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사 -下-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시간은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순간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인간도 언제나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가장 적절한 마음가짐으로

적절한 순간을 움켜잡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제삼자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소크라테스의 가장 대표적인 제자는 안티스테네스, 아리스티포스, 에우클레이데스, 파이돈, 플라톤, 아이스키네스, 크세노폰 등 일곱 사람이다. 이들 중 맨 앞의 네 사람은 저마다 독립을 해서 자기 학파를 열었다. 안테스테네스는 키니코스 학파를 세웠고, 아리스티포스는 키레네 학파, 에우클레이데스는 메가라 학파, 파이돈은 엘리스 학파를 세웠다. 철학사에서는 이들을 소(小) 소크라테스 학파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아마 아카데미아의 창설자인 플라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인지도 모른다. 플라톤이야말로 '소크라테스 학파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께서 어떻게 제자들을 만났는가 하는 것은 이미 전설적인 얘기가 되어 있다. 소크라테스 어른이 아테네의 좁은 골목길에서 크세노폰을 만난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이고, 안티스테네스는 페이라이에우스(피레우스)에서 살았기 때문에 스승의 말씀을 들으려면 매일 왕복 16킬로미터를 오가야 했다. 에우클레이데스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는데, 메가라 사람이라 아테네 영토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었다. 메가라 사람을 아테네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오래 된 법 때문이었는데, 이 법을 어기는 사람은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우클레이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밤만 되면 여자 옷으로 변장하고 국경을 드나들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소크라테스가 무릎에 백조를 안고 잠을 재우는 꿈을 꾸었는데, 백조가 날개를  펼치더니 창문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나자 플라톤이 나타났고, 그 백조가 "바로 접니다" 했다는 것이다.

아이스키네스는 제자가 되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가난합니다. 제 자신 밖에는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말했단다.

"그게 적은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엘리스의 파이돈은 어린 나이에 아테네 사람들에게 잡혀 노예가 되었다. 사창가에서 몸을 팔아야 하는 처지였는데, 그의 지혜로움에 놀란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이 그를 해방시켜 주었다.

 

위대한 스승의 정신적인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일곱 제자들은 서로 원수처럼 살았고, 저마다 자기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제대로 해석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키니코스 학파]

 

인류의 옷의 역사에는 걸레 스타일의 유행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처럼 걸레 유행을 따르던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특별한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리스의 키니코스 학파에서부터, 시시때때 나타나던 보헤미안들, 프랑스의 실존주의자들, 비트족(2차 대전 이후에 성장한 세대로,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전통적인 사상과 예술이나 상식적 생활 태도에 반항하여 기발한 언행과 복장과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를  일컫는 말), 히피족 그리고 펑키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세상과 타협해 일을 하러 가느니 차라리 센 강의 다리 아래서 노숙을 하겠노라던 프랑스의 유식한 방랑자, 클로샤르들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온갖 잡초를 한 다발로 묶듯 이들을 모두 도매금으로 넘기려는 것도 아니고,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들을 펑키족과 혼동할 생각도 아니지만, 위에서 얘기한 사람들은 모두 자유를 갈망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키니코스 학파의 사상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키니코스 학파는 오로지 자신에 대해 만족할 때, 영혼이 누릴 수 있닌 최고선(最高善)인 자유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키니코스 학파의 사람은 자신의 육체와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고, 배고픔과 추위와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의 욕구나 돈이나 권력이나 영예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의 최대 가치가 영혼(프시케)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키니코스 학파의 사람들은 전통적인 가치를 파괴하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러기에 이들은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극단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존재를 오로지 자기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고 단순화하고, 현상 또는 외견은 여분의 것이기에 배격하는 사람들이었다.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 중 가장 잘 알려진 사람들로는 안티스테네스, 디오게네스, 크라테스, 메트로클레스, 히파르키아가 있다.

우선 '진짜 개' 라는 별명으로 통하던 안티스테네스의 아들, 안티스테네스는 기원전 446년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테네 시민이었으나 어머니가 노예라 완전무결한 아테네 시민 자격은 얻지 못했지만, 안티스테네스 자신은 이에 대해 그리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것을 즐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는 일찍이 철학에 관심을 가져 처음에는 소피스트들에게 드나들었고, 뒤에는 소크라테스 어른에게,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결국 키니코스 학파를 열게 되었다. 이 학파의 이름은 이들이 주로 대화를 나누던 장소인 키노사르게스('민첩한 개'라는 뜻) 체육관에서 유래한 것 같다. 이 체육관은 아테네 성을 벗어나자마자, 일리소스 강가에 있던 것으로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학파를 키니코스라고 부르게 된 까닭이 그가 평생을 '떠돌이 개'(쿠온 : 키니코스는 쿠온의 형용사)처럼 살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마그네시아의 디오클레스에 따르면, 안티스테네스는 겹망토를 사용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잠잘 때 휘감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큰 망토를 사용한 사람이었다니,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최초의 침낭 사용자였다는 얘기다.

