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사 -上- 레우키포스, 데모크리토스, 소피스트

레우키포스

 

'하나'는 부동이다. 만약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빈 공간,

즉 허공을 차지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레우키포스에 대해 한두 마디만 하기로 하자. 이 양반에 대해서는 사실 길게 말하고 싶어도 말할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그의 탄생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데 역사가들은 그가 기원전 490년에서 470년 사이에 태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태어난 곳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밀레토스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 압데라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사람, 심지어 아무 곳에서도 태어난 적이 없다고 하는 사람까지 있다.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한 사람은 더도 덜도 아닌 에피쿠로스였다. 에피쿠로스는 명색이 원자론의 예찬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원자론의 창시자인 레우키포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에피쿠로스의 말은 조금 경솔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생성과 소멸에 관하여』 라는 작품에서 열한 번이나 레우키포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깐깐하고 꼼꼼한 사람이 상상 속의 한 철학자에 대해 그처럼 갈증을 느끼고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 사람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의견이 분분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굳이 소개하는 것이긴 하지만 탄네리* 같은 사람들은 레우키포스라는 이름이 데모크리토스의 가명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탄네리(Paul Tannery, 1843~1904)는 프랑스의 과학사가이자 문헌학자로, 문헌학적인 방법으로 고대 과학의 이론과 그 출처를 연구하는 데에 공헌했다.

 

레우키포스의 생애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적어야 하는 입장이니까 굳이 밝히자면, 그의 탄생 연대는 앞에서 밝힌 대로 대략 기원전 480년에서 10년 빠르거나 늦은 시기이고, 기원전 450년에 있었던 귀족들의 반란 시까지는 고국에서 생활했던 것 같다. 나이 서른이 넘자 대부분의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레우키포스 역시 이리저리 멀고도 폭넓은 세상 여행을 했다. 엘레아에도 들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곳에 머문 기간은 길지는 않았지만, 제논의 가르침을 받고 또 그 가르침의 허구성을 깨닫는 데에는 충분한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스와 이오니아의 중간 쯤 되는 트라키아의 해변 도시 압데라에도 머물렀는데 이 곳에서는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존재 자체가 의심 받는 치욕을 당한 레우키포스의 경우는, 데모크리토스처럼 위대한 인물을 제자로 둔 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제자라고 하더라도 거인을 가까이 두다 보니 스승인 자신의 존재 자체가 의심 받을 정도로 수모를 당했다는 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데모크리토스대로, 그 많은 작품 속에서 단 한 번도 스승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거의 언제나 레우키포스를 제자와 묶어 세트로 소개했고, 따라서 어느 것이 스승의 사상이고 어느 것이 제자의 사상인지 구분조차 못하도록 했다. 그의 논문 「대우주 질서」는 『데모크리토스 전집』에 수록되어 마치 데모크리토스의 저작처럼 되어 버렸을 정도다.

 

이 쯤 해 두고, 이제부터는 나의 이 보잘것 없는 철학자 소고를 통해, 레우키포스를 재평가하는 시도를 해 보기로 하자. 아니 최소한 그가 인류의 사상사에 있어 두 개의 근본적인 개념을 창출해 낸 사람이라는 것만이라도 살펴 보기로 하자. 그것은 다름 아니라 '허공'과 '원자'라는 개념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모든 철학자들은 허공의 존재를 부정하느라 혈안이었다. 엠페도클레스 같은 이는 동으로 된 병을 물 속에 거꾸로 담는 소녀의 놀이에서 증명되었듯이, 일반 사람들이 '공기'라고 부르는 것은 일정한 밀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텅 빈 공간, 즉 '허공'은 아니라고 했다. 아낙사고라스 역시 공기가 가득 든 가죽 부대를 보이면서 공기의 두께를 만져 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역시 허공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함이었다. 파르메니데스는 허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운동의 불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허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활용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하나'는 부동이다. 만약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은 빈 공간, 즉 허공을 차지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레우키포스의 원자 개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호모이오메레이아에 대해 말한 아낙사고라스이다. 이 두 사람의 철학자가 동시대의 사람이고 살던 곳이 다른 곳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로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적다. 어쨌든 아낙사고라스의 호모이오메레이아와 레우키포스의 원자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호모이오메레이아가 한없이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인데 반해, 레우키포스의 원자는 크기가 작을 뿐만 아니라 매우 단단한 알갱이여서, 나누어질 수 있는 최소한의 미립자라는 것이다. 실제로 '원자'라는 그리스 말, '아토모스'는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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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리토스

