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 - 움직이는 손가락 :: 사랑

제７장 사랑

 

그 다음 날, 나는 완전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 날의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실 그런 말로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매 달 한 번씩 나는 마커스 켄트에게 진찰을 받으러 가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런던에 올라갈 때 기차를 이용했다. 조안나가 올라가지 않고 남아 있겠다고 한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그녀는 몹시 가고 싶어했을 테고, 우리는 런던에서 이틀 정도를 지내다 내려오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올라갔다가 그 날 저녁 기차로 내려오자고 했는데도 조안나가 거절한 것은 나를 무척 놀라게 했다. 그녀는 할 일이 많고, 또한 이렇게 멋진 날씨를 쾌적한 시골에서 보내지 않고, 왜 그 지저분하고 답답한 기차에서 몇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아주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한 것이다. 그녀의 말은 물론 의심할 것도 없는 사실이었겠지만, 도무지 조안나 답지 않은 소리였다.

그녀는 차가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나는 그것을 타고 역까지 간 다음에, 돌아올 때 타고 오기 위해 역 근처에 주차시켜 놓기로 했다.

 

라임스톡 역은 철도 회사들의 애매모호한 이유로 해서 마을에서 약 반 마일 가량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었다. 중간 정도 갔을 때 나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듯이 걸어가고 있는 메건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메건을 불러 세웠다.

"안녕, 메건.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방금 산책을 나온 길이에요."

"하지만 그렇게 즐거운 산책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마치 풀죽은 개처럼 힘없이 걷고 있는데 그래?"

"글쎄요. 나는 뭐 어디에 가겠다고 딱 목적지를 정해 놓고 나온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면 나와 함께 역으로 가서 내가 떠나는 것을 바래다 주면 좋겠는데." 하고 말하며 내가 자동차 문을 열자 메건이 훌쩍 올라탔다.

"당신은 어디에 가시는 거예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런던에 가는 길이지. 내 주치의를 만나러 말이야."

"당신 상처가 아직도 다 낫지 않았나요?"

"아니, 상처는 이제 완전히 다 나았다고 할 수 있지. 내 주치의도 그 점에 대해서는 매우 만족해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메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우리는 역에 도착했다. 나는 차를 세워 두고 역 안으로 들어가서 매표소에서 기차표를 샀다. 플랫폼에는 불과 몇 사람 밖에 없었는데, 내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1페니만 빌려 주시겠어요?" 하고 메건이 말했다.

"자동 판매기에서 초콜릿을 하나 사 먹을까 해서요."

"자, 여기 있어, 꼬마 아가씨." 하고 말하며 나는 그녀의 손에 동전을 하나 쥐어 주었다.

"클린 껌이나 다른 청량 과자들은 초콜릿만큼 좋아하지 않나 보군."

"나는 초콜릿을 제일 좋아해요." 하고, 그녀는 내가 그녀를 놀리려고 한 말이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는 기색도 없이 말했다.

그녀는 초콜릿 자동 판매기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녀를 지켜 보았다. 그녀는 찌그러진 구두와 거칠고 조잡한 스타킹을 신고 있었으며, 유별나게 맵시가 없는 점퍼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도무지 봐 줄 데라곤 한 군데도 없었다. 대체 그러한 꼬락서니가 어째서 나를 화나게 만든 것인지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나를 화나게 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녀가 돌아오자 그만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어째서 메건은 그 꼴 보기 싫은 스타킹을 계속 신고 있는 거지?"

메건은 놀라며 자기 스타킹을 내려다 보았다.

"내 스타킹이 뭐 어때서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걸요."

"아무렇지도 않다니, 정말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돈데 그래. 그것은 정말이지 참고 볼 수가 없어. 그리고 또, 그 닳아빠진 양배추 같은 풀오버(머리로부터 뒤집어 써서 입는 스웨터)는 어째서 아직도 입고 있는 거야?"

"이건 아직도 입을 만 해요, 그렇잖아요? 나는 이것을 몇 년 동안이나 입고 지내 왔는걸요."