 

크세노폰이 『향연』에서 안티스테네스에 대해 전해 주는 부분을 살펴 보자. 안티스테네스가 했다고 하는 말이다.

"내 생각에 부(富)라는 것은 물건처럼 집 안에 보관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가짐이오. 그렇지 않다면 이미 많은 제물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돈을 쌓으려고 끊임없이 위험하고 힘들게 사는 까닭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고, 권력과 보물에 눈이 어두워 날이 갈 수록 끔찍한 죄악을 저지르는 몇몇 참주들의 행동도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오. 그런 사람들은 마치 끊임없이 먹으면서도 배가 부르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소. 그러나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가난하지만, 너무나 가진 것이 많아서 내 자신도 내가 가진 부를 다 찾아 내지 못할 지경이오. 어디서건 적당한 곳에서 자고 먹고 마시는데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느낌이니 말이오. 음식을 더 맛있게 하기 위해 나는 식욕 자제를 활용하오. 한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지내는 거지요. 하루만 단식을 한 뒤면 어떤 음식을 입에 가져가도 아주 꿀맛이니까요. 육체가 사랑을 나누기를 바랄 때 나는 못생긴 여자와 교접을 하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여자라 아주 기꺼이 나를 맞아 주니 말이오. 한 마디로 말해, 나의 친구들, 중요한 것은 아무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오."

그가 한 말을 보면, 여자 문제에 관한 한 그도 어쩔 수 없이 약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수인지 어쩐지는 알 수 없으되 언젠가는 이런 말이 샌 적도 있다고 한다.

"아, 아프로디테*를 만날 수 있다면 멋지게 사랑해 줄 텐데!"

그가 남긴 유명한 말로는 이런 것들도 있다.

"쾌락을 맛보기보다는 차라리 미쳐 버리고 말겠다."

"돈을 밝히는 사람 치고 착한 사람은 없다."

 

*그리스 신화의 사랑과 애욕의 여신. 결혼의 유대를 중요시 여기는 헤라 여신과 달리, 아름답기는 하되 매우 음탕한 여신으로 묘사된다.

 

안티스테네스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무감각한 태도를 몹시 존경했다. 스승 어른께서 그토록 자신을 놀렸는데도 말이다. 한 번은 안티스테네스가 더러운 모습에 구멍이 뚫린 망토를 입고 나타나자, 소크라테스 어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 안티스테네스. 망토 자락에 너덜거리는 구멍으로 자네의 큰 야망이 보이네 그려."

 

견유학파 답지 않게 안티스테네스는 나이가 들 수록, 육체적인 고통에 예민해졌다. 여든 한 살이 되었을 때에는, 심한 병이 들어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 디오게네스가 그를 찾아갔는데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고 한다.

"말 친구가 필요하시겠군요?"

"오, 디오게네스. 어서 오게."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 병석에 누워 있던 노스승이 그를 맞이하며 말했다.

"무엇으로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을꼬?"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칼을 내보이며 말했다고 한다.

"이것이면 되지 않을까요?"

"아니 뭣이라고?"

안티스테네스는 벌떡 일어나며 말했단다.

"내가 고통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했지, 인생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했는가!"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는 기원전 404년에 태어났다. 디오게네스의 아버지 히케시오스는 도시 한가운데에서 환전소를 했는데, 돈을 많이 다루다 보니 용돈으로 쓸 요량으로 몸소 돈을 조금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철학자 에우불리데스(메가라의 철학자인 에우클레이데스의 제자인 밀레토스의 에우불리데스)는 위조 화폐를 만든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디오게네스 자신이었다고도 하는데, 어쨌거나 아버지와 아들은 나란히 벌을 받게 된다. 아버지는 종신형을 받았고, 아들은 국외 추방이었다. 재판 도중 디오게네스는 아폴론 신에게 그 탓을 돌렸다고 하는데, 델포이의 신탁이 그에게 "어서 돌아가서 네 도시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라" 고 했고, 신탁의 내용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일단 새로운 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둘러댔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에게 내린 벌에 대해 그리 대단치 않게 생각했던 것 같다.

"시노페 사람들이 내게 국외 추방령을 내렸으니, 나는 그들에게 국내 체류형을 내리노라."

아네테에 도착한 그는 안티스테네스를 만나게 되는데, 만난 지 반 시간도 안 돼 키니코스 학파의 생각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늙은 스승은 자신에 대해 지나치리만치 자존심이 강해서 디오게네스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안티스테네스는 몽둥이로 그를 쫓아 버리려 했다. 디오게네스는 겁을 먹기는 커녕, 오히려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오, 안티스테네스 스승이시여. 마음껏 때리소서. 허나 아무리 단단한 몽둥이로도 저를 쫓아 버리지는 못할 것이옵나이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없을 정도로 많다. 그가 통 속에서 살았다든가, 훤한 대낮에 등불을 켠 채 "사람을 찾고 있소이다" 라고 소리치며 다녔다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만났던 일화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코린토스의 거리를 말을 타고 지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코린토스의 크라네이온 체육관 계단에 앉아 있는 디오게네스를 보고 말했다.

