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사 -下-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나는 나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떻게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에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착하고, 열정적이고…. 넘치는 지성과 재치 있는 비판, 뛰어난 아량, 그러면서도 굽히지 않는 꿋꿋함을 지닌 그에게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때때로 지구 상에는 이처럼 높은 경지의 사람들이 태어난다. 예수, 간디, 석가모니, 노자, 성 프란체스코….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조금쯤 다르지 않을까? 그러나 그 중에서도 유독 소크라테스에게는 다른 위인들과 다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지극히 보통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위에 이름을 열거한 다른 위인들은 뭇 사람들의 찬사 때문에 지나치리만치 비범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남는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에게는 그런 의혹이 전혀 없다. 아테네 출신의 이 철학자 양반은 세상을 구원하는 계획을 선포하지도 않았고, 많은 제자들이 자신의 뒤를 따르기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이 양반이 다른 양반들과 다른 점에 대해 말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이 어른은 연회나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기회가 생기면 헤타이라(교양과 기예를 갖춘 고급 매춘부)들과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는 점일 것이다. 예언자 클럽의 다른 회원들에게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글이라고는 단 한 줄도 쓰지를 않았던 그는 철학사가들에게 큰 문제거리였다. 진정한 그의 모습은 무엇이었던가? 그의 생각은 무엇이었나? 소크라테스에 대해 직접 들려 주는 자료로는 크세노폰과 플라톤이 남긴 것과, 주워 들은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몇몇 구절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크세노폰이 남긴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플라톤이 말하는 내용과 완전히 틀리다. 몇 군데 일치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크세노폰이 플라톤의 글을 베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은 의문 투성이라 믿을 만한 구석이 없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크세노폰은 고작해야 외모가 출중한 장군이요 도덕주의자일 뿐, 철학자로서는 큰 그릇이 아니었다. 크세노폰은 젊은 시절 심포지엄이나 체육관, 체조 경기장 등 아테네의 즐거운 생활을 두루 즐기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좁은 골목길에서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된다. 이 때 소크라테스는 지팡이를 들어 젊은이를 막고는, 그의 시선에 눈을 고정한 채 말했다.

"생선을 어디서 파는지 아는가?"

"예. 시장에서 팝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디서 덕을 쌓을 수 있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그렇다면 나를 따르게."

이렇게 해서 그는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라기보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목에 힘이나 줄 요량으로 소크라테스의 산책길에 동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나친 토론에 싫증이 났는지, 두 해 쯤 지난 뒤 어디선가 전쟁이 터지자 재빨리 자원병으로 입대하고 말았다. 게다가 페르시아의 왕자 키로스*와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오스*의 궁전처럼 스승 같으면 결코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여러 곳을 드나들기도 했다. 외국 군대를 돌며 평생 전쟁터와 싸움터에서 보낸 그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마치 국선 변호인인 듯 스승을 그리고 있다. 실제로 크세노폰이 옛 기억을 되살려 정리한 재판 과정을 보면 피고인 소크라테스는 권위에 대해 매우 공손하고 맹신적인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다리우스 2세의 둘째 아들 키로스 왕(기원전 423~401). 당시 페르시아는 아테네와 전쟁을 하고 있던 스파르타를 지원했는데, 키로스는 이 전쟁을 위해 파병된 소아시아 군대의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키로스는 형으로부터 왕위를 빼앗기 위해 적국 그리스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 사람들로부터는 용기와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페르시아 사람들로부터는 왕위 찬탈을 위해 다른 나라 사람의 힘을 빌린 반역자로 나와 있다.

 

*아게실라오스 2세(기원전 444?~360)는 그리스에서 스파르타가 패권을 잡고 있던 시기에 스파르타 군대를 지휘했다. 뛰어난 전략가인 그는 그리스의 통일을 희생해서라도 스파르타의 이익을 증진하려 애썼고, 공격적인 스파르타 정신의 화신으로 자주 인용되었다.

 

크세노폰이 그린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틀에 박힌 것이라면, 창의력이 넘치는 천재 플라톤이 그린 소크라테스의 초상화는 그 반대의 잘못을 범하고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읽다 보면,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이 소크라테스의 말인지, 플라톤 자신의 생각인지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로서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모두 들려 주고, 독자들 각자가 나름의 판단을 하도록 하는 방법 밖에는 없겠다는 생각이다.

 

소크라테스의 외모는 1950년대에 활동한 프랑스 배우 미셸 시몽을 닮았고, 걸음걸이는 영화 「증인」에 나오는 찰스 로튼을 닮았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69년, 아테네에서 걸어서 반 시간 정도 걸리는 리카베토스 산 기슭의 알로페케 데모스에서 태어났다. 점성술에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을 위해 굳이 밝히자면, 연초에 태어났으니 산양좌가 그의 별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가족은 제우기타이 계급(솔론의 개혁으로 태어난 계급 구분에 의한 것으로, 아테네에서 제대로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계급 중에서 가장 낮은 세 번째 계급이었다)에 속하는 중산층이었다. 아버지 소프로니코스는 조각가였다고 하는데, 어쩌면 도시 외곽에서 돌을 깨는 석공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파이나레테는 산파였다.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솔직히 말하지만 어린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는 상상하는 것조차 그리 쉽지 않다. 괜찮은 집안 아니면 그럭저럭 살았던 집안의 아이였음을 미루어 볼 때, 아테네의 여느 아이들처럼 정규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해도 별 무리가 없으리라. 열 여덟이 되자 군 복무를 했을 것이고 스무 살이 되어서는 적절한 무기를 구해서 중무장 보병이 되었으리라.

젊은 시절 그는 조각 일을 하는 아버지의 가게에서 일을 도왔을 것이다. 어느 날 영혼이 지닌 천혜의 아름다움에 반한 크리톤이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 주려 그를 데려갈 때까지 말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자신이 쓴 『철학자들의 생애』라는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아낙시만드로스, 다몬, 아르켈라오스를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는데, 아르켈라오스에 대해서는 연인 사이였다고도 밝히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두 남자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일 때, 나이 많은 사람을 '에라스테'라고 하고, 젊은 사람을 '에로메네'라고 했는데 소크라테스는 아르켈라오스의 에로메네였다는 것이다.

 

더 앞으로 나가기 전에, 좀 빗나가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이 뚱딴지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의 동성애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하자. 그래야 우리의 소크라테스 어른을 요즘 흔한 게이로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고, 얘기가 나올 때마다 괜히 찜찜하게 생각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당시에는 동성애가 매우 정상적인 일이었다. 역사가들이 동성애를 두고 '그리스식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플루타르코스 같은 이는 이를 두고 교육적인 효과를 지닌 것이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에는 동성애가 전혀 스캔들이 아니었다. 시라쿠사의 참주 히에론은 다일로코스라는 젊은 청년에게 홀딱 빠졌는데, 이 일에 대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아름답다는 것으로 충분했지 미소년이든, 남자든, 여자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동성애자들에게 화가 미친 것은 그리스도교 정신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 그리스도교와 함께 새로 나타난 도덕 규범은 성(性)을 생식의 수단으로만 생각했고, 생식 이외의 성관계는 죄악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날 동성애에 관한 한 박해와 편견이 이처럼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크라테스는 이런 형태의 사랑을 더 경험하게 되는데 그 중에는 저 유명한 알키바아데스*와의 관계도 있다. 이 사람과의 관계는 아리스티포스가 『고대인들의 음란한 생활』 제4권에서 밝힌 것(여기서 말하는 아리스티포스는 키레네 학파를 창설한 소크라테스의 아리스티포스가 아니라, 서기 3세기 경의 사람으로, 이름 말고는 알려진 것이 없다)과는 반대로, 소크라테스가 제자에게 반한 것이 아니라 제자가 스승에게 반한 경우이다. 이것은 『향연』의 내용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취기에 젖은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향한 미친 듯한 사랑을 고백하는 얘기를 들어 보자.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나의 마음은 '코리반테스(키벨레 여신의 남자 시종 신들로, 북과 심벌즈를 두드리며 광란적인 춤을 춤)'보다도 더 세차게 둥둥거립니다!

 

더 앞 부분으로 나가면 이런 구절도 보인다.

 

오, 친구들이여. 나는 그 분을 단 둘이서만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머지 않아 그 분이 내게 사랑하는 사람이 연인과 단 둘이 있을 때 하는 그런 얘기를 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몹시 기뻤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얘기를 했고, 하루 종일 함께 보낸 뒤에는 나를 우두커니 남겨 둔 채 떠나 버리곤 했습니다. 참다 못해 나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분을 체조 경기장으로 초대했지요. 그 분은 나와 운동이란 운동은 다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체육관에서 레슬링을 한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겠습니까? 도대체 아무런 진전도 없었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강제로라도 어떻게 해서 끝을 볼 때까지는 물러서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어느 날 저녁, 사랑하는 사람에게 덫을 놓을 때 하듯 나는 그 분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이번에도 아무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 분의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와 식사를 한 것입니다. 첫 날엔 저녁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셨습니다. 나는 조금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냥 보내 드렸지요. 대신 다음 날 또 다른 덫을 놓았지요.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바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밤 늦게까지 시간을 끌었습니다. 그 분이 가야겠다고 일어서자 시간이 늦었으니 쉬어 가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내 침대 곁에서 잠을 잤지요. 방 안에는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둘 뿐이었습니다….

 

*아테네의 정치 군사 지도자 알키비아데스(기원전 450~404)는 젊은 시절 소크라테스의 윤리관과 지성에 이끌려 많은 영향을 받았고 소크라테스를 흠모했다. 그는 다양한 재능을 보여 주었지만 스승의 가르침과는 달리 청렴하지도 못했고 윤리적이지도 못했다. 아테네의 정치적 분쟁을 불러 일으켜 결국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하게 만들었다. 뒷날 재판에 회부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를 망친다는 공격을 받았을 때, 알키비아데스의 방종한 삶이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거의 쉰 살이 다 되어 크산티페와 결혼을 했는데, 그 때까지 결혼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그가 결혼을 한 것을 보면, 부인이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아이가 필요해서 내린 결정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그에게 결혼을 하는 게 좋은지 하지 않는 게 좋은지 의견을 물으면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 좋을 대로 하게나. 하든 안 하든 후회하기는 마찬가지니까!"

강한 개성의 여인, 크산티페는 역사적으로 골칫거리에 소유욕이 강한 마누라로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 자신이 그토록 유명해진 데에는 크산티페의 공도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심지어 1930년대 '코리에레 데이 피콜리'라는 주간지는 매 주 이런 사행시를 싣기까지 했잖은가?