"그건 나도 가히 짐작이 가는 사실이야. 그리고 어째서 메건은─"

바로 그 순간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와서 나는 그녀에게 하던 훈계를 그만 중단해야 했다. 나는 자리가 비어 있는 일등 칸에 올라 타서는 창문을 끌어내리고, 도중에 끊어진 대화를 다시 시작하려고 몸을 차창 밖으로 내밀었다. 메건은 얼굴을 들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녀는 어째서 내가 그토록 화를 내느냐고 물었다.

"나는 화가 난 게 아니야." 하고 나는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꾸며 댔다.

"메건의 그 단정치 못한 옷차림과, 도무지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 메건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을 뿐이지."

"사실 나는 그렇게 멋지게는 보이지 않을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그만 둬!"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메건이 예쁘게 옷을 차려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요. 과연 어떤 모습일지. 할 수만 있다면 메건을 런던에 데리고 가서, 머리에서 발 끝까지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꾸며 주고 싶다고."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고 메건이 말했다.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몹시 갈망하며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메건의 애처로운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내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던 미친 듯한 열정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는 것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한 손을 내밀어 메건을 움켜잡고는 간단하게 그녀를 기차 안으로 끌어 올렸다. 포터가 뭐라고 큰 소리로 투덜거렸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내가 성급한 행동으로 그녀를 끌어 올려 놓았던 발판에서 다시 그녀를 들어 올렸다.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 거예요?" 하고 그녀는 한 쪽 무릎을 손바닥으로 비비며 내게 물었다.

"그냥 잠자코 있어." 하고 내가 말했다.

"이제 메건은 나와 함께 런던으로 가는 거야. 내가 메건에게 무엇인가를 해 주지 않는 한 메건은 절대로 자신에 대해서 깨닫지 못할 거야. 나는 메건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떻게 보일 수가 있는지를 보여 주려는 것이지. 이제 나는 메건이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차려입고 나다니는 것을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오!" 하고 메건은 황홀한 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탄성을 발했다.

검표원이 다가오자 나는 메건에게 왕복 차표를 한 장 끊어 주었다. 그녀는 몹시 존경스러운 듯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자기 자리에 앉았다.

"저, 말이에요─" 하고 그녀는 검표원이 자리를 떠나자 내게 말했다.

"당신은 무척 충동적인 성격인 것 같아요, 그렇죠?"

"무척 충동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지." 하고 내가 대답했다.

"그러한 성격은 바로 우리 집안의 내력이야."

그 당시 내게 몰아닥쳤던 그 충동에 대해서 메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그 때 그녀의 표정은 마치 산책을 나가는 주인이 함께 데려가지 않아 혼자 남게 된 개가 몹시 따라가고 싶어하며 안타까워하는 모습과도 흡사했다. 그렇지만 이제 그녀는 결국 주인의 산책에 따라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개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과 같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표정을 얼굴에 떠올리고 있었다.

"런던에 대해서 잘 모르지, 메건?" 하고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아뇨, 나도 런던에 대해서는 제법 알고 있다고요." 하고 메건이 말했다.

"학교에 다닐 때 늘 그리로 다녔거든요. 그리고 런던에 있는 치과에도 다니고 팬터마임도 구경하러 가곤 했답니다,"

"아니, 이번에는─" 하고 내가 침울하게 말했다. "그 때와는 좀 다른 런던이 될 거야."

 

우리가 런던에 도착한 것은 내가 할리 가(街)(일류 의사들이 개업하고 있는 거리)에서 마커스 켄트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가량 이른 시각이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곧장 조안나의 단골 의상실인 미로탱으로 향했다. 미로탱의 주인은 세속적인 악습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35살의 여인으로, 그녀의 이름은 메리 그레이였다. 나는 항상 그녀를 좋아했다. 내가 메건에게 말했다.

"메건은 이제부터 내 사촌 누이가 되는 거야."