"짐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노라. 그대는 누구인고?"

"나는 개 같은 디오게네스라 하노라."

"그대가 바라는 것을 말해 보라."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 주었으면 하노라."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을 최대한 줄였기 때문에,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옷 겸 침대 겸 사용하는 망토 하나와 딱딱한 음식을 담는 그릇, 물이나 국물을 마실 때 쓰는 사발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나 언젠가 어떤 아이가 빵에 강낭콩을 버무린 음식을 직접 부어 먹는 것을 보고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그릇을 버렸다. 그리고 같은 아이가 우물에서 손으로 물을 퍼 마시는 걸 보고 나서는 물 마시는 사발까지 버렸다고 한다. 성욕 문제는 자위 행위로 해결했는데 그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었다나! 사람들이 모든 사람이 보는 광장에서 그런 짓을 하느냐고 꾸짖으면 그는 눈도 꿈쩍 않고 대꾸했다.

"아, 배고픔도 이렇게 뱃가죽을 몇 번 쓸어 주는 걸로 해결할 수 있다면!"

기온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그는 여름이면 뜨거운 모래사장에서 뒹굴었고, 겨울이면 눈을 찾아 뒹굴었다고 한다. 이상하게 생각될지는 모르지만, 따지고 보면 이 점에 있어서는 오늘의 우리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디오게네스는 키니코스 학파 사람 답게 쾌락에 대해 무관심했다. 어느 날 연회에 가는 친구의 등 뒤에 대고 그는 이렇게 소리쳤다.

"돌아올 때 보게. 갈 때만 못할 테니."

그는 보통 사람들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다. 언젠가 동상과 얘기를 나누는 그를 본 사람이 있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연습 중이오."

 

플라톤과 디오게네스의 관계는 결코 좋지 못했다. 그는 플라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오직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플라톤이 그를 미친 소크라테스라고 똑같이 되받아 친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리라.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한 철학 논쟁에서는 이데아 이론이 문제가 됐는데 디오게네스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이 방 안에는 탁자 하나와 컵이 하나 있소. 허나 탁자성(卓子性)이나 컵의 이데아 따위는 보이지 않소."

그러자 플라톤이 질세라 대꾸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대의 정신은 이데아가 아니라 탁자나 컵만 볼 수 있는 수준이니 말일세."

디오게네스는 명색이 철학자라고 하는 플라톤이 편안하고 좋은 물건으로 가득한 집에서 산다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래서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날, 쏜살 같이 그의 침실로 뛰어 들어가서는 진흙 투성이 발로 수 놓은 침대 덮개며 카페트를 마구 더럽혔다. 그리고 거리로 나와 발에 진흙을 묻힌 다음 다시 들어가 침대와 카페트 위에서 껑충 껑충 뛰었다고 한다. 플라톤은 아무 말 없이 그의 행동을 지켜 보고 있었다. 디오게네스가 버럭 소리를 지를 수밖에.

"플라톤의 오만방자함을 짓밟고 있도다!"

플라톤 역시 지고는 못 배긴다는 듯이 대꾸했다.

"똑같은 오만방자함으로 말이로다!"

디오게네스는 유머 감각이 모자라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 꽤나 솜씨 없는 어떤 궁수가 활 쏘기 연습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과녁 앞에 가 앉아서는 한 마디 했다.

"여기가 가장 안전한 곳이로군!"

또 한 번은 카페트며 값진 가구가 가득한 멋진 집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주인 양반 얼굴에 침을 뱉고 얼른 망토 자락으로 닦아 주고는 시치미 뚝 떼고 용서를 빌었단다. 온 집안을 다 둘러 봐도 침을 뱉을 만한 더러운 곳은 그 곳 밖에 없었다나.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는 한 편생 쓴 맛 단 맛 다 보고 산 사람이다. 어느 날 이미 나이가 들었을 때, 배를 타고 아이기나 섬 부근의 넓은 바다를 항해 중, 스키르팔로스라고 하는 해적에게 붙잡혀 크레타 섬으로 끌려 갔다. 그리고 그 곳에 노예로 팔리게 되었다. 상인이 그에게 무엇을 할 줄 아느냐고 묻자, 그는 "남을 지배할 줄 아오" 라고 대답했다. 노예를 사러 온 사람 중에 크세니아데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보석으로 온 몸을 치장한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나를 저 사람에게 팔아 주시오. 잔뜩 치장한 걸 보니, 급히 주인이 필요한가 보오."

크세니아데스는 그를 샀고, 디오게네스는 그 집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그리고 스스로 숨을 쉬지 않아 목숨을 끊은 아흔 살까지 그의 집에서 살았다.

