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사 -上- 칠현인(七賢人), 밀레토스, 탈레스

칠현인(七賢人)

  

알더라도 침묵하며, 가벼이 말하기를 삼가며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갈망하며, 혀가 생각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

 

 

칠현인(七賢人)은 일곱이 아니라 스물 두 사람이었다. 탈레스, 피타코스, 비아스, 솔론, 클레오불로스, 킬론, 페리안드로스, 미손, 아리스토데모스, 에피메니데스, 레오판토스, 피타고라스, 아나카르시스, 에피카르모스, 아쿠실라오스, 오르페우스, 페이시스트라토스, 페레키데스, 헤르미오네, 라소스, 팜필로스, 아낙사고라스.

 

칠현인이 어찌 이리 많냐고 놀라지 말라. '거룩하신' 철학사에 이름을 올리신 현인이 그토록 많은 까닭은 철학사가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가장 앞에 이름을 쓴 탈레스, 피타코스, 비아스, 솔론은 누가 뭐래도 흠 잡을 수 없는 진짜 현자였다. 쉽게 말해 이들만이 주전 선수였고, 나머지 세 자리는 벤치에 앉아 있는 무려 열 여덟 명의 후보들 중에서 감독의 취향에 따라 관중 앞에 나서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했던 것이다. 명단을 작성할 때, 자기와 가까운 사람의 이름을 넣는 경우도 있었을 테고, 심지어 잘 나가는 정치가의 이름을 끼워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 내가 이 시대의 일곱 현자를 뽑아야 할 입장인데 높으신 분께 잘 보이려고 우리의 위대하신 크락시 수상을 끼워 넣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농담은 이 쯤 해 두고, 나는 전에 현인 한 사람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다. 푸오리 그라타에서 당구장을 경영하는, 알폰소라고 하는 노인이었는데 외모부터 현자다운 분위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지긋한 나이에 턱수염과 백발의 머리, 언제나 말이 없니 과묵한 그는 어쩌다 입을 열어도 차갑고 단호한 한 마디가 고작이었다. 당구를 치던 사람들이 점수 때문에 승강이를 하면 그 노인은 당구대로 다가가, 전에도 똑같은 위치에 놓인 당구알을 본 적이 있다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하얀 알!" 또는 "빨간 알!" 하는 단 한 마디 말로 판정을 내리곤 했다. 한 마디도 덧붙이는 법이 없었다.

말도 한 마디 나누어 보지 않고 그 사람이 현자라는 걸 어떻게 알아 볼 수 있느냐고 따질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척 보면 알 수 있다. 아니 느낌이 온다고 하는 편이 낫다. 알폰소 노인의 눈에는 인생의 경험이 담겨 있다. 정말이지 그의 눈에는 온갖 역정을 겪은 인생이 담겨 있다. 충고가 필요할 때 찾아가면 그 분은 가장 적절한 말로 위로를 주리라 나는 확신한다. 조그만 향수 병에서 떨어지는 향수 방울처럼, 조용히 다물고 있던 입에서 떨어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내게 환한 빛을 주리라 굳게 믿고 있다.

 

그리스의 현인들도 요점 위주의 간결명료한 말을 즐기는, 말수가 적은 사람들이었다.

 

－알더라도 침묵하라. (솔론)

－가벼이 말하기를 삼가라. (비아스)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갈망하라. (클레오불로스)

－혀가 생각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 (킬론)

 

보다시피 이들의 말을 보면 당시에는 지혜가 곧 말을 아끼는 것과 같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요약해서 핵심을 찌르는 능력으로 치면 칠현인은 격언의 발명자들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들이 남긴 말 중에는 아직껏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클레오불로스의 격언, "같은 부류의 사람 중에서 아내를 구하라" 는 말은 "암소와 아내는 네 마을에서 구하라" 는 우리 속담과 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고, "일을 하되 적절한 사람과 하라" 는 말은 "너보다 나은 사람과 어울려라. 그러면 이득이 있으리라" 는 나폴리 속담과 통하는 말이다.

 

금언 덕분에 칠현인의 명성은 빠른 속도로 번져 갔다. 대중 전달 매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세계에서 탈레스와 그의 동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들의 기적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이 남긴 금언은 아버지가 자식을 가르칠 때 쓰는 말이 되었고, 정치판가 법정의 연설꾼들도 폭넓게 인용하는 말이 되었다. 이들이 지은 노래는 연회장의 단골 메뉴였는데, 저 화려한 산레모 가요제에 출품되는 우리 시대의 노래보다 도덕적으로 훨씬 더 고상했다. 내가 특별히 기억하는 킬론의 노래 가사 한 구절을 들어 보라.