"어째서요? 꼭 그렇게 해야 될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이유 같은 건 따질 필요가 없어." 하고 내가 말했다.

메리 그레이는 몸에 꼭 달라붙는 감청색 이브닝 드레스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어떤 뚱뚱한 여인과 꼭 붙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그 여인으로부터 떼어서 한 쪽으로 끌고 갔다.

"내 말을 들어 봐요─" 하고 내가 말했다.

"이번에 올라오는 길에 내 사촌 누이를 데리고 왔어요. 조안나도 함께 오려고 했지만 사정이 생겨서 오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고 하더군요. 자, 저 아가씨가 어떻게 보이는지 당신도 아시겠죠?"

"그야 물론이죠!" 하고 메리 그레이는 감정이 풍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야 어떻든, 나는 그녀를 머리에서 발 끝까지 아주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아름답게 보이도록 꾸며 주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습니다. 스타킹, 구두, 속옷 등등 모든 것을 말입니다! 그건 그렇고, 조안나의 머리를 손질해 주는 남자도 이 근처에서 가게를 열고 있죠, 그렇지 않습니까?"

"앤트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퉁이를 돌면 그의 가게가 있어요. 내가 그것도 함께 알아 볼게요."

"정말이지 당신은 놀라운 분입니다."

"오, 나도 이 일이 재미있는걸요─돈과는 별개의 문제로─하지만 오늘날에는 그것도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답니다─내 고객 중에서 반이나 되는 아주 못돼먹은 여편네들은 그들에게 보낸 청구서를 아예 지불하지도 않는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정말 재미있을 거예요."

그녀는 저 쪽으로 약간 떨어져 서서 있던 메건에게 민첩하고 직업적인 시선을 던졌다.

"저 아가씨는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군요."

"당신 눈은 X선처럼 투시력이라도 지닌 모양이로군요." 하고 내가 말했다.

"나에게는 볼품없게 보일 뿐인데요."

메리 그레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이런 분야에서 터득하는 자격증이라고도 할 수 있답니다." 하고 그녀가 말했다.

"자신을 지구상의 그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게 보이려는 아가씨들은 마치 그런 차림으로 해서 자부심이라도 느끼는 모양이에요. 그들은 그것을 소위 귀엽고 순박한 모습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때론 어떤 아가씨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세월이 다 지나가 버리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걸 내게 맡겨 두세요."

"좋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6시 경에 그녀를 데리러 오도록 하겠습니다."

 

마커스 켄트는 나를 보고 상당히 만족해 했다. 그는 자기가 최대한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보다도 내가 훨씬 더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당신은 마치 코끼리처럼 튼튼한 골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이렇게 완전히 회복이 될 수 있다니 말이오. 오, 아무튼 시골의 맑은 공기 속에서 지내며 밤이 늦도록 일하거나 쓸데없이 흥분하는 일이 없느 생활은, 그런 따분한 생활을 견뎌 낼 수만 있다면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것은 진정 놀라운 일입니다."

"나는 당신이 하신 말씀 중에서 앞의 두 가지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하고 내가 말했다.

"시골에서 생활한다고 해서 흥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지내고 있는 곳에서 엄청난 흥분을 겪었답니다."

"그래, 어떤 종류의 흥분이었습니까, 버튼 씨?"

"살인입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마커스 켄트는 입술을 오므리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무슨 목가적인 사랑의 비극적인 결과였겠군요? 농부의 아내가 자기 남편의 젊고 아름다운 정부를 살해하기라도 한 겁니까?"

"천만에요, 전혀 그렇지가 않답니다. 어떤 교활하고 냉혹하고 비정상적인 자에 의한 살인이에요."

"어째서 내가 그 사건에 대한 기사를 보지 못했을까? 그런데 경찰은 그 살인자를 언제 체포했습니까?"

"아직 범인은 잡지 못했고, 게다가 범인은 여자랍니다! 남자가 아니고 말이에요!"

"저런─! 나는 라임스톡도 당신에게는 그리 적당한 장소가 못 된다고 생각해요, 버튼 씨."