죽기 전에 자기 주검을 땅에 묻지 말고 맹수들의 먹잇감으로 던져 주라고 유언을 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유언과 반대로 친구들이 와서 묻어 주고, 국가 비용으로 대리석 기둥과 조개로 만들어진 기념비까지 지어 주었다.

 

크라테스(그리스 문명의 역사에 등장하는 크라테스라는 이름은 시인, 철학자, 문필가 등 모두 열한 사람이나 된다)와 히파르키아는 남편과 아내 사이이고, 메트로클레스는 처남이었으니 이 집안은 온 가족이 키니코스 학파였던 셈이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안티스테네스에 비하면 훨씬 뒤여서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크라테스조차 정말 디오게네스의 제자가 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실제로 크라테스의 개화기는 기원전 323년 무렵이었다. '개 같은 디오게네스'가 이미 여든을 넘었을 때였다.

테베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 중의 하나였던 아스콘다스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크라테스는 온 일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디오게네스와 만나고 나서 자신의 재산을 모두 포기했는데, "크라테스가 크라테스를 해방하노라" 하고 외치면서 테베 사람들에게 200탈란톤이나 되는 돈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아테네에 도착한 뒤로 그는 '문을 열어 제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는데, 아무 집이나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가서 격언을 들려 주려 했기 때문에 얻은 별명이었다. 외모는 볼품이 없었던 것 같은데, 체육관에서 운동을 할 때면 모두 그를 놀렸다고 하니 어쩌면 곱사등이가 아니었나 싶다. 한 번은 니코드로모스라고 하는 올림픽 챔피언과 싸움을 했는데 한 쪽 눈이 시커멓게 멍들고 말았다. 다음 날 그는 이마에 커다랗게 글씨를 써 붙이고 아케네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이런 내용이었단다.

"니코드로모스가 한 짓이로다!"

글씨 옆에는 멍든 눈을 가리키는 커다란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크라테스는 저녁만 되면 네거리로 나가 손님을 기다리는 창녀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아가씨들의 반응은 아고라에서 토론을 벌일 때 다른 철학자들이 쏘아 대는 말에 대꾸하기 위한 훈련이 되었다고 한다.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들이 그렇듯이 크라테스도 오래 살았다. 적게 먹고, 야외에서 잠을 자는 생활이 영혼 뿐 아니라 몸의 건강에도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메트로클레스는 트라키아의 마로네이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적에 몹시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라 이를 걱정한 부모가 강한 아이로 만들어 줄 스승을 구해 아이를 맡겨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부모가 선택한 사람은 그 동안 강한 사나이라는 명성을 얻은 키니코스 학파의 크라테스였다. 크라테스가 메트로클레스에게 가장 먼저 시킨 일은 우선 강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며 체육관에서 훈련을 시킨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역도 운동을 하던 메트로클레스가 그만 자신도 모르게 "뽀─옹" 하고 방귀를 뀌었는데, 숫기 없는 메트로클레스가 그 일을 얼마나 부끄럽게 생각했는지 죽어 버리겠다고 음식을 거부한 것이다. 크라테스는 젊은이를 설득하려고 온갖 일을 다 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고집을 꺾을 길이 없자,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예."

"그렇다면 자네는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고 죽겠다는 말인가?"

"아뇨, 모릅니다. 하지만 그냥 죽어 버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살아 있으면 어떤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 또 죽어 버리면 무엇을 잃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죽으면 뭘 손해 보는데요?"

"보여 줄 테니, 따라오게."

다음 날 아침 일찍, 크라테스는 루핀 콩(지중해 연안과 북아메리카 서부에 많이 나는 푸른 꽃 피는 콩 종류로, 많이 먹으면 방귀가 잘 난다고 한다)을 2킬로그램 정도 먹고는 메트로클레스를 도시를 다스리는 아르콘들에게 데리고 갔다.

"자, 여기 이 도시의 아르콘들이 계시네. 자네도 언젠가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어."

말을 마친 크라테스는 아르콘들에게 공손히 엎드려 인사를 했는데, 갑자기 "뿌─웅" 하는 방귀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제자가 체육관에서 뀐 방귀 소리보다 요란뻑쩍했던 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과 프리타네이온에 계신 점잖은 양반들과 도시의 행정관들에게도 제자를 안내했다. 물론 그 때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요란한 방귀를 뀌어 댔다.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젊은 제자는 점잖은 자리에서 요란한 방귀 소리를 듣는 일에 익숙해져서 자살할 생각을 거두었다는 얘기다. 세월이 지나자 메트로클레스는 위대한 철학자가 되었고, 오래 오래 살다가…. 자기 손으로 목을 졸라 스스로 숨을 끊었다.