 

"황금을 가늠코자 하면 돌을 쓰지만, 사람을 떠 보려면 금을 쓰라네."

 

스물 두 명의 현인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사람은 미틸레네의 피타코스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피타코스가 현인이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했는데, 그가 공직에서 은퇴하자 미틸레네의 시민들은 조국을 위해 이룩한 업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넓은 땅에 피타키온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에게 주려고 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피타코스는 대지주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고, 자기가 살아가는 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땅만 받았다. "적은 것이 모든 것보다 크다" 는 말은 이 때 한 말로 전해진다.

미틸레네의 피타코스가 남긴 금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 몇 가지를 인용해 보자.

 

－시작하려고 하는 일을 입 밖에 내지 말라.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땅은 신뢰할 수 있지만 바다는 믿을 수 없다.

 

피타코스의 금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웃으로부터의 약간의 손해는 달게 참아라" 라는 말이리라. 이 말은 우리 나폴리 사람들이 제 십일계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금언이다. 다른 이유는 고사하고라도 '관용'이라는 중요한 덕목을 가르쳐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관용의 정신이 있어야만 그와 반대되는 원칙을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 나폴리 사람들은 "이웃에게 해 되는 일을 좀 했다고 너무 마음에 두지 말라" 는 말을 곧잘 하는데, 바로 관용하는 마음이 있어야 이런 우리네 사고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여기서 인용한 우리 나폴리 금언은 금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당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기분 나쁘기 이를 데 없는 악습이기 때문이다.

 

칠현인에 대해서는 진위를 따져 보고 싶을 정도로 교훈적이고 흥미 있는 일화가 하나 전해지고 있다. 지혜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일곱 명의 현인이 소풍을 갈 생각으로 델포이의 신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약속대로 도착한 일행은 신전을 지키는 원로 사제로부터 최대의 예우로 영접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 원로 사제는 자신을 에워싼 그리스 지성계의 기라성 같은 현자들을 보자 기회를 놓칠세라 신전 벽에 금언을 하나씩 새겨 달라고 청한다. 사제의 제안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사람은 스파르타의 킬론이었다.

 

사다리를 가져오게 한 킬론은 신전 입구의 현관 정면에 그 유명한 "너 자신을 알라"(사람에 따라서는 이것을 탈레스의 말이라고도 한다)는 말을 써 넣었고 나머지 현인들도 모두 킬론의 뒤를 이었다.

클레오불로스와 페리안드로스는 정면 현관의 가장 오른쪽과 정면 가장 왼쪽에서 두 번째 자리에 "가장 좋은 것은 중용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평온이다" 라는 유명한 금언을 새겨 넣었다. 겸손을 사랑했던 솔론은 정원의 어둡고 구석진 곳에 "순명하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명령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디라" 라는 말을 써 넣었다. 탈레스는 신전 외벽에 자신의 자취를 남겼는데 그것은 '거룩한 길'을 지나 온 순례객들이 키오스인들의 신전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바로 눈 앞에 "친구를 기억하라" 라는 금언을 볼 수 있도록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일삼던 피타코스는 피티아(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청동 삼각대 위에 앉아 신탁의 내용을 암송하던 동정 여사제)의 청동 삼각대 아래에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다 "맡은 것을 되돌려 주어라" 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을 새겨 넣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프리에네의 비아스였다. 하지만 비아스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며 꽁무니를 뺐다. 예기치 못한 일에 모두 비아스를 에워싸고 한 마디 씩 거들 수밖에. 얼르고 달래기를 한참이나 했건만 비아스는 도무지 옴짝달싹을 하지 않았고, 현인들은 점점 열을 올리며 그를 설득했다.

"테우타모스의 아들이자 우리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현인, 비아스여, 이 신전을 방문할 미래의 순례객들에게 그대가 지닌 빛의 자취를 남기게나!"

그러나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나의 친구들이여, 내 말을 들어 보게.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는 게 모든 사람에게 좋을 것 같네."

