말을 하는 건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 보겠다는 말이네."

"너무 걱정 말게. 지금 하려는 얘기는 조금 우스꽝스럽기는 하지만 농담은 아니니까. 사랑의 힘을 이해하려면 우선 인간의 운명이 어떤 시련을 겪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하네. 태초에 인간에게는 세 개의 성(性)이 있었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이상한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는 말이네. 남자인 동시에 여자인 양성이 있었다는 말이야. 그런데 이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우리보다 모든 게 곱배기였다네. 다리가 네 개, 팔이 네 개, 눈도 네 개 하는 식으로…. 그리고 생식기도 두 개씩 가지고 있었네. 남자는 남성 생식기 두 개, 여자는 여성 생식기 두 개, 양성은 남성 하나 여성 하나, 네 다리로 걷다 보니 거미처럼 어느 방향으로나 걸을 수도 있었지. 그런데 성질이 워낙 고약한 게 아니라서 힘도 지금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었고, 교만하기가 이를 데 없었네. 신들과 평등해지겠다고 덤비기까지 했지. 신들 중에서도 제우스가 특별히 화가 났네. 인간의 오만불손을 참을 수가 없었던 거지. 마음 같으면 모두 없애 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인간이 바치던 희생 제물은 누가 주겠나? 잿밥에는 관심이 있었지, 무슨 수는 써야겠지….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인간을 둘로 쪼개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네. 다리는 두 개씩, 생식기는 하나씩…. 그것도 부족해서 왕창 겁을 줬네. 또 까불면 다리 하나로 깡총 깡총 뛰어 다니게 다시 반으로 쪼갠다고 말일세. 치료의 신 아폴론이 상처를 잘 꿰매기는 하겠지만 인간은 불행한 존재가 되고 말았네. 잃어버린 자기 반쪽을 아쉬워하기 시작한 거지. 반쪼가리 남자는 잃어버린 나머지 반쪼가리 남자를 그리워했고, 반쪼가리 여자는 다른 반쪼가리 여자를 그리워했겠지. 양성이었던 사람의 반쪼가리 남자는 다른 반쪽이었던 여자를 그리워했네. 한 마디로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기 위해 모두 잃어버린 반쪽과 다시 결합하여 애를 태울 수밖에. 이처럼 애타는 마음이 바로 사랑이라 이런 말이네."

 

아리스토파네스 다음으로는 아가톤이 말을 받았다. 시인인 아가톤의 말은 시작도 끝도 없는 말이었고, 특히 내용은 더욱 별 볼 일 없었다. 당시 유행하던 것처럼 아가톤은 쓸 데 없는 장식이나 과장으로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다. 어쩌면 시 경연장에서 상을 받게 한 바로 그 기교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그 열띤 웅변에 모두 박수를 쳤다. 아가톤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유일하게 머리를 저은 사람은 소크라테스였다.

 

"아가톤의 말 솜씨 때문에 내가 황당하게 될 줄 알았네!"

소크라테스의 탄식이었다.

"아가톤의 말을 듣고 있자면 저 유명한 고르기아스의 웅변을 듣는 것 같다니까! 나 같은 사람이야 부끄러워서 도망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네 그려. 그런데 나는 오늘 저녁의 이 자리가 진리에 대해 말하는 자리인 줄 알았지, 덮어 놓고 사랑의 찬가를 늘어놓는 자리인 줄은 몰랐네. 그러니 지금부터 내가 다시 한 번 사랑의 찬가를 부르리라고 기대하지는 말게들. 그런 재주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된 진리만을 말해 보도록 할 테니까."

그 때 에릭시마코스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아가톤이 멋진 솜씨로 말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 소크타레스. 선생님께서 당황하기까지 하셨다는 건 믿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저희들에게 선생님의 진리에 대해 들려 주시지요."

"내게 사랑에 대해 가르쳐 준 이는 만티네이아의 디오티마라고 하는 여자였네. 그 여자 말은 사랑은 신이 아니라 다이몬이었다고 하네. 신과 인간의 중간 정도 되는 인물이었다는 말일세. 게다가 그리 예쁘지도 밉지도 않았고, 지혜롭지도, 그렇다고 무지하지도 않았다네."

"선생님께서는 지금 신을 모독하시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이번에는 아가톤이었다.

"어떻게 사랑의 신 에로스가 신이 아니라는 말씀이신지요?"

"디오티마가 그랬다고 하잖았나?"