 

원자들은 하나의 터빈 속에서 궤도를 따라 돌며, 때때로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원자들의 튀어오름과 진동과 스침과 반발 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아버지의 이름이 헤게시스트라토스인지, 아테노크리토스인지, 다마시포스인지 확실치 않은데, 태어난 곳 역시 압데라인지 밀레토스인지 확실치 않다. 탄생 연대도 정확치 않아서 기원전 472년부터 457년 사이의 어느 시기라고 추측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언제 태어났는지는 대부분 두루뭉실하게 알려져 있을 뿐인데 데모크리토스라고 예외가 아닌 것이다. 제대로 된 달력이 없던 시대니 그럴 만했으리라. 출생 연도를 밝히려면 어떤 사람이 통치하던 해라든가, 올림픽에서 누가 우승을 하던 해라는 식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 날 같으면 "저는 오웬이 백 미터 경주에서 우승을 하던 해에 태어났고, 탐브로니가 수상을 하던 해에 결혼을 했습니다" 하는 식이니, 이 글을 읽는 친구들이여, 부디 내가 태어난 해와 결혼한 해를 잘 기억해 주기를!

 

데모크리토스는 사남매의 막내였다. 헤로도토스와 다마스테스라고 하는 형이 둘 있었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누나가 하나 있었다. 재산 많고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아버지가 죽자 자신의 몫으로 된 땅을 포기하고 대신 현금이나 조금 달라고 했다. 그 약간의 현금이라는 것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말에 따르면 백 탈란톤이나 되었다고 하니 요새 돈으로 따지면 대략 10억 리라(10억 원 정도) 쯤은 되는 액수였다. 자신의 윤리관에 어긋나기는 하지만, 세상을 두루 다니며 가능한 많은 스승을 찾아 보고 싶은 오랜 꿈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데모크리토스는 그 돈을 받았다. 어쨌거나 호라티우스*가 전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철학자다운 면모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축들이 데모크리토스의 밭에 들어가 한 해 농사를 망쳐도, 육체의 일을 잊어버린 그의 영혼은 멀리서 빠른 속도로 헤맬 뿐이니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던가!"

 

*베르길리우스에 버금가는 로마의 대시인 호라티우스(기원전 65~8)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총애를 받아 계관시인이 되었다. 자연과 인생을 주로 노래했으며 라틴 정신을 고취하는 시를 썼다.

 

데모크리토스는 지치지 않는 여행자였다. 칼데아 사람들에게서 천문학을 배웠고, 마기 사람들에게서는 신학을, 이집트 사람들에게서는 기하학을 배웠다. 에티오피아와 홍해는 물론 인도에까지 가 나체 수련자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가 채록한 단편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는 스스로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여행을 하고, 가장 이상한 것들을 찾아 다녔으며, 셀 수 없이 많은 하늘과 땅을 보았다. 또한 학식 있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리고 이를 풀이하는 데에 나를 능가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소위 토지 측량학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나를 이기지 못하였다."

이처럼 많은 여행을 하는 동안 그는 언제나 페르시아의 힘 있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제2차 페르시아 전쟁 중, 트라키아 지방을 지나던 크세르크세스 왕이 데모크리토스의 아버지에게서 융숭한 대접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 때 이후로 그의 집안은 페르시아 영토 안에서는 어디를 가나 특별한 비호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수많은 여행 중 그는 당연히 아테네에도 들렀다. 그러나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테네에서는 아무도 그를 알아 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플라톤의 『정적(政敵)』 에서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젊은이가 데모크리토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이 대화에서 그 젊은 철학자가 5종 경기 선수 같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종목 별 경기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도 최종 성적에서는 우승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데모크리토스는 과연 그런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물리학, 윤리학, 만물학, 예술, 수학 등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라고 으스댔으니 말이다.