밀고 당기기가 반복되었고 사람들의 성화가 얼마나 심했는지 가여운 현자는 끌을 집어들고 글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인간은 악한 존재이다."

 

얼핏 보면 별 의미가 없어 보이는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악하다" 라는 비아스의 말은 어떤 이데올로기도 무너뜨릴 수 있는 폭탄과 같은 선언인 까닭에, 그리스 철학을 통틀어 가장 극적인 평결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커다란 슈퍼마켓에 들어가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는 캔 무더기에서 맨 아래 쪽 캔을 빼내 버리는 것과 같은 효과이다. 이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진다. 민주주의 원칙이라든가 국민 투표라든가 공산주의 사상은 물론 그리스도교 정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기초 위에 세워진 모든 사상과 주장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인간은 날 때부터 선하다" 라는 이론을 주장한 장 자크 루소에게 패배를 안겨 주고 대신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와 같은 존재" 라는 슬로건을 외치는 토머스 홉스의 손을 들어 주는 판결이다.

 

고결하신 우리의 영혼은 비아스의 극단적인 비관주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쯤은 물론 나도 안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그 미치광이 노인 비아스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축구 경기장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군중의 진정한 얼굴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검투에서 패배한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이 관중의 아량에 호소하기보다는 황제의 사면에 유일한 희망을 걸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관중들이야 엄지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판결을 애타게 고대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로마 제국의 시민인 자유인들이 가족과 함께 원형 경기장을 즐겨 찾은 데에는 많은 사람이 잔인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이런 인간의 심성은 상황의 변화를 감안한다면 오늘날까지 그리 바뀐 것이 없다. 나는 인간이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유일한 희망은 베르그송의 말에서나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베르그송에 따르면 인류는 느린 속도이기는 하지만 착실하게 조금씩 선해지고 있다고 한다. 황송한 마음으로 그의 기원을 받아들이면서 3000년대에 기대를 걸어 보는 수밖에.

 

비아스의 말은 다른 각도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인간이 악하다는 말의 참뜻을 사람들이 수적으로 많아질 때, 곧 다수의 군중일 때 그렇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의 말의 의미는 인간은 떼거리를 이루어 사나운 맹수로 바뀌지 않는 한 개인 개인으로는 모두 선하고 훌륭하다는 것으로 바뀐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언제나 소수의 편에 서는 쪽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솔직히 이런 의문이 생긴다. 다수의 군중 편에 서는 것을 싫어한 것은 집단적인 악으로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었던 걸까. 행여 별난 체, 어리석은 무리에 섞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속물 근성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를 '수는 적지만 착한 이들의 무리'에 속한 사람이라고 자위하고 싶은 비민주적인 인종 편견 때문은 아니었을까? 진정한 답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기원전 5세기 경, 정치적인 이유로 망명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되는 한 아테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고발문 형태의 글을 하나 남기고 있다. 이 글은 '30인의 참주'의 친구이자 아테네 민주주의의 반대자인 크세노폰의 작품 중에서 발견된 것이기도 하다. 이 사람의 글은 이탈리아의 셀레리오 출판사에서 『민주주의의 폭력』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는데, 아테네에 새로 성립된 민주정에 대해 두 사람이 서로 기탄 없는 의견을 뿜어 대는 대화 글 형식으로 되어 있다. 둘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

"…(이러한 정치 체제에서는)…상류층 사람들은 방종과 부정을 극소화하면서 최대한 선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 주게 되겠지. 그러나 일반 군중은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추한 생활에 빠져 극도의 무지와 무질서와 사악함을 보여 줄 걸세. 또한 가난 때문에 무례하고 야만스런 모습을 보여 주게 될 걸세." (익명의 아테네인)

이것은 아마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가장 오래 된 비평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쓴 사람은 자기 자신이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기에 바쁜 가련한 민중에 대해서는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과두정 체제보다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들의 비열한 의도를 감추기 쉽다는 이유로, 민중 태생도 아니면서 민주정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대해 반감을 보인다. 참으로 의미 깊은 일이다.