나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건 사실이지요. 하지만 나를 거기서 빼네려고 하진 마십시오."

마커스 켄트는 마음이 착잡해진 모양인지 잠시 지나서 말했다.

"그렇다면 바로 그 이야기로군! 혹시 범인이 금발 미녀로 밝혀지지는 않았습니까?"

"천만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나는 엘시 홀랜드에 대해서 일종의 죄책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나에게 있어서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오직 범죄 심리학밖에는 없답니다."

"아, 그것도 괜찮겠지요. 지금까지는 당신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것이 확실하지만, 당신이 말한 그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의 살인자가 당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보장도 전혀 없는 겁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고 내가 말했다.

"오늘 저녁에 나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면 당신이 겪은 그 끔찍한 살인 사건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해 줄 수가 있을 겁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해야겠군요.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내겐 선약이 있어서요."

"어떤 숙녀분과의 데이트─ 맞지요? 그렇군요, 당신 몸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그 점으로 봐서도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나도 당신이 그렇게 말하리란 것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말하며, 나는 그 데이트의 상대로서 메건을 생각하자 정말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상점이 문을 닫는 시간인 6시 정각에 미로탱에 도착했다. 메리 그레이는 진열대 밖에 있는 계단 맨 위에서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듯이 자기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당신은 아마 틀림없이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될 거예요! 비록 내 자신을 너무 치켜세우는 말이 될지는 몰라도, 정말이지 나는 훌륭한 작품을 하나 만들었답니다."

나는 커다란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메건은 큰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 있었다. 정말 나는 거의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에게 밝혀야겠다! 잠시 동안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하늘거리는 버들가지처럼 날씬하게 뻗은 종아리와 발은 고운 실크 스타킹과 적당한 높이의 구두 때문에 더욱 돋보였다. 그렇다, 아름다운 팔다리와 아담한 체구─그녀의 날씬한 몸매가 이루는 곡선은 모두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머리는 얼굴에 잘 어울리도록 산뜻하게 손질되어 있었고, 마치 윤기가 흐르는 밤처럼 아름다운 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얼굴만은 꾸미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둘 줄 아는 뛰어난 감각이 있었다. 그녀는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거나, 화장을 했더라도 아주 엶게 했는지 조금도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은 립스틱을 바를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그녀에게는 내가 전에는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참신하고 순수한 자신감이 그녀의 고운 목선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살짝 수줍은 듯한 미소를 띠고는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나도 제법─ 괜찮아 보이죠, 예?" 하고 메건이 말했다.

"괜찮다고?" 하고 내가 말했다.

"괜찮다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가 않아! 그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걸. 이리 와요. 우리 함께 나가서 저녁 식사를 하지. 메건을 스치는 남자들이 다시 고개를 돌려 메건을 한 번 더 쳐다보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런 작자는 아마도 눈이 삐었거나, 아니면 메건을 보고 너무도 황홀해서 도저히 눈을 뜰 수 없는 사람일 거야. 메건은 다른 아가씨들을 죄다 초라하게 보이도록 만들 거야."

메건은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다른 여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하고 매력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녀의 개성이었다. 그녀가 앞장서서 레스토랑으로 들어가고 급사장이 서둘러 우리를 향해 다가오자, 나는 다른 사람들은 갖지 못한 어떤 진기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일종의 바보스러운 자랑감 같은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우선 칵테일을 주문해서 그 맛과 향기를 한동안 즐겼다. 그 다음에 식사를 했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춤을 추었다. 메건은 몹시 춤을 추고 싶어했고 나도 그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녀가 춤을 잘 추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그녀는 춤을 대단히 잘 추었다. 마치 깃털처럼 가볍게 내 팔에 안겼고, 그녀의 육체와 다리는 리듬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여 나갔다.

"오, 이거 놀랐는데!" 하고 내가 말했다.

"메건이 이렇게 춤을 잘 추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걸!"

그녀는 다소 놀란 것 같았다.