 

오랜 세월 여행을 하고 조국에 돌아왔을 때, 그의 호주머니에는 단 1드라크마도 들어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형제들에게 얹혀 사는 신세가 될 수밖에. 그런데 어느 날 그를 찾아 온 한 공무원 양반이, 트라키아의 옛 법에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아들은 조국의 땅에 묻힐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고 알려 주었다지 않은가! 데모크리토스는 죽은 다음에 바다에 버려지는 것을 피하고자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이 쓴 「대우주 질서」를 낭독했다. 그러자 압데라 시민들은 그 해박한 지식에 놀라 국장으로 장사를 치러 주겠다고 약속했고, 100탈란톤이나 되는 돈을 주기까지 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참으로 이상한 인물이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쓸 데 없이 히죽거리며 농담이나 하는 건달로 보이다가도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한적한 시각을 즐기는 학자로 비치기도 하니 말이다. 어쩌면 두 의견이 다 맞는지도 모른다. '조롱꾼'이라는 별명과 '지혜의 화신'이라는 별명을 동시에 가지게 된 것 또한 우연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그의 낄낄거리는 웃음은 온 그리스에 유명했다. 아테네의 지식인들이 이를 두고 비판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사람, 바보들의 천국 압데라 출신이 아니던가!"

데모크리토스의 빈정거리는 습관에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사람은 아낙사고라스였다. 압데라 출신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어른께서는 아낙사고라스의 '정신'에 관한 이론을 놀림감으로 삼았다. 심지어 태양과 달에 관한 이론은 옛날부터 있었던 지식을 도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공격했다. 하지만 아낙사고라스가 그토록 밉보인 데에는 다른 까닭이 있었다. 언젠가 그가 '아테네의 클럽'에 가입하려 했을 때, 아낙사고라스가 개인적으로 나서서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으니 말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성격을 굳이 내성적이었다고 표현한다면 그의 이런 성격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굳은 것이었다. 갓난아기를 막 벗어났을 때부터 정원 한 구석에 토굴 같은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 곳에 숨기를 좋아했다니 말이다. 그 버릇 남 주겠냐만 그는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만의 상상의 공간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사막에서 보내거나 공동묘지의 무덤 사이에서 보내기도 할 정도였다.

 

동방에서 한 경험은 그에게 예언을 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게 해 주었다. 자연 현상을 내다보는 정도야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구사하던 능력이었으니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데모크리토스는 또 다른 능력으로 친구들을 놀래 주곤 했다. 예를 들어 하루는 우유를 받아 마시고 나서 하는 말이 "이 우유는 첫 배에서 태어난 검은 염소에서 짠 우유" 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알아 보니 실제로 그랬다고 한다. 또 한 번은 히포크라테스의 여자친구에게 "안녕하세요, 아가씨?" 하고 인사를 했는데 다음 날 다시 만났을 때는 "안녕하세요, 부인?" 하고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처녀는 전날 밤 처녀성을 잃은 것으로 밝혀졌다나! 역사가들은 이 여자의 상대가 누구였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히포크라테스였다면 데모크리토스의 그런 인사는 데모크리토스의 초능력 때문이 아니라 흉허물 없는 친구의 고백 덕분이 아니었을까?

또 다른 예를 보자. 어느 날 데모크리토스는 왕비를 잃은 다리우스 대왕이 한 없이 슬퍼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이 종이 위에 적어 놓은 것을 모두 이루어 주신다면 왕비 마마를 다시 살려 드리겠나이다."

왕은 즉시 그의 말대로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씌어 있는 것은 왕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것은 왕비의 비석에 평생 한 번도 고통을 맛보지 않은 세 남자의 이름을 적어 넣으라는 것이었다. 그 때 데모크리토스가 말했다고 한다.

"오,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대왕이시여. 폐하께서는 세상에서 그런 슬픔을 경험한 유일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괴로워하시는군요!"

 

전설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는 나이가 들자, 은을 입힌 방패로 자신의 눈에 태양빛을 반사시켜서 스스로 장님이 되었다고 한다. 육체의 눈이 영혼의 눈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단다. 테르툴리아누스*에 따르면 그 방탕한 늙은이가 스스로 장님이 되기로 선택한 것은 너무 늙어 힘을 쓸 수 없는 형편이라 아예 예쁜 여자를 보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진짜 사정이야 어떻든 그가 스스로 눈을 멀게 한 것을 증거하기라도 하듯, 데키무스 라베리우스라는 사람의 시가 한 수 남아 있어 소개한다.