 

이제 다시 칠현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나는 지혜라는 말을 대할 때에는 어느 정도 경계의 눈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혜라는 것은 이상(理想)과 반대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혜란 결국 상식이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상주의와는 달리, 지혜란 인생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정확히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혜는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얘기하지만, 이상주의는 인간이 어떤 모습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인생을 이해하는 이러한 두 가지 방식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는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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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토스

 

 

밀레토스는 사모스 섬보다 약간 남쪽, 터키의 아나톨리아 해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그러나 조그마한 이 도시는 기원전 7세기 내지 6세기 무렵에는 이오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어쩌면 당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이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역사의 중심지, 그러니까 예술과 문학과 군사력의 중심지는 태양이 돌아가는 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옮겨 갔다. 아시아의 서쪽 해안에서 태어난 역사의 중심지는 그리스에서 한동안 멈추었다가 로마로 건너뛰었고, 그 곳에서 로마 제국과 중세 시대가 끝나고 대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자리를 틀고 앉았다. 대혁명이 지나자 역사의 중심지는 프랑스와 영국으로 옮겨 갔고, 다시 미국으로 두 번째 점프를 했다. 미래에는 아마 일본으로 건너가게 될 것이고,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듯이 계속 된다면 천 년 쯤 뒤에나 다시 우리가 사는 이 곳으로 옮겨 올지도 모른다.

 

밀레토스는 기원전 1000년 경, 크레타 섬과 그리스 본토, 그리고 불 타 버린 트로이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세운 도시이다. 그리스의 역사가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역사를 기록한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당시 밀레토스로 몰려 온 침입자들은 여자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를 죽이고 강탈한 카리아 지방(오늘날의 터키 일부로 에게 해 연안)의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다. 한 마디로 말해서 당시 이 곳에 도착한 이들 역시 '사비니의 약탈자*'처럼 전형적인 침략자의 모습을 보여 준 셈이다.

 

*사비니의 약탈자 : 기원전 753년에 쌍둥이 형제 레무스와 함께 로마를 건설한 로물루스는 자신이 세운 새로운 도시를 다른 도시의 망명자와 도망자에게 개방했다. 오래지 않아 로마는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도시가 되었는데 주변의 다른 도시 국가들이 로마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로물루스가 책략을 쓰게 된다. 사비니를 포함한 이웃 지역의 사람들을 로마의 축제에 초대하여, 남자들을 쫓아 버리고 그들의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이다.

 

 

헤로도토스는 이 집단 강간자들의 우두머리가 포세이돈*의 아들, 넬레우스라고 하는데 얼핏 그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조상들이 욕 먹을 짓을 신에게 돌리는 못된 습관이 있었다는 사정을 알고 나면, 헤로도토스의 상상력도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때를 잘못 만나 아프가니스탄과 칠레에서 저지른 일을 헤로도토스가 했던 것처럼, 얼버무리지 못하는 러시아와 미국 사람들이 안 됐다면 안 됐다고나 할까.

 

*포세이돈 : 그리스 신화 중 올림포스 12신의 하나. 강, 샘, 지진의 지배자였음. 암피트리테라는 부인이 있었지만 부인 외에 많은 여자와의 관계를 가져 괴물의 아버지가 된다. 삼지창을 손에 들고 수염을 흩날리며 백마가 끄는 전차를 타고 바다를 건너 다니는 무서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밀레토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다름 아니라 밀레토스라는 도시는 상업이 매우 발달한 현대 도시였다는 점이다. 밀레토스 사람들이 진정으로 숭배하는 신이 있다면 그것은 '황금'이라는 신이었다. 밀레토스는 더도 덜도 아닌 현재의 뉴욕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된 도시였다.

 

이오니아 해변은 마치 샌드위치의 고기처럼 그리스 세계와 뒤편의 페르시아 제국 사이에 끼인 길다란 국경 지역으로, 크고 작은 도시들이 수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 지역의 도시들은 적대적인 두 세력 사이에 있다는 이점을 최대한 살려 상업을 했고, 덕분에 살 맛 나는 번영을 이룩했다. 이들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도시가 바로 밀레토스였다. 밀레토스의 항구에는 밀과 기름과 금속과 파피루스와 포도주와 향수 등 온갖 값 나가는 짐을 가득 실은 배가 수없이 드나들었다. 순풍에 돛 단 듯이 사업이 풀려 나갈 때는 언제나 그렇듯이 밀레토스 사람들의 마음도 경제적인 부가 쌓이면서 종교가 부르짖는 신비적인 것보다는 세속적이고 합리적인 것에 끌리게 된다. 그렇기에 자연과 천문학과 항해술에 대한 연구가 이 곳에서 최초로 태어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밀레토스는 선원과 장사꾼과 사업가들이 북적거리는 오늘의 도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곳의 분위기를 대충 파악했을 테니 이제, 상상으로나마 밀레토스에 가서 몇 걸음 산책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마음 속으로 케발라크 테페 산으로 올라가 도시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보자.