"아녜요, 아주 잘 추는걸요. 학교에 다닐 때 매주 댄싱 시간이 있었거든요."

"댄서를 키우는 댄싱 교습소보다도 더 잘 가르쳤나 보군." 하고 내가 말했다.

우리는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이 곳의 음식은 별로 좋지 않죠?" 하고 메건이 말했다. "모든 게 다 별로예요!"

그녀는 즐거운 듯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 생각하고 완전히 같은데." 하고 내가 말했다.

 

정말 완전히 정신이 나간 저녁이었다. 나는 그 때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메건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는 바람에 허공에서 헤매고 있던 나는 땅에 떨어져서 정신을 차렸다.

"우리, 집에 돌아가야 하잖아요?"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 그렇다,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틀림 없었다. 모든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창조해 낸 피조물과 함께 지내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에서 환상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 맙소사!" 하고 내가 나지막이 부르짖었다. 나는 마지막 기차가 이미 떠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 그대로 있어." 하고 내가 말했다. "전화를 걸어야겠어."

나는 루웰린 자동차 대여 회사에 전화를 걸어 가장 크고 빠른 차를 가능한 한 빨리 보내 달라고 주문했다. 나는 다시 메건에게로 돌아왔다.

"마지막 기차는 이미 떠났어." 하고 내가 말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동차로 돌아가야겠어."

"우리 둘이서요? 그거 정말 재미있겠는데요!"

그녀는 무척 착한 아가씨라고 나는 생각했다. 모든 일에 대해서 그토록 즐거워하고, 내가 하는 말이면 어느 것 하나 싫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법석을 떠는 일이 없이 고분고분하게 순종하며 받아들이는 거였다.

이윽고 자동차가 도착했는데, 상당히 크고 속력도 빨랐지만 아주 늦어서야 우리가 라임스톡에 들어서게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갑자기 죄책감을 느끼며 나는 메건에게 말했다.

"아가씨 집에서는 아마 아가씨를 찾으러 사람들을 여기저기 보냈을 거야!"

그러나 메건은 마음에 전혀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것 같았다.

"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고 그녀는 막연하게 대꾸했다.

"나는 종종 밖에 나갔다가 점심 때가 지나도록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걸요."

"그럴 수도 있겠지, 메건. 그렇지만 지금 아가씨는 점심 때는 물론이고, 차 마시는 시간과 저녁 시간도 지나서 돌아가고 있는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건의 행운의 별은 스러지지 않고 더욱 밝게 빛나고 있었다. 메건의 집은 불이 다 꺼지고 정적에 싸여 있었다. 메건의 말에 따라, 우리는 집 뒤로 돌아가서 로즈 방의 창문에 돌을 던졌다. 일이 생각대로 순조로이 진행되어, 이윽고 로즈가 밖을 내다보고는 깜짝 놀라서 터져 나오는 탄성과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우리들에게 문을 열어 주려고 아래로 내려왔다.

"아니,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죠. 나는 아가씨가 잠자리에 든 줄 알고 그렇게 말했는데요. 선생님과 홀랜드 양─(그녀는 홀랜드 양의 이름을 꺼낸 다음에 희미하게 코웃음을 쳤다)은 일찍 저녁을 드시고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셨어요. 나는 도련님들을 돌보느라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답니다. 계속 놀겠다고 칭얼거리는 콜린을 달래느라고 육아실에 있을 때 아가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내려가 보니 아가씨가 보이지 않아서 잠자리에 들었나 보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아가씨에 대해서 물었을 때 자고 있다고 말씀드렸던 거예요."

나는 메건의 처지가 그 덕분에 오히려 유리해졌다고 말함으로써 그녀의 장황한 설명을 중단시켰다.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메건이 작별 인사를 하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너무도 고마웠어요. 오늘은 내 생애에서 가장 멋진 날이었답니다. 정말 너무나 즐거웠어요."