소크라테스는 변명하듯 대꾸하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아프로디테가 태어나던 날, 신들은 올림포스에서 커다란 연회를 열었다고 하네. 초대 받은 신들 중에는 풍요의 신, 포로스도 있었네. 여러 가지 방편(方便)을 맡아 보는 신이요, 적당히 둘러대는 기술을 맡아 보는 신이었지. 이 연회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네. 가난의 신 페니아가 도착했는데, 옷 입은 꼴이 누추하다고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지. 불쌍한 페니아는 어떻게 좀 해 볼까 하고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네. 그런데 포로스가 술을 너무 거나하게 마시고 완전히 취해 버린 걸세. 그래서 밖으로 나왔는데 두어 걸음 걷고는 그대로 땅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지. 자기 앞에 길게 누워 있는 포로스를 보자 페니아는 기회다 싶었네. '나는 올림포스에서 가장 가난한 신이다. 그런데 여기 신들 중에 가장 꾀가 많은 포로스가 누워 있다. 이 신과 몸을 섞으면 내 신세가 좀 나아질지도 모르지!' 이렇게 해서 가난의 신과 방편의 신 사이에서 사랑의 신, 에로스가 태어났네."

 

사람들이 갑자기 한참 동안 웅성거리더니, 다시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이처럼 특별한 사랑의 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사랑은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지도 섬세하지도 않네. 오히려 그 반대지. 어머니를 닮아서 거칠고, 헐벗고, 떠돌이에, 맨 땅에서 헐벗고 자거나 문간과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처지네. 양의 우리에서 잠을 자거나 빈곤하게 사는 데에 익숙해져 있네. 한 편으로는 아버지를 닮아서 아름다운 것과 고귀한 것을 좋아하는가 하면, 용감하고, 끈질기고, 단호할 뿐더러 맹렬한 사냥꾼이라 어떤 계략도 꾸밀 수 있네. 호기심 많고, 함정과 술수가 풍부하고, 평생 철학자인 양 행세하기도 하고, 소름 끼치는 사기꾼인가 하면 전략가이기도 하고, 궤변론자이기도 하다네."

"오, 소크라테스. 사랑이 아름답지 않다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파이드로스가 놀랍다는 얼굴로 물었다.

"자네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사랑의 신은 사랑을 받는 신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신이라고.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만 아름다움이 필요한 걸세. 아름다움이란 곧 선한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아름다움을 원하는 사람은 선도 원하게 되는 거네. 그리고 그것을 찾았을 때만 행복해지게 되네. 사랑의 목적은 아름다움을 낳는 것이란 말일세."

"그렇다면 원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을 낳아 줄 수 있다는 뜻인가요?"

묻는 사람은 파이드로스였다.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선도 마찬가지네!"

소크라테스는 점점 열을 올렸다.

"모든 인간은 육체와 영혼 속에 선을 지니고 있네. 그리고 영원히 죽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도 지니고 있지. 그렇다면 이런 욕구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물론 말로는 쉽네.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과 선을 낳아 주면 되는 것이니까.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살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네. 어떤 사람은 영예를 통해서 그렇게 하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가장 예쁜 여자와 관계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혼이 풍부한 사람은 천재적인 작품 속에 자신의 자취를 남기기도 하네. 그러니 올바른 길은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네. 육체의 아름다움부터 시작해서 한 번에 한 단계 씩 올라가는 거네. 절대적인 것에 도달할 때까지 말일세."

 

쉬운 말로 해서 플라톤에게 사랑이란 마치 엘리베이터 같은 것이다. 첫째 층에는 육체적인 사랑이 있고, 둘째 층에는 정신적인 사랑이 있다. 셋째 층에는 예술…. 정의, 학문과 진정한 앎, 그리고 맨 마지막 층에 선이 살고 있다.

 

『향연』에 대한 해석은 참으로 많다. 그 중에서도 디오티마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철학작 메시지를 이끌어 냈는 지에 대해 참으로 환상적인 해석들도 많다. 그러나 엔조 파치만큼 에로스의 부모인 포로스와 페니아의 본질에 대해 꿰뚫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왜 하필이면 방편의 신과 가난의 신이란 말인가? 인간은 가난할 때에 더욱 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적당히 둘러대는 기술과 살아 남아야겠다는 마음이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맺으라고 충고라도 했다는 말인가? 따지고 보면, 위대한 예언자들은 한결 같이 가난과 사랑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복음에 나오는 부자 쳥년, 낙타와 바늘 귀의 주인공 이야기는 수많은 예의 하나일 뿐이다. 부(富)는 이기심을 낳는다. 잘 살고 발전한 도시일 수록,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차갑고 어려워졌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혼의 불멸성]

 

플라톤은 영혼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세 가지 증거를 대고 있다. 그 세 가지 증거에 대해 지금부터 최대한 단순하게 소개하도록 할 테니, 그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알아서 내려 주시기를!