저기 아래에 보이는 밀레토스는 작은 반도 모양을 하고 있고 길은 좁지만 모두 바둑판처럼 수직으로 만나고 있다. 규모만 작지 뉴욕의 맨해튼을 내려다 보는 느낌과 다르지 않다. 왼쪽에는 극장항(劇場港)이 보이고 조금 더 나아가면 사자항(獅子港)이 보인다. 파피루스를 짊어 진 프리기아 노예들이 서부 시장을 줄지어 가고 있고, 뭔가 열심히 토론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큰 소리로 흥정을 하는 소리며, 왁자지껄 웃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하다. 돈 많고 생각 없는 사람들이니 당연한 모습이리라.

 

밀레토스의 태평성대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교역을 하기에 좋은 입지를 보장해 주던 지리적 여건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 짓고 말았다. 다른 도시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다리우스 대왕이 이끄는 군대가 쳐들어 와 도시를 완전히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밀레토스 사람들은 페르시아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여자와 아이들은 끌려가 노예가 되었다…."

밀레토스의 멸망에 관한 소식 역시 헤로도토스가 전해 주고 있는데,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전한다.

"…아테네 사람들은 밀레토스의 함락 소식에 얼마나 놀랐는지, 프리니코스가 이를 소재로 쓴 비극을 공연했을 때 온 극장이 눈물 바다가 되었다. 프리니코스에게는 그러한 불행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는 죄로 1천 드라크마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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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스

 

사물의 근본 요소인 수분에는 성스러운 힘이 들어 있어서

그 힘이 수분으로 하여금 살아 움직이게 한다.

 

 

탈레스는 기원전 7세기 후반, 페니키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밀레토스의 기술자였다. 철 들 나이가 되자 배를 타기 시작해 이집트와 중동 지방으로 여행하기를 좋아했는데, 천문학과 수학과 항해술 등의 분야에서 당시 가장 앞서 가는 지식을 그에게 가르쳐 준 사람은 결국 여행 중에 만난 이집트와 칼데아의 사제들이었다.

고국에 돌아오자 어머니, 클레오불리네 부인은 자식 둔 어머니가 모두 그렇듯이 그를 집에 잡아 두고 짝을 맺어 주는 일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탈레스는 다른 젊은이들과는 달랐기 때문에 설득할 도리가 없었다.

"왜 결혼을 않니?"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차일피일 미루던 노총각은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말을 바꿔 꽁무니를 뺐다.

"이젠 때가 지났으니까요."

또 "왜 자식을 두지 않소?" 라고 물으면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라고 하면서 오히려 자식을 두지 않는 점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철학자라는 단어가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이 쯤 되면 이미 전형적인 철학자의 면모를 보여 주었던 셈이 아닐까? 철학자라는 말은 피타고라스 시대에 가서야 등장했고, 철학자라는 직업이 당당한 밥벌이로 인정 받는 것은 플라톤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당시 탈레스는 그저 엉뚱한 일에 정신을 팔고 다니는 괴상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이렇게 수군거렸다.

"사람은 좋은데 실질적인 감각이 없단 말이야."

"글쎄 아는 것이 많으면 뭘 하나? 땡전 한 푼 없으니 도대체 머리 속에 든 게 무슨 소용이람?"

 

심지어는 하녀까지 그를 놀린 게 아닌가 의심 날 정도이다. 그가 별을 관찰하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 일로 하녀가 하루 종일 그를 놀렸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오, 탈레스 주인님. 주인님은 하늘의 것에는 그토록 골몰하시면서 바로 코 앞에 있는 것에는 관심도 두지 않으시나요!"