 

자연의 철학자, 압데라의 데모크리토스는

천상의 찬란함으로 자신의 눈을 멀게 하려고

히페리온(태양의 신 헬리오스)이 솟아오르는 곳을 향하여

방패를 들어올렸다.

그리하여 태양의 빛줄기로 그는 눈의 광명을 잃었다.

 

*카르타고 출신의 테르툴리아누스(155~222)는 플라톤과 스토아 학파의 철학을 습득하고 쾌락적 생활을 버리고 가톨릭에 귀의해서 초기 교회의 기틀을 잡은 교부가 되었다. 저서로 유명한 『호교론(護敎論)』 이 있다.

 

그는 자신의 책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오래 산다는 것은 기나긴 삶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나긴 죽음을 뜻하는 때가 많다."

실제로 그는 백 살을 넘긴 어느 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조금씩 먹는 것을 줄여 결국 아무 것도 입에 대지를 않았다. 마지막에 이르러 목숨이 이제나 저제나 하는 상황이었는데 역시 백 살이 넘은 그의 누이가 불평을 했다.

"지금 숨을 거두면 곡을 해야 하니 테스모포리아 축제(데메테르 여신을 기리던 고대 그리스의 축제) 구경을 갈 수가 없잖아요?"

노철학자께서는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 갓 구운 빵을 가져오게 했다. 따끈따끈한 빵 냄새만으로 사흘을 넘기곤 누이에게 물었다.

"축제가 끝났나?"

누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눈을 감고 다시는 뜨지 않았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그에게 이런 헌시를 지어 주었다.

 

따끈한 빵 냄새를 대접하고

사흘 동안 사신(死神)을 잡아 두었네.

 

그의 명성은 당시의 문명 세계에 널리 퍼졌다. 플레이우스의 티몬*조차 그에 대해 좋게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반적인 호평이나 대중적인 사랑과는 달리 플라톤은 결코 그를 좋게 보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중에 있는 그의 책을 모조리 불살라 버릴 생각까지 했다. 책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데다 책에 대한 호응이 생각보다 높았기 때문에 행동에 옮기지 못했을 뿐이다.

 

*회의파(懷疑派)에 속하는 그리스의 철학자 티몬(기원전 320~230)은 그의 조소시(嘲笑詩) 「실로이」에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를 야유하고 크세노파네스 등 몇 사람을 제외한 그리스 철학자들을 요설가라고 조롱했다. 인간의 감성과 오성은 허위에 찬 것이라면서 판단을 중지하면 심정부동(心情不動)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이론은 매우 간단하다. 그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복잡했지만 그는 그런 질문에 콩알팥알 일일이 대꾸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순서대로 살펴 보기로 하자.

한 마디로 말해 그의 이론은 우주의 모든 현실이 원자와 허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원자라는 것은 수가 무한한 미립자인데 완벽할 정도로 단단해서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다. 질적으로는 모두 같지만 크기와 기하학적 형태, 즉 모양은 서로 다르다. 반대로 허공은 그냥 허공일 뿐이고 '그 어떤 것도 아닌 것(우덴)' 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어떤 것(덴)' 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존재한다. '덴'은 그리스어로 '실체'를 뜻하는 말이고 '우덴'은 아무 것도 아닌 것 또는 '비실체'를 뜻하는 말이다. 더 쉽게 말해서 세상은 아주 적고 단단한 물질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작은 조각은 공 모양을 띤 것도 있고, 작은 깍두기 모양으로 육면체인 것도 있고, 십이면체로 된 것도 있고, 그렇게 다양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작은 조각들은 아무 것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은 텅 빈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라고 불리는 이 조각들은 때에 따라서는 서로 달라붙기도 하고, 또 때로는 서로에게서 떨어지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듣고 있다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솟아난다. 그렇다면 원자와 허공은 누가 만들었는가? 원자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누구인가? 누가 그것들에게 발동을 걸어 주었나? 원자들을 서로 붙이고 또 서로 떨어지게 하는 이는 누구란 말인가? 그러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데모크리토스의 답변은 설득력이 없다.