 

－첫째 증거 :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현실과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이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현실은 눈에 보이는 육체와 더 비슷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과 더 비슷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은 썩고 죽는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변화가 없고 영원하다. 그러므로 영혼도 변화하지 않고 영원한 것이다.

－둘째 증거 : 서로 반대되는 것은 같은 것 안에 공존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의 몸이 뜨겁다면, 뜨거움의 이데아가 몸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몸이 차가워지는 것은 차가움의 이데아가 뜨거움의 이데아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그것은 죽음의 이데아가 생명의 이데아, 곧 영혼을 쫓아냈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 증거 :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느 날 '앎(지식)'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그들이 제시한 경우는 두 가지다. 어떤 사람이 앎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가정하자. 그 사람은 앎이 눈 앞에 나타나도 알아 보지 못한다. 반대로 그가 이미 앎을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는 그것을 찾아야 할 까닭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앎을 만나게 되면 즉시 그것을 알아 볼 수 있다고. 왜냐하면 이미 영혼 속에 그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란다. 앎이란 '아나므네시스', 다시 말해 이미 전생에서 깨달아 알고 있는 것들을 되살리는 기억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생각하는 영혼은 어떤 것이었을까? 『파이드로스』에서 플라톤은 영혼을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의 마부에 비유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순종의 고급 말이고, 다른 한 마리는 저질의 잡종 말이다. 마부는 자기 마음만 같으면 두 마리의 말을 더 높이 데리고 올라가 진리의 평원에서 신들의 말과 함께 풀을 뜯게 하고 싶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다. 때때로 잡종 말이 아래로 내려가고 싶어하기 때문에 순종 말이 용을 써도 제대로 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 영혼은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처음 만나는 육체를 자신의 거처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플라톤에게 있어 몸은 영혼이 임시로 머무르는 집과 같은 것이다. 육체가 죽을 때마다 영혼은 집을 바꾼다. 두 마리의 말 중 어느 쪽이 더 우세했던가에 따라 생명의 계단을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여기 플라톤이 말하는 순서에 따라 여러 인생을 적어 본다.

 

１. 지혜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

２. 법을 지키는 왕

３. 국가의 업무를 보는 사람이나 사업 또는 재정 전문가

４. 운동 선수 또는 의사

５. 점쟁이

６. 시인이나 예술가

７. 노동자와 농부

８. 소피스트와 선동 정치가

９. 폭군

 

『국가』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평등을 주장하던 여성 운동가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정확히 말해서 플라톤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지 아닌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것이 국가를 위해 일하게 만드는 데에 효과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데에 더 관심이 있다).

"남자로 살면서 인생에 실패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난다. 여자로 살면서 좋지 않게 산 사람은 야수 같은 동물로 태어난다."

영혼이 어떻게 인생을 선택하는가 하는 데에 대한 예는 『국가』의 마지막 권에서 보여 주고 있다. 저 유명한 에에르의 신화이다.

 