 

메트로클레스의 누이이자, 그리스 철학사의 유일한 여자 철학자인 히파르키아는 무척이나 얼굴이 예쁜 처녀였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이 여자가 나이 많은 크라테스와 결혼한 사실에 대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그토록 놀라운 투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워낙 미인이다 보니 마로네이아의 잘 생기고 돈 많은 청년들은 모두 히파르키아에게 장가를 들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 같다. 하지만 히파르키아는 늙은 스승을 놓치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발딱 넘어졌다. 가련한 히파르키아의 부모는 노철학자 본인에게 딸아이의 생각을 바꾸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따지고 보면 좋은 사람이었던 크라테스는 자신의 추한 몰골로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젊은 처녀의 눈 앞에서 온 몸을 홀라당 벗고는 말했다.

"히파르키아, 이게 네 신랑 될 사람이 가진 전 재산이란다."

하지만 히파르키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견유학파의 철학자답게 늙어 빠진 철학자를 남편으로 삼았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교접을 하고는 아들을 하나 낳았는데, 이 때 태어난 아들의 이름은 파시클레스였다.

 

키니코스 학파는 사실 철학의 학파라기보다는 일종의 생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일단 자신의 욕구를 벗어 버린 다음에는 정치라든가 자연이라든가, 윤리 이외의 모든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집도, 도시도, 조국도 없는 세계인이라고 표현했다.

견유학파는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대표적인 한 사람을 보기로 하자. 서기 90년에 사이프러스에서 태어난 데모낙스라는 사람이다. 데모낙스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단순하고, 언제나 기분이 좋고, 온순하고 모든 사람에게 다정했다. 먹을 걸 달라고 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먼저 알아서 먹을 것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나타나면 아르콘들조차 자리에서 일어났고 모두 아무 말 없이 감탄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곤 했다. 나이가 많이 들자 스스로 먹을 것을 끊고 인생을 끝냈는데, 아테네 사람들은 국비로 장례를 치러 주었고, 꽃으로 무덤을 장식했다.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자신들의 결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에 그의 삶에 비추어 자신들의 허물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키레네 학파]

 

키니코스 학파와 키레네 학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안티스테네스와 아리스티포스는 극과 극을 달리하는 사상가이다. 안티스테네스가 개에 비유될 수 있다면 아리스티포스는 고양이에 비유될 수 있으리라.

 

두 사상을 잘 알기 위해서는 여느 때처럼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전해 주는 다음의 양면적인 일화를 보면 된다.

어느 날, 시노페의 디오게네스가 우물에서 무 이파리를 씻고 있었는데 아리스티포스가 오는 것을 보고 한 마디 했다.

"자네도 야채를 먹을 줄 안다면 참주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닐 필요가 없을 걸세."

아리스티포스가 그냥 있을 리 없었겠지.

"자네가 참주들을 다룰 줄 안다면 푸성귀 따위는 먹지 않아도 될 걸세."

다른 사람들은 똑같은 일화를 대사의 순서만 바꾸어 소개한다. 이번에는 아리스티포스가 먼저 말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네가 부자들과 대화를 나눌 줄 안다면 푸성귀는 먹지 않아도 될 걸세."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쏘아붙였다.

"자네가 야채를 먹는 법을 배운다면 힘 있는 사람들에게 굽신거리지 않아도 될 걸세."

무 이파리야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이 일화를 보면 두 사람의 선택이 모두 관심을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아리스티포스는 기원전 435년 무렵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지만 그리스 사람임에는 틀림 없다. 그가 태어난 도시 키레네는 그로부터 약 200년 전 테라 섬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 세운 그리스 식민 도시였다. 핀다로스(합창 서정곡의 완성자인 고대 그리스의 서정 시인)에 따르면, 아리스티포스의 가족은 리비아에서 가장 돈 많고 고귀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미래에 쾌락주의자가 될 아리스티포스가 어릴 적부터 사치스런 생활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아리스티포스는 열 아홉이 되던 해에 올림픽 경기를 보러 그리스로 갔는데 여기서 히스코마코스라고 하는 청년을 알게 되었다. 아테네에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젊은이들을 매혹시킨다는 말을 전해 준 사람이었다. 아리스티포스는 그의 말만 듣고도 소크라테스에게 매혹된 나머지 몸이 시들시들해지고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였다. 그리하여 아테네의 그 샘물에서 물을 마시기 위해, 목 마른 사람처럼 애타는 마음으로 소크라테스를 찾아 떠났다고 한다.

역사가들은 아리스티포스가 소크라테스를 만나기 전에 소피스트들에게 드나들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특히 프로타고라스와 사귀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아리스티포스 자신이 소피스트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소피스트였다고 하는 소문은 가르침을 준 대가로 돈을 받았기 때문에 생긴 소문일 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아리스티포스는 경제적인 문제에 관한 한 형편만 허락하면 풍족하게 살려고 하고, 따라서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응분의 대가를 받으며 살려고 한 매우 평범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어떤 젊은이의 아버지가 1년치 수업료를 내라는 말에 "500드라크마라니! 그 정도 돈이면 노예를 하나 사겠소!" 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그 돈으로 노예를 사시오. 그러면 당신은 노예 둘을 거느릴 수 있을 테니 말이오. 노예와 다를 바 없는 당신 아들에다 그 돈으로 산 노예까지 둘이 될 테니 말이오."