 

그 누가 크산티페를 모르던가?

미친 듯 먹어 대는 먹성 좋은 여인을.

점심에도 소처럼, 저녁에도 소처럼.

오 소크라테스, 이 고생에 웬일이오!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의 관계는 조금 지나치게 각색된 것이 사실이다.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정상적이었을 것이다.

하나인지 셋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하여튼 자식 제대로 키워야지, 어머니에게서 받은 쥐꼬리 만한 유산 말고는 집에 땡전 한 푼 갖다 줄 줄 모르는 남편 거느려야지, 크산티페는 구체적인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억척스러운 생활 감각을 갖게 된 그저 흔하디 흔한 주부였을 것이다. 좀 별나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착실한 사람이었던 소크라테스 역시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을 테고, 체념하는 마음으로 참고 살아가는 그런 남편이었으리라. 크산티페를 화 나게 하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 남편이 자신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리라.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거침없이 말을 하는 남편이 집에만 들어오면 도대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았던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소크라테스의 부부 싸움에 대해 들려 주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크산티페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소크라테스에게 물 한 동이를 끼얹어 버렸다. 이에 소크라테스 하는 말이,

"크산티페의 천둥 소리가 언젠가는 소낙비로 바뀌리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지."

어느 날 알키비아데스가 그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참고 사시지요?"

그러자 그 어른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여자와 사는 건, 성난 말을 훈련시키는 것처럼 유익하다네. 이런 마누라를 거치고 나면 아고라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야 쉽게 다룰 수 있으니 말일세. 게다가 할 필요도 없는 말이지만, 나는 이미 습관이 되었는걸. 끊이지 않는 도르래 소리를 듣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에게는 미르토라고 하는 첩까지 하나 있었다고 하는데 이 여자는 더도 덜도 아닌 정의의 사나이 아리스테이데스(아테네의 정치가)의 딸이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우리의 철학자 어른이 두 번 결혼을 한 것은 오로지 마음이 착해서 그랬다는 것인데, 미르토가 아리스테이데스의 혈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빈곤한 처지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도와 주려는 마음에서였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르토는 소크라테스 어른이 술을 잔뜩 마신 어느 날 뒤를 따라 집에까지 온 정부(情婦)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두 번째 부인이든 숨겨 놓은 정부든 미르토는 소크라테스 어른에게 소프로니코스와 메넥세노스라고 하는 두 아들을 낳아 주었는데 이 두 아들은 크산티페의 아들인 맏아들 람프로클레스와 더불어 우리 철학자 어른의 핏줄을 세 갈래로 이어 간 사람이 되었다.

이 위대한 어른이 두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는 것도, 당시 아테네 정부가 시민의 수를 늘리기 위해 한 남자가 여러 여자에게서 아들을 낳는 것을 적극 장려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소크라테스, 크산티페, 미르토 사이의 삼각관계에 대해서는 브루네토 라티니*가 쓴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브루네토는 단테 알리기에리가 『신곡』의 지옥편에서 남색가로 표현한 저 유명한 브루네토 경이다. 그의 책에 씌여진 내용은 역사적인 근거는 전혀 없지만, 중세 시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소크라테스는 그 무렵 매우 위대한 철학자였다. 그는 외모가 추한 남자였다. 키도 작을 뿐더러, 얼굴은 털 투성이에, 콧구멍이 커다란 들창코였다. 머리는 대머리에 짱구였고, 털이 난 목덜미에, 어깨와 다리는 가늘고 약했다. 그에게는 마누라가 둘이 있었는데, 남편이 하루는 이 마누라를, 다른 날은 저 마누라를 사랑한 탓에 사이가 좋지 않았고 싸우기를 잘 했다. 두 여자가 싸우기 시작하면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은 자기처럼 별 볼 일 없는 남자를 두고 싸우는 것을 즐기며 싸움을 부추겼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 끄덩이를 잡고 싸우던 두 여자가 한 마음이 되어 남편에게 덤벼 들었다. 남편을 쓰러뜨린 두 여자는 발길질을 해 댔다.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머리털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뽑혀 버렸다.

 

*피렌체 출신의 학자로 교회 공식어인 라틴어에 비해 세속어로 불리던 이탈리아어를 장려하는 사상을 전파했다.

 

쌈박질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병사였다. 아니 용감한 해병이었다고 하는 편이 나으리라. 기원전 432년 그는 2천 명의 아테네 사람과 함께 배에 태워져 그리스 북쪽의 작은 도시 국가인 포테이다이아 전투에 투입됐다. 이 자그마한 도시가 아테네의 막강한 권위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인데, 때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인 때라 아테네로서는 트라키아 지방 전체에 반 아테네 분위기가 파급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강경한 처벌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젊은 알키비아데스의 목숨을 구하고 무공 훈장을 탄 것은 바로 이 전쟁에서였다. 소크라테스는 전장에서 부상을 입은 알키비아데스를 발견하고는 들쳐메고 적의 관할 아래 있던 숲 속으로 들어가 목숨을 구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소크라테스 어른의 용기가 아니라 그 분이 전쟁터의 불편함에 얼마나 무관심했던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향연』 속에 알키비아데스가 한 것으로 묘사된 말이 있는데 그 말을 직접 들어 보기로 하자.

 

우리는 포테이다이아의 진영에서 함께 지냈는데 식사 시간이 같았습니다. 그 분은 싸움터에서만 저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라 모든 점에서 뛰어났습니다. 전쟁터에서 곧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배고픔을 견뎌야 했을 때, 우리들은 그 분에 비하면 정말 가치 없는 사람들이었지요. 반대로 잔치가 벌어질 때에도 그 분은 정말 철저하게 즐기는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굳이 권하면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술을 마실 때에도 누구에게 결코 지는 일이 없었습니다. 절대로 취하는 법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겨울에 추위가 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북쪽 추위는 정말 끔찍한데 그 분은 마치 기적을 행하는 사람 같았어요. 하루는 정말 무시무시한 추위가 몰아닥쳐 모두 피신처에 꽁꽁 틀어박혀 있었지요.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엄청난 양의 천을 몸에 감고, 발에는 가죽이며 털을 겹겹이 두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여느 때 입는 외투 하나만 달랑 걸치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맨발로 얼음 위를 걸어다녔습니다. 군인들은 그 분이 자기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또 한 번은 무슨 생각에 그리도 골똘했는지 진영 한가운데 부동 자세로 서서는 다음 날 새벽까지 명상에 잠겼습니다. 꼼짝 없이 서 있는 자세는 그 날 낮까지 계속되었지요. 정오쯤 되자 몇몇 병사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소크라테스 어른이 새벽부터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꼼짝을 않는걸.'

때가 여름이라 저녁 때가 되자, 몇몇 병사들이 침구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어른이 밤 새 그렇게 꼼짝 없이 서 있는가 보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그 분은 동녘이 밝아 올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알키비아데스가 하는 말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인도의 무속인들처럼 무아의 경직 상태에 들어가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한 마디로 이 양반은 당시의 현대적인 삶이 제공해 주는 안락한 생활에 전혀 무관심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날씨가 덥든 춥든 그가 입는 옷은 한결같이 키톤이라고 하는 긴 옷이었고, 고작해야 트리본이라고 하는, 맨 몸에 직접 입어서 오른쪽 어깨부터 주름을 흘러내리게 하는 망토였다. 샌들이라든가 양털 스웨터 같은 것은 물론 없었다. 사치스러운 물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한 번은 아테네의 한 상점 앞에 서서 진열해 놓은 물건들을 보고는 감탄하는 말투로 한 말씀 하셨다.

"그럭저럭 살면 되는 인생에 아테네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걸 필요로 하는지 보게나!"

 

포테이다이아 공격으로부터 여덟 해가 지난 뒤, 소크라테스는 다시 보이오티아의 전쟁터로 나가게 된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아테네 사람들은 수세에 몰리고 줄행랑을 치는 상황에 몰렸다.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도 후퇴를 할 수밖에. 알키비아데스의 말을 또 들어 보자.

 

나는 기병이었고, 소크라테스 어른은 중무장 보병이었습니다. 이 때에는 포테이다이아 때보다 그 어른의 모습에 더 감탄하게 되었지요. 그 분은 당당한 모습으로 왼쪽 오른쪽을 살피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조용하게 적과 아군을 동시에 거느려 보았고, 누군가 자신의 몸을 건드리면 대번에 처치해 버리겠다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마흔 일곱의 나이에 그는 또 다시 징집 명령을 받고, 암피폴리스 전투에 참가한다. 물론 국방의 임무를 해야 하는 시민병의 자격이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한 것은 기원전 5세기의 간디요, 비폭력주의자로 여겨지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그가 전쟁터에만 나가면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전사가 될 수 있었던가 하는 점이다.

유일한 설명은 그가 조국이나 일단 성립된 권위에 대해서는 혁명가다운 비판 정신과 존중하는 마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윤리적인 신념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두 가지 사건을 보기로 하자.

어느 날 30인 참주 정부의 우두머리가 된 크리티아스가 소크라테스의 다른 네 사람의 아테네 시민에게 살라미스에 가서 민주정을 주장하던 레온테스를 끌고 와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우리의 철학자 어른께서는 그 명령을 어기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못 들은 척 집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얼마 후 크리티아스가 죽고 마는데 소크라테스 어른은 『변명』에서 그 때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때 나는 아테네의 시민들에게 죽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지만, 불의를 범하거나 레온테스를 모독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소."

