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 -보몽 단편선- 셰리 왕자

셰리 왕자

 

어느 먼 옛날 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왕은 무척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었기에, 백성들은 모두 그를 좋은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왕이 사냥을 나가게 되었는데, 새하얗고 작은 토끼가 왕의 사냥개들 눈에 들어왔고, 개들은 토끼를 잡으려고 맹렬히 짖으며 달려 들었습니다. 그러자 토끼는 왕의 품 속으로 후다닥 뛰어 들었습니다. 왕은 작은 토끼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이 작은 것이 내 보호 아래 몸을 맡겼구나. 그러니 이 토끼를 해하지 마라."

그는 토끼를 궁전까지 데리고 가서 작고 예쁜 집을 마련해 주었고, 그 안에 토끼가 먹을 좋은 풀들도 넣어 주었습니다.

 

밤이 되어 그가 홀로 방에서 자고 있을 때, 그의 눈 앞에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여인은 금은보화로 장식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 드레스는 눈처럼 새하얗고, 머리 위에는 모자 대신 하얀 장미로 만든 화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왕은 이 여인을 보고 몹시 놀랐습니다. 그의 방문은 굳게 잠겨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녀가 어떻게 방 안으로 들어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그를 보고 미소를 띠며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칸디드 요정입니다. 당신이 사냥을 하는 동안에 숲을 지나가다가, 문득 사람들이 입을 모아 좋은 왕이라고 부르는 당신이 정말 좋은 왕인지 알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작은 토끼의 모습을 하고 당신 품에 뛰어 들었지요. 동물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선하게 대한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만약 당신이 저를 내쳐 버렸다면 저는 당신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당신의 진심을 알게 된 저는, 당신이 제게 베풀어 주신 선행에 감사를 전하러 왔습니다. 또 언제까지나 당신의 친구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말씀하세요. 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여인이여, 당신은 요정이기에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전부 알 것입니다. 제게는 오직 아들 하나 밖에 없습니다. 전 아들을 무척 사랑하기에 아들 이름도 '셰리'라고 지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저에게 어떤 것을 해 주고 싶다면, 제 아들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세요."

"기꺼이 그렇게 하죠.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서 제일 가는 미남으로 만들 수도 있고, 혹은 부자로, 아니면 권력자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걸 고르시지요."

이에 왕이 대답했습니다.

"아들을 위해 원하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제 아들을 왕자들 중 가장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면 무척 감사하겠습니다. 잘생기고, 돈이 많고, 세상 모든 왕국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악한 사람이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요정님도 아시다시피 그렇게 되면 제 아들은 결국 불행해질 것입니다. 그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건 오직 덕망 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요정이 말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하지만 제겐 셰리 왕자를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어 줄 힘은 없습니다. 그것은 왕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덕망 높은 사람이 되도록 왕자 스스로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요. 제가 당신께 약속 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왕자에게 좋은 충고를 계속 해 주리라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왕자가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면, 그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 또한 제가 할 일이지요."

왕은 이 약속에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셰리 왕자는 그의 죽음에 많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왕국과 금은보화까지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다시 살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왕이 죽고 이틀이 지난 후, 셰리 왕자가 잠자리에 들었을 때 칸디드 요정이 그의 앞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전 당신의 아버지와 약속했습니다. 당신의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말이죠. 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신께 선물을 하나 하겠습니다."

동시에 요정은 셰리 왕자의 손가락에 금반지를 하나 끼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했습니다.

"이 반지를 잘 간직하도록 해요.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더 귀중한 것이니까요. 당신이 나쁜 행동을 할 때마다 이 반지가 당신의 손가락을 찌를 거예요. 하지만 반지가 계속 당신을 찔러도 당신이 나쁜 행동을 일삼는다면, 전 당신의 친구이길 포기하고 가장 무서운 적으로 돌변할 것입니다."

이 말과 함께 요정은 사라졌습니다. 셰리 왕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 이후, 왕자가 현명하고 지혜로운 행동을 할 때면 반지도 평온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러면 왕자도 무척 기뻤지요. 사람들은 그를 '행복한 셰리 왕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자는 사냥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왕자는 아무 것도 잡지 못했고, 기분이 조금 나빠졌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그의 반지가 손가락을 약간 조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반지가 손가락을 찌르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방으로 돌아오자 그의 강아지 비비가 그를 반기며 쓰다듬어 달라고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왕자는 강아지에게 말했습니다.