글쎄 탈레스의 코 앞에 있던 사물 중, 그 말을 한 하녀가 미모의 여자였는지 어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리의 철학자 양반께서 일상의 삶의 문제나 여자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표현을 좀 적나라하게 한다면 일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덜 떨어진, 전형적인 과학자의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몸 씻기를 싫어하고, 기하학의 정리는 대여섯 개를 줄줄 내리꿰면서 자신의 개인 생활은 제대로 처리할 줄 모르는 유형의 사람 말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면을 보여 주는 일화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이야기인데, 탈레스는 자신에 대한 평가에 진저리가 난 나머지 어느 날 "좋아, 어디 본때를 보여 주지!" 라고 선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올리브가 풍작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한 그는 시장에 나와 있는 압착기란 압착기는 모두 싼 값에 빌려 버렸다. 기름 짜는 일을 독점해 버린 것이다. 이런 형태의 투기는 오늘 날 매점매석이라 불리는 것으로 불공정 거래로 지탄받는 것이다. 하지만 탈레스로서는 철학자라 일컬어지는 사람들도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 부자가 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나름의 이유 있는 행동이었다.

 

이런 모습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일 뿐, 탈레스의 참 모습은 제대로 된 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된 가정 교육을 받은 사람이요, 플라톤의 말대로 '기발한 기술의 고안자'였다. 플라톤의 평가는 다음의 일화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오니아 해안 도시들의 동맹군이 페르시아 군대에 대항해 전쟁을 할 때의 일이었다. 크로이소스의 군대가 할리스 강을 건너지 못해 쩔쩔 매는 것을 보고는 물에 관한 한 능숙한 기술자였던 그는 강물의 일부를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했고, 덕분에 군대는 반으로 갈라진 두 지류를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그가 과학자로서 크게 명성을 떨친 것은 기원전 585년에 있었던 일식을 예언한 사건 덕분이었다. 솔직히 그의 예언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 것은 과학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운이 좋아서였다. 그는 칼데아의 사제들로부터 일식이 거의 90년을 주기로 반복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고, 소 뒷걸음질 치다 개구리 잡는 식으로 일식을 예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날 일식을 예특하려면 달이 태양에 완전히 포개지는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한다는 것 쯤은 상식이다. 더욱이 칼데아 지방에는 개기일식이 된다 하더라도 약 2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아나톨리아 지방에서는 부분 일식이 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니 고작해야 "여보게들, 혹시 일식이 있을지 모르니 가끔 창 밖을 내다 보게" 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밝힌 대로 탈레스는 운 좋게도 완벽하게 개기일식을 예언하게 되었다. 온 세상이 깜깜하게 될 정도로 완벽한 일식이라 그 일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이오니아 동맹군과 페르시아 군 사이의 전투가 잠시 휴전을 할 정도였다.

 

그 일이 있은 뒤로 탈레스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절대적인 것으로 바뀌었고, 덕분에 그는 마침내 조용히 연구에 몰두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는 길이를 알고 있는 물건의 그림자와 피라미드의 그림자 길이를 비례로 계산해 피라미드의 높이를 재는 데 성공했고, 기하학의 원리를 이용해서 바다에 떠 있는 배가 해안에서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도 계산을 해 냈다. 1년을 365일로 나누었을 뿐 아니라 별자리 작은 곰 자리를 처음 발견해 항해술에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이 일을 기념해 칼리마코스는 다음과 같은 시를 그에게 바쳤다.

 

그가 있어,

마차 모습으로 빛나는

별무리를 찾았으니

페니키아 사람들도

그 별을 따라 항해하였다네.

 

탈레스가 남긴 글은 하나도 없다. 『항해를 위한 천문학』이라는 책이 그가 쓴 것이라고 전해졌지만 결국은 사모스의 포코스가 쓴 책으로 판명되었다.

탈레스는 경기를 보던 운동 경기장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더위와 갈증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군중의 발에 밟혀 죽은 것으로 생각된다. 관중들이 경기장에서 모두 빠져나간 뒤, 계단 위에 마치 잠자는 사람처럼 누워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그는 매우 고령이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그의 죽음에 대한 풍자 시를 하나 남기고 있다.

 

오 제우스 신이여,

그대는 경기장에서 운동 경기를 관람하는

현인 탈레스를 앗아가 버렸구려.

이 땅에서는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나이 든 노인이기에

아예 별들의 세계로 안내한 그대에게

찬미를 드리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들의 공식 철학 교과서는 라만나 교과서였다. 그러나 교과서가 지나치게 어렵다고 생각한 나는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비냐미 참고서로 공부를 했다. 혹 비냐미 참고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한다면, 모든 과목을 가장 중요한 내용만 요약해 놓은 참고서였다. 마치 학교 교재를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 식으로 압축시켜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들이야 곱게 보아 주실 리 없겠지만, 어쨌거나 이 참고서는 비냐미 역사, 비냐미 철학, 비냐미 화학 하는 식으로 없는 과목이 없었다. 무거운 짐을 던 온 이탈리아의 학생들은 언젠가 에르네스토 비냐미 선생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념비라도 세워 드려야 하지 않을까?