 

언젠가 한 번은 그가 재판관으로 선출되어 프리타이네스 평의회*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 기간 중 어느 날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바다에 빠진 아테네 시민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열 명의 사령관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 변호의 기회가 없는 약식 재판이었는데, 어떤 지휘관이 구조를 회피했고 어떤 지휘관이 무죄인지를 가리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총괄적인 재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은 차별을 두지 말고 일괄적으로 처벌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절차 상의 문제를 들어 일괄적으로 처벌하자는 의견에 반대했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이 퍼붓는 협박을 태평스레 받아 넘겼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한 해를 십등분해서 그 하나를 프리타네이아(prytaneia)라 했고, 한 기간의 프리타네이아마다 50명의 평의원을 선출해서 평의회를 구성했는데, 시의 행정을 꾸려 나가던 이들 평의원들을 프리타네이스라고 했다. 50인 평의원 중 최소한 3분의 1은 프리타네이온에 항상 출석해야 했다. 최고 집정관의 관저이자 시청에 해당하는 건물인 프리타네이온에는 국가 공동체의 제단이나 꺼지지 않는 불이 안치된 화로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곳에서는 외국 대사나 훌륭한 공을 세운 시민을 접대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 그리스 식민지를 건설할 때, 아테네의 프리타네이온에서 횃불을 당겨 새로 지어진 프리타네이온의 제단에 불을 붙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정작 소크라테스 어른이 피고인석에 서서 재판을 받을 때에는 아무도 그런 배려를 해 주지 않았다. 젊은 멜레토스에게 불경죄로 고발 당했을 때(멜레토스는 명목 상의 기소자였을 뿐이고, 실제로 소크라테스를 불경죄로 고발하도록 조종한 배후 인사는 기원전 403년 반혁명을 통해 다시 권력을 잡은 민주정의 우두머리, 아니토스였다고 한다), 그는 시민들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고 독미나리 즙을 마셔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불경죄라는 죄는 그야말로 웃기는 죄다. 보통의 경우 아테네 사람들은 종교 문제에 관한 한 매우 관대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다가도 특별한 경우에는 신들의 존재에 대해 조금만 이상한 얘기를 해도 화를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진실인즉, 아테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신앙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그것이 정적을 없애 버리는 구실이 될 수만 있다면 그 호기를 기꺼이 활용했다는 점이다. 소크라테스처럼 냉혹한 언변으로 이미 짜여진 권력 판도를 위협하는 사람을 없애 버리는 데에는 더없이 좋은 구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불경죄로 고발당했던 철학자로는 아낙사고라스, 프로타고라스,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 디아고라스가 있다. 이들 중 소크라테스 어른 말고는 모두가 줄행랑을 쳐서 목숨을 구했다.

 

지금부터는 플라톤과 크세노폰이 전해 주는 고전적인 장면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소크라테스의 재판 과정을 살펴 보기로 하자. 좀 더 생동감 있는 느낌을 위해 500인 재판부의 일원인 에우티마코스와 칼리온이 되어 직접 재판에 참가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필로니데스의 아들, 칼리온 아닌가? 자네도 헬리아스테스(재판을 위해 시민 중에서 뽑힌 재판관)로 뽑혔군. 보자 하니, 따뜻한 침대 속에서 부드러운 아내 탈렉시아의 몸을 더듬는 것보다는 옛 스승을 재판하는 일이 더 즐거운가 보지?"

"오, 에우티마코스. 오늘 아침은 새벽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태양이 솟은 것 같구먼. 태양이 히메토스 산 정상에 고개를 내밀기도 전에 온 도시가 정의에 굶주린 시민들로 북적거리니 말일세. 생각해 보게. 내가 사는 스캄보니스만 해도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보려고 서두르는지 길이 막혀 걸어다닐 수도 없을 지경이었네. 믿을 만한 노예에게 가게를 맡기는 상인들도 보이던걸. 어두컴컴한 위층에서 아미데스(잠잘 때 방 안에 꼭 두어야 하는 항아리, 곧 요강)를 비우는 사람도 있었네. 지나가는 사람들이 불평을 하는데도 말일세. 한 마디로 재판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오스코포리아 축제(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여러 축제 중의 하나로 양 쪽 부모가 다 살아 있는 남녀 아이들이 포도송이가 가득 달린 포도나무 가지를 옮기는 것으로 시작해서 모두 곤드레 만드레 취해 "엘레레우 유- 유-!" 하는 괴성을 지르며 끝났다)에 가는 사람들처럼 모두 흥분해 있더란 말일세."

 

때는 기원전 399년 2월, 아직 이른 새벽이지만 수천 명의 아테네 시민들이 아고라를 향해 나아간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 앞에는 어김 없이 횃불을 든 노예가 앞서고 있다. 당시 아테네의 거리는 조금만 사람이 몰려도 막히기 일쑤였다. 플루타르코스는 아테네의 길이 얼마나 좁았던지 길을 나설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충돌하지 않도록 문을 열기 전에 안에서 노크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비뽑기 함 앞에는 재판관 뽑기를 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점점 길게 늘어난다. 경찰 업무를 하는 관노(官奴)들이 금지 구역을 넘으려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막으려고 입구에서 주홍빛 줄을 잡고 있다. 줄에는 주홍빛 물감이 발라져 있었는데 이 물감이 묻은 사람은 미스토스 에클레시아스티코스, 곧 민회 참석권이 일 년 간 중지되었다. 페리클레스 시대의 사법 제도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 매년 초, 최고 행정관인 아르콘은 나이 서른이 넘는 시민 중에서 6천 명을 뽑아 헬리아이아를 구성하는데 헬리아이아는 재판이 있을 때마다 500명의 재판관에 뽑힐 수 있는 일종의 재판관 후보단인 셈이었다. 최종적으로 재판관에 선출되는 두 번째 제비뽑기는 재판이 있는 아침에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피의자가 재판관들을 매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재판 날 제비뽑기를 하기 위해 법정 앞에는 클레로테리온이라고 하는 대리석 함이 놓이게 되는데 이 함에는 가로로 난 구멍이 있어서, 재판관 후보들이 각자 자기 인적 사항이 적인 동판을 넣도록 되어 있었다. 이 동판에는 자기 이름과 아버지 이름, 거주 지역 데모스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한 마디로 말해 신분증인 셈이었다. 예를 들면, '필로니데스의 아들, 칼리온. 스캄보니스 데모스 Z' 라는 식이었다. 마지막으로 쓰인 'Z'라는 글자는 칼리온이 자기 부족의 여섯 번째 구역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뜻했다. 동판을 넣으면 함 내부의 복잡한 구조에 따라 하얀색 또는 검은색 주사위가 클레로테리온 밖으로 굴러 나오게 되어 있었는데, 주사위의 색깔에 따라 재판석에 앉을 수 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되었다. 재판관에 뽑혀 재판에 참가한 사람은 그 대가로 하루에 3오볼로스의 은화를 받았다. 이것은 일반 노동자들이 받는 품삯의 60퍼센트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지난 해에는 말일세. 운명의 여신이 내게 네 번이나 기회를 주었네. 보통 재판관으로 세 번, 봄에 팔레루(테미스토클레스가 아르콘을 하기 전에 사용되던 아테네의 옛 항구) 근처에서 있었던 프레아토이의 재판관 한 번이었어."

프레아토이는 해외 추방 선고를 받은 아테네 시민을 다시 재판할 때에만 열리는 특별 법정이었다. 이 때 피의자는 자신의 몸으로 조국의 땅을 더럽힐 수 없는 신분이라 해안에서 몇 미터 떨어진 배 위에서 자신을 변호해야 했고, 재판관들은 해안을 따라 주욱 늘어서야 했다.

"그 때 우리는 다몬의 아들, 아우릴로코스를 재판했지."

여전히 에우티마코스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친구 아버지와 친구 되는 사이라 어떻게든 목숨은 살려 보려고 했지만, 범죄 증거가 워낙 명백하고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사형 쪽에 손을 들고 말았네."

"소크라테스에게도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네."

칼리온이 솔직히 안됐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을 잇는다.

"소크라테스에 비해 자신이 너무 어리석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게 문제일세. 누구든 열등감에 빠지면 괜히 복수심에 불타지 않는가 말이야."

"사형이 언도된다 해도 자신 말고 누구에게 화살을 돌릴 수 있겠나? 소크라테스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더 잘난 체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러자 칼리온이 소리를 높인다.

"'나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사람이다, 무식한 사람이다' 라고 하는데도 말인가!"

에우티마코스도 지지 않을세라 열을 올린다.

"그게 바로 잘난 체하는 짓거리의 절정이란 말일세. 나는 무식하다, 그렇지만 너는 네가 무식한지도 모르는 사람이니, 나보다 더 무식하다는 말이 아닌가! 남에게 그토록 욕지거리를 해 댔으니, 당한 사람들이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네. 아니지. 내가 한 마디만 더 할까? 그 노인네가 단 한 번도 도편 추방되지 않고 나이 일흔이 되었다는 게 더 이상할 정도네!"

 

도편 추방이란 당시 매우 유행하던 이상한 절차로, 마치 거꾸로 하는 선거 같은 것이었다. 누구든지 자기 생각에 시민 중에서 폴리스에 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고라에 특별히 마련된 사기 조각, 오스트라콘에 그 사람의 이름을 써 넣는 제도였다. 표적이 된 사람은 6천 표를 얻는 날로부터, 열흘 안에 친지들과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외국으로 나가야만 했다. 외국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자기가 얻은 표에 따라 5년이 될 수도 있었고 10년이 될 수도 있었다. 시민들은 왜 그 사람의 이름을 썼는지 이유를 설명할 의무가 없었다. 이런 관습은 아테네의 창설자라고 할 수 있는 클레이스테네스*가 개인이 신격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이 제도에 대해 평하기를 "시기심을 해결하는 억제된 만족" 이라고 했다. 만약 지금 이 제도가 살아 있다면 얼마나 많은 정치가와 방송인들과 운동 선수들이 외국으로 추방되어야 할까! 내가 이 책에 이름을 밝히는 것은 경우가 아니겠지만, 독자들은 자유롭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의 명단을 한 번쯤 작성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아테네의 정치가 클레이스테네스(Cleisthenes, 기원전 570?~508?)는 아테네 시의 최고 행정관인 아르콘을 지냈고, 귀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일반 시민으로 이루어진 민회와 연합했다. 그의 업적은 솔론의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세습 특권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정치 조직의 기반을 씨족이나 혈족에 두는 것이 아니라 데모스를 기본으로 하는 지역성에 두게 한 점이다. 그리하여 모든 시민들에게 평등권을 부여하고, 아테네의 모든 시민들이 공적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소크라테스 어른이 등장한다. 평온한 얼굴에, 여느 때나 다름 없이 트리본을 걸친 채, 떡갈나무 지팡이를 짚고 걸어 나온다. 칼리온이 감탄조로 말한다.

"드디어 저기, 그 완고한 노인네가 나타나셨네. 그런데 재판이 아니라 향연에 나가는 사람 같지 않나? 웃음 띤 얼굴에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사람마다 인사를 하고 있잖나!"

"언제나 그렇듯이 골칫덩어리라니까!"

점점 더 적의에 찬 음성으로 에우티마코스가 거든다.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생각한다는 걸 모르는 모양일세. 겁에 질려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걸 말일세."

소크라테스는 단 위에 올라가 수석 아르콘의 곁에 앉는다. 그리고 법정의 정리(廷吏)가 개정을 알리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헬리아스테스 여러분!"

정리가 입을 연다.