그는 학생들의 능력에 따라 수업료를 차등 지불케 했다고 하는데 똑똑한 사람에게는 에누리를 해 주고, 둔한 사람에게는 규정 수업료보다 더 받았다고 한다. 언젠가는 소크라테스에게도 자기에게 가르침을 준 대가로 20미나의 돈을 받으라고 간곡히 말한 적이 있는데 노스승은 다이몬이 허락치 않을 것이라며 아주 '외교적으로' 거절했다고 한다.

그는 보통 사람들을 우습게 생각했다. 한 번은 바다에 나갔다가 폭풍우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가 두려움에 휩싸여 어쩔 줄 모르자 사람들이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철학자라고 하는 사람이 그렇게 겁을 먹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군요!"

아리스티포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고약한 말투로 대답했다.

"감히 네 목숨을 나의 목숨과 비교하다니! 나야 아리스티포스 같이 값진 생명을 걱정하지만 자네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자네 목숨이나 걱정하면 그걸로 족하네."

 

아리스티포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는 절대로 탐욕스런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욕구를 채울 만큼 충분히 돈을 끌어 모으기도 했고, 그의 욕구가 결코 적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돈이 아리스티포스를 위해 쓰이는 것이 낫지 아리스티포스가 돈을 위해 소모되어서야 쓰겠나."

아리스티포스는 필요한 경우엔 언제든 가난뱅이처럼 살 태세가 되어 있었다. 언젠가 공중 목욕탕에서 나오면서 장난 삼아 디오게네스의 더럽고 찢어진 망토를 입고 가 버렸다.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 양반은 우리의 키레네 학파 철학자께서 남겨 두신 융단 망토 밖에는 입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자, 사치스러운 옷을 입느니 차라리 알몸으로 집으로 갔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초연함에 관한 한 아리스티포스가 디오게네스 양반보다 한 단수 더 높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호라티우스도 확인해 주고 있다.

"나는 태연스레 두 개의 망토를 다 걸칠 수 있는 아리스티포스가 더 좋다."

이 점에 대해서는 플라톤과 비교하는 일화도 있다. 대(大) 디오니시오스인지 소(小) 디오니시오스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리스티포스와 플라톤은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오스의 궁전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웬일로 참주께서 여자 옷으로 갈아 입자고 했다고 한다. 플라톤은 절대로 여자 옷을 입을 수는 없다고 뻗댔지만, 아리스티포스는 군소리 없이 태연하게 옷을 갈아 입으면서 말했다.

"못 입을 이유가 뭔가? 아무리 바쿠스의 축제에서 술렁인다 해도 깨끗한 사람은 타락하지 않는 법인데."

이렇게 하여 이제 우리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한 것이다.

"내면의 자유란 무엇인가?"

아리스티포스는 스스로 부와 권력과, 에로스의 바다를 두려움 없이 건널 수 있는 내면의 균형이 있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가 헤타이라인 라이스에게 드나든다고 헐뜯자 그는 이렇게 반격했다.

"내가 그 여자를 소유하는 것이지, 그 여자가 나를 소유한 것은 아니니까."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그 여자 집에 들어가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들어가서 나올 줄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네."

역사에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라이스가 아리스티포스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리스티포스와의 관계가 홍보 효과가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이 여자는 가난뱅이 데모스테네스라는 사람에게는 1만 드라크마나 되는 거금을 내라고 한 사람이었다.

 

*대(大) 디오니시오스(기원전 430?~367?)는 시라쿠사의 전제 군주로 시칠리아와 남이탈리아를 점령하여 시라쿠사를 그리스 본토 서부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로 만든 사람이다. 그는 이런 업적으로 그리스령 시칠리아가 카르타고에 점령되는 것을 막았지만, 잔인한 군사 독재로 그리스 문명에 해를 끼친 것으로도 평가된다. 그의 아들 소(小) 디오니시오스(통치 기간 : 기원전 367~357, 346~344)는 아버지 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고 물려받은 정권을 유지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카르타고와 평화 협정을 체결하기도 하고, 폐위되었다가 다시 통치권을 되찾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국 다른 그리스의 장군에 의해 물러나고 만다.