당시 시험 문제 수준은 요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질적인 차이가 있었다는 건 굳이 밝히지 않겠다. 어쨌거나 대학 입학 자격시험이 다가오자 나는 3년 동안의 모든 과목을 총정리해야 하는 암담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그 상황이 되니 요약에 요약을 해 놓은 그 비냐미 참고서마저 내게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저 유명한 메모 작전에 돌입했다. 검은 표지에 네모 줄이 인쇄된 메모지에, 비냐미 참고서를 요약한 내용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었다. 꼭 암기해야 할 요약의 요약을 다시 요약한 메모지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 놓는 이유는 아직도 특별한 애정으로 간직하고 있는 고등학교 때의 그 요약 노트에 탈레스에 대해 적혀 있는 말을 밝히기 위함이다. 그 노트에는 탈레스에 대해 단 한 마디가 적혀 있다.

 

탈레스 = 물

 

탈레스에 관한 메모로는 이것이 전부였다. 사실, 철학의 역사에서 탈레스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처럼 그가 물을 물질의 근본적인 요소로 파악한 사람이라고 단순화하는 것이리라.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함께 살펴 보기로 하자.

 

탈레스는 자연 속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수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식물도 수분을 가지고 있고 나무의 영양분이나 씨앗조차 수분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바위는 수분이 없고 사람의 시체는 재빨리 말라 버린다.

탈레스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물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다" 라는 말이었다. 물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젊은 시절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등 매우 건조한 지역에서 문화적인 소양을 쌓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지역에서는 물에 대한 숭배 의식이 매우 강했고, 물이 넘쳐 흐르는 강이야말로 농경의 근원이요 생존의 근원이었다. 나일 강이 이집트의 신으로 숭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탈레스가 "물은 곧 생명" 이라는 등식을 주장할 때 이것보다는 더욱 넓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땅의 모든 피조물에는 물이 들어 있다는 식의 주장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높은 개념을 그는 말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탈레스에게 있어 물은, 더욱 정확히 말해, 수분은 피조물의 본질이요 사물의 영혼이었다. 아에티오스는 탈레스에 대해 말하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사물의 근본 요소인 수분에는 성스러운 힘이 들어 있어서 그 힘이 수분으로 하여금 살아 움직이게 한다."

 

탈레스를 선두주자로 하는 밀레토스 학파는 이처럼 그리스인이 '아르케'라고 부르는 물질의 근원 요소를 탐구한 것이 특징이다. 바로 이 근원 요소로부터 사물의 근원을 캐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탈레스에게 있어 아르케는 얼린다든가 끓일 때 스스로 얼음과 증기로 바뀔 수 있는 수분, 다시 말해 물이었다. 그는 지구 역시 넓디 넓은 물 위에 떠 있는 뗏목 같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물의 출렁거림에 의해 지진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탈레스가 생각한 것처럼 지구가 다른 물체 위에 올려져 있다고 하는 믿음은 여러 나라의 신화에서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리스 사람들처럼 '아틀라스'라는 거인이 지구를 어깨에 메고 있다고 믿은 민족이 있는가 하면, 힌두교인들처럼 지구는 거대한 코끼리의 등에 올려져 있고, 코끼리는 다시 어마어마한 거북이 등에 올려져 있다고 믿는 민족도 있다. 그러나 행여 힌두교도들에게 거북이는 무엇을 딛고 있느냐고 묻지는 말라. 어쩔 줄 몰라 쩔쩔 매거나 아예 못 들은 척 시치미를 뗄 테니까.

물 말고도 탈레스는 모든 사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물은 신으로 충만하다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면 그는 언제나 주머니에서 못과 자석을 꺼내서는 눈이 휘둥그래진 사람들에게 돌멩이조차 쇠붙이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 보여 주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탈레스는 철학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어서라기보다는 그런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위를 자세히 관찰하고 곰곰이 따져 봄으로써, 모든 신비의 해결을 신에게 돌리지 않은 그의 자세는 우주의 신비를 풀어 보려는 서구 사상의 첫 걸음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