"멜레토스의 아들, 멜레토스가 고발한 소프로니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의 불경죄에 대해 판결을 내리도록 신은 오늘 여러분의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아테네의 법정에는 검사라는 직책이 없었다. 시민이면 누구든 형사 재판의 원고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자신의 책임과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피의자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고발한 사람은 피의자 재산의 10분의 1을 챙길 수가 있었지만, 반대로 무죄가 되면 1천 드라크마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무죄의 경우 무조건 벌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고발 내용에 대해 참석 재판관들로부터 5분의 1의 찬성표를 얻지 못하면 1천 드라크마의 벌금을 내야 했다).

변호사라는 직책도 없었다. 피의자는 유식한 사람이든 까막눈이든 알아서 자기 변호를 해야 했다. 자신이 없는 사람은 재판 전에 로고그라포스의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 로고그라포스란 법정에서 외울 변론을 대신 써 주는 법 전문가를 말하는데, 잘 나가던 로고그라포스는 안티폰, 프로디코스, 데모스테네스, 리시아스가 있다.

"멜레토스의 아들, 멜레토스, 발언하시오!"

정리가 곱슬머리에 단정한 차림의 젊은이를 가리키며 말한다.

멜레토스가 고발인 측 단상으로 오른다. 전형적인 비극 시인 답게 음침하고 고통에 찌든 듯한 얼굴로, 소크라테스처럼 나이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짐짓 고통스럽다는 표정이다.

"아테네의 재판관 여러분!"

젊은이는 자기 앞에 늘어서 있는 재판관들을 천천히 굽어 보며 입을 열기 시작한다.

"나, 멜레토스의 아들, 멜레토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우리 도시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지 않으며, 다이몬*을 믿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종교 행위를 한 죄로 소크라테스를 고발합니다."

 

*다이몬(daimon)은 오늘 날 거의 모든 종교에서 악령이라고 하는 사악한 영적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특정한 신이 한 일이 아닌 주로 초자연적인 힘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초기 그리스 사회에서는 사람이 죽어서 악령이 된다고 믿었지만, 후기에 오면서 악령이 신보다는 지위가 낮아서 영원히 사는 존재는 아니나 인간보다는 우위에 있다고 믿었다. 다이몬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힘으로 간주되었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다이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차갑고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공격에, 군중 사이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멜레토스는 방금 한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한 마디 한 마디 운율을 넣어 가며 잇는다.

"나, 멜레토스의 아들, 멜레토스는 본분에 어긋난 일을 한 죄로 소크라테스를 고발합니다. 그는 땅 아래의 것과 하늘 위의 것들에 대해 탐구했으며, 사람과 주제를 가리지 않고 얘기를 나누면서 형편 없는 생각을 훌륭한 생각으로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저는 여러분에게 이런 죄를 범한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것을 청합니다!"

마지막 말에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피의자의 반응을 보려고 소크라테스를 향했다. 그러나 우리의 철학자 어른은 그저 조금 놀라워 하는 표정일 뿐, 피고인이라기보다는 방청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태연하다. 에우티마코스가 팔꿈치로 칼리온을 쿡쿡 찌르며 상황을 묘사한다.

"저 노인네가 아직도 주제 파악을 못하는 게 아닌가? 소크라테스가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건 멜레토스 말이 골백번 맞네. 언젠가는 비를 내리는 것은 제우스 신이 아니라 구름이다, 제우스 신이 비를 내린다면 맑은 하늘에서도 비가 쏟아져야 한다고 했다잖나?"

"그거야 아리스토파네스가 한 말이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아니잖아?"

재판은 계속되고, 멜레토스에 이어 나머지 공동 고발자인 아니코스와 리콘이 단상 위로 올라간다. 그 때 칼리온이 속삭였다.

"엊저녁 아폴로도로스가 하는 말이 소크라테스가 리시아스의 도움을 거절했다던데?"

"리시아스가? 변론을 대신 써 주기라도 했다던가?"

"그렇다니까. 그것도 끔찍하게 잘 쓴 변론이었다는 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케팔로스의 아들, 리시아스라면 아테네에서 제일 잘 나가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왜 거절했대?"

에우티마코스의 물음에 칼리온이 계속했다.

"거절한 정도가 아니고, 그런 말을 했다고 오히려 리시아스를 꾸짖었다는 거야. 이렇게 말했다네 글쎄. '자네의 그 말장난으로 나를 살리려고 아테네의 재판관들을 속일 셈인가? 법을 어기는 음모를 꾸미는 일이 어떻게 내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노인네 언제나 그렇게 잘난 체 한다니까!"

 

아니토스와 리콘까지 말을 마치자 정리가 변호 시간을 재는 데에 쓰이는 물시계를 뒤집으면 외친다.

"이제 소프로니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 발언하시오!"

소크라테스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 보고는 목덜미를 긁적인다. 수석 아르콘을 한 번 쳐다 본 다음 재판관들을 향해 몸을 돌린다.

"오, 아테네 시민들이여. 고발자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르오. 이 사람들이 한 얘기가 얼마나 그럴 듯해 보였는지, 내 얘기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을 지경이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이 한 말 중에 진실된 얘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오. 여러분, 제가 미사여구를 쓰지 않더라도 용서하시오. 늘 하던 대로 꾸밈 없이 얘기하리다. 그 대신 틀림없이 옳은 것만을 얘기하겠소. 여러분들은 내가 하는 말이 옳은지 그른지만 따져 보도록 하시오!"

"저 노인네, 또 그 지겨운 연설을 시작하누만."

에우티마코스가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오, 제우스 신이여! 저 보기 싫은 꼬락서니 하고는!"

"에우티마코스, 제발 좀 조용히 하게.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잖나!"

소크라테스가 하는 말이 이어진다.

"여러분, 이상한 얘기를 하나 들려 드리리다. 어릴 적부터 나와 절친한 사이였던 카이레폰에게 일어난 일인데, 어느 날 이 친구가 델포이 신전에 갔소. 그러고는 괴상한 질문을 던져 신탁을 듣고자 했소. 그가 '이 세상에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나이까?' 하고 묻자 저 아폴론 피티오스*께서 뭐라고 했는지 아시오? 이 세상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했다 하오. 카이레폰이 내게 신탁의 내용을 말해 주었을 때,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오. 신들 중의 신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이었을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소. 그러나 제우스 신께서 거짓말을 할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이렇게 물었소. 그 수수께끼 같은 말 뒤에 무슨 뜻이 숨어 있을까?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카이레폰의 동생이 증언해 줄 수 있소. 카이레폰은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니 말이오."

 

*아폴론 신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모셔져 있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아폴론 신을 지칭할 때, 델포이의 고대 명칭인 피토(pytho)의 형용사를 써서, '아폴론 피티오스(Apollon pithios)', 곧 '피토의 아폴론 신'이라는 관용적인 말을 썼다.

 

에우티마코스가 여전히 툴툴거리며 끼어든다.

"카이레폰의 얘기가 오늘 이 불경죄 재판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소크라테스에게 화가 나는 것은 무슨 말을 하든 저렇게 빙빙 돌려서 한다는 걸세. 이것만으로도 사형에 처하고 싶다니까!"

소크라테스는 최대한 침착한 말투로 계속한다.

"신의 메시지가 무슨 뜻인지 물어 보려고 나는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찾아갔소. 오, 아테네 시민들이여. 그 사람들 이름은 굳이 대지 않겠소. 우리 시대의 정치가라는 것만 말하겠소. 그런데 이 훌륭한 양반이 겉보기와는 달리 실제로는 전혀 지혜롭지 않았소.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내가 느낀 대로 말을 해 주었는데 그 때부터 나를 미워하기 시작한 거요. 나는 또 시인 한 사람을 찾아갔소.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되는 그 사람의 시를 손에 들고 말이오. 그 시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았소. 허나, 오, 아테네 시민들이여, 부끄러워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요. 자기가 쓴 시에 대해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은 바로 그 시를 쓴 시인 자신이었소! 정치가와 시인 다음에는 예술가들을 찾아갔소. 그래서 무얼 깨닫게 되었는지 아시오? 그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뛰어나다고 다른 일에도 지혜로운 줄 착각하고 있었소.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한 일에 대해서도 말이오. 그제서야 나는 신탁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소. 소크라테스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아는 것이 없다는 걸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이오. 그러는 동안 나는 시인과 정치가와 예술가들에게서 미움을 사게 되었소. 오늘 이렇게 시인인 멜레토스, 정치가요 예술가인 아니토스, 그리고 웅변가인 리콘으로부터 고발당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오."

 

그 때 멜레토스가 끼어들며 반박했다.

"오, 소크라테스, 당신이 지금 한 말은 교묘한 변명일 뿐이오. 이러쿵 저러쿵 떠들지 말고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는 고발에 대해서나 변호해 보시오."

"오, 멜레토스. 도대체 어떻게 내가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소?"

"젊은이들에게 태양은 돌덩어리요, 달은 흙으로 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오, 다른 사람과 혼동하고 있구만. 그런 얘기는 마음만 먹으면 아고라 어느 구석에서든 1드라크마에 살 수 있는 책에 씌어 있는 것이 아닌가? 클라조메나이의 아낙사고라스가 쓴 책 말일세."

"당신은 신들을 믿지 않소! 오직 다이몬만 믿잖소!"

멜레토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손가락으로 소크라테스를 위협하면 소리르 질러 댔다.

"다이몬이라 했는가? 다이몬이 도대체 누구인가? 신들의 못돼먹은 자식들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신의 존재는 믿지 않으면서 그런 신들의 자식만 믿는다고 말하는 건가? 마치 내가 망아지는 믿으면서 말의 존재는 믿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갑자기 터져 나온 웃음 소리에 소크라테스의 말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우리의 철학자 어른께서는 청중들이 다시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두 번째 고발자를 향해 몸을 돌린다.