"원자들의 수는 무한하며 영원으로부터 존재한다. 또한 그렇게 영원으로부터 허공 속에서 움직인다. 원자들은 하나의 터빈 속에서 궤도를 따라 돌며, 때때로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원자들의 튀어오름과 진동과 스침과 반발 등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물체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결합과 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사랑과 증오라는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은 데모크리토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데모크리토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였기 때문에, 사랑이니 증오니 하는 신화 냄새를 풍기는 개념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굳이 그런 개념들에 의지할 양이면 제우스나 사투르누스(고내 로마의 농경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낫고, 그렇게 하면 최소한 재미라도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소개한 것이 데모크리토스의 자연론이요, 우주론이다. 물론 공격을 당한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원자들이 영원으로부터 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면 얼핏 생각해도 두 가지 가능성 밖에는 없다. 첫째는 그 궤도가 평행을 그리고 있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원자들의 궤도가 평행이라면 어떻게 충돌이 일어나느냐 하는 문제가 생긴다. 평행선을 달리는 궤도만 따라야 할 원자들이 그 궤도를 벗어났으니 누가 길을 막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두 번째는 궤도가 평행이 아니라는 가정이다. 그렇다면 충돌은 첫 순간부터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하기야 "영원으로부터 돌고 있다"고 말한 것이 방금인데 첫 순간이라니 어떻게 첫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데모크리토스의 열렬한 팬이요 예찬자이자, 열성 원자론자인 에피쿠로스는 후일 그의 이론을 방어해 줄 방안을 찾다가 결국 이런 이론을 내놓았다.

"원자들은 크기가 다르므로 무게가 다르다. 따라서 그 무게에 의해 궤도 중 일부가 기울어졌다."

다시 말하거니와 원자론자들의 철학에는 가득 찬 것과 텅 빈 것 말고는 어떤 것도 들어설 자리가 없다(가득 찬 것이든 텅 빈 것이든 모두 물질적인 것인데 이는 원자론자들의 유물론적인 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심지어 영혼이나 생각, 감각조차도 물질로 되어 있다. 그들은 영혼의 원자가 육체의 원자보다 동글동글하고 더 유동적이며 매끈하다고 말한다. 사람의 생명조차 호흡을 통해서 공기의 원자와 영혼의 원자가 균형을 이룰 때에 유지된다고 한다. 사람의 감각 기능도 마찬가지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모든 사물은 '에이돌론'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을 방출한다. 이 물질이 감각 기관과 사물 사이에 놓여 있는 공기와 충돌을 일으키는데, 이러한 충돌이 연쇄적으로 번져 감각의 원자를 자극한다. 그러면 감각의 원자는 사고(思考)의 원자를 자극한다."

이처럼 원자론자들에 있어 모든 것은 물질적인 접촉에 의해 이루어진다. 어떤 사실을 안다고 하는 것도 그 객체와 인식의 주체 사이에 놓여 있는 수단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리고 그 주체가 그러한 수단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어떠한지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므로, 주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만약 당시에 폴라로이드 사진기가 있었다면 데모크리토스는 에이돌론이 어떻게 생겨 먹은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덤벼 들었을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들과 아낙사고라스의 호모이오메레이아가 갖는 근본적인 차이점은 그것이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둘 다 아주 작은 입자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원자는 매우 단단한 조각이어서 외부로부터 어떤 공격에도 나누어지지 않지만 호모이오메레이아는 상상으로나마 무한대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아낙사고라스의 논리를 따르면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이라도 그 속에는 수십 수백 억의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 그 세계 안에 어떤 존재가 살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줄 사람도 현재로서는 없다. 우주 속의 천체들이 우리에게서 무한히 멀듯이 우리 안의 무한히 작은 세계도 아직은 우리에게서 까마득히 먼 곳이다.