 

플라톤은 아리스티포스라면 치를 떨었고, 크세노폰은 아리스티포스를 증오했고, 아이스키네스는 아리스티포스와 늘 언쟁을 벌였다. 디오게네스는 그를 덕(德)의 원수라고 생각했고, 후세에 넘어와 그리스도교와 함께 나타난 교부들과 종교적 열정에 넘치는 역사가들은 이 사람에 대해 갖은 악평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아리스티포스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까닭은 진정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그가 가르침의 대가로 돈을 받았기 때문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그의 방탕한 생활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견에 찬성하지 않는다. 그가 사람들의 미움을 산 진정한 까닭은 인생을 즐겁게 사는 태도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첫 번째 이념 충돌은 감각적인 현실을 인정하는 아리스티포스의 쾌락주의와 플라톤의 이상주의 사이의 충돌이었다. 그토록 다른 두 철학자 사이가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일이다. 모든 것이 국가요 집단으로 귀결되던 플라톤에게 아리스티포스 같이 개인주의적인 사람은 마음에 들 리 없었을 것이다. 플라톤이 자신이 쓴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제자들의 이름을 밝히면서 굳이 아리스티포스가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을 밝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플라톤이 쓴 글을 직접 읽어 보자.

 

에케크라테스가 물었다.

"이방인들도 있었나요?"

파이돈이 대답한다.

"그럼요. 테베 사람 심미아스, 케베스, 파이돈데스가 있었고, 메가라에서 온 에우클레이데스와 테르프시온이 있었지요."

에케크라테스가 다시 물었다.

"아리스티포스와 클레옴브로토스도 있었나요?"

"아니, 없었네. 사람들 말로는 두 사람이 그 때 아이기나에 있었다고 하네."

 

여기서 말하는 아이기나는 아테네의 페이라이에우스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으로, 쾌락과 방탕의 장소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게다가 아리스티포스가 가장 좋아하는 라이스가 사는 곳이기도 했다.

물론 플라톤은 이런 내용까지는 미주알 고주알 다 밝히지 않는다. 넌지시 암시만 해도 아테네 사람들은 행간에 숨어 있는 뜻을 알아 보고도 남았을 테니 말이다. 암시랄 것도 없이 그가 한 말은 이런 뜻이었다.

"소크라테스 어른이 돌아가니느 순간에 그 두 사람은 아이기나에서 쾌락을 쫓고 있었다."

키케론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불쌍한 클레옴브로토스는 그 악담을 읽은 충격으로 낭떠러지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아리스티포스는 여러 곳을 여행했다. 시라쿠사에도 갔고, 코린토스, 아이기나, 메가라, 스키로스 등지로 돌아다녔다. 고향 키레네에도 물론 갔을 것이다. 나이가 이미 지긋해졌을 때에는 페르시아 총독 아르타페르네스의 포로가 되어 소아시아로 끌려 가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 일흔을 채우고, 이탈리아의 리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리스티포스는 여러 개의 대화편과 여행기를 썼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리비아에 관해 쓴 여행기 중 몇 개의 단편이 전해진다.

 

아리스티포스의 사상은 사람은 쏜살 같이 날아가는 순간들을 잘 살아가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세상은 굴러가는 바퀴, 사라져 가는 순간을 놓치지 말라" 는 나폴리 속담과 뜻이 통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에 따라 지나간 과거의 기억으로 살거나 아니면 미래에 집착하며 살아간다. 아리스티포스에 의하면 몇 안 되는 훌륭한 사람들만이 현재의 순간을 살아갈 줄 안다는 것이다. 뻔한 과거를 가진 사람조차 "내 나이 스물이었을 때, 그 땐 정말 행복했는데!" 하며 한숨 섞인 푸념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정신과 육체가 가장 왕성한 나이의 젊은이들이 가능성도 확실치 않은 미래에 집착하며 사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눈을 뒤집고 찾아 봐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은가!

"이 순간 내게는 아무 불행도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건강하다. 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목이 마를 때, 한 잔의 물을 마시면서 "아, 이 물맛, 얼마나 좋은가!"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야말로 키레네 학파의 철학자 같은 태도이다.

"즐거움은 산들바람이요, 고통은 폭풍우일세. 일상의 생활은 고요한 밤 하늘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일세."

아리스티포스가 지은 이 뱃노래는 우리의 뱃머리를 언제나 즐거움이 있는 곳으로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키레네 학파의 사상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헤라클레이토스와 아리스티포스와 피란델로(인간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배역을 수행하는 배우일 뿐이라고 한 이탈리아의 노벨상 수상 작가)를 두루두루 섞어서 우리 나름의 이론을 만들어 보자.

 

시간은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순간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한 사람의 인간도 언제나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가장 적절한 마음가짐으로 적절한 순간을 움켜잡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제삼자의 입장을 유지하면서….

 

이러한 '현재의 철학'은 단 한 번도 지식인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몸에 좋지 않은 것'이라는 저 빼도박도 못하는 딱지가 붙어 있는 탓에, 이 철학은 도덕적, 정치적으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태도로 이해되었고, 따라서 사회에 아무 이용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삶의 문제에 대해 달관한 태도 때문에 아리스티포스를 가장 소크라테스에 가까운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키니코스 학파의 철학자들에게 자유가 쾌락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한다면, 키레네 학파의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더욱 큰 자유는 삶의 즐거움을 누리면서도 그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아리스티포스는 에피쿠로스보다 거의 한 세기 앞서 간 사람이다. 아리스티포스와 에피쿠로스의 차이점은 아리스티포스가 에피쿠로스보다 더 에피쿠로스다웠다는 점이다. 에피쿠로스는 실제로 쾌락에는 종류가 있다면서 쾌락을 정신적 쾌락과 육체적 쾌락으로 구분하고 마음의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 곧 '아타락시아'야말로 진정한 쾌락이라고 했지만 키레네 학파의 철학자들은 쾌락을 쾌락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받아 들였다.