"아나토스, 자네는 내 목숨을 달라고 하면서, 어찌 내가 타락시킨 젊은이들을 여기 데리고 오지 않았는가? 내 도움이 필요했다면 자네를 도와 줄 수도 있었을 터인데 말이네. 내가 타락시킨 사람들 중에는 이제 나이가 든 사람도 많으니, 자신이 이 늙은이 때문에 타락했다고 증언을 해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니, 저기 몇 사람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구만. 아들 크리토불로스와 함께 온 크리톤이 보이는군. 스페토스의 리사니아스도 아들 아이스키네스를 데리고 왔군. 케피시아의 안티폰, 니코스트라토스, 파랄리오스, 아데이만토스와 그의 아우 플라톤, 아이안타도로스와 아폴로도로스 형제도 있네. 오, 아니토스, 내가 외국으로 나가 내 꼴을 보이지 않으면 자네 마음이 편하겠나? 이보게, 자네 마음이 편해진다면야 그렇게라도 하겠네. 하지만 사실은 말일세, 내가 외국으로 나가는 건 아테네에 큰 손실이라고 생각하네. 외국에 나가더라도 나는 결코 자네들을 질책하는 일을 그만 두지 않을 걸세. 마치 조용히 잠을 자고 싶어하는 순종 말 잔등에 붙어서 옆구리를 물어 뜯는 빈대처럼, 자네들이 어디 있건 나는 하루 종일 자네들에게 떨어지지 않을 걸세. 이것이 바로 아폴론 신께서 내게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네. 오, 아테네 시민들이여, 내가 말하는 말(馬)은 바로 아테네요, 그대들이 내게 사형 선고를 내린다면, 다시는 그대들의 양심을 지켜 주는 나 같은 빈대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오. 내가 할 말은 이제 다 했소. 이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친지들과 어린 자식들을 불러 들여 여러분의 연민에 호소하는 일만 남은 것 같소. 물론 나도 가족이 있고 아들 셋이 있소. 하지만 나는 그들을 부르지 않겠소. 나나 여러분의 영예가 더럽혀질까 두렵기 때문이오. 여러분은 마음을 감동시키는 사람에게 이끌려 판단을 흐리지 말고 엄밀하게 법을 적용해야 할 사람들이니 말이오."

 

물시계의 마지막 방울이 떨어졌다. 말을 마친 소크라테스는 등 뒤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는다. 그와 친한 사람들이 조심스레 박수를 치면서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 보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판결을 위한 투표가 시작된다.

"의문의 여지가 없어. 유죄라니까!"

에우티마코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단호하게 내뱉는다.

"죄가 없다 해도 사형은 당연한 거야. 다른 사람의 신념을 갈팡질팡하게 하는 저 노인네의 장황한 연설은 폴리스에 유익할 게 없어. 불안 심리를 퍼뜨리는 사람이고, 사회를 파괴하는 사람이라니까. 빨리 죽는 게 모든 사람에게 낫단 말일세!"

칼리온이 끼어 들었다.

"내가 자네라면 그렇게 단정하지는 않겠네. 어떤 도시든 양심을 일깨워 주는 사람은 있어야 하네. 소크라테스는 그런 점에서 유일한 사람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공평무사한 사람이지. 정치가도 아니고 더구나 가진 게 없는 사람이잖는가? 설령 잘못을 했다 치세. 최소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는 않았네."

"아니, 칼리온! 자네 가난이 젊은이에게 보여 줄 좋은 본보기라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 자식이 저 노인네처럼 자라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아고라를 휘젓고 다니면서 선이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인가, 옳은 것은 무엇이고, 불의는 무엇인가, 하고 떠들기만 하는 사람처럼 말인가?"

에우티마코스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사형을 뜻하는 검은 조약돌 프레포스를 집어 들고 벌떡 일어서서 투표함 쪽으로 걸어 나간다. 아직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사형을 내려야 한다고 열을 올리면서.

"소크라테스라면 이제 진저리가 나지 않소! 저 늙은이를 황소 등에서 영원히 없애 버립시다. 자기 입으로 아테네를 물어 뜯는 빈대라고 하잖습니까? 저 사람 말대로 해 주자구요. 어떤 말이 자기 잔등을 물어 뜯는 빈대를 그냥 두고 싶겠서요? 말에게 손이 있다면 그 성가신 빈대를 그냥 둘 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칼리온은 아직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여론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옆 사람에게 물어 보지만, 사람들 의견은 대체로 소크라테스를 증오하는 사람과 반대로 그가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의견으로 반반 갈리는 것 같았다. 투표함에 길게 늘어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펴느라 열을 올리고 있고, 먼저 투표를 끝낸 사람들은 의자에 자리를 잡고 요기를 하고 있다. 도시락 바구니를 열어서 정어리며, 올리브, 보릿가루로 만든 빵을 꺼낸다. 안티폰이 11인 위원회(감옥을 감독하는 업무를 보는 법무관 위원회)의 우두머리에게 승낙을 구한 다음, 소크라테스에게 다가가서 무화과와 호두가 담긴 접시를 내민다.

아테네의 재판은 하루 종일 걸리는 것이 보통이었고, 재판관에 뽑힌 시민들은 법정을 떠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해질 무렵에는 어떤 형태로든 판결을 내려야 했고, 판결을 기다리는 미결수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드디어 투표함이 열리고 결과가 나왔다.

정리가 엄숙하게 결과를 발표한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헬리아스테스 여러분이 내린 판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흰 돌 220, 검은 돌 280. 소프로니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차단 선 뒤에 둘러서 있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오!" 하는 탄식이 들렸다. 크리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정리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외친다.

"이제는 아테네의 법에 따라, 죄인 스스로가 제안하는 대체형벌을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 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두 팔을 벌려 보인다.

"대체형벌이라구요? 내가 벌 받을 일을 무얼 했다는 말이오? 나는 일생 동안 내 개인의 이익이나 가족과 가문의 이익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소. 군대에서 출세할 생각을 해 본 적도 없고, 공적인 명예를 바라지도 않았소. 음모에 가담한 적도 없고, 폭동에 끼여 본 적도 없소. 이런 일을 한 사람에게 마땅한 벌이 무엇이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인지는 모르되, 오히려 상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오. 국가 비용으로 프리타네이온(오늘 날의 시청에 해당하는 성스러운 건물로,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딴 시민들을 국가 비용으로 보살펴 주는 곳이기도 했다)에 모셔야 하는 것 아니오?"

마지막 말을 마치기도 전에 야유하는 소리로 온 법정이 떠들썩하다. 우리의 철학자 어른께서 말한 어처구니 없는 요구가 재판관들을 놀리는 말처럼 들렸거나, 아니면 화를 돋우려는 말처럼 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소크라테스 어른 자신도 좀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말투까지 누그러뜨리며 다시 청중을 달랬다.

"좋습니다, 좋아요. 사랑하는 아테네의 동료 시민 여러분. 제 말이 오해를 불러 일으켰나 봅니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오만으로 비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 보시오. 내가 도대체 무슨 형벌을 제안할 수 있겠소? 감옥이겠습니까? 국외추방이겠습니까? 벌금형을요? 돈에 대해서는 가르쳐 본 적도 없는 내가 벌금을 낼 돈이 어디 있겠소? 고작해야 은화 1미나 정도라면 모르지만."

소크라테스의 제안은 사람들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사형을 대신해서 내는 벌금으로 은화 1미나는 그야말로 새 발의 피나 다름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받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좋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다시 크리톤과 제자들을 가리키며 한숨을 쉬더니 중얼거린다.

"여기 있는 내 친구들이 30미나는 내야 한다고 말하는구려. 이 친구들이 보증을 서 줄 수도 있다는구려."

그리하여 다시 두 번째 투표가 시작됐다. 사형인가, 30미나의 벌금인가를 결정하는 투표였다. 그러나 우리의 철학자 어른께서 처음으로 제안했던, 국가 비용으로 프리타네이온에 모셔야 한다는 대체형벌이 재판관들을 지나치게 화나게 한지라, 첫 투표에서 소크라테스 편에 섰던 사람들 중에서 여러 사람이 이번에는 반대로 돌아서 버리고 말았다. 검은 돌이 훨씬 더 많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360 대 140.

 

소크라테스 어른께서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아테네의 시민들이여. 여러분들은 폴리스 앞에 막중한 책임을 뒤집어 쓴 것이오. 나는 이미 늙어, 조금만 기다리면 저절로 죽을 몸이오. 여러분은 이런 판결로 나를 벌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이오. 여러분, 죽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든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이오. 죽음이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는 것이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고통도 없고 괴로움도 없을 테니 죽음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죽음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고 칩시다. 그러면 나는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갖게 될 것이오. 오르페우스*나 그의 제자 무사이오스, 호메로스, 헤시오도스하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가능성이 있다면 여러분은 돈을 얼마나 내겠소? 아니면 계략에 빠져 목숨을 잃은 팔레메데스*나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와 직접 만날 수 있다면 돈을 얼마나 걸겠소? 하지만 자 이제, 갈 시간이 되었소.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가는 것이오. 그러나 누구의 운명이 더 나은 것인지는 신만이 알 뿐 우리는 아무도 모르오."

 

*그리스 신화 중 최고의 시인으로 노래를 잘 부르고 비파를 잘 탔다고 한다. 그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끔찍이 사랑했는데, 에우리디케는 흑심을 품은 아리스타이오스를 피하다가 뱀에 물려 죽고 말았다. 오르페우스는 그 슬픔을 못 이겨 세상을 등지고 모든 여성을 멀리했다. 그러자 트라키아의 마이나스들이 자신들을 무시한다며 그를 갈가리 찢어 죽였는데 머리만 무사해서 강물에 떠내려갔다. 강물에 떠내려가면서도 그는 에우리디케만 불렀다고 한다. 그의 비파는 하늘로 올라가 거문고 자리가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팔라메데스는 오디세우스가 프리아모스의 금을 텐트 밑에 감춘 음모 때문에 누명을 쓰고 돌에 맞아 죽었다.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아킬레우스가 죽자 그 갑옷을 누가 가질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당연히 자기가 받아야 할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받지 못하자 아이아스는 한밤중에 자기 편 군대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가 죽인 것은 병사들이 아니라 양떼였고, 제 정신이 든 아이아스는 칼로 자살하고 말았다. 그가 흘린 피에서 아이리스 꽃이 피어났고 꽃에는 AI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그것은 아이아스의 첫 글자이기도 하고, 그리스어로 슬프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도대체 왜 사형 선고를 받았는가? 2천 4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런 물음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확실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제나 공동의 선을 위해 이러한 신념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언자가 있고, 점성술가들도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익을 위해 사회의 고통을 덜어 주는 진리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무언가 진짜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게 되면 그 사람은 갑자기 정치가들과 사제들의 공적 제1호가 되어 죽음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에 대하여 네 개의 『대화편』을 썼다.

첫째, <에우티프론>은 우리의 철학자 어른이 아직 자유의 몸이었을 때, 멜레토스가 제기한 고발 내용을 알아 보러 법정으로 가는 내용이다.

둘째, <변명>은 재판 과정을 다루는 것이고,

셋째, <크리톤>은 가장 절친한 친구인 크리톤이 감옥에 갇혀 있는 그 어른을 찾아가는 내용을 다룬다.

넷째, <파이돈>은 죽기 직전의 얘기와 영혼의 불멸에 관한 소크라테스 어른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수많은 출판사들이 때로는 한 권의 책으로 묶어 다투어 펴 내는 책이다. 물론 저 위대한 철학자 어른에 대해 더 철저히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꺼이 읽어 보라고 권하는 바이다.