문제의 핵심은 허공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않느냐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허공의 신비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대자연 속에 완전히 빈 것으로 인정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데, 빈 허공에 가장 가깝다고 할 만한 것으로 빛(광파)이 헤엄쳐 온 공간이 있을 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우리가 사과를 자를 수 있는 것은 칼날이 사과 속의 빈 공간 사이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는 오늘 날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아인슈타인 이래, 우리는 물질과 공간이라는 말의 의미를 사실 상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매우 어려운 개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독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조금만 더 얘기한다면, 상대성 이론이 등장한 이후 공간과 시간은 혼인을 해서 뗄래야 뗄 수 없는 부부 같은 사이가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어떤 사물 그 자체만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그 사물이 시간 안에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 하는 '사건'에 대해 말해야 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어떤 두 지점 사이의 공간에 대해 논하기보다는 두 사건 사이의 간격에 대해 논하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러셀은 이렇게 판결했다.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사건들이고 이러한 사건들이 연속되는 시간은 매우 짧다. 이런 점에서 현대 물리학은 헤라클레이토스 편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파르메니데스와는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데모크리토스는 당시 유행하던 두 개의 사상을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상황을 말하자면, 한 쪽에는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반대편의 진영에서는 유전 또는 과정의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전불사의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을은 '하나', 곧 '일자(一者)'는 영원하고, 나누어질 수 없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반대로 유전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이 세상에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어떤 사물도 단 한 순간이 지나면 그 전의 사물과 꼭 같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양 측의 의견 차가 이렇게 팽팽파니 어쩌면 좋을까?

서로 반대되는 두 개의 이론을 화해시키기 위해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고안해 낸 것이다. 우선 파르메니데스에게는 원자를 선물로 안겨 주었다. 변화하지 않고, 영원하고, 나누어질 수 없고, 그 내부가 꽉 차서 빈 공간, 즉 허공이 없는 존재를 선물로 안겨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엘레아 양반 파르메니데스에게는 '부동'이라는 특성만 빼고는 '하나', 곧 '일자'의 모든 특성을 인정해 준 셈이다. 반면에 헤라클레이토스에게는 '허공', 즉 '물리적 공간'이라는 개념을 쥐어 주었다. 이 물리적 공간, 곧 허공이야말로 원자들이 자유로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물질들이 서로 결합과 분리를 반복하면서 지속적인 유전과 변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이론 때문에 불만스러워한 사람은 후대의 철학자들이다. 소크라테스라든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인물로 이들은 우주의 제일원인(第一原因)이나 궁극적인 목적을 속 시원히 밝혀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 주기를 목 빠지게 고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눈에 비친 데모크리토스는 마치 첫 장면과 끝 장면이 없는 연극 대본을 쓴 사람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압데라 출신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 양반을 도울 생각으로 누군가 "창조주가 원자를 움직이게 했다" 라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고 쳐 보자.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철저한 유물론자인 데모크리토스 자신이 "그러면 창조주를 만든 이는 누구냐?" 하고 질문을 할 테니 말이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과학과 종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기를 반복하던 철학이 원자론자들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극단, 곧 오로지 과학일 뿐 종교는 절대 아니라는 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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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스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기원전 5세기 경,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 발명되었다. 불이나 페니실린 등의 발견과는 달리 변호사라는 직업의 발견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조금씩 세월을 두고 이루어졌다. 그 과정은 이렇다.

아테네라는 도시는 전쟁 때가 아니면 지겨울 정도로 무료한 도시였다. 일은 노예들이 알아서 해 주겠다, 아테네 시민으로 태어난 운 좋은 사람들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안절부절이었다. 하루 하루를 때우는 것이 문제다 보니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사람들의 큰 관심거리였는데, 지금 같으면 텔레비전이 하루 종일 법정을 소재로 한 영화만 보내도 좋아할 정도로 법정에서 일어나는 일이 인기였다는 말이다.

페리클레스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의 법정에서는 변호사를 사서 변호를 하는 것이 인정되지 않았다. 각자가 직접 자기 생각을 밝히는 것이 권리를 최대한 행사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니 고소인이든 피고소인이든 말재간이 없으면 그만큼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헬리아이아'라고 불리던 재판부는 시민들 중에서 뽑혔는데,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직업 재판관이 아니다 보니 재판 결과가 사실 자체보다는 소송 당사자의 말재간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어눌하고 어리숙한 사람들은 머리 좋고 약삭빠른 사람들에게 당하는 일이 빈번했던 것이다.