에에르는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병사이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신들은 그를 피안의 세계로 데려간다. 그리고 그가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영혼들의 심판 장면을 보여 준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그 곳에 온 것은 실수라는 것이 밝혀지지만, 재판관들은 조건부로 심판 과정을 지켜 봐도 좋다고 허락한다. 조건이란 그 곳에서 본 모든 것들을 인간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에르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친구들의 영혼과 함께 나는 아주 굉장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는 네 개의 심연이 있었지요. 두 개는 땅의 중심을 향해 흘렀고, 두 개는 하늘을 관통하고 있었어요. 그 가운데에 높다란 의자가 있었는데, 심판관들이 의자에 앉아 영혼들을 심판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람이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지옥으로 보내기도 하고 하늘로 올려 보내기도 했습니다. 벌이든 상이든 모두 지상에서 행한 죄나 선행에 비해 열 배였죠. 그러는 동안 다른 두 개의 심연에서 오래 전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무리지어 나왔습니다. 이미 상이나 벌을 모두 끝낸 영혼들이었지요. 어떤 영혼들은 정말 가련했습니다. 더럽혀지고 찢어지고…. 즐겁게 웃는 영혼들도 있었지요. 영혼들은 모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또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이야기를 하기도 했구요. 그리고 모두 함께 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넓은 평원이었는데 그 곳에는 세 명의 운명의 여신인 모이라이들이 있었습니다. 라케시스(운명의 그림을 그리는 여신)와 클로토(운명의 실을 잣는 여신), 그리고 아트로포스(불가피한 운명을 맡은 여신으로, 가위로 운명을 재단하는 여신)였습니다. 영혼들에게 미래의 인생이 적힌 조약돌이 던져졌습니다. 온갖 인생이 다 있었지요. 예술가의 인생, 동물의 인생, 학문하는 사람들의 인생, 운동 선수의 인생, 여자의 인생, 노예의 인생 등 없는 것이 없었어요. 영혼들은 제비를 뽑자마자 주위를 둘러 보고는 가까운 조약돌 중에 자기 마음에 드는 운명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영혼은 어떤 고통을 당할지도 모르면서 폭군의 운명을 고르더군요. 다른 영혼은 평생을 친구도 없이 사는 부자를 선택했습니다.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는 인간의 삶 대신 사자의 삶을 선택했고(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기를 물려받을 수 있는 후보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오디세우스가 그것을 물려받았다. 그 때의 결정을 무척이나 속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그는 아직도 용맹성에 대한 애착을 끊지 못한 것 같다), 타미리스는 밤 꾀꼬리로 살기를 선택했지요(타미리스는 궁정의 가수였는데, 음악의 여신 뮤즈에게 도전했다가 벌로 시력과 목소리와 기억을 잃어야 했다). 아가멤논은 독수리로 살기로 원했고(아가멤논은 전생에 아내 크리타임네스트라와 조카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가능하면 멀리 떨어져 살기를 바랐을 것이다), 아탈란테는 재빨리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하는 운동 선수의 삶을 선택하더군요(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아탈란테는 세 개의 황금 사과를 주우려고 잠시 멈췄다가 멜라니온에게 경주에서 지고 말았다). 오디세우스는 맨 마지막으로 제비를 뽑았는데 덤덤한 마음으로 그저 평범한 사람의 인생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들 중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이 신화는 모든 영혼들에게 지상으로 돌아가기 전에 전생의 삶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레테 강(망각의 강)의 물을 마시도록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물론 에에르만 이 강물을 마시는 일에 예외이다.

 

 

[플라톤의 제자들]

 

아리스토텔레스를 제외하면 플라톤의 제자들은 그리 큰 자취를 남기지 못했다. 스승이 죽자 아카데미아를 이끄는 지도자 자리를 물려 받은 사람은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포스였다.

에우리메돈의 아들이자, 플라톤의 누이 포토네의 아들이었던 스페루시포스는 삼촌과 닮은 데가 하나도 없었다. 성미가 몹시 급해서 강의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멀쩡한 강아지를 우물에 집어 던진 일도 있었다고 한다. 가르치는 일보다는 인생의 즐거움에 빠져 든 사람이기도 했다. 나이가 들었을 때에는 몸이 마비가 돼서 수레에 실린 채 제자들이 아카데미아 이 쪽 저 쪽으로 옮겨야 했다. 그는 모두 4만 2천 475줄의 글을 썼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스페우시포스 다음에는 크세노크라테스가 아카데미아의 지도자 자리를 물려 받았는데, 그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아시아 쪽 연안에 있는 작은 도시 칼케돈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크세노크라테스는 어린 나이에 플라톤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평생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으로 시칠리아까지 함께 갔자고 한다. 그가 아카데미아의 교장 선생님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천재적인 면이나 개방된 정신 때문이 아니라 플라톤과의 그런 관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언젠가 플라톤 자신도 아리스토텔레스와 크세노크라테스에 대해 말하면서 "한 사람은 채찍질이 필요하고, 한 사람은 고삐가 필요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대신 이 사람의 외모는 정말 그럴싸해서 나이 많은 현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도시로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길을 비켜 주었고, 건달들조차 입을 다물었다. 크세노크라테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컸는지 아테네에서 선서를 하지 않고 증언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이 사람 뿐이었다고도 한다.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 좀 미지근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밤, 미녀 프리네가 사람들이 쫓아 온다는 핑계를 대며 크세노크라테스의 집에 들어가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그러나 크세노크라테스는 그냥 쿨쿨 잠만 잤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이 미녀 헤타이라는 온 도시를 돌아다니며 동상과 잤다고 떠벌렸다고 한다.

크세노크라테스는 여든 한 살에 빗물을 받아 놓은 물통에 빠져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