 

나는 그 때까지도 약간 마음이 들떠 있는 채로 집으로 돌아가서는 운전사에게 팁을 후하게 주면서, 자고 가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그 날 밤 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홀 문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열려 있었고, 그가 차를 몰고 떠나자 문이 활짝 열리며 조안나가 나오면서 말했다.

"아니, 이제야 돌아온 거예요, 예?"

"나 때문에 걱정했나 보구나, 조안나?" 하고 물으며 나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조안나가 거실로 들어가자 나도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 삼발이 위에서는 커피 포트가 올려져 있었고, 내가 위스키 소다수를 타서 마시는 동안 조안나는 자기가 마실 커피를 끓였다.

"오빠 때문에 걱정을 했다고요? 흥, 천만에요. 걱정하기는커녕 나는 오빠가 런던에서 묵으며 한 번 흥청망청 놀아 보자고 마음을 돌렸나 보다고 생각했었지요."

"흥청망청 놀기는 했지─ 뭐, 그것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거야."

나는 조안나에게 싱긋이 웃어 보이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조안나가 대체 무슨 일로 그렇게 웃느냐고 묻자, 나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오, 저런! 오빠는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틀림 없어요─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던 거예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오빠, 그런 일을 할 수는 없잖아요? 이런 지방에서는 안 돼요. 그 일은 내일이면 라임스톡 전체에 퍼지게 될 거예요."

"나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메건은 어린애에 불과하잖아."

"그렇지 않아요. 그녀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이제 스무 살인걸요. 스무 살이나 먹은 처녀를 데리고 런던에 올라가서 옷을 사 주고는 소문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큰 일 났어요, 오빠. 아마도 오빠는 그 아가씨와 결혼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정말 안 됐어요, 쯧쯧."

조안나의 말은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내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빌어먹을!" 하고 내가 말했다.

"설사 내가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아. 사실─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지."

아주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조안나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녀는 일어나서 문 쪽으로 걸어가며 냉랭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나도 진작부터 짐작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이 새로운 생각으로 얼이 빠져서 한 손에 술잔을 든 채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남겨두고 거실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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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손가락(The Moving Finger, 1943)>은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 영국 1891~1976) 여사의 43번째 추리 소설이며 33번째 장편이다. 마플 양이 탐정으로 나오는 장편으로서는 <서재의 시체>를 잇는 세 번째 작품이다. 크리스티 자신은 이 작품을 스스로 선정한 베스트 10편 속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라임스톡이라는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다. 폭격기의 조종사 제리 버튼은 격추당했을 때에 입은 부상을 요양하기 위해 누이동생 조안나를 데리고 의사의 권고에 따라 이 조용한 라임스톡 마을에 온다. 버튼 오누이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이상한 편지를 받는다. 그들은 경찰에 이 편지를 보내지만 이 마을은 괴상한 편지가 온통 휩쓸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밍턴 부인이 자살 시체로 발견되는데, 침대 옆 테이블 위에는 괴상한 편지가 놓여 있다. 이 비극이 있은 지 오래지 않아 시밍턴 부인의 하녀가 살해된다. 이 때 캘드로프 목사 부인이 범죄의 전문가인 제인 마플 양을 불러오게 된다. 그녀는 온갖 연막을 꿰뚫고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이 소설에서는 두 인물의 성격 묘사가 뛰어나다고 비평가들은 말하고 있다. 시밍턴 씨의 의붓딸 메건 헌터가 잊을 수 없는 젊은 아가씨 역으로, 버튼 오누이의 시중을 드는 패트리지라는 하녀가 희극적인 인물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은 제리 버튼이 해설자가 되어 있다. 이 소설에는 로맨틱한 연애가 삽입되어 있지만, 그것이 크리스티가 교묘하게 엮은 플롯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이 소설에서는 크리스티가 즐기는 듯한 경쾌한 필치를 구사하고 있음을 덧붙이고 싶다. 이 작품을 자신의 베스트 10에 포함시킨 것은 크리스티가 이 작품을 즐기면서 쓴 데에 있지 않은가 한다.

 

역자 이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