"저리 가. 널 쓰다듬어 줄 기분이 아니라고."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불쌍한 강아지는 적어도 주인이 자신을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왕자의 옷깃을 물어 세게 잡아당겼습니다. 참을 수 없었던 셰리는 강아지를 발로 차 버렸습니다. 그 순간 반지가 마치 핀처럼 손가락을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왕자는 몹시 놀랐습니다. 그리고 수치심을 느끼며 방구석에 앉아 생각했습니다.

'그 요정이 날 놀리는 것 같아. 날 귀찮게 하는 동물을 한 번 발로 찼다고 해서 이렇게 아프게 해도 되는 거야? 거대한 제국의 주인인 내가 고작 내 개를 때릴 자유도 없다는 건가?'

그러자 갑자기 왕자의 생각에 대답하듯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전 당신을 놀리는 게 아니에요. 당신은 한 가지 잘못을 한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잘못을 했답니다. 우선 당신은 당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에 대해 기분이 나빴어요. 당신은 모든 동물들이나 사람들이 당신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은 화가 났죠. 그건 정말 잘못된 거랍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동물을 함부로 대했어요. 저도 당신이 강아지 한 마리보단 훨씬 우위에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만약 어떤 생명체가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것들을 함부로 대하는 게 당연하다면, 요정은 사람보다 우위에 있으니 저 또한 당신을 때리거나 죽여도 되겠죠. 대제국의 주인으로 있는다는 것은 하고 싶은 악행들을 저지를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모든 선행들을 베푸는 거랍니다."

 

셰리 왕자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고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는 않았지요. 왕자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너그러운 보모 밑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 왔습니다. 무언가를 가지고 싶을 때면 울고 불고 떼를 쓰며 난리를 피웠고, 그 때마다 보모는 왕자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즉시 해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왕자는 완고하고 고집스런 성격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보모는 왕자에게 시시때때로 이런 말도 했습니다. 셰리는 언젠가 왕이 될 것이고, 모든 사람들이 왕에게 복종하고 왕을 존경해야 하며 또한 왕이 원하는 것은 백성들이 감히 막을 수 없으니 왕들은 무척 행복한 존재라고 말입니다.

셰리 왕자가 철이 들 만큼 성장했을 무렵, 그는 자신이 오만하고 교만하며 고집 센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이런 잘못들이 이미 몸에 배어 버렸고 잘못은 없애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왕자가 본래 나쁜 영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악한 행동을 할 때마다 괴로워서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습니다.

"매일 이렇게 나의 분노와 오만함에 맞서 싸우자니 너무 힘들구나.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나의 행동을 바로잡아 주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반지는 자주 그를 찔렀습니다. 어떤 때는 잠깐 찌르기도 했고, 다른 때는 끊임 없이 찌르기도 했습니다. 또한 특이하게도 그가 가벼운 잘못을 저지를 때면 반지는 아주 조금 찔렀고, 그가 아주 나쁜 잘못을 저지르면 손가락에서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그를 찌르곤 했습니다. 이런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던 왕자는, 결국 자기 마음대로 나쁜 행동을 하고 싶어 반지를 빼서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자신을 찌르던 것을 없애 버린 왕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 버렸고, 그렇게 점점 더 몹시 악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이제 아무도 그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셰리 왕자는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러다 정말 아름다운 소녀를 보았고,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셰리 왕자는 소녀가 여왕이 되면 무척 행복해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젤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녀는 아름다운 만큼 현명해서, 왕자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왕자님, 저는 그저 양을 지키는 소녀에 불과합니다. 재산도 한 푼 없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전 왕자님과 결코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혼란스러워진 셰리 왕자가 물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불쾌하게 했나요?"

젤리아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왕자님. 전 왕자님을 인정합니다. 왕자님은 정말 멋있어요. 하지만 그런 당신의 아름다움도, 부유함도, 멋진 옷이나 화려한 마차들도 제게는 소용이 없답니다. 제가 매일 볼 왕자님의 악한 행동들이 왕자님을 경멸하고 증오하게 만들 것이니까요."

젤리아의 말에 몹시 화가 난 셰리 왕자는 하인들에게 즉시 그녀를 잡아 궁전까지 데려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고는 젤리아가 드러낸 경멸 섞인 말을 떠올리며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했기에 왕자는 그녀를 가혹하게 대할 수 없었습니다.