 

법적인 문제 때문에 겪는 농민들의 어려움을 가장 먼저 이용한 사람은 안티폰이라고 하는 아테네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추방당한 사람이었는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코린토스에 '위로의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단순히 위로하는 말만으로 사람들의 정신적인 고통을 덜어 주는 일이었다. 몇 해 동안 위로인의 직업을 지낸 안티폰은 고발하는 사람이나 변호해야 할 사람이 법정에서 해야 할 말을 대신 써 주면 한 밑천 잡을 수 있겠다는 반짝이는 사업 아이디어를 갖게 된 것이다. 그가 쓴 글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던지 아테네 주변의 전 아티케 지방에서 그는 '말의 요리사' 같은 별명으로 유명해졌다. 그가 고객에게 내밀던 계산서에는 웅변 강습에 대한 항목도 들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가르쳐 주는 발언 내용을 강습 시간 중에 암기하게 했다. 고객 중 대부분은 글을 읽을 줄 몰랐으니, 상품을 건네 줄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안티폰처럼 법정에서 할 말을 대신 써 주던 사람들을 그리스 시대에는 '로고그라포스'라고 불렀는데 요즘 식으로 말하면 대서소 쯤 되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정치적인 연설을 대신 써 주기도 했고, 장례식의 조사(弔辭), 살인 사건의 고소장 같은 것을 대신 써 주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친척이나 친구로 속이고 재판에 직접 참여해 고객을 위한 증언도 했다. 오래지 않아 이들이 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능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법정에서도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이처럼 웅변가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곧 소피스트였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데에 특별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애초에는 소피스트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어원을 따져 보면 소피스트를 일컫는 '소피스테스'라는 말은 '지혜'라는 의미의 '소피아'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러니 소피스트란 어떤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특별한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철학자들과 지식인들이 자신들은 그렇지 못한데 누구는 머리 쓰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배가 아파 이들을 향해 욕설과 저주를 퍼붓기 시작했다. 크세노폰은 자신의 저서 『소크라테스의 확성기』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소피스트란 몸을 파는 남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돈 때문에 우너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지혜를 판다. 사람을 속이기 위해 말을 하고, 벌이를 위해 글을 쓴다. 어떤 사람에게도 쓸모가 없는 사람들이다."
플라톤 역시 크세노폰에 뒤질세라 『대화편』에서 소피스트들보다 훨씬 더 소피스트인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그들에게 굴욕감을 안겨 준다.

 

소위 철학자라는 사람들과 소피스트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파이게 한 것은 생활 방식의 차이였다. 전통적인 의미의 철학자들은 규칙과 가르침이 명백한 학교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었고 소피스트들은 하나의 사상에 얽매이지 않고 시장판에서 일거리를 찾아 살아가던 자유 직업인들이었다. 이런 차이점은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정규 철학학교는 학생들이 단순히 지식만 배우는 곳이 아니라 일종의 신앙 행위를 실천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소피스트들이 이상도 염치도 없는 사람으로 비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소피스트들도 하나의 진리, 곧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진리를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꿈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식인층으로부터 외면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소피스트들은 점점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어떤 소피스트들은 올림픽 경기의 우승자보다 더 유명해지기까지 했다. 그들 고유의 웅변 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인기의 비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엘리스의 히피아스는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이며 장신구들을 몸에 걸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몸에 걸친 것은 모두 샌들이나 반지에 박은 보석조차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었다고 하는데, 나이 팔순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기억력이 좋기로 유명했다. 단 한 번 들은 사람의 이름을 오십 명이나 내리꿸 정도였다고 한다.

히소크라테스라고 하는 사람은 100명 이상의 제자가 있었는데, 아테네 사람에게는 무료로 해 주었지만 다른 도시에서 온 제자들에게는 한 사람 당 1천 드라크마의 수업료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레온티노이의 고르기아스는 어떤 주제를 받더라도 즉석에서 웅변을 토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안티폰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의 소송과 관련해서 네 개의 연설문을 썼다고 하는데, 고소인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 고소인에 대한 반대 입장의 글, 그리고 피고소인에 대해 옹호하는 글, 피고소인의 입장에 반대하는 글을 모두 썼다고 하니 혼자서 재판을 다 한 셈이었다.

케오스의 프로디코스는 청중 중에 조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잘 들으시오. 잘 들으시오.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50드라크마 짜리는 충분히 될 거요."