 

소크라테스의 사형은 판결이 난 다음 바로 실행되지 않았다. 그 무렵, 사절단을 태운 배가 델로스 섬을 향해 출항했는데, 관습 상 성스러운 배가 항해 중일 때에는 극형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이런 관습은 다음과 같은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다. 크레타 섬의 미노스와 전쟁을 벌였다 패한 아테네 사람들은 코린토스의 미로, 라비린토스 속에 사는 머리와 뿔은 소요, 몸은 사람인 반인반수(半人半獸)의 괴물 미노타우로스의 먹이로 해마다 일곱 명의 처녀와 일곱 명의 아이들을 공물로 보내야 했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된 영웅 테세우스가 자원해서 일곱 쌍의 희생 제물을 데리고 코린토스로 떠났는데 이 때 아테네 사람들은 이들이 살아서 돌아오면 해마다 아폴론 신에게 감사하는 사절단을 델로스로 보내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사절단을 태운 배가 항해 중에는 국가의 이름으로 한 사람의 생명도 처단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고 희생 제물을 데리고 돌아 온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형 판결이 내려진 지 20여일 뒤이건만 소크라테스는 감옥에서 같은 마을 출신 동갑내기 친구 크리톤의 방문을 받게 된다.

때는 이른 새벽, 소크라테스는 아직 잠을 자고 있고, 크리톤은 그 옆에 말 없이 앉아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의 철학자 어른께서 눈을 떠 옆에 있는 친구를 알아 본다.

"오, 크리톤, 이 시간에 여기 웬일인가? 면회를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아닌가?"

"그렇네. 아직 새벽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들어왔나?"

"11인 위원회의 문지기들에게 팁을 좀 쥐어 줬지."

"온 지는 오래 됐고?"

"오래 됐네."

"왜, 바로 깨우지 않고?"

"자네가 하도 곤히 자길래 깨우는 게 죄가 되는 것 같았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태평할 수 있는가?"

"오, 크리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

소크라테스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대답한다.

"이 나이에 죽는 걸 가슴 아파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나?"

대화편 <크리톤>에 나오는 죽마고우 크리톤은 셜록 홈즈의 말 상대가 되어 주는 왓슨 박사를 생각나게 한다. 소크라테스가 무슨 말을 하든 그는 오로지 "자네 말이 맞네, 오, 소크라테스" 라든가, "오, 소크라테스, 꼭 그렇다니까" 라는 말 밖에는 덧붙이는 법이 없다. 하지만 우리의 철학자 양반께서는 영국 신사 양반보다는 훨씬 더 재치가 있어 보인다. "그건 기본이 아닌가?" 하는 식의 거친 말투로 친구를 깔아 뭉개는 법이 없다. 하기야 이 이야기는 소크라테스 개인의 독백이니까 어쩔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여보게, 크리톤. 어째 이리 일찍 왔냐니까?"

"오, 소크라테스. 자네에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러 왔네."

크리톤의 목소리는 거의 절망에 가까웠다.

"델로스로 간 배가 벌써 수니온 갑을 돌았다고 하네. 오늘이나 아니면 내일 아테네에 도착할 걸세."

"그게 뭐가 그리 이상한가? 언젠가는 돌아올 건데. 그게 신들이 바라는 일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될 터인데."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게. 우리 말대로 목숨은 건지고 봐야지. 간수들과는 벌써 다 얘기가 됐네. 눈 감아 주는 대가로 그리 많은 돈을 바라지도 않았네. 돈 걱정은 말게. 테베의 심미아스와 케베스 등 여러 사람이 대 주겠다고 했으니까. 뒷날 죽마고우 크리톤이 자기 돈 몇 푼 아끼려고 소크라테스를 도와 주지 않았다는 말은 듣지 않게 해 주게나."

"나도 도망할 준비는 돼 있어. 다만 아테네 시민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 먼저 생각해 보세. 옳은 일이라면 그렇게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삼가야지."

"소크라테스, 말 잘 했네."

"오, 크리톤, 어떤 일이 있어도 옳지 않은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르나?"

"그건 그래. 어떤 일이 있어도 그건 안 되지."

"우리가 먼저 옳지 않은 일을 당했다 해도 그렇겠지?"

"물론, 그럴 경우에도 안 되겠지."

"그렇다면 내가 감옥 문을 나서는 순간, 법(소크라테스는 여기서 자연의 법칙과 순리, 그리고 정의와 법률을 모두 하나로 보고 있다)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가정해 보게. '오, 소크라테스여, 그대는 지금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가? 그대는 지금 우리 법률을 파괴하고 또 그로써 온 폴리스를 파괴하려 하는가?' 라고 말일세. 그러면 우리는 무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인가? 탈옥 이전에 부당한 판결이 있었잖느냐고 대답할 건가?"

"물론이지. 그렇게 대답해야겠지."

"그렇자면 법이 내게 다가와 '오, 소크라테스여. 모든 인류가 법에 따라 사니 그대도 정당한 것이든 부당한 것이든 판결에 복종해야 하네. 그대에게 생명을 준 것도 따지고 보면 만물의 법칙인 우리가 아니었나? 그대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 그대를 낳아 준 것도 모두 우리의 은혜가 아닌가? 조국을 사랑하고 적 앞에서 물러서지 말라고 그대에게 가르쳐 준 것도 우리, 법이 아니었던가?' 라고 하면 법이 하는 말이 옳다고 해야 할까? 그르다고 해야 할까?"

"물론 옳다고 해야겠지."

"그런데도 자네는 나더러 우스꽝스럽게, 아니 어쩌면 여자 옷으로 변장하고 아테네를 떠나 질서도 없고 방종스럽기 그지없는 테살리아 같은 곳으로 피신하라는 말인가? 그것도 이제 거의 파장에 이르른 목숨을 몇 년 더 부지하겠다고…. 법을 어기고 난 다음, 내가 덕과 정의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으리란 말인가?"

"솔직히 아무 얘기도 할 수 없겠지."

"여보게, 친구. 보다시피 나로서는 도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네. 하지만 자네가 아직도 나를 설득할 수 있다면 기꺼이 들을 테니 말해 보게."

"오, 소크라테스. 나로서는 할 말이 없네."

"그렇다면 체념하게, 크리톤. 이것이 신이 우리에게 안내하는 오솔길일세."

 

다음 날은 사형 집행일이다. 감옥 문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친구들은 11인 위원회의 책임자가 감옥 안으로 들여 보내 줄 때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감옥 앞에 모인 사람 중에는 빠진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충실한 아폴로도로스, 어디를 가나 항상 붙어 다니던 크리톤과 그의 아들 크리토불로스, 젊은 파이돈, 견유학파의 안티스테네스, 가난뱅이 헤르모게네스(가난뱅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이유는 실제로 가난하기도 했지만, 그의 형 칼리아스가 아테네에서 제일 가는 부자였기 때문이다), 에피게네스, 메넥세노스, 크테시포스, 소시지장이의 아들 아이스키네스, 그리고 테베 사람 심미아스와 케베스나 메가라에서 온 테르프시온과 에우클레이데스처럼 멀리서 온 사람도 있다. 잘 알려진 제자들 중에 아리스티포스와 클레옴브로토스가 보이지 않고, 열이 나서 못 온 플라톤 역시 보이지 않는다.

제자들이 감방 안에 들어섰을 때, 스승 어른은 크산티페와 막내 아들과 함께 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자 크산티페는 다시 절망적으로 울부짖기 시작한다.

"오, 소크라테스. 이게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에요!"

그러자 소크라테스 어른은 크리톤을 돌아보며 말한다.

"누가 이 사람을 집에 좀 데려다 주게."

"당신은 아무 죄 없이 죽는 거란 말이에요!"

제자들에 끌려 밖으로 나가면서 크산티페가 소리친다.

"그럼, 내가 죄인으로 죽기를 바랐소?"

소크라테스가 대꾸하는 말이었다.

그러는 동안 간수 한 사람이 발목에 잠겨 있던 사슬을 풀어 주자, 소크라테스는 아픈 듯 발목을 주무르며 덧붙인다.

"고통과 즐거움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란 말일세. 이 두 가지는 서로 반대 되는 것이라, 한 사람 안에 동시에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으니 말일세. 조금 전 사슬에 묶여 있을 때만 해도 다리에 고통이 있더니, 떼어 내자마자 즉시 이렇게 즐거워지질 않나. 이솝이 고통과 즐거움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면 틀림없이 멋진 우화를 하나 썼겠지?"

 

대화는 죽음과 피안의 세계로 옮겨갔다. 소크라테스는 이 문제에 대해 지옥과 천국을 연상케 하는 말을 한다.

"나는 죽은 이들에게도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네. 착한 사람에게는 더 좋은 미래가 있을 것이고, 악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겠지."

이리하여 영혼의 불멸에 관한 토론이 시작되는 것이다. 테베 사람 심미아스는 사람의 몸을 악기에, 영혼을 악기에서 나는 화음에 비유하면서, 리라(우리의 육체)가 부서지면 악기와 함께 화음(영혼)도 죽는다고 주장한다. 케베스는 그 의견에 찬성하지 않고, 영혼은 윤회를 통해 다른 몸에 또 태어난다는 의견을 낸다.

"영혼이란 마치 일생을 사는 동안 여러 개의 망토를 소비하는 사람과 같은 것이야. 여러 개의 망토, 아니 직접적으로 말해서, 하나의 영혼이 갈아입는 여러 개의 육체는 그 주인인 영혼보다 오래 살 수는 없는 것이지. 맨 마지막의 육체는 예외지만 말일세."

한 마디로 케베스는 사람이 죽게 되면 윤회의 마지막 회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영혼이 아주 죽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의견은 반대이다.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상황 파악도 못하고 너무 열띤 논쟁을 벌이자 크리톤은 스승을 나무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오, 소크라테스. 간수가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안 된다고 했네. 너무 열을 올리면 독이 효력을 못 내서, 독미나리를 곱배기나 마셔야 한다잖는가."

"그럼 곱배기나 세곱배기로 넉넉히 준비하라고 하고, 제발 지금은 말 좀 하게 내버려 두게."

말을 마친 스승 어른께서는 다시 제자들을 향해 돌아서서 영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죽음 다음에 아무 것도 없기를 바라는 건 못돼 먹은 사람들 뿐이지. 당연하잖는가? 자기들한테 득이 될 테니 말일세. 허나 그런 사람들은 타르타로스에서 고통스럽게 헤매게 될 걸세. 정직하고 절제된 생활을 한 사람만 참다운 땅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될 걸세."