 

셰리 왕자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 중에 자신의 보모가 낳은 젖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또한 왕자와 같은 성향을 가졌고, 왕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끝없이 아첨했으며 나쁜 조언들만 일삼았습니다. 그가 왕자의 슬픈 모습을 보고는 그 이유를 물었고, 왕자는 대답했습니다.

"젤리아의 경멸을 듣고 나니 견딜 수가 없어. 젤리아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덕망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해. 그러니 내 잘못들을 고치기로 마음 먹었네."

그러자 나쁜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작고 여린 한 소녀를 위해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려고 하다니, 왕자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군요. 제가 왕자님의 입장이라면, 그 여자에게 복종하도록 강요했을 거예요. 왕자님은 곧 왕이 될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한낱 양치기 소녀의 의도에 복종하는 건 정말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저 여자는 오히려 왕자님의 노예들 사이에 끼게 되어 무척 기뻐할 것입니다. 감옥 안에 가두고, 빵과 물 이외에는 아무 것도 주지 마십시오. 만약 그래도 왕자님과 결혼하기를 거절한다면 고통 속에서 죽게 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왕자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걸 보여 줘야지요. 평범한 소녀 하나가 왕자님에게 대들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왕자님의 명예에 금이 갈 겁니다. 게다가 이 세상에 모셔야 할 분은 오직 왕자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백성들도 모두 잊어버릴 겁니다."

셰리 왕자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죄 없는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이 더 불명예스럽지 않겠나? 젤리아는 살인자도 아닌데…."

"왕자님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죄가 있잖습니까. 사람들이 존경심을 잃고 왕자님께 대항하는 것보다야 조금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그는 자꾸만 셰리 왕자의 약점을 건드렸습니다. 권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잘못된 행동을 고치겠다는 마음을 결국 가볍게 눌러 버렸습니다. 결국 왕자는 그 날 저녁 양치기 소녀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녀가 아직도 결혼하기를 꺼려한다면 어떤 가혹한 행위라도 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또 다시 왕자의 마음 속에 선한 생각이 들까 두려웠던 남자는 자신만큼 악한 세 명의 어린 귀족들을 모아 왕자를 뒤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함께 식사를 했고, 세 명은 가엾은 왕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 일부러 그에게 술을 많이 먹이며 젤리아에 대한 분노를 더욱 자극했습니다. 왕자는 자신이 젤리아 앞에서 약해졌던 것이 무척 수치스러워졌습니다. 그는 결국 미친 듯이 화를 내며 그녀가 자신에게 복종하게끔 만들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노예처럼 부리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셰리 왕자는 소녀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나 뿐인 열쇠는 자신이 지니고 있었으므로 왕자는 더없이 놀랐습니다. 그는 격렬한 분노에 사로잡혔고, 젤리아가 도망갈 수 있게끔 도와줬을 법한 사람들에게 모두 복수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못된 친구들은 왕자의 이 분노를 이용해서, 왕자의 오른팔이었던 늙은 귀족 설리만을 없애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왕자를 아들처럼 여겼던 이 정직한 남자 설리만은 평소 왕자의 잘못을 몇 번이고 경고해 왔습니다. 셰리 왕자도 처음에는 그의 행동에 감사했습니다만, 점점 설리만의 지적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찬양하는 가운데 홀로 자신의 흠만 들춰 내는 설리만이 자신의 권력에 대항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자는 설리만을 궁에서 쫓아내도록 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명령을 하고 나서도 왕자는 가끔씩 그가 참 좋은 사람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설리만은 이제 더 이상 왕자를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았지요.

한편, 왕자의 악한 친구들은 왕이 다시 설리만을 궁전으로 불러들일까 봐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설리만을 영원히 없애 버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젤리아를 나갈 수 있게 도와 준 사람이 바로 설리만이라고 왕자에게 말했습니다. 설리만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들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다시금 화가 치밀어 오른 왕자는 동생에게 당장 병사들을 보내 설리만을 잡아 온 뒤 사슬로 묶어 두라고 명령했습니다. 병사들은 말없이 그의 명령에 따랐습니다.