압데라의 프로타고라스가 어떤 시인이 자신에게 욕설을 하자 대꾸했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통쾌하다.

"욕설을 듣는 편이 차라리 자네가 지은 시를 듣는 것보다 백 배 낫구만 그려."

 

소피스트들 중에서 아마 가장 뛰어난 사람인 리시아스는 말을 단순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에라토스테네스에 대한 반박의 마지막 부분을 옮겨 보자.

"이제 소송의 마지막 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제 결정을 내리십시오."

교활하기로 유명한 히페레이데스는 재판부의 감정에 호소하는 유형이었다. 에우크세니포스에 대한 반론에서 그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내가 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소. 그러니 이제는 친구들과 아이들을 불러 모아 판관님들께 눈물로 호소하는 수밖에는 할 일이 없소."
정치가였던 클레온은 법정 안을 왔다갔다 하다가는 입고 있던 옷의 등 부분을 찢고 손바닥으로 옆구리를 찰싹찰싹 치는 것으로 유명했다.

 

뭐니뭐니 해도 소피스트들이 가장 즐기던 것은 과장된 표현이었다. 말하는 사람의 웅변술을 돋보이게 하는 방법이었는데, 사실 아테네에서는 웅변술을 뽐낼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소피스트들끼리 벌이는 충돌도 심심찮게 있었고, 웅변가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웅변 대회도 있었다. 심지어 장례식 조사 경연 대회도 있었다. 특별히 관심 있는 사람을 위해 예를 들자면, 어떤 조사 경연 대회에서 선정된 필수 과목의 제목은 '망자(亡者) 마우솔로스를 기리는 조사' 였다고 한다.

 

역사의 기록에 남아 있는 웅변 원고로는 루키아노스의 「모기에 대한 찬미」라든가 레온티노이 출신의 고르기아스가 남긴 「헬레네*에 대한 찬미」가 있다. 「헬레네에 대한 찬미」에서 고르기아스는 그 가련한 여인 헬레네가 그리스와 트로이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고르기아스는 세 가지 경우를 가정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우선 트로이아의 종말이 운명의 신이나 그 밖의 다른 신들에 의해 예정된 것이었다면 그 책임은 당연히 신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만약 헬레네가 강제로 납치된 것이라면, 그 경우에는 헬레네 자신도 폭력의 희생자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가정은 헬레네가 말의 유혹에 넘어갔을 경우인데, 세 번째 가정에 대해서는 고르기아스의 말을 직접 들어 보자.

"만약 그녀가 말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오 아테네의 시민들이여, 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아 두시오. 말은 가장 강력한 군주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몸의 작은 부분에서 뿜어져 나오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것은 가장 신성한 일도 성취시킬 수 있으니 말이오."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인 트로이아의 헬레네를 말한다. 헬레네라는 이름이 '찬란함'이라는 어원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 원래는 달의 여신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이 여자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뒤에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스파르타를 방문한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와 눈이 맞아 함께 사랑의 도주를 했다. 트로이아의 원로들은 이들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두 사람은 트로이아에서 결혼을 했고 '트로이아의 목마'로 유명한 그리스 사람들의 트로이아 침공에 원인을 제공했다. 파리스가 죽자 헬레네는 데이포보스와 결혼했다가 트로이아가 멸망할 당시 데이포보스가 메넬라오스에 의해 죽자 조국 스파르타로 돌아갔다.

 

과장된 표현이라는 웅변 장르에 자가당착적인 연설 또는 양면성을 지닌 연설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소피스트들이 웅변술을 뽐내기 위해 많이 하던 것으로, 어떤 주제를 놓고 열변을 토한 다음 후반부에 가서는 같은 주제에 대해 앞서 한 것과는 정반대의 내용으로 열변을 토하는 웅변 형식이다. 이런 연설에 매우 능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웅변술을 과시하기 위해 로마에 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연설의 전반부가 끝나자 청중들은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곧 반대되는 내용으로 연설을 토하기 시작하자 언제랄 것도 없이 엄숙한 몽둥이질을 했다. 하기야 단순하고 말수가 적은 로마 사람들이 그리스 사람들의 세련된 심미 감각을 어찌 이해할 수 있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