 

"오, 소크라테스. 참다운 땅이라니 그게 무얼 말하는 겁니까?"

심미아스가 지극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스승에게 묻는다.

"내 생각에는 말일세. 땅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네. 땅은 우주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아무 데로도 떨어질 데가 없으니 받침대가 필요하지도 않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네. 파시스에서 헤라클레스의 기둥(흑해의 동쪽 끝에서 지브롤터 해협)까지만 알고 있는 우리는 마치 조그만 웅덩이 주변에서 맴도는 개미나 개구리 같은 존재란 말일세. 사람들은 땅 꼭대기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구덩이 속에 사는 것일세. 마치 바다 깊숙이에 사는 사람이 바다 수면을 하늘의 천장이라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일세. '참다운 땅'은 마치 열두 조각을 붙여 만든 가죽 공 같은 것이라고 한 사람도 있네(열두 개의 오각형으로 만들어진 십이면체는 거의 구형에 가까운 것으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이 구형은 오늘 날의 축구공과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각 조각들은 무지개 색과 온갖 색으로 물들어 있다고 하네. 어떤 부분은 금빛으로 빛나기도 하고, 눈보다 흰 곳이 있는가 하면, 은빛을 띠는 곳도 있네. 진홍빛을 띤 곳도 있지. 땅에 있는 구덩이들도 물이나 공기로 차 있어서 밖에서 보면 여러 가지 색을 띤 것으로 보일 걸세. 마찬가지로 참다운 땅에 있는 나무나 과일, 꽃, 돌멩이, 산들은 너무나 판판하고 투명해서 그것에 비하면 우리들이 값지게 생각하는 보석들도 칙칙해 보일 걸세. 우리들이 바다의 물가를 따라 살듯이 그곳의 복 받은 사람들은 공기의 가를 따라 사는 걸세."

"도대체 누가 이런 얘기를 한답디까?"

심미아스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묻는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그의 참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한다.

"반대로 땅 깊숙한 곳에는 호메로스와 수많은 시인들이 타르타로스라고 한 심연이 있네. 세상의 모든 강이 흘러들고, 또 세상의 모든 강이 시작하는 곳이지. 이 곳으로 흐르는 강 중에 특별히 네 개의 강이 있지. 땅 둘레를 흐르는 오케아노스 강이 있고, 반대 방향으로 흐르다가 아케루시아스라고 하는 늪지에서 끝나는 아케론 강이 있네. 불로 되어 있어서 출구만 있으면 용암의 형태로 솟아나는 피리플레게톤이라는 강도 있고, 마지막으로 코키토스 강이 있네. 이 강은 나션형으로 흐르면서 땅 속 깊이 스며들어 타르타로스로 떨어지네.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들의 영혼은 아케루시아스 늪지로 옮겨지지. 그들 중 일부는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표면으로 나올 수 있지만, 죄질에 따라서 영원히 그 곳에 머무르는 영혼도 있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의 영혼이 거치게 될 운명일세. 못된 사람들은 타르타로스로 가고 깨끗한 사람들은 참다운 땅으로 가는 거지. 살아 있는 동안 철학을 해서 덕과 지혜를 쌓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네. 좋은 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희망도 큰 것이 아닌가!"

"지금 하신 말씀을 정말 믿으시는 건가요?"

심미아스는 여전히 눈에 심지를 켜고 묻는다.

"이걸 믿는다는 것은 현명한 사람에게는 적절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네만,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에는 좋겠지…."

 

바로 그 때, 감방 입구에 노예가 나타났다. 손에는 아직 빻지 않은 독미나리가 담긴 대리석 그릇을 들고 있다.

"운명이 나를 부르는군."

소크라테스가 혼잣말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자 크리톤이 중얼거렸다. 절망스런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할 말이 없나? 장례는 어떻게 치러 줄까?"

"자네들 좋을 대로 하게나. 내가 이번에도 또 자네들 손아귀를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말이네."

소크라테스는 웃는 얼굴로 계속했다.

"하지만 여보게. 나의 친구, 크리톤. 진정한 소크라테스는 지금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사람이지, 잠시 뒤 이 침대 위에 누워 있을 그 주검이 아니라는 걸, 뭐라고 설명해야 알아 듣겠나?"

 

시간이 별로 없다. 크산티페와 미르토, 그리고 세 아들이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안으로 들어간다. 소크라테스는 한 사람 씩 차례로 다정하게 안아 주고는 밖으로 나가라고 손짓한다. 아폴로도로스도 더 이상 눈물을 참지 못한다. 다시 11인 위원회의 전령이 들어와 죄수에게 말한다.

"오, 소크라테스. 저는 어른께 아무런 불평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죽기 전에 아테네에 저주를 퍼부었고, 제게도 독설을 해 댔습니다. 이 감옥에 계시는 동안 저는 어르신을 처음 알게 되었지만, 어른께서는 이 곳을 다녀 간 어떤 사람보다 착하고 부드러운 분이셨습니다."

말을 마친 11인 위원회의 전령은 울음을 터뜨리며 밖으로 나갔다. 소크라테스조차 조금 당황하는 눈치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멈칫거리더니 갑작스럽게 바뀐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크리톤을 향해 독미나리를 준비하고 서 있는 노예를 어서 들러 오게 하라고 일렀다.

"사랑하는 친구여, 왜 이리 서두르는가? 해가 아직 지지 않았네. 다른 사람들은 마지막 햇빛이 남아 있을 때까지 약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네. 실컷 먹고, 일부러 데려온 여자와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그리고서 최후의 순간에야 마신다고 하잖는가?"

"죽음의 순간을 뒤로 미루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삶에 지나친 애착을 보인다면 너무 애처롭게 보일 것이 아닌가? 게다가 지금껏 내가 가르쳐 온 것을 한 순간에 저버리게 되지 않겠는가?"

 

독배를 든 노예가 들어왔다.

소크라테스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여보게, 친구. 자네는 이런 일에 익숙할 터이니,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게."

"약을 드시고 그냥 방 안을 왔다갔다 하면 됩니다."

노예의 대답이었다.

"그러다 다리가 비틀거리기 시작하면 침대에 누우세요. 그 다음에는 약이 다 알아서 할 겁니다."

"자네 생각에는, 이런 음료로 신을 위해 건배해도 괜찮겠나?"

소크라테스가 물었다.

"그건 우리 할 일이 아닙니다. 필요한 만큼 약 가는 일만 할 뿐이니까요."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노예가 소크라테스에게 독을 내밀었다. 소크라테스 어른께서는 전혀 떨림이 없이 약사발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갑작스럽고 단호한 동작이라, 감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겨우 울음을 참고 있던 사람들까지…. 크리톤은 절망한 듯, 일어서서 감방 밖으로 나갔다. 벌써부터 흘러내린 눈물 자국으로 얼굴에 주름이 잡혀 있던 아폴로도로스가 미친 듯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파이돈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리고.

가련한 소크라테스 어른은 어쩔 줄 모른다. 이 사람 저 사람 옮겨 다니며 위로하다가, 크리톤을 다시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아폴로도로스의 머리를 어루만지고, 파이돈을 껴안아 주고는 아이스키네스의 눈물을 닦아 준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이리저리 위로하다 내뱉는 소크라테스의 목소리가 불만스럽다.

"이런 달갑지 않은 장면을 보지 않으려고 크산티페를 내보냈더니…. 자네들이 더 이러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네. 어서 힘을 내, 진정하게나. 그렇게 하는 것이 철학자 다운 일이고, 옳은 사람 다운 일이네."

소크라테스의 말에 제자들은 잠시 부끄러운 눈치였고, 소크라테스는 그 사이에 노예가 말해 준 대로 방 안을 왔다갔다 했다. 몇 분이 지나고 다리가 점점 더 무거워지자, 침대에 누워 조용히 최후를 기다렸다. 노예가 다리를 세게 누르며 손으로 누르는 게 느껴지느냐고 물었다. 소크라테스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독약이 본분을 다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느덧 복부에도 감각이 없다.

 

갑자기 소크라테스가 속삭였다.

"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을 한 마리 빚졌네. 내 이름으로 꼭 갚아 주게. 잊어버리지 말고."

"그렇게 하지."

크리톤이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건 없나? 또 할 얘기는 없는가?"

그러나 이미 소크라테스는 대답이 없었다.

며칠 뒤 아테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처형한 일을 후회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체육관과 극장과 경기장이 문을 닫았고, 아니토스와 리콘을 추방했다. 멜레토스는 사형에 처했다.

 

소크라테스 어른의 삶은 그 분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고, 철저하게 언행이 일치된 삶이었다. 그 분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진리를 찾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마치 사냥개처럼 사람들을 쫓아 다니며, 길거리 구석에 몰아세우고 질문 공세를 퍼부으며,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도록, 영혼 깊이 들여다 보도록 몰아 세웠다. 이 어른을 향한 존경심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테네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를 마치 페스트 환자 보듯 피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버릴 수 없다. 이 어른의 짜리몽땅한 모습이 저 멀리 '포르타 사크라(성스러운 문)' 아래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저기 온다, 저기 온다. 어서 피해!" 하고 소리치며 깡그리 줄행랑을 쳤을 게 틀림 없다.

플라톤은 『라케스』에서 소크라테스 어른에 대해 이런 말을 들려 준다.

"소크라테스는 누구와 만나든 그 사람과 얘기를 시작했다. 어떤 주제로 얘기를 하든 자기 자신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고는 그를 떠날 수 없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이 말을 실감나게 보충해 준다.

"소크라테스와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그를 떼어 놓기 위해 때로는 주먹질을 했고, 머리털을 잡아 뽑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젊었을 적에 철학을 하는 다른 사람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자연과 별에 대해 공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물질적인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지혜와 윤리 문제에 온통 관심을 집중했을 것이다. 자연 관찰을 하기 위해 여행이라도 하자고 하거나 아니면 소풍이라도 하자고 하면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무와 자연이 무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은 인간이고, 그들은 모두 여기 도시 안에 있는데!"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요약하기 위해 여기 소크라테스가 다룬 세 가지 주제, 곧 '산파술', '보편성', '다이몬'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하자.

 

 

[산파술]

 

소크라테스가 "나는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 말했다 해서, 소피스트처럼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진리를 찾으라고 부추기는 말이다. 마치 이런 말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표현하고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친구들, 진리는 존재하네. 나는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했지만 말일세. 그렇지만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그것을 모른 체 하고 살 수 없다고 생각되네. 그러니 반드시 그것을 알아내야 하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선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걸세."