 

셰리 왕자는 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천둥 소리와 함께 땅이 심하게 흔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칸디드 요정이 나타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와 약속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잘못을 고치고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다면, 제가 무슨 수를 써서든 당신을 막겠다고 말이지요. 당신은 제 조언과 벌을 무시했어요. 당신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닙니다. 당신의 죄악이 당신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제 당신을 제대로 벌할 차례입니다. 약속을 지키게 되어 무척 기쁘군요. 이제 당신의 성격에 딱 알맞은 모습을 주겠습니다. 분노는 사자의 모습을, 끝없는 식탐은 늑대의 모습을, 두 번째 아버지나 다름 없는 사람을 내쫓은 것은 뱀의 모습을, 잔인함은 황소의 모습을 하게 될 겁니다. 이 동물들의 성격을 꼭 닮은 새로운 모습으로 갈아 입으시지요."

요정이 말을 마치자, 셰리 왕자의 모습은 그녀가 말한 대로 변했고, 그는 공포에 질리고 말았습니다.

왕자는 사자의 머리를 하고, 황소의 뿔, 늑대의 발, 뱀의 꼬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새 거대한 숲 속의 연못가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끔찍한 모습을 본 왕자에게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너의 죄악을 그대로 보여 주는 모습이다. 주의 깊게 살펴라. 너의 영혼은 너의 육체보다 천 배는 더 혐오스럽다!"

셰리는 그 목소리가 칸디드 요정의 것임을 알아 챘습니다. 격분한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에게로 달려들어 한 입에 집어삼킬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는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나는 너의 과오와 분노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너의 오만과 이기심을 꺾어 버릴 것이다. 네게 맞는 힘을 써서 말이지."

 

셰리는 한 시라도 빨리 이 연못을 벗어나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고쳐 줄 대책을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흉하고 추한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는 숲 속을 이리저리 헤매며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금방 구덩이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곰을 잡기 위해 자신이 예전에 설치해 둔 것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숲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냥꾼들이 구덩이로 내려와 순식간에 그에게 쇠사슬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름 아닌 그의 왕국 수도까지 그를 질질 끌고 내려왔습니다.

가는 도중에도 셰리는 이것이 자신의 과오를 깨닫게 할 벌이라고 여기는 대신, 끊임없이 요정을 저주했습니다. 그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채 입에서 피가 나도록 쇠사슬을 정신없이 물어 뜯었습니다.

 

그가 마을 어귀까지 끌려 왔을 때, 셰리는 마을에 성대한 축제가 벌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사냥꾼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통만 주는 셰리 왕자가 벼락을 맞아 방 안에서 산산이 부서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으며 서로 신나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분명 그 왕자의 악행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신들이 지상에서 그를 해방시켜 준 거야! 네 명의 귀족들도, 그의 범죄에 가담했던 사람들도 그들끼리만 제국을 나눠 가지고 이용하리라 생각했겠지. 하지만 결국 왕자를 타락시킨 건 그들의 못된 충고 때문이었고, 그걸 잘 알고 있는 백성들이 왕자를 산산조각 냈어. 그리고 그 나쁜 셰리가 그토록 죽이고 싶어 했던 설리만에게 왕관을 씌워 줬지. 훌륭한 설리만은 방금 왕의 자리에 올랐고, 우린 오늘을 왕국이 해방된 날로 기념하기 위해 축제를 벌이고 있어. 설리만은 덕망도 높고, 분명 우리를 평화 속에서 풍요롭게 해 줄 테니까!"

 

이 말을 들은 셰리는 분노의 신음을 내뱉었습니다. 자신의 궁전 앞에 다다르자 그의 탄식은 더욱 짙어졌습니다. 셰리는 찬란한 왕좌에 앉아 있는 설리만을 보았습니다. 셰리 왕자가 망쳐 놓은 것들을 고쳐 줄 설리만의 장수를 모든 백성들이 기원하고 있었습니다. 설리만은 손을 들어 백성들에게 조용히 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이 제게 주신 이 왕관을 감사히 쓰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셰리 왕자를 대신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셰리 왕자는 죽은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은 한 요정이 제게 와서 말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언젠가 여러분은 덕망 높은 셰리 왕자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가 나라를 다스리던 처음처럼 말이지요."

설리만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아아! 전 왕자의 영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분명 덕망이 있었습니다. 그를 얽어매 왔던 질서 없고 흐트러진 말들이 없었다면, 그는 분명히 여러분 모두의 아버지가 되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의 악행은 마음껏 싫어하십시오. 하지만 그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우리 다 함께 신들에게 그를 다시 돌려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가 존엄으로 가득 차서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는 걸 볼 수만 있다면, 이 왕좌를 제 피로 물들인다고 해도 행복할 것입니다!"