 

아리스티포스의 제자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으로는 쾌락을 즐기되 지나친 쾌락은 주의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자라난 그의 딸 아레테와 무신론자로 통하는 테오도로스, 그리고 헤게시아스가 있다. 청출어람이라고, 아리스티포스의 제자들 역시 스승보다 한 술, 아니 두 술은 더 뜬 사람들이었다.

테오도로스는 즐거움이 있으면 그 곳이 어디든 가리지 말고 거짓된 도덕주의 때문에 머뭇거리지도 말고, 즉시 그 즐거움을 움켜잡으라고 말한다. 이기주의 이론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우정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우정이란 어리석은 자들이 서로를 도우려는 감정에 불과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스스로 자족할 줄 알기에 전혀 우정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헤게시아스는 그들 중에서 가장 과격한 사람이었다.

"지속적인 쾌락의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생기기 때문에 결국 고통만 맛보게 된다. 그러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이런 이유로 그는 길 가는 사람을 잡고 자살하라고 충동질했다.

"여보게, 형제여. 자네는 언젠가 죽을 운명이라는 걸 알고 있잖은가? 어떠한 죽음이 그대를 기다리는지 모를 뿐이지. 어쩌면 운명의 신이 그대에게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준비했는지도 모르네. 끔찍하고 오랜 병을 마련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네. 그러니 이 현자의 말을 듣게. 자살하란 말일세. 잠깐이면 걱정이 사라지네!"

이 철학자가 이런 말로 매 달 아테네에서 처치해 내는 사람의 수는 두어 명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러기에 그는 페이시타나토스, 곧 '죽음을 부추기는 사람'이라고 불렸던 것이다.

 

 

[메가라 학파]

 

메가라의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의 기하학으로 유명한 기원전 300년 무렵의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가 아님)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충 어림 잡아 기원전 435년에서 365년 사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젊은 나이에 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특히 파르메니데스에 심취해 있었다. 엘레아의 철학자 파르메니데스가 아테네에 다녀간 사건이 그리스의 사상가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 주었는데, 그랬던 것이 그에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리라. 소크라테스를 알고 난 다음부터 에우클레이데스는 한평생 소크라테스 스승의 가르침에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을 접목하는 일을 하고 산다. 에우클레이데스의 제자들은 메가라 학파 또는 연설을 할 때 늘 질문과 답을 반복하는 습관 때문에 변증론자라고도 한다.

 

에우클레이데스는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존재라고 하는 그 나름의 본질적인 가치와, 비존재라고 하는 여러 가지 현상(또는 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바라는 그 목표가 외견이 아니라 존재가 되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좀 그렇고 그런 예로, 우리가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고 치자. 만약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유가 내 동포의 삶을 더욱 향상시키려는 생각 때문이라면 나는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존재'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나를 매혹하는 이유가 오로지 특권과 영예와 권력 때문이라면, 나는 그 직책의 외견에 끌린 것이고, 그렇다면 선에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회교도들이 알라 신의 초상을 그리는 것을 알라 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듯이, 일반적으로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오염시킬까 두려워 내가 방금 했듯이, 존재의 기초가 되는 예를 보여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가능하다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직선적인 예를 들고자 노력하겠으니 계속 참고해 주기를.

 

소크라테스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것은 앎에 이르는 것이요, 선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에 에우클레이데스는 스승의 사상과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조화시키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선은 존재요, 유일한 것이요, 영원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결론]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그들의 선배 철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했던 것과는 반대로 주로 윤리 문제를 다루었다. 소크라테스가 이룩한 혁명은 철학자들의 관심을 인간과 도덕의 문제에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을 더욱 실천적이고 재미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들의 가르침에서 몇 가지 삶에 유익한 결론을 끄집어 내기로 하자.

소크라테스는 선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선을 바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선을 바라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익을 거스르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적은 선을 아는 것이다.

 

키니코스 학파는 선이 곧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외부의 세계로부터 지나친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최대한으로 줄이려 노력했다.

키레네 학파는 선은 곧 즐거움이요, 고통은 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아리스티포스는 즐거움을 낚아채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했다. 물론 쾌락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메가라 학파는 선에 대해 좀 더 추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선은 곧 존재이고, 악은 곧 유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이들의 태도는 종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에우클레이데스 자신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신중함, 신, 정신, 지혜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지고의 선은 오직 하나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