 

그러면 지금부터 소크라테스 어른이 생각하는 인간의 마음을 그려 보기로 하자. 인간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잡초 더미가 쌓여 있다. 잡초 더미 중심에 잘 숨겨진 진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모든 행동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라고 해도 좋고, 사물의 의미라고 해도 좋다. 그렇다면 진리에 도달하고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잡초를 치워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대청소 작업이라! 라틴어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되풀이하자면, '파르스 데스트루엔스'라고 하는 이 작업을 위해 소크라테스는 반어법을 주로 쓴다. 반어법은 그리스어로 '에이로네이아'라고 하는데, '숨기면서 질문하다' 라는 뜻이다.

사실 반어법에 있어서 소크라테스 어른을 앞서는 대가는 없을 것이다. 무식하고 생각 없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으로부터 뭔가 한 수 배우고 싶어 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소크라테스가 반어법을 쓸 때의 특징이다. 끊임없이 질문을 해서 끝내 그 사람 자신이 모순을 알아채게 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잡초란 따지고 보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선입견과 그릇된 이상과 미신이다. 일단 잡초를 치우고 깨끗이 터를 닦은 뒤에는 참다운 지식을 끄집어 내야 하는데 이 때에 바로 '산파술', 다시 말해 사람의 정신을 태어나게 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테아이테토스』에서 산파였던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하면서 산파술에 대해 설명한다.

"내가 하는 산파 일은 모든 면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하는 일과 비슷하네. 그들이 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나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육체를 대상으로 하는데 나는 영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

한 마디로 소크라테스는 자기 고유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다른 사람들이 각자 그 진리를 찾는 데에 도움을 줄 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혜에 관한 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네. 그러기에 신은 내게 진리를 낳아 주는 것은 하지 말고, 산파 일을 하라고 하신 거라네."

 

소크라테스가 산파 일을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대화 뿐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기에 그 어른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든 그에 맞게 그 때 그 때 임기응변을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글로는 그런 효과를 낼 수 없다고 한다. 그가 글을 쓰지 않은 까닭은 아는 것이 없다 보니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크라테스는 사실 글에 대해 철저히 불신하고 있다. 플라톤이 쓴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으로 되어 있는 우화에는 이런 이야기가 씌어 있다.

 

옛날 옛적에 이집트라는 나라에 테우스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숫자와 기하학과 천문학과 주사위 놀이와 글자를 발명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테우스는 이집트의 왕 타무스를 찾아가서 자기가 발명한 것들을 모두 보여 주었다. 글자 차례가 되자 테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대왕 마마 신하들의 지혜와 기억에 좋은 약이 될 것이옵나이다."

그러자 왕이 대답했다.

"오, 훌륭한 테우스여. 그대가 발명한 글자라는 것은 지금 말한 것과는 반대의 일이 일어나게 할 것이니라. 나의 신하들이 글에 의지하다 기억을 전혀 쓰지 않을 것이 아니냐? 그러다 보면 자신의 내면이 아니라 밖에 쓰여진 문자를 봐야 무슨 생각을 해 낼 수 있을 것이 아니냐?"

 

소크라테스가 금방 지어 낸 얘기라는 걸 안 파이드로스가 강력하게 항의하자 우리의 철학자 양반이 대답한다.

"자네들 젊은 사람들은 내가 한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속에 우리가 찾는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게 탈이란 말일세."

그러고 나서 또 한 마디 덧붙인다.

"문자란 마치 그림과 같은 것이라네. 그림을 보고 무슨 말을 해도 대답을 못 하듯이, 글도 그 책을 쓴 사람이 선택한 것을 언제나 똑같이 반복할 뿐 대답을 해 줄 줄 모른다네."

어쩌면 예수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소크라테스 어른이 읽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르는 문맹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소크라테스 어른이 이솝 우화 같은 우화를 썼는데 어찌 글을 읽을 줄 모를 수 있느냐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글 쓰는 사람에게 대필을 시켰다고 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니 말이다. 소크라테스 같은 지성인이 어떻게 글을 쓸 줄 모를 수 있느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오늘 날에도 수백만의 지성인이 있지만, 그들 중에는 단 일주일이면 배울 수 있는 컴퓨터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사실 그 무렵 그리스에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런 말을 들려 준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어떤 아테네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오스트라콘(도편)에 아리스테이데스의 이름을 쓰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아리스테이데스 본인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리스테이데스가 그 사람에게 외국으로 추방하고 싶은 그 아리스테이데스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하니까, 이 아테네 사람은 아리스테이데스라는 사람을 알지는 못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가 훌륭하다고 하는 소리에 신물이 나서 그런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아리스테이데스는 조용히 자기 이름을 대신 써 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편성]

 

플라톤이 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여러 사람에게 도덕적인 가치에 대해 정의해 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어김없이 구체적인 예를 들어 대답하고, 그런 대답에 성이 차지 않는 소크라테스는 더욱 보편적인 정의를 듣기 위해 고집을 부린다.

 

소크라테스 : 오, 메논. 덕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는가?

메논 :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남자가 지녀야 할 덕은 정치를 잘 하는 능력을 지니는 것이고, 친구를 돕는 능력과 적에게 타격을 주는 능력을 지니는 것이지요. 여자가 가져야 할 덕은 가사를 잘 돌보고, 남편에게 충실할 줄 아는 겁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아이들이 지켜야 할 덕, 노인들이 지켜야 할 덕….

소크라테스 : 허, 거 참. 오늘 아침은 재수가 좋군! 단 하나의 덕을 찾으려 했는데 벌 떼처럼 우루루 들려 주니 말일세. 아, 참. 벌 떼라니 생각나서 하는 말이네만 오, 메논. 자네는 벌이 여러 종류라고 생각하나?

메논 : 그야 당연하지요. 종류마다 크기나 색깔이나 아름다움이 다르지요.

소크라테스 : 그렇게 서로 다른데도 불구하고, "이게 벌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공통이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메논 : 그렇지요. 어떤 벌이든 다른 벌과 그리 다르지 않으니까요.

 

여기까지는 <메논>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되는 '선함'에 대한 대화는 보편성의 개념을 더 잘 보여 주기 위해 내가 덧붙인 것이다.

 

소크라테스 : 그러니 자네는 어떤 종류든 벌을 보면 그게 벌이라는 걸 알아 볼 수 있는 거로구만. 그렇다면 '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메논 : 이웃을 도와 주고, 돈이 없는 친구에게 돈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소크라테스 : 친구가 아닌 사람을 도와 주면 선이 아닌가?

메논 : 아뇨, 친구가 아니라도 도와 주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소크라테스 : 친구가 나쁜 일에 쓸 줄 알면서 돈을 준다면 그것도 선한 일인가?

메논 : 그 경우에는 당연히 선한 행동이 아니겠지요.

소크라테스 : 그러면 이제 정리를 해 보세. 친구에게 돈을 주는 것은 선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네. 게다가 친구가 아닌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도 선이 될 수 있는 걸세.

 

이쯤 되면 메논의 '소프트웨어'는 작동 불능이 되고 만다. 그러나 불도저 같은 소크라테스 어른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런 공통되는 무엇, 다시 말해 그 핵심이야말로 선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해서 '보편성'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서곡(序曲)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소크라테스 자신이 과연 이런 얘기를 실제로 했는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플라톤이 자신의 가장 유명한 이론을 시작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는 말이다.

 

 

[다이몬]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있었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안도키데스의 집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함께 아테네로 돌아오고 있었지. 우리들 중에는 소크라테스 스승도 있었고, 피리 부는 사람 카릴로스, 점쟁이 에우티프론, 케베스, 그리고 몇몇 젊은이들이 함께 있었네. 방금 술을 마신 뒤로 일행은 모두 기분이 좋았네. 젊은 사람들은 소리 맞춰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소크라테스 스승은 점쟁이 에우티프론을 놀려 주기도 했네. 그런데 갑자기 소크라테스 어른이 잠깐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더니, 오던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아고라로 가려면 대장간 거리로 가야 하는데, 목공소 거리로 가는 걸세. 누군가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그 양반 하는 말이 다이몬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는 걸세. 젊은 사람들은 그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지. 그리고 그냥 대장간 거리로 갔다네. 피리 부는 사람 카릴로스도 마찬가지였어.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은 소크라테스 어른을 혼자 가게 하기도 뭐하고 해서 목공소 거리로 그 분을 따라갔지. 그런데 지름길로 가던 친구들이 100미터 쯤 갔을까, 법원 건물 가까이 갔을 때, 반대 쪽에서 몰려 오는 돼지 떼를 만났네. 돼지가 얼마나 많았는지 길이 꽉 메워졌지. 그 길을 고집하던 사람들은 오던 길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네. 피리 부는 사람 카릴로스는 그냥 돼지 떼를 거슬러 갔는데 아고라에 도착해 보니, 다리와 옷이 온통 진흙 투성이였네."

 

이 이야기는 플루타르코스가 쓴 것으로 제목이 『소크라테스의 다이몬』이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점술가 테오크리토스이다. 이야기의 끝에 테오크리토스는 이렇게 질문한다.

"자네들은 소크라테스의 '다이몬'의 정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러자 누군가 대답한다.

"나도 소크라테스의 다이몬에 대해 들은 적이 있어요. 메가라 사람에게서 들은 얘긴데 그건 그냥 재채기라고 합니다. 재채기 소리가 어디서 들려 오는가에 따라, 그러니까 앞인지 뒤인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에 따라 어떤 결정을 내린다는 겁니다. 본인이 하는 재채기는 움직이는 도중에 나온 재채기냐, 서 있을 때 한 재채기냐에 따라 마음대로 해석을 했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재채기가 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 있을 때 재채기가 나면 하려던 일을 밀고 나간다는 겁니다. 소크라테스 같은 어른이 그런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행동을 결정했다는 것이 믿기지는 않지만, 제가 들은 얘기는 그렇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들려 주는 말 말고, 소크라테스도 스스로 어려울 때에 위로를 해 주는 다이몬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나의 귀에 들려 오는 어떤 음성 같은 것이오. 그 음성은 주로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말리는 편이었지, 어떤 일을 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아니었소. 무엇보다도 정치를 하지 말라고 일러 주었소."

 

소크라테스의 다이몬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그를 이끌어 주는 정신이라느니, 수호신이라느니, 비판적인 양심이라느니, 육감이니, 통찰력이니 등등 의견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카드 놀이의 '졸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에 특별한 동기를 부여할 수 없을 때 한 번씩 꺼내 쓴 '졸리' 패였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