 

설리만의 이 말은 셰리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 남자의 애정과 충성심이 얼마나 솔직하고 진지한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셰리는 자신의 과오를 뼈저리게 후회했습니다. 마음의 선한 움직임에 가까스로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을 뒤흔들었던 분노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동안 해 왔던 모든 죄악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그에 응당한 벌을 충분히 받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하여 셰리는 쇠사슬에 묶여 철로 된 우리에 갇혀 있을 때도 몸부림치지 않았고 양처럼 온순하게 가만히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잔인하고 맹렬한 괴물들을 가둬 두는 큰 곳에 셰리를 데려가 다른 짐승들과 같이 매어 두었습니다.

셰리는 이제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가두고 있는 남자에게도 겸허히 복종했습니다. 이 남자는 무척 잔혹한 남자여서, 기분이 나쁠 때면 아무 이유 없이 온순한 괴물들까지 마구 때렸습니다. 어느 날, 이 남자가 자고 있을 때 자신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끊어 낸 호랑이가 그 남자를 삼키려 달려들었습니다. 셰리는 자신을 학대하던 남자에게서 풀려날 수 있다는 생각에 순간 기뻤습니다. 하지만 곧 이 생각을 누르고 중얼거렸습니다.

"이 불행한 인간의 삶을 구해 주자. 악을 선으로 갚는 거야."

그러자 셰리를 가두고 있던 우리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는 곧장 남자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남자는 잠에서 깨어나, 호랑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또 하나의 괴물을 보자 자신이 영락 없이 죽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두려움은 곧 환희로 바뀌었습니다. 착한 괴물이 호랑이에게 덤벼들어 목을 짓눌러 얌전하게 만들어 놓고는, 남자의 발치에서 조용히 잠을 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상에 젖은 남자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괴물을 당장이라도 끌어안고 쓰다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선행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어느 새 남자의 발치에는 괴물이 아닌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변화에 무척 기뻤던 셰리는 남자의 두 팔에 안겼습니다. 남자는 수없이 셰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 셰리를 왕에게 데려가 자신이 경험한 놀라운 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왕비는 강아지를 자신이 기르기를 원했고, 셰리는 자신이 이전에 사람이었던 것도 잊고 새로운 환경에 무척 기뻐했습니다. 왕비는 숨이 막힐 정도로 셰리를 꼭 껴안았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큰 개를 본 적이 없었던 왕비가 수의사와 상담했고, 그 결과 아주 약간의 빵 조각만 셰리에게 먹이게 되었습니다. 불쌍한 셰리는 항상 배가 고픈 상태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고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셰리는 아침으로 작은 빵을 받았습니다. 셰리는 궁전 뒤뜰에서 그 빵을 먹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입에 빵을 물고서 멀리 떨어진 운하 쪽으로 걸었습니다. 하지만 운하는 온데 간데 없었고 대신 온갖 금과 보석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건물이 보였습니다. 화려한 복장의 수많은 남녀가 그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건물 안에서 춤 추고 노래 부르며 배불리 먹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오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상처로 수척해진 몸을 겨우 가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걸친 옷도 모두 형편 없이 찢긴 상태였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시체가 되어 아무렇게나 던져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며 비틀비틀 건물을 나섰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바닥에 쓰러져 배고픔에 죽어 가면서, 이제 건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빵을 달라고 가느다란 소리로 간절하게 외쳤습니다. 하지만 새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셰리는 풀을 뜯어 먹으려는 소녀에게로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연민을 느낀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난 작은 빵을 먹었지만 그래도 저녁이 될 때까지 굶어 죽지는 않을 거야. 이 불쌍한 아이를 위해 내가 희생한다면, 어쩌면 이 아이가 살 수 있을지도 몰라.'

다시금 선한 마음을 따르기로 결심한 그는 아직 입 안에 물고 있던 빵을 소녀의 손 위에 살짝 올려 놓았습니다. 소녀는 금세 기운을 차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알맞은 때에 도움을 줬다는 사실에 즐거워진 셰리는 이제 궁전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때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네 명의 남자가 젤리아를 붙들고 건물 안으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셰리는 자신이 짐승의 모습을 한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인간의 모습을 했다면 젤리아를 도울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약한 개에 불과한 셰리는 남자들을 향해 맹렬히 짖으며 달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발에 사정 없이 걷어차인 그는, 젤리아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결코 그 건물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소녀에게 곧 불행이 닥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아! 그녀를 끌고 가려는 이 남자들에게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는구나! 이것과 똑같은 죄악을 나도 저지르지 않았는가! 만약 신의 정의(正義)가 나의 이 난폭함을 미리 알려 줬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수치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순간 머리 위에서 나는 큰 소리에 셰리의 생각이 멈췄습니다. 덜컥 창문이 열리더니 젤리아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셰리는 그녀를 보자 무척 기뻤습니다. 그녀는 창문으로 먹음직스러운 고기 한 덩이를 던졌고, 창문은 곧바로 다시 닫혔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셰리는 자신에게도 먹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즉시 그 고깃덩이를 먹어 치웠습니다. 그러나 방금 셰리의 도움으로 살아 난 작은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그를 끌어 안더니 울면서 말했습니다.

"불쌍한 멍멍아, 이 고기들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 이 건물은 쾌락의 성이고 모든 것에 독이 발라져 있단 말이야…."

그와 동시에 셰리의 귀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선행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그 즉시 셰리는 작고 새하얀 비둘기로 변했습니다. 자신의 몸이 칸디드 요정과 같은 색으로 바뀐 것을 깨달은 셰리는 그녀가 다시 한 번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원했습니다. 우선 젤리아의 곁으로 가리라 생각한 그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한 바퀴 돌아 보았습니다. 창문 하나가 열려 있는 것을 본 그는 기뻐하며 창문을 통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건물 안에 젤리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는 그녀를 찾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는 며칠 동안 이곳 저곳을 날아 다녔습니다. 그러다 불모지에 다다랐고, 거기 있는 동굴을 향해 날았습니다. 기쁘게도 그 곳에 젤리아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은둔자 옆에 앉아 가벼운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즐거워진 셰리는 이 아름다운 양치기 소녀의 어깨 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젤리아의 얼굴에 몸을 문지르며 다시 보게 되어 기쁘다는 뜻을 표현했지요. 이 작은 비둘기의 상냥함에 감동한 젤리아도 손으로 셰리를 어루만졌습니다. 비둘기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비둘기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나에게 준 선물을 받아 들일게. 널 언제까지나 사랑할게!"

그러자 은둔자가 말했습니다.

"젤리아, 뭘 한 거죠? 방금 서약을 한 건가요?"

그와 동시에 셰리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죠, 아름다운 양치기 소녀여. 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열쇠는 당신이 우리의 결혼을 승낙하는 것이었나 봅니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절 사랑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전 행복해졌습니다. 제 보호자인 칸디드 요정에게 간청했어요. 당신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모습이면 무엇이든 기꺼이 받아 드리겠다고 말이죠."

순간 은둔자의 모습을 하고 있던 칸디드 요정이 본모습으로 돌아와 말했습니다.

"당신은 불안정함 속에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사실 젤리아는 당신을 보자마자 당신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지요. 하지만 당신이 행한 죄악들이 젤리아를 당신에게서 밀어낸 거랍니다. 결국 당신 마음의 변화로 인해 젤리아의 애정이 다시 살아난 거예요. 이제 두 분은 행복하게 살 겁니다. 두 분의 결합은 덕망을 근본으로 했기 때문이죠."

 

셰리와 젤리아는 칸디드의 발 밑에 엎드렸다. 왕자는 그녀의 호의에 몇 번이고 감사했고, 젤리아는 왕자가 온갖 악행들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영원하고 진정한 사랑을 왕자에게 약속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요정이 말했습니다.

"일어나요, 이제 두 분을 궁전으로 데려다 드릴게요. 죄악은 결코 받을 수 없었던 왕관을 이제 셰리 왕자가 쓸 차례니까요."

그녀가 말을 마치고 나니 어느 새 그들은 설리만의 방 안에 있었습니다. 설리만은 덕을 쌓은 셰리의 모습을 보고 무척 기뻐하며, 왕좌에서 일어나 셰리 왕자의 충직한 신하로 남았습니다.

왕이 된 셰리는 젤리아와 함께 오랫동안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그가 다시 손가락에 끼운 반지는 이제 더는 그를 찌르지 않았다고 합니다.